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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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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진'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20.08.13
    국가, 종교, 민족, 사회적 정체성 문제.
  2. 2014.07.03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 4
  3. 2013.09.24
    송포유, 뭐가 문제일까.
  4. 2013.02.06
    찌질한 부모 밑에서 찌질한 자식 태어난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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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일뽕이라 불리는 이들이 실제 사회, 생활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살고, 어떠한 입장과 처지에 있는지는 개인마다 다 다를 것이고, 그렇기에 성급히 정의내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글에선 크게 두가지 범주로 나눠보려고 합니다.


하나는 한국 사회의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못한 이들.

다른 하나는 한국 사회의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않아도 되는(혹은, 않고자 하는) 이들.



그러나 먼저, 일뽕으로 한정 지었지만, 정체성이라는 건 언제나 한가지 뿐만은 아니고, 이러한 사례가 한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그리고 일뽕이 아닌 다른 종류로 발생 가능하다는 것을 짚어야합니다. 따라서, 일뽕이라 한정지은 것은, 그것을 대표적 예시로 하고자 함이지 그것이 다가 아님을 알아야 하죠.


한 국가, 한 집단 내에서도 여러 정체성이 나뉘지만, 기본적으로 그러한 집단을 이룰 수 있는 거대하고 포괄적인 정체성이 있긴 합니다. 가령 우리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는 것처럼요. 한국인이란 정체성을 이루는 여러 구성요소들이 있죠.


근데 가끔 이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편입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많은 이유들이 있는데, 학교를 예시로 설명하자면, 엄청 잘나가는 애들이 있고, 평범한 애들이 있고, 그 평범한 애들 사이에도 끼지 못하는 애들이 있습니다.


편의상 각각 탑, 미드, 바텀이라는 간단하고 익숙한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일진이나 공부를 잘하면서도 집안 좋고 잘난 인싸들이 탑, 평범한 애들이 미드, 왕따 등 따돌림을 당하는 이들이나 특별히 친구로 지내지 않는 아싸가 바텀이라고 규정하겠습니다.


이중에서 가장 많은 건 미드 계층이고 학생이라는 집단의 주류 정체성에 해당하는 이들입니다. 좀 직관적으로 설명하자면, 흔히 '애들'이라고 하면 해당되는 이들이 이 계층이죠. 


탑 계층의 경우 인기가 많고, 영향력도 큽니다. 다만 역시 소수에 불과하죠. 먹이사슬의 최상위층이고 미드 계층은 이들을 동경하거나 두려워합니다.


바텀 계층은 모두가 싫어하거나 호감을 보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괴롭힘 당하거나 무시 당합니다. 친구가 없거나 자기들끼리만 어느 정도 알고 지내지만 그마저도 그리 적극적이지 않고 그들의 불행에 나서주지도 않습니다. 다시 말해 서로가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 집단은 아닙니다.


여기서 계층의 동경, 호감 등 방향성을 읽어낸다면 미드 계층은 탑 계층을 두려워하거나 동경합니다. 이는 사실 비슷한 개념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탑 계층이 될 수 있다면(될 능력이 있다면) 기꺼이 되고자 하고, 그러한 탑 계층의 구성원과 알고 지내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반대로 바텀 계층에 대해선 혐오 내지는 무시를 받기 때문에 누구도 그 계층에 편입(추락)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같이 알고 지내고 싶어하지도 않고, 적극적으로 괴롭히거나 배척하기도 합니다.


현실 사회에도 이러한 구조는 어느 정도 적용이 되는데, 상류층과 중산층을 포함하는 서민 계층, 그 아래의 하위 저소득층이나 수급자 등등이 해당되죠.



한국에 존재하는 주류 정체성의 비중은 서민에 의해 형성된 것들이 많습니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건, 탑 계층(상류층)은 그 아래로 떨어지기 싫어하고, 미드 계층(서민)은 바텀 계층으로 떨어지고 싶어하지 않다는 거죠. 그리고 하위 계층은 위로 올라가고 싶어하지만, 그럴만한 수단이나 능력 등등 부적합한 경우가 있으며, 집단으로 읽을 경우 그 이상으로 교육이나 재산, 빚 등등의 문제를 가진 경우도 있고요.



인터넷에서 보는, 가령 디씨 역갤 같은 곳에서 보였던 일뽕의 경우 실제로 한국이 못났고 일본이 우월하기 때문에 일뽕에 빠진 게 아닙니다. 그저 그들이 한국의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못했기 때문에 반동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뿐이죠.


사람은 집단에 소속되어야 하고, 개인으로서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집단 등 특정 정체성에 소속되길 바라고, 되도록 그게 자신의 자부심과 명예욕, 과시욕 등을 충족시켜주길 바라죠. 되도록 비교되고 우월하고자 합니다. SKY 대학생들이 하위 대학생들에 비해 더 큰 자부심과 명예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때때로 그걸 (적극적으로까진 아니더라도) 비교하며 과시하기도 한 것처럼요.


문제는 일뽕을 비롯한 하위 계층 중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못한 이들이 새로운 정체성을 찾게 되는데, 주로 외부에서 찾게 되죠. 내부에서 자신이 소속될 수 없기도 하고, 소속될 가치가 없는 정체성을 거부하기도 하기 때문에요.


한국의 경우 가장 가깝고, 비슷하며, 이입하기 좋고, 정보를 얻기도 상대적으로 쉬우며, 무엇보다 한국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고 지금도 어느 정도 그러한 위치에 있는 일본에 이입하는 겁니다. 즉, 한국의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못하자 그에 대한 반동적 태도로 한국보다 우월한 일본의 정체성을 가지려 하는 거죠. 다시 말해 자존감의 문제입니다.


반드시 일본일 필요는 없습니다. 누군가는 일본일 수도 있고, 미국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이해는 어렵겠지만 북한일 수도 있죠. 이 경우는 좀 드물긴 합니다만, 실제 종북 중 일부가 그러한 계층적 패배자이자 교육 수준이 낮고 심지어 정신적 문제도 있는 등의 경우가 있곤 하는 걸로 압니다. 정말, 아주 드물게요. 


얘넨 이석기 같은 부류와는 또 다릅니다. 자신을 핍박하고 잘 살지도 못하게 괴롭히는 한국은 밉지만 한민족을 배신할 순 없고, 그런 한민족을 핍박한 타 민족을 빨 수는 없으니 한국과 한국인들을 짓밟아줄 강력한 무력이나 정체성을 찾으니 그게 북한이었던 괴랄한 경우죠.


일뽕은 자기들이 한국인들보다 우월하고 그런 이유로 한국을 업신여깁니다. 왜냐면 자기들이 열등한 위치에 있으면서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못하고 있거나, 그러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대신 자신의 위치를 남들이 무시하거나 조롱하기도 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본인 스스로 열등감을 가지기도 하죠.


그러니 외부 정체성으로 자신의 자존감을 채워야 했습니다. 위에서 열거한 일본인 이유가 있지만, 실은 거기에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합니다. 매우 저열하고 말초적인 이유인데,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한 경험이 있어서죠. 그러니 식민지배를 당한 후진국 한국과 한국인보다 정신적 일본인인 본인들이 훨씬 우월한 거고, 그 우월한 위치에서 한국인을 조롱하고 무시하는 겁니다.


날 병신으로 보는 한국인들을 원 없이 비웃고 조롱하고 공격하기 위해서요.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인 남을 공격하는 겁니다. 쓰러뜨리거나, 그러지 못한다면 꾸준히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음을 확인하고자(or 그렇게 믿고자) 깍아내리는 거죠.


학교의 찐따들이 평범함을 거부하고 일진 같은 잘나가는 애들을 도리어 증오하다시피 거부하는 이유는 그들이 별났나거나 일진 같은 애들을 엄청나게 증오하기 때문만은 아니고, 그러한 위치에 도달할 수 없기에 다른 정체성을 찾는 겁니다. 현실에서 쳐맞고 다니는 애들이 인터넷에선 여포이거나, 커뮤에 심각하게 빠져 중독되는 일이 발생하는 이유죠.


현실에서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못하고, 스스로 그러한 정체성을 구성할 수 없으니 가상세계로 파고드는 겁니다.


미국 슬럼가 등 거리의 흑인 무리들이 백인 중산층이나 상류 엘리트를 무시하고 정부의 권위를 씹는 이유는 그러한 우월하고 안전한 정체성에 포함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봅니다. 심지어 될 가능성조차 없으니, '저 포도는 신 포도'인 셈이죠. 마찬가지로 사회의 찐따들이 한국인의 주류 정체성에 평범하게 편입될 수 없으니 외부 정체성을 가져오는 거고요.


ISIS가 한창 흥할 때 유럽에서 그러한 이념에 동화되거나 받아들이는 이들이 생기곤 했었죠. 실제 테러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지만, ISIS로 향하거나 하는 이들이 생기긴 했습니다. 심지어 한국에서도요. 이 또한 외부 정체성을 찾기 위함입니다.


이민자 1세대야 그렇다쳐도, 2세대 밑으로는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음에도 유럽의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못하고 여전히 이민자, 무슬림, 그것도 테러나 저지르는 문제적 민족이라는 인식에 차별 당하고 공격 받으니 자신을 배척하는 유럽의 주류 정체성을 본인 스스로가 배척하고(내쫓긴 게 아니라 내 발로 나간 거다. 라는..) 대신 외부의 속시원한 정체성을 찾았던 겁니다. 그게 ISIS였던 거고요.



뭐.. 여기까진 차별 받거나 열등감이 있는 하위 계층에 대한 거고..


맨 위에서 말했던 한국 사회의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않아도 되는(혹은, 않고자 하는) 이들. 에 해당하는 이들은.. 쉽게 말해서 정몽준 아들 같은 케이스입니다. 워낙 잘 살고 남들 머리 위에 있는 천상계의 상류층이다보니 그 아래에 있는 이들과 다르다는 거죠. 쉽게 말해 난 너희와 달라. 이겁니다. 


미드 계층이 바텀 계층과 동일시 되기 싫어하고, 그들과 아예 같이 있는 걸 배척하기도 하는 것처럼, 상류층은 그 하위 계층과 적극적으로 어울리진 않죠. 아예 무시하는 건 아니더라도. 하지만 탑 계층에 있던 이가 그 하위 계층과 동일시 되면 기분은 나쁠 수 있습니다. 계층 정체성에 위기감을 느낀다면 아예 손절해버리기도 하고요.


하도 잘나고 잘살고 있으니 아득아득 사는 이들이 천박해보이고 그런 천한 서민과 동일시 되기 싫다 이겁니다. 같은 한국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남들과는 다르다는 엘리트 의식, 선민사상. 이런 의식이 주류 정체성은 아니죠. 얘네가 일뽕 같은 것에 빠진다면 프랑스어를 쓰던 러시아 왕족, 한자를 쓰던 양반 계층처럼 서민보다 우월하다는 우월주의 때문이지 주류 사회,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겉으로는 잘나가고 잘 사는 그들을 서민은 동경하거나 부러워하죠. 단지 그런 차이일 뿐입니다. 뭐 이런 우월주의나 선민사상 같은 거야 상류층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거긴 합니다. 하위 계층에서 볼 수 있는 열등감과 자존감 문제로 외부 정체성을 끌어오는 것도 특별한 일은 아니라고 보고요. 모든 이들이 그렇지는 않을 뿐.


이러한 문제는 단지 그 뿐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ISIS의 정체성을 받아들인 이들이 그렇듯, 반사회적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겁니다. 원래 소득이나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범죄율이 높다고는 하지만, 이 사회의 정체성이 아니고, 다른 사회의 정체성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러한 간극에서 반사회적인 행위가 나타나기 쉽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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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거짓말을 했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기억이 잘 안 날지도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유치원에 다니던 어린 시절부터 거짓말을 하는 법을 배우지요. 사실 그것은 누구에게 배운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누구에게 배우고 할 것도 없이, 그저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지요.


거짓말을 한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 이유를 알면 왜 거짓말을 하는지도 알 수 있지요. 어린 아이가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 아이는 유리컵을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위험하니 그러지 말라는 엄마의 말에도 신경쓰지 않고 놀다 실수로 그 컵을 깨뜨려버렸습니다. 너무 무섭고 놀란 아이는 엄마가 이걸 봤을 때 어떨지 대충 짐작이 갈 수 있겠지요. 왜 엄마 말을 안 듣고 컵을 깨뜨리냐는 야단을 맞을까 무서운 아이는 자기가 안 했다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즉, 책임에 대한 회피로써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겁니다.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두려워, 자신이 하지 않았다, 혹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했다는 식으로 책임에게서 회피하려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이는 나이를 먹어서도 무언가 책임지는 일이 다가왔을 때, 그 책임이 자신에겐 너무 무겁거나 두려워서 피하려 할 때 똑같이 나타납니다.


다른 양상은 자신에게 이득이 될 때인데, 친구가 가져온 카드나 팽이가 너무 탐이나 몰래 슬쩍하고는 혹시 못 봤냐는 친구의 말에 못 봤다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친구는 그것을 찾지 못할 것이고 결국 포기하게 되는데 그때까지 들키지 않으면 자신의 것이 되겠죠. 욕심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거짓말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거나, 자신에게 피해가 될 때 하는 행동입니다. 자신이 책임지기 싫을 때, 무언가 얻게 된 방법이 공정하지 못할 때.


이 이득이라는 것도 연장선상에선 후자에 포함되는데, 친구의 팽이를 훔쳤는데 자신이 훔쳤다는 것이 들켰을 때 돌아올 평판, 신뢰에 대한 손해와 자신이 훔친 팽이를 다시 돌려줘야 되기 때문이지요. 결국 남는 것은 자신의 평판만 깍이는 것이니.



거짓말이 통하게 되면 무언가 비도덕적인 방법으로 이득을 보거나 책임을 지지 않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게 되면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고, 학교에서 볼 수 있는 일진들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일진들은 곧잘 교사에게 대들고 친구의 물건을 마음대로 가져가고 대상이 누가 되었든 거짓말을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그런 행동을 수없이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양심의 가책 따위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런 아이들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에도 능하게 되는데, 분명 자기가 잘못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교사가 그것을 똑똑히 봤음에도 불구하고 면전에서 안 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 경우 잘 보면 오히려 잘못한 쪽이 더 억울해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속였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했고 자기 스스로도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에 대해 회피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결국 자기 감정마저도 속여 분명히 자기 스스로도 똑똑히 알고 있지만 안 했다고 말하면서 거짓된 감정이나마 정말로 억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지요. 그렇게 자기 자신을 속이고 나면 양심의 가책 또한 덜하게 됩니다. 난 안 했으니까.



일진들은 이러한 책임을 지는 상황을 별로 겪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끝까지 고집부리며 거짓말을 하고, 어른들이 눈 감아주고, 봐주고, 상대하는데 질려서 결국 넘어가는 경우를 수도 없이 겪다보니 정작 제대로된 책임을 져본 적이 없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일을 벌이고 자기가 제대로 책임이지 못하는 어른을 애새끼라 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진, 양아치들은 나이를 먹어도 딱 그 수준인 것이고요. 혼날 때는 끝까지 고집부리며 안 했다고 딱 잡아때고, 자신이 했음에도 거짓말하고, 그렇게 제대로 처벌받지도 않고 고작해야 몇대 맞거나 안 좋은 소리 좀 듣는 상황이 빨리 넘어가기만을 바라는 것 뿐이지요. 자기 스스로 끝까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져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까.


그런 인간은 나중에 자기 앞으로 정말로 큰, 자기 스스로 져야할 거대한 책임 앞에선 아무 것도 못하고 벌벌 떱니다. 책임을 져본 경험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고, 애초에 자기가 져야할 책임이라는 자각이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들일테니까요. 일진이 하는 폭력, 갈취, 괴롭힘 등등은 그 행동에 대한 온전한 책임과 처벌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하는 행동입니다. 누가 저지하지 않으니 스스로 멈출 이유를 못 느끼니까요.


그렇지만 어쩌다 그런 거대한 책임이 잘 지나가고 나면은 스스로 아무 것도 아니네 하면서 허세부리곤 합니다. 실제로 그 상황에선 벌벌 떨고 무서워 했지만 일이 끝나고 나면 별거 아니었다고, 나 쫌 쩌는 놈이라며 없는 배짱 부리며 허세를 떠는 거죠. 법원까지 갔다가 결국 별 큰 처벌도 없이 일이 끝나는 경우 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여러번 겪는다면? 이젠 법도 무서울게 아닌거죠. 학생 때처럼. 교사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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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방송부터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SBS의 송포유는 양아치 학교로 유명한 성지고와 과기고의 학생들을 노래라는 요소로 묶어 서로 합창 배틀을 벌이는 프로그램이죠, 각기 다른 학교의 학생들을 유명 가수와 함께 합창을 연습하고 경쟁을 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은 요소이나, 문제는 그 학교의 학생들이 어떤 이들이냐 하면 사회적인 시선이 매우 곱지 않은 이들이라는 겁니다.


양아치 학교로 이름이 높을 정도이니 학생들의 질이 좋지 않은 것은 분명하고, 실제로 방송에 나온 모습이나 언행을 보면 확실히 일반 양아치들과는 뭔가 궤를 달리하는 듯한 막장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을 겁니다.



송포유의 취지는, 저는 이해합니다. 기사를 살펴본 결과 이해할 수 있었고 그것 자체로는 비웃음을 당할 일이라고 생각치도 않아요. 그러나 분명 잘못된 발언이 섞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또한 방식도 옳지 않았다고 보며, 어째서 그런 주제로 프로그램을 짯는가하는 저의 또한 눈치 챌 수 있었죠.



일단 양아치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은 절대 곱지 않습니다. 철 없는 애들이나 멋있다느니 약한 놈이 잘못이라느니 하는, 같은 상황에선 똑같이 피해자의 입장에서 핍박받을 위치에 있는 이들이 되도 않는 중2병이나 힘에 대한 동경에 빠져 시덥잖은 쉴드니 하는 것을 치는 것을 제외하고는 일반 학생부터 시작해서 사회인들, 어른까지 일진, 양아치에 대해 안 좋게 보고 있으며, 특히 이들에게 피해를 받은 피해자들에게는 송포유는 그들의 상처를 후벼파는 것이요 TV라는 특성상 TV에 나오는 것을 유명세나 화려한 포장으로 여기는 만큼 그런 분노와 속상함, 억울함은 더욱 컷을 것입니다.


자신들을 괴롭히고 폭력을 휘두른 이들이 TV에 나와 웃고 떠들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피해자가 보는 것은 그 자체로 큰 고통이겠죠. 아무리 그들이 소년원에 갔다 왔고 그 죗값을 치뤘다해도 그것이 피해자의 고통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으며, 정작 가해자는 정말 약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네셔널지오그래픽의 갱스터 파라다이스에 나온 사람 여럿 죽인 무기징역수가 말했죠. 양심의 가책은 스스로가 느끼는 것이 남이 느끼게 할 수 없다고.


가해자에 대한 재조명은 피해자가 살아있을때 더욱 조심스럽게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송포유는 그러한 성찰이나 조심성이 없었고,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없었어요. 오히려 송포유는 피해자의 치유되지 못한 상처를 다시금 후벼파는 것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송포유는 피해자에 대한 조심성있는 고려나 배려, 사색, 성찰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시청률만 올릴 수 있다면 어떤 자극적인 소재도 써먹을 것이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능으로 만들 소재인가에 대해서는 확답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제작하는 것은 옳다고 보진 않습니다.



성지고 교사라는 사람이 쓴 글을 보았습니다. 학생들에게 나쁘게 보이기 위해 말도 안되는 질문을 던졌고, 편집 또한 그렇게 이루어졌다고 말이죠.. 사실 전 이 말에 대해 반은 믿고 반은 믿지 않습니다. 성지고의 학생들은 질이 낮은 아이들이 타 학교에 비해 많고 심지어 몸에 문신에 피어싱까지 한다는데, 이것이 정말 그 자체로 나빠 보이지 않는 것일지..


또, 나빠 보이도록 교모한 편집이라.. 실제로 촬영 현장에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알 수 없는 부분이겠으나, 실제로 이런 악마의 편집의 사례도 몇번 있었고, 그 말이 사실일 경우 송포유 제작진은 더 큰 비난을 들어야하겠죠. 시청률을 위해 또 누군가를 강제로 희생시킨 것과 다를바 없으니까요.



하여간 사회적으로 시선이 좋지 않은 양아치들을 모아서 합창이라는 요소로 묶어 방송에 내보내는 것은 그 자체로 불쾌함을 줍니다. 그들이 그들에게 좋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TV라는 매체에 등장하여 유명세나 인기를 얻게 되었다는 점은 솔직히 불쾌해요. 하물며 그들에게 직접 피해를 받은 피해자나, 그들과 같은 일진이라는 무리에게 피해를 받은 피해자들이 보기에는 얼마나 엮겨울지 상상도 안 됩니다.


송포유의 취지는 분명 이해 할 수 있으나, 앞서 말했듯이 그들의 방식은 그릇되었다고 봐요. 피해자에 대한 조심성, 배려, 성찰이 전혀 없었고 그저 자극적인 소재를 이용해 시청률을 높히려고 했을 것 같거든요. 일진이라는 소재를 정했을 때부터 논란이 일 것이라는 것은 미리 알고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노이즈 마케팅의 일환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송표유 제작진이라는 사람들이 하는 괴악한 개소리(루저드립)라던가, 이승철도 일진 출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의 인물이었고, 방송에서도 트윗에서도(방송에서는 당연한거고 트윗에서도 딱히 깔 수도 없었겠지만) 이들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심지어 이에 대해 비판하는 이에게 쫄지 말고 앞에 나와서 이야기하라는 발언은 일개 개인으로서도, 공인으로서도 전혀 아니었습니다.


이런 논란은 송표유라는 프로그램과, 제작진들, 그리고 출연자들이 만들어낸 것들입니다.


물론 학생들도 나름의 노력은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학교를 자퇴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나오기는 하나 학교를 꾸준히 나오고 있는 것도 그들에게는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지모르고, 몸에 문신을, 피어싱을 하고 술담배가 일상이어도, 심지어 폴란드 클럽을 갔다는 이야기나 학교폭력 등의 도의적인 책임이 아직도.. 아니, 살아가면서 끝까지 이고가야할 책임이 있다곤 해도 아직은 젊기 때문에 기회 정도는 줘봐야 할 수 있죠. 이건 동의합니다. 기회 정도는 줘야한다는 것...


분명 큰 잘못은 잘못이고, 학생으로서 해야할 짓이 아는 것들만 골라서 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고통스럽게 살고 참회의 나날을 보내야 한다고는 생각치는 않아요. 하지만 자신의 삶이 소중하고 중요한 만큼 다른 이의 삶 또한 그렇고,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삶에 깊은 상처를 낸 죄가 있다면 어떻게 즐기고 어떻게 살든 만사에 조심스러워야 할 겁니다. 그것이 자신이 지은 죄의 대가인 셈이죠. 그러니 최대한 죄를 짓지 않고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그에 대해 자유롭고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양심이 결여되었음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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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이 듭니다. 찌질한 부모 밑에서 찌질한 자식 태어난다고.




어른이라고 다 어른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죠? 사실입니다. 몸은 어른이지만 생각하는 꼬라지는 애새끼들 못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요, 특히 요즘 20대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자주 보게 되더군요. 그게 정말 애같은 사람들이 늘어나서인지 페북, 트위터같은 매체가 보편화되서 더 많이 알려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 애들 보면 졸라 찌질해요. 일진이랍시고 자기들은 쿨한 척하는데, 실제로 그런 넘들 하는거 보면 졸라 찌질합니다. 앞에서 대놓고는 못하겠고 뒤에서 이빨 졸라게 까요. 제 경험을 하나 이야기해볼게요.


학교가 그닥 안 좋은 학교는 아니었는데 노는 애들이 좀 세게 노는 편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일진들이 몇명 있었는데 지 멋대로 학교 빠지는건 예삿일에 담배에 술은 물론 여자애들이랑 히히덕서리며 놀고 학교에 와서도 수업시간에 지멋대로 안 들어오거나 대충 그럴싸한 핑계를 대며 나갔다 PC방에 간다거나 아예 집에 가서 라면을 먹고 온다던가 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물론 교우관계도 지들끼리만 잘난 듯이 껄렁대며 놀았죠. 그중 한번은 동급생이 체육복 갈아입을때 속옷차림이었던걸 사진찍어서 협박, 돈을 갈취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경찰에 신고까지 당한 전적이 있었던 놈들이죠.



그런데 이런 놈들이 어느날 무슨 이유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과학선생님께 혼나더군요. 그 과학선생님이 꽤 분위기 있고 특히 키, 덩치가 크시고 팔근육이 잘 발달이 되서 대놓고 깝치는 일은 없는데, 어느날 그 일진 한놈이 과학선생님께 혼나더군요, 무릎을 꿀리고 뭐라뭐라하니까 빡돌았는지 꼬우면 쳐 씨발 경찰에 신고에 버릴꺼니까 라는 식으로 대놓고 개겼죠.


다른 일진들은 뭐 암 것도 못하고 좀 떨어진 복도에서 그냥 지켜보고 있으면서 다른 애들보고 꺼지라고만 하며 툭툭 건들기만 했습니다.


결국 그 혼나던 일진은 머리통에 호쾌한 한방을 쳐맞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더 쳐맞는걸 바랬지만 그래도 일이 커지면 여러모로 곤란하니 한대로 끝냈던 모양입니다.


근데 그 뒤에 그 일진놈들 태도가 아주 압권이더군요.


쳐맞은 놈은 존심까진거 뻔히 아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 경찰에 신고해버린다며 눈 앞에서 사라지기 무섭게 껄렁대더군요. 쫄아서 암 것도 못하던 일진 놈들도 바로 거들먹 거리면서 비꼬는 듯이 따라하며 금방 가버렸어요.



코 앞에선 아무것도 못하는 주제에 눈에서 안 보이니 바로 이빨까며 껄렁대는 놈들보고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말 그대로 찌질함이죠.


힘이 세고 잘나간다고 찌질이가 아닌게 아닙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통하는 찌질이의 의미는 사실 잘못된 예에 불과합니다.


코앞에서 대놓고 하지 못하고, 혼자 있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주제에 조금만 패거리가 늘면 자기가 뭐라도 된 것마냥 건들거리며 잘나가는 티 팍팍내는 것들이 찌질이죠. 본질은 약해빠진 애새끼임을 감추기 위해 자기보다 약한 애들 툭툭 건들면서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쌔면 빌빌거리며 후빨해주는게 찌질입니다.




그런데 이런 애새끼들이 왜 만들어지냐면요.



그 부모에게 제 1원인이 있습니다. 어른은 어른이 곧 세상입니다. 아이는 그런 어른이 곧 세상이고, 알게 모르게 따라하며, 배우는 존재에요. 아들이 커가면서 아빠와 닮아가는 이유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아들이 부친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아들은 아빠의 모습을 자신에게 동일화를 시키며, 서서히 닮아갑니다. 말투, 행동, 습관 등등


조금 핀트는 다를지언정 아들이 아빠를 닮아가듯이, 자식에게 있어서 부모는 그야말로 백지일 뿐인 자신의 자아와 가치관을 형성시켜주는 크레파스와 다를바 없습니다.


만약 부모가 대인배라면 그런 속성을 닮을 것이고, 부모가 찌질이라면 그런 찌질함을 배우는겁니다.



예전엔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저놈 놈들을 보면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다. 혹은 저런 애들을 보면 쟤네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듣고, 연좌적이고 말도 안되는 멍청한 모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조금 지나보니 알겠더군요. 정말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어집니다 -,-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자식새끼가 저렇게 찌질할수가 있는지.


가끔 자식이 문제를 일으켜서 학교에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럼 부모는 대개 2가지 행동을 취하는데, 하나는 무조건 죄송하다고 우리 아이가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사과하는 경우. 다른 하나는 우리 아이가 뭘 잘못했냐며 선생을 나쁜 놈 취급하며 무작정 화내며 달려드는 경우.


선생님이 그러더군요. 자기 학창시절때 선생, 교사에 대한 가치관이나 인식이 병신같으면 병신같을수록 아이도 그런 태도를 똑같이 닮고, 아이가 학교에서 잘못해서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그 부모의 학창시절 모습을 알수있다고.



그러니까 같은 겁니다. 부모가 찌질하면 애새끼들도 찌질해져요. 오래된 기억을 하나 꺼내볼게요. 제가 초딩때 나이였나 하여튼 어렸을 땝니다.


두 아이가 말다툼을 하더군요. 이 말싸움은 얼마 안되서 가벼운 몸싸움으로 발전했고, 다음날 한 아이의 엄마 되는 사람이 찾아와서 선생님 앞에서 따지더군요. 왜 말싸움을 하게 뒀냐고, 왜 아이가 싸우게 내버려 뒀냐고.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기 그지없습니다. 아마 이런 부모들은 다른 상황에서도 똑같이 반응할 겁니다. 아이들끼리 놀다가 떨어져서 다쳤다거나,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다던가, 그것도 아니면 애들끼리 말장난 하다가 다른 애가 놀리니까 화가 났다던가.


이런걸 가지고 지 부모에게 말을 하고, 부모는 그걸 담임한테 항의하는거죠. 왜 아이가 다치게 내버려 두었냐, 왜 아이가 놀림받는데 방조하고 있었느냐고.


황당하죠? 무슨 선생님이 Watcher도 아니고 모든 것을 감시하고 통제합니까? 근데 선생입장에서 뭘 어쩌겠어요, 그냥 네네하면서 고개숙이고 잘못했다고 사과할 뿐이죠.


사람이 갈등없이 크면 풀만도 못한 존재가 됩니다. 길가에 잡초에도 생채기는 있는 법인데 모든 것을 감시하고 통제해서 지켜내면, 어른이 되서도 잘나신 애새끼 마인드 그대로 유지되요. 그래놓고 지 잘난 맛에 사는거죠. 문제를 일으켜봐야 엄마 아빠가 다 해주실꺼고 엄마 아빠는 선생님 앞에서 큰소리 쳐댈테니까요.


뭐 별 것도 아닌 문제를 가지고 대뜸 항의전화부터 때리는 부모들 보면 얼마나 찌질한지 감도 안 옵니다. 그리고 그렇게 보호해봐야 애새끼한테 참 좋은거 가르친다는 비아냥 밖에 더 듣나 싶어요. 누군들 소중한 내자식 아니겠냐만, 그전에 애새끼를 사람으로 키워야지 찌질이 새끼로 키우는건 부모될 자격이 없는 멍청이 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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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및 수정 보완 : 생각만 해놓고 정작 추가 보완이 몇달씩이나 늦어졌는데, 부모에게 제 1원인이 있다기보단, 오히려 사회가 더 그러한 면이 있다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맞벌이 부부가 많아져서 어린 자식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지고 그렇기 때문에 가정교육을 미비하게 받았다면 그것은 부모가 맞벌이를 하게 되는, 금전적,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 사회의 탓도 일부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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