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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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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임'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23.07.18
    오송 지하 차도 사건 문재인 정권 책임 팩트체크.
  2. 2022.02.24
    폭력의 명분, 내 폭력은 정당하다.
  3. 2019.05.25
    일부 여성의 무책임성에 대한 단상
  4. 2015.06.10
    메르스와 경제, 이것도 정부탓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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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집중호우 피해에 “文 정권 때 안전 인프라 투자 줄였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2/0003834337?sid=100

박 원장은 "문재인 정권 때 '삽질 예산'이라고 인프라 투자를 줄이고 현금성 복지로 투자의 우선순위를 바꿨고 이재명 대표는 퍼주기식 기본소득까지 주장하지만 배부른 소리"라며 "안전이 복지"라고 주장했다.

 

국힘당에선 이런 식으로 언제나처럼 모든 문제의 원인과 책임을 이전 진보 정권에 떠넘기고 있지만 저 발언 외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음.

 

반면.

 

 

 

이거 하나만으로도 논파가 되는 수준.

 

바로 작년 그 물로 인해, 그리고 서울시의 무능한 행정과 정권의 무능한 대응 때문에 발생한 사건 때도 박원순 시장 당시의 유능한 행정에 대한 재평가가 있었고 윤석열 정권, 오세훈 시장의 무능함에 강력한 비판이 있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도 되지 않아 안전, 안전 인프라, 대책 및 대응에 관해 아무런 발전도, 대책도 없었음이 증명됨.

 

주거 안전 지원대책이라서 이번 일과 관계 없다는 건 같잖은 궤변과 변명. 현실은 윤석열 정권 이후 재난재해 리스크 관리가 전혀 되지 않고 있는 게 눈으로 보여지는 팩트임.

 

즉, 이번 사건은 역시 문재인 정권 때문이 아닌 윤석열 정권 탓이며 정권은 여느 때처럼 남탓을 하며 자기 책임 아니라고 하고 있음.

 

 

https://youtu.be/Q1LiVeRGUbo

 

대한민국 총리실, 행정안전부, 충북도청, 청주시청은 물론 관할 구청인 흥덕구청에조차 직접 전화하여 경고했는데 관련 지자체와 유관기관들은 상황에 대한 제보, 통보를 받았음에도 어떤 기관에서도 대응 조치가 없었던 건 윤석열 정권 총리실,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한창섭 행안부 차관(장관 권한대행)의 행안부, 국힘당이 당선된 충북도지사, 국힘당이 당선된 청주시장 그 누구도 이 상황에 대한 보고조차 제대로 올라가지 못했거나, 보고를 받았음에도 대책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는 것. 

 

다시 말해, 얘네들 책임이라는 의미임.

 

 

https://www.youtube.com/watch?v=ZwHXlDPsLLk 

 

원희룡 "짧게 하고" 논란…"견인차 아닌 기자들에 한 말이었다"
https://v.daum.net/v/20230717114324490

지난 16일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 현장을 찾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사고 수습 현장에서 도로를 막고 기자회견을 했다는 논란이 일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일었다. 이에 국토부는 오해로 빚어진 논란이라고 해명했다. “현장의 소음이 크고 수십 명에 둘러싸인 상황이라 시야가 차단됐고, 상황을 파악한 뒤 바로 조치했다”는 것이다.

원 장관의 사고 현장 방문 영상에 따르면 그가 현장에 도착한 직후 주변으로 취재진이 모이면서 발언을 요청한다. 화면 밖에서는 “여기 견인차량 들어가야 됩니다”, “조금만 비켜줘봐요”라는 소리가 들린다.

원 장관은 “짧게 하고…”라며 “비극적인 사고에 너무 참담한 마음이다”라고 발언을 시작했다. 이때 원 장관의 뒤로 한 남성이 다가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견인차 들어온다고 해서 좀만 피해 달라고 합니다”라고 말한다. 이에 원 장관은 바로 도로가로 피하고 취재진도 물러난다. 견인차가 통과한 뒤 원 장관은 회견을 이어갔다.

(중략)

이날 민방위복을 입은 한 공무원은 원 장관 옆에서 걸어가며 활짝 웃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면서 뭇매를 맞기도 했다.
누리꾼들이 이 장면을 캡처해 커뮤니티와 SNS 등에 올리면서 “공무원일 텐데 누구냐. 사람 죽어 나간 현장에서 지금 재밌냐”며 공무원의 태도를 지적해 논란이 확산했다.

해당 공무원은 충북도청 소속 국장으로, 이후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브리핑하는 과정에서 무심코 나온 장면 같다”며 “이유를 막론하고 신중하지 못했던 점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후 높으신 국힘 도지사 의전하겠다고 현장 배수 작업까지 멈추며 작업을 방해하고 있으며.

 

원희룡은 현장에서 자기 기자회견, 의전놀이나 하면서 도로 길 막으며 언론 타먹고 있는 도중에 짧게 하라는 소리를 했는데, 언제나처럼 믿을 사람만 믿고 안 믿을 사람은 안 믿을 변명과 궤변으로 일관.

 

"공사로 둑 일부러 열었다…명백한 인재" 오송 주민 분통
https://n.news.naver.com/article/055/0001073717?sid=102

 

그런 와중에 단순 자연재해가 아니라는 정황 발견. 집중호우 기간에 공사해야 한다며 둑을 열었다고 함.

 

지자체장은 집중 호우, 폭설, 빙판길 등 날씨로 인한 사고를 막기 위해 행정을 해야하는 사람이며, 오송 지하 차도 사건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미리 예방 했어야 했음. 그러나 국민의힘 김영환 도지사, 국민의힘당 이범석 시장 중 누구도 이러한 리스크를 관리하지 못했음.

 

다시 한번 박원순 시절의 큰 사고 없었고 미리미리 예방하며 유능했던 행정과 비교되는 사실.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건 경험이 부족하거나(이범석 시장, 김영환 도지사 모두 초선) 무능하거나 둘 중 하나고, 어떤 것이든 사건이 발생한 이후 면피할 수는 없는 게 책임자로서의 자리이자 의무.

 

만약 경험이 없어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몰랐다느니,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해서 예방할 수 없었다느니 한다면 그건 같잖은 변명이고 지가 자리를 내놓고 나가야 할 일. 군대에서 일개 최하위 말단 분대에서 발생한 총기난사로 더 높은 계급의 사람이 경질, 불명예 전역을 당하는 게 책임임.

 

가령 윤일병 사건 당시 지휘계통 간부들은 자기들이 그 사실을 알았든 몰랐든, 그 일병이 누군지, 이름이라도 알았는지와 별개로 단순 지휘계통에 있었다는 이유로, 다시 말해, 책임자의 위치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임 소령은 진급 말아먹고 불명예 전역 해야 했음.

 

혜화동 무장 탈영병 총기 난동 사건 당시엔 이필섭 합참의장이 책임을 지고 경질 되었고 강화도 해병 총기난사 사건(빤스런 사건) 당시엔 대령인 연대장, 중령인 대대장이 지휘 책임으로 보직 해임이 되었고, 해병대 사령관 유낙준조차 국방부, 국회 국방위 등 불려다니며 추궁 당하다 문책성 사임으로 자리에서 물러났음.

 

 

그러나 보수 정권 하에서, 특히 무식하고 권위적인 윤석열 정권에선 그런 책임 관련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음.

 

 

尹 "공무원들 집중호우 때 앉아만 있지 말고 현장 둘러보라"
https://v.daum.net/v/20230717115108879
尹 "이상 현상이니 어쩔 수 없단 식 인식 뜯어고쳐야"…특별재난지역 선포 등 정책 모두 동원"
https://m.kwnews.co.kr/page/view/2023071710023529150

 

그런 와중에 대통령은 개소리를 하고 있음. 공무원이 만만해서 종놈 취급 하는 것도 웃기지만 자기도 리투아니아에서 당장 복귀하지도 않았으면서 현장 둘러보라고 하고 있음.

 

외신들 “한국 호우 피해, 당국 대응 있었더라면 사망 막았을 것”
https://www.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2307171505001

 

다시 보는 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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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터 하던 생각이 있었습니다. 예전이라고 얼마나 다르겠냐만, 요즘들어 더 노골적으로 보이는 경향성 중 하나가 바로 이겁니다.

 

"난 누군가를 조롱하고, 비난하고, 폭력을 휘두를 권리가 있다."는 경향성이요.

 

 

대체로 이러합니다. 어딘가에서 누군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거나, 어떠한 사건을 터뜨렸을 때 사람들은 주모자를 쉽게 비난합니다. 그리고 그걸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럴 수 있습니다. 누군가 타인의 지탄을 받을만한 행위를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응당 그들의 행동을 판단하고 비난할 수 있습니다. 이건 권리가 아니라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일 뿐더러, 그러한 비난이 두려워 자신의 행동을 규약하는 자기검열의 역할도 존재합니다.

 

모든 자기검열이 나쁜 것만은 아니고, 남들이 보지 않거나, 알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정말 나쁜 일을 하게 만들지 않는 효과도 있습니다. 이를 우리는 사회화, 사회성이라고도 표현합니다.

 

 

그러나 비난은 반드시 폭력적일 수밖에 없고 이러한 폭력에는 쾌감이 뒤따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보복의 권리이자 보복의 쾌감이죠.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복수극 작품이면서 그 복수의 쾌감으로 독자에게 감정적 쾌감을 안겨줍니다. 대리만족이었지만,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한 이들은 그의 복수에서 나름의 쾌감을 얻죠.

 

문제는, 사람들은 누군가를 비난할 때 분노와 혐오 뒤에 쾌감이 숨어있다는 겁니다. 쾌감은 중독될 수 있죠. 폭력에 중독된다는 건 폭력이 가져오는 쾌감에 중독된 것이라 봐야할 겁니다. 그리고 비난자는 자신과 같은 정서를 공유하는 이들과 함께 공격을 하기 때문에 자기확신과 소속감을 가지게 됩니다. 나 혼자 공격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라고 말이죠. 그리고 그렇게 얻어진 상호확인은 그것이 정당하고, 올바른 것이라 믿게 됩니다.

 

여기까지라면 단순히 혐오와 증오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잘 찾고 자기 중심을 잘 잡으라고만 할 수 있겠지만, 제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들은 이 이후입니다.

 

 

흔히 사이다패스라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웹소설이나 웹툰 등 문화매체에서 답답한 상황을 싫어하고, 불편한 상황을 빠르게 해소하고 싶어하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작품, 혹은 주인공에 강력하게 이입한 이들이며 그런 주인공 대부분은 강하거나 뛰어납니다. 지나치게 뛰어나서 누구도 이들을 감히 넘볼 수 없고, 감히 그러한 시도를 한 이들은 완벽하고 끔찍하게 분쇄되어야 합니다. 단지 그 한 사람뿐 아니라 그 세력, 혹은 가족 등 주변사람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으며, 아예 국가 단위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 또한 단순히 죽이거나 멸하는 정도를 벗어나 끔찍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과 고문까지 함께하는 경우도 있죠. 이는 그들이 어떤 행위를 했든 절대 공정하지 않은 수준의 보복을 받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에서 말했듯,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넘는 압도적이고 강력한 폭력을 행사하죠. 보복이라는 정당한 명분으로요.

 

 

'그것들'이라는 작품에 이런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복수 중독자." 이 캐릭터는 다른 힘 좀 쓰는 조직들 사이에서 기피되는 녀석입니다. 단순히 강하거나 위협적이라서가 아니라, 이 녀석에게 뭔가 피해를 입히거나 복수할 명분을 제공하는 순간 누구보다 집요하고 잔혹한 놈이 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수하며, 그 복수의 방법도 잔혹하기 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령, 그는 목 아래로 감각이 없는 놈 하나를 산 채로 상자에 가두고 손수 못박습니다.

 

 

단순히 웹소설 독자들이 그런 성향이 있다는 게 아니라, 요즘 사람들의 성향이 그렇게 변화했기 때문에 독자들 또한 그런 흐름을 선호하고, 고객이 원하는 쪽으로 맞춰가는 작가들이 그들의 니즈에 맞춰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주제에 맞지 않기 때문에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복수는 대체로 정당합니다.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면 그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건 정당하죠. 그것이 단순한 말뿐인 사과일 수도 있고, 돈 같은 재물일 수도 있고, 법적인 방법도 있으며, 직접 손수 폭력을 휘두르는 방식도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이것이 신체에 간접적이고, 법을 통한 공권력의 행사로 대체하는 쪽으로 발전해왔죠.

 

하지만, 그럼에도 복수는 대체로 정당합니다. 내가 피해를 입었다면 그 대가를 요구하는 거야 당연한 거죠. 그 방식과 정도가 문제입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잃은 것 이상의 보복을 금했습니다. 그것은 정당하지 않고 공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즘 시대 대중들은 누군가 자신에게 부당한 피해를 입혔다면 압도적이고 잔혹한 보복을 통해 누구도 자신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하도록 경고하고, 자신을 두려워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정의롭고 정당한 존재이길 바라죠. 바로 여기에 복수의 명분이 필요한 겁니다. 보복이란 누군가 자신에게 먼저 피해를 입혔을 때 발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먼저 나서서 다 쳐죽이고 갈아버리는 건 누군가의 복수의 명분이 되는 행동이지 스스로 정당하다고 여기는 게 아니죠. 이것이 악하다는 관념은 대체로 다들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껀수를 찾는 거죠.

 

이유, 명분. 누군가를 조롱하고, 비난하고 공격할 수 있는 권리는 갈구하고 있는 겁니다. 자신의 불만과 분노를 정당하게 표출하고 싶은 명분 하나를 원한다는 말입니다. 감정은 객관적이지 않고 계측 가능한 것이 아니고, 정도와 사안, 그리고 대상에 따라 가변적입니다. 똑같은 행위를 자신에게 저질러도, 누군가에겐 과한 보복심을 품지만 누군가에겐 약소하거나, 아예 용서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감정에 따른 보복론은 정당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감정의 해소는 무엇보다 시원하고 강력한 쾌감을 가져오죠. 단순히 상대방에게 내가 원하는 수준의 폭력을 휘둘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상대방이 망가지고 애원하고 후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즐기는 겁니다.

 

 

여기게 천착된 이들은 보복, 혹은 논란 발생자의 행동에 정당한 비난과 조롱을 한다는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즐기는 겁니다. 정의를 독점한 채 무제한적으로 휘두르는 폭력의 쾌감. 심지어 정당하기 때문에 결코 비난받을 수 없는 성스러운 징벌.

 

그러기 위해서 자신은 결코 잘못해서는 안 되며, 비난 대상자는 마땅히 욕을 먹어야할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공격은 정당해야하며, 또한 정당합니다. 

 

 

이러한 것은 단순한 정치, 사회적 현상을 대할 때 뿐 아니라 개인 단위의 경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편할만한 상황에서 나는 잘못하지 않은 이유를 찾고, 역으로 책임은 상대방이 질만한 이유를 찾습니다.

 

결말이 이해 안되는 치킨화상

https://www.bobaedream.co.kr/view?code=strange&No=3860890 

 

몇가지 사례가 있지만, 위와 같은 사례가 떠오르기에 위 사례를 먼저 이야기하겠습니다.

 

이때에도 주인이 있든 없든, 자기가 상품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당한 허락 없이 자기가 남의 물건을 멋대로 건드려서 스스로 손해를 보고, 상품 등에도 손해를 입혀놓았음에도 그 책임을 판매자에게 전가하고 있습니다. 당사자가 잘못했다는 건 정상적인 상식과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자신은 손해만 보고 누구도 보상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억울해하며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고, 자신을 피해자인 것처럼 만들고 있죠. 내가 피해자여야 정당하게 피해보상을 요구할 수 있으니까요. 심지어 부당하게 보상해준 판매자에게 여전히 자신은 정당하고 저 사람이 잘못한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정당하고 비도덕적인 악인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기에 무조건 타인이 잘못해야 합니다. 잘못은 반드시 상대방이 해야 한다는 겁니다.

 

 

비슷한 여러 사례들은 찾아보거나 살다보면 생각보다 쉽게 볼 수 있을 겁니다. 여자 아이돌 악플달아놓고 남초에서 했다고 조작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려는 여초의 행위 또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그 반대로 거기에 일조했음에도 여초탓으로 죽었다고 전가하는 이들도 있죠.

 

 

앞서 이야기한 것이 폭력에 중독된 이들이고, 위 사례는 자신의 잘못을 전가하여 책임이라는 감정적 부채에서 벗어나기 위한다면, 역시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비난자들 중 누군가들은 자신을 우월한 지위에 놓고 싶기 때문에 그러기도 합니다.

 

그런 이들은 그저 이유를 찾는 것 뿐입니다. 세상에는 멍청하고 나쁜 놈들, 잘못된 이들이 가득하고 너무 문제투성이인데, 그걸 비난하는 자신은 그것을 판단하고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말이죠. 판사병 걸린 이들인데, 평가하고, 판단하고, 지적합니다. 대체로 원론적으로 틀리지 않거나 어느 정도 맞는 지적들과 비판들이긴 하지만 그것이 그들이 정확한 판단력과 상식, 지성을 갖추었다기 보단 그러한 자신의 행위를 통해 더 우월한 지성과 사회성을 갖춘 사람이라고 느끼길 바라는 겁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으로 스스로 지적으로 우월하다거나, 문제를 지적함으로써 더 올바른 방향을 가르친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처음 이야기한 복수 중독자들과 마지막의 판단자들의 성급한 비난과 지적들은 이후 이어지는 진실에 따라 쉽게 뒤집어지기도 하고 더 복잡한 상황이 있음으로 무용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카츄 배 만진다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하고, 중립기어하는 표현도 발생한 거죠.

 

모든 사건은 그에 대한 모든 정보가 정확하게 제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어떤 분야에 대해 정당한 명분과 이유를 찾으며 그것이 발견되면 무차별적이고 무제한적으로 증오와 혐오,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무엇이 잘못됐고 어디까지 잘못됐는지 지적하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반대되는 진영이나 집단이 무언가 잘못하면 그걸 정당한 명분으로 삼아 공격하고 조롱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이나 성향을 강화시키는 재료로 사용하죠.

 

그들에게 중요한 건,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정당하다는 믿음입니다. 복수는 대체로 정당하고, 누군가 잘못하면 그에 대한 비난 또한 정당한 것처럼 자신에게 그러한 폭력을 휘두를 정당한 권리, 권한이 있다고 믿는 겁니다. 그리고 그 선은 감정이라는 가변적이고 계측 불가능한 조건에 근거합니다.

 

이러한 경향과 정서가 만연해질수록 그렇지 않은 이들조차 점차 폭력에 무감각해지고, 폭렬화되어가며 극단화될 겁니다. 그리고 더더욱 단순하고 극단적인 해결책을 추구할 겁니다. 사실, 이미 그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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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례가 있지만, 제 기억에 남는 사례 중 하나는 이겁니다.


'스펀지' 커플실험, 배려깊은 남자친구 모습에 누리꾼 '홀딱 반해'

'스펀지' 커플 실험, “남자들이 봉?” 불만 폭주


구시대적 가치관이 현대적 가치관을 못 따라가면서 발생하는 간극 + 여성 특유의 덜 발달되는 정신연령이 합쳐져서 그렇다고 봅니다. 까놓고 말해서 여자가 남자, 남자친구한테 개짓거리, 헛짓거리 하는 거 대부분은 마치 애새끼마냥 구는 그런 거죠.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다만, 응석. 응석 부리는 꼴입니다. 지 기분 나쁘다고 다른 사람한테 땡강 부리고 지랄 떨고. 남자친구가 다 받아줄 거라 생각하니까 하는 짓거리거죠. 부모한테 지랄하는 애새끼마냥.


근데 사실 남친이 그거 받아줄 의무가 없고, 애초에 서로 주고 받는 관계에서 온전히 남자의 희생만 강요하는 건데, 이건 마치 애새끼들이 정신적, 사회적 성숙이 안 되서 지만 생각하듯이 여자들도 남 생각 안 하고 지만 생각하는 거죠. 똑같은 어른, 똑같은 주체로서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다면 남친에게, 여친에게 그런 짓 못하죠. 


까놓고 말해서 여자가 개짓거리 하는 거 남자가 안 받아주고 그에 대한 대가, 책임을 요구하면 여자는 감당 못합니다. 자기가 먼저 땡깡 부린 거니까. 그러니 자기 혼자 기막혀하고 어이 없다는 태도를 취하면서 결국 니 잘못이고 니 책임이다. 라는 식으로 굴죠. 남자가 결국 내가 잘못했어 라고 하면서 있지도 않는 책임에 할 필요 없는 사과를 하는 게 아니라, 니가 나한테 그러면 안 되지. 하나하나 따져볼까? 하면 결국 자기 잘못인 거 다 나오거든요. 근데 애처럼 자신의 잘못에 책임을 지는 걸 배운 적도 없고, 그런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니 어떻게든 상대방이 개새끼인 걸로 만들고 나는 정당한 사람, 혹은 억울한 피해자가 되어 책임을 묻는 갑의 위치에 있어야 한다 이겁니다.



여자끼리 서로에게만 공감이 되는 것도 애들이 만화 보면서 둘리한테는 이입해도 지 키워주는 고길동한텐 이입 못하는 것처럼 자기들이랑 똑같은 수준의, 혹은 비슷한 존재인 같은 여성에게만 공감이 되는 거라 봅니다. 거칠게 말해서, 걍 대가리 성숙이 덜 발달되서 그런 거다 이거죠.


근데 참 신기하게도 이게 특정한 한 두사람이 아니라 적지 않은 여성들이(대표적으로 페미 한다는 불편하신 분들) 같은 현상을 공유한다는 건데, 솔까 여성 과반은 아니라고는 본다만, 그렇게 많은 집단으로 분류가 될 수 있을 법한 숫자가 그렇다는 걸 생각하면 신기한 거랄까요. 책임감 있고 어른스러운 여성들도 있지만, 무책임하고 찌질하고 눈치만 보면서 자기 유리한 것만 찾아서 하려는 여성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남자라고 그렇지 않은 이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그러한 책임이 강요되기도 하고, 20대 초반엔 아예 위계적 생활을 체득해야만 하는 군대라는 경험 덕에 덜 그런 경우가 많죠. 


근데 그런 애들 모아서 하는 거 보면 앞서 이야기한 구시대적 가치관과 현대적 가치관의 간극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좋은 것만 주워먹는 애들인데다, 기본 베이스가 구시대적 가치관입니다. 겉으로는 페미니즘이니 현대적 인권, 여권 이야기하지만, 기본적으로 하는 말의 논리를 잘 따라가보면 그 근본이 구시대적 가치관의 연장선을 기반으로 한다는 거죠. 


그리고 이전 시대의 사람, 이전 세대를 보면 그만큼 가치관이나 센스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좀 유치하거나 지금 기준에 못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데, 그만큼 그들의 정신적 성숙도가 어떤 면에선 어린 애와 비슷한 면이 있고(유치한 신파물을 진지하게 보고 높이 평가하는 그런 거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 면에서 그 여성 집단을 생각해보면, 그들의 정신적 성숙도가 애새끼적인 이유는, 걔네들의 가치관이 구시대적인 것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뭐, 이렇가 말하면 여혐이라고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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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비유나 비꼼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겁니다. 메르스 때문에 경제성장률이 하락할 수도 있다고 하고 실제로 사람 모이는 곳, 에버랜드니 하는 곳도 텅텅 빈 것을 보면 실제로 사람들의 외부활동과 그에 따른 소비활동이 위축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메르스에 대한 위험성과 불안감 때문에 밖에 안 나가고 사람 모이는 곳 안 가고 마스크 쓰는 거죠.


당연하지만 만약 메르스가 초기에 제대로 대응되어 감염자도, 전파자도 최대한 억제되었다면 어땠을까요? 에볼라 때 정부도 딱히 한 것은 중동보다 더 접점이 없는 서아프리카에서 터진 에볼라였고 해외로 나가는 에볼라 감염자도 거의 없었으며 한국에는 애초에 오지도 않았기 때문에 기실 이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에볼라가 아무리 위험해도 한국에 올 일이 없었으니까요.


그때 사람들은 어땠죠? 에볼라에 대한 위협이 없었으니 그냥 다들 밖에 나돌아다녔죠. 실제로 에볼라 감염자가 한국에 온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메르스는? 한국에 상륙했고 정부는 대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퍼졌고 아직도 이에 대한 위협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나마 완치자가 나온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 모이는 곳이 텅텅비고 불안함에 마스크 쓰고 다니는 사람도 많이 있죠. 애초에 정부가 초기대응을 제대로 했다면 이렇게 사람들 외부활동이 위축되지도 않았을 거고 불안감에 빠질 사람도 없었을 거에요. 오히려 정부에 대한 신뢰도와 지지도가 상승했음 상승했지 부정적일 리가 전혀 없죠.


하지만 실제로 정부는 이렇다할 초기대응이 없었고 후속대응도 여전히 뭘 하는지 알 수 없는 무능과 무책임으로 점철되어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경제가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민생어쩌고 하며 성장이니, 발전이니 떠들어대는 경제성장 도그마에 빠져있는 데다 보복부 장관을 경제학 출신으로까지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이러한 메르스와 그 전파에 대해서는 무책임과 무능으로 일관하여 실질적인 경제성장에도 위협을 갖추고 있는 집단이 바로 우리 정부와 새누리당이라는 소리가 됩니다.


다시 말해서, 항상 경제에 대해 떠들지만 실제로 경제에 위험이 올 수 있는 요소에 대해서는 무능하게 대처하며 실질적인 경제위협을 야기하는 집단이 바로 그 주장자와 집단이라는 말이죠.



처음부터 대응을 잘했으면 사람들이 외부활동 잘 하고 경제활동 잘 하면서 경제에 별 다른 영향이 없었을텐데 지금 이게 뭡니까? 어디 예상으론 경제성장률 -0.3%로 하락한다고 한다는 데 이거 절대 적은 수치 아니거든요.


이는 안보와 더불에 경제에서도 실패한-물론 이미 이명박 정부때 증명했지만- 것을 의미합니다. 안보에서도, 경제에서도 그들은 믿을 만한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주장에 신뢰를 보내며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미 정치적인 선택의 차원을 넘어서 종교적인 신념으로서 그들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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