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rodinger

블로그 이미지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 2,021,183Total hit
  • 17Today hit
  • 121Yesterday hit

'2019/06'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9.06.30
    해외 소설, 주술사의 길 리뷰.
  2. 2019.06.22
    진보의 지적허영과 위선, 채식주의. (2)
  3. 2019.06.12
    미성년 주류 판매 문제에 대한 법적용 현실의 합리성
  4. 2019.06.02
    중국의 시민감시와 기술독재에 대한 단상.


※ 본 리뷰는 작품에 대한 내용누설이 있습니다. 



외국 소설인지라 처음엔 조금 기대도 했습니다. 그것도 겜판인지라 한국 쪽의 양판겜소랑은 다를 거라 생각했죠.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본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다르긴 달랐으나, 그리 기대한 가치가 있지는 않았다.. 정도의 결론을 내릴 수 있겠네요.



한국 겜판과의 차이점은,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개연성을 어느 정도 확보했다는 겁니다. 가령 현피 같은 경우 한국 겜판소에서 찾아보기 어렵고, 잘 고려되지도 않죠. 현실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주인공이나 주인공 주변 사람, 동료, 가족, 라이벌이나 일부 악역 정도에 한정되어 있고 그들과의 관계는 사실상 별 거 없죠. 


반면 주술사의 길에서는 실제로 사람을 죽일 수 있거나 죽이거나 현피를 뜨거나 불이익을 주는 등의 개연성이 있습니다. 주인공 머핸 또한 현피를 두려워하거나, 살해 당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죠. 더욱이 게임 자체가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범죄 형량이나 경제활동 그 자체를 게임에서 처리할 수도 있다보니 게임이 단순한 게임 그 자체가 아니게 되었죠.


이는 아무리 뛰어난 게임이어도 기껏해야 돈벌이 수단이나 국가적 이벤트, 산업 정도로 여기며 그냥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게임 정도로 보지만, 주술사의 길에선 그 이상입니다. 글자 그대로 사회의 한 요소이자 일부죠. 다만 그런 만큼 게임사의 권한과 권력이 돋보이는 부분은 많지 않습니다.


소설 내에서도 어마어마한 돈과 수수료를 받지만 그걸 가져가는 게임사의 거대할 수밖에 없는 권력에 대해선 별 다른 이야기가 없더군요. 



이외에도 가장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이게 서로간의 문화 차이라고는 해도, 주인공의 성장에 관한 문제입니다. 한국 겜판소에서는 아무리 이고깽스타일로 무슨 재능이든 기능이든 말도 안 되는 것들을 혼자 독점하고 짱짱맨 되는 게 클리셰이지만 적어도 본인 스스로 어떠한 노력과 성과를 이루는 쪽이라면, 주술사의 길에서는 본인이 스스로 노력하거나 성과를 이뤘다기 보단 운빨에 얻어걸리는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입니다.


까놓고 말해서 주인공 스스로 능력껏 얻은 것들은 많이 안 됩니다. 그냥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고, 의도한 게 아닌데도 이상할 정도로 뛰어난 성과와 예상치 못한 결과들이 '얻어 걸리는' 것 뿐이죠. 전체적으로 봤을 때 거의 버그나 사기 수준일 정도죠.


머핸 스스로도 자기가 뭘 한 건지도 모르고 결과만 그냥 받아들이는 게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루어집니다. 까놓고 말해서 머핸이라는 캐릭터가 주인공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저 직감과 운빨이 뛰어난 걸 제외하면 머핸이라는 캐릭터의 캐릭터성은.. 글쎄.. 좀 선량하고 머리는 좋지만 적당히 멍청한데다 평범하다는 거?


그런 캐릭터는 어디에든 널려 있고, 머핸의 캐릭터성은 특별한 게 못 된다고 봅니다. 더욱이 이해가 안 되는 건 그런 머핸과 아나스타리아가 사랑에 빠지는 거죠. 정확히는 스테이시(아나스타리아의 애칭)가 머핸을 사랑하게 된 것이.


얘 옆에 있으면 온갖 게임 시나리오가 터지고 재미 좀 볼 수 있겠지만 까놓고 말해서 머핸이라는 캐릭터가 보여준 거 자체는 별 거 없고, 오히려 사고를 치는 경우도 있는데다, 머리도 엄청 잘 돌아가는 게 아니라 스테이시 같은 베테랑이 옆에 없으면 통수 맞고 사기 당하고 뜯어먹히기 딱 좋은 호구인데 말이죠. 실제로 그렇게 당한 게 한 두번이 아닙니다.


이런 면에서 머핸이라는 캐릭터는 특기할 장점이 몇 없습니다. 



이외엔.. 머핸이 음모자들에게 당하면서 범죄를 저지르고 갇히고 게임 내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채 현실이라 믿게 되는 모든 과정이 솔직히 말이 안 되지 않나 싶습니다. 제가 이런 류의 음모에 대해서 그 현실성과 실행 가능성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기는 합니다만... 범죄를 저지르게 유도하는 거? 그렇다 칠 수 있습니다. 가상현실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현실이라 믿은 채 다른 가상현실 속에 가두는 거? 기술적으로 그럴 수 있다 칩시다.


근데 그런 과정이 모두 개연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그들이 얻을만한 것에 비해 리스크는 너무 크고, 그 계획에 가담한 사람들은 너무 많으며, 그러한 계획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시행하고 성공하려는 것 자체가 그닥 설득력이 부족하지 않나 싶네요.


물론 작품적 허용이라는 면에서 넘어갈 수 있는 거긴 하죠. 종신형, 혹은 살해 당할 수 있다는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을 때 얻는 것이 거대한 건 사실이고, 계획에 가담한 사람들이 적으면 오히려 실행 자체가 불가능하게 될테니 그것도 이해할 수 있는 요소이며, 계획을 단계적으로 나눴을 때 각각의 파트가 성공하기만 하면 되는 거니 아예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수 있다만.. 아무리 그래도 그 음모 자체는 너무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해외 소설답게 한국 겜판소에서 볼 수 있는 온갖 클리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되고, 너무 주인공에 대한 푸쉬가 심할 정도이긴 하지만 캐릭터 자체는 무난무난합니다. 또 현실(주로 제도나 법률)과 연계되는 부분은 개연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걸 위해 게임사와 정부간의 관계와 법률이 있다는 서술이 있었고요.


또 한국에선 게임 자체를 하나의 다른 세계 정도로 인식하고, 데이터 쪼가리라곤 하지만 그걸 제대로 의식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그렇게 묘사되기도 합니다. 심지어 나에겐 또 하나의 진짜다. 라는 느낌으로 이입하고 데이터 쪼가리를 위해 몸과 마음을 던진다고 해야 하나 희생하거나 불필요한 리스크를 감당하려는 경우도 자주 나오죠.


하지만 여기선 꾸준히, 그리고 분명하게 데이터 쪼가리라는 선을 그어 놓습니다. 물론 감정이입이나 그런 걸 하기도 하지만, 좀 박하게 말해서 한국 겜판소처럼 현실과 가상을 구분 못하는 수준까진 아니죠. 오히려 감탄하는 게 대부분의 반응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쪽이 더 개연성이 있고 말이 되는 서술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여간.. 볼만은 했지만, 굳이 누군가에게 추천할만한 작품까진 아니다 싶습니다.

TRACKBACK 0 AND COMMENT 0





채식주의가 나쁜 건 아닙니다. 자기가 고기를 안 먹겠다고, 소비하지 않겠다고 하는 게 나쁜 건 아니죠. 하지만 모든 신념은 강요하게 되었을 때 그 자체로 악덕이죠. 종교를 강요하거나, 국가를 위한 희생을 강요하거나, 독재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채식주의자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신념을 남에게 강요하곤 하죠. 그게 문제인데, 그런 채식주의자들은 자신들을 사회운동가이자, 대의를 위해 투신하는 신념가라고 생각한다는 게 우습다는 겁니다. 신념? 있을 수 있죠. 나쁜 게 아니라면 더 좋죠. 하지만 그들은 그 신념을 남에게 강요하고, 시끄럽게 굴며 심지어 공개적으로 방해하기까지 한다는 겁니다.


더 웃긴 건 그런 이들 중 일부는 과거에 고기를 먹거나, 그런 채식주의자나 육식 혐오자 코스프레를 하면서도 남들 몰래 고기를 먹고 즐긴다는 거죠. 위선이죠.



그들이 원하는 건 진짜 자기 신념대로 사는 삶도 아니고, 진짜 그 신념에 따라 도축과 육식을 막고 그들 말에 따라 불쌍한 동물들이 죽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진짜 원하는 건, 이렇게 선을 위해 행동하고 실천하는 자신의 모습 그 자체이고, 그것을 남들에게 보여주며 칭찬 받고 지지 받고, 자신을 공격하는 몽매한 적들과 의연하게 싸우며 이겨내는 멋진 나인 거거든요.


그리고 그건 보여주기 위해, 감당할 수 있는 사소한 리스크만 따지며 더 많은 관심을 요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지도 않고 관심도 가져주지 않는 곳은 가지고 않는 거죠. 물론 이거야 사회운동이라면 대중에게 더 많이 노출되는 것 또한 목적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칩시다.


하지만 진짜 자신들이 동물들의 생명과 행복을 위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러한 활동에 못지 않게 남들이 보지 않고, 관심 가져주지 않는 곳에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행동하고, 가능하다면 변화시킬 수도 있어야 합니다. 즉, 편한 곳에서만 놀지만 말고, 힘들고 어려운 곳에서도 놀고, 어디서든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근데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한다는 게 기껏해야 음식장이나 정육점에서 시끄럽게 하고 장사 방해하는 게 다죠. 불매운동이야 해당 매장이나 기업 앞에서 시위하거나 항의하는 게 있으니 이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찌질하고 조악한 건 사실이다만요.



근데 제가 진짜 꼬집고 싶은 건, 그들이 얼마나 찌질하게 굴고 관심을 갈구하는 병자들이며, 자아도취적인 꼬맹이들인지가 아닙니다. 더욱이 이러한 것들은 공격하기도 쉽고, 감정적으로도 와닿으며 시원한 쾌감을 느껴주겠지만, 실제 이런 판에서 그런 식으로 공격했다 훈련 받은 사이비에게 역으로 털리는 경우도 있듯이, 그 채식주의 흉내자들이 머저리들이라 그럴 뿐이지 실제 정제된 논리로 반격해오면 공격자의 논리가 꼬이거나 되려 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이들을 보거나 겪은 경험이 많아서 앞서 비판한 영역에서 감정적인 대응을 통한 공격은 어떤 면에서 반격 받기도 쉽다는 걸 압니다. 당장 왜 마장동 축산시장에선 시위 안 하냐고 한다면 앞서의 이유처럼 사회운동은 대중에게 더 많은 노출을 하며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알리거나 관철시키는 거라고 반격한다면 할 말이 없죠. 아무도 모르는 산 속에서 인권운동하며 시위한다고 누가 알아주고, 어떤 변화가 있겠습니까. 그러랑 같은 거죠.



그러니 그들이 하는 주장의 조악함: 비논리성, 빈약한 팩트체크, 효용이나 현실적 필요성과 무관한 감성에 기대는 주장 그 자체를 공격해야 합니다.



가령 실제 채식주의가 필요하다거나 육식을 대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중 학계에서도 진지하게 다뤄지는 게 몇몇 있습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 중 하나인 메탄가스가 가축에 의해 발생하는 게 상당히 많고, 인구부양력을 따진다면 육류보다 곡류가 압도적으로 우월하고, 효율적이기도 하죠. 그래서 방귀세를 먹인다거나, 대체 가공육류가 새로운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고 실제 성과도 나타나고 있죠. 심지어 고기가 아니라 벌레를 통해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는 것도 미래 먹거리 산업이자 연구 분야로 건드려지고 있기도 합니다.


생각보다 소의 트름이나 방귀에 의해 발생하는 메탄량은 상당한 편이고, 비단 반추동물이 아니더라도 인풋과 아웃풋에서 가축보다 곡류의 생산이 훨씬 더 효율적입니다. 농작지, 목축지와 같은 땅도 면적 대비 효율로는 역시 곡류가 더 뛰어나죠.



하지만 채식주의 코스프레를 즐기는 이들은 그러한 모든 학설과 논리, 근거는 죄다 내다 버리고 감정적 주장만을 합니다. 때로는 감정이 이성과 합리보다 더 우월하게 작용하는 전략이 될 수 있겠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기를 먹기 때문에 그닥 공감할만한 방법이 아니라는 거죠.


그렇다고 그들이 진지하게 사회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연구하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어디서 들은 출처불명의 낭설을 근거로 주장을 해대기도 합니다. 그러니 구체적인 논리와 근거를 대며 최소한의 합리성을 기반으로 먹힐만한 주장을 펼쳐야 실제로, 아주 조금이라도 먹히기라도 할텐데 그러한 노력이 전혀 없어요. 혹은 능력이 없거나.



그러니 그들이 하는 활동을 지적허영과 위선, 자아도취라고 하는 거고요. 그 모양새가 어린 애들, 진보 특유의 것들입니다. 그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 뿐입니다. 그들이 지성이 최소한의 성과를 이루기에 모자랍니다.

TRACKBACK 0 AND COMMENT 2
  1. Favicon of https://nutmeg.kr BlogIcon 넛메그 2019.06.27 17:5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채식운동이야말로 나르시시즘의 전형인 것 같습니다. 채식을 해야 한다는 게 무슨 집회를 하고 운동을 할 정도의 사안이 되는 게 아니니까요. 조금만 깊이 들어가보면 말씀하신 것처럼 감상적인 논리일 뿐이죠. 그냥 보여주기식에 가깝습니다. 속물인 거죠.

    • Favicon of https://konn.tistory.com BlogIcon Konn 2019.06.27 19:39 신고 address edit/delete

      나르시시즘. 적절한 표현이네요. 자기 자신에게 도취해 있는 거죠. 그리고 그걸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관심병까지 있는데다, 그 표현 방법이 부적절하기까지 하죠.






신분증 변조 등으로 미성년 여부 몰랐다면, 주류 판매 처벌 안 받는다(종합)


예전부터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다 걸려서 벌금을 내거나 사업을 접게 되는 등의 문제가 있었고, 이러한 법을 악용하면서 경쟁매장에 테러를 가하는 경우도 있었죠. 이는 근거도 있고 법적 원칙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행정 편의주의적인 이유가 크고, 한편으로는 사상적인 이유랄지.. 그런 것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남의 잘못도 있지만, 니 책임도 있다. 근데 미성년자를 잡거나 찾기는 힘들고(귀찮고) 당장 눈 앞에 있는 너에게 책임을 묻겠다. 하는.



그만큼 매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미성년자 주류 판매는 매우 위험하고 경계해야할 일이고, 심지어 미성년자조차 이를 악용하고, 아예 미성년자를 고용해서 경쟁 매장을 문 닫게 하려는 식으로 악용하기도 하는 등, 그 자체로 악법으로 활용되는 법률이었습니다.


그러한 사례를 듣거나 기사로 본 사람들에게 법이 이상하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나왔으나, 그 동안 이에 대한 개선이 없었던 것은 국회가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국회에는 정말 많은 일이 있고, 그만큼 중요한 일들을 선행하여 처리해야 하는 것도 사리에 맞지만, 악용되고 피해를 야기하는 악법은 또한 시급히 수정되어야 하는 문제죠. 


미성년자에게 술을 파는 것은 분명 제한해야 되는 일이나, 이를 온전히 판매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도 완벽히 공정한 것은 아니고, 그 이상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있으니 민생을 위해서라면 이러한 요소는 수정되어야 합니다. 기존의 법과 제도 중에서 이러한 현실적으로 사리에 맞지 않거나, 악용되는 사례들을 면밀히 판단해서 최대한 줄이는 게 실제 살아가는 개인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치라고 할 수 있겠죠.


따라서, 이러한 법 적용의 변화는 환영해야할 일입니다. 제도가 더 합리적으로 변화한 것이고, 개인의 억울한 피해 사례는 더욱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이고 직접적으로 매장을 운영하는 개인에게 도움이 되는(피해의 발생을 줄일 수 있는) 변화겠죠. 


TRACKBACK 0 AND COMMENT 0





“나는 당신이 어디서 뭘 했는지 알고 있다”…중국, 안면인식 기술로 시민 감시 중

https://news.joins.com/article/21753912

시진핑의 중국, CCTV만 2000만개 '톈왕' 운영...감시기술 특허도 美 압도

중국 정부, 시민 감시용 드론 ' 도브 ' 개발 중
조지 오웰의 악몽: 중국의 사회신용시스템


사실 기존의 모든 독재가 결국엔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지 그것을 실현시키기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끼리 모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위를 할 것인가, 지금 어디에 있나, 누구와 있나, 무엇을 하나. 이걸 알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사람들의 연대와 협력을 막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그런 모든 현실적 한계는 기술의 발달에 따라 통제할 수 있는 상수가 되어가고, 중국은 그것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는 국가이며, 거기에 가장 많은 돈과 인력, 기술력을 투자하는 국가죠. 기술이야말로 초장기 독재를 실현시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중 가장 효과적인 제도가 바로 사회신용시스템이죠. 단지 길거리를 걷기만 해도 자신에 대한 정보가 CCTV 등으로 실시간으로 감시되고 수집되는 것도 있지만, 자신의 모든 행동과 표현이 점수화되어 평가 받고 그에 따라 사람이 살기 위한 대부분의 행위가 제약될 수 있다는 겁니다.


즉, 무언가를 할 수 없고, 연대도, 단결도 될 수 없는 정치적으로 완벽한 개인으로만 고립시킨다는 겁니다. 어떠한 사회적 행위도, 정치적 행위도 할 수 없고, 무언가를 하기 이전에 감시 당하고, 감시 당하며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는 거죠.



이러한 기술적 발달로 인해 중국의 독재가 수십년은 길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중국 정부가 중국 인민의 민족주의와 국수주의를 자극하면서 내부갈등과 불만을 통제하고 결집을 이루었지만, 반대로 그러한 중국 인민의 민족주의적 요구와 강경함이 되려 중국 정부를 곤란한 상황으로 등떠밀 수도 있다고 보았었는데, 이러한 기술적 적용이 이루어진 시점에선 시민들에게 공포를 주고, 더 강력한 통제를 실현시켰으니 내부 단속에 어려움이 있을 거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건 중국 공산당에게 매우 좋은 일이 될 거고요. 



사실 단지 기술력이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지 북한도 비슷한 상황에 가깝긴 합니다. 북한 또한 국가 건설 초기부터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의심하고, 고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놓으면서 누구도 믿을 수 없고 공포 속에서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위험한 사회를 만들었죠.


중국은 그 거대함과 거기에서 시작되는 어려움이 오랫동안 큰 문제가 되어오진 않았고, 천안문과 같은 사태가 있었음에도 큰 희생과 공포를 보여줌으로써 중국 정부와 인민들에게 경험을 줬었죠. 하지만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뒤 급속도의 발전이 있었고, 21세기가 되면서 더 높은 학력과 해외 경험, 폭발적으로 확장되는 정보사회는 중국인들에게 자유와 민주주의를 가르쳐줬죠.



이는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중국 정부는 황금방패 프로젝트 등 자국민 검열을 실시하면서 해외 사이트를 차단했죠.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이 중국에선 공식적으로 차단 된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단지 가린다고 다 가려지는 것도 아니고, 기술적으로 막았다고 해도, 창과 방패의 싸움에선 언제나 창이 승리했던 것처럼, 아무리 잘 검열하고 차단해도 그걸 뚫을 수 있는 기술은 언제나 있었죠. 그러니 차단은 어디까지나 1차적인 수준일 뿐인 겁니다.



행동과 표현에 점수를 매기고, 감점이 된 이들은 그만큼 생활과 활동에 불이익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실현된다는 것은 기존의 독재에서 찾아볼 수 있는 통제와는 차원이 다른 통제입니다. 중국인들은 철저한 개인으로서 격리되고 순응할 수밖에 없는 체제를 만들었다는 거죠. 중국 정부에 어떠한 감정과 체제에 대한 어떤 평가와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와 별개로 중국 정부의 명령과 체제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과거 한국의 군부독재가 시간만 되면 애국가를 틀고, 반드시 길에 멈춰서서 가슴에 손을 얹고 경의를 표해야 했으며, 매일 수업이 시작하기 전 국기에 대한 경례와 국민의례를 하게 만든 것과 비슷한 맥락이기도 하죠. 국가 권위에 대한 정신적 순응작업. 길들이기.


어차피 국민의 생활 전반이 감시 당하고 있기 때문에 모여서 무언가를 할 수도, 계획을 세우거나 실행할 수도 없지만, 그 이전에 그러한 불만이 발생하지 않게, 길들이고 순응시키고, 미리 체념시킬 수 있도록. 그런 사회에서 살아야 한다는 게 참으로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활 전반에 자기검열을 해야 하고, 그게 모두 점수화되고 평가되어 실제 자신의 생활과 삶의 모든 영역에 제약이 발생한다는 것이요.

TRACKBACK 0 AND COMMENT 0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616)
취미 (616)
백업 (0)

CALENDAR

«   2019/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