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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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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에 해당되는 글 665건

  1. 2020.11.13
    지적 자극과 정치사회의 관계.
  2. 2020.11.09
    어째서 현대에 접어들어도 종교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3. 2020.10.23
    함정식 소통 태도.
  4. 2020.10.20
    극단주의와 반지성주의, 정의를 독점한 편협한 바보들.
  5. 2020.10.02
    북한에 대해서는 객관적 판단력이 정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6. 2020.09.25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사건. 연평도 공무원 피살과의 차이점.
  7. 2020.09.03
    전라도 혐오와 한국 혐오. 가해자의 피해자 혐오.
  8. 2020.08.18
    한국의 사회방역 취약점. 고령자, 극우보수, 종교.
  9. 2020.08.16
    한국 교회와 지역 커뮤니티.
  10. 2020.08.13
    국가, 종교, 민족, 사회적 정체성 문제.
  11. 2020.08.06
    류호정 원피스 논란에 대한 단상.
  12. 2020.08.05
    박원순 피해자 변호사의 언플 정치질.
  13. 2020.07.10
    박원순의 극단적 선택, 도덕적 우월성의 자승자박.
  14. 2020.07.02
    인국공 논란, 공정의 훼손? 대학을 왜 가냐?
  15. 2020.06.21
    Zbrush, Error has been encountered while trying to load a tool 오류 해결법.
  16. 2020.06.17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한국의 입장. (2)
  17. 2020.06.17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북한 내부의 사정. (1)
  18. 2020.06.15
    북한을 그냥 미친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19. 2020.06.12
    안보를 위협하는 탈북단체의 불법 도발행위와 군사적 위험 조장.
  20. 2020.06.12
    탈북자에 대한 냉정한 이해와 현실 (2)



...몇몇 심리학적 연구결과를 보면 까다로운 인지작업과 유혹의 도전을 동시에 받는 사람들은 유혹에 굴복할 가능성이 더 높다. 매우 중요한 일이니 1~2분 동안 7자리 숫자를 기억하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가정하자. 숫자에 집중하는 동안, 건강에 해로운 초콜릿 케이크와 건강에 이로운 과일 샐러드라는 두 가지 디저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실험 결과를 보면 머릿속이 온통 숫자로 가득 차 있을 때는 유혹적인 초콜릿 케이크를 선택할 확률이 더 높다. 시스템 2(이성)가 바쁘면 시스템 1(본능, 직관)이 행동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 그 시스템 1은 단 것을 좋아한다.


'인지적으로 바쁜' 사람들은 이기적인 선택을 하고, 성차별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사회생활을 하며 피상적인 판단을 할 가능성이 더 높다. 물론 '인지 부하가' 자제력을 약화시키는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불면과 마찬가지로 음주도 똑같은 효과를 낸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와 동료들이 수행한 일련의 놀라운 실험들을 보면 인지적이건 감정적이건 신체적이건 상관없이 모든 다양한 자발적 노력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정신 에너지의 공유풀에 의존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바우마이스터는 의지나 자제력 유지 노력이 피곤한 일임을 거듭 확인했다. 억지로 뭔가를 하도록 자신을 독려해야 한다면, 다음 도전이 닥쳐왔을 때 자제력을 발휘하려 하지 않거나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줄어든다. 이런 현상을 '자아 고갈'이라고 한다.


- 다니엘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아이는 자극이 부족할 수록 성장발달이 느려진다고 합니다. 비단 아이 뿐만 아니라 정신의 성장에 있어서도 다양한 자극과 극복이 있어야만 합니다. 마찬가지로 지적능력의 성장 또한 지적 발달을 자극하는 요인이 있어야 하며, 이는 대체로 공교육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형성되죠.


중요한 건 단순히 자극을 받기만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자극을 받되, 그것을 올바르게 풀이할 수 있어야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수학 문제를 풀 때 단순히 문제에 자극을 받기만 하고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스트레스가 되고, 더 나아가 한계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 문제를 풀 수 있어야 성장, 발달이 가능한 것이지요.


그러나 이는 그만한 정신력, 인지력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논리적 사고와 그 사고에 투자되는 정신력. 그러한 인지작업은 그만큼의 정신 에너지를 소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만한 자원이 충분히 전제되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삶에 더 여유롭다는 것은 복잡하고 까다로운 인지작업에 도전 받아도 그것에 쏟아부을 수 있는 정신 에너지가 여유롭지 못한 쪽보다 더 많고 더 오래 투자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가령 생업에 종사하지 않는 선비나 귀족의 경우 수년간 충분히 공부에 전념할 수 있고 지적능력 발달에 투자할 수 있으며 그것은 낮은 단계의 인지작업부터 더 높은 차원의 인지작업을 충실히 따라올랐다는 것이기도 하죠.


반대로 매일 일을 해야 하는 농민, 혹은 현대의 일 12시간씩 일하는 막노동꾼이나 시장 장사꾼, 그 외 높은 노동강도와 노동시간을 가지는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경우 그러한 인지작업에 쏟아부을 정신 에너지가 극도로 부족합니다. 이는 육체노동부터 정신노동까지 하루 동안 소모되는 양이 많기 때문이며, 대체로 하루이틀 쉰다고 회복되지도 않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적은 시간 쉬는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더 복잡하고 여유를 가져야할 일에 많은 정신, 시간의 투자가 어렵게 됩니다.



더 여유로운 삶을 사는 이가 지적 발달에 우월한 조건을 가지는 요인 중 하나는 그러한 자극을 취미, 혹은 자발적 자기계발로 선택하여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가령 책이나 방송, 다큐멘터리, 심지어 네이버 지식인 활동조차도 다양한 지적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요인이 되는데, 책이나 방송이야 말할 것도 없고, 지식인 활동조차도 평범하거나 어려운 질문부터 황당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질문이 쏟아지는 공간이기에 다양한 생각과 정리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요컨데, 그러한 공간에서 답변자로 활동하지 않았다면 거의 결코 생각하거나 정리하거나 찾아보거나 분석할 여지가 없었을 영역이나 주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여지가 생기긴 한다는 겁니다. 즉, 더 많은 지적 자극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일반적인 경우, 더 많은 지적 자극과 그에 대한 처리가 가능한 쪽은 그렇지 못한 쪽보다 지성에서 우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양한 자극(질문)을 받고 그에 대한 다양한 결론(답변)을 내놓았기 때문에 생각과 관점의 폭이 넓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훈련된 지적능력과 인지능력이 곧 통찰력으로 환산될 것입니다.



마시멜로 실험 오류 가능성...어렸을 때 잘 참으면 훗날 성공?

https://www.mk.co.kr/news/it/view/2018/07/445129/

(전략) 다만 가정 수입이 적은 아이들의 경우에는 마시멜로를 빨리 먹는 경향이 나타났다. 부모의 소득이 높지 않은 경우 당장 눈앞에 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기다리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을수도 있다고 연구진은 덧붙였다. (후략)


경향성의 관점에서, 더 부유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고소득층, 정확히는 고소득층의 자식들의 경우 좋든 싫든 교육에 투자되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이 강제되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더 여유로운 일상을 누릴 수 있습니다. 더 다양한 경험을 겪을 수 있고, 그들 중 지성에 관심이 있다면 남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지적능력을 쌓을 수도 있지요.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더 많은 시간을 더 차분하게 사용하여 고등한 사고로 문제를 해결하는 건 아니더라도, 설령 틀렸더라도 내용 자체는 더 차분히 정리된 결론을 내놓기에도 유리합니다.


반면 고노동 저소득층일수록 그러하기 어렵죠. 부모부터가 자식을 관리하고 교육시키기에 시간이 부족하고 자식에 투자할 인지력도 부족하게 됩니다. 자식 또한 그러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교육비 등 교육에 대한 투자도 받기 어렵고요.



지적 자극을 받고도 그것을 잘 처리할 수 있는지는 그것을 잘 처리할 수 있는 환경에 따라 갈립니다. 그리고 그것은 대체로 자본력에 기초할 가능성이 크고요. 물론 자본의 정도에 따라 인지처리능력의 정도가 얼마나 차이가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만, 각박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하위 노동자와 그 반대에 있는, 다시 말해 삶의 양극단에 있는 사람의 경우 상당한 차이가 날 수 있다고 추정합니다.


다양한 지적자극은 다양한 사고와 결론을 내놓을 것이고, 그렇게 형성된 통찰력과 지성은 정치, 사회,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될 것입니다. 애초에 현대의 다양한 지적자극들은 대개 그러한 영역에서 발생하는 것들이 많은 편이고요.


문제는 충분한 정신 에너지, 인지력을 갖추기 어려운.. 일상적인 자아고갈에 빠져 있는 계층인데, 정말 바쁘고 열심히 살아가지만, 돈 자체는 적게 버는 사람들일수록 정치, 사회에서 발생하는 지적자극에 충분한 투자를 통해 품질 있는 결론을 내놓기 어렵게 됩니다.



전라도 혐오와 한국 혐오. 가해자의 피해자 혐오.

https://konn.tistory.com/703

더 간단한 논리의 선동이 그러한 것을 판단하기 위한 지적능력이나 소모해야할 인지력이 부족한 이들에게서 더 쉽고 광범위하며 빠르게 받아들여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무엇이 문제라면 그것이 왜 문제인지 제나름대로 분석하고 판단할 지적능력이나 그 능력을 활용할 정신력(인지력)이 필요한데, 여유롭지 못할수록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음.. 이거 꽤 자주 인용하게 되는군요. 위 링크의 글에서 했던 말은 사실 이전에도 간간히 여러 곳에서 자주 했던 말이긴 합니다. 다만 좀 더 짧고 자세하지 못했을 뿐이죠. 저 내용은 본 글의 관점에서 나온 말입니다.


정치에서 계급배반현상은 오랫동안 관찰되었고, 분석되고 연구되는 주제이긴 합니다. 이 현상에 대해 어떤 분석과 결론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사상이나 이념은 자신의 주머니 사정이나 사회적 위치와 무관하거나 상반되게 존재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고, 지금은 거기에 정신적 여유로 설명을 하곤 합니다.



극단주의와 반지성주의, 정의를 독점한 편협한 바보들.

https://konn.tistory.com/706


현대는 너무나도 복잡해서 전문가라고 해도 현실의 일부분만을 설명할 수 있을 뿐 그 외의 영역에선 남들보다 조금 더 낫거나 남들과 큰 차이가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어떠한 사회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선 다양한 의견과 다각도의 관점들을 수렴해야만 하고, 그러한 다양성이 충족되는 사회가 건전한 사회의 조건일 것입니다.


정치, 사회적 현상과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현대 사회의 복잡함을 간과하고 너무나도 간단하고 편협하게 해석하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지성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계급적 관점에서 하위 계급일수록 노동은 많이 하지만 정작 소득은 적은 이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사건에 더 많은 정신력을 인지작업에 투자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러한 이유로 복잡하고 어려운 분석의 과정을 스킵해버리고 아주 쉽고 간단한 설명으로 대체하려고 하지요.


가령, 한반도 평화와 장기적으로 북한 사회에 자본주의의 영향력을 확대하여 북한 스스로 개방하거나 개방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하거나, 현 체제에 한계를 요구하게 만들어 무너뜨리게 한다는 등의 목적을 두고 대북온건책을 시행하는 이들에게 그러한 정책과 관점을 이해하거나 상상하기보다는, 저 새끼가 빨갱이라 나라 팔아먹고 북한에 돈 주려고 한다. 가 더 쉽고 간단하며 말초적으로 빠르게 더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죠.


그리고 이를 잘 아는 이들일수록 더 간단한 논리와 더 자극적인 문구로 이 계층을 공략합니다. 간혹 기사에서 볼 수 있는 어처구니없이 멍청하고 일방적으로 특정 세력이나 인물을 공격하는 자극적인 발언들은 그들이 딱 그 수준의 지적능력이나 사고력, 사상의 극단성을 지녔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좀 더 그들의 사회적 성취과 그 기반이 되는 지적능력을 고려했을 때 인지작업에 투자하기 어려운 하위 계층을 조준하고 날리는 정치공학적 계산의 산물일 수 있는 것이겠죠.



인민들을 너무 배불리면 딴 생각을 품게 된다. - 김일성.


그리고 그들의 지지는 생각보다 튼튼하고, 많습니다. 60년대, 80년대, 심지어 90년대와 IMF를 겪어왔던 세대가 여전히 살아있고, 각 세대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왔다고 해도 될 정도로 완전히 다른 물질문명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60년대의 대한민국과 80년대의 대한민국은 물질적으로 한 세대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다란 발전을 겪었고, 90년대, 2000년대, 그리고 지금 2020년에조차 그러한 시대적 차이는 단순 시간적 차이로 설명하기 어려운 거대한 간극이 있지요.


다만 90~00년대 세대 아래 쪽으로 공통점이 있다면, 먹고 살기 어렵고 각박함을 실제로 겪어왔던 세대라는 겁니다. 그리고 더 어려웠던 시기를 살아온 이들에 의해 여전히 잔재해 있던 구시대의 관성은 여전히 정신적인 세계를 지배했지요. 멀리 갈 것도 없이 현재에도 80년대를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데 실제 80년대엔 60년대 이전의 각박하고 더 중세적인 태도로 살아가던 이들이 있었을 겁니다. 물질문명만큼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따라가지 못했다는 표현으로 정리되는 간극이죠.


왜 이런 말을 하느냐면, 그러한 어렵고 배고픈 시대를 겪었던 이들은 여전히 살아있고, 그러한 시절의 관성이 여전히 희미하게라도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배를 곯진 않더라도, 그러한 시대를 살아왔고 충분한 교육, 혹은 여유를 가지고 살지 못한 이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정신적 유연성이 더더욱 굳어져갔을 겁니다.


그리고 과거 생각해왔고 받아들여왔던 가치관과 관점으로 여전히 현 시대를 바라보겠지요. 누구누구는 빨갱이고, 어느 정당은 빨갱이이며, 어느 진영과 이념은 빨갱이다. 그리고 빨갱이는 물리쳐 없애야할 적이지 타협하고 협상하는 대화의 대상이 아니다. 까지...


먹고 사는 문제로 여유롭지 못함이 사고와 인지능력에 좋은 영향을 주진 않았을 겁니다. 이는 교육을 통한 기술과는 다릅니다. 농부가 농사일과 농사 기술에 통달했다고 해도, 오랜시간 동안 지식을 쌓아오고 다양한 지적 자극을 처리해왔던 선비의 큰 그림을 보는 능력, 사회적 통찰력에는 전혀 비교될 수 없을 가능성이 큰 것처럼요. 


정치적으로 안정되거나 수준이 높은 국가는 선진국들이 많습니다. 민주주의나 법치, 문민통제, 교육 시스템 등 여러 제도들을 오래 경험해왔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그 나라의 국민들이 그만한 의식수준에 도달해있었기 때문이며, 그러한 의식수준은 그만한 경제적 여유로움에서 찾아올 수 있는 것이지요.


곶간에서 인심나듯이, 각박한 사회였다면 각박한만큼 더 천박하고 더 야비하게 자신의 이익을 찾으며 사회적 신뢰나 정치, 사회적 불문율이 무너지며 관습적 도덕 영역이 조금씩 침해되었을 겁니다. 더 건전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유지하던 조건들이 하나하나 사라져가는 것이지요.


먹고 사는 게 여유로울수록 정신문화는 발달하게 됩니다. 영화나 음악, 미술과 같은 연예, 예술도 그러하겠지만 철학이나 미학, 인문학과 같은 정신적 세계를 다루고 파고들어가는 체계 또한 마찬가집니다. 그리고 이는 개개인에게도 그러한 문화를 더 폭넓게 접하게 하고 더 기준이 높은 눈을 가지게 되죠. 전체적인 의식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반면 그러한 점을 알고 있는 일부 정치인들, 권력자들은 그러한 상황을 경계합니다. 더 낮은 임금 수준, 더 긴 노동시간, 문화에 대한 탄압 등으로 삶에서 인지력의 소모를 발생시키고, 정적을 꾸준히 공격하고, 논란을 내보내면서 그에 대한 대중의 인지력 소모를 유도합니다. 조국에 소모된 대중의 화력은 이후 지금까지 이어진 여러 사건, 공격에서 그 당시의 화력과 집중도가 떨어지죠. 이미 조국 사건 때 많은 화력을 소모했기 때문입니다.


대중의 정신 에너지, 인지력에 소모가 발생할수록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얼마만큼 문제가 있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 사건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집니다. 이런 저런 사건으로 꾸준히 소모되고, 삶에 치이며 이미 자아 고갈에 다다랐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분석하고 하나하나 따져가기엔 투입될 수 있는 정신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정치와 사회가 건전하고,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개개인이 여유로운 환경에 놓여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찾아오는, 맞닥뜨리는 지적자극을 처리하면서 말이죠. 정치와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도 더 많은 정신 에너지와 인지력을 투자할 수 있고, 조금이라도 더 복잡한 사고를 하면서 더 나은 통찰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허접하고 조잡한 논리와 결론을 내놓으며 잘못된 판단을 내놓는 것보다 훨씬 훌륭한 사회를 구성할 수 있을 겁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지적자극을 더 여유롭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여유로운 삶을 산다는 것이고, 이는 경제적, 정신적인 여유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함의하는 것은 많을 것입니다. 나라가 잘 살아야 한다든지, 청년 실업을 해결해야 한다든지, 교육열을 줄이고 잉여로운 시간을 더 늘리게 해줄 수도 있고, 최저임금을 높혀 더 여유로운 경제력을 가질 수 있게 해줘야 하거나, 복지 등 사회안전망으로 정신적 여유를 보장, 부담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핵심은 사람들이 다양한 지적자극을 회피하거나 단순무식하게 처리하기보다 더 여유로운 상황에서 올바른 방식으로 적절하게 처리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사는 것이야말로 건전한 정치환경을 만들 것이라는 겁니다. 지적자극을 처리하면서 형성되는 세계관, 가치관, 관점은 지성만큼이나 다양할 것이고 그러한 다양함은 또 다시 건전한 사회를 구성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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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와 지역 커뮤니티.

https://konn.tistory.com/701

괴베클리 테페에 대하여

cafe.daum.net/Europa/3L0P/5347

메이지 유신: 일본인들이 '태양 너머'를 상상하게 되었을 때

cafe.daum.net/Europa/3L0P/7826




지금은 자삭하신 모양이지만, 과거 첝님이 <이슬람은 왜 이 모양인가.> 라는 글에서, 그리고 비교적 최근까지 작성한 글에서 종교는 단순 신앙의 모체가 아닌 사회적 관계망을 제공하는 기능적 측면을 설명하였습니다. 150명 이상이라는 인지적 한계에 벗어나서도 인구 집단이 유지되고, 서로 전혀 모르는 타인을 사막 위에서 만나도 안전을 확인할 수 있으며 신왕으로서는 거대해진 영토를 감당할 수 없는 통치원리로써의 민족신앙의 한계를 벗어나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 종교라는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지요.


집중해야할 부분은 바로 전혀 모르는 남들, 거대한 규모의 타인이 한가지 정체성과 세계관 하에 크고 작은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의 역할이죠. 오늘 처음 만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신-종교라는 틀 안에서는 하나의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보편성은 그래서 정말 중요한 요소인데, 인종과 성별, 나이와 지역을 떠나서 같은 종교적 정체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에 대한 신앙과 믿음의 사유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개개인 차원에서는 삶의 어려움에서 벗어나 의지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믿음 그 자체가 주는 정신적 만족감, 종교가 품는 거대한 뜻에 신념적 감동을 느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차원에서 종교는 그러한 사회적, 통합적 기능이 매우 주효하게 작용하죠. <한국 교회와 지역 커뮤니티>에서 설명했듯, 사람들이 교회를 가는 이유 중 일부는 인간관계와 정보의 공유를 위해서일 겁니다. 교회만큼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공동의 의식적 행위를 하며 소속감을 공유하고 인간적 관계를 맺으며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은 드물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교회는 단순 신앙을 위해서가 아닌 적극적인 사회활동의 일부가 됩니다. 단순 성경 공부를 하고 교리를 나누고 공동의 의식 행위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개인적인 삶을 나누고 때로는 도움을 주고 받기도 하지요. 뭔가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이사를 가는데 도움을 받거나 집안 가구를 옮기는데 거들어줄 수도 있고 자식 컴퓨터에 이상이 생겨서 컴퓨터에 대해 잘 아는 아저씨에게 상담을 받을 수도 있으며, 결혼을 축하해주고, 부고를 같이 슬퍼해주기도 합니다.


젊은이에겐 새로운 친구나 지인, 심지어 애인을 찾는 창구가 되어주기도 하지요. 


이러한 사회적 관계로 작용하는 교회의 커뮤니티성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아니면 이러한 커뮤니티는 나타날 수 없는가?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가령 동호회나 모임, 동창회나 종친회, 향우회, 특정 직종의 협회 등이 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더, 스포츠가 바로 그러하죠.


다른 집단들이 제각기 규모가 작거나, 정기적이며 잦은 모임이 어렵거나, 다양한 직종과 신분이 모이기 어려우며, 어떤 자격이나 조건이 필요하기도 하다는 점에서 교회 등 종교의 커뮤니티성에 비하면 그 개방성과 규모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교회는 어느 지역에든 있곤 하다보니 이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간다고 해도 그곳의 교회에서 꾸준히 같은 종교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정기적이고 잦은 교류가 가능합니다. 이는 종교로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렇다면 종교와 유사한 개방성과 규모를 가진 다른 정체성을 없을까? 있습니다. 정확히는, 있긴 합니다. 바로 스포츠지요. 스포츠는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집단의 화합을 유도하는 촉매 역할을 햇습니다. 같은 그리스 문명권이긴 했지만, 그 내에서 구분되는 서로 다른 집단들 또한 스포츠라는 요소에 통합될 수 있었지요. 서로 즐기고, 열정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열정은 종교적 열의와도 일부 유사한 부분이 있기도 하지요.


현대에서도 스포츠는 세계인의 화합을 위한 역할로 주목 받았습니다. 냉전 때에도 스포츠로 인류는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희망했고, 서로 다른 국적, 서로 다른 인종, 서로 다른 세대와 성별, 종교의 차이에도 스포츠는 인류를 하나로 묶어 열광하게 만들고 때로는 경쟁하기도 하였지요.


예전 중동 쪽으로 파병 나간 사람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전혀 다른 인종에 말도 안 통하는, 완전히 자신의 세계관과 단절된 험악한 인상의 현지인이 맨유, 박지성이라는 공통된 관심사에서 금방 잘 통하지도 않는 언어로 소통하고 축구 경기를 보며 즐겼다고 합니다. 스포츠는 과장 좀 덧붙혀서, 현대의 종교입니다.


종교가 가지고 있는 요소 중 많은 부분을 스포츠 또한 가지고 있지요. 첝님이 그린 신을 정점으로 하는 관계 연결망에서 신-종교를 스포츠로 치환한다면 꽤 유사한 개념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포츠가 종교를 대체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는 결코 그렇다고 하기 어렵다는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전 세계에 수많은 종교가 있긴 하지만, 보편종교라 불리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 불교계 종교를 제외한 나머지 종교들은 그 세력이 작습니다. 그 지역 내에서는 충분히 통할진 몰라도, 세계적 관점에서 신토는 너무 애매하고, 어느 제3세계의 전통 민족신앙은 설 자리가 없지요.


따라서 대체로 아브라함 계통과 불교로 양분되는 세계의 종교는 적게 보면 서너덧개 정도로 압축될 수 있습니다. 같은 신을 모시는 것치고는 사이가 굉장히 안 좋은 가톨릭, 개신교, 이슬람, 유대교야 그렇다치고요.


그러나 스포츠는 종류가 많습니다. 축구, 야구, 농구 정도가 메이저한 스포츠이고, 지역에 따라 미식축구나 달리기, 무에타이, 하키, 심지어 e스포츠나 체스마저도 포함될 수 있겠지요. 물론 종교도 종류가 많고 세세하게 분류된다면 정말 한도 끝도 없니 분류될 수 있듯이, 메이저한 몇 종목을 제외하면 스포츠도 비슷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톨릭은 대체로 어딜가든 가톨릭이고, 개신교도 좀 차이야 있겠지만 어딜가든 개신교일 수 있으며, 이슬람이나-시아파와 수니파 정도는 구분해야겠지요;;- 유대교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스포츠는 지역마다 리그가 다르고, 그 리그만큼 지역색이 차이가 나곤 합니다. 그리고 리그의 수준에 따라 우열이 나뉘기도 하고요.


이는 바로 이어지는 스포츠의 경쟁성과 결부되어 스포츠의 보편성, 통합적 측면에 어느 정도 대치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즉, 상대가 있어야만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스포츠의 핵심은 바로 경쟁이지요. 상대 선수와, 상대 팀과, 상대 지역과, 상대 국가와 경쟁을 하는 구도입니다.


경쟁이라는 요소는 흥미와 재미, 발전성에 큰 도움이 되는 요소들이지만, 언제나 정도가 지나치게 되는 것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때때로 차별하거나 조롱하거나 아예 훌리건 등 폭력 따위를 휘두를 수도, 폭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등 스포츠맨쉽에 어긋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죠.


또 하나 더, 교회와 같은 커뮤니티성을 가지기엔 꽤나 느슨한, 어떻게 보면 파편적인 관계라는 것입니다. 어떤 스포츠, 더 좁게는 리그나 팀, 선수라는 관심사를 공유하여 같은 정체성 내에 소속될 순 있지만, 어디까지나 스포츠라는 영역 내에서만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교회라는 한 장소에서 주기적이고 공통된 의식을 하듯 경기장이라는 한 장소에서 대체로 주기적이고 공통된 경기를 관람하지만 그 이후, 혹은 그 사이사이 인간적인 관계를 내누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설령 나눈다 해도 자기 친구나 동료, 가족과의 관계일 뿐이고, 다른 사람이나 다른 무리와 알게 된다고 해도 몇명 되지 않는 협소한 인간관계이고 대체로 오래가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커뮤니티성은 경기장에서 같은 팬끼리라기 보단, 영국의 펍과 같은 곳에서 경기를 시청하는 이들끼리 형성되기 더 쉽죠.


스포츠 팬들끼리의 커뮤니티는 대체로 해당 스포츠와 관계된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과 감정을 나눌 뿐, 좀 더 삶에 가까운 곳까지 연결되지는 않으며,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제적 연결망으로 이어져 교감을 나누고 아는 사이가 되는 것과 다르게 대부분의 스포츠팬들은 스포츠라는 거대한 틀 안에 있지만 대규모의 실제적 연결망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단적으로 말해, 팬으로서의 정체성은 형성되어도, 실제 해당 경기장에 모이는 지역사회인들을 수십, 수백명씩 알게 되거나 안면을 트게 되는 일은 좀처럼 없다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종교의 삶에 더 밀접한 면모와는 차이가 있지요. 이렇듯 종교가 제공하는 다양한 부분들은 규모와 밀도 양면에서 다른 영역이 비등하게 제공하기 어렵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신앙과 믿음이라는 요소를 완전히 제외한 채 바라보아도 종교는 여전히 현대에도 매우 중요한 사회적인 기능을 하기에 없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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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좀 더 생각해보니 이슬람, 유대교 등 같은 종교라도 파벌간의 투쟁과 배타성을 너무 간과한 듯 싶습니다. 너무 단순화시켰네요. 하지만 본질적으로 종교가 신을 정점으로 하는 통합, 질서를 요구하는 개념이라면 스포츠는 본질적으로 나누어 경쟁하는 식의 통합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도리어 종교 쪽의 분열과 경쟁, 갈등은 그러한 신의 뜻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더 교조적이고 용납의 여지를 줄인다면, 스포츠는 상대를 말살할 경우 스포츠가 성립되지 않기에 결과적으로 선의의 경쟁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특기할만 합니다.


더욱이 종교는 애당소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혹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도덕적 기준과 행동 및 사고방식을 제시하기도 하다보니 인간의 실제적 삶에 더 가까울 수밖에 없지만, 스포츠는 기본적으로 어디까지나 놀이에 한정된 개념이다보니 삶에 더 가까울 수는 없지요. 스포츠가 스포츠맨쉽, 한계의 돌파, 극기의 극복 등 정신적인 부분에 가르침 따위를 주는 건 사실이지만 어떤 총체적 윤리, 도덕률을 제시하고 지킬 것을 요구하진 않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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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식 소통 태도란 남들이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길게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을 토론이나 논쟁, 혹은 일반적인 소통 상황에서조차 일부러 상대방이 낚이길 바라며 스스로 논파될 장소로 유도하는 식의 소통을 말합니다. 


어디에 원래 이런 용어가 있는 건 아니고, 글을 써서 지적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만든 용어입니다.



간혹 논쟁이나 토론을 할 때 소통 중 자신의 우위와 승리를 점하기 위해 논리나 팩트의 일부를 나열하며 지리하게 이어지는 경우가 발생하곤 합니다. 처음부터 자신의 생각과 근거를 잘 정리하여 논리적으로 서술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박과 논파를 위해 그 일부만을 짧게 내놓고 그것을 상대방이 물어 뜯다 논리적 허점이나 모순을 유도하는 거죠.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상대방을 바보로 만들고 날 더 우월한 지성인으로 설정하기 위해 그러한 상황을 만들 목적으로 주로 발생한다고 봅니다. 논쟁 대상자를 논리적으로 두들겨패고 팩트로 무너뜨리며 유린하기 위한 태도인데, 이런 태도가 성공할 경우 지적 쾌감과 우월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매우 즐겁죠.


하지만 그런만큼 이게 잘 통하지 않을 경우, 상대방도 똑같은 태도로 대응하면 매우 지리하고 무의미한 소통, 논리적 참호전이 벌어지게 됩니다. 서로의 허점과 모순을 찾기 위한 싸움이 되는 거고 이 과정에서 갈등, 분쟁으로 이어지기도 쉽습니다. 다시 말해, 점점 격해지면서 말싸움이 되기 쉽다는 거죠.


생각보다 많은 논쟁은 처음부터 성실한 소통 태도로 임했을 경우 발생하지 않거나 더 생산적인, 유의미한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적어도 분쟁이 아닌 끝을 볼 수 있곤 하죠. 그러나 함정식 소통태도는 그러한 결론을 내놓기 어렵게 됩니다. 처음부터 문제의 핵심을 짚어 그 모순점이나 문제점을 무너뜨린다면 단 한 줄의 논리도 위력을 발하겠지만, 대개의 경우 그렇지 않죠.


하나의 문제에 대해 한두 가지의 결론이 나올 수 있다면 정말 좋고 편하겠지만 생각보다 더 많은 관점과 생각이 제나름의 합리성과 의미를 지니며 가치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덜 합리적일 수 있고, 그 논리적 구성이 탄탄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러한 의견과 주장이 나올 수 있는 바탕엔 의외로 반박하기 어려운 합리성이 존재할 수 있죠. 논리는 좀 허술하지만, 맞는 말일 수 있다는 겁니다.


한 줄의 논리로 논파했다면 정말 멋지고 재밌는 일이겠지만, 실제로 그러긴 어렵죠. 오히려 쿨병 걸린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의견에 논리와 근거를 충실히 마련하는 성실한 소통이 상호 모두에게 이로운 태도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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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난 당시에, ‘여성’의 역할에 갇히는 느낌이 견딜 수 없어서 화가 난 상태였다.

뒤돌아보면 그건 사회적 억압과 내 성정체성, 썩 불행했던 가정사 등등이 섞인 결과였다.

어렸을 때야 우리편 vs. 니네편으로 모든게 단순했지만. 돌아보면 그건 결코 단순치 않았다.

사람 일이 얼마나 복잡한 건데. 하지만 그 때는 상관없었다.

내 정신적 불행을 잠시나마 외면하는 데 ‘사상’만한 게 없었으니까.

일단 겁나 가난한 집안이 싫었고, 오빠와 차별대우하는 부모가 싫었고, 너무 일찍 자각한 내 정체성이 싫었고,

내가 짊어진 짐을 이해할 수 조차 없는 세상이 싫었고. 기타 등등. 모든게 내가 여성이기 때문이면 간단했다.

근데 돌아보면 그냥 이런 생각이 드는거. 그게 뭐? 내가 불행한게 내 주변 개인들 탓인가?

IMF때 폭삭 망한 부모가 나 미워서 날 내보냈을까? 오빠는 잘 되고 나 망하라고 등록금 안보태줬을까?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굳이 호모포비아라서 날 외면했을까?

나에게 겹쳐진 불행들이 어떤 한 사람, 한 집단의 탓인가? 울분을 토하면 그게 사회운동인가?

하지만 그 때, 그쪽 집단 안에 있을 때는 몰랐다.

거의 절대 다수의 내 문제들은 사실 ‘우리편 vs. 니네편’보다 훨씬 복잡했다는 걸.

나를 둘러싼 상황은 더럽게 복잡한데, 이게 단순히 ‘여성의 억압’이라는 필터로 단순화되었을 뿐이라는걸.

난 내가 20년쯤 젊었더라면 요즘 흔한 애들처럼, 깨어있는 페미니스트를 자처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후략)


한 레즈비언 아줌마의 넋두리.


현대는 너무나도 복잡해서 전문가라고 해도 현실의 일부분만을 설명할 수 있을 뿐 그 외의 영역에선 남들보다 조금 더 낫거나 남들과 큰 차이가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어떠한 사회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선 다양한 의견과 다각도의 관점들을 수렴해야만 하고, 그러한 다양성이 충족되는 사회가 건전한 사회의 조건일 것입니다.


그러나 극단주의자, 반지성주의자들은 그러한 사회를 너무나도 간단한 형식으로 파악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큰 오류를 범하고는 하는데, 그들의 지성이 뛰어나지 않거나 관점이 너무나도 편협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이죠. 


문제는 그들이 단지 멍청하기만 한 게 아니라, 고집까지 세다는 점에 있습니다. 다른 시각과 관점을 알지 못하고, 심지어 받아들이고 하지도 않기 때문에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이고 자신의 관점이 진리라고 여깁니다. 저는 이를 독선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들이 어떠한 사회문제나 정치를 판단할 때 자신의 판단이 정의이고 다른 관점과 다른 생각은 틀린 것, 혹은 잘못된 것으로 기준하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은 그들의 모자란 지성과 편협한 시각과 함께 쓸데없는 자존심과 고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상을 판단하고 평가할 때 한두 가지의 간단한 논리와 딱 그 수준의 사고로 제단한다는 겁니다.



제가 보는 소설 중 천마신교 낙양지부(2부는 낙양본부)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작가가 무공에 대해 흥미로운 관점으로 서술하였는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정공은 불세출의 천재(입신의 경지)가 어마어마하게 넓고 뛰어난 통찰력으로 전체를 그려 만든 무공이기에 뛰어난 오성(재능)을 가지고 그가 만든 체계를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는 인재라면 시간이 느릴 뿐이지 꾸준히 올라갈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반면 마공의 경우 위가 아닌 아래에서부터, 자신의 논리와 관점을 점점 체계화시켜 마공을 뜯어고치고 발전시킨다는 점인데, 문제는 이럴 경우 낮은 수준의 체계에선 충분히 통할 정도의 논리와 형식을 갖추어서 별 문제가 없지만, 그 체계를 그대로 쌓아올리다보면 체계 스스로 모순이 발생하고, 그 모순을 해결하지 못할 때 주화입마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잘해야 마공을 잃고 평범or폐인이 되거나 나쁘면 걍 죽죠.


그럼 천마신교의 마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느냐면, 서로 다른 관점과 개념을 가지고 무공을 만들거나 발전시켜가는 다른 마인과의 교류를 늘리는 방식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저변을 넓히는 것이죠. 자신의 무공을 나누고, 자기가 준 만큼 다른 무공을 배우며 자신의 무공이 가지고 있는 근본 한계를 넓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한가지 시각으로 바라보면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개념, 현상이 닥쳤을 때 반드시 오류가 발생할 수 없는 것을, 다른 시각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체계 내로 편입시키면서 모순과 오류를 해결한다는 겁니다.


이는 무협이라는 소설 내의 설명이지만 이러한 관점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느껴지더군요.



애석하게도 세상에는 그런 종류의 바보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반지성주의, 혹은 극단주의라 부르는데, 이는 반지성주의와 극단주의가 같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 공유되는 교집합적인 부분, 혹은 서로가 서로의 이유가 되어주기도 한다는 쪽일 것입니다. 반지성주의자이기 때문에 극단주의자가 되거나, 극단주의자이기 때문에 반지성주의로 빠지거나.. 


일베나 메갈류가 그렇죠. 그들은 매우 편협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수준 낮은 논리와 사고로 판단하려 합니다. 



더 간단한 논리의 선동이 그러한 것을 판단하기 위한 지적능력이나 소모해야할 인지력이 부족한 이들에게서 더 쉽고 광범위하며 빠르게 받아들여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무엇이 문제라면 그것이 왜 문제인지 제나름대로 분석하고 판단할 지적능력이나 그 능력을 활용할 정신력(인지력)이 필요한데, 여유롭지 못할수록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전라도 혐오와 한국 혐오. 가해자의 피해자 혐오.

https://konn.tistory.com/703


앞서 짚었던 편협한 시각, 저열한 지성을 고려해보면, 복잡하고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러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성을 가진 이들일수록 더 간단한 논리의 선동이 잘 먹힐 수밖에 없는 거죠. 최근 많이 비판받고 지적이 나오는 사이버렉카와 그들의 추종자, 무사트와 그 직원들에 대한 공격을 하는 자들이 많고 그러한 행위에 죄책감이나 가책 따위가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들 스스로는 자신의 행동을 정의롭다 여기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들이 비판하는 문제 삼는 현실의 여러 현상과 객체들은 제각기 더 복잡한 설명이 필요한 것들인데 너무나도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걸 더 떨어진 지성으로 판단하다보니 저열한 결론이 나오고, 그들의 쓸데없는 고집은 자신을 정의의 포지션에 설정하는 거죠.


애당초 모든 인간들은 자신을 정의롭고 공정한 판단을 한다 여기지만, 객관적 현실은 전혀 다르게 판단될 수 있듯이, 그들이 비판을 받는 이유는 그들의 행위에 있지 그들의 주관에 있는 게 아닙니다. 



그들이 가지는 한계 덕분에, 그들의 철학도, 신념도 정교하지 못하고, 허술하나 최소한 체계가 정립된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한계와 함께 어떤 것을 판단할 때의 유일한 기준은 자신들이 소속된 커뮤니티에 형성된 분위기거나 그저 자신의 기분, 비위에 불과합니다.


더닝-크루거 효과에 대해서는 익히 아실테니 굳이 설명하고 넘어가진 않겠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이 정의롭고 공정하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똑똑하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을 가르치려들면 감히 나를 가르치려한다며 역으로 가소롭게 여기죠. 정작 본인들의 저열한 지성을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고요. 


너 자신을 알라는 시대를 초월한 금언인 이유가 있는 법이죠. 하여간 자신의 무지함과 편협함을 자각하지 못한 이들이 자신이 독점한 정의의 자신감을 기반으로 오히려 남들을 가르치려하고 넌 틀렸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일베, 메갈이 자신의 태도와 가치관을 자랑스럽고 비판받거나 논파 당해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죠. 지금은 내가 잘 몰라서, 니가 말이 안 통해서 포기하는 거지 내 관점과 사상이 틀린 건 아니다. 라고.


그런 이들이니 공정이나 정의라는 것도 앞서 언급한 기준에 따라갑니다. 소속된 집단의 분위기나, 자신의 기분과 비위. 이걸 직관이라고 하면 직관이겠지만, 그 직관도 지성을 기반으로 하는 통찰력이 있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기존의 윤리나 가치관, 철학이나 사상을 비웃고 비판하고 하는 거야 개인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부터가 그러한 기준을 세우지 않고서는 언제나 이중적이고 사안에 따라 다른 기준이 될 수밖에 없죠. 그 기준은 자신의 기분에 따라 다르고 자신의 비위에 따라 달라지는 가볍기 짝이 없는, 가변적인 물건이 되는 거고요.


일베와 메갈을 위시하는 극단주의자들의 편협성과 독선성이야 너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태도들이고, 단지 이들 집단 뿐만 아니라 현실과 인터넷 어디에서든 존재합니다. 심지어 우리들도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다면 중요한 건 정도죠. 선을 넘거나, 지나쳤다는 표현이 존재하는 이유는 누구도 아닐 수 없는 요소에서 남들과 다름을 구분하기 위함입니다.


인터넷의 악플러들이 연예인이나 일반인을 죽이고, 누군가의 아내를 유산시키거나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이 생기게 괴롭히는 이유는 그들이 어떤 잘못을 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저 자신을 정의라 여기는 편협한 바보들이 독점한 정의를 휘두르는 쾌감에 빠지고 싶을 뿐이기 때문이죠.


반성도, 성찰도, 고민도 없고, 무언가를 판단하고 적절히 설명해내기엔 판단력과 합리성이 부족한 겁니다. 그런 주제에 자신이 대법관이라도 되는 양 모든 것을 공정하고 정확하게 판단하는 뛰어난 지성인이라고 생각하죠. 기껏해야 인터넷에 나돌아다니는 글 몇개 주워읽은 것이 다일 것인데 자신의 판단을 과신하며 뭐라도 되는 듯이 굴죠.


그들의 태도는 소아병적이고, 비대한 자아가 여물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좁아터진 세계관 속에 남이 자리할 공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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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가 특수한 관계에 있는 건 맞는데, 그 기반이 증오와 혐오에 있다보니 더더욱 객관적인 판단력을 상실하고 서로의 관계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우파로 갈수록 그 경향성이 강해지는데, 그들에게 북한은 말살해야할 적이고, 대화나 타협, 협상의 대상이 아닙니다.


예전에 극우보수는 북한이라는 존재가 없어지면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적 기반을 상실하기에 안 되기 때문에 건드리지 않는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만, 이는 정치적 계산하에 이루어지는 결론이라면, 지금 하는 이야기는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그리고 정치적 목적에 의해 조장된 세뇌와 관계된 내용입니다.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가 아닌 이상 다른 국가들과는 전혀 다른 룰에 의해 굴러가고, 전혀 다른 질서와 원칙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한국이나 일본, 서구의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서 같은 잣대를 대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걸 떠나서 북한에도 통용되고 적용될 수 있는 일반 원칙들은 존재하고, 그것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죠.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북한에 대해서는 자기가 알고 있는 상식이 적용될 수 있다는 상상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곤 합니다.



북한이 헌법상 국가가 아니더라도, 이미 90년대부터 사실상의, 현실에 존재하는 국가임을 은연중에, 훗날 거의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즉, 북한과 어떤 진전을 이룩하고 싶다면 대화와 타협, 협상을 해야하고, 마찬가지고 북한에 불만이 있어서 항의하거나 압박하고자 한다면 그러한 대화와 타협,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혹은 국가대 국가로 사용될 수 있는 유의미한 압박 카드를 적용해야 하죠.


하지만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보여줬듯이, 북한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그들이 한 것은 대화나 협상 따위가 아니라 일방적인 조치들이었고,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했거나 되려 자해를 입게 만드는 경우조차 있었죠. 



이는 북한을 국가, 정부로 보지 않고 정상적인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상상 자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북한에게 북한 나름의 주권이 있다고 보질 않는 거죠. 그렇다보니 매우 비정상적인 요구들이 나오기도 하는데, 거의 일방적으로 북한이 굴복하고 우리의 조건, 요구를 이행해야 한다는 입장이 그러하죠.


마찬가지로 북한에서 발생하는 문제, 특히 한국과 관계된 일에 대해서 그들의 조치나 행동이 그들에겐 상식적인, 자기들의 원리와 원칙에 충실한 행위였음에도 그러한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 공분을 일으키거나, 실제 분노할 사안에 대해서도 맥락상 미묘하게 갈리는 입장에서 분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북한 자체에만 적용되는 태도가 아닌, 북한에 대해 판단하거나 표현하는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이번 유시민의 발언도 그렇고, 가끔 나오기도 하는 조금이라도 북한에게 좋게 들릴만한, 혹은 욕이나 증오 표현이 아닌 표현들은 죄다 욕을 먹게 됩니다. 북한과 관계되면 객관성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거죠. 말살해야할 적이기 때문에 객관적 판단이 아예 안 되는 겁니다.


유시민의 계몽군주라는 발언이 비판받을 껀덕지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욕을 먹거나 적으로 규정하거나, 혹은 이미 한 규정이 더욱 강화되는 것은 인지부조화이고, 객관성의 상실입니다.


김정은이 북한을 개혁하고 개방까지 보는 듯한 사인들이 드러나며 기존 체제에서 개변을 원한다면 그걸 뭐라 부를까요? 계몽군주라는 표현 자체가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가 아님을 드러내는 표현이기도 하죠. 왕조 국가라고. 요컨데, 저 표현이 비판을 받을 껀덕지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저런 걸로 열불내는 건 아직도 왕조시대를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6.25 이후, 그리고 독재 정권에 의해 더더욱 조장된 반공정신과 사상이 비판이나 반성, 성찰의 대상이 되지 않는 절대진리의 세계관으로 자리잡은 이들에게 북한은 몇번씩이나 말했듯, 말살해야할 적입니다. 적이라도 타협이 가능한 종류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대화도, 타협도, 협상도, 거래도, 협력도 불가능한 지워버려야할 안티 그리스도인 셈이죠.



그 갈래는 북한 하나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닌 조금이라도 친북적이거나, 좀 더 극단적으로는 혐북이 아닌 이들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에 극우보수 세력이 진보좌파를 대할 때, 대화나 타협보다는 없애버려야할 적으로 규정한 채 없어져야 한다고 여기는듯한 모습들을 굉장히 자주 봤습니다. "빨갱이는 죽여도돼."로 대표되는 가치관이죠.



북한이 적인 건 사실입니다. 종전을 하지 않는 한 말이죠. 그게 아니더라도 의심스러운 잠재적 적국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객관성을 상실한 뒤 할 수 있는 선택지들을 지워놓고 전쟁과 굴복이라는 두가지 버튼만 남겨두고 무한정 대기를 하는 것은 합리적인 운영이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북한에 유리하게 들리는 모든 표현에 빨갱이 필터를 씌우고 보는 경우도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그게 북한이라는 대상이 아닌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인지 먼저 판단해보고, 남북관계라는 특수성 하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지도 같이 판단해봤으면 합니다.


남북관계가 특수한 관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혀 다른 별세계 관계까진 아닙니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 원리와 원칙, 상식을 그대로는 아니더라도, 적지 않은 부분을 적용 가능한 세계이고요. 남북관계에 진전이 있고, 어떤 식으로든 발전을 원한다면 북한을 대하기 위해 좀 덜 감정적이고, 합리적이며 객관적 판단이 가능한 영역에 서서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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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공무원 피살 관련 북측이 보내온 통지문

https://news.v.daum.net/v/20200925143139233
외신, '김정은 사과' 긴급보도.."북한지도자 사과 극히 이례적"
https://news.v.daum.net/v/20200925150206549


북한이 정말 이례적으로, 제가 살아있는 동안 거의 처음으로 보는 북한의 사과입니다. 이건 정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먼저 비교해야할 것은 과거의 사례인데, 현재 반정부세력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이게 정부의 잘못이거나 문재인이 욕을 먹어야 하는 사례인가 하면, 과거의 사건들과 비교해서 북한이 정말 완전히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저 정부를 깍아내리고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시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북한, 금강산 피살 "유감"... 현장조사는 거부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45032
북한 "천안함 무관, 사과 못해"...한국, 유감 표명
https://www.voakorea.com/korea/korea-politics/2692152
[北, 연평도 포격 도발]北 “민간인 사망 유감이지만…”
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101129/32928006/1



박왕자 사건,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사건 모두 북한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당연히 사과한 적도 전혀 없고요. 오히려 한국과 미국 측에 책임을 떠넘기며 공분을 샀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 대해서 북한은, 김정은은 직접적으로 "사과"를 했습니다. 이건 굉장히 이례적인 사례이고, 마찬가지로 굉장히 시사하는 바가 큰 사건이죠.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이겁니다.



1.이 일이 어떻게 벌어진 것인가?


북한은 이미 월경자는 이유 불문하고 모두 쏴죽이라는 지시를 내린 바가 있습니다. 이유는 코로나19 때문인데, 북한은 후진국답게 전염병을 제대로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염력은 매우 강하고, 이 때문에 평양을 봉쇄했다는 등의 이야기도 나올 정도이죠. 게다가 상상하기 어렵지 않듯, 북한의 감염자에 대한 대책은 사살이라 알려져 있습니다.


즉, 일은 이렇게 이루어진 겁니다. 김정은이 감염자에 대한 사살 내지는 특정 지역이나 공간에 집단 감금 수용하여 사실상의 처형을 했을 겁니다. 외부에서 계속 들어와서는 안 될테니 중국인이 됐든 한국, 일본인이 됐든 월경자가 발견되면 위협해서 돌려보내거나 사살했을 겁니다. 대체로 사살할 것이고요. 


해안 초병은 그러한 명령에 따라 한국에서 넘어온 월북자에 대해 사격을 했던 거고요. 이에 대한 전후관계는 북측 통지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사살하고 전염병 감염자의 시신을 처리하는 방법대로 화장을 했을 겁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시신이 아닌 부유물을 소각했다고 하지만, 북한이 이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실제 시신을 태운 거라면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위에서 정한 조치대로 했다고 봐야할 겁니다.



2.이 일이 의도된 것인가?


위에서 서술했듯이, 이는 북한의 의도적으로 했다고 보기 어렵고, 위에서 내려진 행동원칙에 따라 해안 초병이 정해진 명령대로 행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월북자가 나타나면 일단 받아주고(혹은 체포하고) 선동을 위해서든 어떻게든 써먹거나 하지만 다짜고짜 총질하며 사살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간간히 발생하는 월북자나 월북 사고자들이 판문점 등을 통해 송환되는 경우들을 보면 더더욱 확실하죠. 이 경우는 코로나19와 엮여 강력한 봉쇄, 사살 조치를 취하는 시점에서 자진월북 했다가 사살 된 경우이고, 이 일에 김정은 등 북한 수뇌부의 의도가 있는 건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국정원 정보를 보면 더 확실합니다. 


[속보]국정원 "김정은, 통지문으로 보면 사건 보고 못받은 듯"

https://news.v.daum.net/v/20200925165059605


그냥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강력한 지시를 내려놓고 그에 따른 것 뿐인데 잘못 걸린 거죠. 



3.김정은 사과가 의미하는 바는?



한국이 북한을 그동안 동등한 대화나 협상의 상대로 보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북한도 한국을 동등한 대화나 협상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서로 물리쳐야할 적 정도로 규정했고, 이 관계를 깨보자고 했던 것이 김대중, 노무현의 햇볕정책이었죠. 그러나 이는 박왕자 사건과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강제로 셧다운 되었고 문재인 정권에 들어서야 상호주의를 견지하는 대북온건책이 시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남북회담도 있었고, 북미회담도 있었고, 삼국의 정상이 한 자리에 모이기도 했으며, 김정은이 남쪽 땅을 밟아보기까지 했습니다. 문재인 정권 이후로 남북관계는 언제나 좋기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하게 나아갔습니다. 이번 사례는 그걸 분명하게, 그리고 아주 크게 변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죠.


불과 몇달 전만 해도 북한은 한국 정부를 비난했습니다. 이에 대한 사유야 뭐 자기들이 코로나 때문에 이렇게 힘든데 앞으로 나아가자느니 평화를 바란다느니 해놓고 인도적인 지원조차 없다는 것 때문일 거라는 게 추측이지만, 중요한 건 표면적으로 북한은 한국 정부를 비난했고, 이번에는 한국 월북자를 사살했습니다.


그러나 과거 어떤 사례와도 다른 점은 바로 그들이 직접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사과를 표하며 미안하다고 했다는 점이죠. 그동안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어떠한 사과도 없이 유감 정보를 표현하거나, 아예 한국과 미국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과는 아주 다른 태도입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느냐, 분명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만, 북한은 앞으로 자신들이 남측에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을만한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기껏해야 바다에 포나 기관총 좀 난사하면서 물고기와 교전을 벌이는 정도를 제외하면 한국인의 목숨을 의도적으로 빼앗려 하거나 한국 영토를 공격하지 않으며, 주권을 침해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죠.


뭐, 물론 이북 지역을 점유하고 있다는 거 자체가 침해하는 거라면 틀린 것도 아니겠지만 명목상의 명분과 현실적 관계는 다른 법이죠. 우리가 북한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고 해도 실제 북한은 주권을 가진 국가, 독재국가라는 것은 현실이고 그게 현실인 이상 어떻게든 현실적으로 부딪히지 않는 한 진전이 없으니까요. 가령, 국가가 아니라고 대화와 협상을 하지 않는다면 전쟁말고는 남는 선택지라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무의미한 선택지밖에 남는 게 없다는 겁니다.


하여간 북한의 이런 태도는 정말 이례적입니다. 자기 잘못을 인정했다는 건 그 자체로 전례가 되어 앞으로도 북한의 태도와 외교 관계에 영향을 줄 거고, 북한이 나서서 이러한 인정을 했다는 것 역시 앞으로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지 않을 것임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좀 더 정상적이고 발전적인 관계를 원한다는 이야기죠. 


적어도 문재인 정권 이후 실질적으로 한국을 '공격'한 사례는 이번 뿐인데, 전후관계를 살펴봤을 때 북한 정부가 의도적으로 한국을 공격한 사례인 건 아닙니다. 그 이전까진 기껏해야 용궁과 교전하며 자기네 바다에 포를 쏘거나 핵실험을 하는 등 내부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도발이 다였죠.


따라서 북한 또한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원하는 것으로 봐야합니다. 이는 12일 보내왔다는 친서에서도 드러납니다.


[전문]김정은 국무위원장이 文대통령에 보낸 친서

https://news.v.daum.net/v/20200925161641385


이런 친서를 보내놓고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월북자에 대해 즉각적으로 북한 수뇌부가 결정하여 사살 명령을 내려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며 한국인을 공격하는 사례를 만든다? 납득이 되는 설명이 아니죠.


김정은은 오히려 이런 시국에서 대화를 하며 무언가를 얻어내려 할 겁니다. 아무 일 없는데 갑자기 바이러스 운운하며 걱정한다며 유화적인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 자체가 자기들도 힘드니 코로나 백신이든 뭐든 보내달라, 도와달라는 의도로 읽힙니다. 



북한은 지도자의 위신이 다른 나라보다 매우매우매우 중요한 국가입니다. 그렇다보니 사과하지 않으려 하고, 한다고 해도 본인이 아닌 아랫사람이 대신 하곤 합니다. 독재자에게 위신이 깍인다는 건 그만큼 자신의 권위가 상실된다는 거고, 북한은 아예 지도자의 무오설을 주장할 정도로 종교적인 면까지 있죠. 그런 김정은이 직접 사과를 전해왔다는 건 정말 중요한 의미를 가진 사건입니다.



재밋는 점이 하나 있는데, 문재인 정권이 끝날 시기가 얼마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저러한 메시지를 보냈다는 건 그만큼 북한이 급하다는 의미거나, 다음 정권 또한 민주당 정권일 거라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계산이 나왔다고도 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다음 정권 때 또 대북기조가 바뀔 수 있음에도 이런 이야기 안 나오죠. 이러한 대북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 하에 보냈을 거라는 이야깁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이거 가지고 문재인을 공격하는 건 문재인과 민주당의 지지와 정권 통제력이 보이는 것보다 크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들의 세력이 정말 예전같지 않기 때문에 하는 치킨호크 놀이인데, 갈등 상황에서 강경파의 입장에 서는 건 의제를 장악하거나 누군가에게 책임추궁을 하며 더 많은 영향력과 지지를 끌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만 들어보면 마치 전쟁이라도 일으키거나 직접 특수부대 따위를 보내 보복 타격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것처럼 말하지만, 이것은 책임질 자리에 없기 때문에 하는 정치적인 수사들이고, 쉽게 말해 잘 걸렸다 이겁니다. 이러한 발언에 넘어가는 거 자체가 선동당하는 것이죠. 그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연평도, 천안함 때 아무 것도 못했다는 걸 상기해야 합니다.


아 그리고, 통일전선부에서 보내온 통지문의 어투가 했다에서 했습니다로, 다시 했다에서 또 했습니다체로 왔다 갔다 하는 건 아마 강경파와 온건파가 돌아가면서 쓴 것을 그대로 담았기 때문일 겁니다. 이 또한 북한의 내부적인 타협의 결과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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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일베를 위시한 호남혐오자나, 일본의 혐한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피해자를 조롱하고 공격하고 멸시하고 있죠. 지금까지도요. 오히려 있는 문제를 찾아내거나 없는 문제를 만들어내서까지도, 이유를 조작하고 날조해가면서까지 해대는 작업입니다. 


이것을 단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은 틀린 것만은 아니겠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1.

기본적으로, 앞서 말했듯이 전라도 혐오나 일본의 혐한은 공통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전라도가 경상도와 경기도 같은 우월한 지위에 있던 지역에 차별 및 상대적으로 착취 당했던 지역이었다는 것과,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쉽게 말해 수직적 위계서열이 있었으며, 어느 한쪽이 사실상 일방적 가해자의 위치에 있다는 점입니다.


좀 더 문제가 단순한 한일관계를 주 예시로 들겠습니다.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배했고, 그러한 관계는 오랫동안 정신적 우월감을 가져다줬습니다. 그리고 해방 이후에도 수십년간 서구에서조차 가볍게 보지 않았으며, 대단한 경제적, 문화적 업적을 가진 세계대국인 일본에 비해 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분명한 후진국,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이 어느새 일본과 맞먹거나 그 위상을 넘보는 시점까지 오게 되었죠.


이는 일본에게 하여금 언제나 발 밑에 있던 한국이 자신과 맞먹으려 한다는 불쾌감을 안겨줬습니다. 언제나 내 아래에 깔려 있어야 할 아랫것인데, 당당히 허리를 펴고 선다는 게 싫은 거죠.


따라서 일본의 혐한은 단순히 이러이러해서 한국이 싫고 어쩌고가 아닌, 위상의 역전에서 찾아오는 위기감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를 막을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저 깍아내리며 정신승리를 하는 겁니다. 그 위기감을 절실히 느꼈을 때 무역공격을 감행한 것이고요. 사실상 실패했지만.


전라도에 대한 혐오도 그와 같습니다. 독재정권하에 착취와 차별을 받던 전라도가 자신의 위치를 복구하며 남과 같은 대우, 남과 같은 위상을 되찾는, 정확히 말하자면 정상화해가는 것을 거부하고자 하는 것이죠. 물론 독재시절 만들어진 차별의식을 밈으로써, 구시대적 정신의 계승을 통해 젊은 세대 또한 갖추게 된 것도 사실일 겁니다.



2.

이제 인간을 바라보자면.. 삶이 여유로울수록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직접적이게 됩니다. 트위터나 커뮤니티, 게임, 애니, 영화에서 여행, 스포츠, 술자리 등 인간관계나 이성관계마저도요. 경제가 되었든 시간이 되었든 여유가 부족하고 인간관계가 협소할수록 스트레스와 불만을 푸는 방법은 한정적이게 됩니다. 더욱 간접적이게 되죠.


물론 이 직간접적 방법들은 직접적일수록 더 건전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문란해지기도 쉽고 더욱 직접적인 갈등에 휘말리기도 쉽죠.



3.

강약약강은 비열한 것이긴 하지만, 동시에 그게 당연하고 합리적인 본능적 태도임은 사실입니다. 정의로운가와는 별개로 말입니다. 조선시대 양민들이 계급적 차별이나 때때로 폭력의 피해자였지만 동시에 천민에 대한 잔혹한 가해자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훗날 신분제가 없어졌을 때도 그것에 반발했던 것은 자신들의 감정받이 역할을 하는 천민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과 같은 취급과 자격을 얻게 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고요.


양반은 너무 고고하고 와닿지 않을진 몰라도 바로 옆에서, 바로 밑에서 치대는 천민은 곧바로 자신의 혐오와 차별 등 가해의 쾌감을 느끼게 해주는 창구였지요. 물론 실제 역사에서 그 정도로 노골적이고 광범위하며 직접적인 폭력을 행하는 수준은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는 양민들로 하여금 신분적 차별과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역할을 했지요.


요는 감정받이 역할을 해줄 약자, 혹은 그러한 계급이 중간에 낀 이들의 감정받이 역할을 해주고 자존감을 회복시켜주는 용도로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러한 구조는 결코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심지어 항구적이지도 않습니다. 반드시 희생되어야 하는 최하위 계층에 계층적 불만을 거르고 걸러 쏟아낸다는 것이니까요.



4.

혐오와 차별은 그 자체로 우월한 지위를 안겨줍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그런 것처럼 느껴지게 하죠. 이는 자신이 얼마나 대단하고 뛰어난 사람인가와 별개로 가해하는 대상에 비해 우월하게 느껴진다는 게 중요합니다. 거기에서 찾아오는 정신적 쾌감도 작지 않죠.



5.

이번엔 대상을 좀 더 한정지어보겠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베류 혐오종자들의 경우 게임이나 다른 커뮤니티에서 갑자기 정치 이야기를 꺼내곤 합니다. 그리고 혐오자의 태도를 취하죠. 과거 일베는 왜 티를 낼까라는 글을 쓴 적은 있습니다. (https://konn.tistory.com/652) 그 글에서 일베는 사회 낙오자, 잉여인간,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는 이들이라 한 적이 있죠.


그들이 갑자기 정치를, 그것도 혐오적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것 말고는 내세울 게 없기 때문이며, 혐오자의 태도를 취하며 자신의 빈약한 자존감을 회복시켜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활동이기 때문이죠. 무언가를 혐오하고 차별하고 공격하면 자신은 아주 뛰어나고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삶이라는 경쟁에서 탈락한 패배자들이 자신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신이 훨씬 대단한 사람이라 느끼고 싶은 겁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도 이만큼 아는 게 많고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이다. 올바르게 인식하고 사는 사람이다. 라고. 


그렇다고 일베나 일베류 사상과 맞서기엔 더 간단하고 더 노골적이며 더 직관적인 논리나 주장을 하는, 더욱이 그러한 공격에 조롱이라는 유머적 요소를 가미한 일베의 그것이 더욱 재밌고 받아들이기 쉽다는 겁니다. 제공하는 말초적 쾌감이 다르고 이해하기에 더 간단하고 직관적입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문제다. 라는 긴 설명보다 저새끼가 개새끼다. 라고 표적을 가리키고 문제를 단순화(돈 때문이다, 관심 때문이다, 원래 전라도 종자라.. 등등)시킨 것이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더 간단한 논리의 선동이 그러한 것을 판단하기 위한 지적능력이나 소모해야할 인지력이 부족한 이들에게서 더 쉽고 광범위하며 빠르게 받아들여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무엇이 문제라면 그것이 왜 문제인지 제나름대로 분석하고 판단할 지적능력이나 그 능력을 활용할 정신력(인지력)이 필요한데, 여유롭지 못할수록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6.

인터넷 혐오종자 일베충들이야 그렇다치고, 그렇다면 다른 이들은? 더 잘 살고 더 여유로운 이들은 어째서 그러한가 한다면, 사실 그들은 그렇게 여유롭지 못하다는 점과, 오래전부터 그러한 가치관을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 여유라는 개념은 경제적일 수도 있고 정신적인 면일 수도 있습니다. 권력자임에도 아랫사람을 괴롭히거나 부당한 명령을 내리거나 사소한 것마저도 꼬투리를 잡고 굳이 찍어누르는 것은 자신의 권력을 끊임없이 재확인하고자 하는 불안감에서 비롯됩니다. 혹은 자신이 받는 스트레스를 자기보다 낮은 위계에 있는 이들을 통해 해소하려는 것이죠. 앞서 이야기한 감정받이.


혹은 젊은 시절 전라도에 대한 혐오적 가치관을 접하고 별다른 비판 없이 받아들인 이들은 그에 대한 비자발적 가치관적 붕괴나 자발적 편견포기가 있지 않는 이상 오히려 오랜 시간 동안 확고해집니다. 그냥 그러한 태도가 삶이 되는 거고, 자신을 형성하는 가치관, 혹은 세계관의 일부가 되는 거죠.


그러니 이에 대한 비판이나 의식개선보다는 그것을 온전히 보존하고나 하는 욕구와 이에 대한 공격에 방어적 태도를 발생시킵니다. 얼마나 합당한지와 별개로 그저 거부하고 보는 거죠.



7.

가해자가 도리어 피해자를 혐오하는 것은 일견 비합리적이고 이중적으로도 보입니다. 그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피해자의 말살을 의도하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하지만 단지 그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정말 피해자가 아무 것도 아니게 되었다면 혐오하고, 조롱하고, 차별하겠지만 그 이상의 공격성을 보이진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작업을 하는 이유는 위상이 정상화되어 맞먹는 것에 대한 거부반응일 것입니다.



8.

이러한 것들을 조합해보면, 일본의 혐한론자는 자신들의 불만을 쏟아낼 창구로 한국을 선택한 것이고, 그 근거는 식민지 시절의 우월한 지위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성장과 위상의 정상화는 천민이 양민과 맞먹으려 하는 받아들일 수 없는 계급적 반란으로 보이는 것이죠.


이는 단순히 한일관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흑백갈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노예 신분이었고 제도적 차별의 대상이었던 흑인이 자신들과 같은 위상을 가지며 맞먹는다는 것은 그로 인한 우월감을 느끼던 백인들에게 불쾌감을 안겼고, 마찬가지로 그러한 시대를 겪지 않았던 백인에겐 그러할 수 있었던 기회를 상실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전라도가 자신의 위상을 회복, 정상화하는 것이 비호남 전라도 혐오자들에겐 덮어놓고 조롱하고 차별하고 혐오하던 대상이 사라짐에 따라 불쾌감과 위기감을 느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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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자기 전에 했던 생각은 이것보다 잘 정리가 되었는데, 일어나서 글로 쓰니 생각했던 것의 반도 제대로 못 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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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판데믹 상황을 보면서 각 국가마다 방역에 어려움이 있는 약점, 취약점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 또한 다를 바가 아니고요.


미국 같은 경우 인종차별, 저소득 흑인계층, 안티백서, 반사회적 음모론자 및 방종주의자.[각주:1]

유럽의 경우에는 인종차별, 이민자와 난민, 안티백서, 방종주의자.

싱가폴 및 중동 부국은 처우와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외국인 노동자 문제.

남미나 저소득 빈곤국가는 관리가 안 되는 빈민촌과 이를 매개로 하는 범죄, 반군조직.

일본은 관료조직과 정치체제, 정치문화 자체(...)


한국은 고령자, 극우보수, 종교가 그러한 사회취약점이고요. 이번 8.15 태극기 집회에서처럼 동일 시위했던 다른 집단에 비해 분명하게 방역지침을 무시했고, 코로나를 확산시켰습니다. 그 때문에 우려했던 2차 파동이 발생하게 될 것이고, 이번 사태는 신천지보다 위험하고 파괴적일 겁니다.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여러 자료에서 고령자의 반사회적인 행동들은 방역과 행정, 치안에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 이번 사태에 한정해서조차 그렇고 오히려 더더욱 노골적입니다. 심지어 이들 세대는 높은 복지 부담을 안기고 심각한 빈곤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에 어려운 세대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지금처럼 '근대화, 문명화'가 되기 이전의 세대이기 때문에 60~80년대의 폭력적이고 구시대적이며, 심지어 중세적이기까지 했던 가치관을 수십년 동안 겪어온 이들입니다. 다시 말해, 한창이던 젊은 시절 형성된 세계관은 지금 기준으로 후진적이고 반사회적이기 일쑤라는 거죠.


그탓에 현 세대 사람들과, 그리고 현 시대의 행정과 사회적 관계에 있어서 마찰을 빚기 쉽죠. 복잡하고 어려운 건 모르겠고, 그러한 필요성을 이해할 생각도, 능력도 없으며, 문제가 생기면 목소리를 키우고 위압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거나, 최소한 상대방의 말을 전혀 수용하지 않은 채 자신의 주장만 반복해서 우기기만 합니다.


왜냐면 자신이 살아왔던 시대는 그렇게 해야 이기고 손해를 안 보고 때로는 이익을 보기 때문이죠. CCTV도 없고 블랙박스도 없고 고도화된 전산이나 행정 시스템도 없던 시절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다면 목소리로 찍어누르면서 무조건 우기면 최소 반반 가져간다 이거거든요. 지금이야 CCTV나 블박이 있어서 교통사고만 해도 증거가 있어서 뒤집어지는데 여전히 자기 아니라고, 오히려 상대가 박았다고 박박 우기는 이들도 있죠. 


이번 사태에선 아래 자료가 대충 그런 예시죠.




극우보수는.. 예전부터 꾸준히 하던 말이지만, 한국 극우보수의 수준은 정말로 중세적이거나 아무리 현대적 수준에 가까워도 군사독재 시절의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들의 정신세계 자체가 그 시절에서 진보하길 거부했고, 발전하기엔 자신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포기해야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권력과 정체성 자체가 그 시절 그것에 있기 때문에 거부한다는 건 세계관의 붕괴와 가치관의 상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발전할 수가 없죠.


다시 말해, 시대는 변해가는데 문제적 시대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여전히 유지하고 그대로 세상에 적용하겠다는 욕심이죠. 이 욕심 덕분에 한국에 여러 갈등과 문제, 모순들이 발생하는 거고 그 모순이 또 새로운 갈등과 충돌을 야기합니다.


2019/08/15 - [취미/이야기] - 한국 극우보수의 반공과 민족주의적 특이성에 대한 단상.

2019/05/13 - [취미/이야기] - 나경원의 반국가적 국민 인식과 처절한 쉴드.

2018/11/04 - [취미/이야기] - 한국 보수의 태생적 한계와 근원.

2017/04/22 - [취미/이야기] - 우리의 주적은 누구인가.

2017/02/16 - [취미/이야기] - 헬조센론. 국민가축론.

2017/11/07 - [취미/이야기] - 내가 왜 극우보수만 비판하는가?

2016/12/03 - [취미/이야기] - 극우보수의 사상적 근간. 마초 오르가즘.

2016/07/12 - [취미/이야기] - 극우보수가 보는 미개한 개돼지들.

2016/06/29 - [취미/이야기] - 극우보수가 교육을 건드리는 이유.


한국 극우보수 자체가 현대화된 사회체제에 걸맞는 수준이 아니라는 게 가장 큰 표면적 이유죠.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방역지침을 공격하고 온갖 것에 독재라는 이름을 붙히며 공격하고 있습니다. 국가적 위기 속에서도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잘해나가는 정부를 공격하고 무너뜨리기 위해 깍아내리길 서슴치 않죠. 


옛 이야기속 나라를 지키기 위해 연전연승을 이룩하는 장군이 너무 큰 공을 세운다고 처형하고 나라가 망하거나 큰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잘하고 있는 이를 정치적 득실 문제로 공격하는 근시안적이고 반국가적 세력이 극우보수입니다. 자기들이 책임질 것도 아니라면서요. 어떤 문제가 발생하든 이전 정권을 욕하고 탓하면 그만이니까.



심지어 한국 극우보수와 개신교회는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이미 전광훈, 이만희와 같은 종교인이나 소망교회를 비롯한 여러 교회, 한기총의 수뇌와 친밀한 관계에 있다는 건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고요. 더욱이 산발적이긴 하나, 몇몇 교회에선 보수편향적인 정치적 주장과 선동을 목사, 장로라는 사람들이 공적으로 연설하는 경우조차 알 사람은 알 겁니다.


종교적이라는 용어는 대체로 합리적 사고와 이성적 판단에서 거리가 있는 무조건적 믿음과 근거 없는 신뢰를 비판할 때 쓰이는, 대체로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광신의 뉘앙스가 있는 말이죠. 그리고 이번 사태에서 전광훈의 사랑제일교회 등 여러 교회에서 발생하는 방역 적대 행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교인들의 행동은 종교적 리더쉽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자생적이고 산발적인 반사회적 행동들이죠.


그리고 그 행동들은 종교적입니다. 가령 그들은 문 정권이 자기들을 타겟팅하여 음성인데도 양성으로 조작한다고 믿고 있죠. 이는 전광훈을 비롯한 목사들의 종교적 리더쉽 하에 일어나는 일이지만, 이만희와 다른 점은 이만희를 잡아서 신천지의 조직력과 활동을 와해시키는 것과는 별개로 이들의 행동은 단일 조직적이거나 수직적 위계의 권위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말했듯이, 자생적이고 산발적입니다. 전광훈과 사랑제일교회 등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구호는 종교적인 게 드뭅니다. 거의 다 정치적인 구호들이죠. 다시 말해 이들은 종교적 활동이 아닌 정치적 활동을 종교적 리더쉽하에 이루는 것이며, 단순히 종교적 이유로 방역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 이유로 방역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즉, 정치적 동기와 종교적 조장에 선동된 거죠. 그냥 선동된 게 아닌 그게 세계관 자체이고 그 세계관에 합치되는 내용에 등떠밀고 부추겨진 것이기 때문에 거부감조차 없습니다. 스스로의 신념적인 행동인 셈이죠. 자생적이라는 말의 의미이고 산발적인 이유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단지 조직적이기에 그 실천이 적극적일 뿐입니다.



이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교회와의 연결고리가 삶의 핵심을 차지하는 요소라는 겁니다. 그 비중이 너무 크다보니 단순히 소모임이나 회식, 활동 같은 거 하지 말라는 것조차 그들에겐 삶과 사회적 활동의 일부를 포기하라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거부감이 큰 거죠.


이런 모든 이유 때문에 정부의 지시와 방역지침을 개무시하고 반사회적인 활동을 반복하는 겁니다. 이미 신천지 때문에 한국 개신교회의 방역 적대 행위와 테러행위는 수차례 발생했습니다. 교회 자체가 돈과 관계된 이권이 상당하고, 그런 수익을 포기하기 어렵다보니 이런 시국에서도 계속 교회를 열려는 거고 수익 땡기려는 거거든요.


심지어 정치성향이 정반대에 문 정부를 아예 북한과 결탁한 세력으로 낙인 찍고 협의나 협조, 대화의 대상이 아닌 없애고 무너뜨려야할 적이란 관점으로 바라보니 대화가 안 통하죠. 이권부터 정치적 관계까지, 적대적인 게 너무 커서 말도 안 듣고, 도리어 정신병적 광신과 극우적 정치병이 합쳐져서 이 사태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한국에서 방역 취약점은 고령자, 극우보수, 종교입니다.


이 사태가 어떻게든 끝난다면 추후 필수목표는 단순 시스템만 잘 만들거나 만들어진 시스템 아무리 잘 굴려고 판데믹이나 그에 준하는 상황에서 전국적 감염병 발생시 방역을 무력화하는 정치사회적 취약점을 잡아내고 그에 대한 선제적이고 공격적 대응이 필요한 연구사례가 되지 싶습니다.


가령 방역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세력에 대한 초동적 조치나 집중적 감시와 관리, 방역이 뚫린 상황에 대한 즉각 대응체계의 수립 같은 것 말입니다. 



덧. 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전체 개신교회 중 일부만 발생시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종교 시설 중 발생하는 문제 대부분이(알기론 전부가..) 교회라면 그게 종교의 문제라는 건 비약이되, 교회의 시스템이든 교인이든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심지어 발생한 이후 그들의 반사회적 활동과 동기는 종교적 리더쉽 내지는 상호관계를 기반으로 합니다. 카톡 등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피해자 심리를 형성하며 어떤 태도나 대응을 해야할지 정하기도 합니다. 종교가 문제라면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유지될 수는 없었겠죠. 하지만 교인과 신도들은 문제일 수 있습니다.

  1. 자유주의자라고 하기엔 너무 무책임하기 때문에 임의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자유주의가 깊게 뿌리내린 유럽 등 서구 국가에서 자유라는 이름하에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이들을 통칭합니다. 가령, 국가는 자신들의 자유를 통제해서는 안 되며 그에 대한 반발심리로 도리어 마스크 등 방역지침을 따르지 않고 밖에 나가서 사교 활동을 하는 이들처럼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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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근대화가 이루어지기 이전 각 마을, 고을 등에는 여러 계층과 집단에 의해 형성되는 지역 커뮤니티가 있었습니다. 고을처럼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곳이라면 직종이나 고을내에 구분되는 지역, 성별 등으로 구분되는 커뮤니티가 있었을 것이고, 작은 마을이라면 요즘으로 치자면 마을 회관 같은 곳, 마을마다 있는 정자 같이 사람들이 모이기 좋은 곳에 동네 사람들이 모이면서 소통이 이루어졌을 겁니다.


전근대라곤 해도 정보의 중요성을 모르진 않지요. 다만 필요한 정보의 종류와 용도가 달랐을 뿐이고요. 마을이 어떻게 돌아가고 농사가 잘 되는지, 어느 집 누구가 누구랑 무슨 일이 있었고 누구 집 소가 새끼를 얼마나 낳았는지, 윗 고을에 가봤던 김씨네가 하는 이야기들이나 간혹 들리는 장사꾼들의 딴 지역 이야기, 소금 가격이나 새로 부임한 고을 원님 소식, 나랏님들 이야기 등등..


작고 정체되어 발전이라곤 그리 없을진 모를 마을이지만 세상 돌아가는 걸 알고 필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꾸준히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작은 사회 나름의 소속감과 안정감을 유지시켜주는 핵심 요소이기도 하고요. 서로가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실용적으로 사용하거나 인간관계를 조정하기도 하고, 앞서 말했다시피 그 자체로 소속감과 안정감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기도 하죠.


이러한 지역 사회의 크고 작은 커뮤니티들은 지금도 전 세계에 존재합니다. 미국 중산층들은 여러 모임과 식사 초대, 파티, 아예 봉사활동이나 자경단 활동, 스포츠 등 여러 사회적 활동 등을 이루며 사회적 관계를 꾸준히 유지시킵니다. 그러한 사교적 활동은 간혹 과하다싶어서 그들에게 알게 모르게 왕따를 당하거나 기피되는 경우도 있으며 그런 이웃이나 지역 내의 사회활동에 참여하지 않으면 손가락질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하죠.



이러한 커뮤니티의 해체는 사실 거의 모든 국가들이 크고 작게 겪는 일이긴 합니다. 산업혁명을 필두로 산업화, 근대화가 되가면서 기존의 농촌사회가 해체되며 도시로 상경하는 등 지역 발전과 인구 이동이 발생했죠.


한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일제시기 근대화가 이루어지고 공장들이 세워지면서 농촌이 점점 해체가 되었고 농부에서 공장 노동자가 되는 등 농업 사회의 커뮤니티는 그 크기가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도시의 근대적 학교나 일자리, 교회나 성당 따위에서 새롭게 커뮤니티가 형성되기도 했죠.


그리고 여기가 진짜 중요한데, 한국 전쟁이 터지고 나서 대규모 인구이동이 발생했죠. 이는 거의 기존 계급적 사회관과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없어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적잖은 양반 집안은 양반 가문의 어르신이었고, 노비는 여전히 노비였습니다. 수많은 천민들이 신분제가 없어졌지만 그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거의 인종차별 수준으로 존재했었죠.


한국전쟁은 그러한 신분적 관념 또한 불 속에 소멸시켰습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섞이고 하다보니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신분이나 계급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게 되었죠. 숨기면 알 방법도 없고.


근데 이 한국전쟁은 많은 것을 없앴지만 지역 사회의 커뮤니티 또한 없앴습니다. 사람들이 피난가고 정착하면서 너무 많이 섞였거든요. 같은 도 내에서라곤 해도 사는 지역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었고.. 전쟁 이후 먹고 살기 위해 또 떠나거나 모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정보와 소식의 교류는 정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 거죠. 새롭게 재편된 질서와 재정립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보려면, 이익이고 뭐고 생존하기 위해서라면 정보가 필요했습니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맺어지는 관계와 형성되는 커뮤니티도 있겠지만, 한계는 명확하죠.


옛날처럼 농부는 농부끼리, 상인은 상인끼리, 관료는 관료끼리 모여서 자기들이 속한 영역 내의 정보, 그 영역에서 필요한 정보만을 주고 받는 게 아니라 다른 여러 직종과 계층의 정보들이 필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작은 마을 수준도 아니고 변화와 발전이 빠른 도시이다보니 중심적 역할을 하는 커뮤니티가 꾸준히, 적당한 인구풀로 유지되기란 어려운 일이었죠.


여기서 교회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종교라는 소속감과 집단적 정체성을 제공해주고, 모일 공간과 소통할 장소를 제공해줬기 때문입니다. 직종이 다르고 집도 꽤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나이도, 성별도 다 다른 이들이 신앙이라는 매개로 교회라는 장소로 모이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장소에서 농촌사회의 객채에서 산업도시의 주체가 되어 해맸던, 갈증에 시달리던 이들이 정보 교류와 사교에 매우 활발했다는 것 쯤은 알만한 일이지요.


정리하자면, 교회는 기존의 지역 커뮤니티가 해체된 이후의 근대화, 산업화된 사회에서 기존 커뮤니티 역할을 완벽하게, 혹은 그 이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창구가 되었다는 겁니다. 교회 자체가 지역 커뮤니티로 기능하게 된 것이지요. 이는 원래 유럽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역할이지만 말입니다.


그 덕에 교회는 쉽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거고, 종교와 신앙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신실한 종교집단이라기 보단 세속적인 가치와 질서와 매우 가까운 형태를 보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전통 민간신앙과 섞여서 개신교라는 이름의 다른 무언가를 보는 기분이 들 때도 있곤 합니다.


신앙과 종교 그 자체를 이유로 교회에 간 것이 아니다보니 말입니다. 물론 신앙이 없는 것도 아니고 배워서 나쁠 것도 없으며, 그 내용이 사실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 것도 사실이죠. 시기적으로도 신이라는 초인에 기대고 싶은 거친 시대였기도 했고..


물론 안 좋은 영향이라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중세나 왕정 수준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진 이들과 전쟁 을 거치며 남쪽으로 내려오거나 친일 행적 때문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이들이 종교인으로 둔갑해서 사회적 영향력과 존경을 받기 위해 생존형 목사 따위가 된 이들의 기독교와 엮여서 마치 중세 기독교가 보여줬을 법한 악덕을 발생시키기도 했고.. 돈과 사람이 모이니 정치권력이 군침을 들이거나 아예 적극적으로 야합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돈 있고 영향력 있는 이들이 정치인, 법조인, 경찰 따위와 친해지려는 건 흔한 것처럼요. 혹은 본인 스스로 정치를 하기도 하거나.


한국 개신교가 가톨릭에 비해서 질적 관리가 안 되고 세속적이며 정치적인 경우도 많고 사실상 기업화된 사례도 있으며 여러 문제가 있고, 그런 문제가 있으면서도 여전히 세력이 거대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종교 그 자체를 위해 만들어지고 신앙을 위해 사람이 모였다기 보단 여러 이해관계가 엮이면서 형성된 것이 한국 개신교회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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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일뽕이라 불리는 이들이 실제 사회, 생활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살고, 어떠한 입장과 처지에 있는지는 개인마다 다 다를 것이고, 그렇기에 성급히 정의내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글에선 크게 두가지 범주로 나눠보려고 합니다.


하나는 한국 사회의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못한 이들.

다른 하나는 한국 사회의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않아도 되는(혹은, 않고자 하는) 이들.



그러나 먼저, 일뽕으로 한정 지었지만, 정체성이라는 건 언제나 한가지 뿐만은 아니고, 이러한 사례가 한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그리고 일뽕이 아닌 다른 종류로 발생 가능하다는 것을 짚어야합니다. 따라서, 일뽕이라 한정지은 것은, 그것을 대표적 예시로 하고자 함이지 그것이 다가 아님을 알아야 하죠.


한 국가, 한 집단 내에서도 여러 정체성이 나뉘지만, 기본적으로 그러한 집단을 이룰 수 있는 거대하고 포괄적인 정체성이 있긴 합니다. 가령 우리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는 것처럼요. 한국인이란 정체성을 이루는 여러 구성요소들이 있죠.


근데 가끔 이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편입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많은 이유들이 있는데, 학교를 예시로 설명하자면, 엄청 잘나가는 애들이 있고, 평범한 애들이 있고, 그 평범한 애들 사이에도 끼지 못하는 애들이 있습니다.


편의상 각각 탑, 미드, 바텀이라는 간단하고 익숙한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일진이나 공부를 잘하면서도 집안 좋고 잘난 인싸들이 탑, 평범한 애들이 미드, 왕따 등 따돌림을 당하는 이들이나 특별히 친구로 지내지 않는 아싸가 바텀이라고 규정하겠습니다.


이중에서 가장 많은 건 미드 계층이고 학생이라는 집단의 주류 정체성에 해당하는 이들입니다. 좀 직관적으로 설명하자면, 흔히 '애들'이라고 하면 해당되는 이들이 이 계층이죠. 


탑 계층의 경우 인기가 많고, 영향력도 큽니다. 다만 역시 소수에 불과하죠. 먹이사슬의 최상위층이고 미드 계층은 이들을 동경하거나 두려워합니다.


바텀 계층은 모두가 싫어하거나 호감을 보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괴롭힘 당하거나 무시 당합니다. 친구가 없거나 자기들끼리만 어느 정도 알고 지내지만 그마저도 그리 적극적이지 않고 그들의 불행에 나서주지도 않습니다. 다시 말해 서로가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 집단은 아닙니다.


여기서 계층의 동경, 호감 등 방향성을 읽어낸다면 미드 계층은 탑 계층을 두려워하거나 동경합니다. 이는 사실 비슷한 개념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탑 계층이 될 수 있다면(될 능력이 있다면) 기꺼이 되고자 하고, 그러한 탑 계층의 구성원과 알고 지내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반대로 바텀 계층에 대해선 혐오 내지는 무시를 받기 때문에 누구도 그 계층에 편입(추락)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같이 알고 지내고 싶어하지도 않고, 적극적으로 괴롭히거나 배척하기도 합니다.


현실 사회에도 이러한 구조는 어느 정도 적용이 되는데, 상류층과 중산층을 포함하는 서민 계층, 그 아래의 하위 저소득층이나 수급자 등등이 해당되죠.



한국에 존재하는 주류 정체성의 비중은 서민에 의해 형성된 것들이 많습니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건, 탑 계층(상류층)은 그 아래로 떨어지기 싫어하고, 미드 계층(서민)은 바텀 계층으로 떨어지고 싶어하지 않다는 거죠. 그리고 하위 계층은 위로 올라가고 싶어하지만, 그럴만한 수단이나 능력 등등 부적합한 경우가 있으며, 집단으로 읽을 경우 그 이상으로 교육이나 재산, 빚 등등의 문제를 가진 경우도 있고요.



인터넷에서 보는, 가령 디씨 역갤 같은 곳에서 보였던 일뽕의 경우 실제로 한국이 못났고 일본이 우월하기 때문에 일뽕에 빠진 게 아닙니다. 그저 그들이 한국의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못했기 때문에 반동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뿐이죠.


사람은 집단에 소속되어야 하고, 개인으로서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집단 등 특정 정체성에 소속되길 바라고, 되도록 그게 자신의 자부심과 명예욕, 과시욕 등을 충족시켜주길 바라죠. 되도록 비교되고 우월하고자 합니다. SKY 대학생들이 하위 대학생들에 비해 더 큰 자부심과 명예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때때로 그걸 (적극적으로까진 아니더라도) 비교하며 과시하기도 한 것처럼요.


문제는 일뽕을 비롯한 하위 계층 중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못한 이들이 새로운 정체성을 찾게 되는데, 주로 외부에서 찾게 되죠. 내부에서 자신이 소속될 수 없기도 하고, 소속될 가치가 없는 정체성을 거부하기도 하기 때문에요.


한국의 경우 가장 가깝고, 비슷하며, 이입하기 좋고, 정보를 얻기도 상대적으로 쉬우며, 무엇보다 한국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고 지금도 어느 정도 그러한 위치에 있는 일본에 이입하는 겁니다. 즉, 한국의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못하자 그에 대한 반동적 태도로 한국보다 우월한 일본의 정체성을 가지려 하는 거죠. 다시 말해 자존감의 문제입니다.


반드시 일본일 필요는 없습니다. 누군가는 일본일 수도 있고, 미국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이해는 어렵겠지만 북한일 수도 있죠. 이 경우는 좀 드물긴 합니다만, 실제 종북 중 일부가 그러한 계층적 패배자이자 교육 수준이 낮고 심지어 정신적 문제도 있는 등의 경우가 있곤 하는 걸로 압니다. 정말, 아주 드물게요. 


얘넨 이석기 같은 부류와는 또 다릅니다. 자신을 핍박하고 잘 살지도 못하게 괴롭히는 한국은 밉지만 한민족을 배신할 순 없고, 그런 한민족을 핍박한 타 민족을 빨 수는 없으니 한국과 한국인들을 짓밟아줄 강력한 무력이나 정체성을 찾으니 그게 북한이었던 괴랄한 경우죠.


일뽕은 자기들이 한국인들보다 우월하고 그런 이유로 한국을 업신여깁니다. 왜냐면 자기들이 열등한 위치에 있으면서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못하고 있거나, 그러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대신 자신의 위치를 남들이 무시하거나 조롱하기도 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본인 스스로 열등감을 가지기도 하죠.


그러니 외부 정체성으로 자신의 자존감을 채워야 했습니다. 위에서 열거한 일본인 이유가 있지만, 실은 거기에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합니다. 매우 저열하고 말초적인 이유인데,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한 경험이 있어서죠. 그러니 식민지배를 당한 후진국 한국과 한국인보다 정신적 일본인인 본인들이 훨씬 우월한 거고, 그 우월한 위치에서 한국인을 조롱하고 무시하는 겁니다.


날 병신으로 보는 한국인들을 원 없이 비웃고 조롱하고 공격하기 위해서요.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인 남을 공격하는 겁니다. 쓰러뜨리거나, 그러지 못한다면 꾸준히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음을 확인하고자(or 그렇게 믿고자) 깍아내리는 거죠.


학교의 찐따들이 평범함을 거부하고 일진 같은 잘나가는 애들을 도리어 증오하다시피 거부하는 이유는 그들이 별났나거나 일진 같은 애들을 엄청나게 증오하기 때문만은 아니고, 그러한 위치에 도달할 수 없기에 다른 정체성을 찾는 겁니다. 현실에서 쳐맞고 다니는 애들이 인터넷에선 여포이거나, 커뮤에 심각하게 빠져 중독되는 일이 발생하는 이유죠.


현실에서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못하고, 스스로 그러한 정체성을 구성할 수 없으니 가상세계로 파고드는 겁니다.


미국 슬럼가 등 거리의 흑인 무리들이 백인 중산층이나 상류 엘리트를 무시하고 정부의 권위를 씹는 이유는 그러한 우월하고 안전한 정체성에 포함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봅니다. 심지어 될 가능성조차 없으니, '저 포도는 신 포도'인 셈이죠. 마찬가지로 사회의 찐따들이 한국인의 주류 정체성에 평범하게 편입될 수 없으니 외부 정체성을 가져오는 거고요.


ISIS가 한창 흥할 때 유럽에서 그러한 이념에 동화되거나 받아들이는 이들이 생기곤 했었죠. 실제 테러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지만, ISIS로 향하거나 하는 이들이 생기긴 했습니다. 심지어 한국에서도요. 이 또한 외부 정체성을 찾기 위함입니다.


이민자 1세대야 그렇다쳐도, 2세대 밑으로는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음에도 유럽의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못하고 여전히 이민자, 무슬림, 그것도 테러나 저지르는 문제적 민족이라는 인식에 차별 당하고 공격 받으니 자신을 배척하는 유럽의 주류 정체성을 본인 스스로가 배척하고(내쫓긴 게 아니라 내 발로 나간 거다. 라는..) 대신 외부의 속시원한 정체성을 찾았던 겁니다. 그게 ISIS였던 거고요.



뭐.. 여기까진 차별 받거나 열등감이 있는 하위 계층에 대한 거고..


맨 위에서 말했던 한국 사회의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않아도 되는(혹은, 않고자 하는) 이들. 에 해당하는 이들은.. 쉽게 말해서 정몽준 아들 같은 케이스입니다. 워낙 잘 살고 남들 머리 위에 있는 천상계의 상류층이다보니 그 아래에 있는 이들과 다르다는 거죠. 쉽게 말해 난 너희와 달라. 이겁니다. 


미드 계층이 바텀 계층과 동일시 되기 싫어하고, 그들과 아예 같이 있는 걸 배척하기도 하는 것처럼, 상류층은 그 하위 계층과 적극적으로 어울리진 않죠. 아예 무시하는 건 아니더라도. 하지만 탑 계층에 있던 이가 그 하위 계층과 동일시 되면 기분은 나쁠 수 있습니다. 계층 정체성에 위기감을 느낀다면 아예 손절해버리기도 하고요.


하도 잘나고 잘살고 있으니 아득아득 사는 이들이 천박해보이고 그런 천한 서민과 동일시 되기 싫다 이겁니다. 같은 한국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남들과는 다르다는 엘리트 의식, 선민사상. 이런 의식이 주류 정체성은 아니죠. 얘네가 일뽕 같은 것에 빠진다면 프랑스어를 쓰던 러시아 왕족, 한자를 쓰던 양반 계층처럼 서민보다 우월하다는 우월주의 때문이지 주류 사회,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겉으로는 잘나가고 잘 사는 그들을 서민은 동경하거나 부러워하죠. 단지 그런 차이일 뿐입니다. 뭐 이런 우월주의나 선민사상 같은 거야 상류층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거긴 합니다. 하위 계층에서 볼 수 있는 열등감과 자존감 문제로 외부 정체성을 끌어오는 것도 특별한 일은 아니라고 보고요. 모든 이들이 그렇지는 않을 뿐.


이러한 문제는 단지 그 뿐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ISIS의 정체성을 받아들인 이들이 그렇듯, 반사회적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겁니다. 원래 소득이나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범죄율이 높다고는 하지만, 이 사회의 정체성이 아니고, 다른 사회의 정체성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러한 간극에서 반사회적인 행위가 나타나기 쉽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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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문제는 별 거 아닙니다.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죠. 다만, 이 문제는 비판하려면 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냥 넘어가도 무방한 사안이 아닌가 한다는 거죠.



먼저, 어느 장소든 드레스코드는 존재합니다. 학교부터 장례식장, 심지어 일부 직장마저도 드레스코드를 지킬 것을 요구합니다. 시간과 장소에 맞는 옷을 입는 건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 예의고요. 이에 국회 또한 예외일 수는 없고, 국민의 대표로서 일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러한 드레스코드는 단순 엄숙주의가 아닌 국민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죠.


하지만 반면,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폭력적 의미가 담긴 옷 따위가 아니라면 굳이 옷을 가지고 뭐라고 하는 것도 지나친 엄숙주의일 수 있습니다. 국회가 존중과 예의가 필요한 곳이라지만 지나친 엄숙주의 또한 권위주의의 상징이고 국회가 그렇게 엄숙하고 엄격한 드레스코드가 필요한 장소인가에 대해 명확한 합의가 있는 것도 아니죠.


마찬가지로 일반 국민들은 저 정도 복장으로 어느 정도 격식을 차리는 곳에 자유롭게 나가는 편입니다. 물론 장례식장이면 무례한 건 맞지만, 국회가 장례식장은 아니죠. 장례식장만큼 처참한 일이 종종 벌어지는 곳이기는 하다만..



개인적으로 국회가 너무 난잡해지지만 않는다면 여러 다양성이 함께하는 자리여서 나쁠 건 없다고 보기도 하고요.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긴 합니다만.. 류호정 건과는 약간 차이가 있긴 합니다. 강기갑의 한복 같은 경우 당시 우리 지지자들은 비싼 정장 쉽게 입지 못하니 그 대표인 우리가 정장을 사입는 건 위선이다 라면서, 또한 자타가 공인하는 농민계층의 대표로 그러한 상징성을 위해서라도 한복을 입었죠.


더불어 유시민도 권위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 넥타이 안 하고 하얀색 단색바지를 입고 갔습니다. 이것도 국회의 금기라고 해야하나, 그런 걸 깬 거고 당시에도 논란이 좀 있긴 했습니다만, 사실 넥타이 안 하기는 90년대 후반부터 청년들 사이에서 퍼져나가던 양식이었꼬, 백바지도 세미포멀 스타일에서 흔히 이던 재질의 바지만 색만 다른 걸로 입은 겁니다.


당시 유시민에 대한 비판 여론은 주로 장년층이었고, 젊은 청년층에서는 오히려 호평이었다고 하죠. 



다만 이들이 류호정과 다른 부분은, 유시민은 사전에 인터뷰를 하면서 이렇게 입고갈 것이다 하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실천한 거고 정장이라는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도 않은 채로 국회의 탈권위를 위한 퍼포먼스였죠.


류호정 같은 경우 청년 국회의원 모임에서 밝혔다고 하는데, 솔직히 그건 누가 알아줍니까? 국민에게 밝히는 게 아니라 동료 국회의원들에게 밝히는 건 그냥 자기들끼리 친목하는 자리에서 나 이렇게 입고갈 거야 하는 것 뿐인데, 무책임한 태도죠.



류호정의 이번 원피스는 그런 면에서 문제가 됩니다. 옷입는 거 가지고 뭐라고 하긴 뭐하지만, 안 까일 수는 없고 까려면 또 깔 수는 있는 그런 거죠. 이건 류호정이 정당하기 때문이라기 보단 그러한 것을 정당함의 범위로 인정해주는, 바라봐주는 사람들의 관용에 달린 일이거든요.



왜냐하면, 내 복장이 상대에 대한 예의냐 아니냐는 입는 내가 아니라 보는 사람이 결정하는 거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것이라도 협의 과정이 필요한 자리는 분명히 있고요. 국회는 입법기관이고, 국회의원 개개인 또한 입법기관입니다. 이들은 국가라는 개념을 이루는 일부에 속할 정도로 중요성과 대표성이 큰 위치이고요.


류호정은 그 과정을 매우 의도적으로 무시한 건데, 사전 인터뷰를 한 것도 아니고 동료와의 친목 중에 밝힌 것일 뿐입니다. 그저 난 말했다. 말 했으니 문제 없다. 이런 태도라고 보지 않을 수 없죠. 심지어 지난 맹인안내견 같은 필수적인 부분도 미통당에선 뭐라고 말했죠? 국회 관행을 변경해야 한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고 들어갔죠.


심지어 맹인안내견은 정파와 무관하게 반대할 이유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었고요. 류호정은 이런 과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관심 받기 위한 쇼라고 보는 거고, 그마저도 매우 무책임하고 무례한 태도이죠.



이는 그 인간 개인의 인성이 아직 어른이 못 됐다고, 사회성이 덜 여물었다고 봅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면 롤 대리로 회사들어가지도 않고, 그걸 들켜서 짤렸을 때 억울해하지도 않으며, 그런 자신의 과오와 잘못을 무시하고 얼굴 뻣뻣이 들고 다니지도 않습니다. 그건 당당한 게 아니라 뻔뻔한 거죠.


이번 논란에서 류호정의 가장 큰 문제는, 태도 문제입니다. 자신이 하는 건 무오한 거고 무결한 것이며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꼰대거나 한남일 뿐이라는 태도. 자신에 대한 비판을 무의미한 성대결로 몰고갔다는 겁니다. 본인의 몰상식과 무례함, 관심 받고자 하는 비대한 에고에서 비롯된 문제를 타인에 대한 공격으로 벗어나려고 한다는 거죠.


이건 과거 신한국당, 한나라당 등 시절 수준 낮은 인물들이 논란만 터졌다하면 자신을 비판하는 세력을 빨갱이, 종북, 진보 꾼세력에 선동당한 무리로 몰고가던 것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류호정이 갑자기 국민들에게 밝히지도 않고 원피스를 입고간 이유는 너무나도 뻔합니다. 그냥 어그로를 끌기 위해서죠. 단지 어그로로 끌면서 관심 좀 받겠다는 게 아니라, 국회의 엄숙주의, 권위주의를 용감하게 타파하고 맞서 싸우는 당당한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얻고, 좀 더 노골적으로는 그런 걸로 칭찬 좀 듣겠다고 하는 게죠. 난 남들과는 달라라는 중2병적 멘탈리티로요.


옷을 뭘 입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민들에게 밝히지도 않고 자기들 친목질 자리에서 밝히고는 그냥 들어와놓고 비판 받으니 반성이나 수용은커녕 되려 성대결로 몰고가고 있죠.


류호정이 비판을 받고 욕을 먹는 게 이런 부분입니다. 성희롱들이야 문제가 되는 건 맞지만, 그것과 별개로 자신에 대한 비판을 듣지 않겠다는 여기저기서 흔히 보던 무책임한 아몰랑 니가 잘못한 거야 태도가 문제인 거죠. 그러니, 관종에겐 무관심이 답인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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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이런 걸 써야하나 싶을 정도로 한심하고 수준 떨어지는 행위라서 그냥 시간 가는데로 안 건드렸는데, 솔직히 너무 바보 같아서 지적이나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먼저, 박원순씨가 자살한 것이 성추행 때문일 것이라 추정되고 있고, 사실 저 또한 그럴 것이라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박원순이 성범죄를 저질렀고 그 때문에 고소 당하자 자살했다. 라는 주장이 증명되었거나 덮어놓고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


실제로 한달 가까이 지나갔지만 밝혀진 게 없거든요. 그러면 그동안 뭘 했냐? 김재련 변호사가 언론플레이 하면서 정치만 했습니다.


'증거 없지 않나?' vs '2차 가해 하지마'...​박원순 고소인을 둘러싼 논란들

김재련 변호사 "인권위 조사 응할 계획 없어..형사사건 진행 중"
[현장영상] '박원순 성추행 고소' 피해자 측 "업무상 위력 추행이라는 점은 명백"
朴측근 "고소인 마라톤 뛰지 않아"..진실공방 예고
"변호사 공격도 2차 가해" 목청 높힌 김재련...증거 제시는 안해
故 박원순 시장 '비서업무 인수인계서'…벗겨지는 의혹의 진상?
[단독] 6층 사람들 ‘비서 매뉴얼’로 반격… 피해자측 “위험 경고 못했을 것”
박원순 피해자측 김재련 변호사, 무고 피소에 "2차 가해"


그냥 이러고 있습니다. 4년 동안 당했네 어쨌네 했다면 4년 동안 모아온 증거나 증언, 정황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정작 증거는 단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증언은커녕 오히려 반박이 있었죠.


그렇다면 의심하던 것처럼 박원순이 정말 성범죄를 저질렀는가라는 것 자체에 의심이 들 수밖에 없고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일부 증거를 보여드렸다지만 정작 증거랄 자료는 없었고, 국민이 수사기관이 아니라면서 구체적인 증거를 보여드릴 필요는 없다지만 정작 꾸준히 박원순이 성범죄를 저지른 건 명백하다고 주장합니다.


2차 기자회견때만 해도 뭐라도 증거를 보여주면서 상황이 정리되는가 싶었는데 아시다시피 나온 증거는 단 하나도 없었고 사실상 박원순이라는 고인을 공격하는 언론 플레이만 반복했죠.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증거가 나오는 게 없습니다.


반대로 무슨 말을 하느냐, 2차 가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죠.



변호사로서 피해 호소인을 보호한다기 보단 피해 호소인 본인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인상만 듭니다. 마찬가지로 변호사로서 사회적 논란을 종식시킬만한 발언을 하는 것도 아니고, 법조인으로서 법적 분쟁을 해결할 수 있을만한 조치를 취한 것도 아닙니다.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한다던가 말이죠.


다시말해 변호사지만 실제 변호사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그냥 옆에 붙어서 흔한 페미 운동가처럼 비판하지마 비난하지마 내 말 믿어 남자(박원순)가 무조건 잘못한 거야. 반박시 2차 가해. 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김재련 변호사 본인의 의도와 목적을 의심할 수밖에 없죠. 흔한 말이지만, 이거 가지고 정치라도 할 거냐는 물음이 나올 법한 일이라는 겁니다. 


현상만 봤을 때, 피해 호소인 옆에 붙어 있으면서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 당사자를 대신해 중점적으로 언론의 스폿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이름 알려지고 얼굴 알려지고 자신의 발언이 언론을 그대로 타고 있죠.


법조 출신 정치인 중에서 유명한 사건을 맡았고 그 덕에 명성을 얻거나 그만한 실력, 실적을 입증 받아 뜨는 경우가 종종 있곤 합니다. 이번 사건도 거물에 의한 사건이니 야망 있는 사람이라면 욕심이 들수도 있죠. 하지만 그것도 결과적으로 승소하거나, 최대한 유의미한 결과를 내야 합니다. 패소했다지만 볍조인으로서 충분한 노력과 진심을 발휘했다고 인정 받거나요.


하지만 지금 김재련 변호사가 맡고 있는 사건에, 스스로 드러낸 것처럼 이길 가능성이 있을까요? 전 없다고 보거든요. 피해인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뭘 가지고 공소를 했느냐를 생각해봅시다. 그냥 언론에 나온 것처럼 박원순이 몸도 만지고 성적인 사진 찍어서 보내고 그런 식으로 성희롱을 했다.. 이런 식으로 공소장 작석하면 법원에서 안 받아줍니다.


이거야 법 잘 아시는 분들이 더 잘 알겠지만, 김재련이 하는 말 그대로 받아 적어 고발하면 접수도 제대로 안 되요. 물증이나 다양한 증인이 있다면 또 모를까. 


그러니 중요한 건 앞뒤 맥락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본인이 말하듯이 구체적인 증거를 보여줄 필요가 없다면 공소 내용이라도 공개하라는 겁니다. 뭘 가지고 고발을 하려고 했는지 구체적으로 알기만 해도 나올 말들 쏙 들어갈 거거든요. 그 정도만 해도 박원순을 같이 욕하든 어쩌든 하는 거고, 그런 것도 없이 누가 누구 성추행 했다고 지목하고 언플하면 다 들어주고 같이 조리돌림을 해줘야 합니까?


그건 아니거든요. 반대로 오거돈의 피해자는 최소한 그 부분만큼은 정확하게, 매우 정확하게 기술했습니다. CCTV 같은 물증도 있기도 했지만, 그게 없어도 충분히 알만큼 기술했어요.



CCTV가 있으면 CCTV를 까고, 그게 없으면 그 사진 같은 거라도 까고, 그것도 안 하겠다.. 못하겠다 그러면 최소한 뭘로 고발을 하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공개라도 해야 합니다. 



근데 그러지 않고 있죠. 김재련 변호사는 피해자에게 법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라기 보단, 자신의 이름값을 높히기 위해 언론플레이를 하면서 자기 정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일 뿐이죠. 뭐 본인이 말했듯 피해자가 고소하면서 증거 제출했고 그걸 공개하지 않는다 했으니 정말 기관에선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을진 모르겠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김재련 변호사는 변호사로서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을 다루는데 능력이 너무 부족합니다.


의도와 목적이 의심스럽고, 그 과정 또한 마찬가집니다. 그냥 큰 사건을 옆에서 기생하며 정치하려는 것으로밖에 안 보일 정도로요. 본인이 그런 언플을 할 수록 박원순 성범죄 의혹의 반대의견과 의심은 더 커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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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민주당에게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민주당의 현실인식 문제와 새 전략의 필요성.

https://konn.tistory.com/629


그때 했던 말이, 고고한 척 하지 말고 노련하고 날카로운 감각을 가진 세련된 이미지로 바꿔야 한다고 했습니다. 도덕적 우월성은 도덕적으로 저열한 이를 공격할 때는 가장 쉽고 정공적이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도덕성이 철저해야 한다는 문제가 발생하죠.


똑같은 잘못을 해도 평소 도덕적 기준으로 비판을 해왔던 이들이 더 크게 얻어맞게 된다는 겁니다. 위선이라는 말이 이래서 나오는 거고 받아치기에도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며, 일부 사실이기도 하죠. 조국 사건 이전부터 진보는 위선적이다라는 인식 내지는 공격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정치를 하다보면 더럽지 않기 어렵고, 본인이 의도하든 안 하든 반드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성범죄 문제야 어떻게 말해도 본인들이 자초한 문제라고밖에 말하기 어렵고, 그래서 박원순의 죽음은 여러모로 아쉽고 안타깝지만, 그만큼 무책임하고 그 본인이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죠. (그래서 문재인이 대단한 거기도 하죠. 그 오랜 정치 생활 동안 본인이 만든 실질적 문제, 추문이 없다시피 했으니..)


민주당이 더 도덕적으로 우월하고, 우월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자한당 계열 극우보수 세력이 비도덕적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있어서 더 얻어맞을 수밖에 없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로 색이 달라져야할 이유이기도 하죠. 지금은 누가 더 착하냐가 아니라 누가 더 세련된 유능함을 갖추었느냐가 잘 먹히는 시대이기 때문이고요. 유능하다는 것은 이미지 메이킹에도 능숙하다는 것이고, 도덕적 기준이라는 난해한 문제를 잘 다뤄야 한다는 거기도 합니다.



뭐.. 박원순 개인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전 개인적으로 노회찬이나 박원순 같은 이들의 자살이 개인의 높은 도덕성 때문에 발생했다고 봅니다. 모순되죠? 이렇게 말하면 도덕적으로 높은 기준을 가졌으면 왜 그 사람들이 그따위 범죄나 저질렀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하지만 우린 인간이 참으로 복잡하고 다각적으로 해석되는 행동을 한다는 걸 알고 있죠. 똑같은 사람이지만 공적인 공간에서, 사적인 공간에서, 인터넷 공간에서, 심지어 각 커뮤니티나 소통공간마다 각 개인의 페르소나는 여러개로 분열합니다. 자아가 분열하는 수준인 사람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자신의 자아의 각기 다른 일부 요소가 더 강하게 작용하는 공간이 있죠.



상대적으로 높은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있지만, 반드시 모든 순간에, 모든 이를 대상으로 언제나 도덕적이진 않지요. 권력이나 개인의 사리사욕, 성욕, 지배욕, 물욕 등 여러가지 욕구와 욕심이 권력과 결부하면서 어떻게든 문제는 발생할 수 있는 법이라는 것 쯤은 아실 거고요. 


박원순이나 다른 인물들의 범죄는 그래서 발생하는 거고 이후 행동과 대처에서 차이가 나는 거라고 봅니다. 이건 개인의 멘탈이나 명예에 대한 인식(좀 크게 잡자면 '부끄러움'.)에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은 높은 도덕적 기준 때문에 발생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덕성이 낮은 범죄자는 지금보다 더 큰 범죄, 가령 살인을 저질러도 반성을 안 하거나 심지어 본인이 정당하다고 여기기도 하죠. 반대로 높은 덕성을 가진 사람은 큰 범죄를 저질렀을 때 잃는 게 많기도 하거니와 자신의 그러한 행동을 자각하는 순간(주로 책임을 져야할 순간, 혹은 대중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밝혀지는 순간) 도덕적 기준만큼 반동이 세게 오는 거고요.


이런 사건 때문에 덕성이 낮은 이들은 업계 생명이 끝장이 나도 어떻게든 버티면서 시간이 지나면 대개 잘 먹고 잘 살곤 하잖아요.. 어차피 가진 것도 많고, 그런 짓 좀 한다고 모든 관계가 끝장나는 것도 아니라 여전히 아는 사람과 교류를 나누고 사는 거죠. 다만 공개적인 대외활동에 위축이 될 수밖에 없을 뿐.. 많은 사람들이 해당되겠지만 단적으로 전두환 같은 이들도 그렇고요.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해서 범죄나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건 아니지만.. 참 아쉽습니다. 박원순이 그럴만한 Character는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만큼 실망도 있고, 그 외 여러가지 걱정들도 드네요. 생각은 많지만 뭔가 잘 정리가 안 됩니다. 밤이라서 그런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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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청년들이 대학을 가는 이유가 뭡니까. 결국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죠.


근데 문제는 그 좋은 대학이 좋은 직장을 담보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좋은 대학 나오면 좋은 직장을 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막연한 희망보다는 현실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거죠.


다시 말해 기대입니다. 내가 좋은 대학을 나오면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 그 가치를 위해 자기가 해당 교육 서비스, 대학 졸업장, 학벌이라는 타이틀에 투자를 한 겁니다. 당연히 모든 투자는 실패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이거 했다고 반드시 저게 나오는 기계적 인풋-아웃풋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죠.


인국공 논란에서 청년들이 공정 운운하는 부분에서 이게 가장 우습고 같잖더군요.



언제나 그런 말 하잖아요. 능력만큼 대우받아야 한다고. 다시 말해서 비정규직이든 아니든 경력이나 실력으로 자기 능력 증명하면 그만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거죠. 정규직이 되든, 정규직만큼 대우를 받든.


근데 정작 여기에 자기보다 학벌 안 되고 자기만큼 '투자' 안 한 비정규직 따까리들이 자기가 노려온 결과가치를 차지한다니까 공정 운운하면서 분노하는데, 이건 그냥 배알이 꼴려서 그런 거지 진짜 공정이라는 가치가 훼손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능력만큼 대우 받아야 한다면 정규직된 이들은 자기 능력대로 대우 받는 거죠. 이게 공정이죠. 자기가 자기 미래를 위해, 자기가 좋아서 투자한 대학 학벌이 무가치해지는 게 불만이라 정규직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게 공정이 아니라.


언론에서 말하는 청년들의 공정 어쩌고 하는 거, 진짜 공정 말하는 거 아닙니다. 언제나 자신들의 추악한 욕망과 욕심을 선한 단어로 포장하는 것 뿐이죠. 정치적 수사일 뿐이지 진짜 공정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 공정을 주장하면 자기들도 내놓는 게 있어야 하고, 희생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근데 자기들은 언제나 약자이고 제대로 평가, 존중 받지 못한다고 믿는 청년들이 그걸 내놓으려고 할까요? 전혀요.ㅋㅋ



대학 교육과 졸업장이 무시 받아야 된다는 건 아니지만, 그것도 결국 기업, 직장에서 원하는 능력을 갖추기 위한 거고, 졸업장은 그러한 능력이나 교육을 받았다는 걸 담보하는 증명서죠. 다시 말해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게 증명되었다면, 좀 극적으로 말해서 대학이 필요 없을 정도로 본인이 능력이 있는 자라면 대학을 나오든 안 나오든 그만한 대우를 받는 게 맞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능력이 있는 사람, 그게 증명된 사람을 더 선호하겠죠. 인턴을 괜히 돌립니까? 미리 시켜보고 지켜보고 판단하기 위해서죠.


인국공 문제에서, 공정 운운하며 대학에서 고등교육 받고 정규직 되어야 하는데 비정규직이 자기 자리 뺏어간다고 찡찡거리는 건 그저 위선에 불과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기업, 기관은 대학 졸업장을 해당 능력이 있거나 그러한 교육을 받았다는 증명서로 보고 그러한 능력이 있고 교육을 받은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뽑는 거지, 즈그들 대학 등록금과 시간을 보상해주기 위해서 취업시켜주는 거 아니에요. 내가 얼만큼 투자했으니 그만한 대가를 내놓으라는 게 깡패지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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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위 사진은 퍼온 거긴 한데, 이런 메시지가 뜨는 경우, 그리고 이 오류가 오래된 파일에서 뜬 게 아니라면 해결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다만 직접적인 해결이 아닌지라 완전히 복구가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방법은 좀 간단한데, 이런 류의 프로그램은 대개 오토 세이브, 퀵 세이브가 있다보니, 로컬 폴더에서 퀵세이브 폴더를 찾으면 자동으로 저장되어 있는 파일을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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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7 - [취미/이야기] -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북한 내부의 사정. (1)



수많은 바보, 혹은 적지 않은 보통의 사람들조차 문재인을 유약하거나, 강경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헌데, 이건 결코 사실이 아닙니다. 문재인이 웃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중재하거나 친화적인 모습을 자주 보여줘서 그렇지, 문재인만큼 뚝심있는 사람 없습니다.


가장 먼저 알아둬야 할 사실은, 노무현 때도 그랬지만 문재인 정부의 국방비 지출은 폭등하고 있습니다.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죠. 오히려 보수정부 때보다 더 오르고 있습니다.






예전에도 했던 말인가 싶은데, 의외로 문재인은 대북 강경책을 꺼내길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 차례 강경한 태도의 일면을 보여주기도 했고요. 이번 청와대의 반응을 보면, 오히려 한 방 날려보라고 벼르고 있는 수준입니다. 문재인이 유약하다고요? 친북 대통령이라 북한 눈치만 본다고요? 퍼준다고요? 그런 적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정치병자들의 망상증일 뿐이지, 실제 문재인 정권 초기부터 지금까지, 지난 문재인 정원은 북한에 이로운 일은 한 적 없습니다. 문재인이 진짜 친북이었으면, 지금의 상황은 오지도 않았죠. 퍼줬다면 뭘 퍼줬는지 제시해야 하는데, 그 누구도 못하죠. 없어서요.


[속보] 청와대 "北 계속 상황악화 조치 시 강력 대응"

정부 "북한 개성 남북 연락사무소 폭파 직후 전기공급 중단"
[현장연결] 청와대 "김여정 담화는 몰상식한 행위…감내하지 않을 것"


이처럼, 한국 정부는 대북 강경책을 택하는 것에 주저하지도 않고, 오히려 벼르고 있습니다. 외교적 수사에 가려진 초강경 발언이에요.


근데 진짜 문제는 이겁니다. 현 국제적 상황에서, 미국은 군사적으로 중국을 한 번 제대로 건드리려는 시도 중입니다. 그러려면 당연히 명분이 있어야 하고, 중국이 분쟁을 일으킬만한, 그리고 일으킬 수 있는 구역이 몇개 안 되는데, 각각 대만, 한반도, 동남아, 조어도, 중인 국경지대 지역입니다.


이 중에서 인도는 미국이 개입하기 어렵지만, 대만과 한반도, 동남아와 조어도 쪽은 전혀 다르죠. 대만은 실질적은 중국의 위협을 가장 많이 받고 있고, 지정학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동남아 쪽은 강대국이 없는 약소국의 모임인지라 현대 중국과 상대가 되는 지역은 또 아니죠. 역시 지정학적으로 남중국해 방면 전략이 달라질 수 있는 곳이라 중요하기도 하고요.


조어도 또한 마찬가지의 중요성이 있지만, 일본과의 갈등이나 분쟁이 그리 크지도 않고, 쉽게 건드릴 수 있는 상대인 것도 아닙니다. 특히 미국이 있다는 점에서요.



마찬가지로 한반도도 그리 중국에 의한 분쟁 발생 가능성은 낮은 편입니다. 문재인이 대북정책을 펼치기도 했지만, 한국군의 전력이 워낙 잘 정비되었고, 그 자체로도 강력한 편인데 미군과의 연계가 매우. 아니, 가장 잘 된 군대입니다. 중국도 최소 20년 동안 현대화해오고 지난 문재인 정부 기간 동안 꾸준히 국방비를 크게 올린 국가이기 때문에, 전쟁이 난다면 중국도 적잖은 피해를 입을 각오 해야 합니다.


한국을 제압하려면 중국도 전력을 다 해야 한다는 겁니다. 당연히 미군도 굉장히 신속하게 군사력을 전개하여 중국에 피해를 강요할 거고요. 이 부분은 특히나 북한 문제 때문에 준비가 잘 되어있으니 일본은 때리는 것보다 한국을 때리는 게 더 미군이 오랫동안 준비하고 훈련해온데로 대응하기 쉬우며, 그래서 중국이 함부로 손 못 댑니다.



근데 갑자기 삐라 문제가 터졌죠. 사실, 꽤 오랫동안 한 일이긴 한데, 명분은 준 건 사실이기도 하고, 북한은 꾸준히 그거 하지 말라고 해왔습니다. 북한에서도 꾸준히 문제를 삼아온 것도 사실이긴 해요.


자, 중요한 건 이겁니다. 지금 북한의 반응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실제 무력 도발, 그것도 꽤 높은 수위의 도발을 행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남한도 분노와 스트레스가 임계점은 넘은 상태라, 청와대 내부에서도 한번만 걸려라. 한 번만 더 해봐라 하고 벼르고 있다는 겁니다.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전면전까지 갈 거라는 생각은 하기 매우 어렵지만, 최소한 국지전 양상까지는 갈 수 있다는 겁니다. 국지전까지만 가보 양국 사람 여럿 죽어갈 상황이 만들어지죠. 이번 북한이 한 번 더 도발을 시행한다면, 정부 또한 발표한 것처럼, 강력 대응이 반드시 이루어질 겁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게 바로 이건데, 청와대에서도 그렇지만, 국민들마저도 문제가 터지면 여럿 죽어가는 이 문제에 대해 우리도 한 방 날릴 때가 되었다, 그래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라는 겁니다. 심지어 저조차도 그런 게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할 정도로요. 사실 전 북한과 이야기가 잘 통한다면 내부에 친한파를 만들고, 말이 안 통한다면 대북 강경책을 동원하여 더 이상 그게 통하지 않는 걸 가르쳐줘야 한다고 주장했고요. 


2012/11/24 - [취미/이야기] - 적절한 안보관이란 무엇일까.


하여간, 현재 남북 군사적 긴장 상황에서 한국 편에서 고삐를 잡을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누가 말리거나 판단을 재고하게끔 할 사람이 없습니다. 청와대의 워딩과 액션은 곧장 단호한 군사적 대응을 할 거라는 태도지 북한을 달래거나 협상, 대화하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마 정해놓은 일정 반경에 화력을 쏟아부어 해당 반경을 초토화하면서 제대로 뭔가 보여주려고 할 겁니다. 인명손실 정도는 감안하겠지만, 휴전이라는 실질적 상황 속에서 필요 이상의 죽음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래서 그 화력을 제대로 경험시켜주는 선에서만 대응할 거라고 봐요. 엄청나게 쏴대면서 '이게 느그 평양 내에서 전개되면 존나게 재밌을 거다'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만약 그렇지 않더라면 민간인들이라도 무더기로 죽어나갈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북한군 역시 무더기로 죽어갈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근데 제가 아까 이 한국을 말릴 사람이 없다고 했죠? 지난 MB 시절 연평도 때 이명박이 벙커에 가면서까지 보복을 주문했습니다. 하지만 오바마가 그걸 말렸죠.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특사를 보내는 등 확전이나 군사적 대립 상황을 막았어요.


근데 지금 미국이 뭐라고 합니까? 


미 "북, 역효과 낳는 추가행위 삼가야..한국 노력 전폭지지"(종합2보)


적극 지지한다고 합니다. 북한에겐 역효과 낳는 추가 행위 삼가야 한다고 하고, 한국 노력에는 전폭지지를 운운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한국이 적극적으로 군사력을 투사한다고 한다면, 미국은 이거 억제할 생각 없다는 겁니다. 어쩌면 이 기회를 통해 중국을 직간접적으로 한 방 날릴 생각도 할 겁니다. 중국이 분쟁에 끼지 않는다해도 바로 코앞에서, 턱 밑에서 전개되는 미국의 전력을 보면 느끼는 게 많을 겁니다.


MB때는 오바마가 말렸고, 지난 미국의 북폭 드립 때 한국은 전혀 할 생각이 없었고, 김영삼은 한국이 미국 말렸다고 했고요. 그리고 지금 한국 정부는 할 생각이 만만합니다. 그리고 미국은 말릴 생각은커녕 적극 지지하고 있어요.



하여간.. 자, 그러면 북한 체제상 이걸 눈감을 수 있을까요? 전편에서 말했듯이, 북한이라는 독재 국가 내에서 독재자의 위신은 매우 중요합니다. 근데 그렇게 쳐맞은 상황이면 북한이 무엇을 해야할까요? 자기들의 위신, 생존, 체제의 유지를 위해서요.


딱 한가집니다. 확전.


북한은 이걸 원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 한 말을 그대로 소개하자면, "답은 확전입니다. 전방위적으로 지도자 동지의 령도력 아래 분투하였으나, 미 제국주의자들과 연합한 미제 괴뢰들을 상대로 많은 희생속에서도 조국을 령웅적으로 지켜내었다"


라는 프레임, 성과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전면전이라는 최악의 상황이자 핵무기가 끼어들 수 있는 극히 위험한 상황을 피할 것이라는 계산 하에, 그들은 지도자의 체면과 위신을 살릴 수 있는 상황을 만들 거라는 거죠. 한국이나 미국이 이거 너무 일이 커지는 거 아니야? 하면서 꼬리 말고 발 빼려는 상황 말입니다.



근데 지금 상황은 오히려 할 생각 만만입니다. 그래서 위험하다는 겁니다. 북한이 도발하면, 그대로 끝까지 갈 수 있는 위험성. 그리고 잘못하면 중국까지 끌어들이고 한반도 전체가 전쟁터가 될 수 있는 위험성.


지금 사람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는 부분이긴 한데, 이미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북한의 추가적인 공격이 있으면 군사적 반격을 할 것이라 결론'내린 상황입니다. 러시아가 남북 문제에 이렇게 나오는 걸 거의 처음 볼 수준으로 대응하고 있어요. 미국은 평화적 해결이라는 표현은 일체 쓰지 않았죠. 전 전략적으로, 북한의 도발에 대해 이제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을 거라는 교훈을 줘야 한다는 이유만으로라도 강경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경우 북한의 핵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해질 위험성이 역시 존재한다고 생각하고요. 핵무기는 북한의 목숨줄이라 진짜 파격적인 수준의 조건을 던져주지 않는 한, 거기에 북한이 굉장히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핵에 대한 집착이라는 게.. 핵실험을 더 자주, 많이 하거나, 그러한 위협을 더 높은 수위로 할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이번 G12로 올라서는데 이 사건은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일본 또한 매우 당황하고 있고, 이 상황을 좋지 않게 보고 있는데, 그들에게 한반도 전쟁은 유리한 상황이지만, 한반도 전면전 수준에 중국이 참전하는, 무엇보다 장기전이나 한국 전역이 큰 피해를 입어 국력이 반토막이 되는 최악의 상황이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다, 무엇보다 이러한 군사력의 확인은 강국의 증명이기도 하다보니, 일본 또한 좋지 않게 보는 거죠. 전 이번 사건이 대한민국의 강국 데뷔전이 될 거라 봅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현 북한의 무력도발은 가능성이 없다고 보는 것 또한 제 판단입니다. 북한도 한국의 입장을 확인했고, 미국의 입장 또한 확인했으며, 중국에게 여러 이야기를 전달 받았을 겁니다. 중국 또한 입장을 표명했죠. 평화를 바란다고. 중국도 참전할만한 여력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 의지도 없고요.


이런 맥락은 북한이 원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는 추측으로 이어집니다. 북한은 지금 이 상황, 분위기 속에서 무력도발을 하지 않을 겁니다. 이 상황이 지나갈 때까지는 적절한 수준의 발언을 하거나, 잠잠히 있을 거라 봅니다. 다른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북한은 내부적인 많은 요소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러한 요소를 조율하면서 원하는 바를 그럭저럭 얻어낸, 생존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


북한이 이 상황을 오판할 거같지는 않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정말 많지만, 현 한국의 입장과 현 상황과 그 위험성과 관련된 이야기는 이 정도로 끊는 게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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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상황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선 북한의 직전 상황을 고려해야 합니다. 물론 북한의 상황을 정확히 알기란 불가능하다보니, 최대한의 근거를 기반으로 나름대로의 추측을 통해 메꿔야 한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먼저, 문재인 정부 초기 북한과의 대북정책은 유화책이었고, 상당한 성과를 얻었습니다. 이거 가지고 도대체 얻은 게 뭐가 있느냐고 하는 사람 있겠지만, 한국에서 천안함, 연평도 같은 사건은 없었죠. 실제 한국이 '진지하게 공격' 받은 건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포 좀 쏘고 미사일 실험 좀 하고 핵실험 좀 한 건데, 이건 북한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단결 행위입니다.


단결 행위가 무엇이냐면, 앞서의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북한은 언제든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 받은 군국주의 국가입니다. 실제 싸우지 않더라도 언제든 그럴 수 있다. 당장 그럴 수 있다는 걸 어필하면서 전쟁 준비 행위를 통해 내부를 단결합니다. 그렇게 결집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러한 군사력, 전쟁 능력을 보여주는 건 굉장히 중요합니다.


2020/06/15 - [취미/이야기] - 북한을 그냥 미친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다시 말해, 북한이 군사적으로 무력화되었다는 건 정권 자체의 생명력이 끝난 것과 같아요. 누가 공격하지 않아도 내부에서 붕괴합니다.


그런 북한이 GP를 10개 부수었다거나 하는 등 군사합의를 진행했었고, 이에 대해 이야기가 잘 풀렸었습니다. 심지어 미국의 북폭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한국은 그거에 동의하지 않았죠. 미국이 하고 싶어도 한국이 안 하겠다고 하면 걍 못하는 겁니다. 북한을 공격한다는 건 중국군과의 대결마저도 상정해둬야 하는 일인데, 그 후방 기지 역할을 해주고 병력을 보조해줘야할 제2집단이자 가장 잘 되어있는 한국이 안 한다면 걍 못하는 거거든요. 김영삼이 당시 그런 말 했죠. 우리가 미국 북폭 말린 거라고.


근데 그 합의와 이야기가 실질적 액션으로 돌아온 게 아니라는 겁니다. 한국이요? 아뇨, 북한이요. 북한 입장에선 문재인과 이야기 잘 됐는데, 지금 북한은 돌려 받은 게 없습니다. 몇가지 잡음은 있었죠.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느니 미사일 실험을 했다느니. 하지만 중요한 건 실질적으로 한국인의 생명과 재산에 피해를 입힌 건 없다는 겁니다.


즉, 실제 무력을 동원해 피해를 입히는 도발은 없었고, 도발을 하긴 했지만, 이는 앞서 언급한 체재 단결용 액션이었다고 봅니다. 북한이 조용히 있지 않고 굳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북한의 특이체질적 체제 문제입니다. 독재국가는 보통 독재자의 위신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건 중국도 마찬가지고요. 근데 북한은 그게 한층 더 심합니다.


독재자의 위신이 엄청나게 중요하다보니, 직접 한국과 평화를 이야기한 입장에서 다시 한국을 욕하고 도발하기가 애매합니다. 김여정이 일선에 나선 이유에 대해서는 완전히 알 수는 없습니다. 내부 문제 때문에 믿을 건 혈육이라고 김여정에게 일부 역할을 맡긴 것인지, 아니면 진짜 김정은의 건강 문제 때문인지.


그러나 이에 대해서 꽤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는데, 제 생각도 일단 거기에 동의합니다. 김정은이 말을 뒤집을 수는 없으니, 서로 굿캅 배드캅 역할을 하는 거라고. 김여정이 배드캅, 김정은이 굿캅 역할을 하면서 김여정이 남한을 때리고 수습하게 된다면 김정은이 나설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꽤 그럴듯하게 느껴져서 이 글에서도 그러한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자, 더불어. 현재 코로나 문제 때문에 북한의 경제는 굉장히 심각해졌습니다. 일부 기사에선 23년전 고난의 행군으로 복귀했다고 할 정도죠. 다만 이건 북한 내부에 코로나가 퍼졌다기 보다는 중국 내 코로나 문제 때문에 교류, 지원이 끊긴 게 더 큰 이유일 겁니다.


따라서 북한은 어떠한 진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기대했을 겁니다. 가령 조건 없는 지원이라던가. 혹은 조건은 있지만 그럭저럭 받아들일만한 지원. 그럼 김정은도 나름 립서비스 좋게 해주고 행동으로 보여줄 수도 있었을지 모르죠. 어디까지 기대해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근데 문제는 한국도 코로나로 정신 없는 와중이라는 겁니다.


즉, 북한에게 뭔가 지원이니 뭐니 해줄 상황 아니라는 거죠. 자기네가 그렇게 힘든데 아무 지원도 뭣도 없는 와중에 탈북자 새X들이 삐라까지 뿌려대니 북한이 화를 낸 게 아닌가. 하는 게 나름의 추측이긴 합니다. 



어떻게 보면 탈북단체가 아주 큰 일을 했네요. 이따위 상황을 연출해댔으니. 부디 북한에 거주 중인 가족들이 다 죽어버리고 자기네 머리통에 폭탄이 떨어져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지들은 전쟁이 나도 가장 먼저 가장 멀리 안전한 곳으로 도망갈 놈들이라 남한놈들 죽든 말든 신경 안 쓰거든요. 진짜로요.



어찌됐든 북한 내부의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는 건 사실입니다. 김정은 건강 어쩌고 나왔을 때 좀 지나서 공개적으로 나선 사진이 공개되는 등 건강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 것도 사실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판단에 굉장히 중요한 부품이지만 확실하지 않은 추측을 기반으로 김정은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전제는 함부로 내리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사실로서 확실한 건 북한 내부 상황이 안 좋다는 것, 그리고 김여정이 전면에 나서서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대개 내부적 불만을 외부로 표출하는 방법론을 고려해봤을 때, 어차피 남한과의 관계가 진전될 근거가 없고, 이번 탈북단체의 행위, 다시 말해 '남한의 선제도발'로 읽힐 수 있는 문제를 명분으로 하여 그러한 불만을 외부로 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북한의 모든 도발 자체가 그러한 이유가 대부분이죠. 목적 전체 중 정도의 차이일 뿐이었고요. 이번 도발의 정도는 그 불만 정도가 크다고 읽힐 수도 있다고 봅니다.


2020/06/12 - [취미/이야기] - 안보를 위협하는 탈북단체의 불법 도발행위와 군사적 위험 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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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만 보면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다행히 대북한, 외교 실무진들은 그럭저럭 잘 이해하고 있는 편이지만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은 북한의 행동과 말들을 보고 그냥 미친놈이나 제정신 아닌 놈들로만 보는 건 아주 큰 오해입니다.


북한도 국가고 국가인 만큼 전략적인 판단하에서 외교를 이끌어갑니다. 도발도 그런 계산하에 이루어지는 정교한 행동이죠.


기본적으로 북한은 독재국가입니다. 그것도 평범한 독재국가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사실상 전제국가나 다름 없는 체제이자, 내부적으로도 외부적으로도 무너질 수 있는 위험성을 현실적으로 지니고 있는 체제이죠.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라지만, 솔직히 그 체제나 기반(경제, 문화, 사회 등)이 튼튼한 편은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무너질 수 있고, 내부적인 불만 또한 작지는 않은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북한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는 건 북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고 위험한 상황이죠.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북한 주민들을 감시하고 억압하고 죽이거나 고문하기도 합니다.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잔혹한 수준은 아닐 수 있더라도, 중국과 다를 바 없이 국민들의 행동을 통제하고 감시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주죠.


북한은 오랫동안 1인 독재국가였고, 이는 1인의 통제력이 매우 강력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최근에야 김여정에서 일부 역할을 나눠준 것으로 보이는데, 이건 좀 생략하고 보자면, 여전히 김정은은 일인 전제 독재자입니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독재국가에서 독재자 개인의 위상은 매우 중요하죠.


내부 분열과 통합, 통제를 위해서 어떠한 성과들이 반드시 필요하고, 전쟁이 됐든 발전이 됐든 통합의 기치가 필요하고요. 북한의 외교적 무대에서 쓰기엔 폭력적인 언어들을 쓰는 건 그것이 독재국가이기 때문이고, 내부의 시야를 고려한 행동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약해보이면 안 된다는 거죠. 적에게 머리를 굽히거나, 마치 질 것처럼 보이는 말과 행동은 그 자체로 독재자의 위신과 정당성을 훼손합니다. 이는 통제력의 약화로 이어지고, 그 끝은 체제와 정권의 붕괴를 의미하죠. 북한이 하는 말들. 겉으로 보이는 문자는 내부적 시야를 의식한 것 뿐이고,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중요합니다.


이는 다른 국가들의 외교적 수사처럼 말안의 의도와 목적을 분석해서 이해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북한이 공개적으로 하는 언어는 한 번 더 포장을 까야 한다 이거죠. 매우 색다른, 다른 종류의 외교적 수사인 셈입니다.



북한이 하는 도발조차도 계산된 행동입니다. 어디까지 해야 전쟁이 안 나면서 위신과 성과를 챙길 수 있을까. 그러한 성과로 내부 통제력을 가질 수 있을까. 북한을 설명할 수 있는 많은 체제 중 하나가 군국주의입니다. 단지 전쟁을 하지 않고, 사실 그럴 생각도 없어보이는 것 뿐이죠.


국방위원장, 장군 같은 칭호는 군대의 수장이라는 뜻이죠. 실제로 북한을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억제하는 건 군대이기도 하고 가장 먼저 군권을 장악해야 국가를 통제할 수 있기도 하죠. 이건 다른 정상적인 국가도 마찬가집니다. 독재국가에서 군대라는 의지를 강제할 수 있는 폭력은 가장 먼저 독점해야 하는 자원이죠.


이는 북한은 언제나 전쟁의 위기를 조장하고 그러한 위기를 위해 단결해야 함을 주장해야 한다는 겁니다. 통합, 단결시키지 않으면 분열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에 표현의 자유를 포함한 거의 모든 종류의 자유가 억제되는 이유는 다른 목소리가 나오면 안 되기 때문이죠. 관리하기 어려워지고 당연히 정권에 대한 적대성이 나타날 수밖에 없어서요. 그리고 그런 통합, 단결의 명분은 전쟁과 전쟁의 위기입니다.


북한이 하는 도발은 그러한 전쟁 중이라는 상황, 또는 우리의 적을 쳐부수었다는 성과를 내기 위한 거고, 그 선은 매우 정교히 계산해서 행동합니다. 핵의 존재를 떠나서 북한의 도발이 한국이나 미국의 전면전을 발생시켰던가요? 심지어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마저도 한국군의 반격은 있었지만 전면전은커녕 제대로된 보복조차 못했습니다.


왜냐? 안보는 보수라고 했지만, 실제 보수정부가 외치는 안보의 적은 내부의 적이지 외부의 적은 아니거든요. 외부의 적인 북한은 어디까지나 내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정치적인 명분이기 때문입니다. 적대적 공생관계죠. 적의 존재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킬 명분이 되어줍니다. 다시 말해서 적이 정말로 없어진다면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하고자 하는 행동의 명분이 사라지며, 권력의 획득을 위한 기반이 사라지거나 줄어든다는 거고요.


물론 오바마 정부의 미국이 병신같은 대북정책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명박이 빡쳐서 북한에 대한 보복을 하려 했지만 오바마가 윤허하지 않아서 말이죠..--; 상상력의 영역이긴 하지만 미국과 오바마의 성향을 가장 먼저,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고 친다면 연평도와 천안함이라는 상상도 못할, 전쟁의 정당성을 내준 사건을 벌이고도 무사할 수 있었던 셈이려나요?..


진짜로, 연평도나 천안함 사건은 그 자체로 전쟁을 벌여도 될만한 사건이었습니다. 



어쨌든, 북한은 생존의 스페셜리스트이고, 그만큼 자국의 생존과 관련된 요소들을 첨예하고 정밀하게 분석할 겁니다. 이명박근혜 때는 했지만 지금은 그만한 수위의 도발이 없죠. 문재인의 대북정책의 성과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문재인과 정부의 성향을 죽어라 분석했기 때문에 앵간한 거 잘못하면 큰일난다는 결론을 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미치광이 전략이라는 게 있습니다. 내가 아주 또라이니까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거죠. 북한은 내부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외부적으로 그런 폭력적인 말들을 하는 이유 또한 그러한 전략에 근거한 겁니다. 당장 돌아보세요. 북한은 미친놈이다. 김정은은 미친놈이다. 라고 대다수의 대중이 믿고 있죠.


북한은 비이성적이고 믿을 수 없는 놈들이다. 언제든 뒤통수치고 포 쏘고 도발할 수 있는 놈들이고, 갑자기 미쳐서 전쟁할 수도 있는 놈들이라고 믿게 만들었죠.


하지만 북한의 지상목적은 생존입니다. 


핵무기는 외교적으로도 쓸 수 있는 카드이고, 내부적으로도 성과를 보일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인 동시에,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기 위한 필수요소입니다. 북한은 그 어떤 나라에도 의존하지 않습니다. 중국도 북한의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원하고 밀어주는 거지, 진짜 북한을 혈맹으로 보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북한도, 김정은도 중국을 믿고 신뢰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니 혈맹이니 형제니 어쩌니 하는 거죠. 중국이 북한에 주는 게 있으니 립서비스 해주는 겁니다. 물론 주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다지만,(정확히는 중국 정도와만.) 정확히 뭐가 오고 가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이건 다른 분이 더 잘 알겠죠.


북한이 중국에 의존한다면 중국이 나중에 북한이라는 폭탄이 부담스럽거나 필요가 없어서 버리면 그대로 붕괴하는 건 북한입니다. 또한 중국이 북한을 조종하거나 통제할 수 있게 되기도 하겠죠. 그러나 그런 상황 자체가 북한의 독립성과 자주성이라는 기치에 크게 어긋나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의존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애당초 의존을 하지도 않죠. 북한이 오랫동안 떠드는 자력갱생은 그러한 의미도 내제되어 있습니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지원을 포기하고, 심지어 적대한다고 해도 스스로 버틸 수 있어야 한다고요. 핵이 있으니 함부로 공격하진 않을 것이라 믿고요.


하나 더, 아랫 것들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타국을 향해 비난을 하거나 공격적인 어조로 비방하는 건 위에서 시킨 것도 있지만, 그 스스로 그렇게 해야만 살아남기 때문인 것도 있습니다. 독재국가이기 때문이죠. 외부와의 관계를 신경쓸 필요도 없고, 그러한 충성이나 애국심을 증명해야 한다는 겁니다. 더 강하고 노골적으로 할수록 인정을 받는 겁니다. 왜 군대나 회사 같은 곳에서 윗사람 보여주기식 쇼 있잖아요. 북한은 그게 외교 무대에서도 이루어지는 것 뿐입니다.


그러니 걸러들을 건 걸러듣고, 중요한 위치에서 그런 말을 한다면 앞뒤 상황과 내부적 상황을 유추하면서 분석해야하는 워딩들입니다. 도발을 할 때도 얘네가 내부통제가 필요한 상황인가보다 하고 쿨타임이 돌았다고 보거나, 혹은 뭔가 원하는 게 있어서 저러나보다 할 수 있는 거죠.


도발의 종류도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정확히는 도발로 보일 수 있는 행동인데, 이명박근혜 때는 직접적인 공격이나 그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위협이었다면 문재인 이후로는 내부적인 훈련과 실험 등으로 선회했습니다. 문재인의 대북정책, 트럼프의 북폭 등등을 고려한 셈이죠. 함부로 자극하면 안 되니 타국 정부를 자극하지 않는 선 내에서 내부 통제력을 챙기려는 겁니다. 외부가 아닌 내부, 북한인들에게 보여주는 메시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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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전단살포는 교류협력법 위반"…탈북단체 2곳 고발

탈북단체 “드론 띄워 평양에 전단 1만장 살포”

탈북단체도 회계 구멍 숭숭..'가짜 탈북민' 구출후원까지

"그물 올리면 물고기 대신 대북전단 페트병"...접경지역 주민 고충

쌀 담은 페트병 북한에 보내려는 탈북단체와 막아선 접경지 주민들 / 비디오머그
https://www.youtube.com/watch?v=NkX1zKoF_Fc


2020/06/09 - [취미/이야기] - 탈북자에 대한 냉정한 이해와 현실. (1)

2020/06/12 - [취미/이야기] - 탈북자에 대한 냉정한 이해와 현실 (2)

탈북자 중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고, 노력하는 사람도 많으며, 그런 이들을 지원하고 교육시키며 보호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그리고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문제가 되어왔던 부분이 있는데, 바로 탈북단체에 의해 이루어지는 남북간의 갈등 유발입니다. 거의 전쟁을 유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문제가 되어가고 있죠.


기본적으로, 이와 같은 활동을 하는 이들은 반국가단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아니, 어떤 면에선 빨갱이 종북단체로 보일 구석도 있을 정도고요. 이들이 보내는 전단지 살포 따위가 뭐가 문제냐하면, 그 내용에 큰 문제가 있는 게 아닙니다. 아니,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에요. 그 내용 또한 일베 수준으로 저열하고, 전략적으로 큰 도움이 되는 게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자극한다는 게 문제죠.


그 내용이 전략적으로 북한 체제를 위협하거나, 탈북을 크게 종용하게 된다면 어떤 유의미함이라도 느꼈겠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직접 그 전단지 내용 살펴보면 조악한데다 저열하기까지 하죠. 그냥 자신들의 말초적 쾌락을 추구하는 합성물일 뿐이지 이런 거 뿌린다고 북한 체제에 문제가 생기거나, 남북관계에 있어서 우위를 설 수 있는 것도 아니죠.


물론 고작 삐라 같은 전단지 따위로 전쟁이 나네 어쩌네 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북한에서 불쾌해하는 거야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남북관계에 큰 진전이 없는 한 크게 고려할 사안인가 싶기도 하고요. 



근데 중요한 건 이겁니다. 북한이 삐라에 자극 받아 군사도발을 할 경우, 가장 위험한 건 접경지역 주민들입니다. 생명과 재산에 피해를 발생시키는 위험성이 있죠. 하지만 탈북단체는 그런 거 ㅈ도 신경 안 씁니다. 그들에게 남한 사람들 죽 건 말 건 관심도 없고, 그렇게 죽어서 남북관계가 악화되며 전쟁 위험성이 고조되면 오히려 좋아라 합니다.


왜냐? 전쟁이 나서 북한을 무너뜨릴 수 있으면 그게 가장 좋다는 거거든요. 그 과정에서 죽어갈 사람들은 자기들 알 바 아니고요. 당연히 자기들이 나가서 총들고 싸울 것도 아니고요. 저런 류의 인간들이 늘 그렇듯, 진짜 위험한 상황에선 다른 사람 짓밟고, 넘어뜨리고 가장 먼저 도망가서 가장 안전한 곳에 있다가 일 다 끝나면 나와서 큰소리 치는 놈들이거든요.


통일부가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법인설립 취소까지 거론한 이유가 바로 그런 겁니다. 탈북단체들이 계속 도발해대는데, 그 화답으로 북한이 포를 쏘면 접경지역의 주민들 생활과 안전은 누가 보장해줍니까? 국가와 군대가? 그럼 가장 먼저 탈북단체부터 잡아쳐넣어야 합니다. 근데 그러면 뭐라고 합니까? 빨갱이, 종북, 차별이네 탄압이네 이러는 거죠. 탈북 단체 대표하는 작자들이 북한 주민의 자유를 위해선 전쟁도 감수해야 한다는 개소리를 하는 거, 대신 나가 죽어야할 여러분은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인지요.



심지어 쌀 따위를 집어넣은 페트병을 뿌린다거나 하는 것도 문제가 되는데, 가장 먼저 환경이 파괴됩니다. 이게 뭐가 중요하느냐 하면, 그 지역 사람들에겐 중요한 일이거든요. 그물 올렸는데 물고기는커녕 페트병 쓰레기만 나오고, 해변가에 쓰레기 모여있고. 이거 치우는 것도 일이며 그 지역 오염되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사느냐는 겁니다.


당연히 탈북단체는 전혀 신경 안 쓰죠. 자기들 알 바 아니고 더 큰 대의가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지들 하자는데로 안 하면 남한 주민에게 빨갱이라고 욕부터 박는데, 그 지역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보수 지지성향입니다. 북한 접경지역이라 군사도발이나 전쟁 위험 고조되면 가장 큰 손해와 피해를 보게 되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러면서 뭐라고 합니까? 북한이 공격해오고 반격해오면 군대와 경찰이 자기들을 지키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북한이 도발하면 뭉게버려야 한다. 다시 말해, 전쟁을 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는데, 이건 대북전략에 있어서 리스크로만 작용할 뿐이지, 이익이나 이용할 구석이 전혀 없습니다. 심각한 리스크 요소죠.


그리고 다른 문제 요소 하나. 북한에 쌀 보내주는 거 대북제재 위반입니다. 당연히 정부에서 막아야 하는 거고, 북한에 쌀 보내고 물자 보내는 거 결국 종북행위나 다름 없어요. 근데 정신나간 베충이들은 오히려 정은이 눈치 본다고 막네 어쩌네 하죠.



결국 탈북단체는 남북간의 전쟁 위험을 고조시키고 남들보고 대신 죽으라는 겁니다. 자기들 하고 싶은 건 다 하는 거고, 대한민국의 법질서와 사회 문화는 개무시할 거고요. 탈북단체가 이런 거 한 게 거의 20년이라고 합니다. 그 동안 얼마나 우습게 알았으면 하지 말라는 거 꾸준히 했겠습니까?


그들은 북한에서 살았기 때문에 민주주의나 한국 사회의 문화 따위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럴 생각이나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자신의 정의와 다른 의견을 마주하자 분노를 일으키고, 다른 정의와 사고방식의 존재를 수용하지 않고 거부합니다. 북한의 일사분란한 사상통제와 사상적 일원화죠.


이런 문제는 이전 정권 때부터, 접경지 주민들이 문제 삼아왔습니다. 하지만 변한 게 없죠. 그나마 지금에 와서야 뭔가 조치가 취해지는 거고요.



탈북자의 북한 관련 이야기는 걸러들어야 할 것도 많습니다. 탈북자가 하도 많아서 그들의 북한 관련 증언 이제 중요하게 다뤄지지도 않아요. 꽤 높은 지위나 계급을 가지고 온 사람 아니면 그들의 증언과 이야기에 대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아요.


왜냐? 과장하는 게 너무 많은데다, 거짓말도 수시로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래요. 당장 안보 강연에서부터 별천지 다른 세상으로 묘사해야, 자극적인 걸로 이야기해야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짓말도 한다고 말이죠.


그리고 반드시 걸러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데, 이라크전도 후세인 정권을 피해 망명한 이들의 과장된 증언을 진지하게 들은 미국이 그 과장된 위험성을 근거로 전쟁을 했던 겁니다. 성과와 무관하게 미국은 큰 손해를 입었죠. 북한에 관해서도 마찬가집니다. 북한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어떤 거짓말과 조작을 서슴치 않는 이들이기 때문에 과장된 증언과 거짓말을 합니다.


거기서 모자라 적극적으로 군사도발과 분쟁을 유발시키고자 활동하는 게 저런 탈북단체라는 거고요. 그러다 진짜 무력도발이라고 하면 가장 좋아할 집단이기도 하고요. 



특히 최근 이들의 활동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게 뭐냐면, 평양에 드론을 보냈다는 점인데, 과거 북한이 한국에 드론 날렸을 때 여론 기억하실 분 많을 겁니다. 엄청 달아올랐죠. 정부 욕도 엄청 했었고. 반대로 평양에 드론을 보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하는데, 이게 군사도발이라고 보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하면 괜찮다는 건 아예 기본적인 원리원칙에 대한 개념이 없는거고,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도 모르는 건 한국이 이런 것을 이유로 국제사회에서, 특히 북한 문제에서 불리해질 수 있는 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타국 영토에 드론을 날려 보냈다는 건, 그것도 어떤 삐라 같은 내용물을 담은 드론이면 그건 그 자체로 준군사도발이 됩니다. 그 어떤 나라도 이걸 얌전히 용인하는 나라는 없어요. 북한이 이번에 이례적으로 큰 목소리 낸 것도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거 때문에 북한이 무력도발을 하면 가장 피해를 보는 건 한국이고, 그게 한국 영토 내라면 누군가 죽거나 다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고작 탈북단체의 활동 때문에 국가적 안보가 위협 받는다면, 그 탈북단체의 도발 행위가 가장 큰 문제지만, 국가가 그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더욱이 그런 탈북단체의 불법 도발행위를 지지하는 일부 국민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전 오히려 그들에게 사상적인 문제나 위험성이 있다고 볼 정도고요.



참고로, 접경지역에서 드론 날리는 건 그냥 불법입니다.





하나 더, 여기서 날린 드론은 보통 드론이 아니라 엔진 쓰는 고정익기 드론에 구글 맵 같은 걸로 경로 조정하면 왕복마저도 불가능한 거 아닙니다. 북한이 보낸 드론도 고정익기 드론이었죠. 어차피 풍선에 넣고 드론으로 보내는 거라 엔진키고 날리면 날아가는 거 일도 아니고요. 일정 높이 이상 날아가면 편서풍 영향 받으니 그거 조절하는 것, 그리고 정확히 떨어지느냐, 정확한 순간에 터지느냐는 별개이긴 합니다만.


방공만 문제도 크기가 작기 때문에 안 보이거나 새 정도로 여길 가능성이 더 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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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탈북자가 곧바로 한국 국민이 되는 것은 체제경쟁의 산물입니다. 북한 전역을 대한민국의 영토와 그 거주자를 국민으로 설정한 것은 이승만 시절의 잔재라면 잔재인 거거든요. 물론 그 당시엔 그런 명분은 필요했고 한국 밖에서 그걸 얼마나 인정할지와는 별개로 내부적으로는 충분히 유의미했습니다.


하지만 현재가 되어서 탈북자 인구만 4만명이 되었고 탈북자 출신 국회의원마저도 2명 배출할 정도가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인은 한국인과 매우 큰 차이가 존재하고, 대부분 경제적으로 탈락하거나, 사회 적응에 실패한 상태입니다. 2015년도 탈북자 관련 논문에서는, 대략 3만을 넘긴 탈북자의 80~90%가 한국 사회 적응에 실패했다고 합니다. 건너 들은 거라 실제 논문을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적게 잡아도 최소 절반, 60% 이상은 한국 사회 적응을 성공적으로 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조선족이나 중국인 범죄율이 높다는 건 체감상의 느낌이지 실제 데이터를 찾아봤을 때 그리 높은 편은 아닙니다.


[디지털스토리] 한국내 중국인 범죄율 실제로 높은 걸까


중국의 10만명 당 범죄 인원은 2천220명이다. 러시아, 몽골의 절반 수준이다. 경찰청이 범죄통계에서 분류한 16개국 중에 중간 정도의 위치다. 외국인 전체 평균보다는 200여명 많다.


북한이탈주민 범죄실태 및 대책

North Korean Defectors : Crime & Countermeasures

장준오․고성호


북방문제연구소가 발표한 북한이탈주민 범죄율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균 범죄 발생율은 4.3%인 반면에 북한이탈주민범죄발생율은 9.1% 수준으로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김윤영, 2007).6)


북한이탈주민 범죄의 실태와 원인에 대한 이론적 고찰

김성훈·최재용·이윤호 (동국대학교)


2008년, 경찰청 부설 치안연구소는 1998년부터 2007년 1월 31일까지 입국한 전체 북한이탈주민 8885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그 중 20%에 해당하는 1,687명이 범죄 경력자로 집계되었다. 


더욱이, 위 자료와 같이, 탈북 사유 중 범죄를 피해 도망쳤다는 게 20%입니다. 물론 당사자들은 인터뷰에서 북한에서 누명을 썼거나 정치적 자유를 누리기 위해 탈출한 자신들의 명예를 범죄자로 더럽히고자 거짓말을 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합니다만, 실제론 아닐 가능성도 높습니다. 태영호도 북한에서 미성년자 성범죄 따위를 저질렀다 도망온 거라고 하는데, 사실인진 몰라도 어떠한 범죄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의 탈북 사유 또한 믿을만한 게 아니기 때문이고요.


하여간, 전 탈북자들의 해명 자체를 신뢰할 수도 없고, 신뢰해서도 안 된다고 봅니다. 북한의 주장을 검증할 수 없는 만큼, 당사자들의 말도 검증할 방법이 없는데다, 실제로 범죄를 저질러서 도망왔다는 건 상식적으로 있을 법한 일이기도 하죠. 기실, 한국에서 범죄를 저질렀다 중국으로 도망가거나 하는 경우 적잖히 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이러한 위험성을 특별히 더 내재한 존재가 탈북자라는 거죠. 심지어 체제 경쟁의 산물로 인해 그대로 한국 국민이 되어버리는데, 한국과 북한간의 거대한 차이를 고려해보면, 외국인이 오고 싶다고 하면 그냥 그대로 받아주는 수준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혈연적 관계 등을 고려하면, 조선족이나 고려인 같은 디아스포라조차 현행법상 좀 특수한 위치에 있는 외국인으로 대하지 자국민으로 취급하질 않습니다.


그러나 탈북자에 대해선 독재시절의 프로파간다와 체제경쟁을 사유로 하여 같은 국민으로 대하고 있죠. 불평등한 걸 떠나서 위험합니다. 그렇다고 하나원 교육이 제대로 되느냐? 전혀 아니죠. 


탈북자 마약류 취급 범죄 증가..하나원 교육 전무


앞서의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탈북자에 대해서 냉정하게 이해하고 그 현실을 봐야 합니다.


2020/06/09 - [취미/이야기] - 탈북자에 대한 냉정한 이해와 현실.


물론 글에서도 말했듯이, 대부분의 북한 사람들은 평범하게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만나러 갑니다나 다른 탈북자 유튜브에서 등 많은 생각과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고요. 가령 김길선씨라고, 탈북자 할아버지인데, 탈북한지도 오래 된 사람입니다. 당연히 북한에 대한 평소 어조는 강경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탄핵을 보고 한국이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며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그걸 이유로 북한 김씨 일가를 비판하죠. 물론 북한에 대해 강경한 거야 당연한 거지만, 생각해볼 거리는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또 다른 일면으론, 적지 않은 탈북자들은 본인부터가 별 것 없으면서도 뭐라도 되는 양 으스댑니다. 탈북자 인터뷰, 기획 기사 따위 찾아보면 말입니다. 어째서인가 보면 북한이 자기네 사람들 머리에 체제 우월성을 주입하기 때문인데다, 무엇보다 아예 다른 세계에서살다온 사람들이고, 그 나름의 후진성과 진보되지 못한 의식수준(정치, 사회, 문화 등)에 파쇼적으로 세뇌시킨 애국심, 후진국 특유의 열등감 등등이 뒤섞여 있습니다.


거의 북한이나 북한 사회체제 자체의 문제라기 보단, 미국의 봉쇄나 김씨 일가의 독재 패악질 때문이라고 보는 수준이죠.



이런 모든 요소들이 모여서, 삶이 어려운 탈북자들은 자기들이 어려우면 정부,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매우 강한 편입니다. 북한이 잘 안 되는 이유는 김씨 일가 때문이고, 자기들이 어려우면 정부, 대통령이 나쁜 거죠. 심지어 자기들이 내려와서 어려우니, 대접하라는 식으로 봅니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내려와줬는데 이렇게 대접하냐는 정도로요. 아주 당연히 지원과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여기죠. 물론 지원은 필요합니다. 보호도 필요하고요. 근데 탈북자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적어도 단체 따위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이들은 그저 그 정도로 여기는 게 아니라, 자기들을 책임지는 걸 국가가 하는 게 당연한 거고, 자신은 그게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여겨요.


“정보기관 입맛 맞는 강의만” 이름값 얻으려 성형수술도


그런 탈북자들을 전 정권에선 어떻게 다뤘냐면, 그냥 돈을 뿌렸습니다. 탈북자 중 취업이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뛰게 했습니다. 군 부대는 한번 강연 뛰는데 20만원을 주죠. 겉으로 드러난 게 이 정도면 정당이나 정부 기관과 관계된 어용 탈북 보수단체를 고려해보면 더 많을 겁니다.


이명박근혜 당시 탈북자 단체들이 얼마나 활발히, 많이 활동했는지 생각해보면 말이죠. 세월호 때도 일당 2만원 주고 탈북자 동원했었던 거 생각해보십시오. 정권이 바뀌니 지금은 오히려 확 줄어버렸고요. 그 당시 어버이연합 같은 곳도 크게 날뛰었는데 어용인 거 들키고 지금은 안 보인 지 꽤 됐죠. 단체 활동도 결국 돈이 있어야 하는 거죠. 그 돈을 위해서 숭숭 뚫린 회계를 저지르기도 하고 말입니다. 



물론 누누히 말하지만, 평범하게 사는 탈북자들 많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이념 같은 걸 밝히기 싫어하는,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고도 하고요. 그러나 탈북자에 대한 인식을 불리하게 하는 것 또한 탈북자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무엇보다 중요한 건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교육시키며, 보호하는 일이지요.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운 건 그냥 아예 다른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법, 사회, 문화, 정치체제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본주의에 적응하기에도 부족한 능력을 가지고 있죠. 이는 한국으로 귀화하거나 일하러 온 외국인 노동자, 귀화자보다 더 큰 차이입니다.


그런 이들을 재사회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얼마나 많고 오래 걸릴지 이해해야 해요. 하나원의 교육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충분하지 않다는 건 사실이리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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