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topia는 우리말로 이상향, 이상사회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16세기 초, 토마스 모어에 의해 쓰여진 이 이야기는 당대에 생각할 수 없었던 사상과 생각을 담은 작품이죠. 금욕적이고 절제적인 삶을 살면서, 사유재산이 철폐되고 노동시간이 짧은 등, 공산주의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는 이 나라가 이상사회로 번역되는 것은 작품 내에서 묘사되는 유토피아의 모습이 작가가 생각하기에 이상향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토마스 모어가 만들어낸 유토피아라는 단어는 현대 영어에서 이상향의 의미를 담고 있죠. 그렇다면 이상국가, 이상사회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높은 지성을 가진 덕성있는 시민들이 합리적이고 이상적이나 또한 인을 생각할 줄 아는 시민들이 이루고 있는, 서로에 대한 예절을 지키며 상호존중하며 노동시간을 짧으면서 높은 생산성을 이룩하며 고소득의 수익을 벌어들이면서 높은 수준의 복지가 이루어져 범죄자나 부랑자가 없는 등 사회에 대한 불만이 없으며 모두가 행복하고 모두가 고통받지 않는다는 것은 어떨까요.
이는 마치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북유럽은 꼭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국가의 모습 그 자체가 아닙니다. 그들 나름대로 문제를 가지고 있고, 그곳에서도 사회불만은 존재하죠. 지난번 총기난사 사건이 그것에 근거를 댑니다.
앞서 댄 조건들을 다시 생각해봅시다. 저것들을 실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일단 가정부터 살펴보죠. 모두가 덕성있고 지성이 있으며 사회의 틀에서 (안 좋을 쪽으로) 삐져나온 이들이 없으려면 가정에 대한 복지는 필수입니다. 올바르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인간으로서의 시작이 뒤틀린 격이기 때문에 지독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이들의 범죄율이 높은 것이죠. 따라서, 적어도 맞벌이 등으로 부모가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을 적게 만드는 것은 잠재적으로 사회를 혼란시키는 원인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그 예가 우리나라는 아닐까 싶군요.
또한 부모 또한 부모로서의 자격과 의무 등에 대한 교육을 받게 해야합니다. 부모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것 만큼 아이에게 해가되는 것은 없으니까요.
그렇게 올바른 가정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만들어졌다면 다음은 공교육으로 눈을 돌려봅니다. 공부라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 아닙니다. 지혜를 또한 얻을 수 있어야하죠. 그러려면 철학에 대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수학, 문학, 과학, 외국어 등등은 기초 지식으로서의 조건이지만 철학은 조금 달라요. 인간에게 지성의 깊이를 더해주는 학문이라고나 할까.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사색에 가치를 부여해주죠.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작은 현상에서도 더 큰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지혜의 발견이고, 생각의 힘입니다. 철학은 그것을 위한 도구이구요.
경쟁은 물론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뭐든 과유불급인지라 경쟁이 과격해진다면 순기능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을 방지할 수 있도록 장치를 해놔야함은 사실이죠. 그렇지 못하면 공교육에서의 승리를 위한 사교육이 폭주하니까요.
그렇게 공교육을 통해 하나의 지성체로서의 인간이 만들어졌다면 그들이 해야하는 것은 사회를 이루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는 직업이라는 것을 통해 이루어지죠. 앞서 이야기하자면, 위의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엄청난 복지예산이 필요할 것입니다. 북유럽만해도 소득의 수십%를 세금으로 때가죠. 그렇지만 그들의 소득수준 또한 무시할 것이 못되요. 그러므로 그들의 소득수준 또한 높아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교육과 복지등의 노력으로 높은 지성과 덕성있는 시민들이 만들어졌고, 그러한 속성 덕에 사회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발생해도 차분한 토론을 통해 깔끔한 대안책을 제시하고 해결하는 등, 누구도 고통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진다면 그것이 이상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덕성있고 지성이 높다한지라도 그 시스템을 악용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을 것이고, 사회의 불만을 완벽하게 제어하고 없애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하다못해 북유럽과 같은 복지를 위해서는 사회구조 전반을 뜯어 고쳐야하는 나라도 태반인 이 세계에서 이상향는 말 그대로 '이상'찌든 발상일 것입니다. 애초에 모든 시민이 덕성이 있고 지성이 높다는 것부터가 너무나도 어려운 조건이죠.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Utopia라는 단어에 있습니다. 토마스 모어가 이름지은 자신의 작품은 οὐ(not) + τόπος(place)라는 의미로, 이를 번역하자면 '어디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이 됩니다. 즉, 그가 말한 금욕적이고 절제적이며 노동시간이 짧은, 가장 나은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있죠.
오백년전 사람이 보기에도 완벽한 사회라는 것은 그저 이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한가지 복잡한 결론을 내놓습니다. 인간 덕성의 진보야말로 진정한 진보지만 역사를 통틀어서 그런 적은 한번도 없었고 오직 시스템의 진보를 통한 진보만이 있어왔다는 것은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는 동물인 이상 그 본성 자체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이것은 또한 재밌는 사실을 내놓기도 하는데, 그것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인간이 인간인 이상 완벽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그러한 이상사회를 추구하는 것 또한 분명 필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말마따라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니까요, 시스템을 통한 진보만이 있어왔다는 것은 시스템이 완벽해지는 것이 완벽한 사회를 만드는 것일 터이니 진보된 시스템을 추구하고 그것을 이룩하는 것이 곧 이상사회를 향한 인간의 올바른 발걸음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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