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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이야기

어째서 현대에 접어들어도 종교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by Konn 2020.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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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와 지역 커뮤니티.

https://konn.tistory.com/701

괴베클리 테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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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 일본인들이 '태양 너머'를 상상하게 되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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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자삭하신 모양이지만, 과거 첝님이 <이슬람은 왜 이 모양인가.> 라는 글에서, 그리고 비교적 최근까지 작성한 글에서 종교는 단순 신앙의 모체가 아닌 사회적 관계망을 제공하는 기능적 측면을 설명하였습니다. 150명 이상이라는 인지적 한계에 벗어나서도 인구 집단이 유지되고, 서로 전혀 모르는 타인을 사막 위에서 만나도 안전을 확인할 수 있으며 신왕으로서는 거대해진 영토를 감당할 수 없는 통치원리로써의 민족신앙의 한계를 벗어나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 종교라는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지요.

 

집중해야할 부분은 바로 전혀 모르는 남들, 거대한 규모의 타인이 한가지 정체성과 세계관 하에 크고 작은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의 역할이죠. 오늘 처음 만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신-종교라는 틀 안에서는 하나의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보편성은 그래서 정말 중요한 요소인데, 인종과 성별, 나이와 지역을 떠나서 같은 종교적 정체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에 대한 신앙과 믿음의 사유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개개인 차원에서는 삶의 어려움에서 벗어나 의지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믿음 그 자체가 주는 정신적 만족감, 종교가 품는 거대한 뜻에 신념적 감동을 느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차원에서 종교는 그러한 사회적, 통합적 기능이 매우 주효하게 작용하죠. <한국 교회와 지역 커뮤니티>에서 설명했듯, 사람들이 교회를 가는 이유 중 일부는 인간관계와 정보의 공유를 위해서일 겁니다. 교회만큼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공동의 의식적 행위를 하며 소속감을 공유하고 인간적 관계를 맺으며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은 드물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교회는 단순 신앙을 위해서가 아닌 적극적인 사회활동의 일부가 됩니다. 단순 성경 공부를 하고 교리를 나누고 공동의 의식 행위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개인적인 삶을 나누고 때로는 도움을 주고 받기도 하지요. 뭔가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이사를 가는데 도움을 받거나 집안 가구를 옮기는데 거들어줄 수도 있고 자식 컴퓨터에 이상이 생겨서 컴퓨터에 대해 잘 아는 아저씨에게 상담을 받을 수도 있으며, 결혼을 축하해주고, 부고를 같이 슬퍼해주기도 합니다.

 

젊은이에겐 새로운 친구나 지인, 심지어 애인을 찾는 창구가 되어주기도 하지요. 

 

이러한 사회적 관계로 작용하는 교회의 커뮤니티성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아니면 이러한 커뮤니티는 나타날 수 없는가?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가령 동호회나 모임, 동창회나 종친회, 향우회, 특정 직종의 협회 등이 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더, 스포츠가 바로 그러하죠.

 

다른 집단들이 제각기 규모가 작거나, 정기적이며 잦은 모임이 어렵거나, 다양한 직종과 신분이 모이기 어려우며, 어떤 자격이나 조건이 필요하기도 하다는 점에서 교회 등 종교의 커뮤니티성에 비하면 그 개방성과 규모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교회는 어느 지역에든 있곤 하다보니 이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간다고 해도 그곳의 교회에서 꾸준히 같은 종교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정기적이고 잦은 교류가 가능합니다. 이는 종교로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렇다면 종교와 유사한 개방성과 규모를 가진 다른 정체성을 없을까? 있습니다. 정확히는, 있긴 합니다. 바로 스포츠지요. 스포츠는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집단의 화합을 유도하는 촉매 역할을 햇습니다. 같은 그리스 문명권이긴 했지만, 그 내에서 구분되는 서로 다른 집단들 또한 스포츠라는 요소에 통합될 수 있었지요. 서로 즐기고, 열정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열정은 종교적 열의와도 일부 유사한 부분이 있기도 하지요.

 

현대에서도 스포츠는 세계인의 화합을 위한 역할로 주목 받았습니다. 냉전 때에도 스포츠로 인류는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희망했고, 서로 다른 국적, 서로 다른 인종, 서로 다른 세대와 성별, 종교의 차이에도 스포츠는 인류를 하나로 묶어 열광하게 만들고 때로는 경쟁하기도 하였지요.

 

예전 중동 쪽으로 파병 나간 사람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전혀 다른 인종에 말도 안 통하는, 완전히 자신의 세계관과 단절된 험악한 인상의 현지인이 맨유, 박지성이라는 공통된 관심사에서 금방 잘 통하지도 않는 언어로 소통하고 축구 경기를 보며 즐겼다고 합니다. 스포츠는 과장 좀 덧붙혀서, 현대의 종교입니다.

 

종교가 가지고 있는 요소 중 많은 부분을 스포츠 또한 가지고 있지요. 첝님이 그린 신을 정점으로 하는 관계 연결망에서 신-종교를 스포츠로 치환한다면 꽤 유사한 개념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포츠가 종교를 대체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는 결코 그렇다고 하기 어렵다는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전 세계에 수많은 종교가 있긴 하지만, 보편종교라 불리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 불교계 종교를 제외한 나머지 종교들은 그 세력이 작습니다. 그 지역 내에서는 충분히 통할진 몰라도, 세계적 관점에서 신토는 너무 애매하고, 어느 제3세계의 전통 민족신앙은 설 자리가 없지요.

 

따라서 대체로 아브라함 계통과 불교로 양분되는 세계의 종교는 적게 보면 서너덧개 정도로 압축될 수 있습니다. 같은 신을 모시는 것치고는 사이가 굉장히 안 좋은 가톨릭, 개신교, 이슬람, 유대교야 그렇다치고요.

 

그러나 스포츠는 종류가 많습니다. 축구, 야구, 농구 정도가 메이저한 스포츠이고, 지역에 따라 미식축구나 달리기, 무에타이, 하키, 심지어 e스포츠나 체스마저도 포함될 수 있겠지요. 물론 종교도 종류가 많고 세세하게 분류된다면 정말 한도 끝도 없니 분류될 수 있듯이, 메이저한 몇 종목을 제외하면 스포츠도 비슷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톨릭은 대체로 어딜가든 가톨릭이고, 개신교도 좀 차이야 있겠지만 어딜가든 개신교일 수 있으며, 이슬람이나-시아파와 수니파 정도는 구분해야겠지요;;- 유대교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스포츠는 지역마다 리그가 다르고, 그 리그만큼 지역색이 차이가 나곤 합니다. 그리고 리그의 수준에 따라 우열이 나뉘기도 하고요.

 

이는 바로 이어지는 스포츠의 경쟁성과 결부되어 스포츠의 보편성, 통합적 측면에 어느 정도 대치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즉, 상대가 있어야만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스포츠의 핵심은 바로 경쟁이지요. 상대 선수와, 상대 팀과, 상대 지역과, 상대 국가와 경쟁을 하는 구도입니다.

 

경쟁이라는 요소는 흥미와 재미, 발전성에 큰 도움이 되는 요소들이지만, 언제나 정도가 지나치게 되는 것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때때로 차별하거나 조롱하거나 아예 훌리건 등 폭력 따위를 휘두를 수도, 폭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등 스포츠맨쉽에 어긋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죠.

 

또 하나 더, 교회와 같은 커뮤니티성을 가지기엔 꽤나 느슨한, 어떻게 보면 파편적인 관계라는 것입니다. 어떤 스포츠, 더 좁게는 리그나 팀, 선수라는 관심사를 공유하여 같은 정체성 내에 소속될 순 있지만, 어디까지나 스포츠라는 영역 내에서만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교회라는 한 장소에서 주기적이고 공통된 의식을 하듯 경기장이라는 한 장소에서 대체로 주기적이고 공통된 경기를 관람하지만 그 이후, 혹은 그 사이사이 인간적인 관계를 내누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설령 나눈다 해도 자기 친구나 동료, 가족과의 관계일 뿐이고, 다른 사람이나 다른 무리와 알게 된다고 해도 몇명 되지 않는 협소한 인간관계이고 대체로 오래가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커뮤니티성은 경기장에서 같은 팬끼리라기 보단, 영국의 펍과 같은 곳에서 경기를 시청하는 이들끼리 형성되기 더 쉽죠.

 

스포츠 팬들끼리의 커뮤니티는 대체로 해당 스포츠와 관계된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과 감정을 나눌 뿐, 좀 더 삶에 가까운 곳까지 연결되지는 않으며,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제적 연결망으로 이어져 교감을 나누고 아는 사이가 되는 것과 다르게 대부분의 스포츠팬들은 스포츠라는 거대한 틀 안에 있지만 대규모의 실제적 연결망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단적으로 말해, 팬으로서의 정체성은 형성되어도, 실제 해당 경기장에 모이는 지역사회인들을 수십, 수백명씩 알게 되거나 안면을 트게 되는 일은 좀처럼 없다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종교의 삶에 더 밀접한 면모와는 차이가 있지요. 이렇듯 종교가 제공하는 다양한 부분들은 규모와 밀도 양면에서 다른 영역이 비등하게 제공하기 어렵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신앙과 믿음이라는 요소를 완전히 제외한 채 바라보아도 종교는 여전히 현대에도 매우 중요한 사회적인 기능을 하기에 없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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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좀 더 생각해보니 이슬람, 유대교 등 같은 종교라도 파벌간의 투쟁과 배타성을 너무 간과한 듯 싶습니다. 너무 단순화시켰네요. 하지만 본질적으로 종교가 신을 정점으로 하는 통합, 질서를 요구하는 개념이라면 스포츠는 본질적으로 나누어 경쟁하는 식의 통합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도리어 종교 쪽의 분열과 경쟁, 갈등은 그러한 신의 뜻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더 교조적이고 용납의 여지를 줄인다면, 스포츠는 상대를 말살할 경우 스포츠가 성립되지 않기에 결과적으로 선의의 경쟁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특기할만 합니다.

 

더욱이 종교는 애당소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혹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도덕적 기준과 행동 및 사고방식을 제시하기도 하다보니 인간의 실제적 삶에 더 가까울 수밖에 없지만, 스포츠는 기본적으로 어디까지나 놀이에 한정된 개념이다보니 삶에 더 가까울 수는 없지요. 스포츠가 스포츠맨쉽, 한계의 돌파, 극기의 극복 등 정신적인 부분에 가르침 따위를 주는 건 사실이지만 어떤 총체적 윤리, 도덕률을 제시하고 지킬 것을 요구하진 않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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