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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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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에 해당되는 글 26건

  1. 2023.09.21
    진보는 체념, 보수는 본색을 드러내는 시점이 됐나 봅니다.
  2. 2023.06.05
    "네가 좆됐으면 좋겠어."
  3. 2023.05.03
    정자교 사고 좌파 책임론 선동 팩트체크.
  4. 2022.11.23
    왜 갑자기 언론의 마약 관련 이슈가 줄어들었을까?
  5. 2022.11.02
    하나의 사회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세계의 간극.
  6. 2022.10.23
    나는 진보적으로 보수적이게 되었다.
  7. 2022.05.31
    민주당 내 애송이, 정의당이 욕 먹는 이유.
  8. 2021.07.13
    극우보수의 핵심 속성 : 무책임.
  9. 2019.07.24
    진보의 문제점, 철학의 부재와 형식의 우선화. 8
  10. 2018.11.04
    한국 보수의 태생적 한계와 근원.
  11. 2017.10.01
    국정원 선동史, 한국 보수는 좀비였다.
  12. 2016.12.03
    극우보수의 사상적 근간. 마초 오르가즘. 2
  13. 2016.11.15
    트럼프 당선과 대중정치의 함정.
  14. 2016.09.27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보수의 적나라한 도덕성.
  15. 2016.08.26
    헐값의 역사. 정부와 위안부 피해자.
  16. 2015.12.12
    쥐명박, 노알라에 대한 이중잣대와 인지부조화. 12
  17. 2015.11.18
    어째서 보수는 유체이탈 화법을 쓸까?
  18. 2015.09.22
    경제에 대한 태도로 보는 진짜 보수. 1
  19. 2015.09.12
    보수와 군의 안보에 대한 시각.
  20. 2014.12.23
    선동 당한 보수는 이런 공통점이 있습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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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당선 이후 진보계엔 체념과 포기의 분위기가 은근히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윤석열이라는 인간이 어떤 지는 대선 이전부터 꾸준히 알려져 있었고 이건 정치에 관심을 조금이라도 둔 '제정신을 가진 사람'과 '상식적 가치를 으뜸 삼는 사람'은 사리분별을 통해 어떻게 될 지 너무나도 뻔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았고, 그 더 하는 것조차 예상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는 건 아니었다는 점이 놀랍다면 놀랄 일이었고요.

 

그래서 결국은 체념입니다. 이렇게 되겠지, 그리고 딱 그렇게 됐네. 어떻게 될지 뻔한데, 막을 방법은 없으니.

 

그렇다고 그런 기색은 의외로 또 잘 안 보였습니다. 비판과 비난은 여전히 하긴 했으니까요. 보수 진영 입장에서 여전히 진보는 입만 살아서 시끄럽게 하는 놈들이니 안 그래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완전히 포기해버린 상태까진 아니고, 체념한 상태로 지켜보자는 입장에 가까웠죠. 비판할 건 하면서요. 자연스럽게 나올 소리 하는 것 뿐이지만.

 

이렇다보니 진보 진영은 체념은 자연스럽게 지켜보기로 귀결되는 거고, 예전 디씨-일베가 지배적인 분위기까지 인터넷 문화와 분위기를 장악하지 못한 시대에서 인터넷과 별개로 여전히 진보적 분위기의 관성이 남아 있었던, 정확히는 보수의 극단적인 발언들이 본심과 무관하게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 눈치를 받아온 시대에서 나온 말이 샤이 보수였죠.

 

보수의 '본심'이 보편적 상식, 정의와 도덕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입니다.

 

즉, 보수의 본심은 곧 사회적 정의와 상식과 거리가 멀었던, 욕 먹을 개소리들이었고, 그러한 사상을 함부로 하기에 아직 한국 사회의 도덕성과 상식은 심각하게 추락하지도, 역전되지도 않았던 셈이라고나 할까요. 사실 그 당시의 도덕성이 학폭이나 다양한 도덕적 문제에 대한 반응, 대응과 비교해 더 낫다고는 하지 못해도, 다른 쪽에선 극단적인 소리를 할 경우 공개적인 비판이 있었고, 그게 통하던 시절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더 나은 선택의 반복이 더 나은 상태들의 합이라면, 더 나쁜 선택의 반복은 당연히 더 나쁜 상태의 합이 되겠죠. 그리고 전체는 언제나 부분의 합보다 크고요.

 

한국 사회는, 적어도 정치적인 면에 있어서만큼은 더 나쁜 선택의 반복이 있었던 셈에 가깝다고 봅니다. 그 결과이자 증거가 바로 윤석열 정권과 그 내각이고요.

 

 

사실, 보수 진영 그 자체는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60년대 수꼴 극우보수들의 미친 소리와 정신이 2020년대 수꼴 극우보수의 미친 소리와 정신보다 더 저열하진 않아요. 다만 세련되지 못했을 뿐이지. 60년대, 70년대, 80년대, 심지어 90년대와 그 이후 지금 이 순간까지, 한국 극우보수들은 그저 그 시대에 얼마나 어울렸는가의 차이만 있었을 뿐입니다. 그것조차 어디까지나 형태적 차이일 뿐이지 그 정신과 가치관은 전혀 다를 게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들의 행동을 살펴보면 60년대의 그것과 향수마저도 느껴질 정도의 유사성이 보이는 거죠. 실은 그보다 더 이전과도 크게 다를 것도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극우보수는 더 저열해지는 쪽으로 발전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죠? 이전에는 대놓고 본심을 꺼내면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고.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한국 극우는 장관 내정자가 공개적으로 반대 진영 전 대통령의 목을 따는 건 시간 문제이며, 이순신과 세종대왕 동상을 공격하고 우파라면 그래야 한다고까지 말합니다.

 

병사 하나 죽은 거 가지고 사단장을 날리냐는 말을 대통령이 했다면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런 말이 새어나왔다는 사실 그 자체라 큰 논란이 되어야 함에도 지금은 그렇지도 않고 별 타격도 없습니다. 일본의 심기를 거스르고 일본에게 공격적인 것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사라지고 없어져야 한다는 새로운 성역이 만들어지고 있고요.

 

수십년 전부터 존재했고, 일베 시기와 함께 보편화, 의식화된 '내지와 본국'의 당위적 우열은 하나의 팩트가 되어버렸고 수많은 지지자를 동반한 세계관의 한 축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이제 자유민주주의라는 대한민국의 국체는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좀 보수적으로 보자면, 다음 정권 때 확실히 결정나겠지만, 전 이미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고 진단합니다. 이는 윤석열 정권이 임기 내 탄핵, 하야라는 폭탄과 함께 침몰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의 이야기지만 아마 그럴 일 없지 끝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고요.

 

보수의 저열하고 비인간적이며, 소아병적이고 정신병적인 본색이 대놓고 드러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저지력이 없습니다. 체념 상태의 진보는 화력도 부족하지만 그럴만한 의지나 전략이 없거든요. 어떤 것이든 처음의 충격이 강력할 뿐이지 그것이 반복되면 단 두번째부터 화력도, 대응력도 약해집니다. 두번째 세월호는 박근혜 정부 당시보다 충격도, 화력도 약할 겁니다. 본질적으로, 형태적으로도 꽤 유사한 사건이 바로 이태원이었고요.

 

탄핵이든, 하야든 똑같을 겁니다. 박근혜 탄핵 사건만큼의 화력도, 타격도 주지 못할 겁니다. 단지 미국식 중간선거에서 졌네 같은 분위기 정도면 차라리 다행일 정도로.

 

윤석열과 그 정부의 인사들이 무식하고 거침이 없어서 더욱 그런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지만, 동시에 그들의 무식하고 거침 없는 망언, 아니. 본심이 충분한 비판을 통해 저지되지 않고 그들의 발언이 정치적 책임으로 돌아오는 걸 보기도 어려워진 건 사실입니다. 예컨데, 박근혜 정부 당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과거사 망언으로 비판을 받으며 후보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죠.

 

다만 문창극의 발언이 '진짜 문제' 였는 지에 대해서 대부분의, 최소한 적지 않은 보수들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그들이 느꼈던 문제의식은 이건데, '그걸 공개적으로 말한 게 문제'였다는 점입니다. 즉, 그들 스스로도 그게 문제가 될 거라는 건 알았는데, 그건 단지 자신들이 믿는 것, 지지하는 가치관과 세계관이 잘못되었다는 걸 스스로도 알기 때문이라기보단, 그게 남들에게 어떻게 들릴지 정도는 알았다는 쪽에 가깝죠.

 

마치 나치가 자기들끼리는 유대인 가스실을 지지하고 그래야 한다고 믿으면서도 그런 발언을 공개적으로 할 경우 어떤 반응과 반발이 일어날지는 알고 있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한국에서 보수 진영은 본색을 드러내며 그런 말을 공개적으로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저 한쪽 진영 대깨X 깨시민 들 사이에서 호들갑 떨고 지랄하는 정도로 받아들여질 거고요. 

 

그런 사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고, 오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 우리가 일베가 처음 등장했을 때 호들갑 떨며 예견한 것들이 일부라도 현실이 된 이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윤석열 정부가 남길 유산과 씨앗들이 어떻게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을지 어느 정도 예견이 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바로 다음 총선인데, 지금의 샤이 진보들이, 그리고 극우보수의 개짓거리에 진절을 느끼거나 거부감을 느끼는 중도층이 보수층의 신나는 드라이브에 역충격을 가해줘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전 시대의 보수 강세의 사회보다 더 비인간적이고 비상식적인 나라가 될 겁니다. 이제 한국은 후진국이 아니거든요. 옛 보수의 부정부패는 그들의 도덕성과 가치관, 탐욕 문제도 있었지만 후진국이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흔하게 발생할 수 있는 것들이기도 했지만, 지금의 것은 그 성질이 조금은 다릅니다.

 

옛날엔 더러운 거 알면서도 무시했지만, 지금은 그 더럽고 비인간적인 것에 정의의 거죽을 덮어 씌우며 정당하고 정의로운 것으로 포장하기 때문입니다. 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궤변과 말장난으로 가득찬 개소리거든요. 단지 그 개소리에 완성도가 있기 때문에 좀 모르는 사람들, 못 배운 사람들, 그냥 멍청한 놈들이나 평범한 어린애들은 아리까리 하면서 맞는 말인 줄 알게 됩니다.

 

이를테면 ㅇㅅㅇ식 개논리인데, 말 그 자체로만 보면 맞는 말처럼 보이지만 그 모든 논리와 주장, 표현은 그저 특정한 한 사건과 사례에 허수아비식 공격을 모아 딱 그 사례에만 적용되는 활자들을 붙일 뿐입니다. 그래서 ㅇ적ㅇ이 나온 이유가 바로 논리가 일관적이지 못해서 똑같은, 그러나 다른 사람이나 진영에게는 또 다른 논리를 가져와서 그렇거든요.

 

이처럼 실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피상적 완성도의 일개 사례들만 분리적으로 보며 요즘 시대 보수적 세계관, 보수의 논리가 형성되는 거고요. 인국공 사건 당시 보수의 논리는 조악하고 저열했으며 논리적 허점마저도 있었지만 엘리트주의, 공정 담론과 결합하고 그것을 축으로 삼아 마치 그럴듯해 보이는 것으로 짜맞추었습니다. 그걸 부추기고 좀 더 세련된 활자로 정리한 것이 바로 언론이었으며, 그것에 대한 비판 여론을 마녀사냥식 물량의 폭력으로 찍어누르던 게 보수센징들이었고요.

 

그런 식인 거죠. 이미 2000년대 중후반부터 그런 식으로 변화해왔고 지금은 그 완성도가 그 당시보다 더 나아졌을 뿐이지.

 

 

진보 진영이 지금은 체념해 있지만 다음 총선 때 어떻게 집결할지가 관건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심지어 다음 대선 때 진보좌파 진영이 승리한다 해도 보수 드라이브에 충분한 제동을 주긴 어려울 겁니다. 이미 관성은 10년도 더 전부터 붙어왔고, 문재인 정부의 시도는 제동이 아닌 탄성을 준 셈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거든요.

 

솔직히 말하자면, 좀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냥 미친놈 세상 속 우리 정상인들은 좆됐다는 걸 인정하는 게 나을지도 모를 일이죠.

 

뭐가 낫냐고요?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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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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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청년들은 정치를 밈적인 관점에서 받아들이게 되었기에 정치는 그것을 즐기는 이들에게 무겁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게 되었다. 도리어 그것은 하나의 즐길 거리가 되었고, 나름의 지적 유희에 가까워지기까지 했다. 그들의 소통이나 정치를 다루는 방식이 지적인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그들 스스로는 특정한 정치적 이슈나 관점을 공유하고 그것에 공감 하는 것을 즐긴다.

모든 보수 청년들이 그러라리라는 것은 편협할 것이기에, 여기서 말하는 보수 청년들이랑 디씨-일베-펨코와 같은 커뮤니티의 정서를 공유하고 인터넷 문화에 익숙하며 민주당과 진보좌파에 대한 불신과 혐오마저 가지고 있는 이들을 말한다. 다시 말해, 다른 대부분의 이유보다 민주당이라서 싫고 진보좌파라서 싫어서 윤석열을 찍어 대통령을 만들어준 이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범위는 완벽한 것도 아니고 완전한 것도 아니며 엄밀할 수도 없기에 어떠한 정확한 모델을 상정하는 것보다, 우리가 디씨, 일베, 펨코 등 보수 성향 커뮤니티를 하며 그러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 청년 보수라 했을 떄 대충 어떠한 공감대로 그려지는 상을 상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한다.


이들은 소아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무슨 의미냐면, 피상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주 똑똑한 지성을 가지고 교묘한 지적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고 믿기도 하다. 정치를 가볍고 간단한 것으로 바라보는 것만큼 피상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보니 세상의 다양성보다 자신들의 관점 내에서 해석되는 것만을 상상할 수 있다. 정확히는, 극단적인 정도만큼이나 그들의 편협함 이상을 상상할 능력이 부족하다.

그들은 단순함을 추구하고 그것보다 복잡한 것을 쉽게 받아들일 지적 작업 능력이 부족하거나 거부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이해하기 쉽고 재밌게 작성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세하고 정확하되, 길고 지루한 글보다 오류와 왜곡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지와 한두 줄 정도의 대화형 서술을 더 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즉, 밈적인 문법을 더 선호한다.

물론 그들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문적 지식이나 다방면에 팩트체크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보니 왜곡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더불어 밈적인 문법 역시 아주 쉽고 간단하게 작성되어 이해하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이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선호할 방식이다.

따라서 밈적 서술이 문제라기보단, 그저 하나의 태도를 설명하는 근거로서 볼 수 있다.


사이다패스로 통칭되는 태도가 그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그리고 좌우와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사이다적인 전개와 결말을 선호한다. 문제는 그것이 현실감각을 마비시켰다는 것이다. 우리는 외교를 이야기할 때 당연히 현실적인 관점을 수용해야한다. 그것을 선호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현실감각 없는 외교는 당연히 국가간 갈등과 분쟁을 발생시키거나 국익의 상실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들이 추구하는 외교는 초강경한 대중외교와 비이성적인 정도로 패배주의적인 대일외교, 그보다 더 신앙적인 대미외교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미세먼지 문제는 크게 점화되었는데, 당시 보수진영의 비판은 타국 영토의 타국 재산인 공장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를 대한민국 정부가 막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전히 의문이다. 한국 정부가 중국에서 발생하는 공장발 미세먼지를 막기 위해선 해안 공장지대에 대한 광범위한 폭격 외엔 뭐가 있을까. 설마 대한민국이 중국 정부에 미세먼지 발생을 문제 삼고 항의한다고 중국 정부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곧장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이라고 가지고 있는 것일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단지 문제가 있는데, 그 책임소재를 민주당 정부에 뒤집어 씌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명분과 이유가 필요한 것이지 그게 합리적이냐, 혹은 진짜 그들의 책임이냐를 따지려는 게 아니다. 그냥 문재인이고 민주당이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없다.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고 타당해 보이는 것조차 그저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지 그들의 본질적 입장은 아주 간단하다. 민주당과 진보좌파면 공격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른 척 한다.

그냥 뭐하나 잘 걸렸다 싶은 게 있으면 그걸 이유로 삼는 것이고, 당연히 공정할 이유가 없다. 그들이 시기와 대상에 따라 입장이 다른 이중성이 나타나는 까닭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들의 소아병적인 태도는 한가지 심각한 태도를 내포하고 있다.

바로 "네가 좆됐으면 좋겠어." 심리이다. 지난 대선 당시 스트리머 스틸로(Steelo, 조강현)은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을 가지고 있고, 대선 방송 당시 윤석열을 응원한 바 있다. 개표 방송 당시 새벽 4시까지 방송을 했고, 윤석열 당시 후보가 이재명 당시 후보를 역전하자 좋아하며 춤을 췄다.

그가 단순히 이재명 후보를 싫어하고 윤석열 후보에 대한 지지를 했기 때문일까? 그 이유가 합리적이거나 최소한 타당한 이유였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윤석열을 찍은 적지 않은 이들이 자신만의 타당한 이유보다는 그보다 더 강력하게 작동하는, 민주당과 이재명이 좆되는 꼴을 보고 싶다는 욕구가 더 컸을 것이라 추측한다.

그들은 민주당의 패배와 이재명의 정치적 몰락을 조롱하고 싶은 것이고, 그러한 자극적인 추락은 그들에게 승리감과 쾌감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즉, 그들은 마음에 들지 않은 놈들이 완전히 나락까지 추락하고 패배하고, 몰락하는 것을 보고 짓밟는 가해, 혹은 보복, 혹은 정의구현의 쾌감을 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단지 정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게임에서도 분명하게 책임이 크고 나름 잘 했거나, 게임을 이끌어온 공이 큰 유저가 패배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같은 편 유저를 비난할 때 상대팀은 단지 그게 더 재밌다는 이유만으로 가장 잘 했던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고 조롱하는 것을 서슴치 않는다.

이것은 그들만의 사유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누가 가장 많이 죽었고 누구에게 가장 많이 죽었으며, 적절한 아이템을 선택한 사람과 아닌 사람, 위치와 교전 타이밍 등 다양한 요소에 있어서 누가 가장 잘했고 못 했고는 싸운 당사자들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배의 책임자가 아닌 열심히 잘한 사람을 조롱하는 건 단순히 그게 더 재밌고 가해의 쾌감을 가져다준다는 이유에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 이익이 크지 않거나 심지어 내가 다소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사람이 더 큰 손해와 피해, 고통을 받길 원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단순히 다른 사람이 좆되길 바라는 악의를 가지고 판단하고 행동할 뿐 어떠한 생산적 방향과 가치를 따지지 않는다.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약자를 짓밟을 때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선과 악 따위의 가치판단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예 없는 건 아니다만, 억지로라도 자신들이 정당하다는 정신적 공상을 만들어서라도 해결한다.

안전한 곳에서 반격할 수 없는 약자를 상대로 무절제한 공격을 가하는 것.

애초에 일베라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자신들이 겪지도 않은 것과 사실인지 알지도 못하는 썰을 기반으로 증오와 혐오를 만들고 구성해낸다. 그리고 그것을 공격하는 것을 정의롭다 여긴다. 심지어 그 공격 방식과 방법이 올바른가와 대상이 정확한가에 대해서도 중요치 않다. 그들은 그러한 사실, 아니. 진실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거리에 나와 조직을 구성하지 않았을 뿐 검은 셔츠를 입은 청년단이나, 누군가의 이름을 딴 소년단, 혹은 서북에서 내려온 청년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더 나약하고 졸렬할 뿐이다.


앞서 언급한 사이다패스가 일개 개인, 그리고 그 개인의 집합이 특정할 수 있는 성향의 집단이 되었을 때도 그러하다. 그들이 약자를 짓밟고 무절제한 폭력을 추구하는 것은 그들은 그것이 정의롭다 여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령, 진보좌파 종북친중빨갱이는 죽여 없애야 한다는 것은 그들이 말로 하지 않을 뿐 그들이 진보좌파를 공격하며 혐오하고 증오하는 정서의 중핵을 이룬다. 혹은 그 역일 수도 있다. 혐오의 정서가 그들의 말살을 추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요는, 진보좌파라는 적을 없애야 하며, 그것은 정의롭다는 것이다. 정의롭기에 악에 대한 타협은 오직 불리할 때 뿐이며 그들에 대한 자비 없고 타협 없는 폭력은 정당할 뿐더러 정의롭다. 자신들이 공격당할 때 좌파와 우파라는 두 날개의 균형을 말하지만 불리할 게 하나 없을 때 당당하게 진보, 좌파와의 투쟁을 말한다. 그들에게 진보좌파는 적이다.

그리고 그들의 몰락과 그들에 가하는 폭력이란 그 정당성과 사회적 손실 발생과 별개로 사이다패스를 자극하는 주제인 고로, 모든 것은 쾌감 아래 감수될 수 있는 것이다. 민주당을 공격하고 무너뜨리기 위해 법적, 제도적 선을 아슬아슬하게 타거나 심지어 그것을 위반하기까지 한다.

진보좌파를 공격할 수만 있다면 불법적으로 사찰을 진행하거나, 법적 장난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집기도 하고, 없는 죄를 만들어서 처벌하도록 공작을 벌이기도 한다. 심지어 국가 기밀을 유출시키거나 국가적 회담 자료를 왜곡하며 공개하거나, 귀중한 정보원과 정보 습득 경로를 잃어버려도 무방하다. 자신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면 국가적 기관을 해체하며 그들의 역량과 정보원을 모조리 날려버려도 무방하다.


결국 이들의 사이다패스적 혐오는 필연적으로 '남탓'으로 흐른다. 이것은 여초 커뮤니티 내지는 일부 여성의 소아병적 무책임성과 궤를 같이하는 모양새를 보여주는데, 1)자신은 모든 정당성을 확보한 피해자/정의의 포지션이고, 2)내가 공격하는 자는 모든 책임을 떠안고 있기에 3)내 공격은 정당하고 정의롭다는 것이다.

거기에 하나 더, 그들은 완벽한 정의와 정당성 위에 공격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신의 억울함, 분노, 증오심, 혐오심과 같은 '비이성적 감정'에 근거하여 그 폭력의 수위는 가변적으로, 주로 매우 높은 수준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설령 자신들이 정당한 피해자가 맞고 가해자에 대한 비판과 공격이 정당하더라도 그러한 비판/공격에 이성적 합리가 작동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마땅히 받아야 할 만큼의 공격, 비난, 비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죽을 때까지, 완전히 매장될 때까지 밟지 않고서는 속이 풀리지 않는다는 정서가 형성되어 있다.

잘못은 네가 했는데, 왜 내가 눈치를 봐야 하는가. 네가 한 잘못은 너무나도 커다랗기 때문에, 죽어 마땅하다. 너 같은 놈들이 다시 재기하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 와 같은.


이것은 현실 정치에서도 유사하다.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우린 아무런 잘못도 없고, 이 모든 것은 전 정권, 경쟁 정당, 진영 탓이다. 라고 말이다. 이러한 이론은 무적이기에 결국 모든 현상과 사건의 책임은 남의 것이 된다. 이것은 그들이 정권을 차지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가리지 않는다. 남탓으로 대표되는 무책임성은 그들 멘탈리티의 핵심 요수 중 하나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게 다 노무현 탓이다. 로 대표되며 이후로도 꾸준히 반복되는 전 정권탓, 민주당탓의 반복 역시 진보좌파와 민주당, 문재인 정권이 두들겨 맞아 마땅하고 죽어 사라져야 할 정당성을 요구한다.


그들이 왜 좆됐으면 좋겠는가? 아니 꼽기 때문이다. 왜 그들이 망했으면 좋겠는가? 그들이 띠껍기 때문이다. 왜 그들이 죽어 사라졌으면 좋겠는가? 그들이 개새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단지 진보좌파를 국가의 적으로 삼아 공격해왔던 극우보수의 전통이나 다름이 없기에, 이 수십년된 적대성이 특이할 것은 없지만, 102030 세대에서 형성된 "네가 좆됐으면 좋겠어." 정서는 특기할 만 하다.

언젠 아니었겠냐만 진보보수, 좌파우파를 가리지 않고 평범한 대부분의 대중들이 가지는 사회와 사건을 바라보는 피상적 이해와 빈약한 통찰, 근시안적 시야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혐오의 시대이다. 좀 더 자주 쓰이는 말로 바꾸자면 난세이다.

극단주의가 이전보다 더 강력해졌고, 이는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이다. 그 중에서 한국의 극단주의는 한국다운 속도로 빠르게 확산되었으니, 그 속성에 따라 근시안적이고 폭렬적이며, 더 강경한 주장이 힘을 얻는 게 이상할 것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102030의 가치관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쳤고, 청년 보수의 극단주의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일베/일베적 인터넷 문화이다.

그들에게서 합리성이 배제된 현실인식, 기준이 결여된 공정성, 노골적인 편파성, 비인간적 윤리의식을 비롯하여, 책임의식 없는 소아병적 찌질함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극단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것이고, 그 색깔이 일베에서 보여준 그것들과 유사한 이유 역시 일베와 디씨에 잠식된 일부 커뮤니티 내지는 큰 영향을 미친 인터넷 문화를 경험한 보수 청년 세대의 인터넷 환경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글에서 언급한 모든 요소들이 합쳐진 결과 특히 청년 세대 보수들에게서 "네가 좆됐으면 좋겠어." 정서가 나타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한 정서는 진보적인 가치가 없다. 무언가 더 나아지길 바라거나,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에서 그러는 게 아니다. 무엇가 없어지면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만들어진다거나, 더 나은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여기는 게 아니다.

물론 그들은 말로는 그렇게 말할 것이고, 아마 물어보면 그러한 믿음을 떠올리며 스스로 그렇게 믿는다 할 것이다. 하지만 난 그게 아니라고 본다. 그건 어디까지나 남에게 해야 할 말이기 때문에 떠올리는, 보여주고 들려주기 위한 변명과 궤변일 뿐 그들의(아마 그들 본인조차 자각해본 적 없는) 본심은 훨씬 단순하다.

"저 새끼 존나 맘에 안 드는데 좀 좆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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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좌파’ 시장들이 안전예산 줄여 정자교 사고 났다? [FACT IN 뉴스]
https://v.daum.net/v/20230413185139913

일각에서 책임론이 퍼지는 가운데 이는 사실과 거리가 먼 것으로 파악됐다. 정확히 말하면 연 예산 3조원(2023년 기준)이 넘는 성남시는 애초부터 안전점검·보수비용에 대한 책정이 낮았다고 볼 수 있다.

(중략)

◆ 前 시장마다 점검·보수비 편차 거의 없어…“안전불감증 책임에선 자유롭지 않아”

세계일보가 13일 성남시의회 조정식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분당구청 구조물 관리과 예산 현황’에 따르면 관내 교량·지하차도 안전점검용역비는 2010년부터 올해까지 14년간 뚜렷한 추세 없이 매년 2억4000만∼7억3000만원을 오르내렸다. 이는 정기·정밀점검과 정밀진단, 내진 성능평가 비용을 합한 돈이다.

(중략)

이처럼 분당구청의 연도별 교량·지하차도 점검 예산은 전임 은수미(2020년, 7억3000만원)·이재명(2012년, 6억6200만원) 시장 때 오히려 수위를 다퉜다. 보수정당 소속인 신상진 시장 취임 이후인 지난해와 올해, 오히려 2억8000만원과 3억8000만원으로 감소했는데, 엄밀히 말하면 감소가 아니라 교량별 A∼E 등급에 따라 도래하는 점검 연한이 달라 벌어진 일이다. 특정 연도에는 연말, 연초에 점검이 몰리면서 2년 치 비용이 한꺼번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 전 시장은 2010∼2018년, 은 전 시장은 2018∼2022년 재임했고, 신 시장은 2022년 7월 취임했다.

(중략)

결국 “정자교 붕괴를 정치 논리에 함몰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다. 다만, 전임 시장들 역시 ‘안전불감증’에 관한 책임론에선 자유로울 수 없다. 일각에서 “치적을 홍보하느라 시민 혈세가 (다른 곳에) 낭비됐기 때문”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성남시도 그동안 안전점검·보수비를 전체 예산에 비해 낮게 책정해왔다는 비판을 들었다. 전문가들은 “제값을 내고 적정하게 안전점검과 보수가 이뤄졌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선동은 어디?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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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30 - [취미/이야기] - 할로윈 참사, 보수가 또 사람을 죽였다.

https://www.bigkinds.or.kr/

 

11월 1일~11월23일 마약 키워드 뉴스기사 검색 결과.

11월 23일까지 총 1340건입니다.

 

 

 

10월 1일~10월31일 마약 키워드 뉴스기사 검색 결과.

 

10월 동안은 2371건이고요.

 

 

9월 1일~10월31일 마약 키워드 뉴스기사 검색 결과.

9, 10월 합치면 4354건, 8월부터 집계하면 5000건이 넘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8월달 마약 관련 기사는 약 1000여건 정도라는 거죠.

 

9월, 10월이 이전 달, 이후 달에 비해 2배 가량 많이 나왔고, 이태원 압사 사건 이후 반토막난 기사량 중 대부분이 마약 사범에 대한 위기감, 문제의식 조장보다 사건 자체와 그에 대한 책임추궁 등 정치적 이슈들이 대부분에 가까울 것이라는 걸 고려하면 실제 마약 관련 기사 자체는 반의 반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유의미한 변화량이죠.

 

 

 

9월, 10월 동안 누가 마약 걸렸고 어떤 인플루언서, 샐럽, 연예인 마약 했다고 뉴스 기사 나오고 마약 유통이 어쩌고 이제 한국도 마약 청정지대가 아니네 어쩌네 하는 기사들, 이야기들 많았던 거 기억하실 겁니다. 

 

근데 이태원 사건 이후 마약 관련 기사들이 확 줄어버렸죠. 왜 이런 일이 벌어졌냐면, 아주 간단합니다.

 

정권, 정확히는 한동훈의 법무부가 마약 범죄 관련 인식과 분위기, 문제의식을 조장하고 있다 할로윈 때 이태원 일대에서 마약 범죄 일망타진하는 식으로 큰 성과를 올려서 뭔가 좀 해보려고 했는데 실패했거든요.

 

오히려 이 문제 불거질수록 경찰 배치와 동원 인력 관련해서 포커스가 이동하면 그런 인력, 배치, 구성 누가 지시했고 최종 책임자가 누구냐와 그렇게 했던 이유가 뭐냐는 식으로 옮겨집니다.

 

그럼 기자들한테 문자 날렸던 것처럼 정부가 마약 관련 성과 내려다 이렇게 됐네? 근데 그 책임소재 타고 올라가보니 법무부 장관이 나오네? 이렇게 될까봐 다들 약속한듯 입 닫고 다른 이야기 쏟아내는 중이죠.

 

 

 

 

 

 

[단독] 참사 직전까지 112 신고 '79건'…근처 기동대는 퇴근
https://n.news.naver.com/article/055/0001009981?sid=102
경찰 200명 아니었다…실제 이태원 현장엔 137명
https://v.daum.net/v/20221030204006325
 

 

법무부는 이번 일로 뭐 좀 해보려다가 대형사고 친 거고, 언론 카르텔은 책임자들과 손잡고 장난질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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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실제로 까마귀가 나는 것과 배가 떨어지는 것의 상관관계는 없습니다. 하지만 두가지 현상이 비슷한 시점에 발생한다면, 혹은 관찰된다면 어떤 현상이 다른 현상에 선행하거나 조건으로 여겨질 수 있죠. 그러나 논리적으로 아무런 연관도, 인과도 없다면 그것은 논리적 오류가 됩니다.

 

 

하나의 세계관은 한 사람의 삶으로 구축됩니다. 그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지는 그 사람이 살아온 경험에 따르는 것이고, 완전히 다른 세계관이란 완전히 다른 삶의 경험으로 번역될 수 있죠.

 

한 국가의 환경은 대체로 비슷비슷합니다.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발전과 시골의 발전도는 다를 수밖에 없고 상류층과 하층민의 삶은 다를 수밖에 없으며 한 사회에도 여러 층위가 존재하듯 평균에서 크게 벗어난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국가의 구성원으로 보편적으로 겪을 수 있는 환경과 할 수 있는 경험에는 어느 정도 교집합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국가 내에서도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서민과 비서민, 수도권 거주자와 지방 거주자의 관점 차이는 꽤 커다란 편입니다. 우리 사회는 지리적 한계 내에서 그 경험의 폭이 좁은 편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그 간극은 타국과 비교해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그 이유는 지리적 폭은 좁지만 시간적 폭이 넓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인데, 한 세대가 겪는 시대적 경험과 그 다음 세대가 겪은 시대적 경험의 차이는 한 세대 이상의 것이라고 칭해도 무방할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40년대에 20대를 보냈던 사람과 60년대에 20대를 보냈던 사람, 80년대와 2000년대를 20대로 보냈던 사람에게 한국은 완전히 다른 국가였습니다.

 

사상적 차이가 아니라 물질 문명의 발달 정도가 한 세대 이상의 간격을 보여주며 급속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물질적 경험은 사상의 차이에도 영향을 미치고, 곧 세계관에도 차이를 발생시킵니다. 따라서 한국의 각 세대는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왔던 이방인이며 우리 사회는 이방인들의 집합인 셈이죠.

 

 

진보와 보수가 바라보는 세상은 완전히 다릅니다. 사실, 그들은 같은 나라에 살고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세상을 살고 있죠. 진보에게 정의인 것이 보수에겐 위선이 되고, 보수의 정의가 진보에겐 범죄로 인식되는 가치관의 차이는 상당한 간극을 두고 있습니다. 심지어 상식의 영역조차도 서로 다르게 인식하고 있고, 정반대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합니다. 대체로 상식적인 판단력을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정치적 영역에 접어드는 순간 그들의 상식적 판단력은 진영간의 간극만큼이나 차이가 벌어지게 됩니다. 그들에게 작동하는 논리 회로가 서로 다르기 때문일 것이고, 그 회로에 작동하는 경험이라는 데이터가 서로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간극에도 불구하고 현상에는 객관적으로 판단할만한 요소들이 존재하며 그 요소들을 기반으로 하는 판단이 객관성, 혹은 상식의 보편적 평균치에서 크게 벗어난 경우라면 그 사람은 특별히 더 극단적인 가치관을 가진 것이고, 비상식적인 판단력이 작동하는 세계관의 객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합리合理는 이치에 맞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이치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우리는 숱한 문화권과 깊은 인류 역사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하나의 정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 정도와 범위에서의 차이가 있을 뿐, 인간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정서가 그러합니다.

 

이는 나와 내 가족, 내 주변 사람을 위협으로부터 지키고 생명의 상실에 고통스러워하고 슬퍼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옛적 시절부터 사람은 나와 남을 구분하여 남의 아픔에는 공감하지 않고 (내 주변 사람의 고통으로부터 말미암은) 나의 아픔에 더 이입하였지만 그렇다하여 생명의 무게를 경시하는 것이 지배적이었던 시절은 없었고, 설령 있었다 하더라도 바로 그러한 이유로 다른 사상이 지배하는 체제에 무너져 도태되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정서에서 출발한 것들은 대체로 도덕, 윤리와 같은 전통적인 정신적 사상이 되었고, 그것을 명문화하거나 관습적 질서로써 작동하는 것을 우리는 법이라 부릅니다.

 

 

그런 까닭에 사람의 생명을 기준으로 하는 도덕률은 객관적 기준으로 삼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물론 악인의 죽음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공감하거나 이입하기 어렵고, 그들에게 애도와 명복을 비는 것 자체가 피해자, 희생자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는, 가령 히틀러나 스탈린과 같은 이들. 대부분의 침략자와 학살자들에 대해서는 그러한 도덕적 기준을 잣대 삼지 않는 것 역시 인정되어야겠죠.

 

반대로 말하자면 죄인이 아닌, 죄 없는 사람의 죽음에 어떠한 태도를 보이는지를 기준으로 한다면 그것은 적절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무고한 사람들이 사고, 재난, 범죄의 피해로 죽거나 다쳤을 때 그것을 조롱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비도덕적인 행위이고 그러한 행동이 가져다주는 이점이 없기 때문이며 도덕이란 사회화의 가장 중요한 항목이기에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이 아닌 이상 그러한 행위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건이나 사고, 재난, 참사, 학살에 대해 피해자를 조롱하고 공격하는 경우는 단순히 그들이 사회화가 덜 이루어졌거나 도덕적 훈련이 덜 되었다는 것 이상의 사유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정치적 진영의 차이가 그러하고, 정치적 책임의 유무가 어느 쪽에 더 실려 있는지에 따라서도 그러한 입장 차이를 발생시킵니다.

 

이것은 정치적 이념이 객관적 도덕 기준보다 우선했을 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죠. 우리 진영의 정치인이나 통치자가 수많은 피해자를 발생시킨 사건의 원인을 제공하거나 그러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위치와 상황에 있을 때 그 지지자들은 그들에게 책임이 돌아가지 않도록 여러 활동들을 전개합니다.

 

그러한 활동은 누군가의 지령을 받거나 집단의 전략적 행동이 아니고 단순히 각 개인들의 공통적인 정서가 특정한 방향성을 가지는 것이라고 봐야하는데, 이는 특히 내집단의 무오함을 신봉하거나, 무오해야 한다는 믿음을 지닌 이들이 많을 수록 발생하기 쉽죠. 다시 말해, 더 극단주의자가 많은 쪽일수록 그러한 정신증이 쉽게 발병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적을 만들거나, 희생자를 만들거나, 피해자와 가해자를 뒤집기도 하고 없는 죄를 만들어서 덮어씌우거나 작은 죄를 과대포장하여 깍아내리기도 합니다. 희생자나 피해자는 그들의 그러한 행동에 의해 무고한 자에서 위선적이거나 욕심많은 장사꾼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유로 더더욱 공격하고 자신의 공격이 정당하다고 믿죠.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그에 대한 정치적 책임이 분명히 존재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진영이나 입장에 따라 책임추궁에 태도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그것이 도덕과 같은 합리적 기준을 기반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정치적인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지지하는 집단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모든 잘못과 책임에 그 어떤 추궁도 하지 않고 그들은 항상 무오한 집단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당위가 있는 것처럼 말이죠. 도덕적 기준으로 0, 0의 좌표에서 멀어질수록 극단적인 성향이라면 정치적 도그마의 점수가 높을수록 도덕적 기준에서도 멀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나와 남의 구분에 따라 나, 혹은 내가 이입하고 공감할 수 있는 내집단內集團과 그렇지 않은 외집단外集團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그들에게 내집단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건의 피해자는 곧 외집단으로 분류되고, 도덕적 기준의 작동 대상이 아니게 됩니다. 내집단의 전사들이 외집단의 민간인에 도덕적 기준 대신 힘의 논리를 작동시키고, 포식자가 사냥감에 공감하거나 이입하지 않는 것처럼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오비이락이란 서로 다른 현상을 한가지 인과로 엮어 설명하는 오류를 말합니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어떤 사람이 어떠한 현상(혹은 사건)에 대해 비상식적인 판단을 내린다면 그 사람이 특별히 멍청하거나 비상식적인 판단을 내릴만한 경험을 받아들여 왔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객관, 혹은 상식의 차이는 그가 살아온 사회의 층위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특정한 층위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다양한 층위가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정서 내지는 사회문화적 밈일 가능성 역시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전라도에 대한 편견을 특별히 더 많이 지닌 지역은 그러한 정서 내지는 밈이 그 지역사회의 다양한 층위에 공통적으로 잔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은 전라도라는 지역과 그 지역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고, 그 인식은 오비이락식 해석에 의해 사소하거나 심지어 겪어본 적도 없거나, 아예 과장 내지는 거짓말일 경우조차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내집단의 일반적인 감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내집단은 가족/집안 단위일 수도 있고 그보다 더 클 수도 있습니다. 그 관계도 역시 밀도 있는 얼개를 지닌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끈끈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오비이락식 해석에 익숙해지고 다양한 분야에 같은 방식의 해석을 적용한다면 그 세계관은 더 논리적인 형식으로 구성되기보단 피상적이고 경험적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 경험이란 실제로 겪은 것 뿐 아니라 자신이 신뢰하는 누군가의 발언 내지는 해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주입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내집단의 것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공동체적 성격을 띄지만, 외집단의 것에 대해서는 반사적 거부감을 먼저 일으킬 것이고요. 그 사이에서 편견은 매우 활성화 됩니다.

 

 

그러한 세계관/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무고한 사람이 죽은 참사에서도 비슷한 태도를 보일 것이고 피해자에 이입과 공감을 하기보단 그들에게 없는 죄를 찾아내거나,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이태원에서 압사 당한 사람들에게 왜 쓸데없이 밖에 나가 돌아다니다 그런 사고를 내냐거나, 당국에 책임을 묻는 것에 대해 왜 나라 탓을 하느냐는 식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에게 도덕과 윤리란 객관적, 합리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선택적이고 정치적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는 작동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고,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분해서 작동합니다. 정치적 이념은 그러한 내외집단의 구분 기준에 충실한 근거일 뿐이죠.

 

 

논리는 올바른 형식과 원리하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논리 역시 훈련받아야 가능한 것이고 모든 경우에 단일한 논리를 적용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세계관 하에서 특정한 논리는 그 개인에게 합리성을 획득할 수 있고 그 세계관 내에서 합리적인 설명과 해석을 내놓을 수도 있죠.

 

그것이 일반적인 객관성이나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러한 세계관을 지닌 사람은 그 오류를 쉽게 자각하거나 논파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당장의 논쟁에서 내가 잘 모르기 때문에, 아직 정확한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등등 다양한 이유로 일시적인 후퇴나 보류를 결정하게 할 뿐이지 자신이 세상을 받아들이고 해석해온 기반 논리가 틀린 것이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모든 판단기준과 그러한 기준에 따라 살아온 자신의 삶이 틀린 것으로 부정되는 세계관적 충격을 발생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 세계관이 사회에서 완전히 배제되거나 충돌을 일으키는 수준의 간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과 동일 세계관 내지는 유사한 세계관을 지닌 사람들 역시 매우 많을 것이라는 점 때문에 더더욱 포기하거나 틀렸음을 인정할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이 틀린 증거보다는 자신의 옆에 있는 자신과 같거나 유사한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을 보며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재확인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 역시 사회화인 까닭에, 약자에 무자비하고 강자에 비굴한 세계관을 지닌 이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환경/사회/층위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도덕의 영역에서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0, 0의 좌표에서 더 멀어져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를 포함하는 다양한(앞서 설명한 여러 요소들) 이유들의 합에 의해 더 극단적인 가치관, 성향을 가지고 있을 것이며 이것은 정치적 이념이 되었을 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극우, 극좌 타입에 속하게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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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보적으로 보수적이게 되었다.

 

한 때 나는, 그리고 지금도 스스로를 진보라 말한다. 모든 진보적 의제에 동의하거나 그 표현, 주장의 방식에 동의하지도 않고, 그들의 논리에 찬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진보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진보적 의제에 더 설득력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대저 진보주의자들은 옛 것을 거부하거나 무용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때로 그것들은 척결해야할 과거의 유물이고, 해악을 끼치는 곰팡이 비슷한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리고 나에게 그것은 산업시대의 유산들이었다. 산업시대의 것들은 대체로 인권과 거리가 멀고, 자유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발전과 자본을 위해서라면 무제한적인 희생과 강요가 필요했고 대체로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난 민주화 이후의 세상을 살아간 사람이고 자유와 인권, 분배와 평등의 가치가 규제와 희생, 성장과 독점의 가치보다 더 우월하다고 믿는다. 그것이 내가 옳다고 믿는 것들의 근간이며 이것은 어떠한 경우라도, 아니, 전쟁이나 종말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입장을 보수주의자들이 불쾌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유, 인권, 분배와 평등에 가치를 둔다. 특히 이 중에서 자유와 인권에 대해서는 그들 역시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는 보수주의자들의 자유와 인권은 그들이 행동하는 바와 상당히 상반되어 있는 경우들이 많다. 내집단-외집단 편향을 감안하더라도, 실제로 그들이 추종하는 가치와 정체성만큼이나 자유와 인권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입장 및 주장은 가변적이었고 대체로 그들의 정치적 유불리(혹은 필요성)와 연관성이 깊었다.

 

 

따라서 나는 진보주의자로서, 보수주의자들이 신화처럼 여기는 산업시대의 그것을 거부한다. 그 모든 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아니고, 그것을 역사로서,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희생와 노고로서 존중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지금 시대에 산업시대의 가치들은 부적합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나는 왜 진보적으로 보수적이게 되었는가?

 

진보란 과거의 것들을 부정하는 입장을 취하기 마련이고, 흥미롭게도 멀고 먼 과거보다는 가까운 시대에 국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혁명기 진보주의자들은 왕정과 과두정에 대한 혐오를 보였지만 지금에 와서 그것들은 머나먼 역사의 이야기가 되었다. 대신 지금의 진보주의자들이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직 살아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가까운 시절의 과거이다. 나에게, 그리고 많은 진보주의자들에게 신업시대가 그러하듯 다른 나라의 진보주의자들도 30~60년전의 가치들은 부정하고자 할 뿐이다. 그것은 이제 역사가 되어야 하고 흙이 덮혀야할 유산들이다. 지금 시대에 맞는 가치가 아니다.

 

 

역사가 말하는 가치.

 

그렇기에 내가 보수적이게 되었다는 것은 시야 밖에 있던 역사적 가치를 시야 안으로 담고 그것들을 통해 내 문법과 시각으로서 가치를 추출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모든 지식들은 자기만의 원리와 시각 안에서 해석되기 마련이다. 나에게 조선의 역사는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조선이나 유교, 성리학을 열등하고 저열한 무언가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러한 시각이 식민사학인 경우 역시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조금이라도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에 대해 공부하거나 배우지 않는다. 지금에 와서는 많은 곳에서 조선과 관련된 재평가와 재인식이 이루어져있지만 여전히 조선은 망할만 했던 국가였고 열등한 국가였으며, 교조적이고 현실에 무가치한 학문을 국시로 삼은 비합리적인 국가로 인식된다.

 

그럼에도 조선의 역사와 성리학의 가치는 지금에도 배울 점이 많다. 특히 성리학은 그것이 어떻게 작동했고, 어떻게 사람을 통제했으며, 전근대 한반도에서 어떠한 역할을 맡았는지 알게 되었을 때 상당한 공학적 정합성마저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래서 그랬고, 그래서 그랬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나는 성리학적 가치를 재평가하게 되었고, 이를 현대의 다양한 문제들과 연관지어 비교해보곤 한다. 우리가 흔히 상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념과 이익 앞에서 변질되고 무시되기도 한다. 비상식이 상식으로 둔갑되기도 하고 특정한 가치 앞에서 다른 것이 되기도 하며, 그러한 특정한 가치관 앞에서 다른 것이 더 우선되기도 한다.

 

가령, 내 사람이라면 그가 어떠한 잘못을 저질러도 일단 감싸안고 편을 들어주는 것이 그렇다. 잘못을 했다면 그것을 추궁하고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을 우선하는 사람과는 다르게 작동한다. 물론 전자가 더 현실적이고 정치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이 부패와 카르텔을 형성시키는 동인이 되는 것 역시도 인정해야할 것이다.

 

 

성리학적 가치란.

 

이 부분은 길게 쓸 생각이 없다. 그러하니 최대한 간략하게 써보려 노력할 것이다.

 

성리학이 말하는 가치는 나에게 자기통제로 읽혔다. 삼강오륜으로 대표되는 원리와 원칙하에 식자는 스스로를 통제하고 성찰하여 그러한 가치를 스스로 추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서양의 명예와 유사하게 작동하였는데, 남들이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스스로 알기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부덕한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윗사람은 윗사람으로서 자신의 역할과 도리를 다하고, 아랫사람은 아랫사람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 왕과 신하, 백성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계층은 부모와 자식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계층과 동일시하여 정치-행정조직부터 가계까지 일관적인 정신적 통제를 이루어내려 하였다.

 

전근대의 행정력은 결코 지방까지 철저하게 작동하지 못했다. 대신 유교적 가치관은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통제하여 부정부패하지 않도록 정신적 자기검열을 하도록 했다. 그것은 정의로운 일이었고, 그들이 일생동안 배워온 것이었으며, 그러한 실천을 요구 받았다.

 

물론 그것이 언제나 완벽하게 작동하지는 않았다. 유럽에서도 불명예가 있었고 신앙인이라는 자들이 정치와 범죄에 종사했던 것처럼 조선의 관리, 선비들 역시 부의 축적을 즐기고 권력의 행사에 쾌감을 느끼며 미식과 여자를 즐기곤 했다. 때로 이것은 정치적인 관점에서 발생하기도 했고, 때로는 구조적인 문제로 발생하기도 하였다. 하급 관리는 충분한 봉급을 받지 못할 경우 자연스럽게 부정부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방 관청에서 벌이는 그들의 부정부패는 쉽게 적발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성리학적 가치와 정신은 나름 잘 작동한 편이었고, 조선이 500년간 존속할 수 있게한 원동력이었다. 조선인들, 특히 유학을 공부한 관리와 선비들에게 실천하는 유교적 맥락의 도덕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고, 그것이 정치적 정당성과 원리로서 작동하는 사회에서 실질적 권력의 획득과 유지에도 중요했다.

 

핵심은 성리학적 가치가 유교적 원리하에서 도덕적인 자기통제와 실천을 중요시 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조선은 천문학적인 부정부패와 그덕에 제대로 집행되지 않은 정책 및 필요를 등한시한 파벌싸움으로 인해 멸망 시점을 앞당겼던 중국의 수많은 왕조들과 다른 지속가능한 발전의 한계를 늘릴 수 있었다.

 

물론 그러한 문제가 조선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중국 역시 유학적 가치를 추종했던 국가였던 것은 동일하나, 그 양상과 정도, 규모의 면에서 양자는 비교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중국은 온전히 유교적 가치관 아래에서만 돌아간 국가가 아니었다.

 

 

조선이 가져다준 보수성.

 

나에게 매력적이게 들린 것이 바로 그 부분이다. 자기통제. 개인은 스스로 배우고 익힌 성리학적 가치관에 통제된다.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더라도, 설령 어겨도 남들이 모른다 하더라도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기보단 자신의 공부가 가르쳐준 원리를 따르고자 한다는 점이다. 모든 선비들이, 모든 관리들이 다 그러진 않다는 것을 안다. 실제로 부정부패가 발생했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그걸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과 실제로 작동하긴 했다는 점 역시 사실이다. 그렇게 도덕적 타락을 스스로 경계하고 습관적으로 도덕적이었던 그들의 윤리성은 그것이 하나의 환상 내지는 모델에 불과하더라도 지금 시점의 우리 사회에게 시사하는 바를 찾을 수 있다. 극단주의의 확산과 함께 도덕이 해체되고 윤리가 형해화되며 상식이 양분화되는 이 시대에 자본주의를 비롯한 다양한 가치들은 우리에게 도덕적 자기검열을 요구하는가?

 

 

도덕적 선택과 우리가 추구해야할 가치.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도덕과 윤리, 때때로 법을 어길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수억 원을 받는 대신 몇년 감옥에 가겠다는 사람들은 이전 시절에 비해 훨씬 늘어났다. 극단화되는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는 한탕주의의 유행을 발생시켰고 이는 수십, 수백억 단위의 횡령 역시도 등장시켰다.

 

나는 사람들이 자기통제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이것이 진보주의자 특유의 호들갑과 별 것도 아닌 일을 침소봉대 하는 정신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기에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단지 요즘 사람들이 특별히 더 도덕적으로 타락하는 종자들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정치의 타락과 경제적 압박, 부모 세대가 이룰 수 있었던 미래를 자식 세대인 자신들은 도달할 수 없을 거라는 불안과 상실감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범죄와 비도덕적 선택을 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이익을 위해 비도덕적 선택이나 범죄를 행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그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선택과 자신이 얻을 이익 사이에서 저울질 했고, 기꺼이 타락하는 대신 그것을 감수할 수 있을만한 막대한 이익을 추구했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을 합리적이고 영리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문제는 실제로 그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비도덕적 선택이 이익을 가져다준다면 기꺼이 한다는 것은 그것을 뒤집을만한 패널티가 부족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수백억을 횡령하고도 몇년, 십수년을 감옥에 있다 나온다면 남은 평생은 그간의 고생을 감당해도 될만한 것으로 여기게 해준다. 젊을 수록 더더욱 그럴 것이다. 우리가 죄인에게 충분한 제재를 가하는가? 수백억을 횡령했다면, 수백년을 감옥에서 보내게 하진 못하더라도 그러한 돈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이익을 무의미하게끔 해야 한다.

 

선비들의 도덕적 자기통제는, 성리학적 가치관의 인민통제는 지금의 행정력, 치안력과 비교도 할 수 없었던 엉성한 사회에서 그 시대에 비해 잘 작동한 편이다. 그리고 성리학에서 말하길, 배운다면 모두가 선비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공부하고 배운 바를 실천한다면 누구든 도덕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 말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보수성은 산업시대에 인간을 공장에서 죽여 돈으로 찍어내던 그것이 아닌 그 이전 시대의 것일지도 모른다.

 

 

진보적이기에 받아들인 보수성.

 

백년도 전의 가치를 지금와서 받아들이는 것은 보수적이라 하는 것이 맞다. 그것이 이전 시대 우리 조상 사이에 보편적이었던 세계관이자 이제와선 역사라 받아들이는 전통이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것의 흔적은 적게나마 우리 사회 우리 정신에 남아 있을 것이다.

 

진보주의자인 나는 보수적 가치를 산업시대 발전기에서 찾지 않았다. 그것은 여전히 나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민주주의와 자유를 말하는 보수주의자들은 그 시절의 가치를 추종하며 독재와 그 원리를 가치로 받아들이는 식으로 자기 모순을 일으켰다.

 

그렇기에 나는 그보다 훨씬 구미에 맞는 가치들을 발견했고, 그것은 우리 역사의 과거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성리학적 가치가 이제와서 무용하다 할 수 있다. 동의한다. 지금와서 성리학적 세계관의 논리와 주장을 피며 사람들에게 그걸 지킬 것을 요구할 수 없고, 요구하라고 할 생각도 없다.

 

난 단지 성리학이 말하는 가치들을 보여주며 현대 이념과 사상에서 거리를 둔 도덕적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모든 성리학적 가치들을 제공할 생각도 없다. 현대 우리 사회에 적용 가능한 가치들만 추출하는 것이 맞다. 서구인들이 현대에 와서도 2000년된 성경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모두 동의할 수 있을 법한 도덕과 윤리를 제공하는 것과 유사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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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게 아니라, 현실 인식부터 제대로 못하는 꼬맹이들이라 그렇습니다.

 

사실, 이건 나이랑 관계 없이 진보 애송이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한 바보들이 그런데, 엄밀히 말해서 이런 바보 같은 태도와 가치관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있으며, 일베 이후로는 보수 쪽이 좀 더 심하고 유독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진보 애송이들 수준이 더 나아진 건 아니거든요.

 

똑같이 자기가 옳다고 믿고 자기가 정의라 믿는데, 보수 쪽에선 우리가 애국하고 있다는 망상이 강하고 진보 쪽에선 지적 우월감을 가지는 경향이 좀 더 강합니다. 그렇다고 그 반대가 없다거나 그런 거 아니고, 둘 다 비슷하게 있지만 굳이 따지자면 비중의 차이, 혹은 드러나는 표현형에 차이가 있어요.

 

흔히 진보 애송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나, 일베 꼬맹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생각하면 얼추 맞습니다.

 

 

민주당은 그나마 좀 사회 경험이 있거나 투쟁 경험이 있는 이들이 그래도 기성 정당이고 거대 양당 중 하나라서 더 나은 면이 있는데, 그렇다고 그 구성원 전부가 최소 정의당보다 수준이 높다는 건 아니고요. 정의당 수준에서 크게 차이가 없거나 더 떨어지는 사람들도 물론 있을 겁니다.

 

이런 정의당 수준의 진보 애송이들이 왜 문제냐면,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냥 자기들이 꼰대들보다 더 뛰어나고 지적으로도 우월하다고 믿으며 그 근간 중 하나는 도덕적 우월성에서 찾는다는 겁니다. 지적 우월감이나 근거 없는 능력적 우월감이야 보수 꼬맹이들도 마찬가지이고,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는 것 역시도 똑같습니다.

 

근데 그렇다고 하는 행동이야 뜯어보면 비슷할지 몰라도, 그 표현 형태나 무엇보다 마인드에서 조금 차이가 나는 건 사실이거든요.

 

이건 솔직히 뭐라고 구체적이고 엄밀하게 구분짓기가 어렵습니다. 뜯어보면 똑같은데, 표현형에서 차이가 나고 그 표현형이 드러나는 기저의 비율 역시도 다른데 그 이유를 그들의 사상적/이념적 차이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고, 그래서 정확히 어째서 그렇게 차이가 나는지 역시도 뭐라 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단지, 굳이 구분하자면 민주당 박지현, 정의당의 태도는 진심으로 해결해야 하는 잘못된 것이고 해결하지 못하기에 스스로 스트레스 받고 있다면, 보수 쪽에서는 무차별적으로 조롱하고 비난하며 공격하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이건 다른 주제에 대해서도 비슷한데, 진보 쪽은 자기가 그 상황이나 주제에 연관된 것처럼, 특히 피해자거나 피해자에 공감하면서 호들갑을 떤다면, 보수 쪽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쿨한 척하면서 한발짝 물러나 조롱하고 비난 하는 모습으로 갈립니다. 

 

 

하여간, 그렇게 생각하면 민주당 박지현이 하는 개소리가 왜 나왔는지도 이해할 수 있죠. 민주당 중견 꼰대들이 다 물러나야할 이유? 옛날이면 모를까 이제는 너무 늙은 사람들이고 세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도, 알지도 못하는 낡아 빠진 이들이고 그런 사람들이니 실제 변화한 현실이 어떤지도 모르고, 현실을 모르니 항상 실패할 수밖에 없죠.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윗대가리 꼰대 주제에 권력이라는 권력은 자기들끼리만 다 가지고 있고 그런 주제에 이상한 말실수, 정책 실패, 범죄에 연루되거나 처벌받기까지 합니다. 그렇다고 자기들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어떤 결정 과정에서 목소리 비중을 인정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한심해보이고, 능력도 없어 보이며, 도덕적인 결함마저도 있습니다. 

 

그들이 가지는 민주당 윗사람들의 인상은 그저 문제일 뿐입니다. 문제를 문제로 보면 해결해야할 것처럼만 보이죠.

 

그러니 그 민주당 윗사람들이 정확히 뭘 하고 어떤 결정들을 내리고 왜 그런 결정을 내렸으며 그게 정확히 어떤 결과들로 돌아왔는지는 모르겠고, 그저 문제로 보이는 겁니다. 빨리 사라지고 뒷방으로 꺼져야할 꼰대들, 문제만 일으키고 권력에만 미쳐서 독점하며 기회를 박탈해가는 꽉 막힌 바위덩어리.

 

문제를 문제로만 보니 항상 나쁜 것만 보이고 좋은 결과를 애써 무시하고 나쁜 결과만 바라보거나 거기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박지현의 태도가 딱 그래요. 항상 실패만 하고 잘못된 결정만 내리며 권력만 독점하고 기회를 주지 않는 민주당 꼰대 쓰레기들은 나 같은 능력 있고 똑똑한 젊은 청년들에게 권력 주고 젊은 청년들의 새로운 민주당을 만들 수 있게 다 꺼져라.

 

 

박지현은 본인의 생각이야 변한 게 없고 여기저기서 두들기고 겁주니까 일단 꼬리 내리고 씩씩 거리며 대충 수습하고 뒤로 물러난 것 뿐입니다. 까놓고 말해서, 생각 자체는 전혀 변한 게 없을 겁니다. 아는 게 있어야 이해를 하죠. 현실 인식이 애송이 그 자체인데 남들이 뭐라고 하니까 그냥 지금 상황 자체에서 물러난 것 뿐이지 비판을 받아들였기 때문인 게 아닙니다.

 

딱 중학생 꼬맹이들이 어른들은 다 꼰대고 말이 안 통하고 내 세대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며 멍청하고 나쁘기까지 하다. 무능한 윗대가리와 능력 있는 청년이라는 도식 내지는 도그마 비슷한 거. 딱 그겁니다. 

 

그리고 이런 케이스가 당 전체로 확대된 게 정의당입니다.

 

정의당은 민주당이 무능하고 단지 선동을 잘하거나 좀 더 오래전에 만들어져 정치 지형을 선점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거대 정당으로 군림하는 거지 실제 능력과 실력은 정의당이 훨씬 우월하다고 믿습니다. 물론, 그럴만한 근거는 딱히 없죠. 박지현 케이스와 마찬가지로 한번도 제대로된 능력을 발휘할만한 권력을 가져본 적이 없고 단지 민주당이나 민주당 정권의 윗사람들이 실수하고 실패할 때마다 저건 저러면 안 되지. 저렇게 하면 안 되지. 하면서 비판과 훈수만 하다보니 마치 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거고 내가 비판하는 내용은 논리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훨씬 올바름에 가깝다고 믿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비판능력을 자기 정치 능력이나 실무 능력과 혼동해버리죠. 나라면 저런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았을텐데. 너무 뻔히 보이는 정답을 놔두고 저런 뻘짓을 하니 저들은 무능한 사람들인 것이 분명하지. 라고 생각하면서 그러지 않을(근거 없음) 자신이 훨씬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죠.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저런 일은 하지 않았을 거고 저런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았을 것이며, 종합적으로 내가 더 유능하고 실력 있으며 올바른 현실인식의 판단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죠.

 

근데 그런 비판이나 자만 혹은 망상은 사실 그들이 권력을 가져본 적 없기 때문이거든요. 그리고 그런 부분에서 그 치들이 중학생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한 것이, 애초에 권력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실패가 없었던 것이 그들이 능력이 있기 때문에 실패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과, 마찬가지로 권력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실제 자기가 욕하는 꼰대들의 실제 업무, 다시 말해서 실무에 대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그걸 잘 처리하기 위한 인맥의 부재를 겪어본 적도 없어서 모른다는 겁니다.

 

사람도 많고 훨씬 높은 자리에 있었던 적 많은 민주당 계 사람들의 도덕적, 법적 논란을 보면서 자기들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느끼지만 실상은 그럴만한 기회를 가져본 적도 없는 이들이 대부분인 곳이 정의당이고, 그런 권력이나 재산과 관계된 권력과 다소 거리가 있는 성범죄의 영역에서는 정의당 역시 비슷하게 발생하곤 하죠.

 

단지 규모가 적어서 덜 발생하고 덜 부각될 뿐이지.

 

정의당이 민주당에 비해 훨씬 도덕적이라 믿는 부분 중 하나가 그런 여성/성 분야인데 이 부분에 대해 자기들이 더 우월하다고 믿고 그런 우월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자기 당 내에서 성범죄가 벌어져도 민주당이랑은 다르다고, 우린 알아서 잘 처리했다고, 혹은 아예 성범죄가 아니라고 하고 그냥 묻어버립니다.

 

전형적인 내로남불과 도덕적 무결성을 만들기 위한 집단적 광신이 뒤섞여 있습니다. 결속력이 높은 작은 집단 내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죠. 아예 파괴되거나, 다 같이 묻거나 둘 중 하나인 경우. 

 

그리고 그런 집단최면으로 일단 그런 문제가 벌어져도 더 이상 그에 대해 거론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으며 넘어가자는 무언의 합의도 있고 말이죠.

 

 

박지현 같은 부류나 정의당 같은 부류가 욕먹는 이유가 바로 그런 곳에 있습니다. 내로남불이네 집단최면이네 하는 건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문제고, 마인드 자체가 중학생 애송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 있어요.

 

권력이 없어서 실패할 기회가 없는 것을 자기가 더 유능하다고 믿는 것이나.

실제 중요한 결정을 내려본 적도 없이 그 실패나 발생할 수밖에 없는 피해를 비판하고 훈수두기만 하며 지적으로 우월하다 믿거나.

이런 것들과 함께 별 다른 근거도 없이 윗사람들을 무능하고 멍청하며 권력에만 미친 괴물들로만 생각하는 것이나.

그런 괴물들이 자기들이 올라오는 걸 견제하기 위해 권력 한 쪽 나눠주지도 않고 찍어누르고 따돌린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그리고 그런 생각들을 숨길 생각도 없이 무능하고 멍청한 윗대가리는 다 꺼지고 가진 거 우리들한테 다 넘기라는 어처구니 없는 요구를 직접적으로 하는 꼴까지.

 

 

어린애입니다. 어른이 못 됐어요. 마치 사회생활을 한번도 안 해본 사람처럼 군다는 게 문제고요.

 

 

 

물론 민주당 윗대가리들이 멍청한 사람도 있고 무능한 사람도 있습니다. 실패하는 것도 사실이고요. 근데, 그렇다고 자기들이 더 뛰어나거나 우월하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그 멍청하고 무능하고 실패하는 윗대가리 반의 반도 못 따라가는(그리고 못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게 자기 자신임에도 마치 자기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마어마한 실력과 성과를 보여주면서 다른 경쟁자들(윗대가리 꼰대, 경쟁 정당)과 엄청난 격차를 벌릴 수 있을 거라 믿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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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보수의 핵심 속성 중 하나를 저는 '무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한국 극우보수 뿐만 아니라 모든 극단주의자, 극단주의 집단에 통용되는 것이지만 한국에선 극우보수만큼 무책임한 집단은 평범한 꼰대들 빼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이번 이준석의 발언도 그렇고, 이들은 굉장히 무책임합니다. 어떤 사건이나 사고가 터져도 그걸 자기가 책임지고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차라리 그 사건을 정치화시켜서 논란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언젠가 했던 말이긴 하지만, 그렇게 정치화 시키면 옳고 그름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편 내편의 싸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게 4대강 사업과 세월호 사건이죠.

4대강 사업은 정치적으로 기능된 논란이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과학적, 실리적인 관점에서 판단해야 하는 주제였습니다. 물론 정치 세력이 그런 거대한 사업을 한다는데 정치적이게 되지 않을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적어도 그 사업의 필요성과 효과는 과학적이고 실증적으로 제시되어야 했습니다.

객관적으로 4대강을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과, 잃는 것을 계량해서 손익비교를 해야하죠. 그래서 4대강을 하는 게 분명하게 이익이 된다면 하는 게 좋고, 그렇지 않다면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언론은 이걸 해야만 하는 숙원인 것처럼 밀어붙혔죠. 온갖 말도 안 되는 논리와 팩트를 편향적으로 제시하는 등..

수많은 비판이 있었고 예상되는 문제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4대강은 대체로 부정적이게 여겨지고 있죠. 실제로 그러니까요. 문제점이 하도 많아서.. 가뭄에도 큰 도움이 안 되고 하천, 강은 유속이 느리고 녹조가 발생하고 등등..

결국 현재에 와서 4대강 빨고 지지하던 이들 대부분 어디갔습니까? 마치 신기루라도 되는 양 죄다 없어졌고 입 다물고 있죠. 4대강 지지하던 이들이 정부와 언론의 선동에 놀아난 좀비였다는 겁니다. 멍청했거나, 순진했거나죠.

그럼에도 4대강을 밀어붙혔습니다. 이외에도 많죠. 사우디 쪽에서도 그렇고.. 10년 동안 꾸준히 밝혀지는 이명박과 그 정권에서 발생한 온갖 괴담은 사실이었고, 몰랐던 사실조차도 새롭게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고요.

그들은 국가과 국민들의 발전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일단 정치화시켜서 반반싸움으로 몰아갔죠. 정당한 비판에도 진보, 좌파, 운동권, 빨갱이,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히면서요. 그리고 반반싸움으로 몰고가면 대부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최전선 나팔수인 언론이 국민들을 선동하고, 그들에게 소스를 제공한 게 국정원, 기무사, 경찰, 검찰이었거든요.

수많은 이들을 데리고 댓글알바를 했던 건 이제 의혹이 아니라 사실이고요. 그들은 통치에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니라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그 세상 안에서 영구하게 자기 집단의 사적 이익을 추구했습니다. 국가라는 조직 자체를 카르텔들의 수익 실현을 위한 도구로 본 것이죠.

그렇기 위해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시키는 헤게모니 장악에만 최대한의 노력을 했던 거고, 민간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든 그건 다 니들 탓이고 니들 잘못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극우보수 맛을 본 이들이 한국식 엘리트주의, 능력주의라면서 패배자와 약자에 대한 멸시와 무관심, 비난을 일삼는 거고요.



박근혜 정부는 이 무책임함의 최절정기였습니다. 대통령 본인부터가 무책임했고, 발생하는 모든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해 무시와 회피로 일관했습니다. 무책임했죠. 무슨 문제가 발생할 때면 대통령은 해외순방이라며 여행을 다니고, 얻는 성과도 없으니 패션이나 보도하고..

세월호 때가 딱 무능과 무책임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는데, 사건이 터질 때 대통령은 없었고, 잘못된 보도와 대처가 이어졌습니다.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을 모든 행동들이 발생했고 사태가 심각해지자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조치들이 발생합니다.

먼저, 청와대는 자기들이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합니다. 청와대가 컨트롤타워가 아니니 사건의 책임은 청와대와 대통령이 아닌 다른 집단이 되어야하죠. 그리고 발빠르게 경찰(해경)과 언론으로 세월호 사건에 논란을 만들어냅니다. 경찰은 증거를 없애거나 조작하는 일을 하고, 언론은 세월호와 희생자들이 아닌 유족들에게 카메라를 겨냥하죠.

아이들과 탑승객들의 안전과 구조 방법, 구조 시행일, 생존 시간과 여러 가능성을 따지고 보도하면서 국민들과 유족들에게 안심이 될만한 무엇도 신경쓰지 않고 보험금인가 보상금 따위를 보도하고 학교에 쳐들어가 책상을 뒤지는 추한 짓을 합니다. 그리고 어느새 유족들은 종북 빨갱이, 반정부 시위대로 둔갑시켰죠.

왜? 책임의 주체가 정부이고 당연히 유족들은 정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정부는 책임지면 안 되거든요. 마치 고결해야하는 무오한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듯이. 사실 당연한 거죠. 책임을 지면 물러나거나 무언가 손해를 보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들은 영원불멸한 권력구조를 만들고 자기 카르텔끼리 이익을 봐야 하거든요. 그러니 사소한 것도 책임지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 전례 자체를 만들기 거부하고,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권력에 대한 도전이라 판단합니다.

그러니 유족들은 종북 빨갱이로 만들어 국민 절반에게 공격 받게 만드는 거고, 어느 정도 시점에서 지겹다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세월호를 꾸준히 끌어봐야 좋을 게 없거든요. 그러니 빠르게 잊혀버리게 만드는 게 최선이니 지겹다는 프레임을 만들어서 묻어버리려 시도하죠.

그리고 극우좀비들은 그 선동에 그대로 놀아나면서 이제 지겹다고 앵무새처럼 반복합니다.

상식적으로 세월호 사건은 정치적인 사건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정치적 책임을 요구하는 사건이 되어야 했죠. 근데 그런 정치적 책임을 지기 싫으니 온갖 공작과 선동을 통해 옳고 그름의 싸움, 책임의 싸움이 아닌 니편 내편의 싸움으로 만들어버린 겁니다.

놀랍게도, 한국에선 그게 가능했습니다. 극우보수 세력에선 그게 가능합니다. 전 솔직히 이 시기 한국 극우보수 국민들은 정치적 판단력이 거세된, 사람보다는 좀비나 도구 정도로 봤을 정도입니다. 상식적인 판단력만 가지고 있어도 무엇이 문제고 누가 문제인지 알 수 있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하는 말 들어보면 다 어디서 들어본 말들이거든요.

대체로 언론 쪽이었고요. 그냥 언론이 해준 말 그대로 반복하는 겁니다. 문체만 달라질 뿐이지 핵심적인 키워드와 논리만 추출해서 놓으면 다 똑같은 말이었어요. 하나같이. 자기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결코 아니었습니다. 꽤 소름돋더군요. 그래서 현대 정치의 프로파간다와 그것에 영향을 받는 인간 정신 및 가치관의 형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있습니다.

 


하여간, 여러분들도 국힘당 등 극우보수 세력들의 말과 행동을 잘 지켜보셨으면 합니다. 무책임이라는 키워드로요.

 


한국 핵무장 같은 말도 당장 던지는 말이지 현재 실제로는 어떤 가능성도 없다는 거 알 겁니다. 그럼에도 던지는 겁니다. 그게 자기 지지자들에게 사이다로 작동할 걸 아니까요. 하지만 그 워딩에 자극을 받을 주변 국가들은? 전혀 신경 안 씁니다. 오히려 적이 생기기 때문에 좋아하겠죠. 적은 지지자들을 하나로 뭉치고 반대하는 집단을 매도할 수 있는 도구가 되어주니까요. 오랫동안 북한이, 이제는 중국이 대체하게 된 그 역할을요.

브렉시트가 딱 그런 정신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브렉시트를 주장하고 추진했던 영국 정치인들은 브렉시트가 실제로 될 줄 몰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뒤에 해야할 어떤 비전도, 플랜도 없었죠. 그들은 브렉시트라는 워딩을 던지며 반대파를 공격하고 지지자들을 얻었을 뿐입니다. 단지 그게 목적이었죠. 정치적 헤게모니의 확보. 그런데 실제 브렉시트가 통과된 겁니다. 이제 책임져야할 때 였지만, 그들은 책임지길 포기하고 회피했습니다.

그 결과 책임은 그들의 반대파가 져야 했죠. 실제 책임을 지고 피를 보는 건 결국 일을 벌인 놈들이 아니라 그들에 반대했던 이들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죠. 한국에서도 그렇습니다. 이명박근혜가 9년 동안 싸놓은 똥을 문재인 정권이 겨우겨우 치우고 있다던가..

한국 극우보수는 자기 행위에 매우 무책임합니다. 그들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들은 유능하지도 못하고 무능하면서 부패까지 한 이들입니다. 부정부패하는데에만 유능하고, 기울어진 운동장 안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여 권력을 얻는 것에만 유능합니다. 기실, 그것도 지지자들의 수준이 유감스럽게도 낮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죠.

정부가, 권력집단이 책임져야할 일에 책임지지 않으면 그 책임은 응당 아래로 내려옵니다. 그리고 그 책임은 그대로 쭉 내려와 피해자 본인에게 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경제에 낙수효과는 환상이라지만, 책임의 낙수효과는 실제로 존재합니다.

그러니 책임자가, 책임기관이 지지 않으면 약자를 제외한 누구도 지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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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진보 자체에 대한 비판은 옛날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똑같았고, 그들의 문제점 또한 달라진 것도 없습니다. 어느 진영이든 그렇지만 그들 중 상당한 논리력과 합리성을 지닌 채 논의를 진행시키는 오피니언 리더는 상위 n%나 그 이하에 해당할 정도로 극히 적고 나머지는 구체적이기보단 피상적이고 형식적인 개념을 신념으로서 가지고 표현하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우파, 보수라고 해서 다를 건 없지만, 진보가 더 역겹다고 욕을 먹는 이유는 다름아닌 철학의 부재입니다. 오래된 인식이긴 하지만 진보는 젊은 이들의 것이고 젊은 만큼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을 잘 모르고 소위, 나대는 이들이라고 하죠.


신념에 불타지만 생각보다 현실은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이 존재한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헛소리를 나불대다 쪽이나 보거나 입만 산 애송이 취급 받으면서 열심히 나대보지만 타인들에겐 무시 당하고 정신승리 하거나 하는 경우들이 그런 상투적인 상황들이죠.



앞서 철학의 부재를 이야기 했는데, 이거야 뭐 반대쪽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지만, 보수와 우파는 현실에 순응하며 지적되는 문제를 무시하거나 감내하고, 그걸 남에게도 요구하는 쪽으로 전체적인 사회의 발전에 해악을 끼친다면 진보의 경우 현실도 모르고 나대며 시끄럽게 지랄대는 쪽에 가깝죠. 이건 상투적인 거고, 구체적인 주제에서 보이는 진보의 꼴값은 위 심슨의 짤과 비슷합니다.


바로 현실보다 형식을 우선한다는 겁니다. PC에 과하게 경도된 나머지 실제 차별현실을 해소하거나 해결하려는 의지보다는 눈에 보이는 형식에 맞춰서 현실을 변화시키려고 한다는 거죠. 블랙워싱이나 미의식에 대한 위선적 강요, 인종차별을 비판하면서 그 자신이 더 차별적인 것도 있죠. 




현 PC를 강요하는 현실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발생하는 일입니다. 현실을 따지기 보다는 형식을 우선하는 거고, 그 형식에 맞춰서 현실이 변화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들 스스로는 이상을 현실에 구현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러한 작위적이고 도덕적 매카시즘[각주:1]에 따른 변화는 자연스러운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그만큼 반발과 한계 또한 명확합니다. 어떤 사회든 미친 이데올로기가 사회를 장기간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최소한 주류 이념이 될 수는 없죠. 나치즘이나 제국주의가 오래 유지될 수 없었던 것처럼요.



이러한 진보들의 꼴값은 철학이 부재하기 때문이죠. 그냥 피상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을 옳다고 여기지만, 그것을 현실에 어떻게 적용하느냐, 실현시키느냐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이론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론이라는 게 어떠한 XX주의나 XX론 같은 거창한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혹은 대중 다수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왜 그래야 하는가를 아는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즉, 개념이라고 할 수 있죠. 


2019/06/22 - [취미/이야기] - 진보의 지적허영과 위선, 채식주의.


그런 주제에 겉멋만 들었기 때문에 그들의 행위, PC질은 지적허영과 위선일 뿐이고, 자기 스스로 정의로운 행동을 한다고 여기죠. 실제 사회적 해악은 보수우파 쪽이 더 크다고 보지만, 역겨움으로 본다면 진보의 꼴값떠는 헛짓거리만한 게 없다고 봅니다. 진보의 이미지가 실제 사회적 해악보다 더 나쁜 이유가 바로 역겨움이 감정적인 영역이라는 점 때문이겠죠. 누가 더 사회적 해악이 크냐에 대해선 뭐 이견이야 있겠지만요.



어찌됐든 진보가 PC질이나 하고 지적허영에 쩔어 헛소리 해대는 이유는 그들에게 철학과 현실에 대한 사색이 부족하고, 경험이라고 할 수도 있는 다른 영역에 대한 이해도 역시 적기 때문입니다. 뭐, 좋은 일하고 싶어하고 나쁜 거 싫어하며 더 정의롭고 공정해지길 바라는 거야 기특하지만 그 방식이 병신이면 걍 병신짓 하는 겁니다. 현 세대의 진보가 욕 먹는 이유가 바로 그런 거고요. 배운 건 없고, 논리적이지도, 합리성도 부족한 주제에 나대기는 존나게 나대기 때문이며, 항상 화난 채 모여서 누군가를 비난하고 공격하며 거꾸러 뜨린 뒤 그 위에 서서 우리가 승리했다 우린 나아갈 것이다. 하면서 정의로운 척은 존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1. 도덕이나 윤리적 이슈에 대해 XX하지 않으면 개새끼다. 라는 도덕적 공격을 의미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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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보수에 속하는 이들 중 누구 하나 정상적이지 않고 반국가적이며 반사회적인 가치관과 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며 한국의 발전과 성숙을 저해하는 이유는, 그들의 태생과 근원이 그러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기존 질서와 정체성을 가진 과거와의 단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외부 정체성(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의한 이식과 정착을 겪으며 기존의 질서는 단계적으로 무너져갔죠. 식민지하의 사회가 다 그렇듯이, 누군가는 반발을, 누군가는 순응을, 누군가는 적극적인 변절을 선택하지만, 당연히도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것은 적극적 변절자들입니다.


기존의 사회와 정체성을 그들 내부에서 무너뜨리고, 불신과 질투를 유발해 분열을 시키기 때문입니다. 확고하게 뭉쳐진 정체적과 질서를 부순 뒤, 그 틈에 (힘의 우위에 따른) 더 경쟁력 있는 질서와 정체성을 이식하고 고착화 시키기에 앞잡이만큼 빼어난 선동수단은 없죠.



애초에 일제의 질서, 정체성은 한국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의 토양에 이질적인 면이 있었고, 궁극적으로 한국이 아닌 일본 중심적인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곧 어떠한 행동을 하고 세부적으로 어떤 갈래의 사상을 가지고 있든, 그 근본적인 논리와 기제는 일본에 이익에 가까워지고, 최소한 한국의 이익에 배반되기 때문에 한국에겐 반국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보수의 계보와 뿌리를 올라가보면, 일제시대에 큰 돈과 명성 등, 권세를 얻은 이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청산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은 그럴 수 없었던 현실적인 사유와, 그러한 친일파의 힘을 세력 기반으로 삼고자 했던 이승만의 정치적 계산하에 이루어진 생존이었으며, 일제시대에 정체성과 도의를 팔아 성장한 그들의 생존감각은 해방 이후, 전후 한국에서 빛을 보았죠.


적지 않은.. 거진 대부분의 거물 친일파의 후손들은 그러한 기반으로 하여금 막강한 권세를 되찾았고, 뭉치고 모여 세력을 이루었으며, 일제 패망 이후에도 그들 일제의 질서와 정체성을 한국에 유의미하고 강력하게 고착시킬 수 있게 했습니다. 즉, 살아남은 일제의 후손은 사람이 아니라 사상인 셈이죠.



당연하지만 돈과 권력을 지닌 이들이 무너진 사회의 주도권과 질서를 빠르게 휘어 잡았고, 이는 머리와 머리의 모양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일제의 그것이 살아남아 기능하고 있었습니다. 이승만 본인은 반일이었지만, 친일파를 세력화 시키면서 타협과 용인을 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질서와 정체성을 국가에 이식시켰고, 박정희는 그것을 군사독재적 방법론으로 용접했습니다. 전두환은 그걸 더 심화시켰고요.


그리고 그들의 후신들은 여러 이름과 형태로 살아남아 현재 국회에서도 힘을 쓰고 있으며, 그들의 사상 또한 여러 변화를 겪었으나, 그 근본적인 속성은 결코 변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60년대나 2010년대나 그들의 행태는 얼마나 세련되졌는가의 차이일 뿐이지(그마저도 보이는 걸 신경쓰지 않으면 그 시절 모습 그대로 입니다.) 변한 게 없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시작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말은 상투적이고 정치혐오적인 말이 아닌 셈이죠.



어쨌든, 이러한 역사적 흐름에서 보이듯이, 한국 보수의 뿌리는 일본 제국주의에 있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한국 모든 보수에게 태생적인 문제가 있는 것인데, 국가든 정치든 그것을 이루는 근원에 해당되는 정신적인 정체성 자체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을 뿌리로 두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행태는 반국가적인 것입니다. 단지 그 뿐이기만 하면 차라리 다행이겠지만, 문제는 그 사상 자체가 일본 제국주의, 파시즘에 있다는 겁니다. 즉, 극우 극단주의에 속하고, 거기에 일본 특유의 전근대적 광기 또한 섞여있죠. 근본도 없는 정신론과 중세적 인명 경시풍조 등등..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한국의 보수는 근본적으로 한국적일 수 없고, 애국적일 수 없으며, 민족주의적일 수조차 없는 겁니다. 그들이 뿌리로 삼고 근본으로 삼는 정체성 자체가 한국의 것이 아니며, 그 근원이 일본에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한국에 제대로된 보수가 들어서기 위해서라면 현재의 정치 풍조와 이념 지형이 모두 박살내놓아야 합니다. 이는 보수 하나만 박살나서는 안 되고, 진보 등 다른 이념진영도 부서져야만 합니다.


한국 진보 또한 보수와 경쟁하고, 반발하고, 심지어 공생하면서 맞춰진 짝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에 한국적 정체성을 가진 보수가 들어서야 (말하자면) 국제적 기준의 보수라는 게 만들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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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선동과 여론조작에 대한 사실들이 속속들이 밝혀지는 상황 속에서,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만약 정권이 바뀌지 않았다면 이런 사실들이 알려졌을까.'


이명박 시절 십알단이란 이름으로 트위터에서 여론조작을 시도하려던 정황을 포착한 이래 점점 더 많은 증거와 정황, 증언들이 발견되었고, 지금에 와서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조작을 시행해왔는 지 증거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한국 극우보수 세력의 위험성과 반체제적인 성향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들이고, 국가를 위협하는 존재라는 것을 새삼 재확인 시켜주는 것들이죠.


국정원은 그저 정권의 시녀이자 충실한 사냥개였고 그들의 본래 목적을 방기한 채 안보적 위험과 국제정치, 외교에 있어서 한국의 역량을 깍아먹는 것에 일조 했음을 증명하는 것들입니다. 북한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안보를 강조하면서, 정작 그 대북감시와 정보망을 스스로 박살내고 인력을 갈아버리며 자기들 말 잘 듣는 개새끼들로 하여금 국민들을 이간질하고 선동하여 정치권력적 이익만을 탐냈으니, 헬조선이라는 용어가 이명박 정권 이후 박근혜 정권에 등장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던 셈이죠.


실제로 정상적인 국가를 구조적으로 망가뜨렸으니 말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구조적 착취를 당하는 서민들 입장에서 지옥과 같은 환경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 및 선동들의 행적을 보면, 지난 보수들의 공공연한 논리와 주장, 표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런 논리와 표현을 마련하고 사용하기 위해 학자들의 도움을 구하여 본격적으로 했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장 국정원이 만들어낸 것들의 대부분이 일베에서 사용되었고, 일베를 통해 여론을 이끌어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일베는 그저 국정원의 선동창구 역할을 했던 것 뿐이고, 그것이 실질적으로 일베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이용만 했다는 것인지에 대한 의심을 해봐야할 것인 동시에 그러한 일베를 이용하며 국정원의 논리와 표현, 컨텐츠를 구사했다는 것은 당연히 일베를 위시한 극우보수들은 단순히 국정원에게 선동, 세뇌 당한 좀비 새끼들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실이죠.


누군가 국민들을 레밍이라고 했죠? 사실입니다. 다만 극우보수가 레밍이죠. 정권이, 언론이 이렇게 주장하면 냅다 그 논리와 주장에 어떠한 의심도 비판도 없이 그대로 답습하여 따라가는 나그네쥐, 레밍들. 일베 또한 그런 존재들에 불과했습니다.



더 재밌는 건 그런 일베와 극우보수 버러지들의 10년 넘게 써먹고 있는 주장 중 하나가 진보좌파는 선동에 쉽게 넘어간다, 선동질한다. 뭐 그런 이야기라는 거죠. 하지만 반대로 현실은 어떻습니까? 수십년 동안 극우 정부와 언론, 어용 지식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그릇된 논리와 주장에 선동되어 비판도 없이 움직이고 틀렸다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증명되면 입 싹 씻고 아닌 척 하는 금붕어 수준의 지능을 가진 레밍들의 무리였죠.


그 동안 수도 없이 진보와 좌파를 욕하던 이들은 그저 선동 당한 좀비들이었습니다. 많고 많은 일베충 또한 그저 국정원과 보수 언론에 의해 놀아난 좀비들이고 사용 당한 레밍떼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물론 그럴 기대는 전혀 안 합니다만. 그들이 그러한 현실인식과 자정능력을 갖췄다면 애초에 극우보수짓거릴 안 했을 테니까요.



2016/07/30 - [취미/이야기] - 대중선동의 기본. 분열.


지난 시기, 대중선동에 대한 기본으로서 분열을 일으키고 조장하는 이유와 그 효과에 대해 논한 적 있습니다. 극우세력과 국정원은 그러한 정치적 방법론에 입각해 지난 9년 동안의 정권시기와 그 이전, 그리고 그 이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러한 분열과 내분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일베와 자유한국당 지지자들, 박사모 등의 극우집단은 그들의 선동과 의도에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놀아나고 있는 거죠. 그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인간이 아닌 남이 넣어준 입력값에 따라 움직이고 행동하는 좀비들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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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8 - [취미/이야기] - 브렉시트, 멍청이들과 노친네들의 마초적 자살쇼.

2016/11/15 - [취미/이야기] - 트럼프 당선과 대중정치의 함정.

2016/07/30 - [취미/이야기] - 대중선동의 기본. 분열.



새누리당, 황금새벽당, 공화당 등의 극우, 보수적 성향을 띄는 정당의 경우, 그들을 지지하는 계층은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 저소득층에 가깝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챙겨주지 않고, 오히려 거국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줄어들고 사회적 입지가 줄어들 것임에도 그들을 지지하고 표를 던져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정치학에서는 계급배반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종류의 계급배반 현상을 설명하는 많은 근거와 주장들이 있습니다. 많은 노동에 따른 인지적 한계, 낮은 교육수준, 지역적 정치기류, 종사하는 산업에 따른 입장 등등..


모두 틀린 설명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것들은 일정 정도 사실을 설명하고 있으며, 그 정도는 경우에 따라 영향성을 달리할 뿐이죠. 하지면 지금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런 요소들과는 다른 데, 그들의 정치사회적 입장과 한계라기 보단 정신적 가치관에 대한 설명이 좀 더 올바르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먼저, 새누리당과 같은 종류의 극우보수 세력을 지지하는 자들은 크게 두가지 기저를 바탕으로 합니다.


하나는 약자와 비주류,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경멸이고, 다른 하나는 강자, 힘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과 환상이죠.



1.약자, 비주류,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경멸.


기실 따져보다면 저소득층은 자신들부터가 약자임에도 불구하고, 자기혐오적 성향이 강합니다. 이는 흔히 갑질이라는 형태로 분석될 수 있는데, 갑질은 졸부 따위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소득층의 사회적 약자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중산층이 사는 곳보다 저소득층이 사는 곳에서 알바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직원들에게 갑질하는 경향성이 큽니다. 이는 아래의 글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자신이 겪은 만큼 타인을 대한다는 겁니다. 자신이 위계적 폭력과 억압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이 상위에 위치한 관계일 때 어렵지 않게 하위에 위치한 이에게 마찬가지의 위계적 폭력과 억압을 가하기 쉬워지죠. 


2014/08/30 - [취미/이야기] -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배경.


이런 현상에 따라, 그들은 힘에 대해 갈망하게 되고, 강자와 주류에 대해 동경하고 선망합니다. 비록 그들은 거의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지만 말이죠. 그런 정신적 작용은 정치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약자와 비주류에 대한 혐오와 경멸로 이어집니다. 타인의 비루함과 비참함은 쉽게 인정하고 흉보기 쉽지만 자신의 비루함과 비참함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죠.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타인을 어렵지 않게 구분하고 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는 중2병의 나는 남들과 달라 같은 게 아니라, 단지 자신의 형편을 무시하고 타인만을 판단하는 것에 불과한 것에 가깝습니다.


이런 모순적 행태 덕에 이들은 자신과 같은 약자와 비주류를 연대의 대상이라고 보질 않습니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 있다면 우습게 보고 모멸감을 주고자 하며, 자신에게 힘을 보태달라고 요청하면 거기서 정신적 우월감을 느끼며 그것에 심취하고 알량한 입장을 무기로 유세를 부리게 되죠. 이는 어렵지 않게 수평폭력으로 발생하게 되고, 특정 정치세력과, 그들과 야합한 언론은 그것을 부추겨 분열시켜 그들의 단결을 파괴하거나 이루어지지 않게 조작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같은 약자나 비주류, 소수자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최소한 무시, 최대한 적대 및 공격에 가까운 입장을 가지게 되죠. 같은 이유로 그들 또한 다른 집단에게서 공감 받거나 연대하고자 하지 않고요. 이것이 정치적인 요소로 흐르게 된다면 (노인, 청소년, 저소득층, 환자, 장애인 등의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복지, 외노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배척으로 발생하게 됩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진보 및 좌파와 같은 소수자와 약자를 주로 대변하는 성격의 집단에 대한 혐오와 괄시로 이어지죠. 즉, 그들은 자신들의 입장과 이익을 대변해줄 수 있는 정치집단을 반대하고 비판적인 자세를 가지게 됩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흔히 말하는 저소득층은 자신이 되고 싶은 자들을 지지한다. 는 말대로가 되는 거죠. 강자와 주류에 대한 동경은 자신과 그들을 동일시하는 공감이 이루어지기 쉽고 그에 따라 정치적 결정을 내립니다. 그게 진정한 본인의 판단이라기 보단 정치적 선동에 따른 결과라고 해도 말이죠.



2.강자, 힘에 대한 맹목적 추종과 환상.


앞서 이야기 했듯, 그들은 힘과 강자에 대해 추종하고 환상을 가집니다. 자신들이 힘이 없어 억울하고 마음 속으로 담아만 둬야할 괄시와 무시를 많이 겪어 봤기 때문에, 그만큼 그들을 짓밟고 비웃어 줄 수 있는 힘에 대한 동경과 환상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강한 자를 사랑하고 편파적인 애정을 가집니다.


정치에선 소위, 힘 있는 자들에게 표를 줘야 한다와 같은 이야기로 나타나죠. 힘 있는 자들이 정치를 해야 하고, 힘 있는 자들이 권력을 가져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보고 공감하고 싶은 것은 기집애처럼 이빨만 털면서 대화하고 화합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강인한 힘과 권력으로 상대를 짓밟고 박살내며 무릎 꿇고 빌게 만들 수 있는 타협하지 않는 강함, 강자거든요.


그러기 위해선 그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느낄 수 없는 적이 필요하고, 그들에게 자신들의 기저에 있는 분노와 혐오를 뿜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대상은 주로 외부의 적국, 혹은 자국의 진보 온건파들이 되기 쉽죠. 자신들이 혐오해 마지 않는 약자와 소수자를 대변하고 그들의 이익을 주장하는 약해빠진 기집애들. 그들이 적으로 상정되는 것이고, 그래야만 합니다.


파시즘의 공통점은 내부든 외부든 타협할 수 없는 불가침의 적, 혹은 악을 상정하고 국민들로 하여금 그들의 분노와 혐오, 증오 따위를 조장하며 그렇게 조장해낸 부정적 에너지를 그 적에게 쏟아붓게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주장과 발언을 대신해주는 자신들은 그만큼 비이성적이게 된 감정적 에너지체가 된 대중에게서 지지와 표를 받는 거죠.


따라서 그들의 지지를 받고자 하는 극우보수 집단은 그들에게 자신들이 힘이 있다는 스텐스를 명백히 보여줄 필요가 있고, 적어도 그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줘야만할 이유가 있는 겁니다. 실제로 할 수 있느냐, 그것이 국가적, 사회적 이익이 되느냐, 그것이 사회정의와 법적 정의에 부합하는가 따위와는 관계 없이요. 단지 지엽적 정치적 승리를 얻어낼 수 있다면 국가나 사회적 손실과 손해는 무시해도 되는 소小에 불과한 겁니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이 대大에 해당할 뿐이거든요.


이는 청와대나 새누리당, 혹은 이번 미 대선에서의 트럼프, 혹은 브렉시트 이전의 영국 보수당들이 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당장의 정치적 이익과 승리, 저소득층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 혹은 국민 다수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그들이 원하는 말의 대변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게 올바른 말이든, 정의에 부합하거나 국가적, 사회적 이익을 얻어낼 수 있는 종류의 것들이냐고 하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거든요.


즉, 적지 않은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은 정의로움이 아닌 힘이 있다는 것의 증명이고, 또한 정의니 합리니가 아닌 강한 자, 힘 있는 자들이 필요한 것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경화가 이루어지는 국가에선 힘 없는 정의보다 정의 없는 힘이 승리하는 것을 찾아보기 쉬운 것이고요. 마찬가지로 문재인이나 버니 샌더스, 힐러리와 같은 힘 없는 나약한 놈에게 표를 주지 않는 겁니다.


그들은 당장의 원칙과 정의보다, 당장 힘을 동원해서 자신들에게 대드는 버러지들을 짓밟고 박살내는 것에 열광합니다. 대화와 타협은 기집애들이나 하는 것이고, 그딴 건 필요 없이 자신들에게 기어오르는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야만 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힘을 가진 강자가 타협도 협상도 없이 적을 박살내고 짓밟는 것 자체에 대한 쾌감. 저는 그걸 마초 오르가즘이라고 부릅니다.



3.마초 오르가즘.


앞서 말했듯, 마초 오르가즘이란 힘으로 타협이나 협상, 대화와 같은 나약한 행위를 일체 하지 않고(혹은 강경한 태도의 경고만 한번 던져주고) 자신들이 설정한 적, 혹은 악에 대해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둘러 박살내고자 하는 것에 대해 쾌감을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민주적 원칙에서도 벗어나 있고, 벗어나기도 쉬우며 정의나 합리와도 동떨어진 태도입니다. 이런 태도가 극단화된 것이 파시즘이고, 군국주의이죠. 자신들의 적이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사상과 집단. 절대적 악과 강력한 적을 찾고, 그들과 싸워 이겨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사라져버리면 자신들의 존재 자체에 의미가 없어지죠.


거의 전세계의 극우, 보수 정치집단은 그들을 지지하는 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줍니다. 사회정의에 부합하는 해야 하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극적이든 편파적이고 피상적이든 듣고 싶은 말을 해주죠. 트럼프가 가장 적절한 예시입니다. 적지 않은 대중들은 어떠한 현상과 사건에 대해 근본적으로 파헤치고 분석하는 것보다, 그것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피상적인 현상에 집중하기 마련이고, 이게 힘과 관계된 것이라면 그것을 휘두르고 싶어만 하죠. 자신들의 자존심과 가치, 이입할 수 있는 대상(혹은 그런 종류의 가치)의 권위 상승이라는 일방적 짝사랑에 따라 움직이고 표를 던집니다.


현실과는 별개로 자신들은 아주 강한 존재이고, 그런 강한 힘을 가졌으니 대화나 타협 같은 불필요하고 나약한 행위보다 힘을 통한 의지의 관철만을 원합니다. 그게 자신들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주고 고양시켜주며 적지 않은 쾌감을 주기 때문이죠. 


이런 마초 오르가즘은 교육 수준이 낮고 노동 강도가 높고 노동 시간이 많은 저소득층에게 쉽게 발현하고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그들은 수직적, 위계적 권위에 의한 폭력을 쉽게 경험하고 낮은 자존감과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지적능력은 어떠한 현상이나 사건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분석할 시간도, 능력도 주어지지 않게끔 된 환경에 놓여져 있기 때문이죠.


그들이 조금이라도 더 여유롭다면 극우적 집단의 피상적인 정치적 선동보단 다른 지식인들의 근본적 분석에 공감하고 그 주장이나 분석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그렇지 못한 환경에 놓여져 있기 때문에 그러기 어렵죠.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진보나 좌파보다는, 강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남성적 이미지의 보수에 이입하기 쉽습니다. 


교육 수준이 낮기 때문에, 그리고 삶에 여유가 없어서 정치사회적 안건이나 쟁점에 쓸 정신력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고, 자기들이 평소에 이입해왔던 보수, 극우적 진영이나 인물에 지지를 보내기 쉽습니다. 쟁점에 대해 분석하고 공부하고 판단을 내릴 여유도, 그럴만한 지적 능력도 없기 때문에 그냥 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죠. 한국 보수, 저소득층, 50대 이상의 세대가 조중동 등 보수언론이 하는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상태로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그런 이유죠.


그리고 그런 성질을 잘 알고 있는 극우보수는, 그 집단이 정치정당이 됐든 경제집단이 됐든 언론이 됐든 그들의 마초 오르가즘을 자극할만한 정치적 선동을 하는 것이고요.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들은 사회정의나 사회국가적 이익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 요소들과 동떨어진 주장을 하고 분열을 획책하게 되는 것이며 그 결과로 알량한 정치적 승리만을 반복해서 쟁취했을 따름이죠.


즉, 마초 오르가즘을 자극하면, 자신들이 승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계속 자극하는 것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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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주주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대중, 국민들의 인기를 얻는 자가 승리합니다. 그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을 충족시켜줌으로써 달성할 수 있죠. 이는 경제적 안정, 안보적 성과, 사회적 문제해결, 교육제도 개편 등의 여러 분야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경제, 정치적인 요소들을 큰 틀에서 조작할 수 있다는 점은 그만큼 큰 변화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고 그 영향력은 역시 무척 거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요소들을 다루겠다고 하는 정치인들은 그 본인이 준전문가급인 되어야 할 것이고, 적어도 그 주변의 보좌관들이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그들의 의견을 경청해야하죠.


이런 필수불가결한 능력적 전제는 정치인이라면 매우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할 능력들입니다. 적어도 멍청한 소리를 하거나 국가, 사회적 안정을 해치는 식으로 작용해서는 안 되죠.



2.

대중은 그 자체로 뛰어난 지성을 가진 존재가 아닙니다. 개인은 똑똑해도 대중은 멍청할 수 있죠. 사실 이는 크게 틀린 말도 아니고요. 대중은 기본적으로 사회상규, 사회적 상식 수준에 맞는 의견을 보편적으로 가집니다. 이는 대중을 이루는 개개인들에 의한 그 사회의 한계이자 동시에 사회지성의 평균이기도 하죠.


이를 다르게 말하자면 사회적 상식이 달라진다면 대중들의 태도 또한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령 1950년대 대중이 가지는 상식과 2016년 현재 대중이 가지는 상식은 다르죠. 이는 사회적 환경, 문화적 토양, 교육수준 등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의외일진 몰라도, 일반적인 정치인들의 지성은 보통의 개인들보다는 훨씬 뛰어난 편입니다. 그 지성을 어떻게 쓰느냐는 다른 문제이니 일단 넘어가도록 하고, 그런 정치인과 특정 분야에 있어서는 훨씬 뛰어난 지식을 갖춘 보좌관들의 모임, 그리고 정치인과 보좌관의 정보와 지식, 의견이 종합된 그들의 발언이나 정책 발의는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거나 파악하기 쉬운 것이 아닙니다. 대놓고 말하자면, 일반 민중은 어느 정도 복잡한 사회적, 법리적, 정치적 문제를 이해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또한 대중은 그런 어렵고 복잡한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분석하고자 하는 것을 즐기지 않습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럴만한 시간이나 정신적 여유가 부족한 경우가 많죠. 차라리 이 편이면 다행인 거고, 그럴만한 지성조차 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정신력, 인지력의 여유와 복잡한 문제에 대한 인지작업에 대한 관계는 다음의 글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2016/07/30 - [취미/이야기] - 대중선동의 기본. 분열.




3.

이러한 문제를 역으로 뒤집는다면, 대중들은 한마디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더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더 자극적이고 민감하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한 마디, 한 줄 짜리 선동문구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이기 쉽고 실제로도 그렇다는 것이죠.


이는 복잡한 사회정치적 문제를 스스로 판단을 내리기 위한 인지작업을 할 필요가 없고,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사회적 안전이나 국가적 안보, 경제적 문제 따위에 대해 그 원인이 외국인 노동자나 불법체류자, 혹은 유대인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편이 전세계적 불황과 국내 산업불균형, 최저임금, 노동법, 사회구조, 인구구조 등에 있다고 하는 것보다 더 쉽고 받아들이기 좋은 내용이라는 것이죠.


외부적 문제요소가 내부적 안정을 해친다는 자극적이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쉬운 내용이라는 겁니다. 딱 보고서 어떤 내용인지 이해하거나 조금이라도 더 생각-인지작업-을 해야 하는 것보다 쉬운 내용이며, 무엇보다 어떠한 심리적 갈등도 없이 남탓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이요. 오히려 배척해야할 적이라는 인식은 그들에 대한 감정적 동조나 공감을 마비시키고 더 거칠고 무자비한 공격이나 그런 종류의 부정적 심리작용을 이끌어내기 쉽죠. 그리고 그것은 같은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보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4.

이는 요컨데, 어렵고 지적인 표현을 쓰는 진보매체보다 자극적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표현을 쓰는 보수매체의 영향력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받아들이기 쉽고 이해하기 쉽거든요. 복잡한 정치사회적 분석보다 남탓(종북탓, 진보탓, 야당탓, 외국인탓, 노동자탓 등등 많은 나라에서 이와 같은 남탓 선동을 합니다.)이 더 쉽죠. 적당한 소스만 버무려주면 어려운 인지작업을 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요.


이는 대중의 지성적 한계와 맞물려 아주 잘 먹히는 방식이 되기도 합니다. 기실 모든 정치적 발언들은 선동이기도 하고요. 공개토론, 질의응답, 청문회, 기자회견 등등 모두 다요. 그걸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고 응용하는 지가 정치인들의 실력이기도 합니다. 선동은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고, 그 선동을 어떻게 사용하는 지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질 뿐입니다.


뛰어난 능력과 양심을 가진 정치인이 선동을 통해 국가적, 범사회적 이익을 얻어낼 수 있는 정책을 실현시킬 수도 있고, 뛰어난 능력을 가졌으나 양심과 도덕성이 극히 낮은 정치집단이 선동을 통해 특정 집단만 이익을 얻어낼 수 있는 정책을 밀어붙힐 수도 있는 법인 셈이죠.



5.

이러한 대중들의 한계는 정치인들을 한계로 이끄는 면이 있는데, 아무리 뛰어난 정치인이라고 해도 선동능력이 떨어진다면 그 능력을 제대로 필 수 없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선동능력이 뛰어나다면 능력 이상의 자리를 얻어낼 수도 있다는 말이 되지요.


대중은 똑똑한 존재가 되지 못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인지작업보다 한 줄로 이해하기 쉬운 선동문구를 선호합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대중에게 원하는 말을 해주면 인기를 얻는 것은 절대 어렵지 않다는 말인 셈이죠. 이는 트럼프나 이명박과 같은 종류의 인간들이 능력 이상의 자리를 얻어낼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합니다.


필요한 것이나 해야만 하는 것을 말하거나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것, 할 수 없기에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는 정치인보다 대중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주는 이가 더 많은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가령 이명박은 자신이 경제를 살리겠다고 했지만 이명박 5년 동안 서민경제를 악화되기만 했으며, 이렇다할 경제적 성과도 없고 이제 와서는 오히려 그의 경제정책이 한국의 경제의 발목을 죄는 것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곤 했으며, 박근혜가 한 공약 대부분은 아무런 실현 가능성도 없고 의미도 없었던 것들이었을 뿐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공약을 폐기, 미시행으로 이어졌죠.



6.

트럼프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그는 백인, 노동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줬습니다. 트럼프가 한 수 많은 막말들은 역설적으로 많은 이들이 흔히 말하는 사이다 발언이라 여기고 그에게 호감을 주게 되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대선 때 많은 득표율과 선거인단을 가져가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그의 막말이나 주장, 공약들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이민이나 인종, 여성, 특정 종교나 신념에 대한 증오와 차별과 같은 혐오로 일관됩니다. 그의 캐치프라이즈인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자!와 같은 성격의 발언들은 모두 마초 오르가즘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런 쉽고 감정적인 자극을 이끌어낼 수 있는 언어들이 그를 지지하게 만든 원동력입니다.


즉, 트럼프를 지지했던 수 많은 백인 및 특정 산업 종사자-노동자들은 그들이 듣고 싶어했던 말을 해줬기 때문에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것이죠.



7.

이는 트럼프가 했던 말이나 주장의 정당성이나 합리성과 무관합니다. 그가 무슬림을 모두 쳐죽이자는 말을 했고 수 많은 미국인들이 그에 동의를 했다고 해서 그것이 정당하거나 옳다는 것이 아니며 그래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공약이나 주장 대부분은 현실적 가능성도 부족한 것에 대부분이고요. 물론 가능성이 낮다고 해서 실제로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하여간, 그의 발언이나 주장은 현실적으로 매우 비상식적이고 도덕적으로도 큰 결함을 발견할 수 있는 문제성 발언들이었으며 증오와 혐오, 차별을 담고 있고 실제로 많은 이들을 자극하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죠. 이는 그를 지지한 대중 대부분의 지적 능력이나 상식이 그들이 지지한 트럼프의 발언과 같은 수준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특정 인족이나 국가, 종교를 혐오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그와 같거나 비슷한 수준으로 공유하는 수 천만명의 민중이라니.. 정말 끔찍한 일이죠.



8.

트럼프의 당선은 나치당의 집권이나 융성과 비교할 부분이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대중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고, 그 이야기들은 자극적이고 짧은 한 두 문장으로 정리해서 내뱉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좋지 않은 내용들이고 옳지 못하게 사용했다는 점이 문제이죠. 둘 다.


세련된 정치인이란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이가 선한 의지로 국가적, 사회적 이익을 위해 일하며, 그에 따라 적절한 방법을 사용하며 그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이를 말한다고 봅니다. 어떠한 사회문제에 대한 분석과 연구를 통해 그것을 해설하며 대중을 설득하려는 것은 멍청한 짓입니다. 대중은 그것을 이해할 능력이 없고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습니다.


좀 더 나은 방법, 세련된 방법을 사용했어야 하죠. 예컨데 쉬운 언어를 사용하며 이것이 어떻게 이익이 되며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를 선전하여 선동하고 필요하다면 약간의 꼼수를 사용하는 것도 괜찮다고 보거든요. 분석과 연구는 지식인들에게나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가진 이들은 그들이거든요. 그러나 대중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쉬운 말을 써서 때로는 감정적으로, 때로는 더하기 빼기 수준의 계산을 유도하는 식으로 스스로 판단한다는 착각을 심어주어야 하죠. 정치란 그런 법입니다. 진보정치가 대부분 실패하기 쉬운 이유가 이것입니다. 그들은 똑똑하고 능력적으로도 나은 인력들이지만 정치적 방법론이라는 면에서 극히 무능합니다. 도덕적, 논리적 우위에 진보가 있다고 해서 대중이 그것을 자동으로 알아주는 게 아닙니다. 그것 홍보하고 선전하며 선동해야죠.


선거를 하면 항상 진보가 지고 보수가 이기는 이유가 그것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고 합리적으로 판단했을 때 문제가 많은 이들이지만, 그들의 정치적 선동은 항상 대중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고 표를 얻어가기 때문이죠. 물론 그 이후 듣고 싶은 말을 실제로 실현해주는가와는 별개로요.



9.

트럼프의 승리를 바로 그것에 있습니다. 대중이 듣고 싶은 말을 해줬다는 것. 반면 힐러리는 그러지 못했다는 점. 물론 선거전략의 문제도 심각했습니다만, 듣고 싶은 말을 해주기 보다 -본인이 판단하길- 해야 할 말을 하는 정도에 불과했죠. 심지어 그녀가 파악하고 긁어줬어야할 이들은 내버려뒀고 그들은 힐러리가 아닌 자신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줬던 트럼프에게 표를 줬고요.


한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명박 때나, 박근혜 때나. 실질적 가능성이나 문제점 따위는 무시하고 일단 막 던지고 보는 식으로 공약을 남발했죠. 대중이 듣고 싶어 했던 이야기들이었고요. 그리고 현실에서 그것들은 대개 폐기되거나 이행되지 않았고 말을 바꾸었습니다. 


민주당의 실책이나 문제점, 박통에 대한 향수나 종교적 광신에 가까운 -박근혜나 박정희는 물론 북한에 대한 혐오나 보수에 대한 찬양 등과 같은 종류의 종교적 믿음을 의미함.- 지지 같은 요소들도 있었지만 정치집단으로서의 새누리당의 선동은 모두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식이었죠. 그것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실제로 하는가와는 완전히, 완전히 별개로 말입니다.



10.

앞서 말했듯, 대중은 그 자체로 뛰어난 지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며, 상식적 수준에 맞는 의견을 보편적으로 가집니다. 이는 대중을 이루는 개개인들에 의한 그 사회의 한계이자 사회지성의 평균이기도 하고요. 이는 사회적 상식이 달라진다면 대중의 태도 또한 달라진다는 것이고, 이걸 반대로 말하자면 대중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그것은 마찬가지로 사회적 상식 또한 변화시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50년대와 2016년대의 상식은 사회적 환경, 문화적 토양, 교육수준 등이 달라졌기에 차이를 가지는 것이며, 이를 뒤집어보면 사회적 환경, 문화적 토양, 교육의 문맥이 달라지면 그 상식 또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대에 따라, 정권에 따라, 국가에 따라 대중의 상식과 시민의식이 차이를 보이는 이유입니다. 노무현 정권 당시의 상식과 박근혜 정권 하의 상식은 분명하게 차이가 있죠. 10년은 긴 시간이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변화하기엔 그리 짧은 시간도 아닙니다. 10년 전엔 상상도 못한 일이 지금와서는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그 감정적 반발이나 경악할 사실을 생각보다 더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그러한 환경이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분명하게 잘못된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했다는 것인데, 각종 비리, 부정부패, 국기문란이 늘어났다는 것이고, 그렇게 늘어난 문제들에 대해 우리는 조금씩 적응하며 받아들이는 수위가 변화 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노무현 때는 웬만한 이유로도 청문회에서 털렸다면 지금 수준에선 웬만한 문제로는 문제 삼지도 않고 넘어가거나 얼굴에 철판 깔고 강행하면 되는 수준이 되었죠.


노무현 5년의 한국과 이명박 5년은 한국은 달랐고, 이명박 5년의 한국은 박근혜 5년의 한국과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오바마 8년의 미국과 트럼프 4년의 미국 또한 다를 수 밖에 없죠. 빌 클린턴 4년의 미국과 조지 W. 부시 4년의 미국이 달랐듯이.


그러한 시간을 극복하고 다시 돌아오거나 더 진보하여 나아갈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동력이고 저력이긴 하지만, 다시 이전과 같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더더욱 길 것입니다. 이는 모든 민주주의 국가가 마찬가지고요. 부수기는 쉽지만 다시 만들기는 어려운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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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항상 하는 말이죠. 보수는 상식이 부족하거 지적능력이 떨어진다고. 이는 단순히 공부머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생각머리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같은 것과 다른 걸 구분 못하고,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는 1g도 이해하고 있지 못하니까요.


먼저, 백남기 농민의 사망 원인을 두고 저 글의 글쓴이는 급성신부전의 원인을 신체기능 저하, 혹은 신장 자체의 이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줄도 보세요.


서울대병원 의사들의 진단에 따르면 직접적인 사인은 심폐정지이고, 그 원인이 급성신부전이라고 합니다. 그 급성신부전이 온 원인은 급성격막하출혈이고요. 쉽게 말해 뇌출혈의 일종입니다. 이거에 대해 경찰은 뇌출혈이 아닌 다른 인과관계에 의한 사망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고요.


아래의 기사를 봅시다.


영장기각 법원 공식 입장, “백남기 부검 필요성 없다”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2302


(전략)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 소속된 전문의 3인은 지난 25일 의견서를 내 "본 환자의 발병 원인은 경찰 살수차의 수압, 수력으로 가해진 외상으로 인한 외상성 뇌출혈과 외상성 두개골절 때문이며 당시의 상태는 당일 촬영한 CT 영상과 수술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서 "발병원인이 명백한 환자에게 부검을 운운하는 것은 발병원인을 환자의 기저질환으로 몰아가려는 저의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상식적인 의심을 하게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중략)


위의 의견서를 쓴 김경일 신경외과 전문의는 지난 25일 백씨 검시검안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처음에 다쳐서 서울대학교 병원에 올 때 굉장히 심한 뇌 손상이 있었다. 사인은 뇌 좌상, 뇌 부종 등 뇌와 관련된 여러 가지 질병명을 붙일 수 있는 외인사인게 분명하다"면서 "너무나 명백한 사망의 원인을 보고도 외인사냐 병사냐 하는 것은 신경외과 의사로서 고민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백씨 검안 과정에 동석한 우석균 보건의료단체 정책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원 사망원인은 (사망의견서) 맨 아래 칸에 쓰여있는 선행원인으로 보도하는 것이 맞다. 서울대 병원에서도 (백씨 사망 선행원인을) '급성 격막하 출혈(외상성 뇌출혈)'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외상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라면서 "서울대병원에서 그렇게 한 것(병사로 처리한 것)을 동문으로써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후략)


이런 내용인데, 저 이미지의 글쓴이는 의사의 소견도 보다 말았나 봅니다. 그러면서 직접적으로 무엇 때문이 원인이다 라고 하지 않고 넘어가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내용은 은유해놓고 말이죠. 이는 보수들이 흔히 시전하는 '별 일 아닌데, 혹은 그거 때문 아닌데 유난 떠는 진보, 좌파놈들'이라는 선동이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말입니다. 



가끔 죽음은 무기가 된다고 하는데, 네. 맞습니다. 근데 그 대표격이 바로 노무현이죠. 이명박근혜 정권 하에 노무현을 관짝에서 여러 차례 끌어올린 건 바로 저 보수들 본인입니다. 이것도 노무현탓, 저것도 노무현탓.. 이것과 그건 다르다고요? 다른 건 전태일 열사 분신 자살이고 세월호와 백남기 농민이죠. 똑같이 시체팔이라면 노골적이고 비윤리적이며 정치성마저 뚜렷한 노무현을 꺼낸 쪽이 더 비난 받아 마땅하다는 건 머리 좀 돌아가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저기서 꺼낸 4개의 사례는 글 쓴 본인의 정치적 지향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데, 일베로 대표되는 극우포지션의 시선을 그대로 보여주거든요. 모두 본인 잘못, 그저 사고, 우연찮은 건강악화라고 보는 그런 시각이요.


먼저, 전태일 열사 분신 자살 사건부터 시작합시다. 자살 부분에 따옴표 친 것을 보세요. 결국 자기가 자살한 거 아니냐. 라고 한 거고 그건 본인이 죽은 거지 남이 죽였느냐 하는 겁니다. 이게 바로 보수들이 지능이 낮다는 소리를 듣는 이유죠. '왜 그랬는가'를 철저히 무시하고 모든 원인과 과정과 결과를 행위자 본인에게 종속시키는 것.


당시의 노동권과 실제로 착취 당하고 사람답게 취급 받지 못했던 노동환경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르거나 알고도 무시하기 때문에 저런 겁니다. 왜를 무시하고 피상적인 현상만 원숭이 수준으로만 파악하기 때문에 저런 시각을 가지는 거죠.


미선이 효순이 사건도 마찬가집니다. 국가의 주권 따위 안중에도 없고 그저 피상적인 사고였다 정도로 일축하는 것. 그 이전, 그리고 그 이후 미국의 태도와 사고의 원인, 그것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 등 주권과 원인에 대한 파악은 아무 것도 없는 그저 사고에 불과한데 뭘 그리 성내고 유난이냐는 보수적 태도를 보여주는 거죠. 마찬가지로 피상적이기 짝이 없는 이해도를 가지고 하는 소립니다. 멍청하니까요.


세월호도 마찬가집니다. 이 블로그에서만 그 원인에 대해 많은 비판을 해왔기 때문에 넘어가겠습니다. 이걸 단순히 사고라고 생각하는 건 머리 속에 뇌가 제기능을 못한다는 겁니다. 보수라는 작자들 대부분이 그렇지만요.


백남기 농민도 역시 같습니다. 경찰이 물대포로 머리 부분을 직격한 뒤 쓰러진 상태에도 몇 초 동안 그 직격사를 유지했고 병원에 이송되는 것마저도 방해했죠. 그리고 그 상태로 혼수상태에 빠졌고 깨어나지 못한 채로 현재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그럼 생각해봐요. 그렇게 혼수상태에 빠진 이유가 뭡니까? 논리적인 사고가 가능하다면 물대포 직격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죠. 그렇다면 다음, 그 백 농민의 상태는 어떠했는가? 위의 뉴스 발췌문에 있죠. '수압, 수력으로 가해진 외상으로 인한 외상성 뇌출혈과 외상성 두개골절'이라고. 그렇다면 그 상태 자체는 누구 때문인가요? 논리적인 사고가 가능하다면 물대포를 쏜 사람, 그리고 그 조직에 있죠. 설마 물대포를 쏜 개인이 아니라 왜 그 조직에 있냐는 빡대가리 같은 소리 하는 멍청이는 없을 거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그 혼수상태에서 건강이 나빠질 수 있느냐 아니냐를 따진다면, 당연히 건강이 나빠진다는 말이 나오는 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 혼수상태에서 건강이 나빠져서 죽음에 이르렀다면, 무엇 때문이고 누구 때문일까요?


아주 간단한 논리적 사고력이 필요한 겁니다. 이 정도는 조금 똑똑한 원숭이 데려다가 교육만 시켜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글의 작성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질적 수준이 너무 낮죠. 같은 논리로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도 별 거 아닌 일로 만들 수 있거든요.



현재 경찰과 정부 쪽의 입장은 간단명쾌합니다.


우리 책임 아니다. 그리고 이 태도는 역대 모든 보수정권이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취한 입장과 완벽하게 같습니다. 경찰, 정부의 시위자나 운동권 시체탈취가 현대에도 이루어진다는 증거이기도 하고요. 심지어 그 시체탈취가 2014년에도 있었죠. 찾아보면 나옵니다. 80년대, 늦어도 90년대에나 할 법한 짓을 아직도 하고 있는 수준 낮은 정부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정부와 그 정부를 지지하는 머저리들이 국민들 절반은 된다는 점이 호러라면 호러고요.


살인 정권입니다. 그리고 그 살인 정권은 자기 책임도 인정하려 들지 않고요. 경찰과 정부가 부검을 원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부검에 대한 영향력을 휘둘러 사망 원인을 왜곡시키기 위함이죠. 우리탓 아니라고. 뻔하죠. 양심 없는 새끼들.



2016/07/12 - [취미/이야기] - 극우보수가 보는 미개한 개돼지들.

2016/01/25 - [취미/이야기] - 헬죠센론. 사회학적 상상력과 탈정치화.

2015/12/20 - [취미/이야기] - 헬죠센론. 문제에 대한 인식과 해결.

2015/04/05 - [취미/이야기] - 세월호 사건과 진상규명을 뭉게려는 자에 대한 통렬한 비판

2014/12/23 - [취미/이야기] - 선동 당한 보수는 이런 공통점이 있습니다.

2014/08/20 - [취미/이야기] -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안보관

2014/05/13 - [취미/이야기] - 나는 이성적이다. 쿨뽕.

2014/05/19 - [취미/이야기] - 갑자기 드는 감성팔이에 대한 단상

2014/06/25 - [취미/이야기] - 책임이 없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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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 할머니 "1억 준다고? 사죄없인 1000억도 무의미"

http://www.nocutnews.co.kr/news/4645683


고작 100억에 정말 중요한 것들을 죄다 팔아버린 보수 입장에서야 돈 준다는 데 안 받는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이런 발언은 절대 이해가 안 될 겁니다.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특히나 한국 보수의 특징 중 하나가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원시킨다는 겁니다. 역사도, 목숨도. 그저 헐값에 넘길 수 있는 그런 거라고 보죠.


일본의 위안부라는 게 어떤 무게와 의미를 가지고 있고, 현대에도 일본의 입장에 어떠한 악수가 되는 지에 대한 이해가 1이라도 있다면 이런 결정은 낼 수 없습니다. 더불어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과 상처, 수치의 인생을 감안할 줄 안다면 더더욱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고려를 전혀 할 수 없는 덜떨어진 사고력을 가진 보수정권은 한국엔 나쁘고 일본엔 좋은 일만 해준 거지요. 이번 일은 그 일의 연장입니다.


그 분들에게 돈은 필요 없습니다. 1억을 주든 1000억을 주든 1000조원을 주든 그런 돈을 필요가 없어요. 역사에 대한 사과, 그리고 위안부라는 그 역사 자체인 자신들에게 진심으로, 영혼이 담긴 사과와 반성을 원하는 거죠. 돈 한푼 안 줘도 됩니다. 어차피 쓸 일도 없을 거라는 건 본인들도 잘 알고 있어요. 이건 정부도 잘 알고 있는 사항입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그런 상처와 고통, 일본의 사과와 반성을 헐값에 교환했습니다. 당사자들의 의지는 전혀 개입되어 있지 않은데 말입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을 돈으로 환산한 가격이 고작 1인당 1억이라는 헐값인 겁니다.



그런데 더 악랄한 사실이 뭔지 아십니까? 그마저도 일시불 아닙니다. 죽은 사람은 법적 대리인에게 2000만원 지급이고, 만일 없다면 그 돈은 국고로 돌아갑니다. 정확히는 화해치유재단 관리로 돌아가죠. 살아 있는 사람들은 1인당 1억 지급인데, 이마저도 일시 지급이 아닌 연금 형태로 최저 생계비 수준으로 조금씩 조금씩 주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화해치유재단은 박근혜와 새누리당에서 그들 추종자들이 모여 만든 겁니다. 위안부와 관련된 모든 돈을 법적으로 관리할 권한이 있는 곳이죠.



이 사실을 정리하자면? 가히 세계사적인 엄청난 의미를 역사를 고작 100억 푼돈에 팔아넘기고, 자신의 외교적 입장을 스스로 박살낸 뒤 일본의 명분과 입장은 살려주며 그들에게 도움만 되는 일을 해주면서도, 정작 그 피해자들에게 돌아갈 돈 조차 제대로 지급하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어차피 살 날 얼마 안 남았으니 빨리 죽고 돈은 자기들 호주머니로 돌아오길 바라는 거죠. 진짜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이런 당을 지지한다는 건 그 스스로 사람 수준이 아님을 증명하는 일이에요..




한일협정으로 역사 팔아먹은 박정희처럼, 박근혜도 제 아비랑 똑같은 종자라는 거죠. 그나마 박정희는 뭐라도 했지, 박근혜는 그마저도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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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1 - [취미/이야기] - 쥐명박과 노알라가 다른 이유.


위 글 댓글란의 대부분의 헛소리들을 캡쳐한 겁니다.



저 글에 대해 많이들 이해 못하시는 거 같은데, 쥐명박, 닭근혜와 노알라, 핵팽귄은 서로 다른 표현이라고 보는 게 제 관점입니다. 시작이 외모에 대한 비하였다고 해도 담긴 의미의 차이에서, 사용례로서 서로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거든요. 물론 이러한 주장을 위해 필요한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아래의 글은 편의상 그러한 전제하에 서술된 것으로 이해하셔야 합니다.


ㄱ.쥐명박과 닭근혜는 행실에 대한 비판으로서 기능하는 풍자표현이다.[각주:1]



글에서 제시한 논리를 요약하자면 이와 같습니다.


생득적인 이유나 장애로 인해 발생한 외모에 대한 풍자와 행실에 대한 풍자는 서로 다르다. 이거 되게 간단한 주장이거든요? 근데 저기 캡쳐들 보세요. 이거 제대로 이해한 사람 있습니까? 없죠. 오히려 둘 다 나쁘다라는 양비론으로 귀결시키려는 시도가 더 많죠. 이따가 이에 대해서 설명하겠지만, 이거 완전 심각한 인지부조화입니다.


풍자와 비꼼이라는 유머가 강하기로 유명한 영국, 미국 같은 곳에서도 외모에 대한 조롱을 가장 저급한 조롱으로 여깁니다. 이건 저 위 캡쳐본 중에서 설명했듯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죠. 자신의 인종, 외모, 성별, 출생지, 국가.. 이런건 본인이 선택 할 수 없는 것이죠. 이란에서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죄가 되지 않고, 흑인이라는 것 자체가 죄가 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각주:2]


하지만 저열한 보수들은 이런 류의 비난을 쉽게 일삼는데, 그들에게 윤리나 도덕은 쉽게 말해서 관심도 없고 잘 모르는 겁니다. 즉,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거 못 배워먹은 양아치 쯤 되는 모지리라는 거죠. 전라디언이나 홍어니.. 이런 류의 비난을 가장 쉽고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게 그들입니다. 그 반대인 진보좌파도 쓴다고요? 폭력에 대한 반응으로서 폭력이 나오는 건 당연한거죠. 한창 쳐맞는 놈이 똑같이 빡쳐서 주먹 휘두르면 그건 문제가 되는 거라고 보는 기계적 중립의 오류입니다. 물론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먼저 후려친 놈이 뻔뻔하게 니들도 잘못했다고 주장하는 건 더 잘못된 겁니다.


그런 표현을 가장 많이 써먹고 그에 대한 어떤 문제의식도 없는 게 보수라는 이들이에요. 적어도 반대쪽에선 그러한 표현 자체에 대한 반발이나 자정작용은 있습니다. 오유나 일베나 똑같다고? 적어도 오유에선 그런 표현 쓰면 욕이라도 먹죠. 다른 진보 커뮤니티에서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노노데모니, 일베니 하는 쪽에선 어떻습니까. 좋다고 낄낄거리며 입에 달고 살죠. 그 차이입니다.



쥐명박, 닭근혜, 노알라, 핵펭귄. 각각 어떠한 것을 이유로 발생했는지는 현재로선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욱일기나 하켄크로이츠가 원래 어떤 의미로 사용됐는지 중요하지 않은 것과 같은 이유죠. 2차대전 이후로 그러한 표현이 전범이나 전범에 준하는 수준으로 인식되는 것이 맞는 것이고 그에 대해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별다른 반발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왜 그게 문제가 되는 지 잘 아니까. 이전에 어떤 의미를 담고 있든, 그것이 변질되어 버렸고 현재 어떤 식으로 사용되는 지 알고 있으니까.


쥐명박이나 닭근혜가 외모를 비하하는 것으로 시작했다고 해도, 그들의 행실에 따라 그 사용례가 변질됐습니다. 그 차이죠. 4대강이니 자원외교니 나라 곶간 갉아먹는 쥐새끼 같다고 해서 쥐명박으로 쓰이고, 근혜체, 산소가스 등의 지적으로 모자란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닭근혜로 쓰입니다.


저 위에서 제시했던 글처럼, 노알라가 원래 노무현 지지자들에 대한 비판으로 쓰였다곤 해도 표현의 논리성이 떨어지고 현재로선 그냥 외모비하로 변질되버린 것과는 대조적으로 말이죠. 만약 발생원인만을 따지고 이후 변질된 용례를 따지지 않겠다고 한다면 하켄크로이츠나 일본의 전범기에 대해서도 욕하지 말고 부정적으로 반응해선 안 됩니다. 하지만 그럴 멍청이는 없죠.


이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헛소리 할 거라면 본인의 지적 모자람을 심각하게 재고해봐야할 겁니다.



그리고, 댓글들을 보면 알겠지만 죄다 둘 다 나쁘다는 양비론을 내세우는 데, 이건 반대로 말하자면 제 주장과 논리에 대한 합당하고 논리적인 반박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비교 자체를 망가뜨리기 위한 비논리적 오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데 저 중 한 놈은 확실히 일베고, 나머지들도 꽤 일베를 하거나 비슷한 사상을 가진 이가 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쟤네들은 일베 같은 곳에서 열심히 노알라니 핵펭귄이니 하면서 가카, 근혜에 대해서는 호평을 했겠죠.


쉽게 말해서, 제가 하는 말이 맞는 것 같으니(다르게 말하자면 반박할 수 없으니) 그러한 자신들의 논리적 빈틈과 도덕적 약점을 방어하기 위해 둘 다 나쁘다라는 양비론으로 몰아가는 겁니다. 앞서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했다면 닭근혜와 쥐명박은 풍자라는 카테고리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고, 반대로 노알라와 핵펭귄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겠죠. 내가 잘못됐음을 인정할 수 없으니 -마치 오유나 일베나와 같은 류의 양비론적 물귀신 작전마냥- 우리도 나쁜 거고 니들도 나쁘다라는 개논리를 주장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인지부조화죠. 논리적으로 잘 따져보면 분명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까고 쟤네도 까고, 쟤네가 이렇게 까니까 우리도 이렇게 까는 데 그게 똑같은 거지. 라는 지극히 피상적이고 고찰없는, 무논리라고 해도 될 만큼의 저지능급 주장이 논파됨에 따라 자신이 잘못됐음을 인정하기 보단 둘 다 나쁜 것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려는 겁니다.



만약 이러한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은 논리를 통해 반박해야합니다.


1.노알라나 핵펭귄은 외모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2.쥐명박이나 닭근혜가 행실을 풍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쉽게 말하자면, 제가 제시한 차이와 그에 따른 논리가 틀렸음을 논리적으로 반박, 설명해보라는 겁니다. 그게 안 되고 여전히 둘 다 똑같은 건데요? 라고 한다면 걍 본인이 병신인 거고 짱 먹으면 되는 겁니다. 글을 읽고도 이해하지 못하면 걍 지가 짱먹게 둬야죠.



물론! 쥐명박이나 닭근혜를 외모를 비하하는 용도로 쓰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사용인 게 맞습니다. 그건 외모비하가 맞기 때문에 노알라나 핵펭귄과 다를 것 없는 멍청한 개소리입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건데, 두 표현은 외모비하로 쓸 수 있지만 행실에 대한 비판을 수행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컨텍스트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거고요. 아예 얄짤없는 외모비하인 노알라, 핵펭귄과는 그런 차이가 존재하는 겁니다.


  1. 그러나 이 차이가 가장 크고 중요한 이유는, 반대로 노알라와 핵펭귄은 얄짤없이 외모비하가 맞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핵펭귄은 행실에 대한 비판이 섞여있지만 바로 뒤의 펭귄이라는 것 때문에 그렇게 봐줄 수가 없는 거죠. 핵대중이라면 인정할 수 있습니다. 북핵과 관련된 풍자표현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죠. [본문으로]
  2. 중간의 어떤 바보는 그런 기본적인 윤리조차 모를 정도로 수준이 낮지만 말입니다. 캡쳐본에서도 구구절절 설명했으니 모르겠으면 걍 그거 보시면 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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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그들이 보수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꼴통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한국에선 꼴통이 거진 보수, 극우진영에 몰려있을 뿐이죠. 그러한 꼴통들이 그곳에 몰려있는 이유는 다름아닌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정신세계 때문이고요.



그들이 보여주는 특유의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


1.자신이 했던 말을 자신이 반박한다.

2.기본적으로 인권, 민주주의 등의 사상에 대해 빈약한 이해도를 가진다.

3.기계적 중립만을 고수하는 태도를 보인다.

4.근본이 아닌 현상에 대한 이해만 한다.

5.자신이 경험한 것 이외에 대해 매우 무지할 뿐더러,

5-1.그 밖의 세상이나 지식을 배우거나 경청하지 못한다.

6.자신과 같은 진영에 벗어난 타인에게 공감이나 이해, 감정이입하지 못한다.

7.기본적인 도덕성이 떨어진다.

8.자신에 대한 광범위한 집단적 비판에 대해 어떠한 특정 배후세력을 의심한다.




이명박, 박근혜, 윤X인, 심지어 방송사인 MBC나 KBS, 조선일보 등에서도 그러한 모습을 보입니다. 흔히들 말하는 유체이탈 화법, 혹은 XX의 적은 XX (X적X)는 그러한 특성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죠. 보수쪽에서는 흔히 진보에게 이중성이라는 프레임을 부여하고 그들의 이중성을 비판하곤 하지만, 사실 진짜 이중성의 극에 있는 이들은 바로 보수 본인들입니다.


박적박, 윤적윤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일관된 논리나 태도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한 이유는 위의 특성들이 각각 결합하여 나타난 것인데, 그들은 사상과 이념에 대해 매우 빈약하고 낮은 수준의 이해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일관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즉, 그들이 일관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을 만큼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이고,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이 멍청하기 때문이라는 거죠.[각주:1]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사건마다 일관적이지 못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고, 상황이 달라지면 역시 태도 또한 돌변하기 마련입니다.


대표적으로 아래와 같은 사례와 비판이 있습니다.


2015/07/14 - [취미/이야기] - 그들은 '이중성' 안보, 국방.

2014/08/26 - [취미/이야기] - 숭고한 보수의 '진정성'

2014/05/13 - [취미/이야기] - 나는 이성적이다. 쿨뽕.

2015/06/11 - [취미/이야기] - 쥐명박과 노알라가 다른 이유.

2015/04/25 - [취미/이야기] - 성완종 게이트, 여당이 특검하자고 하는 이유.

2014/12/09 - [취미/이야기] - 복지 없는 증세.




기계적인 중립은 그들의 비인간성을 부각시키며 또한 그들의 무지함을 들어내기도 합니다. 그러한 기계적 중립은 역시 2번의 지적 빈약함과 4번의 현상만을 이해하는 떨어지는 이해도가 결합되어 나타나는 모습인데, 예컨데 시위대와 경찰간의 마찰에 있어서 시위대도 잘못했다던가, 새누리당이 이런 말을 하기도 했죠. 네이버, 다음에 야당에 편향적인 기사가 더 많다고. 이게 얼마나 웃긴 말이냐면, 새누리당이 12개의 똥을 싸고 새정연이 2개의 똥을 싸면 언론은 없는 새정연의 10개의 똥을 만들어서라도 보도해야 하기라도 하냐는 겁니다.


기실 시위대와 경찰간의 마찰은 근본적인 이유를 따지고, 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그러한 말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꽤 길 설명이 될 것이기에 다른 글을 링크로 하여 대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글을 클릭하세요.

[펌] 이번 시위가 잘못되었다는 애들 논리로 구타하는 방법

(펌) 우리에겐 신선한 충격인 96년 프랑스 화물노조 파업

두고두고 회자되는 전설의 프랑스 소방관들의 시위

프랑스의 흔한 시위 장면.JPG


그들은 어째서 시위가 발생했는지라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어떠한 파악이나 이해 따위는 없이, 단지 시위와 그에 따른 충돌, 갈등이라는 현상만을 보고 판단을 하는 겁니다. 물론 사상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그 자체로 설득력 있는 비판이 있을 수가 없죠. 각각을 완전히 동일한 객체와 객체로 보고 서로 다쳤으니 서로가 잘못했다는 수준에 그칩니다.


누가 더 힘이 세고 누가 더 오래 괴롭혔으며, 누구에게 원인이 되는 책임이 있는지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그냥 둘이 싸웠으니 둘이 화해하고 끝내자는 꼴통 선생님과 같은 모습이죠. 명백히 발생하고 있는 더 센 아이의 지속적인 학교폭력이라는 인식이 전혀 없는, 애들끼리 있을 수 있는 흔한 다툼 정도로만 보는 것과 똑같은 겁니다.


당연하지만 그러한 것은 절대 해결책이 되지 않으며, 심지어 비판으로서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한채 그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이들에 의해 사회적 논란과 구조적 혼란만을 지속시킬 뿐이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러한 기계적 중립식 비판은 되려 문제를 키우고, 때때로 문제를 만들기까지 한다는 겁니다. 그들이 흔히 말하는 사회적 혼란은 잘못되었다라는 것을 본인 스스로 발생시키는 꼴이고, 이는 앞서 지적한 일관적이지 못한 이중성을 반복하는 것이죠. 물론 그들이 그러한 언행을 보이는 것은 본인 스스로 이중적이지 않다는 -그리고 그러한 낮은 수준의 판단을 내리게끔 만드는- 뒤떨어지는 지적능력에서 기인합니다.


2015/06/02 - [취미/이야기] - 사스와 메르스, 정부에 어떤 차이가 있길래?

2013/10/19 - [취미/이야기] - 한국식 문제 해결법


위 링크의 첫번째 글에서 원인이 아닌 현상에 대한 비판만을 하는 그들의 적나라한 모습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한 바 있습니다.


한 때 한국식 문제 해결법의 글에서처럼 그들이 원인이 아닌 현상만을 해결하려고 하는 행태에 대해 그들이 그러한 비용을 지출하길 싫어하며, 일하는 것을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니, 현재에 와서는 그냥 지적으로 모자라기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바뀌려 하지 않나 하고 생각합니다.


하여간, 그러한 이유로 인해 한국에서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면 적어도 보수정권에서 만큼은 분명하게 근본적인 대책이라는 것은 나오는 것이 매우 드뭅니다. 적어도 본 기억은 없군요. 그들의 지적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근본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그저 눈에 보이기만 하는 현상에 대한 비판과 해결책만이 제시될 뿐이죠.


시위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해야 시위가 발생하지 않을까라는 사고를 시작으로 그들이 주장하는 것과, 그러한 주장을 통한 문제에 대한 인식과 문제의 시작점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러한 인식을 기반으로한 합리적인 해결방안이 제시되지 않고, 시위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해야 저 시위를 막을 수 있을까라는 쪽으로 사고가 시작됩니다. 그러한 사고에 따라 더 많은 경찰인력과 더 두터운 차벽, 더 강경한 시위진압으로 귀결이 나는 것이죠.




그들이 흔히 말하곤 합니다. 나 때는, 노력을 하면, 너희들이 게을러서 등등.. 실제로 마리 앙투아네트가 하진 않았지만 그녀가 했다고 알려진 유명한 말이 있죠.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남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는 소시오패스라고 합니다.


물론 수 백만명 이상의 보수가 모두 소시오패스일리는 없습니다만, 그들이 그러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그들은 자신이 겪어본 것만을 이해하고, 그 이외의 것은 이해할 수 없는 1차원적 지적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생활이나 인식을 시뮬레이션 할 수 없고 그렇기에 공감이나 이해를 할 수 없죠. 흔히 꼰대라고 하는 꼴통들이 그러한 문제를 보편적으로 보여주곤 하는데, 나때는 그렇게 했다고.. 나는 그렇게 했다고 타인도 그렇게 해야 한다거나 그렇게 해야 할 수 있다고 말하곤 하죠.


쉽게 말해서 자신의 경험만이 진리이고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고려사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작용한다고 해도 큰 의미는 없습니다. 그들이 진리, 혹은 옳다고 생각하는 매체나 이야기, 사례로 바뀔 뿐이지 그들의 사고방식 자체는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컨데 그러한 모습은 아래의 글로서 설명을 대체하겠습니다.


2014/12/23 - [취미/이야기] - 선동 당한 보수는 이런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 특정 매체나 일부 사례만이 옳고 그것을 벗어난 것에 대해서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그것들 외에 들어오는 이야기나 지식은 받아들일 수 없고, 오직 자신이 받아들이는 매체로서 기반을 둔 것들로만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역설적이게도 자기 스스로 판단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어떤 개인이 조선일보, 동아일보 및 종편채널에서 하는 말만을 받아들인다면 곧 그들이 하는 말을 똑같이 따라하고 그들이 주장하는 것만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 됩니다. 반대로 다른 모든 매체는 거부하며 한겨레만 읽는다면 한겨레에서 하는 말만이 곧 진리로서 기능하는 것과 같다는 걸 말하는 거죠.


그러한 사고관을 가진 사람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되면 매우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오직 자신이 아는 것만을 맹신하고 있으며, 정보나 지식이 들어오는 방향이 오직 한 곳이라면 그 곳에서 나오는 주장만이 그 사람에게 기능할 것이고, 그러한 경위로 인해 실제로는 어떻게 돌아가든 옳지 못한 판단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입니다.


예컨데 조중동만을 보는 사람이 복지정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실제로 국민들이 얼마나 복지에 취약하며 얼마나 복지가 필요하고 얼마나 힘들고 위험하게 사는지와는 별개로 복지정책의 축소 및 소극적 개편으로 방향이 잡힐 가능성이 높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반면 북한에 호의적인 매체를 보는 사람이 국방정책을 짜는 사람인데 북한이 군사도발을 했을 때 되려 북한에 소극적이고 온건한 대응을 하며 저자세로 나간다면 국방과 안보에 매우 큰 위협이 되듯이요. [각주:2]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에 대한 비판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달게 받으라는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러한 교훈을 주는 사례는 역사에 차고 넘치고요. 그렇지만 보수에 몰려있는 수 많은 꼴통들은 그러한 타인의 사례에 대해 매우 무감각하고 이해나 공감할 수 없습니다. 저 위 링크의 어느 장년이 젊은이들에게 하는 일갈은 실제 삶을 통해 겪고 있는 젊은이라면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틀려먹었는지 바로 알 수 있는 헛소리임을 알 수 있을테니까요.


그리고 그런 이들에겐 실제 젊은이들이 자신들이 얼마나 어렵고, 과거와는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이야기해줘도 전혀 받아들이질 않는다는 것도 알 겁니다. 모른다면 직접 경험해보세요. 저런 주장 하는 사람 잡고 자신들의 현실을 이야기해보십시오. 절대 받아들이지 않고 무조건 자신들이 옳다고 우길테니까.




우리가 언론을 보다보면 알 수 있듯이, 그들은 기본적으로 도덕성이 매우 떨어집니다. 사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의 영토에선 썩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새누리당의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막말, 부정부패, 성추문 등의 범죄는 우리에게 있어서 너무 익숙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최근에도 어김없이 터져나오는 김무성의 막말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죠. 입만 열면 망언에 막말이니까. 저 위에서도 나왔듯이 새누리당이 야당에 편향적인 기사가 많다고 하는 데, 사실 그럴 수 밖에 없죠. (사실 편향은 절대 아니지만요.) 새누리당이 더 많은 막말과 사건, 범죄를 저지르고 야당은 그보다 더 적은 문제를 일으키니 정상적이라면 새누리당의 잘못에 대한 보도가 더 많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


최근에도 김무성을 비롯한 보수인사, 보수언론, 그리고 보수적인 국민들이 말하고 생각하듯이, 법을 어긴 시위대 쪽도 잘못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들은 별 잘못이 없죠. 객관적이고 상식적인 판단이 가능한 정상인이라면 경찰측이 더 큰 잘못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으니까요. 보수쪽이 그렇게 법치를 좋아한다면 왜 본인들은 누구보다 많은 범죄를 저지르고 막말을 일삼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사실은 법치를 농단하기 좋아하고 법을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남용하길 좋아하며, 무엇보다 도덕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도덕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그것을 지켜야하고 법이 얼마나 중요하며 어째서 그것을 지켜야하는 지에 대한 사상적 깊이가 떨어지며 그와 별 거 없는 떨어지는 저질 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그들이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이지 않고, 국가에 도움이 될 수 없음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며, 일관적이지도 않은 이중성을 보유한 노골적인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누리당의 전체를 넓게 보았을 때, 높고 대단한 위치에 있을 수록 더 많은 막말과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들은 부패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죠. 한국의 부패 형태는 엘리트 카르텔의 형태이고, 서로가 서로를 밀어주고 뒤를 봐주는 형태이기 때문에 그 구조 속에서 성공하려면 더 많은 부정부패와 범죄에 연루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내 뒤를 봐주는 형님을 위해 성의, 선물을 주기 위해 무언가 마련해드려야 하는 데 그게 결코 합법적이거나 도덕적일 수는 없으니까요. 절대 그냥 선물이 아니고 남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언론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것들이니까.


그들이 얼마나 국가와 사회에 있어서 해롭고 비도덕적인지는 아래의 글로.


2015/04/26 - [취미/이야기] - 해로운 범죄를 저지르는 양복 입은 침팬지

2014/09/17 - [취미/ㄴ일베 비판] - 배부르면 폭식투쟁이냐?

2014/09/13 - [취미/ㄴ일베 비판] - 반박이 아닌 조롱. 일베식 투쟁 : 광화문 집회에 대한 단상.

2015/11/08 - [취미/이야기] - 몽키하우스와 일제 위안부에 대한 단상.

2015/09/22 - [취미/이야기] - 경제에 대한 태도로 보는 진짜 보수.

2015/07/21 - [취미/이야기] - 더 이상 정부와 국정원에 신뢰할 수 없다.

2015/09/12 - [취미/이야기] - 보수와 군의 안보에 대한 시각.

2015/05/29 - [취미/이야기] - 국정원 경판임용 조사가 어째서 불법이냐고?

2015/05/29 - [취미/이야기] - 국정원의 대학내 어용 프락치 선동조직

2015/04/19 - [취미/이야기] - 법치를 부수는 정권

2015/04/11 - [취미/이야기] - 대한민국의 수많은 '반국가집단'




앞서 충분히 이야기 했듯이 그들은 특별히 더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이지도 않고 이성적이지 못하며, 오히려 반대로 남들보다 더 비합리적이고 덜 논리적이며 비이성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주제에 도덕적이지도 못하기 때문에 범죄를 반복하고, 그러한 범죄와 부도덕함을 비판하곤 하는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의 사람들을 누군가에게 선동되거나 지령을 받아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하곤 하죠.


이것은 그들이 줄곧 주장하곤 하는 배후세력에 대한 겁니다.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인정하려 들지 않고, 언제나 남탓으로 일관하곤 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그것을 지적해오면 배후세력 등을 주장하며 자신의 문제점에 대해 회피합니다.


물론 이것은 그들이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정치공학적 목적도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것이, 어떠한 증명할 수 없는 음모론적 배후세력을 주장하며 자신과 자신 세력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을 그러한 배후세력에 선동이 된 우민, 혹은 지령을 받고 그러한 비판이나 시위를 하는 어용세력으로 매도하기 위함이죠.


물론 어디까지나 자기들 세력을 지지해주는 이들에게나 통할 법한 이야기입니다. 꼴통을 지지하는 건 같은 꼴통들이니까 그들에겐 아주 잘 통하거든요. 이성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이들. 누구 말마따라 전근대성 쩔어주는 고대인인 셈이죠.


이런 식의 주장이 어디가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는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굳이 구구절절하게 지적하진 않겠습니다.


2015/06/13 - [취미/이야기] - 보수들의 집단정신병, 박원순 죽이기

2015/04/05 - [취미/이야기] - 세월호 사건과 진상규명을 뭉게려는 자에 대한 통렬한 비판

2014/08/26 - [취미/이야기] - 숭고한 보수의 '진정성'


이것 이외에도 포털에서 배후세력을 주장하는 보수인사, 보수언론의 기사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뭐.. 앞으로도 그러겠지만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배후세력이라는 가상의 적을 설정해놓고 싸우는 것은 나치 시절부터 해왔던 자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더러운 정치공작의 일환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여기까지 서술하면서 나올 수 있는 결론은, 꼴통들은 주로 보수에 대규모로 존재하며, 새누리당과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들은 사상적으로, 이념적으로 빈약한 이해도를 가지고 있으며 지적으로 떨어지며 그러한 이유로 인해 올바른 판단력을 갖추지 못했고,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며, 기본적으로 도덕성이 떨어지거나 그러한 도덕성이 떨어지는 범죄자에 호의적인 공범들이자 국가와 사회를 병들고 파괴하는 암적인 존재이다라는 것입니다.


뭐,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아니라고 생각하십시오. 그거야 자기 마음이니까.


  1. 이러한 멍청함은 단지 학교 공부를 잘하니 못하니와는 무관한 사상과 이념의 차원입니다. 수능 올 1등급을 맞았다고 해서 공산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자유주의의 역사적 발달사나 그러한 사상과 이념을 깔끔하게 설명해내지 못한 것과 같은 것이죠. [본문으로]
  2. 생각을 해보세요, 우리가 잘못한 것이 있기에 북한이 도발을 한 것이다, 이 기회에 북한과 대화하는 쪽으로 외교노선이 짜이면 좋겠다. 라고 말한다면 속이 뒤집어지지 않겠습니까? 정작 우리는 사람이 죽고 재산을 잃게 되었는데 말이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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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근혜 정권 하에서 경제인들이 아주 살판났죠. 대놓고 경제인은 비리를 저질러도 사면시켜줘야 한다는 개소리가 나도는 걸 보면 말입니다. 실제로 이명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범죄를 저지른 기업인, 경제인들에 대한 처벌은 정말 약해졌죠. 수 억원어치 막노동도 나름 대표적인 사건이고.


심지어 그걸 지지하거나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물론 백이면 백 새누리당 지지자죠. 그들은 나라 경제를 위해서 경제인에 대한 사면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건 그 자체로 틀린 말입니다. 오히려 나라 경제를 파탄시키는 짓이거든요.



이유는 이런 겁니다. 아주 간단히 설명하자면, 그 새끼들이 세금 안 내고 분식회계에 순환출자 꼼수, 정경유착 같은 비리, 부정부패 저지르는 건 다 지들 배때지에 쳐넣기 위해서지 너님들이나 나라꼴 잘 되라고 하는 짓이 아니라는 겁니다. 즉, 그 돈 벌어서 부정부패한 자기 뱃 속으로 들어가지 세금을 더 내는 것도 아니고, 그 돈이 일반 서민들에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그런 기업인들 처벌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보수님들 한테도 마찬가지고요.


오히려 그러한 부정부패와 비리는 나라 경제를 파탄내고 국민들의 재산에 손해를 입히는 악질 범죄입니다. 예컨데 어떤 기업이 자신들의 실적을 조작을 한다고 칩니다. 그 기업에 대한 주식을 누가사죠? 다른 기업, 그리고 대부분의 일반인들이죠. 그런 사람들이 어디 한 두푼 투자하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들에겐 꽤 큰 돈을 투자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 기업의 사업설명을 듣고 자기들이 공개한 실적을 보니까 이게 또 돈이 될 거 같아요. 그래서 더 많은 돈을 투자했죠. 그런데 이게 웬 걸? 몇 달 지나니까 이 기업에서 실적에 대한 조작이 이루어졌고 각종 부정부패가 이루어 졌으며 그러한 이유로 그 동안 밝혀왔던 성장세는 거품에 사기, 앞으로의 성장세는 커녕 타격을 받고 주식은 쭉 하락하고 있네요. 자, 그런 내 주식은 뭐가 되는 걸까요? 똥이나 닦는 종이 쪼가리 되는 거죠. 한강 수온 재러 가야 하는 겁니다.


고작 개인에게 일어나는 일이 이런 겁니다. 개인의 재산을 날려먹는 거. 그런데 그 개인이 엄청나게 많다는 거. 그리고 그런 기업이 한 둘도 아니라는 거. 또 그런 기업인이 다시 경영하면서 똑같은 짓을 반복한다는 것도.


이러한 부정부패와 비리는 국가의 경제와 경제구조에도 영향을 주는 데, 그러한 사기와 부정부패가 반복되고 고쳐지지 않을 수록 국가의 경제구조는 당연히 비틀리고 왜곡되겠죠. 그러한 구조 속에서 힘 없는 다수는 더 많은 피해와 손해를 보게 될 것이고, 그러한 구조 속에서 힘 있는 소수는 더 많은 돈을 벌 게 됩니다. 똑같은 비리 반복해도 별 처벌 없으며 다시 높은 자리 꿰어차 돈은 계속 벌 수 있고 그러다보면 공권력 눈치 보다가 다시 똑같은 짓 반복하면 되거든요.


이 나라에서 수 천억 부정부패 해서 내는 벌금 얼마입니까. 기껏해야 수 억원이고 적으면 수 천만원, 수 백만원 단위잖아요. 그러니 그런 범죄를 안 저지르는 게 병신이지.


국가 경제구조가 왜곡된다는 건 그만큼 국가 경제에 장단기적인 해를 지속적으로 끼친다는 겁니다. 그런 조건 속에서 성장은 지속적일 수 없으며 완만할 수 없습니다. 불만은 더욱 커지겠고요.


당장 내 돈을 저 개새끼들 때문에 날려먹었는 데 누굴 믿고 어디에 투자하겠습니까? 투자 안 하죠. A 기업에 투자했던 옆집 김씨 아저씨도 이번 달 터진 조세포탈 분식회계 사건 때문에 주식 폭락하고 한강 물 올려준 물고기 밥이 되버렸는 데 그걸 꼴 보면 뭐 주식이니 뭐니 하고 싶겠습니까?


이런 문제는 비단 주식만이 아니고 말이죠.



다시 말하건데, 그 놈들이 부정부패, 비리 저지르는 이유는 국민들 잘 되라고, 나라 잘 되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나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내 새끼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하는 짓입니다. 이게 국가에 도움이 되는 건 전혀 없어요. 전체 GDP가 높으면 뭐합니까. 내 손에 쥐어지는 돈도 아닌데.



안보라는 건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보장하는 겁니다. 부정부패와 비리를 저지르며 남의 돈 등쳐먹는 건 단순한 경제사범입니다. 범죄죠. 그에 대한 처벌이 있고 더 나아가 그러한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오히려 이 나라는 그런 범죄자들을 사면시켜주고 처벌도 제대로 안 합니다.


즉, 안보를 파괴하고 있다는 소립니다. 그 기업인들이 사면 받고 나면 정신차려서 제대로 경영할까요? 뭐 별 큰 벌도 안 받았는 데 정신을 차리긴 뭘 차립니까. 똑같은 짓 안 걸리게 또 하는 거지. 그런 악질 범죄자들을 다시 사회에 풀어주는 거야말로 진짜 안보에 대한 위협이고 파괴입니다. 네, 이 나라 보수라는 작자들이 그러고 있어요.


국가 경제구조를 왜곡하고 파괴하고 있으며, 국민들 재산에 대한 안전을 보장하고 있지도 못하고, 오히려 그러한 위험성을 조장하고 있죠.


이거 이야기만 들으면 딱 '사보타주'죠. 뭐가 간첩입니까. 이런 게 간첩이지. 나라경제 나서서 사보타주 해주는 새끼들. 단순히 경제인들의 범죄라면 그건 그냥 부정부패가 쩔어주는 범죄지만, 거기에 정치권이 나서서 사면해주자 하는 거면 이건 단순한 경제범죄를 떠난 사보타주입니다. 국가 경제에 대한 사보타주.



보수라는 양반들이 좋아하는 그런 거 있잖아요. 시장자유주의. 물론 이 나라 경제인, 경영자라는 놈들은 규제에 대해서만 시장자유주의 이 소리하고 외국계 기업과 같은 경쟁자들에겐 규제를 해야 하고 국내 산업 보호해야 한다고 빽빽 거리지만, 원래 보수는 이러한 시장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이들입니다.


정부의 시장에 대해 간섭하지 말고 '경쟁'을 통한 시장의 자정작용을 기대해야 한다고. 문제가 바로 그겁니다. 경쟁이라는 것은 '올바른 경쟁'일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며, 그러한 경쟁에 따라 대기업이라도 망하게 된다면 망하게 내버려둬야 하고, 그러한 경쟁에서 '반칙'을 쓰는 놈들에 대해서는 심판의 입장에서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이 나라는 어떻죠? 올바른 경쟁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자기 좋을 때만 시장자유주의를 주장하며, 대기업에 대해서는 각종 특혜가 주어지고 있고 외국계 기업과의 경쟁에 있어서는 철저한 자국 기업에 대한 혜택을 몰아주고 있죠.



시장 자유주의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선 그러한 경제사범들에 대한 처벌이 아주 엄격해야 합니다. 시장이 제대로 굴러가려면 그 환경에 제대로 되어야 하니까요. 정부가 시장을 간섭하고 건드리면 시장이 망가진다고 하는 놈들이, 직접 시장 전체를 무너뜨리고 '오염'시키는 짓을 하는 건 놔둬야 할까요? 경쟁이라는 말이 애매해서 그렇지,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경쟁이 아니라 깡패짓이에요.


대부분의 일반인들도 그러한 범죄가 없을 때 더욱 공정하고 안전한 투자가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그런게 바로 진짜 시장자유주의죠. 정부가 시장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은 그 시장에서 발생하는 범죄 또한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러한 범죄를 막고 범죄자를 잡아서 처벌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그게 시장자유주의의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올바른 시장에서만 올바른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장에선 그따위 부정부패, 비리와 같은 사기질로 내 돈을 날려먹을 걱정은 없죠. 내가 능력이 없어서 돈을 잃을지언정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보수라고 한다면, 또한 시장자유주의를 지지한다면 이명박근혜 정권 하에서 벌어지는 경제인 사면에 대해 눈깔 뒤집고 반대해야 맞는 겁니다. 특히 주식 하는 사람들은 더더욱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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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병 전차 ‘56도 찜통’… 지휘관 장갑차는 ‘냉방장치’

[단독] 방사청, '뚫리는 방탄복' 업체와 또 계약…왜?


다른 게 아니고, 그딴 거 별로 중요한 거 아니다. 가 핵심입니다. 전부터 꾸준히 주장했지만, 진짜 안보라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보장하는 겁니다. 하지만 정작 보수정권이, 그것도 보수라서 안보는 잘 한다고 하고 실제로 그딴 걸 이유로 찍어주는 그 보수정권, 보수당과 군이 하는 걸 보세요.

위 사례는 그 단편적인 예시에 불과합니다. 일반 병사들이야 고생하든 어찌돼든 상관없다는 거죠. 2차대전때나 쓰던 수통을 아직도 쓰고 총알 조차 못 막는 방탄복을 돈 주고 사며 얼마 안 되는 비품을 수 십 만원씩 주고 사는 짓이나 하는 걸 보면 북한과 전쟁나면 진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다른 데에 있는 게 아닌 거 같습니다.

자기들이 이렇게 썩어 문드러져서 그 실속이 휑하니 그 문제점도 자기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거죠. 겉만 번드르르 하면 뭐 합니까. 당장 흑표만 봐도 파워팩 문제 때문에 그렇게 홍보하고 세계 몇 위 전차라고 자위했지만 결국 그 성능 못 뽑아냈죠. 방산비리 때문에요.

그런 주제에 장성 출신 의원이 하는 말 좀 봅시다. 수통이 100년 됐든 무슨 상관이냐고. 그렇죠. 북한도 1세대 전차 굴리고 있고 데그챠레프 아직도 쓰고 있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잘 굴러가는 싼 중고품 들여와서 쓰면 되겠네요. 아직 창고에 M1 소총 많은 데 말입니다. 물론 수통이 아직도 잘 기능하고 있고 관리와 정비가 잘 되고 있으면 괜찮은 것도 일부분 맞는 말은 사실이에요. 실제로 구멍나서 물 줄줄 새거나 부서지면 새로 바꿔주긴 하죠. 하지만 문제는 그런 관리, 정비가 잘 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소독한답시고 뜨거운 물 부어주는 게 다라죠?

그리고 또 하나, 그런 군수품의 예시로서 수통을 들긴 했지만, 수통이 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는 겁니다. 보수당 보수정권, 그리고 군과 그 군 출신마저도 저따위 인식이니 어디 안보 믿고 맡길 수 있겠습니까? 전투력이라는 건 더 좋은 장비를 쓰는 쪽이 유리합니다. 전투력이 적의 레이더를 고장내지도 않고 적의 전자 무한궤도를 망가뜨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포탄이나 총알을 빗나가게 하는 게 아닙니다. 그랬으면 반세기도 전의 일본제국은 전세계를 지배해야 했고 지금의 북한은 진짜로 미국과 다이다이 뜰 수 있어야 하거든요.

전차의 예시를 보세요. 사병들이야 고생을 하든 말든 높으신 지휘관은 쾌적한 환경에 있어야 한다는 거죠. 중동에서도 저 문제 때문에 포 쏘다 더워서 탈진한 전차병도 있죠. 전차가 퍼지기 전에 전차병이 퍼진다는 소립니다. 이 나라는 여름만 되면 중동 못지 않은 더위와 심지어 습기 때문에 더 열지옥이 되는 데 저런 장비조차 없다는 건..

게다가 이게 어디 전차와 같은 것 뿐이겠습니까? 미군 같은 경우 삽질 할 때 삽 안 쓰고 포크레인 같은 중장비 부르는 거 이상한 일이나 드문 일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돈 아끼자고 사람들 굴리죠.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노동력을 들이 붓자는 발상입니다. 즉, 사람을 글자 그대로 자원으로 쓰는 거죠.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허리 나가고 하는 일이 발생하는 거고요. 

돈 조금 덜 쓰자는 병신같은 발상이 진짜 미개한 구시대적인 발상이고 비효율적인 겁니다. 물론 줄일 수 있는 곳에서 줄이면 좋죠. 하지만 그랬으면 병신같은 발상이고 미개하다는 말도 안 했습니다. 근데 왜 그런 말을 했느냐. 그 부분들이 굳이 줄일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주제에 정작 골프나 치는 놈들의 돈낭비만 줄여도 안보에 아주 큰 도움이 되며 줄일 부분 안 끼는 비용 커버해주지 못할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중략)

백군기 의원은 "미국은 예비군 훈련시 계급별로 8만2천∼22만원의 보상비를, 이스라엘은 하루에 8만∼10만원을 지급한다"며 "우리도 예비군 훈련 보상비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방부는 내년도 국방예산 요구안에서 예비군 훈련 보상비를 1만5천원으로 증액할 것을 요구했지만 기획재정부가 이를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재부의 태도는 결국 청년들의 주머니를 털어 국가 재정을 메우겠다는 것"이라며 "청년실업으로 신음하는 청년들에게 더이상 '애국페이'를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촉구했다.

현재 한국군의 대우가 어떻습니까? 강제로 징병되어 군대에 감금된 상태로 인권이 유린되어 정당한 보수도 뭣도 못 받고 노동이 착취당하고 있는 상태죠.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노예와 같은 상태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비유가 아니에요. 이스라엘을 보세요. 한국보다 위험한 실제로 전쟁을 하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환경에 있는 국가입니다. 그러면서 허리띠 졸라매야 한다느니, 조금 희생해야 한다느니 하는 소리 하던가요? 한국군처럼? 아니죠. 오히려 수 백 만원의 월급을 주고 예비군마저도 10만원 상당의 보상비를 지급합니다. 심지어 이스라엘은 GDP 같은 경제규모도 한국보다 작아요. 

그런데 한국은 어떻죠? 세계에서 13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국가이자 이스라엘처럼 실질적인 전쟁이 나는 것도 아닙니다. 말이 휴전이지 진짜로 포탄이 떨어지고 국군이 북한 영토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북한군이 남한 영토를 침공하는 것도 아니며, 그런 식으로 매일 전사자가 발생하는 것도 아닙니다. 간간히 발생하는 국지도발만 있을 뿐이고 전쟁 위기가 진짜로 고조되는 상황에선 오히려 북한이 대화를 하자고 접촉해오죠. 

그런 주제에 현역 장병들 월급 최저시급도 못 주겠다고 합니다. 그딴 게 합헌나오고 말이죠. 왜나하면 인권의 보장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노예나 집지키는 개 취급이니까. 사실, 우리나라 군인들 월급 제대로 챙겨줄 수 있어요. 최저임금으로 120만원이라고 해도 한 해 7500억이죠. 100만원이면 6300억입니다. 4대강이 얼마였죠? 22억이었죠. 120만원씩 주면 29년, 약 30년이고, 100만원씩이면 34년, 약 35년간 지급할 수 있습니다. 

너무 많은 돈이라고요? 글쎄요. 누군가에겐 절대 못 줄 돈이지만 누군가에겐 지급할 수 있는 돈입니다. 당장 아래와 같은 것을 줄이고 방산비리와 같은 문제를 예방한다면 더 많은 돈을 아낄 수 있겠죠. 아래의 예산 중 골프장, 콘도회원권으로 사용된 1500억의 절반을 줄이고 골프장 몇개 줄이면서 관리비를 절반.. 아니, 그냥 100억원만 줄인다고 해도 850억인데, 이걸 저 위에서 제시한 금액에서 빼면 좀 더 지급하기 쉬워지겠죠? 100만원씩 지금이면 약 5500억이면 되니까. 그러면 사대강 22조원으로 40년간 지급할 수 있는 돈입니다. 청년 인구의 감소를 통한 현역병이 줄어들 것을 생각하면 예산은 더 줄어들겠군요.

2014/06/27 - [취미/이야기] - 병사의 주적은 간부.


(중략)


08년부터 5년간 군이 책정한 복지 예산이 1600억원인데, 그 중 1529억이 간부 몫으로 돌아갔죠. 총 예산의 95.7%. 용도별로 간부용 골프장, 휴양시설, 콘도회원권에 1500억을 썻는데, 그 중에서 사병 몫은 복지회관 18억, 복지매장 4억, 미니 축구장 조성에 45억이죠. 


(중략)


골프장 관리비가 연간 350억인데, 5년이면 1650억이죠. 그리고 그 골프장 짓는 돈까지 합치면 거의 3000억인데, GOP등 긴급하게 방탄복이 필요한 부대에 지급할 방탄복을 사기 위해 필요한 예산이 2000~3000억 정도라고 합니다. 골프장 짓고 관리하는 돈만 빼도 당장 살 수 있는 돈이죠. 물론 국방예산과 군인복지에 쓰이는 예산은 다르지만, 이건 너무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이 문제는 현역병이 아니라 예비군에 대한 겁니다. 하지만 왜 현역병의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했냐면, 일단 그것 또한 알아두면 좋을 것이고 글 주제와도 부합하면서, 예비군에 대한 설명에 대한 전제가 되면 더더욱 좋기 때문이죠. 예비군은 민간인입니다. 그런데 정부 제도로서 군과 연관이 되면 그들을 어떻게 다루는 지 보세요. 국가의 필요에 따라 강제로 불렀지만 일부 부담하는 걸 빼면 나머지는 니 돈으로 부담하라는 겁니다. 앞서 이야기한 한국의 상황과 경제규모를 생각해보면 정말 어이없는 대우죠.


단언컨데, 정부는 이 돈 다 대줄 수 있습니다. 돈이 없어? 그거 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병신같은 삽질 사업벌이면서 돈낭비해서 그런 겁니다. 자기들이 세금낭비를 해놓고 돈이 없다고 하는 건 뻔뻔한 거죠. 기만하는 거고요. 4대강에 자원외교 같은 뻘짓만 안 했어도 서민들 주머니 터는 창조약탈경제는 없었겠죠. 그런 주제에 대기업 재벌은 놔두고 서민들만 턴다는 게 더 빡칠 뿐이고요.


이스라엘은 당장 사람이 죽어가는 전쟁 중인 국가입니다. 한국보다 더 위험한 곳이에요. 그렇지만 월급도 잘 주고 예비군도 보상금은 잘 줍니다. 위험하기 때문에 더 잘 줘야죠. 위험하면 그만큼 돈을 더 많이 줘야할 이유는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될 겁니다. 하지만 한국은? 실제로 전쟁의 위험은 낮다고 해도 국방부, 보수정권 스스로 전쟁과 안보를 팔면서 위기감을 조장하는 주제에 병사들, 예비군은 사람 취급을 안 하죠. 그러니 돈도 제대로 안 주는 거고요. 장교, 장성들은 스스로 기밀 팔아가면서 돈 벌고 방산비리 유착을 통해 부정한 돈 쌓아대면서 병사들 줄 돈은 아깝다는 겁니다. 안보에 대해 믿음직스럽죠?




정권, 국방부, 기업인 비판하며 욕하는 사람들을 종북, 빨갱이라고 욕하는 사람들 중에 이런 일에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거 본 적 없습니다. 진짜 빨갱이 종북인데 말입니다. 국가 안보에 실질적인 위협을 가하는 진짜 위험분자들이고요. 안보라는 게 뭡니까?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보장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 데 정작 법치를 무너뜨리면서 증거조작 하면서 세월호 참가자를 구속하려 들고 국가 정보부서가 나서서 간첩조작을 하면서 자국민을 공격하질 않나, 총 맞으면 뚫리는 방탄복을 거액을 주고 구입하질 않나.

심지어 장성부터 하급 장교들까지도 군 기밀을 팔아치우고 유착을 하며 성능 떨어지는 위험한 물건을 구입하는 데 이런 걸 말이 비리니 유착이니 부정부패니 하지만 사실상 사보타주라고 봐야죠. 전쟁이 터졌는 데 적 함선, 적 잠수함을 포착할 수 있다는 소나, 레이더가 정작 포착을 못하고 아군 함선이 침몰하고 격파되면 그게 적이 강해서 그런 겁니까? 아니죠. 돈 빼먹으려는 제작사나 장성 같은 놈들 때문에 성능 떨어지고 신뢰할 수 없는 물건을 납품하고 산 아군의 문제죠.

저 당시 기밀 정보 유출 때문에 한미연합사령관이 빡쳤다고 하죠. 그게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자국군의 기밀을 간첩도 아니고 간부들 스스로 유출시키는 게 어디 정상적인 겁니까? 스스로 안보를 위협하고 북한에 도움이 되는 종북, 빨갱이, 간첩질을 하는 놈들이 군에 암약하고 있다는 소리죠. 그 일베충이 그 중 하나라는 소리고요. 애국보수? 한국이 아닌 북한을 기준으로 하는 애국보수인가 보죠?

그런 주제에 앵간한 일 아니면 제식구 챙긴다고 봐주는 일 많죠. 최근 가장 임팩트 있었던 건 역시 군 기밀을 팔아치운 놈을 보고 생계형 범죄라면서 봐준 사건. 그 외에도 많죠. 솜방망이 처벌이나 처벌 후 복귀하거나 비리에 부정부패 쩌는 놈이 처벌을 받거나 퇴역을 해도 군 인맥을 통해 강사니 뭐니 하는 쪽으로 먹고 사는 거에 문제 없으니까요.



니예 니예 그렇지요. 여자는 사람도 아니고 군대 안 간 남자들도 사람이 아니죠. 물론 박근혜와 대부분의 의원님들도 사람이 아닙니다. 아, 이건 맞는 말인 거 같네요. 이 양반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면 여간 사람 새끼처럼은 안 보이던데 다 그런 이유였나 봅니다.



국가와 국민이 아닌 특정 정당, 정부에 대한 충정이라는 게 함정이지만요. 그러고보면 그 시절 광주 재진입 작전도 충정 작전이었다죠? 공수부대가 시위자 패는 훈련하는 것도 충정 훈련이었고. 일개 정당과 정부를 위해 나머지 국민들을 공격하고 갈라놓는 게 참으로 안보에 부합하는가 봅니다.


'안보 버팀목' 군의 사기를 높여라


사실, 군의 사기를 높혀주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월급 잘 챙겨주고, 밥 맛있는 걸로 잘 먹여주는 거죠. 그런데 이거 두개 다 안 해주면서 정신력이니 뭐니 개헛소리만 하고 있으니 문제인 거고요. 국가에 의해 강제로 징병당한 채 감금 상태로 인권유린에 노동착취 당하는 데 그런 환경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나마 돈이나 잘 주고 밥이나 잘 맥여주면 모를까. 근데 그거 둘 다 안 해주잖아요? 미군의 군기가 높은 이유가 뭐겠습니까. 군기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가지고 있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훈련을 하고 지휘를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돈도 잘 챙겨주고 밥도 잘 먹여줘요.

사람이라는 게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일할 맛도 생기는 거고 기운도 사는 겁니다. 열심히 고생했는 데 쥐꼬리 만한 월급에 여전히 개같은 대우 받으면 기분이 좋겠어요? 계속 일하고 싶겠습니까? 일 열심히 하고 싶겠어요? 아니죠. 받을 만큼만 받아도 억울하진 않죠. 그런데 이 나라를 그런 거 안 해주잖아요. 그런 주제에 나랑 별 관계도 없는 지휘관이 혼이 나든 말든 평소에 얼굴 안 봤으면 좋겠다 싶은 양반들이 뭔 소리를 듣든 무슨 상관이니까. 그런 인간들이 부대 자주 방문 하는 것만큼 좆같은 일이 없는데.

그런 주제에 안보를 논한다? 기만이죠.



하여간, 이렇게 보면 보수와 군대는 진짜 안보를 등한시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안보가 뭡니까.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보장할 수 있는 거에요. 그런 데 정작 군은 간부들인 병사들 등쳐먹으면서 돈이란 돈은 지들이 쳐먹고 아예 장성부터 하급 장교까지 기밀을 팔아대질 않나 그런 주제에 처벌은 솜방망이에 생계형 범죄라고 봐주고 앉았고 방산비리에 유착관계로 말이 부정부패지 사실상 사보타주를 일삼으며 재산을 불리고 있고 애국보수랍시는 놈들은 관심 좀 받자고 군 기밀을 스스로 유출시키는 짓을 하고 있죠.

그렇다고 보수정권이 이런 문제에 대해 열의를 가지고 해결하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저런 장성들이 국회에 입성하면 대부분 새누리당으로 기어들어가죠. 똑같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쓰레기들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현역 장병을 처우를 개선해주는 것도 탁상공론에 현실적인 해결책인 절대 되지 않으며 그렇다고 최저임금에 맞게 돈을 주는 것도 아니죠.


진짜 종북에 빨갱이라면 이런 새끼들이에요. 보수와 군에 암약한 수많은 쓰레기만큼 종북 빨갱이들이 많은 곳도 없습니다. 나라 망치는 세력들이거든요. 진짜 안보가 뭔지도 모르고 그에 대한 의식도, 시각도 제대로 되먹질 못했으니 자기들이 하는 애국행위가 정작 진짜 위험한 해국행위라는 걸 자각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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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과 언론에 선동 당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지닙니다.


  1. 종편 언론, 특히 TV조선을 애청한다.
  2. 조중동과 같은 언론에서 하는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3. 하나의 사건에 대한 판단은 오직 평소 보는 언론 따라.
  4. 물론 그에 반대되는 어떠한 언론과 의견은 철저히 무시한다.
  5. 조중동과 같은 언론에서 하는 이야기와 반대된 의견은 잘못된 것이라 여긴다.
  6. 선별적 복지를 주장하거나 동의한다.
  7. 더불어 선별적 복지에 대해 호의적인 사람 중에 복지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8. 기업 한두개 망하면 한국이 망하는 줄 안다.
  9. 주로 잘 사는 편으로는 안 보인다.
  10. 한국에 엄청난 수의 종북이 암약하는 줄 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생각하여 판단하지 못하고 언론에서 하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입니다. 그 스스로 생각하여 판단한다면 '상식을 가진 정상인'이라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분명히 구분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들은 이미 선동, 세뇌당한 노예이기 때문에 그러한 판단을 하지 못합니다.


TV를 켜 놓으면 하루 종일 TV조선만 보며, 거기서 하는 말만 듣지요.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면 1984와 같은 디스토피아 작품에서 국민들에게 주입하는 오직 하나의 사상과 정보를 제공하는 언론이 있을 겁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강요하지만, 현실에선 자발적으로 주입되어주고 있다는 점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아는 것이라곤 그들이 하는 이야기 뿐이며, 그들의 가치관은 그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들이 판단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것들입니다. 실제로 자신의 생각과 판단은 전혀 없이 언론에서 매일 하는 이야기 그대로 믿고 그 소리 반복하는 사람, 있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아래의 사진입니다.




1. 저질 일자리를 두려워하는 젊은이들에겐 볼일 없다

2. 남 탓 하는 젊은이들

3.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주장하는 당신들은 조폭보다 더 악명 높은 집단 아닌가?

4. 애를 안 낳아주겠다는 헛소리 말아라

5.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으니 불만을 가져라


출처 : http://www.vav.kr/today/256039



조중동, 종편에서 하는 소리 그대로 앵무새처럼 떠벌이고 있죠.


이런 사람이 고작 한 두명이냐고요?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종북의 머리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저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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