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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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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에 해당되는 글 855건

  1. 2013.07.01
    커뮤니티의 운영진, 운영의 미숙 2
  2. 2013.06.29
    새누리당이 NLL 포기라고 주장하는 이유.
  3. 2013.06.25
    6월 25일, 그날의 고통을 기억합시다. 1
  4. 2013.06.24
    엄청난 범죄비리를 저지르고 그걸 해결하겠답시고 외교를 들어엎는군요. 2
  5. 2013.06.22
    국정원 선거조작 - 현 사태를 규탄한다.
  6. 2013.06.17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 8
  7. 2013.06.13
    단순히 이익만 된다면 - 팽배한 이기주의
  8. 2013.06.07
    노력없는 성취
  9. 2013.05.29
    일베에 대한 단상 2
  10. 2013.05.26
    싫어하는 것에 대한 맹목적 적대감 4
  11. 2013.05.22
    '나는 자유주의자입니다.'
  12. 2013.05.18
    정치성향의 편향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13. 2013.05.16
    시크릿 전효성의 민주화 발언이 문제되는 이유. 2
  14. 2013.05.14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
  15. 2013.05.07
    이상사회의 허상
  16. 2013.04.24
    원칙을 지키는 사회
  17. 2013.04.20
    교육, 경쟁, 취직, 출산.
  18. 2013.04.19
    군가산점, 엄마 가산점의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자 4
  19. 2013.04.14
    일베라는 프레임
  20. 2013.03.27
    대학생 질도 다 떨어졌네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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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터 많은 커뮤니티에 속해보기도 했고, 몇몇 커뮤니티를 운영해보기도 하면서 운영에 대해 들은 이야기, 직접 겪은 경험을 토대로 커뮤니티의 운영에 대해 생각해볼 일이 많았습니다. 그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라야 당연 운영진의 운영, 관리 부분일텐데, 운영진으로서의 능력, 심지어 덕성의 부분이 떨어지는 운영진들을 보아온 바, 자신을 되돌아보기에 적절한 경험들이었죠.


커뮤니티를 운영한다는 것은 단순히 광고글을 지우고 적절한 게시판을 생성하며, 그 게시판의 영역에 맞는 게시글을 올라오게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단순한 관리의 영역이며 운영이라는 것은 그보다 더 넓은 영역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죠.


다음과 네이버 등등 수많은 커뮤니티, 주로 카페가 존재합니다만, 그 중에서 나이가 어린 운영자들도 수두룩한 카페가 많습니다. 이는 특히 네이버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인데, 주 연령층이 초등학생~10대가 많고 활동량도 뛰어나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 운영이라는 것은 많은 경험과 판단력을 필요로하여, 특히 게시판 내의 회원간 분쟁에 대해 처리하는 것이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문제는 나이가 어린 운영자가 커뮤니티를 운영할 때에는 이러한 분쟁에 대해 매우 편파적이고, 올바르지 못한 판결을 내리는 일이 잦다는 것이며, 더 나아가 이러한 활동이 친목을 위한 경우일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운영진은 자신의 커뮤니티에서 막강한 권한을 지니고 있고, 그러한 권한에서 나오는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운영진의 역할을 실로 중대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위치에 대한 책임감과 무게감을 알지 못하는 어린 운영진들은 그 운영에 대해 매우 미숙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편파적이고 독선적인 운영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은 어찌보면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같습니다.


게시판에서 분쟁이 일어났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잘못했느냐가 아니라, 먼저 무엇이 원인이 되었느냐이고, 그 이후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와, 그와 싸운 다른 이의 잘못은 얼마나 되는가. 또한 그 사실들의 총합으로 어떠한 처벌을 내려야 알맞은가에 대한 판단이 있어야합니다.


이러한 판단은 개인으로서는 까다롭기 때문에, 주로 많은 운영진(혹은 판단을 의논하기에 적지 않은)을 두고 있는 집단이라면 서로간의 의논을 통해 게시글, 혹은 댓글의 처리와 분쟁 당사자에게 맞는 처벌을 정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운영법에 익숙치 않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믿고 행동하는 식견좁은 어린 운영진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하지 않고 자신의 판단력만을 통해 판결하기 쉽습니다. 예컨데 어느 커뮤니티에선 운영진이 자신과, 자기와 어울리는 친목파벌의 의견에 거스르는 회원을 게시글, 댓글을 쓰지 못하도록 강등하거나 활동중지를 내린 뒤, 보란듯이 게시판에서 해당 회원을 조롱하고 공격하는 경우가 존재합니다.


조금 사건이 큰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 게시판에 글이 튈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분쟁에 엮일 경우가 있죠. 이런 경우에도 이러한 처벌에 대한 성찰이나 원칙이 없는 경우 그 판단을 예측하기는 굉장히 쉽습니다. 주로 두가지 경우가 있는데, 첫번째는 그냥 끝나기를 무력하게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 두번째 경우 자신과 친한 사람들만 남겨놓고 모두 활중 혹은 강퇴.


제 3자가 보기에도 이러한 편파적이고 올바르지 못한 운영법은 그 커뮤니티에 해악만을 남겨줍니다. 제대로된 운영이 아니기 때문에 분쟁이 발생해도 제대로 처리가 되지 않고 점점 극렬화 되거나 시시때때로 싸움질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으며, 이는 각각의 잘잘못을 따지려드는 회원들에 의해 곧잘 파벌이 갈리는 막장 사례가 생기기도 하죠. 혹은 운영진과 친한 파벌만을 남겨두고 친목질을 통해 커뮤니티가 서서히 말라죽어가는 경우도 심심찮게 존재하죠. 주로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경우를 차지합니다.


혹은 각 판결마다 형량이 서로 달라지고, 그 본질을 파고들자면 그와 친한가, 안 친한가에 이유가 달려있는 경우도 적지 않은 편이죠. 이쯤되면 친목질이지만, 그것을 방조하고 심지어 조장한 운영진의 운영미숙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을 겁니다.



운영진이 여럿 존재하고, 그들간의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개개인의 운영진이 뛰어나다면 그 커뮤니티는 어느정도 굳건할 여지가 존재합니다. 다만 오직 자기 자신만을 믿고, 자기 자신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하려 든다면 그 커뮤니티는 그 개인이 매우 뛰어난 인물이 아니라면 언젠가 문제가 생겨 심지어 파국에 다다를 수 있죠.


인터넷의 크다하는 커뮤니티의 경우 대개 어느정도 숙련된 운영진과 원칙이 존재하며, 독자적인 운영 방식 또한 있기 마련입니다. 반면 나이가 어리고 그닥 크지 않거나, 작은 커뮤니티의 어린 나이의 경험과 통찰등 판단력이 떨어지는 운영자가 있는 커뮤니티는, 사실 그 규모를 막론하고 언젠가 분명 문제가 생겨 쇠퇴하기 마련입니다.



커뮤니티도 하나의 집단이고 그것을 올바른 방향으로 운영하기 위해선 그에 걸맞는 요소를 갖추어야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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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준, 'NLL 포기' 발언 맞아 대화록 공개"

최경환 "盧, NLL 포기 넘어 상납..칠거지악 경악"

김을동, `盧 NLL 포기` 주장 듣고 "부인이 빨갱이라.."



등등.



정치에 관심이 있고 꾸준히 찾아보며 상식적인 수준의 판단력을 가졌다면 그 수준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행위인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인데, 만약 정치에 관심도 없고 그러한 판단력에 어떠한 외부적 요인이 개입하여 온전한 판단력을 기대할 수 없을 경우 그 사람은 다시 말해 정치꾼의 정치공작에 넘어가기 쉬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제 1당이자 집권 여당, 그리고 대한민국 기성 3대 언론사가 빵빵하게 밀어주며, 사회각계에 이들의 사상, 이념을 같이하는 수많은 기업-개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통해 이들은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자신들만을 믿는 이들에겐 NLL 포기를 머리속에서 기정사실화 시키며, 이런 식으로 계속 NLL을 포기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치에 관심없는 이들도 그것을 보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게끔 만드는 장치인거죠. 우리가 보기에 저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헛소리인지 알 수 있을테지만, 반면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는 계속해서 NLL을 포기했다고 하고 언론에선 이런 발언은 밀어주니 그게 사실이라고 믿는 겁니다.


이런 거죠. "노무현 NLL? 그거 포기한거 아니야?" 그들이 좋아하는 단어로 표현하자면 선동당한거죠.. 이미 새누리당에서도 발을 빼려고 하고 국민 절반이 NLL 포기가 아니다라고 하는 와중인데 말입니다. 어떠한 사건에 대한 주장이 많을 경우, 그 사건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겐 가장 많이 주장되는 주장이 곧 진실로 여겨질 확률이 높습니다. 크게 관심을 가지도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사건에 대해 알려는 노력을 더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들이 접할 정보는 가장 많이 돌고 있는, 가장 많이 눈에 보이는 것들일 테니까요.


다르게 보자면 언론의 힘이 국민들의 인식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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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김일성이 스탈린의 허락을 받고 남한을 침공하던 그날부터 53년 7월 27일 휴전하던 그날까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겐 가족이 있었고 또한 자식이 있었으며, 어느 누군가에겐 자식은 없었지만 나만 바라보는 부모님이 있었습니다. 어린 고등학생들도 군인으로 징병되고, 탐욕적인 김일성의 명령으로 내려오게된, 거짓된 정보를 믿고 내려왔던 수많은 이들과 총부리를 겨눴지요.

비단 그들만이 아닌 동방의 작은, 독립한지 5년된 국가를 위해 자기 목숨을 걸어주셨던 수많은 외국 군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결국 망할 수 밖에 없었던, 망할 수 밖에 없는 나라의 노예가 아닌 진정 자유로운 국가로서 자신의 권리가 있고, 자신의 의무를 다 할 수 있는 나라에 우리는 살아있습니다.

오늘은 이제 막 태어난 작은 나라가 피를 흘린 날입니다. 어렸을때 병이 걸리거나 다치면 평생 후유증이 적던 크던 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그런 날입니다. 우리가 병에 걸린, 크게 다친 날입니다. 이런 다친 국가지만, 그런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숭고하게 희생한 수많은 장병들을 위해, 우리는 그들을 이 나라의 마지막이 다할 때까지 기억해야 합니다. 기억해야 역사라면, 우리는 역사를 안고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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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국가기관이자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일개 정당과 후보를 위해 선거에 개입하고 여론조작을 실시했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로 드러난 지금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NLL 발언을 떡밥으로 던져 물타기를 시전하며 피장파장의 오류를 범하고 있고, 결국 비공개 됐어야할 NLL 문서가 공개되버렸으니, 이제 앞으로 우리나란 타국과 제대로 외교하긴 글러먹었네요.

비공개로 이뤄진 것을 다 공개하자 이러면 이제 대한민국 대통령과 누가 진솔하게 회담하겠습니까? 비공개 회담이나 외교적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질게 뻔한데 말입니다. 어차피 이번 NLL은 때되면 공개될 것이고 그거 지금 터뜨려봐야 여당이나 야당이나 손햅니다. 아예 국가적인 개망신이자 국가적 신뢰의 추락이에요.

비공개로 진솔하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 것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싸그리 공개될거면 누가 이야기하고 싶어하고 더 나아가 어떻게 신뢰합니까? 이번 한번 했는데 다음에 또 못할까봐요?



무엇보다 웃긴건, 우리나라 사람들은 진보고 보수고 좌파고 우파고를 떠나서 대부분 북한을 외교의 대상으로 보질 않아요.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북한 또한 외교의 대상이라는게요. 북한에 대한 맹목적인 적대감, 혐오감 때문에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극단적이고 단적인 행동양식을 보여주고 있는게 우리나랍니다. 북한을 마치 사탄으로서 대화의 상대 등으로 보지 않고 마치 종교적인 맹목적인 증오와 혐오만을 보여주는데.

지금 당장 북한을 똑바로 보세요. 명백히 실체하고 있는 정치적인 집단입니다. 이걸 애써 외면하고 있는건 우리나라에요. 북한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해보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적어도 위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더요. 그렇다고 계속 그대로 두기에는 썩어가는 염증과도 같습니다. 앞으로 악화 될 것은 뻔한데 아무로 그걸 제대로 보려고도, 치료해보려 하지도 않죠.

오히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종북빨갱이로 몰리며 공격을 받습니다.



이번 사건의 기초를 마련해준 새누리당은 잃은게 있을까요? 없죠. 50%의 콘트리트 지지자들이 있는데. 자기들만 잘 살면, 잘 되면 사실 뭐가 어떻게 되든 별 상관도 없다는 심봅니다. 어디서 많이 보는 특성 아닙니까? 북한 고위층이죠. 아랫것, 북한이라는 국가의 이미지가 어떻든 자기들만 잘 살면 그만.

이 모든 것의 단초를 제공해준 새누리당. 대단합니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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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국가 공무원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지난 국정원녀 사건의 정황포착부터 시작해서, 점입가경으로 그것이 사실로 드러나버렸습니다. 전에 글을 쓴 적 있듯이, 이 사태로는 아예 대통령이 하야하고도 남을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의 국민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뜨겁지 못하더군요.



국정원은 국가 정보기관입니다. 북한의 간첩, 산업스파이 등등 사회적으로 위험성이 큰 범죄적인 것을 방지하고 잡아내는 국가부서란 말입니다. 근데 이런 국가 정보기관이 법을 어겨서까지 일개 정당과 일개 후보를 뒤에서 몰래 지원하고 있었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이것은 국가적으로 매우 큰 사건입니다. 이건 어떻게 커버칠래야 칠 수 있는 수준의 사건이 아닙니다. 현재 국정원 사건을 옹호하는 사람들. 반대로 민주당이 똑같은 짓을 했어도 커버치고 용서하겠습니까? 아니잖아요?


대북심리전을 위해 일개 유머사이트인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서 정부, 여당에게 유리한 내용, 옹호하는 글과 댓글을 국정원 요원이 작성을 한다.


대북심리전? 그냥 여론조작인거죠. 그것의 효과가 얼마가 됬든 말입니다. 그것을 국가 정부부서가 시도했다는 것 자체가 문젭니다. 별 효과가 없었으면, 계속 해도 된다 이겁니까? 똑같은걸 민주당이 해도 된다고 생각하세요?


간첩이라면 체포를 해야죠, 인터넷에서 키배를 뜰게 아니라.


헌법정신에도 민주주의가 스며들어있습니다. 전 정부와 현 정부는 헌법정신을 짓밟고 있는 것이고, 빨갱이라면 이게 빨갱이죠. 별게 빨갱입니까? 동성애를 찬성하면 간접적으로 북한에게 이익이 간다는 개신교 목사가 생각나는군요. 그렇다면 국가의 헌법정신을 짓밟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이 정부는, 북한에게 이익이 안 간다는 겁니까? 이상할 노릇입니다.


지금 새누리당, 국정원을 옹호하는 것은 그야말로 (그들이 반대세력에게 자주 주장하던) 세뇌, 선동을 당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보수우익은 해도 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결사반대를 하며 공격하겠지요, 세뇌 당한 수준입니다. 지금 조중동에서 이러한 사건을 축소시키고 쉴드를 치며 덮으려하는 것에는 선동되는 것입니다.



새누리당에서 뜬금없이 NLL을 걸고 넘어지고 있습니다. 이건 그야말로 물타기입니다. 새누리당이 주장했습니다. 국정원 국정조사보다 NLL 발언문 전문 공개가 시급하다라구요. 그래서 민주당이 말했죠. NLL 발언문 전문 공개하겠으니, 국정원 국정조사 받자고.


그러자 새누리당이 그걸 거부했습니다. 그게 지금 새누리당입니다. 감이 안 잡히십니까? 일단 던져보는 물타기라는 거죠. 현재 NLL 발언은 그 실체가 입증되지 않은 새누리당의 '주장'입니다. 국정원 사건이 커지자 NLL을 떡밥으로 던져 현 국정원 사태를 덮어보려는 시도이자, 반대 세력에 대한 공격으로 저열한 정치 공작이라 이겁니다.


지금 국정원은 애써 무시하고 NLL에 힘을 실어주는 이들은, 이러한 새누리당-조선일보 등의 언론에게 선동 당하는 겁니다. 제가 별로 좋아하는 단어도 아니고, 소통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생각하기에 입에 담으려는 단어는 아니지만, 지금 꼴을 보면 딱 이 단어가 맞더군요.


만약 이번 물타기가 성공한다면 앞으로는 이렇게 전개 될 겁니다. NLL 발언에 의해 국정원 사건이 묻혀버리고 언론에서도 노무현 NLL 관련 보도를 줄이면서 입 싹 씻고 가만히 있다가 조금 지나서 짤막하게 그런 적 없다고 뜨는거요. 비슷한 경우가 한두번 있는게 아니었죠. 그야말로 새누리당 원하는 대로 돌아가는 겁니다.


NLL문제가 따질만한 사항이라곤 해도, 현 시점에서는 뜬금포에 가깝고, 국정원 사건은 절대 넘어가서는 안되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지금 새누리당은 노무현이 했다는 발언을 '주장'하면서 물타기, 사건을 묻으려고 시도하는거죠. 그 발언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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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헷갈리시는데, 이 글에서 이것에 대해 정리하고자 합니다.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정치체제가 아닌 경제체제입니다. 공산주의의 반대는 자본주의이고, 민주주의의 반대는 왕정, 과두정, 금권정, 귀족정 등 국민에게 주권이 없는 모든 체제를 아우릅니다. 이건 기본이니 알고 갑시다. 간혹 민주주의의 반대를 공산주의 사회주의라고 알고 있는 분들도 왕왕 계시더군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충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있고 맑시즘적 맥락에서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있습니다. 이 둘은 서로 일정한 차이를 지니고 있으며 이에 대해 혼동하기가 쉽죠.


전자의 경우, 계급간의 평등을 주장했던 모든 이념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매우 이상적이고 현실적이지 못한, 다분히 철학적인 성격을 지닌 이론들이었고, 마르크스는 자신의 저서인 <공산당선언>에서 이것들에 대한 비판을 하죠. 어째서 이러한 이념들이 이론적으로 불충분하고, 모자르며 어째서 실패 할 것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은 그에 반해 그러한 이상적이고 감상적이었던 기존의 사회주의와는 다른, 경제학과 유물론에 입각한 새로운 사회주의 이론을 주창하는데, 그것이 바로 "과학적 사회주의", 즉 공산주의입니다. 공산주의라는 명칭은 맑스가 생시몽, 오웬같은 철학자들과 다른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붙힌 명칭이구요.



이후 마르크스가 비판했던 이론들, 다시 말하자면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공산주의) 이론을 제외한 이론, 이념들은 현실적인 영향력을 잃고 사라집니다. 이제 '사회주의'라고 한다면 맑스의 사회주의를 의미하게 되죠. 그리고 마르크스는 자신의 공산주의를 조금 더 정교하게 수정, 보완하여 더욱 발전시키게 되는데, 여기서 또 (맑시즘적 맥락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개념이 갈리게 됩니다.


전환적이고 과도기적인 체제인 사회주의와, 그 끝인 최종단계의 공산주의로 구분이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회주의는 각종 혁명과 개혁을 통해 자본주의적 체제를 무너뜨리고 공산주의 체제를 완성시키기 위해 거쳐지나가는 하나의 과도기적 체제로서의 성격을 가지게 되고, 공산주의는 그러한 혁명과 개혁을 통해 만들어진 사회주의의 최종 형태, 즉 공산주의로 끝을 맺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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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민 자본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양심을 따르지 않고, 어떤 부도덕, 비윤리적인 행위라도 단지 돈만 벌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됬다는 것으로, 이러한 옳지 않은 사상에 따라 행동하는 결과는 궁극적으로 사회부조리와, 동시에 비판을 가져오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적은 임금을 주면서 더 오래 직장에 잡아두고 부려먹는다던가, 개인 차원에선 거지나 장애인인 척하면서 돈을 기부받고 일 끝나면 멀쩡히 일어나서 목욕하고 집에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의 근본에는 돈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러한 맥락을 같이 하는 사상들은 어떤 사물이나 대상이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거나 그 행위 자체가 부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것을 고려하지 않고, 혹은 고려하고서라도 그저 자신과 자신이 소중히하는(예컨데 가족이나 투자자) 이들과 이익을 공유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됬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천민 자본주의는 돈, 자본에 대한 몰양심이라면 후자와 같은 경우, 대개 더 넓은 범위.. 사회전반적으로 통용되는 이기주의에 가까울 겁니다.



이러한 천민 자본주의나 (개인이나 집단)이기주의는 그 자체로 주변에 눈쌀을 찌뿌리게 만드는데, 그것이 위법일 경우 법적인 처벌이나 보상을 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에 어긋나지 않는 경우(거지나 장애인인 척하며 돈을 기부받는 등..) 법에 저촉되지는 않지만 도덕적인 차원에서 사회적 비난을 야기하지요.


우리나라의 갖가지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보도되는 것을 보며 이러한 '단순히 이익만 된다는 태도'를 가지는 것은 그야말로 사회악의 하나라고 생각하게 되더군요. 이러한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또한 이기주의를 가진게 대부분인데, 집단 이기주의의 경우 이번 태권도 편파판정으로 사퇴한 임원의 복귀가 있습니다.


결국은 집단 이기주의에 의해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끼리 좋게좋게 넘어가기 위해 1주일 이후 다시 불러들인 경우이죠. 제식구 챙기기. 이 말이 가장 설명하기 편한 말일 겁니다.


이런 경우는 비단 이번 일만이 아닙니다. 정치에서도, 기업에서도, 협회에서도 이러한 경우는 차고도 넘쳐요. 이를 다시 말하자면 우리나라 사회자체가 이러한 잘못을 명백히 짚고 넘어가지 않고, 그에 따른 처벌이나 책임을 확실하게 묻지도 않고 그저 없던 일로 묻고 '좋게좋게' 넘어가는 비양심적이고 무책임하며 진보된 의식을 가지지 못했다는 반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잘못이 일어났다면 그것을 명백하게 짚고 넘어가야 후환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상태로 곪고 썩어 집단 전체를 경도시키고, 더 나아가 사회자체를 병들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짧은 시간동안 빠르게 발달한 한국 사회는 이러한 선진화의 과정에서 튀어나온 각종 사회문제를, 일단 발달하고 난 뒤 생각하자며 묻어놓고 발달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이러한 사회문제의 염증을 아직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이러한 태도로 인해 제대로 바라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하나 둘 묻어둔게 서로 엮이고 엮여 무엇하나 골라잡고 해결하기엔 너무 많은 문제들이 서로 얽혀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빠르게 발달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두뇌들이 생산되고 있으며 사실 어느 나라보다 고학력자가 많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추측컨데 분명 해결할 역량은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실이 많이 얽혀있다고 포기하거나 잘라버리는 것보단, 충분히 시간을 두고 각잡고 풀어나가면 언젠간 분명 모든 실을 풀어낼 수 있을거라 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골치아프다는 이유로, 해결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외면하지 말고, 묻어두지 말고 지금이라도 자리 깔고 앉아서 어떻게 해결해야하는가  각잡고 생각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늦으면 푸는게 더 힘들어질 것이니까요. 제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가 아닌, 개인의 차원에서, 국민 전체가 이러한 이기심에서 벗어나며 책임 질 것은 확실하게 져야한다, 문제는 확실하게 처리한다는 의식을 가져야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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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공부, 건강..


노력없이 얻으려하는 대표적인 것들입니다. 정말 원하고 됐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하지만 언제나 하기 귀찮다고, 힘들다며 기피하는 것들이죠. 언제나 열망하면서, 정작 노력하지는 않는 것이 사람일까요. 그래서 힘든 것은 피하면서 결과물을 얻으려하는 잘못된 편법들을 사용하나 봅니다. 어느 종교에서 말하듯이 시련이 없으면 성취도 없다는 말처럼, 물리학의 어느 법칙처럼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듯이 무언가를 원한다면 그에 합당한 무언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것이 돈이 되었든, 노력이 되었든.



여성분들, 다이어트 굉장히 원하죠. 조금만 더 뺏으면 좋겠다. 조금만 더 예뻐졌으면 좋겠다. TV에 나오는 저 연예인같은 몸매를 가지고 싶다. 모델같은 몸매였으면 좋겠다. 허벅지살, 뱃살, 팔뚝살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원하면서도 하는 행동은 이기적이기 그지 없습니다. 그저 굶어서 빼려는 것은 물론이요 약을 사먹는다거나, 검증도 안된 잘못된 다이어트법을 무작정 시도한다거나, 심지어 먹토 다이어트, 먹고 토하는 다이어트를 하는 막장 다이어트도 있습니다. 화룡점정은 성형 다이어트려나요? 어쩌면 이건 나은 축일지도 모르겠군요.



뭐.. 노력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모델같은 몸매, 연예인같은 몸매, 탄력적인 몸매를 원한다면.. 살을 빼고 싶다면 해야하는 것은 별 시덥잖은 다이어트법이나 약따위가 아니라 운동입니다.


넵. 몸을 움직이며하는 운동이요.


사실 몸매를 좋게하겠다며 살만 빼는 다이어트야말로 가장 보편적이고 바보같은 다이어트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에도 좋지 못할 뿐더라 단지 삐쩍 마른 상태밖에 안되거든요. 그렇게 원하는 11자 복근, 탄력적인 몸매는 모두 운동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단지 굶어서 빠지는 몸매는 살도 푸석푸석하며 탄력적이지도 못하고 엉덩이는 축 처지고 건강미가 없는, 말린 생선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미적 기준이 마른 사람들에 맞춰져 있어서 허리 가늘고 몸에 살이 없으면 그게 예쁘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만,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몸매와 그 관리법을 보면 적게 먹는 것만이 요령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종 운동, 요가, 훈련(또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죠.)을 병행하는 것은 그야말로 건강한 몸매를 만드는 방법이거든요.



공부도 마찬가집니다. 뭐 별로 길게 할 말은 없는데, 수업시간에 쳐놀고 집에서도 게임만 하고 학원에서도 딴데 정신팔려있는 주제에 성적이 안 나온다고 징징대는 것은 걍 답 없는거죠. 물론 이쯤되면 자기도 왜 성적이 안 나오는지는 알 것이고, 진짜 잘하는 애들도 있는 법이라 노력은 해도 원하는 등수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죠. 그래도 뭐 어쩌겠습니까;;


공부라.. 저도 한창 공부할때는 나보다 머리 똑똑한 애들보고 부럽다, 쟤넨 어떻게 저렇게 똑똑한가 생각하면서도 집에 돌아가면 가장 먼저하는 것이 컴퓨터를 키는 일이었죠. 그런 주제에 그런 애들 보면서 머리속의 지식만 뽑아다 내 머리에 넣고 싶다 같은 생각도 했었지요.. 진정 성적을 올리고 싶었으면 집에서도 공부를 했어야하는데 말입니다..



건강.


개인적으로 보약에 대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오래전에도 이와 관련되어 글을 한번 쓴 적이 있죠. 앞서 말했듯이 전 보약을 먹는 것에 대해 큰 의미가 없이 돈을 날리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보약과는 약간 떨어진 뱀술같은 것도 그렇죠. 먹으면 건강이 좋아진다고? 무슨 근거로?..


보약. 말은 좋죠. 먹으면 건강해진다. 그래서 야생동물이나 지네 큰거 잡아다가 좋은 부위만 때서 말리고 달여마시죠. 그리고 그걸 먹으면서 건강이 좋아질거라고 생각해요. 뱀 같은거 잡아다가 뱀술담가 먹는데 이건 진짜 뭔 근거인지 모르겠습니다.


건강을 얻고 싶으면 해야하는건 걍 간단해요. 운동을 하는거죠..-_-;; 괜히 보약이다 뭐다 하면서 이상한거 먹지 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조깅을 하든 일주일에 한두번 산을 가든 운동을 하면 됩니다. 단순히 뭘 먹는다고 건강이 좋아질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거야 말로 날로 먹는거죠.


건강은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효과가 있더라도 일정 선 이상 효과를 볼 것이라고 생각치도 않구요. 나이드신 분들 중에 이런 분들이 계십니다. 젊은이들 보고 요즘 것들은 노력도 안하면서 좋은 결과를 원한다고, 그러면서 자기는 변변찮은 운동도 안하면서 보약이나 먹고 있죠. 건강 좋아지겠다면서요.



노력없는 성취는 그야말로 날로 먹는 것과 다를바 없습니다. 운이 좋아 별 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겠죠. 그건 뭐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날로 먹으려는 심보나, 다른 사람 굴려놓고 자기 업적이니 하는 것이야말로 놀부 심보겠지죠. 그니까 이 글의 주제는 뭔갈 얻고 싶다면 그만큼 노력을 하자는 겁니다. 별거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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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사태와 5.18 이야기들을 기점으로 점점 일베가 공중파에서도 자주 보도되고 하나의 공론화가 되어가고 있는데, 이에 따라 일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가 자주 찾아오는 듯 합니다.



어제였나요? 일베 사이트 폐쇄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토론을 했었죠. 저는 일베 폐쇄에 대해 매우 찬성하고 있는 입장입니다. 개인적인 판단으론 이미 방어적 민주주의가 발동될 선을 넘었다고 보며, 이미 각종 패악질을 하고 있는 이 집단을 단지 표현의 자유라는 공허한 잘못된 판단으로 놔둘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표현의 자유.


표현의 자유 좋죠, 근데 이것에 대한 아무런 이해없이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개소리를 짖껄여대는 것이 일베충놈들입니다.

표현의 자유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의무를 먼저 져야합니다. 그것은 상대방을 억압하거나, 침해하는 일이 없고, 또한 그것이 허위사실이 아니며 단지 비난하기 위해서 사용하지 않는 것이죠.


단지 '모든 표현'이 가능하다면 명예훼손, 허위사실 유포죄란 존재해서는 안됩니다. 위헌일테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는 표현의 자유과 상관없는 그것이 명백히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을 욕하는 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상대방을 위압하고 억압하는 것이죠. 거짓된 사실을 날조하여 유포시키는 것 또한 자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분명 거짓이고 그러한 거짓은 사회를 혼란스럽게 할 따름이니 법적 강제력을 동원해서라도 막아야할 것이죠.


내가 남을 종북이나 빨갱이로 매도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잘못된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라. 그렇다면 그 자유 한번 남용해보세요. 그 결과가 경찰서행이라면 그 의무 또한 자신이 책임져야할 것입니다.


윤리와 도덕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단지 법적인 구속력이 없을 뿐 그러한 것들에 위배되는 이야기를 꺼냈을 경우 사회적인 지탄을 받는 것은 절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도덕률에 대한 배반을 표현의 자유라는 것으로 덮을 수 없는 것이죠. 그러한 망언을 뱉었다면 그에 따른 책임이 바로 사회적 지탄을 받는 것을 견디는 것입니다. 혹은 자신이 바뀔 수도 있죠.



사회는 기본적으로 도덕과 윤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 사회를 이루는 하나의 원리이자 원칙이에요. 내가 죽은 자를 모욕하고 능욕한다면(말로, 혹은 물리적으로) 그것은 사회의 지탄을 받아 마땅합니다. 이러한 도덕은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사회적 합의로서 간접적으로 강제성을 갖기는 하지요.


하지만 그것은 현실에서나 영향을 받는 것이지 자기가 안주할 공간을 이리저리 바꿀 수 있고, 현실이 아닌 가상공간에서의 나라는 존재이기 때문에, 더불어 대부분 현실의 내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이러한 도덕적, 윤리적 지탄에서 어느정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 예가 바로 일베라고 할 수 있죠. 한두명의 깽판질도 아니고 수천명, 수만명이 도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심지어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문제가 될만한 이야기를 싸지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의 표현의 자유라는 것으로 포장하려들지요.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도덕, 윤리에 위배되는 망언 또한 표현의 자유로 포장할 수 없습니다. 그것에 대한 책임이 바로 그 비판을 얻어먹는 거니까요.



이러한 경향성을 보이는 최대의 커뮤니티인 일베를 없애면 어떨까요? 과연 일베충이 모두 사라질까요? 예전에 이에 대해 글을 써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말했듯이 일베가 사라지면 현 인터넷 사회가 조금은 더 깨끗해 질 겁니다. 왜냐하면 일베는 수용소가 아니라 양성소거든요. 다른 글들에서도 꾸준히 밝혀왔듯이 일베는 근본이 유머사이트고, 단지 그 유머의 핀트가 매우매우매우 비뚤어진, 글러먹었다는 겁니다.


방심으로서의 유머와 그것을 통한 정치색 입히기, 점차 하나의 완성된 일베충으로.. 따라서 일베라는 곳을 없애는 것은 이러한 벌레 양성소를 구제하는 것과 다를바 없습니다.


다만 이렇게 만들어진 일베적 프레임은 단기간에 사라지지 않을 것인데, 그것은 이미 그 일베충이 일베의 색을 진하게 갖고 있고, 인터넷 사회에서도 그러한 색에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심지어 현실에서도 일베를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가치관적으로 일베와 비슷한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일베가 망한 이후에 제 2의 일베가 탄생할 가능성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제 3의 일베도 나올 것이고 제 4의 일베도 나올 겁니다. 일베가 망한 이후 여러개의 제 2의 일베들이 탄생하는 것이죠. 이러한 조각난 일베의 적자들은 일베충들이 다시 모이는 것을 어느정도 억제할 겁니다. 이중 경쟁에서 밀려나 적자의 수가 줄어들 수는 있겠지만 그중 두세개만 살아도 일베충의 세력은 전에 비해 약화되겠죠.


운이 좋아 그들끼리 생존을 위해 경쟁을 하고 싸움을 해서 스스로 몰락의 밑바닥으로 끌고 내려가면 좋겠군요.


그렇지만 이러한 일베가 마치 일본의 넷우익마냥 인터넷 밖으로 나가며 그러한 여론이 생기고 사회로 나와 활동한다면 어떨까요? 이미 변희재를 비롯한 여러 극우 인사들이 인터넷 밖에서 활동하기도 하죠. 그러한 성향을 보이는 이들도 다수 있습니다. 이런 이들을 필두로 일베가 인터넷 밖으로 나온다면 우리나라는 일본의 넷우익이 사회 밖으로 나와 활동하는 것과 같은 전철을 타게 되는 꼴을 보일 겁니다.


그야말로 안 좋은 것은 하나같이 따라하는 셈이죠.(하.. 어찌된게 이 나라는 일본이라는 예시를 두고 배우질 못하는 겁니까...)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정해져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이러한 현상의 원인, 근본을 파악하고 분석하며 히틀러 본인이 이야기했듯이 오직 최초 단계에서 자신들의 집단 운동과 사상에 대한 무자비한 타격만이 자신들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처럼, 일베가 더 발전하기 전에 일베를 박살내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일베적 프레임과, 현실에서 보여주는 그러한 잘못된 가치관들(가령 지역차별, 여성혐오등)을 해소해야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짜로 일베를 제거하는 것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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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국가 두개를 꼽으라면 북한과 일본이 가장 많은 표를 차지할 것 같습니다. 북한이야 6.25 이후로 꾸준히 개새끼 위치를 차지해왔고 일본이야 제국주의 시절, 더 거슬러가자면 임진왜란 때문에 원숭이 위치를 차지해왔죠.



레드 컴플렉스라는게 있습니다. 빨간색을 공산주의와 연관시켜 혐오감을 드러내는 반공주의의 일종인데요, 하여간 이러한 레드 컴플렉스는 우리나라의 북한-빨갱이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설명해주는 단어이기도 하죠. 우리나라는 그간의 반공교육과 이데올로기 덕분에 북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라도 북한이라면 당연코 호감이 있을리 만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과 연관된 것에 대해서 또한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공산주의, 사회주의에 관련된 것을 이야기할때도 조금이라도 우호적이거나 심지어 지극히 정상적인 이야기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빨갱이라고 매도하죠. 이는 북한에 대한 맹목적일 수준의 혐오감에서 기인하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그것에 대해 우호적(혹은 상식적인 이야기라도)으로 이야기하면 같은 집단내에서 자신을 빨갱이라고 낙인찍고 매도하는 것에 대한 반동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적에 대해 더 크고 거친 비난을 하는 것이죠.


후자는 쉽게 말해 똑같은 취급 받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김정일 개새끼해봐 같은 사상검증이라고 할 수 있죠.


이러한 레드 컴플렉스는 우리가 북한을 보는 시각을 매우 제한적이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극히 상식적으로 합리적인 방법일지라도 옳지 못한 것으로 만들기도 하죠. 가령 북한 인민들의 인권에 관한 이야기를 할 적에도 빨갱이 딱지, 낙인이 붙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일본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어를 배운다, 공부한다는 이유로 친일파로 매도된다거나, 일본 만화를 본다고 친일파로 매도되고 그러한 일본 문화를 향유한다고 해서 일본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을 이중잣대로 취급하는 것은 같은 맥락에서 벌어지는 부당함이죠.



북한에 대한 레드 컴플렉스는 6.25와 각종 사건사고, 그리고 반공교육과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맹목적 혐오감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면, 일본은 그러한 혐오감과 더불어 열등감에서 출발했다고 봅니다.


일본은 수세기전만 해도 한국을 통해 대륙 문화를 들여오던 이들인지라, 조선 통신사는 국가적 행사급이었는데 이러한 관계가 점점 반전되더니 19세기 중반에 다달아서는 우리의 문화, 기술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어 근대화에 성공하죠. 그리고 이러한 근대화를 통해 제국주의 사상에 물들어 주변국을 침략하며 다름아닌 군국주의로 발전해버립니다. 뭐, 이들도 나름대로 열등감을 가졌기에 그러한 침략의 잔혹함이 만들어졌을지 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 이러한 발전한 일본을 보며 언제나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일본이 강해져버리고, 끝내 조선이라는 나라를 아예 식민지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에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45년 광복할때 느꼈던 일본의 발전상은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만들었죠. 50년에 6.25가 발발하고 전쟁이 끝나며 아무 것도 없었을때 일본은 전쟁 특수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되었고, 이는 수십년간 일본의 황금기를 맞이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선진국 일본에 더 큰 열등감을 느낄수 밖에 없었죠.


그렇지만 우리를 식민지화하고 무지막지한 수탈과 학살을 경험한 우리는 일본에게 열등감만을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증오 또한 느끼게 됩니다.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반일감정(이건 당연한거겠죠.)과 많이 해소되었다면 아직도 문화, 국제적, 사회적 위상에선 열등감을 조금 느끼고 있죠. 그러한 것을 잘 나타내는 것이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라는 책입니다. 허무맹랑하고 악의적으로 폄하되어있는 일본이 묘사되어있는 이 책을 보며 우리가 하던 것이 역시 그럼 그렇지, 원숭이 클라스가 어디가겠어~낄낄 대던게 우리의 현실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말입니다.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그렇게 히트칠 수 있었던 이유가 일본에 대한 호기심 뿐만 아니라 일본에 대한 맹목적 혐오감, 증오감에서 시작했다는 것은 자명할 것입니다. 우리가 싫어하는 일본이, 듣기로는 그렇게 선진국이고 발달했다면서 하는 꼴은 천박하고 꽉 막히기 그지 없으니 우리는 그걸 비웃으며(깍아내리며) 스스로 자위질하던 것이었죠.


일본에 대한 정보가 아무리 없다고서니 그런 책을 보고 철썩같이 믿어버린 것은 믿고 싶어서였을 겁니다. 전문용어로는 확증편향..



반일감정을 없애라는 것이 아닙니다. 반북감정을 없애라는 것이 아닙니다. 둘다 충분히 가질 수 있어요. 그들이 하는 꼴과 그들이 했던 꼴을 보면 없을 수가 없지요. 그렇지만 단지 그러한 감정에 휩쓸려 자신이 비판하려는 대상에 옳지 않은 비판과 비난을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저도 한때 그러한 혐일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 따라 일본이라고 하는 대상이 하는 것, 하는 말 등 일본이라고 하면 일단 까고 봤습니다만, 지금 생각하면 저 스스로가 멍청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왜 일본을 깠느냐 하면 정말 까야할 것도 아닌데 단지 일본이기 때문에 깠었던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이러한 북한, 일본에 대해 차라리 말을 아끼는 편입니다. 물론 스스로 생각하기에 분명 까야할 것이 있다면 까기도 합니다만, 한국은 일본, 북한에 대해 혐오하고 증오하는 감정이 많기 때문에 저 스스로 그것에 휩쓸려 나도 모르게 눈먼 양떼처럼 마녀사냥하듯 까고 있지 않을까 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환경과 프레임에서는 비판하려는 대상을 두고 스스로에게 더욱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더불어 자기가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내가 어째서 그것을 싫어하는가에 대한 성찰도 한번쯤 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연장선에서, 내가 싫어하는 이것이 이런 행동-말을 했다면 그것을 비판하는게 합당한가 또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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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일베를 까는 글을 씁니다. 이 녀석들은 저에게 여러가지 시사점을 주는거 같기도 하네요.



일베충들이 자기 스스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라고 하지요.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그저 자기들이 분탕질치는 것을 변명하기 위해 잘 알지도 못하는 용어를 끌어와 방패삼는 것에 불과합니다. 애초에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그저 자기들을 위한 자유이지 남을 존중하는 태도는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들이 말하는 자유라는 것을 따르자면, 내가 남을 죽일 자유 또한 보장되고, 내가 방화나 테러를 할 자유 또한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여러가지 원칙에 의해 제한되지요.


이것과 마찬가지로 일베충의 자유는 그저 방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변명거리에 불과하며 스스로를 자위하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일베에선 무슨 말을 해도 되고 어떤 조롱과 모욕을 해도 되니까요. 또한 그러한 의식의 발로에서 다른 커뮤니티에서도 일베에서 하던 행동 그대로 하고, 이것은 나의 자유이다라고 떠들죠. 철없는 어린애처럼 굴어놓고 자신을 자유주의자라는 고상한 단어로 포장하는 것도 웃깁니다.


물론 자유가 있으면 그에 따른 책임 또한 인정해야하는데 당연코 거부하는 것도 참 재밌는 노릇이죠.



일베는 그들에게 있어서 자유의 성소같은 곳입니다. 상술했듯이 일베에선 어떤 조롱과 표현을 사용해도 그저 웃고 넘어가는게 일상다반사이기 때문입니다. 표현의 자유라고 포장하지만, 실상은 마음이 맞는 벌레들끼리 히히덕거리며 낄낄거릴 뿐입니다. 반대로 경상도, 박정희, 박근혜, 전두환을 비판하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 어떻게 나오는지 보시면 참 재밌어요. 까이는건 당연한거고 밴까지 먹죠. 일베 운영자인 ㅂㅇㄱ씨의 이름같은 신상정보를 풀면 3000일 밴이던가 영구 밴이던가.. 껄껄. 표현의 자유는 무슨.


애초에 인간성 자체를 벗어던진 것을 가식을 벗은 것이라 표현하고 그러한 가치관에서 출발하는 떨거지같은 개소리들을 표현의 자유랍시고 포장하는거 자체가 일베가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을 반증하는 셈이죠.



자유주의. 자유주의라는 사상은 단지 개인에게 자유를 준다라는 한줄의 아무런 고찰없는 명제로 설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유주의 사상의 뿌리는 '통치자, 혹은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과 사상이나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그가 아직 일으키지도 않은 범죄 때문에, 단순히 그가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사람이 타인에게 어떠한 위해를 가하지도 않고 있는 상태에서 그의 신체적, 정신적 자유를 빼앗고 구속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입니다.


일베는 이러한 자유주의 출발 원칙에서 이미 멀찍이 벗어나 있는 주제에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라고 포장하고 있어요.


자유주의자라면 다른 이들이 공산주의, 사회주의같은 하나의 사상으로 인정되는 것을 믿고, 그에 따른 사회적인 해를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신의 발언권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하나의 자유'로서 인정해줘야 합니다. 또한 박정희, 박근혜, 전두환 등에 대한 '정당한 비판'에 대해서도 하나의 자유로서 인정해줘야하죠.


그로인해 할 말이 있다면 '정당한 토론'으로 해결하는 되는 일이죠. 물론 그네들 수준이 그럴 수준이 아니라는게 문제지만.


하여간 그들이 스스로 자유주의자라고 하는 것은 그저 보잘 것 없는 자신을 좀 더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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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너 빨갱이!'가 잘 안 먹히는지 '너 좌편향!'을 자주 보게 되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의 논리는 마주할 가치조차 없다고 여겨지더군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편향적인게 문제되는게 아니거든요. 심판이나 판사같은, 공정하고 공평해야할 입장에 있는 자들에게나 편향적인 것이 문제가 됩니다. 심판이 한 쪽 편만 들어주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마찬가지로 싸운 두 아이 중 한 아이의 편만 들어주는 선생님이나 부모는 분명 잘못됐다고 할 수 있어요. 다시 말해서, 공적인 자리에서 정치적 편향성이 공정성을 훼손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의 영역에서의 옳고 그름의 문제이고 정치와 같은 명백히 옳은 것과 명백히 그른 것을 구분 할 수 없고, 그저 장, 단기적인 문제나 발전을 어떤 방법으로 해결, 이룩하는 것이 좋을까와 같은, 사실판단이 아닌 가치판단의 문제에 있어서 편향이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를 간단히 해봅시다. 애초에 편향이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우편향도 응당 문제가 되는 것이고, 그렇게 따진다면 모두가 좌도, 우도 아닌 중립의 위치에서 정치를 논해야 한다는 것인데, 애초에 그게 말이 되느냐를 떠나서 그렇게 된다면 정당은 어째서 존재하고 어째서 정치적 담론과 토론, 논쟁이 필요한가요? 그냥 모두 같은 성향이면 한가지만 쭉 밀어버리면 되잖아요?


그렇기에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될 이유가 없습니다. 정치가가 심판은 아니잖아요? 가치판단을 통해 현재 복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좌파인 것이고, 가치판단을 통해 현재 성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우파인 것인데, 이러한 가치판단을 전혀 배재하고 사실판단을 한다는 것은, 기실 미래를 볼 수 있다는 말 밖에 되지 않습니다.[각주:1]


하지만 인간은 미래를 볼 수 있는 동물이 아니잖아요? 그저 예측할 따름이고, 때때로 맞기도 하지만 대개는 빗나가는 것이 현실인 이상 100% 완벽하게 미래를 보고 옳은 방향으로 정책을 짤 능력이 있지 않다면 현재와 같이 서로의 사상의 자유에 따라 편을 나누며 입씨름을 하고 올바르다 '판단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겠죠.



애초에 문제가 되는 것은, 같은 성향이라고 같은 성향의 인물이나 집단에 대해 아무런 비판이 없다는 것과, 성향이 다른 인물, 집단에 전혀 수용적인 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향이 다르다고해서 상대방의 말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며 자신의 말이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닐터이니, 언제나 이것이 옳은가 저것이 옳은가하며 입씨름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러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주장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이 아닌 전체적인 면에서 인정하고 다뤄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 토론과 논쟁을 통해 의견을 수립, 철폐 등 절충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니까요.



  1. 왜냐면, 사실판단이라는 것은 '사실'이라는 단어에서처럼 팩트만을 끄집어내는 것이므로, 사실판단으로 정치를 한다는 것은 미래를 보고 이렇게 하면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고, 저렇게 하면 나쁜 결과를 이끌어낸다는 것을 사실로서 입증 할 수 있어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래에 서술되어 있듯이 그건 100%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미래를 볼 수 있지 않는 이상 그저 어느 것이 (가치판단의 형태에서) 옳을 것이다 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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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개성을 존중하는 팀이에요. 민주화 시키지 않아요.'

이번 전효성의 민주화 발언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일베라는 사이트를 안다면 쉽게 알아 챌 수 있을겁니다. 본래 민주화라는 의미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이들에겐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죠. 독재, 혹은 왕정같은 하나의 철인이 국가의 모든 것을 결정하며, 그들이 부패한 경우 그로 인해 피해받는 이들은 그 국가의 불특정 다수이기 때문이죠.


현대적 관점에서 이러한 독재와 왕정은 지양되며, 민주주의라는 현재까지의 정치체제 중 가장 합리적인 체제를 지향하는 것이 옳다고 여기는 것은 민주주의가 가지는 가치와 그간의 투쟁의 무게 덕일겁니다.



일베라는 사이트에서 민주화는 이러한 원래의 의미가 탈색되어버린 뒤틀리고 왜곡된 의미로 사용되어집니다. 비추천 = 민주화라는 등식에 의해 민주화라는 단어는 곧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어버렸죠. 이러한 왜곡된 의미의 민주화의 시초는 사실 일베가 아니라 디씨인사이드에서 출발합니다.


보통 진보 계열 사이트에서 보수 성향의 발언을 했다가 심한 악플과 많은 반대수를 받게 될 경우 민주화되었다고 하였고, 일베충의 선배격인 정사충이 포진되어있는 정사갤에선 온갖 나쁜 의미를 다 민주화라고 불렀죠. 이 민주화라는 단어는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에서 만들어진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민주화라는 단어는 오랜기간의 투쟁과 노력으로 얻어진 민주주의를 부정하며, 그러한 노력을 쌓아온 모든 이들을 비하하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전효성이 비난을 받는 이유는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사갤, 일베에서 사용되는) 뒤틀린 의미의 민주화라는,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본래의 의미의 민주화가 아닌 부정적으로 왜곡된 의미로 민주화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은 반일베성향이 강한 이들이라면 무릇 분노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정상적인 국가관을 가진 이들이라면 민주화라는 단어를 저런 식으로 사용해선 안된다는 것을 알지 않겠습니까? 몰라서 사용했다지만, 몰라서 흑인을 니그로라고 하는 것이 욕을 안 먹을 이유는 없죠.



또한 이것은 한가지 사실을 견지합니다. 민주화라는 단어가 이렇게 쉽게 퍼지고 공인의 입장에서도 튀어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그 용어를 사용하는 자들이 그 용어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죠. 단적으로 네이버 블로그나 카페등을 가도 어린 사용자들이 민주화를 아무런 자각없이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민주화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그저 디씨, 일베발 유머자료 같이 붙어나오니 낄낄대며 자기도 모르게 사용하고 있는거죠. 전에 제가 쓴 <일베충은 어떠한 정치적 신념에 의해 모인 존재들이 아니다.> 라는 글의 끝부분에 주장한 것과 동일한 매커니즘으로 말입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에 대해 제대로된 교육이나 인식이 부족하다보니 이러한 단어를 그리 가볍고 부정적으로 사용할 단어가 아닌데도 아무런 자각없이, 경계없이, 성찰없이 사용되는 현 세태가 정말 걱정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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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또한 바라보기 나름인지라 민족에 대한 강렬한 자긍심과 뜨거운 애국심을 가지고서 보면 민족주의에 빠져들기 쉽고, 반대로 민족에 대한 냉소와 국가에 대한 애정이 없는 시각이라면 국까로 빠져들기 쉽죠. 이러한 관점은 자칫하면 편향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정치에선 편향적인게 문제가 되지 않듯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편향된 시각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전 단언코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역사학에서도 역사를 바라보는 프레임 자체는 여러가지가 있고 현 유럽에서의 대세는 탈민족이 대세라고 하지요. 이러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 프레임은 당대의 정치상황과 국제사회의 조류가 개입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가령 20세기 초반 세계 열강에게 둘러쌓여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다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현실속에서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켜 독립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민족주의 사학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대세가 그것이었음을 떠나 그럴 수 밖에 없었던 현실에 있었겠지요.


민족주의 사학은 한민족이라는 결속력을 강화시켜주고 자긍심을 고취시키며 또한 국민 하나하나에게 강력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부여할 수 있었습니다. 민족주의 사학 그 자체를 봐도 민족에게 부끄러운 과거를 미화하거나, 무언가 대단한 것을 발견하면 끝도 없이 추켜세우는 것을 보면, 어느 의미에선 이 또한 역사왜곡의 일종이 아닐까 싶더군요.


예컨데 병인양요같은 창피하기 그지없는 막장 전투를 결국은 (정치적으로나마) 승리했다며 미국과 프랑스라는 열강에 대항해서 승전한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추켜세우는 것은 기실 진실을 외면하는 꼴일테니까요.[각주:1]


반면 국까적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임진왜란은 일본의 침략에 쪽도 못써보고 20일 만에 조선의 수도를 내어준 것을 부각하며, 초기 일본군의 승전을 추켜세우고 조선의 각종 병크와 패전을 더욱 깍아내려 조선을 약해빠진 나라, 명나라에 바짓가랑이 잡고 늘어진 창피한 나라, 그런 역사라고 하는 것 또한 진실을 외면한 것이죠.[각주:2]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당대의 정치적인 상황에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러한 정치력은 정치적 의도를 띄고 있기 마련입니다. 역사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만, 이러한 정치적 의도가 왜곡을 불러 일으킨다면 그것은 역사를 병들게 만드는 독수毒手라 할 수 있겠지요.


역사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한다는 것은 어떤 부분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 혹은 어떤 사건이나 어떤 일화를 어떠한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함이냐를 결정 짓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정치적 의도로 인해 아직까지고 교과서에 강력한 민족주의적 색채를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죠.



역사는 기본적으로 사실을 기본으로 하여 평가를 내립니다. 예컨데 어떤 왕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업적은 무엇이고 과는 무엇이며 그것이 후대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느냐를 밝히고 평가를 내리는 것이죠. 단적으로 그는 성군이었나, 폭군이었나 하는.



역사학을 연구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즉, 사료와 유물인 것이죠. 당대의 서적과 유적, 유물등을 통해 당대의 어떠한 생활상이나 문화등을 알아내고 그것을 통해 더 넓은 사실에 도달해내죠. 어느 시기에 굶어 죽은 사람들의 유골들이 발견되며 기록에서도 비가 내리지 않는다. 강이 마른다와 같은 기록이 나왔다면 그것은 큰 가뭄에 흉작이 들어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할테죠. 그리고 이러한 노동력의 감소는 해당 시기 이후 몇년 동안 생산성 감소로 이어졌을테고 더 나아가 세금을 걷는대에도 무리가 왔을 겁니다.


좀 더 간단한 예를 들자면 청동기 시대 고인돌이 발견됬고 그 밑에 사람의 유골과 청동제 물건들이 발견되었다면 그 사람은 높은 계급의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그 시대에 계급제가 생겼고 청동기가 아무대서나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을 통해 청동기는 권력자의 상징이었다는 것을 유추해 낼 수 있겠죠.


간혹 역사라는 것에 대해 쉽게 착각하는 것이, 역사는 그 당시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또는 역사는 승자에 의해 조작되기 쉬우므로 정확한 것은 하나도 없다라는 것인데, 이것은 역사라는 것에 대해 가지는 흔한 착각에 불과합니다.


정치에서, 전쟁에서 승리한 자가 역사를 자신에게 유리하고 패배자에게 불리한 내용을 적었다고 해도 여러가지 사료와 유물을 통해 교차검증을 하며 수많은 토론과 논쟁을 통해 결국은 진실을 밝히는 것이 바로 역사학자가 하는 일입니다.


승자에 의해 조작되었을지언정 기어코 진실을 밝히는 역할을 하는 자들이 바로 역사학자들이죠. 그렇기 때문에 역사학자들은 예리하고 신중한 태도로 이러한 사료를 연구합니다. 그들은 진실을 연구하는 자들이니까요.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긴 했지만 결국 내놓은 결론은 이겁니다.


역사라는 것을 바라볼때 민족주의적인 시각으로도, 국까적인 시각으로도 바라보지 말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평가를 하자는 것이죠. 학자들도 사람이고 학파라던가 시대적인 조류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완전한 객관성을 유지할 수는 없겠으나, 역사라는 것에 정치적 영향력이 들어갔다고 해서 상대방의 주장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이 아닌 전체적인 면에서 인정하고 다뤄줘야 하듯이 여러가지 다른 사관을 가졌다고 해서 상대방의 주장을 무시하는 태도 또한 옳은 태도는 아닙니다.


진실이라는 것을 오롯이 볼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기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될지언정 가치없는 개소리라고 할 수는 없다 이겁니다. 진실을 연구하는 자들이 상대방이 보는 진실을 무시하는 것은 진실을 외면하는 일과 다를바 없으니까요.[각주:3]



  1. 무엇보다, 프랑스군이 침공을 해오는데 화승총을 다룰수 있는 정규군이 없어서 호랑이 사냥꾼을 모아서 병력으로 차출합니다. 그리고 프랑스군은 150명의 병력에서 3명의 사망자, 35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며, 조선은 기록이 없으나 실제 피해는 막심할 것이라고 합니다. [본문으로]
  2. 하지만 이순신이 일본군의 보급을 끊고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의병들이 일어나며 정규군과 의병들이 일본군을 몰아내기 시작했으며, 명나라의 도움 없이도 승전은 많이 뽑아냈으며 결국 중후반에 들어선 왜군은 경상도에 틀어박혀 협상 모드로 전환. 이후 모조리 물어간 것은 우리가 약했다고 보기 어려울 겁니다. 조선도 일본군이 공격해 올 것은 알았으나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10만 이상 15만에 가까운 병력이 올 줄은 그 누구도 몰랐죠. [본문으로]
  3. 물론 그것이 역사왜곡의 범주에 들었다면 충분히 개소리로 씹어도 된다고 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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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topia는 우리말로 이상향, 이상사회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16세기 초, 토마스 모어에 의해 쓰여진 이 이야기는 당대에 생각할 수 없었던 사상과 생각을 담은 작품이죠. 금욕적이고 절제적인 삶을 살면서, 사유재산이 철폐되고 노동시간이 짧은 등, 공산주의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는 이 나라가 이상사회로 번역되는 것은 작품 내에서 묘사되는 유토피아의 모습이 작가가 생각하기에 이상향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토마스 모어가 만들어낸 유토피아라는 단어는 현대 영어에서 이상향의 의미를 담고 있죠. 그렇다면 이상국가, 이상사회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높은 지성을 가진 덕성있는 시민들이 합리적이고 이상적이나 또한 인을 생각할 줄 아는 시민들이 이루고 있는, 서로에 대한 예절을 지키며 상호존중하며 노동시간을 짧으면서 높은 생산성을 이룩하며 고소득의 수익을 벌어들이면서 높은 수준의 복지가 이루어져 범죄자나 부랑자가 없는 등 사회에 대한 불만이 없으며 모두가 행복하고 모두가 고통받지 않는다는 것은 어떨까요.


이는 마치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북유럽은 꼭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국가의 모습 그 자체가 아닙니다. 그들 나름대로 문제를 가지고 있고, 그곳에서도 사회불만은 존재하죠. 지난번 총기난사 사건이 그것에 근거를 댑니다.


앞서 댄 조건들을 다시 생각해봅시다. 저것들을 실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일단 가정부터 살펴보죠. 모두가 덕성있고 지성이 있으며 사회의 틀에서 (안 좋을 쪽으로) 삐져나온 이들이 없으려면 가정에 대한 복지는 필수입니다. 올바르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인간으로서의 시작이 뒤틀린 격이기 때문에 지독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이들의 범죄율이 높은 것이죠. 따라서, 적어도 맞벌이 등으로 부모가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을 적게 만드는 것은 잠재적으로 사회를 혼란시키는 원인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그 예가 우리나라는 아닐까 싶군요.


또한 부모 또한 부모로서의 자격과 의무 등에 대한 교육을 받게 해야합니다. 부모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것 만큼 아이에게 해가되는 것은 없으니까요.


그렇게 올바른 가정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만들어졌다면 다음은 공교육으로 눈을 돌려봅니다. 공부라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 아닙니다. 지혜를 또한 얻을 수 있어야하죠. 그러려면 철학에 대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수학, 문학, 과학, 외국어 등등은 기초 지식으로서의 조건이지만 철학은 조금 달라요. 인간에게 지성의 깊이를 더해주는 학문이라고나 할까.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사색에 가치를 부여해주죠.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작은 현상에서도 더 큰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지혜의 발견이고, 생각의 힘입니다. 철학은 그것을 위한 도구이구요.


경쟁은 물론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뭐든 과유불급인지라 경쟁이 과격해진다면 순기능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을 방지할 수 있도록 장치를 해놔야함은 사실이죠. 그렇지 못하면 공교육에서의 승리를 위한 사교육이 폭주하니까요.


그렇게 공교육을 통해 하나의 지성체로서의 인간이 만들어졌다면 그들이 해야하는 것은 사회를 이루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는 직업이라는 것을 통해 이루어지죠. 앞서 이야기하자면, 위의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엄청난 복지예산이 필요할 것입니다. 북유럽만해도 소득의 수십%를 세금으로 때가죠. 그렇지만 그들의 소득수준 또한 무시할 것이 못되요. 그러므로 그들의 소득수준 또한 높아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교육과 복지등의 노력으로 높은 지성과 덕성있는 시민들이 만들어졌고, 그러한 속성 덕에 사회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발생해도 차분한 토론을 통해 깔끔한 대안책을 제시하고 해결하는 등, 누구도 고통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진다면 그것이 이상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덕성있고 지성이 높다한지라도 그 시스템을 악용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을 것이고, 사회의 불만을 완벽하게 제어하고 없애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하다못해 북유럽과 같은 복지를 위해서는 사회구조 전반을 뜯어 고쳐야하는 나라도 태반인 이 세계에서 이상향는 말 그대로 '이상'찌든 발상일 것입니다. 애초에 모든 시민이 덕성이 있고 지성이 높다는 것부터가 너무나도 어려운 조건이죠.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Utopia라는 단어에 있습니다. 토마스 모어가 이름지은 자신의 작품은 οὐ(not) + τόπος(place)라는 의미로, 이를 번역하자면 '어디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이 됩니다. 즉, 그가 말한 금욕적이고 절제적이며 노동시간이 짧은, 가장 나은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있죠.


오백년전 사람이 보기에도 완벽한 사회라는 것은 그저 이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한가지 복잡한 결론을 내놓습니다. 인간 덕성의 진보야말로 진정한 진보지만 역사를 통틀어서 그런 적은 한번도 없었고 오직 시스템의 진보를 통한 진보만이 있어왔다는 것은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는 동물인 이상 그 본성 자체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이것은 또한 재밌는 사실을 내놓기도 하는데, 그것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인간이 인간인 이상 완벽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그러한 이상사회를 추구하는 것 또한 분명 필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말마따라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니까요, 시스템을 통한 진보만이 있어왔다는 것은 시스템이 완벽해지는 것이 완벽한 사회를 만드는 것일 터이니 진보된 시스템을 추구하고 그것을 이룩하는 것이 곧 이상사회를 향한 인간의 올바른 발걸음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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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원칙같은걸 개떡으로 아는거 같습니다.



학교, 회사, 국회, 인간관계 등등.


학교에서도 원래는 ~~해야하는데 안 한다던가 하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학생들이 누구 하나 잡고 학교폭력을 가한다던가 하는 경우에도 이럴 경우 교사가 나서던가 신고를 하던가해서 해당 학생을 보호하고 가해 학생을 처벌하는 것이 원칙인데 귀찮다고 방치하고, 시끄러워지면 묻으려하고..


애초에 원칙만 지키면 되는걸 귀찮다고, 또 병신같은 이해관계가 얽혀서 안 하려드는게 현실이니 뉴스만 보면 욕이 나오지..



회사에서도 마찬가지, 월급을 제 때에 맞춰서 줘야할 것을 안 주고 미루고, 결국 임금체불로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으며 할 일은 다 끝났는데 서로 눈치주고 위에서 압박하며 퇴근시간 다 지났는데 회사에 앉혀놓고 일하게 만들고..


할 일을 칼같이 끝냈으면 퇴근 시간도 칼같이 지켜 퇴근하는 것이 프로일진데 쓸데없이 사람 잡아둬서 귀찮고 피곤하게 만들어서 되려 업무 효율 떨어뜨리는 짓을 하는건 무슨 멍청이들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놓고 또 뽑아먹을땐 애사심이니 뭐니하는 위선떠는 소리만 골라서 짖껄여대질 않나.



원칙이라는 것이 결코 무시해서는 안되는 기본 중의 기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원칙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무시하는게 현실인거 같아요,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눈가리고 아웅에 원인을 찾으려고 해도 원칙만은 절대 안 보고 이상한 거나 잡고 늘어지니 발전이라는게 없지..



단적으로 미국만 봐보면, 그러한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적어도 적다는 것은 사실이죠. 할 일이 끝났으면 퇴근하고 말썽 부리는 학생이 있으면 곧바로 징계, 심지어 경찰까지 불러서 책임의 소재를 확실히 해서 결과적으로 일처리가 말끔하게 끝나니까요.


언제나, 모든 곳에서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원칙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극명하게 갈리니 확실히 적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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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4개는 모두 한국이 직면해 있는 가장 큰 문제이자 해결되지 않는 거대한 딜레마입니다.


아는 지식이 미천하니 제가 아는 것만 간추려서 글을 뽑아볼게요.





교육


한국의 교육 문제는 이미 심각해진지 오래됬죠. 과거 전쟁 이후 한국은 가진 것이 사람 밖에 없었고, 누구나 공부해서 대학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면 계급상승을 꿈꿀수 있는, 그것이 실현될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노력하고 자기 자식에게하는 투자가 아깝지 않았죠. 우리 아들이 좋은 성적을 얻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면 정말 꿈에 마지않았던 삶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누구나 노력만 하면 성공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점점 계급상승의 사다리는 적어지고 그나마도 가늘어지고 있죠. 전 우리나라의 계층이동이 점점 고착화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완전히 고착화 될 것 같아요. 문제가 바로 이겁니다. 계급은 고착화 되고 있는데, 그 좁은 사다리 오르려고 더 많은 이들이 피튀기는 전쟁을 하고 있다는거죠. 여기엔 성공한 삶이 좋은 삶. 대기업 다니는 사람은 인생의 승리자. 직업으로 사람을 따지는 풍토 등등 시덥잖은 인식들이 더욱 부추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어려우면 더 어려울 수록요.


이미 성공한 자들의 자식은 성공하기 쉽습니다. 성공하지 못한 자들과 비교하면요. 이건 근거있는 말입니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영어교육 투자의 형평성과 효율성' 보고서에 따르면, 영어는 가구당 소득이 1만원 오를 때마다 수능성적 백분율이 0.029% 오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예를 들어, 월 평균 가구 소득 차이가 200만원이 나는 두 수험생이 있다면, 이들의 영어 성적 격차는 평균 5.8% 벌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가구 소득 1만원 당 국어 0.022%, 수학 0.019% 격차를 보이는 것과 비교해 높은 '소득 민감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http://media.daum.net/society/newsview?newsid=20120604161007115


《지난해 서울대 합격생의 절반 이상은 수도권 출신이고 5명중 1명은 특수 목적고 출신이었다. 서울 강남3구 출신학생 비중도 점점 늘고 있다. 계층이동의 사다리 구실을 했던 교육이 오히려 계층을 고착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수험생 집안의 가계살림에 따라 수능성적이 나온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게 되었다.》


2. 부모의 소득수준과 자녀의 교육?임금과의 관계

□ (교 육)부모의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자녀의 PISA 성적이 높은데, 상관이 큰 국가는 미국, 프랑스, 독일,
뉴질랜드, 영국 등이고, 낮은 국가는 아이슬란드, 핀란드, 노르웨이, 한국, 캐나다, 이태리, 일본 등임

□ (임 금)모든 국가에서 부모의 임금수준이 자식에게 이어지는 세대간 임금의 경직성이 나타났으며,
상관이 높은 국가는 영국, 이태리, 미국, 프랑스이고 낮은 국가는 덴마크, 호주, 노르웨이, 핀란드,
캐나다임


이건 제 블로그의 글인《기회의 불평등이 결과의 불평등인 이유.》 에 더 자세히 나와있으니 자세히 알고 싶다면 링크를 다주시기 바랍니다. 

여튼, 이런 성공만이 다인 풍토가 마련된 한국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저 많은 노력과 돈이 투자되야 합니다. 부모는 번 돈의 대부분을 자식의 교육에 쏟아 붇기도 하죠, 좋은 학원, 좋은 과외, 좋은 강사 등등.. 여기에는 질적인 차이가 발생하는데, 상류층(성공한 자들)은 더 높은 질의 교육을 자식에게 배풀수 있고 그 결과는 상류층의 아이는 높은 성적을 거둔다는 겁니다.

좋은 성적, 좋은 대학을 나온 이들이 더욱 성공하기 쉬운 환경이니, 사교육비가 얼마나 들어가던 아이에게 투자를 하는거고, 그게 한국 사교육 문제의 핵심입니다. 노력만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되려 이러한 경쟁 사회를 가속화 한 것은 아이러니 일까요, 아니면 어디선가 뒤틀려버린 걸까요?


물론 단순히 사교육비의 차이로 학생들의 성적이 결정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단지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 당연 학생의 노력도 중요합니다. 좋은 학원과 과외선생이 있다고 해도 공부할 생각 자체가 없다면 말짱 꽝이니까요. 요즘은 경쟁사회라고 하죠? 서로 경쟁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경쟁


흠. 경쟁이라, 경쟁은 오히려 기업들이 그것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고 봐야겠군요. 학생이나 취준생 등등 서로가 서로를 경쟁하며 더 나아가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사실 그것의 근본은 더 좋은 기업에 들어가겠다는 노력의 산물이자, 그것을 알고 더 좋은 인력을 얻어내기 위한 기업의 부채질이 아닐까 합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한국은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사회입니다. 그 노력에는 여러가지 불평등한 요소가 들어가기는 하지만요.(되게 아이러니하죠?)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더 좋은 성적과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힘쓰는 거겠죠. 학생들은 자기 스스로의 가치를 높히기 위해 더 많은 공부와 더 많은 스펙을 쌓으려고 합니다. 사실 당연한거죠.. 남들보다 더 높이 서기 위해 힘쓰는 다른 이들도 모두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을테니까요.

더 많은 봉사활동 점수와 더 많은 자격증, 유하경험, 기업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자신과 자기 부모님의 지원을 쏟아 붓습니다. 이게 경쟁의 실체려나요? 더 좋은 기업에 들어가기 위한 전방위적인 스펙전쟁..

일단 이 경쟁과 스펙전쟁에 대해선 이 글을 바탕으로 깔고 시작하는게 어떨까 합니다. 《입학사정관제의 실체에 대해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이 링크의 글에서 말하길, 입학사정관 제도는 공부를 잘하는 유대인들에게 밀리는 사회 고위층 자제들을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길; "공부만 잘 한다고 우수학생인가! 운동, 예술, 인성, 리더쉽, 창의성, 잠재력 등도 평가항목에 넣어야 한다" 라고 하죠.


단순히 공부를 잘한다고 취업하는 일은 요즘 세상에 없는 일입니다. 각종 자격증과 여러가지 요소들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기업에게 선택받는게 현실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스펙전쟁과 경쟁을 더욱 더 뜨거워 질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즉, 취업하기 어려운 현세태가 더 뜨거운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제가 생각하는 교육열을 해소하는 방법은 일거리 창출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일자리는 적은데 취업을 원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렇다면 여기서 기업의 태도와 취준생의 태도는 딱 이럴 수 밖에 없어요. 기업은 이 경쟁이 더 가속화 될수록 싼 값에 더 유능한 두뇌를 뽑을 수 있고, 취준생들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 좁은 취업문을 뚫기 위해 남들보다 더 뛰어난 인재가 되려는거죠.


그러니 교육열이 뜨거워 질 수 밖에!


뭐.. 자세한 이야기는 역시나 제 블로그의 다른 글인 궁극적으로 교육열을 낮출수 있는 방법?》을 봐주시길.. 낄낄.





취직


취직문제는 사실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교육 + 경쟁 두가지를 합치면 이러한 취직문제의 근본에 대해 알 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간추리자면, 계층 이동, 성공한 삶을 위해 더 많은 사교육비를 투자하고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하게 되며 스펙전쟁과 유학을 하게되는 상황은 또한 기업들이(고의적으로든 얻어걸린 것이든) 부채질하고 있기에 더욱 피터지는 경쟁을 유도하게 되며, 이것은 모두 취업을 위한 일련의 발악(?)이다..


말이 조금 장황한가요? 특히 발악 부분이.





출산


사실 출산 문제는 위에서 이야기한 것과 크게 연관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정작 경제문제와 더 연관된 이야기겠죠.


한국의 출산율은 매우 낮은 편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죠. 취직이 어려운 현세태에서 아이를 낫는 다는 것은 정말 용기있는 행동이며 어찌보면 도박이라고 볼 수도 있죠. 기본적으로 취직한 여성들이 임신을 하게 된다면, 특히 출산을 하게 된다면 퇴직을 요구받게 됩니다. 그렇게 압박 받을 수 밖에 없어요.


일단 회사의 입장에서 생각해봅시다. 그럼 계산이 복잡해지죠.


1. 단절되는 경력을 다시 이어붙이는 것이 가능한가?

2. 출산 이후 과연 정말 복직이 가능한가?

3. 출산 기간 동안에 휴직을 할 때 이것을 경력에 포함시켜 줘야 하는가?

4. 출산 휴가 동안 동기들이 진급할 경우 이에 맞는 대우를 어떻게 해줘야 하는가? 

5. 중대한 업무를 추진 중에 출산 안할 것인가?


등등 개입의 권리 차원에서 당연히 인정해 줘야 하는 문제들이 회사 입장에서는 문제가 커집니다. 더욱이 저런 문제들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는 더하죠.


아주 비싼 프로젝트를 하는데 여자 사원 하나가 임신을 한다고 칩시다. 그것도 처음이나 끝이 아니라 프로젝트 중간에요, 그럼 인신 중에 쓰는 휴가와 출산 후에 쓰는 휴가 등등 많은 시간을 빠지게 되는데, 그럼 그 프로젝트의 빈자리를 누가 채우냐는 겁니다. 다른 사람 대리고 와서 시키면 되지 않느냐 할 수 있겠지만 시작부터 같이 하던 사람도 아니고 중간에 들어온 사람이 적응하는 것과 그것에 대해 교육하는 시간과 비용은 어쩌냐는 거죠.


말 그대로 중간에 갑자기 한명이 임신 때문에 휴가간다고 하면 팀과 회사가 X되는 거겠죠.


출산을 하면 출산휴가를 줘야하는데 그럼 그 휴가기간 동안 어떠한 성과도 내지 않는 사원에게 월급을 지급해야하는데 이것도 엄밀히 말해서 회사의 손해이고, 또한 출산 이후 복귀가 가능한가, 그 기간 동안 단절된 경력과 재적응 기간은 또 하나의 골치아픈 문제가 되죠. 이건 특히 중소기업이 더 한데, 중소기업이고 대기업이고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신입은 적응과 업무 숙련을 하는게 2~3년은 걸리죠.


그런데 대기업보다 그 손실의 파급이 큰 중소기업에게는 더 까다로운 문제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실정이니 어머니 가산점제도 본질은 남녀갈등이나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성과 낳은, 낳는 여성의 싸움이 아니라 이러한 기업, 사회전반적인 인식과 풍토를 해소하고 또한 출산과 육아를 위한 복지의 확충이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점이라는 겁니다. 



회사에서 일하는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과 가족에게서 아이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분유값부터 시작해서 기저귀, 옷, 장난감 등등, 아이 하나에 들어가는 비용은 막대하죠. 이 아이가 커가면서 학교도 들어가야하고 위에서 말했던 경쟁사회에 진입하면서 들어가는 사교육비.. 엄마 아빠 따질 것 없이 맞벌이해야 살 수 있는 사회에서 아이를 낳고 허리띠 졸라 매고 사느니 출산 결혼 포기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흔히 삼포세대라고 하죠. 삼포세대는 취직까지 포기했지만..


게다가 이 나라는 물가까지 높습니다. 꾸준히 오르고 있다나요? 분유값 기저귀값이 꾸준히 오른다... 출산하기 겁날 수 밖에;;


물가는 꾸준히 오르지 나 혼자 먹고 살기도 힘든데 출산까지 하면 허리 끊어지는거 감수해야하지.. 이게 현실이고 실정인데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생각 안하고 맨날 출산율이 문제다 어쩐다 떠들기만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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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에... 제가 뭐 직접 본 건 아니고 건너들은 이야기지만, 90년대말, 김대중 정권 시절 군가산점이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는데, 당시 인터넷보다 PC통신 시절이었고 그 시절 게시판에서의 큰 화두 중 하나가 군 가산점이었는데, 당연히 남성들은 이러한 사실에 격분해 있었다죠.


그 반향은 매우 뜨거웠음에도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군 가산점을 못받게 되는 남자들은 차분한 상태에서 논리적인 담론을 이어나가기 보다는 무조건적인 여성/여성계에 대한 인신공격과 각종 비난들을 퍼붓고, 조금이라도 여성이나 여성계에 쉴드를 치는 남자가 있으면 이화여대 간첩이니 뭐니하는 욕이야 기본으로 먹고 들어갔고, 심지어 정상적인 반론임에도 불구하고 까였다고 합니다.


이런 건전한 논쟁과 담론없이 단지 군가산점제를 빼앗긴 분노를 표출'만'하고 있던 이들 사이에서 차분한 분위기로 논쟁을 지속했던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죠. 그렇게 분노만 표출하고'만' 있으니 남자들의 정당성있는 논리나 근거따위는 당연히 없었고 결국 군가산점제에 제대로된 브레이크를 못 걸었다고 합니다.


뭐, 지금 위헌판결을 보면 아주 틀린 논리는 아니더군요. (위헌판례 보러가기)



이번에 어머니 가산점제가 이야깃거리로 등장한 이후에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제가 문제삼고 싶은 것은 이겁니다.



문제의 본질은 성차별따위가 아니라, 성갈등이라는 비소통과 분노에 가려진 그 원인이 따로 있다는 겁니다.


남자들에게 20대 시절의 1/5인 약 2년은 절대 적은 시간이 아닙니다. 군대를 갔다오면 머리가 굳는다죠? 대학에 곧바로 복귀하기도 어렵고 심지어 그곳에서 다치거나 죽거나, 병이라도 얻어오면 억울할 수 밖에요, 돈이라도 잘 받으면 몰라, 꾸준히 오르고는 있다지만 실제론 최저임금도 못받는게 현실이죠.


보면 남성과 여성은 20대의 출발시점과 진행의 흐름에 있어 남자들은 불평등한 관계에 있습니다. 그래서 군가산점이라는 것이 도입되었던 것이죠. 하지만 이게 98년도에 위헌판결을 받으니 남성들은 분노했던거죠.



하지만 이 문제의 본질은 군대에서 2년 썩다온 남자들에게 군가산점을 줘야한다가 아니라 20대 남자들을 2년간 군대로 끌고가는 징병제에 문제를 제기해야합니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이자 최초 발생지점이니까요.


간단히 따져서, 징병제가 없으면 남성에게만 주는 군가산점에 대해 논의할 가치도 없다는 겁니다. 모병제라면 미국처럼 또 모를까요. 그러니 이런 싸움이 법, 제도, 통념인 강제징집을 하는 징병제, 즉 남성에 대해 노동력을 착취하는 국가와 남녀의 차이를 떠나서 손에 손잡고 투쟁해야한다 이런겁니다.


북한이 바로 위에 있는데 모병제로 어떻게 돌리느냐 할 수 있는데, 뭐, 저도 그 의견에 딱히 반론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북한의 위협에 있어서 일정 수준의 병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제가 아직도 구닥다리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어서인지 동의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강제징집의 폐지라는 소리 또한 낼 수 있다고 봅니다. 현재 상황을 보면 씨알도 안 먹힐 이야기, 타이밍이긴 하다만 그렇다고 우리만 가니까 존내 억울하니 여자도 군대 보내자니 하는,


남성과 여성의 싸움, 대립구조로 몰고가는 치졸하고 단순하기 짝이 없는 생각머리는 영 아니라고 봅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문제의 본질이라 근본 원인은 징병제에 있거든요. 그것이 국가의 상황에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든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의 영역에서는요.



이런 논리의 연장선에서, 어머니 가산점제의 진정한 문제, 근본 원인은 여성에게 임신 및 육아, 출산에 대한 배려가 없는 낙후된 복지상황과 일반 사회의 인식, 기업의 태도에 있는건데, 이를 출산한 여성과 출산하지 않은 여성, 남성의 대립구조로 몰고가는 것은 정말 단순하고 멍청하기 짝이 없는 생각머리라는 겁니다.


회사에 취직한 여성이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면 퇴직을 생각하게 만드는, 그렇게 압박하는 전반적인 풍토의 문제이고, 이러한 문제의 인식을 한 뒤 이 풍토를 바꿔야 하는 것이 진정한 문제 해결을 이룩하는 것인데 이걸 가산점 따위로 해결보자는건 그야말로 '꼼수'라고 할 수 있지 싶습니다.




다시 요약해보자면 군가산점 문제의 본질은 징병제에 있고, 어머니 가산점제 문제의 본질은 임신한 여성을 퇴직하게 만드는 사회 풍토에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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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보고 전부터 생각하던게 막 떠오름.


우편향을 넘어 수꼴의 극의 보여주는 쓰레기 방폐장의 대명사가 된 일베는 이미 유명한데, 정작 일베를 하는 유저들에게 있어서 일베의 자료는 그야말로 진실이겠죠. 옳은 논리, 옳은 팩트, 옳은 자료.


그것은 일베라는 사이트 내에서 확립된 기존의 모든 병신같은 논리와 행동의 총합으로 이루어진 수꼴의 액기스 중의 액기스 중의 진액의 결정체로 만들어진 프레임이 일베충의 가치관을 이루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는 종교의 광신과도 같죠, 원리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세상을 보는 기준은 경전에 있습니다. 기존의 어떠한 관습이나 법률 또한 경전에 밀리죠. 이 경전에 담긴 말이야 말로 진실이고 진리인지라, 이것을 벗어나 있는 인간들은 모두 잘못된 행동, 잘못된 생각,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에 이렇게 좋은 자신의 종교, 가치관을 타인에게 설파(강요)하여 옳게 만들려는 것과 같습니다.


일베충이 보기에 일베는 그야말로 재미도 있고 얻어갈 편향적이지 않은 올바른 지식도 많이 있으니 일베가 좋을 수 밖에요. 그리고 이곳의 밖에 있는 이들은 모두 무지한 자, 편향된, 멍청한 놈들에 불과하구요.


일베충들은 일베라는 프레임에 갇혀 자신을 평가하지 못하는 겁니다. 옛말에도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말이 있죠. 우물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밖을 보지 못하고, 밖을 보지 못하니 자신 또한 보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진의 저딴 소리가 다 나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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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뭐하는 곳이냐 하면 곧 학문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기관인 것인데, 요즘엔 돈만 있으면 오히려 대학에서 대학갈 수준도 안되는 머저리들을 모셔오기 까지 하니, 이 얼마나 웃기고 기가 막히는 일인가 싶숭. 수능이라는게, 단순히 중요한 시험따위가 아니라 그동안의 학업성취도를 평가하여 자신의 수준에 맞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하나의 자격을 증명하는 과정인데, 요즘 세태를 보면 수능도 잘 보지 못했지만 대학에 오는 사람 없고 벌어들이는 돈이 부족하다고 돈만 주면 개나소나 입학시켜주는 것이 현실.



대학 진학률이 높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고급인력이 많아졌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대학갈 수준도 안되는 머저리가 잘도 대학생이나 된다는 말이기도 한다는 것 또한 사실인지라, 이번 마교수 사건으로 문득 떠오르더라.



마교수가 뭐라하였는가 보면, 자기가 듣는 수업에 최소한 교재를 가져오라는 것인데, 이건 교사라면 당연히 학생에게 응당 요구해야할, 요구할 수 있는 당연한 이야기지라. 책을 사라는 것도 아니고 빌려서라도 오든 교재를 가져오라는 것인데 이걸 가지고 머리에 지식이란 좆도 없는 대학생이랍시는 놈들이 개기는 것에 불과하고, 그걸 또 기사로 쓰는 기레기 또한 자신의 수준을 또 한번 적나라하게 증명하고 있다는 것.



교과서도 준비안해오는, 그냥 거저 먹겠다는 학생 꼴도 못하는 머저리들이 대학생이라고 존재하는 나라이니 거참 이 나라 십년 이십년 미래가 그저 두려울 따름.


더 웃긴거? 이런 수준인데 그래도 대학 안나오면 사람 취급도 안해주고, 대학 안나오면 채용도 안하는 기업들의 모습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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