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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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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에 해당되는 글 616건

  1. 2019.04.10
    소설 이드 리뷰.
  2. 2019.04.07
    속초 산불, 문재인 정권의 대응과 자한당의 사보타주.
  3. 2019.03.31
    노동시간 주 52시간 정책의 문제와 문재인 정권의 정책적 보완 필요성.
  4. 2019.03.25
    문재인 대통령 경호 기관단총 노출, 무엇이 문제인가?
  5. 2019.03.21
    무한전생-망나니 리뷰.
  6. 2019.03.16
    민주당의 현실인식 문제와 새 전략의 필요성.
  7. 2019.03.13
    국가원수 모독죄? 민주당은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
  8. 2019.03.10
    u토렌트 3.5.4, u토렌트 3.5.3 설치파일 다운로드
  9. 2019.03.09
    여성은 약자? 약자의 폭력성.
  10. 2019.02.28
    북미회담 결렬, 별 일 아니다.
  11. 2019.02.13
    성인 사이트 등 불법 사이트 차단 사태에 대한 단상.
  12. 2019.02.10
    권력욕의 작동에 대한 단상.
  13. 2019.01.31
    김경수 징역을 선고한 사법부의 정치판사. (2)
  14. 2019.01.19
    가담항설 리뷰.
  15. 2019.01.15
    언론간 진영 싸움의 현실. (4)
  16. 2019.01.14
    고위 범죄자를 더 적극적으로 배제해야할 이유.
  17. 2019.01.12
    The Hu - Wolf totem // 가사, 해석
  18. 2019.01.11
    chloe moriondo - Instagram // 커버, 가사
  19. 2018.12.29
    오보에 대한 책임이 필요한 언론. (3)
  20. 2018.12.02
    페미들의 현실감각 문제와 정신병적 공격성의 구조. (6)


솔직히 말해서, 이게 10년도 넘은, 나름 오래된 소설이고 그에 따른 팬층이나 추억이 깊은 작품이라곤 하지만 작품의 수준을 평가하자면.. 다른 양판소와 다를 바 없는 그런 소설입니다. 


이드가 마법을 쓰는 판타지 세계로 차원이동을 했고, 다시 돌아가려고 한다. 라는 설정은 흔해 빠졌지만 나름의 작품적 목표가 된다는 면에서 나쁠 거 없는 설정입니다. 이거 가지고 뭐라고 할 건 없죠. 문제는 그 이드(예천화)가 무림에서 왔기 때문에 무공에 대해서 그 가치를 상당히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근데 문제는 자기 동료가 되자마자 오래 지나지 않아서 간단한 무공이라곤 하지만, 보법 등 무공을 뿌리기 시작했다는 거죠. 초반에 동료 몇에게 전수해주는 것도 너무 쉽게 전수했다는 게 사실입니다. 아무리 별 거 없는 무공, 보법이라곤 해도 그 세계에서 무공의 수준을 모르지 않는 이드가 동료에게 '아직 세상에 없는' 무공을 너무 쉽게 줘버린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죠.


심지어 혼돈의 파편과 싸울 때는 제국 기사들에게 아예 나름 높은 수준의 보법을 뿌려버리는데, 당연히 이게 어떠한 영향으로 이어질지는 애들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합니다. 근데 그걸 당장 혼돈의 파편과 싸워야 하는데 그에 대한 힘이 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그냥 뿌려버리죠.


그 결과 혼돈의 파편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이후 그레센 제국의 국력은 너무 높아져버렸고, 그에 따른 결과는 주변국들이 감내하게 되었죠.



무공의 가치와 무게감, 중요성을 잘 안다는 이드가 그런 무공을, 아무리 자기 수준에서 낮다고 생각되어도 그런 세계에 뿌려버리듯 퍼뜨려버리고, 그게 어떻게 작용할지 고려하지 않았다는 건 어떻게 생각해도 작가의 무리수입니다. 한 두명에게 전수하는 것도 나름의 명분이 필요하고 집단이 된다면 그에 대한 제약이나 목줄을 달아놨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나중에 돌아와서 개판이 된 꼬라지를 보는 거죠. 



또, 팔찌 문제, 혼돈의 파편에 의한 사건 등 대륙 이동을 겪었을 때 이미 동료가 있었던 이드는 대륙을 이동해버린 이후 새롭게 동료를 만나죠. 그리고 여기에서 가즈나이트 등의 소설과 같은 문제를 가집니다. 동료도 만들고, 일도 벌여놨는데, 갑자기 정리도 안 하고 훅 떠나버린다는 거죠.


그나마 이드가 나은 점은 나중에 서로 만나긴 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갑자기 훅 떠나버리면서 기존의 동료들간의 유대감, 선형적으로 이어지는 사건의 줄기가 중간에 끊기고, 큰 흐름 내에서 다른 줄기를 만들어 탄다는 건 사실이죠. 이런 식으로 몇번이나 반복됩니다. 더 문제는, 이드가 그걸 해결하거나 커버할 생각도, 의지도 별로 없다는 겁니다. 그냥 별 생각 없이 언젠가 만나겠지~ 수준에서 다시 새로운 동료를 만나 걱정도, 감정적 불편함도 없이 그냥 여행을 계속 한다는 거죠.


이건 그냥 작가가 작품의 전개와 발상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거나, 캐릭터 자체를 자폐아 병신새끼로 만들어 놓은 겁니다.



나중엔 아예 현대 한국으로 떠나는데, 거기에서 발생하고 이어지는 사건과 설정 자체도 유치하다 싶을 정도이고요. 여기에서도 이해 못할 설정이 몇개 있는데, 이런 수준의 작품들이 항상 그렇듯이 쓸데 없이 자신의 힘을 숨깁니다. 아니, 숨기려는 거 자체는 이해를 하겠는데 그 이유가 이해가 안 됩니다.


자신의 강함이 혼란과 불편함을 낳을 수 있다는 건 이해 합니다. 그러면서 그걸 적당히 숨길 생각을 안 합니다. 그냥 주변 몇몇 사람들에게 보여주거나, 보이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지죠. 이런 설정과 전개는 90~2000년대 초반의 중2병적 양판소에서나 주로 볼 수 있는 쿨병 걸린 은거고수 코스프레 딸딸이질과 질적으로 다를 바 없고, 이드가 2000년대 초중반 쯤에 나왔던 걸로 알고 있으니 시기적으로도 맞네요.


쉽게 말해서 작가가, 그리고 보는 사람이 존나 쎄고 언제든지 판을 뒤엎어버릴 수 있는 굇수지만, 존나 쿨하고 대인배라서 대놓고 깽판은 안 부리고 다니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힘을 숨겨서 알아야할 사람이나 진짜 믿을만한 면모를 보여주는 캐릭터가 아닌 이상 보여주지 않는 것도 아닌, 그냥 (캐릭터가 아니라 작가나 독자가) 자랑질 허세 부리는 거랑 다를 게 없죠.



언제가 됐든 주인공 이드는 어떤 문제가 됐든 그 문제에 대한 적극적 해결의지가 없습니다. 그냥 있다보면 어떻게 되겠지 수준에서 움직이는 거죠. 자기 스스로는 그걸 우유부단하다고 생각하고, 작가도 그런 유하고 여유로운 성향을 묘사하려고 하는 거 같은데, 그게 아니라 그냥 진도 질질 끄는 수작질 정도가 아닐까 싶더군요.


현대 한국으로의 차원 이동 때도 자기 주변 사람들은 지키겠다. 라는 입장을 내비쳤는데, 실제 전후관계를 이해하기 전에도 할 수 있음에도 해결 의지 없이 놀러다니는 수준으로 돌아다녔죠. 전후관계를 안 이후에도 혼돈의 파편 흔적을 찾는 일에 굉장히 적극적이지 않았고요.


아니, 이 때는 그나마 가장 적극적인 편이었습니다.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이드와 라미아의 능력 정도면 찾고자 하면 찾았습니다. 약간의 노가다가 필요했을 뿐이지, 찾고자 한다면 오래 잡아도 한달 내에 찾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죠.


그리고 그 강대한 힘으로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룩하는 것 정도야 해볼만 했을 거고요. 자꾸 질질 끄느라 그 흔적의 수작질에 넘어가는 것도 등신 같고.



무엇보다 이해가 안 되는 건, 드래곤의 힘과 지식을 흡수했다고 하면서 정작 그 힘과 지식을 제대로 쓰질 않습니다. 그냥 시간 나는 때마다 드래곤의 지식을 훝어보기만 해도 되는데, 이드는 그 짓을 절대 안 합니다. 정령, 정령왕을 쓸 수 있을 때도 안 하고 쓸 때에도 남들이 멋대로 오해하게 두고 그걸 교정해주지 않죠. 물론 그걸 하나하나 교정해줄 필요도 없고, 자기 밑천을 드러낼 필요도 없지만, 소설 내에선 근본도 없고 택도 없는 쿨병 걸린 태도로 일관하니 독자들 속이 터지는 겁니다.



다시 판타지 세계로 돌아갔을 때도 앞서 언급한 문제가 다시 등장하죠. 기존의 그레센 제국이 있던 세계에서 수 십년이나 지난 미래에 떨어졌다는 건데, 여기에서도 개버릇 남 못 준다고 자기 정체를 밝히질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가 어그로라는 어그로는 다 끌고 다니면서 각국의 기사들이 쫓아다니게 만들죠.


1부는 그럭저럭 평범한 수준 낮은 양판소 수준이었다면, 2부는 처참한 쓰레기나 다름 없다고 평가합니다. 진도는 진도대로 안 나가고, 이드의 태도 또한 이해할 수가 없는데다, 2부 내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해결의지는 일리나를 찾아갈 때 빼고는 없습니다. 그나마도 개삽질하면서 다니던 건 여전하고, 채이나라는 캐릭터가 자기 아들내미 경험 쌓는답시고 발로 걸어가면서 쓰잘데기 없는 어그로, 싸움질이나 하게 만드는 건 채이나라는 캐릭터를 명분으로 이드 싸움 존나 잘해요 하면서 자랑질하는 거에 불과하죠.


근데 그게 근본도 없는 쿨병과 엮여서 뭐 하나 제대로 해결하는 것도 없이 사람 암 걸리게 만들다 결국 발로 이동하는 거 때려치게 만들었는데, 채이나라는 캐릭터의 역할이 그런 목적이었다는 겁니다. 이드가 어그로 존나 끌게 만들고 보는 사람 속터지게 만드는 거.


독자가 이해가 되는 설정이나 사유가 아니라 필요 없는 이유와 명분을 만들어서 일을 이상하게 진행하며 질질 끌어대는 게 김대우 작가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건 작가적 성향이나 어떤 생각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걍 작가적 역량이 처참하게 부족한 거고요.


일리나 만나러 갈 때 한번 (그나마) 제대로 싸움 붙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카카오 페이지 기준으로 한 3화 정도 질질 끌다 싸움에 들어가는 거 보고 이건 작가가 제정신이 아니거나 작가질 하면 안 될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더군요. 싸우기 전에 뜸을 들이는 것도 전투씬을 묘사할 때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묘미라면 묘미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지 김대우 작가는 그게 얼마 정도인지 모르는 겁니다. 이건 그냥 작가적 역량이 부족한 거죠.


그냥 글을 쓸 때 필력이 떨어진다거나, 소재는 재밌는데 전개가 재미가 없다던가. 스토리가 산으로 간다던가 하는 이전의 문제입니다. 걍 어디에서 빠르게 흘리고 어디에서 끌어보고 어디에서 뜸을 들이고 어디에서 터뜨리고 어떤 요소를 어떻게 쓰고.. 이런 걸 걍 다 못합니다.



소드팰러스에 들어가고 나서는 걍 거기 밖으로 나가는 일이 거의 있지도 않았죠. 심지어 그 내부에서도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다가 은색 기사단과 만나는 즈음해서 제자 둘 들이고 삼검왕 하나 꺽으며 세력을 늘리네 유명세가 더 높아졌네 어쩌네 하고 있죠.


그 제자마저도 당돌한 게 아니라 걍 미친 거 아닌가 싶은 수준으로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라고 알고 있는)인 이드에게 무공을 가르쳐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병신 새끼가 지 무공 때문에 무슨 꼬라지 났는지 뻔히 알면서 퍼주죠. 심지어 그마저도 걔 소개로 은색 기사단 중 하나와 만나고 대화하는 게 조건입니다. 걔 없었어도 충분히 할 수 있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절대 공정한 거래는 아니죠.


무공에 대한 가치는 상대적이고, 대단한 수준으로 가르치며 특별한 무공을 전수하는 건 아니더라도, 자기 스스로 링스피어를 사용하는 제2의 시르피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자기가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지 알면서 그런다는 겁니다. 아무리 케마란의 재능이 뛰어나고 조금 밀어주는 수준이라곤 하지만, 그것도 거래의 대가에 따라 정도껏이죠. 금강선도 뿌려서 그레센 대륙이 어떤 꼴이 됐는지 아는 새끼가 또 세상에 불지르려는 개미친 새끼입니다.



또한 소드팰러스에서도 자기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원하는 걸 할 수 있었습니다. 검궁에 들어가는 것도, 그곳에서 시르피의 흔적을 보는 것도, 그것을 통해 추적을 하거나 하는 것도. (단지 시간이 좀 걸릴 뿐이라는 거지만.)


근데 아무 것도 안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게 다죠. 스스로는 굳이 세력을 가지고 싶지도 않고, 소드팰러스를 가지고 싶지도 않지만 믿어주지 않을 것 정도는 안다고 하고, 은색기사단 등과 협력해서 시르피를 찾아야 하기 위해서라도 거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도 하고 등등의 이유를 대는데, 걍 작가가 씨부려놓은 명분이고 실제로는 걍 의지가 없는 겁니다.


어차피 시르피가 실종된지 꽤 됐으니 굳이 서두를 거 없다는 것도 나중에 시르피의 흔적과 그 흔적을 추적할 수 있는 집단에 대해서 밝혀졌으며, 심지어 은색기사단의 단장마저도 납치하려는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새끼는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이 존나게 없어요. 걍 시르피에 대한 걱정 자체가 없는 수준이고, 지가 뭘 할 수 있고 뭘 해야 되는지도 모르는 자폐아 새끼나 다름 없죠. 이딴 걸 캐릭터라고 만들고 전개랍시고 하니까 작가 수준이 다른 애새끼들이나 보는 양판소 작가와 다를 바 없거나 오히려 그보다 수준이 낮다고 제가 까는 겁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가운데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건, 자기가 마인드 마스터 본인이라는 걸 결코 밝히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기 스스로는 적극적으로 숨긴 것도 아니고 남들이 잘못 오해하고 있는 것 뿐이라곤 하며, 밝히든 말든 상관 없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비밀은 꾸준히 유지가 됩니다. 그리고 은색 기사단장에게도 자신의 비밀을 밝히고 어차피 숨길 생각 딱히 없으니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겐 이야기해도 된다고 하면서 결국 비밀을 유지하게 하죠.


물론 마인드 마스터 본인이라는 걸 증명해야 하겠지만, 까놓고 말해서 본래 자신의 압도적으로 높은 무공 수준 + 드래곤의 힘, 드래곤의 지식, 하이엘프인 일리나의 존재 등 증명하라면 못할 것도 없는 주제에 그걸 참 오랫 동안 감추고 있습니다. 당장 현대 배경에 떨어졌을 때 프랑스 였나, 거기에서 자기 지인 구하겠다고 어마어마하게 많은 몬스터를 상대로 어마어마한 힘을 끌어내서 거대한 검강으로 박살냈던 것처럼 말도 안 되는 막대한 힘만 보여줘도 대부분은 마인드 마스터 본인이겠구나 할 거고, 거기에 하이엘프 일리나가 직접적으로 인증해주면 누구든 믿을 수밖에 없을 거 뻔한데 말입니다. 심지어 자기 정체를 증명할 때도 엘프인 일리나가 직접 인증해줘서 믿게 해주는 패턴도 썻으면서요.


근데 그러질 않습니다. 아니, 애초에 그렇게 숨기고 살 이유가 전혀 없거든요. 그게 다른 게 아니라, 전형적인 나는 딱히 정체가 밝혀져도 상관은 없지만 니들이 마음껏 오해하고 삽질하며 그에 따라 나도 개삽질이나 하게 계속 모르고 있어라~ 이거거든요. 근데 이런 짓거리도 다른 작품에선 나 특급 요리사요! 하고 자랑질 하는 요리왕마냥 좀 지나면 금방 밝히거나 밝혀지면서 독자들에게 유치한 카타르시스라도 느끼게 하는데, 이 작품에선 죽어라 안 밝히고 아주아주아주아주 오랫 동안 비밀로 하고 있습니다.


걍 병신짓이죠. 지 때문에 어떤 문제가 벌어지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뻐언히 아는 새끼가 일부로 그러는 거 보면 걍 자폐아 새끼가 맞습니다.



질질 끄는 전개,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설정 무시하는 능력, 제대로 해결하는 거 없이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버리기, 그마저도 제대로 정리 안 하고, 어떤 일이든 질질 끌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지도 없고, 설령 해결할 일이 발생해도 제대로 처리를 안 하거나, 처리를 해도 중간 과정일 뿐이지 결코 해결은 아닌 스토리 등등..


걍 근본도 없는 소설인데, 과거 추억에 의해 고평가를 받을 뿐이지, 작품적으로는 다른 수준 떨어지는 양판소랑 다를 게 전혀 없거나, 오히려 그 이하로 수준이 낮습니다. 2000년대 초기에 타이밍 좋게 나와서 일부 팬층 만들고 추억 보정 받은 게 신의 한수였지, 요즘 나왔으면 불쏘시개 소리 들으면서 보는 애새끼들만 봤을 겁니다.


비슷한 1세대 판타지 소설인 데로드 앤 데블랑은 아르트레스, 아르헬까지 이어지면서 기존의 판타지적 세계관을 붕괴라기 보단 개편, 확장시키는 식으로 작품을 이어갔지만, 나름의 필력과 팬들의 애정이 있는 캐릭터의 존재, 무리 없는 전개로 나름 괜찮은 완결을 맺었지만 이드는 점점 처참할 정도로 질적 하락으로 이어지고, 심지어 작가 본인조차 자기 작품에 애정이 없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망가졌습니다.


애초에 1부도 특별할 거 없고, 비판점이 많은데, 2부는 의미 그대로 작품을 조져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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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산불은 전국 소방관, 소방차를 동원해야할 정도로 거대한 재앙급 산불이었고, 그만큼의 위험성과 피해가 있었기 때문에 특별재난지역으로까지 선포할 정도였습니다.


속초 산불 사건에서 눈여겨볼만한 점이 2개 있는데, 민주당과 자한당의 인식과 활동의 차이입니다. 이게 정말 소름 돋을 정도더군요.



초기 산불이 발생했을 때 당시 국회에선 청와대 안보실장이 국회 운영위 보고를 받고 있었죠.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재난 상황에서 컨트롤타워로 활동해야할 '안보'실장이 양해를 무시 당한 채 자한당 의원들에게 발목을 잡혀 있었고, 기민한 대응을 불가하게 했다는 점입니다.


그 이후의 해명이랄 것들도 황당합니다. 우리 먼저하게 했으면 빨리 끝나지 않았나. 그렇게 심한 상황인지 몰랐다. 등등.. 구차한 변명이죠. 애초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걸 믿지 말아야 합니다. 애당초 그들이 국민들에게 신뢰라는 것을 준 적이 있는가와 별개로, 저런 변명은 어차피 다 알고 다 알면서 했던 걸 애들이 뻔하게 변명할 때나 하던 그런 건데 저런 걸로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설령 정말 몰랐다느니 어쩐다느니는 고려할 것도 아닙니다. 국회의원쯤 되는 위치라면 본인이 모르고 아니고를 떠나서, 아예 몰랐다는 거 자체가 문제가 되고 책임이 될 수 있고, 그것과 별개로 사건과 결과에 따라 더더욱 책임을 져야할 이유가 충분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리입니다.


이게 정말 무섭고 소름 돋는 이유는, 수십년간 안보라는 아젠다를 독점하며 보수=안보라는 등식을 만들어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안보를 위협했다는 또 다른 증거가 더 생겼다는 거죠. 자유한국당과 같은 극우보수 세력이 한국의 안보를 내부에서 위협한 경우가 한 두번은 아닙니다만, 이번엔 그들이 무능하기 때문이 아니라 명백한 정치적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활동했다는 점에서 적성 활동이었습니다.



반면 문재인 정권의 대응은 무척 적절했고, 그에 따른 칭찬도 이어지고 있죠. 세월호와 같은 사건에서 국민들이 정부를 칭찬하기 보단 정부를 욕하고 한 쪽은 쉴드치거나 반대 세력을 선동이나 정치적 공격 등 정치적 의도가 있다며 욕하는 행태를 보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번 일은 그냥 문재인 정권이 잘한 거 맞습니다.


심지어 컨트롤 타워의 머리 중 하나인 청와대 안보실장이 없어도 정상적으로 굴러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용했다는 것도요. 위기, 재난 상황에서 Plan B는 반드시 있어야 하죠. 그런 면에서 시스템 차원에서 준비도, 대응도 잘 한 편입니다.


세월호 당시 컨트롤 타워에 대한 책임미루기가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준비도, 대응도 차원이 다릅니다. 


안보라는 건 적의 포탄과 총알에 의해서만 위협 받는 게 아니죠. 재난, 재해부터 개인이 겪을 수 있는 사고까지. 국민의 건강과 재산을 지키는 게 안보입니다. 그런 면에서 문재인 정권의 안보는 이전 정당보다 탄탄한 거죠.



더불어 정치성의 차이에서도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데, 문재인 정권은 이번 사건에 대해 스스로 자화자찬하지도 않고 잘한 것을 홍보하거나 자랑하지도 않습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나서서 국민들에게 신뢰를 줬고 적절한 대응을 신속히 결단하며 일을 처리해갔죠. 


하지만 반대로 자한당에서는 이번 사건마저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선동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몰랐다느니 먼저 했으면 빨리 끝나지 않았느냐 같은 발목 잡기와 시치미 때기로 책임에 대한 변명부터 시작했죠. 그 이후에 벌어진 것은 황교안이 국회의원도 아닌 이가 내려가서 의전 받고 보고를 받았죠. 참고로 과거 문재인은 더민주당 대표였던 시절 국회의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세월호 사건에도 직접적인 권한도 없는 자신이 내려가서 의전과 보고를 받으며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번거롭게 만들어 행정비용을 발생시키지 않은 적이 있었죠. 


근데 정작 그런 황교안의 행동을 보고 김형남 의원은 트위터에서 황교안 '차기 대통령'이 산불을 해결했다고 신격화를 시도했는데, 이에 대해 북한이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저는 여기에서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선동의 일면을 보았습니다.


산불 상황 때 속초가 지역구인 이양수 의원은 내려갔고, 나머지는 청와대 발목 잡으면서, 자한당은 신경쓰고 내려갔는데, 청와대는 아무 것도 못 했다. 없었다. 프레임 잡으려는 걸로 보이더군요. 다음 대권 주자로 나가서 나라를 '바로잡아야할' 황교안이 그 수혜를 받아야할 얼굴마담이고.


선동 자체도 북한이나 과거 전두환 시절에서 볼법한 수준이었다는 게 그들의 정신세계와 의식 수준이 어느 시대에 머물러 있으며, 현재 어떤 국가와 유사한지 보여주지 않나 싶습니다.



더불어 산불 재난 추경에 자기들이 불리할 때 써먹는, 혹은 공격하기 위해 써먹는 '정치적 의도'라는 마법의 용어를 써가며 반대를 했습니다. 국민들의 재산과 생명에 피해를 입어도 이게 모두 문재인 정권의 책임으로 씌울 수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등에 칼을 꽂는 것이 자유한국당의 정신인 셈이죠.



이런 자한당의 모든 행동이 다 내부적인 적성 사보타주 활동입니다. 국민의 재산과 건강, 생명을 위협하고, 국가의 원활한 활동을 저해하며, 국민을 분열시킨 채, 권력을 확보하여 기존의 활동을 더 수월히하고자 하는 적성집단. 세월호 때도,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이번 사건에서마저도. 그들의 행동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상황일 때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죠. 


다시 말하지만, 안보라는 건 적의 포탄과 총알에 의해서만 위협 받는 게 아니죠. 재난, 재해부터 개인이 겪을 수 있는 사고까지. 국민의 건강과 재산을 지키는 게 안보입니다. 그런 면에서 문재인 정권의 안보는 이전 정당보다 탄탄한 거죠.



끝으로, 이번 산불 사건에서 건강과 목숨을 걸고 헌신, 봉사해주신 모든 소방관 분들께 감사와 존경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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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시간 지키려 116명 더 뽑았더니, 일 더하겠다며 113명 떠났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5&aid=000411565

이 기사는 상당히 악의적인 의도로 쓰여진 기사라고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러한 기사가 담고 있는 '사실'은 분명하게 존재합니다. 실제로 주 52시간 이상으로 일해야 하는, 혹은 일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기는 하다는 점이죠.

 

특히 그런 사람들은 공장 관리직이나 생산직 쪽에 많습니다. 가족들 부양하려면 더 많이 일을 해서 더 많은 시급을 받아야 하는데, 이렇게 강제로 일할 시간을 줄여버리면 그만큼의 수입을 벌지 못하게 된다는 겁니다. 급여는 적은데, 필요한 만큼 벌지도 못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쪽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불필요하고 그만큼의 효율이나 효용조차 없는 책상머리 사무직들은 업무가 다 끝나거나 더 이상의 업무가 필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별 이유 없이 더 오래 책상 앞에 앉아 있으라 요구하는 문화나 상사들이 있고, 그들에게 있어서 그 이상의 노동시간은 그저 괴로울 뿐입니다. 심지어 강제로 더 많은 일을 강요하게 된다면 진짜 과로 등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고 그만큼 여가를 즐길 시간도 없어지고 문화생활에 돈 쓸 시간도 적어지게 되죠.

 

 

각 산업과 계층간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제인데, 이게 사회는 다각적인 시각과 연구, 검토와 계획이 필요하다는 점을 드러내는 일이지 않나 싶습니다.

 

 

정부의 의도야 뭐 이해 못할 것도 아니고, 공감되는 바도 있죠. 하지만 정부는 공공선을 위해서,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악질적인 기업에게 학대 받는 약자인 노동자를 돕기 위해' 한 일이 되려 일부 노동자 집단에게 피해를 야기하게 만들었습니다.

 

말하자면 약자를 위해 한 일인데, 정작 일부 약자에겐 더 큰 피해를 강요하게 된 셈이죠. 어떻게 보자면 정부의 위선이라고도 비판할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위선이라기 보다는 그들의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다각적이지 못하고, 그만큼 허술한, 어떻게 보면 경험이 부족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죠. 이건 민주당이 정권을 가져본 경험이 적고, 최고 책임자나 여당으로써 국가통치와 경영을 실제로 손에 권력을 쥐고 행해본 경험 또한 적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건 민주당의 약점인게 사실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비판은 유효하고 필요하지만, 실책에 대해선 맥락적으로 어느 정도는 이해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실패를 해도 괜찮다는 의미는 아닙니다만. 사실 이 주 52시간 정책은 기존의 최저임금 1만원과 관련이 되어 있었을 것인데, 시급제라 노동시간이 줄면 그만큼 소득 또한 줄어드는 이들에겐 노동시간을 줄여도 평균 시급을 높혀서 결과적으로 가계에 부정적 영향을 최대한 줄이려 했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 반드시 물가 또한 잡아야 한다는 난점이 있죠.

 

 

하여간, 그래도 이건 차라리 더 발전한게 사실이고, 그만큼 잘 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전 극우보수 정권 하에선 개똥 같은 정책으로 아예 국민들 갈라쳐버렸죠. 그것도 아주 간단하고 노골적으로요. 바로 재벌대기업 등 가진 자. 있는 자들과 중산층, 서민 등 가지지 못한 자들로요. 그렇다보니 강자와 약자가 쉽게 나뉘어졌고, 욕을 할 대상을 찾기도 쉬웠습니다. 뭐, 개돼지들이야 그들의 선동과 정치공작에 의해 분열되어가며 같은 약자끼리 싸워댔습니다만..

 

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은 그래도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정책을 구상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위 기사의 사례는 그러한 과정 속에서 나오는 작은 실패--정책적인 완성도의 문제로서 말입니다.--인 거죠. 중요한 건 이러한 실패들을 보완할 수 있느냐입니다. 이는 앞으로 민주당이 더 많은 정권 경험을 가지고 인재풀들이 성장한다면 더 높은 수준의 정책을 설계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그렇기에 위 사례는 현 정권의 허술한 정책 완성도를 보여주는 일면이죠. 의도와 구상을 선의를 가지고 이루어졌겠지만, 그 결과가 모두에게 존중 받거나 이익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하나의 사례일 뿐입니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비판점이 될 수 있겠지만, 단지 이러한 사례를 가지고 단편적으로 문재인 정권이 서민들 뒤통수 친다, 나라 망친다. 더 좋아질 거라면서 거짓말이었다. 라는 식의 반응은 외려 특정 진영이 원하는 반응들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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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습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아래는 태상호 군사전문가의 페북 내용입니다.





이외에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타국의 국가원수 경호 사진들을 찾아보면 미국이든 어디든 총기를 가지고 있거나, 심지어 시민들 앞에서 대놓고 공개적으로 노출한 채 경호에 임하는 경호원들의 모습조차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국도 총기를 지니고 경호에 임하고 있고, 그런 와중에서 대놓고 노출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시피 할 뿐입니다. 이 경우에도 일부러 노출시키려는 의도나 목적은 없었다고 봐야하고, 파지를 하다보니 노출이 된 것으로 봐야할 것입니다.


설령 노출이 된다고 해도 그게 무슨 큰 문제가 될 것도 아니죠. 


`과잉 경호` 논란에 경호 모습 공개한 청와대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3170255&code=61111211&sid1=i

대통령 취임식장에 경찰 장갑차가 왜?

https://news.v.daum.net/v/20130225153908291


대통령을 경호한 거 자체가 문제라면 아무 경호도 없이 국가원수가 암살 당하는 테러 자체가 국가를 흔드는 행위일 거고, 그러한 것을 원한다면 그게 반역자거나 간첩이라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경호원이 총기를 휴대한 것도 문제가 아니고, 그게 어쩌다 노출이 되는 것 또한 문제가 안 됩니다. 막말로 이명박, 박근혜가 대통령 재직 중 누군가에 의해 살해 당하면 당장 눈깔 뒤집어져서 빨갱이 잡아다 죽여야 한다고 길길이 날뛸 사람들 많을 겁니다. 그럼 공정해야죠.


朴 경호원, 건물 화장실서 총기 분실…삼성동 주민이 찾아줘

https://mnews.joins.com/article/21392253#home


오히려 경호원이 총기를 분실한 게 더 큰 문제인데, 이때는 아무 말도, 별다른 비판도 없이 소리소문 없이 묻혔죠. 아는 사람만 욕하고 말았고요.


심지어 대통령 취임식장에 장갑차가 동원될 정도로 테러와 공격에 대해 과잉공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신변안전에 대해 이다지도 편파적이라면 국민으로서의 기본 자격이 미달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비판과 비난이 어째서 벌어지는가하면,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공격하고 민주당을 깍아내리며, 음해하고 방해하며, 그들의 실패를 자신의 성공으로 여기는 진영 때문이죠. 그들은 자한당, 언론 대다수를 위시한 극우보수 진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있을 필요도 없는 논란이 '만들어진' 거죠. 그들이 없는 문제 만들어서 욕하는 겁니다. 외교적 결례니 뭐니 하면서 만들어냈던 거랑 하등 다를 바 없어요.


말레이시아 총리실이 文대통령 ‘외교결례’ 논란에 답했다

http://naver.me/GuiLuMrI


현충원 대통령 명패를 지멋대로 훼손하는 저열한 의식과 행동력을 지닌 이들과, 그들을 대표로 뽑은 이들, 그리고 그런 이들을 물심양면 지원하는 언론에 의해 만들어진 논란이지, 애초에 있을 필요조차 없는 그런 논란이라는 겁니다. 그런 그들을 지지하고 뽑아주어 국민의 대표로 만든 게 바로 극우보수 국민들입니다. 민주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소양이 부족한 집단이죠. 자한당이 천박한 행동을 하고, 저열한 정치공격을 감행할 때마다 그 의원들을 뽑아준 지지자인 그들의 집단의식이 그것을 증명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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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악 작가의 작품은 독자들에게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만큼 그에 대한 팬층의 팬심도 강한 편입니다. 광악 작가의 지식적 깊이와 뛰어난 필력이 아주 높은 평가를 받는데, 솔직히 요즘 나오는 작품 중에 이만한 작품 거의 없다고 볼 정도죠. 그리고 실제로 제 평가 또한 요즘 나오는 많은 소설 작품 중에서 광악만큼 뽑아내는 작가는 별로 없습니다.


심지어 무한전생이라는 아이템부터가 상당히 독특하고 흥미로운 캐릭터성을 부여하기도 하죠. 흔해 빠진 이고깽 비슷한 작품이나 먼치킨적인 작품이 아니라, 어느 정도 현실성이 느껴지는 개연성과 설득력 높은 인물상을 만들고, 그에 따라 발생하는 사건과 줄거리가 논리적인 흐름을 갖추고 있죠. 이러한 캐릭터성과 구조적 개연성은 작품의 몰입도를 높히는 요소죠.



무한전생 시리즈의 특징 중 하나는, 차기작일수록 전생 횟수가 적은 편이라는 겁니다. 현재 연재되고 있는(아직 카카오 페이지엔 안 올라옴) 나중에 몰아보기 위해 작품은 아직 안 봤기 때문에 어떤진 몰라도, 무림의 사부에서 망나니 쪽으로 갈수록 주인공이 부지런하죠.


이는 지나친 전생횟수를 가진 캐릭터는 너무 맛이 가버렸기 때문에 스토리를 주도적으로 흐르게 하거나 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인지, 능력을 부지런히 발휘하는 주인공이 보고 싶은 팬들의 성원을 따르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원래 그렇게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리즈 개성을 생각하고 작품을 만드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찌됐든 망나니로 갈수록 발암도가 줄어들고 주인공이 부지런해지는 것에 더해, 작가의 필력이 점점 더 안정되어 간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아무래도 무림의 사부 쪽이 워낙 스토리가 중구난방이다. 산으로 간다. 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는 작품이다보니 그런 분들에게는 망나니 편이 가장 안정적으로 굴러가는 작품일 겁니다. 실제로 전작들처럼 어디로 튀거나 하는 거 없이 정석적일 정도로 잘 전개된 편이기도 하고요. 물론 이전작이라도 나름의 논리적으로 이어지는 개연성 자체는 있었다고 보는 편입니다만.



이 작품에 높은 평가를 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작가의 조선 역사와 성리학에 대한 이해도와, 유교 국가로서의 조선의 구조에 대한 이해 또한 높았기 때문입니다. 한계가 있다면 유교 그 자체를 조선을 망친 사상 정도로 이해하는 부분인데, 필력이 워낙 뛰어나서, 또한 작품적 허용을 위해 과장되거나 보편적으로 구성하거나 하는 등의 부분들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도, 그러한 요소는 되려 조선과 성리학에 대해 독자들에게 호도하는 면이 있다고 보는 편입니다.


소설 같은 작품이 아니라 그냥 역사라는 분야에 있어서 조선, 특히 유교(성리학)은 필요 이상의 욕을 먹고 있고, 억울할 정도로 오해는 받는 면도 있기 때문에, 조선은 유교 때문에 망했다라는 소리를 엄청나게 들어오고 때로는 논쟁을 하기도, 논파하기도 한 적도 있는 본인 입장에서 그러한 요소는 사실 좀 불편할 수밖에 없거든요.


성리학의 구조적인 문제점도 있고, 유교가 조선을 망친 면도 분명하게 있지만, 사실 그건 유교라는 사상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운용한 사람의 문제이고, 그것을 견제하거나 올바르게 세우지 못한 것은 되려 사상보다는 현실정치의 문제라고 봅니다.


성리학이 아니더라도 조선의 문제들은 이전 시대나 동시대의 다른 국가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었고, 그러한 문제가 심화되어 멸망된 국가들도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유교, 성리학이 유교를 망쳤다고 하지만 반대로 유교 대신 기독교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조선은 똑같이, 비슷한 문제로 망해갔을 겁니다. 그러한 문제는 사상이나 종교,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그 자체와 집단으로서의 국가체가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까놓고 말해서 현 시대의 국가들조차 그러한 문제점에 대해 더 높은 수준의 시스템으로 견제 받고 억제 받는 것일 뿐이지, 아직도 그러한 문제에서 탈피한 것이 아니고, 어떤 면에선 과거보다 더 노골적으로 더 많은 욕망을 가질 수 있게 하기까지 하죠. 그만큼 고도화된 시스템과 방대한 자본에 의해 할 수 있는 게 더 많고, 그러한 것에서 얻을 수 있는 권력이 더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조선이라는 국가(작중에선 호선)를 망하게 한 것은 유교라고 보기엔 호도되는 면이 작지 않습니다. 물론 본 작품에선 현실에서 모티브를 따온 세계관의, 호선이라는 가상의 국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고, 위에서 말했듯이 작품의 전개를 위해 과장되거나 보편화시켜야 하는 면도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작품적 허용으로 본다면 아무런 문제는 없겠죠.


오히려 그러한 것이 더 이해하기 쉽고 전개하기에도 수월하며, 불필요한 설명과 서술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단순화가 작품의 재미를 보장하는 것도 물론 기법이라는 건 납득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비판을 하는 이유는 조선, 역사에 대한 오해가 발생할 수 있음을 여러곳의 많은 이들에게서 경험해봤기 때문에 하는 거죠.



어찌됐든, 그러한 요소들을 감안해도, 무한전생-망나니라는 작품에서 서술하고 설명하는 조선(작중 호선)의 구조와 성리학적 구조를 이용하고 오남용하는 사대부의 행태, 붕당 등의 파벌정치의 문제, 왕권과 신권의 대립 등을 상당히 쉽고 깔끔하게 정리했다는 점은 굉장히 높은 평가를 줄 수 있는 부분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한 조선의 정치와 계급과 사상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부패의 구조는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면 알 수 없고, 묘사하기 난해해지는 것들이기 때문이죠. 숱한 작가들이 이러한 조선을 모티브로 한 국가나 가상의 배경의 가상의 국가를 묘사하면서 그 정치구조나 계급이나 파벌, 진영간의 관계 구조가 현실성이 없거나 수준 자체가 너무 낮은 이유는, 양판소 수준의 낮은 이해를 가지고 섣불리 시도하기 때문이죠.


거의 딱 중학생, 잘해봐야 고등학생 수준의 이해를 가지고 잘 모르는 것을 묘사하려니 현실성이나 개연성의 수준이 팍 떨어지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광악 작가는 상당한 공부를 한 것이 보이고, 그에 대한 이해 또한 상당히 높은 수준이죠. 어느 면에선 배울 정도이고, 사실 이 작품에서 조선과 사대부에 의해 만들어진 구조에 대해 '공부'하게 된 사람들 많을 겁니다.


심지어 광악 작가는 전투나 전쟁 묘사에 대해서도 상당한 필력을 보여주는데, 그 정도 지식과 이해도를 가지고 전투씬을 서술하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정도겠죠. 초반부터 후반까지, 처음 어머니가 죽고 윗대가리 털러갈 때부터의 개인의 무력이나 이후 야차대를 운용할 때나, 그 이후 수 차례의 반역을 진압하고 북방에서 날뛰고 왜군과 싸우는 때까지 상당히 설득력 있고 유효한 전술과 전략으로 묘사를 합니다.


현실적 개연성이 있는 조건들을 가지고 잘 버무린다고 할까요? 개인의 무력 부분이야 전생의 짬밥이라는 면에서 넘어가는 면도 있지만, 사람 잡을 때의 능력 또한 통할 법한 수법을 사용하는 묘사를 하고 있고, 군대를 동원한 전쟁에서 또한 징집병의 떨어지는 사기+훈련도, 실전 경험이 거의 없는 사대부의 한계를 절묘하게 노리는 전략과 전술을 동원하죠. 


개인이나 극소수의 깽판질이 아니라 사보타주와 암살 등의 군사적 테러에 가까운 전술로 전략적 이득을 가져오고, 군대간의 전투에 있어서도 용양군이 제대로 운용되기 전까지는 비정상적인 정예도나 단지 지휘관이 지휘를 잘해서 높은 전과를 낸다 수준의 양판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편한 전개보다는, 도성 내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적의 행동을 강제 및 통제하고, 유효한 타격을 낼 수 있는 방식으로 공격하며, 기름통+불의 화공 및 화약통 폭발로 인한 급격한 모랄빵을 이용한 전술들은 광악의 필력과 함께 상당히 견실이 묘사되었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결코 유치하거나 억지스럽지 않게 묘사가 되고, 물흐르듯 자연스럽고 개연성에 있어서도 납득이 될 정도로 잘 썼다는 겁니다. 이런 면에서 특히나 양판소들과는 다르다는 평가를 줄 수밖에 없고, 작품 내에 필요한 부분들에 대한 요소들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다는 거죠. 이전작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사실 이런 장르를 가지고 양판소 작가들은 현대인 천재론을 위시해서 이세계물 비슷하게 이고깽 소설을 써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른 일본산 이세계물에서 볼 수 있는 웃기지도 않을 몰이해와 지식 수준으로 깝치는 것들은 어디까지나 소설이기 때문이고, 작가의 수준이 낮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겁니다.


특히 역사와 관련된 이고깽질은 더 유치하기도 하고 역사적 열등감이 묻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슷한 장르의 다른 웹툰이나 소설들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죠. 어떻게 보면 역사적 열등감에 따른 자위질이라고도 볼 수 있을 정도로요.


근데 망나니는 그러한 유치함이나 저열함으로 흐르기 쉬운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성을 기준으로 그러한 맥락이 형성될 수 없도록 틀을 잡아 놓고, 작가의 지식과 이해도를 기반으로 구체적인 묘사와 서술을 통해 오히려 조선(작중 호선)이 가지는 문제의 본질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김찬석이라는 무한전생자의 깽판과 대책으로 가상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죠.


이러한 구조와 전개는 앞서 지적하는 역사 자위물들과 다른 인식을 만들죠. 솔까 호선이 앙국보다 국력이 2배 이상이라는 부분에선 그게 될 수 있는 것인가와 이건 좀 국뽕이다 싶을 정도의 거부감이 느껴지는 무리함이 발생했다고 보지만, 그런거 제외하면야 뭐.. 쉽게 말해 유치하지 않았다는 거죠.


이고깽질하고 되도 않는 이해도로 개떡 같은 걸 해결책, 대응책이랍시고 제시하면서 양판소 만드는 것보다, 현대적 지식을 갖추고 있는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유효한 해결책이나 대책을 보는 사람(또는 작가 본인)이 역사적 열등감에서 기인하는 오르가즘을 느끼기 위해 쓰는 게 아닌, 주인공이 양반 사대부를 존나게 엿을 먹이겠다는 목적으로 목적성을 부여하면서 개연성을 만들죠. 


물론 그러한 양반을 조지겠다는 목적성 자체가 어떤 면에선 개연성이 부족하기도 하고, 너무 성의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비판은 피할 수 없다고 봅니다. 다만 어느 정도 쉴드를 쳐주자면 지난 몇만년 정도였나, 그 정도를 밑바닥 인간으로 전생을 해온데다 마침 빡치는 좆같은 일이 터진 김에 양반에게 자기 속풀이 존나게 하는 거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에 개연성에 있어서 근거는 확보해놓은 거죠. 그리고 이 정도 개연성도 제대로 구성해놓지 않은 작가나 작품들을 생각해보면 뭐.. 이 정도면 (아이러니한 표현이다만) 양반인 셈이죠.



하여간 무한전생-망나니는 작가의 필력과 여러 분야에 대한 높은 수준의 이해, 지식, 작품을 이끌어가는 구조적 흐름 등 유치하거나 국뽕 쩔게 자극하는 물건으로 저열화되지 않으면서도 흥미와 재미, 심지어 어떤 면에선 독자로 하여금 역사적 지식을 얻게 하는데에 성공한 작품이라고 봅니다.


확실히 작가가 아는 게 많고 필력이 좋으니 작품이 잘 나온다 싶습니다. 심지어 그 두개를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개나 완결에서 실패하는 이들도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광악 작가는 상당히 뛰어난 작가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망나니 편은 발암이 거의 없었고, 전개도 시원하게 잘 나갔기 때문에 광악 작가의 무한전생 시리즈에 입문하기엔 가장 좋은 작품이라 보기도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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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안 민주당이 똥볼을 차고, 정치싸움과 여론전에서 밀리는 모양새가 만들어지고, 현재 발생하고 있는 고위층의 성접대 문제가 정준영의 성범죄로 프레임이 가려지는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걸 보면 참으로 답답한 새끼들이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진짜 개병신 같아 보여요.


자한당 쪽이야 뭔 짓을 해도 극우좀비라 해도 좋을 골수 지지자들이 있기 때문에 무슨 망언을 하고 무슨 비리를 저질러도 용서를 받는 반면, 민주당은 선동정치, 언론플레이도 제대로 못하는 바보들입니다. 물론 기울어진 운동장인 건 인정해야죠. 언론, 검찰, 경찰, 법원 등 각계각층에 뿌리 깊고 끈끈한 연대를 공유하는 극우세력이기에 똑같은 짓을 해도 받아주고 감춰주고 대응해주는 규모와 방식이 다르죠. 편이 더 적은 민주당이 무조건 불리한 싸움입니다.


그럼 최소한 까일 거리를 주질 말아야죠.


그렇기 때문에 자한당과 극우보수의 선동질 수준 자체는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다만 거기에 넘어가는 인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극우와 연결된 언론사가 운동장을 기울게 만들었기 때문에요. 물론 진짜 큰 스캔들, 범죄들이 밝혀지거나 할 때는 이번 정준영 사건처럼 더 높은 곳에서 판을 설계하고 진행시키는 게 보이긴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고위층의 성접대 문제에서 정준영 사건으로 덮으려고 하고 있죠. 증거가 너무 빨리, 많이, 쉽게 언론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이 이미 증거는 모아놓고 터뜨린 거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전에도 말했듯이, 국민들의 스펙트럼이, 정치의식에 있어서 중세~현대까지 쭉 있습니다. 근데 극우보수 쪽으로 갈수록 개돼지 중세 백성들이 더 많다는 거죠. 그래서 이쪽은 개돼지 취급 해주면 알아서 노비짓을 하는데, 진보 쪽으로 갈수록 그나마 현대에 가까운 의식 수준이라 그런 이들의 지지를 받는 정당에선 더 다각적인 고려와 정치공학적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민주당 내 당원들의 스펙트럼만큼이나, 그 이상으로 (좋든 싫든 지지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스펙트럼은 더 넓습니다. 그래서 민주당은 자기 지지자들에게 만족할만한 걸 내놓기가 더 어렵죠. 극우보수 쪽이야 거의 통합되어 있는 공통된 사상이 있고, 그 내부에서 지런저런 파벌이 존재할 뿐이고, 공통된 적이나 위험 앞에서는 그래도 서로 뭉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각한 분열이 쉽게 발생하지도 않고,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금방 다시 뭉치게 됩니다.


하지만 진보 쪽은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에 같은 진보의 틀 내에 있어도 굉장히 쉽고 많은 분열이 발생하기 쉽죠. 지금의 문재인 정권에서도 그런 면이 있고요. 그나마 반문이라던 이들이 문재인 정권 이전에 갈라져 나온 게 있기 때문에 민주당 내부에서의 분열보다는 기존 진보 내에서 민주당과 비민주당(정의당, 녹색당, 국민의당 이후 일부 바미당 등), 진보 언론

간의 분열이 있었죠.


뭐 하여간, 이런 분열 양상을 말하자는 게 아니라, 그만큼 진보의 스펙트럼이 넓고, 그렇기 때문에 다수가 만족할만한 걸 찾기 어렵고, 그렇다보니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제안하고 실현하기에 있어서 부담이 된다는 겁니다.



현재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는 현실인식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 지난 설훈의 발언처럼 민주당 지지율이 낮아지는 이유가 20대 세대가 보수정권 때 교육을 받아서라는 망언을 한 적 있죠. 뭐 사실 아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 사람의 생각을 차근차근 들어봤을 때 맞는 말일지라도 말을 그렇게 하면 누가 이해를 해주겠습니까.


이게 민주당 내의 보편적인 이해 수준이고 분위기라면, 민주당 놈들은 위기의식 좀 강하게 가져야 할 겁니다. 현실인식부터 다시 해야 하고요. 통치로서의 정치는 그럭저럭 잘 하는 편이지만, 관계로서의 정치, 선동정치는 진짜 더럽게 못하는 바보들입니다. 불리한 건 인정해도 말이죠.



민주당도 당 색깔을 바꿔야 합니다. 기존 이미지 버려야 되요. 민주당은 고고한 척 하지 말고 노련하고 날카로운 정치적 감각을 가진 이념이나 사상보다 정치적 이익을 세련되게 잡아챌 줄 아는 전문가 코스프레라도 해야 합니다. 


정치에 선악은 없고, 선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의지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권력과 (주체가 누군지는 달라질 수 있어도)이익을 위한 정치의 결과로 더 정의롭고 선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저 권력자의 선한 의지와 신념만을 기대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물론 더 정의롭고 선한 정치인의 존재는 좋은 일일진 몰라도, 싸구려 도덕관념이 국가적, 사회적 손실을 야기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어요.


때로는 경쟁자를 씹고 공격하면서 권력을 얻어야 하고, 그렇게 얻은 권력을 더 좋은 곳에 쓰면서 그 결과로 자신들의 성과를 만들어내서 권력과 명예를 얻어야 한다는 겁니다. 거짓선동과 악질적 왜곡이 아니라 존재하는 진실을 이용해서 비판하기만 해도 됩니다. 특히 자한당이 상대라면 이미 깔 거리가 너무도 많고요.


민주당은 정의로운 이미지를 만든 게 아주 독입니다, 독. 자기들이 착한 줄 알고, 착한 척을 하니 정치질 하는데 불리한 거죠. 겉으로는 정의로운 척, 정당한 척을 해도 뒤로는 뱀 같은 정치력을 발휘해야죠. 부정해보인다고 해도 언론사 사장도 갈아치우고, 검찰에도 연을 만들고 밀어줘서 자기 진영 사람을 중추에 넣고, 재벌 대기업과 편을 먹는 건 좀 위험한 일이니 차라리 채찍과 당근으로 길들이기라도 해야 합니다.


근데 민주당은 그럴 능력이 없는 건지,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더럽다고 생각해서 그런진 몰라도 이런 걸 못합니다. 안 하는 건지. 


진보새끼들이 고고한 척은 겁나 합니다. 자기 쫀심 때문에 안 하는 것도 있을 겁니다. 자기가 예전에 비판한 거 있으면 그게 자기 족쇄가 되서 그 짓거리 똑같이, 혹은 비슷하게라도 안 하려고 하죠. 근데 상대는 그렇게 한단 말입니다. 악의 방법론은 권력을 획득하고 이익을 창출하는데 있어서 효율적입니다. 그 악의 효율성이 무너지기 전까지는요.


근데 지금 그 방법론이 무너졌습니까? 안 무너졌죠.


뭐 자한당처럼 노골적이고 부정부패한 수준으로 하라는 게 아닙니다. 가령 언론사 사장의 부정부패를 파서 공격하고, 그렇게 물러나게 만들면 자기 사람 넣으라는 거죠. 이게 정당한 명분을 가지고 하는 정치라는 겁니다. 검찰에 연을 만들어서 친민주당 파벌을 만드는 것도 더러운 정치검사를 모으거나 만들라는 게 아닙니다. 검찰 내에 다른 진영의 부정부패를 캐는데 있어서 뒷배가 되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검찰이 다른 진영의 개가 되는 걸 억지하고, 견제하며, 때로는 그들을 칼로서, 그들의 방패가 되어 자기 일 제대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게 정치인, 정치집단으로서 해야 하는 관계로서의 정치입니다.


근데 민주당 새끼들은 시발 능력이 없는건지 대가리가 없는건지. 고고한 척은 존나게 하면서 문재인처럼 고고하면서도 능력이라도 있으면 뭐라고 안 하지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맨날 지는 거죠. 그나마 통치, 외교적 안목과 능력이 자한당에 비해 압도적이라는 겁니다. 사실 세계 평균이거나 좀 더 잘하는 편인데, 자한당이 워낙 못해서 압도적인 것 뿐이지만요. 



그러니 더 뛰어난 정치력을 가져야 하고, 그렇기 위해서는 당의 이미지를 바꿔야 합니다. 기존처럼 고고한 척 하며 정의로운 이미지를 가졌다면 노련한 정치력이 민주당의 더러운 부정으로 덧칠해질 겁니다. 그러니 노련하고 날카로운 정치적 능력을 가진 전문가로 탈바꿈을 해야 합니다. 그럴만한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그런 이미지를 장기적으로 가질 수 있다면 민주당은 운신의 폭과 정치적 가능성의 폭이 더 넓어질 겁니다.


자한당이 수 십년 동안 안보는 보수정당. 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실제 안보를 파괴하고 불안하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안보적 위험 상황에서 지지율에서 이익을 가져간 것만 봐도 실제 능력과 현실보다는 대중이 인식하는 이미지가 어떠한 정치적 이익을 만들어내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고, 만연하고 반복된 부정부패가 대중들에게 너무 익숙하게 받아들여지다보니 이제는 욕 한번 하고 마는 수준이 되어 지지에 큰 변동이나 패널티로 작용하지 않게 되기까지 했죠. 물론 이건 지지 안 할 사람은 안 하고 할 사람은 죽기 전까지 한다는 지형을 고려해야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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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자위대 행사 참석 등으로 유명한 나경원 자민당 한국지부 대변인이 문재인 대통령을 북한 대변인이라는 식으로 비난했습니다. 그에 따라 민주당은 강력히 반발하며 이해찬의 국가원수 모독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무리한 발언을 던졌죠. 


순서대로 따져보자면, 자한당의 정권 발목 잡기, 정치혐오 조장, 무조건적인 반대를 일삼고 있다는 거고, 민주당은 여기에 대해 기민한 반응을 내놓지 못하고 제대로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근데 이런 행태야 하루 이틀 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새로울 건 없지만, 문제는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시점이라는 것과, 온갖 부정부패와 부패의 카르텔이 각계 각층에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는 시기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거죠.



정치공학적으로 봤을 때, 자한당을 지지하는, 그리고 지지했고, 다시 지지하기 시작한 국민들의 수준은 낮습니다. 자한당이 무슨 말을 하든, 어떤 망언을 하고 국가정체성을 부정하는 행위와 온갖 범죄를 저질러도 그들은 자한당을 용인하고 다시 표를 주고 찍어줄 겁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자한당은 그들의 지지자가 원하는 말을 해주는 거고, 지지자들은 자한당이 그런 망언을 할수록 좋아하거나, 최소한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한당은 자기들의 사상인 동시에, 지지자들이 원하는 말을 해주는 거죠. 그들의 그런 망언과 사상이 용납될 수 없는 민주 사회라면 그들은 결코 국회에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백 수십명 단위로 있다는 건 국민 과반, 혹은 그에 가까운 국민들의 그러한 구시대적 가치관과 불손한 사상에 찬동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죠.


따라서 자한당이 어떤 망언을 하고 범죄를 저지르며 더러워져도 지지자들은 결코 그들을 놓에서 놓지 않습니다. 아무리 박근혜, 최순실 사태때 지지도가 떨어지고 역풍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선 당시 홍준표에게 얼마나 많은 표가 갔는지 생각해보면, 결코 상식적인 일은 아닙니다. 


자한당은 어떤 말을 해도 지지도가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오르면 올랐습니다. 지금의 상황이 그 증명이죠. 더욱이 공격을 하고 더러워져도 돌아오는 리스크가 없고(적고) 돌아올 이익이 있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거죠. 말도 안 되는 선동과 날조로 문재인과 민주당을 어처구니 없게 공격을 해도 지지자들은 좋아하고, 어차피 지지하지 않을 사람들은 지지하지 않습니다.


5.18에 대한 자한당의 발언도 마찬가집니다. 어차피 지지 안 할 진영 사람들은 철저하게 선을 긋고, 자기 지지해줄 사람들은 이런 표현과 주장에 동조하고 같은 생각을 가졌으니, 그 사람들 속을 긁어주는 정치공학이라고 봐야 한다는 거죠. 내년이면 총선인데, 미리미리 작업치는 겁니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런 정신나간, 수준 떨어지는 소리를 시원하게 여기는 그 진영 국민들의 인식과 사상이 처참하리만치 절망적이라는 걸 그들의 대표가 보여주는 거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수 십%의 지지를 받는다는 거 자체가, 다시 말하지만. 그래도 된다는 걸 의미하는 거고, 더 나아가면 지지자들이, 지지자들 중 그걸 원하는 이들도 있다는 걸 의미하는 거죠. 그만큼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시대적 가치관이 중세~현대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갖추고 있다는 거고요. 박정희를 반신으로 받들며 제사를 지내는 이가 있는가 하면, 구태와 적폐에서 벗어나고자 촛불을 들고 나서는 사람이 있는 정도로.


반대로 민주당은 어떨까요? 민주당의 스펙트럼은 넓고, 지금은 기존과 같은 반자한당=민주당 지지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정의당으로 가거나, 최소한 투표를 포기하는 수순도 일어나며, 되려 배신감을 느낀 이들이 아예 자한당에 한번 좆되봐라 하면서 표를 던지는 상황 또한 고려해야 합니다.


자한당은 무조건 자한당에 표를 주는 콘크리트가 대부분이고, 친자한당으로 흐를 수 있는 상대적 중도도 적지 않지만, 민주당은 지난 10~15년 동안 그 지지자들의 정치의식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정치지형 또한 변화했고요.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에게 반드시 표가 더 갈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중간만 가도 좋지만, 똥볼을 차면 찰수록 더 크게 리스크로 돌아오는 게 민주당이라는 거죠. 더욱이 민주당은 통치로서의 정치는 잘하는 편이지만 관계로서의 정치를 못합니다. 쉽게 말해서 국정은 그럭저럭 잘 하는 편이지만 국민들에 대한 (정치적 의미로서의) 선동, 언론플레이 같은 걸 잘 못합니다. 이런 쪽으로 요령이 없죠.


그래서 민주당은 자한당의 어처구니 없고 뻔뻔한 공격에도 어떻게 반격해야할지 모르는 겁니다. 사실 이런 쪽으로 자한당을 배울 게 없었어요. 걔네들은 공격을 받아도 물타기, 뻔뻔하게 버티기, 그렇게 해도 어차피 지지해줄 콘크리트 좀비들 덕분에 어떤 공격을 해도 별 소용이 없었거든요.


그렇다고 자한당에 대한 공격을 할 주변머리도 부족하고, 그래서 안 될 이유마저도 있죠. 할 능력도 없지만 그렇게 하면 결국 지들끼리 싸우며 정치혐오가 발생하고 그럼 정치에 대한 관심을 끊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될 우려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민주당은 이런 쪽으로 전문가를 가져야 합니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애초에 운동장 자체가 기울어져 있으니 더 어려운 것도 있습니다. 국민 1/4 이상이 자한당의 좀비들이고 언론은 무조건 자한당 편이고 그 한경오조차 반문 기회주의자들일 뿐이니까요.


자한당의 개소리를 반박하며 증명해줄 언론도, 그 언론의 힘도 없고, 가짜뉴스를 검증하거나 반박하거나 정부의 공을 홍보해줄 언론도 없습니다. 왜곡이나 안 하면 다행이죠. 그런 면에서 정부가 힘이 없는 건 단지 정치 뿐만이 아닙니다. 수 십년 동안 쌓아온 족벌, 혈연, 학연, 지연 등 정치적 관계가 극우보수에게 유리하게 짜여진 지형이기 때문이죠.




서청원이 민주당 3년이면 다 까먹는다. 라고 했는데, 사실 그렇게 되가고 있죠. 그렇지만 이게 온전히 개돼지 국민들 탓이라는 건 아닙니다. 지금 이 사태의 원인 중 하나, 그리고 그 원인의 큰 지분을 가진 게 바로 민주당 스스로의 똥볼과 몰인식 때문이죠.


당장 페미에 대한 인식과 지지, 관련 정책은 10~30대 남성들에게 극도의 반발과 혐오를 불러 일으켰고, 민주당과 문재인 본인에게 상당한 배신감을 느끼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더 강력해진 검열은 자유와 민주를 위해 촛불을 들었던 이들과 실질적으로 성욕에 대한 배출이 제한 당한 이들에게 더욱 원색적이고 노골적인 적대감을 발생시켰죠.


현 20대 청년들의 민주당에 대한 반발은 일베 등을 제외하더라도 페미와 같은 문제가 가장 큽니다. 실제 페미들의 말도 안 될 정도로 노골적인 미친짓을 지지하겠다고 나섰고, 실제 정책적으로 지지하거나 지원하는 형식을 띄어버렸으니까요. 그 꼴페미적인 인물이 장관까지 하고 있고 전혀 나아지긴 커녕 악화되었으니 그거 때문만으로라도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이들도 발생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죠. 미세먼지 없는 국가를 만들겠다면서 실질적으로 하는 게 별로 없습니다. 미세먼지 문제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해결되지도,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없어 보입니다. 이는 중국몽 드립을 친 문재인과 엮이면서 중국에 아무 것도 못한다는 프레임이 만들어졌죠.



사실 이건 민주당도 할 말이 없는 것들이 아닙니다. 페미에 대해서는 걍 걔네들이 아재식 페미 + 성차별에 대한 깊은 통찰과 고려 없는 행동 때문에 그런 거니까 이에 대해선 할 말이 원론적일 뿐 비판 받은 껀덕지야 차고도 넘칩니다만, 검열에 대한 문제는 이전 글에서 말했듯이 명분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일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까지도 있었죠. 그 해결책과 대책이 현실성과 실질적인 성과에 대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수준인 게 문제고요. 물론 이것도 비판 받아야할 일이 맞습니다.


2019/02/13 - [취미/이야기] - 성인 사이트 등 불법 사이트 차단 사태에 대한 단상.


또, 미세먼지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가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http://www.me.go.kr/cleanair/index.do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07/2019030700391.html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56&aid=0010679707


다만, 정부가 이런 쪽으로 영 서투르다는 게 문제고, 이걸 빌미로 공격하며 그걸 퍼나르며 공격에 동참하는 언론들의 문재인, 민주당 죽이기 또한 고려해야 합니다.


실제로 정부가 이런 쪽으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체감하기 어렵죠. 왜냐하면 미세먼지가 국내발생보다 중국에서 날아오는 게 심하고, 그렇게 날아오는 걸 다 막거나 해결하기엔 기술적, 자본적, 환경적 한계가 명확합니다. 실제로 대책을 한답시고 인공강우로 해봤지만 이건 실패하는 등 결국 다른 걸로 돌아서기도 했죠. 이에 대해 언론은 우왕자왕이라고 표현하고 비판했지만, 어차피 문재인 깔 언론사들이 온당한 빌미를 잡은 것 뿐입니다.


뭐 중국몽 드립이야 그저 립서비스에 불과할 뿐이고요. 이건 중국 같은 나라에는 꽤 유의미하게 필요하고 먹히는 거라서 해주긴 해줘야 합니다. 중국몽 드립을 해준 가장 큰 이유는 사드 보복 때문이었고, 한국은 일대일로와 미국과의 군사, 경제적 관계에서 후자를 택했기 때문에 말만 중국몽이지 별 의미는 없습니다. 그게 마음에 안 든다고 까는 거라면 뭐 상관은 없습니다만, 배알도 없는 친중적 사대 같은 게 아니라 의미가 없진 않은 정치외교적 립서비스라는 점은 고려해야지 싶습니다.



민주당은 이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끼고 사태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이해를 갖춰야 합니다. 설훈의 20대는 보수정권의 교육을 받아서 자기네 정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는 식의 발언은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하면 안 되는 겁니다. 자기들이 못한 것도 분명히 존재하고, 그 지분이 결코 적지 않음에도 현실을 도피하고 남탓을 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이고, 민주당은 자한당과 달라서 지지자들의 지지 철회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정당입니다.


이해찬의 발언들은 예전부터 문제가 됐었죠. 너무 막나가는 화법으로. 이번에도 국가원수 모독죄 발언은 어떻게 보면 나올법도 할 정도로 나경원 자민당 한국지부 대변인의 발언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빨갱이 드립에 제대로된 대처도, 대응도 못하는 거야 그렇다쳐도, 그에 대한 반격으로 나온 게 국가원수 모독죄라.. 다른 때라면 아주 큰 일 없이 넘어갔을 법한 발언이라도, 북미회담이 결렬되고 미사일 발사를 재개할 거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시점에서 그런 발언은 자한당 같은 뻔뻔한 이들에게 오히려 먹잇감이 되는 거죠.


당장 이걸로 여론전 하면 자한당이 아깁니다. 자한당 지지자들에겐 속 시원한 말인데, 정작 국가원수 모독죄가 민주당 입에서 나오면 자한당이 다시 공격한 것처럼 저것들이 독재를 한다며 욕합니다. 정작 독재를 가장 사랑하고 그걸 원하는 자한당 지지자들이 말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독재는 극우보수 독재, 과거 군사독재이지 빨갱이에 의한 독재나, 민주당 전라도 새끼들의 독재가 아니기 때문이죠. 이에 대한 모순이나 논리적 하자를 발견하거나 이해할만큼의 지성을 갖추지 못한 진영이기 때문에 자한당은 피해가 없습니다.



반면 더 높은 도덕성과 논리적 정합성을 요구 받고 스스로 요구하는 민주당 쪽에서는, 더욱이 처참한 국내 정치력, 언론플레이 능력, 지지자의 넓은 스펙트럼에 대한 다각적 고려와 정치공학에서 밀리기 때문에 이런 공격에 취약합니다. 당장 황교안부터가 나경원을 국회 윤리위에 제소하면 단호히 조치한다고 나서고 있고.



뭐, 기본적으로 나쁜 놈이 나쁜 짓 계속해도 그러려니하지만 착한 척하고 고고한 척하는 민주당이 개짓거리, 똥볼차면 바로 위선이라고 욕하고 지지 철회하고 노골적으로 비난, 비판을 받는다는 점에서 민주당은 항상 불리합니다. 그렇다고 똑같은 쓰레기가 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죠.


심지어 정책과 정치조차 똥볼을 찬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 동안 일 잘해왔고, 사실 지금도 잘하는 부분 많습니다. 문제는 페미, 미세먼지, 검열 등 젊은 세대에게 특히 민감하고 용납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 스스로 꺼리를 제공했다는 거고, 그에 대해 너무 몰이해 하고 있다는 겁니다.


앞서의 설훈 보수정권 교육 운운하는 게 민주당 내의 분위기라면 현실에 대한 인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당장 충청도에서도 자한당 지지가 민주당보다 높게 나왔고, 30%대 회복 했습니다. 충청까지 넘어간 건 다음 총선 때 매우 힘들어질 거라는 거고, 이는 문재인 당선 당시~1년간을 돌아봤을 때 상당한 반등입니다. 어차피 자한당 지지할 사람은 다시 복귀하고 있고, 문재인과 민주당은 똥볼차면서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있으니 기존과 달라진 지지자들의 정치인식에 따라 지지철회가 발생하고 있고요. 물론 민주당과 대통령에 대한 꾸준한 불공정한 공격을 해대는 언론의 존재를 망각해선 안 됩니다만.




민주당은 더 열심히 해야하고, 위기감을 가져야 합니다. 민주당이 정권을 얻은 건 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항상 그렇듯,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못했기 때문이고, 지금은 민주당이 못하고 있습니다. 잘하는 것도 많지만, 언론이 그걸 이야기해주지 않으니 더더욱 잘해야 한다는 겁니다. 아니면 정치력을 통해 언론을 손에 쥐든가요. 물론 그건 불가능하죠. 세력에서도, 돈에서도, 인맥과 카르텔에서 밀리니까요. 그럼 적어도 물릴 거리는 줄여야죠. 페미나 검열 관련해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안 하고 있죠. 인식부터가 문제라서.



마지막으로 국가원수 모독죄가 참으로 뻔뻔하다고 느껴서 몇가지 과거 기사를 나열하며 마치겠습니다.


노무현은 '사이코', 박근혜는 왕이라는 건가?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1936073

박근혜 비판했다 오토바이까지 걸렸다고요?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81197.html
막가는 종교계, 이제는 박근혜 대통령 암살까지 거론
http://www.mediawatch.kr/news/article_print.html?no=243689
[Why뉴스]"새누리당은 왜 '박근혜씨' 발언에 발끈하나?"
https://www.nocutnews.co.kr/news/1130141
'귀태'에 총궐기한 여권, 연극 <환생경제> 잊었나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no=108074
정의당 “‘朴대통령, 죄의식 없는 확신범’ 노회찬 발언, 국민 대변한 것”
http://www.edaily.co.kr/news/read?newsId=03217686612815216&mediaCodeNo=257
김윤태, "‘막말 정치’의 사회심리학-폭언을 ‘합리적 행동’으로 보는 거대한 착각" (중앙시사매거진 201410호)
http://ipm.hallym.ac.kr/column/39841
"경축! 비행기 추락, 바뀐애(박근혜) 즉사"???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4/01/20/2014012000080.html
경찰, 박근혜 전단지 배포자 탐문조사...안기부 사찰 부활?
http://www.newscham.net/news/print.php?board=news&id=63825
윤관석 "檢 박지원 기소, 전형적 정치검찰"
http://www.inews24.com/view/845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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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라트 로렌츠의 실험으로 잘 알려진 우리 속 두 비둘기의 사례는 흔히 복종의 자세를 취하면 공격을 멈추는 본능적 장치가 있는 늑대와 이미 패배한 한 쪽을 죽을 때까지 공격하는 비둘기의 대비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여러 사색으로 이끌기도 하죠. 약자인 비둘기의 잔혹한 폭력성이라든가.. 


물론 이는 비둘기와 늑대의 생태와 집단생활에 따른 본능의 차이를 염두해둬야 합니다. 가령 비둘기는 원래 싸움에서 지면 도망가야 하지만 가둬뒀기 때문에 두 비둘기의 생활권에서 쫓아내기 위해선 어느 한 쪽이 죽어야만 끝날 싸움이 된 것이죠. 원래라면 걍 싸움에서 지면 도망갔어야 했다는 겁니다.



로렌츠의 실험, 관찰과는 궤가 다르지만, 실제로 약자의 폭력성이 더 잔혹한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컨데 저소득층, 막노동꾼이 자신보다 더 약자에 있는 이들(알바생, 공무원 등)에게 갑질을 하는 경우가 있죠. 실제 소득수준이 다른 지역에서 모두 알바 생활을 해본 이의 말에 따르면 더 잘사는 쪽이 더 유하고 예의있게 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도 있죠. 가진 자는 여유가 있기 때문에 약간의 손해나 피해에 더 관대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관대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없는 자는 항상 부족하고 없기 때문에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고, 그만큼 조그마한 손해에도 날카롭게 반응할 수 있죠.



페미를 위시한 여성계는 스스로를 약자라고 낙인찍습니다. 하지만 어떨 때는 반대로 Girls can do anything,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며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히는 표현을 쓰며 약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하죠. 공통점은 자존감이 낮다는 점입니다. 후자는 단지 여성 특유의 허세, 강한 척, 의연한 척을 하며 자기 자신에게 도취되는 감정과잉에 빠져 있다는 거죠. 


사실 여성은 약자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맞지만, 페미 진영에서 말하는 약자라는 말은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캐치프라이즈 따위에 더 가까울 겁니다. 사실, 여성은 여성이라는 것을 무기로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죠. 아니, 그 이상입니다. 여성은 자기가 여자라는 점을 어필하며 그걸 써먹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정도죠.


유리천장이 있으면 유리바닥도 있다고 하는데, 여성들은 여자라는 성별을 유리바닥으로 써먹습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받는 특혜와 유리한 진형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동시에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죠.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공격하면 되려 찌질하다거나, 비논리적인 것을 가져와서 공격을 시도하죠.



여성이 약자일 때는 분명히 있고, 사회구조와 직업선택, 연봉에 있어서 불리한 점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실제 통계로 증명된 사실이고요. [각주:1][각주:2]


하지만 반대로 여성이 갑의 위치에 있을 때 더 노골적이고 뻔뻔한 갑질과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버지뻘' 원사에 반말하고 40세 중사 정강이 발로 차며 폭행한 20대 여군 대위

https://www.insight.co.kr/news/210538

'인벤’, 청와대 국민청원에 등장... “여성 CEO, 남성 직원들 술자리 데려가 사욕 채운다”

http://www.sporbiz.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0817
조현아 남편의 이혼 청구 사유는... "아내의 폭행·폭언 때문"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15/2019021502358.html
갑질, 어디까지 해봤니? 조현민 엄마 이명희의 ‘몰상식 DNA’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41687.html


위와 같은 사례는 단지 일부일 뿐이고,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알려진 사례일 뿐이지, 더 작고 흔해 빠진 권력형 공격은 일반적인 일상생활에서의 인간관계나, 특히 연애 관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여성들이 다 그런 것도 아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여성은 섹스를 여성인 자신이 남성에게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은혜라고 생각하고 시혜를 퍼주는 거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섹스 권력이죠. '내가 안 주면 니가 뭘 어쩔 수 있는데? 그러니 니가 나한테 굽실거려야지. 내가 갑이니까.'



폭력을 가져본 적이 없는 이가 그 폭력에 더 쉽게 취할 수 있고, 돈이 없었던 이가 그 돈에 더 쉽게 취할 수 있으며, 권력을 가져본 적이 없는 이가 그 권력에 더 취할 수 있듯이, 여성 또한 마찬가집니다. 약자이기 때문에 강자의 위치에 쉽게 취하는 거죠. 아니, 어쩌면 스스로를 약자라 낙인 찍고 스스로를 약자라 믿기 떄문에 권력과 힘을 가질 때 더더욱 잔혹하고 노골적이며 뻔뻔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성은 약자다? 원할 때, 약자인 것이 갑질(을질?)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 약자인 겁니다. 선택적 약자이고, 자기가 더 유리할 수 있을 땐 언제든 폭군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들입니다. 모든 여성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그런 여자들이 있다는 겁니다. 특히 자기가 페미를 한다는 이들은 백이면 백 그렇죠. 


왜냐하면 그들이 하는 활동은 100% 여성 스스로를 위한 게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과 쾌감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싸울 대상과 전장 또한 자기들이 유리한 쪽으로만 취사선택하죠. 만만한 쪽만 건드리고, 공격하며, 불리하거나 건들기 무서우면 결코 건드리지도 않습니다. 같은 여성 피해자라도 건드리기 껄끄러운 상대가 저지른 일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고, 만만하고 약해보이고 그 대가가 돌아올 거 같지도 않은 이들에 의한 문제에는 미친 개새끼마냥 덤벼들고 물어뜯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여성은 약자다. 라는 말이 정치적 캐치프라이즈일 뿐이지, 실제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는 통찰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저 있는 사실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왜곡시키고 날조하면서 만들어낸 허상을 가지고 현실인 척 내뱉는 거죠. 그런 이유로 이들의 활동은 또한 여성의 인권과 사회정의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전략 자체가 틀렸고요. 적을 마구 만들었으니 그에 대한 반대급부가 오는 건 당연합니다. 그런 그들이 여성인권에 힘을 써줄까요? 적어도 그들이 원하는 방향은 아닐 겁니다.



여성은 약자가 아닙니다. 어떨 때는 약자일 때도 있죠. 하지만 반대로 남성 또한 마찬가집니다. 남성은 약자가 아니지만, 어떨 때는 약자일 때도 있죠. 그리고 솔직히, 보편적으로 남자가 더 약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강요되는 무언가야 있겠지만,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앞서서 죽어야할 때가 강요되는 경우, 여성은 공감하기 어려울테죠. 그렇기 때문에 군대와 군인, 병역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고 무시하는 거고요.

  1. https://sovidence.tistory.com/1000 [본문으로]
  2.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44035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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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국 보수세력과 일본에게 있어서 아주 기쁜 날일 겁니다. 북미회담이 결렬되어 한반도 평화가 보장되지 못한 날이니까요. 재밌는 건 미국 좌파들에게도 기쁜 날이라는 거죠. 트럼프를 공격할 명분이 생겼으니까요. 한국 보수와 같은 이유로.



하지만 이에 대해서 크게 걱정할 건 없다고 봐도 됩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오늘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변하는 건 크게 없을 거라는 거고, 결국 더 나은 미래로 향하게 되긴 할 거라는 겁니다. 서로 여기까지 왔고, 원하는 게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영구적인 후퇴가 있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트럼프·김정은 합의문 서명식 무산된 듯···오찬도 취소 가능성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32&aid=0002925355

트럼프 "영변 외에 발견한 게 있다..우리가 안다는 데 北놀라"

https://news.v.daum.net/v/20190228164757035

[전문]트럼프 "北제재 확대? 옳지 않다…북한 국민도 생각해야"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8&aid=0004181764
트럼프 "김정은 중재해달라", 문대통령 "가까운 시일 내 만나자"
http://www.newspim.com/news/view/20190228001045


애초에 상식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라는 거 자체가 회담 몇번으로 성사된다는 거 자체가 망상급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인 것도 사실이죠. 그렇게 됐으면 참 좋겠고, 많은 노력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단지 회담 몇번으로는 될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만큼 어렵고 많은 노력과 시도, 전략이 필요한 일이라는 거죠. 


북한 입장에서, 비핵화를 위한 노력을 하겠다고 했고, 그 노력을 위해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카드가 영변 핵시설 폐쇄였다고 봐야합니다. 사실 이것도 역대급으로 놀라운 일인 게 사실이고, 그게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정말 놀라운 일이기까지 했죠. 


하지만 주지해야할 것은, 북한의 핵시설은 영변 하나뿐이 아니고, 숨겨진 시설이 있을 거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을 거라는 겁니다. 적어도 분명한 건, 안보에 대한 직간접적인 정보망을 가진 국가 고위직(대통령, 국정원장, 군 고위 등)은 알고 있었을 거라는 거죠.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에 대한 차이가 있을 뿐이지.



북한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딜은 영변 폐쇄였지만, 트럼프의 생각은 거기에서 더 나아간 것 뿐입니다. 그리고 그건 북한이 감당하기에 너무 무리한 요구였던 거죠. 트럼프가 어떠한 생각으로, 그리고 김정은도 어떠한 생각으로 이렇게 일을 진행시켰는지 알기는 정보와 입장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파악할 순 없습니다.


정상적이라면 물밑에서 실무적인 조율을 다 끝내고 대통령 등 고위급이 나와서 더 조율할 거 있으면 하고 적당히 이야기 나누다가 서명해야 되는 일인데, 어째 얘네들은 이걸 거꾸로 하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벼랑끝 전술이고, 어떻게 보면 미국 국내의 요구를 트럼프가 받아들인 것일지도 모르고.. 



어찌됐든 분명한 건 이겁니다. 그런 식으로 결렬되었음에도 제재를 확대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건 아직 대화의 여지가 분명하게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거죠. 대화는 하겠지만, 그 조건은 북한이 많이 양보하게 될 것이다.(=내가 더 많은 이득을 볼 작정이다.) 라는 거라고 봅니다. 


아예 트럼프 스스로도 문 대통령에게 김정은은 중재해달라는 요청을 하며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나자는 거 보면 확실합니다. 또 어떻게 보면 북미회담에 있어서 한국이 빠지는 모양새에서 한국을 끼워넣으려는 외교적 정치공학의 일면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기도 하고요. 트럼프의 친한적인 태도를 생각해보면, 더불어 근래에 한미간의 동맹을 이간질하려는 국내 언론 및 보수 세력에 대해 미군이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한미동맹은 굳건함을 밝히는 걸 생각해보면 또 모를 일입니다.



아니면.. 아예 현재 미국내에서 이루어지는 반트럼프 활동 중 하나인 러시아 대선개입 청문회에 대한 이슈를 묻어버리려는 정치행위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실제로 외신들 찾아보면 청문회 이야기 쏙 들어가고 회담에 대한 기사만 올라오고 있는 거 보면.. 좀 오바다 싶긴 하지만 트럼프라서 그런 일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미국에 대한 국익에 집중했다는 명분으로 방어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보니.. 일반적으로 그런 국제적으로 큰 의미와 중요성을 가진 일을 자신의 정치적 부담을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는 정치공학적 판단으로 결렬내버릴까 싶긴 하지만 이 역시 트럼프라서...;;


사실 한국을 끼워넣는다는 딱히 얻을 거 없는 행위를 위해 했다기 보단 청문회 이슈를 묻기 위해 했고 결렬된 회담을 다시 무마하기 위해 한국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보는 게 더 개연성 높은 일이긴 합니다.



뭐..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트럼프는 북한에게 영변 이외의 다른 시설에 대한 폐쇄를 --갑작스레-- 요구했고 이는 북한에 있어서 받아들이기 너무 무거운 요구였죠. 그렇기 때문에 결렬된 것 뿐이지, 이거 하나만으로 무슨 전쟁 위험이 생겼거나 북미관계의 파탄이 발생하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그저 시간이 좀 더 길어질 뿐이고, 협상 테이블에 올라오는 가짓수와 메뉴가 조금씩 달라질 뿐이죠. 설레발 칠 거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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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번 차단 사태는 기본적으로 문재인 정부만의 탓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차단, 검열 자체는 이명박 정부시절부터, 그리고 좀 더 포괄적으로는 걍 그 이전부터 쭉. 꾸준히 해왔던 겁니다. 물론 이명박 정권 때부터 검열이 좀 더 빡세진 건 사실입니다. 칼과 흡연 장면에 모자이크를 넣는 등.. 이번엔 HTTPS와 같은 방법을 통한 차단 무력화가 가능한 시스템을 무력화시킨 거고, 다시 말해서 원래 막아왔던 걸 뚫는 기술을 이용했는데, 이번엔 그것도 막았다. 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좀 더 상세하게 패킷 검열 등등은 제가 그런 쪽으로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딱히 지금 조사를 한 게 아니라 확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니다보니 보류하고, 지금 이야기하려는 것도 그런 쪽은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이 검열과 차단 자체는 이전부터 꾸준히 해왔던 겁니다. 단지 그 기술이 좀 더 발달했을 뿐이고, 그 범위가 넓어졌으며, 그에 따라 여러가지 논점들이 발생했습니다. 물론 이거 가지고 정부를 비판하지 말라는 건 아닙니다. 어쩌다보니 그 정권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해도, 하필 그 정권에서 그 일을 실행하거나 완료되었다고 해서 어차피 어떤 정부든 그랬을테니, 혹은 그냥 재수가 없어서 하필 그 정권이었으니 그 정권에 책임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죠.


경우에 따라 그 책임의 소지는 줄어들 수 있지만, 없어질 순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문재인 정권기에 벌어진 이번 차단, 검열 논란은 정부에 비판이 돌아가는 건 맞아요. 하지만 그게 문재인의 잘못이다? 비판의 근거가 될 수는 있지만 문재인 개인이나 대통령의 잘못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여간, 몇가지 논점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패킷 검열 문제.

2.성인의 성인물 소비 문제.

3.리벤지 포르노 문제.



1번의 패킷 검열 문제는 여기서 다룰 이야기가 아니니까 넘어가고.


2번 문제는 확실히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사는 일입니다. 유교 탈레반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리고 사회주의 독재국가 소리를 들을 정도로 확실히 엇나가는 거고, 무식하게 일을 진행시킨 것이며, 음란물에 대한 한국 기득권과 정부 단체의 시각을 잘 보여주는 짓거리이긴 합니다.


사실 한국은 유교보다는 기독교의 영향력이 더더욱 강력하기 때문에 유교 탈레반이라기 보단 그냥 기독교 근본주의나 기독 탈레반(?)이라는 표현이 더 사리에 맞을 겁니다. 음란물이나 성적 컨텐츠에 대한 기독교계(더 엄밀히 좁히자면 개신교계)의 위선적인 혐오증은 유명하죠.


어찌됐든, 성인이 성인물을 제대로 즐길 수 없다는 건 확실히 비상식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하기 이전에 몇가지 사실들을 이야기하자면, 한국에서 성인 컨텐츠가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공사치고 하거나 아니면 카메라 각도, 연기 등을 통해 성기가 보여지지 않는 성인 영화 같은 것들은 적지만 이미 생산되고 있고, 그 외에도 수입되는 성인 작품들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뭐냐면, 해외의 성인 컨텐츠들에 비해 분명하게 경쟁력이 없거나 매우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사거나 즐길 수 있는 합법적인 성인 컨텐츠가 있어도 그 수준이 낮고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불법으로 가게 되어 있다는 거죠.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좋든 싫든 그냥 그렇게 이용했고, 어떤 이들은 그게 불법인지 아닌지도 인지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이 성인 컨텐츠를 즐길 수 없다는 건 비상식적이고, 쓸모없는 엄숙주의 쩔어주는 위선적 꼰대식 규제가 엄청나게 많은 게 문제 중 하나인 거고요.



물론 동시에 이런 문제가 하나 발생하는데, 정부-의회-법원이 절대 양보하지 않으려는 영역이 바로 청소년, 미성년자들의 성인물에 대한 접근입니다. 물론 실질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최대한 막으려는 개짓거리가 바로 이러한 사태로까지 이어진 거죠. 


여기서 문제가 되는 원인은, 미성년자의 접근을 어떻게 차단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알다시피 성인인증은 개인정보 도용 등으로 쉽게 우회가 되고, 다른 방법들도 어렵지 않게 우회가 가능하죠. 그렇기에 아예 접근 자체를 차단해버리자는 발상으로 성인이든 아니든 걍 싹 다 차단해버리는 겁니다.


여기서 성인들의 불만이 터져나오는 거고요. 합리적인 방법을 내놓지도, 그럴 생각도 없으니 일괄 도매금으로 묶어서 싹 다 차단해버린 겁니다.



리벤지 포르노 문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상식적으로 누구나 동의해야할만한 문제가 맞습니다. 리벤지 포르노는 진짜 불법 맞고, 그걸 떠나서 사람이면 해선 안 될 심각한 폭력 중 하나이자 범죄입니다. 따라서 이건 아동포르노를 전세계적으로 때려잡아서 없애버리고 찾아볼 수 없게 만들었던 것처럼 때려 잡고 없애버려야 하는 게 맞습니다.


문제는 이에 대한 규제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거죠. 잊혀질 권리 등 그걸 해결해주는 업체나 단체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라죠.


그리고 이번 차단 사태의 근거 중 하나가 바로 그 리벤지 포르노 문제입니다. 실제 한국에서 생산된 리벤지 포르노가 해외 성인사이트에 떡하니 올려져 있거나 하는 경우가 너무 많고, 사실상 그쪽 루트로 공개, 보급되는 실정이기도 합니다. 그 외의 루트가 있기는 하겠지만(ex.트위터 등의 SNS, 카톡 등..) 제가 그런 쪽으로는 잘 알지 못하니 대충 그렇게 돌아가겠지 할 뿐이네요. SNS를 통한 음란물 유통은 이미 유명하고요.



하지만 이 역시 성인이 불법이 아닌 성인 컨텐츠를 즐길 수 없게 한다는 문제가 남는데, 사실 이것도 애초에 해외 포르노를 보는 것도 불법인 걸로 압니다.. 애초에 수입할 수도 없고 방통위 심의를 통과할 수도 없는 컨텐츠들이라, 사실 한국에서 진짜 허용된 극소수의 성인물 컨텐츠를 제외하면 걍 다 불법일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방통위가 욕을 존나게 먹어야 하고, 그에 못지 않게 그런 법을 만들고 유지해온 국회를 까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번 사태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하자면.. 지금과 같은 불법 사이트 차단은 밤토끼, 마루마루 등의 사이트를 차단하는 것의 연장선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망가쇼미, 해외 성인물 사이트를 차단하는 거고요. 심지어 그 이전에 클로저스 티나 사건에서 연장되어온 레진 등의 메갈 관련 작가, 사이트에 대해 예스컷 운동을 했었던 것의 연장이기도 하고요.


그 당시 규제를 찬성한다(이후 규제를 해도 안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 결국 이렇게 될 줄 몰랐을까요? 네 몰랐겠죠. 근데 이렇게 될 거라는 거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아마 그 당시 예스컷 하겠다는 사람들을 봤던 정부 관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존나 개돼지 같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이번에 이런 식으로까지 이루어지는 차단 사태는 아직도 구시대 인간들이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도 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통제는 삶의 일부였습니다. 독재시절부터 체화 당해온 통제는 그것을 벗어나는 순간 불안해지게 만들기도 하고, 어떤 식으로든 어떻게든 통제하고자 하는 일종의 패티시를 부여하기도 하죠.


어렸을 때부터 자유에 익숙해지지 못했기 때문에 통제에 대한 패티시, 혹은 강박이 발생하게 된 현행 권력자들이 인터넷이라는 자유로운 공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통제하지 못한, 혹은 못했던 자유로운(=위험하고 방종한) 세상이라고 봤을 지도 모를 일이죠.


그러니 어렵고 복잡하고 힘들고 오래 걸리는 방식과 이해보다는, 여러가지 껀수와 명분을 가지고 걍 차단해버리는 방법론을 써버린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영상물 등의 경우 방통위의 심의를 받지 못하면 팔 수도 없다는 등의 문제와, 검열과 차단 문제에 대해 제대로된 법안을 마련하거나 개정하지 않고, 더 나아가 선진국 기준의 성 관련 인식과 규제 수준을 갖추지 못한 꼰대정신의 국회에 문제가 있죠.


앞서 이야기 했듯이 한국에서 정상적으로, 그리고 경쟁력 있는 성인물 컨텐츠를 즐기기란 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소라넷이 규제를 받으며 점점 음지화되고 변태성이 극화되는 범죄적 변태소굴로 변화했듯이, 여전히 사람들은 우회를 하든 뭘 하든 방법을 찾아내겠지만 그 과정 속에서 반동이 없을 수가 없을 겁니다.


그러니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규제(대체적으로 선진국 수준으로 완화)와 합리적인 생산-유통 구조를 만들어서 양지화시키고 성인들이 정상적으로 컨텐츠를 즐길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세계에서 음란물, 성인물에 대한 규제가 그 어느 나라보다 심한 게 한국이죠. 거의 중동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 수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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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권력을 가지면 욕심이 더 커지기 때문에 더 많은 권력을 원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돈이 생기면 더 부족하게 느껴지고 권력을 가지면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싶어한다는 거죠. 단지 더 커진 욕심 때문에요.


하지만 이건 너무나도 1차원적인 이해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권력, 혹은 돈이 생기면 더 많은 걸 가지고 싶어지는 욕심이 생기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끝 없이 붙는 욕심의 가속도가 붙게 된다는 건 설명하기에 덜 정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권력, 자본주의 사회에선 자본이 될수도 있겠죠. 이러한 권력을 가지면 거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권력을 얻고자 하는 가속도가 붙는 것에는 단순 인간의 내적 욕심이라는 기제 뿐만 아니라 권력을 유지시키기 위한 비용의 발생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보편적인 설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권력을 유지시키는 것은 쉬운 게 아닙니다. 단지 가지기만 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얻기 위해 투자하고 사용되어야 할 많은 비용들이 있으며, 그것을 획득한 이후에도 유지시키기 위한 비용 또한 있습니다. 즉, 권력을 얻고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꾸준히 나가는 것이 있다는 거죠.


권력을 자본으로 비유하자면, 권력은 자본이고 유지비용은 부채라고 볼 수 있겠죠. 그리고 자본의 순이익과 부채의 간극만큼 만족도가 상승하게 됩니다. 순이익이 높은 수록, 부채는 낮을 수록 권력에 만족도가 높을 수 있다는 거죠. 


실제로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노동과 다각적인 인간관계, 사내정치, 정신력, 인지력, 가정, 커리어, 미래 등에 소모되고 투자되고 이것저것 발생하는 비용들 또한 높은 편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자신의 연봉만큼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불행하다고 여길 것이고, 버는 것도 많지만 그만큼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즉, 더 많은 돈을 벌고 싶고 더 높은 직위에 올라가고 싶어하게 될 것이죠.


마찬가지로 실제 정치인, 고위 공무원 등의 수 많은 권력자들은 그만큼 높은 업무 강도를 가지고 있고, 그러한 강도를 버티는 능력적으로는 굉장히 뛰어난 인재들인 것은 사실입니다. 단지 높은 곳으로 갈수록 큰 그림을 보는 통찰력과 그러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안목에 따라 실무 행정능력과는 별개로 유능함과 무능함이 갈리는 거겠지만요.


하여간, 그러한 상승성 있는 인간들은 거기에서 다 내려놓고 모아놓은 것을 가지고 만족하고 사는 것보다 -비록 타성에 젖은 행동일순 있어도- 더 비용을 투자하여 높은 직위를 얻거나 더 높은 연봉을 받으려 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권력에 대한 획득 욕심의 가속도는 바로 여기에서 발생하는 거죠. 자신이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투자한 비용대비 만족도가 낮다면 더 높은 권력을 가지고 싶어하는 겁니다. 욕심은 부족함에서 발생하는 거고, 부족한 만큼 추구하게 되는 겁니다. 물론 이걸 아주 간단히 통찰하자면 권력(돈)을 가지면 가질 수록 더 원하게 된다. 즉, 욕심이 더 커지게 된다. 라고 말할 수 있지만, 너무 함축된 설명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설명에 설득력을 가지기엔 모자라죠.


물론 이러한 설명은 불완전하고, 권력에서 발생하는 정신적 쾌감과 같은 보편적인 원인 또한 존재할 겁니다.


하지만 권력을 가지면 욕심이 더 커지기 때문에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싶어한다. 라는 고전적이고 일차원적인 설명보다는 더 보편적인 원리를 더 말이 되게 설명할 수 있지 않나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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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재판 방청기② 위키백과가 증거라고?

http://news.newbc.kr/news/view.php?no=4260
‘김경수 법정구속’ 성창호 판사…양승태 비서실 출신, 사법농단 연루자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6935
느닷없는 우병우 석방, '법원발 역습'의 서막?
https://news.v.daum.net/v/20190109050602610?d=y
'김경수 실형' 성창호 부장판사, 양승태 '연금증액' 관여 정황
http://news1.kr/articles/?3538704
박주민 "김경수 1심 판결 허술…'킹크랩 시연' 증거 없어"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3&aid=0009041632
[비하인드 뉴스] '김경수 구속' 예측 못 한 여야..부랴부랴 '긴급회의'
https://news.v.daum.net/v/20190130222220956


문재인 정권이 적폐청산을 목표로 국가 전방위를 대상으로 정화 작업을 실시하고 있는 건 아실 겁니다. 이 문제는 사법부 또한 다를 게 없는지라, 검찰과 다를 바 없이 썩어 있는 곳이 바로 판사, 사법부라는 것을 우리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범죄 행위로 물 위로 드러나게 되었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조직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천지분간 안 하고 때리려는 주인을 물려는 개들이 객관적, 법리적, 가치중립적 심판이 아닌 정치적 판단을 우선하면서 행동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김경수 지사 관련한 현 상황이 바로 그것이죠.


이것은 명백한 정치적 판단에 따른 정치적 행위로, 정치판사라 불려야할 부패한 이들에 의해 자행된 정치공세이자, 사법파괴 행위입니다. 



당연하지만 특검 자체도 허술하기 그지 없었고, 재판에서도 고작 위키백과 따위를 근거로 제출할 정도로 어처구니 없을 정도의 공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1심 구속, 징역이 나왔다는 건 정치적인 의도를 의심해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도 허술하고 부실한 증거와 증언이었지만 유죄를 줬다는 건, 어차피 2심이나 3심까지 가면 무죄가 뜰 것은 당연하지만 이렇게 유죄를 줌으로서 민주당과 대통령에 대한 공격을 한 겁니다. 당장 자한당, 바미당 등의 정당에서 공격하고 있고, 이러한 판결에 환호할 보수세력에 힘을 실어주며 정권을 공격하는 거죠.


정권 측에서는 이러한 판결로 인해 불필요한 비용이 생기게 되며, 스트레스가 발생하게 되죠. 정치적 공세에 대한 대응 또한 고려해야 됩니다. 어차피 무죄가 뜨겠지만, 2심, 개억지를 부려서 3심까지 가게 된다면 그 기간 동안 민주당과 정권은 자한당과 이명박근혜 정권에 대한 주요한 비판과 범죄인 댓글공작에 대한 명분을 상실하거나 의제를 통제할 힘이 약화될 겁니다.


그러한 관리력과 비용발생 동안 정부는 사법부에 대해 더 적극적인, 최소한 지금과 같은 적폐청산을 진행하기 어려워집니다. 양승태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인 의도와 목적을 가진 판결이었고, 이를 더욱 의심케 하는 정황은 성창호 본인이 양승태 비서실 출신인데다 사법농단 연루자 중 하나입니다. 그런 문제가 있는 본인이 이러한 판결을 내렸다는 거 자체가 보복성이거나 분명한 정치적 의도를 지닌 행위인 셈이죠. 과장 좀 보탠다면 피의자가 자기를 수사하는 집단의 주요 일원에게 처벌을 선고하는 겁니다. 비상식적인 일이죠.


이 와중에 우병우를 석방한다는 것은 서로 선후배, 심지어 동료이기까지 한 검사이자 사법농단의 주요 관계자 하나를 풀어주는 상황이 연출되는 거죠. 부패의 카르텔은 당연히 서로가 서로의 뒷배를 봐주는 관계이기 때문에, 우병우를 풀어준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를 사람은 없을 겁니다. 최소한 스트레스를 발생시키고 사법부에 대한 정부의 공격(본인들은 공격이라 여길 겁니다. 분명.)을 약화시키고 상황 통제에서 주도권을 조금이라도 가져가기 위한 권력지향적 경쟁이라고 볼 수 있고요.


[Why 뉴스] 남재준 무죄, 왜 양승태의 반격이라 하나?

http://www.nocutnews.co.kr/news/5085715


더불어, 성창호 판사 관련 이야기 중 하나로 남재준 전 국정원장 관련한 판결이 하나 있습니다. 이 판결을 보자면 직권남용 관련 건에 대해 매우 엄격한 잣대를 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그렇게 무죄를 만들어 냈는데 이게 또 양승태 관련과도 연관이 됩니다. 양승태와 관련해서 이 잣대를 들이대면 양승태도 무죄가 되거나 죄가 가볍게 되어 상식적인 판단보다 더 낮은 판결이 떨어지게 되죠. 


극히 정치적인 판단이고, 판결을 선고할 수 있다는 위치에 서서 정치적 판단을 하기 때문에 법치를 파괴하는 행위이자, 사회를 혼란시키는 주범인 셈입니다.


자신의 잣대에 본인조차도 걸린다는 점에서 극우보수의 틀에 훌륭하게 들어가는 인물이기도 하고요. 


'김경수 실형' 성창호 부장판사, 양승태 '연금증액' 관여 정황

http://news1.kr/articles/?3538704


정황만으로 실형을 받는다면, 본인부터가 실형을 받아야 합니다. 아예 국정농단에 연루되어 있어 검찰조사까지 받았다는 점까지 포함하면 뭐.



마지막으로, 이번 판결에 있어서 발생한 가장 큰 문제가 뭐냐면, 증거재판주의에 손상을 입었다는 겁니다. 이미 불과 얼마전까지 페미 관련해서 증거도 없는데 성범죄자 만든다는 비판이 있었을 정도인데, 아예 정치적 계산을 깔고 정황만 가지고 선고를 내렸다는 거 자체가 굉장한 수위의 문제입니다.


증거재판주의가 무너지거나 판사 마음대로 적용하고 말고할 수 있는 게 된다면 이는 다시 말해 검사와 판사가 자기 마음대로 아무나 범죄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됩니다. 이게 일반인들에게도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얼마나 더 악용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면 가벼운 일이 아니고 무시할만한 일이 아닙니다. 물론 깨어있는 보수국민들은 그게 뭐 문제되는 것인지도 모르고 뭐 진보새끼들 설레발만 존나게 치지 대단한 일이 일어나겠냐 싶겠지만, 그렇게 해서 일어난 크고 작은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해를 못하기 때문이겠죠.



완벽한 가치중립성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상식적인 법리의 적용조차 안 하고 정치적인 의도와 목적, 계산을 깔고 선고를 내려버리며 사법부와 법치의 신뢰성을 스스로 깍아부수는 짓을 저지르는 작금의 사태가 굉장히 실망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또 하나의 단면이기도 하겠죠. 그런 이들이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사회, 그것도 고위직에 수 십년이나 암약해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리고 그러한 이들이 적폐청산 과정 속에서 하나둘 씩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 나라가 얼마나 썩었고, 얼마나 더 많은 곰팡이들이 있을까 심란하기까지 하군요.


문재인 정권이 아무리 삽질을 하고 스스로 비판점을 발생시켜도, 지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정의이거나 선하거나 훌륭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에서 최선은 존재하지 않고, 여러 선택지 중 차선을 선택해야 하며, 차선이 없다면 차라리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자한당조차도 김경수에게 이러한 선고가 떨어질지 몰랐다는 것을 보면 이는 자한당과의 어떠한 커넥션이 있었던 것이 아닌, 사법부의 독자적인 적폐 행위라고 봐야할 겁니다. 자기 기득권을 지키고 정부에 반격(본인들 기준)을 하는 정치적 행위입니다. 똑같이 썩었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시츄에이션인 거죠. 참나.. 사법부가 정치질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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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ㅈㅂㄷ 2019.02.19 00:28 address edit/delete reply

    길게늘어놨는데 헛소리

    • Favicon of https://konn.tistory.com BlogIcon Konn 2019.02.19 19:45 신고 address edit/delete

      꼭 이런 애들은 왜 헛소리인지 증명을 못함. 머리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서 그거 대로 말하는듯.






뛰어난 작가는 뛰어난 철학자이기도 하다. 저는 예전부터 뛰어난 작품을 창작해내고 가공해내는 작가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뛰어난 작가는 정식으로 철학을 공부한 것은 아니나, 철학자와 같은 것을 작가의 관점으로 관찰하고 통찰하기에, 뛰어난 작가일수록 그 작품에 담긴 지성과 나타나는 통찰은 깊고도 진하다고요. 


그런 의미에서 랑또 작가는 뛰어난 작가인 것이 사실입니다. 가담항설은 길 위의 소문, 항간의 뜬소문을 의미하는 사자성어로서,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민중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생각하는데, 신룡이라는 철혈의 독재자라는 절대통치자, 절대무력을 무너뜨리고 인간의 주제성을 살리기 위한 목적의 플롯으로 이야기가 돌아가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제목이 작품의 정체성을 나타낸다는 점을 생각하면 상당히 감각적인 네이밍 센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가담항설의 1화는 참으로 마음에 드는 것이, 단지 관심과 임팩트를 주기 위해 1화를 일부러 자극적으로 연출해내고 시작해내는 일부 작품들--주로 라노벨 등에서--과는 다르게, 1화에서 보여주는 작품 속 중요 캐릭터와 전체 극의 중심을 꿰뚫을 요소를 배치해내 그 성격을 너무 자연스럽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가담항설 1화를 처음 보자마자 확 꽂혀버렸거든요.


1화에 등장하는 작품 속 최중요 주, 조연은 4명입니다. 세력으로 구분지었을 때는 신룡, 동죽과 복아와 한설이죠. 그리고 신룡은 얼핏 가벼워 보이지만 처음부터 인간에게 기대하지 않았다는, 어떻게 보면 싸이코처럼 보일 법한 캐릭터성을 드러내고, 신룡이 무엇을 명령하든 절대 복종하는 동죽의 캐릭터성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유약해보이고 걱정 많아 보이나 무언가를 진심으로 바라고 간절히 소망하는 복아와 천진하면서도 깨끗한 한설이가 나타나죠. 복아는 진심의 힘과 간절함을 분명하게 아는 캐릭터이고, 명영과의 과거에서 크게 변화한 인물이죠.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 그리고 제가 확 꽂혔다는 부분은 바로 한설의 등장입니다.


한설의 등장은 매우 상징성이 깊습니다. 복아는 천지신명께 무언가를 진심으로 간절히 빌었고, 그 직후 한설이가 등장하죠. 가담항설의 세계관에서 신룡은 철혈의 절대자, 독재자이고, 그 밑에서 만백성이 복종하게 되는 구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무엇도 아닌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난 존재가 바로 한설이지요. 이는 마치 한설을 이 세상에 내려 무언가를 이룩하고자 하는 천지신명의 의중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뒤에 한설은 왕을 만나러 간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건, 왕을 만나러 간다는 점과, 만나러 가는 것이 신룡이 아니라는 점이지요. 즉, 한설은 왕에게 무언가를 말해줘야 할 임무를 가지고 만들어졌으며, 그 시작은 복아의 기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겁니다. 복아의 기원은 도련님(강명영)이 과거에 급제해서 익히고 깨달은 것을 왕에게 말하게 해달라는 것이었고요.


한설이 사람의 형상인 이유는, 단지 그게 기능적으로 편하고 오해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아니라면 알 수 없고, 사람의 형태가 아니라면 겪을 수 없는 여러 관계를 경험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더불어 자신이 깨달은 것을 왕에게 말하러 가기 위해선 먼 거리를 이동해야할 것이고, 많은 사람들과 여러 관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죠. 한설이는 돌이었기에 태어나 자라 여러 경험을 하고 성장한 다른 이들과 다르게 깨끗한 하나의 백지 상태와 같습니다.


천동지가 글을 적어 소원을 실현시키는 보물이라면, 한설이는 사람의 형태로 복아의 소원을 실현시키는 보물이겠죠. 한설이가 백지이기 때문에 그 위에 적히고 그려질 것은 좋은 것들이어야 하겠죠. 하지만 글과 그림엔 안 좋은 것이 끼어 있다면 튈 것이고 완성도가 떨어지게 되겠지만, 사람에겐 그러한 안 좋은 것 또한 하나의 경험이고 성장의 양분이 됩니다.


종이는 성장할 수 없죠. 하지만 사람이 된 한설이는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순수하기에 명확하고, 명확하기에 정확하죠. 한설이가 모험을 통해 보고 듣고 배운 것. 깨달음을 왕에게 말한다면, 무언가 변하게 될 것입니다. 왕은 인간 중 가장 높은 존재로서, 신룡이라는 비현실적인 요소를 제외하고 보면 만인지상의 위치에 있는 자입니다. 신룡이 아닌 왕에게 가서 말을 해줘야 한다는 점은 천지신명이 신룡이라는 존재를 거부하거나, 거부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를 돕기 위함이지 싶더군요.



가담항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다 각자의 사정이 있었고, 그 삶에서 얻어진 깊이가 깊습니다. 보고 배워서 얻어진 지성이 아니라, 삶을 살아서 겪고 다치며 생각하고 이입하면서 얻어진 감성이기에 그들이 하는 말들은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을 자극하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지 명확하게 알 수 있게 하죠.


이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마음입니다. 주체성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거죠. 누군가를 사모하고, 아끼고, 걱정하고 슬퍼하는 모든 것은 주체적이기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고, 도구나 장치였다면 할 수 없는 것이죠. 설령 그것이 노비이고 백정이라도 그들이 주체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것이 마음이지요. 혹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주체적일 수 있는 것일 겁니다.


백정인 태하가 장님 아가씨를 사모하고, 그 장님 아가씨 또한 태하를 사모했던 것처럼 마음, 진심이라는 것엔 장벽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죠. 신분이나 상황이 어떠하든 의지를 가지고 진심을 드러내며 인간 개개인의 주체성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죠. 



랑또라는 작가의 실력이 다른 어중이떠중이들에 비해 격이 몇 단계는 높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바로 사람의 마음을 정확하게 통찰해내고, 그것을 부족함 없고 차고도 넘치지 않는 문장으로 정리해냈다는 점입니다.


가슴으로만 하는 이해는 문장이 부족하기에 설명할 수 없어 아쉽고, 말만으로 설명하는 사실은 감정이 깃들어 있지 않아 사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사람이 분노하든 행복하든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나름의 지적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다면 공감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인연인 것이며 관계인 것이지요.


책을 읽고 풍부한 단어를 알게된 다는 건, 슬픔의 저 끝에서부터 기쁨의 저 끝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수많은 감정의 결들을 하나하나 구분해내는 거에요. 정확히 그만큼의 감정을 정확히 그만큼의 단어로 집어내어 자신의 마음을 선명하게 들여다보는 거죠.  


(중략)


같은 단어를 알고 있다면 감정의 의미를 공유할 수 있고 같은 문장을 이해할 수 있다면, 감정의 흐름을 공유할 수있어요. 그리고 그건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만들죠. 정기씨가 저에게, 제가 정기 씨에게. 그런 사람이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많은 고난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와 위로가 되도록.

- 가담항설 90화 中 홍화


감정을 정확히 이해하고, 무엇인지 설명해낼 수 있다는 것은 동시에 자기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한다는 것이며, 자신을 정확히 파악한다는 것은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해줍니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신을 파악하고 재정의해낸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립해내는 과정이기도 하죠.


언어란 바로 그런 것이며, 그런 힘을 가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의 힘. 거리를 떠도는 말들엔 무언가 담겨 있을 것이고, 한설의 임무가 바로 그것을 왕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다른 캐릭터들은 어떤가요? 명영과 복아는 서로 살아온 삶이 달랐으면서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공부하던 명영이 달을 벗삼아 지냈던 시기에 복아라는 첫 친구, 나눌 수 있는 첫 타인이라는 관계를 겪으며 생소했을 복아와의 관계에서 올바른 길을 찾아 소중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현명함과 조심스러움을 보았고, 그렇게 태어났기에 평생 불행할 거란 복아가 명영이라는 빛을 보고 올바른 길을 뒤따라갔으나, 그것은 온전히 명영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고, 자신이 있었기에 그럴 수 있었음을 깨닫게 되죠.


명영은 복아를 아꼈고, 복아는 그 이상으로 명영을 아끼고 소중히 여겼습니다. 자신은 불행하게 태어났으니, 불행하게 될 것이라 여겼지만 그 지독한 밤 하늘 속 커다란 벗, 달을 보고 가르쳐준 지성을 통해 자신 또한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는 안목이 생겼죠. 


그렇지만 사람의 마음은 결코 강할수만은 없기에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 마음에 약점이 되기도 합니다. 명영은 과거를 보러 가지만 복아는 놔두고 가려 했고, 복아는 위험하니 보낼 수 없다고 했지만, 실은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기 때문에 명영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복아를 그런 위험한 책임 속에 같이 데려갈 수 없었고, 단지 자신이 없이도 현명히 살 수 있도록 안배해왔던 것이죠. 복아는 그런 명영을 그런 위험에 가게 둘 수 없었지만, 사실은 명영이 자신의 곁에 있어줬으면 한다는 소망이 더 강했기에 그저 보내지 못한 것일 뿐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약하기 때문에.


하지만.


복아야. 우린 오랜 시간 서로에게 둘 뿐이었지. 그동안 나의 세상이 훌륭했다면 그건 네가 훌륭했기 때문이야. 너는 나의 세상이고 나는 너의 세상이니까. 우린 세상의 일원이자 그 자체야. 하지만 같은 고통도 사람에 따라 견뎌낼 수 있는 정도가 다르고 어떤 고통은 개인이 도저히 극복해낼 수 없어. 


그때 우리가 서로의 약한 순간을 위해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누구나, 언젠가 약할 수밖에 없는데도, 평생 약해지는 걸 두려워하며 살아야만 해.  


그래서 나는 더 많은 사람의 손을 잡으러 가려해. 과거시험은 그 길의 과정일 뿐이야. 그래서 과거를 보러 가는 거야. 하지만 그건 너의 신념이 아니니까 너를 데려갈 순 없어. 나는 나의 신념을 내가 이루기 위해 궁으로 가는 거니까.


(복아) 하지만... 그건 너무 위험하고 불가능한 일이에요. 


나의 신념은 그런 세상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야. 그 길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내가 되는 것. 그게 나의 신념이야. 



명영은 복아에게 자신의 신념을 말하며 자신이 혼자 가야하는 당위를 설명합니다. 힘들어하는 이들, 약한 순간에 빠진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기 위해서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하죠. 그리고 그것은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한 원대한 무언가. 어쩔 수 없이 손이 가닿지 않는 외부의 세계가 아니라 언제나 살펴보고 가다듬을 수 있는 내부의 세계,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면서요.


복아야 괜찮아?!! 괜찮은 거 맞지?!!

나 지금...

앞이 안 보여서 잘 모르겠어. 


그 뒤 바로 현재 시점으로 돌아와 머리 위쪽이 날아가 앞을 볼 수 없는 한설이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복아의 손을 잡아 줍니다. 정말 상징적인 컷이자 예술적인 구성이죠. 자신의 상태가 말이 아님에고 복아를 걱정하고 결코 놓지 않으려는,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한설과, 앞이 보이지 않는 한설에게 눈이 되어주고, 길이 되어주며, 더불어 올바른 길을 볼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복아의 구조를 고작 몇 컷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명영이 복아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복아는 한설이에게 밤 길 위의 밝은 볓이, 달이 되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복아야, 복아야!! 복아야!!

나... 과거 시험 봐야해. 알잖아, 넌.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나도 알아. 네가 날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 그러니까 제발... 너의 헌신이, 나의 노력이, 우리의 지난 모든 날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말하지 마... 


명영이 약하고 힘들어하는 시기.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복아의 자조어린 독백.


나는 반드시 불행해질 거야. 불행해질 수밖에 없게 태어났으니까.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완벽한 불행을 가졌으니까.

이 사람은 왜 날 데려가는 걸까? 어르신은 날 왜 데려왔을까?

어차피 난 반드시 불행해질 텐데...

대체 왜 나를 데려온 거야!

나는... 어차피...

반드시 불행해질 텐데.

왜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든 거야. 


복아는 노비입니다. 노비로 태어났기 때문에 노비인 것이죠. 그러니 반드시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약자의 권리는 고통받는 것 뿐이니까요. 어차피 고통 받을 거라면 계속 고통을 받는 것이 낫지, 잠시라도 편안하고 행복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으며, 그 상태에 젖어버리면 곧이어 뒤찾아올 채찍은 가시가 달린 듯 더 고통스럽고 아프게 하겠죠. 오히려 행복했기 때문에 앞으로 평생을 행복했던 때를 떠올리며 더 고통스럽게 될 것입니다.


잘해주지 말지.

다정하게 말하지 말지.

어쩌면...

어쩌면...

행복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만들지 말지.


사실은 여자라는 걸 알아챘음에도 모른 척하고, 이제는 키도 더 크고 힘도 더 세져 이길 수 있게 된 가슴 속 거대했던 명영이 자신보다 작고 약해져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 되어버려, 속으로 몰래 사모하지만, 결코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없는 분명한 신분의 틀 속에서 자신은 더 비참해질 텐데.



복아야..!! 복아야...!!


(복아) 괜찮아요, 울지 마세요 도련님. 울지 마세요. 


복아야... 나는 왜...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태생적 한계와 절망. 복아는 노비로 태어났기 때문에 스스로 불행해질 거라고 태생을 저주하고 자조했지만, 이는 자기 혼자만의 고민과 고통이 아니었죠. 명영은 여자로 태어났기에 사실은 과거를 볼 수 없었고, 때때로 그러한 사실은 칼날처럼 마음을 비집고 들어와 너는 여자야. 과거를 볼 수 없어. 여자이기 때문이야. 라는 현실을 끌어올리죠.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그 날

나는 왜

이곳에 따라온 걸까.

평생을 불행에 시달려놓고.

그게 얼마나 커다란 고통인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

왜 똑같은 고통을 겪게 만든 거야!!

그 날

나는 왜

이곳에 따라온 걸까.

나는 왜...

나는 왜...!!


제가 대신 볼게요. 도련님이 글을 알려주시면, 제가 도련님 이름으로 시험을 볼테니까, 같이, 계속 공부해서-

궁으로 함께 들어가요. 


당신을 떠날 수가 없을까.


같은 날, 같은 고민과 후회. 자신은 행복할 수 없고, 비참해질 뿐이며, 명영은 과거를 보러 떠나게 되어 혼자가 될 것이니, 이제 그만 떠나자고 마음 먹었지만 그 고통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자신이 그러한 경험을 해본 적 없는 명영에게 같은 고통을 주게 될 것이라는 남을 생각하는 마음은 되려 그 자신을 더더욱 아프게 했습니다.


그래서 복아는 다시 돌아왔죠. 마음은 한가지 면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하나는 후회와 미안함으로, 하나는 사랑과 미련의 마음으로. 같이 있고 싶어서 도련님의 이름으로 시험을 보고자 같이, 그리고 계속 공부해서 함께 궁에 들어가고 싶고, 그런 마음 때문에 떠나고자 해도 달 밝은 밤 환히 빛나는 밤 하늘과 그 별빛 아래 훤히 보이는 내가 갈 수 있는 길을 보고 내가 가야할 길을 가서 명영에게 돌아왔던 거죠. 


이걸 미련이라고 부르면 미련이 되겠지만, 난 이걸 희망이라고 불러. 

별들은 작고 멀리에 있지만 반드시 그 자리에 존재해. 그리고 그건 우리에게 길을 안내하지. 


(복아) 별은 하늘에 있고 제 발은 땅에 있어요. 눈앞은 어둡고 길은 너무 험해요.


걱정마, 복아야.

우리가 배운 모든 것이 네 길을 밝힐 테니.

넌 이미 많은 걸 알고 있어, 네가 안다는 걸 모를 뿐이지. 네가 정말 아무 것도 모른다면, 내가 널 혼자 돌려보낼 리 없잖아. 

날 믿지, 복아야? 나도 널 믿어.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훌륭한 세상이 되어줄 거라는걸.


아무리 많은 것을 알아도 안다는 것을 모른다면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명영은 복아에게 자신이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할지 알려주는 별이었지만 그 명영이 떠난다면 자신은 다시 어두운 세상 속에 내던져져 돌아가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하지만 명영은 복아를 새로운 별로 만들었고 복아는 그걸 몰랐을 뿐이죠.


별은 타인에게 길을 알려주고, 별이 되어 누군가에게 훌륭한 세상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저 위에 복아가 앞이 보이지 않는 한설에게 별, 세상이 되어 가야할 길을 정확히 알려주게 되는 것은 명영의 이러한 가르침을 이어 받았기 때문입니다.


(복아) 이제 겨우 글자 배웠는데 벌써 이렇게 비단옷을 입어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지금 당장 시험 보러 가는 것도 아닌데... 으이 어색해.


복아야, 옷차림은 단순히 신분을 드러내는 수단이 아니야. 그저 비단옷을 입었다고 남들이 널 양반으로 볼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 옷에 어울리는 자세를 갖춰야지!


(복아) 근데 뭐 대충 비단 옷 입으면 양반으로 보지 않나요? 양반이라고 다 품행이 바른 것도 아닌데.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배우는 거니까. 네가 입은 옷을 통해서 예절, 기품, 자세, 몸가짐, 행동가지를 익히는 거야. 삶은 항상 그 자체로 우리에게 많은 걸 배우게 하잖아?


(복아) 뭐...뭔 소린지 모르겠어요.


후후 지금은 어색하겠지만, 언젠가는 이 옷에 잘 어울리는 네가 될 거라 믿어.


도련님은... 분명히 해낼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도련님을 믿어요.


고마워 복아야. 이젠 그 옷이 아주 잘 어울리는구나.


벼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이고, 기품과 품위는 행동가지에서 나타나죠. 단지 어떻게 입고 어떤 모양새를 하느냐가 아니라, 그 안에 든 것이 자연스럽게 밖으로 보여지는 것에서 우리는 그 사람의 품위를 느끼는 겁니다. 복아는 노비로 태어나 노비로 살아왔지만, 명영과 함께 공부하고 보고 배우면서 지성인의 품격을 갖춘 것입니다. 믿어주고 이끌어주는 훌륭한 스승을 두었으니.


인간은 누구나 약해. 어느 부분이, 어느 순간이, 단드시 약해. 인간은.

완벽한 인간이란 건 없어.

하지만 나의 약점은, 나의 불행은, 나와 같은 고통을 겪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너의 불행이 나의 불행이 되게 만들지.

그리고 그건 날 강하게 만들어.

네가 소중하니까.

너를 위한 강한 내가 되는 거야.


명영에게 복아는 이토록 소중한 존재입니다. 복아를 위해서 강해질 수 있었던 것이죠. 사람의 마음은 결코 갈할수만은 없기에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 마음에 약점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서로 헤어져 명영은 과거를 보러갔고, 복아 또한 결국 명영을 찾아 나서기 위해 길을 떠나게 된 것이죠.


서로가 서로의 약점이 되었지만, 그러한 약점이, 상대를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더 강한 자신이 되는 겁니다. 복아가 힘들 때 명영이 손을 내밀어줬고, 명영이 힘들 때 복아가 희망이 되어주었죠. 서로가 서로를 붙잡고 넘어지지 않게, 떨어지지 않게 해줬다는 것이 그들은 성장하고 강해졌다는 증명입니다. 



이러한 명영과 복아의 관계 뿐 아니라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명영-암주, 갑연-갑희, 영호-이청, 이청-춘복, 홍화-정기, 동죽-하난 등의 대비되며 입체성을 더더욱 부각시키고 극대화시키는 조합들에 대해서도 나름의 해석과 설명을 하면서 의미를 서술하고 싶지만, 명영과 복아만으로도 이렇게 길어질줄 몰랐던지라 엄두가 나지 않는군요.


어찌됐든 가담항설에서 주요하게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각기 다른 신분과 상황에서 서로간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간극을 어떤 이들은 진심과 배려를 통해 좁히고 이해하는 과정과, 어떤 이들은 반복과 갈등으로 그저 이기려 하는 싸움이 되는 또 하나의 대비가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두가지 규모 다른 대비양상은 작품의 활동성을 구조적으로 보이게 하는 동시에 더더욱 입체적이고 간결하게 이해된다는 점에서 작품 구성의 뛰어남을 되새겨보게 됩니다. 만들기는 쉽지만 그게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자연스럽게 배치하고 구성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작가의 역량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심지어 그 뿐만이 아니라 컷 구성과 그림의 연출은 거의 예술적이라 여겨질 정도인 씬들이 있고, 그것을 수식하게 되는 문장들은 하나하나 버릴 게 없고 더할 것 없는 것들이니, 단지 경제적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이죠.



정말이지, 이 작품 가담항설에선 그러한 보석 같이 빛나는 문장들이 사람의 마음을 정확히 짚어내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명확히 이해시킵니다. 그러한 통찰력은 아무나 가질 수 없기에 뛰어난 철학자인 것이고 그러한 문장력은 아무나 가질 수 없기에 뛰어난 작가인 것입니다. 이게 그 랑또라이로 불렸던 그 작가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대단한 역량입니다.



각기 다른 입장과 위치에서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것은 그만큼 세상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것이고, 사람의 마음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세상에 있어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음을 극명하게 드러내어 묘사하고 있죠. 명영과 암주가 달랐고, 갑연-갑희와 명영-복아와 달랐습니다. 세상 자체가 완전히 다른 세계였어요.


이들이 아니라도, 누군가는 축복 받으며 태어나 행복 속에서 자랐지만, 누군가는 축복 없이 태어나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아득바득 살아오며 자란 사람도 있는 법이죠. 이들의 세상은 같은 세상이지만, 사는 세계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렇기에 선의의 신념을 담은 명영의 세상과 갑희의 세상이 다른 겁니다. 


인간에게 배신 당하고 춘매를 잃은 신룡의 세상 또한 그렇습니다. 겪기 전에는 전혀 알 수 없고, 될 수도 없었던 내가 하루 아침에 되는 경험은 누구도 겪고 싶지 않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는 그런 경험이죠. 상실喪失은 잃어버리는 것이라면, 상심傷心은 마음을 다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룡은 마음失心을 잃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잃어버린 사이코패스가 가진 유일한 감정이 바로 분노죠. 추국이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고 단지 기억만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마을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마음 없는 지성은 분노와 광기에 빠진 괴물보다 더 잔혹한 괴물입니다.


인간이 아닌 신룡은, 마음 없는 신룡은 괴물인 셈이죠. 그런 괴물이 통치하는 세상이 어떻겠습니까? 그곳이 곳 지옥인 셈입니다. 그러한 지옥. 신룡이 그리는 인세의 지옥은 매우 소름끼치는 곳이죠. 



아주 예전에 들었던 말인데,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아 개략적으로 서술하자면, 예술은 시대에 따라 변화했고, 과거 그리스적 기승전결에 따라 카타르시스, 감정적 전율을 느끼게 하는 작품과, 사회비판적 불편함을 느끼게 하여 시대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예술로 구분을 지은 내용인데, 저는 신룡이 그리는 인간세상에 대해 그러한 것을 떠올렸습니다.


너는 숱한 인간들이 어째서 나를 죽이려고 하는지 알고 있느냐.

내가 폭정을 휘두르고, 수많은 이들을 죽였기 때문에?

내가 죽인 자의 측근이 나를 향한 복수를 하려고?

아니면 새로운 권력을 잡기 위해서?

정의를 외치고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아니, 날 죽이려고 하는 모든 이유는 오로지-

내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영생의 삶을 가진 불로불사의 몸이었다면 그 누구도 날 죽이러 오지 않았을 거다.

인간은 오조리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만 움직인다. 나라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반드시 그 제도 하에 이득을 보는 자가 있고, 그렇지 않은 자가 세상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꾸기 위한 싸움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어떤 방식의 태도를 취하든, 누군가는 반드시 나를 죽이려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공포와 절망으로 통제하려 한다.

어떤 명분을 가진 인간이든,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끝없는 어둠 속에선 절대로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

깊고 고요한 어둠은 인간의 두려움과 상상력을 자극하고 스스로를 공포에 몰아넣으며 생각과 행동을 위축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백매야.

과거의 나는...

춘매를 한없이 사랑하였으나, 그것은 그때의 춘매를 그때늬 내가 사랑한 것이며,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때의 그 순간임을.

하지만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춘매의 시간은 그날로 멈추었지만, 나는 그 후로 9년을 더 살았고, 나는 춘매에게 그때의 내가 아니며, 나 또한 그때와 같은 마음으로 춘매를 대할 수 없다.

춘매가 알고 있던 세상과 내가 알게 된 세상은 완전히 다른 것이고, 춘매의 이상과 나의 이상은 더 이상 동시에 공존할 수가 없는 것이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은 내게 춘매를 다시 살려내길 간절히 바라면서도 바랄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와 사군자는 오백 년을 넘긴 기도로 영원히 늙지 않고 병들지 않는 불로의 몸을 가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육신일 뿐이며, 무엇으로도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인 것은 아니다.

오직 춘매만이 나와 사군자를 불사와 다름이 없는 몸으로 만들 수 있다.

춘매는 생명을 만들어내는 봄의 화신으로 춘매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우릴 죽음에서 부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의 천명은-

백성을 위한 완벽한 신이 되는 것이다.

춘매는 언제나 나에게 완벽한 신으로서의 용서와 자비를 말했지만, 용서와 자비는 비열한 자들을 위한 기회이고 구실이며, 오히려 압도적인 공포야말로 어리석은 인간들이 저지를 잘못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애초에 이 나라의 평안을 나라는 단 한 사람의 선의에 의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느냐?

인간이란, 다른 이의 잘못은 용서없는 처벌을 받길 원하면서 자신의 잘못에는 자비와 관용을 바란다.

자신의 비열함은 삶의 요령으로 포장하면서 타인은 원칙을 지키길 바라며 배신하면서도 배신당하고 싶지 않아하고, 악습인 걸 알면서도 자신이 이득을 보는 순간에는 그대로 답습하며, 공정한 기회보다 공평한 불행을 바라는게

바로 인간이다.

인간 본연의 성품이 저열하고 추악하기 그지없는, 지옥에나 걸맞는 것이라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주는 것이야말로, 완벽한 신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인간들에게 지켜지지 않는 원칙과 명확하지 않은 규칙으로 어둠 속에서 눈을 멀게 하고,

단 한 번의 실수도 용서하지 않는 처절한 처벌로 한 걸음도 섣불리 내딛지 못하게 하며

불공정한 기회와 불공평한 결과로 포기와 체념에 익숙해지게 하겠다. 

그런 세상이 삶이 되고, 그 삶에서 얻은 경험이 자식에게 '삶이 준 교훈'이란 이름으로 대물림되며,

그것을 익혀 자란 모두가 그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순응하지 않는 자를 배척하게 만들어

모두가 자발적으로 틀 안을 벗어나지 않는 영원한 통제의 굴레를 만들려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춘매를 되살려

나의 불사로 하여금 인간들에게 완벽한 절망을 안겨주고,

스스로를 끝없는 어둠 속에 가두게 하겠다.


... 정말 공포스럽기 그지 없는 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가 바로 명영과 복아의 진심이 드러나는 장면과, 춘복이 아들을 잃고 깨닫게 되며 다시 청이를 구하러 가는 장면과 더불어 신룡이 진심을 드러내며 세상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천명'하는 이 장면이죠.


이 말들은 어느 시대든 그럴 것이지만, 분명한 인간과 사회의 원리, 원칙을 이해하고 그 핵심을 정확하게 꿰뚫으며, 초인 독재자가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가 악하다면(혹은 악한 신념을 가졌다면) 어떻게 통치될 것인가를 묘사한 것과 다름 없다고 봅니다. 더불어 이러한 서술로 그 핵심적 요소들을 나열한 것은 독자로 하여금 그러한 사회를 상상하게 만들고, 자연히 현 사회와 비교하게 만들거나 연상하게끔 합니다.


이는 동양 판타지라는 작품임에도 사회적 비판이 가장 날카롭고 차갑고도 뜨겁게 벼려진 송곳. 아니, 작두처럼 휘둘러지는 장면이 아닌가 싶을 정도죠. 어지간한 사회비판 작품보다도 더 날카로웠습니다. 


그러한 사회를 바라는 집단이 현실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으며, 그러한 원칙 아래 정치와 통치가 작동한다는 점은 이 작품에서 말하는 지옥 같은 세상이 단지 작품 속 세상, 말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리스적 기승전결을 정석적으로 따라가는 판타지소년 만화인 동시에, 날선 비판성이 뚫고 나오는 현대적 문학작품이기도 하다는 평가를 주고 싶습니다.


물론 이런 작품이 한 두개도 아니지만, 사람의 감정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면서도 단지 감정만을 건드리지도, 어중간한 비판만을 하며 사실, 혹은 해석만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작품성을 거대하게 팽창시키고 있죠.



그리고 꼭 이야기하고 지나가야만 하는 요소가 있는데, 바로 판타지 장르답게 여러 마법 같은 능력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작가가 구축해대고 창조해낸 능력의 설정입니다.


이게 왜 꼭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냐면, 기본적으로 가담항설은 문학이라는 것을 근간으로 세계관의 능력을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따라서 작품 내에서 사용되는 여러 능력들은 그러한 문학의 구성요소, 말과 글의 구성요소를 모티브로 따와서 만들어낸 것들이거든요.


능력의 수준은 지식의 깊음에서 나오고, 각인과 같은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선 그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죠. 또한 결계 같은 능력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랑또가 정말 대단한게 다른 양판소나 일본산 라노벨 같은 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유치한 능력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개념을 설득력 있고 개연성 있는 능력으로 가공해내서 이용한다는 겁니다. 각인, 결계, 독안과 같은 능력을 문학과 접목시켜. 아니, 문학의 개념을 통해 각각을 구체적인 능력으로 만들어냈는데, 그러한 것들이 어떻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설득력 있게 서술해냅니다. 


결계와 같은 것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묘사력인데, 무언가를 정확히 묘사할 수 없다면 그것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없죠. 그렇기 때문에 결계와 같은 자신의 의지, 상상을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해선 그만큼 구체적이고 와닿는 묘사력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리고 묘사를 더 정확하게 하기 위해선 많은 것을 알아야 하는데, 단순히 단어를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독서를 통해지식을 쌓고, 직접 보고 들어 견문을 넓혀 식견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죠.


독서를 통해 지식과 통찰력을 기르고, 직접 보고 겪는 현실을 통해 자신이 아는 것을 단지 지식으로서 아는 것이 아닌, 몸으로 직접 느끼며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글쓰기, 문학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좋은 묘사력이라는 것은 여러 종류의 경험에서 나오는 법이죠.


많은 글을 읽어봐야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고, 직접 겪어본 것을 더 정확히 묘사하며, 직접 많이 써봐야 그러한 시행착오를 통해 더 좋은 글, 더 훌륭한 글, 뛰어난 문장력이 만들어지죠. 작품 내에서도 시 짓기 또한 결계사들의 중요한 수련이라고 합니다. 


능력 중에서 개인적으로 독안이라는 개념을 참 좋아하는데, 독안으로 결계를 읽는 것을 독력, 이를 풀어내는 것을 해력이라고 합니다. 합쳐서 독해력이라고 하죠. 독해력은 현실에서도 글을 읽고 해석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단지 읽기만 해서는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이해하기 위해선 해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읽을 수 있어야 하죠.


뛰어난 독해력을 가졌다는 것은 문장의 기본 단위를 논리적으로 분해해서 파악하고 그 구성과 성분을 이해하는 지적과정을 잘 해낸다는 것입니다. 마땅히 뛰어난 독해력을 갖추기 위해선 그만큼 뛰어난 지성을 필요로 하고요. 그러한 것을 갖추어 많은 것을 알고 잘 쓴 글을 쓰며, 잘 이해하는 사람을 보고 우리는 뛰어난 식견을 갖췄다고도 합니다. 


가담항설에 나오는 비현실적인 능력이 말의 힘, 글의 힘에서 나온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독해력이라는 현실에 존재하는 문학적 개념을 판타지적으로 해석하여 독력과 해력이라는 개념으로 재가공하는(비단 독안 뿐만 아니라 다른 능력들도.) 랑또의 창의력은 정말 참신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대단한 점은, 그것들이 결코 유치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있어보이기만 하지도 않다는 것 또한이요. 넘치치도, 부족하지도 않은 그 상태에서 발휘되는 작품 완성도의 완전성은 독자로 하여금 압도되게 하지 않나 싶습니다.



더불어 랑또 작가, 가담항설의 특기할만한 점은, 문학성에 있어서 일본 작품들과의 차이점인데, 일본 작품들의 경우 작가의 사색이나 통찰이 뛰어나도 철학적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신 감정을 잡아내는데에는 꽤 일품인 경우가 적지 않죠. 다르게 말하자면 말로 정리하는 건 잘 못해도, 감각적으로 이해시키는 건 나름 잘하는 편이라는 겁니다. 물론 그것도 잘 하는 작가들이 그런 거긴 합니다만..


반면 랑또 작가는 그러한 사색을 말로써 아주 잘 정리해서 우리에게 제시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글(말)로 정리해서 소개할 수 없다면 그것은 진짜 자신의 지식이 아니고, 자기가 진짜 알고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인지라, 단지 일본 작가들의 문학적 이해도, 철학적 정립성이 떨어졌기 때문에 자신이 느끼고 상상하고 직간접적으로 감각하는 그 감정과 감성들을 글로 잘 표현해내지 못해서 어떤 면에선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느낌에 답답하기도 할 때가 있더군요.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랑또 작가의 가담항설은 그러한 감각을 정확하게 글로 표현하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문학적 표현의 형식으로서 아주 정확하게 정리해서 대사를 뽑아낸다는 점에서 굉장한 철학가인 셈이죠. 그렇다고 독자의 감정과 감성을 잘 못잡아내느냐? 그것도 결코 아닙니다. 아주 능수능란하게 가지고 논다는 점에서 괴물 같은 작가이기까지 하죠. 일본식 신파와 심각한 척 분위기 잡는 것은 전혀 없고, 그 인물들의 깊은 캐릭터성을 통해 우려내기에 어색함도, 작위성도 느껴지지 않죠. 결코 말을 늘이지도, 줄이지도 않기 때문에 각각의 대사를 음미할 수 있고, 음미하면할 수록 캐릭터성의 깊은 맛에 큰 매력을 느끼며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사를 허투루 쓰질 않더군요.



가담항설이라는 작품처럼 훌륭한 작품은 참으로 욕심이 납니다. 정말 각각의 캐릭터와 구성, 인물관계가 흥미롭고 재미있어서 하나도 빠짐없이 설명하고 이야기하고 싶어지게 된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갑연, 갑희나 암주, 홍화, 정기, 이청, 영호, 춘복 등.. 설명하고 해석해보고 싶은 캐릭터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그러기 너무 힘들죠. 글도 길어지고. 보는 이에게 욕심이 나게 만드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겠죠. 전 이 작품을 현재 연재되는 작품 중 가장 수준이 높고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가합니다. 당연히 그런 창작물을 만드는 랑또 작가에 대한 평가는 더더욱 높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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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언론의 핵심은 조중동이고, 진보 언론의 핵심은 한경오라고 하죠.


가장 덩치가 크고, 큰 만큼 영향력도 크니까요. 그런 만큼 각각 진보적 의제와 보수적 의제를 가지고 사회적 이슈로 간접적인 경쟁과 대립을 하곤 했지만, 이는 엄밀히 말해서 그들 중 어느 쪽이 더 정의롭거나 공정하거나 뛰어난 지성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니고, 반대로 각각 다른 이념을 기반으로 사회현상을 설명하거나 전달하기 위함인 것도 아닙니다. 



이들은 그저 서로의 미디어라는 상품을 파는 대상이 달랐던 것 뿐입니다. 조중동은 보수, 우파라는 고객에게 자기들의, 혹은 자기들의 파트너가 원하는 이념과 메시지를 팔았을 뿐이고, 한경오는 그 반대에 불과했습니다.



독재와 부패의 핵심과 오랫동안 붙어 먹은 조중동과 다르게 그들을 오랫동안 비판해왔고, 실제로 올곧은 신념을 가지고 투쟁했던 이들도 있는 만큼 한경오가 조금 더 낫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에 와서 그러한 구분은 의미가 없을 정도로 동질화 되었습니다. 어느 한쪽에 동질화 됐다는 게 아니라, 그냥 똑같은 수준과 냄새로 타락했다는 것 뿐입니다. 


만약 진보 언론이라던 한경오가 그토록 더 도덕적이었다면,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잔혹한 이빨질이 있어선 안 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누구보다 비윤리적으로 물어 뜯는 개가 되어버렸죠.



그 이유는 그들이 정말 도덕적이거나 정의로운 집단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은 정의와 공정을 기치로 대통령직에 올랐고, 그것을 실현시키리라 공언했습니다. 물론 애초에 불가능한 일도 있었고, 어떤 것들은 현실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으며, 어떤 문제에 대해선 야당과 언론, 일부 국민의 불공정하고 부당한 발목잡기와 공격이 있었기 때문에 실현하지 못하고 있죠.


이는 어떠한 면에선 분명 비판의 요인이 되고, 되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원론과 별개로 한경오가 그러한 부정부패에서 상당한 거리가 있는 이 정부를 그토록 잔혹하게 물어뜯는 이유는, 그들 또한 조중동과 다를 바 없이 부정부패하고 타락한 집단이었기 때문이죠.


자신들 또한 그러한 부정부패와 함께 재미 좀 봤던 이들이기도 합니다. 당장 부정청탁 금지법. 흔히 김영란 법이라 알려진 그 법을 추진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진보 언론이라는 이들은 보수 언론이라는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여러 정부의 더 도덕적이고 더 정의로운 정책과 개혁을 꾸준히 반대해 왔습니다.


부정, 혹은 특혜를 옹호하는 자들은 그것의 혜택을 받는 자들이거나 노예근성 쩌는 개돼지인 경우인 점을 생각해본다면, 언론 권력을 쥐고 있고 직접 휘두르는 기자, 언론인, 언론사의 행동이 어떠한 기저에서 나왔는 지는 명약관화한 셈이죠.


'그들'은 '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상당히 닮았어요. 언론 또한 기업이고, 한국에서 기업에게서 도덕성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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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19.02.05 14:05 address edit/delete reply

    거두절미하고 진보언론이 페미편을 드는 이유는 뭐라고 딱 짚어서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 ㅇㅇ 2019.02.05 14:06 address edit/delete

      손석희의 경우를 보면 이미 그들의 추악한 위선은 다 드러난것 같습니다만...

    • Favicon of https://konn.tistory.com BlogIcon Konn 2019.02.05 20:37 신고 address edit/delete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생각해봤던건 진보 특유의, 인권과 평등, 자유에 대한 영역에 있어서 이념이 현실보다 우선하는 경향성과 관계된 게 아닌가 싶더군요.

      진보 쪽에서는 극우나 보수 쪽에서 때때로 하찮게 여기는 자유, 평등, 인권이라는 개념에 대해 그들과 맞서 싸우고 논쟁하다보니 그에 대한 반동으로 되려 그러한 개념들에 있어서 교조화 되는 경우가 있곤 합니다.

      거의 평등, 자유와 같은 개념을 절대선으로 정의해둔달까요? 그렇다보니 이것을 하나의 종교적 진리로 각인시킨 뒤 이것에 맞게 행동하는 겁니다. 행동과 사유가 사상, 이념에 얽매이게 되는 겁니다.

      따라서 어떠한 현상과 현실에 대한 더 깊고 정확한 통찰과 그에 따른 중요한 논의를 하기 보다는 그것을 보며 느끼는 자신이 생각하고 -자기 집단이나 세력과- 공유되는 절대선에 어긋난 상황에 대한 생리적 혐오를 먼저 느끼게 되는 거죠.

      혐오를 먼저 느껴버리니까 무조건 그것에 대한 반대가 시작되는 거고, 기계적인 반발이 발생합니다. 그에 따라 이성적인 다각적 현상파악과 통찰보다는 감정적이고 감각적인 비난과 조롱으로 이어지거나, 최소한 그러한 감각을 이성적인 언어로 둔갑시켜 공격하기도 합니다. 근거나 논리가 아예 없는 건 아닌데, 그만큼 날카롭게 세웠으나 반격 당하기에도 그만큼 연약한 비판인 셈이고요.

      페미나 PC 관련해서도 그러한 맥락에서 발생한 기계적 움직임이 아닌가 싶더군요. 이념이 현실보다 우선되고 그 이념에 따라 기계적으로 '이래야 한다.'라고 설정되어 버리는..

      진보 영역에서 인권과 평등에 너무 경도되어 버린 나머지 공정성을 잃어버린 게 페미와 PC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좀 해봤는데, 아무래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되더군요.. 뭔가 더 있지 싶은데 잘 모르겠습니다.

  2. ㅇㅇ 2019.02.05 21:11 address edit/delete reply

    교조화...
    확실히 그말말고는 딱히 설명할 수 있는게
    안떠오르네요 자신들의 그 실현불가능해보이는 순수한 정의를 자신들한테도 적용하면 참 좋을텐데 그러지는 못하고 그걸 자중하거나 비판하는 인간들은 없고...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을 처벌하거나 짤라야할 때 간혹 이런 이야기가 나오곤 합니다.


저 뛰어난 사람, 더 높은 직위에 올라간 사람을 내치면 일할 사람 누가 있겠느냐. 


귀한 사람은 고쳐 쓰는 거라는 말이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닙니다. 고장 났음에도 쓸 수밖에 없을 때나 쓰는 것 뿐이죠. 실제로 말은 안 할 뿐이지 부정부패한 범죄자를 다시 데려와서 다른 높은 자리에 보내거나, 다시 쓰는 경우는 꽤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경우에 욕 한번 하고 마는 것 뿐이지 사실 굉장히 무감각한 것도 찾아볼 수 있고요.


하지만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더 적극적으로 배재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에겐 인재가 썩어 넘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없다. 인재가 없다는 말은 웃기지도 않은 거짓말입니다. 사람이 없다는 말은 내 입맛에 맞는 사람이 없다. 라는 말로 바꿔야 합니다. 내 편이 아니어서 입맛에 안 맞고, 내 진영이 아니라 입맛에 안 맞고, 내 이해관계와 달라서 입맛에 안 맞는 거죠.


한국은 세계에서 대학진학자들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고, 고스펙에 능력도 뛰어난 사람들 많습니다. 젊은 이들 중에도 많고, 중년 이상의 세대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들이 기존의 기득권에 편입되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능력은 있는 자들과의 경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이거나, 그들의 집단과 사상, 이해관계 등이 다르기 때문이죠.


가령, 부정부패한 집단엔 청렴한 인재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가도 못 버티곤 하고요.



그런 집단 내에서 부정부패나 범죄, 다른 도덕적 문제 등으로 인해 짤릴 때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가며 쉴드를 치곤 하는데, 그 변명과 명분 중에서도 쓸 사람이 없어서 안 된다 같은 이야기는 그냥 같은 편, 같은 진영의 소속원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고, 우리는 그런 집단을 카르텔이라 부릅니다. 


인재는 많아요. 진짜 정말 많습니다. 단지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기 때문에 배제 당하는 것이고, 카르텔을 지키기 위해서, 서로가 서로를 봐주고 지켜주기 위해 견고하게 이루어진 것 뿐이죠.


정당하고 정의로운 집단이라면 그런 정치적 논리와 의도하에 굳이 보호하지 않을 겁니다. 최소한 그 선이 매우 높겠죠. 아무나 지켜주지 않을.



고위직이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은 사회적 손실을 발생시키는 거고, 그 직위가 높고, 그 권한이 클수록 그 병폐는 더 크고 더 넓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에 따라 정당한 처벌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치논리와 진영논리로 그런 고장난 부품을 지키는 것은 결국 고장난 부품을 그대로 굴리는 일이고, 고쳐지지 못한 장치는 결국 망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국가는 그렇게 쉽게 망하는 게 아니니 더 큰 피해를 발생시키는 더 큰 고장이 나게 되죠.


부패의 카르텔을 없애야 하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부정부패란 정의롭지 않은(不正) 도덕적, 정신적 타락(腐敗)을 말합니다. 정의롭지 않은 것이 전체의 이익을 발생시킬 수는 없습니다. 언제나 다수의 이익을 착취하여 소수의 이익으로 걸러내죠. 이익은 내꺼, 손해는 니꺼.



인재가 없는 것도, 적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고장난 부품을 빠르게 교체해내야 합니다. 물론 그 정도를 따져야 할 것이고, 그 처벌의 선상은 공정해야할 것입니다. 하지만 일정 선상을 넘은 고장이라면, 그 부품은 교체되어야 맞죠. 수리가 불가능하거나 그 비용이 더 크다면 새로 쓰는 게 맞습니다.



따라서 인재가 없다느니 정치공세라느니 큰 문제가 아니라느니 하는 둥 하는 이들은 딱 두가지 부류밖에 없습니다. 선동에 넘어간 자, 혹은 선동을 하는 자. 


후자의 경우 자기 진영의 인물, 자기가 소속된 카르텔을 지켜야 한다는 직간접적인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전자의 경우는 그냥 자기 의견과 판단력 없이 그 부패한 진영의 정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여 앵무새처럼 떠드는 것 뿐입니다. 다시 말해, 선동 당했다는 겁니다.



현재 한국의 고위 공직자, 고위 재계 인사 중에서 가볍지 않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 생각해본다면, 정말 거대한 규모의 물갈이가 필요하다는 결론만 나옵니다. 이 또한 결코 작지 않은 파장과 여파, 비용과 손실을 발생시키겠지만, 해야하는 일이라면 반드시 하는 게 맞습니다. 할 수 있느냐는 별개고 그 방법 또한 다양할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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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뽕 겁나 차오르게 만드는 영상입니다. 이거 말고도  Yuve Yuve Yu (https://www.youtube.com/watch?v=v4xZUr0BEfE)라는 곡도 있는데, 이것도 괜찮은 곡입니다.


몽골 평원을 배경으로 거친 몽골 상남자들이 모여서 유목적 사운드를 바탕으로 메탈을 하는데, 이게 이렇게 멋지고 Badass해보일 줄이야.. 몽골 간지야 전부터 알았지만, 이게 메탈과 만나니 아주 죽여주네요.


배경에 있는 멤버들도 인상과 무게감이 정말 압도적인데, 스티븐 연 닮은 멤버는 좀 가벼워 보인다는 점 때문에 튀는 인상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인상에서 나오는 무게감과 카리스마가 죽여줍니다. 


아래는 키릴 문자, 로마자 표기, 영어, 한국어 가사 및 해석입니다.


Lyrics -


https://lyricstranslate.com/ko/wolf-totem-%D1%87%D0%BE%D0%BD%D0%BE%D0%BD-%D1%81%D2%AF%D0%BB%D0%B4%D1%8D%D1%82-wolf-totem-wolfs-totem.html


Арслан ирвээс алалдан уралдъя

Arslan irvaiis alaldan urald'ya

The lion is in a bloody battle to the death

한 사자가 죽음을 향한 혈투를 하네

Барс ирвээс байлдан уралдъя

Bars irvaiis bayildan urald'ya

The tiger overcomes the leopard in a match

범은 표범을 물어 죽이고

Заан ирвээс жанчилдан уралдъя

Zaan irvaiis zhanchildan urald'ya

The elephant thrashes the leopard in a contest

장에서 코끼리는 표범을 박살냈다네

Хүн ирвээс хүчилдэн уралдъя

Khün irvaiis khüchilden urald'ya

Man intensely struggles with a leopard to contend

남자는 표범과 극렬히 투쟁한다.


Бид арслан ирвээс алалдан уралдъя

Bid arslan irvaiis alaldan urald'ya

We, the lions slaughter the leopards in a match

우리, 사자는 표범을 도살하였고,

Барс ирвээс байлдан уралдъя

Bars irvaiis bayildan urald'ya

The tiger beats the leopard in a contest

범이 표범을 짓밟았으며,

Заан ирвээс жанчилдан уралдъя

Zaan irvaiis zhanchildan urald'ya

The elephant trounces the leopard in a fight

코끼리는 표범을 때려 눕혔다.

Хүн ирвээс хүчилдэн уралдъя

Khün irvaiis khüchilden urald'ya

Man strenuously strains with a leopard in contention

남자는 표범과 격렬하게 투전한다.


Хатгагч эрээн могой болох бол

Khatgagch airaiin mogoyi bolokh bol

An instigator, the jealousy of a snake it could be

뱀 조차 질시할 한 선동자가 있었고,

Хангарьд болон дээгүүр нь дүүлнэ

Khangar'd bolon daiigüür en düülnai

And Khan Garuda leaps up above into the air

칸 가루다는 공중에 뛰어 올랐네.

Хүрхрэх эрээн барс болох бол

Khürkhraikh aiaiin bars bolokh bol

A growl, the jealousy of a tiger it could be

범조차 질시한 그 포효.

Хөх зогдорт алслан болъё

Khökh zogdort alsan bol'yö

The blue wolf comes too from far away

푸른 늑대는 그리도 먼 곳에서 오는가.



ху - ху - ху - ху...

khu - khu - khu - khu...

Hu - hu - hu - hu...

후 - 후 - 후 - 후...

ху - ху - ху - ху...

khu - khu - khu - khu...

Hu - hu - hu - hu...

후 - 후 - 후 - 후...


Өдөөд ирвээс өрсөлдөн тэмцэе

Ödööd iraiis örsöldön taimtsaie

Provoked, the snow leopard competes with it's rivals

자극받은 설표는 필적과 경쟁한다.


Аравт болон аянгалан ниргэе

Aravt bolon ayangalan nirgaie

Ten thunderbolts strike at the same time

열의 우뢰가 일시에 내려치며

Зуут болон зүрхэнд нь ниргэе

Zuut bolon zürkhaind en nirgaie

A hundred hearts energized in the thundering roar

백의 심장이 천둥처럼 울린다.

Мянгат болон мөргөлдөн ниргэе

Myangat bolon mörgöldön nirgaie

Simultaneously a thousand colliding thunderbolts

천의 우뢰가 일시에 터져울린다.

Түмт болон тэнгэрээр ниргэе

Tümt bolon taingairaiir nirgaie

And too, ten thousand lightning strikes in the heavens

그리하며, 만의 번개가 천국에 울리는 도다.



ху - ху, ху - ху...

khu - khu - khu - khu...

Hu - hu - hu - hu...

후- 후 - 후 - 후...

ху - ху, ху - ху...

khu - khu - khu - khu...

Hu - hu - hu - hu...

후- 후 - 후 - 후...



Үерлэн ирвээс үхэлдэн үзэлцье

Üerlain iraiis ükhaildain üzailts'e

This deluge is the leopard battling in a deadly fight

표범의 살투는 대홍수를 일으켰고

Нөмрөн ирвээс нүдэлдэн уралдъя

Nömrön irvaiis nüdaildain urald'ya

The surges of the leopard scuffling in competition

표범의 난투는 큰 파도를 일으키며,

Нисэлдэн ирвээс харвалдан унагъя

Nisaildain irvaiis kharvaldan unag'ya

The awesome leopard swats, blows to overthrow

이 뛰어난 표범은 정복자를 타도한다.

Цахилан ирвээс цавчилдан тэмцье

Tsakhilan irvaiis tsavchildan taimys'e

The glistening leopard slashes in the scramble

눈부신 표범이 경합을 찢발긴 도다.


 

ху - ху, ху - ху...

khu - khu - khu - khu...

Hu - hu - hu - hu...

후- 후 - 후 - 후...

ху - ху, ху - ху...

khu - khu - khu - khu...

Hu - hu - hu - hu...

후- 후 - 후 - 후...

 

Шонхорын хурдаар хурцлан давшъя

Shonkhoryn khurdaar khrtslan davsh'ya

With the speed of the falcon advancing

매의 사냥과 같은 빠르기로,

Чонын зоригоор асан дүрэлзэье

Chonyn zorigoor asan dürailzai'e

The wolf's courage at times flaring up

늑대의 용맹은 점점 커져만 간다.

Тэнхээт морьдын туурайгаар нүргэе

Tainkhaiit mor'dyn tuurayigaar nürgaie

The strength of horses hooves, their paces pounding

말의 발굽과 같은 힘으로, 그들은 땅을 박찬다.

Тамгат Чингисийн ухаанаар даръя

Tamgat Chingisiyin ukhaanaar dar'ya

The mark of Genghis Khan, an overwhelming impression

징기스 칸의 징표가 압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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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 곱슬, 계란형에 동글동글한 얼굴, 수줍은 입술, 동그랗고 얇은 테의 안경, 빨간 코, 적당히 후줄근하게, 혹은 털털하게 입은 옷 등.. 살짝 보이쉬하면서도 되게 귀여운 인상이라 눈이 되게 간 유튜버입니다. 이런 인상, 스타일이 흔하진 않죠. 소화하기도, 만들기도 어렵다보니..


사실 이 유튜버는 한국어를 못 합니다. 근데 그냥 한국어 발음을 외워서 부른 거죠. 그래서인지 ㅔ로 끝나는 발음을 ㅔㅣ로 처리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그런 면에서 외국인 특유의 매력적인 서투른 발음이 더 귀엽습니다.


노래를 잘 부른다고 하기엔 수수하고 평범하지만, 특유의 목소리와 나긋나긋한 분위기가 더해지니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Lyrics - 


내일이 올 걸 아는데

난 핸드폰을 놓지 못해

잠은 올 생각이 없대 yeah

다시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 하네

잘 난 사람 많고 많지

누군 어디를 놀러 갔다지

좋아요는 안 눌렀어

나만 이런 것 같아서

저기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 속엔


문제야 문제

온 세상 속에

똑같은 사랑노래가

와 닿지 못해

나의 밤 속엔

생각이 너무 많네


복잡해 틈 만나면 바뀌는 게

관둘래 이 놈의 정보화 시대

단단히 잘못 됐어

요즘은 아는게 더 괴로운 것 같은데


가면 갈 수록

너무 어려워

나만 이런 건지

클럽 말고 뭐

영화 말고 뭐

없나 하다 결국 동네

내 맘에는 구멍이 있어

그건 뭘로도 못 채우는 것 yeah

난 지금 가라앉는 중 인걸 네모난 바다 속에서


문제야 문제

온 세상 속에

똑같은 사랑 노래가

와 닿지 못해

나의 밤 속엔

생각이 너무 많네


뚜루루뚜 뚜루루뚜 뚜루루뚜 뚜루루뚜


all night

그렇게 시간 낭비를 하네

저 인스타그램 속에서

Lonely lonely so lonely

원래 이리도 힘든가요

no way no way

이 피드 속엔

나완 다른 세상 뿐인데


부질없이 올려 놓은 사진

뒤에 가려진 내 마음을

아는 이 없네

난 또 헤 메이네

저 인스타그램 속에서


그래 너는 요즘 어때

잠 못 자는 건 여전해

자른 단발이 참 예쁘던데

좋아요는 안 눌렀어

조금 웃긴것 같아서


뚜루루뚜 뚜루루뚜 뚜루루뚜 뚜루루뚜


all night

그렇게 시간 낭비를 하네

네 인스타그램 속에서


작사: Kwon Hyuk / CHO DAE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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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보도 무조건 1면에 실으라는 與… 세계에서 유례없는 법안

https://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20&aid=0003189842&date=20181228&type=1&rankingSeq=9&rankingSectionId=100



오보 사건, 혹은 무고 사건에 대해 열심히 욕하고 까대던 언론이, 정작 상황이 뒤바뀌자 입 싹 다물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굴거나, 어디 구석탱이에 잘 보이지도 않는 곳에 정정보도를 자그맣게 실어서 우린 정정보도 했다는 식의 면피를 하는 경우, 한국 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든 비슷한 경우는 많습니다. 단지 한국 언론의 양심 수준은 과거 독재시기 시민을 향해 총을 쏘았다는 소식을 전하지 못한 이들이 붓은 놓은 이후로 처참하리만치 땅에 떨어져버렸죠.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정보의 중요성은 그 무엇보다 높고, 정치적 실력을 통해 언론을 반드시 통제하거나, 자기 편으로 만들거나, 협상하고 대화할 수 있는 상대로 만들려는 이유가 거기에 있죠. 인식을 지배해야 행동을 통제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보를 공식적으로, 그리고 대대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은 사실상 언론이 유일합니다. 정부가 무언가를 발표하고, 어딘가에서 어떠한 사건이 벌어지고, 인터넷에 아무리 글을 올려도, 최소한의 공신력과 신뢰성을 갖춘데다, 그러한 정보력과 전파성을 가진 유일한 매체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언론이 사회에 해가 되는 공해성 행위를 했을 때인데, 일부러 교묘히 프레임을 만들어 선동을 하거나, 일부 진실은 가리고 일부 진실만 전하고, 혹은 일부 진실과 일부 거짓을 교묘히 섞어서 마치 전부가 하나의 사실인양 호도하거나, 기묘한 화법으로 비상식적인 일을 문제가 없는 것으로, 혹은 그 반대로 서술하기도 하죠. 


이러한 언론에 대해선 어떠한 견제책이 필요하지만, 마찬가지로 그러한 견제가 지나치거나 특정한 정치적 의도, 정치적 악의가 깃들어있다면 그게 곧 언론탄압이 되는 아슬아슬한 문제를 가지고 있죠.


이에 대해 저는 언론을 검증할 수 있는 전문팩트체크, 컨텍스트 검증 기관이나 조직 같은 게 필요하다고 보는 편이지만, 결국 정보를 전달하고 의도와 맥락을 서술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무엇이든 믿을 수 있는 게 있기나 한가 싶기도 합니다.



뭐 아무튼, 앞서의 이야기처럼 언론의 권력은 그 규모에 비해 막대하고, 그 영향력은 그 이상입니다. 이것이 잘못 작용하게 된다면 굉장한 사회적, 국가적, 심지어 국제적 문제가 터져버릴 수 있고 심대한 피해를 입힐 수도 있죠.


가령 저 위의 기사는 동아일보에서 쓴 것인데, 그 동아일보가 과거 신탁통치오보 사건을 통해 나라를 절단내버렸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하는 말인지, 또한 얼마나 양심이 없고 수치를 모르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지만 그것이 정의롭고 올바른 방향성을 갖추고 있다면, 그것은 유례가 없는 게 아니라 최선진적인 거죠. 우리가 다른 나라를 앞서고 있다는 게 됩니다.



언론이 오보를 일으키면 수 많은 사람들에게 거짓된, 잘못된 정보를 인식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연예계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죠. 여러 차례의 구설수나, 심지어 성범죄 의혹에 대해 열심히 물어뜯고 마치 그게 사실인양 보도했지만, 실제로는 아니었거나, 무고가 된 사례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에 대해 정정보도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고, 한다고 해도 작게, 잘 모르게 했죠.


그래서 몇년전까지만 해도 그러한 사건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실제로 어떻게 끝났는지 알지 못했고, 그 때문에 이미지는 나락에 떨어진 이들이 연예계에 쉽사리 복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나마 연예인 같은 유명인이기 때문에 찾아보려는 사람도, 알려지기도 쉽다는 점 덕분에 이미지가 복구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인의 경우는 사회적 타살을 당하게 되는 것 뿐이죠. 개새끼가 됐을 뿐 누구도 알아주지 않으니까.



개인에게도, 사회적으로도 오보라는 위험과 피해, 비용을 발생시켰다면 언론은 그에 대해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도의적으로든 아니든 언론은 자신의 실수와 발생시킨 피해에 대해서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언론이 그러지 않고 있으니, 이는 강제되어야 합니다. 


해당 법안을 발의한 사람 또한 언론계 출신인데, 그런 사람인만큼 언론계의 생리를 잘 알고 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저러한 법안을 발의한 것이겠죠. 또한 저도 동의합니다. 1면이 가지는 이점과 중요성, 무게감 또한 있지만, 사회적 비용과 피해에 대한 책임이 가지는 것 또한 매우 거대합니다. 그러니 그러한 이점을 포기하거나 손해보기 싫다면 그들의 취재와 보도에 있어서 더 큰 책임감과 검증력이 필요하게 되겠죠. 사회적인 이점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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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https:// BlogIcon 지나가던행인 2019.01.01 23:13 address edit/delete reply

    이 나라의 언론은 이미 좌우 모두 자정능력을 상실했습니다.

    팩트는 갖다버리고 지들 입맛에 맞춰서 보도하는건 놀랍지도 않죠.

    조중동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

    빌어먹을 진보계통 언론들(한경오+ㅈ티비씨 기타 등등)은 지들은 더하면 더한 짓거리를 하면서도

    자신들은 다르다고 생각하나봅니다.

    쓰레기라도 본인이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쓰레기처럼 더러워보이는 쓰레기는 없겠죠?

    특히 요즘 근거도 없는 미투논란이랑 ㅄ같은 혐오사건같은것도 지들 입맛대로 끼워맞춰서

    말도 안되는 소리를 되는대로 지껄여놓고 아님말고로 나오면서 몇몇 사람인생 아작내는데 살맛이 나나본데...

    그래놓고 하도 막 나가는 거 제재 좀 하겠다니까...언론의 자유...알 권리...하... 웃기지도 않아서

    솔직히 말할까요? 지금은 오히려 저 인간들이 또 다른 권력자들입니다.

    보도 하나, 기사 하나로 사람들을 좌지우지하려는 쓰레기들이죠.

    아직도 지들이 무슨 군사정권시절 저항하는 참 언론포지션인줄 아나본데...

    이 자식들은 민주주의니 언론의 자유니 이딴거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습니다.

    책임없는 자유? 장난? 어디 삼류찌라시 가십잡지도 아니고? 명색의 주류언론이라고 개폼 좀 잡는 사람들이...

    이 자식들은 총칼만 안 들었을뿐이지 연쇄살인마들보다 더한 놈들이에요.

    그래서 전 기자(특히, 인터넷 기자)는 사람취급 안합니다.

    말로는 인권이니 평등이니 지껄이면서 막상 말하는걸 들어보면 본인들이야말로 그런것들과는 거리가 멀거든요.

    더 가관인건,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치우치지않은 판단을 내려야하는데 언론이 자정능력을 상실했듯,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도 자정능력을 상실한 자들이 근래에 많아진거 같습니다.

    저희 모두는, 뇌 없는 꼭두각시 인형이 아니지 않습니까?

    삶이 분노에 찌들어서 보고싶은거만 보고싶어 시야가 좁아진건지

    아니면 그저 분노하고 원망할 누군가가 필요한건지...

    • Favicon of https://konn.tistory.com BlogIcon Konn 2019.01.02 20:18 신고 address edit/delete

      언론은 언제나 권력이었죠. 다만 정치권력의 힘이 비대했고, 언론이 그 힘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했을 때, 그러한 언론이 권력집단화 되지 못했을 때나 안 그래 보였던 것일 뿐입니다.

      정치권력은 언론과 싸우고 그것을 억압하며 원하는 바를 실현시키고자 하기 대신 그들과 동업을 하기 시작했죠. 원하는 걸 주는 대신, 원하는 걸 받는 파트너로. 아예 자식들과 결혼하며 사돈 맺는 것도 괜찮았고.

      마치 구 시대의 독재자들이 힘으로 국민들 찍어눌렀지만, 현 시대의 독재의 후신들은 그들의 인식을 지배하며 독재의 잔재적 정치를 펼치려는 것처럼.

  2. Favicon of https://https://https:// BlogIcon 지나가던행인 2019.01.01 23:18 address edit/delete reply

    그건 그렇고, 2019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여기 주인장도 이번 한해동안 별 일 없으시고

    발암유발도 덜 되시길 바랍니다.






본디 사회생활과 같이 기존의 집단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환경과 인간관계의 경험을 접해보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개 현실감각이 뒤떨어진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일베와 메갈과 같은 비정상적인 집단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특히 메갈과 같은 페미를 한다는 여성 진영에서는 특이할 정도로 현실감각과 개념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를 너무 자주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은 특기할만한 요소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이는 비단 페미를 한다는 여성들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여성들이 가지는 이상한 착각들이 있습니다. 페미거나, 페미에 가까운 성향을 가지고 있거나 하는 경우 특히 더 그렇더군요.


가령 이수역 사건이나 아래의 방송에서 가지는 남성에 대한 이상한 관념이 그렇습니다. 흉기를 찾아온 가해자를 제압할 수 있느냐 물어놓고, 남자는 막을 수 있다. 제압할 수 있다는 듯이 말합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죠. 남자 또한 사람이고,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여자들이 참 이상한게, 남자들을 무슨 초인, 슈퍼맨 같은 거라 생각해요. 그렇다보니 자기들이 때려도 별로 안 아픈 줄 알고, 세게 때려도 안 다치는 줄 알고, 무슨 엄청난 힘이나 맷집, 신체능력을 지닌 줄 압니다. 그러니 저런 가해자가 흉기를 들고 와도 제압할 수 있을 거다. 라는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죠.




이는 이수역 사건 때도 여성 가해자측이 하는 말을 들어보세요. 발로 차서 언니가 그대로 공중으로 날았다고 하는데, 영화에서나 나오는 연출이지 일반적인 남성이 일반적인 여성(이라고 하기엔 체급이 뛰어났으나)을 발로 찬다고 공중에 날지는 않습니다.


그 정도가 되려면 체중이 거의 두배는 되어야 하고, 근육질이어야 하며, 여성은 평균보다 더 작고 체중도 적게 나가야 합니다. 가령 그 움짤 있잖아요. 최홍만이 여자가 들고 있는 짐볼을 발로 차니 뻥 하고 날아가는 그런 거. 그마저도 짐볼의 탄력 때문에 더 날아간 거지, 맨몸에 차서 그 정도 날아가려면 맞은 사람 내장 터질 정도로 온 힘을 실어 차야할 겁니다. 


이수역 폭행, 불편한 진실? 상대 커플 女 “언어강간·조리돌림 자매가 먼저” 반전 주장

http://www.gn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386474


그는 “가만히 있는 우리를 비웃으며 계속 쳐다봤고 5명의 남자가 끼어들어 비난하고 공격했다”라며 “폭행 후 도망가려던 남성을 붙잡는 중에 발로 차서 언니가 그대로 공중으로 날아서 계단 모서리에 뒷통수를 박았다”라고 주장했다.



뭐 어렸을 때부터 남성성이 부각되고 남자들 스스로도 허세 좀 섞어서 과장하는 면이 있고 그런 영향을 좀 받았다고 해도, 나이 먹어서도 그런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거 자체가 현실감각이 없다는 겁니다. 남성과의 접점과 현실에 대한 탐구심이 없고 관심이 없기 때문에 실제 남성의 현실적인 상태와 능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거죠.


특히 이는 젊은 쪽일수록 심한데, 반대로 나이가 좀 있거나 결혼을 한 사람들은 그런 정도가 훨씬 떨어집니다. 남성과, 배우자와 더 현실적인 관계와 경험을 더 많이 했기 때문에 이상한 환상이나 관념이 상당히 깍여나간 상태죠.


다르게 말하자면, 여성은 남성에 대한 성적 감수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무슨 초인이니 슈퍼맨이니 할 법한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고, 사회적으로는 여성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고지에서 온갖 특혜를 보고 있으며, 그에 대한 반대급부, 나름의 차별성을 겪고 있지 않거나 여성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한심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더불어 여기엔 여성 특유의 비극 소설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모든 도덕적 정당성과 정의를 갖추고 있는 무결한 존재이자 그런 입지에서 죄인에게 무엇을 요구해도 정당한 피해자라는 인지부조화와 자기합리화가 뒤섞인 극도의 감정적 이입과 함께 성 권력의 압도적인 우위를 원하고 있죠. 


모든 여성들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상황을 겪는 여성들에게 있어 그러한 경향성은 여성 특유의 생물적 성질 중 하나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페미를 한다는 둥의 그런 여성들은 그게 정신병적으로 작용하고 발현되는 이들이기 때문에 앞서 서술한 기제들과 합쳐서 한심할 정도로 현실감각이 없습니다.



그러한 현실감각이 없는 여성들에 대한 비판은 같은 여성이자 워킹맘의 맘카페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해본 것도 아니고, 혹은 그리 해본 것도 아니며, 판단력과 이성적 사고력이 증발한 채 자기 개인의 감정에 매몰된 여성들이, 혹은 그럴 수 있는 여성들이, 여성 특유의 끼리끼리 모이고 자기들끼리 뭉치며 동조해주고 심화되어가는 성질에 따라, 자기 집단의 폐쇄성과 막장성만큼이나 관념의 문제는 심각해지면서 자정작용을 잃고, 더 나아가 맘카페와 같은 배타적이고 까다로우며, 비정상적 집단으로 비화되기 쉽습니다.


즉, 여시, 메갈, 워마드, 맘카페와 같은 독재적 환경, 또는 종교적 광신도들이 모인 페네티시즘 타운이 형성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곳을 채우는 개인들은 현실감각이 없고, 여성 특유의 감정매몰에 빠진 정신병적 환자들이죠. 현실감각이 없으니 온갖 헛소리와 개소리와 병신논리가 판을 치고, 이성적 사고력과 정상적 판단력이 존재하지 않으니 그런 소음들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광신성과 접목되어 하나의 신앙이 되고, 그 광신적 신앙은 배타성을 가지며 타 집단에 대한 공격성으로 작동하죠. 


현실을 살지 못하니 현실에 없는 이야기들을 만들거나,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 헛소리를 해대는 겁니다. 오직 자기들끼리 태울 장작이 필요한 거고, 진실은 아무런 필요 요소가 아니니, 자기들끼리 맞장구 쳐주고 동조해주고 끼리끼리 모이며 소속감과 동지의식에 심리적 만족을 느끼는 여성 특유의 집단의식을 위해 특이할 정도로 많은 페미들의 증거, 증언, 사건 자체를 조작하는 사례가 만들어지는 것이고요. 


이수역 사건에서도 당연히 들킬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당당하게 거짓말을 해대는 건 그들이 정신병적 광신성을 가졌기 때문에 자기들 스스로도 그렇게 믿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기 모집단에 태울 땔감을 공급하기 위함입니다. 자기 편을 들어줄 병자들이 많으니까요.


그렇다고 반박 당하거나 부정 당한다고 태도가 변하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정신병이라고 하는 거죠. 아니라고 해도 자기들끼리 그렇게 믿고 그런 믿음에 따라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는 거 자체가 정신병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환빠들이나 일베들처럼 말이죠. 둘 다 완벽하게 논리와 증거와 근거가 논파되고 박살난 채 쫓겨나거나 스스로 도망가도 결국 조금 지나서 다른 곳에서 똑같은 행동을 반복합니다.


단지 페미들이 더 질이 나쁜 건, 자기 감정에 대한 매몰 문제인데, 당장 지 기분이 나쁘면 옳고 그름도, 증거와 근거도, 논리와 합리도 무시된 채, 무조건 자기 기분을 나쁘게 한 놈이 개새끼인 거고, 씹새끼가 되기 때문입니다. 뭐 어디 행사나 매장 같은 곳에서 뭐 안 되거나 할 수 없는 거 요구했다고 안 된다고 하면 바로 조금 기분 나쁘다고 바로 사람 무시하는 소리(ex.아 뭐래 찐따 같은 게.) 뒤돌아 서면서 툭 던지고 훽 가버리는 것처럼요. 


즉, 다른 병신들이 개털리면 아가리 닫고 꼬리 말고 떠난다면, 페미는 쳐털리고도 인정 안 하고 눈앞에서 뻔뻔하게 군다는 겁니다.




덧- 그런 현실감각의 문제는 한국 드라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더불어 자극되는 신데렐라 컴플렉스에 빠진 여성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죠. 진짜 별 것도 아니고 스펙도, 가치도 없는 여성이 도대체 뭘 믿고 그러는지 대단한 재벌이나 뛰어난 인재, 돈 많이 벌고 잘생기고 성격 좋고 자기만 바라봐주는 남자를 낚아서 결혼하길 바라는 거죠. 정확히 말하면 운 좋게 만나서 사귀고 결혼하게 되는. 


하지만 현실은 자기 자신은 별 다른 능력도 없고 스펙도 안 되고 외모가 훌륭한 것도 아닌 주제에 그런 것들을 한 없이 바란다는 겁니다. 노력도 안 하고 그냥 글자 그대로 운 좋게 멋진 남자, 조건 좋은 남자 걸리길 바라며 근처 카페에서 시간만 죽치고 있는 것처럼요.


딱히 머리가 좋지도 않고 인성이 좋아 보일 거라고 생각되지 않고 그냥 몸매와 얼굴만 예쁜 골빈 창녀 같은 여자만큼 자기 관리와 타고난 미모가 뛰어나질 않으니 반대로 남들의 기준을 낮춰서 평균을 자신에게 맞추고자 하는게 현 페미들의 탈코르셋의 실체입니다.


코르셋을 입어본 적도 없는 이들이 탈코르셋이라는 명분을 얻고 그걸 이용하는 거죠. 전형적인 인지부조화인 겁니다. 노력과 관리로 얻은 뛰어난 몸매와 외모는 (자기들이 얻을 수 없기에) 신 포도이니까 화장과 관리를 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외모를 기준화 시키는 속 보이는 짓거리죠. 자기들끼리는 여러 논리와 명분을 대겠지만, 애초에 자기 감정에 매몰된 정신병적 환자들이 하는 자기세뇌에 불과합니다. 자기들은 전혀 아니라고 하겠지만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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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지나가던행인 2018.12.07 20:23 address edit/delete reply

    본문에서도 여성들이 많은 착각을 한다고 하셨는데,

    아주 틀린 말도 아닌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특히 실상을 모르는 여성들은(인터넷 소식을 잘 모른다든지, 뉴스만으로 어찌 들어봤다든지)

    우리나라의 과거 몇 십년간의 구시대적인 잘못된 관습, 차별을 생각하며

    그걸 그대로 현재에 대입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저 미치광이들의 행진이 무슨 타당한 이유가 있으려니, 오죽했으면 저러겠니, 저러면서 세상이 바뀌는거지

    이런식으로 생각하는거보면 참 답답하면서 안타까움이 느껴집니다.

    스스로가 자신들의 모순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거든요. 자각없는 아집이라고 해야하나...

    여성은 언제나 차별받아왔다. = 차별을 받아온것이 곧 범죄를 저질러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남성과 여성은 동등하다. = 하지만 여성은 배려받아야한다고 주장하고 강요하는게 어디의 누구들입니까?

    언급하신대로 요약하자면, 여성무오설입니다.

    (성서무오설도 아니고...이래서 저들이 예수쟁이들이랑 비교되는 걸까요?)

    • Favicon of https://konn.tistory.com BlogIcon Konn 2018.12.08 16:02 신고 address edit/delete

      변별력의 문제죠. 현재와 과거를 구분하고, 과거 세대의 경험과 자신의 경험을 구분하여 인식하고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그러한 구분 자체가 안 됩니다. 그러니 과거 세대의 고통과 차별을 자신이 그대로 겪는 양 느끼죠. 변별력이 없으니 모순이 있다는 것도 이해 못하는 거죠. 전형적인 머저리들의 한치 앞만 보고 싸우는 패턴입니다.

  2. 지나가던행인 2018.12.07 20:25 address edit/delete reply

    어린이와 어른의 차이는, 어른은 나이를 먹어가다보면 다양한 경험을 하게되고

    그리고 자연스럽게 세상은 자기자신만이 아니란걸 깨닫게 되고, 생각도 다 다르다는걸 알게되죠.

    그런데 요즘 자꾸 날뛰는 그 분들을 보면, 말하는거 볼 때마다 그들이 아는 세상이라곤

    방구석 몇평, 스마트폰 액정 몇센치, 망할TV속 판타지 드라마가 전부인거 같더라구요.

    본인들이야말로 자기들만의 이루어질리 없는 망상을 떠들어대며

    다른 사상이나 개념을 바늘 하나 찌를 틈 없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감수성이 어쩌고 공감대가 어쩌고 어처구니가 없지 않습니까? 애어른도 아니고?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내고, 그러면서 남한테 편식하지 마라고 자기 입맛을 강요하는 듯한?

    아마 이런식으로 설명해도 모순점이 뭔지 모를껄요?

    • Favicon of https://konn.tistory.com BlogIcon Konn 2018.12.08 16:03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것을 소아병적이라고 진단합니다. 나이를 먹어서도 어린애 수준의 논리력, 판단력, 사고력 따위를 가지고 있다면 그게 몸만 큰 애지 뭐겠습니까. 애들이 그러면 그냥 달래나 주지만 어른이 그러면 걍 ♫♩♬인 거죠.

  3. Favicon of http://https:// BlogIcon 지나가던행인 2018.12.07 20:27 address edit/delete reply

    저 인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말하죠. 「남자들은 감수성이랑 공감력이 부족해」

    실상은 남자들이 위 두개가 부족한게 아니라 여성들 스스로가 자정능력을 상실한겁니다.

    그들이 말하는 감수성과 공감이란,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당연히 너도 이렇게 생각해야하는거 아냐?」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의 답정너 강요에 불과할 뿐입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여성들 중에서 이 모순점을 지적하는 사람은 손에 꼽힐 정도로 본 적이 없네요.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남자들의 별 실없는 말 하나하나에도 불편하다고 노래를 불러대면서

    자신들은 아무런 자각도 없이 편견섞인 말을 하고 있겠죠.

    그러면서 남자들에게 바다처럼 넓은 관용과 매너를 요구합니다. 본문에 언급된 슈퍼맨처럼요

    엥 이거 완전 성관념 강요 아닌가? 완전히 자기들 주장하고는 반대로 행동하고있네?

    • Favicon of https://konn.tistory.com BlogIcon Konn 2018.12.08 16:15 신고 address edit/delete

      여성 특유의 감정매몰 증상과 집단군체화 현상이죠.. 개인은 없고 집단이 되어 마치 군체의식마냥 덩어리화 되어버리는 괴물.. 그게 페미라는 작자들입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여성은 과거부터 농담 삼아 이야기하곤 했던 모든 일에 대해 남자가 잘못을 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게 이젠 사회문제가 된 거죠. 페미에게 있어서 모든 문제는 다 남의 탓, 혹은 남자의 탓이 됩니다.

      이건 어린애 때쓰기와 다를 바 없는 거고, 스스로 무오하고 신성하다는 자의식과잉이며, 결국 니가 잘못했다는 이기심과 인지부조화일 뿐입니다.

      답정너가 뭐겠어요.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다 맞춰주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거죠. 즉, 어린애 때쓰기에 불과합니다. 말했듯, 소아병적인 거죠. 페미를 위시로 하는 그런 종류의 다수 여성들의 의식 수준은 여전히 뒤떨어져있고, 이는 사회적 수준에서 뒤떨어진 게 아니라 개인적 수준. 다시 말해서, 어린애 수준에서 발달하지 못한 겁니다. 그게 사회적인 현상에선 사회적 수준에서 뒤떨어지게 보이는 것 뿐이죠.

      뭐, 기실 따지고 보자면 과거 시대나 지금이나 똑같은 수준이라는 거니까, 결국 사회적 수준도 발달하지 못했다고 봐도 무방할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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