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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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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5'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22.04.05
    어휘력과 지적 능력에 대하여.
  2. 2022.04.05
    왜 저소득층은 독재자-극단주의 세력을 선호하는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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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씨, 일베 등에서 어휘력과 문해력이 낮은 이들이 보이고 있고 그들을 지적하는 글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 나오는 말들 중 하나가 우리가 옛세대보다 어휘력, 아는 단어가 적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머리가 나쁘냐 하면 그건 아니라고 하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단어 좀 모른다고 머리가 나쁜 건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전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옛 시절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한자어와 옛 단어, 낱말들이 자주 사용되었고, 아예 한글도 아닌 한자가 신문 등 공식 문서와 뉴스에서조차 자주 나왔던 시기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교육 수준이 지금보다 높느냐 하면 그건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한데, 단지 당시에 비해 지금 배우는 교육의 질과 양이 모두 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단지 시대의 차이였을 뿐이지, 40년전, 50년전 대학에서 배우는 것은 지금보다 더 높은 위상과 평균적으로 더 높은 지적 능력을 요구했을 겁니다. 이는 지식을 가지지 못한 사람, 교육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거나 중단된 사람이 많았고, 사회가 발전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대학 평균 진학률이 낮았습니다. 그 당시를 기준으로 한다면 대학 학사 졸업자조차 상대적으로 높은 학력을 가진 고스펙이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 사람들이 지금보다 어휘력이나 문해력이 높았느냐 하는 것도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높은 세대로 갈수록 어휘력은 낮다고 합니다. 이것 역시 지금 수준의 교육 서비스를 받지 못하거나, 독서의 기회가 적었기에 그런 것입니다. 단, 요즘 세대에서 사용되지 않는 단어 정도는 조금 더 알고 있긴 할 겁니다. 그것들이 사용되었던 시대였기 때문에요.

 

연령별 문해력 점수 분포

https://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420&tblId=DT_42001N_025&vw_cd=&list_id=&seqNo=&lang_mode=ko&language=kor&obj_var_id=&itm_id=&conn_path=

 

 

여튼, 그렇다하여 이것이 높은 어휘력 = 더 똑똑한 사람. 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르는 단어가 좀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머리가 나쁘거나 사고력, 합리성, 논리력이 미달되거나 부족하다는 뜻은 아닐테니까요. 마찬가지로 수십년전 사용되었던 한자와 지금은 잘 사용되지 않은 많은 단어들이 영어 단어 등으로 대체되었다고 생각하면 총량에서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세대의 평균 수준일 뿐 우리 아래 세대의 어휘력과 문해력에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책을 읽고 풍부한 단어를 알게된다는 건, 슬픔의 저 끝에서부터 기쁨의 저 끝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수많은 감정의 결들을 하나하나 구분해내는 거에요. 정확히 그만큼의 감정을 정확히 그만큼의 단어로 집어내어 자신의 마음을 선명하게 들여다보는 거죠.  

 

(중략)

 

같은 단어를 알고 있다면 감정의 의미를 공유할 수 있고 같은 문장을 이해할 수 있다면, 감정의 흐름을 공유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건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만들죠. 정기씨가 저에게, 제가 정기 씨에게. 그런 사람이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많은 고난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와 위로가 되도록.

- 가담항설 90화 中 홍화

 

 

많은 단어를 안다는 것은 한가지 현상에 대해 더 다양하고 정확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똑같은 것을 보고도 더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을 것이고 커다란 명제를 더 작은 단위의 논리로 분해할 수 있는 능력의 기반이 되어줍니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는 '신어'라고 하여 한가지 주제에 곂치는 개념이 있다면 해당 단어들을 폐기하고 더 단순한 단어 하나로 통일합니다. 또한 새로운 단어보다는 간단한 두 단어를 합성시켜서 사용하기도 하죠. 좋다는 Good으로, 나쁘다는 Bad가 아니라 NoGood이라는 식으로요. 이는 대중들의 사고력과 개념 분석능력을 저해시키기 위한 당의 우민화 정책이었습니다.

 

똑같은 것을 보고 더 정확하고 통찰력 있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핵심과 개념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언어적으로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하죠. 자기가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자기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며, 자기가 언어적으로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증명입니다.

 

최근 디씨 등에서 보이는 우리 세대 기준으로 너무 낮은 어휘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말은 똑같은 것을 보고도 더 다양하게 설명하고 더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는 피상적인 해석과 근시안적 시야를 가지게 하는데, 장기적인 계획은 지능이 높을 수록, 지적능력이 뛰어날수록 더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작업입니다. 장기적 계획에 취약하고 단기적인 계획, 혹은 근시안적 시야를 가지는 사람들은 지능, 혹은 지적능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람인 경우들이 많습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장기 계획 역시 그러한 경험과 훈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며, 여러 불확실성의 변수들과 불필요성 때문에 아예 그런 계획 자체를 세우지 않거나 아주 단순한 수준으로만 세우는 경우조차 있으며 그조차 언제든지 폐기, 수정이 가능한 경우들이야 정말 무수하기 때문입니다.

 

 

하여간, 어휘력이 높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더 똑똑하고 논리적인 사고가 가능할 것이라 기대될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덜 똑똑하고 논리적 사고 능력이 다소 부족할 것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는 어휘력이 높아야만 똑똑한 게 아니라, 어휘력이 사회에서 평균적으로 사용하는 것보다 부족한 사람은 특별히 더 머리가 나쁠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 뿐입니다.

 

그런 이유로 전 어휘력이 낮다고 멍청하다는 건 아니다. 라는 말을 부정하는 편입니다. 어휘력이란 특별히 국어사전을 보고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거나 하는 식으로 익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들 대부분은 글을 읽는 것에서 시작했고, 그렇게 완성된 것입니다.

 

인터넷 글이든 책이든 더 많은 단어와 어휘, 문장, 낱말을 읽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어휘력을 늘려왔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단어가 나온다면 사전을 찾아보기도 했을 것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문장의 맥락에서 그 속뜻을 유추하고 사용례를 보면서 그 유추가 정확했음을 확인/교정받습니다.

 

다시 말해, 어휘력이 낮다는 건 그만큼 책이나 글을 덜 읽었다는 것이고, 많은 단어들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책을 많지 보지 않았다는 것은 지식의 양이 상대적으로 적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어휘력은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단어, 지식을 접했느냐를 유추할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은 당연히 제기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용되지 않은 단어들은 늘어가고 있고 우리 세대와 이전 세대, 그리고 우리 다음 세대가 사용하고 익힌 단어들의 숫자와 종류는 달라지는데 그러한 시대적 차이를 구분하지 않고 무조건 어휘력만으로 일괄적으로 지적능력의 고하를 구분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거나, 구한말 사람들이 사용하는 어휘 중 지금은 잘 사용되지 않는 어려운 말과 단어들이 줄곧 쓰였는데 그 사람들이 지금 기준으로도 더 똑똑한 사람들이냐, 아니면 단지 당시 사용되는 단어가 그러한 것들이 많아 단순히 체득한 단어만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니냐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실제 사회생활이나 업무 활동에 있어서 대단한 어휘력이 필요한 건 소수의 직종 뿐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 잘만 한다. 어휘력으로 추측할 수 있는 지적능력과 실제 지적능력 및 그 활용 현실은 아무 관계 없거나 별 관계가 없을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의 초반부터 그러한 가능성을 염두해두고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인문학적 소양과 직장업무 능력이 직결되는 비중은 크지 않을 것이고, 그러한 비중이 크기 위해선 사람을 알고 다루는 일을 할만큼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할 것입니다. 인문이란 인류가 쌓아온 문명을 연구하는 것이고 이 거대한 개념은 세부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는 물론, 그 인간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나름의 답을 만들 수 있게 하는 재료들이 됩니다. 

 

그런 이유로 전 인문학적 소양으로 대표될 수 있는 더 많은 책을 읽는 것과 그것을 유추할 수 있는 어휘력이 아무런 상관이 없느냐 하는 것에도 역시 부정적입니다. 또한 모든 책이 인문학 책인 것도 아니고 공학, 수학 등 비인문적 책들도 있지만 그러한 책에서도 최소한의 소양은 필요합니다. 이 단어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고 뭘 의미하는 지 아는 것 바로 그 자체 말입니다.

 

1.자기 언어의 부재, 철학의 부재.
 
예전에 미국 쪽에서 이걸 다룬 다큐멘터리 같은 게 있었습니다. 대충 10년쯤 전 내용이라 정확하게 토씨 하나하나 기억나지는 않지만, 요는 평소에 불만이 많고 다소 반사회적이었던 이들에게 철학책을 주고 그것을 계속해서 읽도록 시킨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임무를 잘 수행했고, 나중에 가서는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지 않게 되었죠.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은 많은 것에 불만이었지만 왜 불만이었고 뭐가 문제였는지 알지 못했다. 알지 못했기 때문에 더 화가 났고 무엇에 화가 났는지 모르니 아무 곳에나 그것을 분출했다. 그러나 철학책을 읽으면서 자기 생각을 잘 정리하자 문제들이 보였고 그것을 설명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정확한 발언은 아니었지만, 제가 기억하는 맥락은 이러했습니다. 즉, 그들은 사회현상과 정치현상, 그리고 그것을 지배하는 철학적 기반에 대한 지적 부재가 너무나도 복잡하고 어려운 사회를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로 다가왔고, 그 때문에 뭔가 불만은 있는데, 그 불만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던 거죠. 해소될 수 없는 불만이니 아무렇게나, 아무에게나 터져나왔던 겁니다.
 
분노했지만, 무엇에 분노한지 모르는 사람들이 극단주의에 쉽게 경도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사색의 기반이자 자기 언어를 가져다주는 것은 더 '깊은 생각'을 가능하게 해준 철학입니다.


왜 저소득층은 독재자-극단주의 세력을 선호하는가? (https://konn.tistory.com/753)

 

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언어적으로 정확하고 세밀하게 표현하지 못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한계를 크게 드러내는 때가 바로 정치인이나 정치적 현상을 대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특정 정치인이 싫다고 하지만 정작 물어보면 정확히 왜 싫은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그냥 싫다, 아무튼 개새끼다. 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정치인을 싫어하기는 하는데, 왜 싫어하는지는 모르는 사람들인 거죠. 그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냥 싫기는 한데, 스스로도 돼 싫어하는지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언어로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스스로도 그걸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싫어하느냐, 여러 뉴스들에 의해 형성된 이미지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가 어떤 뉴스를 보고 어떤 정치인에 대해 어떠한 인상을 가질 수 있을만한 내용을 보지만 그것들은 따로 기록하거나 기억해두지 않으면 금방 잊혀집니다. 이는 어떤 사건에 대해 시기, 상황, 심지어 당사자인지 아닌지 사람조차도 헷깔릴 수도 있게 됩니다. 단기기억으로만 남고 장기기억으로 잘 남지 않는 내용들인 셈이죠.

 

그렇게 구성된 이미지가 그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로 이어지는 거고 설명할 수는 없는데 아무튼 누구는 싫다.가 됩니다. 따지고 보면 아예 없는 건 아니겠지만 스스로 설명할 정도로 기억에 남는 무언가가 딱히 없죠. 최소한 당장 머리속에서 찾아낼 수는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1984의 당은 신어를 만들어 사람들에게서 다양한 개념을 사고할 자유성를 억압했습니다. 생각은 언어에 묶이고 단어에 휘둘립니다.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른 단어를 사용할 수 있고, 다른 단어에서 다른 정서를 느낍니다. 이는 다른 감성과 다른 과정이 되어 다른 결론으로 이어지죠.

 

복잡하여 정확히 규정해야할 현상을 그렇지 못한 언어로 해석하려고 한다면 필연적으로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 사회적 현상 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소통에서조차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다소 뭉뚱그려 커다란 개념으로서만 전달시키고 받아들이게 될 수 있습니다.

 

꼰대 같을지 몰라도, 전 이게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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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예전에 했던 말들의 재탕이긴 한데, 그냥 그 말들을 적당히 모아 새로 글 하나로 다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1.자기 언어의 부재, 철학의 부재.

 

예전에 미국 쪽에서 이걸 다룬 다큐멘터리 같은 게 있었습니다. 대충 10년쯤 전 내용이라 정확하게 토씨 하나하나 기억나지는 않지만, 요는 평소에 불만이 많고 다소 반사회적이었던 이들에게 철학책을 주고 그것을 계속해서 읽도록 시킨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임무를 잘 수행했고, 나중에 가서는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지 않게 되었죠.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은 많은 것에 불만이었지만 왜 불만이었고 뭐가 문제였는지 알지 못했다. 알지 못했기 때문에 더 화가 났고 무엇에 화가 났는지 모르니 아무 곳에나 그것을 분출했다. 그러나 철학책을 읽으면서 자기 생각을 잘 정리하자 문제들이 보였고 그것을 설명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정확한 발언은 아니었지만, 제가 기억하는 맥락은 이러했습니다. 즉, 그들은 사회현상과 정치현상, 그리고 그것을 지배하는 철학적 기반에 대한 지적 부재가 너무나도 복잡하고 어려운 사회를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로 다가왔고, 그 때문에 뭔가 불만은 있는데, 그 불만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던 거죠. 해소될 수 없는 불만이니 아무렇게나, 아무에게나 터져나왔던 겁니다.

 

분노했지만, 무엇에 분노한지 모르는 사람들이 극단주의에 쉽게 경도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사색의 기반이자 자기 언어를 가져다주는 것은 더 '깊은 생각'을 가능하게 해준 철학입니다.

 

 

2.정신력과 인지력.

 

...몇몇 심리학적 연구결과를 보면 까다로운 인지작업과 유혹의 도전을 동시에 받는 사람들은 유혹에 굴복할 가능성이 더 높다. 매우 중요한 일이니 1~2분 동안 7자리 숫자를 기억하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가정하자. 숫자에 집중하는 동안, 건강에 해로운 초콜릿 케이크와 건강에 이로운 과일 샐러드라는 두 가지 디저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실험 결과를 보면 머릿속이 온통 숫자로 가득 차 있을 때는 유혹적인 초콜릿 케이크를 선택할 확률이 더 높다. 시스템 2(이성)가 바쁘면 시스템 1(본능, 직관)이 행동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 그 시스템 1은 단 것을 좋아한다.

'인지적으로 바쁜' 사람들은 이기적인 선택을 하고, 성차별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사회생활을 하며 피상적인 판단을 할 가능성이 더 높다. 물론 '인지 부하가' 자제력을 약화시키는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불면과 마찬가지로 음주도 똑같은 효과를 낸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와 동료들이 수행한 일련의 놀라운 실험들을 보면 인지적이건 감정적이건 신체적이건 상관없이 모든 다양한 자발적 노력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정신 에너지의 공유풀에 의존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바우마이스터는 의지나 자제력 유지 노력이 피곤한 일임을 거듭 확인했다. 억지로 뭔가를 하도록 자신을 독려해야 한다면, 다음 도전이 닥쳐왔을 때 자제력을 발휘하려 하지 않거나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줄어든다. 이런 현상을 '자아 고갈'이라고 한다.

- 다니엘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정치적 현상과 메시지들을 이해하고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인지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저소득층은 그것을 설명하고 분석할 수 있을만한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스스로 공부하지 않은/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남들보다 더 각박하고 고난하게 살아가기 때문에 당장 자신의 삶에 집중해야할 시간과 정신력, 체력이 많이 할당되고 정치, 사회적 현상을 파악에 할당되는 자원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쉽게 말해, 새벽 6시에 일어나 첫차타고 일터로 나가 6시까지 일하고 7시부터 11시까지 일해서 12시에 돌아오는 아주머니가 정치, 사회적 현상에 대한 복잡한 이론을 이해하거나 스스로 전개할만한 능력은 부족할 겁니다. 이는 배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만큼 일에 정신력과 체력이 소모된다면 일과 무관한 복잡한 지적 활동을 하기 어렵겠죠.

 

저소득층은 교욕수준에서부터 정치현상을 파악하고 판단하기에 지적, 철학적 기반이 부재된 경우가 많고, 자아가 고갈된 사람들이기에 깊게 파고들어 분석할만한 여유도 없습니다. 삶에 여유가 없기에 무엇이 좋고 나쁜지 판단할 정신적 여유가 없고 뉴스를 보며 인지 자원을 동원한 작업을 하기 어려우니 더 간단한 말과 더 직관적인 액션을 보여주는 사람에게 지지를 표하게 됩니다.

 

더불어 그들은 자신의 삶에 있던 불만들을 해소해줄 것 같은 언어들을 씁니다. 이명박은 물론, 박근혜 정권 역시 선거철만 되면 사회주의에 가까울 정도로 포퓰리즘 공약을 내거는 것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의 공약 플래카드들은 대표적인 예시라 해도 무방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언제나 뒤통수를 맞고, 그럼에도 잊어버립니다. 당장의 삶이 고난하기에 정치에 계속 관심을 두고 있었던 일을 계속 기억해두는 것조차 힘겹기 때문입니다.

 

 

3.선동과 액션의 중요성.

 

더 간단한 표어와 더 직관적인 메시지는 선동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이고 효과적인 것을 넘어 가장 이상적입니다. 선동은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만 기실 이 선동이라는 단어는 꽤 중립적인 용어인데, 가령 반드시 필요한 개혁이나 복지를 밀어붙힐 때 정부는 국민들에게 이것의 필요성을 설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설득은 논리적이고 많은 근거를 제시하며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간단하고 경제적으로 선동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죠.

 

국민들에게 여러 데이터를 제시해봤자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이들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물론이며,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도 많고, 오히려 그러한 데이터를 반박하고 논쟁을 시도하는 이들조차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정부는 국민과 논쟁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과 법안이라도 그것을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정부는 국민들을 선동해서 원하는 목표를 이뤄야 합니다. 설령 그것이 필요하더라도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나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쉽고, 그 이상으로 나쁜 결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 선동의 예시로 문재인 친중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면, 문재인이 중국몽을 언급한 원문을 본 사람은 교묘하게 중국을 비판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친중설을 선동하는 이들은 문재인 중국몽까지만 언급하며 왜곡하죠. 아주 간단하고 직관적인 한 문장만으로 맥락은 뒤집혔습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재경부는 미래를 위해 돈을 아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대규모 추경이나 지원은 불가하다는 부정적인 견해를 지속적으로 밝혔습니다. 실제로 연금 문제는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예정해놓은 문제이고, 어떠한 해법이나 준비가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지원 정책에 꽤 미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들 역시 많아졌죠. 이는 문재인 정부가 국민들을 선동하여 그들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관점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보수 세력은 진보 세력에 비해 이러한 선동적 능력이 탁월하며, 동시에 보수 지지자들은 진보 지지자들에 비해 이 선동에 더 쉽게 넘어가고 더 빠르게 감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보수 지지자들의 수준이 진보 지지자들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극우보수는 가짜뉴스에 더 쉽게 속으며, 스스로 그 가짜뉴스를 만들고 배포시키고, 그렇게 유포된 가짜뉴스에서 새롭게 생성된 컨텐츠가 스스로 속아넘어가기도 합니다.

 

그러한 이유로 저소득층은 더 직관적이고 간단한 극우보수의 선동에 더 쉽게 넘어가는 것이고, 그들이 TV에서, 언론에서 보여주는 직관적인 쇼들을 쉽게 이해합니다. 고고한 진보주의자들은 그러한 쇼를 하지도 않고 잘 볼 수도 없습니다. 그들의 말과 언어는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들이라 머리만 어지러워져 쉽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극우보수의 언어는 쉽고 간결합니다. 단순해서 이해하기 쉽죠.

 

물론 이 쉽고 간결한 언어가 어떠한 왜곡을 낳고 얼마나 피상적인지 알 겁니다. 그런만큼 문제의 핵심에 다가가지 못하고 제대로된 해결이나 변화를 이끌어낼 수는 없죠. 오직 더 나쁘게 되는 거 빼고는요.

 

독재자들의 액션들 역시 매우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쉽습니다. 게다가 화끈하기도 하죠. 말 한마디면 높으신 분도 앞에 나와서 굴복해야 합니다. 강력한 메시지들은 우리의 적을 분쇄해야 한다는 믿음과 확신으로 가득차 있고, 그들은 정말로 문제입니다. 문제는 해결되어야 하고 해결하기 위해선 강한 지도자가 필요하죠. 따라서 강한 이미지를 가진 이들,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강한 워딩을 쓰는 매파에게 지지를 표합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이고 어떤 피해와 손해로 돌아오며, 그들이 진짜 매파인지, 아니면 치킨호크인지, 아니면 그조차 아니고 단지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이익을 얻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스트롱 워드를 사용하는 것인지도 고려하지 않고 파악할 능력도 없습니다.

 

자신에게 어떤 이익을 돌려줄 것이며 자신의 삶보다 더 크고 중요한 것들이 어떻게 망가질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고 애당초 관심도 없습니다. 당장 자신의 삶이 더 중요한 문제이고 높으신 분들이 얼마나 빼쳐먹든 내 돈은 아닐 것이며, 권력자들이 자기 밥그릇을 어떻게 빼앗기고 누가 차지하든 그 역시 자신의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죠.

 

심지어 경제, 복지, 노동 정책의 변화로 인해 진짜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게 되고 피해를 입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파악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을 파악하려면 자신의 한 표가 만든 정치인이 경제, 복지, 노동 정책을 어떻게 변화시켰고 기존과 어떤 것이 다르며 그러한 결과 어떠한 절차를 거쳐 어떤 이유로 자신에게 이러한 변화(손해)를 입혔는지 알아야 합니다. 몇가지 과정을 아무리 단순화 시키더라도 자신이 뽑아준 정치인이 바꾼 정책이 자신에게 어떻게 돌아왔는지 이해해야 하는데, 그걸 잘 못합니다.

 

심지어 주변에 그걸 잘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냥 어려워졌으니 어려워졌고 윗 사람이, 공무원이 개새끼라 그런갑따 할 뿐이죠. 한번도 삶이 편했던 적이 없으니 어려운 삶에 적응한 사람들입니다.

 

 

4.내 계급적 이익과 이념적 지향.

 

때로 이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너무 어려운 사람들 말고 조금이라도, 살짝이라도 더 여유로운 이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내가 뽑아줄 정치인이 복지, 의료, 노동, 취업에서 나와 내 가족들에게 불이익을 안겨줄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정치적 사상과 이념에 있어서 상대 정당의 그것에 동의할 수 없다는 사람들 말입니다.

 

내 취업 조지고 내 동생 교육 조지고 내가 취업했을 때 더 많은 시간 노동하고 더 적은 임금을 받으며, 내 엄마아빠 병원비 더 비싸지고 우리집 월세 더 오르며 우리 집안 지원금 더 줄어들어도 반미친중친북 빨갱이 페미 민주당에게 정권을 줄 수는 없다는 사람들.

 

부정부패 많이 저지르고 인성 문제 있고 범죄자인 것도 알지만 빨갱이 민주당에게 나라를 넘겨줄 수 없다며 이명박 찍어준 사람들, 정치적 능력은 의심스럽고 인격적으로 덜 성숙했고, 아버지 후광으로 지지 받는 거 다 알지만 빨갱이 민주당에 정권 못 준다며 박근혜 찍어준 사람들. 다 알고 하는 겁니다. 다 알고 하는 건데 민주당이 반미친중친북 빨갱이가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모릅니다.

 

이건 자기 삶과 별개로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더 큰 거대담론과 이념, 사상을 지향하며 표를 던지는 이들입니다. 세금이나 부동산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더 나은 세상을 기대하며 민주당에 표를 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미련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들에겐 세계관적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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