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rodi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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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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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에 해당되는 글 639건

  1. 2018.04.30
    아프리카의 시위 민주주의.
  2. 2018.04.27
    한국전쟁 종전. 오늘 우리는 역사 속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3. 2018.04.19
    김경수-드루킹 사건. 민주당과 문 정권에 대한 부당한 선동비난.
  4. 2018.04.17
    천재의 죽음과 죄인의 고백, 아마데우스 리뷰.
  5. 2018.04.08
    통치 수장의 유능함과 무능함.
  6. 2018.04.08
    공과 사의 구분이 중요한 이유.
  7. 2018.04.07
    Julia Westlin - Unintended // 가사, 해석, 커버
  8. 2018.04.06
    Holly Henry - Hello // 가사, 해석, 커버
  9. 2018.03.23
    남들보다 더 논리적이라는 무엇인가?
  10. 2018.03.10
    주체적이고 선진적인 작품. 오만과 편견 리뷰.
  11. 2018.03.09
    실망스러운 게임. 야생의 땅:듀랑고 리뷰.
  12. 2018.03.04
    맞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
  13. 2018.03.04
    관점은 어떻게 발생하고 차이를 이루나.
  14. 2018.02.27
    한반도 통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려면?
  15. 2018.02.21
    동아시아 군사적 긴장도 상승에 대한 외교적 단상.
  16. 2018.02.20
    전쟁에 대해 한국인들이 가지는 이상적 망상.
  17. 2018.02.14
    반국가적 김일성 가면 선동.
  18. 2018.02.12
    김형준 작가, 일곱 번째 기사 리뷰.
  19. 2018.01.18
    아이스하키 단일팀 추진에 따른 정부의 태도 비판.
  20. 2018.01.12
    UAE 군사협약 조건 원전 수주 사기 사건과 이명박의 범죄.



https://www.ted.com/talks/zachariah_mampilly_how_protest_is_redefining_democracy_around_the_world?language=ko




예전에, 타 커뮤니티에서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누군가 선거 또한 하나의 세뇌라는 표현을 썼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당연히 세뇌라는 용어가 부정적으로 여겨졌고 반발했죠. 하지만 어떤 면에서 그 말은 틀린 말은 아니었다고도 봅니다. 기실, 보수 진영에서 시위와 집회를 부정적으로 보고, 실제로 그러한 것들이 억압 받으며, 불만이 있으면 힘을 가지던가 선거를 통해 해결하라는 화법을 사용하곤 했죠.


그것은 한국의 역사적 경험에 의한 일일 것이며, 그러한 맥락에서 선거와 투표만이 올바르고 정당하다는, 시위와 집회는 강경한 행위이고, 혼란과 폭력이 발생하기 쉬운 위험하거나 어찌됐든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 그런 것이다. 라는 편견이 선거 또한 세뇌이다. 라는 의미였지 싶습니다.


뭐, 사실 시위와 집회가 많았고, 지금도 이루어지는 일이며, 요 몇년 동안 이루어진 집회와 시위 문화는 꽤 성숙하다는 평가를 받는 역사적 경험이고 사례이죠.



그런 맥락에서 시위와 같은 직접적 행위, 비정규적 실천은 민주주의라는 것이 시행되고 작동하는, 혹은 그래야 하는 어떤 사회에서든 장려되야할 것입니다. 국가와 같은 비대한 집단에서 문제는 언제나 발생하고, 그 규모가 크든 작든 누군가는 피해를 보고, 이것들은 고쳐져야할 일들이죠. 그러나 그것을 선거와 같은 방식으로 요구한다면 더욱 비효율적이고 더 많은 비용을 야기할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더욱 적극적이어야 하고, 집회와 시위는 폭력적인 것도, 위험한 것도, 부정적인 것도 아닌, 집단화되어 다수의 의견을 표출하고, 그에 대해 많은 이들이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게 하며, 의제에 동참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조직화된 민주적 의견 표출 방식입니다.


이건 아주 이상한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며, 위험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러한 편견이나 인식이 은연 중에 남아 있다면, 그것은 그러한 활동을 반대하고 억압하고, 묵살하려는 세력이 만들어낸, 만들어냈던 의지에 오염된 것이죠. 



우리의 생각보다 시위와 같은 적극적 의견 표현 방식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관심가지지 못했던 아프리카에서도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프리카 또한 사람 사는 곳이고, 시간의 흐름만큼 변화하는 세상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더군요. 




많은 분들처럼 저도 종종 민주적인 절차에 불만을 느낍니다. 골치 아프고 복잡하죠. 때로는 비효율적입니다. 우리의 정치적인 지도자들은 평범한 이들의 관심사로부터 단절되어 있습니다. 몇 년에 한 번씩 있는 우리 일상의 과업과 동떨어져있는 지도자의 투표는 무의미하다고 많은 이들이 느낍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거부하기에 앞서 이것이 무엇인지를 상상해봅시다. 그리고 저는 아프리카의 운동가들이 시위를 중심에 두며 민주주의를 재정의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시위 민주주의"라 일컫는 것이죠.



00:53


국제 기관과 전문가들은 민주주의가 평범한 여러 정당의 선거 경쟁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투표함을 앞에 둔 엘리트들의 경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 민주주의는 우리가 매일 참여하는 무언가가 되어야만합니다. 제가 "시위 민주주의"라고 말할 때 저는 민주주의 활동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거스르게 됩니다. 민주주의를 선거로만 바라보는 것은 부적절하며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민주주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이를 거부해야만 합니다.



01:36


그렇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 점점 더 거리로 나아가고 있는 아프리카 사회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아프리카의 사회적 운동은 이런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정의하는데 앞장서 왔습니다. 이는 아프리카인들이 정치에 참여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더 효과적인 비폭력 행동을 위해 점점 더 거리로 나아가고 조직화된 폭력을 거부합니다.



02:12


저는 지난 이 십년의 대부분 동안 폭력적, 비폭력적인 아프리카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서는 알려진 거의 대부분의 정권들에 대항하기 위하여 젊은이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 친구 티아트입니다. 그는 세네갈 출신의 래퍼입니다. 세네갈의 큰 운동을 이끌었고 이 운동은 대통령이 세 번째 임기를 채우는 것을 성공적으로 막았습니다. 모로코에서 레소토에 이르기까지 뿌리 깊은 군주제를 저지하기 위해 젊은이들이 일어서고 있습니다. 이집트와 수단에서는 잔혹한 독재에 맞서고 있죠. 우간다와 에티오피아에서는 유사 민주주의의 탈을 쓴 강력한 군사국가에 대항하고 있습니다. 이 사진이 찍힌 남아프리카와 브룬디에서는 평범한 이들의 형편을 나아지게 하는데 기여하지 못한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에게 대항했죠. 대륙 전체에서 시위는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분입니다. 아프리카인들은 독재자에게 대항하기 위해 시위를 할 뿐 아니라 권력을 멈추게 할 때도 사용합니다. 어떤 면으로 아프리카인들은 민주주의 자체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 그 가치를 높이면서 말이죠.



03:26


아프리카의 시위에는 두 가지 큰 흐름이 있었고 현재 우리는 2005년에 시작된 세 번째의 물결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는 아프리카 대륙의 대부분에서 일어났던 아랍의 봄이라 불리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흐름은 1940년대와 1950년대 사이에 일어났고 아프리카의 탈식민지화를 이끌었습니다. 과메 은크루마가 이끈 가나의 연립정부가 영국의 지배를 무너뜨렸습니다. 전세계에 비폭력 운동의 본보기를 보여주면서 말이죠. 두 번째 물결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아프리카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가져온 긴축 정책에 맞서는 것이었죠. 이러한 시위들은 독재정권의 붕괴를 이끌었고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 복수 정당 선거를 도입했습니다.



04:13


현재 진행중인 세 번째 물결은 앞선 두 개의 물결의 결점을 보완합니다. 첫 번째 물결은 자유를 가져왔지만 민주주의를 가져오진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선거를 도입했지만 엘리트들을 위한 선거였죠. 세 번째 물결은 민주주의를 보통 사람들의 통치로 바꾸는 것과 가장 연관이 있습니다. 이는 세네갈의 '지긋지긋해' 운동과 부르키나 파소의 시민의 빗자루 운동 짐바브웨의 타자무카 콩고 민주공화국의 루차와 플림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정치적인 시스템에 도전하기 위해 인습적인 비정부기관이나 정당 밖으로 뻗어나가려는 운동들이 종종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루차의 프레드 바우마와 같은 똑똑한 젊은 활동가들이 구금되고 고문을 당했습니다. 국제사회의 항의는 거의 없었죠. 저희가 모든 데이터에서 보시다시피 목록은 계속됩니다. 2005년 이후 40개가 넘는 아프리카의 국가에서 규모가 큰 유명한 시위들이 있었습니다. 보시면 2011년 아랍의 봄이라 불리는 해에 실제로 이 광범위한 파장이 절정에 달합니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많은 시위들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우리는 튀니지와 이집트의 독재자들이 몰락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명한 시위들은 대통령이 세 번째 임기를 채우는 것을 막았죠. 세네갈, 말라위, 그리고 부르키나 파소에서요.



05:43


이 시위를 고조시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인구통계학적으로 아프리카는 가장 젊고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대륙입니다. 국민들과 지도자들의 나이 차도 가장 크죠. 아프리카는 엄청난 속도로 도시화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아프리카 국가들은 십 년이 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아시아의 투자의 영향을 받았죠. 그러나 이 부의 극히 일부만이 국민에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산업 분야의 정규직은 실질적으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생계를 겨우 꾸려나가는 이들에게 비정규직의 일자리만 남아있죠. 그 결과 불평등이 극심해지고 있으며 정치 지도자들은 그들보다 나이 어린 국민들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06:26


아프리카 외부에 있는 우리들에게 이런 이야기들은 친숙합니다. 극심화된 불평등 한 때, 진보된 사회의 전형이라 여겨졌던 높은 임금의 좋은 일자리들의 감소, 한때 평범한 이들의 목소리가 되어 주었던 시민 사회가 사라져가며 발생한 엘리트 정당의 몰락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하든 국제 경제와 관련된 외부 요소들이 여러분의 생활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가슴 철렁하는 느낌.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은 절약만을 외치며 무기력해 보입니다. 몇십 년간 공공재가 보이지 않는 단계까지 사라지는데도 말이죠. 동시에 그들은 우리의 고통을 강자가 아닌 약자에게 떠넘기며 배타적 민족주의에 굴복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미인들이나 서구 유럽인들이 생각하는 새로운 것이란 1970년대 이후 아프리카인들의 평범한 삶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오랜 기간동안 이런 상황에 저항했던 사람들보다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07:29


아프리카의 민주화 운동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첫 번째, 민주주의는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시작해야합니다. 민주주의를 선거로만 바라보는 것은 만연한 환멸감을 가져옵니다. 대신 평범한 이들이 민주주의적 삶의 중심이 되도록 힘써야합니다. 시위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합니다. 여러분의 나이, 성적 취향, 성별에 관계 없이 시민이든 외국인이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선거와는 반대로 시위는 엄격한 선거 주기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즉각적인 피드백의 시대에 즉각적인 형태의 조치를 더 많이 제공하죠.



08:08


둘째로, 시위는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이로 인해 강력해집니다. 시위는 논쟁을 벌이고 경쟁적인 과정이며 불확실한 행동에 의해 규정됩니다 때로는 명확한 메세지가 결여되어 있고 불완전한 기관에 의해 규정되죠. 이 역동성이 시위를 폭동이라고 폄하하거나 제한된 정치적 효용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기도합니다. 억압하기 쉽다고 생각하게 만들기도 하죠. 빈번히, 정부는 시위를 민주주의의 기본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대신, 이들의 메세지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기 위해 사회적인 운동을 폭력적으로 짓밟습니다.



08:53


세 번째, 제가 언급한 것처럼 시위는 새로운 정치적 상상이 생겨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시위는 선 밖을 색칠하는 작업입니다. 평범한 이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느끼는 게임의 규칙들을 새로 만드는 방법이죠. 아프리카의 많은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일생동안 단 한 명의 지배자가 통치하는 사회에서 자라왔어요. 시위는 새로운 가능성이 생겨나는 공간입니다. 젊은이들이 그들이 지닌 힘을 발견하게 되면서요.



09:24


제 친구인 린다 마사리라의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다섯 아이를 홀로 키우는 엄마죠. 그녀는 짐바브웨의 무가베 정권에 대항하는 시위를 이끌고 있어요. 두들겨 맞고, 체포되고, 괴롭힘을 당했죠. 하지만 견뎠어요. 몇 달 전 제게 말했던 것처럼, 시위는 그녀에게 의미와 방향성을 주기 때문이죠. 자신에게 닥칠 역경을 알고 있지만 린다는 굴하지 않습니다.



09:47


린다나 아프리카의 다른 젊은 활동가들처럼 우리 모두는 민주주의를 선거와 정당 그 이상으로 재정의하기 위해 노력해야합니다. 민주주의는 창의적인 과정이며 시위는 늘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이상의 정치적인 상상력을 확장시키기 위한 매개체가 되어 왔습니다.



10:08


(스와힐리어) 대단히 고맙습니다.



10:09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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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대대적인 남침으로 인해 시작되었던 전쟁은 1953년 한국만 빠진 휴전협정을 통해 중단되었고, 65년이 지났습니다. 반세기 넘도록 수 많은 일이 있었고, 수 많은 사람이 태어났으며, 수 많은 이들이 죽었고, 슬픔과 고통, 번민과 괴로움, 행복과 즐거움, 사랑이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투쟁을 하며 살았고, 누군가는 깔아놓은 전철을 타고 살았으며, 때로는 좋은 일도, 때로는 힘든 일도 있으며 일상을 살아갔습니다. 남들과 같은 일상.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같은 일상을요. 하지만 이 모든 시간 동안 우리는 휴전의 상황에서 언제나 발생할 수 있는 전쟁의 위협 아래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전쟁 이후, 전후 세대에게 있어선 태어나서 지금까지 겪어야 했던 하나의 투쟁이었지요. 이전의 체제 하에서 우리는 모두 다른 체제를 하나의 선을 두고 다르게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합의를 통해 마침내 전쟁이 끝났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했습니다. 이제 전쟁은 없습니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그간의 위협은 이제 없고,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한 시대가 끝났고, 한 체제가 끝났으며,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고, 또 다른 체제를 이어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역사 속에 있었고, 역사 속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이 그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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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경수-드루킹 관련 사안 때문에 문재인 정부에 대한 광범위하고 대대적인 비난과 선동이 들어가고 있는데, 솔직히 전 이 문제에 대해 민주당-문재인 정권에 대한 비난은 아예 틀렸다고 봅니다. 김경수가 비판을 받을 껀덕지는 있지만, 민주당 이상으로 올라가는 건 글자 그대로 악의적 선동이죠.


이미 드루킹과 김경수의 관계, 어떠한 청탁과 그것을 통한 엽관적 이익관계가 있었는지, 그리고 드루킹이라는 사람이 어떠한 정신을 가진 인물인지에 대해 판단에 있어서 충분할 정도의 정보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종합하여 판단할 때, 김경수가 비판 받을 껀덕지는 있지만, 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에 대한 비판은 악의적 선동이라고 봐야 할 것이고, 드루킹이라는 인물은 정신과에 가야할 사람이라는 겁니다.



드루킹이 발생시킨 문제는 아주 간단합니다. 기존의 파워블로거지라 불리던 이들과 다를 거 없는 행태였죠. 내가 여기 블로그에 포스팅 했으니 공짜로 해달라, 그래서 싫다고 하니 역으로 공격하는 겁니다. 드루킹도 하등 창의성 없는 행위를 반복할 겁니다. 단지 그 영역과 수준이 달랐을 뿐이죠.


자기 혼자 정치인 후원하고 지지운동하면서,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의원이 당선이 되자 그에 대해 공직 자리를 청탁을 하는 엽관을 요구했죠. 그리고 그게 들어먹지 않으니 반대로 휙 돌아서서 매크로를 돌리는 등 댓글부대로 여론조작에 나선 것이죠.



정작 김경수 본인은 그것을 거부했고, 드루킹이 보내는 문자를 거의 대부분 무시했으며, 추천을 한 것까지야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이는 추천을 한 것 뿐이지 검증은 추천을 받은 쪽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검증에서 결격되었으니 드루킹이 그 짓거리를 해댄 것 뿐이죠.



바로 그 이유로 드루킹에 대해 프락치가 아니었나. 하는 이야기마저 나왔던 겁니다. 제정신으로 할 행위가 아니었고,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이었으며, 그 결과가 문재인 정부에 대한 공격이었다면 프락치로 여겨질 수 있을 법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드루킹은 그마저도 못 되는 모지리였던 것 뿐입니다.


드루킹과 민주당원들의 여론조작 사태에 대해서 민주당이 욕을 먹을 수도 있다고 하는데, 앞서처럼 비난 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비판을 받을 껀덕지가 아예 없는 건 아닌데, 그건 단지 그 당사자들이 민주당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건 사실 별 의미가 없다는 점에서 그러한 비판의 껀덕지도 의미가 없는 수준으로 사라집니다. 따라서 민주당원이 여론조작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비판, 비난하는 건 의심할 법한 정치적 의도를 가졌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당원이 되는 건 단지 신청하고 당적이 오르기만 하면 되는 거고, 매달 당비 1000원만 내면 되는 그런 겁니다. 원한다면 그 누구든지 될 수 있고, 귀찮을 뿐이지 이 당 저 당 옮겨다니는 것도 이상한 거 아닙니다. 민주당 내부에서 높은 위치나 입지가 있고 영향력이 유의미한 수준인 사람이 아니라면 민주당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민주당을 비판하는 건 앞서와 같이 의심할 법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밖에요.



이번 사태는 전적으로 드루킹이라는 이상한 인간과, 그 인간을 추종하는 머저리들에 의한 것입니다. 직접 당사자인 김경수는 관련 의혹이 있으니 판단을 유보하겠지만, 현재로선 민주당은 관련 의혹이 없는 건 아니더라도, 직접 당사자가 아닌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피해자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웬 정신이상자와 그 추종자들에 의해 뜬금 없는 피해와 정당치 못한 비난을 받고 있으니. 민주당도, 문재인도 연관된 증거와 정황이 없는데 댓글부대를 운용하여 여론조작을 했다느니, 심지어 문캠 산하 조직이 의심된다느니 배후가 어쩌고 국기문란이 어쩌고 국정원과 다를 게 뭐냐, MB, 근혜와 다를 게 뭐냐. 이 소리를 해대고 있죠.



야당과 언론이 한 마음 한 뜻이고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부당하게 공격하는 의도와 이유는 뻔 합니다. 기본적으로, 그 동안 까일 껀덕지가 너무 없었던, 상식적이고 도덕적인 정권이었던 만큼 공격할 여지가 적었는데, 이번에 한번 잘 걸렸다라는 이유에서입니다.


그 이유로 부당하고 과장되고 선동적인 비난을 신나서 해대고 있는 거죠. 그러한 목적이야 당연히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율을 떨어뜨리고 이번 지선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이고요. 적어도 전자만큼은 확실한 목표입니다.


그러니 정당, 정치인들은 망상을 뿜어대는 거고 언론에선 부당하고 과장된 문장과 문구를 사용하고, 심지어 소설에 가까운 내용을 써가며 공격하는 겁니다.



그들은 문재인 정부를 과거 범죄정권과 같은 적폐로 몰고 있지만, 실상 그러한 행동을 보이는 그들이 적폐 그 자체라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은 국정원 사건과는 비교할 수 없고, 과거 십알단 사건보다도 급이 낮은 사건입니다. 언론과 야당에서 기를 쓰고 확대시키고 불을 붙히며 키우는 것에 비해, 어떤 의미로는 사소할 정도의 스캔들이죠. 일이 이렇게 커졌으니 민주당 쪽에서도 기민하고 영민한 대응이 필요해졌지만, 그들에게 하는 비판만큼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이번 사건만 보면 찰스 기토 같은 놈인데, 실은 그보다 멍청한 인간일 뿐이죠. 망상에 기인한 사이비 종교를 만들어 교주가 된 인간인데 이게 정상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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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작품에 대한 내용누설이 있습니다. 



작품은 살리에리의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자신의 죄악에 대한 죄책감으로 절규하듯 뱉어나다 끝내 자신의 목을 그어 자결하려고 하죠. 그러나 하인들에 의해 구조 당하고 정신병원에 갇히게 됩니다. 그리고 신부가 찾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라고 권하죠.


작품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천재성이 곳곳에서 부각되곤 하는데, 여기서부터 모차르트의 천재성은 부각됩니다. 신부에게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었으나, 알지 못하고, 모짜르트의 곡을 들려주자 너무나도 쉽고 열정적으로 칭찬하죠. 유력한 궁정악장이자 작곡가였던 살리에리의 곡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없고, 오직 천재의 곡만이 수 십년이 지나서도 기억되고 있음을 묘사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고백을 통해 과거의 이야기가 시작되죠.



실제 역사가 어떠했든, 작품이 수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명작이라 여겨지는 이유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것입니다. 그만큼 잘 만들어졌기 때문이겠죠. 특히 작품이 끝날 때까지 살리에리의 질투라는 속성은 아주 높은 수준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질투라는 건 사람을 망치죠. 자신을 더 낮은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더 추하게 만들죠. 살리에리는 궁정악장으로 왕정의 예법과 정치에 박식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격 있고 귀족적, 신사적인 태도의 모습과 대조되게, 아마데우스의 모습은 천박하고 방정맞죠.


그리고 그의 음악을 들은 살리에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범속함을, 평범함을. 그리고 질투는 거기에서 시작하죠. 자신의 노력과 열정이 부정당하는 현실 속에서 진정한 천재에 대해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임을 알았을 때, 열등감이 발생하고, 질투가 생깁니다. 그가 없었다면, 그만 없었다면. 자신이 그와 같고 싶고, 그 재능을 빼앗고 싶지만, 결코 그럴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됨을 압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을 끌어내리는 것이 질투이고, 추하게 만드는 것이 질투이니, 그러면 안 됨을 알면서도 결국 그렇게 하게 되고, 그러기 위해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은 역겹기 짝이 없죠.


살리에리는 그러한 열등감과 질투를 이겨내지 못했고, 모차르트의 성장과 성공을 의도적으로 막았습니다. 심지어 한 순간의 충동이었으나, 볼프강의 아내에게 몸을 요구하기도 했죠. 물론 바로 내보내긴 했지만, 모차르트의 아내인 콘스탄체의 수치심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내가 오직 원했던건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이었소. 하느님은 내게 그 열망을 주셨지만... 날 또한 벙어리로 만드셨소. 어째서? 말해 보시오. 하느님께서 내가 주님을 음악으로 찬미하는걸 원하지 않으셨다면 왜 내 몸을 좀먹는 그런 열망을 심으셨는지... 그러면서 왜 재능은 주시지 않으셨는지 말이오.


영화 『아마데우스』 중에서 -



모차르트의 행동은 오만하지만 자기 영역에 있어서만큼은 그것이 허용될 정도의 능력이 있었고, 그에 대해 자신만만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오만함은 사람들의 반감을 불렀죠. 너무 경박하고 방종하여 높은 사람들이 그의 태도를 싫어했지만, 천재 모차르트는 자유로웠던 것이고, 자유롭고 했던 겁니다. 그는 음악을 제외하면 생활과 인간관계에 있어서 어색하고 뻔뻔했지만, 그만큼 순수했죠. 


그는 진정 음악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이러한 작품에서 묘사되는 모차르트의 특이성은 그가 범속하지 않은 천재임을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죠. 그러한 재능은 더 높은 수준의 음악 작품을 추구했고, 그러한 추구는 법, 통속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며. 이러한 성향과 추구는 왕실과 다른 인물들간의 충돌이 벌어지곤 했었습니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묘사하는 여러 장치들이 작품 속에서 많다고 했는데, 살리에리와 첫 대면을 할 때, 처음 들은 음악을 듣자 마자 똑같이 연주하고, 그 이상으로 편곡하여 더 다채롭고 아름다운 음악으로 진화시켜버리는 모습도 그렇고, 특히 인상적인 것들은 술집에서 거꾸로 피아노를 연주한 부분에서, 그리고 이러한 사소한 것보다 인상적인 부분은 마치 일상 그 자체가 음악의 영감이 된다는 듯, 장모님의 비난에서 음악적 영감을 받고 승화시켜 그 유명한 마술피리의 아리아 중 하나인 밤의 여왕의 아리아가 나왔죠.


그리고 중간 중간 곡 작업 중 단지 악보를 쓸 때에도, 보기만 함에도 머리속에서 음악이 완벽하고 충실하게 연주되죠. 이 부분이 정말 예술적이고 천재성을 부각시키는 연출로 여겨지는데, 그의 말처럼 머리 속에 곡이 있다. 그리고 난 그것을 옮겨 적는 것일 뿐이다. 하는 것처럼 그에게 있어서 음악이란 이미 완성된 것이고, 완전하게 창조되는 것이었습니다.


재밌는 점은 그러한 것을 살리에리는 통찰해냈죠. 단지 악보만 보고, 수정한 부분이 없다. 그저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었다. 라고요. 그만큼 그의 음악적 실력이 출중하다는 점인데 말이죠.



그러한 천재성은 살리에리에게 극도의 열등감을 발생시켰고, 심화되어 질투로 이어졌으며, 그의 삶을 파괴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형편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그의 밥줄을 끊으려 했고, 아버지의 죽음이 그를 괴롭게 한다는 것을 알고 그를 정신적으로 괴롭히며, 종래엔 그의 심력이 다해 죽음에 이르게 하죠.


하지만 그의 수작에 의해 그렇게 되었음에도 그의 천재성과 음악성만큼은 누구보다 깊게 이해하고 인정하고 있었던 것 또한 살리에리였습니다. 그가 회고하듯, 자신의 수작에 의해 공연은 몇 차례 할 수 없었지만, 그때마다 자신은 가서 관람을 했다고 하죠. 마치 자신만 그것을 독점하여 즐기고자 하고 싶기에.


그것이 질투의 속성입니다. 자신이 가질 수 없기에, 자기고 있지 않기에 생기는 복잡함. 가질 수 없기에 고통스럽고, 가질 수 없기에 그것에서 해방되기 위해 없애버리고 싶지만, 그것을 즐길 수 있다면 환희마저 느끼는 그러한 것.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재능을 가질 수 없기에 모차르트를 싫어했고, 싫어하기에 죽이고 싶어했으며,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살리에리는 자신의 질투에 굴복했죠. 자신의 열정, 노력을 바쳤으며 기도를 통해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졌다고 믿었고, 충실히 독실했던 살리아리가 그렇게 망가졌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기독교의 7대 죄악 중 하나가 질투라는 점이죠. 질투가 사람을 망치고, 사람을 죽이기 때문입니다. 독실했지만 천재를 옆에서 지켜봐야 했던, 그것도 방종하기 짝이 없는 자의 절대로 따라갈 수 없는 재능을 보아야 했던 범재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이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렇게 살리에리는 신을 부정하고자 했습니다. 신이 자신을 버렸다면, 신의 거룩함을 노래할 수 있는 도구로 자신이 선택되지 않았다면 신을 조롱하고자 했습니다. 신의 아름다움을 음악으로 표현해주는 진짜 천재인 모차르트를 죽임으로써!



모차르트는 뛰어난 천재이자 음악가였지만 인간적으로 부족한 면이 많았습니다. 예의, 예절, 인격, 생활.. 아내를 사랑했지만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진 못했습니다. 자유로운 천재에게 그러한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래도 다른 것들에 비해선 중요했으니 그가 괴물이 아니라는 증거였지요.


앞서 말했듯, 그의 예의와 예절, 금기에 대한 도전은 그가 천재로서 자유로웠고, 창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시도와 더 많은 도전이 자신의 음악을 더 다채롭게 해주는 도구이며, 그러한 것을 통해 더 높은 수준의 음악을, 더 완벽한 예술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오만한 천재는 반감을 사기 쉽고, 뛰어난 천재는 시대를 앞서 나가기 쉽기에, 빈의 사람들은 그에게서 등을 돌리게 되기까지 합니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에게 크나큰 음악적 변화를 이끌어냈죠. 음악은 자신의 감성에서 창조되는 바, 그만큼 힘들고 괴로웠음을 보여주는 일면입니다. 살리에리는 그의 음악을 통해 그의 심경과 변화를 읽어냈고, 그를 죽이고자 하는 계획이 실행됩니다.


아버지가 썼던 가면을 하인에게 뒤집어 씌우고 진혼곡을 작곡하게 하죠. 바로 자기 자신의 진혼곡이 될 그 곡을.


인정 받지 못하는 모차르트는 점점 망가져갔고, 가정형편의 어려움은 아내와의 신뢰마저도 갈라지게 합니다. 아내를 배신하고 친구와 술마시고 놀 때 아내는 떠나갔고, 가정에서 한번 더 실패한 모차르트는 점점 더 힘들어져가죠. 공포스러운 아버지의 가면을 입은 자는 독촉하고, 불길한 곡을 쓰면서도 친구의 공연에서 연주하다 결국 쓰러집니다. 살리에리가 그의 집까지 옮겨주었으나, 결국 작업 도중 사망하게 됩니다. 그의 심력이 다해버린 것처럼 묘사되죠. 다만 진혼곡은 완성하지 못한 채 죽었고요.



살리에리의 회고는 모차르트의 장례식과 함께 끝났습니다. 살리에리는 그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아이돌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으니까요. 추악한 죄인으로서. 그의 계획은 성공했고, 신을 조롱하고 욕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거기에 즐거워했죠. 광오하게도, 자신이 신에게 한방 먹였음을 그는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마치 자신이 신이라도 된 듯, 혹은 신과 같은 권위를 가진 자인양 다른 환자들에게 저의 죄를 사하노라며 웃으며 퇴장합니다. 그것은 모든 범속한 자를 대표하는 범인의 대표자로서의 권위이겠지요.



작품이 오랜 시간 동안 인정 받고 사랑 받는 이유는 그것이 시대를 초월한 감성과 심미성을 가지기 때문이겠죠. 그림과 음악이란 그런 것이죠. 영화에서도 그러한 예술성이 시대를 초월해 존재한다면, 아마데우스 또한 그러한 조건에 부합되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전적 미를 잘 살렸으며, 예술적인 감각과 감성으로 작품의 연출과 묘사를 이끌어낸 영화 아마데우스는 예술가의 일생과 인간의 감성을 섬세하게 작품에 담았죠. 그 구성, 연출, 묘사. 


앞서에서도 서술했듯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부각하고, 그러한 천재로서 사회와 규범에서 돌출되는 자유분방함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그게 사치와 철 없음을 묘사하면서 그의 인격의 성숙을 비판하고 있음에도요.


처음 듣는 곡을 완벽하게 연주하는 것도, 그러한 것을 원작보다 더 다채롭고 더 아름답게 편곡하는 능력도, 모든 음악과 곡은 머리 속에 다 있어서 단지 옮겨적기만 하면 되는 비상함도, 작곡을 할 때 울리는 음악의 연출과, 악보를 보면 역시 연주되는 곡의 연출 등 그에게 음악은 최고의 음악가들에 비해 더 다양하고 다채롭고 황홀한 것이었습니다. 음악을 통해 신을 찬미하고자 했던 살리에리의 말처럼, 그것은 단연 신의 음성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됨됨이와 성숙함, 사회적 존경에 대한 자격이 있음을 보여줬으나, 질투와 열등감에 빠져 파괴되고 몰락해가는 인격의 인간상은 더더욱 잘 묘사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찬미와 경외를 가지고 있으며 신실한 신자로서 자신의 소원을 들어준 하나님과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했으며, 덕을 베푼 기독교인이었지만, 자신의 생활태도와는 전혀 다른 방탕하고 방종한 모차르트의 모습과 그러한 모습과는 전혀 걸맞지 않는 재능은 그에게 하여금 모차르트는 그의 재능에 자격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의 음악을 동경하고 경배했으나, 그러한 작품이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라는 인간에게서 나왔음을 저주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저주는 그러한 찬미와 신의 음성을 대변할 도구로 신실하고 노력하는 자신이 아니라 범재에겐 불허되는 재능을 가진 천재 모차르트를 선택한 신에게까지 이르죠. 질투는 가속화되기에.


결국 범인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가져선 안 될 질투는 모차르트라는 천재를 죽이게 되었고, 자신 또한 32년간 죄책감 속에 갇혀 살다 정신병원에서 폐인이 되죠.



실제 역사와 차이가 꽤 있는 작품이지만, 단순한 작품으로서, 이만한 완성도와 예술성을 갖춘 음악 영화가 또 얼마나 있을까요. 단지 이야기로서, 작품으로서만 본다면 굉장한 걸작인 셈입니다. 고전 명작이라 이름 붙을만한 작품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죠. 


완성도 있는 짜임새의 극과, 섬세하면서도 도전적인 묘사와 직관적인 연출, 그것을 완벽하게 살리는 배우들의 정확한 연기. 감독판의 경우 3시간이라는 길이가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너무 재밌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볼 정도의 영화죠. 도대체 이 작품에서 어디가 빠질만한 부분이 있었는가가 의문일 정도로.


마지막으로 범인의 대표자로서, 모든 범속한 자들의 평범함을 용서하는 살리에리의 판결로 글을 마칩니다.



난 세상의 모든 범인(凡人)을 대변한다오. 내가 그들의 대변자이지. 난 그들의 수호성인이야. 세상의 범인들이여! 내가 너를 용서하노라. 내가 너를 용서하노라. 내가 너를 용서하노라. 내가 너를 용서하노라. 내가 너희 모두를 용서하노라.


영화 『아마데우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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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같은 집단의 수장이 무능하고 멍청하면 주변 사람도 피곤하겠지만 그 이상으로 그 집단의 구성원 다수는 괴롭습니다. 통치자로서 가지는 권한과 권력이 거대한 만큼 무능함에 의해 발생하는 피해는 사회 전방위적인 분야에 들이닥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집단의 수장은 그 자리에 어울릴만큼 유능해야하며, 그 이상으로 판단력과 덕성의 수준이 높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유능하되 사익을 추구하여 사회적 병폐를 발생시키고, 무능하되 덕성이 높다면 실패한 정치를 하게 되죠. 그런 문제를 가졌기 때문에 집단의 수장은 반드시 유능하고 도덕적이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과 사의 구분은 고래로부터 하나의 공의로 여겨졌는데, 수장이 공과 사의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건 그만큼 공사에 대한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것이고 자기 통제력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사적인 감정과 관계가 공적인 영역에 적용된다면 그 자체로 불공정한 통치인 셈이죠.


공과 사의 구분이 중요한 점은, 사적인 관계가 공적인 영역에서 불공평을 발생시키고 그 이상으로 폐혜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는 높은 자리에 있는 이에게서 발생할 수록 문제가 커지는데, 가령 일국의 대통령과의 친분에 따라 공적인 재화, 서비스, 권리, 권한 따위를 사적으로 유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죠. 외교관계에 있어서는 그러한 친분만으로 이권이 달라지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는 이런 조건들에서 실격되었습니다. 사적인 관계로 최순실에게 정치를 통치의 의무와 권한을 넘겼고, 공적인 영역에선 실패했으며, 도덕적이지 않은 통치와 인간관계와 조직관계를 맺어왔죠. 



무능한 통치자는 일반적으로 환영받지 못하지만, 사실 환영 받는 이들은 있습니다. 무능하거나 딱 일정 정도까지만 유능한 간신과 그러한 통치자를 대해야 하는 타국이죠. 


무능하고 멍청하기 때문에 판단력이 뒤떨어지고, 뒤떨어지는 판단력은 첨예한 이성과 합리가 아닌 감정과 선호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며, 간신과 같은 이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게 된다면 그들의 말에만 귀 기울이게 되며, 마찬가지로 올바른 결과로 나아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더욱이 능력과 실력이 아닌 통치자와의 관계에 따라 인사가 이루어질 수 있기에 더더욱 나쁩니다.


결국 무능하고 덕성이 떨어지는 통치자와 그 주변인들은 정치를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할 것이고, 공적 신뢰는 파탄날 것이며 그 이상으로 국가의 중추적 영역(특히 경제)은 점차적으로 혼란하게 됩니다. 


여기서 외교에 있어서는 더 문제가 커지는데, 무능하고 멍청한 통치자만큼 이용하기 좋은 대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자의 문제가 국가 내부적으로 발생하는 착취와 부정이라면, 후자의 문제는 국가 외부로 발생하는 착취와 다름 없다는 게 문제죠. 여기서 공과 사의 구분이 엄격하지 못한다면 더더욱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거고요.



정치, 외교는 개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공적인 사안이며 이러한 사안을 다룰 때 사적인 감정은 접어둬야 합니다. 없을 수는 없겠지만 공적인 영역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됩니다. 국가의 역량이 부족하고 아쉬운 입장에서 타국에게 굽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자국의 역량만큼의 태도와 확신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무능한 거고 멍청한 거죠.


물론 정치구조에 있어서 시스템 속에 있으면서도 그 정점이기 때문에 시스템에서도 돌출될 수밖에 없는 대통령과 같은 통치자에게 감정과 사적 인식을 거세하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만, 그러한 요소가 과도하게 공적인 영역에서 발현되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대통령, 독재자가 사적인 감정을 공적인 영역에 투사하거나 영향을 받게 되면 사적인 관계를 잘 이루는 것만으로도 이익을 뽑아낼 수 있기 때문에 나쁩니다. 그 나라의 참모, 싱크탱크 등의 인력들에 의해 조언을 받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정치와 외교적 정책의 구조를 무너뜨리고 시스템을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주변인, 혹은 타국은 자신들이 내줄 비용과 협상력을 아낄 수 있고, 그러한 개인간의 관계와 판단만을 통제하고 유도하여 자신들에게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죠.



물론 실제 현실에서 아무리 멍청해도 공과 사의 구분을 그만큼 못하는 대통령, 독재자, 군주같은 통치자가 있진 않습니다. 있어도 드물죠.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공사 구분의 문제를 차치해놓더라도, 무능하고 멍청한 통치자를 타국이 좋아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자국의 유능한 참모와 실무자, 통치자 본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타국에 대한 이익추구 행위가 수월해지기 때문입니다.


타국에 이루어지는 활동과 공작, 협상에 있어 상대국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대처하지 못하게 되면 그만큼 국가의 이익과 권리가 밖으로 유출되는 거고, 그런 수준은 아니더라도 타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노무현 정부는 외교의 면에선 유능했지만 내부적으로 무능했고, 대통령 개인과 그와 가까웠던 주변인은 덕성이 높았지만, 그 정당 내부의 이들은 도덕적이지 못했으며,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는 내외부적으로 무능했고 도덕성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외교의 면에서 이명박 정권, 특히 박근혜 정권은 매우 무능했고, 이명박 정권은 친미일변도의 기조를 유지하며 극친미적 외교로 미국과의 관계는 좋았지만, 그 외 국가와의 관계에 있어서 무능했고, 미국에게도 의존하는 태도를 보였기에 정당한 협상과 대화보다는 언듯 끌려가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박근혜 정권의 외교는 총체적인 실패인데, 능력도 없으면서 어중간한 줄타기, 혹은 그런 의도는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외교는 중국에게 큰 제재와 불신을, 미국에게도 신뢰에 대한 시험을 발생시키며 사드 배치 문제에 있어서 양국의 압박과 제재를 받았죠. 일본 또한 꾸준히 평화헌법 개정과 보통국가화를 이룩해가는 것을 억제하거나 견제하지도 못했습니다.


미국, 일본에 대한 이명박의 태도와 중국, 미국에 대한 박근혜의 태도는 다분히 비굴했고, 그러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타국은 더더욱 한국을 낮게 평가했을 겁니다.


이러한 무능함은 타국에겐 업신여김과 무시를 받고, 겉으로 보이는 나름 괜찮은 평가와 대우는 그만큼 뜯어먹을 게 많은 먹잇감이기 때문에 그 대표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함이었죠. 정치의 기본이니까요.



사실 한국의 덩치와 역량은 충분히 유럽에서도 독-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며, 그러한 국력을 가진 국가로서 오만할 건 없지만, 그에 맞는 태도와 외교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의 두 정권과는 반대로 문재인 정권은 상당히 유능하고 적절한 외교를 하고 있고, 그런 성과를 보이고도 있죠.


한국이 자국인들은 자각하지 못할 지 몰라도, 대통령이 되는 인물이 그러한 수준은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면 안 되는데, 문재인은 그러한 면에서 합격점에 속한다고 봐야합니다. 자국의 힘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고 그 역량을 가지고 외교를 하고 있기에 중국은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나 사드 배치를 철회하지도 않고 반대하지도 않았음에도 사드 배치에 대한 문제제기는 크게 줄었고, 경제제재는 공식적으로 철회했고 실제로도 크게 줄었죠.


미국과의 관계는 트럼프의 발언과 취급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친한국, 친문적인 관계를 만들었고, 대북문제에 있어선 문재인만의 성과는 아니지만 남북정상회담까지 이끌어냈고, 일본패싱이라 칭할 수 있는 외교적 견제를 발생시켰습니다. 일본은 한반도 문제에 끼고 싶지만 끼어들 여지가 없어서 최근 아주 몸이 달아올랐죠.



한국이 자국의 역량에 맞는 외교와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주변국은 한국을 이전과 같은 태도와 방식으로 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이러한 차이는 시대인식에 의해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한데, 극우보수들이 통치로서의 정치와 외교에 있어서 무능하고 부정하며 심지어 시대를 제대로 인식하고 파악하지 못해 멍청하기까지 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있겠죠.


특히 시대 인식의 문제는 그들이 70년대, 80년대에 사는 줄 안다는 비판을 받는 원인과 같은 궤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에게 있어서 인식의 업데이트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 국제에 대한 인상과 가치관, 방법론은 그 시절 그것과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그들에게 외국, 특히 강대국과 선진국들이라 여겨지는 국가들은 한국보다 잘살고 강하고 발달된 국가로서 잘보여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들에게 비굴하고 사대적이며 두려워하고 동경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죠. 과거의 한국은 그만큼 모자랐고 부족했고 약했기 때문에 후진적 의식수준과 결부해 그러한 태도와 가치관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국민들에게도, 특히 정치 일선에 서 있는 이들에게 있어선 더더욱 빠르고 정확한 인식과 판단이 필요했지만, 극우보수 세력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런 인식과 가치관 때문에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는 외교에 있어서 비굴하고 소극적이었으며 자국의 역량과 가능성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외교적 실패는 그들의 무능에도 있지만, 그들의 시대인식에도 문제가 있었음을 시사하는 바죠. 가령 G20 당시의 국격드립은 그러한 천박하고 비굴한 인식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일면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통치자가 유능하고 도덕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문제를 발생시키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항상 발전을 지향해야 하며, 국가구성원을 안정시키고 평화롭게 해야 합니다. 그러한 무능한 통치자는 내치에서도, 외치에서도 대개 실패하기 마련이고, 거기에 도덕적으로도 결함이 있다면 그러한 공권력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게 되죠. 


p.s 전에 한번 썼다 날려먹은 글이라 처음 썼던 내용과 완전히 달라져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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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 사의 구분이 중요한 점은, 사적인 관계가 공적인 영역에서 불공평을 발생시키고 그 이상으로 폐혜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는 높은 자리에 있는 이에게서 발생할 수록 문제가 커지는데, 가령 일국의 대통령과의 친분에 따라 공적인 재화, 서비스, 권리, 권한 따위를 사적으로 유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죠. 외교관계에 있어서는 그러한 친분만으로 이권이 달라지게 됨을 의미합니다.


정치, 외교는 개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공적인 사안이며 이러한 사안을 다룰 때 사적인 감정은 접어둬야 합니다. 없을 수는 없겠지만 공적인 영역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됩니다. 국가의 역량이 부족하고 아쉬운 입장에서 타국에게 굽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자국의 역량만큼의 태도와 확신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무능한 거고 멍청한 거죠.


대통령, 독재자가 사적인 감정을 공적인 영역에 투사하거나 영향을 받게 되면 사적인 관계를 잘 이루는 것만으로도 이익을 뽑아낼 수 있기 때문에 나쁩니다. 그 나라의 참모, 싱크탱크 등의 인력들에 의해 조언을 받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정치와 외교적 정책의 구조를 무너뜨리고 시스템을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주변인, 혹은 타국은 자신들이 내줄 비용과 협상력을 아낄 수 있고, 그러한 개인간의 관계와 판단만을 통제하고 유도하여 자신들에게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죠.


발췌 : http://konn.tistory.com/593



공사의 구분은 공적인 영역에 존재하는 모든 이라면 기본적으로 구분해야 하는 능력입니다. 이 구분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폐혜를 발생시키며, 거시적으로 조직에 독이 되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불공평하고 정당하지 않다면 그 조직의 공적 신뢰도가 어떻게 될 지는 모두 알만한 일이겠죠.


공과 사의 구분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조직과 집단, 수장은 더 이상 능력과 실력이 평가의 대상이 아닌 인맥과 친분이 평가의 요소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그러한 친분에서 밀리면 승진할 수 없고,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없게 되죠. 흔한 증소기업에서 발생하는 인맥, 친목 문제와도 맞닿은 문제입니다.


조직은 조직화되어 있을 수록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게 됩니다. 시스템이라는 구조가 발생하고, 그 시스템을 규칙으로 움직이죠. 실제 돌아가는 건 인간에 의해서이지만, 시스템이라는 비인간적 구조가 있기 때문에 부정이 발생하고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적어지죠. 그게 시스템과 구조의 가치이자 안전성입니다.


그러한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인적 관리와 효율을 대상으로 하는데, 공사의 구분이 무너지면 이 시스템의 근본 목적이 무너지게 되죠.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조직은 언제가 됐든 비효율과 부정함을 안고 가게 되고, 조직의 기반과 역량이 약하다면 무너지게 되거나 쇠퇴됩니다.


단지 친분에 의해 능력과 별개로 승진하고 더 높은 권한과 의무를 짊어진다면 어떠한 파탄이 나는지는 태평양 전쟁기의 일본군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단지 친분만으로 높은 계급을 가지게 해주고 능력도 없는 이가 그 계급의 권한을 함부로 유용하다 어마어마한 손해를 입곤 했었죠.



이러한 약점이 조직 밖의 인물에게 이용된다면 더 큰 문제가 일어납니다. 가령 독재자, 대통령 개인간의 친분만으로 공적 이익을 얻어낼 수 있다면 일은 굉장히 편해지기 때문이죠. 자국의 역량과 협상력을 아끼고 단지 개인간의 친분만에 공을 들여 더 쉽게, 더 많은 이익을 뽑아낼 수 있으니까요. 


이는 단 한 사람을 통제하여 국가, 집단 단위의 부정과 부패를 발생시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고래로부터 군주, 통치자는 공사의 구분을 명확히 하는 것이 공의라 여겨졌죠. 이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내부적 불만은 점차 높아져가고 야비한 자, 간사한 자들은 자신의 실력과 능력을 갈고 닦지 않고, 덕성을 다듬으려 하지 않으며, 단지 권력자 개인에게 충성과 간언을 하며 부정한 이익과 특혜를 받게 됩니다.


그 결과 누구도 자신의 능력과 실력만으로 대접 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고 종래엔 간신배와 모지리들만 모여 있는 잡조직이 되어 버립니다. 과거 간신과 암군에 의해 통치 받는 국가가 그러했죠. 국가와 국가의 관계가 그러했다면 그것은 일방적인 착취의 영역이 되어 버립니다. 통치자에 의해 발생하는 국가 단위의.


이러한 것은 규모와 관계 없는 조직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문제이며, 조직이 커지고 성장하기 위해선 공사의 구분이 철저하고 명확해야 하는 이유이며, 그러하기 위해서 공적인 시스템을 만들고 그것을 기반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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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음과 깔끔한 음색의 당당한 목소리가 굉장히 매력적이네요. 한때 뮤즈의 음악을 매일 들을 정도로 좋아했고 그 중에서도 언인텐디드의 차분하고 잔잔함이 마음에 들어 많이 듣곤 했었습니다. 특히 기타 반주가 정말 마음에 들었었는데 말이죠.


그 이후 뮤즈의 곡들은 잘 듣지 않게 되었지만, 뮤즈는 뮤즈고 명반은 명반이며, 좋은 곡은 좋은 곡이죠. 


뮤즈는 의외로 여자들이 부를 때 더 좋은 곡들이 많은 듯 합니다. 매튜 벨라미가 저음도, 고음도 있는 곡들을 많이 부르다보니 오히려 이런 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여성이 부를 때 더 돋보이지 않나 싶군요.



뮤즈 (MUSE) - Unintended


You could be my unintended. Choice to live my life extended

넌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랑이었어. 네가 나타나 내 삶은 새로워졌어

You could be the one I'll always love

이제 넌 내가 언제까지나, 영원히 사랑할 사람이고,

You could be the one who listens to my deepest inquisitions

내 마음 속의 가장 깊은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어준 걸

You could be the one I'll always love

넌 내가 언제까지나 영원히 사랑할 단 한 사람이야


 

I'll be there as soon as I can

당장이라도 네게 달려가고 싶은데

But I'm busy mending broken pieces of the life I had before

그 전에 아직 부숴진 내 삶을 주워담아야만 하는 걸

First there was the one who challenged. All my dreams and all my balance

그녀에게 내 꿈과 모든 것들을 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She could never be as good as you

결국 그녀는 네가 될 수 없었지 



I'll be there as soon as I can

당장이라도 네게 달려가고 싶지만

But I'm busy mending broken pieces of the life I had before

아직, 부숴진 내 삶을 주워담아야만 해



가사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warnermusickorea&logNo=220464990105&parentCategoryNo=1&categoryNo=&viewDate=&isShowPopularPosts=true&from=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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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빠진듯, 얇은듯 하지만 심지는 굳은 듯한 목소리가 특징적인 홀리 헨리가 부른 아델의 Hello 커버 곡입니다. 이 영상 말고도 다른 영상, 이를테면 레이디 가가의 Bad Romance와 같은 곳에서 특히 그 특징과 기교가 돋보이는 편인데, 차분하면서도 몽황적인 면이 있는 목소리로 자기 색깔 풍부하게 부르는 면에 아주 큰 매력을 느꼈죠. 위 영상 말고도 글에 링크 되어 있는 배드 로맨스 곡도 들어보는 걸 권합니다.


Lyrics - 

[Verse 1]

Hello, it's me
안녕 나야.
I was wondering if after all these years You'd like to meet,
시간이 지나고 날 만나고 싶을지 궁금해졌어.
 to go over Everything
이 모든걸 다 지나가기 위해선,
They say that time's supposed to heal ya
그들은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말했지만,
But I ain't done much healing
그렇게 되진 않더라.


Hello, can you hear me?
안녕, 내 말 들리니?
I'm in California dreaming about who we used to be
난 우리가 그렇게 그려왔던 캘리포니아 드리밍 안에 있어
When we were younger and free
우리가 젊고 자유로웠을 때 꿈꿨었던
I've forgotten how it felt before the world fell at our feet
세상을 우리 발 밑에 두고 있을 때의 기분을 잊어버렸어.


[Pre-Chorus 1]
There's such a difference between us
우리 사이엔 차이점이 있지
And a million miles
백만 마일이나 떨어진


[Chorus]
Hello from the other side
안녕......
I must've called a thousand times to tell you
이 말을 하려고 천번은 전화했을거야
I'm sorry, for everything that I've done
미안해. 내가 저지른 모든 일들
But when I call you never seem to be home
하지만 내가 전화할 때마다 넌 집에 없었지.


Hello from the outside
안녕.......
At least I can say that I've tried to tell you
적어도 내가 너에게 말하고 싶었던 거라고 얘기할 수 있어.
I'm sorry, for breaking your heart
미안해 네 마음을 아프게 해서.
But it don't matter, it clearly doesn't tear you apart anymore
하지만 상관 없어, 더이상 네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을거니까.


[Verse 2]
Hello, how are you?
안녕, 어떻게 지내?
It's so typical of me to talk about myself
이런식으로 내 이야기 하는거 이젠 질리지.
I'm sorry, I hope that you're well
미안해, 그냥 네가 잘 지냈으면 해서.
Did you ever make it out of that town Where nothing ever happened?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그곳을 떠나려고 한적이 있었니?



[Pre-Chorus 2]
It's no secret That the both of us are running out of time
우리 둘의 시간이 다 된건 숨길 게 아냐


[Chorus]
Hello from the other side
안녕.....
I must've called a thousand times to tell you
이 말을 하려고 천번은 전화했을거야
I'm sorry, for everything that I've done
미안해. 내가 저지른 모든 일들
But when I call you never seem to be home
하지만 내가 전화할 때마다 넌 집에 없었지.


Hello from the outside
안녕......
At least I can say that I've tried to tell you
적어도 내가 너에게 말하고 싶었던 거라고 얘기할 수 있어.
I'm sorry, for breaking your heart
미안해 네 마음을 아프게 해서.
But it don't matter, it clearly doesn't tear you apart anymore
하지만 상관 없어, 더이상 네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을거니까.


[Bridge]
Ooooohh, anymore
우↑ ↘↘↗↘~~ 더이상은.....
Ooooohh, anymore
우↑ ↗↘↗~~ 네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을거야....
Ooooohh, anymore
우↑ ↘↘↗↘~~ 더이상은..
Anymore
더이상은... ↗


[Chorus]

Hello from the other side
안녕......
I must've called a thousand times to tell you
이 말을 하려고 천번은 전화했을거야
I'm sorry, for everything that I've done
미안해. 내가 저지른 모든 일들
But when I call you never seem to be home
하지만 내가 전화할 때마다 넌 집에 없었지.


Hello from the outside
안녕......
At least I can say that I've tried to tell you
적어도 내가 너에게 말하고 싶었던 거라고 얘기할 수 있어.
I'm sorry, for breaking your heart
미안해 네 마음을 아프게 해서.
But it don't matter, it clearly doesn't tear you apart anymore
하지만 상관 없어, 더이상 네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을거니까.


가사 출처 :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pop&no=124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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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 [論理] 국어

생각이나 추론이 지녀야 하는 원리나 법칙


논리적이다. 합리적이다. 쉽게 말해서, 똑똑하다. 라는 것은 같은 것을 보아도 남들보다 더 정확하게, 더 많이 보고 설명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겁니다.


생각외로 사람들은 논리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습니다. 인간의 논리력과 합리성은 DNA에 각인된 본능적 능력이 아니라 교육과 훈련을 통해 얻어낸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교육과 훈련의 수준과 성취에 따라 그 능력의 수준은 천차만별이죠.


그만큼 같은 것을 보고도 그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설명해낼 수 있는 건 그만큼 논리력과 합리성이 훈련 받은 사람이라는 것이죠.



논리라는 것은 위의 사전적 정의처럼, 그것의 원리와 법칙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단순한 정의일 뿐이고, 그러한 기술이나 방법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죠. 따라서 논리라는 것도 그 수준에 따라 허술한 논리와 견고하고 탄탄한 논리가 있을 수 있는 거고, 당연히 후자의 논리가 더 합리적인 결론을 내놓을 수 있게 됩니다. 학계와 같은 영역에서 후자의 싸움이 치열해지죠.


이러한 논리는 같은 문장을 보고도 더 명확한 명제로 나눌 수 있습니다. 더 논리적일 수록, 더 똑똑할 수록 기본 단위의 논리로 분해가 가능해집니다. 이러한 명제 나누기, 논리적 분해는 결국 수리 논리와 같은 분야로 다다르게 되죠.


하여간 이를 다르게 말하자면, 같은 문장 속의 상이한 두개의 명제가 하나의 명제인 것처럼 둔갑하여 잘못된 주장이나 결론으로 호도하는 것을 파악하고 그것을 비판, 논박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은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일상에서야 별 상관 없겠지만 토론과 논쟁의 상황에서 첨예한 논리를 가진 쪽이 이길 수 있고, 여기서 이겼다는 것은 그의 주장이 더 합리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올바른 논리가 합리적 결과를 내놓지 못할 수가 없죠. 이 합리성이 선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만.



이 블로그에서도 수 차례 언급한 적 있지만, 멍청할 수록 피상적인 것 밖에 보지 못하고, 더 뛰어난 지성을 가진 사람일 수록 그 근본적인 원인과 원리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현상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하는 능력이 개인의 두뇌활동으로 어느 정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듯, 할 수 있는 기본 단위의 논리로 명제를 분할하며 그것의 타당성을 따지며 옳고 그름을 가려낼 수 있으니까요.


또한 이러한 지성은 그러한 것을 감각적으로 느끼기만 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언어적으로 설명할 수 있기도 합니다. 지성이 뛰어나지 못한 이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은 부당함을 느끼지만 그것의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마찬가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당함을 느끼고 그것이 불만과 분노를 느끼지만 그것을 풀 대상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죠. 그러한 상황에 놓인 개인, 더 나아가 그들이 모인 대중은 쉽게 극단주의에 빠지기 쉽죠. 정치에선 나치, 일본 극우, 미국 네오콘, 사회나 인터넷에선 메갈, 일베, 그냥 흔해 빠진 멍청이나 초딩, 중2병 환자 등등..



뭐 하여간, 더 논리적이라는 것은 더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하게 되면서, 독립적 지성체로 기능하게 할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 됩니다. 완벽히 독립적일 순 없고 사실상 달성 불가능한 지점이지만, 능력에 따라 최대한 그럴 수 있게 되겠죠. 미국의 저소득층, 저학력층에게 철학을 가르쳤더니 자신의 분노와 불만이 어째서 발생하는지 이해하고, 그것을 언어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되면서 그러한 내적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는 그러한 지성이 자신을 통제하는 수단이 됨을 의미합니다. 스마트폰이라는 단말기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통해 정보와 통신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연결될 수 없고, 이를 보고 우리는 고장났다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단말기가 자신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리고 부당한 영향에 올바른 반응을 발생시키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제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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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작품에 대한 내용누설이 있습니다. 


오만과 편견을 읽은지 꽤 되서 내용이 아주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과연 걸작이라 칭송 받는 고전 연애소설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기억에 남습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여겨졌던 것은 작품 내의 등장인물과 사건보다는, 그것을 쓰는 필체에 있었습니다. 산문이기에 자유롭게 쓰여진 오만과 편견은, 개인적으로 어떤 면에선 감춤 없이 서술되는 표현에서 고전적인 맛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도 세련되었고 내용적으로는 그런 필체이기에 정확하고 잘 짚어낸 심리와 행동을 독자로 하여금 쉽게 이해토록 하며, 잘 구성된 짜임새의 작품으로서 어째서 200년도 전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오랜 기간 전세계 다양한 독자들에게 후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는지 알만하게 했죠.


가장 구체적으로 그러한 고전적인 맛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은, 뭐 이건 번역의 차이이긴 하지만 ~~의 좋은 점을 나열했다. 같은 식의, 허례적인 표현들은 읽으면서 당시 사회 상류층과 젠트리들의 허례적인 태도를 느끼게 해주는 아주 좋은 요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비단 번역(Good Thing; 좋은 점)이 저랬기 때문만은 아니지만, 뭔가 초등학생 애들이나 할 법한 표현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게 그들의 허례적인 가치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뭐 어찌됐든, 소설을 읽으면서 그래도 고전 소설은 고전 소설이기 때문에 현대적 가치관과 맞지 않는 부분들이 꽤 보였습니다. 결혼에 대한 의식과 가치관이 그렇지요. 다만 그렇기 때문에 제인 오스틴이 얼마나 선진적인 작품을 썼는지, 그러한 여성을 묘사했는지 잘 보여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남성들에게도 마찬가지였지만, 여성들에게도 결혼이란 전통적인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좋은 남자 잡아서 결혼해야만 하는 것이며, 여기에 있어서 정조나 처녀성과 같은 위신과 명예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자 하나의 자산가치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 속 샬럿 루카스와 같은 여성은, 나름 현명한 편일진 몰라도, 자신의 못난 외모 때문인지 결혼에 대한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윌리엄 콜린스와 결혼해버립니다.


이는 그 당시의 좋은 결혼상대의 조건인 재산과 지위, 평판을 기준으로 하였고, 교구목사로서 높은 사회적 지위와 많은 재산, 더욱이 앞으로도 많은 돈을 상속 받을 가능성 등을 조건으로 하여, 루카스양에겐 최고의 결혼 대상으로 보였고, 그것을 이유로 그와 결혼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 작품의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베넷은 샬럿에게 실망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고--물론 그 이전에 콜린스가 자신에게 청혼했다는 점과 더불어 나름 충격을 받았지만-- 현명한 대화상대를 잃고 싶지도 않으며, 좋은 친구와 데면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샬럿에 대한 감정을 금방 털어냅니다. 사실, 객관적으로 본인이 그에 대해 나쁘게 생각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죠. 본인 스스로도 그런 남자와 결혼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 실망한 것이지 그 외의 조건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들이었으니까요.


이는 주인공 리지 베넷의 현명하고 주체적인 균형의식과 높은 판단력을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뭐 각각의 등장인물에 대해 논하자고 한다면 너무 무의미한 지면을 할애해야되고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고, 작품의 제목이 되는 오만과 편견은 참으로 중심적이다 싶은데, 애초에 그렇게 쓴 것이지만 엘리자베스 베넷의 편견과 피츠윌리엄 다아시의 오만으로 대표되는 그들의 결점과 특성을 그대로 서술한 것이 작품의 제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진부한 제목이지만, 반대로 작품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훌륭한 제목이지 싶기도 하네요.



리지와 다아시가 처음 만나는 빙리의 파티에서 다아시의 첫인상은 정말 안 좋았죠. 오만하고 재수없는 태도는 마치 속 좁고 찌질하다는 듯한 인상마저도 줍니다. 상류층으로서 오만하고 자신과 격이 맞지 않는 이들을 깔보고 폄하하는 듯한 그의 태도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굉장히 누구에게든 안 좋은 첫인상으로 시작하게 되죠.


하지만 이는 사실인 동시에 첫인상의 오류를 내포하는 시작이기도 합니다. 리지 베넷은 그런 다아시의 모습을 보고 거기에서 편견이 시작되거든요. 그런 편견은 다아시가 고백을 하는 시점까지 꾸준히 이어졌고, 다아시의 오만함이 리지를 평가절하하기 위해 관찰하면서 점점 무뎌지고 깍여나가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어버리는 과정에서 오만함이라는 단점 요소가 사라지는 원인이 될 때에도, 그러한 다아시의 관심과 관찰이 역으로 리지에겐 자신의 편견을 강화하며 다아시의 모든 행동이 타인을 깍아내리고 비난하기 위한 행동일 것이다. 라고 여기며 다아시를 공격합니다.


원래라면 기분 나쁠 법도한 태도이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그것마저도 받아주는 이유가 되죠. 캐롤라인이 옆에서 다아시의 관심과 사랑을 끌어오기 위해 뻘짓거리를 할 때에도 그녀를 무시했지만 리지에겐 꾸준한 관심과 관용, 인내를 발휘했습니다.



그러다 다아시가 자신의 타는 듯한 감정을 참지 못하고 리지에게 고백하는 장면은 전기 부분과 후기 부분의 전개를 뒤바꾸는 작품의 중심적인 시점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때의 대화도 참 재미있죠. 다아시는 자신의 고백을 리지가 당연히 받아들일 것이라는 오만함을 버리지 못했고, 리지는 기존의 편견대로 다아시를 공격합니다.


왜 이 부분이 재밌냐면, 이러한 서로간의 태도에 오만과 편견이 묻어 있기 때문인 동시에, 그러한 가혹한 경험에 감정적으로 매몰되지 않고 현명하고 침착한 지성을 발휘하여 스스로와 타인을 성찰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정말로 배울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지의 감정적 우월감에 도취되는 비난 행위에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도, 다아시 또한 그러한 가멸찬 비난에도 분노와 수치를 느끼지 않고 차분한 상태에서 신사로서의 의무를 발휘하여 자신의 생각과 사실을 적어 설명하고 설득하고자 하는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 말입니다.


리지는 이에 자신의 생각이 틀렸고 다아시가 생각보다 뛰어난 인품과 지성을 겸비한 사람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사랑은 시작되어 버리죠. 그 동안 가진 편견에 따른 반감의 반동으로 그에 대한 진심과 가치를 깨닫게 된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에 대한 조심스럽고도 뜨거운 감정을 가집니다. 다아시 역시도 그러한 경험을 겪었음에도 리지에 대한 감정이 변치 않고, 되려 할 수 있는 지원과 희생을 스스로 감수하면서까지 다가가려고 하고요.


제인-빙리의 결혼은 전통적 결혼관의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예시라면, 위컴-리디아의 결혼은 전통적 결혼관의 가장 저열하고 천박한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지-다아시의 결혼은 이러한 각기 다른 방향의, 그러나 같은 전통적 가치관의 결혼 사례를 앞에 두고 이루어지는 새로운 사례입니다.


결혼 대상의 외면적 가치인 재산과 외모, 평판, 지위보다는 애정과 존중, 신뢰와 공감이라는 내면적 가치를 중시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서로를 사모하고 결혼하게 되었으니까요. 당시 기준으로, 그러한 외면적 가치가 중심적인 이유로 기능하고, 내면적 가치는 서로 결혼한 뒤 저절로 생기고 가지게 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만큼, 리지와 다아시의 관계를 그만큼 선진적이고 진보적인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다아시의 오만이었던, 귀족 상류층으로서 자신과 격이 맞지 않고, 그 가족들의 천박함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이로선 과감한 결정이었고, 젠트리 계급으로서 내면적 지성과 통찰을 최고 규범으로 여기는 엘리자베스의 반지성적 편견이 깨지고 저열하다 여겼던 다아시의 진면목을 보며 선택한 달성적 결정은 그 당시 보편적 결혼관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다아시의 그러한 떨어지는 집안의 여식을 배우자로 삼는 것도 파격적이었고, 높은 사회적 지위와 평판, 재산을 보유하여 자신의 미래를 보장해줄 수 있는 남편감에 대해서도, 실리적이었던 루카스양과는 다른, 가치관이 맞지 않아 존경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한 것은 역시 굉장히 파격적이었습니다. 


사회가 중요시하고 인정하는 조건을 거부하고 자신의 내면적 가치에 걸맞는 이를 인정하고자 하는 태도, 그리고 그러한 태도를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명하며 납득시키고자 하는 여 주인공은 200년전 그 시대를 기준으로 과감한 것을 넘은 파격 그 자체였으며, 흔치 않은 캐릭터성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캐릭터성과 전개는 흔해 빠진 두 남녀의 갈등과 성장, 반성과 사랑으로 이어지는 틀과는 또 다른 내면적 가치의 교훈을 남기며, 당시 뭇 여성들에게 제시한 새로운 가치관의 전달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지금도 흔해 빠진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는 많지만, 이렇게 주체적이고 발전적인 여성상을 그린 작품은 의외로 많지 않다는 점을 본다면 이 작품이 가지는 가치과, 품는 가치는 2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전세계적으로 많은 인정을 받은 이유가 있다는 것을 납득하게 해줄 수 밖에 없죠.


사랑이라는 만고의 보편성을 지닌 진리를 장르로 하였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담았기 때문에 명작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시대를 뛰어넘는 재미는 그것이 시대를 뛰어넘는 가치를 담았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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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간 개발한 3세대 MMORPG 게임으로서 많은 기대를 받아왔던 게임치고는 너무나도 아쉽고 그 이상으로 아까운 게임입니다. 저도 해보기 전까지는 굉장히 많은 기대와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 발매한 이후 하다보니 정말이지, 흔한 한국 게임의 문제점들을 계승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문제들이 발생했죠.



일단 먼저 장점을 이야기해보자면, 3세대 MMORPG로서 HnH와 같은 게임에서 제시되었던 개념과 요소들을 적용했습니다. 특히 듀랑고 시스템 중 가장 많은 관심과 호평을 받았던 것은 제작 시스템인데, 마인크래프트와 같은, 정해진 재료 아이템과 정해진 결과물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각 아이템들에 특성이라는 성질 개념을 부여한 뒤, 그 특성이 맞기만 한다면 아무리 말이 안 되는 결과물이라도 제작이 가능하다는 한 차원 진보한 제작 개념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는 앞으로의 MMORPG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게임사적 획을 그었다고 평가하는데, 기존의 한정적이고 한계가 뚜렷한 제작과 재료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더 현실적이고 넓은 가능성이 존재하는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비전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이런 제작 시스템에 대해서는, 그 개념 자체로서는 호평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봅니다.


그 외에 불안정섬이라는 개념도 굉장히 흥미로운데, 많은 사람들이 우려할 수 밖에 없는 한정적인 자원과 맵의 크기와 거리 문제를 해소한 훌륭한 구조적 설계라고 봅니다. 시간을 제한한 채 그 기간 내에 그 섬에 있는 모든 것은 채집, 설치 가능한 것들이고 이는 이런 류의 게임에 고질적으로 존재하는 자원과 맵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기획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냥터나 채집터 통제의 문제도 없어지고 희소한 자원을 특정인들만 독점적으로 얻거나 사실상 무의미하게 없어지는 일이 줄어들고 우려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죠.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만..


게임 자체가 쉽다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입니다. 시스템 자체가 복잡하지 않고 몇몇 개념과 요소만 알면 되기 때문에 특별히 더 배우거나 연구할만한 부분이 많지는 않죠. 이는 폰게임으로서 많은 시간과 정신을 할애할 수 없는 이들에게 쉬운 접근성과 빠른 적응력을 가지게 하는 부분이죠. 



근데 솔까 장점이라고 꼽을만한 건 이런 것들 밖에 없는 거 같습니다. 솔직히 문제는 너무 많아요. 6년 동안 개발한 게임 치고는 정말이지 아쉽고 아까울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소재도, 게임의 설계도 괜찮았지만, 구조적인 문제점과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버렸습니다.


먼저, 땅이 부족합니다. 불안정섬은 잘 만든 시스템이지만, 안정섬은 그야말로 구조적 게임 설계 실패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마인크래프트와 같은 무한하고 범용성이 넓은 활동을 보장 받는 플레이였다고 봅니다. 즉, 자기가 원하는 때 자기가 원하는 행위를 하고 원하는 것들을 얻어서 원하는 결과를 만드는 겁니다. 마인크래프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샌드박스로서 게이머가 원하는 요소를 잘 충족시켰기 때문이죠. 다소간의 한계는 있었지만 게임에 큰 문제가 되는 한계를 발생시키는 건 아니었죠.


하지만 듀랑고의 안정섬은, 그 좁아터진 섬에 수 많은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서로 땅따먹기를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바로 옆에 사람들 땅이 존재하고, 답답해 터진 섬에서 만들고 어쩌고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생존게임으로서(혹은 그러한 컨셉을 잡은 게임으로서) 존재 의의 자체를 말소시켜버린 기획입니다.


누구도 그런 답답하고 불쾌한 사유지 시스템을 원하지 않을 겁니다. 심지어 안정섬도 좁고 지형에 따라 유리와 불리가 어느 정도 결정된다는 점에서 더더욱이요. 사람들은 넓은 땅에서 자기가 원하는 만큼, 능력껏 땅을 넓히고 자신이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보고 느끼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듀랑고의 시스템은 그딴 거 없고 좁아터진 한정적인 땅 내에서 느그 혼자 알아서 해봐라 하는 건데.. 참...


더불어, 게임 자체가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볼륨이 적고, 할만한 게 적습니다. 애초에 소유지를 크게 발전시킬 방법이 부족 시스템 말고는 없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간의 커뮤니티 활동과 사회적 활동이 강요받는데, 먼저 폰 게임으로서 그러한 소통의 필요성은 태생적인 불리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떄문에 보이스 채팅도 있지만, 까놓고 말해서 그리 잘 쓰인다곤 생각 안 합니다. 적어도 라이트 유저들에게 있어선 더더욱이요. 


더불어 이런 류의 생존 게임은 불특정한 사람들끼리 노는 것보다는 자기 혼자 어떠한 장소에서 자원을 채취하고 건물과 사물을 만들어 설치하고 정비하고 방비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에서 재미를 얻습니다. 근데 듀랑고는 그러한 점에 있어서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즉, 발전의 한계는 뚜렷하고, 그 틀은 좁습니다.


근데 심지어 거기에 사냥, 채집, 제작의 반복이고, 퀘스트 내용도 거기서 거기인데다, 그 퀘스트 또한 그저 레벨업을 위한 행위에 불과한 게 사실입니다. 그냥 경험치를 많이 주니까. 이런 반복적인 활동은 기존의 RPG 게임, 특히 한국형 RPG 게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재미 없는 뻘짓거리의 루틴 퀘스트로 여겨지고, 여기서 재미는 반감됩니다. 뭐 이런 퀘스트 없는 RPG 거의 없지만 한국형 RPG에서 이런 퀘스트의 남용은 많은 이들이 귀찮아하는 방식이죠. 만들긴 쉬워도.


솔까 이런 퀘스트 자체는 그럴 수 있습니다. 말했듯이 그런 퀘스트야 엄청 많고 당연한 거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그거 말고 할 게 거의 없습니다. 폰 게임이다보니 게임의 볼륨이 적은 것도 이해는 되지만, 이러한 요소들과 결합해서 보면 그냥 게임을 계속 하고자 하는 생각이 안 드는, 재미 없고 지루한 게임이 되어 버립니다.



제작자들도 그걸 알기 때문에 최대한 오래 붙어놓게 만드는 시스템들을 설계해서 넣은 의도가 보이긴 합니다. 아이템들의 내구도 수명과 사유지의 유지기간 같은. 아이템의 내구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낮아지고, 이는 설치물도 마찬가지죠. 그에 따라 그런 아이템을 통해 충분히 뽕을 뽑기 위해선 오래 게임을 하는 게 경제적이며, 이는 소모품에 있어서 특히 그런 의도가 강하게 느껴지죠.


설치 아이템이나 장비 아이템도 수명이 줄어들기 때문에 수리 아이템으로 수리할 수 있지만, 최대 내구도가 줄어들기 때문에 결국 다시 만들어야 하고요. 이런 식의 설계는 최대한 게임을 오래 하게 만들고, 계속 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지금까지 한 게 아까우면, 지금들고 있는 아이템들 다 날려먹는 게 아까우면 계속 하라는 거죠. 


이런 시스템 자체가 나쁜 건 아닙니다. 제작자와 게임사로서 많은 유저들이 오래 하는 건 그만큼 많은 돈을 보장해주죠. 근데 문제는 이런 시스템이 게임 전반적으로 존재하고, 사유지와 같은 근본적인 요소에도 적용되며, 게임 자체가 재미가 없어서 이러한 시스템에 개연적 납득(오래된 아이템이 삭는 게 현실적이지. 같은.)보다는 그냥 접지 않으려고 만든 시스템이구나 라고 여겨지게 된다는 점이죠.



스킬 시스템에 대해선 그럭저럭 괜찮다고 볼 수도 있는데, 스킬 레벨을 높히기 위해 해당 제작이나 활동을 많이 하게 만드는 건 훌륭한 설계이긴 하다고 봅니다. 귀찮아서 그렇지. 더불어 일부러 스킬 포인트를 부족하게 만들어 더 많은 레벨을 올리게 해야 하는 것도 나름 괜찮다고 보고요.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앞서 말한 최대한 오래 하게 만드는 수작질이라는 의심과 더불어 최대한 오래, 많이 하게 만드는 설계 의도로도 여겨집니다. 더불어 이런 시스템에 대해 호불호도 있을 수 있죠.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데 이것들은 할 수 있어도 저것들은 못한다고. 



이러한 요소들은 결국 게임의 커뮤니티성을 통해 극복하라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땅이 부족하고 채집과 제작에 한계가 있다면 부족을 만들고 가입해서 커뮤니티 활동을 하라는 겁니다. 듀랑고 기획자가 마영전 기획자와 동일인물이죠. 그에 따라 커뮤니티성에 주안점을 둔 거 같은데, 대다수의 라이트 유저들은 그런 걸 원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폰 게임이라는 태생적 한계는 그러한 활동을 잘 할 수 없게 만들죠.


까놓고 말해서 많은 이들이 집에서 녹스, 블루스택 같은 걸로 돌리게 되는데, 그렇게 된다면 폰 게임으로 만들 이유가 있었을 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PC게임으로 만들고 구조적 문제나 볼륨의 문제를 다소 해소해서 출시했다면 차라리 더 나았을 겁니다.



하지만 결국 구조적인 문제는 존재하고 게임으로 하여금 게임성을 통해 계속 해야할 이유를 만들기 못하고 시스템적 제약을 통해 계속하게 만드는 만큼 이러한 비판은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차라리 마인크처럼 싱글, 멀티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멀티 또한 마인크래프트처럼하는 게 나았다고 봅니다. 전세계 단일 서버나 다수의 인원을 수용하는 게임사에서 제공 서버를 만들겠다면 HnH와 비슷하게 만드는 게 나았죠.


광활한 맵을 주고 랜덤하게 사람을 뿌린 뒤 스킬과 레벨, 자원 등에 따라 사유지를 더 넓힐 수 있고 원한다면 그러한 멀티 서버에서 타인과 하나의 부족을 일굴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불안정섬은 여전히 존재하고 그걸 통해 자원을 얻는 것은 그대로 두고요.


사유지를 얻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이걸 훨씬 어렵게 만들어야 했고요. 그래야 사유지를 늘려야 한다(=발전에 대한 게임성)는 비전을 주고 더 많은 노력과 활동을 발생시킬 수 있고, 실제로 늘리면서 성취감 등을 느낄 수 있죠. 또 섬 장터 같은 기능은 없애거나 최소화 해야 했습니다. 섬 장터에 대한 문제도 꽤 있죠.


싱글 플레이라면 여기의 요소 몇개를 도입한 채 마인크래프트와 비슷한 포맷으로 가는 게 나을 겁니다. 거기에 듀랑고만의 특색과 시스템을 설계해서 넣었다면 진짜 갓겜 하나 만들어졌겠죠. 가령 펫 같은 걸 전투 때의 고기방패나 짐꾼으로 쓰는데, 이걸 통해 격투나 경주 같은 스포츠를 즐길 수도 있고 아예 건설이나 농사에 쓸 수도 있으며, 일종의 군대나 사냥부대 같은 걸 만드는 등 RTS적 요소를 적용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물론 이런 펫에 대한 건 멀티에서도 적용해야겠죠. 군대 같은 RTS적 요소는 좀 제한해서. 물론 싱글에선 좀 풀고..


더불어 싱글이니까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둘 수도 있겠죠. 림월드에서처럼 조난자 같은 이들이 어디에서 발생하거나 발견되어 노예나 일꾼 비슷한 것으로 쓸 수도 있고, 그런 구조해준 인간 조난자들끼리 자식을 낳아서 아예 마을이나 왕국까지 발전시킬 수 있는 비범한 확장성과 발전성을 구조적으로 설계했다면, 물론 MMORPG라기 보단 생존 시뮬레이션에 더 가까워지긴 하겠다만, 말할 것도 없는 샌드박스 게임사에 큰 획을 그어 놓는 갓겜으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듀랑고는 개발 기간에 비해 그러한 볼륨과 게임성을 갖추지 못했고,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실망하고 비판하는 것이죠. 솔직히 많은 이들의 기대에 비해 실망스럽고 아쉬운 게임입니다. 고작 이렇게 밖에 못 만들었냐. 라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을 정도로요. 괜히 라스트 데이 온 어스 하다 듀랑고 해보고 다시 LDOE로 돌아가는 게 아닌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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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본인이 항상 맞는 말을 한다곤 생각하지 않지만, 이 블로그에서 쓴 글에서 제대로된 '비판'을 시도한 이는 진짜 거의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제가 글을 장황하게 쓴다는 자각은 있지만, 이는 제가 글을 이해하기 쉽게 쓰고자 함에 따라 글이 쭉쭉 늘어지는 거라서, 그리고 필력이 고수들에 비하면 일천하기 때문에 정확한 용어와 간단한 표현을 사용해서 누구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쓸만한 수준의 능력에 도달하지 못해서 이기도 합니다.


어찌됐든, 비단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지식인들의 글과 그 반응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 있는데, 많은 이들이 맞는 말을 하고 정론직필을 써도 그 글을 받아들이지 않고 비난하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이러한 현상은 그에 대해 비판을 받는 쪽, 혹은 그러한 이념과 사상, 가치관을 공유하는 이의 반응이라는 점과, 특히 주목할 점은 그 글의 어조가 세고 감정적이며, 조롱과 비난의 강도가 셀 수록 발생한다는 거죠.


쉽게 말해서 진중권이 맞는 말을 하지만, 그 강도가 너무 세기 때문에 감정적인 반발이 발생해서 비판 대상이나 그 진영에 속하는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겁니다.



물론 순수 논리의 영역에서 중요한 건 그것이 논리적 정합성을 지녀서 합리적 사실을 지적하고 그것을 근거하거나 증명했느냐입니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선 그런 식으로만 따지지 않게 되는데, 이는 인간이 그리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격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상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논리적 훈련이 잘 이루어지고 감정적 통제를 잘 수행하지 못하는, 훈련된 지성과 정신적 수양이 부족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한 사고를 잘 할 수 없는 것이 그 이유이죠.


어떠한 주장에 있어 그것이 참이냐 아니냐, 그것을 이루는 논리와 합리적, 객관적 근거가 얼마나 잘 구성되어 주장을 뒷받침하느냐가 아니라, 그 주장이 자신의 기분을 얼마나 나쁘게 하느냐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맞는 말을 좆같이 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현상은 단기적으로 서로 진영간의 갈등과 분쟁을 심화시키고 각 진영끼리의 이해와 합의가 이루어질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하며, 이념이나 진영 그 자체에 매몰되게 만들기 때문에 굉장히 비건설적이고 비생산적입니다. 심지어 해악적이기까지 하죠. 개인과 집단을 가리지 않고.



그런 의미에서 고백하건데, 저 또한 그러한 사실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어 '적'으로 여겨지는 집단 따위에게 가멸찬 비난을 던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제 실수이기도 합니다. 이는 (그 종류와 성질과 별개로) 이러한 지성과 지식에 어떠한 재미나 성취를 느끼는, 부끄럽지만 저 같은 사람들 또한 그것을 잘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설사 저보다 뛰어난 사람들이라고 해도 인간이고 감정이 정확히 기능하는 한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죠. 그 한계선은 사람마다 다를 뿐이고요.


그런데 하물며 일반인들, 대중들은 어떻겠습니까? 이러한 지적 훈련이 잘 되지 않은 이들에게 있어서 그들에게 정신적 성숙과 수양이 있다곤 해도, 그러한 감정적인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마음에 안 드는 표현을, 공격적이고 조롱스러운 레토릭으로 전개할 경우 당연히 반발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이 아무리 논리적 정합성이 높고, 그 구조의 짜임새가 훌륭하며, 근거의 배치와 논증 과정이 정확하다고 해도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아무리 맞는 말을 해도 좆같이 쓰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논리와 그 주장의 객관성과 별개로, 그러한 것을 도구로 하여금 상대방, 독자를 공격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과 접붙혀진 글쓴이의 비난과 조롱에도 동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자신에 대한 공격과 조롱을 아무런 반발과 반응 없이 수용할만한 사람들은 없겠죠. 그런 면에서 예수나 부처, 교황 같은 이들은 어마어마한 아다만티움 멘탈이었지 않을까 싶은데, 이런 건 뭐 별로 중요한 건 아니고, 중요한 건 남에게 자신의 주장을 설득하려면 아주 당연하게도, 침착하고 차분한 작문으로, 감정적 반발을 이끌어내지 않고, 충분히 설득력 있을 수 있는 독자 위주의 글을 써야 한다는 겁니다.


가령 제 글의 경우(비단 블로그에서 뿐만 아니고, 게임 등에서 발생하는 분쟁에 있어서도;) 자기 자신이나 나와 같은 관점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심리적, 말초적 쾌감을 주고자 하는 강렬하고 날카로운 표현으로 비난과 조롱을 퍼부었고, 이는 읽는 이로 하여금 반대파에게 설득의 기능을 전혀 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실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사실은 몇년 전부터 꾸준히 알고 있었고, 쓰면서도 아 이건 좀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말했듯, 전 그만큼 감정적 통제가 잘 이루어지는 인격자는 아니었다는 점이죠. 



뭐.. 그런 면에서, 이러한 종류의 모든 글은 타인의 생각을 바꾸거나, 지식을 제공하기 위함인 고로, 그것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선 남들을 설득할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 맞습니다. 토론이나 논쟁, 심지어 정치적 선동(가치중립적인 의미의 사용임.)에 있어서도 반대파의 지지나 설득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그만큼 설득력 있는 주장과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죠.


만약 본인이 정치나 사회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한다면 누군가를, 특히 그것이 거대한 진영과 집단을 이루고 있는 이들에게 비난하고 조롱하면 결코 성공할 수 없고, 되려 그들의 결집과 반발만을 이끌어내게 됩니다. 반대로 그러한 말초적 쾌감이 자기 집단의 결집이나 상대방의 반응을 통한 대립 구도를 만드는 데에 있어서도 전략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수단인 건 맞긴 하지만, 여튼간에 마치 북한이 핵도발을 하면서 양국간의 긴장도를 높히고 집단간의 결집을 이룰 수 있는 것처럼요.


하지만 역시 그런 것은 건설적이지 못하고, 정치적 전략의 수로서 사용되는 바, 더 건설적이고 평화적이며 항구적인 발전을 지향한다면 그러한 글을 쓰는 것은 하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치에 있어서도 정적을 다룰 때의 상책은 겉으로는 웃으면서 뒤로는 상대방의 영향력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고, 하책은 면전에서 공격하며 정적의 지지자를 집결시키고 구체적인 대립구도를 만드는 일이죠. 후자의 경우는 힘의 균형에서 압도적이거나 명분에서 크게 앞설 때나 사용해야할 전략이죠.



뭐, 잡설이 길었는데, 그냥 내용은 이겁니다. 맞는 말을 통해 상대방을 설득시키고자 한다면 좆같이 말하지 말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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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을 의미하는 관점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것이 사람마다 다르게 발생하고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관점은 가치관에 기초합니다. 가치관이 다르다면 사람은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판단하게 되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이견이 발생하게 되고, 이견은 갈등이 되기 쉽죠. 그렇다면 이러한 갈등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가에 대한 탐구에서 관점과 그것의 발생, 형성에 대한 사색은 반드시 거쳐가게 되는 영역이 되죠.


가치관은 서로간의 다른 환경에서 발생합니다. 서로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가치관은 사람마다 다르게 형성되고, 단지 그 환경의 유사성에 따라 그러한 가치관의 유사성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흔히 관점에 대해 이야기할 때, 타인의 관점을 존중하고 이해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말은 일견 맞아보이지만, 단지 덕목으로서의 의미 이상의 원칙이 될 수는 없죠. 가령 무언가를 어그로라고 여기는 사람과, 그것을 그렇지 않게 여기는 사람의 경우 서로간의 관점 차이에서 갈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전자의 사람은 어그로에게 욕과 비난, 배제를 시도할 수 있고, 후자의 사람은 그것을 놔두고 오히려 전자의 사람을 비판, 혹은 비난할 수 있죠. 그렇다면 앞서 말한 덕목처럼 그들의 관점을 모두 존중하고 이해해야 할까요? 당연히 아니죠.



관점이란 사람마다 다른 것이지만, 그것이 나름의 존중을 받을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이 올바르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따라서 존중하고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덕목일 뿐, 원칙이 되긴 어렵습니다. 때로는 존중하려고 하면 할 수는 있지만,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기 따름입니다. 이는 인간이 완벽히 타인과 동조할 수 없는 다른 개체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궁극적 한계죠.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판별해낼 수 있어야만 합니다. 누군가의 관점이 틀렸거나, 적어도 맞지 않다면 그것을 논증하고 증명해내 그것을 거부하든 배척하든 할 수 있으니까요. 모두의 관점이 일정 이상의 가치나 존중성을 가진다면 그것을 다루고 판단하기에 까다롭고 조심스럽겠죠.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것은 논리와 합리성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와 합리성은 사람마다, 집단마다 다르게 여겨질 수 있는데, 이러한 요소는 가치관을 구성하는 것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누군가의 관점을 비판한다는 것은 나아가 그의 가치관을 비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은 실로 이성적이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주장이나 명제에 대해 논리와 합리만으로 판단하지 못합니다. 이는 합리성 하에 이루어질 수 있는 논리적 근거와 합리적 사유를 기반으로 어떠한 사물에 대해 판단하고, 그 판단에 대해 감상을 가지는 것이 아닌, 어떠한 사물에 대해 감상을 가지고 그에 따른 논리를 찾는 쪽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흔히 비논리적 행동으로 보이는 정답을 정해놓고 논리를 찾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것은 누군가의 주장을 보았을 때 나타나는 반응으로 설명하자면, 그 주장이 마음에 든다면 그것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거나 근거할 수 있는 논리를 찾을 것이고,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에 반대되는, 틀렸음을 증명하거나 근거할 수 있는 논리를 찾는 것처럼 말이죠. 


이처럼 감정의 문제는 관점에서 기인하고, 그러한 작용이 논리성과 합리성을 무뎌지게 하거나 반대로 강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논리와 합리성은 사람마다, 집단마다 다르게 여겨질 수 있다는 점은, 그 개인이나 집단이 공유하는 가치관에 따라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되고, 다르게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논리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모두의 관점이 존중 받아야할 것이고,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를 구분할 수 없다면 우리는 무엇이 올바른 관점이고 아닌지를 구별할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에 대한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수학과 수리 논리와 같은 것이 그것인데, 수학과 같은 것은 가치관이나 관점이 지배할 수 없는 순수한 이성과 논리로 돌아가는 독자적인 학문 영역을 스스로 구축하였고, 매우 견고합니다. 따라서 인간 문명에서 절대적 논리(혹은 그렇게 기능할 수 있는 논리)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수학이 될 것이고, 여기에서부터 논리의 근간을 세우면 되는 것입니다.


1+1=2라는 5개의 기호로 이루어진 명제는 참이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한 수 십줄의 증명과정은 그것이 사실임을 인정하게 만들죠. 만약 이러한 수학의 논리성을 부정하려면 그것을 우리는 비논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논리는 마치 생물학과 같아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부정된다면 이후의 모든 것이 부정되겠죠. 최소의 생식세포가 잘못 분열되었다면 암이나 장애를 가질 수 있듯이요.


하지만 이후의 것들은 그러한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수학이 근본적으로 틀렸다면 우리는 컴퓨터를 쓸 수도 없습니다.


어찌됐든, 이러한 논리를 기반으로 우리는 이성과 논리를 발전시켜왔고, 사상과 이념은 그것을 언어의 형태로 정립할 수 있게 되었죠.


그에 따라, 우리는 보편적 정의를 성립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근대적 합리, 인권 등의. 이러한 보편적 정의는 전지구적인 것이고, 어떠한 사회나 개인이 그것을 거부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그러한 근대적 합리와 보편적 정의에 대한 공감을 갖추지 못한 것이지 그들의 행태가 올바르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보편적 정의로 작용하는 논리를 구할 수 있고, 그것을 기반으로 관점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일베와 일반인의 차이를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아니면 나치나 이슬람 극단주의, 일본 극우나 북한 수뇌부를 예시로 들어도 좋죠. 


일베 내에서는 자기들끼리 내부적인 관점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대충 그들 다수는 스스로의 논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베를 비판하는 이유는 그들이 공유하는 가치관이 보편적 정의와 사회질서, 도덕과 윤리라는 관념에 위배되기 때문임을 알고 있습니다.


반대로 일베에서 사회를 비판하는 논리는 그들 스스로 확대재생산 하는 내부 논리와 그것이 구성해낸 가치관에 따라 예의와 도덕, 윤리, 보편적 정의에 동의하지 않고, 오히려 조롱하죠.


하지만 일베의 가치관과 관점은 전지구적으로 보편적인 개념이 아니고, 지향되는 바가 아닙니다. 발전적이지 않고 전근대적이거나 최소한 현대적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베의 관점, 가치관은 틀린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회 다수가 일베를 비판하는 이유는 그것이 옳지 않다. 맞지 않다. 틀렸다. 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앞서 비판한 감정의 작용에 따른 논리구성과 별개로 그것을 객관적으로 입증해낼 수 있기 때문에 사실인 것이고요.



물론, 이러한 기준이 되는 인권 같은 보편적 정의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달라집니다. 중세 시대에는 기독교적 원리와 신앙을 기반으로 하는 원칙으로 사회가 규율되었고, 중국에선 천자를 기준으로 사회를 규율하였으며, 중국과 조선 같은 국가에선 유교적 질서를 기본으로 하여 사회를 규율하였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현대에 와서 전근대적이라 폄하하고 이성적이지 못하다고 하지만, 실상 이성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해가는 것이 사실인 바, 이치에 맞다는 합리는 그 이치가 무엇에 근거를 두고 있느냐에 따라 변화합니다. 일베의 가치관과 이성이 자기들 내의 내부논리에 의존하며 (비단 일베가 아니라도)그 집단 내에서는 합리적일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고, 그보다 넓은 보편적 정의와 같은 이성의 기준에 의해서는 틀린 이유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이성의 기준이 어떻게 변할 지는 몰라도 현재의 기준으로서 이성과 합리, 논리는 관점과 가치관들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만약 이게 어렵거나 잘 되지 않다면 그것이 그만큼 난해하거나, 반대로 그러한 시도를 하는 본인이 그러한 논리적 훈련이 충분히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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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1 - [취미/이야기] - 동아시아 군사적 긴장도 상승에 대한 외교적 단상.

2018/02/20 - [취미/이야기] - 전쟁에 대해 한국인들이 가지는 이상적 망상.

2018/01/03 - [취미/이야기] - 대북정책에 남한이 주도권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

2017/08/09 - [취미/이야기] -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는 이유.

2017/05/25 - [취미/이야기] - 북한은 어째서 핵을 고집하는가. 북핵 딜레마.


기존에 써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로서 북한과의 통일은 결코 평화적일 수 없고, 전쟁과 같은 군사적 방법론 또한 중국에 의해 억지되어왔던 점을 생각해보면, 한국과 미국이 어떠한 정책과 외교를 하게 되든 단기전 평화는 가능해도, 영구적 평화, 혹은 통일 그 자체는 불가능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한국이 통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기존 6자회담에서 일본의 재뿌리기로 러시아와 일본이 빠지며 4자회담으로 변경된 이후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훈견자의 위치를 상실했고, 일본 또한 북한, 한반도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끼어들 권한을 잃게 됐습니다.


따라서 북한과의 통일은 반드시 중국의 협조, 혹은 동의나 최소한 묵인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은 반드시 북한에 개입할 것이고 그 지정학적 이익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이는 수 차례 주장했던 바이며, 중국이 하게될 행보는 크게 3개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한국인들이 흔히 하는 착각과는 다르게, 한반도 통일에 대해 한국은 북한 전역에 대한 통치권을 국제법적으로 분명하게 얻지는 못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북한이 무너진 이후 그 땅을 자동승계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한국만큼 명분과 정당성이 앞서는 국가는 없지만, 그것도 힘 앞에선 글쎄요.


어찌됐든, 이러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깔고 나가자면, 중국은 동맹과 조중군사조약을 근거로 북한인을 보호하거나 지원하기 위해 북한 북부로 진주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북한 북부를 점령하게 될 겁니다. 가급적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동해와 맞닿은 지역까지는 쭉. 이에 대한 중국의 구체적인 이익과 차후의 전략, 선택할 수 있는 협상지는 넘어가도록 하고, 이렇게 북부를 점령할 수 있다는 것.


2.한국, 미국, 러시아, 중국에 의한 분할통치도 있습니다. 기존 중국 정부가 발표한 통일 후 분할통치 방안으로 찾아볼 수 있는 북한에 대한 각국의 지역적 통치권역을 보면, 한국의 입지는 최소화 되어 있고, 러시아는 함경북도를 가져가고, 중국은 자강도, 양강도, 평안북도, 함경남도를 가져가게 됩니다. 1번 가정과 같이 북한 북부를 다수 가져가며 완충지역으로 삼을 수 있게 됩니다.


3.마지막은 최악의 상황인데. 그냥 전쟁입니다. 한반도 전체를 전장으로 중국이 한반도를 침공하고, 미국과의 대리전 양상으로 가는 겁니다. 그럴 경우 한국은 수 많은 인명피해와 시설, 인프라의 박살로 국력이 크게 깍이게 되겠죠. 이후 제2의 신탁통치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그 이전에 아예 분쟁이 한반도를 벗어나게 된다면 핵전쟁까지 갈 수도 있을 겁니다. 매우 위험하고 최악의, 암울한 가정이죠.



하여간,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한국이 북한과 어떤 방식으로든 통일을 하기 위해선 반드시 중국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통일에 대한 중국의 동의가 됐든 묵인이 됐든 중국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보증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는 한 결코 그러한 급변사태를 상상할 수 없고 리스크가 어떻게 튈 지 알 수 없으며,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지죠.



그렇다면 그러한 협조를 어떻게 얻어낼 수 있겠습니까? 이는 외교 전문가와 싱크탤크들이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비전이고 전 그 분야의 전문가도, 수 많은 직원을 데리고 있는 연구소 같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제시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이 주도적으로 만드는 판이 아니라면 그러한 상황은 몇가지 예상할 수 있습니다. 


중국 내부적 문제일 경우는 가능성 낮은 몇가지 사건이 있는데, 1.중국 내부의 대규모 민주화 투쟁. 2.티벳 등지에서 발생하는 내전 사태에 준하는 반중투쟁. 3.중인전쟁. 4.쿠데타. 5.대만과 북한에 대한 거래.


물론 1번 상황은 나름 잘 통제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발생 가능성도 낮고, 오히려 군사적으로 이용할 껀덕지도 있습니다. 2번의 경우는 티벳에게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 외의 지역도. 3번 또한 가능성은 낮은데, 서로의 체급과 위험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앞으로 십 수년 동안은 그럴 가능성이 낮습니다. 중국이 인도보다 크게 앞서서 군사적 우위를 차지하지 않는 한 어렵고, 이는 인도 또한 발전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중국이 그런 우위를 현격한 차이로 차지할 수 있을 거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4번의 경우 또한 군부에 대해 나름 잘 통제되는 것으로 알고 있고, 시진핑의 1인 독재제체가 강화되어 가는 시점에서라면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5번은 역시 말이 안 되는 거죠. 20세기 초반이라면 모를까 45년도 이후에, 그리고 현시점인 21세기에 그런 거래는 불가능합니다. 이는 그러한 거래가 있었다는 걸 다른 미국의 동맹국들이 알게 되기 때문에 미국에 대한 신뢰가 크게 상실하고 미국의 세계패권에 큰 훼손이 발생하게 됩니다. 미국의 안전보장을 믿을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중국 외부적인 가능성은 무엇이 있을까요?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의 찰스 크라우트해머의 경우 동아시아의 역학관계와 각국의 의도를 설명하고 렉스 틸러슨의 제안을 근거로 하여 미국이 중국에게 할 수 있는 압박이 무엇이 있는가를 설명하며 한국에 전술핵 재배치, 일본에 대한 핵무장을 제시했습니다.[각주:1][각주:2]


이는 미국의 보편적인 판단이나 관점은 아니고, 헨리 키신저나 브레진스키의 경우 핵무장에 있어서 한국이 빠질 수 없다는, 일본 단독의 핵무장은 불가하다는 의견을 수 차례 밝힌 적 있기 때문에 틸러슨의 생각대로 일본만 핵무장을 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 또한 존재합니다.


어찌됐든 그러한 핵무장, 핵배치는 중국에게 하여금 북한의 핵무장을 용인해야 하는가라는 전략적 딜레마를 안겨줄 수 있습니다. 한국, 혹은 일본의 핵무장을 보면서 중국으로선 반드시 반발하게 되고 그에 따하 제재를 시도하겠지만, 결국 성공하거나 미국이 아예 주도적으로 나선다면 중국으로선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 재고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바로 남북 통일을 이룩하는 건 아니지만 북핵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남북통일과 북한의 협상력과 위험성, 입지를 크게 줄일 수 있는 전략제안이자, 중국의 동아시아 영향력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뭐.. 사실 이 또한 어렵긴 할 겁니다. 무엇보다 북한과 중국은 서로를 신뢰하지 않고 있고, 중국도 북한을 싫어하듯이, 북한도 중국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 북한에서 중국을 공격하는 메시지의 내부 선동을 실시한 적도 있죠. 요즘엔 어떤지 몰라도, 평양은 자국의 생존과 체체보장을 위해 그 어떤 나라도 신뢰하지 않고, 단지 이용하고 분석해서 전략과 대응방안을 창출할 대상으로만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 십년간 독자 생존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고요. 다르게 말하자면 국력에 비해 그만큼 북한의 외교 실무자들, 외교 싱크탱크는 나름 유능한 편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외교적 전략선택인데, 이에 대해선 아직도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정확한 판단이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알 수 있고 판단해볼법한 행보는, 기존의 친미 일변도 였던 이명박 정권과, 무능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었던 박근혜 정권의 줏대 없는 외교와는 다르게, 문재인 정권은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판단입니다.


이는 노무현 정권과 비슷한 비전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데, 노무현은 햇볕정책을 통해 한국을 북한 문제에 있어서 핵심적인 플레이어 역할을 설정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와 미국이 한국을 상당히 중요하게 대했던 것이고, 이러한 반응은 노무현이 지향했던, 그리고 너무 이상적이라 불가능했던 동북아 균형자론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죠. 본인 스스로에게.


하지만 동북아 균형자론은 불가능한 이론이었고, 이는 실패했습니다. 구조적으로, 국력적으로 그럴 역량이 없었죠. 햇볕정책을 통해 한반도 문제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실제로 성과도 있었으며, 북한에 대해 외교적으로, 군사적으로 얻어낸 이득도 상당히 컸습니다. 실책이라 여겨질만한 사례도 있긴 합니다만, 개성공단의 경우 저 개인적으로 굉장히 훌륭하다못해 북한에 줄 수 있는 치명적인 성과라고도 평가합니다. 이건 뭐 여기서 설명할 주제는 아니니 넘어가고..


하여튼 요는 이겁니다. 한국이 북한과 동북아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주도권을 일정 이상까지만이라도 확보하는 겁니다. 


이런 목적과 비전은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를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친미인 건 맞지만, 친미 일변도인 건 아니고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외교적 입지를 다지고자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드는 수용했지만, 중국에 화해 제스쳐를 꾸준히 보였고, 이러한 태도는 베이징이 문재인 정권은 미국 말만 듣는 친미 일변도의 정권이 아니라는 근거를 얻게 만들었으며, 그 시점에서 한국은 어느 한 쪽에 종속되는 외교를 하는, 그런 세력으로서 기능하지 않을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었죠.


당연히 미국 또한 이를 파악했고, 한국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죠. 한국이 미국에게 등을 돌리면 미국은 동북아 영향력을 상당부분 상실하고, 나아가 태평양 패권이 위험해질 가능성 또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을 달래고 미국과의 동맹이 안겨줄 이익을 부각시키곤 했습니다. 이는 지난 뉴스만 뒤져봐도 알 수 있는데, 무기 거래나 탄두 중량 제한 해제 등의 군사적 입장에서의 특혜를 줬습니다.


이는 미국의 메시지이기도 한데, 한국의 국방력을 길러 대중국 전력으로 만들고, 한국으로서도 중국에 대한 군사적 자신감을 살려주는 것입니다. 즉, 그렇게 강해진 군사력이 향할 방향은 중국이 될 것이고, 중국이 되어라. 라고 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경제와 같은 영역이 아닌 군사 영역에 편향적인 특혜를 줬던 겁니다.



더불어 미국이 방중하게 될 시기에 문재인은 동남아로 순방을 떠나게 됩니다. 이것이 상징하고 시사하는 바는 꽤 큰데, 문재인 정권의 신남방정책에 대한 큰 그림을 알아볼 수 있었죠.[각주:3] 근데 이 부분은 특히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당시, 포면상으로 동남아와 관계 개선과 연대를 강조하는 내용이었습니다만, 외교적인 관점에선 의의가 꽤 있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가령 미국과 중국 정상이 만나는 시점에 동남아로 떠났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 또한 있고, 동남아를 동아시아 역학관계에 주도적인 집단으로 기능할 수 있게 하고자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각주:4]


심지어 이 뿐만 아니라 러시아에 대해서도 접촉을 했는데, 문 대통령은 당시 러시아에게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여달라는, 협상 테이블에 나올 수 있도록 역할을 해달라는 요청을 합니다.[각주:5] 물론 그 이후 러시아가 어땠는지는 뭐.. 잘 아실 거지만, 이러한 견지의 외교적 안목은 저에게 굉장히 놀라운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이건 이전 정권들의 외교적 무능함 때문이라는 점도 크긴 하지만, 어찌됐든 많은 이들이 무시하는 러시아 외교, 러시아의 역할이라는 중요성을 문재인 대통령은 최소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좋은 사설은 주재우 경희대 교수님의 글이 있습니다. [각주:6]


어찌됐든, 단지 그러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과 더불어, 그러한 역할을 하게 될 경우 위의 동남아 행보와 맞춰서 중국과 미국에 의해 움직이는 북한 문제에 대한 판, 구조를 깨고 개편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중국, 러시아, 동남아, 한국이라는 다자간의 구도는 더 많은 변수를 만들어내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에 대한 문제점은 역시 존재하는데, 점차적으로 동남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강화됨에 따라 동남아 연합이 되는 국가들이 중국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 이는 한정적이고 낮은 국가간의 영향력 가지고 있는 한국에게 불리한 문제가 됩니다. 


더불어 러시아는 지금까지의 모습처럼 북핵문제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한국이 러시아를 이 판에 과거와 같은 위치로 끌어들이는 것도 어렵지만, 그렇게 해서 한국이 원하는 판과 구도가 만들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러시아의 적은 중국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전통적으로 미국과의 경쟁 또한 중단된 게 아닙니다. 만약 러시아가 북핵 문제에 대해 한국과 미국과 같은 입장을 가지게 하려면 중국에 대한 반감과 구체적인 견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미국의 입지를 동북아에 더 넓히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어려운 문제인데, 러시아가 태평양 패권을 일부라도 가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자 할 것이고, 중국이 미국의 태평양 패권을 위협하고, 실질적으로 훼손하게 된다면 그러한 변수와 군사적 지형 변화의 상황에서 러시아는 그 틈을 잡아챌 수 있다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물론 중국만 좋을 일 생기고 러시아는 그 두 국가에 의한 태평양 패권 싸움을 보고만 있거나 군사적 위험성이 높아져 간접적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상황을 염두해야할 시기가 올 수 있다는 계산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 역시 확신할 수 없습니다. 동아시아 문제에 있어서 러시아에 대해 판단하기엔 제 정보와 지식이 부족합니다. 단지 큰 관심과 적극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정도만..


그리고, 이 모든 문제에 앞서 공통적으로 가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렉스 틸러슨도 밝힌 바이지만, 미국이 북핵 문제를 국제적 문제로 만들고 싶어 하지만, 정작 국제는 그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북핵의 위험은 국제적(Global)이지만 정작 그 이익은 국제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으로 북한이 핵을 발사할 경우 그 대상은 미국과 한국에 한정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맘 놓고 어그로 끌고 북한정책을 경직시키고 자극시키는 거죠. 전쟁이 났을 때 일본은 손해보다 이익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 역시 이전에 말한 바 있죠.


따라서 문재인 정권의 동남아와 러시아를 북핵문제에 끌어들인다는 큰 그림을 그렸으나, 그들은 북핵 문제에 대해 그리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 그러한 행동으로 얻을 게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외교적 역학관계와 구도는 한국에게 하여금,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착각하고 있듯 북한이 무너지면 그 영토는 한국이 자동 승계한다거나, 어떻게든 통일을 하게 될 것이다. 라는 이상적이고 그 난이도를 완전히 인식하지 못한채 상상하는 것과는 다르게 정말 굉장히 어렵고 국제적으로 난해한 문제임을 인식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더불어 기존의 보수정부는 통일 문제에 대해 제대로된 인식도, 정책도 없었음을 방증하는 바이며,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통일은 대박. 이라는 박근혜 정부의 표현은 그만큼 현실성 없고 천진하기 짝이 없는 유아적 국제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지요.


한반도 통일은 한국과 북한만의 일이 아니고, 중국이 개입하지 않거나 동의 내지는 묵인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상론과는 다릅니다. 지금의 판과 구도가 변화하지 않는한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한국이 가질 수 있는 입지는 한정적이며, 이 구도를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다른 세력을 끌어오거나, 한국과 북한이 서로 대화와 협상을 하며 어떠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다르게 말해서 변수를 발생시킬 수 있는 핵심 세력으로 변화해야만 합니다.


이는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햇볕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했고 성과를 봤던 것처럼, 문재인 정권은 그 당시와 같지는 않지만 대화와 협상이라는 기조를 유지한 채, 더욱 기민하고 은근한 외교를 통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당연히 그러한 구체적인 정책과 외교는 외교 실무자들과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청와대, 싱크탱크의 공조와 현실적인 판단과 실행 능력에 달린 바, 국민들로선 그러한 국가가 처한 현실과 외교적 안목을 통해 건전하게 이해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2&aid=0003205415 [본문으로]
  2. https://www.washingtonpost.com/opinions/global-opinions/north-korea-the-rubicon-is-crossed/2017/07/06/6645766e-6279-11e7-a4f7-af34fc1d9d39_story.html?utm_term=.f45d8b11ee30 [본문으로]
  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1132238015&code=910302 [본문으로]
  4. http://www.mofa.go.kr/www/brd/m_20053/view.do?seq=367422&srchFr=&srchTo=&srchWord=&srchTp=&multi_itm_seq=0&itm_seq_1=0&itm_seq_2=0&company_cd=&company_nm= [본문으로]
  5. http://hankookilbo.com/v/4c03b642213e45178a9c5491a1670c9b [본문으로]
  6.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611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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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며칠간의 뉴스만 모아본 것입니다. 더 중요하고 핵심적인 기사들이 많긴 하지만 그걸 하나하나 다 찾기는 힘들고 무엇보다 귀찮을 거 같아서 그냥 최근의 국제뉴스를 취합한 거죠.


이 소식들을 종합해서 살펴보면 현 동아시아의 국제적 흐름을 알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동아시아의 패권을 둔 국가들끼리 군사적 긴장도가 높아지고 있다. 입니다. 즉, 패권다툼을 군사적인 형태로서 서로를 압박하고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 식으로 하고 있다는 거죠.



이는 기본적으로 아래의 글들을 통해 어느 정도 설명한 바 있습니다.


2018/02/20 - [취미/이야기] - 전쟁에 대해 한국인들이 가지는 이상적 망상.

2017/08/09 - [취미/이야기] -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는 이유.


간추리자면, 중국은 2000년대 중반을 접어들어 그 성장세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거대한 발전을 이룩했고, 그에 따라 중국의 패권을 확대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대일로, AIIB와 같은 정책과 기구를 통해 실현시키려 하고 있고, 러시아의 군사적 압박을 통한 패권 확대와는 다른 방식인 경제적 질서를 통한 패권 확대를 노리는 것이죠.


군사적 압박은 언제나 써먹기 어렵고 부담과 반감도 많지만, 경제적 방식은 그보다 훨씬 부드럽고 반감도 적게 받습니다. 또한 이는 중국 중심의 경제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행보이고, 동시에 미국 질서의 경제권에 대항하는 중국의 거대한 야심이기도 하죠.


그러나 경제적 안정과 질서는 반드시 군사적 능력 하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데, 이는 소말리아 근해의 해적에 의해 무역선 납치, 몸값요구 등의 문제에 대해 군대를 파견하며 안전을 보장하고자 하고, 다른 국가나 집단의 같은 시도에 대해서도 반드시 군사적인 개입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경제적 안정이란 그것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잘 수급하고, 거래하며, 교류를 이룰 수 있느냐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물건을 유통하는데 그게 중간에 강도나 사고에 의해 유실된다면 안정성 없는 거래이기 때문에 교류는 이루어지지 않죠. 무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과의 교역은 굉장히 안전하다는 신뢰를 가질 수 있는 것이고요.


그런 맥락에서 중국의 경제적 발전과 그 안정을 위해선 반드시 군사적 성장이 뒤따라야 하는데, 금이 없다면 화폐 가치를 보장할 수 없듯이, 군사력이 없다면 경제적 안정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사시 해당 국가의 모든 경제적 교류와 영향력을 괴멸시킬 수 있다면 같은 가정을 생각해봐도 말이죠. 할 수 있어도 하기 쉬운 건 아닙니다만.


이는 미국 중심의 경제권에서 벗어나고, 동남아를 위시하여 자국의 경제망을 구축하고자 하는 중국에게 있어서 독자적인 신뢰성과 능력이 있음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중국의 군사적 발전과 투자는 경제적 발전만큼이나 파격적인 것이죠. 뭐.. 실제로 중국 기술과 무기 등의 신뢰성은 별개로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국은 경제적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서 군사적 성장은 반드시 필요하고, 그러한 힘을 외부로 보여줄 필요가 있으며, 동시에 그러한 활동은 자국의 경제적, 패권 확대에 있어서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미국이 원하지 않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요는 경제와 군사입니다. 그에 따라 중국에 대한 경제적 제재도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겸사겸사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요. 아래와 같은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 덕분에 그 제재를 간접적으로 받는 한국이 덤터기를 쓰고 있는 상황이고요.


미 철강업계 "철강수입 제한 조치해달라"…트럼프에 서한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2/02/0200000000AKR20180202074500009.HTML?input=1195m

‘美 철강 관세폭탄’ 韓 포함 日 제외... “中과 수출품목 겹쳐” 분석

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1&cid=996387&iid=2615515&oid=469&aid=0000278841&ptype=052


더불어 맨 위의 링크들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그러한 군사적 긴장도는 실질적 전쟁 위험성을 높히는 요소이기 때문에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군사적 성장을 지원하거나 유도하고 있는 것이고, 사드 배치는 이러한 맥락에서 가장 대표적인 요소입니다. 


최근 몇년새 일본의 군사력 증강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특히 한국 내에서 큰데, 이는 미국이 그것을 용인하고 있기 때문이며, 미국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며, 효과적이기 때문이죠. 일본이라는 강대국의 군사력을 상승시킴에 따라 중국의 패권 확대와 성장을 견제하고 억제하며, 미국의 동아시아에 대한 군사비용 지출을 줄일 수 있고, 무엇보다 유사시 한반도가 박살나거나 잃어버린다 해도 일본이라는 최후의 벽 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데, 현 주일미군은 사실 한반도 유사 사태 때 가장 빨리, 곧바로 움직여야할 후방 지원기지에 가깝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에 대한 부족분은 일본이 스스로 충당해줄 수 있다는 겁니다.


뭐, 한국에겐 별로 좋은 이야기가 아니죠. 그건 곧 한반도 유사사태에 일본이 반드시 개입하려 할 것이라는 것이기도 하고 그게 아니라도 군사력을 확대한 일본의 자신감이 한반도에 대한 더 적극적인 여론전을 개시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에 대해 적절한 반응을 보이고 정확한 대처를 하지 않는다면 그 자신감이 증대된 일본으로선 군사적 활동을 애매한 선상에서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물론 심각한 사태라면 미국이 중재, 개입할 여지는 충분합니다만..



어찌됐든, 중국의 가장 큰 목표는 결국 태평양으로 나가는 겁니다. 미국의 세계패권을 가장 확실하게, 그리고 큰 범위에서 붕괴시킬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태평양 경쟁에서 승리하거나, 최소한 위협이 되는 것이거든요. 


중국 2번째 055형 구축함 진수 임박..."미국 아태 전략우세 위협"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8449380

중국, 전쟁시 미사일 1000기 한일·괌 미군기지에 선제 발사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04&oid=003&aid=0008425961

[종합]미 공군, B-52H 등 장거리폭격기 3종 괌에 동시배치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80117_0000204957&cid=10101

중국, 美괌기지 잠수함동향 본다…초강력 음파탐지기 2곳에 설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9830513

호주, 중국 화웨이의 남태평양 해저케이블 사업에 제동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01&aid=0009780293

중국, 호주 해군 남중국해서 군사훈련 “역내 평화안정 해쳐” 견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8345427

인도양 장악 나선 중국 해상 실크로드에…일본, 예산 늘려 저지 ‘안간힘’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70903010000587

호주 교수들, 중국 유학생들 앞에서 '중국' 발언 잘못했다가 잇달아 수난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23&aid=0003341042

중국이 호주 정치에 개입?…외교갈등 수위 높아져

http://m.news.naver.com/read.nhn?oid=421&aid=0003100008

중국 영향력 확대 놓고 오스트레일리아-중국 연일 난타전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8&aid=0002390324

中 견제 본격 나선 호주, 외국기관 정치 후원 금지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421&aid=0003085573

호주, 중국 염두 스파이 무기징역으로 엄벌 법안 마련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04&oid=003&aid=0008326570


위 링크들은 맨 위 뉴스들 일부와 따로 추합한 것들인데, 이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대륙 내에서의 패권 확대는 어렵고 큰 실익이 없기 때문에 바다 쪽으로 나가려 하는 의도를 명백히 알 수 있죠. 동남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 또한 그것이 하나의 경제권을 만들 수 있음과 동시에 남태평양-인도양을 통해 동쪽과 서쪽 양쪽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쪽으로 간다면 유럽보다는 중동에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고, 중동에서 성공적으로 영향력을 가져간다면 미국은 실패한, 그리고 지금도 발이 빠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러시아와 함께 대체할 것이며, 동시에 아프리카와 터키 반도를 통해 유럽에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교두보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억제하면서 미국의 중동 영향력을 더 크게 줄일  수도 있겠죠. 뭐, 이건 단지 제 예상일 뿐이고 관련 뉴스도 없고 그런 시도조차 못하고 있는 현 시점에선 거의 망상 쯤이라고 봐도 될 겁니다.


하지만 반면, 동쪽으로 간다는 가정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는데, 중국이 호주에 계속 내정간섭에 가까운 관심과 영향력을 투사하고자 하는 의도는 호주를 흔들기 위해서, 더불어 가능하다면 호주를 친중적이게 만들고자 함입니다. 이는 심리적으로 친중인 게 아니라, 중국의 국력에 의해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영향력에 휘둘리는 구도를 만들기 위해서고요. 당연하지만 그 이유는 동남아-호주 등을 넘어 남태평양으로 진출하여 미국의 태평양 패권을 위협하기 위해서입니다.


동남아는 단지 지정학적으로 교두보로 볼 수 있지만, 남태평양에서 호주와 뉴질랜드는 그 패권에 일조하는 독자적인 세력인 동시에, 미국의 우군이기도 하죠. 그런 이유로 호주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겁니다. 스파이 문제도 있긴 하지만 중국이 호주 정치에 개입하고자 한다던가, 호주 교수가 저런 식으로 비난 받는다던가 하는 등의 모든 사건은 호주가 중국의 눈치를 보게 만들고, 그 시도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호주가 중국의 의도에 말려들게 된다면 호주는 중국의 메시지를 무시하기 어려워집니다.


가령, 말을 하자면 이런 건데, 호주 교수가 중국 유학생들에 의해 틀린 말이 아니더라도 압박에 의해 사과를 해야 한다면, 그게 옳든 아니든 그러한 사례가 발생했다는 전례가 생겼다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이를 통해 천천히 그 영향력을 확대하는 거죠. 그런 방식이라고 봐야할 겁니다.


<중국 주변의 세계지도. 대한민국과 일본에 의해 태평양으로의 직선 진출은 불가능하게 되어 있고, 대만에 의해서도, 또한 파푸아 뉴기니와 일본 사이의 괌기지는 필리핀 해를 통한 군사적 진출에도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상 북태평양 전역은 미국의 앞바다이며, 남태평양 또한 호주, 뉴질랜드를 통해 통제하며 미국이 가져가고 있다.>

<그에 따라 중국은 동남아와 호주에 영향력을 투사하며 자국의 질서 아래에 편입, 혹은 확대하고자 싶어하며, 그러한 지정학적 패권 확대는 남태평양으로 우회가 가능하게 된다.>

<더불어 인도양으로 확대하게 된다면 인도에 대한 견제와 더불어 중동으로의 영향력 확대 또한 가능하다.> 



하여간, 중국이 전쟁시 괌기지를 공격한다는 등 태평양 진출에 위험이 될 수 있고 확대를 억제하는 요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알 수 있는 기사들이죠. 중국이 한반도나 일본을 넘어 바로 태평양으로 진출 할 수 없는 이유 또한 한반도, 일본, 괌 기지 같은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억제할 수 있는 결코 약하지 않고 그 영향력 또한 작지 않은 국가 때문이죠. 이는 러시아가 태평양을 가져갈 수 없었고, 가져가고자 하는 의도도 쉽게 보일 수 없었던 이유와도 마찬가집니다. 냉전이라는 시대적 특수성을 고려해봤을때, 그러려고 한다면 미국을 심각히 자극하는 행위라는 위험성도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한반도와 일본이라는 요소 때문에 우회해서 태평양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것이고, 이는 동남아와 호주를 공략하면서 시도하고 있죠. 동남아는 경제적인 확대를 통해 시도하고 있다면, 호주는 그럴 덩치가 아니고 그럴 국력과 미국과의 관계 또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할 수 없는 수입니다. 그래서 스파이나 정치인 후원, 내정간섭과 같은 치졸하고 더러우며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행위를 통해 시도하고 있는 거고요.



<doklam plateau의 위치. 보시다시피 방글라데시로 좁아진 지협적인 지리를 가지고 있고, 거길 끊는다면 인도 동쪽 영토인 아루나찰프라데시가 월경지가 되어버리며 인도양 진출이 가능해진다.>



마찬가지로 인도양을 통한 진출을 노리고도 있는데, 이는 인도에 대한 지난 전쟁 위기와 같은 군사적 위협을 통해서 실천하고도 있죠. 실제로 중국은 국경 지역에 있는 도클람 분지라는 군사적 요충지를 가져가고자 하는 시도를 했고 여기를 가져가게 된다면 인도에 대한 공격이 극히 수월해지고, 아루나찰프라데시 지역을 홀라당 가져갈 수 있게 됩니다. 더불어 62년도엔 군수 지원이 어려워서 포기했었지만, 지금은 방글라데시와 미얀마 등에 영향력을 크게 가지고 인도양까지 접근해 있는 중국 입장에서, 그 지역을 뚝 잘라내버린다면 중국은 그대로 인도양으로 자유로운 접근이 가능하고, 동쪽으로는 남중국해의 패권을 확실하게 접수할 수 있으며, 아까 위에서 말했듯이 중동으로의 확대 또한 가능하게 되며 더 강력한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게 됩니다.


뭐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중동에는 석유가 있죠. 또 그러한 활동의 결과로 중국의 가장 가깝고 위협적인 잠재력 있는 경쟁자이자 잠재적(뭐.. 사실상이지만;) 적국인 인도를 꺽을 수 있으니 어마어마한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 지리적 이점을 가지는 겁니다. 


문제가 있다면 그 인도양에도 미국의 함대가 있다는 거고 인도양까지 진출을 해도 미국의 함대를 뚫어야 한다는 점이죠. 


에.. 그리고 글에서는 어쩌다보니 빼먹게 되었지만, 이러한 맥락에서 남중국해에 대한 근본 없는 깡패짓도 그러한 맥락에서 발생하는 겁니다. 남중국해를 통제하게 된다면 동남아 국가들의 영향력과 세력이 크게 줄어들게 되며, 중국이 원하는 동남아에 대한 경제적, 군사적 복속이 쉬워지고, 그것을 통한 진출이 가능하게 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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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한국인들이 하는 크나큰 오해가 하나 있는데,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하거나 북한이 붕괴하는 시기에 한국은 아무런 피해도 없이 온전할 것이라고 믿는 겁니다.


이런 이상적인 오판은 그 사태에 대한 종류만큼이나 다양한데, 어떤 종류이든 대개 한반도는 큰 문제 없을 것이다. 한국은 빗겨나갈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반대로 한반도가 아예 잿더미가 된다. 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걸 주도하는 국가는 절대 북한이 아닐 겁니다. 그럴 국가가 있다면 그건 중국이죠.



사람들은 흔히 불쾌하고 불편한 것을 상상하려 하지 않습니다. 국가적 자존심이 걸린 것에서는 더더욱 그렇고, 정치적 신념을 건드리는 것에 대해선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한반도 유사 사태시 중국의 역할을 깡그리 무시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죠.


2017/08/09 - [취미/이야기] -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는 이유.


위 글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중국에게 있어서 북한은 싫어도 지원해주고 있어줘야 하는 국가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채 올라오는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에 대한 주도권과 영향력이 증대하지 않기 위해선 북한이라는 어그로꾼이자 완충지대가 반드시 필요하죠. 그런 이유로 석유지원을 해줬던 것이고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국익을 위한 전략적 태도를 그런 식으로 견지했던 것이죠. 


그렇다면 반대로 어떤 상황이든 북한이 무너지게 되는 사태가 벌어졌을 때 중국이 취할 수 있는 최상의 대책, 최고의 시나리오는 무엇인까요? 


크게 두가지가 있습니다. 남북을 가리지 않고 한반도를 선제공격하며 전쟁능력을 파괴한 뒤 빠르게 육군을 진주시키고, 해공군, 해병대를 동원한 재빠른 상륙작전, 그 이후 한반도 전역에 대한 통제와 확보입니다. 그 이후 중국이 직접 관리를 하든 친중정권을 남기든 하겠죠. 미국은 이에 대응하기엔 중국의 움직임이 너무 빠르기 때문에 이미 한반도 전체를 가져간 중국에게서 다시 빼앗기 위해선 상륙작전을 시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기에 난이도가 너무 높고, 자칫하면 핵전쟁이 벌어지기 때문에 겉으로야 어찌됐든 사실상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능력과 실질적인 관계를 암묵적으로 인정한 채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겠죠.


물론 이는 중국이 먼저 선제타격을 벌인다는 것이고, 그러한 사태가 발생하긴 어려울 겁니다. 무엇보다 미국이 있다는 이유 그 자체 때문이고, 미국에게 있어서 한반도는 동아시아 최전선이며, 중국의 패권과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고 억제하는 최중요 동맹이자 지정학적 중요성을 가진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미국은 6.25 때 한국을 가장 빠르게, 가장 많이 지원했고 그 이후로도 꾸준히 중요하게 다뤘습니다.


또 다른 하나의 시나리오는 북한이 완전히 무너지고 남한과 미국에 의한 통일이 완수되기 전에, 전쟁이나 그들의 북진과 동시에 중국군이 남하하면서 북한의 북부 지역(말이 북부지, 최대한 많은 지역을. 특히 동해와 맞닿는 지역까지는 반드시.)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이는 여러가지 명분이 있을 수 있는데, 북한 난민에 의해 중국이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던가, 혹은 조중군사조약에 따라 북한을 지원왔다는 명분이 더 잘 먹히겠죠. 물론 말이 지원이지 사실상 점령하여 완충지대로 삼기 위함입니다. 혹은 협상 조건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요.


중국 입장에선 북한이라는 국가가 사라지고, 주한미군이 북상하는 사태를 반드시 막아야만 합니다. 북한이 무너졌다는 것은 그러한 의미 뿐만 아니라 남한의 발전 리미트가 해제된 것이기도 하며 미국의 이목과 역량을 집중시키는 어그로꾼이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중국에 대한 더 많은 미국의 견제와 압력, 영향력 확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미국에게 있어서 남한이 중요한 이유는 일본이나 대만과는 다르게 대륙에 붙어 있는 국가이며, 그 대륙에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는 창구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중동에서의 이스라엘과 비슷한 포지션이죠. 그런 남한이 영토를 넓히며 역량이 상승하고, 미국 또한 그에 맞게 대륙에 대한 영향력 강화, 역량 집중에 따른 중국에 대한 견제력 강화를 노릴 수 있기 때문에 중국 입장에서 굉장히 껄끄럽고 짜증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중국은 북한을 어떻게든 존치시키거나, 이용해야만 합니다. 북한을 일종의 식민지 비슷한 상태로 만들어 아직 끝나지 않은 사태로 유지시킴과 동시에, 그런 잔존 이북세력을 절멸시키기 위해선 반드시 중국과의 싸움, 혹은 협상을 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만들고, 중국은 그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겠죠. 적어도 중국이 원하는 만큼의 이익, 리스크 관리를 할 수 있는 결과를 내주지 않는 한에는.


물론 그런 상황이 아주 오래될 수는 없을 겁니다만, 어찌됐든 한반도 영토 전역에 대한 클레임과 집착적 완성도를 추구하는 한국 입장에선 굉장히 껄끄럽고 불쾌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적 당위성을 가진 영토를 중국에게 빼앗긴 셈이니까요.


하지만 진짜 문제는 미국 입장에선 충분히 얻을 거 다 얻었고, 사실상 아무런 영향력도, 힘도 없는 잔존 이북세력에게 지속적인 비용을 투자하고 싶지 않을 것이고, 중국과의 더 큰 마찰을 빚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의 뜻이 어찌됐든 미국 입장에선 이대로 끝내고 싶겠죠. 북한을 완전히 가져가면서 중국을 더욱 크게 자극하고 싶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을테고요.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한반도 전역을 한국이 가져가게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한국이 중국과 전쟁을 벌여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물론 이 상황 자체도 상당히 이상적인 겁니다. 만약 중국이 미국과의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하지만 핵전쟁과 확전을 벌이는 걸 원치는 않는다면?


이제 아주 복잡해지고, 한반도가 박살나게 되는 겁니다. 


중국과 미국 입장에서 전쟁은 반드시 한반도로 한정지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글자 그대로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미사일과 폭격기가 오고가고 서로 상륙작전 하려고 할 겁니다. 물론 중국은 실패하고 미국은 성공하겠지만요; 


어찌됐든, 서로 핵보유국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핵전쟁으로 치닫을 가능성이 극히 높기 때문에 어정쩡한 선에서 확전할 순 없고, 그렇기 때문에 핵을 사용하지 않은 채 한반도에 모든 무력분쟁을 한정지어놓고 그 밖으로 확대되지 않게 억제한 채 대리전을 벌여야 합니다. 


당연하지만 현대에 와서 화력의 비약적 발전은 지난 반세기 전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일 것이고, 북한 단독과 전쟁을 벌이는 것이라면 서울 근처까지만 위험하고 그 위로는 쭉 올라가 한달 정도면 북한 전역을 정리하겠지만, 중국이 적극적으로 전쟁을 수행하게 되는 사태라면 한반도 전역이 전장이 되면서 한반도 전역, 대부분 주요 도시와 지점은 박살날 것입니다.


중국은 당장 탄도탄을 쏘아 서울, 청와대, 국방부, 각 지역의 군부대, 레이다 기지, 해군기지, 공군기지, 항구, 이륙장 등을 공격하게 될 것이고, 탄도 미사일의 위력과 선제공격의 위험성, 또한 --사드를 도입했음에도 확신할 수 없는--탄도 미사일에 대한 방위능력은 한국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게 될 것이고, 실질적으로는 전쟁 수행능력이나 지휘, 명령체계의 붕괴 내지는 혼란을 일으킬 것입니다.[각주:1][각주:2]


그 사이에 중국군은 최대한 빨리 한반도에 상륙하려 할 것이고..


어찌됐든, 한반도가 전장이 된다면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이 참여한 전쟁이 될 겁니다. 그리고 한반도 전역이 개박살이 나겠죠. 이걸 어쩔 수 없습니다. 한국은 그걸 어떻게 하기엔 외교적, 군사적 역량이 적고, 지정학적 가치는 너무나 높습니다. 


근데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가능성이 하나 있는데, 일본이 반드시 개입하려고 할 것이며 이는 상당히 긍정적이라는 겁니다. 중국과의 전쟁은 절대 쉬운 것이 아니고, 한반도 밖으로 확전시키지 않으려는 의도는 일본 본토가 공격 받을 가능성이 낮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아주 잘 싸워주며 중국의 어그로를 끌어주냐. 이건 또 아닐 것인데, 기본적으로 일본의 군대 인력풀은 적고 경험도 적으며 자국에 대한 방위 능력은 뛰어나지만 타국으로 나가서 전쟁을 수행하는, 공격능력은 비약한 편입니다.


그걸 알기 때문에 일본은 결코 앞에 나서지 않고 후방 근무, 소해 임무만 맡으려 꿀 빨려고 할 것이고요. 그럼 뭐가 문제가 되느냐면, 이 또한 크게 두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가능하다면 한국,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구체적 영향력을 가지고 그것을 확대, 유지시키는 것이 목적이고, 이게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한반도, 혹은 범위를 넓혀서 타국에 대한 군대 파견이라는 전례를 하나 만드는 겁니다.


지금도 몇년 동안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자위대의 군대화 작업과 빈약한 공격 능력에 대한 상승을 위해 북한 미사일 기지 타격을 명분으로 무기 도입을 검토[각주:3] 하기도 하고, 이리저리 군사력을 높히기 위해 많은 돈을 투자[각주:4] 하는 것도 있죠.



가장 긍정적인 결과가 중국이 북한 북부 등 일부 영토를 가져가는 것이고, 가장 나쁜 결과는 한반도 전역이 전쟁터가 된느 겁니다. 전자는 한미가 북한을 선제공격 하는 사태일 때 발생할 수 있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 중국이 먼저 공격하는 경우가 될 가능성이 높죠. 아닐 가능성도 높지만.



어찌돼었든, 한반도에서 전쟁이 난다 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이 어떻게 움직일지라는 것입니다. 중국이 적극적으로 전쟁을 수행하고자 한다면 한반도는 불바다가 되는 것이고, 이는 피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북한, 전쟁에 대해 한국인이 가지는 이상적이다못해 망상적인 상상은 중국의 역할을 무시하고, 중국의 존재를 소거하면서, 그들이 자국의 이익과 패권을 위해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오판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중국이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어떻게 될 지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고, 이는 상당히 불쾌한 상상이죠.


그런 이유로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항상 한국은 안전할 것이다. 이익을 볼 것이다. 결국 북한과 어떤 방식이든 통일하게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로 한반도 평화와 북한과의 대화, 협상이 중요한 것이죠.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 모두 전쟁의 위험성과 한반도 불바다의 위기를 가지고 있는 바, 통일을 못하더라도 최대한 오래 평화적인 상황을 유지시키고 한국의 역량과 힘을 기르며, 가능하다면 북한과 대화와 협상을 통해 군사적 긴장성과 전쟁 위험성을 낮출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과 박근혜를 대표로 하는 극우보수의 대북정책은 그 기조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심대히 위험하고, 국익을 등한시한 이념적 쫀심 싸움에 가깝다고 평가합니다. 까놓고 말해서 아무런 대화도, 협상도 하지 않고 강경한 모습을 보이며 무조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라는 기조를 통해 한국이 얻을 건 전혀 없습니다. 변수를 발생시키려면 대화와 협상을 해야만 하죠. 그에 대한 구체적인 이익과 신뢰 사이의 줄다리기는 그 정권의 대통령과 실무자, 외교관들의 역량 문제이지만요.

  1.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80201_0000220278 [본문으로]
  2.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70802_0000057540 [본문으로]
  3. http://www.yonhapnewstv.co.kr/MYH20170805002200038/ [본문으로]
  4. http://news.joins.com/article/1935746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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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경, 北응원단 ‘김일성 가면’ 논란에 “北에 사과 요구해야”

http://sports.khan.co.kr/olympic/2018/pg_view.html?art_id=201802110853003&sec_id=530601

통일부 "北응원단 '김일성 가면' 보도, 잘못된 추정"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4007413
때 아닌 '김일성 가면' 소동, 보도한 기자 "판단 실수" 인정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_w.aspx?CNTN_CD=A0002404196
국민의당 “김일성 가면 응원, 대단히 부적절한 응원 방법”
http://www.polinews.co.kr/news/article.html?no=346712
한국당 "단일팀 경기에 '김일성' 가면 등장..北에 사과 요구해야"
http://v.media.daum.net/v/20180211134111631
하태경, 북한 응원단 가면에 대해 “김일성이 확실하다” 거듭 주장
http://sports.khan.co.kr/bizlife/sk_index.html?art_id=201802131013003&sec_id=560901 
하태경 “‘가면’ 김일성 맞다… ‘눈 구멍’ 김여정이 지시했을 것”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2127822&code=61111111&cp=du
북한 응원단원에 '김일성 가면' 직접 물었더니... "뭐긴 뭐냐, 일반 우리 고운 아이"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81&v=timA6N4fgbs


정권이 바뀐 뒤, 사회를 정의롭게 하고자 하는 문재인 정권의 행보와 국가 정상화 작업과 동시에 자신들의 불의한 이권과 부정한 이익을 얻지 못하게 된 이들이 손에 손잡고 문재인 정권을 꾸준히 공격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권 때문만은 아니고, 정치적 관계에 따른 싸움이나 이념다툼에 의한 것이 대체적인 양상이긴 합니다만, 이들이 좌우, 진보 보수 안 가리고 문재인 정권에 대한 흑색선전과 음해와 선동은 도가 지나치고 자신들의 의도를 가리려고도 하지 않고 있죠.


그런 상황 속에서 정권 망하라고 고사라도 지낼 법한 이들의 정치공작 선동질의 일면을 민낯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이번 김일성 가면 선동질이 아닌가 싶습니다. 


문재인 정권의 발목을 잡고 어떻게든 지지율을 끌어내리려 죽어라 고생하며 왜곡을 기본으로 하며 선동하는 이들이 이번에도 잘 걸렸다 하면서 물어 던진 게 김일성 가면인데,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천박하고 안쓰러운 선동질이 넘어가서는 안 되죠.



기본적으로, 우리가 북한과 북한의 독재자에 대해 이북 주민들이 대하는 태도와 그 위험성에 대해 잘 알고 있듯이, 그것이 설령 과장된 공포심과 선입견, 편견에 기인한 것이라도 결코 그 사진이나 그림, 심지어 이름마저도 함부로 부르거나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김씨 가문의 이름으로 욕을 하거나 그 이름을 조롱하거나 혹은 그들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이나 사진을 훼손하면 분명하게 잡혀가서 처벌을 받든 수용소로 끌려가든 한다는 거죠.


그 오토 웜비어 사건에서도 사건의 발달이 되었던 체제 선전물을 절도하려고 했다. 훼손했다는 것이 이유였는데, 심지어 외국인에게도 이러한 혐의를 거는 마당에 그보다 더 한 통제와 억압을 받으며 김씨 일가에 대한 철저한 세뇌와 선동을 하고자 하는 북한에게서 그러한 김씨 일가, 그것도 북한을 건국한 김일성의 얼굴을 함부로, 심지어 눈구멍을 뚫는 극심한 훼손을 하면서까지 사용하게 했을 거 같습니까?


더불어 아예 땅바닥에 떨어뜨리는 사진도 있을 정도인데,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들은 돌아가서 총살 당하거나 수용소에 갇히거나 할 중죄를 저지른 셈입니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김일성 가면일 것이다. 하는 것은 대가리 속이 적화되어 모든 것이 북한과 김씨 일가와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사상오염의 증상, 다르게 말하자면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과 같은 겁니다.


물론 그런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이번 경우에 있어서는 그냥 문재인 정권을 공격하고 올림픽 망하고 정권도 같이 망하길 바라는 반국가적 사상을 가진 불건전한 세력의 악질 선동짓에 불과하겠죠. 그놈들은 그러한 의도를 숨기거나 교묘히 꾸밀 생각도 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원색적으로 드러내며 공격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권과 문재인이라는 인간이 그만큼 대화와 타협 등 공정하고 올바른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인데, 지난 9년 동안 보복을 받을까 무서워서 쉽게 못 건드리던 놈들이 지 세상 만났다는 듯 우습게 알고 막나가는 겁니다. 올바른 교권과 교사-학생간의 관계를 만들기 위해 체벌방지를 규칙으로 제정하여 시행했지만 그에 대해 막나가며 교사를 무시하는 놈들이 있다고 비판을 받았던 적이 있죠.


문재인 정권은 국민과 국가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직위와 직급, 직업과 신분을 가리지 않고 올바른 관계와 권력구조를 만들기 위해 올바른 태도과 정의로운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만약 문재인이 보수 쪽 인물들처럼 막나가고 법을 우습게 알며 강압적 통제를 위해 부정한 방법, 심지어 불법적 방법을 사용해라면서 노골적으로 견제자들을 공격하고 보복했다면 그들이 그렇게 배짱을 부렸을까요? 아가리 닥치고 쫄아댔겠죠.


야당이 욕을 먹는 건 걍 걔네가 원래 병신이라서 그런 거라고, 정치인이라 병신일 것이란 이유로 그럴 수 있다 칩니다. 하지만 기자들이 욕을 먹는 건 그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위선적이기 때문이죠. 그냥 병신보다 위선적인 병신이 더 개새끼가 되는 이유는 그들이 타인을 기만하는 작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관계를 원한다면 올바른 태도와 방식으로 정권에 화답해야 합니다. 문재인과 문재인 정권이 조금이라도 덜 정의롭고, 정치적 냉혹감을 지녔다면 합법적이고 정당한 방식으로 그들에게 제재와 견제, 보복을 했을 겁니다. 솔직히, 정치라는 건. 그리고 정치적 방식이라는 건 그러한 행동 또한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김대중이 천상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그가 정의로움을 지향했지만 냉혹해야할 때는 한 없이 냉혹해질 수 있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고 모든 이들이 지지할 수는 없는 것이며, 모든 이들이 만족할만한 결과를 내놓기 못합니다. 그렇다면 이념에 따라, 사상에 따라, 가치관에 따라 가장 좋은 방법을, 혹은 덜 나쁜 방법을 시행해야겠죠.


문재인이 약하다는 부분은 이런 부분입니다. 국민들에게 냉혹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그게 내부의 적인 국민들일지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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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작품에 대한 내용누설이 있습니다. 

김형준 작가의 일곱 번째 기사라는 소설과 알바트로스, 백룡공작 팬드래건 등 다른 여러 근대, 중세적 배경의 작품에 대해서 쓴 작품을 보면서 느낀 것은, 이 작가는 확실히 중세라는 배경에 대해, 그리고 근대라는 배경에 대해 역사 공부만큼은 다른 양판소 작가들이나 어중이 떠중이들에 비하면 확실히 탄탄한 편이구나 하는 점입니다.


저도 나름 한때 역덕후를 자칭했고, 지금도 남들보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나 상식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그런 지식을 갖춘 제가 보기에도 상당히 설득력 있고 개연성 있는 전개를 이끌어나가죠.


더욱이 김형준 작가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그래도 판타지 소설이라고 느끼는 부분은 마법이나 다른 판타지적 요소가 아니라 한 인간 개인이 역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기며 세계를 바꾸고 변혁시키는 하나의 신화적 행보입니다.



월광의 알바트로스에서 특히 강하게 드러나는 바이지만, 본 리뷰에서 대상하는 일곱 번째 기사에서는 한지운이라는 20대 예비군이 차원이동 후 겪는 일, 행보, 안배는 확실히 신화적인 면이 있죠. 


또, 개인적으로 다른 중고딩 수준에서 지식이 더 늘어나지 않고서 판타지니 중세적 배경이니 써갈기고 이세계로 이동한 주인공이 깽판을 치는, 한마디로 이고깽질이나 하는 잡스럽고 꼴사나운 전개가 아니라, 어느 정도 현실적인 면모를 가지고 작품을 시작했다는 점이 특기할만한 점인데, 현대인은 천재가 아니고 현대인이 중세, 고대로 간다고 해서 그 시대의 최고급 지성이 될 수는 없습니다.


뭐 이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은 진짜 엄청나게 많지만, 현대인이 공교육을 통해 배우고 얻어낸 지식은 가공된 지식이고, 까놓고 말해서 그 자체로는 어디 써먹을 곳 없는 비실용적 지식입니다. 중고딩 애들이 중세로 간다고 해봐야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잘 다루고 수능 공부 열심히 해봐야 금속을 주조하는 법도 모르고 가죽을 다루는 법도, 칼을 다루거나 말을 타거나 활을 쏘거나 짐승을 해체, 발골하거나 그걸 제대로 조리해내거나 하는 법 아무 것도 모르고, 그 이상으로 그 당시의 시대적 질서를 인식하거나 인지한 경우는 더더욱 없죠.


하지만 일곱 번째 기사에서 작가는 이러한 현실적 불가능성에 대해 나름 고심한 것이 보이고, 그 시대적 배경에서 나타나는 질서를 이용해 잘 이빨을 까면서 살아 남습니다. 


현대인이 가지는 현대적 지식은 중세와 같은 시기엔 그리 잘 사용할 수 없는 비실용적이라는 면 때문에 주인공인 한지운, 한 데 지운은 그러한 기술, 실용적 지식을 이용해 살아남는 게 아니라, 그 시기에도 먹힐 수 있는 비실용적 지식인 문화를 이용해 살아남고 명성을 얻게 되죠.


바로 시라는 요소인데, 중세에 시 따위로 허세부리려는 놈들이 적지 않기도 했고, 그러한 문학, 시라는 요소가 나름 고평가 받기도 한다는 건 사실이죠. 칼밥먹던 놈들이 이제 칼질 안 하려니 그런 노는 문화가 발달하게 되고 그 중 하나가 시인데, 고상하다는 귀족들이, 또는 귀족화되는 기사들이 그런 거에 뻑가던 점에서 착안하여 근대, 현대에 가까워져서야 등장하는 명시를 모아놓은 시집으로 명성을 얻습니다.


또한 초반부의 이웃 영지와의 결투는 정치적인 관계도 얽혀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세의 명예라는 가치를 나름 잘 표현해냈기도 하고요. 또한 영지를 발전시키는 영지물적 전개와 전투씬, 행정에 대한 전개는 상당히 출중하기도 하고요. 그만큼 중세라는 시기에 대한 역사적 지식과 통찰이 없다면 제대로 묘사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작가가 중세라는 배경에 대한 이해가 높은 편입니다. 이 부분은 일곱 번째 기사보다는 백룡공작 팬드래건에서 더더욱 드러나는 점이죠.


작가가 작품의 개연성을 위해 열심히 고민했고 잘 설명해냈다라고 여겨지는 부분은 문화와 언어라는 점인데, 작품의 근간이 되는 요소인 차원이동이라는 점을 이용해 어째서 언어가 비슷하고 문화나 종교가 비슷할 수 있느냐를 아주 잘 설명해냅니다.


지구도 시대에 따라 같은 영어라도 다른 언어 수준으로 차이가 나고 이는 전세계 모든 언어가 다 그런데, 차원이 다른 세계의 언어와 문화가 비슷하다는 건 말이 되지 않죠. 그러나 이는 기존에 왔던 이세계의 기사들이라는 설정으로 개연성을 맞추고 작품적 근간의 요소와 흥미로운 설정으로 만들어 사용합니다. 상당히 짜임새 있는 면면이죠.



이고깽 작품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점은 이고깽이라는 용어에서 나타나듯 이세계로 이동한 고딩이 깽판을 치면서 노는 꼬라지 그 자체인데, 흔히 일본산 이고깽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쓸만한 지식은 하나도 없는 잡놈이 이세계 간다고 해서 뭐 잘나갈 이유가 있겠냐 싶은 바로 그런 점입니다.


까놓고 말해서, 논리와, 특히 합리라는 건 근대에 와서나 발명되는 겁니다. 그 이전 시대에 합리성이 없었다는 건 아니지만, 그러한 합리는 그 시대의 이치에 기준된 것입니다. 가령 중세의 합리란 중세의 신학, 종교관 그 자체에 기반되어 있었죠. 현대적 합리와는 전혀 다릅니다.


논리라는 것도,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한 인간은 근대가 됐든 현대가 됐든 논리적 사고가 잘 안 됩니다. 논리라는 것도 인간 본연의 본능 같은 지성이 아니라, 그러한 논리적 사고를 훈련시켜부는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는 능력이고 성장할 수 있는 겁니다. 근데 중세인들, 그것도 어느 정도 교육 받은 귀족이나 기사도 아닌 일반 평민이나 일개 용병 수준에서 그러한 논리와 합리성을 가진다는 거 자체가 역사에 대해 굉장히 무지한 서술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귀족과 평민의 차이를 어느 정도 잘 묘사해내고 있고 그러한 논리력과 합리성을 로젤리아가 갖춘 것은 수도의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건 올바른 설정입니다. 


마찬가지로 한지운이 이세계로 와서 쉽게 인정 받을 수도 없고 믿음을 받을 수도 없으며 중점적인 역할을 하며 무언가를(주로 발전을) 진두지휘하며, 흔히 말하는 남의 나와바리 접수해먹고 주변 사람들이 무조건 믿고 따르는 식의 쌈마이식 전개와는 다르게 조심스럽고 계획적이며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주장을 통해 귀족이라 인정을 받고, 특히 로렌스와의 대담과 로젤리아와의 대담에서 나타난 정치, 종교에 대한 식견과 에드가 앨런 포의 명시에 대한 사기극 덕분에 뛰어난 인재라 인정 받게 되고 이러한 점은 수도와 왕국 전체로 퍼지게 되죠.


더불어 그 본인이 무언가를 진두지휘하는 건 나중에, 제한적으로 나오고 그 이전까진 헬포드, 로딕과 같은 이에게 굴려지며 훈련 받는 것은 그러한 인정 받고 그 집단에 녹아들 수 있는 요소로서 기능하기도 하며, 이후 발생하는 자기 생각과 계획되로 되지 않는 위기인 이웃 영지인 엥겔만 자작가와의 결투 같은 요소 등 이고깽 치고는 굉장히 겸손하고 계획적이며 개연성 있는 전개를 발생시키는 요소로서 크게 인정해야할 부분입니다.



웨이크필드 영지에서의 기사시합, 포를란의 성을 받는 점, 볼튼과의 인연, 루시엘과의 만남 등 작품 전체적으로 큰 줄기를 이루는 요소들이 등장한 챕터에서는 작품의 짜임새가 처음부터 잘 짜여져 있다는 평가를 줄 수 있고, 압실리언과의 영지전은 초반 전투씬과 프레드릭 영지와 그 기사들이 빠르게 명성을 얻고 정치적, 종교적 정당성을 얻으며 발전할 수 있는 요소가 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요. 특히 제대로된 전투씬이라는 점에서도 굉장히 특기할만한데 어줍잖게 머리속으로 헛발질 해대며 있어 보이는 전투씬을 그리고자 하는 양판소 작가들과는 다르게 중세라는, 역사라는 것을 공부한 이 답게 전쟁이나 전술에 대한 이해도가 얼핏 엿보이는데, 흔해 빠진 신박한 기책이니 개멍청한 적군이니 하는 클리셰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그러한 기책이나 멍청한 적군이라는 점에 대해서 정당한 개연성을 부여하고, 무엇보다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병사들의 훈련도와 뛰어난 지휘관의 요소를 분명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정직하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고요.


이후에도 수도로 가서 생활하고 교수 역할을 하는 것도 상당히 재미가 있고 흥미로운 면면들이 많은데, 중세의 봉건적 질서와 교육방식, 정치에 대한 묘사가 꽤 뛰어나다는 점입니다. 특히 기억이 남는 막스 베버를 따오며 강의하는 부분은 독자가 보기에도 살당히 훌륭했으며 소설과 무관하게 그러한 개념과 철학에 대해서도 굉장히 잘 설명했다고 평가 할 수 있다고 보고요. 이 부분만큼은 소설과는 별개로 다른 이들이 철학을 공부하기에 자극이 될 수 있는 적절한 겉핥기로 써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더불어 이 강의 부분은 작가가 한지운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지적 욕구를 발산하고 시대를 바꾸고자 하는 욕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역덕후라는 한번쯤 해봤을 더 나은 세상으로의 if와 마찬가지로, 작가는 한지운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일곱 번째 기사라는 소설 속 배경을 대상으로 그러한 활동을 하는 것이지요.


중세에서 근대로,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역사적 발전상 속에서 발생하는 수 많은 불의와 사건, 인류를 비탄과 절망으로 이끌고 피를 통해 발전해야했던 것을 더 나은 사상과 가치관으로서 교정할 수 있는 기회란 흔치 않았고, 작가는 한지운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그러한 것을 소설에서 실현시키는 것입니다.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그리고 그보다 더 이전에 압실리언에서, 지스카드와의 대담에서처럼 자신이 이 세계에 와서 어떻게 해야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충분히 고민하고 마음을 먹은 것처럼, 자신이 살아온 역사와는 다른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가 그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할 수 있는가를 고찰하며 나온 것이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개념을 가져와 설명한 것입니다.


한 포를란 데 지운의 말처럼, 자신의 이상을 강요할 수 없으며, 아무 책임을 질 수 없는 행위를 할 수 없고, 반대로 자신이 영향을 준 것에 대해선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죠. 자신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목적으로요. 그렇기 때문에 그 강의에서 한 포를란 데 지운은 학생들에게 막스 베버와 문학이라는 개념을 끌어와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개념을 설명하고, 갈림길과 표지판이라는 요소로 그것을 구체화시켜주죠. 그들로 하여금 더 정의롭고 더 현명한 미래를 만들라는 의도로 말입니다.


이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요소이고, 한지운이라는 개인이 이세계로 건너와 하는 가장 중점적이고 그 세계에서의 인생을 바쳐가며 이루는 가장 훌륭한 행동이기도 합니다. 지운의 안배가 있었기 때문에 훗날 알바스토스 시대까지 큰 문제 없이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체제가 변화할 수 있었고, 사실 그 이상으로 알바트로스 시대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결과를 낳죠. 뭐, 그 이전에 맥시밀리언과 만나는 게 어느 의미론 더 컸다면 컸다고 할 수 있는 거지만..



하여간, 그렇기 때문에 한 포를란 지스카드 데 지운은 정치적, 종교적인 이유와 더불어 사랑하는 여인과 제대로 만나지도 못하고 수 년간 떨어져 지내고, 대부분의 소중한 동료들과도 떨어져 지내며 동방으로 떠나게 됩니다. 그곳에서 발생할, 현실에서의 십자군 전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온갖 불의와 절망, 죽음과 광기를 막기 위해서 말입니다. 십자군이 근 200년간 이루어진 지리하고 깊은 갈등을 만들어내는 사건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한지운의 행보와 목표는 위대하다고 해도 될 법합니다.


수도와 베넨시아 등에서 겪고 갈고 닦은 정치능력(사실 이 부분이 가장 이고깽스럽다고 봅니다만 작품적으로 용납 가능하죠.)과 전투 능력을 통해 동방에서 나름 세력을 만들고 그보다 더 거대한 역할을 해내게 됩니다. 마야 유스란은 뭐 알폰소랑 이어지니 뭐 별로 중요한 거 아니고, 진짜 중요한 선 제르 유스란이라는 인물인데, 그는 정말 시대의 거인이라는 말이 맞지 않을까 싶은 인물 중 하나죠. 정치적 식견도, 개인의 인격도, 군사 전문가, 지휘관으로서도 훌륭한 인물입니다. 서대륙인들도 제르 유스란은 어려워할 정도로요.


뭐 그런 인물이 어디에든 있는 거야 이상한 건 아니고요. 다만 진짜 중요한 점은 그러한 인물이 훗날 제롬을 데리고 여행을 떠나게 되는 한지운과의 대담을 통해 새로운 체제를 구상하고 구축하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정확히는 구상은 지운이 하고 구축을 제르가 하게 되죠. 정말 아쉬운 점은 그것도 그렇지만 훗날 대부분의 역사적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체제와 시대를 만드는 거국적 구상을 한지운이 했는데, 그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너무 심한 저평가를 받는다는 점입니다. 뭐, 배아픈 점이지만 현실적이라면 현실적이죠. 너무 비현실적으로 신화적이니까요.



이외에도 특기할만한 캐릭터가 있다면 역시 볼튼 백작인데, 어느 정도 의도적인 악역의 역할을 맡게 했다는 점에서 작위적이면이 약간 느껴지지만서도, 작품의 맥락상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개연성을 잘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그러한 평가를 일견 무색케하는 면이 있는 캐릭터입니다.


캐릭터 자체는 귀족으로서의 선민사상과 엘리트주의를 가진, 중세적 초고급 엘리트적인 면모를 가진 인물인데, 이는 한지운과 대비되는 캐릭터성이기도 하죠. 굉장한 정치적 능력을 지닌 인물이기 때문에 진짜 적이 되기 전까진 서로 웃으면서 자기 집에서 머물게 하기도 하고(사실 이건 루시엘의 충고와 본인의 판단 때문이긴 합니다만.), 아예 그 제르 유스란마저도 인정하는 거물이기도 하죠.


하지만 그가 너무 찌질하게 되어버렸는데, 솔직히 저는 그런 게일 볼튼이 좀 불쌍하다는 생각마저도 듭니다. 루시엘과의 계약을 통해 가문에 머무르게 했고 그러한 루시엘을 사랑했던 역대 볼튼과 마찬가지로, 게일 볼튼 또한 루시엘을 사랑하게 됩니다. 물론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내주고 싶지 않고, 그런 여자가 다른 남자를 좋아하고 관심을 보이는 듯한 것을 보는 건 그 자체로 고통스럽죠.


자신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고, 해줄 수 있지만 당연히 그것을 원하지 않는 루시엘이고 마음조차 없으며 함부로 그럴 수도 없다곤 해도 볼튼은 루시엘을 그만큼 사랑하고 마음 속 깊은 곳에 소중한 것으로 두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운에게 관심을 보이는 루시엘을 보면서 가슴 아프고 그만큼 커다란 질투를 가질 수 밖에 없게 된 것이죠.


그런 이유로 볼튼은 괴물이 되어 버렸고, 어떻게든 공격하고 끌어내리고 박살내고자 했으나 그러한 모든 시도는 결국 실패하게 되었으며, 아예 동방에 건너가며 망가질대로 망가지게 되면서도 끝까지 지운에게 집착하며 그를 죽이고 파멸시키려고 하죠. 뛰어난 통찰과 무서운 흉계를 꾸몄으나, 결국 죽은 것은 지운이 아닌 알폰소. 이 부분이 가장 슬픈 장면인데, 굳이 비교하자면 은하영웅전설에서 키르히가 죽었을 때와 같은 상실감이 느껴지게 되죠.


물론 캐릭터의 성격은 정반대이고 키르히가 독자들에게 다가오는 중요성과 자리감과는 완전히 또 다르지만, 상실감과 슬픔이 주는 크기는 대충 맞먹지 않나 싶습니다. 초반부터 지운과 함께하며 거의 형제와 같은 수준으로 교분을 나누던 뛰어난 환상기사이자 분위기 메이커가 그렇게 희생하여 죽었다는 것, 프레드릭 영지에서 시작했으며 함께 했던 초기 멤버의 죽음이라는 점은 정말이지..


그 탓에 지운과 헬포드. 특히 지운의 상실감과 절망은 거대했고, 그만큼 웨인 프레드릭의 상실감 또한 결고 작지 않았죠. 그가 죽기 전의 상황과 대사들 또한 인상 깊습니다. 마야 유스란과 사랑에 빠져버리게 되자 자신의 목숨을 지운에게 줘야 하니 팔 하나 정도는 줄 수 있다고 하는 부분은 일곱 번째 기사라는 작품에서 등장하는 명장면 중 하나죠. 다른 말 뿐인 남자들과는 다르게 진심으로 자신에게 희생해줄 수 있으며, 비록 목숨을 내놓겠다곤 하지 않지만 그만큼 자신 또한 인정하고 사랑했던 남자인 한지운에게 바칠 수 있다고 하는 기사다운 전우애와 의로움은 그녀에게도 결코 마음 상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진정한 기사로서, 진심으로 인정할 수 있는 명대사가 아니었을지.


체스테인 J. 알폰소. 그는 타고난 기사였으나 기사로 살기보단 시인이고자 했던 인물로, 수준 낮은 시를 만들어내긴 했으나 시에 대한 열정만큼은 분명하게 진심이었던 이로, 아카데미에서도 그 때문에 비웃음을 당했지만 결코 실망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은 채 시에 대한 열정 하나만은 우직하게 지켜나갔던 기사였죠.


그 때문에 지운이 귀찮고 고생하게 되었지만 그만큼 밝고 진심 어린 태도는 꾸며낼 수 없는 것인즉 지운 또한 그와 깊게 교분을 나눴던 것이고요. 어떻게 보면 어린아이 같지만 그만큼 시와 삶에 대해 순수했던 기사였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죽어가면서 나는 훌륭한 기사였는가. 나는 훌륭한 시인이었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하고 물어보는 장면은 그토록 슬프고 시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기사로서는 최고였지만, 그것은 단순한 검술의 재능이었고,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었으며, 시인으로서는 낙제점을 받아왔던 이로 노력해도 성과를 보기 어려웠지만 그는 순수했습니다. 단순한 검술이 아닌 기사로서 그는 부러지지 않는 검이었고, 시에 대한 순수함으로서 그는 영원한 소년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지운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물어보자 내가 본 최고의 기사,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순수한 노랫말을 지은 최고의 시인, 생애 최고의 친구, 영원한 우정, 나의 형제라고 답해주죠.


그의 마지막 유언은 이겁니다. '언젠가 꼭 지운경과 함께 달에 가고 싶었는데. 나 혼자 가게...' 그의 순수함을 문장으로 녹여냈다고 평가합니다.


알폰소의 죽음 이후 지운은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까지 무너지게 되고, 그의 유골은 함과 함께 고향인 프레드릭 영지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웨인 프레드릭은 친히 함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거리를 걸었으며, 그 거리는 그의 이름을 따 알폰소 거리가 되었죠. 이 부분도 정말 감동적인 부분입니다. 기사 중의 기사인 웨인의 측근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고, 그만큼 많은 우정과 신뢰를 나누었다는 것이니까..


훗날 돌아온 지운은 그의 묘비에서 가슴 먹먹함을 누르고 최고의 시인으로서 명문을 쓰고자 했으나, 쓸 수 있었던 건 나의 친구 나의 형제 체스테인 알폰소. 이곳에 머물다. 한 문장 뿐이었죠. 하지만 그것이 진정 지운이 가진 그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은 진정한, 한지운으로서 그에게 바칠 수 있는 진심이었던 것입니다. 



에.. 좀 글이 무거워졌는데, 사실 위에서 썼어야 했는데 어쩌다보니 쓸 기회가 없어져서 문맥 중간에 추가하기에 어색해져서 그냥 이 뒤에 쓰는 거긴 합니다만, 이 작품에서 칭찬 받아야할 부분이 좀 더 있습니다. 짜임새야 좀 더 정리해주고 싶지만 글이 정말 너무 길어질까봐 줄이고, 중요한 건 정치라는 면입니다. 나중에 웨인 일행과 로렌스가 같이 오면서 웨인 프레드릭, 프림 왕, 지운이 같이 걸어가면서 은연 중 웨인과 지운을 자신의 아래, 자신의 인물로서 두는 듯한 은근하고도 교묘한 말을 할 때 지운이 역시 은근하고 교묘하게 잘 받아친다던가 하는 등의 정치적 수사와 정치성 그 자체에도 상당한 묘사를 보여줍니다.


전략전인 면에서 등장하는 정치적, 관계적 측면에서 이는 어지간히 큰 그림을 그려내지 않고선 나올 수 없는 설계이기도 하고 개인과의 대화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수 싸움 또한 그러한 논리적이고 외교적 수사에 가까운 정치적 대화를 나누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전자야 공부 좀 한다면 누구든 해낼 수 있는 거지만 후자의 경우 경험이 없거나 그에 대한 기반 지식이 없다면 묘사하기 굉장히 어려운 거거든요. 굳이 찾아보자면 하얀늑대들의 윤현승 작가나 이차원용병의 탱알(금호) 작가 정도? 뭐 제가 아는 선에선 몇 안 되는 거 같네요.



뭐.. 일단 여기까진 칭찬이었고, 비판 비스무리한 것 좀 해보자면, 먼저 김형준 작가의 필체는 뭔가 구수하다는 겁니다. 무슨 향토적인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뭔가 되게 아재같다는 느낌이 든다는 겁니다. 중세 배경의 작품이기 때문에 그런 필체를 의도하고 쓴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뭔가 중세적인 분위기의 서술을 쓰고자 하는 그런게 보이긴 하거든요. 하지만 그런 부분이 어떤 면에선 읽을 때 지루함을 느껴지게도 합니다. 가령 제가 진짜 술술 읽힌다고 느끼는 글들은 앞서 말했던 하얀늑대들이나 특히 굉장히 잘 읽힌다고 느끼는 글이, 무한전쟁 시리즈의 광악 작가의 글입니다.


광악 작가의 글은 제 취향이 완전 저격되는 거라서 더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너무 술술 읽힙니다. 그래서 카카오 페이지에 연재되는 작품 중 평균 길이가 40페이지 가까이 되는 스페이스 니트라는 작품은 진짜 한 면 한 면 아까워하면서 봤을 정도였죠. 뭐 다른 엄청 잘 안 읽히고 읽는게 뭔가 고되다는 느낌을 주는 몇몇 작품들에 비해서 김형준 작가의 시리즈는 그런 문제가 덜하긴 해도, 뭔가 지루하다고 여겨지는 게 있습니다. 좋게 표현하자면 여유롭게 서술하고 묘사하는 거지만 말이죠.


그리고 또 캐릭터들의 포맷이 굉장히 고전적입니다. 뭐 사실 일곱 번째 기사는 나온지 10년 가까이 되는 작품이기 때문에 지금 와서 고전적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을 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포맷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성격이 너무 진부할 정도로 정형화된 유형입니다. 가령 일곱 번째 기사의 헬포드 경과 백룡공작 팬드래건의 킬라이언 경은 성격이 완전히 같은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고(그나마 킬라이언이 더 점잖은 정도?.. 단지 카르타와 나누었을 뿐이지만;) 로렌스와 빈센트 론은 대응되며 에인세와 로딕의 성격과 알폰소의 전투능력을 좀 비벼놓으면 엘킨과 비슷하기도 하죠. 여성 중에서 로젤리아와 가장 비슷한 건 루나 세이로드 정도?


뭐 사실 캐릭터라는 게 성격이 거기서 거기인 게 이상한 것도 아니고 독창적이고 비범한 포맷을 짜는 것도 어렵고 자연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특히나 부각되는 점이 킬라이언과 헬포드의 캐릭터성이 너무나 유사하다는 점인데, 이는 솔직히 좀 아쉽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고 해서 포맷이 완전히 같은 것도 아니고 성격이 비슷한 게 이상한 것도 아니며 아예 다르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비판의 여지는 상당히 줄어들지만 이런 우직하고 우악스러운 성격의 근육돼지 기사 캐릭터의 캐릭터성이 너무 흔하다는 점은 일정 정도 비판의 요소가 되는 건 사실이기도 하죠.


더불어 몇몇 클리셰가 너무 흔한 것들을 쓴다는 점도 있는데, 백룡공작 팬드래건이나 월광의 알바트로스에서 나타나는 하렘적 요소나 마법, 능력자적 요소, 오크 같은 괴물 같은 것들도 흔한 클리셰적 요소들이죠. 물론 백룡공작 팬드래건에선 그걸 필력으로 버무려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게 사용했고, 월광의 알바트로스에서는 그냥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문제는 주인공이나 주변인의 무책임성과 시대상에 맞지 않는 아집적 연애관 같은 게 있긴 합니다. 가령 월광의 알바트로스 초반부의 주인공 어머니와 남편의 무책임성은 위선적이다 못해 역겨울 수준이라는 비판을 결코 피할 수 없고, 그런 문제 때문에 당 작품은 시작하기에 불편한 감이 크죠. 솔직히 저도 완결이 다 되가는 수준까지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에게 이입하기 어려울 정도의 감각을 줘버렸으니.. 뭐 이건 주인공의 문제라기 보단 주인공 주변인의 문제지만;


백룡공작 팬드래건에선 되도 않는 일편단심을 가지는 것도 있으며 좋다는 여자들은 많지만 그걸 죄다 무시하고 내치는 등 연애권력에서의 우위와 린제 콘라트라는 일편단심의 요소 하나만 가지고 남에게 열등감을 주고 자신을 우월감을 주는 식의 감각을 유도하는 구조적 연출은 역시 고전적이고 말초적인 쾌감을 주는 식으로 전개를 하는데, 뭐 고전적 연애관과 하렘식 연출이 딱 그런 모양새였죠.


좋다는 여자들은 많고 등 떠미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눈치는 못채고, 나중에 챈다고 해도 혼자 끙끙 앓거나 반대로 한명만 좋다고 대놓고 못 박아서 가슴앓이 만들고 그런 모습 독자들에게 보여주며 연애권력의 쾌감을 주기도 하는. 다르게 말하자면 언제든지 따려면 딸 수 있는 열매 같은 연출 말입니다. 


백룡공작 팬드래건은 2014년에 연재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고전적 구조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비판의 껀덕지가 있습니다. 독자들도 그에 대해 답답해하거나 비판을 하곤 하죠. 물론 작품적으로 그렇게 작용할 수 있는 캐릭터성과 전개가 이어지긴 합니다. 다시 깨어난 앨런 팬드래건의 가치가 막대해졌다는 점과 여성으로서도 매력적으로 보이는 남성성을 가졌다는 것. 그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질 수 있으며 복수와 대의를 위해 여자에 눈 돌릴 시간이 없다는 점은 분명 비판을 막을 수 있는 정당한 전개였죠. 하지만 백룡공작 팬드래건이 워낙 많고 흔한 양판소적 클리셰를 모아놓다보니 근본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나마 필력 있고 실력 있는 작가가 쓴 글이기 때문에 그러한 비판점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겁니다만.


사실 이렇게 길게 다른 작품 이야기할 생각이 없었는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나온 거고, 마찬가지로 일곱 번째 기사에서도 주인공 한지운은 로젤리아와 하룻밤을 보내고 자기 세계로 돌아가버리죠. 그 때문에 로젤리아는 임신을 하게 되었고 자식을 낳았으나, 본인이 키우는 게 아니라 루시엘에게 넘친 채 건국공을 도와 훗날 단풍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는 업적을 쌓았고요.


음.. 어.. 사실 앞서 자주 이야기했던 고전적이다. 라는 면에서 이 부분이 정점을 찍었다고 보는데, 과거라면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야 하는 슬픔과 그래도 슬픔과 외로움을 달랠 자식을 세상에 남기게 해줬다는 선물이라는 면에서 과거라면. 과거라면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의 결말로서 작용할 수 있었겠지만, 시대는 변했고 그러한 고전적 가치관에서 벗어난 독자들에게 이는 무책임하게 싸질러 놓고 튄 놈 비슷하게 여겨질 수 밖에 없습니다.


뭐 본인이 임신을 시킬 것이라는 걸 모를 수도 있었고 남을 수 없다는 것도 개연성을 가지는 일이기 때문에 계속 이야기해왔듯 어쩔 수 없다지만 작품에서 전반적으로 보여줬던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 시대와 세계에 대한 책임이라는 것과는 대비되게 개인적으로 무책임하게 떠나버렸다는 점에서 위선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고, 결국 로젤리아만 불쌍하게 되었죠. 심지어 이후를 살펴보면 자식을 직접 키우지도 못했고 그리 자주 만난 것처럼 보이지도 않은데. 로젤리아에게도, 자식에게도 죄 짓는 일입니다. 


이것도 작품을 쓴 시점과 현 시점의 가치관 차이라는 것으로 어느 정도 옹호를 받을 수 있다곤 해도, 그러기엔 작가 스스로 고전적 작품상의 느낌을 넣어주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결말을 만든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러한 구조와 전개를 설정하여 이끌어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작위성이 겉으로 드어나보이지 않고 그거 말고 어떻게 할 수 있는 방향성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게 했기 때문에 비판하기 어려울 뿐이죠.



하여간, 전체적인 작품은 저에게 믿고 보는 김형준이라는 믿음을 주게 만든 작품이었고, 객관적으로도 재밌으며, 일부 부분에선 얻을 것도 있는 훌륭한 수작이었다고 봅니다. 아무리 역사적인 배경의 분위기를 느껴지게 하는 필체와 고전적인 작품상의 느낌을 이끌어내는 서술은 반대로 현실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에 다른 판소에서 쉽게 느껴지거나 연출하고 의도되는 거창하고 어마어마한, 압도적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점이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저는 도리어 그것에 고평가를 주고 싶고, 큰 틀에서 정확하게 짜인 스토리와 부담 없는 전개, 시각적으로 힘을 주는 연출 묘사 등 이 작품은 객관적으로 좋은 작품입니다.


그래도 판타지 소설이라는 점 답게 작품의 주인공은 그 시대에 있어서 신화적인 역할과 행보를 보인다는 점이 흥미롭게 여겨지는 점이기도 하고요. 작가의 이상을 너무 진하게 담아내서 전체적인 그림에서 개인 단위로 투영해나감에 따라 뭔가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도 솔직히 없다곤 못하겠습니다. 이는 월광의 알바트로스에서 특히 그렇게 느껴지고요.


하지만 그러한 역할과 변혁에 있어서 설득력 있는 전개와 역할을 개연성 있게 풀어냈다는 점은 김형준 작가가 어째서 필력 있는 작가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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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2 - [취미/이야기] - 북한 신년사와 정부의 답변에 대한 외교적 단상


일단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미는 이유 중 하나가 위 글에서 나타났듯, 북한은 연일 이어지는 미국의 강경발언에 대해 발생하는 전쟁 위험성, 군사적 긴장도를 낮춰야할 필요성이 있고, 남한은 그러한 북한의 시도를 자국의 평화, 안전을 이끌어내겠다는 기존의 지침에 따라 움직이는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림픽을 함께 하는 것을 넘어서 단일팀을 만든다면 더더욱 평화적이고 호의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하지만 이것 자체도 그렇지만, 이 단일팀을 이끌어내려고 하는 과정 또한 그리 올바르지 않다는 건 충분히 비판할만한 문제인 건 사실이죠. 그 동안 문재인 정부가 정말 잘해오고, 앞으로도 지지할 것 같다는 예상은 변하지 않다만, 이러한 태도와 행위에 대한 비판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여간, 단일팀을 만들 필요도 없다는 것부터 짚고 넘어가자면, 이러한 평화적 분위기는 단기적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과거 햇볕정책을 하던 것처럼 국가 정책 수준으로 이어지고 북한도 그러한 새로운 시도에 가진 데이터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하는 근거도, 전략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는 시기라서 화답을 하고 그에 따라 햇볕 정책에 성과를 볼 수 있었던 건데, 지금은 그러한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에서 기껏들어온 이 기회를 놓치기 싫다는 건 충분히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할 수 있고요.


그러나 말했듯이, 그러한 햇볕정책에서도 군사도발은 있었습니다. 그거 때문에 햇볕정책이 끝난건 아니지만요. 뭐 그건 그렇다 쳐도, 문제는 이미 데이터도 쌓여 있고 경험도 있으며, 전략도 나름 확고하게 짜인 북한은, 그 목적이 체제보장과 유지에 있듯이 그것을 위해 반드시 군사도발을 해야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 말고는 북한의 체제를 유지할만한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 인민을 통제해야 하는데, 지금껏 해온 방법이 가장 잘먹히고, 이가 들어갈만한 구석도 적죠. 따라서 지금과 같은 평화적 분위기는 북한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구상되어온 것이고, 남한 또한 그러한 북한의 태도에 나름의 필요성에 따라 주고 받고 있는 겁니다.


결국 단기적인 평화를 위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마지노선은 올림픽 출전과 선수단에 대한 지원 등이면 충분해요. 그 이상으로 단일팀 같은 걸 구상하는 건 굉장히 이상적인 판단이고 북한에게 남한과 문재인 정부를 만만하게 볼 여지를 준 것이고, 혹은 그러한 오판을 하게 할 여지를 주게 됩니다.


결코 장기적일 수 없는 평화를 위해 지불해야할 것이 많을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단기적 이익도 이익이고, 이익이 되는 협정이나 조약을 이끌어낸다면 평화가 단기적이라고 해도 그것이 완전 파기 되거나 무효화되지 않는 한 장기적인 이익으로 기능하긴 합니다만, 그런 게 아니라면 너무 내줄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단일팀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비판해보자면,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문재인이 했던 말입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가 자신의 말을 뒤집는 행위를 하고 있죠. 아무리 그것이 정치적인 관점으로 이익이 되고 그러한 손해나 희생을 강요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더라도, 비판점은 비판점입니다.


이렇게 남북한 단일팀을 만들게 되면, 형평성에 맞지 않게 됩니다. 남한의 선수들에게도, 다른 국가들에게도.


출전 선수가 22명인데 선수단은 23명인데, 한 경기에 단 한명의 선수만 쉴 수 있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 선수를 포함하게 된다면 그만큼 더 쉴 수 있는 선수가 많아지기 때문에 상당한 어드벤티지가 발생하게 되고, 이에 대해 타국 선수단이 반발하는 건 기실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됩니다. 아이스하키에서 많이 이기려면 많은 사람이 있는 게 유리하게 되죠. 물론 팀웍면에서는 불안하지만, 체력관리의 면에선 유리합니다. 


그것과 또 별개로, 한국 선수들이 출전할 기회와 시간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에 이는 그 동안의 노력과 기회가 박탈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문재인 대통령 본인이 말했던, 기회의 평등을 부정하는 행위이죠. 


또한 그러한 단일팀을 만들기 위해서 그 이전에 아이스하키팀과 협의를 하거나 심지어 사안을 전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는 단일팀에 대한 구상이 계획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고, 아마 VIP, 대통령 본인에 의해 구상되고 진행된 것이라 추측됩니다. 관련된 기사도 그에 대해 근거하고요.


제대로된 협의나 합의 없이 일이 진행된다는 것 또한 비민주적인 일 진행 방식이고 북한과 연관된 일이기 때문에 이전부터 극우보수, 꼴통들이 줄창 망상해온 종북이나 북한에 퍼준다는 프레임을 더 견고하게 해줄만한 약점이 되기도 합니다. 


위안부 합의에 대해선 국회 동의가 없었기 때문에 무효라고 말했고, 앞서 여러번 지적했지만 기회는 평등하게 될 것이라는 본인의 지향점을 정면으로 반박하게 되는 이번 일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실망하거나 실망할 수 있고, 원래 안 좋게 봤던 이들은 결국 이럴 줄 알았다는 오만한 자기확신을 가지게 되겠죠. 



정부는 그럴만한 가치도 의의도 없는 일을 위해 독선적 억지를 부리는 거고 그러한 독선과 억지가 같이 쓰일 수 있는 일이 결코 좋은 일일 리가 없죠. 그래서 비판 받는 거고, 욕 먹는 겁니다. 정부는 단일팀에 대해선 철회를 해야 맞을 것이고, 이러한 상황을 만들었던 본인들의 실책에 대해 반성하고 깔끔하게 사과해야 합니다. 자신들의 지론과 지향점을 다시금 반성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초심을 찾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 문제에 대해 비판하는 여론도 크게 줄어들 것이고, 실망한 감정을 다시 되찾을 수도 있겠죠.


이전 정권들과는 다르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문재인 정부이기 때문에 더더욱 필요한 일입니다. 단일팀은 무리수였고, 그만한 이익도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판단은 너무 이상적이었다고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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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UAE 극비 양해각서에 '유사시 군사적 지원' 포함

http://v.media.daum.net/v/20180108203900171?f=m&rcmd=rn
김종대 "UAE 양해각서 상상초월..한미 관계보다 높은 수준

http://v.media.daum.net/v/20180108203859170?f=m

[단독] 김태영 "UAE와 군사협약 내가 책임지고 비공개 하자 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25&aid=0002788178&sid1=001

칼둔 오자 발빼는 자유한국당 “UAE에 초점 맞춰선 안돼”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826859.html

UAE 유사시 한국군 자동개입? "MB, 형사책임 물어야""현직이면 탄핵"

http://v.media.daum.net/v/20180109122400807
임종석-칼둔 "한·UAE, 포괄·전면 전략적동반자 관계로" 합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421&aid=0003140383&sid1=001
靑 "칼둔 청장, 임종석과 회동에서 한국 언론보도에 유감 표명"(속보)
http://v.media.daum.net/v/20180109152605612
[단독] 김태영 "UAE와 비밀 군사협정…파병 안 되면 그때 설명하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37&aid=0000172074&viewType=pc
[사설] UAE 문제, 결국 '적폐 청산' 소동이 부른 평지풍파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09/2018010903082.html
[사설]말 많던 UAE 의혹, 原電 아닌 비밀군사협정 문제였나
http://news.donga.com/Column/3/all/20180109/88098040/1

[사설]UAE 상대로 국제 사기극 벌인 김태영 전 국방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1092048015&code=990101

나경원 “UAE 비밀군사협정, MB 칭찬받을 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5&aid=0001063693


인생을 사기와 정치질로 성공해온 전과 14범 범죄자다운 정치와 통치였네요. 아예 국제단위에서 사기를 칠 정도이니. U에 원전수주는 하고 싶은데 국회비준 없이는 군사파견이 불가능하고. 결국 자동파병 조항을 넣어서 원전 수주를 받기 위해 실제론 국회 허락도 안 받았으면서 조항 넣어주면서, UAE에겐 구라치고 비공개 협약으로 대충 마무리지으며 넘어간 겁니다. 


근데 당연히 이에 대해 문제가 없을 수가 없죠. 국회비준이 없었으니 해당 협약은 무효가 되는데, 그렇게 되면 국가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협약 자체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한 협약을 통해 얻어낸 계약이나 이권 등은 당연히 나가리가 되는 거죠. 그런 식으로 한국은 UAE의 원전 수주를 받았는데, 정작 UAE는 그 협약을 통한 조건을 이행 받을 수 없다?


이거 사기입니다. 거짓말로 상대를 속이고 이익을 얻었다면 그게 법적으로 사기죠. 이 사건은 이명박과 그 정권이 저지른 국제적 사기 범죄입니다.


근데 MB 정권은 이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 정권이 바뀌어도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고 그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넘기지 않았던 것이고, 그 때문에 박근혜 정권과 친박계도 이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해서 임정석이 UAE에 갔을 때 국정조사 어쩌고 하면서 물어 뜯은 건데,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새누리당 시절 이명박의 빅똥 of 씹똥이다보니 갑자기 아가리 닥치고 UAE에 집중하면 안 된다는 개소리하면서 말 바꾸고 있는 거죠.


그리고 앞서 말했듯, 제대로 말을 하지 않았으니 그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인계되지 않은 거고, 박근혜 정권으로 넘어갔고, 다시 문재인 정부로 넘어와서 폭탄이 된 겁니다.


그 때문에 그에 대한 협약을 가지고 이야기한 UAE에 대해 문 정권은 아무 것도 알지 못했기에 솔직하게, 법적으로 그럴 수 없다고, 국회동의 없이는 군사 파견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돌려줬고, UAE 쪽에선 협약과 이야기가 달라지니 화를 낸 거죠. 이권은 얻어냈으면서 말이 달라지고 이제까지 속아왔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쉽게 말해서 자기들 속이고 원전 계약 따낸 겁니다. 사기죠. 이거 국제사기입니다. 이명박이 저지른 참 대범하고 답도 없는 행위죠.


그런데 군인이라는 놈들이, 국민의 안전과 국가적 안보를 지켜야할 놈들이, 국익을 침해할 수 있는 국제적 사기 행위에 일조했다는 게 참으로 얼척 없습니다. 사실상 국가 반역행위이고 그러한 행위에 일조했다는 건데, 반역 행위에 일말의 거리낌도 없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 동안 문제있는 건 다 알고 있으면서 입 닥치고 있다 이제 문제가 알려지니 그 동안 문제가 있을까봐, 그때가서 허락 받으면 되니까, 그게 국익을 위해서라고 판단해서 같은 개헛소리나 하고 있으니 원.. 



정말이지, 이명박의 사기꾼 기질이 이렇게 광범위하고 치명적 손실과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수준일지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국가를 자신들의 수익창출 용도로 사용하고 국가의 발전과 사회적 안정, 국민의 평안을 위해 이바지 하는 데엔 어떠한 관심도 없었다는 거죠.


지금껏 살아오면서 치적을 쌓아왔던 방식처럼, 사기를 치며 5년 동안 최대한 꿀빨자라는 생각으로 국민이 임명한 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하며 거대한 범죄 행위를 해왔다는 거니까요.


진짜로, 극우보수 세력의 안목이라는 게 이토록 볼품없고 처참하며 그러한 민주적 소양의 부족으로 인해 국가적 손해를 발생시키면서 자신들은 그에 대한 어떠한 반성과 성찰도 없이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그 이전에 자신들의 문제를 인식조차 하고 있지 못하니, 이 나라가 적폐 똥통 속에 빠져 후퇴만 반복하고 서민 대다수는 점점 삶이 어려워지며, 국가와 사회는 점차 정의에서 벌어지는 망국적 길을 걸어왔던 게 이해가 됩니다.


극우보수가 뽑아준 모든 대통령들이, 세대와 시대를 고려해서도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최근 2명의 대선 당선자 모두가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극우보수 국민들의 처참하고 한심한 안목을 통감하고 슬플 뿐입니다.



결국 이 때문에 임종석이 UAE에 가면서 포괄, 전면 전략적동반자 관계로 합의를 봤던 것처럼, 결국 이명박이 싸놓은 똥, 사기 행위 때문에 국익에 손해가 되는 합의를 강제로 맺을 수 밖에 없게 된 겁니다. 그나마 이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유능한 이들이 머리를 쥐어 짜내 그나마 수습한 거죠. 정식 협약을 맺는 쪽으로 가면서. 에휴..


이명박이라는 부정부패의 거두를 반드시 잡고 그 공범들을 구속해서 반드시, 반드시 처벌해야 하는 이유죠. 죄를 지었다면 책임을 져야하고, 그러한 책임을 지게 하면서 이와 같은 행위를 반복하지 못하게 사례를 만들어야 합니다. 국법을 우롱하는 이유는 그래도 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다면 법을 우습게 알아도 된다는 것을 증명하게 되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제대로 처벌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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