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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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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작품에 대한 내용누설이 있습니다.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의 첫 살인은 태어난 직후였고, 피해자는 어머니였습니다.

 

물론 그것이 그르누이의 의도나 목적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무책임한 존속살해를 거꾸로 돌려버렸죠. 그러나 부모가 없는 고아인 그르누이는 고아원에 가게 되었고, 두번째 살해 시도에서 또 살아남은 뒤 무두상에게 팔려가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직후, 유모는 강도에게 살해당했죠. 그리고 몇년 뒤, 무두상은 다년간 가혹한 작업 환경에서 살아남은 그르누이를 인정하고 좀 더 나은 일을 시킵니다. 그리고 그르누이는 자신의 재능, 냄새에 극히 민감한 것이 찾은 진짜 첫번째 갈망을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미녀의 향기였죠. 본래 무두된 가죽을 파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따라갔지만, 그는 홀로 처녀를 따라갔고, 그 향기에 취해 우발적으로 그녀를 죽이게 됩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게 그의 손으로 이루어진 진짜 첫 살인이었죠. 그리고 그르누이는 죽은 그녀의 옷을 찢고 자기가 갈망하는 향기에 흠뻑 취하게 됐죠.

 

처녀의 아름다운 알몸을 탐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르누이에게 여성이란 향기를 담은 매개채일 뿐 여체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습니다. 죽은 처녀의 몸 구석구석 코를 박고 향기를 맡았지만, 죽은 자는 썩기 마련이고 생기를 잃으며 향기 또한 떠나가게 되는 법, 그르누이는 사라져가는 향기를 어떻게든 챙기기 위해 손으로 퍼담으며 콧속에 밀어넣지만 시체는 시체였습니다.

 

돌아온 그르누이는 개처럼 얻어맞지만 육체의 고통은 지난 저녁 겪었던 환상적인 경험에 더더욱 강력한 갈망에 빠지게 됐습니다. 그러다 지난 날 보게 되었던 향수 가게에서 알게된 것처럼, 그는 여인의 향기를 담고 싶어 했습니다.

 

그르누이는 가죽을 퍼퓸 마스터 주세페 발디니의 가게에 배달하러 갔고, 그가 향수 제조사인 걸 알고, 무엇을 만들고 싶어하는지 아는 그르누이는 자신의 재능을 뽐내며 그가 원하는 것, 시장에 풀린 경쟁자의 최고 상품을 즉석에서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발디니는 그르누이를 필요로 하여 무두상에게 은화 50개를 값으로 치르고 자신의 제자로 삼죠.

 

그러나 무두상은 사고를 당해 곧바로 죽게 됩니다. 마치 이전 유모처럼요.

 

그 뒤로 그르누이는 뛰어난 향수를 만들어내며 엄청난 성공을 안겨줍니다. 그러나 그의 갈망은 단순히 좋은 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향기를 담는 것이었죠. 처음 발디니에게 찾아갔을 때, 그는 향기를 온전히 담는 것을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건 모든 사물에 해당되는 말이었죠. 그리고 그 중 최고는 그의 갈망. 아름다운 여인의 채취였습니다.

 

발디니는 향수 제조법을 그르누이에게 가르쳤고, 그 중에서 12개의 향수 조합을 알려주며 전설 속의 13번째 재료를 이야기해줍니다.

 

그르누이는 발디니에게 배운 향수 제조법에 따라 사물의 냄새를 담아내려 했지만 그건 오직 꽃의 향기 뿐, 구리나 돌, 심지어 고양이의 냄새조차 담지 못합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갈망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죽어갔고 발디니에게 들은, 그라스의 향수 제조법을 알게 되며 그곳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그날 밤, 수백개의 향수 제조법을 남기며 떠난 그날 성공의 꿈을 꾸던 발디니는 이전부터 흔들리던 건물이 마침내 무너져 죽게 됩니다. 유모, 무두상과 마찬가지로요.

 

그라스로 떠나는 그르누이는 산, 정확히는 동굴 속을 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은 돌 냄새를 제외하면 그 어떤 냄새도 없는 특별한 곳이었죠. 그곳에서 거지꼴이 될 때까지 지낸 그르누이는 어느날 한가지 사실을 자각하게 됩니다. 바로 자신에게는 채취가 없었다는 걸요. 

 

그르누이는 그곳에서 일을 하며 천천히 준비하게 됩니다. 그라스의 향수 제조업자의 제자가 되어 냉침법을 공부하면서요. 그리고 그곳으로 가던 중 보게 된 로라라는 아름다운 여성을 보았고, 그녀를 찾게 됩니다. 어렵진 않죠. 냄새를 따라가면 되니까요.

 

충분한 실험과 준비 끝에, 그는 사회에서는 범죄라고 부르는 행위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냉침법으로 향기를 뽑아내려 했지만, 실패했고 기름을 먹여 향기를 빼내는 방법을 시도했고, 성공하게 되었죠.

 

그리고 그의 범행은 꾸준히 성공했습니다. 천재적인 후각을 가지고 있는 그르누이는 남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었고, 개와 같은 뛰어난 후각을 가진 동물에게도 감지되지 않는 최고의 자객이었죠.

 

앙투안 리시는 아주 뛰어난 인물이었고, 그르누이의 범죄를 추적했고, 그의 마수를 피해 도망가며 거의 성공할 뻔 하지만 결국 그르누이는 마침내 로라의 여관 침실에 침투해 그녀를 살해하고 로라의 향기를 훔치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13번째 전설 속 향기 역시 손에 넣었지요.

 

그리고 감옥 속에서 그르누이는 자신의 몸에 향수 한 방울을 묻힙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형집행장에 도착하죠. 그러나 뭔가 이상했습니다. 마치 고관대작을 다루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예의를 다하는 이들과, 마차를 타고 온 그르누이는 자신의 데리러온 남자의 화려하고 멋진 푸른 옷을 입고 있었죠.

 

그런 뒤 집행장에서 서자 방금 전까지 집행 연습을 하며 환호를 받던 집행인이 향을 맡은 뒤 무릎을 꿇고, "이자는 결백하다."는 말을 외칩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사람들 앞에서 그르누이는 손수건에 향수를 묻힌 뒤 휘두르자 사람들은 활홀 속에 빠지게 되고, "주교는 이 자는 사람이 아니다. 천사다!"(He's no man. He's an Angel!)이라 외칩니다.

 

그리고 향수를 휘두를 때마다 사람들은 쓰러지고 갈망하고 환호하죠. 그러다 손수건을 놓치자 사람들은 그르누이가 아닌, 향수에 팔을 뻗으며 그것을 가지기 위해 몸을 던져댔습니다. 그런 뒤 극단적 활홀경 속에서 그라스의 시민들은 갑자기 집단 난교를 시작하게 되죠.

 

그럼에도 로라의 아버지, 리시는 검을 빼들고 그르누이 앞에 서서 나는 속지 않는다 하였지만, 코앞에서 느껴지는 향수에 결국 검을 떨어뜨리고 흐느끼며 도리어 사죄하고는, 그를 아들로 칭합니다.

 

그 뒤, 본능적으로 자신이 태어난 어시장을 찾은 그는 자신의 머리 위에 자신이 만든 향수를 들이 붓습니다. 거리의 부랑자들은 그의 몸에서 나는 향기에 매혹되어 달려들어 살점 하나, 피 한방울 남기지 않고 그를 없애버립니다.

 

 

자, 먼저. 그르누이는 몸에 채취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평생을 향기를 갈망하고,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한 목적으로 살아갑니다. 천재적인 후각은 그를 특별하게 만들어줬지만, 그 재능을 추악한 범죄에 사용했죠.

 

그르누이는 탄생부터 운명적 파멸과 함께 했습니다. 자신을 태어나게 한, 그리고 살해하려한 어미를 죽게 만들었고, 그를 길러 준 유모 역시 그가 떠나자마자 죽었으며, 무두장 또한 그르누이를 팔아서 떠나게 끔 한 직후 죽었으며, 발디니 역시 그르누이가 떠난 그날 밤 붕괴된 건물에 깔려 죽었습니다.

 

이는 아주 의미심장한데, 그에겐 돌아갈 곳이 없었습니다. 즉, 고향이 없고 보금자리가 없습니다. 그때그때 자신이 머무는 곳은 있었지만 그 어떤 곳이 그르누이가 소유한 곳이 없었고, 집으로 삼을 만한 곳도 아니었습니다. 직업이 있었고 머무는 곳은 있었지만 언제든, 또 언젠가 떠날 곳이었죠. 그는 진실로 태어난 이후 그 어디에도 속한 적 없는 존재입니다. 가족, 직업, 사회 속에서 철저히 유리된 아웃사이더였습니다. 마치 없는 사람처럼요. 그가 채취를 가지지 못한 것처럼.

 

채취가 없다는 것은 자기만의 고유한 무언가가 없다는 것입니다. 향기와 냄새를 메인 텍스트로 삼는 영화답게 그것은 매혹적이거나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장바티스트 그르누이는 그런 게 전혀 없죠. 태어날 때부터 채취 없이, 냄새 없이 태어났습니다. 모두가 가지고 있으니 오직 장바티스트 그르누이 단 혼자서만 없는 것.

 

그는 세상 모든 사물이라면 가지고 있는 것을 잃은 채 태어난, 냄새로 작성된 세계 속에서 유일하게 세상에 없는 사람입니다.

 

천채적인 후각은 그에게 감미롭고 황홀한 향기에 대한 갈망을 낳았고 그것에 대한 강력한 소유욕을 낳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냄새를 가지고 싶어 했고, 그걸 독점하고 싶어 했습니다. 영원히 타인의 향기를 가지고 싶어 했죠. 스스로의 손으로 저지른 첫 살인 당시 그는 죽어가는 여인의 시신에서 사라져가는 향기를 그러모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라져가는 향기에 절망하고 말았죠.

 

그러한 갈망이 더 뛰어난 향수 제조법을 추구하게 만들었고, 그것을 실험하기 위해 윤리나 도덕 같은 것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건 사회에 속해 있는 사람에게나 적용되는 것이지 그르누이는 사회에 속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가 직업을 가지고 누군가의 밑에서 일한다 하여 사회에 속한 게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인간으로서의 고유한 것을 가지지 모했고, 단 한번도 자기만의 적을 둔 적도, 뿌리를 내린 적도 없으며, 돌아갈 곳도 없는 그는 사회 속 무적자(無迹子)이기 때문이죠.

 

그렇게 스스로 사회 속 사람이 아닌 그르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만들기 위해 어떤 짓이든 할 수 있었고, 해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그가 태어난 이유이니까요.

 

그는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사람을 죽이며 그녀들의 향을 훔쳐갑니다. 모두 아름다운 처녀들 뿐이었죠. 오직 그들에게서만 채취할 수 있는 향을 모았습니다. 그라스는 그르누이의 희생자들이 발견되며 공포와 공황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위태롭고 속도감 있는 연출이 일품으로, 위기감이 고조되는 것을 잘 연출했죠.

 

그리고 리시가 로라와 함께 도망간 이후의 주인공 역시 오직 냄새로만 추적했고, 은밀하게 로라의 침실에 침입하는데 성공합니다. 여기에서 개조차 그의 채취를 느끼지 못합니다. 또한 리시가 꿈을 꾸고 일어나며 로라의 안위를 확인하는 것으로 한번 관객의 긴장감을 희석시킵니다. 그런 뒤에 로라의 침실에 다시 한번 침입한 그르누이를 쳐다보는 로라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아침이 되고, 리시는 로라의 방문을 열고 안위를 확인합니다.

 

이때의 연출이 좀 유치하긴 한데, 07년도 영화임을 감안하면 넘어갈 수 있는데, 나체로 사망한 로라의 모습은 작중 내내 아름다움이 강조되는 것과 대비되는 비참한 모습으로 관객에게 충격을 주는 완급 조절이 이루어집니다. 그르누이는 피해자의 향을 훔치기 위해 머리카락마저 깍아냈는데, 로라의 아름다운 적발이 깍인 채 나체로 침대 위에 쓰러진 모습은 어떤 면에서는 예술적이었지만, 그 그림이 아름다웠다기 보단 그 대비가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체포된 이후의 그르누이에게 리시가 다가와 강렬한 증오를 통보하지만 그르누이는 13번째 재료를 이용해 전설적인, 또는 악마적인 향수를 만들어냈고, 사형 집행 당일 그것을 단 한 방울 뿌림으로서 자신을 데리러온 자들을 자신에게 매혹시킵니다. 심지어 자신이 입고 있던 옷까지 내주면서요.

 

이 지점이 꽤 중요한데, 그는 자신이 입은 옷마저도 벗고 타인의 옷을 입었습니다. 이제 진정 그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옷을 버리고 타인의 옷을 뒤집어 쓴 그는 그저 가죽을 뒤집어 쓴 그림자와 다를 게 없었죠. 자신의 향수를 몇 방울 써 현장을 황홀경의 광란으로 만들어버렸지만, 정작 그는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관심 받지 못하는 자임을 알게 됐습니다.

 

향수를 묻힌 손수건을 놓쳤을 때, 사람들은 그에게 매혹된 게 아니고, 그에게 사랑과 관심을 보낸 게 아니었으며, 그를 갈망한 게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난교의 현장으로 변한 곳에서도 강렬한 증오로 칼을 빼든 채 다가오는 리시에게 저항 없이 몸을 열어주었으나 리시조차 그의 향에 매료되어 도리어 자신의 딸을 죽이고 빼앗은 범인에게 무릎 꿇고 사죄한 뒤, 그를 아들이라 칭합니다.

 

그러나 이미 그는 알고 있죠. 그가 사랑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몸에 남아 있는 향수의 잔향이라는 것을.

 

그렇게 그르누이는 이 세상에 자신이 있을 곳도, 뿌리 내릴 곳도, 자신을 자신 그대로 알아봐줄 곳이 없다는 걸 깨닫고 마치 본능처럼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갑니다. 그곳에서 머리에 모든 향수를 쏟고는 달려드는 사람들에게 찢겨 죽죠. 그야말로 그 어떤 것도 남기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이 뒤집어 입은 타인의 옷가지만 남긴 채 이 세상에 단 한번도 존재한 적 없었던 것처럼요. 그가 남긴 족적은 있을지언정, 그 주인이 누구인지는 이 세상 누구도 모를 일이 되었습니다. 채취 없이 태어나 냄새를 남기지 못한 그가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을 입었으나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고, 사람들이 원한 것은, 사람들이 바라본 것은 자신이 아니라 그저 향기 뿐이었으니까요.

 

다시 한번, 장바티스트 그르누이는 뿌리를 내린 적 없고, 내릴 수 없는 파멸적인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보금자리가 없고 적迹이 없죠. 그런 의미에서, 그는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마치, 시대의 어느 순간 어떤 것을 단 한번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태어나 목적이 다 하면 사라지는 그런 도구적 존재로요.

 

그는 향수 산업이 태동하고 발전하던 시기에 태어나 어떠한 물건,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매혹적인 향수를 단 한번 만들어보기 위해, 우주에 그러한 것이 있었음을 단 한번만이라도 기록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에 불과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는 세상에 무언가를 남길 필요 없었고, 머물 곳이 있어서도 안 됐습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천재적인 후각을 타고 났고, 그것에 순수해야만 했죠.

 

향기를 담기 위해 불순물인 자신의 냄새마저 있어서는 안 됐고, 돌아갈 곳도, 뿌리 내릴 곳도 있어선 안 됩니다. 그가 운명을 달성하기 위해선 어떤 위협과 위기가 있어도 반드시 이겨낼 수 있었고, 이런 면에서 영웅 서사와 유사한 흐름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달성하고, 그것을 세상 앞에서 증명한 뒤에 그의 모든 쓸모가 다하고 나서 그는 마치 이 세상에 단 한번이라도 존재한 적 없는 것처럼 뼛조각, 피 한방울 남기지 않고 세상에서 사라지면서 끝나죠.

 

 

그러한 쓸모를 '신의 사역'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꽤 재밌는 점이 있습니다. 신의  사역하심으로 인해 죽어야할 자가 결코 죽지 않았고, 그를 학대하거나 착취하려던 악인들은 모두 벌을 받고 죽었습니다. 주인공인 그르누이에 의해 살해 당한 사람들은 있지만, 그가 직접 죽인 사람은 그의 모친을 포함해서 모두 여자였죠.

 

성경에서 롯은 신과 악마의 내기로 인해 가족과 가축을 잃고 고난을  겪어야 했죠. 이처럼 신의 사역에 무고한 주변인의 죽음은 억울한 게 아닌 제나름의 가치를 지닙니다. 물론 현대인의 관점과는 좀 거리가 있죠. 그렇기 때문에 사회 속에 속하지 않은 아웃사이더 그르누이의 살인은 인세의 관점으로 평가할 수 없게 됩니다.

 

또한 사형 집행 당일 사형 집행자는 그를 보고 결백하다(He's an inocent!)고 했고 추기경은 그를 보고 천사라고 합니다. 가장 비천하고 천시 되는, 사람의 목숨을 끊는 자가 결백을 증언했고, 신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하나인 추기경이 직접 천사임을 선언합니다. 그르누이가 신의 사역을 받는 자이기 때문에, 인세의 법률에 구속받지 않으며, 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선택된 도구라면 그는 결백한 것이 맞고 천사와 같은 신성한 권위를 지닌 존재로 해석될 수 있다는 거죠.

 

 

스토리를 벗어나서 바라보면, 주인공 역할을 맡은 벤 위쇼의 위태로운 연기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조용하고 조심스러우나 악마적으로 과감하기까지 한 행동과 표정 연기는 그의 과묵한 모습과 함께 관객을 몰입시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알란 릭맨의 엄격한 귀족적 모습의 연기 또한 무게의 한 축을 담당했고요.

 

그러나 향수라는 주제를 가지고 향기라는 매체를 중심으로 풀어가면서도 그것에 대한 시각적 연출은 매우 부족했다는 점에서 많이 아쉬운데, 원작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향기, 혹은 맛과 같은 감각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작품들이 꽤 있었고 연출에 따라 매우 강렬한 경험을 간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는 서사적 측면을 강조했을 뿐 향기 그 자체에 대한 미학은 기억에 거의 남지 않습니다.

 

그저 후반부, 향기에 따른 반응이 너무 강력해서 의도적인 게 아닐까 싶은 점도 있고요. 도리어 주인공의 천재적인 후각을 강조하는 모습을 더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경향을 보여줍니다. 의도적인 거라면 다소 아쉽지만 후반부의 클라이막스를 위해 연출을 아낀 거라고도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아쉬운 건 아쉬울 수밖에 없는 연출적 한계를 지닙니다.

 

원작에서는 향기에 대한 묘사가 매우 충실하고 풍부하다고 하는데, 원작을 아는 사람이라면 매우 아쉬울 수 있겠지만, 단순 영화만 감상하겠다면, 연출적 부분보다는 서사적 지점에 집중한다면 원작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상당한 짜임새가 있는 영화로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살짝 높은 점수를 주기엔 다소 아쉽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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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작품에 대한 내용누설이 있습니다. 

소설 이차원 용병의 다른 에피소드들도 결코 호락호락한 편이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휴프노편이 정말 인간, 사랑에 대한 통찰을 기반으로 높은 완성도를 이끌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아디스편도 굉장한 포스를 뿜어내서, 바로 그 다음 미션인 휴프노 미션이 그리 어렵다거나 대단할 거라는 기대는 안 했습니다. 아디스편에서 작가가 보여준 치밀하고 설득력 있는 머리싸움과 정치, 경제적 다툼은 작가 특유의 필체 때문에 투박해보일 순 있지만 이 또한 굉장히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거든요.


초일류 작가들의 물 흘러가듯, 그러나 들어있을 건 다 있는 꽉찬 전개와 묘사는 아니었지만, 그런 작가를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원래 그런 정치, 경제적 다툼과 전개를 묘사하는 건 정말이지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더더욱 바라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전개와 내용은 분명 개연성 있는 내용이었던 것도 사실이죠. 정치싸움과 같은 머리싸움은 그런 개연성과 논리적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게 굉장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금호 작가는 투박한 필체이지만 그걸 적절히, 그리고 간결하게 잘 보여줬죠. 정치싸움은 단지 논리력과 사고력과 같은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개인적 특성. 즉, 그 캐릭터의 성향과 개성 또한 잘 녹여야 하며, 감정 또한 분명히 개입합니다. 정치에 있어서 감정을 숨기거나 통제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한 만큼, 그러한 감정적 동요나 통제되지 못하고 터져나오는 감정에 의한 결단, 흔들림을 묘사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죠.


이는 마지막의 바스톤의 흑화와 그걸 이끌어낸 묘사, 찌질함에 가까운 아디스의 과거를 감추고 미션 자체에 흐린 사실 등의 묘사는 생각해보면 개연적이고 타당한 묘사와 전개였습니다. 그리고 끝에 가서는 반성, 진보할 수 있도록, 아디스에게 새로운 선택을 하게 해주며 영혼의 격이 상승하게 되죠.



이런 아디스 미션의 완성도였기 때문에 휴프노 미션에 대해선 그저 믿고 보는 정도, 아디스편이 이런 완성도였으니 휴프노 미션도 평균이나 그 이상의 완성도를 가질 것이라는 보장은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게 웬걸? 이번 편은 아디스편과는 다른 방향으로 걸작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주인공인 강철호의 가장 뛰어난 특성이 바로 언변이죠. 하지만 시작부터 이게 막힙니다. 눌변으로요. 그리고 시작한 뒤 얼마 동안은 호감도가 떨어지기만 하는 등 적응 못하고 삽질만 하죠.


근데 중요한 건 강철호의 판단력입니다. 아디스만큼은 아니더라도 머리 잘 돌아가는 캐릭터죠.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상황을 분석하고 현실인식을 하며, 다른 방법을 찾고 인물의 성향과 미션의 전개를 유추하거나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런 계획이나 판단이 꽤 잘 들어먹기도 했고요.


작품 내 전개의 기점은 폴스를 영입한 이후로 한번 변하게 되는데, 연애에 대해 알지 못하는 독자 강철호와 휴프노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캐릭터라는 점이죠. 이 이후로 사피엘의 호감을 사고 나름 꽤 잘 돌아가게 됩니다.


폴스가 중요한 이유는, 연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강철호와 휴프노에게 연애 공부를 해줬다는 건데, 작가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작가보다 똑똑할 수 없다는 것처럼 작가가 알지 못한다면 캐릭터 또한 말할 수 없을 만한 이야기를 강철호, 휴프노에게 해줍니다. 여성에 있어서 여러 타입이 있고 사피엘은 그 중 어떤 타입인지에 대한 설명 부분과 그런 여자의 마음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강의하는 부분이죠.


이 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는 데, 단지 머리속으로 설정 짜듯이 공상적인 내용이 아니라 실제로 사피엘의 내면과 언행을 해당 타입과 결부시켜 해석하고 분석하며 이해시키는 부분이 놀라웠습니다. 대개 이런 내용을 서술할 땐 어떤 작위성이 느껴지거나 설득력이 떨어지기 쉬운 데, 의외로 상당한 설득력이 느껴지는 부분들이었기 때문이죠.


물론 실제 인물이 아니라 소설 속 캐릭터이고 그 캐릭터를 설정한 작가가 그 설정을 분해한 뒤 소설 상에서 전개시켜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지만, 캐릭터의 성향을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설정하고 표현시킨 것은 굉장히 뛰어난 작가적 역량이죠. 캐릭터에 대한 이해와 분석, 그리고 그에 따른 묘사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통찰 없이는 결코 가능하지 않은 일이거든요.


이전의 미션과 마찬가지로 금호 작가는 인간과 감정에 대한 통찰이 상당히 뛰어난 편이고 그런 이해를 기반으로 자연스러운 캐릭터 창작과 묘사가 가능한 것이지요. 이는 사피엘이라는 까다로운 캐릭터를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데 꼭 필요한 지식들인 겁니다.


여자이자 기사, 청렴결백하며 정의로운 성격, 가문의 부흥을 위해야 한다는 일생의 목표, 그리고 기사도에 대한 강박적 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이기 때문에 가지는 컴플렉스와 고민, 그리고 한계.


이 특성들을 절묘하게 버무려 실제 있을 법하다는 개연성을 가진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묘사했다는 점에 대단하다는 겁니다.


이런 특성의 캐릭터이기 때문에 정치가인 백작의 저택 방문이 굉장히 중요한 두번째 급변하는 전환점이 되는 데, 백작이 저택에 방문해 쏜즈, 사피엘, 다른 자작 한명을 평가하며 누굴 기사단장으로 뽑을 것인가를 결정하게 되는 데, 이때 사피엘의 모든 가치를 부정하고 박살을 내버리게 되거든요. 분명 검술로선 사피엘이 더 뛰어났으며 기사도와 판단력, 성실함 등의 개인적 인격 또한 뛰어났지만, 너무 기사도에 강박적이게 살았기 때문에 오히려 쏜즈에게 패배하게 되죠.


오히려 사피엘의 기사다움이 자신의 발목을 잡았고, 부족하지만 더럽더라도 자기 이상의 역량을 낼 수 있는 쏜즈를 기사단장으로 발탁하게 되죠. 이는 사피엘의 모든 노력과 인생관을 처절하게 박살낸 겁니다. 훌륭한 기사이고자 했는 데 오히려 그 때문에 자신의 미숙함과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생겨버렸고, 그 이전에 여성이기 때문에 남자보다 약하고 남자들 사이에서 카리스마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점, 그런 이유들 때문에 결국 끈 떨어진 연 취급 당하며 모든 노력과 인생관이 박살난 겁니다.


그래서 중증 우울증에 걸리게 되는 데, 기실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 모욕과 창피를 당하고 노력과 인생관이 부정 당하며 박살난 인간이 우울증에 걸리지 않고 여전히 고고하고 당당하면 그게 더 이상한 겁니다. 쏜즈와의 대련 중 남자 부하들 앞에서 생리라는 약점이 잡혀서 더러운 모욕과 창피를 당했으니 그 자체로도 정신병 걸릴 일이죠.


하물며 기사도에 대한 강박적 집착과 사랑에 가까운 애정을 지닌 이가 그것마저 부정 당했으니..


하지만 표층심리를 읽던 강철호와 같이, 그런 사피엘은 뛰어난 편이었죠. 원체 정신력이 강했기 때문에(더불어 초기이기도 했지만..)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했죠. 누워서 자야한다고, 정신차리라고 스스로를 닥달하면서요. 물론 이것도 얼마 안 가서 심해졌죠. 며칠 동안 방 안에 틀어박혀 나가지도 않고 아마 간간히.. 울기도 하면서요. 그냥 그대로 놔두면 아마 자살하기 직전까지 가는 것도 오래 안 걸렸을 겁니다. 그런 상황이면 남자든 여자든 누구든 그럴 수 밖에 없을 테니까요.



이런 상태에서 폴스에서 또 다른 충고를 받고, 강철호는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제대로 먹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부분이 3번째 전환점인데, 전개상으로도, 캐릭터의 내적 성장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바로 진심으로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고자 한 부분이거든요.


이때 묘사가 상당히 훌륭한 데, 강철호가 휴프노에게 동조하면서 작품의 시점이 변화하게 됩니다. 정확히는, 똑같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지만 그 시점의 주인공이 강철호도, 휴프노도 아닌 제3의 하이브리드가 되어버리거든요. 휴프노까진 아니지만, 강철호도 아니며 강철호를 타인, 그라고 표현하는 등 휴프노에 가까워질 정도로 동조하게 됩니다.


그에 따라 자신의 감정 또한 진심으로 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미션이고, 실제로 사랑하지 않으며, 오히려 실제로 사랑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방어적인 심리적 태도를 취했죠. 그렇기 때문에 사피엘을 하나의 공략 대상으로만 보았고, 사랑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폴스가 말했죠. 여자는 남자가 진심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그런 겁니다. 휴프노 역할을 하고 있던 강철호가 진심이 되지 않으면 사피엘의 사랑을 얻어낼 수 없었던 거죠.


이런 면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혀주는 요인이며, 그만큼 작가가 여자, 사랑에 대한 이해와 통찰 또한 상당하다는 겁니다. 사랑을 경험해보거나 사랑하며 사귀어본 적 없는 휴프노와 강철호라는 캐릭터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면서, 사랑에 대한 이해를 가진 누군가를 창조하여 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가진 내용을 서술할 순 없기 때문이거든요. 하지만 금호 작가는 그걸 서술해냈죠. 결코 쉬운 게 아닙니다. 심지어 사랑을 해본 사람도 묘사하고 서술하기 어려운 내용인데 말이죠. 단순히 사랑을 그려낸 게 아니라, 그 사랑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이루어져야 한다는 걸 언어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선 그걸 분석해야 합니다. 그래야 폴스처럼 분석해서 알려주고 충고해주죠. 이게 아디스 미션만큼, 혹은 그 이상 뛰어나다 평가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그렇게 동조한 휴프노-강철호는 진심으로 사피엘을 사랑할 수 있게 됐고, 폴스는 그걸 바로 찝어냅니다. 눈빛이 변했다고요. 그렇죠. 사랑은 진심으로 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진심을 바라는 여성에게 장난으로, 혹은 여지를 남겨놓고 들어오면 그 여성의 진심을 받아낼 수 없습니다. 우선희도 말했죠. 동조가 높으면 유리할 거라고.


주인공의 내적 성장은 그 자체로 작품을 보는 독자의 집중과 심리적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의 흡입력이 가장 증대되는 부분이 바로 이 시점인 거죠. 이 전환점에서부터 마지막까지 전개되는 겁니다.



아디스 미션의 포스가 쩔었지만,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아디스 미션보다는 휴프노 미션의 완성도와 전개, 캐릭터 설계를 더 높게 칩니다. 솔직히 거의 버릴 캐릭터도 없고 작품적 장치나 전개나 복선, 개연성, 캐릭터 설정, 심리묘사 등등.. 가장 높은 완성도를 가진 에피소드라고 전 감히 평가합니다. 그럴만한 완성도를 보여줬거든요. 


솔직히 아직 휴프노 미션의 완결까지 카카오 페이지 분량으로 20화 조금 넘게 남아 있긴 하지만, 현재까지만 보고도 굉장한 완성도의 작품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휴프노편의 끝이 굉장히 기대되고 있고요. 퍼슨스 미션부터 유리발츠, 스트로본과 케세인 미션, 아디스 미션까지 거치며 점진적으로, 조금씩이지만 분명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성장해나가는 30세 성인 주인공의 성장 또한 사실적이기도 합니다. 중간중간 현실에서의 고충과 고민, 감정적 동요 또한 사실적이며 캐릭터의 성격과 성향을 적절하게 보여주는 작품적 요소이기도 하고요.


처음엔 그리 대단한 수준의 작품이라고 보진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작가 특유의 필체가 투박했고, 괜히 독하고 마초적인 척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혼자서 진지빠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느낌이 좀 들었고, 그렇기 때문에 전개나 캐릭터 설정 등에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애매하다는 느낌을 자꾸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생각해보면 문제도 없고 그 자체로 괜찮은 수준의 작품이라는 건 인정하고 재미 또한 느꼈죠. 불리하거나 감정적으로 동요할 법한 순간에도 주인공의 뛰어난 판단력과 현실인식은 매력적으로 보여졌고요. 하지만 아디스 미션을 거쳐 휴프노 미션에서 그 진가를 좀 더 제대로 파악한 셈입니다. 생각보다 더 재밌는 작품이었던 거죠. 저 개인적으로 가장 뛰어난 완성도와 작품성을 지녔다고 평가하는 건 다른 미션이 아니라 바로 휴프노 미션이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미션을 놔두고 휴프노 편을 리뷰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이 부분은 정말 추천할만한 에피소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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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루카스는 어느 시골 마을의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사람 좋고 아이들도 좋아하며 평판이 좋은 그는 치명적인 오해를 사 사회에서 격리당하고 혐오당하며 인생이 나락으로 향해갔죠. 그러다 결국 자신의 무죄가 입증되었지만..



이 영화는 아동성범죄가 아닌 가해자가 잘못 오해하게 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합니다. 편견과 혐오, 사회적 단절과 격리가 얼마나 무서운 지 잘 알려주는 영화이죠. 이는 제가 범죄자의 낙인효과를 비판하는 요소들로 모여진 영화입니다. 주연은 매즈 미켈슨.


주인공 루카스와 여자아이 클라라는 매우 친한 관계입니다. 클라라는 강박증이 있어 선을 밟지 못하는 데, 그러다 선을 넘지 못하고 길을 잃어버리는 일도 간혹 발생하죠. 작품에선 주인공이 길을 잃어버린 클라라와 함께 그녀의 집까지 대려다 줍니다. 같이 산책하던 패니라는 애완견과 함께요.


여느때 처럼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던 루카스는 아이들에게 공격당 해 잠시 죽는 연기를 합니다. 그걸 지켜보던 클라라는 정말 죽은 줄 알고 얼굴 빛이 어두워지지만, 금새 죽은 자의 손이다~ 하며 일어나는 루카스를 보고 다시 환해지죠. 그리고는 루카스의 가슴 위에 올라타 입술키스를 합니다.


루카스는 약간 당혹스럽다는 듯이 일어나 아이들과 버섯을 따자며 밖으로 내보내고 클라라에게 훈계를 합니다. 클라라는 루카스를 좋아하고 하트 모양의 장난감을 전해주죠.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들키고 거부당한 것에 상처를 입었는지, 유치원이 끝날 때 원장에게 루카스가 싫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는 루카스가 아동성애자로 의심받을 만한 발언을 해버리죠.


원장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얼마 뒤 학부모를 모아 이러한 사실을 전달합니다.



먼저, 원장은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며 클라라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무조건적으로 선한 존재들이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이 들켜 거짓말을 할 수도 있죠. 이는 앞서 클라라가 하트 모양의 장난감을 선물했지만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발뺌하면서 나옵니다.


루카스는 이런 사건이 터지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의심하고, 경멸하는 것을 느낍니다. 한번도 그의 말을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고 믿지 않으며 그저 내치고 그렇게 점차 사회적으로 격리당합니다. 심지어 자기와 가장 친했던 친구들조차 제대로 듣지 않고 밀치며 쫓아내죠.



루카스는 이혼남입니다. 청소년의 아들이 있는데, 아버지와 같이 살기를 희망하죠. 물론 아들과 이혼한 전부인에게도 그러한 소식은 전해집니다. 아무런 증거도 확신도 없고 유죄판결도 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부인은 격렬히 반응하며 전화도 뭣도 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믿고 찾아왔죠.


오랜만에 만난 아들이지만 그런 작은 행복조차 오래가지 못합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마트에 갔지만 그곳에서 자기 부자는 이 마트에 출입금지라는 선언을 받죠. 그리고 집에 돌아가자 본 것은 경찰들과 함께 가는 아버지의 모습.. 게다가 집 문이 잠겨있어 사온 것을 집에 두지고 못합니다. 결국 집 열쇠를 받으러 테오의 집에 갔지만 클라라에게 울분을 보이자 곧바로 쫓겨납니다. 심지어는 루카스의 절친이었던 덩치 큰 친구는 친구도 아니라는 루카스 아들이 분풀이로 한대 맞은 것에 분노해 아이를 때리고 밀쳐 넘어뜨린 뒤 그 위에 올라타 주먹질을 하려고 했죠.


결국 말리기는 하지만 분명 큰 상처를 받았을 겁니다. 다행이 루카스를 믿어주는 몇몇 친구는 있었고, 아들은 그의 집에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는데, 원장이 이러한 성학대 후유증이 보이면 연락하라는 말에 그러한 반응을 보인다며 다수의 학부모가 연락을 했다는 것이죠. 문제는 그 아이들이 묘사한 인테리어, 가구, 지하실이 사실은 아이들의 상상에 불과했다는 겁니다. 지하실은 애초에 있지도 않았죠. 


그리고 그들의 예상대로 루카스는 무죄로 풀려나게 됩니다. 하지만 무죄로 풀려났다고 사람들이 당장 미안해하고 잘못을 깨닳을까요? 그렇다면 혐오와 경멸이 아닐 겁니다. 소아성애 사건의 진실은 외면한 채, 눈에 보이는 범죄자로 낙인 찍힌 진짜 피해자에게 끝 없는 폭력과 불신, 증오가 쏟아지지요.


아들과 같이 밥을 먹기 위해 요리하다가 테러를 당하기도 합니다. 아들과 루카스가 같이 있던 창문에 돌이 날아왔고, 정문을 열고 나가보니 어느샌가 없어진 애완견 패니가 죽어서 봉지에 담겨져 있던 것이죠.


아들은 격렬히 화를 내었지만.. 누군지는 알 수 없습니다..



원장의 조치는 적절하지 못했습니다. 매우 위험한 행동이고, 또한 명백한 위법이기 까지 합니다. 


단순히 어떤 사실이 의심되어 경찰에 신고하는 것과, 그 사실이 확인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군중에게 퍼뜨려 범죄자로 기정사실화 한다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이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원장은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며 아무런 의심도 증거도 없이 클라라의 말을 완전히 신뢰합니다. 그리고 그런 확실치도 않은 사실을 확신하며 그를 혐오하며 주변에게 알리죠.


심지어 이혼한 아내와 아들에게 까지요. 그 덕에 루카스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가 없는데 범죄자로 낙인 찍혀 사회에서 점차 격리당하게 됩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런 혐오와 경멸은 자신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에게 까지 이어져 마트에 금지당하고, 얻어맞기 까지 하게 됩니다. 나중에 가면 마트에 나온 루카스 또한 출입금지라는 말을 듣게 되고 그 친구에게 얻어맞으며, 마트 밖에 내던져지고 던진 물건에 얻어맞기까지 합니다.


당연히 이 또한 위법이죠. 무언가 장사에 피해를 미친 것도 아니고, 실제로 죄도 없으며, 이미 무죄로 풀려난 이후임에도 불구하고 차별하며 폭력을 휘둘렀으니까요.


루카스는 당연히 소아성애자가 아닙니다. 입술키스를 했을 때도 클라라를 훈계했고, 아예 같은 유치원에서 일하는 다른 여자 교사와 사귀며 성교도 하며 그러한 사실을 분명히 알려주죠.


또한 아이인 클라라의 진술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할 수 없음 또한 보여줍니다. 아직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는 아이가 하는 말에 어른들은 이중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루카스가 성학대를 했다는 듯한 거짓말엔 그것을 진실이라 생각하지만, 클라라의 엄마에게 자신이 바보같은 말을 했고 루카스 아저씨는 죄가 없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니가 충격을 받아서 그러는 것이라 무시해버리죠.


더군다나 주변인의 말을 듣다 결국 클라라 자신도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헷깔려 합니다. 여전히 좋은 루카스 아저씨의 집까지 찾아와 자신이 누구 때문에 울고 있는지 헷깔려 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크리스마스 이브, 마트에서 폭행당해 피를 뒤집어 쓴 루카스는 말끔히 씻고 동네 교회에 갑니다. 여전히 눈치는 보이지만 자리에 앉아서 유치원 성가대의 노래를 듣죠. 뒷 줄의 클라라의 부모이자 자신의 절친이엇떤 테오 부부를 연신 바라보면서요.


그러면서 루카스는 눈가를 찡그립니다. 그리고 그걸 본 테오는 뭔가 깨달았다는 듯하죠. 루카스는 거짓말을 하면 눈가를 찡그리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고, 테오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요. 테오는 자신의 분노와 혼란속에서 그런 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이제야 겨우 그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죠.


집에 돌아간 뒤 루카스는 잠에 들었고 테오 부부의 집에서는 성탄절 파티가 열렸습니다. 그렇지만 테오는 즐길 수 없었죠. 자신의 절친에게 큰 오해를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니까요. 잠을 자는 클라라를 지켜보러 갔지만 거기서 들은 것은 잠에서 깬 클라라가 말한 진실이었고, 테오는 후회하게 됩니다. 그리곤 음식을 챙겨 루카스의 집으로 가죠.


앞서 루카스의 아들이 집 열쇠를 받으러 테오의 집에 갔던거 기억하실 겁니다. 테오는 없다고 했지만.. 멀쩡히 들어간 걸 보면 거짓말이었던 것이었죠. 그리고 챙겨온 음식을 루카스에게 줍니다.



1년 뒤 루카스는 누명을 벗고 다시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교제했던 라디야와도 같이 다니고 자신을 두들겨 팼던 친구와도 웃으며 악수하죠. 하지만 단지 다시 좋아진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들을 대하는 루카스의 표정은 웃고 있지만 여전히 불편하며, 주변을 둘러보는 루카스와 눈을 마주칠 배짱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테오의 아내는 아예 오지도 않았지만 이는 그토록 모질게 대했던 사람을 차마 다시 대면하기 껄끄러웠기 때문일 겁니다.


아들의 성인식을 하면서 루카스는 웃고 있지만 그들과 섞여 한마디로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저 나는 괜찮다는 듯이 미소를 지을 뿐이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불편하고 어색해보이죠.



영화는 끝에 다가오고 혼자 사슴무리를 보며 생각에 잠긴 루카스의 옆에 총알이 박힙니다. 태양빛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누군가 루카스에게 총을 쐈고 맞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자 황급히 도망갑니다. 그리곤 뭔가 깨닳은 얼굴로 영화를 끝이 납니다.



이 영화는 아동성범죄에 의해 인생이 무너지는 것과는 정반대로 아동성범죄자로 오해를 산 사람이 무너지는 영화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아동성범죄에 대해 경멸하고, 혐오하고, 두려워 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아이에 대한 편견을 꼬집고 있지요. 아이는 진실만을 말하며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제로 아이들은 거짓말을 합니다. 그리고 사리분별력이 떨어져 진실과 상상을 헷깔리기도 하죠.


사실 클라라가 묘사한 루카스 선생님의 성기는 클라라의 오빠 토스튼과 그의 친구가 방으로 가면서 아이패드로 보여준 음란물 사진이었고 루카스가 싫다며 했던 말은 그저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 거부당한 것에 대한 불편한 속내, 그리고 그런 속내를 거짓말을 섞어서 표현할 것 뿐이죠. 문제는 그것이 아동성범죄로 오인받을 만한 것이었다는 것이고.


원장은 앞서 이야기했듯, 실제로 있었는지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주변에게 알리며 그를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예 확실치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피하고 혐오하며 비난하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루카스를 바라보는 시선은 모두 경멸과 혐오에 찬 차갑고 따가운 시선들이었습니다.


원장이 다른 아이도 같은 피해를 받았는지 알려주기 위해 책자를 보냈는데, 많은 학부모가 그렇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이는 소아성애에 대한 공포로, 평범하고 매일 있었던 반응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의심하고, 그 의심은 곧 확신이 된 것에 불과합니다. 주인공이 소아성애자가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죠. 하지만 사람들은 두려워하며 그를 범죄자로 확신합니다.


아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의 집에 있던 가구, 인테리어와 지하실까지 묘사합니다. 하지만 루카스의 집에는 지하실 따윈 없었죠. 그렇게 무죄로 구속에서 풀려난 루카스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한번 낙인이 찍히면 쉽게 돌아올 수 없는 법. 집은 테러를 당하고 키우던 개는 죽은 채로 돌아옵니다. 명백한 테러이고 동물학대이자 정신적 고문인 셈이죠. 이 패니라는 개는 라디야와 교제를 할 때 잠깐 설명이 나옵니다. 주인공을 매우 따르고 한 살 때 가르친 기술도 있다고 하면서요. 클라라가 길을 잃어버렸을 때도 패니와 함께 산책하다 만나게 되죠. 클라라도 좋아했고요.


마트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이미 무죄로 판명났지만 사람들에겐 여전히 아동성애자 범죄자로 보이는 거죠. 출입금지라며 일방적으로 통보해버리고 절친이었던 녀석은 아들을 때렸던 것처럼 루카스를 두들겨 팹니다. 밖으로 나가는 루카스가 장 본 것은 가져가야겠다고 뒤돌아서자 그곳의 직원 두명은 그조차 막고 두들겨 팬 뒤 마트 밖으로 내던지고 물건을 던지기 까지 합니다.


끝까지 믿어준 친구가 했던 말, 자네는 너무 참아서 문제다라는 말을 떠올리고 다시 들어갔는진 몰라도, 피를 흘리며 마트로 다시 들어간 루카스는 자신을 두들켜 팬 친구였던 녀석에게 한방 먹이고 자신이 산 것을 가지고 집에 돌아가죠. 테오는 우연히 이렇게 피를 흘리고 돌아가는 루카스를 보게 됩니다. 이때 루카스에게 가봐야겠다는 테오를 말린 것은 그의 아내였죠.


크리스마스 이브, 교회에서 유치원 성가대의 노래를 들으며 클라라와 몇번 시선이 마주칩니다. 하지만 자신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고 자신을 오해한 클라라의 노래를 들이며 흐느끼지요. 그러면서 뒷 줄에 앉아 있는 테오 부부를 봅니다. 테오의 아내를 테오에게 계속 숙덕거리지만 더 이상 그런 따가운 시선과 경멸을 견디지 못했던 루카스는 울분에 차 테오에게 불만과 주먹질을 토해냅니다. 그렇게 쫓겨나죠.


하지만 결국 잘 마무리되었는지 1년 뒤 아들의 성인식 날엔 서로 미소짓고 악수를 하며 다시 만납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단지 그래보일 뿐, 여전히 불편하고 어색한 것은 사실이죠. 숲에서 사슴 무리를 보고 자신에게 총을 쏜 누군가를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다시는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라는 생각은 아니었을까요?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진 아직 범죄자가 아닙니다. 그렇게 대해서도 안 되죠. 하지만 우리는 그런 원칙을 너무 쉽게 무시합니다. 어쩌면 알지 못하는 것일진 몰라도, 제대로 확정나지도 않았고 확실치도 않은 이야기를 퍼뜨리고, 쉽게 믿어서는 안 됩니다. 괴담과 크게 다를 것도 없습니다. 누가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확실하지 않은 이야기에 마을사람들은 모두가 루카스를 범죄자로 보고 차별하며, 경멸하고, 혐오합니다. 그와 그의 아들을 대상으로 한 테러와 동물학대, 그리고 직접적인 폭력까지 휘둘러 그를 쓰레기로 보며 낙인을 찍습니다.


심지어 무죄로 밝혀졌음에도 이러한 낙인은 여전히 찍혀 있었고, 그렇기에 얻어맞고 마트에서 쫓겨나게 되었죠. 그렇기 때문에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해 함부로 대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단지 의혹이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은 아니니까요. 루카스는 억울한 오해를 사서 정신적으로 폐인에 가깝게 됩니다. 사회적으로 격리를 당했어요. 모두가 혐오하고 경멸하며 사회적인 단절을 가져왔죠.


정신적으로 지친 그는 교회에서 결국 자신의 감정을 터뜨렸고 말입니다. 범죄자가 아닌데 범죄자인 것처럼 낙인을 찍히고 차별받으며 사는 것이 정당하다고 보십니까? 옳다고 보세요?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그를 범죄자인 것으로 단정짓고 주변에 퍼뜨린 것은요? 그의 말을 들으려 했던 사람이 있었던가요? 그는 자신의 말을 하지도 못했습니다. 기회조차 없었고, 심지어 믿어주지 않으리라는 것 또한 알았습니다.


1년 뒤 누군가 자신을 향해 총을 발사한 것을 보고 그는 다시는 이전처럼 살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을 겁니다. 이미 한번 찍힌 낙인은, 지워지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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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얼간이. 이 인도 작품이 담고 전하고 싶어하는 메시지는 한국에선 더더욱 유효합니다. 오히려 한국에 너무나도 적절한 질문을 던지고 있지요.


모두가 공부를 함에 있어서 어떠한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고 단지 배워야 하기 때문에 배우는 것을 주인공 '란초'는 우습게 합니다. 인도 최고의 공학 대학교에 입학한 뒤 선배들의 악습에 굴복하는 다른 학생들과는 달게, 주인공 란초는 그러한 선배들을 무시하고 방으로 들어가 자신의 지식을 응용해 엿먹입니다. 모두가 단지 지식을 배우기만 했지만 응용하진 못했는데, 란초는 그러했지요.


란초의 행보는 매우 두드러졌습니다. 복종하고 흡수하기만 하는 다른 학생과는 다르게, 복종에 반항할 줄 알고 거부할 줄 알며 그러면서도 시험을 보면 최상위권, 1등을 할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죠. 그가 그러한 성적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배움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비루 교수는 인생을 레이스로 비유하며, 뒤쳐지면 끝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매우 엄하고 차가운 인물이죠. 심지어 자신의 아들이 죽은 뒤 다음날 수업을 진행할 정도로 말입니다. 조이라는 등장인물은 작품을 제출할 기간을 넘겨서 낙제하고 졸업하지 못할 위기를 맞습니다. 그래서 비루 교수에게 사정했지만.. 돌아온 것은 낙제할 것이니 시간낭비하지 말라는 말 뿐이었죠.


여기에 충격을 받은 조이는 결국 자살을 결심하게 됍니다. I QUIT. 나 그만 둘래. 라는 유언을 벽에 남기고 말이죠. 이 유언은 매우 직설적으로 전달하는 겁니다. 비루 교수가 인생을 레이스에 비유했듯, 거기서 뒤쳐진 조이는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고 생을 그만 둠을 표현하기도 하면서, 그런 레이스가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해 목숨의 무게로서 질문을 던지는 것이기 때문이죠.


이 사건 이후 주인공 란초는 비루 교수에게, 이것은 살인이다. 라고 말합니다. 비루 교수는 매우 격분하며 란초에게 반발하지만 정작 란초는 비루 교수가 죽인 것이 아닌 교육제도가 죽인 것이라고 말하지요. 그리고 그런 란초를 보고 비루 교수는 그를 수업중인 교실로 끌고가 어디 그렇게 잘 났으면 니가 수업을 해봐라. 하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란초는 그 말에 알 수 없는 단어를 제시하며, 이 단어가 무슨 뜻인지 찾아보라는 질문을 모두에게 던집니다. 수업에 참여한 모두, 비루 교수까지 포함하여 책을 뒤지지만.. 사실 이 단어는 친구의 이름으로 만든 엉터리 단어였지요. 그리고는 말합니다. 여러분은 이 단어를 찾아보라고 할 때 어떤 느낌이 드셨습니까?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기대감? 즐거움? 그런 것을 느끼진 못했을 겁니다. 우리는 그런 감정을 느끼며 배워야 합니다. 라는 요지의 말을 말입니다.


하지만 비루 교수는 이런 란초의 의견을 묵살합니다.



영화 중간에 상징적이면서도 매우 재미있는 사건이 하나 벌어지는데, 약을 먹고 주입식 공부의 절정을 보여주며 성적 상위권으로 교수들의 사랑을 받는 차투르의 스승의 날 개회 연설을 주인공 일행이 망쳐버립니다. 힌두어에 약하고 뜻은 이해하지 않고 그저 주입식으로 암기하는 점을 역이용하여 제대로 작성된 연설물에 조작을 가합니다. 헌신을 강간으로, 자금을 젖으로, 학생을 변태로 바꿔버리고 막바지엔 차투르의 약 때문에 터지는 살인똥방귀에 대한 시까지 집어넣었죠.


뜻은 이해하지 않고 그저 외워서 내뱉기만 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는 것을 매우 익살스럽게 연출한 정말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지식을 얻는 것이 즐거워 공부하는 것이 아닌 공부하기 위한 공부, 그리고 그 공부법으로 생각없이 외우기만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잘못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영화는 후반부로 향하고 비루 교수의 딸 중 하나가 산통을 겪으며 아이를 낳을 때가 임박하게 됩니다. 하지만 폭우로 인해 병원으로 갈 수 없게 되고 밖으로 나왔지만 옴싹달싹 하지 못하게 되죠. 그렇지만 이를 본 란초와 친구들은 지혜를 짜냅니다. 병원으로 갈 수 없어도, 아이는 안전하게 낳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죠.


그렇게 넓은 곳으로 가고 기숙사의 친구들을 죄다 깨워 사건을 벌입니다. 중간에 비루 교수의 딸 결혼식에 몰래 들어가 음식을 훔쳐먹다 걸릴 때 잠깐 지나간 교수님의 이름을 딴 발전기를 이용해 전기를 만들어내고, 컴퓨터로 의사인 교수의 다른 딸과 연결해서 출산을 진행하죠.


출산이 힘들어지자 이제껏 배운 지식을 응용하여 출산을 돕는 도구를 즉석으로 만들어내며 결국 출산을 무사히 마칩니다.


그리곤 비를 맞고 밖으로 나가는 란초를 잡고는, 처음 입학할 때 했던 란초의 질문. 우주공간에서 연필을 쓰면 되지 왜 막대한 비용으로 우주용 펜을 만드느냐는 질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대답하며 훌륭한 제자를 만났을 때 물려주라던 펜을 란초에게 넘깁니다.



이 영화의 메인 메시지는 너의 재능을 따라가면 성공은 뒤따라 올 것이다.입니다. 주인공의 친구인 라주도, 파르한도 자신의 재능을 따라갔고 결국 성공하게 되었지요. 돈을 얼마나 버느냐와는 상관없게, 자신의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자신의 재능으로 꿈, 자신이 되고 싶은 행복한 현재를 얻게 되었지요.


반면 훗날 내 공부법으로 성공할 것이고 그때되면 누가 더 성공해있을지를 호언하며 복수를 다짐한 차투르는 대기업의 높은 자리까지 올라 엄청난 연봉을 받게 됩니다. 그에겐 꿈이랄 것이 있었는지, 무언가 되고 싶은 것이 있을 진 모르겠습니다. 그저.. 남부럽지 않게 성공하는 것을 바랬을 지도 모르지요.


단지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본다면 그는 분명 성공했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두 친구들이 경제적으로 큰 성과를 보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이 성공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지요.



이러한 작품이 그렇듯이, 현 교육제도를 비판하면서 마땅한 대안을 내놓지는 않습니다. 너의 재능을 따라가면 성공은 뒤따라 온다. 언듯 옳은 말처럼 보이지만 누구나 성공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이런저런 이유로 자신의 꿈에 몸을 던져도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포기하게 되는 일도 쉽게 벌어지니까요.


인생은 게임이 아니고 쉽게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훗날 미래를 결정짓는 선택의 무게는 정말 무겁지요. 그런 의미에서 세 얼간이라는 작품은 어떠한 대안을 내놓는 작품이 아닙니다. 단지 어떠해야 하는가 하고 길을 제시할 뿐이지요. 



이 작품에서 보여준 인도의 교육상황은 한국과 매우 비슷합니다. 인생은 레이스이고, 뒤쳐지면 실패하는 것이며, 그런 경쟁 속에서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며 경제적 성공만을 성공의 척도로 보고 사람에게 등급을 매겨 줄세워놓죠.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이 작품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교육에 대해 생각하고, 더 나아가 직업과, 성공에 대해 생각하며 무엇이 정답일지 찾게 만드는 것.


작품의 주제를 관통하는 aal iz well이라는 곡에서 처럼 모든 일은 잘 풀릴 것이다. 너의 재능을 따라가면 성공은 뒤따라 온다. 라는 길을 제시했습니다. 너에겐 무언가 재능이 있고 그것을 따라가면 성공은 뒤따라 올 것이다. 모든 일을 잘 풀릴 것이고 마음은 바보이기 때문에 속여줄 필요도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는 세 얼간이라는 작품이 제시하는 길일 뿐이니,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어떠해야 하는가를 제시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아참, 주인공 란초의 본명은 따로 있었고 결국 가장 성공한 인물은 '란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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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적으로 말하자면, 시대의 차이는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에 별 다른 조예가 없거나 하는 경우 이러한 주제를 꽤 신빙성있고 조금 진지하게 받아 들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 자체로 의미가 없으며 이러한 대결구도에는 여러가지 문제점이 산적해 있는 데다가, 그러한 것들을 무시한다고 쳐도 나폴레옹군의 승리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시대는 절대적입니다. 몽골군이 아무리 정예라 해도 나폴레옹의 군대, 아니, 나폴레옹 시대의 군대에겐 필패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답은 정해져 있죠. 물론 전쟁, 전투라는 것이 지역, 지형, 훈련도, 사기, 보급, 인원 등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러한 것을 '대충' 넘어가고 어째서 나폴레옹군이 이길 수 있을지 이야기 해보도록 합시다.



사람들이 활이라는 무기를 거리 백미터, 혹은 그 이상의 거리에서 쏘는 것이라 착각하는데, 그것은 최대사거리이고, 실전에서 유효한 사거리, 즉, 살상 사거리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게다가 그 또한 매우 숙련된 사수를 기준으로 한 것이죠. 실전에서 활이라는 것도 결국 100m 안 쪽에서 사용 됩니다. 일설에선 약 30m 정도의 거리에서 사격한다고 하지만, 조금 더 멀 수도 있죠.


활은 총과는 다르게 멀리서 쏠 수 있지만, 그런다고 꼭 죽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맞고 죽지 않을 수도 있고, 중경상만 입을 뿐이죠. 그 또한 방패와 갑옷으로 어느 정도 방호할 수 있고 보병도 가만히 우뚝 서있을 리 없습니다. 움직이는 전쟁터 속에서 보병도 움직일 것이고, 화살은 그런 보병을 따라가진 않죠.


궁기병도 마찬가지인데, 궁기병의 주된 전술은 스웜 전술입니다. 멀리에 있다가 일시에 적의 약 30m까지 다가온 뒤 화살을 퍼붓고 다시 도망가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죠.



사람들이 몽골제국군하면 최정예의 신화적인 전투력을 상상하지만, 그 당시에는 실제로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꽤 과장된 것이고, 그들의 능력은 이후의 시대에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습니다.



나폴레옹 시대엔 머스켓과 대포가 전쟁터를 장식했는데, 이 머스켓이라는 것이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상당히 쓸만한 물건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조준을 해도 맞지도 않고, 장전시간 겁나 긴 물건' 정도로 취급하지만, 맞는 말입니다. 조준을 해도 명중률이 크게 높은 것이 아니고 한두번 장전하는데 1분 안팍으로 걸릴 정도로 꽤 성가신 물건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별 문제되지 않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전쟁이 어떻게 변화했는가, 즉 전쟁사를 어느 정도 알아야 이해가 쉽습니다.



중세 전쟁의 꽃은 기사들이고, 좀 더 정확히 하자면 기사 계급이 전장에서 사용한 플레이트 아머와 카우치드 랜스라 불리는 랜스챠징입니다. 이 플레이트 아머는 매우 단단하고 뛰어난 방어구였기 때문에 화살, 그리고 초기형 머스켓을 막아낼 정도로 기사들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래봐야 총에 뻥뻥 뚫린다는 것이죠.


초기형 머스켓의 화력은 조금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최고도로 발달한 플레이트 아머 제작기술과 맞물려 총알을 쏴도 플레이트 아머가 막아내거나 흘려내는 수준이었죠. 이것도 어느 정도 운이 따라야 하지만, 막아내긴 했다는 겁니다. 나중엔 Bullet Proof라고 해서, 실제 플레이트 아머에 총을 쏴서 총알에 맞은 자국을 냅니다. 이것은 총알을 막아낼 정도로 뛰어난 플레이트 아머임을 입증하는 증거로써, 일종의 보증이죠.


하지만 이 또한 일부로 화약을 덜 넣어서 위력을 약하게 한 채 쏜 것이기도 한지라 엄밀히 말해서 신뢰성이 뛰어나다고 하긴 힘듭니다만, 어쨋든 그렇다는 겁니다.


이런 플레이트 아머가 사장된 이유는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이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재료와 기술, 경험있는 장인이 만든 플레이트 아머라도, 어제 갓 입대한 신병의 머스켓 탄환에 뚫려 기사를 죽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죠. 그러한 엄청난 화력과 파비아 전투에서 그 실전성이 입증되자 전쟁터의 주력은 빠르게 머스켓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런 과정에서 나온 것이 바로 테르시오 진형입니다. 머스켓병과 파이크병 등으로 이루어진 이 진형도 결국 사장이 되는데, 그 이유는 보병에게 파이크를 들리느니 머스켓을 더 들려 머스켓병을 늘리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알았고, 결정적으로 총검이 등장하므로써 쐐기를 박습니다.


그런 와중에서 기사와 같은 중기병, 경기병 병과도 큰 문제를 안게 되었는데, 이 역시나 머스켓의 등장 때문입니다. 플레이트 아머가 쓸모가 없어진 것은 물론이고, 머스켓의 화력이 너무 압도적이다 보니 이전과 같은 전장의 주인공 역할을 할 수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랜스챠징을 넣으려 가까이 가니 코앞에서 머스켓의 공격을 맞게 되는 것이죠. 50m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서 왠만한 물건은 뚫어대는 머스켓의 탄환을 정면으로 견딜 수 있는 기병 따위는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당연히 기병은 측면이나 후방을 노리는 것이 옳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측면과 후방을 쉽게 내주지도 않았고, 다른 병과의 보호를 받았죠 가까이 접근한다 하여도 준비된 보병의 일제사격은 그야말로 기병의 공격을 자살행위로 만들었지요. 물론 그들이 대열을 이루지 못했거나 어떻게 하다보니 사격 준비가 되지 않은 보병에게 공격을 가했을 땐 그래도 기병이라고 상당한 피해를 입힐 수 있었지만 언제나 그런 행운을 바랄 수 없었습니다.


그것도 총검이 나온 이후에는 창병의 역할을 머스켓병이 겸할 수 있었기 때문에 기병의 돌격은 더욱 부담스러워졌습니다. 기병은 다시 고대의 보조적인 역할을 강요받았고 이전과 같은 활약을 하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렇다고 쓸모가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나폴레옹 시대에도 기병은 엄밀히 존재했고 그들의 전과가 없었다고 할 순 없으니까요. 이전 시대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하여간 테르시오 이후엔 전열보병의 시대가 됩니다. 이때의 전투는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서로 얼굴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 약 50m 안팍에서 총격을 교환하는 싸움이 됩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면서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쏘는 데도 안 맞다니.. 하지만, 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머스켓 자체의 성능인데, 이게 생각보다 안 맞는 물건은 아닙니다. 아래 영상을 보면 100야드에서 쐇을 때 8발이 명중하고, 6명이 1열 횡대로 섰을 때 3명이 맞을 정도입니다.



거기에 실은 머스켓, 조총의 사거리가 그닥 짧지도 않았습니다. 활도 최대사거리는 몇백미터 나가지만 실전에서 그러한 몇백미터까지는 의미가 없습니다. 반드시 명중하리라는 보장도 없고, 맞아봐야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입니다. 맞출 수 있어도 죽이진 못한다는 것이죠, 머스켓의 경우 죽일 순 있지만 맞출 순 없다고 볼 수 있긴 하지만 앞의, 그리고 이 아래의 설명을 보면 이해가 될 겁니다. 하여튼 총도 죽일 생각 없이 멀리 쏠 생각이면 활보다 더 나갑니다. 당연하지만 화약무기니까요.

조선에서 조총을 운용할 때에도 총통은 250보, 조총은 100보, 활은 90보에서 사격을 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도 조총의 사거리는 활보다 길었지요. 그런데 머스켓이면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스켓의 정확도가 저평가 되는 이유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총기 그 자체의 성능이 그리 뛰어나진 않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떨어지는 것도 아니죠. 의외로 쏘면 맞을만 하긴 했으니까. 게다가 유럽은 이게 그렇게 잘 맞는 물건이 아니다. 라는 이유는 속사를 통해 해결을 보고자 했습니다. 일본과 같은 동양은 최대한 잘 조준해서 잘 맞춰보다는 것으로 해결을 하려고 했던 것과는 반대죠.

게다가 당시에 사용한 화약은 연기가 많이 났습니다. 이걸 몇번 쏘기만 해도, 아니, 한번 일제사격을 하면 시계가 극히 불안정해져서 제대로 조준할 수가 없었죠. 그렇기 때문에 첫 가격은 조준사격, 그 이후로는 최대한 빠르게 속사를 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첫발 이후로는 딱히 조준사격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더불어 일제사격이라는 것은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각각의 동작을 수행한 뒤 발포하는 것인데, 신병이 많을 수록 이런 구령에 따라 동작을 따라가는게 잘 안 됩니다. 그렇다보니 뭔가 과정을 빼먹었기 때문에 발포를 해야 하는데 정작 총알은 안 나가는 상황이 몇몇 발생하지요.

또한 신병들의 살인에 대한 거부감도 있습니다. 적이라도 사람을 죽인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 병사들이 땅이나 허공을 조준하고 발사하는 일도 있었죠. 비록 그 수가 많은 것은 아닐지라도 그러한 사례를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원인이 되어 그렇게 가까이에서 쏴도 잘 안 맞는 머스켓의 이미지가 굳어진 것이죠. 실제론 그렇게 잘 안 맞지도 않았고 그렇게 사거리가 짧았던 것도 아닙니다. 조총이라는 것이 날아다니는 새도 떨어뜨리는 총으로 정확도를 상징하는 겁니다 . 다만 강선이 없었기 때문에 멀어질 수록 기대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실전에서 유효한 사거리가 50m 안팍이 되었던 것이지요. 


이 시대의 더 중요한 병기는 바로 대포입니다. 대포는 시대가 갈 수록 점점 더 많이, 더 자주 사용됐는데, 대포 한 문은 머스켓 천 정과 맞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장의 신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대포가 퍼붓는 화력은 압도적이었고 멀지 않은 거리에서 발사하는 산탄, 캐니스터탄과 같은 탄은 보병에게 공포였죠. 영화에선 단순한 쇳덩이를 날리고 그 조차 제대로 안 맞고 보병을 사이에 떨어지지만, 그것은 영화적인 연출에 불과하고 대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만약 대포가 쓸모가 없었다면 그것은 실전에서 별 의미를 갖지 못했으니 사라져야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점점 더 많이 사용되었다는 것은 그만한 가치를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죠. 실제로 그랬고요. 유럽 근대의 전투에서 대포가 전열보병을 쓸어버리는 일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전장에서의 포병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일라우 전투를 예로 들 수 있는데, 프랑스군이 패배를 모면할 수 있었던 것고 뮈라의 기병대가 포병을 쓸어버렸기 때문이고, 워털루 전투에서 프랑스군의 실책 중 하나가 기병대가 적 포병을 습격한 후 대포를 망가뜨리지 않은 것이죠.


더불어 실제 역사에서도 근거를 꽤 건질 수 있었는데, 몽골 군대가 대륙을 휩쓸고 지나간 이후 몽골이 분열되고 이후 여러 후계제국이 생깁니다. 4한국, 혹은 4칸국이라 불리는 국가들이 그러한데, 이 중 하나인 일 칸국이 지리적으로 이슬람쪽과 가깝습니다. 그래서 싸우기도 자주 싸우고 그런 동네죠. 그런 일 칸국이 망하고 난 뒤 몽골의 후계를 자처하는 국가가 바로 티무르 제국입니다.

이 티무리 제국이 박살을 낸 것이 오스만 제국인데, 그렇게 오스만 제국이 박살이 난 뒤 머스켓과 대포 등을 도입하는 등의 자체 개혁이 계속되더니 결국엔 티무르 제국이 멸망하고 난 자리에 생겨난 백양 왕조나 사파비 왕조를 박살을 냅니다. 몽골 시병식 전투방식은 이미 화포와 머스켓 중심의 화력 위주 방식에 박살이 난 것이 이미 오스만 제국 시절이라는 것이죠. 

이것은 동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북원 멸망 이후 몽골제국의 후계자는 오이라트와 타타르 계열입니다. 그 중에서 오이라트 계열이 최후의 유목제국인 준가르를 세울 정도로 나름 번성한 집단인데, 몽골의 확실한 후계라 할 수 있는 그들 조차도 강희제 당시의 청나라에게 쳐발리고 다녔습니다. 물론 그들도 조총과 대포로 무장했지요.

그렇게 그보다 강할 나폴레옹과 몽골제국의 싸움은 어떻게 될지 뻔하지요.


나폴레옹도 그 자신이 매우 뛰어난 인물이지만, 그가 아니라도 이미 시대의 차이는 절대적입니다. 몽골제국의 군사는 가까이 오기도 전에 대포의 포격에 큰 피해를 입을 것이고, 기병 또한 마찬가지에 나폴레옹 시대의 머스켓 보병에게 다가가면 머스켓의 사거리 안에 들어오게 되며, 그들의 화력을 견딜 것을 강요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수히 쓰러져 죽겠지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 그들은 머스켓과 대포로 무장한 군대를 경험해 본 적 없다는 것입니다. 근대시대의 말들은 머스켓이나 대포의 발포음에 어느 정도 훈련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놀라지 않고 명령을 잘 따를 수 있지요. 

하지만 몽골제국의 말들은 그런 것들을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몽골군 그 자체도 말이죠. 대포, 머스켓 사격음에 말들은 놀라서 날뛸 것이고, 대포의 강력한 포격을 경험해보지 못한 보병들은 금세 무기를 버리고 도망가기 바쁠 겁니다. 어떻게 말들이 놀라 날뛰지 않는다 해도 가까이 다가가서 유효한 타격을 입히기도 전에 더 큰 피해를 입고 무너질 것이고 그렇게 패배는 이미 예약된 것이죠.

활보다 강한 권총을 쓰는 카라콜 기병대를 쓰던 이집트 맘루크 기병대도 나폴레옹군 밀집보병과 대포의 일제사격에 무너졌는데, 그보다 약한 화력을 지닌 경기병의 스웜 전술은 이미 그 의미를 잃습니다.


어차피 if놀이에 불과하지만, 시대의 차이는 절대적입니다. 2차대전의 미군이라고 해도 현대의 한국군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물량과 바다를 건널 수 있음은 의미없어요, 이미 병기의 수준이 수세대이기 때문에, 그들은 멀리서 쏘는 미사일에 항공모함이고 전함이고 수장될 것이며 공군도, 보병도 마찬가지로 아주 먼거리의 더 뛰어난 화력에 공격을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박살날 것입니다. 정보전도 이미 한국의 장비가 더 우수하고.

여기서 문제는 우리가 미국까지 타격할 수 있는가이고, 그들의 끝 없는 물량을 떨어뜨릴 미사일, 탄환이 충분하냐는 것이겠죠. 아 물론 핵무기는 제외하겠지만 그래봐야 떨어뜨리러 오는 동안 격추당하지 않을까 싶군요. 



마지막으로 영상 몇가지, 하나는 쇼군 토탈워 2 : 사무라이의 몰락에서 재현된 열병기로 무장한 영국군과 냉병기로 무장한 전국시대 군대의 싸움입니다. 어느 정도 게임적으로 설계된 성능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도, 이것은 전혀 무리가 없는 영상입니다. 


다른 하나는 1964년 작 줄루Zulu하는 작품에서 묘사된 로크스드리프트 요새 전투인데, 앞서 벌어진 이산들와나 전투에서 후장식 소총과 대포에 로켓포까지 보유한 영국군 1400여명에 줄루족 전사 2만이 달려들었는데 영국군이 줄루족을 너무 깔보다 병기의 우위를 제대로 살려보지도 못하고 박살이 납니다. 이후 줄루족은 이산들와나에서 영국군을 격파한 여세를 몰아 로크스드리프트 요새에 주둔한 영국군 130여명을 마저 처리하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열병기로 무장한 군대가 이미 준비를 마치고 있다면 어떻게 되는 지를 확연히 드러냅니다. 기관총도 없이 축성진지에 틀어박힌 130명의 병력으로 막아냅니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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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정부와 언론에 대한 권위가 바닥인 이 나라에서 관련 음모론 하나둘 쯤 안 나오는게 어디 이상한 일이냐마는 최근 음모론적 사고방식을 가진 이와의 대화, 그리고 음모론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 등등해서 한 마디 글 쓰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 사실 이런 음모론이 하루 이틀 나온 것이 아니죠. 까놓고 말해서.. 정부, 혹은 보수나 우익이라는 집단이 해온 역사라는게 있어서 조작이나 은폐, 왜곡 따위가 진짜로 밝혀진 것들이 있고 그 내용이 상당히 충격적이기도 한 것들이 많아서 솔직히 저도 유병언 관련 음모론이 사실로 밝혀진다거나 심각한 조작, 은폐 따위가 진실로 드러난다고 해서 그렇게 충격을 받을 것같지도 않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선거와 의료보험 관련 이슈가 도는 지금 이 상황에, 왜 하필 지금 유병언 시체가 발견되었느냐, 왜 하필 아들 유대균이 잡혔느냐, 그리고 유병언의 시체가 얼마만에 백골이 됐고 지문은 어떻고 등등..


솔직히 나올 수 있을만한 이야기들이긴 하죠. 그것이 모아져서 만들어진게 음모론이고.. 문제는, 우리가 그에 대한 반박과 해명을 제대로 들었느냐입니다.


먼저, 관련 반박과 해명이야 검색하면 충분히 나오고 그게 잘 정리된 사이트도 있으니 여기서 다룰 것은 아니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생각없이 너무 의심만 하지 말자는 것. 물론 의심하는 것은 필요하죠. 거짓말할 수도 있고 조작에 은폐할 수 있고.. 하지만 우리 수준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기자와 경찰, 검찰도 생각하고 있으며 사건이 크고 대중적일 수록 그러한 인위적인 무언가가 밝혀질 확률은 굉장히 높아지는데, 세월호 사건 당시 언론에 의해 밝혀진 여러 은폐, 조작, 왜곡 사안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누리당-국정원-청와대-사이버사의 SNS 및 댓글조작마저도 터져나온 것을 보면 우리는 이러한 조작, 은폐, 왜곡 따위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어요. 만약 유병언 관련해서 무언가 뒷공작 따위가 있었다면 그것들은 얼마 안 가서 기자들과 경검에 의해 까발려질 겁니다. 더러운 정부의 수많은 뒷공작이 대부분 뽀록났듯이요. 특히 이런 대중적인 사건에선 더더욱.


누군가 말하듯이, 언론은 정부의 나팔수고 경검도 정부의 개인데 그럴리가 있느냐면 앞서 전술했던 국정원 사건은 어쩌다 터져나온 것인지부터 설명해야겠지요. 애초에 그런 초월적인 능력을 지닌 정부 따위는 반미 음모론자들이 잘 써먹는 논리구조라는 것부터 알았으면 좋겠지만요.



유병언 관련해서 나오는 음모론은 그저 망상일 뿐입니다. 애초에 우리가 그러한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것부터가 사실 큰 의미는 없어요. 그만큼 관심도가 높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지 그 이야기들이 무언가를 밝혀낼 수 있을리가 없거든요. 노무현때도, 천안함때도 수많은 이야기가 나왔고 음모론들도 왕왕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어떻게 됐죠?


노무현은 정말로 자살한 것이고 천안함은 정말로 북한이 격침시켰어요. 그에 대한 증거는 이미 수두룩하고 아직도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은 그 증거를 철저히 무시하고 거짓되었다, 조작되었다, 왜곡되었다 따위의 헛소리를 나불 댈 뿐이죠.


이번 사건과 마찬가지로, 그런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주제에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할 것은, 쓸데없는 음모론을 주장하거나 빠지는 일은 지향하고 드러나는 팩트들만 집중하자는 겁니다. 현재 진행되는 사건은 언제나 말이 많고 이것저것 뒤집히는 것도 있으며 나중에 가서 더 밝혀지는 것들도 있기 때문에, 뭐든지 사건이 진행되는 와중에는 말을 아끼고 판단을 성급히 하지 않으며 나중에 사건이 끝나갈 무렵이나 끝난 뒤에 확실히 판단하고 알아두는 것이 맞습니다.


과정 중에 무언가 잘못되었다면, 예컨데 실수가 있었거나 조작, 은폐 시도가 있었다거나 잘못된 행정지시가 있었다던가 하는 일이라면, 당연히 비판하고 꼬집어야할 부분이긴 하지만, 그런 사건 그 자체와는 다른 부분이 아닌 쪽은 쉽게 건드리지 말자는 겁니다. 앞서 말했듯이, 떠드는 우리가 직접 진실을 밝혀낼 것이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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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글은 작품의 내용과 결말을 품고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신다면 작품를 본 뒤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뤽 베송 감독의 1999년작 잔 다르크를 봤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실망이었습니다. 원래 기대했던 내용이나 연출과는 동 떨어진 영화였어요. 개인적으로 조금 더 신성하고, 고전적이나 압도적인 연출로 잔 다르크의 성인으로서의 면모, 초월적 카리스마의 존재감을 지닌 초인으로 그려질 줄 알았습니다만..


열어보니 신성하지도 않고, 카리스마도 없으며, 그저 미친여자처럼 보일 뿐이었습니다. 솔직히 그녀가 전장이 도착하고 난 뒤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러웠고, 그녀가 지휘했던 전투마저 투렐 공성전에선 처음엔 실패로 돌아갔죠. 맨 처음 그녀가 전투를 벌였을 때, 자기만 빼고 전투를 시작했다고 하며 뒤늦게 도착했을 때는 나름의 개연성이 있었습니다. 지휘관들은 그녀가 혼자 전장터로 나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을 것이며, 병사들은 신의 계시를 받은 사자가 나타났으니 사기가 오를 수 있었죠. 그리고 혼자 넘어가 다리를 열었으니 그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투렐 공성전때 처음엔 실패했고, 심지어 자기 자신도 크게 다쳤죠. 그녀가 약속했던 승리는 실패로 돌아갔고, 신이 보호해줬어야 할 사자는 화살에 맞았으며, 프랑스군은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죠. 그런데 다시 그녀가 싸우자고 하니 다시 무기를 들고 사기를 높히고 지휘관들도 곧바로 찬성하며 따랐습니다. 전번의 승리가 있었다곤 해도 이건 있을 수 없는 개연성이라고 봅니다.


분위기도 모른 채 지치고 부상당해 널브러져있던 병사들에게 뜬금없이 일어나 무기를 들고 싸우라는 신의 사자가 좋게 보일까요? 전혀 압도적인 카리스마 따위는 보이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또 개활지에서 영국군에게 물러나라고 하던 것도 이상했습니다. 자기 혼자 나와서 물러가라, 그렇지 않으면 영국군은 모두 죽어 여기 묻힐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물론 거의 빌다시피하는 어조로 했지만, 영국군 장군은 그냥 물렸죠. 뭐, 어쩌면 두번의 싸움에서의 패배로 잔 다르크를 이해는 안 돼지만, 뛰어난 지휘관으로 여기고 물러 났을 지도 모릅니다만, 연출을 보면 전혀 아니죠. 그녀의 말에 굽히고 후퇴한 것 뿐.


차라리 잔 다르크가 제발 싸우지 말자, 서로 도움되지 않는다, 서로 피를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등으로 평화와 상호이익을 이야기했다면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당시 잔 다르크는 전번의 승리에서 너무 큰 충격을 받았기에, 마치 미친 것처럼, 빌다시피 협박하며 물러가라고 했을 수도 있겠지만..



역사에서의 잔 다르크와 비교하자면, 먼저 가난한 농부는 아니었고 부유한 부농까진 아니지만 끼니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던 집안의 막내였죠. 영화와는 다르지만, 통설이라는 것도 있고 영화의 연출적 측면에서 넘어가는게 좋겠죠. 그녀는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하루에 3번이나 고해성사를 할 정도로 묘사되었으니 맞는 묘사라고 할 수 있겠죠.


잔 다르크가 샤를을 만날 때 샤를은 반신반의하며 시종에게 화려한 옷을 입히고 자기 자리에 앉게 하고, 자신은 초라한 옷을 입고 구석에 숨어서 잔을 지켜봤다고 했죠. 이때의 연출부터 솔직히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당당하고 여유로운, 그야말로 신의 사자로서의 풍모를 지닌 아름다운 소녀가 시종을 보고는, 당신은 왕이 아니다. 라고 하며 곧바로 고개를 돌려 살피고는 딱 왕의 얼굴과 마주치자 그에게 걸어가 무릎을 꿇고, 신께서 보낸 사자로서, 당신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같은 대사를 했다면 훨씬 멋졌겠지요.


첫 전투때도 마찬가집니다. 프랑스군이 패주하는 와중에 성에서 하얀 갑옷과 하얀 말, 그리고 자신의 깃발을 들고 달려오는 잔 다르크의 뒷모습에 아침해가 찬란하게 비추어 더욱 화려하고 신성함을 더해주며, 그렇게 잔 다르크를 얼빠진 얼굴로 바라보는 병사들 옆을 멋지게 지나친 뒤 과연 신의 사자다! 신께서 우리를 보호하실 것이다. 라는 생각을 심어주게 만들어 사기를 높혀 다시 전쟁터로 나가게 만드는 연출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보고,


오를레앙을 탈환한 잔 다르크는 잉글랜드에 충성서약을 하고 트루아 조약을 지지해서 프랑스 왕실의 의심을 사던 리슈몽 백작이 이끌던 군대와 만나 그에게서 니가 성녀라도 두렵지 않고 마녀라면 더 두렵지 않다. 라는 말을 들었지만, 영화에선 이 부분을 넣고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초인으로서의 풍모를 보여 그에게서 충성을 바치는 모습을 이끌어냈다면 잔 다르크를 한층 깊이있게 표현할 수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더불어 투렐 공성전 이후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전장의 참혹함에 얼이 빠져 있다 포로를 죽여 이빨을 뽑으려는 병사를 말리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모르는 여자로 표현하기 보다는 실제 잔 다르크의 일화인 가능하면 학살을 자제시키고 전장에서 죽어가거나 부상당한 영국군을 직접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며 위로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더 아름다웠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몰락 또한 좀 더 극적이고 인간중심의 정치적 요인을 풍부하게 표현했으면 좋았을 것 같았습니다. 프랑스 전역을 돌며 왕실에 돌아올 것을 호소했고, 이는 그럭저럭 먹혔지만, 그건은 성녀라는 이미지를 통한 것이므로 그녀의 말 한마디가 왕실을 위협할 수 있을 것이죠. 그러한 부분을 표현하며 그녀가 프랑스 왕실에 위험하고, 실질적으로 위험을 초래하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는 식으로 흘러가며 기승전 구도에서 결을 향해 흘러갔으면 좋았을 것이라 봅니다.


파리 공선전 때 파리 시민들이 잔을 향해 괴물, 마녀, 창녀 등으로 욕을 하며 허벅지에 화살을 맞고 이후 그녀가 무너질 것을 예감하게 하면서도, 생피에르르무티에를 함락시키곤 프랑스 병사들의 약탈을 엄하게 막고 주민을 지켜주며, 휴전기간 동안 부르주에서 빈민 구제하는, 여전히 성녀인 모습을 부각시키며 파리로 호송되어 이단심문관에게 재판을 받을 때의 모습을 역사에 나왔던 그대로 했으면 어땟을까 합니다.


잔 다르크가 이단 재판을 받을 때의 일화가 굉장히 재밌는데, 주교 이하 신학 전문가 70여 명의 이단심문단이 만들어져 잔 다르크의 혐의를 입증하거나 자백을 받아내려고 했는데, 그들 모두 실패했거든요. 머릿수도, 재판의 성립과 과정까지 당시 기준으로도 말이 안 되게 불공평했지만 일자무식한 시골 소녀인 잔 다르크에게 모두 말로서 졌다고 합니다.


예컨데, 검과 깃발 중에 어느 것이 더 좋냐는 질문에 사람을 죽이는 것을 피하기 싫어서 깃발을 들었으며, 한 번도 사람을 직접 죽인 적이 없다고 대답했으며,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있느냐는 질문엔 만약 제가 은총의 상태에 있지 않다면 하느님께서 제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만약 제가 은총을의 상태에 있다면 하느님께서 제게 계속해서 은총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라고 말했죠.


이는 은총을 받았다고 하면 함부로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수 없다고 몰고 갔을 것이고, 반대로 없다고 말한다면 저주에 들렸다고 몰아갈 의도로 파놓은 함정이지만 도리어 역공을 먹인 셈이었죠.


결국 잔 다르크는 남장 혐의를 추궁했는데, 그것은 성경에 위배되는 종교적 범죄였습니다. 잔 다르크는 그것을 순결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항변했지요.


이후 그녀를 바라는 백성들과 그녀를 차갑게 내치는 왕실과 그녀에게 어쩔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게 만드는(다시 남장을 하게 만드는) 등 철저하게 잔을 불리하고 죽음으로 몰아가다 끝끝내는 화형 직전까지 신의 이름을 부르짖다 인간의 이름으로 죽음을 이르게 하는 장면을 극적으로 뽑아냈다면 정말 멋진 영화가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실제 잔 다르크가 그랬듯, 죽기 직전에도 자신을 화형대로 몰아넣은 사람들을 용서한다고 말하면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반부는 꽤 괜찮았고, 영화 자체도 제가 기대했던 것들을 제외하고 좀 더 무신론적이고 인간적으로 본다면 괜찮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신은 없었고, 그녀는 무식하지만 용감했던 소녀였으며, 미친여자로서 전장을 이끌었고, 결국 자신의 환각과 환청을 신의 암시라 믿으며 신의 사자를 자칭했을 뿐이었던 것이죠.


실제로 영화를 본다면 그렇게 연출되어있습니다. 전장에선 미친 여자처럼 소리지르며 병사들에게 싸우라 성벽을 오르라 외치고, 말에 타 칼을 머리 위로 휘두르며, 무식한 여자처럼 피로해 지쳐 널브러진 병사들에게 일어나 무기를 들라고 소리지르며 명령하죠.


전투를 치르는 와중에도 환각을 보고 가끔은 소리를 지르며 제정신을 차리는, 그녀는 신의 사자가 아니라 미친 여자였던 겁니다. 이단 재판을 받으며 감옥에 갇혀 자신의 환상과 말싸움을 하는 장면은 가히 잔 다르크가 미쳤음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실제로 그녀가 성녀로서 전쟁을 이끌며 프랑스에 승리를 가져다줬지만, 전투 중에 그녀가 이미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음을 암시하는 피 흘리는 예수의 환상을 보았고, 감옥에서도 그녀는 환상을 보며 그녀의 행동과 주장이 반박당하고 조소당하며 신은 잔에게 무언가 시키지 않았으며, 암시 따위는 자기 멋대로 생각해낸 것들이고, 심지어 누군가를 죽이는데 즐거움까지 느꼇음을 깨닫게 하며 철저히 압박당하지요.


감옥에 갇혀 자신의 환상과 논쟁하고 화형에 처하는 장면은 가히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밀라 요보비치의 광기와 공포에 휩쌓인 연기를 정말 멋졌고, 확실히 볼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사실 신은 존재하지 않았고, 아니, 어쩌면 존재했지만 잔이 잘못 이해했거나 잔은 전혀 본 적도 없었을지 몰랐습니다. 무식하고 미친 여자였고 그녀가 전쟁을 이끌고 승리한 것은 그저 우연이었을지도 몰랐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신성함과 장엄함, 당당하고 압도적 카리스마를 지닌 초인으로서의 소녀가 아닌, 인간이었고 환상이었으며, 인간이었고, 정치로서 살해당한 소녀의 모습을 그려냈지요. 수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대했던 것과는 많지 다르지만, 다른 방향으로서 상당히 재밌는 영화지요. 역사에서의 잔 다르크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전쟁을 이끌고 승리를 얻어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정말 신의 사자였는지, 아니면 단지 과대망상이나 환각, 환청 따위를 듣던 정신병 환자였던지는 몰라도, 그녀의 활약은 인간의 정치 속에서 죽었지요. 이 작품은 이 문장의 표현대로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괜찮은 수작이라는 것을 인정해야겠군요. 좀 오래된 작품이지만(사실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지만..) 추천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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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글은 작품의 내용과 결말을 품고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신다면 작품를 본 뒤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If technology is a drug – and it does feel like a drug – then what, precisely, are the side-effects? This area – between delight and discomfort – is where Black Mirror, my new drama series, is set. The "black mirror" of the title is the one you'll find on every wall, on every desk, in the palm of every hand: the cold, shiny screen of a TV, a monitor, a smartphone."


"만약 기술이 마약이나 마찬가지고, 사용되기도 마약같이 사용되고 있다면, 그에 따른 부작용은 무엇인가? 불안함과 즐거움 사이의 모호한 존재가 바로 블랙 미러다. 타이틀에 나오는 '검은 거울'은 모든 벽과 책상에 있고, 모든 사람의 손바닥에 있다: 차갑고 번쩍거리는 텔레비전 화면, 모니터, 스마트폰이 바로 '검은 거울'이다."


-가디언지에 실린 찰리 브루커의 인터뷰.-


블랙 미러라는 영국 드라마는 기술의 부작용에 대해 풍자하는 드라마입니다. 처음 볼만한 것들을 찾아가 발견하게 된 작품인데, 주제가 주제인만큼 저에게 큰 관심을 끌게 만들었죠. 아직은 시즌1만 봤지만, 3개 모두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1화가 상당히 충격적이었죠..



기술이라는 것은 나날히 발전하지만, 인간은 수천년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본능과 사고방식을 가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에 불과한지라, 발전된 기술을 오남용하는 것이 불러올 파장을 생각하면,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2, 3화는 미래의 기술이지만, 1화는 시기적으로 현재이고 현재 있는 기술, 매체를 악용한 것을 다루고 있죠.


지금은 단지 드라마속 이야기일 뿐이지만, 이러한 발전된 기술의 부작용, 오남용은 충분히 있을 수 있고, 여전히 경계해야 하는, 아니.. 오히려 지금도, 앞으로도 더욱 경계해야함을 시사한다고 봅니다. 1화의 일은 너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동시에 매우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저에게 충격을 줬던 1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느 미친놈이, 영국 공주를 납치한 것을 트위터와 유튜브를 통해 중계, 공개합니다. 그리고 납치범은 영국 수상에게 돼지와 수간하는 것을 생중계로 보도하라는 요구를 하게 되죠. 당연히 정부에서는 보도를 통제하려고 하지만 이미 삽시간에 인터넷에 퍼지게 되었고, 몇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전세계인에게 이 정보가 공유됩니다. 납치범을 추적, 검거하려는 시도는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결국 별 수 없게 되자 수상은 어쩔 수 없이.. 납치범의 요구대로 생중계로 돼지와 섹스를 하게 되죠.


그 장면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처음엔 정말 방송한다고 하니 TV앞에 모여 좋아하며 수상을 비웃고 낄낄대지만, 이내 행위가 절정으로 향함에 따라 모두 충격을 받고 얼어붙지요. 이 방송은 전세계 13억명이 보게 됩니다.


그러나 공주는 예정된 시간이 되기 전에 풀려나고, 범인은 방송을 보고는 자살해버리게 됩니다.


수상은 돼지와의 섹스 후 구토를 하게 되고, 얼마 뒤 지지율이 상승하지만, 아내와의 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됩니다.



시작은 미친놈의 범죄로서 시작되었지만, 그 쇼의 판이 커지고 걷잡을 수 없게 된 것은 기실 대중과 그 대중의 눈과 귀가 되어준 트위터, 유튜브 같은 매체들 덕분이지요. 물론 트위터와 유튜브가 나쁘다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전파과정은 당연 재미, 흥미 따위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하지요. 마치 마약같이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브루커의 말과 같이요.


물론 공주 납치, 수상의 돼지와의 수간이라는 주제는 모두의 흥미와 관심을 끌 수 있는 주제이긴 합니다만.. 



역시 기술에는 항상 윤리가 따라야하고, 오남용에 대한 경계와 어느정도의 대비책, 기술을 악용하지 못하게끔 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실, 2화는 그렇다치고 1화와 3화는 일상과 사람들에게 있어서 매우 도움이 되고, 필요하며 큰 가치를 지니지만 그것이 악용되었을 때 나타난 결말은 매우 비참하고 잔인하지요.


굳이 기술이 아니더라고 윤리나 도덕, 무언가를 오남용하거나 악용하는 경우가 많고 그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이 부족한 한국에 있어서 더욱 어울리지 않을까 싶은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물론 기술이라는 분야에 대해서도 적절히 들어맞고 말이죠.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찰리 브루커의 작품이었습니다.


혹시 같은 주제에 대한 관심, 혹은 이러한 구성의 드라마를 찾는 분이라면 주저없이 추천하고 싶군요. 굳이 저와 같은 흥미거리를 공유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드라마로서 매우 훌륭하고 재밌는 작품이기에 역시 추천합니다.


개인적으로 2화와 3화 또한 매우 재밌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리뷰를 올리고 싶지만, 특별히 쓸 말이 떠오르지 않고 줄거리만 쌈박하게 요약할 것만 같아서 이렇게 리뷰해야겠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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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글은 작품의 내용과 결말을 품고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신다면 영화를 본 뒤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보통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 해보았을 상상, 자신의 정신을 기계로 이식하는 것을 작품의 주요 요소로 한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재미있는 상상을 주제로 한 작품을 좋아하는데, 이 작품도 나름 그런 흥미로움을 긁었다고 할 수 있죠.



자아를 가진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을까.


작품내에서도 나왔듯이, 인간의 의식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모르고서는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미 있는 시스템, 인간(혹은 원숭이)의 의식을 컴퓨터로 이식하는 방법을 이용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것은 성공하지요. 주인공의 친구인 맥스는 그것에 대해 의심합니다. 정말로 내 친구인 윌인가, 아니면 윌과 비슷한 다른 존재인가. 


사실 이것은 매우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의심입니다. 만약 업로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윌의 근사치를 가진 다른 존재라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어떠한 이유로 윌의 기억과 경험의 대부분을 알고 있지만, 몇가지가 부족하여 전혀 다른 존재일 수 있다는 겁니다. 예컨데 히틀러와 매우 비슷한 경험과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그저 동물애호가가 될 수 있고 배트맨의 경험과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악당일 수 있지요.



인간을 초월한 지성.


윌이 수퍼 컴퓨터로 업로드 된 이후 그가 만들 것들을 생각해봅시다. 아주 대단한 것들이죠. 식물은 다시 살아나고 부서진 물건이 다시 원형으로 복구된다던가, 더러운 물이 아주 깨끗하게 정화됩니다. 그리고 말하지요, 의학적 응용의 한계는 사라졌다고. 이건 정말 대단한 겁니다. 더 이상 인간에게 육체적 장애는 사라진 것이 되니까요.


실제로 강도에 당해 죽을 뻔 한 사람을 거의 부활시키고 그 육체적 능력을 인간 이상으로 만들어줬죠. 그리고 많은 장애인들을 치유해주기도 했습니다.


위에서 나온 것들이 현실에 적용 된다면, 그야말로 인류학적으로 혁명과 같을 것입니다.



PINN은 선악을 구분하지 못했다.


주인공이 업로드 되는 수퍼컴퓨터의 인공지능인 PINN은 선악을 구분하지 못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저 충성했다고 하죠. 만약 윌이 정말 인간성을 가진, 정신을 가진 인간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윌과 비슷한, 그저 인간과 비슷할 뿐인 인공지능의 프로그램일 뿐이라면 인간은 인공지능의 판단을 예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이로봇에서처럼, 인간을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대해석하여 인간을 강력한 통제하에 두려는 시도와 같은 '인간이라면 하지 않을' 행위를 저지를 수 있겠죠.


그리고 윌은 자신의 인부들의 신체능력을 향상시켜주되, 그들에게 접속하여 그들의 육체를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됩니다. 다른 이의 몸으로 에블린과 대화, 신체접촉을 시도하는 윌의 의지는 언듯 매우 위험해보이기도 하죠. 게다가 그에게 치료 받는 사람들과, 나중에 나올 육체까지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그를 경계하는 이들이 말하듯이 초인 군대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예상 또한 못할 것도 아닙니다.



윌은 인간인가.


작품이 중반을 넘어가며 윌이 인간성을 가진 존재인지, 혹은 비슷한 근사치를 지닌 프로그램일 뿐인지 우리 스스로 의심하게 됩니다. 초인적인 육체능력을 지닌, 그리고 네트워크화 되어 윌의 의지에 따라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인부들, 에블린의 몸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을 스캔하여 감정을 읽어내는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행동. 그는 과연 인간일까요?


정답은.. 인간이었습니다. 업로드된 윌을 윌이 아닌 윌과 비슷한 인공지능이라고 판단한 '육체를 지닌' 인간들은 그를 위협요소라 여기며 공격을 시도했습니다. 에블린은 몸 속에 바이러스를 품고 윌과 접촉하죠. 윌은 그런 에블린을 의심을 하죠. 왜 다시 돌아왔을까, 왜 땀을 흘리고 심장이 고동칠까, 날 두려워하고 있지 않은가. 공격이 시작된 순간까지 질문을 하는 윌의 모습은 끝까지 관객으로 하여금 윌이 인간인가를 의심하게 하지만, 이내 공격에 상처를 입은 에블린을 안으로 대려간 윌은 그녀를 업로드시키며 동시에 바이러스를 받아들입니다.


그녀와 함께 죽으며 그녀에게 자신이 하고 있던 것들, 그리고 하려던 것을 보여주죠. 나노 입자들이 대기중에 퍼져 오염힘자를 제거하고, 숲은 다시 자라나며, 물은 너무 맑고 깨끗하여 아무 강에서나 마실 수 있는 세상. 그녀가 원했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단지 질병의 치료할 뿐 아니라 지구를 치유하는 것. 그것은 윌이 사랑한 그녀, 에블린이 원했던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윌이 자신의 기술력을 이용해 세상을 지배하려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판이었죠. 윌은 인간처럼 보이는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적 판단을 할 줄 알았던, 뛰어난 지성을 가졌을 뿐인 인간이었고, 그렇게 자신이 사랑한 여자와 함께 죽음을 맞이 합니다.


윌은 네트워크화 시킨 마을 사람들과 자신의 기술을 이용해 군인들을 무력화 시켰지만, 아무도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에블린의 몸 속에 넣은 바이러스에 의해 윌은 죽게 되고, 그의 복제를 심어뒀던 모든 인터넷은 오류를 일으키며 세상은 어두워집니다.


그러나 죽은 해바라기는 다시 싱그럽게 피어나고, 공기는 맑아졌으며, 물은 정화되었죠.


사실 이러한 오해는, 윌의 모습에 의해 더 촉발된 감이 있다고 봅니다. '육체를 가지지 않은, 네트워크에 살고 있는 정신'. 육체가 없고, 단지 정신이 컴퓨터에 업로드 되어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인간임을 의심받았던 것이죠. 처음 PINN에게 했던 질문, 너에게 자각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가? 에 대해, 윌은 PINN과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 질문에 대답은 윌이 그것을 증명할 수 없음이라 판단했지만, 사실은 에블린의 말처럼 그것은 정말로 유머였을 뿐이었던거죠.



훗날 인간이 정말로 의식을 업로드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온다면, 우리는 똑같은 고민과 의심을 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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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거짓말을 했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기억이 잘 안 날지도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유치원에 다니던 어린 시절부터 거짓말을 하는 법을 배우지요. 사실 그것은 누구에게 배운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누구에게 배우고 할 것도 없이, 그저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지요.


거짓말을 한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 이유를 알면 왜 거짓말을 하는지도 알 수 있지요. 어린 아이가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 아이는 유리컵을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위험하니 그러지 말라는 엄마의 말에도 신경쓰지 않고 놀다 실수로 그 컵을 깨뜨려버렸습니다. 너무 무섭고 놀란 아이는 엄마가 이걸 봤을 때 어떨지 대충 짐작이 갈 수 있겠지요. 왜 엄마 말을 안 듣고 컵을 깨뜨리냐는 야단을 맞을까 무서운 아이는 자기가 안 했다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즉, 책임에 대한 회피로써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겁니다.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두려워, 자신이 하지 않았다, 혹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했다는 식으로 책임에게서 회피하려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이는 나이를 먹어서도 무언가 책임지는 일이 다가왔을 때, 그 책임이 자신에겐 너무 무겁거나 두려워서 피하려 할 때 똑같이 나타납니다.


다른 양상은 자신에게 이득이 될 때인데, 친구가 가져온 카드나 팽이가 너무 탐이나 몰래 슬쩍하고는 혹시 못 봤냐는 친구의 말에 못 봤다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친구는 그것을 찾지 못할 것이고 결국 포기하게 되는데 그때까지 들키지 않으면 자신의 것이 되겠죠. 욕심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거짓말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거나, 자신에게 피해가 될 때 하는 행동입니다. 자신이 책임지기 싫을 때, 무언가 얻게 된 방법이 공정하지 못할 때.


이 이득이라는 것도 연장선상에선 후자에 포함되는데, 친구의 팽이를 훔쳤는데 자신이 훔쳤다는 것이 들켰을 때 돌아올 평판, 신뢰에 대한 손해와 자신이 훔친 팽이를 다시 돌려줘야 되기 때문이지요. 결국 남는 것은 자신의 평판만 깍이는 것이니.



거짓말이 통하게 되면 무언가 비도덕적인 방법으로 이득을 보거나 책임을 지지 않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게 되면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고, 학교에서 볼 수 있는 일진들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일진들은 곧잘 교사에게 대들고 친구의 물건을 마음대로 가져가고 대상이 누가 되었든 거짓말을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그런 행동을 수없이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양심의 가책 따위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런 아이들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에도 능하게 되는데, 분명 자기가 잘못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교사가 그것을 똑똑히 봤음에도 불구하고 면전에서 안 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 경우 잘 보면 오히려 잘못한 쪽이 더 억울해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속였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했고 자기 스스로도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에 대해 회피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결국 자기 감정마저도 속여 분명히 자기 스스로도 똑똑히 알고 있지만 안 했다고 말하면서 거짓된 감정이나마 정말로 억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지요. 그렇게 자기 자신을 속이고 나면 양심의 가책 또한 덜하게 됩니다. 난 안 했으니까.



일진들은 이러한 책임을 지는 상황을 별로 겪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끝까지 고집부리며 거짓말을 하고, 어른들이 눈 감아주고, 봐주고, 상대하는데 질려서 결국 넘어가는 경우를 수도 없이 겪다보니 정작 제대로된 책임을 져본 적이 없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일을 벌이고 자기가 제대로 책임이지 못하는 어른을 애새끼라 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진, 양아치들은 나이를 먹어도 딱 그 수준인 것이고요. 혼날 때는 끝까지 고집부리며 안 했다고 딱 잡아때고, 자신이 했음에도 거짓말하고, 그렇게 제대로 처벌받지도 않고 고작해야 몇대 맞거나 안 좋은 소리 좀 듣는 상황이 빨리 넘어가기만을 바라는 것 뿐이지요. 자기 스스로 끝까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져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까.


그런 인간은 나중에 자기 앞으로 정말로 큰, 자기 스스로 져야할 거대한 책임 앞에선 아무 것도 못하고 벌벌 떱니다. 책임을 져본 경험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고, 애초에 자기가 져야할 책임이라는 자각이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들일테니까요. 일진이 하는 폭력, 갈취, 괴롭힘 등등은 그 행동에 대한 온전한 책임과 처벌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하는 행동입니다. 누가 저지하지 않으니 스스로 멈출 이유를 못 느끼니까요.


그렇지만 어쩌다 그런 거대한 책임이 잘 지나가고 나면은 스스로 아무 것도 아니네 하면서 허세부리곤 합니다. 실제로 그 상황에선 벌벌 떨고 무서워 했지만 일이 끝나고 나면 별거 아니었다고, 나 쫌 쩌는 놈이라며 없는 배짱 부리며 허세를 떠는 거죠. 법원까지 갔다가 결국 별 큰 처벌도 없이 일이 끝나는 경우 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여러번 겪는다면? 이젠 법도 무서울게 아닌거죠. 학생 때처럼. 교사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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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애국보수라 하는 족속들 보면 진짜 책임이 있는 주제에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책임회피하는게 거의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행태인데, 그런 모습을 보고서도 그들을 지지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생각이 없으니까 지지하는 거겠지만..


세월호 사건만해도 대통령은 책임 회피하고 유병언을 절대악으로(물론 큰 잘못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만들어 대통령이 나서서 비판하고, 해경을 해체하는 식으로 무마하려고 했지만, 사실상 해경 해체는 뻘짓이자 증거인멸이고, 해경 선에서 해결을 보겠다는 수작이었죠. 어차피 해경에서도 위에 있는 놈들은 별 타격도 안 되고 그 자리 그대로 앉을게 뻔하고.


학교폭력이나 다른 범죄에 있어서도 게임이라는 허수아비를 세워 근본적인 문제점에 대해 외면하고 책임을 가지고 예방, 해결해야할 사람들은 아무 것도 안 했죠. 게임중독법이라는 악법이나 만들고.


이번 임병장 총기난사 사건만 봐도 임병장 개인에게 문제를 돌리고 또 게임이니 판타지 소설이니하는 얼토당토 않은 허수이바에게 책임을 돌려 군대 내부의 악습과 잘못된 제도, 행정 등. 한마디로 자기들이 만들어놓은 체제가 문제가 아니라고 사람들을 선동하려 하지요.


또 볼까요? 문창극에 대해서도 야당이 대통령을 흔든다 뭐다 하고 있지만, 문창극은 자기들이 뽑은 총리이고 야당이 한건 없죠. 오히려 문창극 스스로 지뢰깔고 자폭한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대통령을 흔든다며 또 니탓이요 하고 있는데, 정말 미개한 정당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새누리당이, 자기들이 만들어낸 문제에 대해 온전히 책임을 진 적이 있던가요? 적어도 제 기억으로는 없습니다. 자기들이 만든 체제이고 시스템인데, 그 시스템 속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꼭 남 탓을 하더군요. 뭐만 하면 피해자탓, 야당탓, 니탓, 니탓..


도대체 이런 정부와 새누리당을 어떻게 믿고 지지하는지 전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뭐만하면 니탓이고 요상한거 트집잡아서 허수아비 만들어 후려치고 선동하는데, 그런거에 넘어가는 것도 우습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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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국을 보면서 업데이트된 한국식 문제해결방법에 따라 비꼬아서 제목을 지어봤습니다. 해경이 문제니까 해경을 없애고 총리가 문제니 총리를 없앴듯이, 군대에서 문제가 터졌으니 군대를 없애야죠?



물론 농담이고, 전에도 [클릭]한국군대의 똥군기라는 제목으로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만, 최근의 사태를 보고 다시 한번 이야기를 꺼내야할 거 같습니다. 솔까 이번 사건을 보면서 역시 한국군은 황군의 후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전히 병신같은 악습이 사람을 병신으로 만들어놓고 있는 군대.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해 더 병신같은 해석을 내놓는 북조선TV를 비롯한 기타 머저리들. 


TV조선에선 내무반 민주화 때문에 군기가 헤이헤져 위아래가 없어져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그러고, 또 다른 곳에선 게임이 문제다! 라고 임병장이 게임중독자인지 알아보자는 지능이 떨어지는 소리를 하고 있더군요.



머저리들이죠. 최근 몇년새 머저리들이 많아진거 같아요. 머저리가 유행인가. 문제는 군내부의 열악한 환경과 악습 때문입니다. 아래의 더보기에서 한번 확인해보세요. 이런 환경이 올바른 환경일까요? 게다가 관심병사에 A등급까지 받은 사람을 참 잘도 군에, GOP에 보냈군요.




내무반 민주화 드립은 그냥 파시스트들의 정신병적 개소리에 불과하죠. 그럼 일본군이 왜 소련군에 깨졌고 미군이나 다른 서방군대의 일본군식 악습이 없는 국가는 뭐가 되며, 병장까지 달 동안 게임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저지능적 문제분석은 그야말로 멍청이들이라는 소리가 안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전세계에도 수억명인데, 한국 언론 기준이면 그 사람들이 모두 게임중독자에 예비범죄자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망할 것 같은 범죄가 왕왕 터지든가요? 그리고 그 원인이 게임에 있던가요? 전혀 아니죠. 



병장까지 될 정도이고 제대가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사람 죽이고 총에 탄약까지 챙겨서 도망갔다 교전까지 할 정도면, 그 이유에 대한 상식적인 추론이란 군내부에서 뭔가 있었다가 되겠죠. 그건 군대의 수준이 떨어지는 열악한 환경이 될 수 있고, 병신같은 악습 때문일 수 있습니다. 개인의 탓이라고 해도, 그런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그런 곳에 보냈다는 국방부측의 책임은 지워지지도, 희석되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정신적인, 혹은 사회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에게 총을 쥐어주고 중요한 임무를 맡기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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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좀 자극적이긴 하지만, 제 주장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사실 본 글의 제목만 한 표현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사실입니다. 우리는 범죄자에게 더 많은 예산을 써야 합니다. 그 목적은 재범 방지에 있지요.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 것이, 범죄자에 대한 형량이 높을수록 범죄가 덜 일어난다는 것인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형제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해서 살인사건, 강력범죄가 없어지거나 줄어들지 않는 것처럼요.


정확히 알지는 못합니다만, 전 범죄자에게 선고하는 형량은 그 범죄자의 죄목과 죄질을 고려하여 그 정도 기간이면 갱생이 되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다는 판단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바로 그겁니다. 범죄자가 갱생되었는가. 그렇지 않다면 형량이 높든 낮든 아무 의미가 없지요.


범죄자 교도의 1차적 목적은 사회와의 격리, 2차적으로는 갱생 후 사회로의 복귀입니다. 사회와 격리시키는 것은 쉽지만, 문제는 후자죠. 갱생이라는 것이 잘되었느냐.. 범죄자 대부분은 교도소에서 교화를 마친 후 갱생되어 사회로 복귀할 것인데, 이 갱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결국 그 기간 동안만 범죄의 발생을 억제해놓은 것뿐이고, 출소 되었을 때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면 사실상 의미가 없죠. 발생할 범죄는 또다시 발생하는 셈이니까.



복지 천국이라는 북유럽의 교도소 시스템을 보면, 굉장히 시설이 좋습니다. 호텔이라는 둥, 우리 집보다 좋다는 둥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좋지요. 게다가 수감자에 대한 복지 또한 좋습니다. 그 대량살인을 저지른 노르웨이의 브레이빅도 그러한 시설에 교도되었지요.


그리고 그러한 교도소 수감자 복지는 북유럽 국가들의 범죄 재범률을 현저히 낮추는 데 성공했어요. 미국이나 남미, 러시아, 중국과 같은 곳의 교도소는 굉장히 시설이 낙후되어있고 수감자들끼리도 위험하며, 공포로 지배되어 있지만, 기실 그러한 교도소가 다른 이들이 보기에 그들로 하여금 죗값을 제대로 치르고 있다. 라는 생각을 들게 할지언정, 실질적인 재범률적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독이 된다는 말이지요.



따라서 범죄의 재발에 대해서 강력한 처벌을 주장하기보다는, 제대로 된 복지와 갱생에 더 많은 예산과 노력을 들여 해결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성범죄자나 다른 강력범죄자에게 고작 몇 년 형이 주어지는 것은, 그만큼 재발방지에 힘을 쓰고는 있다는 점을 시사하지 않나 싶습니다. 성범죄자의 동종 범죄 재범률은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같은 범죄나 다른 강력 범죄를 계속해서 저지르거나, 그 한번의 범죄의 죄질이 너무나도 무겁다면, 아주 당연하게도 사회와의 영원한 격리가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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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재밌는게, 행동은 같은데 대상이 다르면 다른 평가를 받는다는 거지요.


똑같이 폭력이지만 좌파에 대한 폭력은 옹호받고, 우파에 대한 폭력은 자유에 대한 테러라고 하는 것처럼.(혹은 그 반대.)



기본이 되는 태도가 있습니다. 인체에 비유하자면 그러한 태도는 '뼈대'가 됩니다. 척추와 같은. 그리고 그 태도를 감싸는 단어들과 행동들, 즉 우리가 보는 형태는 '근육'과 '살'에 비유할 수 있겠군요. 우리가 무언가를 비판하거나 할 때 중요한건 형태가 아닙니다. 바로 뼈대이지요.


일베충이 하는 행태를 똑같이 일베충에게 한다고 해서, 자신이 일베충보다 나은 사람이 되는게 아닙니다. 동급이 되는거지요, 아니, 똑같은 짓을 하면서 그 원류에 대해 공격하니 더 질이 낮다고 할 수 있겠네요. 대상이 일베충이라는 이유로, 똑같은 행동을 했는데 쟤네들은 당해도 싸다. 하는건 논리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행동이 같으면, 대상이 어찌됐든 똑같은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뼈대가 되는 태도는 어떤 경우에도, 어떤 대상에게도(심지어 자신에게도) 적용했을 때 다른 말이 튀어나와선 안 되는 겁니다. 그렇지 못하면 "내가 하면 로맨스, 니가 하면 불륜"이 되는 거지요..


일베이나, 우익을 비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간혹 분노 따위에 휩싸여 일베충과 똑같은 형태의 공격을 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개중에는 일베충을 아예 인간으로 보지 않고 글자 그대로의 벌레로, 다 죽여야 한다 같은 과격한 언사를 남발하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형태의 공격은 자충수를 두는 꼴이고, 일베충의 좌파, 전라도인에 대한 언사 및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마당에 누가 누굴 비판하고자 하는가. 라는 비판이 온다면, 할 말이 없겠죠. 나는 되고 쟤는 안 된다? 그런 이중잣대가 어딨습니까. 색깔만 다른 일베충이죠. 중요한 건 형태가 아니라 뼈대, 기본이 되는 태도에 있습니다. 그게 다르지 않다면 또 다른 일베충의 모습에 불과합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죠? 대부분의 극단주의자들은 그 행동에 비슷함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극단주의는 비슷한, 혹은 같은 '뼈대'를 공유하니까요. 그렇기에 절대 상종하지 않을 것 같은 그들이 어느샌가 전향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 이유는 형태만 다르고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태도가 똑같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비판하고자 한다면 자신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원칙에 따라 비판을 해야지, 똑같은 짓을 하면서 다른 평가를 듣고자 한다면 그게 미개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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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의 주장은 크게 두 형태를 띕니다. 


A : 어떠한 예언, 혹은 배후집단이 존재한다는 증명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주장.

B : A에서 예언, 혹은 조종했다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현안.


이 두 부분에 대한 반응에서 음모론 신봉자와 일반인의 논리과정이 갈리게 됩니다.


중요한 건, 


1. 같은 주장을 반복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실이 되는 것이 아니며,

2. 얼핏 볼 때 느껴지는 B에 대한 설득력, 그리고 형성되는 공감대는 A의 논리적 정합성과 완전히 별개라는 겁니다.



증명이 필요한 검증의 눈으로 엄밀히 바라볼 때, B는 A를 증명하지 못합니다. B에서 언급된 내용이 아무리 설득력 있다고 하더라도 A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는 이상 A와 B는 엄연히 별개이고, 우리가 흔히 접하는 전형적인 음모론들은 이러한 A와 B로 이루어져있죠. 그리고 그 음모론을 주장하는 음모론자들은 B를 토대로 A를 주장하며, 이러한 행위는 증명되지 않은 전제 위에 가설을 쌓아올리는 오류에 해당 됩니다.



말은 달라도, 거의 모든 음모론자들은 A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토대로 가설을 쌓아올립니다. 그것은 시온의정서라는 예언서 따위가 될 수도 있고, 프리메이슨 같은 단체, 배후집단이 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우리가 알 수 없다는 기밀문서 따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으로, 시온의정서는 그 존재가 증명되지 않았고, 되려 실제 작성자가 밝혀진 괴문서의 모작임이 밝혀졌으며, 프리메이슨은 페이스북에 회원모집을 하고 있으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프리메이슨과 같은 비밀결사, 배후집단 등에 대한 어떠한 실체도 증명된 적 없으며, 존재 자체도 불분명한 기밀문서 또한 증명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주장하는, 증명되지 않은 것들에 대해 명백한 믿음을 가지고 있고, 직접 그런 음모론자를 겪어본 바로는, 기밀문서에 대해선 우리가 알 수 없는 기밀문서이기 때문에 우리같은 일반인은 접근할 수 조차 없다고 말하면서 기밀문서의 존재에 대해 긍정하고 있습니다. 이게 얼마나 우습고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안다면 좋으련만, 끝까지 말이 뱅뱅 돌았죠.



논리학에선 Ad Hoc이라는게 있습니다. 직역하자면 '그것에 대해서'가 되겠는데, 그것에 대해서 반박하는 의미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재반박을 가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지요. 실제로 과학사에서 있었던 대표적인 아드 혹의 예가 있는데,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이용해 달의 표면이 완전한 구형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을 때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갈릴레오 이전까진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에 의해, 천상에 존재하는 물체들은 가장 완벽한 형태인 구형으로 이루어져있고, 가장 완벽한 형태인 원궤도를 돌아야 한다고 의제되어 있었는데, 갈릴레오는 자기가 망원경으로 관찰해보니 달과 같은 천체는 완벽한 구형이 아니라 구멍도 뚫려 있고.. 이런 식으로 말했지요.


그에 대해 자연철학자들은, 겉보기엔 그래도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는 물질들이 그 구멍들을 다 덮고 있어서 겉보기에 상관없이 완벽한 구형이라는 것으로 반박했죠.


이에 대한 갈릴레오의 반박은, 그런 물질이 있다는 건 인정하겠는데, 그런 물체들은 너희 자연철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달 표면을 구형으로 덮고 있는게 아니라 달에 있는 산 꼭대기에 전부 몰려 있어서 달은 자기가 망원경으로 관측한 것보다 더 울퉁불퉁하다고, 어떻게 반박할 것이냐고 했다고 합니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물질들은 바로 그 논증을 반박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개념이 됩니다. 어떤 물체나 개념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으려면 그것을 주장하는 자가 주장하는 방식 말고도 다른 방식으로도 그것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드 혹 논증에 등장하는 개념은 그런 방법을 시도하는 것 자체를 불허하죠.



또 한가지 있습니다, 원래는 종교를 까기 위한 유추인데, 이러한 경우에도 통용되기 때문에 꺼내보겠습니다.


바로 러셀의 찻주전자이지요. 지구와 화성 사이에 찻주전자 하나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찻주전자는 너무 작기 때문에 현재 인류의 과학 기술로는 관측이 불가능하죠. 그러므로 우리는 이 찻주전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느 반증할 수 없다느 이유로 이런 찻주전자가 실제로 존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요.



악마의 증명도 있는데 그건 위 찻주전자랑 별 다를 것도 없으니 넘어가고,



이러한 논리학적 개념들을 통해 그 배후집단, 예언서, 기밀문서 등에 대해서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이거 하납니다. 증명할 수 없고, 반증 불가능한 개념. 앞서 이야기한 기밀문서라는게, 실제로 존재하는지 조차 증명할 수 없는데, 단지 그러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존재를 가정해놓고 자신의 음모론을 증명할 수 있는 정보는 그 기밀문서에 있다고 반박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증명할 수 없는 전제하에 쌓아올리는 모든 주장, 가설들은 모조리 개소리가 되는 거지요. 그 주장이 아무리 설득력 있어 보이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증명되지 않으면 결국 소설 따위가 되는 거지요.



그렇다면, 자신의 음모론이 사실임을 증명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간단합니다.


기본 중의 기본인 육하원칙에 따라 하나하나 증명하면 되지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실제로 도시전설, 음모론으로 취급받다 그 실체가 사실임이 드러난 사건인 터스키기 매독 생체실험 사건을 육하원칙에 따라 서술해보지요. 그럼 다음과 같은 항목들이 이렇게 증명됩니다.


누가. 미국 공중보건국과 존 커틀러 박사가.

언제. 1932년부터 1973년까지.

어디서. 미국 앨라배마 주 터스키기에서.

무엇을. 매독에 관한 생체실험 연구를.

어떻게. 매독에 걸린 흑인 환자들에게 악혈이라는 병에 걸렸다고 속인 뒤 뇌척수액을 뽑고 아스피린과 철분제를 약이라고 주며 해당 지역 의사와 보건소에 실험자들이 올 경우 그냥 돌려보내라는 공문을 보내며.

왜. 치료를 하지 않으면 매독이 사람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대부분의.. 아니, 모든 음모론은 이러한 가설-증명관계를 거치지 않고, 가설 위에 가설을 쌓아올리며, 그 어떠한 주장도 제대로 증명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이런 논리로의 증명을 할 수 없는데도, 또한 그러한 것들이 모조리 반박당했음에도 그 음모론을 잡고 늘어지는 행위는 믿음의 자유에 속하게 됩니다. 즉, 종교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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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학생 안전교육 독립교과로 신설 검토”

http://view.edaily.co.kr/edaily/view_ns.htm?newsid=02728966606091872&strSite=


결국 이것도 애들한테 책임 떠넘기기죠. 애초에 그런 교과가 제대로 이루어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고3은 닥치고 야자일텐데.)


문제의 본질은 규제와 단속인데 말입니다. 귀찮아서, 돈 몇푼 받아서, 학연지연 등등 따져서 안 했던거 덕분에 애들 300명이 익사당했는데.




한국선급 증거인멸 현장 CCTV에 잡혔다

세월호 사건은... 여러모로 작은 한국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죠. 해수부와 유착관계라, 사실 뻔한 이야기죠. 유착이 아니라면 단속도 제대로 했을테니까.




'잃어버린10년?' DJ·盧 vs YS·MB 성적, 비교해보니···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4052308467641313&outlink=1


누가 나라를 망쳤을까요?



현대硏 "韓 사회자본지수 OECD국가 중 최하위권"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A11&newsid=01466166606092528&DCD=A00101&OutLnkChk=Y


내실이 고자라는 말입니다. 일명 기득권은 그러한 구조속에서 이득을 보고 있기 때문에 안 고치려고 하지요.




美 하원, NSA 대량 통화기록 수집중단 법안 통과


얘넨 자정이라도 되지만 우리나라는 자정의 목소리가 곧 빨갱이라서..



정몽준·박원순 "네 국가관이 더 문제" 날선 공방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5/25/2014052500908.html


우익들은 자유가 뭔지 잘 모르는듯. 하기야, 아직도 유신뽕이 뇌내에서 작용하고 있으니..



정몽준 후보, '박원순 후보 다니는 피부과는 얼마?'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newsview?newsid=20140525172109159


또 또 네거티브 ㅋㅋㅋㅋ


아마 나경원이랑 비슷하겠죠?^^



정몽준 "네거티브 중단하자고? 박원순 겁나는 것 있나"

나경원 피부과에 대해선 주진우 기자에게 따지든가..
할 줄 아는게 네거티브 말고 없으니까 그거에 올인하는거죠. 비전도, 알찬 공약도 없으니까. 그저 공구리질 밖에 없으니.


안상수, 세월호 애도 현수막 위에 선거 현수막 설치해 논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5231324021&code=910110


국민들 몇 뒤지든 내 선거가 중요하지.



정몽준 '구마다 산후조리원 설치'…잠실엔 돔구장

또 공구리 삽질이네요.

고척돔이 5년째 공사중인데 3년내에 돔을 짓는다면 얼마나 부실인지 상상도 안 가는군요.
그보다 수세는 있나? 없을껄요? 그럼 분명 또 빚내서 지을꺼고 그게 다 서울시, 국민들 빚이 되는거고.
그러고보니 용산재개발도 한다 그랬죠? 그 돈은 또 어디서 나올까요?


與 "朴 무장 해제시킬 것 아니라면 김기춘 공격 그만"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4052514492452208


본체 공격하니까 반응하네요.


대통령 흔들기라, 노무현때는 탄핵까지 하셨던 분들이 이제와서?



[단독]해경, 침몰 직후부터 "구조 종료…진입말라"

http://www.nocutnews.co.kr/news/4029995


진짜 미친거죠..



권영진 "박근혜를 지켜달라…대구마저 무너지면"

http://mnews.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total_id=14773190


대구시장이 바뀌는데 왜 대통령이 위험하죠?ㅋㅋ



정몽준, 선거공약 질문서에 '묵묵부답'

http://media.daum.net/election2014/news/issue/newsview?newsId=20140522110009894


묵묵부답이라. 왜 일까요.



변희재, 박원순 부인 잠적설 의혹 제기…"공개된 가족 사진 없어, 김정일 가족이냐"

http://stoo.asiae.co.kr/news/naver_view.htm?idxno=2014052612065663481


어느 일베충과 똑같은 행태를 보여주네요. http://cafe.daum.net/everyike/7ON6/4214

맘에 안 드니까 괜히 스토킹하면서 계량기 수치를 보고 택배 박스가 지저분한텐데 깨끗하다 하고 혼자 무슨 정보원(국정원?)이라도 된 듯이 망상에 빠져 쾌감 느끼는.


변희재도 똑같네요. 공개된 가족사진이 없다느니, 김정일 같다느니 자기가 무슨 정의의 전사, 진실을 위해 싸우는 정보원이라도 된 듯이 망상에 빠져 이상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죠. 이건 정신병인거 같애요.



조희연 "교육감 후보 고승덕, 자녀들은 미국서 교육"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03&aid=0005865007&date=20140525&type=1&rankingSeq=2&rankingSectionId=100


왜 미국사람을 장관으로 앉히려고 까지 했던 정권인데 미국 영주권자에 자식교육 미국에서 시키는게 뭐가 문제죠?ㅋ



조국 “정몽준 아버지 정주영 공산당 합법화 주장”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637


누가 빨갱이죠?



정몽준, 野지도부 회의에 깜짝 방문…왜?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F21&newsid=01951606606093184&DCD=A00602&OutLnkChk=Y


자기 딴에는 야당과 함께할 줄 아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겠죠.


현실은 예의없는 개그맨이고.



 "박원순 후보, 배우자 밝혀라".. 野 "치졸하다"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40527105706976


이게 당 수준이죠.


그리고 배우자가 어떤 사람이냐면요.

https://www.facebook.com/keun.reu/posts/524953574283343


ㅋㅋㅋㅋ



정몽준 "돈 안내는 佛대학 교육, 성공했다고 볼 수 없어"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4052710375126019


교육의 질과 학생의 수준이야 어찌됬든, 돈만 많이 내면 성공한 교육입니다.



朴대통령 "장관·공직자 선거중립 위반 없어야"

국정원과 군대를 동원한 선거요?ㅋㅋ


정몽준, 농약급식 언급…알고 보니 “자기편 무덤 판 셈?”

http://www.ccdailynews.com/sub_read.html?uid=406950&section=sc1


한마디로, 박원순이 잘한게 맞다는 겁니다.



공정위, 3년간 법위반기업 84% '과징금 깍아줘'

http://www.ebn.co.kr/news/view/684230?kind=&key=&shword=&page


법이 뭐가 무서워요. 저렇게 다 봐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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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가 다음 지식인에서 답변한 내용을 약간 수정해서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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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은 이미 법칙으로서, 진화학에 가깝게 발전하지 않았나 합니다. 진화론에는 여러 수수께끼와 연구할 부분, 아직 연구되지 않은 부분, 그 근거나 논리가 부족하고 논박의 여지가 많은 부분은 있을지언정, 그 자체로는 법칙으로서의 사실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한 판단을 할 수 있을만큼의 근거와 논리를 충분히 가지고 있고, 반박되지도 않았습니다. 종교를 믿는 자들의 교리, 성서를 기반으로한 반박은 모두 재반박되었고 그 논리나 근거 모두 부실하고 증명할 수 없음은 이미 모두 밝혀졌죠.


창조론의 정확한 용어는 창조설이 맞습니다. 사실, 창조설화라고 하는게 옳겠지요. 왜냐하면 이것은 기독교 및 다른 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창조에 대한 나름대로의 상상력, 즉 그 종교가 말하고자 하는 세상과 인간의 발생에 대한 설화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종교인들이 이따위 것을 가지고 열을 내는 것을 찌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딴 잡스러운 것에 뭐 그리 열을 내고 집착하는지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워요. 왜냐하면 기독교가 말하고자 하는 훌륭한 사상과 이념은 뒷전이고 그딴 창조를 했니 안 했니 진화론이 어쨋니 하는 쓸잘데기 없는 것가지고 논쟁을 하고 있으니 도대체 종교를 왜 믿는건지 모르겠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를 보는 제 관점에서, 진화론이나 창조설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러니까 지구와 우주, 인간이 신이라는 절대자의 의지로 창조되었든 말든 기독교는 여전히 그 자체로 훌륭한 사상을 담고 있고 그 정신은 21세기에 와서 종교가 거진 부정당하고 비웃음을 당하며, 심지어 조롱당하고 혐오당하더라도 배울 가치가 있고 현대의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논리, 예컨데 자유주의나 평등, 인권 같은 것들도 그러한 기독교 정신과 논리를 차용했고 어떻게 보면 그러한 것들을 통해 태어났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신이 있든지 말던지 인간과 우주가 신에 의해 창조되었든 아니든 기독교는 여전히 훌륭한 사상과 이념을 담고 있고, 그것은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배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찌질하고 속좁은 이들이 원수를 사랑하라 같은 훌륭한 말은 찢어발기고 자신을 모욕하고 믿지 않는 자들을 불신자니 이단자요 하며 몰아붙히고 증오하고 있죠. 한마디로 기독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가르침은 공염불처럼 외우고 여전히 증오하고 만인을 사랑하고자 하지 않고 있죠.



제 생각은 아니지만, 다음 웹툰의 트레저헌터라는 만화를 연재하는 허견이라는 분이 기독교, 정확히는 가톨릭의 창조설을 이런 논리로 설명하더군요.



신께서 인간을 만드셨다면, 만약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만약 인간이 곰이나 다른 맹수처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처럼 무리를 지었을까요? 다른 맹수를 압도할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인간은 집단이나 사회를 구성하지 않았겠죠.


생물은 외부에서 에너지를 얻어서 소비하는 방식으로 생명을 유지합니다. 그 대부분은 땅과 관련이 있죠, 곡물 재배나 사냥을 해야 식재료를 얻을 수 있으니. 집단을 이루고 안전해지면 안전해질 수록 집단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 집단내에서 가장 약한 아이들을 보호하니까요. 그리고 집단이 소유하고 있는 땅이 제공해줄 수 있는 식량은 한계가 있죠. 그 균형은 깨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균형이 깨지는 순간 인구의 조절을 위해, 혹은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해 집단간의 전투, 전쟁이 발생합니다. 우리가 고래처럼 수상에서 플랑크톤을 먹거나 식물처럼 광합성을 하며 에너지를 충당했다면 전쟁은 없었겠죠. 하지만 우리는 고래나 식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가톨릭은 창조설을 믿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올 종말도 믿고 있지요. 종말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를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지구라는 환경 속에서 인간의 몸은 필연적으로 전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전쟁은 인간끼리의 싸움이죠.


즉, 살아갈 에너지를 얻기 위해 동족살해를 저지르도록 만들어진 존재라는 겁니다. 언젠가 지구라는 땅이 인간이 소비하는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할 날이 오면, 서로 싸워 자멸하도록 프로그래밍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원래 가톨릭의 창조설을 믿는 논리가 이런 것인지, 아니면 허견이라는 작가의 통찰력이 담긴 작품내의 논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멋지고 그럴싸한 논리더군요. 물론 전 진화론을 믿고 창조설을 부정하며 비웃는 입장입니다만, 원래 기독교가 말하고자 하는 창조설도 이러한 논리라면 꽤나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진화론의 근거이자 창조설의 반론이 되는 증거, 논리들은 이미 충분히 많지만, 굳이 소개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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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아들 정예선 피소놓고 변희재 "해도 너무하네" vs 진중권 "직접 사과해라"


변희재가 정몽준 아들 고소에 대해 한 말에 대한 진중권의 한마디가 일품이었죠. 자긴 듣보잡 소리에 고소했다고..ㅋㅋ


박원순 "베이비부머 대책은?" 정몽준 "영어표현 안 좋아해"


박근혜 대선토론과 비슷하다죠.


해결방법 제시하라고 질문하면 열심히 하겠다, 대처 잘 하겠다. 이런 식으로.

뽑아만 주면 알라서 잘 할테니까 질문 그만하라는 듯이..ㅋ 박근혜랑 비슷한 마인드인듯.


하긴, 능력도 없고 비전도 없으니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야죠. 그리고 박근혜 꼴 낼꺼고.



정몽준 "반값 등록금, 대학 졸업생에 대한 존경심 훼손시켜"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4052018090786816


전우용 역사학자 : 저런 사람들이 정말 무서운 건, 등록금 액수를 곧바로 '존경심'과 연결시키는 저 특유의 멘탈입니다. '돈에 대한 존경심'을 요구하는 자 중에,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춘 자는 없습니다.



내각 총사퇴로 간다..김기춘, 남재준만 빼고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40521060316411


허수아비는 갈리고 실세만 남는거죠.



김무성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 지방 이전 공공기관 역할 키워야"

http://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79397


예전에 노무현이 이거 이야기했다가 욕 엄청 먹었죠?ㅋㅋㅋ



정총리 "靑, KBS에 협조요청…언론통제는 아니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이런데에서는 일관된 태도를 보여주는군요. 근데 다 변명이라는게 함정.


정몽준 "박원순, 서울호 침몰하는데 시민들 가만히 있으라 해"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40521_0012932301&cID=10301&pID=10300


정몽준이 멀쩡한 서울호 개조하려고 하네요.



"한국 노동자 권리보장, 세계 최하위 등급"<국제노조총연맹>

새누리당 지지자들에게 이 공을 돌립니다.

노동자가 아닌, 노예로 만들었네요.


공무원연금 지급액 20% 삭감

연기금을 좆같이 운영하면서 환율장난치다 엄청나게 까먹고.. 이런거 기억하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요?

이제와서 없다고 배째라니.


세월호 유가족 두 번 울리는 정부 긴급생계비

http://www.hankookilbo.com/v.aspx?id=c6ed6dd4a031490bb2b6f61c610d567d&s=0


돈주기 싫다는거죠.



<단독>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 “국민 미개하다, 틀린 것 아냐” 막말 파문

http://www.hyundaenews.com/sub_read.html?uid=9028


이런거 보면 미개한거 맞는듯 ㅋ



중독포럼, “청소년의 15%가 2시간 이상 게임하는 것은 비정상”

청소년의 84%가 12시간 이상 학교에 잡혀있는건 정상인가요?


[단독] 한기총 부회장 "가난한 집 아이들 불국사로 수학여행 가지.."

교회는 가난한 애들 안 받습니다.


바닥까지 추락한 해경 자존심… “밥 먹을 자격 없다” 식당서도 거부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soc&arcid=0008349190&cp=nv


똥은 위에서 쌋는데 아래사람이 고생하네요.



나경원 "세계 어딜 가든 정몽준 모르는 분 없어"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110888


두 유 노 몽준?



北, 우리 함정 조준포격했나..150m인근에 포탄 낙하

조준해도 저 모양이면 시망이죠.

뭐, 원래 포격이라는게 훈련량이 받쳐줘야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건데, 탱크 굴릴 기름도 없는 나라가 훈련은 무슨 훈련.

그런 나라랑 싸워서 진다고 하는게 진짜 종북이죠. 그리고 그런 주장은 주로 공포감 조장하려는 보수우익이 자주 한다는거..ㅋ


국민혈세로 밥먹고 공문서 위조하는 새누리당.. 언론은 '쉬쉬'

도덕성있고 믿을 만한 정부네요^^ 그러니까 지지자들이 있는거겠죠?^^


선관위 '박근혜 퇴진하라' 선거벽보 허용

사실 이게 아주 당연한건데..


5급공채 내년부터 축소…2017년 공채·민간채용반반씩(종합)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1&aid=0006922751

준비했다는 공직개혁이 고작 저거.
해경준비생 다음엔 행시생 폭발 ㅋㅋ

근데 민간채용은 무슨 기준일까? 인맥? 학력?ㅋ


정몽준 "박원순 선거포스터, 천만 시민에게 자기 앞 얼굴도 못 보여주나"

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400836866702614016


비전도 뭣도 없이 입만 열면 트집..ㅋ


할 줄 아는게 네거티브 밖에 없는데 서울 시장씩이나 되시게염?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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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밝혀진 큰 건들만 모아도, 어지간한 나라에선 정권이 갈리고 나라가 뒤집어지는 사건들이라고 생각되어지는군요. 집권여당-국정원-군이 연계하여 댓글, SNS 선동조작 및 선거개입, 간첩조작에 KBS 윗선개입 등등..


이번엔 KBS 개입이 밝혀졌죠. 나라, 민생은 뒷전인채 나라, 국민을 망치기 위해 노력하는 새누리당으로 밖엔 안 보이는군요. 그저 정권과 우리편의 안위를 위해 집권여당, 국가정보기관, 군대가 연계하여 국민을 선동하며 반대편에 대해 저열하고 추잡하기 짝이 없는 문장으로 극렬한 비난을 했고, 간첩도 아닌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어 안보팔이를 하려고 했죠. 게다가 이젠 한국 최대의 공영방송에 개입하여 언론을 농단하고 국민들을 선동하고 정권에 대한 나팔수로 만들어 써먹었죠.



이게 새누리당 지지자들에겐 정상적인 모습으로 보인다는 것일까요? 저는 정말로 궁금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지능이 떨어지거나, 정말로 세뇌된 노예, 혹은 종교의 영역에 다다른 것으로 보일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말로 정상적이지 않거든요. 어떠한 사고기재로 그것을 정상이라고 여기는지, 정말로 신비할 따릅입니다.



헌법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언론, 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은 인정되지 않고, 언론, 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공중도덕과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또 공무원은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이명박, 박근혜, 새누리당, 국정원, 군.. 모두 헌법을 어겼고, 헌법 하위의 법률을 어겼습니다.


범죄자죠. 그리고 새누리당 지지자는 그들을 지지합니다. 범죄자를 지지하고 있어요. 그들의 도덕성?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명분으로 헌법을 무시하고 온갖 불법을 저지르죠? 대규모로 선거에 개입하고 상대방을 비난하며 무고한 이를 간첩으로 만들고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려 자신들만 옳다고 믿게 하기 위해 언론을 어용 나팔수로 만들어 선동하는거죠?


그리고 어떤 멍청이들이, 그런 것들을 지지합니까?



만약 그러한 행동이 정당하다면, 반대의 경우도 정당하다 할 것인지 모르겠군요. 그 종북이라는 이석기, 이정희가 똑같은 방식으로 선거에 개입하고 언론을 어용으로 만들면 그것도 정당한 겁니까? 원칙은 원칙이지 그것에 대해 예외는 없습니다. 누군 착하니까 되고 누군 나쁘니까 안 된다는건 없습니다. 새누리당이 된다면, 빨갱이도 되는 겁니다.


누가 나라를 망치고 있죠? 누가 국가질서를 어지럽힙니까? 진짜 빨갱이라면 새누리당과 그 일파,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는 자들이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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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5.18 피해자, 대기업의 갑질에 희생된 비정규직과 같은 이들에 대해 측은함을 느끼고 가해자에게 분노를 느끼는 것은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피해자에 대해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러한 공감을 타인과 또 공감하려하지요.


이러한 행동에서 그것을 비꼬는 자들은 감성팔이라 욕하지만, 똑같은 논리로 6.25나 북한에 의해 터진 사건들에 대해 분노하고 피해자에 대해 똑같이 측은함을 느끼는 것은 위와 전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느끼는 감정 또한 그것이 잘못되었음을(북한이 공격해서 전쟁이 터진 것)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5.18, 갑질에 희생된 이들에 대해 감정팔이라 욕하는 것은, 똑같은 논리로 6.25 전쟁 등에도 적용할 수 있고, 그러한 일관성에 의해 자기 자신에게 욕을 하는 것과 같게 됩니다.



쉽게 말하자면, 5.18 피해자에 대해 측은함을 느끼는 사람이 그 감정을 공유하고자 하는 것을 감성팔이라 욕하면서 똑같이 다른 누군가가 6.25 피해자에 대해 측은함을 느끼며 그 감정을 공유하는 자신에게 감성팔이라 욕하는 것에 반박할 수 없다는 겁니다. 만약 그에 대해 너는 북한이 한 것을 긍정하느냐, 혹은 우리 국민이 그렇게 죽었는데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한다면 그것은 이중잣대이죠. 상대방도 똑같은 논리로 5.18을 옹호할 것이니.


물론 5.18을 까는 대부분은 세뇌, 선동당해 팩트부터 틀려먹은 머저리들이라 5.18 피해자를 모두 종북, 빨갱이, 선동당한 놈들이라 여긴다는 점에서 그렇게 밖에 못하는 이유가 설명이 되지만요. 뭐, 이건 그들이 머저리라 어쩔 수 없는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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