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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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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에 해당되는 글 782건

  1. 2023.01.18
    윤석열의 대이란 국제 외교 자폭. 국익적 자해.
  2. 2023.01.07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 받지 않는다. 6월 혁명은 성공했는가.
  3. 2023.01.07
    인구-노동력 문제를 이민으로 해결하면 안 되는 이유.
  4. 2023.01.05
    "민주에몽~ 날 위해 싸워줘~~"
  5. 2023.01.01
    교육의 중요성 : 왜 교과서는 외환위기를 국민 잘못으로 지목했을까?
  6. 2022.12.30
    이명박 사면과 부패 정치인들의 복권의 위험성.
  7. 2022.12.29
    윤석열 정부의 친중반미 외교, 미국의 대중국 노선 반대 정책.
  8. 2022.12.27
    자본주의의 한계에 대한 단상.
  9. 2022.12.24
    정의당 등 노녹정 류 진보가 제3세력, 혹은 민주당 포지션을 차지할 수 없는 이유.
  10. 2022.12.17
    찌질이 여혐종자 인생 분석하기.
  11. 2022.12.16
    엘리트 카르텔과 하백의 신부들. 개혁과 혁명.
  12. 2022.12.12
    표현의 자유와 혐오 세력에 대한 사회적 제재.
  13. 2022.12.11
    힘으로 빼앗아, 도리로 다스려라.
  14. 2022.12.04
    CGTrader 모델링 판매 하는 법.
  15. 2022.12.04
    Sketchfab스캐치팹 모델링 파일 업로드 및 세팅하는 법.
  16. 2022.12.04
    부패의 유능과 직무의 유능. 부패한 자가 유능할 수 있는가.
  17. 2022.11.30
    못 배운 윤석열의 법치주의에 대한 몰이해.
  18. 2022.11.23
    왜 갑자기 언론의 마약 관련 이슈가 줄어들었을까?
  19. 2022.11.19
    약자에 대한 멸시와 힘의 논리.
  20. 2022.11.16
    오세훈과 윤석열 정부의 실제 언론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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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우리 적은 북한, UAE 적은 이란”…아크부대 찾아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623504?sid=100
테헤란에 ‘서울로’ 있는 이란 “尹대통령 발언 들여다보고있어”
https://v.daum.net/v/20230117124337871
이란 "한국정부 설명 기다린다" 尹 발언 후폭풍
https://v.daum.net/v/20230117130639201

 

윤석열은 기본적으로 못 배운 사람입니다. 단지 법을 공부하고 검찰로 오래 재직해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다는 게 그 사람이 배운 사람이라는 의미는 또 절대 아니거든요. 여기서 말하는 배웠다는 건 기본적인 교양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윤석열은 그냥 법을 공부했고, 딱 법만 잘 아는 사람일 뿐이지 그 외의 모든 영역에서 수준이 너무 낮습니다.

 

그냥 사람의 수준 자체가 좀 많이 수준이 낮아요. 단지 옛날 사람이라거나 오래된 인식을 업데이트 하지 않았다는 걸 넘어서 법만 잘 알고 그 외의 모든 영역에서 많이 모자랍니다.

 

즉, 검찰이라는 조직이 반역자를 제외한 내부 구성원에 대한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보호와 경쟁보다 담합으로 이루어지는 카르텔을 통한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단 검사가 되고나면 아무리 모지리에 무능한 작자라도 수십년 동안 문제 없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습니다. 검사가 멍청할 리가 없다고요? 사법시험이 좆으로 보이냐고요? 윤석열을 보세요.

 

법 전문가가 다른 모든 분야에 대한 전문가라는 건 절대 아니고, 이건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 역시 마찬가집니다. 의사가 경제학 전문가일 수는 없고 역사학자가 공학 전문가일 수는 없습니다.

 

똑같아요. 법을 제외하면, 사실 윤석열이 법을 잘 알고 있는지 역시 의문스럽다만 일단 검사 출신이니 그렇다고 쳐도, 대통령이 될만한 그릇은 절대 아니라는 겁니다. 사실, 천박한 건달 조직의 보스 정도까지는 될 법한 사람이지만 검찰총장까지 될 사람인가 싶기도 하고요.

 

쨌듯, 9수씩이나 할 정도로 머리가 나쁘며 그만큼 좋은 집안에서 편하게 살아간 깡패 수준이 윤석열입니다.

 

 

그리고 몇번씩 이야기했던 거 같은데, 윤석열은 자기가 대통령이라는 인식조차 없습니다. 대통령이 어떤 위치이고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어떻게 품위를 유지해야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물론 인식 자체가 없어요. 그냥 됐으니 하는 거고 누가 뭐라하지도 않고 한다고 해도 개무시하는 천박한 인간이라 어떻게 하라고 해도 걍 지 맘대로 합니다.

 

 

사실상 대한민국에는 대통령이 없습니다. 대통령 자리는 검찰총장에 의해 장악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웬만하면 윤석열에게 대통령이라는 호칭 붙혀주고 선거를 통해 당선된 사람이니 대통령이라고 불러주고 싶지만 그 수준이 너무 처참합니다. 사실상 동남아 후진국의 부패한 정상이나 제3세계 독재 정부의 무능한 독재자 수준입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 그 정도 수준으로 보는 게 맞아요.

 

 

이번 발언은 윤석열이 얼마나 멍청하고 국제정치, 역학, 외교, 국익에 대한 이해가 뒤떨어졌는지 보여주는 여러 사례 중 하나입니다. 적국을 우대하고 가해국을 숭상하며 동맹국을 홀대하는 미친 외교를 하고 있는 것도 황당한데 이젠 자기 스스로 국가적 리스크가 되어 외교관계를 하나하나 박살내고 있습니다.

 

대통령 본인이 개소리를 해가며 적을 만들어대고 있는데 그걸 변명해주고 있고 심지어 먹히고 있는 게 지금 상황이고요.

 

 

근데 문제는, 여기엔 세련된 외교적 수사가 단 하나도 없이 있는 그대로 대놓고 말한 거라 포장이나 해석이 나올 수 없어서 변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한국에서처럼 누구나 거짓말이고 변명이라는 걸 다 알지만 진영논리 때문에 넘어가주는 그런 걸 기대할 수는 없을 거고요. 이란이 저렇게 나오는 건 한국 정부에게서 외교적 승리를 얻어내겠다는 거나 다름 없습니다. 입에 떨어진 열매나 다름 없을 정도로 쉬운 먹잇감을 던져준 거죠.

이란은 이길 수밖에 없는 발언을 물어서 한국과의 관계를 재확인할 겁니다. 애초에 정상적인 대통령이었다면 저딴 발언은 나올 수가 없으니 발생할 수 없는 일이고, 저번 바이든 날리면 논란에서처럼 공개석상에서 공식적으로 한 말이 아니라 뒷담이 공개된 것과는 완전히 무게감이 다른 일입니다.

 

따라서 한국이 해야할 건 그냥 이란과 관계를 파탄내버리거나,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이란에게 무언가 내줘야 합니다. 

 

 

문제는 한국이, 윤석열 본인이 절대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거고, 주변에 있는 윤썩둥이들 역시 인정하지 말자고 할 겁니다. 이들의 기본적인 속성 자체가 몇차례나 지적한 바 있는 무책임과 무오함이라는 정신병증 때문이며 자기 잘못을 결코 인정하지 않을 거라는 거기 때문입니다.

 

 

[속보] 하태경 "이란, 인권탄압 '악당국가'…사과해선 안돼"
https://www.etoday.co.kr/news/view/2213676

 

이렇게 말이죠.

 

 

진짜 문제는, 이건 기존 한국이 유지해왔던 외교적 포지션과 그 포지션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포기하는 상황과 다름 없습니다. 최소한 이란과의 관계는 윤석열 정부 이후에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요. 똥은 윤석열이 쌌는데 그 다음 정권이 치우게 생긴 거죠. 아니면 그 똥에 또 똥을 싸질러가던가요. 보수 정권이 한번 더 나오면 그렇게 될 겁니다.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지적하자면, 이러한 부분들이 문제가 됩니다.

 

0.한국은 이러한 문제적 국가들에 대한 입장으로 미국을 존중하고 그러한 관계를 부정하진 않지만, 그렇다 해도 이란 등의 국가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기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1.왜냐하면 이란과 같은 문제적 국가들이 훗날 혁명이나 전쟁, 외국의 개입, 반대파벌의 승리 등으로 인해 기존과 입장이 달라졌을 때 한국은 이러한 국가들에게 더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2.그러한 입장이 적극적인 이익을 도모하긴 어렵지만, 신중하게 이익을 얻어내거나 리스크를 줄이는 상황을 유지시킬 수 있습니다.

 

3.가령, 이러한 국가들과의 회색적이며 존중적인 관계는 북한이 이러한 국가들에 접근하여 한국 및 동북아의 안보적 위험성을 부추기고 북한 체제가 유지되는 것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다시 말해, 미국과 나쁜 관계에 있는 국가들은 북한이 접근할 매리트가 있는 국가들이고, 실제로 그런 접근을 통해 거래와 도움을 받은 것이 있었고요.

 

5.한국이 그런 관계를 원천적으로 통제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최소한 한국이 그들과 대화하고 협상을 통해 북한과의 관계를 소극적이게 할 여지가 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입장을 유지하면서 한국이 얻었던 것은 실제로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과 이란이 갈등 상황에 있을 때 한국 선박은 이란에 납치되었음에도 다른 친미 우방국에 비해 수월하게 석방될 수 있었던 건 한국과 이란의 관계가 미묘한 위치에 있었고 크게 적대적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유럽 우방국이었다면 이렇게 쉽게 석방될 수는 없었겠죠.

 

이는 이란이 훗날 더 나은 상황에 접어들었을 때 이란 시장, 특히 석유 시장에 더 빠르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좀 더 사례를 넓혀보면 러시아와의 외교관계 역시 이러한 사례에 포함됩니다.

 

예컨데 러시아와 미국의 갈등 상황에서 한국은 친미 국가임에도 큰 불이익이나 위험 상황에 처한 경우가 상당히 드문 편입니다. 이는 러시아가 동북아 정세에 있어서 유럽과 미국에 비해 관심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본에 대한 잦은 위협과 다르게 한국에선 그러한 무력시위와 도발이 매우 적었던 것은 특기할만한 사례입니다. 심지어 북한이라는 존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요.

 

이건 우러 전쟁 발생 이후에도 마찬가지인데, 미국과 유럽의 기업은 일제히 러시아에서 빠져나왔지만 한국은 그러한 손해를 보지 않아도 됐습니다. 오히려 투자를 늘려 러시아 내 경제적 이권과 영향력을 확대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죠. 이는 훗날 전쟁 이후 한국의 모호한 입장을 통해 러시아의 대한국 제재나 보복을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됩니다.

 

더욱이 불곰 사업 계약과 얽혀 최신 러시아의 무기가 북한에게 대놓고, 대규모로 흘러들어가지 않는 족쇄이기도 했고요. 러시아는 북한에 지원을 하는 것보다 특별히 외교적 관계에 마찰이 없었던 한국과의 관계가 더 이익이 되었던 거고요.


간접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에 대해서 러시아는 불만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러한 불만을 근거로 직접적인 제재나 보복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근데, 이번 이란 논란에서 윤석열은 너무 대놓고 이란에 적대적인 발언을 했고, 이에 대해 아직까지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런 소리나 하고 있죠.

 

외교부, 윤 대통령 발언 "이란과의 관계와 무관"
https://imnews.imbc.com/replay/2023/nw1200/article/6446400_36170.html

 

변명과 궤변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모든 논란에서 보여줬던 그 태도와 마찬가지로요. 

 

 

근데 이번엔 미국이 한국의 실책을 공개적으로 지적하고 공격하지 않는 것과 반대로, 이란이 직접적으로 그걸 물었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란은 외국이라 한국에서처럼 진영논리와 저능아들을 내세워 개소리를 해도 통할 수 없고요.

 

그렇다고 전쟁이 나진 않을 겁니다. 그럴 정도는 아니니까요.

 

다만 한국은 이란과의 관계에서 이익을 얻을 수 없고, 이란은 자유롭고 부담 없이 북한에 대한 지원을 해도 됩니다. 그걸 제재하고 어쩌고 하는 거야 한국보다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이 가깝더라도 미국이 모든 거래와 지원을 막을 방법도 없고요.

 

이란은 북한의 핵 개발에 지원과 협력을 하고 있는 관계인데, 이는 대한민국의 안보와도 직결되는 일입니다.

 

 

미국이 이란의 비핵화, 핵개발 포기에 대해 오랫동안 노력해왔고, 불과 몇년전 그게 중요한 화두가 된 적도 있는데 이런 식으로 이란-북한의 핵 이슈에 한국이 똥볼을 차주면 미국이 좋아할 일도 아니고요.

 

 

이런 사실과 예상되는 미래들을 고려하면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있는 하루하루가 대한민국의 미래가치를 깍아먹고 외교적 고립과 안보적 위협을 일으키는 가장 큰 리스크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외교가 뭔지 몰라서 사고나 치고 다니고, 대통령실은 개소리하는 게 직업이라도 되는 양 되도 않는 변명이나 하고 있고, 국회의원이라는 인간은 악당 국가라며 사과하면 안 된답니다. 악당 국가면, 뭐 가서 혼내주기라도 하게요? 악당 국가니까 전쟁이라도 하자는 것도 아니면 왜 적으로 만들어서 괜한 문제나 일으키냐는 겁니다.

 

그러니까 보수 진영이 객관적으로 멍청한 거고 무능한 겁니다. 이건 해석이나 시각의 차이가 아니라 객관적 진실이고요. 이걸 인지하지 못한다면 본인의 인지적 환경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아니면 가치관 자체가 정상이 아니라 뭐가 옳고 그른지 판별할 능력을 상실한 상태거나요.

 

 

물론 대통령만 문제라는 건 아닙니다. 민주사회에서 온전히 대통령 혼자만 잘못일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 대통령을 만들어준 무책임하고 머리 나쁜 국민들 탓도 없다고는 할 순 없죠. 찍었으면 그에 대한 반성이든 책임이든 져야지 민주적 선택을 비난하면 안 된다는 건 존나게 존나 무책임하고 발전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까놓고 말해서, 그들이 민주적 선택을 한 것이기나 한 지 모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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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쿠데타는 처벌 받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걸주를 몰아내고 새로운 왕조를 창건한 것도 쿠데타지만 처벌받지 않고 폭군을 물리친 건국 서사로 인정 받는다. 망해가는 고려가 개혁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버리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도 건국왕의 업적을 말하지 쿠데타의 수괴라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히 역취순수했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 그들은 성공했고 승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승자가 승리를 굳히는 건 모든 이들이 그 체제를 긍정하는 때이다. 정확히는, 그 체제를 부정하지 않을 때이다. 만약 고려를 그리워하던 이들이 조선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각지에서 변란이 일어났다면 조선은 어떻게 대응해야 했을까? 역적 이성계의 세력을 몰아내겠다고 일어난 이들을 모두 죽여 없애야했을까?

 

그러나 민초들은 조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고, 고려와 왕씨 왕조를 어떻게 생각했든 결국 그들은 저항하지 않았고 조선을 받아들였다. 마음 속으로는 조선과 이성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언정 그것은 규합되고 행동으로 나설 정도의 것은 아니었다. 성계탕은 단지 그들의 불편한 마음의 발로일 뿐이지 이성계를 찢어 죽이고 싶다는 증오의 피상이 아니었다.

 

쿠데타, 역성혁명으로 만들어진 체제는 본디 사람들에게 인정 받아서 정당화 된다. 역사는 승자가 쓰는 것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우리의 쿠데타와 역성혁명은 정당했다고. 그리고 그 정당함의 근거는 그 체제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그 체제를 받아들였음으로 증명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 하지 않는다는 말이 역사적 사실에 가까운 판단이라는 것이다. 정당성을 만들지 못하고 역사의 승자가 되지 못한, 중과부적인 왕조와 국가들은 아주 짧은 기간만 존속하고 사라졌다. 그 짧은 기간 때문에 그들의 존속은 별 관심을 못 받을 뿐 그들은 실패한 것이다.

 

 

86년 6월, 한국은 독재를 끝장내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사실일까? 국민들은 전두환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대선을 치뤘고, 양김의 갈등 끝에 노태우가 당선됐다. 노태우의 정치와 정책들은 독재의 정통성을 이어갔다고 평가하긴 어렵지만 자신의 권력을 근거했던 쿠데타를 부정하진 않았다.

 

이후 김영삼 시대에나 겨우 그들은 법정에 설 수 있었고, 사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결국 집행은 취소되고 그들은 사면받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게 가장 큰 문제 지점이다.

 

법원에서 어떤 선고가 내려졌든 독재와 반란의 핵심을 살려두는 것은 아주 나쁘다. 그들이 공개적으로 사죄하고 반성하여 세력을 무너뜨렸다면 달랐겠으나, 전두환은 자신의 범죄를 반성하지 않았다. 처벌받지도, 반성하지도 않았기에 그들이 만들고 형성시킨 독재와 반민주의 정신은 살아남아 한국 사회의 중핵을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우리가 정말 독재를 무너뜨리고 그 정신을 끝장냈다면 전두환은 살아있어선 안 되고, 설령 그렇다 해도 철저한 책임추궁 하에 비참한 삶을 살다 죽었어야 했다. 부와 존경받은 채 천수를 누릴 게 아니라.

 

인정해야한다. 한국인들은 독재를 무너뜨리지도 못했고 그 정신을 끝장내지도 못했다. 독재가 무너진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인 다수가 그것을 거부했기 때문이지만 그러한 이유는 단지 한국이 자본주의 국가였기 때문이다.

 

경제를 성장시키는 목적을 지닌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제적 성장은 그것의 재투자로 이어진다. 더 높은 성과와 효용을 발휘하기 위해서다. 더 고도화된 경제시스템과 효율적인 부의 창출을 위해서 구성원들은 교육을 받아야 했고, 이는 필연적으로 자유를 추구하게 될 수밖에 없다. 정치적 자유는 경제적 자유를 기반으로 한다. 가진 게 없는 이들은 힘이 없고 힘이 없는 자들은 요구할 수 없다.

 

한국의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교육 받은 국민들은 독재보다 더 나은 체제를 추구했던 것이고 그 이유와 사유가 어떤 것이든 구조적으로 독재를 거부할 토양이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독재 시스템이 더 공고하고 강력하게 통제할 수 없었던 기술적, 제도적 이유와 한국이 본래 민주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헌법에서부터 그러한 성질의 문장으로 한국의 체제를 규정했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아무리 헌법과 법률에서 반민주적인 성질의 것을 적어놓았다 하더라도 민주주의 국가로 출발한 이상 그 내용을 전면적으로 뒤집지 않는 한 민주주의에 검은 색칠을 하고 부품을 갈아끼운 것일 뿐이다. 가령, 결국 투표를 해야 했다던가 언제 어떤 시대의 한법이든 한국 헌법 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라는 문장은 단 한번도 지워진 적이 없다. 그것이 한국이 본질적으로 민주주의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당위가 되었다.

 

즉, 전두환 정권이 무너진 것은 그들이 더 강력한 독재를 시행할 능력과 기술이 없었고, 경제성장에 따라 국민들이 더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그 결과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와 열망 역시 강해졌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이것이 올바르고 완벽한 정답은 아니지만 이러한 관점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독재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다. 전두환과 노태우를 법정에 세우고 사형을 선고하는데 성공했지만 집행은 실패하고 사면했다. 독재의 하수인들을 골라내 불법적으로 얻은 부와 권력을 회수하지도 못했고 강력하게 처벌하는데에도 실패했다.

 

이는 한국인들이 승리에 취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의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정치적, 법적, 제도적 방식으로 처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기 때문에 그러한 요건이 되지 않거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사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 독재를 긍정하는 국민들이 약 절반은 되기 때문이다.

 

최소한 그 비율은 현재까지도 30%는 되며, 경우에 따라 독재적 가치의 위험성보다 다른 가치를 더 우선시하는 이들이 합세하여 약 50% 안팍까지 도달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쿠데타는 그렇게 불법이나 불법적이지만은 않은 것이 되었다. 이성계는 단지 역사적 상징일 뿐이다. 실질적인 힘은 독재자와 그들의 정신이 살아남아 지배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에 있다. 독재자 중 한명은 반인반신이 되어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그 신화는 자식에게까지 이어져 숭앙 받았다.

 

성공한 독재는 처벌하지 못한다며 살아남았고, 부와 존경을 받으며 천수를 누리다 죽었다. 그의 자손은 그 부와 영향력을 통해 부유한 삶을 살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성계가 쿠데타를 일으킨 주역이지만 그를 쿠데타 수괴라 평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역사는 승리한 자가 기록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그렇다. 쿠데타라는 군사반란, 국가반역이 제대로 청산받지 않았기에 그들은 힘을 잃지 않았고 지배적인 위치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힘을 통해 정치적 승리를 할 때마다, 정권을 얻어낼 때마다 역사를 새롭게 기록하고자 하는 역사 수정주의적 시도가 있었다.

 

군사반란을 구국의 결단으로 포장하고, 성공한 쿠데타라며 처벌할 수 없다고 말이다. 쿠데타를 통해 만들어진 독재정권이 그렇게 정당하다면 한국 사회는 쿠데타를 권장하는 사회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단지 그들은 쿠데타 세력에 의해 이권과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이 싫기 때문에 새로운 쿠데타를 긍정하지 않을 뿐이다. 그들의 힘과 부의 원천이었던 과거의 쿠데타를 긍정하고 정당화하는 것은 그들에게 도움이 되기에 하는 것이지. 물론 그들에게 이익이 된다면 새로운 쿠데타는 언제든 있을 수 있다. 실제 쿠데타 시도는 몇년 전 분명히 있었다.

 

이번에도 5.18은 교과서에서 사라진다는 말이 나왔다. 정권을 잡은 승리자가 역사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그들의 정신적 근간을 긍정하고 정당화하는 쪽으로 기록하려는 것이다. 그 당시 부와 명예, 권력을 가진 이들은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았고, 사회의 지배적 위치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사상은 지배적 사상이 되어 우리 세대 독재의 정신을 가진 후예들을 양산하고야 말았다.

 

대한민국 헌법 1조를 긍정한다면 그것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체제는 어떤 성과를 일궈냈든 긍정할 수 없다. 그것을 역사화하여 그러한 사실이 있었다. 라고 하는 것이라면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것을 어쩔 수 없었다거나, 필요했다며 정당화한다. 그들은 헌법 1조에 살해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본인들은 절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다시 질문을 던지겠다.

 

한국 사회는 정말 86년 6월, 독재에게서 승리를 거두었나? 6월 혁명은 성공했는가?

 

성공했다면 왜 패배자들은 살아남았고, 이 사회의 권력자로 기득권을 행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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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한국은 미국이 아닙니다. 다민족 사회라는 유럽도 이민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인구, 노동력 문제고요.

 

이건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유럽조차도 민족주의가 결코 약한 나라들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탈민족으로 극복했다거나 민족주의 빨면 나치나 파시스트처럼 취급된다느니 하는 것도 백번 양보해서 옛날 이야기고 지금 같은 난세에는 오히려 그런 가치들이 더 큰 호응을 받고 우리 집단에 대한 편향이 강해집니다.

 

 

근데 한국은 여전히 민족주의적인 나라에 가깝고 대규모 이민은 필연적으로 충돌을 낳을 수밖에 없어요.

 

소규모거나 진짜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에서 사는 게 좋아서 이민, 귀화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걸러지고 검증되었기 때문에 이미 한국화 되었거나 빠르게 한국화되는 사람들이지만 그건 그 사람들이 한국이 좋아서이지 한국에 일하러 온 사람들이 아니예요.

 

외국인들이, 그것도 더 나은 환경에서 더 많은 돈과 더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 열악하고 후진적인 국가, 예컨데 동남아 등 인태지역 국가, 아랍,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의 국가에서 오는 사람들은 그 사회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그 사회의 환경에 사회화된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다른 사회적 문화와 관습을 익힌 사람이 다른 지역에서 살아가면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걸 부딪히며 배우고 익히며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한데, 후진적이고 전근대적인 관성이 한국보다 강하게 작동하는 사회의 일원이 한국에 온다고 빠르게 한국화되는 걸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그런 이들이 대규모로 오게 된다면 한국 사회의 문화와 관습을 익히며 한국화라는 이름의 새로운 사회화를 이루기보다는 자기들끼리 게토를 만들며 한곳에 모여 살 것이고, 여러 이유로 배타적인 성격을 띌 가능성이 아주 높아요. 이건 이미 유럽에서도 벌어진 일들이고요.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에 생존을 목적으로 도입되었고 빠르게 전파됐습니다. 우리 민족의 지위와 생존을 걸고 뭉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분명히 효과적이었고 한민족 외의 정체성에 배타적이었죠. 일본의 것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동시에 한 세대를 지배한 것이었기에 완전히 뿌리를 뽑을 수 없었다는 한계가 있었지만요.

 

한국은 그나마 민족주의적 관성에서 꽤 벗어난 편이긴 합니다. 민족주의가 적당히 균형을 찾아가면서 오히려 견제 받지 않았던, 재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국까, 반민족의 성장을 발생시키며 이것들을 걱정해야할 시대가 되었고요.

 

현실이 어떠하든 한국인들은 인구와 노동력 문제를 이민으로 해결하며 여러 일자리와 이권을 이민자가 지분을 가져가거나 확대하는 것과 자기 자식이 그것을 가지는 것을 비교하면 당연히 후자를 선택합니다.

 

이건 결국 이민자는 본디 외부인이었고 규모와 속도, 한국화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한국 내의 이민자 출신 한국인이 아닌 한국 사회 내 외부 정체성을 가진 집단화 될 이들보다 결국 한국 본토 혈통의 한국인이 한국 내 이권을 차지하는 게 좋다는 내집단 편향, 민족주의적 발로가 아예 없을 순 없기 때문입니다.

 

 

외국인을 노동력으로 쓰려면 단기 비자 등 한국 내에서 활동할 시간과 여력을 제한해야만 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나라들 많고 노동력이 부족하면 이걸 적절한 균형감각를 가지고 확대해야할 문제고요.

 

근데 그들을 아예 이민자로 받아들여 한국인으로 살게 만든다면 그들이 쉽게 한국화되어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질 것을 기대하기보단 원래 자기들이 살던 관성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며 자기들끼리 모여서 그들의 문화와 관습, 전통을 따르거나 그것을 한국 내에 뿌리 내리길 시도할 겁니다. 한국인들이 외국에 나가서도 한국 명절을 챙기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요.

 

그게 나쁜 건 아닙니다만, 그들만의 관습과 질서는 한국의 질서와 충돌할 가능성이 높고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지적, 비판을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공격이 체면, 자존심의 영역과 동일시하여 내가 틀렸더라도 그것 지적하면 날 공격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그러한 공격에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집단 내 평판과 서열에 불이익이 생기는 전근대적 관성은 곧 폭력 사건의 확대와 같은 말이 됩니다.

 

베트남 등 동남아 노동자가 일본에 인턴 등으로 일하면서 실수를 지적한 것만으로도 폭력을 휘두르는 건 그러한 지적을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응하지 않으면 약자로 낙인 찍히는 근대적 법과 질서의 세계관이 아닌 집단 내 위신과 체면, 서열이 우선시되는 전근대적 세계관의 관성이 폭력이라는 대응책으로 그것을 지키라는 요구를 하기 때문이고요.

 

한국, 일본, 유럽 등과 같은 사회에선 지적이 단순 쪽팔림이나 반성하고 마는 정도가 아니고, 그게 집단 내 영향력으로 이어지는 경우라도, 가령 회사 부서간 경쟁에 있어 타 부서가 우리 부서의 실수나 실패를 지적하고 비판할 때 비판 내용이 정당하다면 가오 좀 상하고 부서의 영향력과 출세 경쟁에서 불이익이 있겠지만 부서장이 주먹질을 하거나 부서원 끌고 가서 패싸움을 벌이진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에 대한 지적이나 비판을 감히 날 무시해? 내 가오를 살리기 위해선(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대응도 못하는 나약한 놈이라고 보이지 않기 위해선) 내가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 보여줘야해. 에서 시작되는 폭력 대응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게 사실이라는 겁니다. 한국도 예전엔 그랬듯이요. 아니, 그 관성은 지금도 어느 정도 남아 있는 게 사실입니다. 직장문화가 그렇지 않는 것처럼 공적으로 엮이지 않는 관계에서 주로요.

 

 

그럼 왜 인구와 노동력 문제를 이민으로 해결하려고 하느냐면, 이건 진짜 간단한 문제입니다.

 

인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대책을 선택하면 당장의 이익구조가 파괴되고 자신의 것을 더 많이 내줘야하는 기득권이 그것을 거부하고, 어차피 돈 벌어다주는 아랫것들이 한국인의 피를 이었든 동남아, 중동, 남미, 아프리카의 피를 이엇든 아무 상관 없기 때문입니다.

 

부품의 색깔이 어찌됐든 잘 작동만 해서 내 통장에 돈만 꽂아주면 상관 없다는 기득권식 인식 때문이지 별 다를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예요. 이민이 없으면 해결할 수 없다? 애초에 해결할 생각이 있는 게 아닙니다. 이미 10년도 전에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 들어오면 3D 업계의 한국인 노동자들조차 임금 하락이나 동결이 예상된다고 하는데, 그것처럼 대규모 이민 노동자들은 당연히 저임금 노동자들일 수밖에 없고요.

 

그럼 그저 돈 벌어주는 부품에 불과한 한국인들은 외국인들과의 경쟁에 의해 임금 상승 역시 동결되거나 느리게 상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에게 한국인이냐 외국 출신 이민자냐는 별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들과 드잡이할 것도 아니고 그 드잡이조차 내 돈 받아서 일하는 아랫 것들이 해줄텐데요. 기득권들에게 대규모 이민자가 부족한 노동시장을 커버하는 건 아무런 손해도 안 되는 일입니다. 오히려 각 출신국끼리의 차별과 갈등을 조장하여 미리미리 정치적 영향력을 거세하고 그들의 문화가 추구하는 바를 상품화시켜 돈을 버는, 시장 확대의 기회라고 보고나 있겠죠.

 

그렇다고 기득권의 자리를 그들에게 양보해주거나 일정 지분을 줄 것이냐 역시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이 끼리끼리 문화는 모든 기득권 사회가 그렇듯 배타적이고 인맥과 혼맥 등으로 연결됩니다. 고소득 전문직 이민자조차 그들의 고급 하인, 시녀가 될 가능성이 높고요.

 

애초에 다른 사회에 외부의 경쟁력 있는 권력-재력을 가진 이가 들어오려고 하면 그게 심지어 동남아나 아프리카의 세계적 수준에서 미약하기 짝이 없는 힘을 가진 이들조차도 매우 배타적이고 음습하게 대응합니다. 음습하지 않으면 격렬하게 저항하고요. 한국 재벌이 외국에 이민간다고 그 사회에서 방귀 좀 뀌길 바라려면 어어어어어어엄청나게 많은 돈이 필요하고, 그 사회의 기득권층에 편입되기 위해 어어어어어어어어엄청 많은 돈을 뿌려야 할 겁니다.

 

기득권 사회에 편입되지 않고 노후만 즐기려면 큰 문제 없이 돈 많은 인맥 하나가 될 뿐이지만요. 물론 이런 경우 기득권으로서 권력에 접근하기 어렵고 인맥 형성이나 사업 참여와 별개로 그러한 접근은 여전히 거부됩니다. 당연하지만 기득권으로 나누고 있는 파이를 굴러들어온 돌에게 쪼개서 주고 싶을 리가 없으니까요.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긴 합니다. 상대적 약자가 외부 세력을 끼어서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싶은 경우 그걸 적극적으로 조장, 협력하는 식으로는 가능하죠.

 

 

어찌됐든 한국 기득권은 자신들의 카르텔에 외부 집단을 끼게할 생각이 없고 경쟁과 갈등은 모두 서민들의 것이 될 겁니다. 인구 문제와 인구에서 비롯되는 노동력 문제 역시 기득권에게 한국에 대한 민족주의적 가치관이나 한국 사회의 생존을 위한 필요 선택이 아닌 자본주의적, 계급주의적 관점에서 자신들에게 피해는 없고 이익이 되기 때문에 불과합니다. 한국인이 노동자든 베트남, 이집트, 콩고, 브라질 출신 이민자 노동자든 그들이 일만 똑바로 한다면 어차피 들어오는 돈은 큰 차이가 없을테니까요.

 

한국이 멸망한다면 그런 식으로 해체되기 때문이지 다른 게 아닐 겁니다. 한국은 미국이 아니고 다민족, 다인종 사회가 되기엔 너무 좁은 국가입니다. 그런 전통도 역사도 없었어요. 그런 폐쇄성과 요구가 한국의 고도로 발전된 물질문명 및 서비스와 함께 한국에 살고자 하는 이들을 한국화시키는데 강력하게 일조한 건 사실이지만, 그 규모가 커질수록 한국화의 역량은 약해질 수밖에 없죠.

 

한국이 한 해 10만명씩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현 130만명 규모의 이민자가 500만명이 되면 지금과는 다른 강도의 갈등과 분쟁이 생길 겁니다.

 

인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와는 별개로..

 

이거, 서민으로서 감당하고 싶어요?

 

 

 

p.s 외국인 노동자를 없애거나 막자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현재는 확대해야 하는 것에 꽤 동의하는 편이고요. 다만 그걸 인구 문제로 묶어서 해결하겠다고 하는 건 끔찍한 일입니다. 한 사회의 주류 정체성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중국인 2000만 명 이민 받고 그 규모를 점차 늘리거나 유지시킨다면 한국은 머지 않아 중국 내 한국성이 될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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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이 백년천년 밑바닥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거죠. 민주당에 대한 공격 말고는 컨텐츠가 없어요. 저딴 요구를 왜 민주당에게 합니까? 여당정부에게 해야지. 윤 정부와 국힘당은 무섭고 민주당은 만만하니까 민주당만 때리는 겁니다.

 

2022.12.24 - [취미/이야기] - 정의당 등 노녹정 류 진보가 제3세력, 혹은 민주당 포지션을 차지할 수 없는 이유.

 

 

 

 

 

자기들이 뽑아놓고 지지해서 대통령 만들어주고 정권 만들어주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줬으면서 자기 머리통 깨지게 생겼으니 민주당이 해줄 거라느니 민주당이 반대해줄 거라느니 개헛소리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건 그냥 지능 문제입니다.

 

지들이 뽑아줬으면 자기들이 만들어준 여당, 정부에게 요구해야하는데 정권에는 무서워서 요구 못하고, 어차피 요구해도 들어처먹지 않을 걸 본인들도 아니까 요구 자체를 안 합니다.

 

그럼 뭐하느냐? 만만한 민주당 때리면서 저러고들 있는 거죠. 정권은 무섭고 민주당은 만만하니까 대신 견제해달라? 웃기는 소립니다. 자기들 손으로 정권을 빼앗기게 만들고 패배하고 실패하게 만들어놓고 자기들 불리하니까 민주당에게 해달라? 안 해주면 민주당이 개새끼고?

 

논리적이지 않고 합리적인 것도 아닙니다.

 

저 멍청이는 민주당이 그런 거 하라고 있는 거라고 말하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그런 거 하는 거 아닙니다. 야당의 책무가 여당과 정권의 견제 및 감시라고 하는데, 틀린 건 아닙니다만 정당은 이익집단이고 가장 큰 목적은 정권의 창출입니다.

 

어차피 선거 때 자기들에게 표를 줄 생각도 없다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건 에너지 낭비고 집토끼 잃는 짓거리고요. 그럼 뭐 해야 합니까? 그냥 가만히 있거나 집토끼가 요구하는 거 적당히 들어주면 되는 겁니다. 정권 견제나 감시 그런 거 사실 안 해도 되요. 민주당이 견제를 하고 감시를 해도 그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해야하는 거지 자기들을 실패하고 패배하게 만든 이들 좋으라고 해선 안 됩니다.

 

자기들의 정치적 이익을 따져가며 자신들의 지지율에 도움이 될만한 행동을 하는 게 정당이고 2찍이들 요구 들어주면서 그들 좋은 일 해줘봤자 민주당 표로 안 돌아오면 굳이 들어줄 이유가 없어요.

 

심지어 이건 민주당이 예전에 한번 겪은 일이기도 합니다. 민노당 시절 목숨걸고 죽어라 싸워서 UR 협정 막아주니 농민들은 이제 안심하고 한나라당 찍으면 되겠다며 뒤통수쳐댄 일이요. 그 탓에 과거 민노당의 농촌 세력 및 연계는 사실상 개박살이 나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요. 

 

 

지금 2찍이들 태도가 딱 그 정도 수준입니다. 민주당이 그들 이권 욕먹어가면서 죽어라 지켜줘도 어차피 선거 때면 보수당 계속 찍어줘요.

 

어쩌다 민주당이 정권 창출하면?

 

 

이명박근혜 정부 시절 싸질러놓은 똥 치우느라 문재인 정부가 개같이 굴렀는데 윤석열 정부 1년도 안 된 시점에서 이명박근혜 9년보다 훨씬 빠르게 높은 밀도로 나라를 망쳐놓고 있어요. 다음 정부도 역시 개같이 구르면서 욕이나 쳐먹을 예정이고요.

 

 

어차피 2찍이들은 대가리 깨져가면서도 국힘당 찍어줄 놈들이 대부분이고 설령 대가리가 깨져서 민주당 찍겠다고 해도 정권과 민주당을 견제하는 건 시민의 의무! 이 지랄 떨면서 무지성 욕이나 해댈 겁니다.

 

 

그럼 민주당이 해야하는 게 뭐냐면.

 

그냥 가만히 있기입니다. 정확히는 자기 세력 보전하고 윤 정권과 사법 카르텔의 칼질에서 최소 피해로 오랫동안 버티는 거죠. 그러다 충분히 대가리 깨진 국민들이 민주당 찍어줘서 이기면 그걸로 하고 싶은 거 하면 됩니다.

 

어차피 한국 선거 대부분은 누가 더 잘하느냐의 싸움이 아니라 누가 더 못했느냐의 싸움이었고, 이건 다음 선거들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고요.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은 여당정부가 나라 망하게 해도 온 힘을 다해 제동걸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도 안 되고요.

 

나라 망치는 데 책임이 여당정부에 있지 민주당에게 있다면 그건 저능아 새끼인 거고요.

 

 

지들이 해야할 요구를 여당정부에 해야 하는지, 야당 민주당에게 해야하는지 구분도 못하는 모지리들이야 죽어라 민주당 욕하고 있겠지만 순 노비 가축이나 할 법한 짓거리니까 이런 놈들 위해서 뭘 하겠다는 시도를 한다면 그건 민주당이 잘못한 게 맞습니다.

 

행정부 정책을 야당에게 견제해달라는 것부터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체제가 어떻게 구성되어 어떻게 굴러가는지 모르는 병신 수준인데 이런 수준의 멍청이가 정치에 참여하여 한 목소리 내는 거 들어주는 게 잘못인 거고요. 목소리도 개소리랑 사람 소리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하는 게 올바른 판단력을 지닌 사람의 능력입니다. 민주당이 그걸 구분 못한다면 민주당이 멍청한 거고 욕먹을 일이고요.

 

 

 

이런 소리 하는 병신한테 귀기울여 주지 말라는 거고 이런 병신들이 요구하는 거, 이런 저능아들이 하는 욕에 반응하지 말아야 하는 게 민주당이 해야할 일입니다. 

 

 

 

 

지들 좋은 일 해줬더니 그게 뭔지도 모르고 뭘 해줬는지도 모르고 누굴 욕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바보들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거라고 기대하지 말고 자기들 안전이나 보중하고 다음 선거 때 집토끼나 잡을 생각 해야 합니다. 국힘당과 윤 정부가 병신짓 계속하면 그 반사이익 얻는 거야 민주당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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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통해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과거의 사례를 통해 배우는 게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렇기에 교육은 백년지대계이고 국가중대사이기도 하다. 반대로 말하자면 교육을 쥐는 자는 미래를 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국 외환위기 사태 당시 사람들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금을 모아서 기부했다. 그 금은 적지 않은 양이었고 상당한 금액이었다. 정부와 기업은 그 금을 받아서 외환위기를 벗어나는데 사용했고 이는 국민들의 저력과 위기를 극복하는 자세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 외환위기가 온전히 국민들의 힘으로 극복된 것은 아니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저력을 보여줬다는 점에는 동의할 것이다. 교육에서 역시 그것을 중점적으로 함양하고 있고 말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지점은 오랫동안, 어쩌면 지금조차도 그러한 외환위기의 원인을 국민에게서 찾고 국민에게 책임을 물리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국민들이 방탕하고 소비를 많이 한다고 해도 그게 거대한 경제규모 수준에서 문제를 일으키기란 쉽지 않다. 이는 그 자체가 아닌 다른 것과 연계되어 있고 그것에 구조적 문제를 간직하는, 이를테면 부동산 투기나 과잉 대출, 코인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다.


옛 교과서에서 말하듯 국민들이 사치품을 소비하고 해외여행을 많이 갔다는 이유로 외환보유고에 문제가 생겼다는 건 경제위기를 제대로 다루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심지어 외환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피 같은 돈을 자발적으로 기부한 국민들에 대한 심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교육이 가르치려 던 외환위기 사태는 어떤 것일까?

한 가지 가정을 들어보자. 어느 경제위기에 기업-자본가-정부는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많은 것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고 해보자. 그런데 이러한 문제가 남 일이 아니라고 믿던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임금을 깎고 재산을 모아서 그들에게 전달했다. 이 위기를 벗어나게 힘을 보탤 것이라고.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요구했다. 당장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우린 희생했소. 우리가 어떤 양보와 희생을 했는지 잊지 마시오. 언젠가 이것을 갚아야 할 때가 올 것이오.

그들 기득권은 그것에 감사하며 받아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자신의 임금을 깎고 재산을 내놓았던 이들은 그에 대한 대가를 요구했다. 세금을 줄이거나, 더 많은 고용을 하거나, 더 많은 투자를 해 달라고 말이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었고, 그들은 더 이상 아쉬운 입장이 아니다. 은혜를 갚으라는 그들의 요구에 기득권은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한 요구가 시작되자마자 그들은 교활하게도 그들의 입에서 다른 말이 나오도록 했다. 위기를 벗어나게 해준 위대한 국민들의 희생이라는 대의를 제시했고, 노동 시장의 경쟁을 심화시켜 같은 노동자들끼리 연대하기보다 경쟁하도록 만들었다. 노동자들은 당장 자신의 소득을 지키기 위해 기득권의 눈 밖에 날 행동을 하지 않았고 동료의 해고에 침묵했다. 빚을 갚을 것을 요구하고 싶었으나 그들의 위대한 희생과 정신을 훼손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지났고, 어느새 기득권은 교과서에 이렇게 적었다. 국민들의 방탕한 소비와 높은 임금 때문에 경제위기가 발생했고.. 또 한편으로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국민들이 일치단결하여 자발적으로 임금을 깎고 자신의 재산을 기부하여 국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국민들의 과소비를 어리석다 평가했고 자발적인 희생을 위대하고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한 교육을 배운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고 그들의 정신 깊숙한 곳에 국민들의 어리석음과 자발적인 희생이라는 가치가 함양되어 있을 것이다. 잘못은 언제나 거대한 집단이나 사회, 정부와 기업보다는 노동자 본인과 국민 개개인에게서 찾는 자학적 가치관이 형성되어 있을 것이고, 집단의 위기 상황에서 책임추궁을 하기보다 희생을 먼저 하며 극복한 이후 정당한 원인을 찾고 그것을 고치기보단 그것을 자랑스러워하고 훌륭한 미담으로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

마침내 기득권은 교육을 통해 정보를 통제하고 원하는 국민들을 생산해내는데 성공했다. 국가 위기상황을 초래한 그들의 실수와 실패는 철저히 묻혔고 피해자로서 희생했던 국민들은 그 책임자이자 해결사가 되었다. 그 사건에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책임자로 지목 당한 피해자가 있을 뿐이다.

이러한 정신은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너의 잘못이라 말하게 만들었다. 여행갔다 참사가 나도 그것을 초래한 구조적 원인과 책임자에 대한 추궁보다는 왜 거기가서 사고를 겪느냐는 손가락질이 우선 될 것이다.


매년 놀러 간 곳에 올해도 놀라갔지만 이전까지 했던 조치들을 하지 않아서 죽은 사람에게도 왜 굳이 불건전하게 놀러 나가서 그런 사고나 일으키냐는 모욕을 받을 것이다.

책임을 교육 받은 적 없기에 책임자를 지목하는 법을 모른다. 국민들이 과소비 해서 발생한 경제 문제이기에 피해자에게 책임 소재를 찾는다. 어렵고 복잡한 이해가 필요한 구조적인 원인 분석과 책임자 탐색보다 쉽고 간단한 피상적 지적으로 사건을 다룬다. 규제 철폐, 감시감독 미비, 불법 개조, 보고 누락 및 지연, 최고 책임자의 실종 등등. 이러한 유기적인 개별 사례들이 어떻게 연계되어 어떻게 사건을 발생 시켰는지 구조적으로 분석하여 판단하기보단, 왜 거기 놀러 가서 하필 사고를 당하느냐는 지적이 훨씬 쉽다는 것이다.

이들은 생각하는 법과 올바르게 지목하는 방법을 모른다. 배운 적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교과서에서 이렇게 적혀있었다면 어땠을까? 경제위기를 발생 시킨 원인은 기업의 무분별한 차입에 의존하는 무분별한 과잉투자, 해외 국가의 고정환율제 포기로 인한 외국 자본의 환차익 실현에서 비롯된 통화 위기, 아시아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불안이 증대되며 외국 자본의 단기부채 만료에 따라 해외 자본이 빠지고 외환 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낸데다, 단기부채의 연장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상환을 요구받는 등 그러한 여파로 기업의 파산과 부도, 대량 실직이 발생했다고 말이다.

물론 이는 결코 초등학생이 배울 정도의 지식이 아니다. 초등학생에겐 복잡한 내용이고 중학생에게도 외울 게 많은 사건일 것이다. 그럼에도, 최소한 본인은 IMF 사태로 불리는 이 97년 외환위기 사태를 초등학교 때, 국민의 방만함과 국민의 희생이라는 컨텍스트로 배웠음을 똑똑히 기억한다.

왜 하필 이러한 어려운 내용을 그 나이대 아이들에게 배우게 했을까? 여기에 어떤 의도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리 좋게 말해도 국민들의 단합으로 대표되는 애국심과 연대의 사회화로 포장되는 국가주의를 가르치는 것이고,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자학적 가치관을 어릴 때 미리 심어놓기 위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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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작 외환위기를 그렇게 서술한 거 자체로 자학적 가치관, 약자에 대한 책임추궁 사상이 만들어졌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따지고 보면 역사적으로 오래된 개소리고 일제시대 때도 그런 말이 있었죠.

단지 글을 쓰면서 상징적으로 하나 꼽은 것 뿐이고요.

중점적으로 말하고 싶은 건, 교육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가르칠 내용을 어떻게 가공하고 어떤 나이대에 어떻게 제공하느냐에 따라 원하는 가치관을 부여하는 게 가능하다는 겁니다. 이런 가능성은 좌편향 교과서, 우편향 교과서라는 정치적 논란에서 양측 모두에게 지적되는 것들이었고 실제로 가능합니다.

글자 몇개 바꾸거나 어떤 문장을 지우거나, 어떤 정보를 삭제하거나, 추가하는 식이 아주 사소해보일지는 몰라도 그건 이미 배운 우리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지 배우지 않은 세대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긴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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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9 - [취미/이야기] - 약자에 대한 멸시와 힘의 논리.

 

 

여러 문제들이 있겠지만 다른 걸 다 떠나서 전 이게 가장 문제라고 봅니다.

 

다른 게 아니라, 부정부패가 우리 사회의 역량을 깍아먹고 공정한 사회와 사회적 신뢰와 같은 사회적 자본을 고갈시켜 도덕보다는 기회를 더 중요시하는 각자도생의 정글사회를 만들 거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이명박 같은 거악의 부패 범죄자들이 얼마를 해먹고,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와 손해를 보든 그들이 책임을 지지 않고 오히려 다시 부와 권력을 손에 쥐는 것은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어떠한 교훈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멍청해도 남에게 큰 손해를 끼치고 그걸 통해 커다란 이익을 얻었는데도 책임지지 않고 그걸로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는 걸 안다면 도덕과 윤리는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하죠. 도덕과 윤리가 기능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기준을 통해 옳음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나쁜 짓을 하면 그에 대한 대가가 찾아와야만 그것을 지킵니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그게 옳기 때문에 지키려 한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겠지만, 반대로 그걸 지키지 않아도 된다면 굳이 지킬 이유가 없고 그러한 부덕한 행위로 이익을 볼 수 있다면 그렇게 합니다. 단지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할 사람들은 차고도 넘쳐요.

 

그에 대한 대가도, 책임도 지지 않는다면 도덕이나 윤리를 지켜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도덕과 윤리는 그 자체로 기능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역행하는 자에 대한 대가를 주는 식으로 그 영역을 지켜왔어요. 보통 사회 그 자체가, 법 집행기관에 의해 그렇게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명박과 같은 무리는 범죄를 저질렀고, 그것을 통해 부와 명예, 사회적 지위를 획득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시기 동안 그들은 책임을 지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와 동류의 인간들에 의해 사면, 복권되었고 이는 그들이 충분한 책임을 지지 않음을, 부덕한 행위로 얻은 이익은 결코 훼손돼지 않으며, 그러한 행동이 곧 승리의 공식이라는 것을 증명해냈습니다.

 

사회지도층의 사상이 곧 사회의 지배적인 사상입니다. 그들이 범죄를 통해 부와 권력을 얻고 그것이 훼손되지도, 침해받지도 않고 오직 과정의 부정보다 부정을 통해 얻어낸 결과만이 중요한 사회라면 사회 구성원들은 그들과 같이 되고자 할 때 그들과 같은 방식을 따라갈 겁니다. 이미 증명된 공식이니까요.

 

 

이명박의 사면과 그 무리들의 복권은 부와 권력을 얻고 싶다면 부정부패와 범죄를 저질러서 남들에게 피해를 주든 말든 어떻게든 자기 이익을 챙겨라. 그것을 통해 충분히 많은 부와 권력을 얻었다면 그 부와 권력(그리고 그걸 통해 얻은 인적 관계망)을 통해 죄를 책임지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건 하나의 증명이고 그들이 추구하는 사회상의 노골적인 핵심이기도 한데다 사람들이 추구해야할 성공의 공식이 됐습니다. 

 

정의가 지켜지지 않고 성공하고자 한다면 법과 도덕, 윤리를 지키지 않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이고 심지어 적절한 방법이라면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설령 처벌받는다 하더라도 얻는 게 더 크다면 약간의 징역과 벌금은 단순한 부정부패로 얻은 이익에 지불하는 거래대금 정도가 될 뿐이죠. 그렇게 처벌받은 이상 나는 더 이상 죄가 없다고. 이미 죗값을 다 치루고 나왔다고.

 

 

정의와 공정은 당분간 한국에서 사망 선고를 받아야할듯 합니다. 이걸 다시 살리기 위해선 죽어야할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뜻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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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내 中 ‘비밀 경찰서’로 서울 중식당 유력
https://www.msn.com/ko-kr/news/politics/%EB%8B%A8%EB%8F%85-%EA%B5%AD%EB%82%B4-%E4%B8%AD-%EB%B9%84%EB%B0%80-%EA%B2%BD%EC%B0%B0%EC%84%9C-%EB%A1%9C-%EC%84%9C%EC%9A%B8-%EC%A4%91%EC%8B%9D%EB%8B%B9-%EC%9C%A0%EB%A0%A5/ar-AA15zRTd?ocid=msedgntp&cvid=36f3953c816e45ff92614db9b4f61c92
[단독]'中비밀경찰 거점 의혹' 강남 중국집, 이력 논란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79/0003720632
‘중국 비밀경찰서’ 지목 식당 “한중우호 파괴세력 폭로할 것”
https://n.news.naver.com/article/009/0005066594
[속보]대통령실 "尹정부 인태전략, 미국과 달라...중국 협력 포함"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3/0011614030?sid=100
대통령실 “인도태평양 전략, 중국도 협력 대상에 포함”
https://www.chosun.com/politics/diplomacy-defense/2022/12/28/BKSGKB7ZGNHJFLD32VBZWGYGLA/

 

중국 비밀 경찰서는 원래 해외에서 먼저 터졌고 이후 한국에서도 공개됐습니다. 이걸 왜 공개라고 하냐면, 이미 방첩기관은 대충 알고 있었을 거기 때문입니다. 해외에서 폭로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 공개됐다는 건 찾았더니 있었더라 같은 게 아니라 이미 정보기관은 다 알고 있었고 오히려 중국의 국내 활동을 감시하고 있었을 거라는 거고요.

 

재밌는 건 그걸 먼저 깐 게 조선일보입니다. 얘네가 생각을 하고 보도한 거라면 그건 정권에 주는 일종의 신호 같은 거라고 봐야 하는데, 중국과 너무 가까이 지내지 말라는 거죠. 근데 문제는 정부의 반응입니다. 이거 가지고 별 반응이 없고 오히려미국의 인도 태평양 전략에 따르지 않고 중국은 협력의 대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걸 있는 그대로 읽으면 이런 상황입니다.

 

중국은 한국을 포함한 각국에 비밀 경찰서를 운영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폭로가 이루어졌음에도 정부는 미온적인 태도로 임하고 있고 미국의 인도 태평양 정책에 일탈적 모습을 보이며 중국을 협력 대상으로 규정했습니다.

 

 

지난 문재인 정부 당시 친중 프레임으로 신나게 공격했지만 정작 문재인 정부 때 친중적 행보는 지목할만한 것도, 내세울만한 것도 별로 없는 파편적인 것들 뿐입니다. 물론 2찍이들에겐 그것만으로 충분했겠지만, 지금 윤석열 정부의 노골적인 친중반미 정책에 대해서는 별 다른 대단찮은 비판이 없다는 걸 보면 이들에게 친중반미는 그것이 대한민국의 국익을 훼손하는 레드팀 행위이기 때문에 비판하는 게 아니라 단지 민주당을 공격하기 위한 명분일 뿐이지 대한민국의 안보와 국익에는 별 관심 없다는 의미라고 봐야 할 거고요.

 

 

분명하게 비교하고 넘어가야할 것은, 문재인 정부는 당시 단 한 번도 아시아 태평양 전략에 있어 한국이 다른 길을 간다거나, 미국의 전략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언급한 적도 없고 그렇게 행동한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문재인 정부를 신뢰한 거고요.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정권 내내 친중, 빨갱이, 중국몽이라고 조롱과 멸시를 받으며 있지도 않은 친중 정부가 됐죠.

 

문재인은 단 한 번도 아태 전략 그 자체에 대해서 한국이 다른 길을 간다는 식으로 언급한 적이 없고 그런데도 중국몽이라고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먹었죠.

 

 

근데 윤석열 정부의 저 입장은 외교적으로 이런 의미가 됩니다.

 

"한국은 아시아 태평양 전략에 있어서 미국의 대중국 노선에 참여하지 않겠다."

대통령실의 저 발언은 공식적인 논평으로 미국에 그렇게 해석될 겁니다. 소개한 조선일보의 기사에서도 논점은 중국과의 협력, 미국의 인태 전략과의 차이로 잡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권은 전 정부의 노골적이고 전면적인 네거티브를 표방하고 지난 정부의 모든 것을 반대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외교에 있어서 전략적 모호성은 배제한 채 외교적 포지션을 뚜렷하게 잡아가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모든 외교적 발언과 행동은 친중과 반미, 친일로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건 아주 위험한 문제인데, 과거 전승절 논란 때처럼 미국은 언젠가 한국 정부에게 친중이냐 친미냐를 요구하면서 선택권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한국이 친미적 선택 내지는 미국의 마음에 들만한 선택을 내리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미적대는 태도로 애매하게 나온다면 미국은 한국에 그만한 대가를 돌려줄 겁니다.

 

역사상 미국과 반대 입장에 서서 이익을 본 국가는 없습니다.

 

반대로 친미적 선택을 내리거나 중국의 요구를 무시하고 반대되는 선택을 할 경우 중국은 다시 한번 한국에 보복을 감행하겠죠. 이미 한번 해봤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그땐 군사적 방법도 동원될 수 있고요.

 

 

중국이 비밀 경찰서를 통해 한중우호라는 워딩을 날렸다는 건, 적어도 중국 내에서 한국은 완전한 반중 국가라고 인식되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그리고 이는 한국 정부의 친중적 태도와 시그널들 때문일 것이고, 중국 내의 오판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그러한 오판의 재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부의 노골적인 친중 행보는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이전 정부의 행보와 차별될 수밖에 없습니다. 외교적 수사를 통해 이루어진 워딩들이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은 중국의 요구에 적절한 변명이 될 수 있었겠지만, 윤석열 정권은 너무 포지션을 직접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한편, 미국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읽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 읽는 것은 아주 위험한 글입니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 전문.
https://www.whitehouse.gov/briefing-room/statements-releases/2022/12/27/statement-by-national-security-advisor-jake-sullivan-on-the-republic-of-koreas-indo-pacific-strategy/
백악관 “한국 인도태평양 전략 환영…경제 안보 협력 강화”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1073491.html

 

제목과 내용만 보면 미국은 한국 정부의 인태 전략을 환영하며, 협력 강화를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워딩은 언제나 외교적 수사이기 때문에 그 내용의 맥락을 읽어야 하는데, 핵심이 되는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전략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국인들이 법치와 인권 같은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는 것에 전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포괄적 접근을 제시한다”
The strategy sets forth a comprehensive approach that demonstrates the commitment of President Yoon and the Korean people to upholding universal values such as the rule of law and human rights.
"인도 태평양 전역의 다른 동맹국 및 파트너와의 협력을 확대하려는 한국의 목표는 국제 평화와 안보를 증진하고 핵 비확산을 촉진하기 위한 우리의 공동 능력을 강화할 것입니다."
The ROK’s goal to expand its cooperation with other allies and partners across the Indo-Pacific will strengthen our shared ability to advance international peace, security, and promote nuclear nonproliferation.

 

설리번 보좌관은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지역 안보와 자라나는 번영에 대한 우리의 공동의 약속을 반영한다”며 환영했다. 이어 “이 전략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국인들이 법치와 인권 같은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는 것에 전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포괄적 접근을 제시한다”며 “인도-태평양에서 다른 동맹 및 파트너들과의 협력을 확대한다는 목표는 국제 평화와 안보를 증진하고 핵 비확산을 촉진하는 우리의 공동의 능력을 강화해줄 것”이라고 했다.

 

 

내용을 보면 인권과 법치를 키워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키워드는 한국 내에서 법조 카르텔의 국내 정치에 몰두하고 있는 것을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이며, 인권이라는 것도 그와 어느 정도 엮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핵심 의도는 이건데, 미국은 중국을 공격할 때 언제나 인권을 키워드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인권이라는 명분은 미국이 다른 국가를 공격하거나 적대 활동을 할 때 미리미리 쌓아놓는 발언들이고, 그들 국가에 대한 세계적 인식을 저해하는 외교 전략의 일원이기도 하고요.

 

미국이 중국과 관계가 나쁘지 않았을 때 미국은 중국 내의 인권 문제에 별다른 발언이나 비판을 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관계가 나빠진 이후 미국은 몇년 동안 중국의 인권 문제를 비판해왔고 공개적으로 지적하고 있었죠.

 

이번 미 백악관의 발언에 인권이 등장한 것은 조만간 중국에 인권을 화두로 비판할 계획을 은유하는 면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인권과 법치는 윤 정부의 보도자료에서 언급되어 있지만, 결코 윤석열 정부의 주요 화두가 아니었습니다. 이게 정말 중요한 부분인데, 미국은 대통령실의 발언에 대한 반응으로 인태 전략상 중국은 협력 대상이다.에 대한 발언을 헤드로 꼽지 않았고, 대신 법치와 인권을 꼽았습니다. 한국 정부가 제시한 전면적 키워드에 대한 반응치고는 의미심장하게 읽을 수밖에 없는 논평이고요.

 

이후에 등장하는 발언들을 봤을 때, 전술핵 배치라는 발언들은 보수계에서 지속적으로 나왔고 최근에도 원희룡에 의해 제주도 핵 전진배치라는 말이 나온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백악관은 비핵화를 말했죠. 정부와 한국 보수진영의 입장을 정면에서 반대하는 내용입니다. 무엇보다 핵 비확산이라는 단어에서 말하는 핵을 가진 국가는 북한 뿐만이 아닙니다. 중국은 아시아에서 대표적인 핵 강국이죠.

 

이러한 맥락은 한국의 인태 전략을 환영하는 듯한 표면적 발언과 반대로 중국과의 협력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내보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럼 다시 정리하자면, 한국 정부는 인태 전략에 대한 질서구축을 전면적인 키워드로 내세웠고 가장 핵심 메시지는 대한민국은 필요시 미국의 인태, 아태 전략과 무관하게 중국과의 협력할 것을 드러냈고, 미국은 그에 대한 반응으로 인태 전략을 뒤에 두고 법치와 인권 키워드를 전면적으로 다루었습니다. 무엇보다 중국과의 협력에 대해서는 반응하지 않은 채 환영 성명을 낸 것이고요. 이는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이기 때문에 환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안보적인 면에서 백악관은 한국 내 집권세력과 반대되는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고 인태 전략에 대해 다른 동맹국, 파트너와의 협력을 확대한다는 것으로 그 대상을 한정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바로 다음에 나오는 말이 국제 평화와 안보를 증진하고 핵 비확산을 촉진한다는 것으로 한국의 인태 전략에 있어 그 대상이 중국이 되기 어려움을 은유하고 있고요.

 

조만간 미국이 중국에 인권이라는 키워드로 공격할 때 한국의 입장과 태도에 대한 압박이 나올 가능성 역시 있습니다. 윤 정부가 이토록 노골적인 친중 행보를 할 때 그에 대해 친미냐 친중이냐 정확한 입장을 확실하게 하라는 압박은 전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정부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한반도 정책은 한국을 반미국가나 불편한 관계로 만들지 않기 위해 미국 의회에게 집요하게 견제받고 방해 받았습니다. 북폭이나 주한미군 방위비, 철수 등의 움직임에 미 의회는 부정적으로 반응했고요.

 

따라서 한국은 미국에게 있어 반미국가나 친중국가가 되어서는 안 되는 국가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자기 주머니로 떨어질 경제적 이익에 눈이 멀어 친중적 움직임을 세련되지 못하게 하고 있고 이는 미국에게 있어 지속적으로 불편한 태도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는 국가이기 때문에 관리되지 않는 지역은 전혀 아니고요.

 

 

문제는 미국의 의중은 표면적으로는 당연히 강력한 동맹임을 어필해야 하고 이는 이번 성명에서처럼 환영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만 내용적으로 교묘하게 비판적인 가시들이 보입니다. 한국 정부가 앞으로도 친중적 행보를 보인다고 해서 미국이 가만히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고요.

 

미국은 한국의 입장과 무관하게 자기들의 인도 태평양 정책을 밀고 나가겠다는 의도입니다. 한국이 그 노선에서 빠져나와 친중 행위를 한다고 했을 때 한국에게 불이익이 없으리라고 믿는 건 순진한 걸 넘어서 나쁜 거고요. 미국은 이미 10년 이상 대중국 전략을 고수하고 있고 이는 점점 고도화되고 있으며 세계화가 역행되어가고 세력별로 지역화되어 가는 이 시기에 한국이 미국의 전략에서 튀어나온 못이 되어 자기만의 이익을 추구하겠다고 한다면 당연히 그에 대한 대가가 있을 수밖에 없지요.

 

 

미국의 저 성명을 긍정적으로 읽겠다면 그것도 자기 자유고 제 해석을 망상이라고 생각해도 좋은데, 윤석열 정권의 외교를 문재인 정권으로 주어만 바꿨을 때 똑같이 반응할 수 있는지 먼저 생각해보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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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또 다른 한계점을 맞이하는가.
https://cafe.daum.net/Europa/38b2/4516

처음 자본주의에 가장 심대한 위협을 줬던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등장했던 때와 유사한 상황에 치달아가는 게 아닌가 싶은데, 문제는 공산주의는 소련의 멸망과 함께 이미 실패한 체제가 되었고, 이에 대한 도전이나 견제가 가능한 대안, 혹은 경쟁적 이념은 등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세계는 명실상부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나 마찬가지가 되었고요.
 
즉, 자본주의는 현재 견제할만한 사상이 없습니다. 자본주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는 경쟁자 때문에라도 살아남기 위해 사회주의적 요소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자유주의나 프로테스탄트적이지 않은 전통적 기독교 윤리, 인본주의, 애국심, 참정권과 함께 이어지는 대다수 노동자들의 요구 등 다양한 관점과 사유로 노동법이나 노동환경은 점차 나아졌고 자본주의는 지나친 비인간성이 줄어들어 현재와 같은 체제에 이르게 됐습니다.

 

 

저번 글에서 언급했듯, 자본주의는 공산주의라는 경쟁 체제가 사라지고 자본주의의 폭주를 억누르고 견제할만한 방법이 없어졌습니다. 소련이 붕괴한 이후 자본주의는 세계를 지배하는 사상이자 체제가 되었고 자본주의가 아닌 체제들은 자본주의에 비해 경쟁력이 없습니다. 

 

독점 시장은 언제나 독점자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얼마나 물량을 풀 것인지, 개발에 얼마나 투자할 것인지, 가격을 얼마로 책정할 것인지 등등 독점적 지위는 그 자체로 사는 사람이 아쉽게 만드는 위치이죠. 그것은 체제 역시도 다르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정치체제가 아닌 경제체제이고, 그 핵심원리상 패권을 추구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더 많은 부를 획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그 방법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세계의 정치, 사회, 문화적 규칙으로 게임을 하죠.

 

전근대 사회의 체면과 탐욕 문제.
https://cafe.daum.net/Europa/38b2/4528

 
11.
그들은 결코 자신의 탐욕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욕심을 가지는 게 무엇이 문제냐고 할 것이다. 욕심은 발전의 자양분이 되고 충분히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욕망은 욕망되어야 하고 그것이 법을 어기거나 비도덕적이지 않는 한 잘못된 게 아니다.
 
그러나 탐욕과 욕심이 죄악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그것이 무한하기 때문이며 절제될 수 없는 속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으면서도 더 큰 이익을 얻고자 했던 파홈은 더 많은 땅을 얻기 위해 탐욕을 부리다 악마의 의도대로 죽게 되었다. 그가 중간에 절제했다면 더 넓고 훨씬 좋은 땅을 얻은 채 오랫동안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종래에 그가 얻은 땅은 그가 누울 3아르신 뿐이었다.
 
파홈의 이야기는 톨스토이의 기독교적 교훈이 담긴 이야기일 뿐이지 현실세계의 당위나 운명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부정한 사회일수록, 부정한 정치권력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파홈의 사례는 줄어든다. 정부가 부정하고 악한 이들에게 적절한 처벌과 규제를 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는 그 자체로 공유지이다. 자원이 순환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는 한계가 있고, 자원 역시 한계가 있다. 이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원은 한계가 존재하기에 순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의 동맥경화가 찾아오면 자본주의는 지속 가능성에 한계가 찾아온다. 누군가 자원의 절대다수를 독점하고 분배하지 않는다면 모두가 고사할 것이다. 단지 가진 사람이 더 늦을 뿐이다. 그마저도 아무런 폭력도, 외부세계로의 도피가 없다는 전제 하의 이야기일 뿐이다. 대체로 그러한 한계 상황에서는 혁명, 쿠데타, 정부전복, 심지어 외침 등 다양한 방식의 폭력이 체제에 끝장을 내기 마련이다.

 

문제는 탐욕입니다. 욕심은 모든 인간이 다 가지고 있는 생물학적 본능이고 이것은 생존에 유리하게 해주는 동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욕심이 지나쳐 탐욕이 되는 것은 공동체의 발전에 부정적인 힘을 발생시키죠. 언급했듯, 탐욕은 무한하며 절제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문명 어느 사회든 무한하게 추구하여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는 것들을 죄라 불렀고, 기독교의 칠죄종이나 불교의 오욕칠정이 그러한 것입니다.

 

본능적이기에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욕구가 욕망이 되고, 그것이 지나쳐 탐욕이 됩니다. 그러한 탐욕은 끝없이 추구되며 자원과 인신을 무한하게 빨아들이죠. 그리고 자원의 독점은 올바른 곳에 적절하게 사용되지 못하기에 공동체를 파괴하게 만듭니다. 무한하게 자원이 제공되지 않는 한 순환하지 않는 자원은 그 양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집단의 유지를 위해 소모되지 않기에 문제거리가 됩니다.

 

 

이러한 탐욕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도덕적인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부를 얻는 것이 목적인 체제이기 때문이죠. 그러한 욕망이 발전과 경제성장을 가져온다고 말하고 이것은 전혀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탐욕은 소수의 부자들이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게 만들었고 순환하지 않는 자원은 분배되지 않기에 자본의 동맥경화를 발생시키고 있죠. 정상적인 자본의 순환이 이루어졌다면 물가와 임금은 지금과 다른 수치를 보였을 것이며 경제문제로 나타나는, 이 사이에서 발생하는 괴리 역시 지금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사회적 스트레스를 유발했겠지요.

 

자본주의는 최대한의 부를 추구하는 체제이고 인간은 언제나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죠. 그러나 그 효율적인 방법은 규칙에 대한 도전 역시도 시도하게 만들고 이는 자본을 부정한 방법으로 축적하거나 한계 이상으로 추구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자본주의의 모순이 발생하는 거죠.

 

더 많은 부를 추구하는 체제이나, 그것이 일정 임계점을 넘어갈 경우 부가 순환하지 않고 경제가 성장하지 않거나 둔화되거나, 오히려 후퇴하면서 자본주의의 유지를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탐욕이 지나칠 경우 공동체, 집단은 붕괴하는데 이것은 자본주의라고 해서 다를 게 없습니다.

 

단지 자본주의는 그것을 억제하지 않고 최대한으로 긍정했을 뿐입니다. 사람의 탐욕을 통제하는 경제체제 중 공산주의는 최대한 억제하는 식이었다면 자본주의는 그 반대였을 뿐이죠. 그리고 승리한 것은 자본주의보다 더 큰 한계와 모순을 지녔던 공산주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모든 경제체제 중 유일하게 영구적이며 항구적인 체제라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닐 뿐이죠.

 

 

자본주의에는 한계점이 존재합니다. 커다란 구의 형태로 존재하며, 이 이상 부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인구, 자원, 기술 등 다양한 이유로 발생하는 것이며, 이 한계점은 현 지구적 인류의 상황에 기초합니다. 인구는 소비할 고객이며 생산할 노동자이고, 기술은 그것의 속도와 규모를 확장시킵니다. 자원은 소비하고 생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자본, 돈으로 환산 가능한 가치들입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 한계점에 도달할 정도로 인구, 기술, 자원의 혁신 따위가 없다면 그 21세기 이후 급격하게 확장되는 경제성장은 언젠가, 어쩌면 머지않아 그 한계점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한계점을 최대한 유예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 그 한계점은 한계 영역이라는 이름으로 커다란 구의 형태로 그려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부의 규모에 따라 크고 작은 구들이 존재하고요. 소수의 부자가 더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다면 자본주의의 한계 영역 내 적지 않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중산층, 서민, 빈자들은 그보다 훨씬 작은 구로 나머지 영역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고요. 문제는 전 지구상 보유하고 있는 부의 양은 한정되고 있고 한계영역이 더 넓어지지 않는 한 최대한 부를 추구한 부자들에 의해 영역 내 거대 구형들은 더 크기를 키우겠지만 반대로 중산층과 서민들의 크기는 더 작아지며 영역이 줄어들 것이라는 겁니다.

 

점차 이 공간들은 좁아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 공간들이 남아 있을 겁니다. 이론상 그 부분들은 더 작은 구체로 채워질 수 있는 부분이지만 커다란 구는 부피 대비 표면적이 적기 때문에 도형의 공간을 채운다는 목적에선 비효율적인 빈 공간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더 큰 구체들을 쪼개고 쪼개어 부피를 줄이는 대신 표면적을 늘리는 식으로 한계점을 유예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더 나은 기술, 더 나은 합의, 더 나은 체제를 발생시킬 여유가 될 것이고요. 현실의 대다수 개인들에게도 부정적인 내용은 아닐 겁니다. 다만, 현행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방향성과 다르며 오히려 공산주의에 가까운 개념으로 도달한다는 점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본주의의 한계점을 더욱 확장시키거나 개선하지 않으면 찾아올 미래 중 하나가 될 것이라 봅니다. 그때가 된다면 자신의 부를 나누기보단 그러한 한계에 도전하는 이들에 의해 자본주의 자체가 붕괴할 수 있는 것 역시 가능성 있는 미래 중 하나라고 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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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이 결코 대중적 지위의 이론이자 지지 도구가 될 수 없는 이유는 그 본질이 한정된 자원을 누가 더 많이 차지할 것인가라는 헤게모니 논리,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자이기 때문에 차별 받는다는 논리는 노동자이기 때문에 차별받는다라는 프레임을 추월할 수 없다. 이는 정의당 등 노녹정 류 진보진영이 페미니즘을 선택했을 때 그 근거가 소수자에 대한 이론과 현실의 이해는 있을지언정 대중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기에 더 보편적인 집단이자 인구 절반이 여자라는 이유로 그들의 입장과 이익에 복무하여 대중적 지지를 받아 대중정당의 지위에 도전할 수 있는 세력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란 오판으로 이어졌다. 물론 그런 의도가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난 차라리 이게 더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본다. 그렇다해도 역시 오판일 뿐이지만.

그들의 규모가 적은 것은 민주당이 진보 의제를 빨아들이는 공룡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대중성을 획득할만한 의제를 만들지도, 그것을 이끌어갈 논리를 만들지도, 현실적인 제도적 장치를 만들만한 설득력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장애인과 노동자, 여성 등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이해와 현실에 대한 경험은 있고 그것이 지지기반이자 정치적 권력 회득의 근간이지만, 동시에 그들 스스로가 그러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 밖의 사회에 대한 이해가 적다는 약점으로 돌아왔다.

 

이것은 그들이 서민, 중산층, 혹은 그 이상의 상류사회와 엘리트 사회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대중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노동자와 장애인에 대한 의제에 찬성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 현실과 필요성을 절절히 이해하는 사람들은 적다. 언제나 그들은 자신의 삶과 사회의 변화에 관심이 있었다. 진보는 진보 나름의 변화를 추구하고 보수는 보수 나름의 변화를 추구하며, 내 이익이나 이익이라고 믿는 진영의 이익에 관심을 가진다.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투쟁과 성과는 인정할만 하겠지만 그것이 대중적 관심과 지지로 돌아올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약자로 대표되는 소수자의 이권을 추구하는 것이지 서민 자신들에게 와닿는 이익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령 약자의 이익이 보장되어야 그 이상의 지위를 가진 이들의 권익이 보호될 수 있는 근간이 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즉, 그들은 자신들이 확보한 지지근간이 자신들의 세력 확대의 가장 큰 약점이 되는 것이다. 그들이 한국 정치에서 대중정당이 될 수 없고, 한정된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이는 민주당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하더라도 달라질 게 없다.

정의당으로 대표되는 노녹정의 가장 큰 착각이 바로 여기에 있다. 민주당이라는 진보 의제를 빨아들이는 공룡이 자신들의 의제와 먹이감을 흡수하기 때문에 영향력이 작을 수밖에 없고, 정의당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도 필요하다 믿는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민주당이 더 세력이 크고 승산이 있기 때문에 정작 선거 때 민주당을 찍기에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착각하는 건, 그렇다고 정의당 류 진보 정당들이 민주당만큼이나 능력 있고 경험 많으며, 많은 인재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태생적 근원이 노동자, 장애인 등 약자 위주이고 이것들에 집중해왔기 때문에 대중성을 획득할 수 없었다. 그들은 엘리트의 입장을 모르고 남들 위에 서서 사람을 다뤄본 경험이 적다. 그러한 경험의 부재가 시야의 지엽성을 만들어내고 대중적 안목을 갖추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엘리트, 기득권에 대한 풀뿌리 진보들의 혐오와 거부감은 그들이 성장하기 어려운 내적동인이기까지 하다.

 

민주당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고 민주당 지지자들이 정의당에게 모조리 흡수될 것이라는 건 이상적 착각이다. 현실적 대안으로 정의당을 찾긴 하겠지만, 기존 민주당의 지위를 차지하거나 그보다 더 우월한 성과를 남길 수 없다. 현재 그들의 규모가 민주당에 비해 작은 이유는 양대 거대 정당이라는 고래 사이에서 힘을 키울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그들 스스로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의당 류 진보정당이 그렇게 뛰어났다면 현실적이고 유의미한 의제들을 내놓았을 것이고 더 대중적 설득력을 지닌 논리와 대책으로 정책의 오류나 모순을 지적하며 지지를 조금씩 흡수했을 것이다.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뿌리를 내리고 이를 확대해가는 등 정치적 전략 역시 다른 두 정당에 비해 부족하다. 

 

이들은 차라리 광고업체에 컨설팅을 맡기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 될 정도로 정치적 경쟁력이 부족하다. 단순히 사람이 부족하거나 두 정당의 텃세에 밀린다는 문제가 아니다. 그들 스스로의 실력이 부족한 것이다. 그들의 심각한 착각이 바로 이 부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인데, 민주당이라는 위선자들을 두들기며 비판하면 사람들이 민주당의 민낯을 깨닫고 자신들을 지지하리라는 순진한 믿음이 있다. 민주당의 파이를 빼앗는 것이 이들의 정치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성과를 내고 인정 받으리라는 노력보다 민주당의 파이를 빼앗는 것이 비전이라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전략이다. 민주당이 똥볼을 차도 정의당을 지지하는 건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령, 더 완성도 있는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걸 실현할 수단이 있는가라던가. 민주당이 하루아침에 없어져 대안을 찾고 그것이 노녹정이라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시민의 지지는 민주당에게서 훔칠 수 없는 것이다.


늑대는 같은 개과 동물에게 매우 적대적이다. 호랑이 역시 늑대에 극히 적대적이다. 같은 먹이를 공유하는 생태적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정의당이 스스로의 정책과 비전으로 국민들에게 설득력과 지지를 이끌어내기보다 민주당을 공격하는 것을 정치 필드에서 더 열정적인 활동력을 보이는 것은 진보의제라는 같은 먹이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프레리독과 미어캣은 생태가 유사하나 먹이가 다르다기 때문에 경쟁하지 않는다고 한다.

민주당과 정의당, 그리고 국힘의힘의 관계는 이것과 유사한 면이 있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개와 늑대의 관계다. 같은 의제를 공유하기에 경쟁한다. 물론 일방적으로 더 덩치가 작은 정의당이 어떻게든 민주당에게 피해를 주려고 할 뿐이다. 정의당과 국힘당은 프레리독과 미어캣의 관계다. 먹이가 다르니 경쟁하지 않는다. 정의당의 비판은 이념, 사상적 대척점에 있는 국힘당이 아니라 민주당에게 더 자주, 많이 향한다.

젠투 펭귄과 턱끈펭귄은 먹이와 서식지는 같지만 사냥지역과 활동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경쟁하지 않는다. 포지션 해석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민주당의 파이를 빼앗고 자신의 파이를 늘리겠다는 목적에서 정의당과 국힘당의 목적은 같다. 흥미로운 지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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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인생은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서 드러난다. 그 사람이 얼마나 풍족하고 행복하게 살았는지,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 역시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럼 의미에서 이 불쌍한 개잡놈을 보자. 딱봐도 멍청함이 드러나는데, 먼저 어느 정도 배웠다 하는 사람들은 맞춤법부터 제대로 지킬 줄 안다.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상당히 잘 맞춰서 작성한다. 이는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정돈된 글을 보았고 그러한 정돈된 글을 작성해보았으며, 그러한 맞춤법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체화했는지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저 댓글을 작성한 못 배운 녀석은 어떨까? 띄어쓰기, 단어선택, 어휘 역시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는 이 잡놈이 제대로된 교육을 받아본 적 없다는 뜻이다. 특히 대학 교육으로 대표되는 고등교육을 접한 적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건 이후의 모든 댓글에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이 불쌍한 놈의 이론엔 반박의 가치가 없다. 왜냐하면 그 스스로도 증명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며, 겪어본 적도 없는 것에 대해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멍청이가 말하는 전문가란 유튜브 렉카, 여혐 유튜버에 불과하다. 전혀 전문성을 기대할 수 없고 객관성 역시 결여된 자료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것들을 신봉하는 저 불쌍한 치가 제대로된 학문적 경험은커녕 전문가가 작성한 책, 내지는 칼럼과 같은 지적 완성도를 경험해본 적이 있을까? 난 그런 적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

 

 

 

이 비루한 잡놈의 불쌍한 인생은 여기에서도 그러난다.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으니 자기 맘대로 자기에게 불리한 주장과 논리를 펼치는 자에 대해 성급한 캐릭터화를 시도한다. 논리적으로는 허수아비 치기의 오류가 발생하는데, 나는 내가 여자라고 밝힌 적 없고, 분명하게 말하지만 남자다. 이를 굳이 저 치에게 알려주지 않은 이유는 그게 더 재밌었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여자면 내가 하는 주장과 논리가 틀린 것이 된다던가, 자기 힘으로 제압할 수 있을 거라는 비참한 상상력을 자극해서 더 발광하길 바랬기 대문이다.

 

그 이후 드러나는 비약한 지성은 식자로서 비탄을 삼킬만한 수준이다. 근거 자료의 객관성은 자료의 양과 비편향성, 그리고 그 자료의 정확성으로 확보된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 자료가 보편성을 증명할 정도로 많은가, 그리고 그 자료를 취사선택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그것에 왜곡이나 오류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 불쌍한 여혐찌질이가 제시하는 것을 보라. 어떤 학술적 자료가 있나? 아니면 최소한 그러한 분야를 객관적으로 다룬 칼럼이나 기사, 통계자료가 하나라도 있나? 없다. 기껏해야 일개 개인이 지 맘대로 만들어낸 유튜브 영상 몇 쪼가리가 전부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도 이따위로 자료를 제시하면 교수가 목덜미에 돌려차기를 날릴 것이다. 이는 나무위키나 위키피디아를 출처로 달아놓은 것보다 더 질 떨어지는 수준이다. 그게 이 여혐종자의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고등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 없다는 가장 적나라한 증거가 된다. 근거가 아니다. 증거다.

 

 

빅데이터는 수집에도 규칙이 있고, 그렇게 수집한 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할 것이고 불필요한 데이터를 어떻게 걸러낼 것인가에 대한 매뉴얼이라는 게 있다. 일개 유튜버의 영상에서 그런 걸 기대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 본인이 해당 분야의 학위를 가진 전문가가 아니라면 그렇고, 심지어 그러한 전문가조차 해석 오류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저 불쌍한 바보가 제시한 자료는 당연히 빅데이터가 아니고 신뢰할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없다. 그걸 종교적인 수준에서 신앙하는 바보가 있을 뿐이지.

 

또한 저것은 논리적 오류이기도 한데, 저러한 여혐 자료들은 대개 자기가 원하는 자료나 사례를 취사선택한다. 이는 아주 쉽고 간단한 일이며 편견을 가진 이들에게 편견을 강화할 무비판적 자료가 된다. 거꾸로 말해서, 남혐 꼴페미가 남혐 자료를 무진장 많이 수집해서 유튜브 영상으로 만든다고 해서 그걸 신뢰할 자료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게 객관성을 담보하고 모든 남성이 잠재적 성범죄자이자 박멸되어야할 선천적 쓰레기라 말할 수 있겠는가?

 

단언컨데 정상적인 사고력과 판단력을 지닌 사람은, 특별히 뛰어날 필요 없이 평범한 지성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보고 틀렸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혐에 대해서도 같은 관점을 적용하기가 어째서 불가능할 것인가? 저 치가 멍청한 이유가 그것이고, 논리적이지도 않고 설득력을 느낄 수도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지적할만한 부분은 문장 하나마다 있기 때문에 정말 많지만 그것들에 대해 하나하나 짚는 건 시간낭비이니 저 댓글에서 보여지는 몇가지 사실들을 확인해보자. 저 바보는 조금 받아주니까 자기 혼자 집안에서 부들부들대면서 키보드 잡고 저렇게 긴 장문의 댓글을 줄줄이 써내려 갔다. 무가치하고 영양가란 하나도 없지만 그 나름의 정보는 제공해준다.

 

가령, 새벽 3시에 컴퓨터 잡고 남의 블로그에 반복적으로 찾아와서 저런 장문의 댓글을 남겼다는 것은 저 치에게 제대로된 직업이 없다는 걸 말하고 시간과 에너지가 썩어 넘치니 이렇게도 무의미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원래 인터넷 키배는 시간이 썩어나는 백수가 이긴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딱 그런 케이스다.

 

도대체 얼마나 비참하고 비루한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에 저럴까. 더욱이, 도대체 저 글이 저 찐따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이길래 며칠 동안 저러고 있는 것일까. 그의 삶과 생활 수준에 대한 윤곽이 잡힐 수밖에 없다.

 

 

 

그야말고 코미디쇼나 다름이 없다. 자기가 줄줄이 연달아서 박아놓은 저 댓글은 짧다고 느끼는 것일까?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것은 지적 열등함의 증거다. 이것은 인간에게 적용되어야할 기준인데, 지능이 낮은 동물일 수록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자신의 것이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그 동물의 종적 차원의 지능 수준 때문이지만 인간이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것은 저능함의 증명이다.

 

자기 스스로 줄줄이 늘어놓은 저 무의미하고 읽지도 않을 장문의 댓글에 대해서는 어떤 자각이 없을까? 머리가 나쁘다는 건 올 때마다 증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더욱 흥미로운 건 자기 스스로 근거도 없이 여자라고 믿어놓고 만나자고 하는 것이다. 여자라면 와서 윽박지르고 힘이라도 쓰면서 자신의 비루하고 남루한 자존감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저런 류의 인간을 많이 관찰해본 입장에서 확실하다고 말해도 좋다.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은 저 머저리가 내놓은 스펙이다. 당연히 구라일 수밖에 없다. 아마 저 정도 조건이 자신을 강하고 위협적이게 보일 것이라 믿는 것일텐데, 의도와 목적은 뻔하다. 저 정도로 위협적인 조건을 써놓으면 결코 만나주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그게 웃긴 건데, 저 조건이 역으로 얼마나 불쌍한 조건인지 보여지는 것이라는 거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추구하고 그걸 병적일 정도로 집착하면 망상에 빠지기도 한다. 저 불쌍한 놈은 어차피 만나주지도 않을 거고 만나자고 해도 그때가서 말을 바꾸면 될 것이니 아무렇게나 내뱉는 거다. 그러니 현실의 비루하고 말라 비틀어진 찐따 몸뚱이를 상상 속의 스펙을 늘어놓으며 가장하는 것이다. 어떤 모습일지 획이 한가닥 더 그려지는 대목이다.

 

애초에, 저 조건인 사람은 몇날 며칠 인터넷 블로그나 붙잡고 매달리며 한 순간이라도 빨리 반응해주지 않으면 못 버티는 장애인이 아니다. 실제 저런 조건을 가진 사람들은 평범하게 인간관계를 하다보면 몇명 정도는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아는 입장에서 말하길, 그런 조건을 가진 사람들은 저따위로 안 산다. 남의 블로그에 기어들어와 키배나 하잡시는 것도 다 시간과 노동이고, 그 시간과 노동은 더 귀중한 것에 투자할 수 있다.

 

덧하여, 사람은 할 말이 없으면 욕을 하는 법이고 그마저도 안 통하면 싸우자고 한다. 그가 얼마나 못 배우고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지 못한, 사회화가 덜 된 불쌍한 종자인지 알 수 있다.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굳이 빈민가에서 자기 만나자는 사람을 친히 만나주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현실에서 발생하는 조건의 차이가 그 비루한 빈민과 나의 실제적 입장 차이를 실시간으로 증명하고 있고, 사람에게는 끕이라는 게 있는지라 자기 주변 사람과 만나는 사람으로도 구분되는 법이다.

 

즉, 내가 저 불쌍한 바보를 만나주지 않는 이유는 내 수준이 추락하기 싫기 때문이고, 만날 필요도 없이 난 내 시간과 활동을 더 귀중한 곳에 써야만 한다. 저 치에게도 말해줬듯이, 내 시간이 저 저능아의 시간보다 귀하고 중요하다. 이건 돈으로도 환산될 수 있다. 백수 찐따가 개소리나 하면서 검사, 의사랑 만나서 논쟁하자느니 맞짱 뜨자느니 하면 만나주나? 그렇지 않다. 만나는 것만으로도 자기 급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그걸 요구하는 사람은 마치 그런 정상적이고 잘 사는 사람과 맞먹는 줄 아는 크나큰 착각를 하게 된다.

 

그래서 불쌍한 거다. 현실도 모르고 인간관계도 좁고, 제대로된 사회생활을 해본 적 없는 게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사회화가 덜 되었다는 건 가정상황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사람의 말과 행동은 정말 많은 건 보여준다. 프로파일러는 아니지만 그런 심리, 정보 분석의 전문가들에게 저 정도 데이터면 만들어지는 모델이 있을 것이다. 근데 저 정도로 뚜렷한 건 나도, 다른 사람들도 쉽게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멍청하고 남들과 제대로 관계를 맺어본 적 없으니 저 바보는 못할 것이고, 남이 할 수 있다는 것도 모를 것이다. 사람은 인간관계를 겪어보며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견적을 뽑는다. 이 사람은 이렇고 저런 타입이고 저렇더라 하는 정도만 해도 충분한 그것을 알 턱이 있겠는가.

 

 

다른 댓글도 많아서 좀 더 길지만 의미가 없기에 적절히 필요한 부분만 캡쳐했다. 참고로 이 밑으로 어어어어어엄청난 반응을 보여주며 초장문의 댓글을 죽어라 갈겨놨다. 그런 쓰레기 같은 내용은 내게 의미도 가치도 갖추지 못하기에 읽은 적이 없다.

 

쟀든, 이 부분에서 주목할만한 부분은 욕설이 다른 부분보다 많다는 점이다. 내가 이 불쌍한 녀석의 삶과 인생을 그대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이 거짓말과 허세로 지키고 싶었던 현실을 그대로 지적해버렸기에 흥분해버린 거고, 지나치게 사실적인 지적이 열등감을 지나치게 자극해버린 거다.

 

그래서 난 이 반응을 보고 폭소했다. 너무 재밌다. 이 정도로 적나라하게 반응하는 멍청이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데 그 덕분에 오랜만에 이런 재미를 느꼈다.

 

왜 화가 나겠는가? 사실이 아니라면 화가 날 일도 없다. 자기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까. 그런데 왜 저렇게 흥분하며 부들부들대겠는가? 내가 지적한 것들이 자신의 현실과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가깝기 때문일 것이라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사실, 저런 류의 인간들은 그 조건이 다 비슷비슷한 경우가 많다.

 

3대 500? 격투기, 운동을 배워? 재산이 3억이야? 스펙 좋고 조건도 좋아? 나 좋다는 여자가 있는데 자기가 관심이 없어?

 

그럴 턱이 있나. 기껏해야 공익 멸치 수준으로 말랐고 운동은커녕 기초체력부터가 부족할 것이다. 재산 3억을 불렀는데, 아마 자기가 살아온 삶의 관점에서 3억은 정말 큰 돈으로 보이나보다. 그 정도는 일반적인 가정이면 그럭저럭 가지고 있을 돈이다. 돈 좀 번다 하면 몇년 적당히 모았을 때 모아지는 돈이기도 하다. 뻔하다. 집안구석에 천만 단위 돈도 별로 없는 가난한 집안이니 3억이 엄청 큰 돈으로 보였겠지.

 

 

또 하나. 여기까지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저 치는 논리라는 게 없다. 스스로 내놓는 컨텐츠가 없고 주장하는 바가 없다. 그저 여혐이라는 밈 하나에 종속된 꼭두각시나 다름이 없다. 본인 스스로 생각하거나 겪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의 비루한 삶에 대한 변명거리를 찾는 시궁쥐 같은 놈이고 여혐은 그에 대한 충분한 변명거리가 되어줬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튜브 같은 곳에서 혐오 자료나 찾아보면서 내가 여자를 못 만나는 이유는 내가 안 만나서고, 내가 안 만나는 이유는 여자들이 쓰레기이기 때문이다라는 이유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자신이 못난 폐급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있고 비루한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흔한 케이스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애초에 제대로된 인간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으니 학교를 다닐 때부터 친구가 없고 친구가 없으니 당연히 여자들과 사귀기는커녕 대화조차 나눠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학생 시기를 거치고 나니 주변에 사람이 없다. 그 흔한 친구도 없다.

 

제대로된 인간관계도 없고 사회성이 없으니 아무나 받는다는 노가다판에서도 저런 종류의 폐급 쓰레기는 잘 받아주지도 않을 것이다.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노가다나 공장을 거부하는 바보들도 많다. 시간이 남아 도는 또 하나의 증거이다. 그 증거의 근거는 저 댓글의 작성 시간을 보라. 새벽 4시다. 그 시간이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유하는 사람들은 수면을 취하고 있을 시간이다. 정말 열심히 산다면 장시간 출장을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할 시간이고. 저 바보가 그런 삶을 알 턱이 없지만.

 

 

 

원래 잘난 애들은 이성을 딱히 신경 안 쓴다. 아쉬울 게 없으니까. 그리고 그런 거에 폐급 찐따들처럼 목맬 필요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잘난 사람은 자기 인생에 충실하기에 이런 곳에서 이런 댓글이나 싸질러대며 살지 않는다. 그게 이 바보가 얼마나 비루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반대 증거가 되어준다.

 

평생 여자와 가까워질 수 없는 사람은 역으로 여자를 증오하고 혐오한다. 내가 죽어도 여자랑 잘 될 리 없다는 걸 인정하기 보단 내가 여자를 안 만나는 거다라는 비참한 정신승리로 일관하고 있다. 이 포도는 신 포도라는 여우의 우화를 안다면 어떤 인간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 불쌍한 놈은 평생 평범한 인간관계를 맺어본 적 없고 여자와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으며, 앞으로 남은 평생을 그렇게 살 것이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증오는 더 강해질 것이다. 자기가 스스로 더 나아지려 노력하기보다 여자가 쓰레기라 그렇다고 한다면 얼마나 쉽겠는가? 변하는 건 본인이 더 질 떨어지는 것 뿐이지만 애초에 똥통 속에서 태어나 둥둥 떠나니는 똥이었는데 얼마나 달라질까. 그저 노력하기보다 혐오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예정된 삶을 살아가는 것 뿐이다.

 

 

이게 웃긴 거다. 다 읽을 필요는 없다. 그럴 내용도 없고 의미도 없으며 가치도 없으니까. 중요한 건 이 부분이다. 빅데이터 분석기반 통계 자료라는 부분과 연예인도 다 같은 사람이라고 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만 조금 서술하자면, 저 불쌍한 바보가 제시한 유튜브 영상은 다시 한번 말하겠지만, 빅데이터가 아니고 그걸 기반한 통계자료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니 기반 근거 자체가 틀렸고 그 기반에서 시작되는 모든 주장과 논리가 자연적으로 오류로 수렴한다. 1+1이 틀렸다면 1+1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체계가 붕괴한다는 기본 원칙에 따르는 것이다.

 

기껏해야 배운다는 게 책이나 교육이 아니라 유튜브에 불과한 불쌍한 저능아가 늘 그렇듯, 그따위 쓰레기 자료가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양 굴고 싶겠지만, 학부 수준이라도 겪은 사람들은 석박사도 아니고 학부 수준에서 요구하는 수준만 해도 저따위 자료는 댈 수가 없다. 못 배웠으니 알 턱이 있나 ㅋㅋ

 

 

연예인의 삶과 일반인의 삶은 다르다. 당연한 건데, 그들은 삶 자체가 컨텐츠고 지나치게 많은 부분이 드러나 있다. 버는 수익의 규모도 다르고 노동 방식도 다르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생활이고 수많은 팬들이 자신을 사랑해주고 지지해주는 경험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비슷한 경우라면 어떤 조직을 이끌거나 그 조직 내에서 팀을 이끌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다른 사람 위에서 지시를 내리고 허락을 받을 사람을 다뤄본 적이 없는 사람은 모를 경험이라는 거다.

 

평생 밑바닥에서 아무런 권한도 권력도 없이 살아온 잡놈 인생이 절대 알 수 없는 경험이라는 거다. 세상에는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연예인은 그 중 하나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과 다를 게 없다는 걸 보여주기도 하고 실제로 그런 면이 있겠지만, 본질적인 면에서 다른 조건의 환경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환경의 차이가 생각보다 크기 때문에 잘 나가는 연예인의 삶은 일반인과 전혀 다른 법이다.

 

그것도 헐리웃 수준의 스타들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들 스스로 대단한 스타고 엄청난 조건을 가진 이들이기에 아쉬울 게 없다. 주변 사람들과 스태프들은 감독, PD 급이 아니라면, 그마저도 엄청난 경력과 인기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그를 떠받든다. 워너비, 그루피라는 건 본래 미국 연예계에서 등장한 단어다. 자기 좋다고 죽어라 따라다니는 사람이 수백, 수천만이고 한번 공연할 때마다 수만명이 모이며 열광하고 그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며 추종하는 사람들을 겪은 사람에게 인간관계란 구분되어지는 것이다. 그들 나름의 질서대로.

 

그렇기에 쇼윈도 부부와 같은 사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내 조건이 뛰어나고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인데 왜 네가 나한테 그딴 식으로 구냐는 거다. 당연히 너도 나한테, 내 위주로 맞춰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인데, 문제는 상대방도 똑같은 스타라면 당연히 아쉬울 게 없으니 네가 나에게 맞추라는 식으로 나온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쇼윈도 부부라는 말이 만들어진 이유가 뭐겠는가? 그들의 자의식은 연예게 활동에서 비대해졌고 그런 사람끼리의 결합은 그들 스스로 연예인인 이상 반드시 이미지로 귀결되는 상품화가 될 수밖에 없다.

 

미국 사회는 한국 사회랑 또 다르고, 헐리웃은 한국 연예계와 또 다르다. 이혼과 결혼이 쉽게 발생하고 그 이유도 제각각이지만, 대개 성격 문제라는 말로 포장되는 대화와 양보가 없는 태도는 그들 수준만큼이나 강경하다.

 

이런 조건의 격차를 가진 사례를 일반인과 1:1로 비교한다는 거 자체가 멍청한 거다. 차라리 대화 없이 강대강으로 굴려는 태도 자체를 지적했다면 그나마 말이라도 됐을 것이다.

 

근데 왜 저런 멍청한 말을 하겠는가? 뻔하다. 자기보다 더 잘사는, 평범한 사람의 삶조차 모르는 멍청이가 연예인들의 삶에 대해 뭘 알겠는가? 사람은 자기 수준에서 바라보고 평가하며 판단하는 법이다. 밑바닥 쪼가리들이 상류사회를 어찌 알까.

 

 

 

 

자, 마지막으로 저 저능아가 전달해준 정보들을 기반으로 저 인간이 어떤 인간이고, 어떤 삶과 인생을 살아왔는지, 어떤 생각과 사상을 가졌는지 분석해보자.

 

 

1.소득 수준이 낮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제대로된 가정교육을 받은 적이 없을 것이다. 부모 역시 배운 사람들은 아니고 매일 같이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와 진이 빠져 있으니 아이에게 큰 관심을 쏟을 수도 없고 관리해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아이의 품성은 유전을 제외하면 그 아이가 알아서 하는 면이 크다. 관리해주고 가르쳐줄 어른이 곁에 없기 때문이다.

 

2.이는 다르게 말해서 배워야할 것을 못 배웠다는 것이다. 가정교육이 가져다주는 가장 큰 효과는 사회성이다. 밖에 데리고 나가서 여러 경험 하게 해주고 가족, 친지, 지인 등 많은 사람 만나게 해주고 친구들 만나게 해주며 사회화를 기르게 해주는 것이다. 어른을 보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가르쳐주고 친구들과 놀 때 싸우거나 다툼이 있으면 말리고 어떻게 해야할지 가르쳐주기도 한다. 애초에 사람을 만나봐야 어떻게 대하는지 배울 수 있다는 건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저 머저리는 그런 경험이 크게 부재할 것이다.

 

3.따라서 그의 학교생활은 초중고 모든 시기 동안 제대로된 교유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 사회화가 제대로 된 적이 없으니 무엇이 선을 넘는 거고 무엇이 사람을 불쾌하게 하고 어떨 때 사과하고 어떨 때 고맙다고 해야할지 모르니 다른 사람들은 저 찐따를 피할 것이다. 이건 전적으로 저 멍청이 본인의 잘못이고 친구들은 잘못이 없다.

 

왕따가 잘못된 거냐고? 일반적으로는. 근데 그 본인이 인격적으로 결함이 있는 이상한 놈이라면 정상적인 사회성과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밖에 없다. 사회성 없어서 자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이 어떻게 남의 책임이고 남의 잘못이겠는가? 제대로된 가정교육을 못 받았다는 건 이렇게 자식의 인생 전반적인 결함을 발생시킨다. 아마 언제 씻어야 하고 왜 씻어야하는지에 대한 교육도 받아본 적 없을 것이다. 사람을 피하는덴 생각보다 피상적인 모습과 인상이 크게 작용한다. 겪어보기도 전에 벽이 세워지는 게 바로 청결과 관련된 이슈다.

 

4.거의 12년 동안 찐따로 고립된 삶을 살아간 놈이 제대로된 인간관계를 맺어본 적이나 있겠는가? 맺는 방법도 알 턱이 없다. 당연히 친구는커녕 여자와 대화해본 적도 손에 꼽을 것이다.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르니 거짓말로 줄줄이 늘어놓은 조건들은 믿을 수가 전혀 없고 그의 말과 행동이 그 자신의 모순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5.왜 여혐이겠는가? 앞서 말했듯,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을 깍아내리는 건 흔한 일이다. 이 포도는 신 포도일 거야 하면서 정신승리 했던 여우의 우화는 그러한 인간의 성질을 드러내는 이야기다. 인지부조화라고도 한다. 그는 평생 여자를 접해본 적도 없고 여자를 만날 가능성도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차라리 여자를 증오하기로 했다.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여자가 쓰레기라 안 만난다는 정신승리.

 

비참하고 불쌍하기 짝이 없다. 현실은 본인 스스로도 알고 있을 것이다. 페미나치 쓰레기들이 남혐 열심히 해도 꽤 괜찮다 싶은 남자 꼬이면 어지간히 미친 경우 아니라면 페미 접고 평범한 커플이 된다. 본인 스스로 조건이 너무 쓰레기라 남자가 안 생길 거라며 남자를 증오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여러 인간 패턴과 범주가 있지만 이 경우엔 그러하다.

 

6.자기가 주장하는 자신의 조건들이 틀린 이유가 그러하다. 제대로된 인간관계를 맺고 평범하게 여자애들 많이 만나보면서 대화 많이 해본 사람은 여혐에 빠지지 않는다. 역으로 남혐에 빠지지도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인간관계를 통해 알 수 있고, 괜찮은 인맥으로 잘 지내고들 있기 때문이다. 자기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없는데 혐오종자들이 말하는 한남, 꼴페미가 어떻게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는 필연적으로 여혐이나 남혐에 빠지는 이들이 현실에선 폐급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주변에 남자가 없고 여자가 없고 정상적이고 평범한 인간관계를 맺어본 적도 없으니 가상의 남자/여자를 만들어놓고 허수아비를 공격하는 것이다. 저 불쌍한 찐따가 평생토록 여자와 1분 이상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을까? 애들 관리하는 선생님이나 의사 같은 사람을 제외하고 말이다. 아 물론 엄마도 제외하고.

 

7.그렇게 만들어진 가상의 여혐세계/남혐세계에 몰입하다보니 진짜 현실과는 더더욱 유리될 수밖에 없다. 세상에 그렇게 꼴페미가 많고 쓰레기 같은 여자가 많은데 왜 그 쓰레기 같은 여자가 자기 엄마, 할머니가 아니어야 할까? 자기가 겪어봤으니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안다는 것일까? 그럼 그 관점과 기준을 왜 다른 여자들에게는 적용할 수 없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런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여자들이 어떻게 살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본 적이 없으니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그의 여혐은 본질적으로 논리적 오류로 이루어져 있다.

 

8.사람들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저 불쌍한 놈이 내세우는 조건들은 그 자신이 가져본 적 없는 것이다. 멸치 공익에 키는 170cm 정도, 친구도 없고 여자도 없고 피지컬도 떨어질 것이다. 그가 내세우는 조건을 거꾸로 뒤집으면 나오는 것이다. 이건 10년도 전 디씨 애갤, 코갤 애들도 저렇게는 안 굴었다. 그런 증명할 수도 없고(할 수 없는 이유는 진실이 드러나니까) 내세우는 거 자체가 패배선언과 동일하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자기가 그렇게 대단했으면 어디 블로그나 게시판에 자기 사진, 계좌사진 찍어다가 올려놓고 함 뜨자고 하면 그만 아닌가? 왜 그렇게 하지 않고 계속 접촉을 애걸하고 있겠는가? 내가 받아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무섭네 어쩌네 할 것도 없이 내 시간과 활동이 그의 것보다 훨씬 가치 있기 때문이다.

 

또 매우 상투적인 거짓말도 하나 있는데, 나 좋다는 여자 많은데 내가 여자에 관심이 없어서 안 만나준다는 너무 흔하고 많이 보았던 패턴이다. 이게 딱 저 포도는 신 포도라는 정신승리, 인지부조화의 교과서적인 케이스다. 여자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여자들이 저따위 폐급 찐따랑 엮이기 싫은 거다. 사람은 주변에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느냐로 급이 정해진다. 찐따랑 같이 놀면 찐따라는 말 아는가? 왜 일진 친구 하나 쯤 있으면 좋겠다는 애들이 있겠는가?

 

마찬가지다. 여자에 관심이 없다는 건 추잡한 정신승리고 현실은 여자들이 그에게 어떤 관심도 주지 않는다. 그러면 다행이지 멸시하기까지 할 것이다. 냄새나니까.

 

그런 이유로 여혐 따위에 바져 있는 것만 봐도 주변에 여자가 없고 대화도 제대로 해본 적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몇번이나 말하지만, 말과 행동이 드러내는 정보들은 생각보다 많다.

 

9.저 불쌍한 놈이 제대로된 직업도, 인간관계도, 사회생활도 못하고 있다는 것 역시 말과 행동에서 드러난다. 저렇게 무식하게 말하며 약간의 자극만으로 의도했던 반응이 나오며 부들부들대는 성질로 뭘 할까? 아니, 저놈 성질이 현실에서 나쁘진 않을 것이다. 평생을 약자로 살아온 놈이 현실에서 어떻게 싸울 줄 알겠는가. 기껏해야 인터넷에서 키보드나 붙잡고 있는 거지. 그런 사람 많고 많이 보기도 했다.

 

그럼 그걸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말했듯이, 말과 행동이다. 일단 말은 됐고 행동을 보자. 몇날 며칠 동안 일개 블로그 하나 잡고 욕이나 써갈기고 헛소리나 하고 있다. 또한 그 시간 역시 12시 이전은 물론 새벽 2시부터 4시까지이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주중에 새벽까지 안 자고 저런 장문의 댓글을 달지 않는다. 역으로 그가 제대로된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퇴근하고 친구와 맥주 한잔 하면서 노가리를 까는 것도 아니고, 아침에 출근해야 해서 컨디션을 조절해야할 필요도 없기에 일찍 잠을 자는 것도 아니다. 그럼 답은 뭘까? 직업도 없고 친구도 있어본 적 없이 비루한 삶을 살아왔던 백수 찐다 아니면 출근 시간이 일정치 않은 직업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나머지 조건은 거기서 거기고. 어쩌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을지 모른다. 아마 본인 돈보다는 지자체 지원복지 프로그램 덕분일 것이고.

 

10.세상 어떤 정상적인 사람도 이런 삶을 살지 않는다. 인터넷 키배나 하자고 몇날 며칠 반복적으로 기어오는 건 무가치하고 무의미해서 그런 곳에 시간을 오래 쓰지 않는다. 이 블로그에 찾아와서 욕 한줄 쓰고 가는 놈들 대부분이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근데 쟨 왜 그러겠는가? 인터넷이 삶의 유일한 의미고 가진 것 없는 현실보다 중요한 세상이라는 거다. 시간이 썩어나고 어떻게든 자신의 말과 행동에 반응해줄 사람을 갈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 관심종자라고 표현되는데, 그러한 이유는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사회적 갈증을 인터넷에서 찾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현실에서 사회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공간에서 찾기 마련이고 요즘 시대엔 인터넷이 된다. 인터넷에서 찾지 못한다면 다시 현실로 기어나와 불건전한 방식으로 표출하는데, 바바리맨이나 도촬, 성범죄, 심지어 테러 등으로 이어진다. 보통 그런 식의 반사회적 범죄는 사회 하층민이자 사각지대를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에서 발생률이 높다. 아서가 왜 조커가 되었는가?

 

저 불쌍한 저능아는 내게 관심을 갈구하고 매달리고 있다. 난 그걸 알기 때문에 계속 반응해주며 자극을 해준 것 뿐이다. 단순히 내 재미를 위해서. 저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는 잡놈은 내가 주는 관심과 반응을 받아먹으며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근데 그것도 이번이 끝이다. 더 이상 재미가 없기도 하거니와 이 정도 반응점에서 관심을 끊으면 나타나는 반응 역시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럼 정리해보자.

 

저 불쌍한 놈은 가난한 집에서 부모의 관심과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컸고, 제대로된 사회성을 획득하질 못했기에 학교에서 정상적인 교우관계를 형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고립된 거의 12년 동안 타인과 정상적인 대화, 인간관계를 맺어본 적 없이 졸업했기에 남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생활하는지 전혀 모른다.

 

그렇다고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 아니. 대학 자체를 가본 적도 없다. 그럴만한 지적성취를 이룬 적도 없지만 그럴만한 재산도 없다. 그에게 3억은 세상이 바뀔 엄청난 돈이겠지만, 평범한 서민 집안에서도 억대 재산은 모으면 나오고 찾으면 나온다.

 

인간관계가 고립되어 있으니 사회적 욕구는 있지만 충족시킬 수 없다. 그러니 인터넷에 몰입한 것이고 여자는 만나고 싶은데 자기 조건이 너무 폐급이다. 그걸 자기도 알지만 모르는 척하고 있다. 대신 여자들이 쓰레기고 내가 안 만나준다는 정신승리로 자존감을 채운다. 그러나 평범하고 흔한 남자나 여자들은 이성친구나 지인이 있기 때문에 여혐, 남혐 허수아비에 휘둘리지 않는다. 설령 인터넷에선 여혐, 남혐 하는 애들도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는 안 그런다. 자기가 겪어본 사람들이니까.

 

그러나 저 불쌍한 놈은 주변에 그럴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으니 여혐에 신앙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그에게 여혐은 현상이나 사실이 아닌 믿어야할 신앙이자 도그마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너무 비참하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제대로된 교육과 인간관계를 갖추지 못한 폐급인생이기에 결혼이나 연애는커녕 제대로된 직업도 구할 수 없다. 밖에 나가서 누굴 만나거나 어떤 활동(Ex.운동)을 하기보단 인터넷이나 붙잡고 새벽까지 하는 백수 같은 생활에 더 익숙하다.

 

운동을 한다는 것조차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 해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운동에서 중요한 건 단순히 얼마나 쇠질을 하고 런닝을 하느냐, 식이요법과 단백질을 퍼먹느냐 뿐 아니라 자기 컨디션을 얼마만큼 잘 조절하는 것에도 달렸다. 가령, 운동한 날에는 필요한 시간에 적절한 수면을 취하는 것도 근성장에 필수적이다. 당연히 운동 했으니 피곤해서 잠도 잘 오겠지만 말이다.

 

근데 새벽 4시까지 컴퓨터 붙잡고 흥분해서 초장문의 댓글이나 줄줄이 달아대는 놈이 3대 500을 칠 리가 있나. 거짓말은 이렇게 쉽게 깨어지는 것이다. 해본 적도 없고 가져본 적도 없으니 모니터 너머 생판 모를 남이 쉽게 파악해버리는 것이다.

 

제대로된 직업이 없으니 새벽 4시까지 컴퓨터를 할 수 있는 거고, 그런 자식을 이미 포기했을테니 부모도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해준 것도 없으니 요구할 것도 없다는 생각일 것이다. 가난한 집안의 비애라면 비애일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블로그에 며칠씩이나 오는 이유는 내 관심을 받아먹기 위해서도, 이는 거꾸로 현실의 일보다 인터넷의 경험이 더 중요하며, 그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것도, 달리 할 것도 없다는 말이 된다. 기껏해야 유튜브 보면서 쓰레기 같은 정보나 보는 주제에 자기가 똑똑하고 배웠다는 줄 아는 처참한 지적능력과 자의식을 보라. 대학 학부 수준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병신들조차 일개 블로그에 몇날 며칠씩 반복해서 들어오고 자기 댓글에 어떤 반응이 올지 시도 때도 찾아와서 확인하지 않는다. 그냥 욕이나 씨게 박고 잊어버리는 게 최선이다. 얻을 게 없고 의미도 없는 뻘짓거리니까. 그 정도 사리판단은 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 블로그에 찾아오는 저 병신은 그 수준도 못 된다. 그래서 내가 일부러 하루 씩 텀을 두면서 반응해주었을 때 저 저능아는 내 블로그에 몇번씩 찾아와서 확인했다 실망했을까? 얼마나 내 관심과 반응에 매달렸을까? 아예 반응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나올까? 재밌는 주제이다.

 

얼마나 비루하고 비참한 삶을 살고 있으면 저렇게 살까. 내가 봐왔던 병신들 중에서도 이 정도 노력으로 멍청한 녀석은 손에 꼽히는데, 이 녀석이 그 중 하나가 되었다. 이 글은 그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ㅋㅋㅋ

 

아 참고로, 이 글의 홈주제는 '과학'으로 올라온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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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 이후, 위나라의 건국 초반, 업의 유수 자리에 서문표가 부임했다. 업 땅은 위나라의 중요한 요충지 였으나 그리 개발된 곳은 아니었고 성안은 한산했으며, 민심도 좋지 않았다. 이에 서문표가 장로들을 모아 물어보니, 하백에게 신부감을 바치는 일로 고생하고 있기에 가난하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서문표는 군사들을 모아 하백에 신부를 진상하는 자리에 참석했다. 그는 큰무당 할멈에게 시켜 처녀들을 보았으나 하백의 신부가 되기에 못났다고 말하며 다시 예쁜 처녀를 구해 보내드리겠다며 큰무당 할멈이 직접 가서 하백에 전하라며 군사를 시켜 강물에 던져버렸다.

이후 큰무당 할멈이 돌아오지 않는다 하여 차례대로 제자들을 강물에 던졌고, 무당과 그 제자들이 하백께 진상을 알리기 곤란한 모양이니 지역 관리가 대신 알리라며 그 역시 강물에 던졌다.

그럼에도 돌아오는 자가 없자 아전과 고을 유지를 한 사람씩 강물에 던지려 했고, 이에 겁에 질린 이들은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이마에 피가 흐를 지경이었다. 서문표는 하백이 손님들을 오래 붙잡고 있는듯하며 모두 마치고 돌아가라고 하였다.

아전과 백성들은 크게 놀라고 두려워하며 이후로 감히 하백을 위해 신부감을 바쳐야 한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후 서문표는 백성을 모아 12개의 도랑을 파서 강물을 끌어와 논에 물을 대었으나 처음 백성들은 도랑을 만드는 것이 힘들고 번거롭다며 하려하지 않았다.

이에 서문표는 말했다.

"백성들이란 일이 이루어지고 나면 즐거워할 수 있을 뿐이지 함께 일을 시작할 생각은 하지 못한다. 지금의 백성들은 비록 나를 증오하겠지만 100년 뒤 그들의 자손은 내 말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서문표의 일화는 그가 얼마나 과감하고 현명한 지도자인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일화에서 우리는 업땅에서 이루어진 부패의 구조에 집중해보도록 하자.

 

종교는 인적 관계망을 제공하고 그들이 하나로 뭉칠만한 가치를 부여한다. 교회나 법당, 신당에 제사를 위해 사람들은 모이고 종교적 질서 아래 집단이 형성된다. 그리고 종교는 그들이 동의하고 의지할만한 가치를 제공하는데, 그것은 현생의 부귀영화거나 내세의 삶, 혹은 행복이다. 당장 자신의 불행과 고난을 신의 시련이며 이것은 훗날 보답받을 수 있으리라는 믿으며 버티게끔 하기도 한다. 한 사람이 감히 견딜 수 없는 고난을 그런 고난은 없으며 그것이 벌 받을 죄이기 때문에, 혹은 살아서든 죽어서든 언젠가 돌아올 보답을 위해서라도 견디게끔 만든다.

 

업땅의 사람들은 하백이라는 강의 신을 모셨고, 이는 고대에 잦았던 수해의 공포를 이겨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노한 강을 달래기 위해서 인신을 공양했고, 서문표가 던진 큰할매 무당은 그러한 제사와 의식을 맡았던 종교권력자였다.

 

사람이 모인다는 것은 이권이 발생한다는 말과 같다. 사람은 누구든 생존을 위해 자본을 지닌다. 여기서 자본이란 주머니속 고기 한점이 될 수도 있고 노동력이 될 수도 있으며, 특별한 기술이나 기교가 될 수도 있다. 종교적 질서 아래 권위를 획득한 자들은 이들에 대한 우위를 지닌다.

 

그러한 우위는 신자들에게 특정한 역할을 부여하거나 특정한 임무에 종사시킬 수도 있다. 이것은 정치적 권력과 결이 다른 면이 있기에 종교적 근거를 지녀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돈이 있다는 말처럼, 종교를 중심으로 모이는 사람들은 어떠한 종류의 사람들에겐 사업수단이자 지지 기반으로 권력과 재산을 모으는 재료가 된다.

 

 

큰할매 무당은 수해의 공포에 시달리는 업의 주민들에게 제사를 위해 신부를 골라 공양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종교적 권위는 그것에 복종하게 만들었다. 지역 관리들은 통치에 큰 위험이 될 수 있는 종교적 지도자와 경쟁하기보다는 그들과 야합하는 것이 더 쉽다는 걸 알았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업의 삼로와 아전들은 해마다 백성들에게 세금을 거두어갔고, 수백 만전의 세금 중 하백에게 신부감을 바치게 하는데 20~30만 전을 썼으며, 나머지 돈은 무당들과 나누어 가지고 간다 하였다.

 

이후 무당은 돌아다니며 어려운 집안의 딸 중 아름다운 처녀를 보면 하백의 아내가 될 것이라 공표한 뒤 폐백을 주고 데려간다. 예쁜 딸은 가진 집안은 하백에게 시집보내질까 두려워 멀리 도망가기도 하였고 성 안은 더더욱 비어 사람은 부족해지며, 이는 노동력의 상실이 되어 더욱 가난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하백에 대한 믿음은 신부를 바치지 않으면 물이 넘쳐 사람들을 죽이게 할 것이라는 공포를 유지시켰다.

 

그렇게 무당이라는 종교권력과 관리라는 통지권력은 야합하여 백성들을 수탈했고 자신의 부와 권위, 권력을 유지하고 확대시키는데 사용했다.

 

강의 범람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었고, 이에 대한 공포는 압력이 되어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요구를 만들었고, 그 요구에 응답한 것이 종교였다. 그 종교는 인신공양을 대책으로 내놓았고 수해의 공포는 인신공양의 공포보다 더 했기에 사람들은 그것에 합의했다.

 

공포에서 지켜주는 종교 지도자는 큰 권위를 얻었다. 단순히 제사와 의식을 집행하고 다루는 전문가로서의 종교적 권위 뿐 아니라, 공양될 사람을 선발한다는 인신에 대한 권력 역시 가졌기 때문이었다. 죽을 사람을 고르는 사람이라면 그들에게 밉보였을 때 다음 희생자는 자기 집안에서 나올 수 있고 그들과 친하게 지낸다면 그러한 위험에서 벗어날 것이다. 조금 더 친하다면 그가 싫어하는, 어쩌면 경쟁자 집안이 선택되길 청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집단 내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인신에 대한 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권위를 지닌 종교 권력과 싸우는 것은 한정된 권력만 가지고 있는 정치권력에겐 상당한 부담이 된다. 아주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상당한 정치력을 지닌 자가 아니라면 어렵다. 설령 강제로 그들을 죽인다 하더라도 공백이 된 종교적 안정은 백성들에게 두려움을 일으킬 것이고, 정치권력에 대한 불만과 반발로 표출될 것이다. 여기에서 본래 두려워하던 수해가 발생한다면 우연의 산물이라 하더라도 정치권력의 책임이 된다. 종교권력을 제거한 뒤 새로운 종교적 질서, 혹은 정치적 질서로 편입시켜 강력하게 통제할 수 없는 한, 민란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업땅의 무당과 관리는 그러한 관계 속에서 이익을 발생시켰고, 그것은 부정부패라는 말로 정리되는 흔하고도 간단한 관계다.

 

 

서문표는 이러한 구조와 현상을 간파했고 해결책은 과감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무당과 관리의 야합은 엘리트 카르텔이라 할 수 있고 그들이 행한 것은 부정부패가 될 것이다. 서문표는 그러한 구조를 천천히 개혁하는 것은 그들의 강력한 반발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을 것이며, 심지어 주민들을 동원하여서. 그들은 그럴 힘과 영향력이 있으며 명분상 우위에 있다. 서문표가 무당의 인신공양을 막으려면 그들은 하백의 분노를 말하며 주민들의 두려움을 자극할 것이다.

 

따라서 서문표는 그들의 구조 자체를 없애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는 인신공양과 부패에 연관된 당사자들을 강 속에 집어 던졌고 그렇게 핵심 관계자들을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엘리트 카르텔은 끈끈한만큼 강력한 거부를 요구한다. 그들은 머리가 좋은만큼 웬만한 접근을 무력화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것이고 이는 개혁이 극히 어렵다는 의미가 된다.

 

가장 쉬운 것은 개혁이 아니라 혁명이다. 개혁은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정당성, 권위, 권력, 논리, 사회적 합의 등등.. 그러나 엘리트 카르텔은 이러한 조건을 흐리거나 방해하는데 능하다. 그들 역시 특정 영역을 독점한 전문가이자 권력자이기 때문이며, 그들의 존재는 대개 필수불가결하거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들은 그 사회의 극소수에 속하는 높은 지적능력과 성취를 이룬 자들이다. 정당성, 권위, 권력, 논리, 사회적 합의는 그들 역시도 다룰 수 있다.

 

혁명은 파괴적이다.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손실이 발생하는 일이고 무고한 피해자나 거대한 사회적 변혁 속에서 반드시 탈락하게 되는 이들이 발생한다. 개혁은 그것을 줄이고 필요한 것에 필요한 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게끔 하지만 그러한 개혁은 훨씬 저지하기 쉽고 방해받기 쉽니다. 혁명의 파괴적인 힘은 그러한 저항을 무력화하는데 효과적이다. 비용을 감수할만큼인가와 별개로 말이다. 또한 그 방향성은 완벽히 통제되기 어렵고 주변을 향해서 뻗어나가기도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혁명은 대체로 좋은 선택지가 되기 어렵다.

 

그러나 서문표는 개혁이 아니라 혁명에 가까운 결정을 내렸고, 그것을 성공시켰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무당과 관리를 수장시키는데 군사를 동원했다는 것이다. 서문표가 군사라는 무력을 대동하지 않았다면 그가 아무리 명성 있고 능력이 뛰어나다 한들 빠져 죽는 것은 그가 되었을 수도 있다. 무력은 논리와 정당성에 앞서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한국의 엘리트 카르텔은 부정하고 부패했다. 이걸 부정하는 사람은 눈을 닫고 귀를 막은 사람일 것이고 온전히 세상을 인식하는 사람이라고 하기 어렵다. 우리가 수집할 수 있는 모든 근거들에게서 온전히 객관적인 정보만을 추출하여 늘어놓기만 해도 그것을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떠한 모습의 현실이 모델링 될 것이다.

 

진보 정부는 그러한 부정부패의 구조를 개혁하고자 오랫동안 노력했다. 김대중도 그랬고 노무현도 그랬다. 노무현은 검찰개혁을 사실상 처음 시도한 사람이었고, 검찰의 보복에 자살을 선택했다. 노무현이 실제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다. 설령 그렇다 해도 부당했고, 그렇지 않아도 죄는 그것을 다루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70%의 지지를 등에 업고 검찰개혁을 시도했다. 그것이 과감했느냐, 충분한 권력을 동원했고 사용했느냐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윤석열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었던 문 정부는 그를 검찰총장에 올렸고, 조국을 법무부 장관에 올려 검찰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윤석열 전 총장은 국가나 개인보다 검찰이라는 조직에 무한한 충성과 소속감을 가진 사람이었고, 조국은 법조계의 아웃사이더로 조직적 지지와 협조를 얻기 어려웠다.

 

검찰은 언론과 합작하여 개혁을 단행하는 이들에 반역했다. 그들의 과거를 끈질기게 파냈고 언론은 그것을 자극적으로 다루었으며, 물량으로 이슈를 키웠다. 추잡하고 천박한 방식으로 괴롭혔고 그것을 즐기기까지 했다. 기소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기소했고,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수작을 부렸고 위법임을 만들기 위해 부족한 증거와 논리를 왜곡하거나 연출해냈다.

 

언론은 조국 일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사소한 것이라도 기사화시켰다. 하루 종일 집앞에서 대기하며 그들의 인신에 제약을 가했고 어떤 기자는 짜장면을 시켜먹었는지 짬뽕을 시켜먹었는지 웃으면서 물어보았다. 아주 즐거운 얼굴로. 그리고 이후 보답받았다.

 

 

검찰과 언론은 엘리트 카르텔의 일부분일 뿐이지만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그들이 담당하고 있는 영역이 강력한 영향력과 권력을 발휘하는 자리라는 것을 감안해도 그러하다. 그들은 검찰을 개혁하면 범죄자를 제대로 잡을 수 없다는 상투적인 주장부터 시작하여 특정 정권을 위한 검찰을 만들 것이라는 이미 스스로 해왔던 역사를 부정적으로 적용시키기도 했다.

 

검찰은 조국 일가를 수사하고 기소하여 검찰 개혁에 반대할 정당성을 확보했고, 검찰의 권위 아래 그것이 정당한 행위임을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실제 다룰 수 있는 권한을 통해 검찰 권력을 휘둘렀고 문 정부와 검찰개혁에 반대 입장에 있는 시민들과 조국이 부정부패한 쓰레기라고 인식하게 된 중도층을 통해 검찰개혁의 저항에 사회적 합의를 개혁 입장에 있는 이들의 것과 경쟁시켰다.

 

그렇게 검찰개혁은 고꾸라졌다.

 

그 당시 70~50%에 달하는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은 조국 정국을 겪으며 추락했고 그만큼 높았던 지지율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실패했다. 민주주의 국가가 대중의 지지와 합의에 의해 거의 모든 것이 결정될 수 있는 체제라는 걸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이고 두려워해야할 일이다. 국민이 요구하면 체제의 구성원은 그에 순응해야 한다. 그런 체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지지율에 저항했고, 끝끝내 반대하는 이들을 결집, 확대시키는데 성공하여 국민의 요구를 분열시켰다.

 

힘을 잃은 국민의 요구는 그렇게 실패했다. 사실, 이것은 문재인 정부의 실책이기도 하다. 국정을 운영하고 통치를 하며, 명령을 집행하는데 필요한 대단한 권력이 있었다. 그들은 국민의 지지 및 요구에 무관하게 많은 수단을 동원하여 검찰개혁에 진전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약점을 가진 이들은 어디에나 있듯, 조국의 예시와 같이 털어서 안 나오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인적 구성원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특별히 문재인 정부가 타락한 인석 구성원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현실적 약점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권한과 결정권이 검찰이 독점하고 있었고, 그들은 문재인 정부에 협조하지 않는 집단이었다. 단지 그 뿐이었다. 보수 정부가 문재인 정부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구성을 하고 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50~70%에 달하는 지지율을 오랫동안 유지해온 정부였으나 원하는 개혁을 많이 성공하진 못한 편이었다. 핵심 과제 중 하나였던 검찰개혁은 예시이자 대표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30% 안팍의 낮은 지지율로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행하고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민주주의의 원칙(지지율로 대표되는 민의)에 충실했기 때문이고, 그 충실이 지나쳤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현실이 보여주듯, 문재인 정부는 지지율을 무시하고 원하는 것을 집행할 권력이 있었을 것이다. 저항받더라도, 누군가 반격에 죽어나가더라도 말이다.

 

 

검찰개혁의 실패는 이후 그러한 시도가 불가능하거나 극히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례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 0.1%에 속하는 능력자들이 똘똘 뭉쳐 자신의 권력과 영향력을 발휘한다면 어디까지 저항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것이고, 검찰은 이번에도 선거를 통해 선출된 행정부에게서 승리를 거두었다.

 

엘리트 카르텔의 강력한 힘은 개혁만으로 어렵다. 70%에 달하는 지지율조차도 그들이 다루는 권력과 권한 앞에서 무력화됐다. 민주주의의 실패로도 읽을 수 있을 법한 사건이다. 앞으로 어떤 정권이 얼마만큼의 지지율을 가지고 엘리트 카르텔에 대한 개혁을 시도하든 그들의 강력한 집단적 저항과 반발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라는 전례가 되었고, 그것은 상당히 합리적인 추정이 될 것이다.

 

 

대체로 개혁은 시민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사상 개혁과 계몽은 지식인, 귀족과 같은 소수의 식자층과 계몽군주 같은 이들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시민은 개혁을 요구하고 조건을 정리할 정도로 배우지 못했고, 큰 흐름에 뭉칠 뿐이지 구체적으로 정리될 수 있는 세세한 목적으로 단결하기 어렵다.

 

서문표는 말했다.

 

"백성들이란 일이 이루어지고 나면 즐거워할 수 있을 뿐이지 함께 일을 시작할 생각은 하지 못한다. 지금의 백성들은 비록 나를 증오하겠지만 100년 뒤 그들의 자손은 내 말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시민은 개혁하기 어렵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요구할 때 집행할 수 있는 것 역시 그러한 지성과 능력을 지닌 소수의 엘리트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민주주의 국가의 경우 그것은 행정부와 의회가 될 것이다. 민의를 반영하여 통치하는 집단이다.

 

무엇이 얼마만큼 잘못되었고, 그걸을 어디까지 어떻게 고쳐야하는가? 이는 수술에 비유되어도 좋을 정도로 정밀함을 요구한다. 시민은 단일한 집단이 아니고 지적으로 우월한 집단이 될 수도 없다. 어떤 주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느껴도 그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할 지성과 통찰이 부족하다. 심지어 그것을 다룰 윤리의식조차 보장할 수 없다. 민중의 손에 이루어졌던 혁명에서 지성과 통찰, 윤리의식을 느낄 수 있는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은 물리적 산사태와 같은 혁명이 된 것이다.

 

따라서 시민은 개혁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개혁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시민 스스로는 개혁이 아니라 혁명만 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계몽운동이 식자와 엘리트, 계몽군주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다시금 떠올려보자.

 

 

그런데 엘리트 카르텔에게서 우리는 그러한 존재를 기대할 수 있는가? 사법 카르텔에서 그럴 수 있을까? 언론 카르텔에서는? 의료 카르텔에서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검찰이라는 사법 카르텔은 언론 카르텔과 손잡고 개혁자에 대한 칼을 휘둘렀고 그 칼은 너무나도 위험한 것이었다. 한 사람은 물론 한 집안의 사회적, 정치적 생명을 완전히 끊어내어 수년, 어쩌면 평생을 고통 속에 가두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선 스스로 칼을 잡고 가해자를 몰살시키거나 아니면 해외로 도망가서 새 삶을 꾸리는 것 외에는 없다. 후자의 경우 그들이 자살하지 않는 한에서 검찰은 조국 일가에게 의도했던 승리를 마무리한 것이다.

 

검찰의 저항은 자신에 대한 언터쳐블한 접근을 요구하는 것과 동시에 그것을 시도하는 자에 대한 강력한 반발과 보복이 예고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조국 일가는 본보기였다.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잔혹했고, 그 의미는 제2의 조국이 등장한다면 이렇게 될 것이라는 교훈을 남기려는 것이다. 죄인을 처벌하여 목을 거리에 효수하듯이. 그러한 경고를 알아들을 수 있는 자들은 감히 검찰을 개혁하겠다고 할 수 없을 것이고, 검찰 내부 인원의 배신을 사전에 차단하는 일이 된다. 살인의 가담자들은 소속감과 연대감을 느낀다. 같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승리의 주역자들 역시 그러한 소속감과 연대감, 성취감을 공유한다.

 

 

그러한 이유로 엘리트 카르텔의 기득권에 위협이 되는 이들은 강력한 반발 아래 제거될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싹을 밟고 뿌리 뽑으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엘리트 카르텔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그들이 한 사회를 지배하게 놔두어야 하는가? 국민들은 그들을 위해 부역하고 세금을 바쳐 주머니를 불리게 하고 하백의 신부로 간택되어야 하는가?

 

남은 선택지는 혁명 뿐일 수밖에 없다. 개혁에 불씨를 당기고 집행할 지도자가 없는 것을 어떡하란 말인가. 엘리트 카르텔에 의해 개혁이라는 선택지가 살해되었다면 남은 선택지가 혁명 뿐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게 문제다. 앞서 말했듯이, 혁명은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고 그 과정에서 탈락하는 피해자들이 발생한다. 그러한 비용을 누가 지불할 것이고, 탈락하는 자들은 누가 될 것인가? 엘리트 카르텔의 구성원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비용 대부분은 가장 가진 게 없는 이들이 된다. 가장 많이 탈락하는 자 역시 가진 게 없는 순서로 이루어질 것이다.

 

 

난 혁명을 긍정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호오의 문제일 뿐이고, 내 현실의 삶에서 발생하는 피해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혁명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니다. 혁명은 없는 것이 좋고 개혁으로 해결되는 것이 좋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혁명을 해야할 수밖에 없다. 피해와 손실을 두려워 혁명조차도 반대할 정도로 무책임하지 않을 뿐이다.

 

 

업의 무당과 관리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공유하기 위해 하백의 신부를 뽑았다. 그들의 부정부패는 업 땅의 자원을 끝없이 빨아들이고 소모하게 만들었다. 그 상태가 변하지 않는다면 업 땅은 지속 가능한 체제가 될 수 없기에 필연적으로 멸망할 것이다.

 

서문표는 무당과 관리를 물 속에 집어넣어 죽임으로써 부정부패한 무리과 구조를 한꺼번에 일소했다. 그전까지 업땅의 백성들은 그들에게 저항할 수 없었다. 그들은 혁명을 하지 않았지만 서문표는 체제와 구조를 뒤엎어버리며 혼자서 혁명을 성공시켰다. 그럼에도 백성들은 그들의 이익을 위한 노동에 참여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우둔해서 였을까, 아니면 무당과 관리가 지배하던 체제에 순응한 결과 자신을 희생하여 스스로와 공공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을 거부하려는 습관이 베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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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논리는 제나름의 근거와 합리성을 지니고 있고, 그 나름의 설득력 역시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그 사회가 추구하는 표현의 자유와 그것이 용인될 수 있는 한계에 대한 기준의 차이일 겁니다.

 

전 이 두 입장이 모두 맞다고 생각합니다. 표현의 자유를 명분으로 남의 자유를 침해해서도 안 되고 남을 공격하는 것도 좋지 않죠. 하지만 그렇다고 강제로 금지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표현의 자유가 잘 보장된 나머지 그것 남용하고 악용하며 자신의 반사회적이고 윤리, 도덕에 반하는 가치관의 표현을 반복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고, 이런 경우 사회적 공해가 되어 듣기 싫지만 쫓아낼 수 없는 불편이 발생할 수 있죠. 누구도 커뮤니티의 어그로꾼이 열심히 활동하는 걸 바라지 않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표현에 대한 사회적 논란에 의해 금기 내지는 낙인이 찍혀 특정 표현이 금지되어 제재를 받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거나 납득이 발생했다고는 해도, 표현의 범위가 좁아진 것은 사실이고, 그와 유사한 경우가 반복될 경우 전례에 따라 같은 원칙이 적용되므로, 그러한 제한, 제재가 반복되어 표현의 폭이 계속 줄어들 것입니다.

 

 

전 이에 대한 기준이 그 사회의 도덕적 기준이 잘 작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히는, 반사회적이고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표현을 했을 때, 좀 더 쉽게 말하자면 누구라도 욕할 만한 개소리를 했을 때 대중에 의한 사회적 제재가 가해지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제한하고 얼마만큼 보장할 것인가가 갈려야 한다고 봐요.

 

미국을 예시로 들어보자면, 9.11에 대한 고인모독과 조롱은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장됩니다. 다만 어그로꾼에 대한 공격 역시도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장이 되죠. 개소리를 하고 혐오 표현을 해도 사람들이 그 표현에 대해 마찬가지로 욕할 자유 역시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 아래 대중들은 적극적으로 반사회적인 표현, 혐오 표현에 대한 민감하고 공격적인 반응을 보여주며 그러한 이들이 욕 먹을 소리를 했을 때 물 밑으로 가라앉게 해버리죠. 공개적으로 9.11에 대한 망언을 했다면 미국 사회는 그를 쉽게 용인하지 않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죄를 짓거나 혐오스러운 표현을 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며 그에게 사회적 패널티를 가할 것이고 공개적으로 이슈가 된다면 시장이나 경찰서장 같은 이들이 기자들 앞에서 우리 지역 사회의 부끄러움이라 비판하겠죠.

 

이는 도덕적 기준이 보편적으로 자리잡혀 있고 그것이 보편적 정의나 윤리의 기준에 더 가까울 때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물론 이들의 대중적 차원의 사회적 제재가 정의로운가에 대해서는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지탄이 발생할 때 한국이나 일본 같은 곳에선 쉽게 마녀사냥, 인민재판, 사적제재라 거품을 물고 비판할 사람들이 있을 거고요.

 

그러나 전 욕 먹을 짓을 했다면 욕을 먹는 건 당연하다는 상식에 따라 당연히 뒤따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긴 합니다. 정의롭고 아니고를 떠나서요.

 

미국과 같은 표현의 자유가 크게 보장된 사회에선 시민의 비난 역시도 표현의 자유로 인정되는만큼 비판 받을 행위를 한 사람은 대중에 의해 제재를 받습니다. 그렇게 비윤리적인 개인이나 집단, 혐오 집단의 준동을 억눌러왔던 것이고 도덕적 기준을 지켜올 수 있었으며 그렇게 도덕적 기준을 재확인해오기도 했죠.

 

물론 그게 그렇게까지 성공적이었다면 현 미국 사회와 정치가 더 나빠지지도 않았을 겁니다. 언제나 사람들은 경제, 사회적인 이유로 환경이 변하면 그에 맞게 반응해왔고 도덕적 기준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에 60년대 호황기에도 흑인들은 차별받고 린치 당하며 살해됐고 여성들 역시 남성에 비해 열등한 존재로 여겨지기 쉽상이었습니다.

 

따라서 도덕적 기준이 변하면 당연히 대중적 차원의 혐오분자에 대한 제재 역시 약해지거나 무감각해지게 되겠죠. 이민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2000년대 초반에 비해 2010년대 이후 훨씬 커졌던 것처럼요.

 

 

반대로 법적인 제재를 통해 특정 표현에 대한 구체적인 제재가 공권력에 의해 이루어져야할 필요는 그러한 상황이 심각해진, 혹은 위태로운 사회에서 발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필요가 있을 경우 그러한 힘이 작동해야 할 수도 있다고요.

 

한국 사회도 반사회적 행위자에 대한 국민적 지탄은 어렵지 않게 발생했던 시절이 있고 지금도 그 관성이 어느 정도 남아 있습니다. 누군가 사회적 비판을 받을 일을 했다면 온 국민이 그놈 나쁜놈이라며 욕하고 손가락질 했죠. 그 행위를 부끄럽게 여기고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는 보편적 도덕 기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단지 시대적, 의식적 한계로 인해 그 수준이나 지탄의 방식이 현 시대의 것을 기준으로 하면 다소 미개해 보이거나 과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적용되고, 그것을 어떻게 쓸지도 개인의 판단에 따릅니다. 따라서 양식 있고 도덕적인 사람이라면 최대한의 자유가 주어져도 할 말과 못 할말을 구분하고, 할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을 구분하여 도덕적인 삶을 살아가려 노력할 겁니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고 그들은 자신의 자유가 보장하는만큼 난장을 피워도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그러한 행위에 대한 제재에 반발한다는 겁니다.

 

대중이 이들의 존재를 용인하지 않고 그들의 난장을 반대한다면 사회적 지탄과 대중적 차원의 비판으로 그들을 수면 아래로 내려보내 사회의 도덕적 기준을 후퇴시키거나 도전을 꺽어버리겠죠. 그러나 그렇지 않게 되는 경우, 혐오가 충분히 제재받지 않아 수면 위로 조금씩 올라오고, 그 규모를 키워가게 되어 누군가 혐오 표현을 했다고 해도 그에 대한 비판과 제재를 가하려는 측의 힘이 충분히 발휘되지 않거나, 오히려 역으로 혐오세력에게 제압, 혹은 무력화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혐오 세력이 수면 위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그 규모를 키워갈수록 혐오자들이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반사회적, 비윤리적 표현을 반복할 때 파편화되고 상대적 소수에 불과했던 이들이 대중의 반발에 의해 어렵지 않게 제압되었던 것에 반해 이들은 그러한 반발에 대응하게 됩니다.

 

표현의 자유는 누구든 보장되고 내 자유를 억압하지 말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런 이유로 혐오 받는 건 당연하다거나, 유사해보이지만 구분될 수 있는 사례를 가져와 동일한 것이라며 자신의 혐오 표현을 정당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다 무시하고 걍 내 맘대로 할 거라며 조롱하는 경우 역시 충분히 많죠.

 

이러한 이들이 규모를 키워갈수록 기존 어그로꾼, 혐오자들에 대한 제재를 근거했던 사회적 도덕 기준은 낮아지게 될 거고 덜 도덕적이게 됩니다. 저소득 흑인이 경찰에 의해 살해된 사건이 논란이 되었을 때, 이전이라면 약자의 죽음, 혹은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희생 등 다양한 이유로 그들을 추모하고 경찰을 비난하거나 책임을 요구했을 것을 현 시대엔 범죄나 저지르는 깜둥이의 죽음에 환호하거나 조롱하죠. 최소한 그들의 죽음에 무감각하여 그들이 어떤 취급을 받고 어떤 비난을 받는지에 대해서도 관계되고 싶어하지 않는 경우 역시 많아졌습니다.

 

혐오 세력은 점점 그 규모를 키워가며 그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더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어갈 것이고, 그들에 대척점에 있는 이들의 세력은 점점 줄어들어 사회 보편적 도덕 기준의 후퇴를 겪어야할 것입니다. 혐오 세력의 표현들은 쓰레기 같을 지언정, 다양한 이유로 그것에 호응하는 이들은 많습니다.

 

호응하는 이들의 가치관이 상대적으로 더 맛이 갔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과 공감할 법한 주장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죠. 나치가 시민들에게 지지를 받았던 이유는 나치가 얼마나 미친놈들인지 몰랐기 때문이기 이전에 그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줬기 때문입니다. 트럼프가 미국 민중들에게 지지를 받는 이유 역시 듣고 싶은 말을 해주고, 그걸 얼마간 실천해주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의 말과 행동은 옳고 그름을 떠나 지지와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었죠.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세력이 성장하고 더 강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전에 그들의 근간을 공격하거나, 지엽적으로 혐오 표현에 대한 법적인 제재를 가하는 것으로 그들에게 제재를 가할 수 있습니다. 이는 대중의 사회적 제재, 지탄이 힘을 발휘할 수 없어 혐오 세력을 충분히 수면 아래로 잠재우지 못했기 때문이며, 사회적 도덕 기준을 지켜내기 위해서 발동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당연히 지향되어야할 이점이지만 그것이 더 선한 사람보다 더 악한 이들에게 큰 힘을 주고 그들의 성장에 자양분이 되는 근거가 된다면 어느 정도 제한되어서 얻을 사회적 이익이 더 클 수 있습니다.

 

물론 모두의 표현의 범위가 조금씩 후퇴하고 제약되는 건 사실입니다. 부당한 피해자나 억울한 제재가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 혐오 세력에 비해 조금이라도 더 도덕적이고 양식 있는 사람의 경우 스스로의 자유를 남용하지 않고 정도를 지키려 할 것이기에 혐오 표현에 의해 피해를 볼 지점은 혐오 세력이 비해 훨씬 적습니다.

 

혐오 세력에게는 그들의 내부적 핵심 원리와 동력원이 법적 제재로 인해 적출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대중의 경우 더 혐오 세력에 가까운 성향을 가진 이들은 얼마간 피해를 보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록 아무 피해 없이 자신의 정신건강을 해롭게 하는 외부적 공해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될 겁니다.

 

 

그러나 역시 이러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은 모두가 우려하는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죠. 표현의 자유가 한번 후퇴하면 다른 경계선적 표현에 대해서도 논란이 발생할 수 있고, 저건 되고 이건 안 되느냐는 지적에 다시 한번 후퇴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표현의 제약이든, 기존 제약했던 영역의 석방이 될 수도 있겠죠. 또한 언제까지, 어디까지 제재하고 제약하는지에 대해서도 정해야 합니다. 사회적 합의는 혐오세력의 규모만큼 치열하고 지리할 것이고요.

 

무엇보다 그러한 기준을 마련해야할 정치인이 누구의 손을 드느냐에 따라서도 결정이 갈리게 될 것입니다.

 

더불어 그러한 표현의 제약이 발생했을 때 그것은 결코 영구적이고 항구적인 법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이유는 혐오 세력의 성장과 보편화를 막기 위한 것이고, 그러한 임무가 충실히 성과를 보았을 때 제약은 유연하게 후퇴할 줄 알아야 합니다. 더 이상 그러한 제약이 필요치 않다거나 그 제약의 범위와 정도를 축소시키는 쪽으로요.

 

 

이런 이유로 전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와 표현의 제약이 발생하더라도 처벌하는 사회는 그 사회의 도덕적 기준이 얼마나 잘 작동하고, 혐오 세력에 대한 사회적 제재가 잘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사회적 제재가 반드시 정의롭거나 올바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그 사회가 가진 도덕적 기준과 상식에 대한 증명이자 확인이기 때문에 마녀사냥, 인민재판이라는 비판으로 일축할만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욕먹을 짓을 했다면 당연히 욕을 먹는 건 당연한 겁니다. 잘못을 했는데 마녀사냥이라고, 인민재판이라고 그 입을 다물거나 공격을 금지시키는 것 역시 대중이 향유하는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행위이고요.

 

혐오 세력은 혐오를 동력으로 성장하고 그 성장은 외부 자원을 받아들여 이루어집니다. 대중에 의해 제재받지 않고 억눌려지지 않거나 그러한 사회적 제재를 금지하여 그들을 방치할수록 혐오 세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혐오 세력이 대중에 의해 무력화되지 않는 사회일수록 제약을 감수하고서라도 법적으로 제재하는 건 필요한 선택지로 고려됨에 마땅합니다. 할 수 있느냐와 별개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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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취순수逆取順守. 
그른 짓으로 천하를 빼앗아, 바른 도리로 지키는 것.

-사기史記

 

상나라의 탕왕과 주나라의 무왕은 본래의 임금을 몰아내고 상과 주를 건국했다. 조선의 태조는 전조 고려의 명을 받고 요동을 공격하러 갔으나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역으로 고려의 우왕에게서 나라를 빼았았다. 탕왕과 무왕은 걸주라 불렸던 걸왕과 주왕을 몰아내어 도를 바로 세웠고 이성계 역시 난세에 무리한 전쟁을 벌이려는 우왕에게 칼을 돌렸다.

 

이것은 나라를 멸하여 기존의 질서를 뒤집어 부당하게 정권을 획득한 것이고, 천하를 찬탈한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이들은 인의의 정치를 펼쳐 나라를 지켰고 기존 정치의 고약함을 바로잡았다. 또한 자신은 이신벌군의 역을 행했음에도 남들에겐 불사이군의 충절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들의 정치는 인의의 정치였고, 도리로 다스렸기에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피렌체 공화국의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The end justifies the means)고 말했다. 그는 목적을 달성할 수만 있다면 과정의 부정함이야 충분히 덮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수많은 이들이 부정한 방식으로 성공만 하면 얻을 것이 더 크다는 계산하에 부정한 방식을 사용한다.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약간의 비도덕적 행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그것을 지켰을 때보다 더 많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이들은 적지 않다. 그러한 이들이 도덕적 선택보다 이익을 더 추구할수록, 그 정도가 더 심할수록 그 사회는 비도덕적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정말 마키아벨리의 어록이 맞는 말일까? 난 그것이 일차원적인 명제라고 생각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했지만, 목적이 달라지면 수단 역시 달라지는 법이고, 목적을 정당화하기 위해 수많은 성과와 업적을 탐하려 한다.

 

걸주를 몰아낸 왕들은 인의의 도리를 세우는 것으로 목적을 정당화했다. 그들의 목적이 순수하게 폭군을 몰아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선하고 아름다운 의지의 발로라고 할 수 있을까? 통치의 정당성을 위해 그들은 업적을 필요로 했고, 이건 어떤 시대든 다를 게 없었다.

 

제3공화국의 박정희는 독재의 정당성을 위해 성과와 업적을 필요로 했고, 제4공화국의 전두환 역시 그러했다. 국풍81은 그러한 맥락에서 연출된 행사였다는 걸 생각해보자.

 

"통치자가 최고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면 도덕적인 것이 항상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군주가 국가를 유지하려 한다면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진실과 자비, 인간애와 종교에 반하여 행동할 필요가 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에게 도덕과 정치는 분리되는 것이었고, 역취순수는 그 둘을 분리될 수 있는 것이되, 필수불가분의 관계로 바라본다.

 

승리는 많은 것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승리하기 위해 다소간의 비도덕적 행위는 용납될 수 있는 것이다. 소열제 유비는 작은 선이라 하여 아니 행하지 말 것이며, 작은 악이라 하여 행하지 말라 하였지만, 그 역시 유장을 배신하고 서촉 땅을 얻어냈다. 인의의 유비라지만 배신을 통해 거대한 이익을 얻어낸 것이다.

 

반대로 조조는 서주에서 대학살을 벌였고 평생토록 약점이 되었다. 서주 사람들은 조조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겼고, 제갈량 역시 조조의 대학살 때문에 결국 유비에게 갔다는 해석도 있다. 조조가 중원을 통일하고 도리로 다스리려 한들 서주 사람들은 받아들이려 했을까? 어쩌면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끝까지 반란의 근거지가 되었을 수도 있다.

 

 

마키아벨리의 어록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행위도 해도 할 수 있음을 말하지만, 실제로 목적은 달라진다. 얻기 위함과 그것을 취한 뒤 지키는 것은 서로 다르지 않은가. 얻고자 한다면 후과를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지키고자 한다면 과정은 두고두고 자신의 약점이 될 것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쿠데타는 민주적 정통성이 부족하기에 정권 내내 민주화 운동이라는 반발을 맞이해야 했듯이.

 

물론 그들이 도리로 다스렸느냐 하면 절대 아니라고 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은 어떠할까?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대선과 이후에도 불법적인 방식으로 유리함을 획득했고 그 결과 정권을 얻었고 그것을 지켜내는게 사용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내에서 역취逆取했다고 하나 순수順守했다면 어땠을지 몰라도, 그들은 여전히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국민이 아닌 엘리트 카르텔과 거대자본에 친화적인 정치를 했다.

 

그리고 그저 운 나쁘게, 그러나 충분히 당연한 이유로 박근혜 정권은 탄핵이라는 결과로 돌아왔고 이명박 역시 감옥에 가게 됐다. 누군가는 그들의 정치를 올바르다 말할 것이고 정당하고 훌륭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 체제, 혹은 이념 내에서 이득을 보거나 그 이념에 동의하는 이들이기 때문이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객관적으로 그들이 왜 틀렸는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그들은 법을 어겼고, 사적으로 공적자금과 권력을 유린했다. 결정적으로, 그것을 들켰다.

 

 

윤석열은 민주화 이후 가장 특이한 케이스로 꼽힐 것이다. 삼당합당의 김영삼이나 역전극의 노무현, 탄핵 수혜의 문재인의 케이스가 있을 수 있겠지만, 윤석열의 케이스와는 차별될 수밖에 없다.

 

먼저, 앞선 이들은 모두 정치인이었다. 정치활동을 했고 공과는 있겠지만 모두 걸출한 내력을 가지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정치인으로서 그들의 활동은 지지와 불호의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고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역시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은 그렇지 않다. 검찰총장을 했다 바로 대선에 나왔다. 그리고 불가사의하게 당선되었다. 그가 대통령이 될 정도의 무엇을 했기 때문이 아니고, 그가 무언가를 매우 잘했기 때문이 아니며, 통치나 외교를 잘 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은 것도 아니다. 그저 문재인과 이재명이 싫었기 때문이고 그들을 잡아넣길 바라는 일차원적이고 악의에 찬 기대 하나 때문이었다.

 

심지어 지지한 자들 역시도 윤석열에 거는 기대는 딱 그 뿐이었고 정치나 외교에 있어 특출난 능력을 발휘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어차피 대통령은 가만히 있고 전문가에게 맡기면 된다는 허황된 망상이었다. 지금 그러고 있는가?

 

 

윤석열은 정치인이 아니고, 대통령으로서의 자각 역시 부족하다. 그는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고 뭘 해야하는지 모르고 있다. 그냥 주어지는 것에 원래 하던데로 자기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습관적인 태도와 움직임일 뿐이지 기본적인 것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대통령 직위에 있는 것이다.

 

그의 주변인은 그런 뭘 모르는 대통령 옆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천공을 대통령을 조종하고 있고 김건희는 자신의 과거를 덮을 품위 있고 고귀한 이미지를 만들어 명예를 창작하고 있다. 장제원 같은 이들이나 대통령실 직원들 역시 대통령을 등에 업고 자신의 권력에 취해 있으며, 그 권력을 이용해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당연히 그들은 자리에 어울리는 능력과 품위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역취순수를 하려는 것은 한동훈 장관인데, 계속해서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 특기할만하다. 윤석열은 여전히 정치인이라고 하기 어렵고, 그나마 정치적 감각이 있는 한동훈은 성과를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얻는 건 별로 없었지만 미국에도 가봤고 이민청을 만들거나 마약수사를 통해 공을 얻어내려고도 했다.

 

 

이태원 참사는 마약수사라는 거대한 쇼를 통해 커다란 업적을 만들어내려는 한동훈 장관의 계획이었을 것이다. 그는 부정하지만, 정황이 말해주는 현실은 다르다. 수많은 마약 사범을 현장에서 잡아내고, 스스로 그 현장에 나타나 미리 정보를 전달하여 대기시킨 기자들 앞에서 진두지휘하는 차기 대통령 후보이자 명실상부 소통령의 카리스마를 연출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계획은 이전까진 했지만, 그들은 하지 않았던 조치로 인해 무산되고 말았다. 경찰이 본래 해야했던 일을 하지 않고, 권력자의 명령대로 지시받은 임무를 하면서 참사는 시작됐다. 경찰이 현장에서 지시하고 통제해야했던 일을 하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좁은 골목에서 압사된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많은 면에서 공격받고 있다. 30%의 콘크리트 좀비들은 신실한 신앙의 발로로 무제한적 지지를 보내오고 엘리트 카르텔은 한 식구로서 그들에게 도전하지 않으며(애초에 한 몸이기에 그것은 자해일 것이다.) 언론은 그들과 야합하며 어떻게든 윤석열 정권에 부역하는 애완동물 역할에 충실하지만 너무나도 한심한 정치와 언행은 비판을 스스로 만들어주는 꼴이고, 비전과 미래는커녕 아무 것도 없이 그저 반문, 반이재명, 반민주당만으로 당선된 정권답게 민주적 정당성은 그저 선거에서 이겼다는 절차적 요소 하나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권은, 정확히 윤석열 대통령 본인은 그것을 반전시키려 노력하지 않는다. 어차피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공을 세워 통치의 정당성을 형성하려 하지도 않고 국민적 지지를 받기 위해 성과를 보일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거나 검찰이 칼날을 자신에게 돌려 수사하겠다고 하지 않을 걸 알기 때문이다.

 

또한 보수진영의 정체성을 지닌 사람답게 약자의 반발은 도전으로 인식하고 용납하지 않는다. 이번 화물연대의 파업을 다룬 대통령의 입장과 태도는 그저 밟아놓을 건방진 것들이었다.

 

공약했던 것들을 지키지 않고 작은 정부를 주창하며 복지와 지원을 줄이고 있으며 특히 2030에게 각별한 지지를 받았던 이준석은 내쳐졌다. 이준석의 역할은 그저 2030 보수들을 결집시킬 도구에 불과했고, 2030 이준석 지지자들은 이준석의 이미지에 이입하여 정신적 자위를 했을 뿐이다. 그의 역할이 다했을 때 윤석열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거나 비판적으로 돌아온 이들이 얼마였을까.

 

 

혐오와 반대만으로 지지를 받았고 정권을 얻었다. 어떤 성과나 능력을 보여준 게 아니다. 증명된 적도 없고, 당선 이후로 무능만 증명되고 있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역취는 명백히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부정이었다. 그들은 독재를 실시했고 정당성 없는 정권이기에 국민들에게 도전받았다. 박정희는 김재규에 의해 암살 되었지만 전두환은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하지 못한 결과 6월 혁명으로 돌아왔다.

 

현대 민주주의는 쿠데타와 같은 방식으로 찬탈되지 않는다. 대신 민주적 방식으로 그것을 찬탈한다. 제도적으로 가능하지만, 그것의 목적이 민주성을 줄이거나, 아예 민주적 규범을 파괴하는 제도를 합법적으로 만든다. 제도와 권한 내에서 특정 정당이나 정권이 유리하게 환경을 조성하고 인물을 임명시킬 수 있다. 원래 있었던 절차를 없애거나 줄이거나 새로 만들 수도 있다.

 

미 공화당이 새로운 민주당 주지사의 권한을 빼앗기 위해 주지사 임명을 인준하는 권한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현직 공화당 주지사에게 임시직을 영구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으며, 주 선거위원회를 개편하여 선거구 조정, 유권자 등록, 신분확인 요건, 투표 시간과 투표소 배치 등 주 선거의 모든 규칙을 담당하게 만들었고, 당시 선거 위원회는 공화당이 과반을 차지하는 데 기여한 현직 공화당 주지사였던 매크로리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주어진 권한은 모두 합법적이었고, 제도적 틀 안에서 이루어졌지만 정치 경쟁자를 최대한 불구로 만들기 위한 것들이었으며, 그것이 대중의 일반의지라고 할 수도 없었다. 국가와 사회의 진보를 목적으로 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것은 민주적이지 않았다. 소수의 정치집단이 권력을 얻고 유지하며, 경쟁자에게선 그렇지 못하도록 한 수작이었을 뿐이다.

 

 

윤석열이 당선된 이유가 혐오와 반대, 엘리트와 언론들의 절대적 조력이라는,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반민주적인 방법론 내지는 수단이었기에 이를 역취逆取라 한다면, 현 정권은 순수順守하고 있는가? 성과를 내는 것도 아니고, 어떤 업적을 쌓고 있지도 않는다. 정치 경쟁자를 몰락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고, 국가적 이익과 안보 영역 역시도 희생하고 있다. 없는 죄를 만들려는 의혹을 받고 있고 검찰 권력에 도전한 이들을 본보기 삼아 잔혹하게 짓밟고 있으며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고 국정을 문란케 하고 있으며, 유무능이 아닌 친분과 이익관계만으로 인선을 세우고 있다.

 

협상과 대화보다는 명령과 권위만으로 일을 처리하고자 하고 도전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무제한적이고 무자비한 보복을 감행하고 있으며, 화물연대와 같은 노조들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망언을 하며 실천한다.

 

지지율 30%가 말해주는 바는 명확하다. 콘크리트 좀비들을 제외하면 국민의 절대다수가 윤석열 정권이 잘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고, 그의 방향성과 행위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제선왕은 탕왕이 걸왕을 몰아내고 무왕이 주를 정벌했다는 것을 두고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는 것이 옳은가 물었다. 이에 대해 맹자는 인을 해치는 자는 남을 해치는 사람이고, 의를 해치는 자는 잔인한 사람이라고 했으니, 남을 해치고 잔인하게 구는 자는 인심을 잃어 고입된 자이기에 인심을 잃고 고립된 사람인 주를 처형했다는 말은 들었어도 군주를 시해했다는 말은 들은 적 없다 답했다.

 

맹자는 그렇게 역성혁명을 긍정했다.

 

그러나 윤석열이 탄핵당할 수 있나? 여전히 난 부정적이다. 그가 법을 어기고 그것이 증명되어야 가능하며, 그 이전에 국회에서 소추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럴 수 있을까? 박근혜-최순실의 사례는 윤석열 정권의 반면교사가 되어 구체적 범죄를 들키지 않으려 할 것이고 검찰은 검찰 공화국을 만들어준 윤석열에게 칼날을 휘두르지 않을 것이다. 엘리트 카르텔에서 검찰은, 그리고 검찰 출신 대통령의 위치와 역할은 결코 작지 않다.

 

국회는 어떠할 것인가? 소추가 가능할 것인가? 언론은 윤석열 정권의 흠결을 어떻게 마사지하고 사실을 공작해낼 것인가?

 

대한민국은 어찌됐든 법치로 작동하고, 법률에 근거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집행하고 결정하는 것은 사람이다. 밝혀지지 않은 사실은 증거로 쓸 수 없고 윤석열 정권이 범죄를 저질러도 그것이 밝혀지지 않거나, 왜곡된다면 입증할 수 없다. 그들을 수사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 역시 사람이고, 제도적 허점과 한계를 이용하여 수사를 막거나 방해할 수 있다. 수사관이 제대로 증거를 수집하지 않거나, 수집된 증거를 취사선택하여 제출한다면 법률적으로 범죄가 아니게끔 만들 수 있다. 재판 결과 무혐의나 무죄, 혹은 아주 작은 처벌만 선고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역취순수하지 않는다하여 물리적으로, 법률적으로 윤 정부를 강제로 끌어내리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기조가 지속된다면 다음 선거 때 국민은 어떠한 선택을 내릴지 기대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국민이 윤석열 정권을 거부하는 것이지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진보좌파를 긍정한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건, 비도덕적 통치를 지속하는 사회는 망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가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난세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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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화면에서 파일을 간단히 업로드할 수 있는데, 일단 저기에 올려야할 파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FBX 파일(혹은 유사한 포맷의 파일)

Max 파일(혹은 유사한 포맷의 파일)

텍스쳐 파일(혹은 텍스쳐를 모아놓은 압축 파일이나 PSD 파일)

스크린샷.

 

여기에 마모셋 파일이나 섭스턴스 페인터 파일, 지브러쉬 파일 등 대부분의 그래픽 관련 파일들은 다 업로드 가능합니다.

 

 

그럼 위와 같이 뜰텐데, 특별히 건드려줘야할 건 별로 없습니다. 맥스 파일의 경우 버전 정도를 써주면 됩니다. 썸네일은 올린 스크린샷 파일 중 하나를 선택해주면 됩니다. 가급적 스샷 파일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습니다. 사이트에서 제안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유튜브 영상이나 비메오, 마모셋 프리뷰가 있다면 올릴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링크로 올릴 수 있는데, 마모셋의 경우 파일을 올리는 방식입니다.

 

 

 

간단한 것이지만 좀 불편한 점은, 타이틀에 영어 이외에 다른 문자를 써선 안 된다는 겁니다. 단, 제가 하이픈 "-" 정도까진 됩니다.

 

참고로 다른 사이트 링크는 막혀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스캐치팹과 같은 다른 사이트 링크를 올리는 것도 제한되어 있고요.

 

 

될 수 있으면 정확하고 엄밀하게 작성하는 게 좋고요. 자동차 엔진 대신 빈티지 V8처럼.

 

 

그냥 필요한 정보 선택해주면 됩니다. 제가 올리는 대부분의 작업물은 Textures, Low-poly, PBR, UVW mapping 정도고, 여기서 로우 폴리 정도만 들어가거나 빠지거나 정도고요.

 

맵핑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언랩핑 항목에서 오버랩핑(UV를 겹친 경우)를 선택하거나 아예 피지 않았다면 No를 써야 합니다. 지오메트리도 대부분 폴리곤 매쉬일텐데, 넙스나 서브디비전-레디 등 선택 가능합니다.

 

폴리곤 수나 버텍스 숫자는 굳이 안 넣어도 되는데, 가급적 정보는 많을 수록 좋죠.

 

 

카테고리는 스캐치팹과 좀 달라서 막상 올리려고 봤는데 해당되지 카테고리가 없을 수 있습니다. 모르겠으면 그냥 Varius 선택해주면 됩니다.

 

 

역시 스캐치팹과 다르게 가격은 2달러가 최하인데, 이 밑으로는 내려가지 않습니다. 원한다면 Share for free 항목을 체크해줘서 무료로 올릴 수도 있습니다.

 

라이센스는 굳이 건드릴 게 없다면 그냥 로얄티 프리 정도로 해줘도 무방합니다.

 

 

그렇게 다 올렸으면 퍼블리싱 스코어가 뜨는데, 당연히 점수가 높을 수록 좋습니다. 이건 높은 편은 아니고요. 타이틀이나 설명의 길이, 올린 스크린샷의 개수 등으로 점수가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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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캐치팹에 FBX 등 3D포맷의 파일을 올리면 이런 화면이 뜹니다. 여기서 다른 건 건드릴 거 없고 왼쪽의 에디트 3D 세팅에 들어가는 게 먼저입니다. 타이틀이나 설명, 태그 같은 건 3D 세팅이 다 끝난 뒤 작성해야 하는데, 저 상태로 먼저 내용을 작성하고 세팅으로 들어가면 나중에 세팅이 끝난 뒤 나왔을 때 작성한 내용 다 날아갑니다.

 

오른쪽에 Download라고 쓰여있는 곳은 어떻게 공개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건데, No로 하면 볼 수는 있지만 다운받거나 구매하는 건 불가능하고, Free로 하면 무료로 다운로드 가능하게 하는 겁니다. 자기 작업물을 타인이 무료로 다운받게 하려면 눌러주시고, 판매할 거라면 Store를 누른 뒤 가격을 설정하면 됩니다.

 

판매는 3.99달러 밑으로는 설정 불가능하고요.

 

 

 

들어오면 먼저 이런 화면이 나옵니다. 건드릴 건 왼쪽 탭에 있고요.

 

기본 탭은 이러한데, PBR로 할 것인지, 매트캡으로 할 것인지 정할 수 있습니다. PBR은 잘 알려진 물리 기반 렌더링이고 매트캡은 지브러쉬에서 볼 수 있는 메터리얼 설정과 비슷한 겁니다. 텍스쳐 없이 매트맵으로 보여주는데, 이는 메터리얼 탭에서 어떤 매트맵 설정으로 할 것인지 정할 수 있고요.

 

그 아래로는 Lit가 있고 Shadelessrk 가 있는데, Lit는 Light가 있는 거고, 빛이 있기 때문에 그림자도 있고 반사도 있습니다. 노멀도 당연히 나타나죠. 셰이드리스는 당연히 광원이나 반사 같은 게 없는 겁니다. 3Dsmax로 따지면 Flat Color 같은 거죠. 주로 손맵 작업물일 때 사용하는 설정입니다.

 

카메라에선 FOV를 조절할 수 있는데 별 다른 이유가 없다면 굳이 건드릴 게 없고, 아래의 와이어 프레임은 당연히 와이어 프레임을 보여줄 것인가, 와이어 프레임 색깔과 굵기는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를 정할 수 있습니다.

 

백그라운드는 당연히 화면 뒤쪽 배경색깔을 정하는 건데, 다음과 같은 설정이 있습니다.

 

본래 배경 뒤에 사진이 있는데 앰비언트 환경 설정을 끄면 아래 블러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0으로 누르면 배경 이미지 사진이 나오고 3일 때 가장 블러가 강하죠.

 

 

이미지 탭은 4가지 프리셋이 있습니다. 주로 어두운 배경들 위주인데, 계정을 업그레이드하면 개인이 원하는 백그라운드 이미지를 넣을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냥 배경색을 원하는 색으로 조절할 수 있는데, 전 개인적으로 대부분의 작업물 배경을 컬러에서 검은 색 위주로 세팅합니다. 그게 작업물을 보기에 더 좋더군요. 

 

 

바로 옆의 탭은 라이팅 탭입니다.

 

여기에서 기본적으로 Off 되어 있는 라이트를 켜주면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당연히 위치나 세기 정도를 조절할 수도 있고, 더 많은 라이트를 추가할 수도 있습니다. 조작이나 수치 조절은 마모셋과 유사한 방식입니다.

 

참고로 위 이미지는 라이트 바로 아래의 그라운드 셰도우를 킨 상태이기 때문에 모델링 아래에 그림자가 깔려 있습니다. 그라운드 셰도우의 설정 역시 직관적이고 간단합니다.

 

빛의 세기, 경계 페이드(먼 부분일 수록 그림자 생략하는 기법), Height는 바닥의 높이는 말합니다. Size 역시 바닥의 크기를 조절하는 거고요. 모델링이 큰 경우엔 사이즈 역시 키워야 하는데, 최대 4까지만 조절 가능합니다.

 

 

 

배경엔 다양한 프리셋들이 있어서 색 온도, 라이트의 정도 등 환경 조건들이 다릅니다. 이 역시 마모셋과 매우 유사하죠. 

 

 

오리엔테이션은 빛의 각도로, 360도로 회전시킬 수 있습니다. 아래는 빛의 세기이고 그림자 역시 직관적으로 수치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메터리얼 탭입니다.

 

바로 아래에 Jangu_01이라고 되어 있는데, 올린 파일이 여러 매쉬로 분리되어 있는 경우 맵을 적용할 매쉬를 고를 수 있습니다.

 

사용할 수 있는 맵은 정말 많아서 원하는 메터리얼 표현은 거의 다 할 수 있습니다. 

 

컬러 옆의 Texture를 클릭한 뒤 임포트 시켜줘야 하는데, 한꺼번에 여러 맵을 올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원하는 항목에 원하는 텍스쳐를 눌러주기만 하면 됩니다.

.

 

이렇게 필요한 곳에 맵을 넣어주면 메터리얼 설정은 거의 끝난 겁니다. 필요에 따라 노멀의 Y Flip, 오클루드 스펙큘러 등을 체크해줄 수 있고, 수치 역시 조절할 수 있습니다. 1보다 클 수는 없고요. 

 

참고로 오파시티를 어떻게 넣는지 조금 헤맬 수 있습니다.

 

알파가 없는 모델링/맵이다보니 일단 아무거나 넣었는데, 대부분 블렌딩일 거고 거기에 들어간 뒤 텍스쳐를 다시 클릭해주면 매니지 텍스쳐가 뜨면서 아래처럼 조절할 수 있는 게 나옵니다. 저기서 Alpha 항목을 루미넌스로 체크해주면 될 겁니다.

 

 

유니티 등 엔진을 사용해보셨다면 아주 익숙한 내용일 겁니다. 포스트 프로세싱 필터에 들어가면 이와 같은 후처리 설정이 나옵니다. 제가 선호하는 설정들만 켜놨는데, 관련 항목은 글이 길어져서 귀찮기도 하고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거 같으니 검색만 해봐도, 엔진을 다뤄봤다면 잘 알만한 것들일 겁니다.

 

특별히 필요한 효과가 있다면 각종 수치들을 조절해서 더 나은 품질의 결과물을 연출해낼 수도 있습니다.

 

 

 

어노테이션, 모델링에 어떠한 설명을 보여줄 수 있는 항목입니다.

 

 

더블클릭 하면 생성되고, 숫자를 클릭하면 생성한 당시의 화면으로 움직입니다. 특정한 각도로 모델링을 보여주고 싶다면 저 기능을 이용하면 됩니다. 

 

 

 

애니메이션은 당연히 애니메이션이 있어야 합니다. 특정한 파일이 더 필요한 건 아니고, 이미 애니를 잡아놨다면 그 파일을 그대로 사용하면 됩니다. FBX나 블렌더 파일 등이면 충분한데, 특정한 파일 구조인 경우 FBX만 지원하고, 다른 메타 파일이나 컨트롤러는 지원하지 않습니다.

 

 

비교적 최근 AR, VR 기능도 지원합니다만, 써본 적이 없습니다. 단지 직관적이기에 어려울 건 없어 보이네요. 스캐치팹 자체가 워낙 설명을 잘 해놓은 페이지들도 많으니 모르면 그냥 찾아서 읽어보면 됩니다.

 

 

이렇게 세팅을 다 끝내면 그대로 나가는 게 아니라, 세이트 세팅을 누른 뒤 Exit을 눌러서 아까 타이틀, 설명 페이지로 돌아가야 합니다.

 

 

만약 에디트 3D 셋팅에 들어오기 전에 작성해놓은 내용이 있다면 다시 나왔을 때 다 날아간 걸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다시 채워넣고 Save & Publish를 누르면 발행하게 되며 판매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럼 이렇게 판매 페이지가 나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른쪽에서 파일 관련 정보도 확인할 수 있고요.

 

나중에 텍스쳐, 혹은 모델링 파일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Edit Properties에 들어간 뒤 ReUpload를 눌러서 3D 파일을 교체해줄 수 있고, 다시 3D 세팅에 들어가서 텍스쳐를 지워준 뒤 다시 올려서 적용시켜주기만 해도 쉽게 수정해줄 수 있습니다.

 

단, 모델링을 교체해줄 경우 새로운 모델링으로 적용이 될 때까지 잠시 기다려줘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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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찍이들의 엘리티시즘은 능력만 있다면 도덕적이지 않아도 무관하며,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일만 잘 할 수 있다면 사소한 도덕적 결함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그릇된 가치관을 함의한다. 문제는 그들이 생각하는 유능함이 언제나 국가와 사회의 발전과 유지에 이바지할 거라는 특출날 게 없는 착각 때문인데, 그들은 부패했지만 유능한 캐릭터를 상상하며, 자기 사리사욕을 위해 부정부패할 줄 알지만, 동시에 국가와 사회를 위해 할 일은 잘 하길 바란다.

 

그들의 유능함은 대체 불가능한 것이고, 각각의 엘리트는 그 수가 얼마가 되었든 너무나도 귀중한 자산이라 단 한명의 손실조차 용납할 수 없다. 대체로 이는 진보 세력이 부패한 이들에 대한 처벌, 부패구조의 개혁을 요구할 때마다 엘리트가 유능함을 발휘할 수 없도록 만드는 폭거라 받아들이며 그들의 입장과 이익을 대변한다.

 

문제는 그들의 부패이익 역시 대변한다는 것이며, 그들이 부패하지 못하는 것이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착란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직무에 유능함과 무능함의 구분은 자신의 일을 얼마나 잘 처리하느냐로 결정된다. 더 정확하고 더 빠르며 더 유연하게 문제를 처리하되, 그러한 것이 권한이나 제도적 충돌을 일으키지 않아야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2찍이들은 이러한 구분을 무시하고 그저 유능함과 무능함이라는 개념을 오용하거나 구분을 두지 못한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그들에게 유능함이란 엄밀한 개념이 아니다. 도리어 구분 없는 막연한 인상 정도로 구분하는 경우가 더 많다. 개념의 엄밀함이 부족하고, 논리의 정밀성이 떨어진다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들에게 유능함이란 단순한 개념이다. 공부를 잘해서 수능을 잘 보고, 좋은 대학 들어가 졸업하고, 사법시험이나 행정시험, 의사시험 등 사회지도층이 될 수 있는 세련되고 강력한 권력을 다루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그게 곧 유능함이다. 그리고 그들의 유능함은 견제 받지 않고, 제한받지 않고 발휘되어야 한다.

 

 

문제는 그들의 유무능 구분에 있어서 도덕적 결함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의 가치관을 잘 설명하는 말은 이것이다. XX하면 어떠냐,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

 

여기서 경제는 다른 가치로 대체되어도 무방하다.

 

문제는 부패란 자신의 직무와 권한 내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그것과 무관하게 발생하는 부패의 영역은 매우 좁다는 것이다. 가령, 검사가 부패를 저지를 때 피의자나 피의자가 속한 조직에게 이권을 받고 피의자에게 유리하게 기소를 해주거나 재판을 진행해준다. 여러 건 중 약한 것들로만 기소를 하거나, 증거인멸이 가능한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속으로 수사하거나, 증거를 제대로 수집하지 않거나, 수집된 증거를 무리하게 해석하여 제출하지 않을 수 있으며, 사안이 큰 경우 대신 인멸해줄 수도 있다. 어떤 정치적 사건 때 중요한 증거물이 어느 순간 사라져 있는 것이 행정적 오류나 정리 작업의 복잡성, 혹은 우연일 수 있을까?

 

부패하지만 유능하다는 것은 이렇게 해석되어야 한다. 부패하는 것에 유능하다. 라고.

 

유능함에는 도덕적 기준이 없기에 도덕적이고 유능한 사람을 뽑고 그들이 도태되지 않게 해야만 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윤리, 도덕적 기준은 유능함이나 그것을 보증해주는 대학 졸업장이나 전문직 업종 종사자 같은 타이틀보다 우선되지 않는다. 그렇게 유능하기만 하면 권력을 보장받을 수 있기에 부패하고 유능한 이들은 자신의 유능함을 발휘하여 사회적 손실을 발생시키고 그보다 더 적은 양의 개인의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

 

 

부패하는데 유능한 것은 결코 자신의 직무에 유능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 똑똑하고 능력 좋은 검사가 자신의 능력을 부패에 쓴다는 건 자신의 직무 권한을 남용하여 발생시키는 일이고, 앞서 말했던 것처럼 처벌받아야할 피의자를 처벌받지 않게 하거나 더 약한 처벌을 받게 하거나, 편파적이고 불공적인 수사를 통한 피의자에게 특혜를 부여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신은 모종의 이익을 얻는다. 돈이나 정보가 될 수도 있고, 퇴직 후 로펌에 대단한 조건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전관예우를 통해 불공정한 재판을 연출한 뒤 고액의 수임료를 받을 수 있다. 고액 연봉을 받는 사외이사가 될 수도 있고, 혹은 권력과 권력을 연결시키는 브로커 역할을 하며 중간에서 받아먹을 수도 있다. 부패의 방식은 각양각색이지만, 어느 것 하나 사회적 손실이 아닌 것이 없다. 본래 누군가에게 가야할 돈, 누군가가 있어야할 자리, 누군가가 받았어야할 처분 등이 다른 사람에게 가기 때문이다.

 

이를 거꾸로 말하자면, 부패한 검사는 자신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다는 말이고, 자신의 직무네 있어서 무능하다는 말이 된다. 검사의 역할은 피의자를 수사하여 범죄 사실을 입증해내는 것이다. 그러나 부패한 검사는 그것을 자의적으로, 이익에 따라 누군 범죄 사실을 입증하고 누군 그렇지 않을 수 있으며, 입증해낼 수 있는 범죄를 골라서 적용시키거나 탈락시켜줄 수 있다. 검사가 아니라 그 어떤 위치에 있는 이라도 마찬가지다.

 

실적이 아닌 정치에 따라 연봉과 진급/승진이 이루어진다면 실적을 높히는 대신 윗사람과 더 친하게 지낼 것이고 더 많은 선물과 편의, 향응을 제공하려 할 것이다. 능력이 아닌 친분에 따라 고위직을 나누어주는 대통령이라면 인사권이 닿는 범위 내에서 능력과 자격을 갖춘 사람보다 대통령 눈에 띄기 위해 부정한 노력을 다하는 사람이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납품 계약을 받는 이가 자신에게 얼마나 더 많은 향응을 제공해줄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한다면 품질과 성능 대신 자신 개인에게 더 많은 이익을 제공해주는 쪽과 계약할 것이다.

 

이러한 부패는 반드시 더 큰 사회적 손실을 발생시키는데, 범죄자가 범죄자가 아니게 되거나, 범죄자가 아닌 사람이 범죄자가 되거나, 능력 없는 사람이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여 잘못된 판단으로 손실을 입히거나, 대규모 참사를 발생시키거나, 하자가 심각한 결함 제품이 군인들에게, 고객들에게 납품될 것이며, 더 큰 규모에서는 항공기, 전차 등 안보 체계에 큰 악영향을 발생시킬 결정이 납품사의 로비로 이루어질 수 있다.

 

부패한 자가 유능할 수 없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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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尹 "법 안 지키면 고통 따른다는 것 알아야 법치주의 확립"
https://v.daum.net/v/20221129160534869

 

보수들의 법치에 대한 개념은 피통치자. 다시 말해 국민들이 부담하고 준수해야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에게 법치를 물어보면 법을 지키고 준수하는 것을 말합니다.

 

틀렸습니다. 그건 준법정신이라고 하는 거고, 법치는 그런 게 아닙니다.

 

법치란 권력이 법과 제도에 따라 통치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기에 정부나 정치인, 국가의 대표가 법과 제도에 따르지 않고 무당이나 무속인 등 비선이 국정과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법치주의를 무력화시키는 가장 큰 폭력이자 정치체제를 만들기 위해 행해왔던 발전과 노력을 역행하는 행위입니다.

 

 

오랫동안 인류 역사는 왕정, 과두정과 같은 소수가 권력을 독점한 체제의 지배를 받았고, 이들에게 법은 가변적이었으며, 왕권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법은 중요한 원칙이고 질서였지만, 강력한 왕권(=군사력)은 법 위에 서있었고, 강력한 왕권은 법질서보다 더 높은 권위 아래에서 국가를 통치했고요. 때때로, 어쩌면 자주 왕국의 법이란 국왕의 말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고, 법과 제도에 의해 작동하는 법치주의 국가이기도 합니다. 국민들이 뽑아준 대표들이 국회에서 법을 만들면 국가 내에 소속된 모든 구성원은 그 법을 준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법과 제도의 준수에 가장 큰 책임을 지니는 것은 당연히 권력자이고, 국민이 뽑아준 대표들입니다.

 

법치란 개인이나 소수 집단의 판단과 이익에 따라 언제든지 가변적이고 모순적이며 공정하지도, 일관적이지도 않은 기준이 아닌 국가의 독점적 규범인 법과 제도를 근거로 통치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정부와 정당은 법에서 규정하는 제도에 따라 통치에 임해야 하며, 이것을 어기거나 형해화하는 것은 범죄에 속합니다. 가령, 대통령이 비선의 지시와 목적에 따라 부역하는 경우가 그러하고 국정에 대한 권한이 없거나 권한을 부여받지 못한 영역에서 영부인이 판단하여 지시를 내리는 것이 그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극우보수의 법치란 국민이 준수해야할 준법정신과 오용되거나 아예 개념 자체를 틀렸기 마련이고, 그러한 편린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최소한 그런 비판을 피할 수가 없죠.

 

윤석열 대통령도 검찰 출신이라 그런지 법치에 대한 개념 자체가 틀렸는데, 9수를 하는 동안 법치에 대해 공부하기는커녕 누군가에게 배워본 적도 없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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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30 - [취미/이야기] - 할로윈 참사, 보수가 또 사람을 죽였다.

https://www.bigkinds.or.kr/

 

11월 1일~11월23일 마약 키워드 뉴스기사 검색 결과.

11월 23일까지 총 1340건입니다.

 

 

 

10월 1일~10월31일 마약 키워드 뉴스기사 검색 결과.

 

10월 동안은 2371건이고요.

 

 

9월 1일~10월31일 마약 키워드 뉴스기사 검색 결과.

9, 10월 합치면 4354건, 8월부터 집계하면 5000건이 넘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8월달 마약 관련 기사는 약 1000여건 정도라는 거죠.

 

9월, 10월이 이전 달, 이후 달에 비해 2배 가량 많이 나왔고, 이태원 압사 사건 이후 반토막난 기사량 중 대부분이 마약 사범에 대한 위기감, 문제의식 조장보다 사건 자체와 그에 대한 책임추궁 등 정치적 이슈들이 대부분에 가까울 것이라는 걸 고려하면 실제 마약 관련 기사 자체는 반의 반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유의미한 변화량이죠.

 

 

 

9월, 10월 동안 누가 마약 걸렸고 어떤 인플루언서, 샐럽, 연예인 마약 했다고 뉴스 기사 나오고 마약 유통이 어쩌고 이제 한국도 마약 청정지대가 아니네 어쩌네 하는 기사들, 이야기들 많았던 거 기억하실 겁니다. 

 

근데 이태원 사건 이후 마약 관련 기사들이 확 줄어버렸죠. 왜 이런 일이 벌어졌냐면, 아주 간단합니다.

 

정권, 정확히는 한동훈의 법무부가 마약 범죄 관련 인식과 분위기, 문제의식을 조장하고 있다 할로윈 때 이태원 일대에서 마약 범죄 일망타진하는 식으로 큰 성과를 올려서 뭔가 좀 해보려고 했는데 실패했거든요.

 

오히려 이 문제 불거질수록 경찰 배치와 동원 인력 관련해서 포커스가 이동하면 그런 인력, 배치, 구성 누가 지시했고 최종 책임자가 누구냐와 그렇게 했던 이유가 뭐냐는 식으로 옮겨집니다.

 

그럼 기자들한테 문자 날렸던 것처럼 정부가 마약 관련 성과 내려다 이렇게 됐네? 근데 그 책임소재 타고 올라가보니 법무부 장관이 나오네? 이렇게 될까봐 다들 약속한듯 입 닫고 다른 이야기 쏟아내는 중이죠.

 

 

 

 

 

 

[단독] 참사 직전까지 112 신고 '79건'…근처 기동대는 퇴근
https://n.news.naver.com/article/055/0001009981?sid=102
경찰 200명 아니었다…실제 이태원 현장엔 137명
https://v.daum.net/v/20221030204006325
 

 

법무부는 이번 일로 뭐 좀 해보려다가 대형사고 친 거고, 언론 카르텔은 책임자들과 손잡고 장난질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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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극단주의 사상은 몇가지 공통적인 요소를 보입니다.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본 글의 주제인 약자에 대한 멸시가 그러합니다.

 

파시즘을 비롯하여 강자는 약자에 대한 절대적 권리를 지니고 힘은 그 자체로 도덕적인 법칙으로 받아들이고 행동하죠. 옳고 그름의 기준은 힘의 강약, 승리와 패배로 구분되며 승자는 절대적 무오성을 지닙니다. 제왕은 무치하고 군주의 잘못은 기군을 망상한 간신의 탓이 됩니다.

 

정치에 있어서 더 극단주의적인 집단을 찾기 위해선 간단한 몇가지 징후를 파악하면 됩니다. 제가 제안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누가 더 무책임하냐에 대한 것입니다. 극단주의 집단은 무오하고 도덕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에 잘못하지 않으며,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에 남탓으로 책임을 돌립니다.

 

책임자에 속하는 권력, 권한을 지닌 더 높은 사람은 그에 대한 책임을 아래로 전가하고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합니다. 도리어 책임을 묻는 입장이 되길 원하죠.

 

 

힘에 대한 숭배와 약자에 대한 멸시는 같은 것이 아니지만, 서로 섞이기 쉬운 조합입니다. 파시스트, 나치, 극우주의자, 종교적 광신도 등 극단주의자들이 힘을 숭배하는 이유는 힘이 가져다주는 다양한 이익 때문이고, 약자를 멸시하는 이유는 그 과정이 도덕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더 많은 힘을 가져서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기 마련이고, 그 힘은 책임에 대한 회피 역시 가능하게 해줍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마땅히 더 큰 책임을 져야하지만, 이들의 정신이 말하는 원리는 그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그 자리까지 올라가 그만한 힘을 가지는 것이거든요.

 

범죄를 저질러도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 책임을 벗고 타인에게 씌웁니다. 언론플레이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정적에게 엮어서 뒤집어 씌우고, 검찰과 경찰을 비롯한 법집행기관을 통해 조사를 불충분하게 하거나 기소를 이상하게 하거나 근거를 적절치 않게 수집하여 제출하기도 하고, 유리한 판단을 내려줄 판사를 배정받게끔 하는 방식도 있고 그러한 판사를 사전에 기름칠을 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혹은 자기 부하 직원이나 하위 기관에 책임을 전가시키고 그 책임추궁을 본인이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거래 하는 방법도 있죠. 조폭들이 네가 대신 빵에 들어가주면 나중에 잘 챙겨준다, 얼마 주겠다는 식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책임은 아랫사람에게 전가되고 권력자, 기득권은 결과적으로 무오하게 되죠. 법적으로 그러한 판정을 받지만, 도덕과 윤리의 기준을 법에 맞추는 인식을 보편화 시킬 수록 법적으로 무오하게 판정받기만 하면 도덕적으로도 무오하게 됩니다.

 

 

그런 이들이 약자를 멸시하는 이유가 바로 그 부분에 있죠. 내가 저지르는 잘못을 아랫사람, 약자들이 지게 되기에 잘못한 쪽은 약자가 되는 겁니다. 사건사고의 책임을 일선의 말단과 그들을 직접 지휘하는 이들에게 전가하면 죄를 지은 사람은 말단, 기껏해야 중간관리자급에서 꼬리가 잘려지는 거고 이들이 잘못한 게 되기 때문에 나쁜 건 그들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무오한 권력자와 부덕한 아랫사람으로 구분되는 것이며, 그 구분은 철저하게 힘으로 이루어집니다. 내 잘못을 네가 책임지게 되었으니 나쁜 건 너라는 거고, 그런 처분을 위해서 권력은 누구보다 영악하고 유능하게 움직입니다. 그들이 정말 유능하고 뛰어났으면 그런 사건사고, 범죄가 발생하지도 않았겠지만, 애초에 그들은 그 권력과 힘을 남용하여 법과 제도를 어겨서라도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결과 자신에게 책임을 묻게 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 권력과 힘을 통해 약자들에게 전가하기 위해서 힘을 추구한 것이죠. 앞서 말했듯, 그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그 높은 자리까지 올라온 것이기에.

 

 

당연히 피해를 보는 약자들, 그리고 그들과 같은 편에 선 자들은 불만을 가질 겁니다. 자기가 잘못해놓고 왜 남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고 남탓하냐고, 무책임하다고.

 

그러면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게 불만이면 힘을 기르라고. 억울하면 성공하라고. 성공해서 바꾸라고.

 

하지만 애초에 그들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그 자체로 약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서입니다. 너희가 약했기 때문에 날 징치할 수 없고 내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말하는 거고요. 옳고 그름, 도덕과 부덕, 윤리와 비윤리가 아니라 힘의 유무에 따라 정의는 구분되는 거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이미 성공하고 힘을 가진 자신이 옳다는 겁니다.

 

그러니 약자들이 떠드는 건 그저 소음공해에 불과하고, 힘도 없고 불만만 많고 시끄럽고 귀찮은 개돼지들이 되는데, 그래야만 잘못한 게 내가 아니라 그들이 되며, 그들이 자신의 양심과 도덕성을 공격할수록 그에 대한 반동으로 그들을 더 천하고 질 떨어지는 집단으로 설정해야만 자신의 더러운 행위들이 정당화됩니다.

 

이러한 정신적 기제가 그들이 대중, 서민을 저열한 것으로 바라보고 자신들을 그들에 비해 우월하다 여기게 만드는 것이며 과정이 부정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얻어낸 결과의 정당성이 떨어진다면 그 과정을 정당한 것으로 바꿔야하기 때문에 도덕, 윤리나 법적 정의가 아닌 힘의 강약과 유무를 기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전에 이야기했듯, 그러한 정신을 공유하는 이들이 현 사회의 기득권, 권력자, 지도층 다수일 경우 그 사회의 지배적 사상을 그들의 것이 됩니다. 그들처럼 되기 위해선 그들이 해왔던 방식을 답습하는 것이 올바르고 정석적인 성공의 공식일 것이며, 그들 집단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역시 그들의 사상을 공유해야하기 때문인데다, 자신이 그들처럼 될 수 없더라도 그러한 성공을 자신의 현실과 무관하게 추구하는 이들이기만 해도 그들의 지배적 사상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한 사상을 받아들인 이들은 그 지배적 사상 내지는 그 사상대로 행동하여 성공한 기득권, 엘리트들이 사라지거나 패배하지 않는 한 더 늘어날 수밖에 없기에 부정한 방식으로 성공하고, 힘의 원리에 따르는 극단주의자들이 성공하며 더 많은 자원을 차지하는 사회일수록, 도덕과 윤리는 계속해서 도전받고 그 영향력은 축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도덕과 윤리는 성공과 힘에 비해 중요하지 않는 것이 될 것이고 때때로 경쟁을 위한 도구로서 활용될 뿐입니다. 저자가 더 나쁘기에 덜 나쁜 내가 한정된 자원을 차지해야 한다는 식으로. 그런 방식이 관성을 얻어 정의의 기준을 뒤바꾸게 될 것이고 이는 우리가 말하는 비상식의 상식화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어째서 상대적으로 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이들이 패배하며, 그들의 영향력과 세력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약하고, 시민들은 왜 더 부덕하고 비윤리적인 이들을 지지하느냐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자신이 약자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힘은 상대적이고, 서민이나 저소득층 같은 약자조차 자신보다 더 약한 이들을 멸시하며 부정한 방식을 정당화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방식으로 크고 작은 이득을 취하길 바라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길 바랄 뿐이죠.

 

그러나 약할 수록, 아주 작은 죄조차 그들보다 더 약한 이들에게 전가할 힘이 없어서 결과적으로 더 높은 범죄율에 일조하고 더 삭막하고 각박한 사회를 만드는 일원이 되며 당한 사람은 그 방식을 답습하여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할 기회를 추구하게 됩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지위적으로나 평범한 사람들조차 그러한 지배적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속에서 도덕적 선택보다 비도덕적이더라도 자신에게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줄 선택을 기꺼이 할 것이고, 그걸 위해 타인이 피해를 보거나 고통을 받더라도 양심의 작동이라는 정신적 불쾌함과 도덕적 비난이라는 외부적 공격을 방어하고 정당화할 힘의 논리로 그것을 무시할 것입니다. 그걸 위해 흔하고 전통적인 다양한 변명들이 나올 것이고요. 너희라고 안 그랬겠어? 어쨌든 이익 봤으면 그만. 너희라고 얼마나 깨끗하다고 등등..

 

 

그러한 힘의 논리에 따라 약자는 부당한 권력의 횡포에 대한 공감의 대상이나 보호와 연대의 파트너가 되는 게 아니라 멸시의 대상이 되며 약자의 범위는 시간에 따라, 양극화의 원리에 따라 더 늘어날 것입니다. 자신이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서민들조차 어느새 부동산, 주식, 직장에서 다양한 피해를 받게 될 것이고, 그럴 때마다 돈이 더 많든가, 인맥이 더 많든가, 머리가 더 좋고 실력이 더 뛰어났거나, 더 많이 공부해서 더 좋은 대학 나와 더 좋은 직장 구했으면 될 거 아니냐는 조롱과 비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사회적 보호망와 시민들의 연대엔 구멍이 뚫리고 끝끝내 제역할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요. 누칼협의 정신은 피해자와 약자가 더 나은 대우와 마땅한 권리를 추구하는 것을 방해하고 약자이기 때문에 어떤 피해를 받았든 고분고분 받아 들이라는 조롱입니다. 누칼협엔 진보가 없고 정체한다면 다행일 뿐인 후퇴 뿐인 정신이죠.

 

누칼협이 정당하기 위해선 불법을 저지르거나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저지른 이들이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었을 때 그들이 억울하다는 말에 해줘야할 말입니다. 누가 칼들고 협박해서 네가 범죄 저지른 거냐고. 하지만 그들에게 정의의 기준은 힘의 논리이기 때문에, 누칼협을 사용하는 이들은 그 대상을 피해자와 약자에게 씁니다. 네들이 힘이 없어서 그런 거니까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이라고.

 

 

이는 사회현상에도 적용되고 국제논리에도, 역사적 판단에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전라도가 멸시 받는 이유는 전라도에 힘이 없기 때문이고, 그들에게 가해했던 이들이 사회의 질서를 만드는 극우보수 기득권 내지는 그러한 기득권을 창출하는(=기득권이 제시하는 질서에 순응하는) 정신을 공유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며, 한일 관계의 역사적 관계에 대해 가해자 일본이 아니라 피해자인 한국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것 역시 한국이 약하고 약해야하는 약자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제국주의 침략이라는 비도덕적인 행위를 했기에 나쁜 게 아니라 조선이 약했기 때문에 정복당한 것이니 조선의 잘못이고, 조선이 강했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기에 조선/한국의 책임이라는 겁니다. 아직도 일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고 그들을 비판해선 안 되는 이유 또한 한국이 일본보다 약하기 때문이고, 감히 약자에 대한 절대적 영향력과 도덕적 무오의 권위를 지닌 강대국 일본에 대해 감히 비판하고 공격하는 이들 때문에 일본이 한국에 보복을 하면 버틸 수 없다고 믿습니다.

 

그들의 정신은 일본의 정신과 유사하고 그러한 원리를 공유하기 때문에 한국보다 일본에 이입하고, 한국의 이권보다 일본의 이권에 부역하며, 강대국의 부당한 요구와 강압에 저항조차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콧방귀에 한국 같은 약소국은 버틸 수 없을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믿음이자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그들의 세계관 내에선 너무나도 합리적이며 당연한 공식이기 때문에요.

 

그래서 그들의 외교는 강대국엔 감히 반항도, 주권을 지킬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고, 약소국에 대해선 강짜와 무례를 저질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신경쓰는 것은 무지몽매한 국민 대중이라는 이름의 개돼지들이 사리분별하지 못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린 엘리트 기득권인 자신들에게 표를 주지 않고, 그 표를 받아 권력을 얻은 이들과의 관계로 얻어지는 이익구조를 복잡하고 귀찮게 만드는 게 싫기에 최소한의 눈치를 보는 것 뿐입니다.

 

그들의 비정상적이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국내정치와 외교의 작동원리가 바로 여기에 있는 셈이죠. 힘의 논리, 힘에 대한 숭배와 약자에 대한 멸시에서.

 

이익을 얻는 결과를 위한 과정이 부당하다면 언제든 잃을 수 있기에 그 과정을 정당하게 만들어야 하니 규칙과 도덕, 윤리보다 힘 그 자체로 정당화를 시도하는 것이고, 이 사회에서 그 시도는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힘이 있다면 책임지지 않고,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정과 부당함 역시 힘으로 무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방식으로 힘과 권력을 얻은 이들이 기득권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지도층이 되었고, 그들을 성공하게 만들어준 사상은 이 사회의 지배적 사상이 되어 그들처럼 되고 싶은 이들, 그들에게 이입하는 이들에게 이식되어 이 사회에서 상식과 정의의 기준을 바꾸고 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데엔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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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도 전우용씨 글입니다.

 

TBS 폐지 조례 시의회 상임위 통과…2024년부터 예산 지원 중단
https://v.daum.net/v/20221115104504935
대통령실, MBC 기자 "전용기 탑승 불가" 통보
https://v.daum.net/v/20221109224423163
윤석열 '언론사 파산' 발언에 언론계 "오만·무지한 언론관" 규탄
https://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73462
언론노조 "尹정부, 비판언론 통제·장악 무리수 두지 말아야"
https://m.k-odyssey.com/news/newsview.php?ncode=179571445341596
 
보수 정부는 항상 이랬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언론 탄압이라고 욕하던 바보들은 많았지만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언론탄압의 예시는 없거나 근거가 희박하고, 보수 정부하에 일어나는 사례와 비교하면 탄압조차 되지 않죠.

자신들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특정 언론에 대한 노골적인 보복과 공격을 감행하며 특정 언론사를 없애버리겠다고 벼르고 나서질 않나 자기 비판했다고 쫌생이 같이 전용기 탑승 불가로 보복, 차별하고 있고..

 

무슨 속 좁은 초등학생들이 찌질거리는 거 보는 느낌이죠.

 

 

이들이 이러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고 단순합니다.

 

극우보수는 자신들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용인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극단적으로 무책임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기 위해 오히려 남탓을 합니다.

 

2021.07.13 - [취미/이야기] - 극우보수의 핵심 속성 : 무책임.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어떠한 행위에 대해서도 책임질 생각을 하지 않고, 오직 이익만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권력을 가진 위치는 그러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위치고요. 그리고 자기 잘못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라는 것은 그 자리를 포기하고 내려오라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또한 그들의 가치관 자체가 아랫사람들의 비판을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기어 오르고 맞먹으려는 것으로 여깁니다. 굴종하며 비판을 돌리고 돌려서 읍소하는 것조차도 기분에 따라 받아들일까 말까 하는데 대놓고 비판하는 이들은 자신과 싸우자는 같잖은 것처럼 보이는 거죠. 실제 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꼰대들과 다를 건 없는데, 그냥 돈이 더 많고 더 많은 권력을 쥔 것 뿐입니다.

 

그런 이들이다보니 자신은 언제나 무오한 위치여야만하고 비판은 도전으로 받아들이며, 그러한 도전에 대해 반드시 보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을 지닌 거죠.

 

뉴스를 보십시오. 그리고 극우보수에 속하는 이들이 실제 무슨 말을 했고 무슨 행동을 했는지 확인하시고 그 이후 어떠한 대응을 하고 어떤 발언으로 무마하려는지 보세요. 그들은 무책임하기에 남탓을 하고 자기 책임 아니라고 빠져나가려고 합니다.

 

이번 김진태의 레고랜드 사건만 봐도 국가에 어마어마한 피해와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폭탄을 터뜨렸는데 절대 책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세훈도 그렇죠.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고 남탓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한동훈? 그 이전 박근혜, 이명박 시절 보수 정치인도 다 그랬어요. 자기 잘못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증거까지 있음에도 남탓하고 자기책임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엘리트 카르텔, 주로 언론과 검찰 카르텔의 도움을 통해 법적인 책임도 제대로 지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죠. 그들만의 유리한 경기장 덕분에.

 

 

또 하나는 이겁니다. 극우보수와 같은 위정자들에게 언론은 그 영향력이 막대하고 그만큼 가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언론이라고 다 똑같은 언론이 아니고 기자라고 다 똑같은 기자는 아니지만, 만만한 진보좌파에겐 누구든 들이 받을 권리가 있는 것과 다르게 언제든 보복하고 공격하고 그러면서도 리스크를 지지 않는 극우보수에게 들이받고 싸우는 이들은 적습니다.

 

사상적인 이유도 있고 입에 물려주는 달달한 돈도 그렇지만 기자와 언론들은 극우보수와 싸우려고 하지 않아요. 오히려 같은 편이죠. 그리고 극우보수 진영과 언론(애초에 언론 자체가 대부분 극우보수 진영에 속합니다. 카르텔이죠.)은 그러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기에 별 다른 이유가 없다면 싸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붙어먹는 실정이죠. 같은 카르텔 안에서 서로의 이익을 보장해주고 책임질 잘못을 무마해주는 일을 합니다. 누구누구 정치인이 범죄를 저질러도 언론이 알아서 덮어주거나 물타기, 양비론 등으로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검찰과 판사 인맥을 동원해 제대로된 조사, 기소도 하지 않고 재판까지 가도 아주 가벼운 처벌을 해주죠.

 

그렇지 못하는 경우는 몇가지가 있지만, 검찰 카르텔이나 그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가 아니거나 너무 뚜렷하고 보는 눈이 많아서 그렇게 쉽게 무마하지 못하거나, 리스크를 감당하고서라도 무마할 수는 있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없거나. 이런 이유들이 그러하죠.

 

검찰 공화국이 됐다지만 같은 국힘당 의원이어도 검찰 출신이냐 아니냐에 따라 법적 처분이 달라지는 사례도 있으니.

 

 

여튼, 극우보수는 언론의 힘과 영향력을 알고 있고 그걸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대중들을 통제하고 프레임을 규정해왔습니다. 의제를 선점하며 대중들에게 특정 이미지와 프레임을 각인시켰죠. 사실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그런 힘을 지닌, 그리고 그토록 편하게 정치를 해주는 언론이 자기들 편이 아니게 되면 어떻게 될 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언론을 통제하려고 하는 거고, 자신들만의 카르텔에 속하지 않거나 벗어나려는 놈들을 두들겨 패서라도 본보기를 보이고 두려움을 조장하며 다른 언론사, 기자들에게 개인행동, 돌발행동 하지 말라고 하는 거거든요.

 

항상 비판해왔던 TBS, 이번 MBC, 그 이전까지 하면 JTBC의 손석희 등 탄압하거나 탄압을 시도하거나, 공격하고 영향력 행사하려는 시도는 늘 있어왔습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뀐 이후 하지도 않았던 언론탄압 했다고 욕 먹는 문재인 정권이 아니고 무식하고 근본 없는 검찰 공화국 윤석열 정권에선 실제 행동으로 언론탄압이 나타난 것 뿐입니다.

 

 

근데 이걸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언론 탄압이 아니라고 한다거나, 사소한 것이라 생각하거나, 아예 정권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민주주의에 적합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이번 정권에서 실제로 후퇴하고 있고, 눈에 보이는 형태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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