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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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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0.10.23
    함정식 소통 태도.
  2. 2020.10.20
    극단주의와 반지성주의, 정의를 독점한 편협한 바보들.
  3. 2020.10.02
    북한에 대해서는 객관적 판단력이 정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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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식 소통 태도란 남들이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길게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을 토론이나 논쟁, 혹은 일반적인 소통 상황에서조차 일부러 상대방이 낚이길 바라며 스스로 논파될 장소로 유도하는 식의 소통을 말합니다. 


어디에 원래 이런 용어가 있는 건 아니고, 글을 써서 지적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만든 용어입니다.



간혹 논쟁이나 토론을 할 때 소통 중 자신의 우위와 승리를 점하기 위해 논리나 팩트의 일부를 나열하며 지리하게 이어지는 경우가 발생하곤 합니다. 처음부터 자신의 생각과 근거를 잘 정리하여 논리적으로 서술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박과 논파를 위해 그 일부만을 짧게 내놓고 그것을 상대방이 물어 뜯다 논리적 허점이나 모순을 유도하는 거죠.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상대방을 바보로 만들고 날 더 우월한 지성인으로 설정하기 위해 그러한 상황을 만들 목적으로 주로 발생한다고 봅니다. 논쟁 대상자를 논리적으로 두들겨패고 팩트로 무너뜨리며 유린하기 위한 태도인데, 이런 태도가 성공할 경우 지적 쾌감과 우월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매우 즐겁죠.


하지만 그런만큼 이게 잘 통하지 않을 경우, 상대방도 똑같은 태도로 대응하면 매우 지리하고 무의미한 소통, 논리적 참호전이 벌어지게 됩니다. 서로의 허점과 모순을 찾기 위한 싸움이 되는 거고 이 과정에서 갈등, 분쟁으로 이어지기도 쉽습니다. 다시 말해, 점점 격해지면서 말싸움이 되기 쉽다는 거죠.


생각보다 많은 논쟁은 처음부터 성실한 소통 태도로 임했을 경우 발생하지 않거나 더 생산적인, 유의미한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적어도 분쟁이 아닌 끝을 볼 수 있곤 하죠. 그러나 함정식 소통태도는 그러한 결론을 내놓기 어렵게 됩니다. 처음부터 문제의 핵심을 짚어 그 모순점이나 문제점을 무너뜨린다면 단 한 줄의 논리도 위력을 발하겠지만, 대개의 경우 그렇지 않죠.


하나의 문제에 대해 한두 가지의 결론이 나올 수 있다면 정말 좋고 편하겠지만 생각보다 더 많은 관점과 생각이 제나름의 합리성과 의미를 지니며 가치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덜 합리적일 수 있고, 그 논리적 구성이 탄탄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러한 의견과 주장이 나올 수 있는 바탕엔 의외로 반박하기 어려운 합리성이 존재할 수 있죠. 논리는 좀 허술하지만, 맞는 말일 수 있다는 겁니다.


한 줄의 논리로 논파했다면 정말 멋지고 재밌는 일이겠지만, 실제로 그러긴 어렵죠. 오히려 쿨병 걸린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의견에 논리와 근거를 충실히 마련하는 성실한 소통이 상호 모두에게 이로운 태도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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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난 당시에, ‘여성’의 역할에 갇히는 느낌이 견딜 수 없어서 화가 난 상태였다.

뒤돌아보면 그건 사회적 억압과 내 성정체성, 썩 불행했던 가정사 등등이 섞인 결과였다.

어렸을 때야 우리편 vs. 니네편으로 모든게 단순했지만. 돌아보면 그건 결코 단순치 않았다.

사람 일이 얼마나 복잡한 건데. 하지만 그 때는 상관없었다.

내 정신적 불행을 잠시나마 외면하는 데 ‘사상’만한 게 없었으니까.

일단 겁나 가난한 집안이 싫었고, 오빠와 차별대우하는 부모가 싫었고, 너무 일찍 자각한 내 정체성이 싫었고,

내가 짊어진 짐을 이해할 수 조차 없는 세상이 싫었고. 기타 등등. 모든게 내가 여성이기 때문이면 간단했다.

근데 돌아보면 그냥 이런 생각이 드는거. 그게 뭐? 내가 불행한게 내 주변 개인들 탓인가?

IMF때 폭삭 망한 부모가 나 미워서 날 내보냈을까? 오빠는 잘 되고 나 망하라고 등록금 안보태줬을까?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굳이 호모포비아라서 날 외면했을까?

나에게 겹쳐진 불행들이 어떤 한 사람, 한 집단의 탓인가? 울분을 토하면 그게 사회운동인가?

하지만 그 때, 그쪽 집단 안에 있을 때는 몰랐다.

거의 절대 다수의 내 문제들은 사실 ‘우리편 vs. 니네편’보다 훨씬 복잡했다는 걸.

나를 둘러싼 상황은 더럽게 복잡한데, 이게 단순히 ‘여성의 억압’이라는 필터로 단순화되었을 뿐이라는걸.

난 내가 20년쯤 젊었더라면 요즘 흔한 애들처럼, 깨어있는 페미니스트를 자처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후략)


한 레즈비언 아줌마의 넋두리.


현대는 너무나도 복잡해서 전문가라고 해도 현실의 일부분만을 설명할 수 있을 뿐 그 외의 영역에선 남들보다 조금 더 낫거나 남들과 큰 차이가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어떠한 사회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선 다양한 의견과 다각도의 관점들을 수렴해야만 하고, 그러한 다양성이 충족되는 사회가 건전한 사회의 조건일 것입니다.


그러나 극단주의자, 반지성주의자들은 그러한 사회를 너무나도 간단한 형식으로 파악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큰 오류를 범하고는 하는데, 그들의 지성이 뛰어나지 않거나 관점이 너무나도 편협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이죠. 


문제는 그들이 단지 멍청하기만 한 게 아니라, 고집까지 세다는 점에 있습니다. 다른 시각과 관점을 알지 못하고, 심지어 받아들이고 하지도 않기 때문에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이고 자신의 관점이 진리라고 여깁니다. 저는 이를 독선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들이 어떠한 사회문제나 정치를 판단할 때 자신의 판단이 정의이고 다른 관점과 다른 생각은 틀린 것, 혹은 잘못된 것으로 기준하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은 그들의 모자란 지성과 편협한 시각과 함께 쓸데없는 자존심과 고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상을 판단하고 평가할 때 한두 가지의 간단한 논리와 딱 그 수준의 사고로 제단한다는 겁니다.



제가 보는 소설 중 천마신교 낙양지부(2부는 낙양본부)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작가가 무공에 대해 흥미로운 관점으로 서술하였는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정공은 불세출의 천재(입신의 경지)가 어마어마하게 넓고 뛰어난 통찰력으로 전체를 그려 만든 무공이기에 뛰어난 오성(재능)을 가지고 그가 만든 체계를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는 인재라면 시간이 느릴 뿐이지 꾸준히 올라갈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반면 마공의 경우 위가 아닌 아래에서부터, 자신의 논리와 관점을 점점 체계화시켜 마공을 뜯어고치고 발전시킨다는 점인데, 문제는 이럴 경우 낮은 수준의 체계에선 충분히 통할 정도의 논리와 형식을 갖추어서 별 문제가 없지만, 그 체계를 그대로 쌓아올리다보면 체계 스스로 모순이 발생하고, 그 모순을 해결하지 못할 때 주화입마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잘해야 마공을 잃고 평범or폐인이 되거나 나쁘면 걍 죽죠.


그럼 천마신교의 마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느냐면, 서로 다른 관점과 개념을 가지고 무공을 만들거나 발전시켜가는 다른 마인과의 교류를 늘리는 방식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저변을 넓히는 것이죠. 자신의 무공을 나누고, 자기가 준 만큼 다른 무공을 배우며 자신의 무공이 가지고 있는 근본 한계를 넓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한가지 시각으로 바라보면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개념, 현상이 닥쳤을 때 반드시 오류가 발생할 수 없는 것을, 다른 시각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체계 내로 편입시키면서 모순과 오류를 해결한다는 겁니다.


이는 무협이라는 소설 내의 설명이지만 이러한 관점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느껴지더군요.



애석하게도 세상에는 그런 종류의 바보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반지성주의, 혹은 극단주의라 부르는데, 이는 반지성주의와 극단주의가 같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 공유되는 교집합적인 부분, 혹은 서로가 서로의 이유가 되어주기도 한다는 쪽일 것입니다. 반지성주의자이기 때문에 극단주의자가 되거나, 극단주의자이기 때문에 반지성주의로 빠지거나.. 


일베나 메갈류가 그렇죠. 그들은 매우 편협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수준 낮은 논리와 사고로 판단하려 합니다. 



더 간단한 논리의 선동이 그러한 것을 판단하기 위한 지적능력이나 소모해야할 인지력이 부족한 이들에게서 더 쉽고 광범위하며 빠르게 받아들여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무엇이 문제라면 그것이 왜 문제인지 제나름대로 분석하고 판단할 지적능력이나 그 능력을 활용할 정신력(인지력)이 필요한데, 여유롭지 못할수록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전라도 혐오와 한국 혐오. 가해자의 피해자 혐오.

https://konn.tistory.com/703


앞서 짚었던 편협한 시각, 저열한 지성을 고려해보면, 복잡하고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러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성을 가진 이들일수록 더 간단한 논리의 선동이 잘 먹힐 수밖에 없는 거죠. 최근 많이 비판받고 지적이 나오는 사이버렉카와 그들의 추종자, 무사트와 그 직원들에 대한 공격을 하는 자들이 많고 그러한 행위에 죄책감이나 가책 따위가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들 스스로는 자신의 행동을 정의롭다 여기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들이 비판하는 문제 삼는 현실의 여러 현상과 객체들은 제각기 더 복잡한 설명이 필요한 것들인데 너무나도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걸 더 떨어진 지성으로 판단하다보니 저열한 결론이 나오고, 그들의 쓸데없는 고집은 자신을 정의의 포지션에 설정하는 거죠.


애당초 모든 인간들은 자신을 정의롭고 공정한 판단을 한다 여기지만, 객관적 현실은 전혀 다르게 판단될 수 있듯이, 그들이 비판을 받는 이유는 그들의 행위에 있지 그들의 주관에 있는 게 아닙니다. 



그들이 가지는 한계 덕분에, 그들의 철학도, 신념도 정교하지 못하고, 허술하나 최소한 체계가 정립된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한계와 함께 어떤 것을 판단할 때의 유일한 기준은 자신들이 소속된 커뮤니티에 형성된 분위기거나 그저 자신의 기분, 비위에 불과합니다.


더닝-크루거 효과에 대해서는 익히 아실테니 굳이 설명하고 넘어가진 않겠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이 정의롭고 공정하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똑똑하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을 가르치려들면 감히 나를 가르치려한다며 역으로 가소롭게 여기죠. 정작 본인들의 저열한 지성을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고요. 


너 자신을 알라는 시대를 초월한 금언인 이유가 있는 법이죠. 하여간 자신의 무지함과 편협함을 자각하지 못한 이들이 자신이 독점한 정의의 자신감을 기반으로 오히려 남들을 가르치려하고 넌 틀렸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일베, 메갈이 자신의 태도와 가치관을 자랑스럽고 비판받거나 논파 당해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죠. 지금은 내가 잘 몰라서, 니가 말이 안 통해서 포기하는 거지 내 관점과 사상이 틀린 건 아니다. 라고.


그런 이들이니 공정이나 정의라는 것도 앞서 언급한 기준에 따라갑니다. 소속된 집단의 분위기나, 자신의 기분과 비위. 이걸 직관이라고 하면 직관이겠지만, 그 직관도 지성을 기반으로 하는 통찰력이 있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기존의 윤리나 가치관, 철학이나 사상을 비웃고 비판하고 하는 거야 개인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부터가 그러한 기준을 세우지 않고서는 언제나 이중적이고 사안에 따라 다른 기준이 될 수밖에 없죠. 그 기준은 자신의 기분에 따라 다르고 자신의 비위에 따라 달라지는 가볍기 짝이 없는, 가변적인 물건이 되는 거고요.


일베와 메갈을 위시하는 극단주의자들의 편협성과 독선성이야 너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태도들이고, 단지 이들 집단 뿐만 아니라 현실과 인터넷 어디에서든 존재합니다. 심지어 우리들도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다면 중요한 건 정도죠. 선을 넘거나, 지나쳤다는 표현이 존재하는 이유는 누구도 아닐 수 없는 요소에서 남들과 다름을 구분하기 위함입니다.


인터넷의 악플러들이 연예인이나 일반인을 죽이고, 누군가의 아내를 유산시키거나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이 생기게 괴롭히는 이유는 그들이 어떤 잘못을 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저 자신을 정의라 여기는 편협한 바보들이 독점한 정의를 휘두르는 쾌감에 빠지고 싶을 뿐이기 때문이죠.


반성도, 성찰도, 고민도 없고, 무언가를 판단하고 적절히 설명해내기엔 판단력과 합리성이 부족한 겁니다. 그런 주제에 자신이 대법관이라도 되는 양 모든 것을 공정하고 정확하게 판단하는 뛰어난 지성인이라고 생각하죠. 기껏해야 인터넷에 나돌아다니는 글 몇개 주워읽은 것이 다일 것인데 자신의 판단을 과신하며 뭐라도 되는 듯이 굴죠.


그들의 태도는 소아병적이고, 비대한 자아가 여물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좁아터진 세계관 속에 남이 자리할 공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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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가 특수한 관계에 있는 건 맞는데, 그 기반이 증오와 혐오에 있다보니 더더욱 객관적인 판단력을 상실하고 서로의 관계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우파로 갈수록 그 경향성이 강해지는데, 그들에게 북한은 말살해야할 적이고, 대화나 타협, 협상의 대상이 아닙니다.


예전에 극우보수는 북한이라는 존재가 없어지면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적 기반을 상실하기에 안 되기 때문에 건드리지 않는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만, 이는 정치적 계산하에 이루어지는 결론이라면, 지금 하는 이야기는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그리고 정치적 목적에 의해 조장된 세뇌와 관계된 내용입니다.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가 아닌 이상 다른 국가들과는 전혀 다른 룰에 의해 굴러가고, 전혀 다른 질서와 원칙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한국이나 일본, 서구의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서 같은 잣대를 대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걸 떠나서 북한에도 통용되고 적용될 수 있는 일반 원칙들은 존재하고, 그것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죠.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북한에 대해서는 자기가 알고 있는 상식이 적용될 수 있다는 상상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곤 합니다.



북한이 헌법상 국가가 아니더라도, 이미 90년대부터 사실상의, 현실에 존재하는 국가임을 은연중에, 훗날 거의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즉, 북한과 어떤 진전을 이룩하고 싶다면 대화와 타협, 협상을 해야하고, 마찬가지고 북한에 불만이 있어서 항의하거나 압박하고자 한다면 그러한 대화와 타협,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혹은 국가대 국가로 사용될 수 있는 유의미한 압박 카드를 적용해야 하죠.


하지만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보여줬듯이, 북한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그들이 한 것은 대화나 협상 따위가 아니라 일방적인 조치들이었고,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했거나 되려 자해를 입게 만드는 경우조차 있었죠. 



이는 북한을 국가, 정부로 보지 않고 정상적인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상상 자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북한에게 북한 나름의 주권이 있다고 보질 않는 거죠. 그렇다보니 매우 비정상적인 요구들이 나오기도 하는데, 거의 일방적으로 북한이 굴복하고 우리의 조건, 요구를 이행해야 한다는 입장이 그러하죠.


마찬가지로 북한에서 발생하는 문제, 특히 한국과 관계된 일에 대해서 그들의 조치나 행동이 그들에겐 상식적인, 자기들의 원리와 원칙에 충실한 행위였음에도 그러한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 공분을 일으키거나, 실제 분노할 사안에 대해서도 맥락상 미묘하게 갈리는 입장에서 분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북한 자체에만 적용되는 태도가 아닌, 북한에 대해 판단하거나 표현하는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이번 유시민의 발언도 그렇고, 가끔 나오기도 하는 조금이라도 북한에게 좋게 들릴만한, 혹은 욕이나 증오 표현이 아닌 표현들은 죄다 욕을 먹게 됩니다. 북한과 관계되면 객관성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거죠. 말살해야할 적이기 때문에 객관적 판단이 아예 안 되는 겁니다.


유시민의 계몽군주라는 발언이 비판받을 껀덕지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욕을 먹거나 적으로 규정하거나, 혹은 이미 한 규정이 더욱 강화되는 것은 인지부조화이고, 객관성의 상실입니다.


김정은이 북한을 개혁하고 개방까지 보는 듯한 사인들이 드러나며 기존 체제에서 개변을 원한다면 그걸 뭐라 부를까요? 계몽군주라는 표현 자체가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가 아님을 드러내는 표현이기도 하죠. 왕조 국가라고. 요컨데, 저 표현이 비판을 받을 껀덕지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저런 걸로 열불내는 건 아직도 왕조시대를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6.25 이후, 그리고 독재 정권에 의해 더더욱 조장된 반공정신과 사상이 비판이나 반성, 성찰의 대상이 되지 않는 절대진리의 세계관으로 자리잡은 이들에게 북한은 몇번씩이나 말했듯, 말살해야할 적입니다. 적이라도 타협이 가능한 종류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대화도, 타협도, 협상도, 거래도, 협력도 불가능한 지워버려야할 안티 그리스도인 셈이죠.



그 갈래는 북한 하나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닌 조금이라도 친북적이거나, 좀 더 극단적으로는 혐북이 아닌 이들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에 극우보수 세력이 진보좌파를 대할 때, 대화나 타협보다는 없애버려야할 적으로 규정한 채 없어져야 한다고 여기는듯한 모습들을 굉장히 자주 봤습니다. "빨갱이는 죽여도돼."로 대표되는 가치관이죠.



북한이 적인 건 사실입니다. 종전을 하지 않는 한 말이죠. 그게 아니더라도 의심스러운 잠재적 적국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객관성을 상실한 뒤 할 수 있는 선택지들을 지워놓고 전쟁과 굴복이라는 두가지 버튼만 남겨두고 무한정 대기를 하는 것은 합리적인 운영이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북한에 유리하게 들리는 모든 표현에 빨갱이 필터를 씌우고 보는 경우도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그게 북한이라는 대상이 아닌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인지 먼저 판단해보고, 남북관계라는 특수성 하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지도 같이 판단해봤으면 합니다.


남북관계가 특수한 관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혀 다른 별세계 관계까진 아닙니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 원리와 원칙, 상식을 그대로는 아니더라도, 적지 않은 부분을 적용 가능한 세계이고요. 남북관계에 진전이 있고, 어떤 식으로든 발전을 원한다면 북한을 대하기 위해 좀 덜 감정적이고, 합리적이며 객관적 판단이 가능한 영역에 서서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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