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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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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너 빨갱이!'가 잘 안 먹히는지 '너 좌편향!'을 자주 보게 되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의 논리는 마주할 가치조차 없다고 여겨지더군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편향적인게 문제되는게 아니거든요. 심판이나 판사같은, 공정하고 공평해야할 입장에 있는 자들에게나 편향적인 것이 문제가 됩니다. 심판이 한 쪽 편만 들어주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마찬가지로 싸운 두 아이 중 한 아이의 편만 들어주는 선생님이나 부모는 분명 잘못됐다고 할 수 있어요. 다시 말해서, 공적인 자리에서 정치적 편향성이 공정성을 훼손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의 영역에서의 옳고 그름의 문제이고 정치와 같은 명백히 옳은 것과 명백히 그른 것을 구분 할 수 없고, 그저 장, 단기적인 문제나 발전을 어떤 방법으로 해결, 이룩하는 것이 좋을까와 같은, 사실판단이 아닌 가치판단의 문제에 있어서 편향이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를 간단히 해봅시다. 애초에 편향이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우편향도 응당 문제가 되는 것이고, 그렇게 따진다면 모두가 좌도, 우도 아닌 중립의 위치에서 정치를 논해야 한다는 것인데, 애초에 그게 말이 되느냐를 떠나서 그렇게 된다면 정당은 어째서 존재하고 어째서 정치적 담론과 토론, 논쟁이 필요한가요? 그냥 모두 같은 성향이면 한가지만 쭉 밀어버리면 되잖아요?


그렇기에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될 이유가 없습니다. 정치가가 심판은 아니잖아요? 가치판단을 통해 현재 복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좌파인 것이고, 가치판단을 통해 현재 성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우파인 것인데, 이러한 가치판단을 전혀 배재하고 사실판단을 한다는 것은, 기실 미래를 볼 수 있다는 말 밖에 되지 않습니다.[각주:1]


하지만 인간은 미래를 볼 수 있는 동물이 아니잖아요? 그저 예측할 따름이고, 때때로 맞기도 하지만 대개는 빗나가는 것이 현실인 이상 100% 완벽하게 미래를 보고 옳은 방향으로 정책을 짤 능력이 있지 않다면 현재와 같이 서로의 사상의 자유에 따라 편을 나누며 입씨름을 하고 올바르다 '판단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겠죠.



애초에 문제가 되는 것은, 같은 성향이라고 같은 성향의 인물이나 집단에 대해 아무런 비판이 없다는 것과, 성향이 다른 인물, 집단에 전혀 수용적인 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향이 다르다고해서 상대방의 말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며 자신의 말이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닐터이니, 언제나 이것이 옳은가 저것이 옳은가하며 입씨름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러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주장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이 아닌 전체적인 면에서 인정하고 다뤄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 토론과 논쟁을 통해 의견을 수립, 철폐 등 절충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니까요.



  1. 왜냐면, 사실판단이라는 것은 '사실'이라는 단어에서처럼 팩트만을 끄집어내는 것이므로, 사실판단으로 정치를 한다는 것은 미래를 보고 이렇게 하면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고, 저렇게 하면 나쁜 결과를 이끌어낸다는 것을 사실로서 입증 할 수 있어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래에 서술되어 있듯이 그건 100%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미래를 볼 수 있지 않는 이상 그저 어느 것이 (가치판단의 형태에서) 옳을 것이다 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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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또한 바라보기 나름인지라 민족에 대한 강렬한 자긍심과 뜨거운 애국심을 가지고서 보면 민족주의에 빠져들기 쉽고, 반대로 민족에 대한 냉소와 국가에 대한 애정이 없는 시각이라면 국까로 빠져들기 쉽죠. 이러한 관점은 자칫하면 편향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정치에선 편향적인게 문제가 되지 않듯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편향된 시각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전 단언코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역사학에서도 역사를 바라보는 프레임 자체는 여러가지가 있고 현 유럽에서의 대세는 탈민족이 대세라고 하지요. 이러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 프레임은 당대의 정치상황과 국제사회의 조류가 개입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가령 20세기 초반 세계 열강에게 둘러쌓여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다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현실속에서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켜 독립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민족주의 사학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대세가 그것이었음을 떠나 그럴 수 밖에 없었던 현실에 있었겠지요.


민족주의 사학은 한민족이라는 결속력을 강화시켜주고 자긍심을 고취시키며 또한 국민 하나하나에게 강력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부여할 수 있었습니다. 민족주의 사학 그 자체를 봐도 민족에게 부끄러운 과거를 미화하거나, 무언가 대단한 것을 발견하면 끝도 없이 추켜세우는 것을 보면, 어느 의미에선 이 또한 역사왜곡의 일종이 아닐까 싶더군요.


예컨데 병인양요같은 창피하기 그지없는 막장 전투를 결국은 (정치적으로나마) 승리했다며 미국과 프랑스라는 열강에 대항해서 승전한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추켜세우는 것은 기실 진실을 외면하는 꼴일테니까요.[각주:1]


반면 국까적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임진왜란은 일본의 침략에 쪽도 못써보고 20일 만에 조선의 수도를 내어준 것을 부각하며, 초기 일본군의 승전을 추켜세우고 조선의 각종 병크와 패전을 더욱 깍아내려 조선을 약해빠진 나라, 명나라에 바짓가랑이 잡고 늘어진 창피한 나라, 그런 역사라고 하는 것 또한 진실을 외면한 것이죠.[각주:2]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당대의 정치적인 상황에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러한 정치력은 정치적 의도를 띄고 있기 마련입니다. 역사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만, 이러한 정치적 의도가 왜곡을 불러 일으킨다면 그것은 역사를 병들게 만드는 독수毒手라 할 수 있겠지요.


역사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한다는 것은 어떤 부분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 혹은 어떤 사건이나 어떤 일화를 어떠한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함이냐를 결정 짓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정치적 의도로 인해 아직까지고 교과서에 강력한 민족주의적 색채를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죠.



역사는 기본적으로 사실을 기본으로 하여 평가를 내립니다. 예컨데 어떤 왕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업적은 무엇이고 과는 무엇이며 그것이 후대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느냐를 밝히고 평가를 내리는 것이죠. 단적으로 그는 성군이었나, 폭군이었나 하는.



역사학을 연구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즉, 사료와 유물인 것이죠. 당대의 서적과 유적, 유물등을 통해 당대의 어떠한 생활상이나 문화등을 알아내고 그것을 통해 더 넓은 사실에 도달해내죠. 어느 시기에 굶어 죽은 사람들의 유골들이 발견되며 기록에서도 비가 내리지 않는다. 강이 마른다와 같은 기록이 나왔다면 그것은 큰 가뭄에 흉작이 들어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할테죠. 그리고 이러한 노동력의 감소는 해당 시기 이후 몇년 동안 생산성 감소로 이어졌을테고 더 나아가 세금을 걷는대에도 무리가 왔을 겁니다.


좀 더 간단한 예를 들자면 청동기 시대 고인돌이 발견됬고 그 밑에 사람의 유골과 청동제 물건들이 발견되었다면 그 사람은 높은 계급의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그 시대에 계급제가 생겼고 청동기가 아무대서나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을 통해 청동기는 권력자의 상징이었다는 것을 유추해 낼 수 있겠죠.


간혹 역사라는 것에 대해 쉽게 착각하는 것이, 역사는 그 당시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또는 역사는 승자에 의해 조작되기 쉬우므로 정확한 것은 하나도 없다라는 것인데, 이것은 역사라는 것에 대해 가지는 흔한 착각에 불과합니다.


정치에서, 전쟁에서 승리한 자가 역사를 자신에게 유리하고 패배자에게 불리한 내용을 적었다고 해도 여러가지 사료와 유물을 통해 교차검증을 하며 수많은 토론과 논쟁을 통해 결국은 진실을 밝히는 것이 바로 역사학자가 하는 일입니다.


승자에 의해 조작되었을지언정 기어코 진실을 밝히는 역할을 하는 자들이 바로 역사학자들이죠. 그렇기 때문에 역사학자들은 예리하고 신중한 태도로 이러한 사료를 연구합니다. 그들은 진실을 연구하는 자들이니까요.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긴 했지만 결국 내놓은 결론은 이겁니다.


역사라는 것을 바라볼때 민족주의적인 시각으로도, 국까적인 시각으로도 바라보지 말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평가를 하자는 것이죠. 학자들도 사람이고 학파라던가 시대적인 조류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완전한 객관성을 유지할 수는 없겠으나, 역사라는 것에 정치적 영향력이 들어갔다고 해서 상대방의 주장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이 아닌 전체적인 면에서 인정하고 다뤄줘야 하듯이 여러가지 다른 사관을 가졌다고 해서 상대방의 주장을 무시하는 태도 또한 옳은 태도는 아닙니다.


진실이라는 것을 오롯이 볼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기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될지언정 가치없는 개소리라고 할 수는 없다 이겁니다. 진실을 연구하는 자들이 상대방이 보는 진실을 무시하는 것은 진실을 외면하는 일과 다를바 없으니까요.[각주:3]



  1. 무엇보다, 프랑스군이 침공을 해오는데 화승총을 다룰수 있는 정규군이 없어서 호랑이 사냥꾼을 모아서 병력으로 차출합니다. 그리고 프랑스군은 150명의 병력에서 3명의 사망자, 35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며, 조선은 기록이 없으나 실제 피해는 막심할 것이라고 합니다. [본문으로]
  2. 하지만 이순신이 일본군의 보급을 끊고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의병들이 일어나며 정규군과 의병들이 일본군을 몰아내기 시작했으며, 명나라의 도움 없이도 승전은 많이 뽑아냈으며 결국 중후반에 들어선 왜군은 경상도에 틀어박혀 협상 모드로 전환. 이후 모조리 물어간 것은 우리가 약했다고 보기 어려울 겁니다. 조선도 일본군이 공격해 올 것은 알았으나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10만 이상 15만에 가까운 병력이 올 줄은 그 누구도 몰랐죠. [본문으로]
  3. 물론 그것이 역사왜곡의 범주에 들었다면 충분히 개소리로 씹어도 된다고 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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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topia는 우리말로 이상향, 이상사회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16세기 초, 토마스 모어에 의해 쓰여진 이 이야기는 당대에 생각할 수 없었던 사상과 생각을 담은 작품이죠. 금욕적이고 절제적인 삶을 살면서, 사유재산이 철폐되고 노동시간이 짧은 등, 공산주의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는 이 나라가 이상사회로 번역되는 것은 작품 내에서 묘사되는 유토피아의 모습이 작가가 생각하기에 이상향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토마스 모어가 만들어낸 유토피아라는 단어는 현대 영어에서 이상향의 의미를 담고 있죠. 그렇다면 이상국가, 이상사회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높은 지성을 가진 덕성있는 시민들이 합리적이고 이상적이나 또한 인을 생각할 줄 아는 시민들이 이루고 있는, 서로에 대한 예절을 지키며 상호존중하며 노동시간을 짧으면서 높은 생산성을 이룩하며 고소득의 수익을 벌어들이면서 높은 수준의 복지가 이루어져 범죄자나 부랑자가 없는 등 사회에 대한 불만이 없으며 모두가 행복하고 모두가 고통받지 않는다는 것은 어떨까요.


이는 마치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북유럽은 꼭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국가의 모습 그 자체가 아닙니다. 그들 나름대로 문제를 가지고 있고, 그곳에서도 사회불만은 존재하죠. 지난번 총기난사 사건이 그것에 근거를 댑니다.


앞서 댄 조건들을 다시 생각해봅시다. 저것들을 실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일단 가정부터 살펴보죠. 모두가 덕성있고 지성이 있으며 사회의 틀에서 (안 좋을 쪽으로) 삐져나온 이들이 없으려면 가정에 대한 복지는 필수입니다. 올바르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인간으로서의 시작이 뒤틀린 격이기 때문에 지독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이들의 범죄율이 높은 것이죠. 따라서, 적어도 맞벌이 등으로 부모가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을 적게 만드는 것은 잠재적으로 사회를 혼란시키는 원인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그 예가 우리나라는 아닐까 싶군요.


또한 부모 또한 부모로서의 자격과 의무 등에 대한 교육을 받게 해야합니다. 부모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것 만큼 아이에게 해가되는 것은 없으니까요.


그렇게 올바른 가정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만들어졌다면 다음은 공교육으로 눈을 돌려봅니다. 공부라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 아닙니다. 지혜를 또한 얻을 수 있어야하죠. 그러려면 철학에 대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수학, 문학, 과학, 외국어 등등은 기초 지식으로서의 조건이지만 철학은 조금 달라요. 인간에게 지성의 깊이를 더해주는 학문이라고나 할까.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사색에 가치를 부여해주죠.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작은 현상에서도 더 큰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지혜의 발견이고, 생각의 힘입니다. 철학은 그것을 위한 도구이구요.


경쟁은 물론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뭐든 과유불급인지라 경쟁이 과격해진다면 순기능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을 방지할 수 있도록 장치를 해놔야함은 사실이죠. 그렇지 못하면 공교육에서의 승리를 위한 사교육이 폭주하니까요.


그렇게 공교육을 통해 하나의 지성체로서의 인간이 만들어졌다면 그들이 해야하는 것은 사회를 이루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는 직업이라는 것을 통해 이루어지죠. 앞서 이야기하자면, 위의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엄청난 복지예산이 필요할 것입니다. 북유럽만해도 소득의 수십%를 세금으로 때가죠. 그렇지만 그들의 소득수준 또한 무시할 것이 못되요. 그러므로 그들의 소득수준 또한 높아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교육과 복지등의 노력으로 높은 지성과 덕성있는 시민들이 만들어졌고, 그러한 속성 덕에 사회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발생해도 차분한 토론을 통해 깔끔한 대안책을 제시하고 해결하는 등, 누구도 고통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진다면 그것이 이상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덕성있고 지성이 높다한지라도 그 시스템을 악용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을 것이고, 사회의 불만을 완벽하게 제어하고 없애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하다못해 북유럽과 같은 복지를 위해서는 사회구조 전반을 뜯어 고쳐야하는 나라도 태반인 이 세계에서 이상향는 말 그대로 '이상'찌든 발상일 것입니다. 애초에 모든 시민이 덕성이 있고 지성이 높다는 것부터가 너무나도 어려운 조건이죠.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Utopia라는 단어에 있습니다. 토마스 모어가 이름지은 자신의 작품은 οὐ(not) + τόπος(place)라는 의미로, 이를 번역하자면 '어디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이 됩니다. 즉, 그가 말한 금욕적이고 절제적이며 노동시간이 짧은, 가장 나은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있죠.


오백년전 사람이 보기에도 완벽한 사회라는 것은 그저 이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한가지 복잡한 결론을 내놓습니다. 인간 덕성의 진보야말로 진정한 진보지만 역사를 통틀어서 그런 적은 한번도 없었고 오직 시스템의 진보를 통한 진보만이 있어왔다는 것은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는 동물인 이상 그 본성 자체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이것은 또한 재밌는 사실을 내놓기도 하는데, 그것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인간이 인간인 이상 완벽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그러한 이상사회를 추구하는 것 또한 분명 필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말마따라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니까요, 시스템을 통한 진보만이 있어왔다는 것은 시스템이 완벽해지는 것이 완벽한 사회를 만드는 것일 터이니 진보된 시스템을 추구하고 그것을 이룩하는 것이 곧 이상사회를 향한 인간의 올바른 발걸음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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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원칙같은걸 개떡으로 아는거 같습니다.



학교, 회사, 국회, 인간관계 등등.


학교에서도 원래는 ~~해야하는데 안 한다던가 하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학생들이 누구 하나 잡고 학교폭력을 가한다던가 하는 경우에도 이럴 경우 교사가 나서던가 신고를 하던가해서 해당 학생을 보호하고 가해 학생을 처벌하는 것이 원칙인데 귀찮다고 방치하고, 시끄러워지면 묻으려하고..


애초에 원칙만 지키면 되는걸 귀찮다고, 또 병신같은 이해관계가 얽혀서 안 하려드는게 현실이니 뉴스만 보면 욕이 나오지..



회사에서도 마찬가지, 월급을 제 때에 맞춰서 줘야할 것을 안 주고 미루고, 결국 임금체불로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으며 할 일은 다 끝났는데 서로 눈치주고 위에서 압박하며 퇴근시간 다 지났는데 회사에 앉혀놓고 일하게 만들고..


할 일을 칼같이 끝냈으면 퇴근 시간도 칼같이 지켜 퇴근하는 것이 프로일진데 쓸데없이 사람 잡아둬서 귀찮고 피곤하게 만들어서 되려 업무 효율 떨어뜨리는 짓을 하는건 무슨 멍청이들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놓고 또 뽑아먹을땐 애사심이니 뭐니하는 위선떠는 소리만 골라서 짖껄여대질 않나.



원칙이라는 것이 결코 무시해서는 안되는 기본 중의 기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원칙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무시하는게 현실인거 같아요,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눈가리고 아웅에 원인을 찾으려고 해도 원칙만은 절대 안 보고 이상한 거나 잡고 늘어지니 발전이라는게 없지..



단적으로 미국만 봐보면, 그러한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적어도 적다는 것은 사실이죠. 할 일이 끝났으면 퇴근하고 말썽 부리는 학생이 있으면 곧바로 징계, 심지어 경찰까지 불러서 책임의 소재를 확실히 해서 결과적으로 일처리가 말끔하게 끝나니까요.


언제나, 모든 곳에서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원칙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극명하게 갈리니 확실히 적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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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4개는 모두 한국이 직면해 있는 가장 큰 문제이자 해결되지 않는 거대한 딜레마입니다.


아는 지식이 미천하니 제가 아는 것만 간추려서 글을 뽑아볼게요.





교육


한국의 교육 문제는 이미 심각해진지 오래됬죠. 과거 전쟁 이후 한국은 가진 것이 사람 밖에 없었고, 누구나 공부해서 대학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면 계급상승을 꿈꿀수 있는, 그것이 실현될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노력하고 자기 자식에게하는 투자가 아깝지 않았죠. 우리 아들이 좋은 성적을 얻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면 정말 꿈에 마지않았던 삶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누구나 노력만 하면 성공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점점 계급상승의 사다리는 적어지고 그나마도 가늘어지고 있죠. 전 우리나라의 계층이동이 점점 고착화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완전히 고착화 될 것 같아요. 문제가 바로 이겁니다. 계급은 고착화 되고 있는데, 그 좁은 사다리 오르려고 더 많은 이들이 피튀기는 전쟁을 하고 있다는거죠. 여기엔 성공한 삶이 좋은 삶. 대기업 다니는 사람은 인생의 승리자. 직업으로 사람을 따지는 풍토 등등 시덥잖은 인식들이 더욱 부추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어려우면 더 어려울 수록요.


이미 성공한 자들의 자식은 성공하기 쉽습니다. 성공하지 못한 자들과 비교하면요. 이건 근거있는 말입니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영어교육 투자의 형평성과 효율성' 보고서에 따르면, 영어는 가구당 소득이 1만원 오를 때마다 수능성적 백분율이 0.029% 오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예를 들어, 월 평균 가구 소득 차이가 200만원이 나는 두 수험생이 있다면, 이들의 영어 성적 격차는 평균 5.8% 벌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가구 소득 1만원 당 국어 0.022%, 수학 0.019% 격차를 보이는 것과 비교해 높은 '소득 민감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http://media.daum.net/society/newsview?newsid=20120604161007115


《지난해 서울대 합격생의 절반 이상은 수도권 출신이고 5명중 1명은 특수 목적고 출신이었다. 서울 강남3구 출신학생 비중도 점점 늘고 있다. 계층이동의 사다리 구실을 했던 교육이 오히려 계층을 고착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수험생 집안의 가계살림에 따라 수능성적이 나온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게 되었다.》


2. 부모의 소득수준과 자녀의 교육?임금과의 관계

□ (교 육)부모의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자녀의 PISA 성적이 높은데, 상관이 큰 국가는 미국, 프랑스, 독일,
뉴질랜드, 영국 등이고, 낮은 국가는 아이슬란드, 핀란드, 노르웨이, 한국, 캐나다, 이태리, 일본 등임

□ (임 금)모든 국가에서 부모의 임금수준이 자식에게 이어지는 세대간 임금의 경직성이 나타났으며,
상관이 높은 국가는 영국, 이태리, 미국, 프랑스이고 낮은 국가는 덴마크, 호주, 노르웨이, 핀란드,
캐나다임


이건 제 블로그의 글인《기회의 불평등이 결과의 불평등인 이유.》 에 더 자세히 나와있으니 자세히 알고 싶다면 링크를 다주시기 바랍니다. 

여튼, 이런 성공만이 다인 풍토가 마련된 한국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저 많은 노력과 돈이 투자되야 합니다. 부모는 번 돈의 대부분을 자식의 교육에 쏟아 붇기도 하죠, 좋은 학원, 좋은 과외, 좋은 강사 등등.. 여기에는 질적인 차이가 발생하는데, 상류층(성공한 자들)은 더 높은 질의 교육을 자식에게 배풀수 있고 그 결과는 상류층의 아이는 높은 성적을 거둔다는 겁니다.

좋은 성적, 좋은 대학을 나온 이들이 더욱 성공하기 쉬운 환경이니, 사교육비가 얼마나 들어가던 아이에게 투자를 하는거고, 그게 한국 사교육 문제의 핵심입니다. 노력만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되려 이러한 경쟁 사회를 가속화 한 것은 아이러니 일까요, 아니면 어디선가 뒤틀려버린 걸까요?


물론 단순히 사교육비의 차이로 학생들의 성적이 결정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단지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 당연 학생의 노력도 중요합니다. 좋은 학원과 과외선생이 있다고 해도 공부할 생각 자체가 없다면 말짱 꽝이니까요. 요즘은 경쟁사회라고 하죠? 서로 경쟁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경쟁


흠. 경쟁이라, 경쟁은 오히려 기업들이 그것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고 봐야겠군요. 학생이나 취준생 등등 서로가 서로를 경쟁하며 더 나아가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사실 그것의 근본은 더 좋은 기업에 들어가겠다는 노력의 산물이자, 그것을 알고 더 좋은 인력을 얻어내기 위한 기업의 부채질이 아닐까 합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한국은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사회입니다. 그 노력에는 여러가지 불평등한 요소가 들어가기는 하지만요.(되게 아이러니하죠?)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더 좋은 성적과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힘쓰는 거겠죠. 학생들은 자기 스스로의 가치를 높히기 위해 더 많은 공부와 더 많은 스펙을 쌓으려고 합니다. 사실 당연한거죠.. 남들보다 더 높이 서기 위해 힘쓰는 다른 이들도 모두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을테니까요.

더 많은 봉사활동 점수와 더 많은 자격증, 유하경험, 기업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자신과 자기 부모님의 지원을 쏟아 붓습니다. 이게 경쟁의 실체려나요? 더 좋은 기업에 들어가기 위한 전방위적인 스펙전쟁..

일단 이 경쟁과 스펙전쟁에 대해선 이 글을 바탕으로 깔고 시작하는게 어떨까 합니다. 《입학사정관제의 실체에 대해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이 링크의 글에서 말하길, 입학사정관 제도는 공부를 잘하는 유대인들에게 밀리는 사회 고위층 자제들을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길; "공부만 잘 한다고 우수학생인가! 운동, 예술, 인성, 리더쉽, 창의성, 잠재력 등도 평가항목에 넣어야 한다" 라고 하죠.


단순히 공부를 잘한다고 취업하는 일은 요즘 세상에 없는 일입니다. 각종 자격증과 여러가지 요소들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기업에게 선택받는게 현실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스펙전쟁과 경쟁을 더욱 더 뜨거워 질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즉, 취업하기 어려운 현세태가 더 뜨거운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제가 생각하는 교육열을 해소하는 방법은 일거리 창출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일자리는 적은데 취업을 원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렇다면 여기서 기업의 태도와 취준생의 태도는 딱 이럴 수 밖에 없어요. 기업은 이 경쟁이 더 가속화 될수록 싼 값에 더 유능한 두뇌를 뽑을 수 있고, 취준생들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 좁은 취업문을 뚫기 위해 남들보다 더 뛰어난 인재가 되려는거죠.


그러니 교육열이 뜨거워 질 수 밖에!


뭐.. 자세한 이야기는 역시나 제 블로그의 다른 글인 궁극적으로 교육열을 낮출수 있는 방법?》을 봐주시길.. 낄낄.





취직


취직문제는 사실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교육 + 경쟁 두가지를 합치면 이러한 취직문제의 근본에 대해 알 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간추리자면, 계층 이동, 성공한 삶을 위해 더 많은 사교육비를 투자하고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하게 되며 스펙전쟁과 유학을 하게되는 상황은 또한 기업들이(고의적으로든 얻어걸린 것이든) 부채질하고 있기에 더욱 피터지는 경쟁을 유도하게 되며, 이것은 모두 취업을 위한 일련의 발악(?)이다..


말이 조금 장황한가요? 특히 발악 부분이.





출산


사실 출산 문제는 위에서 이야기한 것과 크게 연관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정작 경제문제와 더 연관된 이야기겠죠.


한국의 출산율은 매우 낮은 편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죠. 취직이 어려운 현세태에서 아이를 낫는 다는 것은 정말 용기있는 행동이며 어찌보면 도박이라고 볼 수도 있죠. 기본적으로 취직한 여성들이 임신을 하게 된다면, 특히 출산을 하게 된다면 퇴직을 요구받게 됩니다. 그렇게 압박 받을 수 밖에 없어요.


일단 회사의 입장에서 생각해봅시다. 그럼 계산이 복잡해지죠.


1. 단절되는 경력을 다시 이어붙이는 것이 가능한가?

2. 출산 이후 과연 정말 복직이 가능한가?

3. 출산 기간 동안에 휴직을 할 때 이것을 경력에 포함시켜 줘야 하는가?

4. 출산 휴가 동안 동기들이 진급할 경우 이에 맞는 대우를 어떻게 해줘야 하는가? 

5. 중대한 업무를 추진 중에 출산 안할 것인가?


등등 개입의 권리 차원에서 당연히 인정해 줘야 하는 문제들이 회사 입장에서는 문제가 커집니다. 더욱이 저런 문제들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는 더하죠.


아주 비싼 프로젝트를 하는데 여자 사원 하나가 임신을 한다고 칩시다. 그것도 처음이나 끝이 아니라 프로젝트 중간에요, 그럼 인신 중에 쓰는 휴가와 출산 후에 쓰는 휴가 등등 많은 시간을 빠지게 되는데, 그럼 그 프로젝트의 빈자리를 누가 채우냐는 겁니다. 다른 사람 대리고 와서 시키면 되지 않느냐 할 수 있겠지만 시작부터 같이 하던 사람도 아니고 중간에 들어온 사람이 적응하는 것과 그것에 대해 교육하는 시간과 비용은 어쩌냐는 거죠.


말 그대로 중간에 갑자기 한명이 임신 때문에 휴가간다고 하면 팀과 회사가 X되는 거겠죠.


출산을 하면 출산휴가를 줘야하는데 그럼 그 휴가기간 동안 어떠한 성과도 내지 않는 사원에게 월급을 지급해야하는데 이것도 엄밀히 말해서 회사의 손해이고, 또한 출산 이후 복귀가 가능한가, 그 기간 동안 단절된 경력과 재적응 기간은 또 하나의 골치아픈 문제가 되죠. 이건 특히 중소기업이 더 한데, 중소기업이고 대기업이고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신입은 적응과 업무 숙련을 하는게 2~3년은 걸리죠.


그런데 대기업보다 그 손실의 파급이 큰 중소기업에게는 더 까다로운 문제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실정이니 어머니 가산점제도 본질은 남녀갈등이나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성과 낳은, 낳는 여성의 싸움이 아니라 이러한 기업, 사회전반적인 인식과 풍토를 해소하고 또한 출산과 육아를 위한 복지의 확충이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점이라는 겁니다. 



회사에서 일하는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과 가족에게서 아이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분유값부터 시작해서 기저귀, 옷, 장난감 등등, 아이 하나에 들어가는 비용은 막대하죠. 이 아이가 커가면서 학교도 들어가야하고 위에서 말했던 경쟁사회에 진입하면서 들어가는 사교육비.. 엄마 아빠 따질 것 없이 맞벌이해야 살 수 있는 사회에서 아이를 낳고 허리띠 졸라 매고 사느니 출산 결혼 포기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흔히 삼포세대라고 하죠. 삼포세대는 취직까지 포기했지만..


게다가 이 나라는 물가까지 높습니다. 꾸준히 오르고 있다나요? 분유값 기저귀값이 꾸준히 오른다... 출산하기 겁날 수 밖에;;


물가는 꾸준히 오르지 나 혼자 먹고 살기도 힘든데 출산까지 하면 허리 끊어지는거 감수해야하지.. 이게 현실이고 실정인데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생각 안하고 맨날 출산율이 문제다 어쩐다 떠들기만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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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뭐하는 곳이냐 하면 곧 학문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기관인 것인데, 요즘엔 돈만 있으면 오히려 대학에서 대학갈 수준도 안되는 머저리들을 모셔오기 까지 하니, 이 얼마나 웃기고 기가 막히는 일인가 싶숭. 수능이라는게, 단순히 중요한 시험따위가 아니라 그동안의 학업성취도를 평가하여 자신의 수준에 맞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하나의 자격을 증명하는 과정인데, 요즘 세태를 보면 수능도 잘 보지 못했지만 대학에 오는 사람 없고 벌어들이는 돈이 부족하다고 돈만 주면 개나소나 입학시켜주는 것이 현실.



대학 진학률이 높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고급인력이 많아졌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대학갈 수준도 안되는 머저리가 잘도 대학생이나 된다는 말이기도 한다는 것 또한 사실인지라, 이번 마교수 사건으로 문득 떠오르더라.



마교수가 뭐라하였는가 보면, 자기가 듣는 수업에 최소한 교재를 가져오라는 것인데, 이건 교사라면 당연히 학생에게 응당 요구해야할, 요구할 수 있는 당연한 이야기지라. 책을 사라는 것도 아니고 빌려서라도 오든 교재를 가져오라는 것인데 이걸 가지고 머리에 지식이란 좆도 없는 대학생이랍시는 놈들이 개기는 것에 불과하고, 그걸 또 기사로 쓰는 기레기 또한 자신의 수준을 또 한번 적나라하게 증명하고 있다는 것.



교과서도 준비안해오는, 그냥 거저 먹겠다는 학생 꼴도 못하는 머저리들이 대학생이라고 존재하는 나라이니 거참 이 나라 십년 이십년 미래가 그저 두려울 따름.


더 웃긴거? 이런 수준인데 그래도 대학 안나오면 사람 취급도 안해주고, 대학 안나오면 채용도 안하는 기업들의 모습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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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를 일으키는 원인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인데, 국가와 경찰력의 목적이 바로 치안유지에 있음이라 이러한 원인의 분석과 판단에 의한 원인 제거는 필수적이고 범죄율을 낮추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원인의 해결은 관심도 없으면서 자기 힘들다고 일을 대충하며 그나마 발생하는 범죄를 애써 무시하고 태만을 일삼는 일이 많다는건 참 병신같다능.



범죄를 일으킴이라 함은 원인이 있기에, 그것이 어느 지역이나 좁은 계층에 국한하지 않고 좀 더 넓은, 전국적이고 넓은 계층에서 일어나는 범죄라면 그것의 원인이 필시 사회에 있다는 하나의 증거가 되기 충분함에, 결국은 그 해결의 손잡이가 정치에 있다는 것은 사실인지라, 그런 의미에서 정치인의 도덕성 또한 중요한 판단요건이겠지욥.



하여간 최근세 범죄율이 높아졌다는 이야기가 좀 들리는거 같은데 조금만 살펴보면 좁은 지역이나 계층에 국한하지 않는거 같다능. 따라서 사회에 원인이 존재하겠다고 추측하는 바, 그것은 양극화일 수도, 세대, 지역, 성별의 갈등일 수도, 국민들 기만하며 범죄나 일삼는 사회 고위층일 수도, 혹은 모두 다 일 수도 있겠지요.



서민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와닿는 것이야 세금, 물가, 대학등록금 등등 많이도 있을테지만 굳이 세대를 나눠보자면 대학생에겐 비싼 대학등록금일 것이요, 주부에겐 비싼 물가일 것이메 월급은 그대론데 물가와 등록금은 팍팍 올라가니 민심이 흉흉해져 범죄나 일어날 것이 당연도 하여라. 원인을 찾자면 머리가 아프도다..



뻐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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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경제발전에 대해 너무 긍정적이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전쟁 이후 입을거 못 입고 먹을거 못 먹던 시절에서 경제발전이라는 경험을 통해 먹고살수 있다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박정희를 우호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을수 밖에 없고, 경제발전이라는 면에서(단순히 경제를 발전시켰다에 그치지 않고) 먹고 살수있게 해주었다는 것은 박정희의 공이라고 할수있겠죠. 뭐.. 이건 저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제발전이라는 것이 꼭 선이냐라고 한다면 전 글쎄올시다라고 밖에 말할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역사의 예를 하나 가져와본다면 식민지 근대화론이 있겠죠. 일본은 우리를 식민지로 만들었고 쌀 생산량을 높혀줬으며 하여튼간에 일본의 의도대로 조선의 경제를 성장했습니다. 그렇지만 문제가 뭐냐하면 그 수혜의 대상이 우리가 아니었다는 것이죠.


일본은 철저히 조선에서 생산되는 쌀, 생선, 물자 등을 자신을 위해 거두었습니다. 그렇기에 쌀 생산량은 늘었지만 그로 인해 이득을 본 이는 없었죠. 경제는 성장했으나, 우리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습니다.


박정희의 경제발전은 달랐습니다. 일단 한국의 대통령인 이상 경제의 발전은 한국인들을 위해 돌아간 면이 존재하죠. 위에서 말했듯이 먹고살수 있게 해주었다는 공적 말입니다.



이를 통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일제시대도, 박정희 시대도 아닙니다. 바로 현재이죠.



우리나라 GDP가 2만 달러에 들었다는 뉴스 들어보셨을 겁니다. 일부에선 그것을 보고 이명박을 칭찬하며 경제발전에 이바지했다고 말했겠죠.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그 발전의 수혜자가 누구냐는 겁니다. 말마따라 대기업만이 그 성장의 수혜자가 되었다면, 일제시대마냥 서민들은 그 수혜를 받지 않고 일부 집단에게 그 수혜가 양도되었다면 이것은 과거 일제시대의 편협함과 기만이거든요.


박정희가 칭찬을 받는 이유는 단순히 경제를 성장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그 수혜가 어느정도 국민들에게 돌아갔다는 점입니다. 말 그대로 국가의 경제는 발전했지만 그 수혜가 국민들에게 돌아오지 못하고 여전히 힘들고 어렵게 살았다면 박정희는 희대의 때려잡을 개놈이 되었을 것 아니겠습니까?



경제발전의 그 자체로 곧 선이 아닙니다. 그 발전한 경제를 누구에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곧 선의 척도라고 할 수 있죠. 이명박이 경제를 성장시켰습니다. GDP 2만불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렇지만 서민들의 삶이 나아졌나요? 가스비, 전기료, 택시, 버스비가 내려갔나요? 물가가 내려갔대요? 결국 양극화만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명박의 경제발전은 선이라고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박정희의 덕인지, 한국인들은 경제발전을 선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러한 인식은 식민지 시절의 경제발전 또한 선으로 보아야 하는가의 매개가 되어버렸죠. 실제로 그 대상이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이라는 것을 알았을땐 되려 일본인을 욕했으면서, 현재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는 같은 잣대를 대지 않는 것인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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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다이트 운동같은 예도 있지만, 나름 실생활에 가까운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이글루스의 대마왕J님의 포스팅에서 발췌했습니다.


옛날 애니메이션 업계에 촬영감독님이라고 있었습니다.


셀로 그린 에니메이션을 한 장 한장 촬영해서 필름으로 만드시는 분이었지요.


광선검이나 빛 효과같은 특수효과는 이 분들이 촬영할때 다중 노출 기법등을 동원하지 않으면 만들지 못했었습니다.


거대하고 비싼 촬영기기와 촬영감독님은 그야말로 애니메이션의 최고 기술자이자 최종 완성자였었습니다.


그런데 그 감독님들이 순식간에 모두 직업을 잃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로 '포토샵' 이 나오고 난 후 부터입니다. 애니메이션 작업을 더이상 셀에서 할 필요도 없어졌고,


각종 3D와 특수효과를 비싼 장비 필요 없이 간단하게 작업할 수 있게 바뀌었기 때문이지요.


기술의 발달은 분명 좋은 겁니다. 삶을 윤택하게 해줄수도 있고, 과거의 위험하고 어려웠던 작업을 편하고 안전하게 해줄수도 있죠, 자본가나 주주의 입장에선 더 적은 돈으로 더 나은 결과물을 얻어낼수도 있죠. 

러다이트 운동은 노동자들이 기계에 밀려 자신의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에서 발생한 사건이었죠. 그나마 근근히 이어가고 있었던 삶을 기계라는 놈에게 빼앗겨 이젠 일자리도 없고 먹고살기 더 어려워진 상황은 무릇 당시의 노동자라면 비참하고 어이없는 현실이었을 겁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문득 생각나더군요. 앞으로 기술은 더욱 좋아질 것이고, 그렇다면 그로 인해 직장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라는 점에서요.

물론 어떤 시각으로 보면 그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니 앞으로 자기 밥벌이는 알아서 해야한다는 결론이 나올수도 있습니다. 근데 정말 재밌는데, 어떤 사람은 일자리를 잃고 다른 일을 시작해서 먹고살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어떤 사람은 정말 그것 아니면 먹고살 능력이나 방법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죠.

예컨데 직업군인이었던 자가 제대를 했을때 제대로 먹고살 능력이 있는가 하면 솔직히 비관적일수 밖에 없죠. 일용직 노동자, 택시운전수.. 뭐가 있나요? 미국에서도 제대한 군인들이 재사회화에 실패하거나 취직할 능력이 없어서 길거리 노숙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기술의 발달이 나쁜 것은 아니죠, 분명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기술의 발달에 의해 일자리를 잃고 어떻게든 상황이 나빠지는 사람은 분명 존재하고, 그것이 특히나 현 시국과 같이 청년실업 수백만에 기업의 甲 of 甲질이 난무하는, 일자리도 없고 경제도 나쁜 상황에서는 정말 먹고사는 문제 그 자체이죠.

이 문제는 누구하나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그냥 기술이 발달한 것 뿐이고, 그것을 시장에 적용했을 뿐이고, 그로 인한 결과가 내 일자리를 잃어버리는 것이니까요. 잘못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국민들의 윤택한, 안정된 생활이 유지되도록 해야하는 국가에게는 어느정도 선의 책임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국가가 해야할 일 중 하나가 일거리 창출이기도 한데,(또한 기업의 의무이기도 하죠.) 어떠한 이유에서든 일거리를 잃거나, 일거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 어떤 직업교육등을 시켜 다른 일자리를 찾도록 지원해줘야 하죠. 물론 지금도 하고는 있는 일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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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뭐 정전협상 파기한다 어쩐다 헛소리 내뱉고 있는데, 솔까 북한은 절대 전쟁 못냅니다. 그냥 허풍떨면서 찔러보는거죠.


기본적으로 북한은 매우 폐쇄적이고 권력이 소규모 집단에게 집중되어있습니다. 이런 북한 최상위층은 무려 60년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있고, 지금도, 앞으로도 유지하기 위해 무슨 수라도 사용할 용의가 있죠. 그런데 이렇게 어렵사리 유지해온 권력을 어떻게 버릴수가 있겠습니까?


전쟁. 북한이 필패하는 전쟁이죠, 무슨 수를 쓰던지간에 결국은 북한이 지게 되있습니다. 북한의 군사력은 단순히 물량만 많을 뿐이고, 단지 그뿐입니다. 기껏해야 한 달 굴리면 잘 굴린거죠. 심지어 그것들이 노후화되어 막상 전쟁때 제대로 굴러갈지가 의문이군요. 북한군의 군기? 똥군기에 제대로 훈련도 안하고 1년 교탄소모량이 5발도 채 안되는 애들이 무슨 전투력이랍니까. 요즘은 머릿수만으로 이기는 시대가 아닙니다. 머릿수가 많으면 그만큼 압도적인 화력으로 다 쓸어버리면 되거든요.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과 미국은 그런 화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60년동안 유지해온 권력을 순순히 내려놓을리가 없죠.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한다면 북한 국내에 선전할 꺼리도 없어지고, 북한군 별거 아니네 사는 것도 힘든데 함 뒤집어봐? 하는 심정으로 봉기조차 일어날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대외적으로는, 북한의 현 체제를 먼저 설명해야하는데, 60년간 엄청나게 폐쇄적인 체재를 유지하고있죠. 단지 공포로만 수천만을 거의 완벽하다시피 눌러놓고 있어요.


북한이 남한과의 군비경쟁에서 패배하자, 북한은 비대칭전력인 핵무기를 무리해서라도 얻어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 북한의 대외적 외교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죠. 핵무기 개발 이전부터 북한은 미국등 여러 국가에게 경제제재와 여러 압박등을 당해왔고, 사실 북한에게 이런 경제적, 외교적 압박을 뚫거나 해소할 능력은 전무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북한 지도부는 이것들을 해소할 생각도 없다는거거든요. 왜냐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어차피 자기는 배불리면서 잘 살고있는데 그까짓 압박따위 무슨 의미냐 이겁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군사도발은 무엇이냐하면, 부단히도 치밀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번에 정전협상 파기를 외쳤고, 마치 싸우자! 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덕분에 이걸가지고 우리 한국의 국민들은 이번에 전쟁이 터지면 어쩌나 라던가하는 걱정을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물론 대부분은 북한을 또다시 병신취급하고 조롱하고 있는게 사실입니다만. 이제는 심지어 얼마전 핵실험에도 코스피 지수가 변동이 없는걸 보고 외국 애들도 이젠 면역?이 됬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해외 투자자들도 별 신경안쓰는데, 직접 위협에 맞닿아있는 국민들은? 네. 크게 신경안씁니다. 


이걸 가지고 일부에서는 불감증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앞서 말했듯이 북한은 전쟁을 못 일으킵니다. 얻을게 전~혀 없거든요. 


북한은 이런 체제를 수십년째 이어오고 있고, 망한다 망한다 해놓고서 십수년을 더 버티고 있습니다. 지금도 강력한 제재를 받고있는데 지금보다 조금 더 강한 제재라고 뭐 눈썹하나 까딱하겠습니까? 지금보다 더 강한 제재를 해도 얘네가 조금 이빨 털 뿐 실제로 어떤 행동을 보기란 어려울 겁니다. 이런 특성덕에, 우리는 이 북한이라는 놈을 어떻게 다뤄야할지 아무도 모르고 있어요.


지금껏 우리는 이런 체제, 이런 국가를 본 적도 없고,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 아는 사람, 국가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저 현재 시점에서 할 수 있는 나름대로 최상의 결정을 내리기를 바랄 뿐이죠. 문제는 북한이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북한이 하는 도발은, 막상 전쟁이 터지면 잃을게 많은 강대국을 상대로 간을 보는 겁니다. 강대국들에 비해 자신들이 잃을 것은 초라한(그들 자신에게는 모든 것이나 다름 없지만) 권력 밖에 없고, 이것을 지켜내기 위해 도발과 핵무기를 그토록 필요로 했다는 겁니다.


강대국은 잃을게 많기 때문에, 또한 북한을 어떻게 다뤄야할지 모르기 때문에, 게다가 북한은 그러한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강대국의 허점을 제대로 찔어서 철저한 국제정세 분석과 외교적 행동을 고려하여 자신의 이권을 얻어내는 것인거죠.


따라서 북한이 할 수 있는 도발은 단지 소규모로, 국지적인 도발 밖에 못되는 겁니다. 이번이 북한이 한 소리있죠? 참 웃기지 않아요? 전쟁 낼 놈이 나 전쟁 일으킬꺼임 하는거 봤어요? 싸우는데 나 너 때릴꺼다 하면서 때리는애 봤어요? 그런 애들 중 진짜로 때리는 애들은 없습니다. 김정은 할배놈이 어떻게 전쟁을 일으켰는지 모를리는 없겠죠, 만약 진짜 전쟁이 일어난다면 오히려 유화적인 언사를 함으로서 방심하게 만들 것이 더욱 설득력 있을겁니다. 근데 진짜 그러면 오히려 얘네가 왜이러지 하면서 경계할듯


소규모 국지적 도발. 이건 골치가 아픈 문제이죠. 이걸 가지고 전면전을 뜨자니 잃는게 너무 많고, 그렇다고 놔두자니 언젠가 또 지랄 빨 것은 분명하고.. 이런 소규모 도발은 자신의 이권을 지켜내기 위한 술책 뿐만이 아니라 우리와 미국을 간보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어느 수위까지가 적당한가. 뭐 이런 걸 알기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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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자유가 인정되는 자유국가에선 언론, 기자가 세상일과 각종 소식을 전달합니다. 그 중에서 정치, 사회 등 정치인들의 비리나 부정부패를 파고 국민들에게 알리기도 하고, 기업들의 담합같은 부정부패, 비리를 퍼뜨리기도 합니다.


연예인도 예외가 아니라서 연예인의 범죄나 각종 소식까지도 우리는 쉽게 알수 있습니다.



얼마전 왓치맨이라는 작품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꽤 재밌게 본 작품인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정치나 기업의 부정부패, 비리를 파며 우리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기자들은 누가 감시하는가.


언론의 힘은 매우 강합니다, 그래서 간혹 기자들이 앙심을 품고 어떤 기업의 제품이나 연예인을 노골적으로 까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며, 반대로 위험성이 있거나 불량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덮고 홍보해주는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연예인이나 정치쪽도 마찬가지죠. 물론 이들이 그냥 해주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닌지라 사주해주는 쪽에서 돈봉투를 주죠.


진정 도덕성있게 사용되는 언론은 사회적 정의와 도덕을 위해 정보를 국민들에게 알리지만, 이러한 부정이 포함된 언론은 그 기능(도덕성)이 마비됩니다. 정치인들의 비리나 부정부패 또한 돈을 받고 다른 사건으로 덮히거나 혹은 아예 보도되지 않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이러한 언론은 기자들에 의해 쓰여지기 때문에 기자가 이런 식으로 사건을 조작, 정보를 차단(혹은 조작, 날조)한다면 사실을 알아낼 턱이 없는 우리 국민들은 그저 기자들 손에 놀아나는 것이고, 이로 인해 피해를 받는 이들이 존재할수 있습니다.


기자들의 심술에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은 기업이나 연예인같은 경우라던가.


그래서 왓치맨의 중심을 관통하는 저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기자는 누가 감시하느냐..





물론 기자만 해당되는게 아니라 파워블로거 또한 포함됩니다. 일부 파워블로거의 부심쩌는 행패는 이미 알려질대로 알려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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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새누리 민주당의 구조가 붕괴되는거라고 봐야하려나요?


새누리야 뭐 굳건하지만 민주당은 이번 대선 패배와 딴지만 거는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더욱 굳어버리게 되었고, 이런 시점에서 안철수가 정계에 올라 새누리와 민주당의 사이에서 독자 정치세력화를 성공한다면 기존 민주, 진보의 타이틀을 안철수 세력에게 뺏길 것 같습니다.


과거 영국에서도 자유당이 몰락하고 노동당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 처럼, 안철수의 '진짜 진보', 혹은 '진짜 보수'정당이 나온다면 민주당이 몰락하고 안철수가 그 위치를 장악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안철수는 진보라기 보단 보수에 가깝고, 사실 민주당도 좌파라기 보단 중도 좌파 내지는 중도 우파에 가깝습니다. 조금 애매하네요.)


다만 그러기에 조금 어려운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우선 안철수 자신부터가 당선이 되야겠죠. 이건 안철수의 명성이 있으니 불가능하다고 생각치는 않습니다. 그런 다음 안철수 자신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당선시켜야겠죠, 그래야 정치세력화가 제대로 이루어지니까요. 또한 현재 야권, 즉 민주당의 입지를 가져가야합니다. 이렇게 되면 민주당과 세력경쟁을 하는 꼴이라 기존 민주당 지지자와 친야권, 친민주당 언론에게 공격을 당할 것인데, 이걸 이겨내야합니다.


또한 이럼에도 지지율은 꾸준히 신경써야겠죠. 정치생명에서 지지율만큼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동시에 기존 야권 진영등에서 문제없고 머리 좋은, 능력있고 야망있는 인재들을 뽑아오면 더 좋겠죠. 괜시리 문제있는 애까지 대려다 놓으면 기껏 얻어놓은 인기 깍이기도 하고 정치에 관심있는 이들도 왜 하필 저런 인물을.. 이라며 실망하겠죠.



뭐.. 안철수에게 좋게 돌아가는 시나리오라면 시나리오겠죠. 물론 반대로 안철수의 등장으로 기존 야권의 상황만 더 어지럽히고 안철수 그 자신이 뭔가 대단한 일을 하지 못하고 실패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수는 있겠습니다만.


민주당 편이든 안철수 편이든, 적어도 그런 일은 없길 바래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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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우파나 보수에서 꾸준히 참여정부를 까는 근거로서 사용되는 것이 햇볕정책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강경하게 대응해야한다는 말을 끝없이 하고 있죠, 사실 우리나라와 메카시즘으로 대두되는 미국의 반공산의식(한국에선 혐공산에 가까울듯) 덕분에 빨갱이에게 도움은 필요없다같은, 빨갱이와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반발을 넘은 혐오감에서 비롯된 태도가 현 북한에 대한 미국-한국의 태도이죠.


즉, 강경하게 압박한다는 겁니다. 특히 한국에선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북한은 60~70년대까지 남한보다 뛰어나거나 비등한 국력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러나 80년대에 들어 국력관계에 역전이 일어나 남한이 북한보다 강한 국가가 되었고, 이후 완전히 초월한 수준의 국력차이가 벌어집니다.


심지어 90년대 소련의 붕괴를 통한 냉전의 종말과 중국의 시장개방같은 상황에서 북한은 체재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강력한 경제봉쇄 때문에 다른 국가와 교류는 꿈도 못꾸고 결국 인프라가 딸리는 주제에 모든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북한의 상황은 나날히 안 좋아졌고 이런 경제봉쇄와 압박을 통해 북한 정권을 무너뜨린 후 북한 인민들을 구원해주겠다라는 발상은 핵실험을 통해 무참히 박살났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북한은 모든 분야에서 남한보다 열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계속해서 찍어누르려하니 이 찌질한 북한 권력층은 머리에 쥐가날 지경이겠죠.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자신의 권력을 포기한다면 북한일리가 없죠. 우리가 열세하면, 비대칭전력(핵무기)를 통해 극복하겠다! 이런 소리를 짓껄이며 핵무장을 시도했습니다.


즉, 북한이 핵무장을 하게된 원인을 따지자면 한국-미국의 강력한 경제, 대외봉쇄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죠. 햇볕정책을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이미 북한은 돌아갈수 없는 선을 넘었고, 그 선을 넘은 시점에서 햇볕정책은 대외적인 관계만 조금 매끄럽게 하는 정도에 불과했다고 보거든요. 서해교전과 결국 핵을 포기하지 않은 태도에서 증명이 됬달까요?



그럼 햇볕정책도 안되고 지속적인 압박도 북한의 핵무장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면 어떻게 해야하느냐는 ..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강경한 태도와 압박은 계속해서 유지하는 편이 유익한 것 같습니다. 햇볕정책은 실패했고(어느 정도 실익은 있었을지언정..-_-a) 다시 시도할 가치가 있는지도 의문이기 때문이죠..


북한이 핵으로 무장했다면, 결국 우리도 그와 맞먹는 어떠한 정치적, 군사적 우위를 가져야 하겠습니다만.. 똑같이 핵무장을 하자는 주장은 터무니가 없고.. 쩝.. 결국 그 우위가 미국과의 군사동맹이긴 하겠다만 ... 뭔가 찝찝한건 어쩔수 없는 노릇인가 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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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내부 고발에 대해 되게 이상한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솔직히 되게 바보같고 이상한 편견이라 이해하지도,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내부 고발자 = 배신자.


라는 건데요 =,=



내부 고발이라는 것은 내부의 비리와 부정부패를 외부로 고발하는 양심선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내부 고발이라는 것은 언제나 옳은 것이죠. 내부 고발이라는 것을 통해 그 집단이 조금 더 투명해질 수 있다면 이것은 거시적으로 그 집단에게도 이익이며, 그 집단이 소속된 사회, 국가에게도 이익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유독 이런 내부고발자를 비열한 배신자라고 몰아 붙히고 나쁜 놈이라며 못 박는 경향이 강합니다.


뭐.. 한국의 근현대(특히 발전사)를 생각해보면 대충 이해야가지만 상식적으로 굉장히 바보같다는 자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은, 그것에 대해 알게모르게 피해를 보는 이들도, 내부 고발자를 뱀 같은 놈이라며 싫어한다 이겁니다. 그 뿐만이 아니죠, 내부 고발자가 나쁜놈 취급 받는 이 나라에선 내부고발해봐야 아무런 변화나 처벌도 없이 끝나고 오히려 내부고발한 자만 불이익 받고 좌천 내지는 쫓아내버리기 일쑤죠.


이런 '희생자'는 다른 곳에서도 대접을 못 받습니다. 우리 회사의, 우리 부서의 안 좋은 부분을 까발릴 놈이다. 못 믿을 놈이다 라면서 받아주지를 않거든요.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 내부 고발자라는 것은 반대로 그만큼 도덕적이고 그런 만큼 신뢰할 수 있는 이라는 건데요. 이렇듯 오히려 상을 주던지 대접을 해줘야할 내부 고발자에 대한 그 집단은 물론 사회의 시선은 언제나 따갑기만 합니다.



배신자라는 것은 그 집단에서 부정부패, 비리를 저지르는 놈들이나 들어야할 소리지 내부 고발자가 들어야할 소리는 아닙니다.


배신자 : 믿음과 의리를 저버린 사람.


누가 믿음과 의리를 저버렸죠? 아랫 사람에게 돈을 받아먹고는 돈 바친 놈 뒤봐주는게 '배신' 아닙니까? 아랫 사람이 벌어다 준 돈으로 도박을 벌이거나, 몰래 꽁쳐먹는게 '배신' 아닙니까? 정부가 보내준 돈을 몰래 떼먹고는 제품 저질로 만들어서 팔아먹는게 '배신' 아닙니까?


내부 고발자는 이런 나쁜 놈들 까발리는, 부정부패에 항거한 의로운 사람입니다. 이런 도덕적인 사람을 저버리는게 사회의 입장에서 '배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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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역사에 관심이 많은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번엔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함 풀어볼까 합니다.




한국 역사 교육의 문제점이라, 뭐가 있을까요? 의무과목이 아니라 선택과목이다? 국영수에 비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글쎄요.. 그건 정작 제가 이야기하려는 문제가 아니고, 사실 잘 생각해보면 선택과목이어도 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조금 뒤에 이야기 해볼게요.



한국 역사교육의 문제점은 이겁니다.


한국의 역사과목은 굉장히 단순하다는거죠. 예컨데, 그저 언제 무엇이 일어났느냐, 어떤 시대, 어떤 왕때 어떤 정책이 시행되었느냐. 조선왕의 순서, 대한민국 대통령 순서 외우기... 결국엔 그저그런 텍스트 외우기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런 텍스트 외우기는 역사가 아니라 연대기에 불과하죠.


문제는 과연 이런 텍스트 외우기가 역사적 사고력에 도움이 되느냐는 겁니다. 제가 느끼기에 이런 책만 뒤져보면 쉽게 찾을수 있는 언제 어떤 사건이 일어났느냐는 별로 중요한건 아니거든요. 기억 안나면 텍스트 찾아보면 답이 나온다. 뭐가 중요합니까? 


역사를 공부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의 어떤 특정한 팩트를 둘러싼 그 맥락, 의미와 제반 상호관계 등 입체적으로 그것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해석과 평가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즉, 역사적 사고력을 기를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는거죠.


국사 공부를 시켜서 시험을 보면, 그래서 낸 문제라는게 어떤 사건이 몇년도에 일어났느냐, 언제 무슨 정책이 시행되었느냐.. 따위의 잡스러운 팩트를 맞추라고 하지요. 그런건 생각 안나면 그냥 텍스트 찾아보면 그만 이고, 그러한 팩트는 이런 상호관계와 의미 등을 공부하다보면 자연스레 외워지게 됩니다. 


딱딱 끊어진 무미건조한 정보가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요, 아니면 하나의 스토리가 있는 이야기가 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요?


....



잘 이해가 안된다면 이런 예를 하나 들어봅시다. 금속활자라는 예를 들어보죠. 


금속활자로 유명한건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와 우리 조상님들이 만든 금속활자가 있죠. 물론 세계최초의 금속활자가 우리나라, 고려때 만들어졌다는건 초등학생도 알만한 사실일 겁니다. 그런데 역사에서 더 중요하게 다뤄지는 쪽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이죠. 


왜일까요? 서구우월주의? 아닙니다.


그 이유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유럽세계를 뒤바꾼 커다란 원인 중 하나가 되었고, 고려의 금속활자는 그냥 최초로 만들어졌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설명해보겠습니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고려의 금속활자보다 쓰기에 더욱 편리했고 실용성이 뛰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런 실용성을 바탕으로 단 50년만에 유럽 전역에 1500~2000만권의 책을 생산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수백년 동안 생상된 책의 총량은 겨유 10만권 안팍으로 추산될 뿐인데 말이죠. 그것도 무슨 책을 인쇄했느냐하면 '성경'입니다. 당시 성서를 만들던 시절엔 66권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 때문에 성경 한 질(여러 권으로 된 책의 한 벌을 세는 단위를 나타내는 말.) 값이 집 열 채 값에 해당했기 때문에 성서를 가질 수 있을만한 재력을 가진 자들은 부유한 귀족이나 수도원 밖에 없었고, 심지어 손으로 일일이 배껴서 만드는 필사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오타가 생겼고 이런 오타로 인한 오류를 바로잡고 정론을 제대로 가르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곧 진리이고 질서인 세상이었던 만큼 이런 독점은 교회가 교리를 자기네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체제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을 바탕으로 널리퍼진 이러한 '성경'은 일반 민중 또한 싼 값에 쉽게 구할수 있었고, 성경을 읽어본 일반 민중들이 보기에 성직자라는 인간들이 하는 행동이 성경에 적힌 내용과 전혀 달랐고, 따라서 기존의 교리해석에 반박하고 체제를 비판하는데 용이한 환경을 만들어줬습니다.


이런 변화와 반박은 종교개혁이 일어나는데 큰 바탕을 하게 되었는데,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부르크 성당문에 걸어 당시 성행했던 면죄부의 발행을 비판했을때 이런 반박문이 독일 전역으로 퍼지는데 일조하게 됩니다. 이후로도 기존의 성직자, 교회를 비판하는 연설문이나 논문 등이 인쇄되었고 또한 유럽 전역 퍼져갔습니다. 일반 민중들은 기존 교회의 작태에 불만이 팽배해있었는데 이런 정보를 알게되는 것은 기존 교회와 교황파에 있어서 큰 타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갈등 속에서 '프로테스탄트'가 탄생합니다. 기존 교회에 반발해서 나타난 새로운 존재들인데, 이를 신교하고 하고 기존의 교황파를 구교라고 합니다. 후에 이들 프로테스탄트와 교황파는 종교전쟁을 벌이기 까지하는데, 이런 종교개혁이 일어나는 환경을 만들어준 것은 다름 아닌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큰 역할을 담당했죠.


물론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때문에 세상이 바뀌었다는 확대해석이고, 그만큼 큰 원인이었다 정도랄까요.



....



이런 유럽의 금속활자와는 다르게 동양의 금속활자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동아시아에서 사용하는 문자가 한자라는 점이죠, 수만자나 되는 글자들을 금속활자로 만들기에는 돈도,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립니다. 알파벳의 경우 수십개를 넘지 않는 것에 비해 불리하죠. 또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구텐베르크라는 민간인이 발명했지만, 고려의 경우 국가 주도하에 개발되었고 따라서 책의 생산은 엄격하게 국가의 관리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한자라는 특성한 일반 민중이 배우기는 어려웠고, 실질적으로 문자를 읽고 쓰는, 사용할수 있는 계층은 귀족등 지배층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기술적으로도 고려의 금속활자는 모래거푸집이나 밀랍으로 만든 주조집에 구리합금을 부어서 만들었는데 주로 밀랍을 많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밀랍 거푸집은 재료가 재료인지라 열과 압력에 취약하며 한 번 사용하면 못쓰는 일회용이었죠. 심지어 주조한 것도 높이가 맞지 않고 글자의 모양이나 크기, 형태가 제각각이어서 조합하여 사용하는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 구텐베르크의 것은 주폐국에서 일했던 경력을 살려 금화나 은화의 초상화를 찍어내는 펀치에 글자를 거꾸로 새겨 철판에다 찍어 형틀을 만들고 그 위에다 철로 만든 주조기를 덧씌워 납, 주석등의 합금을 부어 주조하는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방식의 장점은 철로 만든 형틀 및 주조기를 쓴 덕에 수천번을 주조해도 모양과 크기가 일정했으며, 형틀이 만가졌더라고 펀치만 있으면 언제든 형틀을 제작할수 있었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면에서 매우 경제적이었죠.



....



에.. 그러니까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더 중요한 이유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일조했고, 고려의 것은 그러지 못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는 점입니다. 역사적 해석과 제반 상호관계가 중요하다고 했죠? 단순히 고려의 것이 더 먼저나왔다는 구텐베르크의 것에 비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세계최초라는 점과 이런 금속활자를 중국과 일본에 수출했다는 점 등 별거아니네~ 하고 무시할게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증기기관처럼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물건이라도 그 시점의 사회를 잘 만나야 빛을 발한다는 교훈을 가지는 쪽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당시 고려는 사회적으로 발전이 없었거든요.. 위와 같은 단점이 있었더라도 꾸준한 계량을 했다면 좋은 결과를 도출해 냈을지도 모른다는.. IF해봅니다..)


....



어째 하려는 이야기에서 너무 멀어진 감이 있는데, 그러니까 중요한건 텍스트 찾아보면 다 나오는 팩트 따위가 아니라 이런 역사적 맥락과 그에 대한 해석, 제반 상호관계를 가르쳐야 한다는 겁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는게 역사입니다. 그런 역사에서 중요한건 '무슨 일이 일어났다'가 아니라 '무슨 일이, 어떤 원인을 통해, 어떻게 일어났느냐'입니다.


한국의 역사교육은 그런 면에서 역사적 사고력을 길러주지도 못하고, 따라서 국사 교과가 이러한 역사적 사고력을 길러주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일반 사회교과와 비교해 크게 나은 점, 중요한 점을 강조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전과 같은 서울대 국사 의무화 폐지같은 경우에도, 그에 반박하는.. 남아있어야하는 이유를 설명할수가 없는거죠.




아, 뭐 국사를 논술식으로 하자도 나름 달콤한 이야기일수도 있겠지만 그럼 체점하는 사람이 죽어나가겠죠...-ㅁ-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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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매우 간단합니다. 한국 교육이 지향하는 영어는 읽고 해석하는 영어이지 말하고 듣는 영어가 아니거든요. 요새는 그쪽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만 오히려 괜히 영어 교육열만 더 올라간 것 같습니다.


사실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국인이 영어를 배우는 것 부터가 어려운 문젭니다. 애초에 고립어인 한국어와 다른 언어랑 비교하는거 자체가 에러죠. 유럽은 대개 언어의 유사성이 비슷합니다. 크게보면 로망스어와 인도유럽어족으로 나뉘는데 영어가 워낙 언어의 잡탕이다보니 로망스어에 속하긴 합니다만 독일어나 프랑스어도 많이 섞여있지요. 


또한 이탈리아어과 스페인어는 유사성이 매우 깊어서 이탈리아인이 이탈리아어로 이야기한 것을 이탈리아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스페인인이 80%는 알아듣는다고 합니다. 어순또한 SVO가 대부분이지만 한국어는 SOV순이죠.


한국어같은 고립어를 쓰는 국가(알타이 어족이라고는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고 아직도 논란 중인 주제죠.)와 언어간의 유사성이 깊은 로망스어,인도유럽어족 국가들을 영어라는 것으로 비교하는건 같은 선상의 비교가 아니죠.


또한 한국은 '영어 말하기'가 딱히 필요한 환경또한 아닙니다. 어디가서 영어 쓸데가 있는것도 아니고, 한국인들끼리 한국어 놔두고 영어를 쓸 일도 없지요. 한국의 영어교육이 문법,독해에 치중된 이유가 이겁니다. 말하는 영어는 별 필요없다만 읽고 이해하기는 해야한다는 것이죠. 


영어로 논문을 내거나, 영어원서를 읽고 이해하거나.. 어찌됬든 한국어로 된 정보의 양이 매우 적기 떄문에 정보를 얻는것에서부터 영어권과는 차이가 납니다. 영어로 된 정보들의 양은 한국어와 비교해서 양,질적 모두 압도적이고 영어를 읽고 이해할 수 있다면 이런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해결된 셈이죠.


따라서 한국인이 영어를 배워봐야 외국인 앞에서 말 한마디 못한다는 문제는 사실 당연한 문제일 수 밖에 없고, 그걸 가지고 비판을 하기보다는 그 현실과 한국 영어 교육의 지향점을 먼저 이해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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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세상의 모든 정보는 영어만 할 줄 알면 다 찾을수 있습니다. 영어권 국가가 많기도하고,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학술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도 영어권이거나 영어를 통해 이루어지죠. 또한 타언어를 번역한 정보도 많구요.


예전에 도올 선생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영어는 영어와 일본어로 되어있으니 하루빨리 이것들을 한국어로 번역해야한다고. 개인적으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구글등으로 한국어로 된 문서와 영어로 된 문서의 차이만 봐도 알수있고, 한국어 웹이 학술적인 자료를 찾기보다 일상적인 이야기, 만화나 애니 이야기, 연예 가쉽거리를 더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하죠. (정보를 찾는다는 면에서 한국 웹은 정말이지..-_-)



영어교육 할때 이런 불평이 많이 나옵니다. 이런거 배워서 어디다 써먹냐고, 한국인이면 한국어만 알면 된다, 어디가서 영어로 말한 것도 아니다. 뭐, 사실입니다. 한국에 살면서 한국어만 잘하면 불편한 일은 없을테고 굳이 외국인 찾아가서 영어로 대화할 일도 별로 없겠죠.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영어가 말하는 영어가 아니라는 겁니다. 영어공부 아무리해도 말 한마디 뻥긋 못한다. 당연한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공부하는 영어는 말하는 영어가 아니라 읽고 해석하는 영어거든요. 말마따라 우리가 어디가서 외국인과 대화할 것이 아니니까 읽고 해석하는 영어로 중점적으로 공부하는 겁니다.


세상의 모든 정보는 영어로 되어있고 이 영어를 알아야 학계가 됬든 개인이 됬든 더 많은 것을 공부하는데 굉장한 도움이 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전 이런 영어 능력을 '번역'하는데 써줬으면 합니다. 대학에서 배운 높은 수준의 영어, 해외에서 유학하며 배운 영어 등등 이런 영어 능력으로 각종 서적, 논문, 통계자료 등등 번역해서 '우리 것'으로 만들어줬으면 합니다.


일본이 세계 학계에서 강력한 파워를 자랑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단순히 그들의 두뇌가, 대학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일본은 번역을 정말 무지막지하게 하는 나라거든요. 논문, 서적 등등 엄청나게 번역합니다. 그리고 그 고급 정보를 토대로 교수, 대학생이 공부를 합니다. 영어, 독일어로 된 고급 정보를 무리없이 배운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겁니다.


세계 학계의 동향이 어떻게 돌아가고, 최신 정보는 무엇이며, 이런 정보도 있고 저런 정보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배우고 공부할수 있다는 점은 일본이 세계 학계를 상대로 전혀 꿀리지 않는 이유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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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이 듭니다. 찌질한 부모 밑에서 찌질한 자식 태어난다고.




어른이라고 다 어른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죠? 사실입니다. 몸은 어른이지만 생각하는 꼬라지는 애새끼들 못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요, 특히 요즘 20대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자주 보게 되더군요. 그게 정말 애같은 사람들이 늘어나서인지 페북, 트위터같은 매체가 보편화되서 더 많이 알려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 애들 보면 졸라 찌질해요. 일진이랍시고 자기들은 쿨한 척하는데, 실제로 그런 넘들 하는거 보면 졸라 찌질합니다. 앞에서 대놓고는 못하겠고 뒤에서 이빨 졸라게 까요. 제 경험을 하나 이야기해볼게요.


학교가 그닥 안 좋은 학교는 아니었는데 노는 애들이 좀 세게 노는 편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일진들이 몇명 있었는데 지 멋대로 학교 빠지는건 예삿일에 담배에 술은 물론 여자애들이랑 히히덕서리며 놀고 학교에 와서도 수업시간에 지멋대로 안 들어오거나 대충 그럴싸한 핑계를 대며 나갔다 PC방에 간다거나 아예 집에 가서 라면을 먹고 온다던가 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물론 교우관계도 지들끼리만 잘난 듯이 껄렁대며 놀았죠. 그중 한번은 동급생이 체육복 갈아입을때 속옷차림이었던걸 사진찍어서 협박, 돈을 갈취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경찰에 신고까지 당한 전적이 있었던 놈들이죠.



그런데 이런 놈들이 어느날 무슨 이유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과학선생님께 혼나더군요. 그 과학선생님이 꽤 분위기 있고 특히 키, 덩치가 크시고 팔근육이 잘 발달이 되서 대놓고 깝치는 일은 없는데, 어느날 그 일진 한놈이 과학선생님께 혼나더군요, 무릎을 꿀리고 뭐라뭐라하니까 빡돌았는지 꼬우면 쳐 씨발 경찰에 신고에 버릴꺼니까 라는 식으로 대놓고 개겼죠.


다른 일진들은 뭐 암 것도 못하고 좀 떨어진 복도에서 그냥 지켜보고 있으면서 다른 애들보고 꺼지라고만 하며 툭툭 건들기만 했습니다.


결국 그 혼나던 일진은 머리통에 호쾌한 한방을 쳐맞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더 쳐맞는걸 바랬지만 그래도 일이 커지면 여러모로 곤란하니 한대로 끝냈던 모양입니다.


근데 그 뒤에 그 일진놈들 태도가 아주 압권이더군요.


쳐맞은 놈은 존심까진거 뻔히 아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 경찰에 신고해버린다며 눈 앞에서 사라지기 무섭게 껄렁대더군요. 쫄아서 암 것도 못하던 일진 놈들도 바로 거들먹 거리면서 비꼬는 듯이 따라하며 금방 가버렸어요.



코 앞에선 아무것도 못하는 주제에 눈에서 안 보이니 바로 이빨까며 껄렁대는 놈들보고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말 그대로 찌질함이죠.


힘이 세고 잘나간다고 찌질이가 아닌게 아닙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통하는 찌질이의 의미는 사실 잘못된 예에 불과합니다.


코앞에서 대놓고 하지 못하고, 혼자 있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주제에 조금만 패거리가 늘면 자기가 뭐라도 된 것마냥 건들거리며 잘나가는 티 팍팍내는 것들이 찌질이죠. 본질은 약해빠진 애새끼임을 감추기 위해 자기보다 약한 애들 툭툭 건들면서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쌔면 빌빌거리며 후빨해주는게 찌질입니다.




그런데 이런 애새끼들이 왜 만들어지냐면요.



그 부모에게 제 1원인이 있습니다. 어른은 어른이 곧 세상입니다. 아이는 그런 어른이 곧 세상이고, 알게 모르게 따라하며, 배우는 존재에요. 아들이 커가면서 아빠와 닮아가는 이유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아들이 부친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아들은 아빠의 모습을 자신에게 동일화를 시키며, 서서히 닮아갑니다. 말투, 행동, 습관 등등


조금 핀트는 다를지언정 아들이 아빠를 닮아가듯이, 자식에게 있어서 부모는 그야말로 백지일 뿐인 자신의 자아와 가치관을 형성시켜주는 크레파스와 다를바 없습니다.


만약 부모가 대인배라면 그런 속성을 닮을 것이고, 부모가 찌질이라면 그런 찌질함을 배우는겁니다.



예전엔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저놈 놈들을 보면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다. 혹은 저런 애들을 보면 쟤네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듣고, 연좌적이고 말도 안되는 멍청한 모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조금 지나보니 알겠더군요. 정말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어집니다 -,-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자식새끼가 저렇게 찌질할수가 있는지.


가끔 자식이 문제를 일으켜서 학교에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럼 부모는 대개 2가지 행동을 취하는데, 하나는 무조건 죄송하다고 우리 아이가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사과하는 경우. 다른 하나는 우리 아이가 뭘 잘못했냐며 선생을 나쁜 놈 취급하며 무작정 화내며 달려드는 경우.


선생님이 그러더군요. 자기 학창시절때 선생, 교사에 대한 가치관이나 인식이 병신같으면 병신같을수록 아이도 그런 태도를 똑같이 닮고, 아이가 학교에서 잘못해서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그 부모의 학창시절 모습을 알수있다고.



그러니까 같은 겁니다. 부모가 찌질하면 애새끼들도 찌질해져요. 오래된 기억을 하나 꺼내볼게요. 제가 초딩때 나이였나 하여튼 어렸을 땝니다.


두 아이가 말다툼을 하더군요. 이 말싸움은 얼마 안되서 가벼운 몸싸움으로 발전했고, 다음날 한 아이의 엄마 되는 사람이 찾아와서 선생님 앞에서 따지더군요. 왜 말싸움을 하게 뒀냐고, 왜 아이가 싸우게 내버려 뒀냐고.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기 그지없습니다. 아마 이런 부모들은 다른 상황에서도 똑같이 반응할 겁니다. 아이들끼리 놀다가 떨어져서 다쳤다거나,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다던가, 그것도 아니면 애들끼리 말장난 하다가 다른 애가 놀리니까 화가 났다던가.


이런걸 가지고 지 부모에게 말을 하고, 부모는 그걸 담임한테 항의하는거죠. 왜 아이가 다치게 내버려 두었냐, 왜 아이가 놀림받는데 방조하고 있었느냐고.


황당하죠? 무슨 선생님이 Watcher도 아니고 모든 것을 감시하고 통제합니까? 근데 선생입장에서 뭘 어쩌겠어요, 그냥 네네하면서 고개숙이고 잘못했다고 사과할 뿐이죠.


사람이 갈등없이 크면 풀만도 못한 존재가 됩니다. 길가에 잡초에도 생채기는 있는 법인데 모든 것을 감시하고 통제해서 지켜내면, 어른이 되서도 잘나신 애새끼 마인드 그대로 유지되요. 그래놓고 지 잘난 맛에 사는거죠. 문제를 일으켜봐야 엄마 아빠가 다 해주실꺼고 엄마 아빠는 선생님 앞에서 큰소리 쳐댈테니까요.


뭐 별 것도 아닌 문제를 가지고 대뜸 항의전화부터 때리는 부모들 보면 얼마나 찌질한지 감도 안 옵니다. 그리고 그렇게 보호해봐야 애새끼한테 참 좋은거 가르친다는 비아냥 밖에 더 듣나 싶어요. 누군들 소중한 내자식 아니겠냐만, 그전에 애새끼를 사람으로 키워야지 찌질이 새끼로 키우는건 부모될 자격이 없는 멍청이 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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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및 수정 보완 : 생각만 해놓고 정작 추가 보완이 몇달씩이나 늦어졌는데, 부모에게 제 1원인이 있다기보단, 오히려 사회가 더 그러한 면이 있다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맞벌이 부부가 많아져서 어린 자식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지고 그렇기 때문에 가정교육을 미비하게 받았다면 그것은 부모가 맞벌이를 하게 되는, 금전적,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 사회의 탓도 일부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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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지역감정이란 DJ와 박통의 정치경쟁을 통해 생겨난 녀석인데, 하여튼 간에 원래는 지역감정이 없던 지역이 정치선동을 통해 천하의 둘도 없는 원수지간이 되는게 참 웃기기도 합니다.



역사에 비춰보아 지역감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지역감정이 없는 국가는 없다지만 한국의 지역감정은 그 탄생이 참 괴랄하기 짝이 없지요. 이러한 정치 선동을 통해 탄생한 지역감정은 5.18 이전까지 명확한 실체가 없었죠, 그냥 갑자기 까는 것으로 시작했으니까요;; 어디 출신 누구누구가 당선되면 나라 망한다.. 같은 이상한 선동, 프로파간다가 횡횡했고 그거에 홀린 대중들은 상대 지역을 나쁜놈 취급하면서 탄생한게 지역감정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느끼길, 각 지역의 사람들은 정치라는 놈에게 아주 제대로 따귀 맞은게 아닌가 하는 느낌입니다..



또한 현재도 타 지역을 욕하며 나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이유로 그 지역을 욕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그 지역 사람들 모두가 친일파, 혹은 빨갱이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단순히 정치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빨갱이, 친일파 매국노 취급하는게 옳은 건지는 글쎄요, 의문이군요. (빨갱이라고 까이는 당의 지지자도 반대의 입장에서 친일파라고 까이는 당을 지지하는 사람이니 그저 웃을 뿐...)


뭐, 사실 광주/전라 지역은 경상도를 깔 이유 정도는 있습니다.


왜냐면.. 전두환에게 당한게 있기 때문이죠. 그에 반해 경상도는 전라도에게 당한게 없죠. 그냥 욕이나 얻어먹는 정도?(근데 이건 경상도도 하잖아?...)


다른 이에게 욕을 얻어먹는 것과 자신의 가족, 친척, 이웃이 죽임을 당하는 것은 그 무게 자체가 명백히 다르죠.



하여튼 간에, 이렇게 놓고 보면 애초에 경상도와 전라도는 싸울 이유가 없었죠. 그저 정치인들에게 선동당한 것에 불과하니까요, 다만 그 결과로 인해 박터지게 싸울 여건이 마련됬다는건 확실히 묘하기도 하고 안타깝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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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게임환경의 가장 큰 문제점이 뭘까요?


인맥권력? 현거래? 재미없는 시스템? 돈만을 바라는 게임사?



그런 것도 있지만 의외로 잘 꼽지 않는 것들이 바로 개쌍놈들 수준의 게이머들과, 그것을 방조하는 게임사에 있습니다.


한국 게임을 하다보면 꼭 반말에, 쌍욕에, 버릇없는 행동은 물론, 무개념적 행동을 일삼는 족속들이 있습니다. 이는 게임 환경을 더럽히는 놈들입니다. 처음 보는 주제에 반말부터 찍찍까고, 못하면 대놓고 조롱에 인신공격을 서슴치 않으며, 거기에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내며 상호비하적이고 아무 의미 없는 뻘짓을 해대는 개쌍놈들이죠.


이들이 만들어내는 해악은 게임 환경에 영향을 미칩니다. 초보자들은 이런 고수-경험자들에게 못한다니 어쩐다니하며 한번쯤은 쪼이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험을 반복하다보면 내가 더러워서 접는다! 라는 태도로 게임을 버리는 이용자들이 늘어나죠.


그리고 이런 잘하는 이들이 모이는 클랜, 길드같은 경우는 더 골치 아픕니다. 하나의 시스템이라 어떻게 개혁하는 것도 불가능해요. 네임드 클랜일수록 더 더러운 짓을 많이 하는데, 대개 권력집중형입니다. 가장 위에 있는 자, 가장 잘하는 이가 가장 큰 권력을 갖죠. 밑에 있는 따까리들은 그냥 이런 애들 후장이나 빨아대며 친목질이나 하구요.


이렇게 후장빨리는 애들은 소위 일진과 비슷한 성향을 나타냅니다. 아주 지 잘난 맛에 살고있으며, 실력(힘)이 뒷바침 되기 때문에 '꼬우면 1:1뜨든가'라고 했을때 실력으로 입닥치게 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자기네 인맥 동원하며 다굴, 인신공격 등등.. 


이런 애들이 게임 내부에서 거대한 패악질을 반복한다면 실제로 게임이나 서버 하나가 영향력을 잃는건 불가능 한 것도 아닙니다. 이미 한국 게임 역사에서 몇몇 사례는 이를 증명해줬습니다.



더 재밌는 점은, 이런 패악질을 해대는 유저들을 게임사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을 비하한다? 인맥으로 위압한다? 초보자들을 공격, 위압하며 신규 유저 유입을 차단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관심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방조하고 있는 꼴이죠.


외국 게임사는 다릅니다. 뭐.. 이브 온라인 같은 별종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상대방 비하와 각종 패당질은 엄격히 단속합니다. 당연한거거든요. 상대방을 비하하는 이는 처벌한다.

인맥등을 동원하여 타인을 위압하는 행위는 처벌한다.


이게 이상한 겁니까?


한국 게임사의 개쌍놈 게이머들에 대한 태도는 말 그대로 방종입니다. 이건 한국 게임환경을 더럽히는 요인이기도 하죠.

게임사가 발벋고 이런 이들을 처벌하며 게임 환경을 '올바르게' 조율했다면 게임하느라 열 올리는 사람들, 그로 인해 피해보는 게임사 따위는 없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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