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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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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해당되는 글 22건

  1. 2018.11.04
    한국 보수의 태생적 한계와 근원.
  2. 2017.11.07
    오컴의 면도날 -가장 간단한 도덕률-
  3. 2016.10.08
    태어난 목적과 죄에 대한 단상.
  4. 2015.12.03
    윤치호의 '헬조센' 썰. 4
  5. 2015.10.17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에 대한 단상. 1
  6. 2015.05.23
    권위에 대한 무시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2
  7. 2015.05.10
    여시를 까는 낙태와 낙태충. 6
  8. 2015.04.23
    '노슬아치'의 발생원인
  9. 2015.01.17
    한국의 통일에 대한 노력. 10
  10. 2014.12.09
    복지 없는 증세. 6
  11. 2014.10.26
    미국의 정당방위, 한국의 과잉방어. 20
  12. 2014.10.16
    팩트로 보는 부자감세와 서민과세
  13. 2014.10.16
    정부의 약탈경제를 규탄한다.
  14. 2014.10.10
    경찰에 IP 넘기는 국민신문고. 관리를 다시 다스려야 한다.
  15. 2014.07.27
    대화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가. 1
  16. 2014.07.03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 4
  17. 2014.04.03
    비겁한 투쟁 2
  18. 2014.03.18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원인과 그 주동자 3
  19. 2013.12.04
    나치당과 일베의 유사성. 37
  20. 2013.11.09
    망국의 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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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보수에 속하는 이들 중 누구 하나 정상적이지 않고 반국가적이며 반사회적인 가치관과 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며 한국의 발전과 성숙을 저해하는 이유는, 그들의 태생과 근원이 그러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기존 질서와 정체성을 가진 과거와의 단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외부 정체성(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의한 이식과 정착을 겪으며 기존의 질서는 단계적으로 무너져갔죠. 식민지하의 사회가 다 그렇듯이, 누군가는 반발을, 누군가는 순응을, 누군가는 적극적인 변절을 선택하지만, 당연히도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것은 적극적 변절자들입니다.


기존의 사회와 정체성을 그들 내부에서 무너뜨리고, 불신과 질투를 유발해 분열을 시키기 때문입니다. 확고하게 뭉쳐진 정체적과 질서를 부순 뒤, 그 틈에 (힘의 우위에 따른) 더 경쟁력 있는 질서와 정체성을 이식하고 고착화 시키기에 앞잡이만큼 빼어난 선동수단은 없죠.



애초에 일제의 질서, 정체성은 한국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의 토양에 이질적인 면이 있었고, 궁극적으로 한국이 아닌 일본 중심적인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곧 어떠한 행동을 하고 세부적으로 어떤 갈래의 사상을 가지고 있든, 그 근본적인 논리와 기제는 일본에 이익에 가까워지고, 최소한 한국의 이익에 배반되기 때문에 한국에겐 반국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보수의 계보와 뿌리를 올라가보면, 일제시대에 큰 돈과 명성 등, 권세를 얻은 이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청산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은 그럴 수 없었던 현실적인 사유와, 그러한 친일파의 힘을 세력 기반으로 삼고자 했던 이승만의 정치적 계산하에 이루어진 생존이었으며, 일제시대에 정체성과 도의를 팔아 성장한 그들의 생존감각은 해방 이후, 전후 한국에서 빛을 보았죠.


적지 않은.. 거진 대부분의 거물 친일파의 후손들은 그러한 기반으로 하여금 막강한 권세를 되찾았고, 뭉치고 모여 세력을 이루었으며, 일제 패망 이후에도 그들 일제의 질서와 정체성을 한국에 유의미하고 강력하게 고착시킬 수 있게 했습니다. 즉, 살아남은 일제의 후손은 사람이 아니라 사상인 셈이죠.



당연하지만 돈과 권력을 지닌 이들이 무너진 사회의 주도권과 질서를 빠르게 휘어 잡았고, 이는 머리와 머리의 모양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일제의 그것이 살아남아 기능하고 있었습니다. 이승만 본인은 반일이었지만, 친일파를 세력화 시키면서 타협과 용인을 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질서와 정체성을 국가에 이식시켰고, 박정희는 그것을 군사독재적 방법론으로 용접했습니다. 전두환은 그걸 더 심화시켰고요.


그리고 그들의 후신들은 여러 이름과 형태로 살아남아 현재 국회에서도 힘을 쓰고 있으며, 그들의 사상 또한 여러 변화를 겪었으나, 그 근본적인 속성은 결코 변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60년대나 2010년대나 그들의 행태는 얼마나 세련되졌는가의 차이일 뿐이지(그마저도 보이는 걸 신경쓰지 않으면 그 시절 모습 그대로 입니다.) 변한 게 없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시작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말은 상투적이고 정치혐오적인 말이 아닌 셈이죠.



어쨌든, 이러한 역사적 흐름에서 보이듯이, 한국 보수의 뿌리는 일본 제국주의에 있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한국 모든 보수에게 태생적인 문제가 있는 것인데, 국가든 정치든 그것을 이루는 근원에 해당되는 정신적인 정체성 자체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을 뿌리로 두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행태는 반국가적인 것입니다. 단지 그 뿐이기만 하면 차라리 다행이겠지만, 문제는 그 사상 자체가 일본 제국주의, 파시즘에 있다는 겁니다. 즉, 극우 극단주의에 속하고, 거기에 일본 특유의 전근대적 광기 또한 섞여있죠. 근본도 없는 정신론과 중세적 인명 경시풍조 등등..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한국의 보수는 근본적으로 한국적일 수 없고, 애국적일 수 없으며, 민족주의적일 수조차 없는 겁니다. 그들이 뿌리로 삼고 근본으로 삼는 정체성 자체가 한국의 것이 아니며, 그 근원이 일본에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한국에 제대로된 보수가 들어서기 위해서라면 현재의 정치 풍조와 이념 지형이 모두 박살내놓아야 합니다. 이는 보수 하나만 박살나서는 안 되고, 진보 등 다른 이념진영도 부서져야만 합니다.


한국 진보 또한 보수와 경쟁하고, 반발하고, 심지어 공생하면서 맞춰진 짝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에 한국적 정체성을 가진 보수가 들어서야 (말하자면) 국제적 기준의 보수라는 게 만들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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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약 5년전 작성한 게시글입니다. 사실 이 블로그에 쓴 줄 알았는 데, 최근 찾아보니 없더군요. 다른 곳에 썼던 글이라 경어를 사용하여 작성하지 않았고, 일부 맞춤법을 교정한 것 외엔 원문 그대로 옮깁니다.





오컴의 면도날 (Occam's Razor)


"꼭 필요하지 않다면 더 많은 것들을 가져다 놓아서는 안된다(Pluralitas non est ponenda sine neccesitate)" 쉽게 말해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복잡한 가정을 하지 않고, 가장 간단한 설명을 고르는것이 맞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말한다.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두개의 주장이 있다면 , 간단한 쪽을 선택하라는 뜻.


단, 간단한 것이야 말로 진리라는 의미가 아닌 두 주장이 가설을 입증하는 정도가 동일할때 가장 간단한(설명이 가장 간결한) 것이 진실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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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은 사회를 구성하는 것 중 하나이다. 이 도덕이라는 것이 한 국가,지역 내에서 보편적으로 잘 지켜질 수 있다면 그 국가, 지역의 이미지는 매우 깨끗하고 좋다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


이는 개인에게도 통용된다. 개인의 도덕성이 깨끗하다면 그 사람은 도덕적인 인물로 인식될 수 있다.


도덕이라는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게 다가온다. 또한 도덕을 쉽게 여기는 사람도 있고 어렵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마치 도덕이라는 것을 지키기 어렵고 이를 제대로 지키는 사람은 그야말로 성인군자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도 있다.


하지만 도덕이라는것이 꼭 마더 테레사같은 고결함을 원한다는 것이 아니다. 도덕은 간단하고 또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가치이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욕을 적게 사용하며,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를 가지며, 배려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으로도 족하다.


길을 가다가 쓰레기가 생겼다면 쓰레기통으로 버리는 것으로 족하며, 화가 난다고 무작정 욕부터 내뱉고 보지 않는 것으로 족하며 내가 불편하다고 다른 이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것으로 족하다는 것이다.


마더 테레사나 부처, 공자같은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처럼 간단한 것이 도덕이다. 이런 도덕률이 사회전체에 통용된다면 어떻겠는갸? 그야말로 아름다운 사회가 아니겠는가? 이런 도덕률이 잘 지켜진다면 거리는 깨끗해질 것이며 인간관계에서 신경이 거슬리지도 않을것이고 그런 문제에 민감해지지도 않을것이다.


가장 간단한 절제, 배려를 통해 자신은 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이처럼 가장 간단한 도덕률이야 말로 가장 좋은 도덕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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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글은 다음 팁에서 제가 한 답변을 바탕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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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나는 것에 대해 어떠한 목적 같은 건 없습니다. 다른 생물이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종족보존 본능에 의해, 그리고 인간의 경우 부모의 필요나 사랑의 결과로서 태어난 것이죠.


여기에 태어나는 본인의 의지는 전혀 개입되지 않습니다. 또한 그러한 탄생은 앞서 말했듯이, 어떠한 정해진 숭고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죠. 가령 누군가는 영웅이 되기 위해 태어나고, 누군가는 수 많은 이들을 죽이기 위해 태어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현상일 뿐, 어떤 목적도, 운명도 없습니다.


따라서 삶이나 탄생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러한 존재한다고 믿는 어떠한 목적을 위해 부여될 순 없고, 그 자체로 본인 스스로가 부여하는 것 뿐입니다. 나의 삶은 어떤 것이다. 혹은 어떠한 삶을 위해 살 것이다. 하고 스스로가 부여하고, 목표하는 것 뿐이죠. 그것은 타인이 판단하거나 규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라는 것은 다분히 인간적인 기준에 불과합니다. 동물들에게 있어서 어떠한 죄나 잘못이랄 게 없는 이유는, 자연적 상태에 존재하는 동물들에겐 자연법칙 외의 어떠한 룰도 적용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과 동물은 처한 환경이 다르다는 겁니다.


동물들에게 있어서 어린 새끼를 물어죽이거나 부모를 죽이거나 타 개체를 강간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없고 죄도 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곧 자연이고, 자연과 자연법칙은 어떠한 선악기준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선악이라는 기준 자체가 인간이 만들었기 때문이며, 그러한 선악이라는 기준을 만든 이유, 그리고 만들어진 이유가 인간 스스로 구축하고 확립한 문명이라는 인위적 환경을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동물이 자연이라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라면, 인간은 문명(혹은 사회)라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죠.


환경이 다르면 생존의 조건도 달라집니다. 극한의 극지에서 사는 생물과 극한의 사막에서 사는 생물의 생존 조건은 달라지죠. 그것을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적용지키자면, 자연이라는 환경과 문명이라는 환경의 생존 조건도 달라질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선과 악, 법과 규칙이라는 것을 만들어내고, 그에 따라 순응하여 살아가길 강요받습니다. 기실 이러한 강요는 동시에 자신들의 자유와 행복, 근본적으로, 생존을 목적으로 하죠.


따라서 죄라는 것은 인간적 기준에 불과하고, 그러한 기준을 어기지 않으면, 혹은 납득 가능한(사회의 유지를 해치지 않을) 수준에서만 어기면 될 뿐입니다.


이러한 발전 과정에서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과 그에 따른 적응) 이외의 어떤 의지도 개입되어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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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인(淸人)의 집은 음침하기 측량 없어 일본 사람의 정결하고 명랑한 집에 비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의 똥뒷간 같은 집이야 어찌 청인의 2층집에 비하겠는가."


"내나라 자랑할 일은 하나도 없고, 다만 흉 잡힐 일만 많으매 일변 한심하며, 일변 일본이 부러워 못견디겠도다."

1888년 12월 29일


"조선이 지금의 야만적 상태에 머무느니 차라리 문명국의 식민지가 되는 게 낫겠다."

1890년 5월 18일


"이 수치스러운 조선역사에 대하여 더 알면 알수록 현 왕조하에서는 개혁의 희망이 없음을 확신하게 된다. 

정부는 500여년간 국가의 향상을 위하여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조선인의 특징은 한 사람이 멍석말이를 당하면 그 사람에 대해서 알아보려고는 하지 않고 다 함께 달려들어 무조건 몰매를 때리고 보는 것입니다."


- 좌옹 윤치호



2013/11/09 - [취미/이야기] - 망국의 징조.


그만큼 나라 꼬라지가 막되먹었다는 거죠. 대개 나라가 무너질 때는 온전히 외침보다는 부정부패와 사회기강의 붕괴로 인한 내부에서의 병폐 때문에 망합니다. 그러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거나, 해결하지 못하면 백성들이 못살겠다 하고 들고 일어나서 반란을 일으키는 거죠. 그렇게 한바탕 내전이 터지거나 혁명 따위가 터져서 뒤집어 엎어질 수도 있고, 그런 가장 약할 때를 틈 타 외적이 침입해서 무너질 수도 있죠. 적이 강할 때 공격하는 머저리는 없으니까.


마찬가지로 조선 말기도, 그리고 현재의 대한민국도 나라 꼬라지가 정상은 아니라는 겁니다. 대다수의 백성,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 나라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어요


전근대의 조선도 500년은 갔는데,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고작 100년도 못가서 헬조센 소리가 나온다는 걸 보면 건국 이후로 꾸준히 주류로 군림해온 세력과 그 후신들에게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고 밖에 설명 못한다고 봅니다.

네, 결국엔 그 말이죠. 고작 100년만에 나라가 망할 때 보이는 징조가 다 보이고 있다는 겁니다. 조선도 500년은 갔는데 정작 새롭게 건국된 현대국가인 대한민국이 고작 100년만에 망국의 징조가 다 보인다는 거죠. 한비자, 간디가 했던 망국의 징조들이 죄다 해당됩니다. 아주 노골적으로 말이죠. 어떤 정의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저 간간히 보이는 국민들의 선의만이 우리를 위로해줄 뿐이죠.

현대에 와선 예전처럼 외침으로 인해 급격하게 망할 일은 시대가 변하면서 점점 줄어들었으니 이제 남은 건 망할 때까지 질기고 오래 고통 받는 거 밖에 없죠. 

진짜 암울한 미래로 우리가 나라를 이끈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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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다음 팁에서 본인이 작성한 답변을 일부 수정, 추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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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은 자연적인 본능과 성향만이 존재합니다. 인간이라는 것이 본디 짐승에서 진화한 생물이고, 그저 다른 생물보다 뛰어난 지성을 가졌기에 사회와 문명이라는 것을 이룩했는 데, 이러한 환경은 원시적 자연환경과는 다른 인위적 사회환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환경은 인간들끼리의 사회적 관계와 유대, 그리고 불문율이나 성문법 등의 새로운 규칙에 의해 지배 받고 지배하는 곳이기 때문에, 원시적 자연환경에서와는 전혀 다른 환경이라고 할 수 있죠.


자연환경. 즉, 야생에선 어떠한 도덕이나 윤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기실 그러한 것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지키는 시스템인 사회, 혹은 문명은 그러한 서로간의 신뢰가 깨어지면 결코 유지될 수 없는 특성을 지니고 있죠. 쉽게 말해서 누구나 쉽게 범죄에 해당되는 범주의 행동을 마구잡이로 하고 다니면서 어떠한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사회는 곧 붕괴한다는 겁니다.


도덕이나 윤리 또한 인간적 기준에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적 규약인 데, 이러한 규약은 역시 사회환경에서만 통용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생물학적인 인간이라는 개체와 사회학적 개인이라는 개체는 양립하면서도 모순되는 형태를 띄는거죠. 이는 아주 어린아이에게서 선한 모습을 볼 수 있으면서도 악마성에 가까운 악한 모습 또한 관찰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교육이라는 것은 그러한 악한 모습에 대한 규제를 의미하고, 사회성이란 그 사회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을 말하죠.


달리 말하자면 아직 사회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동물에 더 가까운 아이들에게서 자연적인 형태의 선과 악의 모습을 둘 다 볼 수 있고 커가면서 그러한 사회화(교육)을 통해 그러한 악한 행동을 규제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물론 그러한 교육이 생물적 본능이나 성향, 욕구를 완벽하게 제어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인간은 커서도 짐승 같은 모습이나, 사회적이지 못한 모습, 또는 악한 모습을 보이곤 하는 거죠.


자연상태에선 어떠한 도덕과 윤리도 없고 사람의 본성이란 곧 동물적 본능과 욕구를 의미하는 바, 그러한 기준을 통해 선한가 악한가를 논하는 건 의미 없다고 봅니다. 인간의 본성이란 생물학적 진화를 통해 자연환경을 기준으로 적응되어온 결과이기 때문에 전혀 다른 사회적 환경, 문명을 기준으로 한다면 당연히 맞지 않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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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권위가 무시당하는 상황 크게 두가지 있는 데, 잘 알려진 것이 권위를 가진 사람, 혹은 집단이 실수할 때입니다. 이게 크거나 반복적이면 더더욱 실추되죠. 혹은 다른 이, 혹은 집단에게 권위로 밀리는 것이 있습니다. 기존의 권위자가 병크를 반복하거나 아니면 실력으로 압도될 경우 기존의 권위는 깨부순 쪽, 위로 올라선 쪽에 옮겨지게 되죠.



하지만 이번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권위자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밑에서부터 무시를 당하는 현상에 대한 것입니다. 이는 다른 배경과 기제를 통해 형성되는 현상이죠.


이러한 권위에 대한 무시는 중산층이나 그 윗계급에서는 잘 발생하지 않고 주로 사회 하층민에서 주로 발생합니다. 그들은 일정한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지 못했고 소득이 높지 않으며 교육수준이 높지 않습니다. 미국의 다운타운에서 볼 수 있는 거리의 흑인들을 생각하면 아주 적절한 묘사라고 할 수 있죠. 본문에서 설명하는 이들의 스테레오 타입에 가까울 겁니다.


이들은 중산층과 그 윗계급과 상당히 다른 문화와 태도를 가지고 있는 데, 이는 그 계급에 대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반발심이 형성되는 기제는 상위 계급에 그들이 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발생하는 거죠. 일종의 인지부조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보다 뛰어나고 잘난 이를 보고 그와 그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조소와 무시, 그리고 새로운 가치에 대한 반발적 찬미가 그들만의 문화를 만든 기반이라고 할 수 있죠.



학교에서 전교 1등의 모범생과 전교 하위급의 부진생을 봤을 때, 전교 1등인 학생은 자기 스스로 어떠한 가치, 성적이든 미래든 자기 성실성이든을 추구하고 나아가는 데에 반해 부진생은 -물론 이게 실제로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일종의 비유적 설정입니다.- 그러한 공부와 더 나아가 교육제도에 대해서 속 없는 비판을 하며 모범생을 공부벌레라고 깔 뿐이죠. 저렇게 공부만 해서는 현실, 사회가 어떤지 모른다라든지, 공부 그 자체와 교육제도-그리고 그 첨병인 교사에 대해서도-에 대해서 안 좋게 생각하고 비판적으로 대하지만 실제로 어떠한 부분에 문제가 있고 어째서 문제인가에 대한 어떠한 고민이나 깊이 있는 지적은 할 수 없죠.


이는 앞서 말했듯이 자신이 속할 수 없는, 자신이 다다를 수 없는 것에 대한 반발적 심리(인지부조화)이고 이는 열등감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저렇게 잘 날 수 없으니까 그것이 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더 나아가자면 그러한 '공부벌레'들이 모여서 이루고 있는 정부조직과 각종 전문가라는 양반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단지 찌질한 낙오자라는 생각도 옳지 않은 것이, 이러한 '부진생'에 대해서 기존의 보수적 시각으로 봤을 때 노력이 모자라서 그런 결과를 낳았을 뿐이며 그들은 성실하지도, 노력을 하지도 않는 그저 찌질하기만 한 사회적 낙오자, 떨거지라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부진생들이 흔히 말하던 현실을 모르는 공부벌레들이나 할 법한 이야기인 것도 사실이거든요.


이전부터 주장해오던 것이지만, 그 부진생이 된 이유가 실제로 지능적인 문제나 다른 여건이 다 좋은 데 정말로 노력을 안 해서 그런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그 본인의 환경문제일 것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고소득층의 자식들은 대부분 성적이 높고 저소득층으로 내려갈 수록 성적 또한 내려갑니다.


그 이유는 고소득층에서는 더 많은 비용을 들여서 더 좋은 학원과 더 좋은 과외를 받게 해서 더 높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인데 반해 저소득층으로 내려갈 수록 사교육비는 더 줄어들고 심지어는 학생 스스로가 공부할 시간을 쪼개 알바를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데, 이는 노력이라는 표현이 전혀 맞지 않은 데다, 조금 다르게 봤을 때 그 학생 조차 노력은 충분히, 오히려 더 열심히 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뭐, 어찌됐든 이 글은 그러한 것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기 위한 글이 아니고, 그럴 수도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살짝 넘어가도록 하고, 다시 본문의 주제로 돌아와보자면 이러한 인지부조화 기제는 학교나 사회에서도 자주 보입니다. 우화에 나오는 포도는 자신이 닿을 수 없는 어떠한 가치나 계층이며 여우는 인지부조화를 일으키는 부진생, 낙오자들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시시하고 현실과 사회는 전혀 모르며 잘 하는 게 공부 밖에 없는 공부벌레와 그 공부벌레가 성공해서 된 정치인이니 고위층이니 뭐니 하는 것들과, 마찬가지로 시시하고 서류니 뭐니 밖에 모르는 꽉막힌 정부의 공무원 나으리, 정리하자면 결국 정부와 정부가 가진 권위에 대한 무시와 편견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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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전제해야될 것은, 이 글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여성시대 카페 회원들을 변호하거나 쉴드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겁니다. 좀 더 큰 그림에서 그러한 비판이 올바른 것인가, 또한 그 비판에 진정성이 있는 것인가를 다루기 위함입니다.



먼저 낙태라는 것이 대한민국에서 불법이긴 합니다. 그리고 낙태에 대한 도덕적, 윤리적 비판은 분명 유의미하죠. 그렇지만 그것이 반드시 올바른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가령 낙태 찬성론자들의 주요 근거 중 하나인 싸지른 남자는 도망가고 여자 혼자서 그 아이를 어쩔 수 없이 낳고 기르기가 굉장히 힘들고, 경우에 따라선 아예 불가능하며 그러한 것을 원인으로 마찬가지의 영아 살해가 벌어질 수 있음이 그것이죠.


그렇다면 아이와 자신의 건강과 생활을 망치며 결국 둘 모두 불행하게 만들 가능성이 매우 큰 이러한 현상에 대해 가만히 두고 봐야하느냐 하는 겁니다. 물론 이것은 제도와 시스템을 통해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습니다. 소위, 복지라는 것을 통해요. 미혼모 따위를 국가가 지원하고 보조하는 형식으로 혼자 아이를 낳아도 생활을 영유할 수 있고 아이를 키울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면 좋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예정된 불행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낙태를 허용하는 것을 검토해보자는 의견이 이러한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싸지른 남자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멀쩡히 살아가는 반면 진짜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여성은 낙태로 인한 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점이죠. 이것은 단순히 생각해봐도 불합리적입니다.



다만 저는 낙태 찬성론자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반대론자도 아닌지라, 현재 낙태에 대한 제 생각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중립 정도로 아직 어느 쪽에 서지는 못하겠다는 것이죠. 판단이 서질 않아서 말입니다.



여성시대 카페 회원을 비롯한 수많은 여성들이 낙태를 했다는 사실에 대한 도덕적, 윤리적 비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습니다만, 그러한 비판을 넘어서 비난의 수준에서 그들을 싸잡아 공격하는 짓은 까놓고 말해서 꽤나 멍청한 짓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싸지른 놈은 따로 있거든요. 이런 경우 싸지른 남자에 대한 비판과 비난은 없고 단순히 애를 낳기 싫어서인지, 아니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서인지, 심지어 그 중에서 싸지르고 도망갔기 때문에 더더욱이라는 이유가 존재하는 지도 따져보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여자만 욕하고 여자탓을 하는 것은 맞지 않죠.


이러한 시각은 남성우월적이며 동시에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비판태도입니다. 물론, 역시 낙태에 대한 여러 의견이 존재하고 이것은 현재에도 수많은 전문가와 학자들 사이에서도 큰 논쟁의 대상이 되는지라 어떤 의견을 가지든 그것은 자유이고 그러한 자유를 토대로 낙태에 대한 자신의 의견, 태도를 정할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그에 대해선 어떻게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입 밖으로 내놓은 순간 그것은 공공에 대한 평가가 가능하고 그 자신의 낙태에 대한 입장이 어찌됐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에 의한 비판 또한 가능하다는 점도 분명한 사실이죠.



주로 여시를 낙태충이라고 혐오하는 부류는 일베인데, 일베의 여성혐오를 생각하면 여시를 혐오하는 것은 그닥 이상한 일도 아니고, 그 중에서 특히 이미지가 나쁜(그리고 실제로 그런 멍청이들인) 여시를 욕하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딱히 낙태에 대해서 특별히 반대하거나 비판론적인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낙태를 저지르는 여시를 욕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시가 싫기에 낙태를 핑계삼는다. 라는 것이 맞겠지요. 욕은 하고 싶은데 그냥 막 이유도 없이 까는 건 좀 그러니까 낙태라는 도덕적, 윤리적으로 문제있는 불법행위를 핑계삼자. 하면서 낙태에 대한 입장을 세우는 거라고 볼 수 있죠. 낙태를 하기 때문에 까는 게 아니라, 까기 위해 낙태를 핑계삼는 겁니다. 그들이 혐오하는 대상에 대한 폭력을 휘두르는 태도와 마찬가지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도덕, 윤리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고 동시에 불법인 낙태에 대해서 좀 더 쉽고 별 다른 양심적 저항 없이 이입할 수가 있는 겁니다. 나는 정당한 비판을 하고 있는 거야. 낙태는 나쁜 것이니까. 이러한 태도는 인지부조화인 데, 원래 낙태를 반대하고 그것에 대해 비판하던 게 아니라 여시를 낙태충이라 까기 위해 낙태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세운 것이고 그들을 혐오하고, 낙태를 더 비판하면서 그러한 태도에 스스로 더욱 더 경도되는 거지요.


그리고 그 동안의 자기 태도와 입장이라는 것이 있으니, 낙태에 대한 찬성론이니 뭐니 하는 것에는 더더욱 반대하고 비난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자기 스스로 가치관화 했으니, 그것을 부정하면 자신의 가치관이 부정당하는 것이며 이전까지의 입장과 태도는 모조리 비합리적인 폭력에 불과한 개뻘짓에 쓰레기짓에 불과하게 되니까. 동시에 그런 이유로 낙태에 대한 입장을 더더욱 신성불가침화 시키는 것이죠.



이러한 일베의 낙태 비판에는 진정성이 부족하고 순수하지 못합니다. 낙태가 왜 나쁘고, 어째서 하면 안 되는 지, 그리고 어째서 그에 대한 허용론, 찬성론이 존재하고 이것들에 대한 반박을 할 수 있는지 따위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실제로 관심도 없죠. 단지 여시(여자)를 까기 위해 그것들이 필요하고 잘 써먹고 있을 뿐입니다. 합리적인 사유의 과정으로 만들어진 태도가 전혀 아니라는 거죠.


앞서 말하지만 전 여시를 쉴드치는 것도, 낙태를 찬성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시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올바르지 못한 비판/비난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이고, 그 비판의 주제가 되는 낙태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며 이는 독자 스스로 돌아봐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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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30 - [취미/이야기] -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배경.



피해자는 자신이 받은 피해의 경험을 타인에게 반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배경은 그러한 원인이고, 예시로는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것이나, 군대에서 똥군기라는 이름의 폭력을 경험했을 때 이후 자신의 후임에게 똑같이, 혹은 더 가학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것도 있으며, 가정폭력 피해자가 나중에 자신의 자식에게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가해자가 되는 것도, 그리고 어렸을 때 성적인 학대를 받았을 경우 이후 성범죄에 빠지거나 가학 성향을 띄는 학대범이 되는 경우가 있지요.


이러한 것은 갑질에서도 나타납니다. 평소 상하위계적인 권력조직--작게는 가정부터 크게는 국가까지-- 속에서 억눌리거나, 혹은 아예 갑질과 같은 불합리한 폭력, 권력을 기반으로한 비인간적 대우 등으로 인격에 큰 압박이 가해지면 마찬가지의 환경, 즉 자신이 강자인 상황에서는 상대적인 약자에게 같은 행위를 가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스트레스 해소가 될 수 있고 그러한 것이 너무 익숙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에 자신 또한 그러한 행동에 어떠한 비상식적임을 느끼지 못하거나 느낌에도 불구하고 멈추거나 자제할 수 없는 것이죠.



현재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더 심했던 과거에는 이러한 갑질과 불합리, 비인간적인 대우, 인격에 대한 직접적인 모독을 코앞에서 겪으면서도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내린 채 묵묵히 예, 예 할 수 밖에 없었던 세대들은 현재에 들어서 일명 '노슬아치'라는 행동을 통해 반대급부를 맞이한 것일 뿐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나이 또한 권력이기 때문에, 나이가 많다는 상대적 강자의 입장에 서있는 어른, 노인들은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약자인 젊은 이들에게 그러한 폭력을 휘두르고 갑질을 하는 것이죠. 요컨데 이러한 행위는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이었던 과거의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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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습니다.


네, 진짜로, 한국은 통일에 대해 어떠한 노력도 하고 있지 않아요. 그냥 가만히 있는 겁니다. 미, 일, 중, 러 등등.. 주변국에 의한 경제봉쇄를 한 채 망하기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것 밖에 안 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게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 거죠.


우리가 통일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적어도 60년간 이러한 태도를 고수하는 것만큼은 하지 말아야 됩니다. 왜 우리가 이러한 상태에 있는지에 대해 알아야 하고요.


그 이유는 사실 간단해요. 서로가 서로를 외교, 대화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한과 북한은 서로를 적국, 주적으로 인식하고 그렇게 못 박고 있으며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양보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뿐입니다. 흔히 우리가 통일을 이야기 할 때, 정말로 양자의 항구적인 평화와 상호발전, 그리고 가능하다면 통일인지, 아니면 적국에 대한 보복과 오랜 복수심의 성취인지 고민해본 사람 있습니까?


우리가 통일을 논할 때, 통일 그 자체의 모습은 흔히 이렇습니다. 북한이 붕괴하여 그 해방자이자 북한 정치세력의 단죄자로서 승전하는 모습. 사실 북한 정권의 붕괴와 통일, 평화는 아주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 자체가 우리의 절대불변할 진리인 것도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우리 국가와 사회, 국민들의 안전과 평화를 위한다면, 그리고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외교를 하고자 한다면 먼저 북한을 외교의 대상,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국가로서 인식하고 그에 따라 대화의 대상으로서 인정한 뒤 그러한 외교/대화를 통해 현재의 '준전시상태'를 벗어나 '공식적인 종전선언'을 하며 북한이라는 주적에게서의 위협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 평화를 바란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선결과제는 통일이 아니라 전쟁상태의 종식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전쟁상태의 종식 = 통일이라는 공식으로 남북관계를 이해했지만 사실 이는 전혀 같은 것이 아니고, 우리의 목적에 대한 본질적인 오해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가 이기지 않으면 안 되고, 언제나 최종승자로서 북쪽 땅을 흡수하는 형태로 전쟁은 종식되고 마침내 평화와 통일이 찾아온다라는 것은 우리 남한이라는 국가가 생기기도 이전부터 존재했던 특정 정치세력의 어젠다였으며 이러한 어젠다가 10년도 아니고 무려 60년이나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면 이건 더 이상 현실정치와 외교와는 전혀 관계 없는 일종의 종교적인 신념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종교적 신념에 의해 돌아가고 유지되고 있는 다른 국가는 바로 우리 위쪽에 있는 바로 그 국가에요. 


외교라는 것에 있어서 국제적 정세와 자국 및 타국에 대한 이해는 매우 필수적이고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분야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국가의 형태를 띄고 있는 북한이라는 집단을 언제나 국가가 아닌 이북 땅을 차지한 거대 테러리스트 단체, 반국가집단이라는 허울을 뒤집어 쓰고 그 어떤 외교도, 대화의 대상이 아니라고 못 박아 놓은 상태에서 양자간의 무언가를 바랄 수는 없어요.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관계는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양보해주기만을 바라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양보해줄 생각이 없지만, 북한의 경우는 더욱 그래요. 우리가 북한의 입장이라고 생각해봅시다. 반세기 넘게 한반도 남쪽 구석탱이에 가둬놓고 경제적으로 완전고립 시켜놓은 채 전국민 다 굶어죽어가는 생지옥을 만들어놨는 데 이제는 또 우리 보고 양보를 해라? 절대 그럴 수 없죠. 양보를 하면 아예 국가 자체의 존속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남한의 그 어떤 지도자도, 국민도 그러한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통일에 대해 생각하고 논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편견과 선입견, 고정관념을 되풀이 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준전시상태에요. 그런데 평화와 통일을 논한다는 사람들 입에서 종전선언, 종전상태에 대한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무려 60년간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어왔다면 북한이 됐든 우리가 됐든 본질적으로 누구 하나가 본질의 차원에서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북한이 바뀔 가능성은 하염없이 0에 수렴할 것이고 결국 우리가 변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만, 애초에 그런 선택지의 가능성을 만들기 위해서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발전해왔고 민주화를 해온 것이지요. 이건 북한의 입장에선 사치에 가까운 일이니까요. 우리는 그러한 요소를 폼으로 키워온 게 아니잖습니까?


국력이 강한 나라야말로 외교에 있어서 여러 옵션, 선택지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현재와 같은 남북상황은 얻을 것은 없고, 잃을 것만 가득하며 앞으로도 이러한 상태에서 변화가 없다면 지금과 같은 역사를 반복할 뿐입니다. 국민들은 언제나 북한의 위협 아래 존재해야 하며 국가는 그러한 위협에 대해 감시를 절대 늦출 수 없는 치킨게임이라구요.


서로가 서로를 주권국으로 인정하며, 공식적으로 현재와 같은 준전시상황을 종결지을 종전선언을 해야 하며 외교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그렇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작금의 현실처럼 애매모호한 휴전 상황, 준전시상태를 유지하고 간간히 터져나오는 국지성 도발을 감당해야만 하는 것만이 한계에요.


그러한 인식이 없고서야 서로의 외교관들 손발을 묶고 평화통일만 반복해서 말하게 하는 것 따위에 불과하고 말입니다. 


글 시작할 때 말했지만, 60년간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었다는 것은 정말이지 통일과 평화라는 것에 대해 우리가 해온 노력이 하나도 없다는 거에요. 전혀. 그저 북한이라는 집단을 주적으로 못 박아 놓은 채 외교도, 대화의 대상으로도 인정하지 않은 채 쭉 경제봉쇄한 상황에서 스스로 붕괴하기를 기다리는 것. 이게 아무 것도 안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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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합니까?

박근혜 : 그래서 제가 대통령 되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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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세·자동차세 2∼3년간 100% 이상 인상

흡연자들 “담뱃값에 개별소비세 도입은 편법 증세”
http://www.newspim.com/view_potal.jsp?newsId=20141117000464
배출권거래제로 가구당 전기요금 3년 간 9천 원 인상 전망
http://web.pbc.co.kr/CMS/news/view_body.php?cid=528884&path=201409

[담뱃값 인상] 다음은 술? 죄악세 인상 줄잇나

http://www.newspim.com/view.jsp?newsId=20140911000328

건보료, 월급 외 이자·연금 소득도 보험료 매긴다

http://bizn.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409111521571&code=920100&med=khan

경기도 버스요금 오르나?…최대 660원 인상안 검토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4091212235891402

등등..

이거 말고도 증세 소식은 더 많습니다. 모아보면 국민이 얼마나 호구처럼 여겨지는 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말이죠.


처음, 박근혜가 걸었던 공약은 모두 복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 당선되자 뭘 했죠?



‘증세없는 복지’ 답 안나오자…공약 버리자는 새누리

http://media.daum.net/issue/419/newsview?issueId=419&newsid=20130114202021665


시원하게 버리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버렸고요. 복지? 없었습니다. 오히려 복지 예산 삭감은 많았습니다. 



아주 시원하게 깍아버렸죠. 한 푼도 안 줘버리는 식으로.


이런 정부입니다. 증세 없는 복지? 이미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과 자원외교의 삽질을 모를리 없었습니다. 그런데 증세 없는 복지나 각종 포퓰리즘 빨갱이 공약은 그저 표를 얻기 위해 국민들을 등쳐먹은 거죠. 쉽게 말해 뒤통수 친 겁니다. 돈은 정부가 다 까먹고, 기업은 세금 깍아주고 벌대로 벌면서 정작 서민들만 털어먹고 있다구요.


그래놓고 뭐라고 했죠? 최씨 아저씨의 말을 다시 한번 들어봅시다.


최경환 "부자증세 고려할 단계 아니다"

최경환 “증세 안 해, 빚 늘려 경제 살리고 세금 더 들어오게 해야”

...

뻔뻔한 것도 이 정도면 범죄죠.

그런데도 놀라운 것은, 이러한 정부라도 그들의 실책에 대해서는 어떠한 비판도 없고 오히려 일 잘한다고 칭찬하는 이들이 전국민의 수 십%가 된다는 겁니다. 솔직히, 이쯤되면 멍청한 거에요 국민들이. 뒤통수를 후려치고 눈 앞에서 내 지갑 돈 빼가는 데 잘한다 잘한다 칭찬하는 건 뭡니까. 그건 이미 상식에서 벗어난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증세 릴레이는 말이죠.

서영교 "뻔뻔스런 정부! 대서민 세금폭탄 준비했었다" 폭로


애초에 지킬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벌어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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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면서 집주인에 대해 동정표를 던지는 데, 솔직히 그저 법치에 대한 무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걸로 밖에 안 보입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저에게 또한 화를 내겠죠.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사실인데;


'집에 든 도둑 때려 뇌사' 20대男 징역형 "정당방위 아니다?"


(전략) '도둑이 들었다'는 것을 직감한 최씨는 김씨를 주먹으로 수차례 때려 넘어뜨리고, 김씨가 도망가려하자 그의 뒤통수를 발로 여러차례 찼다. 최씨의 폭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주위에 있던 빨래 건조대와 허리에 차고 있는 벨트까지 풀어 김씨의 등을 때리기 시작했다. (후략)


아니.. 솔직히 이게 어딜봐서 자기방어입니까. 자기방어란 스스로에 대한 방어행위입니다. 정당방위는 자신에 대한 위해에 대해 방어행위를 하다 일어난 피해에 대해서 인정받는 거라고요. 집주인 스스로가 먼저 도둑에게 달려들었고, 그 도둑이 '도망가려고 했는 데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며 그 과정 속에 충분히 흉기라 인정받을 수 있는 물건을 이용해 폭행했습니다.


남의 집에 침입해서 물건 훔치려다 발각되어 도망가던 사람과, 그 도망가던 사람 붙잡아다 저항도 안 하는 사람에게 수차례 발길질을 하고 벨트를 풀어다 후려치고 금속제 빨래건조대로 두들겨 팬 사람 중에서 누가 더 심각한 벌을 받아야 한답니까? 애초에 그 집주인의 폭력행위가 어떻게 봐야 정당방위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건데요?


예, 물론 남의 집에 침입해서 물건을 훔치려는 것은 분명 잘못됐고 범죄지요. 근데 그런 사람을 잡아다 뇌사상태에 이를 정도로 두들겨 팬 사람도 분명한 '범죄'를 저지른 겁니다. 이건 정당방위가 아니에요. 범죄자에 대한 폭력행위지. 길가다가 누가 내 얼굴에 주먹질 한두번 했다고 내가 오함마로 그 사람 머리통을 깨부수는 것은 정당방위가 아니라 이겁니다. 만약 제압을 했다면 그 상태로 경찰을 신고해서 넘기던가, 아니면 도망가게 둔 뒤 남아있는 증거 회손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해서 잡도록 해야죠.



법에서는 자력구제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합법적인 강제력을 지닌 공권력이 괜히 있는게 아닙니다. 자력구제, 사적폭력이 허용된다면 애초에 니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공권력 자체가 있을 필요가 없죠. 경찰이 있을 필요가 없네요. 안 그렇습니까? 내 집에 들어온 도둑놈 내가 죽여버리고, 나 때린 강도 쳐죽이고. 내가 알아서 하면 되는데 경찰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경찰이 없으면 참 정의롭고 살기 편할텐데요. 그죠?



이번 사건에 대해 비판할 때 주로 가지고 나오는 게 미국의 사례입니다. 근데 전 그거 보면서 그냥 사리분별 못하고 있다는 생각 밖에 안 들더랍니다.


미국에서 정당방위 받은 사건을 볼까요? 여자가 아기와 단 둘이 집 안에 있었는데 약물에 취한 걸로 보이는 남성 2명이 집 문을 두들기며 무단침입을 했으며, 여자는 살해의도가 아닌 아기와 본인을 지키기 위해 911과 소통하며 사격을 했고 그 결과 침입자 중 1명은 사망했지요. 그리고 이 사건을 들먹이며 이번 사건에 대해 선진적이지 못하다는 소리를 하는데, 정작 선진적이지 못한 생각머리 가진 사람들은 그 소리 하는 분들입니다.


먼저 사건 자체를 봅시다. 미국의 사례에서, 여성은 먼저 공권력과 소통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자신이 의도하는 행위가 정당방위의 범주에 들어감을 확인한 후 실질적인 위협이 닥쳐오기 직전에 사격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이 사망한 이후에도 추가적인 공격행위를 하지 않았어요. 확인사살을 했다던가, 혹은 도망가는 다른 한명에게 지속적인 사격을 가했다던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사례는 정당방위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죠. 반대로 우리나라의 사례는 어떻죠? 침입자는 집주인측에 그 어떤 공격적인 적대행위, 폭력행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도둑이 도망치려 했던 것은 발각된 시점에서 해당 상황을 회피하려는 의사를 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요. 그런 상황에서 집주인의 대응은 어떻습니까. 단순히 침입자를 포획하기만 했던가요? 아니면 그냥 보내주고 경찰에 신고했던가요? 정반대죠. 아주 격렬하게 폭력을 휘둘렀어요.


쓰러진 침입자를 상대로 추가적인 공격이 이어졌고 그 공격행위에선 앞서 말했듯 흉기로 볼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한 직접적인 공격행위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기사에 나온 대로라면 침입자는 도주시도 외에는 전혀 저항한 바가 없고 그 저항의 의사도 없는 상대방을 격렬히 구타했네요.


이게 미국과 같은 사례인가요? 비교가 가능한 겁니까? 단순히 결과만 보고 비교를 하면서 어디는 선진국, 어디는 후진국 드립칠꺼면 기본적인 사리분별력부터 길러야 하지 싶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정당방위에 대한 범위와 한국의 정당방위에 대한 범위는 그 역사적, 문화적, 법학적 차이가 분명하게 있습니다. 공권력이 당장 곳곳에 적용되기 힘든 영토와 인구밀도를 지닌 미국 특성상, 게다가 총기소유에 대한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 차이 또한 존재하는 미국과 한국의 단순 비교는 당연 억지에 불과합니다.



물론 저도 한국에서 정당방위에 대해 굉장히 인색하다는 점은 인정하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유연하고 합리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분명히 단언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정당방위에 대해 인색하고 그렇기 때문에 매우 불공평한, 비합리적이고 억울한 처사를 받은 사람들이 상당히 있으며 이는 역시 우리들을 분노케 하는 점도 이해하고 있고 저 또한 공감합니다.


하지만, 법치에 대한 무지와 감정적 분노에 따른 이성마비로 모든 범죄자를 죽여야 한다는 듯이 말하며 웃기지도 않을 헛소리를 나불대는 인간들에 대해서는 그와 마찬가지로 조소를 보낼 뿐입니다. 제가 범죄자를 옹호한다고 욕하실 분도 분명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사건에 있어서 집주인도 분명한 폭력 '범죄자'에 해당합니다. 범죄자를 옹호하는 쪽은 제가 아니라는 거지요. 저는 분명 도둑에 대해서도 책임과 처벌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과한 폭력을 휘두른 집주인 쪽도 비판하고 있습니다.


흑백논리로 사건을,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판단하려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논리를 똑같이 적용하자면 과속 걸리면 딱지를 때는 것보다 즉결처형하는 것도 할 말 없어야지요? 범죄자면 다 죽여야 한다 같은 정신나라 소리 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사건의 기사 댓글에 참 많이 달리는 것을 보면서 한 생각입니다. 더불어 한 소리 더 하자면, 그런 사람들 중에서 자기는 정말 살면서 그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범죄자에 대해 그렇게 분노하면서 왜 그렇게 길거리에 침 뱉고, 쓰레기 버리며, 속도위반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더군요.


마지막으로 형법에 나와있는 정당방위에 대한 조문을 올리며 글 마칩니다.


형법 제21조(정당방위) ①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정황에 의하여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③전항의 경우에 그 행위가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하에서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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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본인이 다음 T!P에서 답변한 내용을 가져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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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몇가지 팩트와 기사를 가져와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지니계수와 소득 5분위는 자료 아래의 설명과 같습니다. 지니계수가 1에 가까울 수록 빈부격차가 크다는 것인데, 빈부격차는 빈자와 부자의 재산 격차를 의미합니다. 빈부격차가 크다는 것은 빈자와 부자의 재산 격차가 크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소득 5분위는 소득 상위 20%의 가계(가게가 아니라 가계입니다. 쉽게 말해 가정, 집안을 뜻합니다.)의 평균소득을 하위 20% 가계의 평균 소득으로 나눈 것인데, 하위 가계의 소득이 낮고 상위 가계의 소득이 높을 수록 더 큰 숫자가 값으로 나오기 때문에 높을 수록 빈부격차가 큰 것을 의미합니다.



통계를 보면 05년부터 08년까지 지니계수와 소득 5분위가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는 고소득자가 더 많은 돈을 벌었거나, 혹은 저소득층이 더 적은 돈을 벌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혹은 둘 다를 의미하죠.


물론 이는 반대로 말할 수 있는데, 버는 돈은 똑같지만 나가는 돈이 적으면 그만큼 많이 번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쉽게 말해 세금을 덜 낸다면 덜 낸 만큼 이득이다 이것이죠.


아래의 자료를 봐주세요.








노회찬 "MB, 부자감세로 5년간 82.9조 세수 줄어들어"

http://www.asiae.co.kr/news/view.htm?sec=sisa1&idxno=2012072215281595614 


자료의 출처는 위쪽부터 경향신문에서 둘, 국민일보 하나, 한국일보 하나, 이용섭 의원실의 자료, 아시아 경제의 기사입니다. 이와 같은 부자감세에 대한 자료는 쉽게 더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노무현 정부 이후로 대기업, 재벌 등 부자들은 세금을 덜 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정부는 여러 사업, 투자 등에 많은 돈을 썼지만 제대로된 성과는 못 낸 채 빚으로 돌아오고, 그 부족분 만큼을 부자가 아닌 서민에게서 세금의 형태로 메꾸려고 하고 있습니다. 근거는 아래와 같습니다.


'MB의 저주' 계속된다...자원외교 성과는 없고 부채만 56조 남겨

http://www.amn.kr/sub_read.html?uid=16161


국민연금, 10대그룹 주식투자 '1조6천억 날아가'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10/02/0200000000AKR20141002203800008.HTML?input=1179m 


MB 자원외교…묻지마 투자, 수 조원 손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9778 


[경제]4대강사업 ‘부채 폭탄’ 재깍재깍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14&art_id=201407071820251 


수자원공사 부채, 4대강 사업 빚 폭탄 결국 세금으로? 성과급은 빵빵!

http://appida.tistory.com/1301#.VD-74hysFrw 


4대강 사업 부채로 수도요금 인상, 정부 잘못 국민이 떠안나?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797 


'국가채무 770조' 주범 이명박, 공범 박근혜의 '새누리파' 

http://impeter.tistory.com/2157 


서민과세의 근거는 아래와 같습니다.



배출권거래제로 가구당 전기요금 3년 간 9천 원 인상 전망

http://web.pbc.co.kr/CMS/news/view_body.php?cid=528884&path=201409


자동차세·주민세 등 지방세 줄줄이 대폭 인상 "2017년까지 100% 인상한다"..'서민 증세' 논란

http://pop.heraldcorp.com/view.php?ud=201409121345013109504_1


'담뱃값·주민세 인상은 증세'…기재부 사실상 인정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09/12/0200000000AKR20140912094800002.HTML?input=1179m


[담뱃값 인상] 다음은 술? 죄악세 인상 줄잇나

http://www.newspim.com/view.jsp?newsId=20140911000328


건보료, 월급 외 이자·연금 소득도 보험료 매긴다

http://bizn.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409111521571&code=920100&med=khan


경기도 버스요금 오르나?…최대 660원 인상안 검토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4091212235891402


기업이 덜 낸 세금 서민이 메웠다

http://media.daum.net/economic/others/newsview?newsid=20140923031242585


'연장근로 주 20시간 허용' 재추진.. 與, 재계 요구 전면 수용

고용부와 조율…휴일·연장근로 수당도 200→150% 축소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41002131807076


"경제살리기 도움되면 기업인 사면 전적 공감"

http://www.a-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646


정부, 타이어·양복 등에 개별소비세 과세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4101602109957803006 


이러한 팩트와 근거들을 바탕으로 살펴보자면, 부자가 세금을 적게 내면 그만큼 서민부담이 커진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세금부족분을 서민들에게서 채울 것이고 그만큼 서민들의 지출은 늘어나게 되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물가가 상승하지 않거나 월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닌지라(이 또한 통계자료 찾아보면 금방 나옵니다) 결국 그 고통은 서민들이 안게 됩니다.


반대로 부자들은 애초에 돈이 많기 때문에 세금을 조금 더 많이 낸다고 해서 당장 길거리에 나앉거나 장기적으로 형편이 어려워지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이미 많은 돈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도 이전과는 조금 덜 벌릴 뿐 많은 돈을 벌 것이기 때문이죠. 국가를 이루는 존재는 대다수인 불특정다수, 즉 국민들이고 그들이 고통스럽다면 국가의 존재 의의는 사라집니다.


또한 부자가 돈을 많이 번 이유는 그만큼 국민들이 상품, 혹은 서비스에 돈을 지출했기 때문이니, 그에 대한 보답으로서 국민, 서민들에게 돈이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역시 세금의 형태로요. 만약 그렇지 않고 그 돈을 더 많이 가지고 그 재산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빈부격차는 커질 것이고, 월급은 오르지 않고 물가는 상승하거나 적어도 내려가지는 않으니 장기적으로 점점 서민들의 지출이 적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지출이 적어지면 시장이 돈이 돌지 않아 경제가 경직되고 최악의 상황이면 인플레이션보다 무섭다는 디플레이션이 터지게 되죠.


경제구조는 지독한 피라미드 구조가 될 것이고 국가 경제에서 부의 대부분은 상위 1%가 차지하는 형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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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풍81, 이제는 그만!

http://blog.rainygirl.com/?p=2077


정부, 타이어·양복 등에 개별소비세 과세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4101602109957803006



2014/09/15 - [취미/이야기] - 새누리 지지자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 하면 안 됩니다.



도대체 몇번을 까는 것인지, 경제를 살린다느니, 성장을 한다느니 하는 서민들에겐 그저 허황될 뿐인 대기업 프렌들리의 빈부격차만 늘리고 실질적으론 서민을 연료삼아 대기업과 재벌 등 상위 1%만 더 부유하게 만드는 정부와 새누리당. 그리고 그런 자들이 맘껏 날뛸 수 있는 이유는 그러한 자들을 지지하고 꾸준히 뽑아주는 51%의 서민들이 있기 때문이겠죠.


우리는 깨닳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성장했으며, 그 성장이 자신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국민소득이 몇 만불이 되었든 먹고 살기가 어렵다면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국민소득이 10만불이 되든 100만불이 되든 실질적으로 여전히 허리는 휘고 물가 걱정을 해야하며 국민이 빚을 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삶이라면 그 경제구조는 그 자체로 이미, 그리고 확실히라 단언할 수 있게 잘못되었음을 나타내고 있으니까요.


기업이 살아야 국민이 산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IMF 이전까지는 그랬을진 몰라도, 그 이후론 절대로 아닙니다. 그건 여러분이 IMF 성장해온 국가와 자신의 삶을 비교함으로서 알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시간이 가면 갈 수록 걱정이 늘고 먹고 살기 힘들어지죠? 웃음보다 한숨이 더 나오고 타인의 안부보다 제 한 몸 건사하기만 하면 그만이게 된 것은 언제죠?


매일 같이 국가 경제에 대해, 그리고 민생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신다는 분들이, 그런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위해 한다는 것이 고작 재벌감세와 서민과세면 어떡합니까. 재벌은 서민이 아닌데, 돈 몇 푼 더 낸다고 길거리에 나앉고 허리가 굽어질 때까지 일행 하는 이들이 아닌데 어째서 그들은 더 부유해지고 밥 값에 버스비 걱정해야 할 우리들은 더 많은 돈을 내야 하는 겁니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정말로 들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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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환공이 사냥을 떠났다가 길을 잃었다. 도중에 한 노인을 만나서 이곳이 어디냐 묻자 노인이 대답하기를,

 "제 이름을 따서 바보의 골짜기라 합니다."라 하였다.

 이에 환공이 기이하게 여겨 물었다.

 "전혀 그리 보이지 아니한데 어찌 바보라 불리십니까?"

 "이전에 소를 키워 송아지를 낳았습니다. 시장에 가서 송아지를 팔고 망아지로 바꾸어 오니 이웃 청년이 '소가 망아지를 낳을 리가 없으니 이것은 그대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빼앗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 사람들이 저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러자 환공이 웃으며 "그게 사실이라면 노인은 정말로 바보요. 어찌 그러고도 관아에 신고치 않은게요?" 라고 하자 노인이 별 말 없이 나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다음날 환공이 이 이야기를 하자 관중이 옷깃을 여미며 말했다.

 "그 노인은 바보가 아닙니다."

 "바보가 아니라니 무슨 말이오?"

 "백주대낮에 남의 망아지를 빼앗아가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것은 관청이 백성을 지키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불온한 일을 신고치 아니함은 이미 백성으로부터 권위를 잃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소중한 망아지를 빼앗기고도 입을 다무는 일이 생기겠습니까? 한시바삐 관리들을 다시 다스려야겠습니다."


『說苑』



[단독] 억울해서 국민신문고에 글 썼더니…IP 경찰에 넘겨

http://www.hani.co.kr/arti/politics/administration/659180.html


위 고사는 현대에 와서도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 국민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국가에 도움을 청하였는데 정작 국가는 국민의 억울함을 듣는 것보단 국민을 감시하고 검열할 생각만을 가지고 있으니, 이는 민심을 알지 못하는 이유가 됩니다. 국민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 지를 알아야 정책을 짜지만, 국민이 그러한 불편이 있어도 감시당하고 검열당할까 무서워 그 생각을 감춘다면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게 되고 그것은 오랫동안 썩어 고름이 되겠지요.


그렇게 사회의 발전은 정체하고 잘해봐야 퇴보만을 막을 수 있는 상태를 조장하는 것이 바로 이 나라 정부가 아니겠습니가? 국민의 불편과 억울함에 대한 해결과 해소에는 관심이 없고 문제가 있다고 말하며 불편과 억울함을 호소하면 그저 입을 틀어 막기에 온 힘을 쓰는 이 나라에서 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특별한 곳을 찾을 필요 없이 바로 우리들 입과 마음속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까요? 멀리갈 필요도 없이 스크롤을 조금 올려 위의 고사를 다시 보면 답은 이미 나와있습니다. 한시바삐 관리들을 다시 다스리는 것.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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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매우 합리적이고 평화적이며, 동시에 이상적이고 공상적인데, 그 이유는 대화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지극히 난감한 이유 때문입니다.


이 무슨 모순적인 말이냐면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혹은 다른 가치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명 대화가 필요하지만 그 대화가 제대로 끝마칠 수 있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죠. 가령 언제나 대한민국의 뜨거운 감자인 북한의 입장에 대해 우리는 그들을 이해해야 하고 대화해야 하며 꾸준한 지원을 통한 외교를 수립해야 한다. 라는 말을 한다면 이와 반대된 생각을 가진 누구나가 나타나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며 처음 의제를 띄운 사람의 주장과 논리를 반박하게 될 겁니다.


사상이나 이념, 혹은 가치관이라는 것이 재밌는게, 그것에 대해 완고한 입장을 가질 수록 이해의 장벽이 더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극단주의자들의 경우 그 완고함이 지나쳐 다른 것들을 이해한다는 기능이 마비되어있고 자신의 생각, 가치관이 올바른 것이라 굳게 믿게 되지요.


누구든 이러한 면은 가지고 있기 마련인지라, 모든 이를 이해할 수는 없는 법이겠지요.



대화라는 것은 많은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주장, 논리와 같은 형식적인 것부터 해서, 어투, 뉘앙스, 속 뜻 등등 애매한 것들도 있지요. 그리고 그 애매한 요소들이 가지는 차이란 너무나도 커서, 같은 말이라도, 설사 그것이 올바른 말이라도 다른 사람이 기분 좋게 받아드릴 수 없는, 혹은 아예 부정하게끔도 만들 수 있죠. 더 애매하게는 맞는 말인데 기분 나쁘게 말 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싫어하고 욕하는 경우도 있지요.


뭐, 아무튼 이러한 요소들 때문에 우리는 서로 다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과의 대화가 힘든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화를 하다보면 나와는 너무 다른 생각에 화가 날 수 있고 짜증이 날 수도 있죠. 그런 감정이 글에 뻗쳐 상대방을 자극하다보면 건전한 대화는 물건너가고 치열한 논쟁과 첨예한 언쟁만이 남을 때도 있습니다.


아예 상대방이 극단주의자라서 대화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요.



대화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가. 만약 모든 인간이 감정을 내비치지 않고 철저히 사무적인 태도로써 상대방과 논리와 합리성을 통해 대화를 한다면 분명 건설적인 결론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렇지 않죠. 논리와 합리성이 우선시 되야할 대화에서 자신의 논리가 꺽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해 온갖 반칙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고 아예 논리와 합리성 자체가 결여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과는 대화를 통한 결론을 만들어낼 수가 없죠. 따라서 대화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대화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답변이 나올 수 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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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거짓말을 했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기억이 잘 안 날지도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유치원에 다니던 어린 시절부터 거짓말을 하는 법을 배우지요. 사실 그것은 누구에게 배운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누구에게 배우고 할 것도 없이, 그저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지요.


거짓말을 한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 이유를 알면 왜 거짓말을 하는지도 알 수 있지요. 어린 아이가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 아이는 유리컵을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위험하니 그러지 말라는 엄마의 말에도 신경쓰지 않고 놀다 실수로 그 컵을 깨뜨려버렸습니다. 너무 무섭고 놀란 아이는 엄마가 이걸 봤을 때 어떨지 대충 짐작이 갈 수 있겠지요. 왜 엄마 말을 안 듣고 컵을 깨뜨리냐는 야단을 맞을까 무서운 아이는 자기가 안 했다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즉, 책임에 대한 회피로써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겁니다.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두려워, 자신이 하지 않았다, 혹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했다는 식으로 책임에게서 회피하려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이는 나이를 먹어서도 무언가 책임지는 일이 다가왔을 때, 그 책임이 자신에겐 너무 무겁거나 두려워서 피하려 할 때 똑같이 나타납니다.


다른 양상은 자신에게 이득이 될 때인데, 친구가 가져온 카드나 팽이가 너무 탐이나 몰래 슬쩍하고는 혹시 못 봤냐는 친구의 말에 못 봤다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친구는 그것을 찾지 못할 것이고 결국 포기하게 되는데 그때까지 들키지 않으면 자신의 것이 되겠죠. 욕심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거짓말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거나, 자신에게 피해가 될 때 하는 행동입니다. 자신이 책임지기 싫을 때, 무언가 얻게 된 방법이 공정하지 못할 때.


이 이득이라는 것도 연장선상에선 후자에 포함되는데, 친구의 팽이를 훔쳤는데 자신이 훔쳤다는 것이 들켰을 때 돌아올 평판, 신뢰에 대한 손해와 자신이 훔친 팽이를 다시 돌려줘야 되기 때문이지요. 결국 남는 것은 자신의 평판만 깍이는 것이니.



거짓말이 통하게 되면 무언가 비도덕적인 방법으로 이득을 보거나 책임을 지지 않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게 되면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고, 학교에서 볼 수 있는 일진들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일진들은 곧잘 교사에게 대들고 친구의 물건을 마음대로 가져가고 대상이 누가 되었든 거짓말을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그런 행동을 수없이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양심의 가책 따위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런 아이들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에도 능하게 되는데, 분명 자기가 잘못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교사가 그것을 똑똑히 봤음에도 불구하고 면전에서 안 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 경우 잘 보면 오히려 잘못한 쪽이 더 억울해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속였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했고 자기 스스로도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에 대해 회피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결국 자기 감정마저도 속여 분명히 자기 스스로도 똑똑히 알고 있지만 안 했다고 말하면서 거짓된 감정이나마 정말로 억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지요. 그렇게 자기 자신을 속이고 나면 양심의 가책 또한 덜하게 됩니다. 난 안 했으니까.



일진들은 이러한 책임을 지는 상황을 별로 겪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끝까지 고집부리며 거짓말을 하고, 어른들이 눈 감아주고, 봐주고, 상대하는데 질려서 결국 넘어가는 경우를 수도 없이 겪다보니 정작 제대로된 책임을 져본 적이 없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일을 벌이고 자기가 제대로 책임이지 못하는 어른을 애새끼라 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진, 양아치들은 나이를 먹어도 딱 그 수준인 것이고요. 혼날 때는 끝까지 고집부리며 안 했다고 딱 잡아때고, 자신이 했음에도 거짓말하고, 그렇게 제대로 처벌받지도 않고 고작해야 몇대 맞거나 안 좋은 소리 좀 듣는 상황이 빨리 넘어가기만을 바라는 것 뿐이지요. 자기 스스로 끝까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져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까.


그런 인간은 나중에 자기 앞으로 정말로 큰, 자기 스스로 져야할 거대한 책임 앞에선 아무 것도 못하고 벌벌 떱니다. 책임을 져본 경험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고, 애초에 자기가 져야할 책임이라는 자각이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들일테니까요. 일진이 하는 폭력, 갈취, 괴롭힘 등등은 그 행동에 대한 온전한 책임과 처벌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하는 행동입니다. 누가 저지하지 않으니 스스로 멈출 이유를 못 느끼니까요.


그렇지만 어쩌다 그런 거대한 책임이 잘 지나가고 나면은 스스로 아무 것도 아니네 하면서 허세부리곤 합니다. 실제로 그 상황에선 벌벌 떨고 무서워 했지만 일이 끝나고 나면 별거 아니었다고, 나 쫌 쩌는 놈이라며 없는 배짱 부리며 허세를 떠는 거죠. 법원까지 갔다가 결국 별 큰 처벌도 없이 일이 끝나는 경우 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여러번 겪는다면? 이젠 법도 무서울게 아닌거죠. 학생 때처럼. 교사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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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권리는 자신이 투쟁하여 얻어내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대신 싸워줄 수는 없지요. 그러한 신념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싸워나가는 사람들은 분명 대단한 사람이고, 가치있는 행동입니다. 그렇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도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 세상인지라, 투쟁을 하긴 하는데 엉뚱한 대상을 잡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관철시키려는 자들의 비겁한 투쟁또한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재특회가 있죠.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사람의 시민 모임이라는 명칭의 재특회는, 명칭 그대로 재일 한국인들에 대한 특권을 허용하지 말자라는 주장(을 포함한 극우 주장을 남발하는 멍청한 주장)을 하는 단체입니다. 실제로 재일 특권이 있기는 하다만, 세금을 내지 않는 일부 조선인 단체, 주민세를 일본인의 절반, 일본 국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에서 국민연금이 지급 되는 등 대부분 세금, 돈과 관련된 것들이 많은데, 어쩌면 이것들이 일본인이 보기에 매우 불평등하고 그렇기 때문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타 다른 원인, 명분 등을 제끼고 봐도, 그들이 하는 주장은 언제나 재일 한국인에게 한다는 겁니다. 이런 것들은 응당 일본정부에게 항의해야할 것을, 요상하게도 재일 한국인에게 한다는 겁니다.


이상한 주장을, 이상한 대상에게 하고 있는 셈이죠.


이런 면은 우리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주로 군대문제에 있어서, 여성들에게도 군대를 가야한다는 주장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의미가 없지요. 일단 사병(전투병)으로서의 여성은 가치가 없고, 여성을 위한 시설과 물자를 보급해주기 위해서 더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여성은 부사관과 장교만 허용되지요. 


여군이 있는 국가는 대부분 여성의 전투병을 허용치 않습니다. 해본 적은 있지만 의무병 등 비전투 요원으로 돌린 이스라엘이나, 미군도 할까말까 하는 수준이고, 노르웨이는 정치적인 이유로 평등을 실현시키기 위해 여성을 전투병으로 훈련시키지만, 그곳의 환경은 우리나라와 전혀 다릅니다.


실제 전쟁의 위험이 있다면 그곳도 여성을 비전투 요원으로 돌리고 여성징병제를 폐지하는 쪽으로 발을 돌릴 것이라 예상됩니다. 애초에 안보의 위협이 없었기에 정치적 의미로, 성평등을 위해 여성징병제를 허용한 것이기 때문이고, 북한의 사례를 보더라도 북한마저도 여성을 전투병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성에게도 군대를 가라고 한다는 것은, 사실 나도 똥물에서 굴렀으니 너도 똥물에서 굴러봐라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론 무리가 있겠지만, 이러한 투쟁은 병역 자체에 해야 하고(예컨데 모병제실시),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자면 적어도 임금 만큼은 최저임금에 맞춰서 줘야 합니다.


대체복무나 병역세 등에 관한 이야기는 나름 설득력있다고 보지만, 솔까 남자 입장에선 그딴건 아무래도 좋고 군대에 있을 동안 최저임금만 주면 그게 좋은거죠. (2년 동안 꼬박꼬박 모으면 얼마야..;;) 돈이 많이 든다고 반대할 사람들이야 분명 있겠지만, 개소리죠. 못할 거 없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동안의 재벌감세만 그 이전으로 돌리면 분명히 가능함.)


하여튼, 재특회나 여성에 대한 병역 문제는, 사실상 수평폭력이죠. 재일특권이 문제라면 일본정부에 항의해야 하는 것이고, 병역이라면 국방부에 항의할 것인데, 자기보다 더 약자에 있는 이들에게 특권이라는 굴레를 씌우고 욕하고 항의 하는 것이죠. 기실 의미없는 폭력일 따름인데 말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투쟁은 비겁한 투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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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부자감세를 감행했습니다. 08~12년 동안 소득세 약 25조, 법인세 35조, 부가가치세 4조원, 기타 17조원 등 82조원과 종합부동산세 무력화 5년간 10조원, 상장주식양도차익 과세 및 자본이득과세 도입을 시행하지 않아 약 10조원 이상의 감세혜택을 재벌과 대기업에게 줬습니다.


그리고 각종 무리한 사업을 벌이며 적자예산을 책정하여 나라 빚은 물론 현재의 각종 (갖잖은) 수세확보와 민영화질의 바탕원인이 됬지요. 문제는 이런 부자감세를 하는 이유가,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헛소리를 기반으로 한다는 건데, 그 이론적 바탕을 보면 낙수 이론이라는 병신같은 이론을 가지고 있죠.



신자유주의의 도입과 함께 낙수 이론을 신뢰하며 대기업을 부풀려 줬고 그 결과 부자와 재벌들은 더 많은 부를 쌓았지만, 과연 그들의 부가 아래 계층에게 떨어졌을까요? 현재 서민들의 삶을 보면 답을 알 수 있습니다.


재벌과 대기업은 더 부자가 되었고, 서민들은 점점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살고 있죠. 벌리는 돈은 크게 늘지 않는데 물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하니까요. 그게 사실입니다. 당장 자신들의 삶을 5년전, 10년전과 비교해보세요. 나아졌습니까? 가계소득이 늘었나요?


국민소득 2만불이라고 하는데, 그건 평균의 오류를 이용한 눈속임에 불과합니다, 대기업에 수십만, 수백만 달러를 버는 것과 일반 서민의 소득으로 평균을 계산 했는데 평균소득 2만 달러가 나온다면 그건 되려 빈부격차가 심각하다는 반증일 뿐이죠. 국민소득 2만불이니 어쩌니 하는 소리는, 마치 경제는 발전하고 나라가 잘 되간다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개수작에 불과합니다.


결국 중요한건 다수의 국민들의 삶인데, 극소수의 재벌과 대기업만 잘나간다면 그게 나라가 잘 되는겁니까? 나라를 위해 국민이 희생한다면 국가는 그 존재 의의를 상실합니다. 국가가 잘 되야 국민이 잘 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잘 되야 국가가 잘 되는 거죠.



물가는 꾸준히 상승해왔고, 임금은 큰 변동이 없었습니다. 그런 주제에 각종 사업을 통해 국고를 날려먹고는, 대기업, 재벌에게는 감세, 일반 서민들에게는 --심지어 문화상품권, 아파트 일일장터, 폐지줍는 노인에게도!-- 세금을 걷어가려고 하지요. 심지어 서민들, 월급쟁이들에게 세금을 더 걷겠다는 심산으로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는 정책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다시말해, 빈부격차가 벌어지고 서민들이 먹고 살기 힘든 이유가 바로 정부와 여당,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는 자들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겁니다. 세금이 필요해? 그럼 대기업, 재벌들에게 과세하면 됩니다. 어차피 그들은 돈이 많아서 과세한다고 해서 별 타격 없습니다. 어차피 엄청난 돈이 계속해서 벌릴 것이고요. 그들이 과세한다고 당장 망할 것처럼 구는거? 안 망해요. 나라는 더욱이 안 망하고요.


당장 우리만에도 온갖 세금 다 뜯기면서도 어찌저찌 살아가고 있는데, 그보다 가진거 수십수백수천배는 많을 사람이 당장 망할 것처럼 구는건 기만이고 양심이 없는 겁니다. 그런거에 동조하는 일반 서민들은 섬노예 주인님이 단속들어와서 노예들 좀 뜯기니 주인님 걱정하는 단속 안 된 노예랑 별 차이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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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일베에서 일베식 손동작같은게 만들어졌더군요. 전 그걸 보고 대번에 나치식 경례가 생각났습니다. 나치의 저런 손동작은 자신들이 나치의 일원이며 애국심을 가지고 있는 독일 국민의 한명이다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주입했습니다. 일베의 저런 손동작은 의도했든 안 했든 저런 식으로 집단간의 소속감을 공고히 조장하게 만들겠죠. 나는 일베인의 한명이다. 애국보수(풉)의 일원이다. 하면서 말이죠.


하나의 의식적인 행위인 셈이죠.



일베의 성장은 마치 나치당이나 KKK의 성장을 보는듯 합니다. KKK단도 처음엔 우리가 알고있는 극우적 인종주의 폭력집단이 아니라 남부 출신들의 놀이모임 형식이었다죠. 실제로 레크리에이션 집단으로 시작해서 춤추고 친목을 다지던 집단이 어느새 인종주의와 심각한 폭력성을 가진 집단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일베는 유머사이트'였습니다.' 유머사이트로 시작했습니다만, 점점 사이트가 변질되어버렸죠. KKK단이나 나치당과 같은 차별, 그들이 유태인과 흑인들에 대한 차별과 증오, 폭력이었다면 이번엔 전라도민과 전라도 출신에 대한 차별과 증오, 폭력인 셈이죠. 


젊은 이들에 대한 세뇌와 사상전파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히틀러 유겐트 당이 그것이라면, 일베같은 경우 주 이용자가 10대~20대라는 점에 있습니다. 전에도 길게 이야기를 했듯이, 유머라는 것을 찾아온 이들에게 그들의 사상을 조금씩 녹여 주입시키는 것이었죠. 반사회적, 반인륜적, 반민주적, 메카시즘적, 방종한 집단. 그리고 그것을 조장하며 퍼뜨리는 일베충과 그들의 자료.


독재와 군국주의 찬양,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독재자 클럽에 대한 맹신적 후빨은 이미 사상적으로 노예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유신좀비, 유신노예들이죠..


똑같이 집단내 선민사상과 엘리트의식 비슷한게 있습니다. 그들이 백인, 아리아 민족의 우수성과 우월함을 강조했다면, 일베는 애국보수라는 허상을 만들어내고(왜냐하면 그들은 애국도, 보수도 아니기에.) 거기에 도취해있는 모양새지요. 종북, 전라도인, 좌파, 진보를 저열하고 쓰레기 그 이하로 보며 우월감이라도 취하는 모양이죠.



...



나치당, KKK단도 처음엔 그렇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도 비이성적이고 반민주적인 태도와 그것을 강력한 단결, 혹은 권력 및 권위를 통해 저지하지 않았던 실수와, 저열한 프로파간다와 선전선동, 그것을 통한 국민적 집단세뇌는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게 되었고, 그 결과 인류 역사에 남을 악행과 뼈아픈 반성을 뒤따르게 했지요.


일본의 넷우익도 처음엔 인터넷에서만 활동했습니다. 그렇지만 계속된 국민들의 우경화에 따라 현재 그들을 보세요, 넷우익은 인터넷에서 빠져나와 현실에서 진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 아베총리는 그들에게 있어서 올바르고 뛰어난 지도자일 것입니다. 아베가 하는 말마다 망언이라곤 하지만, 사실 우리가 그들과 똑같은 수준, 상황이 되어있을 땐 우리의 지도자라는 놈들도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죠.



...



최근 일밍아웃을 하는 일베충이 늘고 있다나요?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일베충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사회적인 인식에서 굉장히 불이익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행동과 사상에 따른 판단을 했을 경우, 자신이 일베충이라는 것을 밝히면 안 좋게 볼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기에 숨기는게 대부분이었죠. 넵, 자신들은 자기네를 옳다고 믿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물론 마터 신드롬이라고, 자기들을 순교자 내지는 멍청하고 종북에게 세뇌당한 불쌍한 국민, 저열한 종북에 의해 탄압받는 억울한 애국보수라고 믿고 있었겠지만..


하여튼, 일밍아웃이 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일베가 사회에 적극적으로 흘러나오게 될 것이라는 것과,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러한 쓰레기같은 집단과 사상이 물 위에서 흔하게 보일 것이고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이들이 일베의 사상에 동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일베의 사상과 사고방식이, 주류나 그에 준하는 형태로 사회로 퍼져나가고 그렇게 남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마치 처음엔 병신집단 내지는 조그마한 극우군소정당이었던 나치당이 어느새 정치의, 사회의 주류가 되었던 것처럼요. 이처럼 조금씩, 서서히 국민들을 내부에서부터 잠식해나가는 선동, 세뇌가 정말 위험한 것입니다. 


전에도 자주 밝혔듯이, 일베는 언제라도 방어적 민주주의건 뭐건 부수고 없애버려야 했을 집단이라는 겁니다. 지금 일베는 또 성장중이에요. 이번엔 인터넷에서의 성장이 아니라, 그것을 기반세력, 바탕으로하여 사회로 나오려고 합니다. 마치 넷우익이 인터넷을 벗어나 현실에서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똑같은 겁니다. 그리고 일본은 딱 그 수준의 총리가 국가수장으로 앉아있고, 현재에도 우경화는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한국은 일본의 전철을.. 정확히는 안 좋은 것만 따라가더군요. 일본의 그러한 우경화와 국가적, 사회적인 파쇼화를 그대로 따라갈 겁니다. 그 척도가 일베의 성장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맨 위 사진의 일베식 손동작(일베식 경례?..)는 이러한 척도로 구분해봤을 때, 인터넷에서 빠져나와 오프라인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그러한 시점에서 내부적인 소속감을 공고히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전 저 손동작을 보면서 The Wave라는 작품 또한 생각나더군요.


독일 영화로, 독일의 김나지움(한국의 중고득학교 과정에 해당합니다.)의 교사인 벵어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실험을 기획합니다, 전체주의의 폐해에 대해서 토론하던 벵거는 2차대전 당시의 나치즘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왜 2차대전 당시의 독일 국민들이 자치의 전횡을 수수방관했는지 실험하기로 하죠.


먼저 그는 반 아이들에게 자신을 부를 때 '벵거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하고 (원래 학생들은 미국처럼 성을 뺀 이름만 불렀습니다.) 청바지와 하얀 셔츠를 같은 단체복으로 정해주며, 스스로를 '웨이브'라고 부르며 정치집단처럼 성장해갑니다. 웨이브에 소속되지 않은 학생들을 회유시키거나, 혹은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자신들의 집단에 소속시키는 웨이브는, 점점 학생들은 벵거의 권위에 복종하게 되고 나중엔 나치식 경례와 비슷한 '웨이브식 경례'를 하고 다니죠. 그리고 이 학생들은 점점 통제할 수 없게 되는데, 그들은 충실한 벵거의 광신도들이 되어 도시 전역에 웨이브의 표식을 낙서하고 다니는 정도가 됩니다. (현재로 네오나치들이 곧잘 하고 다니는 짓이기도 하죠.) 심지어 실험이 끝났다는 벵거의 말에도 불복하고 웨이브로서 활동하고자 하는 광신도 학생들은 이후 죽음을 맞이라고 영화가 끝납니다.


일베는 딱 이 꼴이에요. 그렇기에 일베가 빨리 사라져야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근거지와 핵으로서 작용되는 사이트를 날려버리면 현실집단도 아닌 인터넷의 집단은 그 분열도 빠르겠죠. 그리고 서로 또 모이고자 하는 이들이 제 2의, 제 3의 일베 사이트를 만들겠지만, 그것은 그들간의 경쟁이 되어 분열을 재촉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나뉘도 경쟁하게 되는 것은 그들의 생존에 불리하게 작용하겠죠. 실험이 끝났다며 웨이브를 해체하였으니 웨이브로 남겠다는 학생들의 비극적인 죽음처럼, 일베를 부수었으나 일베로서 남겠다는 일베충에게 남은 것은 비참하게 아무 것도 아닌 쓰레기가 되는 것이죠.



...



우리가 역사를 통해 무언가 배웠다면, 지금 당장 일베를 견제하고 박살내야 합니다. 나중에 일본처럼, 나치독일처럼 됬다고 후회하는건 미련해 보이잖아요.




같이 보기

일베에 대한 단상

일베라는 프레임

일베충은 어떠한 정치적 신념에 의해 모인 존재들이 아니다.

애국은 사악한 자의 미덕이다.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는 자.

상식이 종북에 갇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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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멀쩡한 국가가 온전히 외침으로 멸망하는 사례를 그다지 많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외침으로 멸망당했을지언정 그 원인을 따지고 보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가 잘못되어서, 나라의 중책을 맡고 있는 이들의 욕심과 파벌싸움으로 나라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기 때문에 멸망한 사례가 차고도 넘칩니다.


기실 국가의 정치나 경제, 사회가 정상적이고 온전히 기능하는 국가는 그 국가적 역량을 온전히 안보에 쏟아넣을 수 있기 때문에, 침공하는 입장에서도 이들이 가장 강성할 때가 아닌 가장 혼란스럽고 약할 때를 노리는 것이 정석적이고 정상적입니다. 대게 멸망하는 국가의 전후사정을 알아보면, 정치는 문란하고 경제는 꼬여있으며 사회는 혼란스럽습니다. 그런 국가를 집어먹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게 때문에 정치란 자고로 이러한 상황을 막고 억제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또한 정치는 그렇기 때문에 국가를 강성하게 하고 국민을 편하게 하며 경제를 풍성하게 하여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실하게 만들어야하고, 그러한 의무와 목적을 지니기 때문에 정치를 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정치적 문제를 위해, 상대 파벌과의 정치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국가를 혼란스럽게 하며 싸움을 일으키고 서로 증오와 반목을 심어주는 일을 그 자체로 국가를 위한 일이 아니며 혼란스럽게 하여 국가를 약하게 하는 일이므로 악하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정치에 파묻혀 작고 좁은 권력과 이익을 위해 더 중요한 것을 희생시키는 짓을 하는 것은 외부의 적과 싸우는 것보다 위험한 일이며, 그것이 내부의 적이 외부의 적보다 위험하고 경계해야할 이유임에는 틀림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악용하여 정당하고 올바른 주장을 하는 이들과, 혹여 그렇지 못한 이들이 있더라도 비슷한, 그렇지만 틀림없이 다른 집단을 한데 묶어 매도하며 이들이 바로 적이니 이들을 척결하자 하는 것은 그 주장이 악용인 이유가 되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넓은 시각에서 혼란을 일으키고 나라와 사회를 망치는 일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주장을 하며 사회를 올바르게 하자는 자들을 배척하는 이들이 바로 우리의 적이며 싸워야할 대상이자 쫓아내 뿌리 뽑아야할 암세포라 해야겠지요.



망국의 징조는 그렇습니다. 정치는 문란하고 사회가 혼란스러우며 경제는 꼬여있어 국민들이 행복하지 못하고 어렵고 힘들며 증오와 반목이 사라지지 않고 서로를 배척하고 싸움이 흔하게 되면 타국이 보기에 이런 국가를 집어삼키기 쉽다할 것이고, 그것이 행동에 들어가면 이는 망국의 길로 스스로 들어가게 만드는 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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