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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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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8.11.25
    조선의 왕권과 신권의 대립에 대한 기초 이해. 2
  2. 2018.11.22
    이수역 사건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페미를 하는 여성들의 정신적 기제. 4
  3. 2018.11.04
    한국 보수의 태생적 한계와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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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 마오쩌둥



권력의 실체는 무력입니다. 정당성도, 권위도, 명분이 없어도 원하는 바를 실현시킬 수 있는 힘은 오직 폭력에서만 나옵니다. 그리고 정부란 그러한 폭력을 정당하게 독점하고 있는 공동체 유일한 조직이죠. 따라서 국가의 가장 강력한 힘은 군대와 경찰에게서 생산되는 폭력이며, 그것을 잃는다면 정부는 존속될 수 없고, 국가는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한 위험 때문에 군대는 국가에게서 반드시 필요한 불가결한 조건이며, 동시에 군대가 총을 거꾸로 겨냥하는 일을 막기 위해 반드시 통제해야 하는 위험 또한 동반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제 3세계의 국가들은 언제나 쿠데타의 위험이 있고, 쿠데타를 겪기도 하는 등 군부의 통제에 힘겨움을 겪고 있습니다.



마오쩌둥의 저 말을 전근대 시대에 맞게 바꾼다면, 권력은 칼 끝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떤 국가든 최고 권력은 결국 실력에서 나오는 것이고, 모든 실력의 우위에 설 수 있는 힘은 오직 폭력 뿐이죠. 그러한 폭력을 언변이든, 카리스마든, 재력이든, 혈통이든, 인적물량이든 어떤 방법으로든 독점하는 자가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들을 우리는 주로 왕이라고 불렀죠.


그러나 국가는 여러 변화를 거치게 되고, 국가의 크기와 복잡성이 더해지며, 통치를 위한 더 나은, 더 세련된 방법론이 필요하게 됨에 따라 여러 견제장치 또한 발생하게 됩니다. 주로 왕권과 신권의 대립으로 대표되는 경쟁과 견제 또한 그렇죠.



조선에서 유교를 비판하는 이들은 무의미한 붕당놀음과 당리당략에 따른 무익한 정치싸움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고들 합니다만, 실상 조선이 멸망한 이유는 되려 유교적 질서의 붕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13/12/01 - [취미/이야기] - 유교에 대한 오해, 유교는 어떻게 사람을 통제하였는가.


먼저, 조선은 유교라는 통치 시스템을 국시로 삼았고, 이것을 근본으로 하게 됩니다. 국가 정체성이 유교 성리학에 있다보니, 이것을 거스르거나 무너뜨리는 일은 곧 역모, 반란, 반상의 법도를 뒤엎는 죄악이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민주주의를 국가의 근본 정체성으로 삼으며, 이것을 무너뜨리거나 위협하는 일은 반체제적 범죄로 여기거나, 최소한 반체제적인 행위라고 비판을 받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조선은 약 200년간 평화기를 거쳤고, 그 동안의 군주는 꽤 뛰어난 이들이 많았습니다. 태조부터 세종, 심지어 선조에까지 나름 뛰어나고 훌륭한 왕들이 많았으며, 왕권 또한 높은 편이었죠. 선조 또한 능력은 뛰어났으나, 소인배적이고 책임감을 짊어지지 못하는 찌질함은 그의 평가를 뒤엎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조선은 거대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왕의 무능과 초기에 속수무책으로 밀린 패배의 쇼크는 왕권을 흔들었고, 조선의 무력에 회의를 주는 사건이 되었죠. 물론 어느 정도 복구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훗날 이괄의 난으로 날려먹고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으로 권위도 실력도 날려먹게 됩니다.



이 두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왕권의 실추에 기여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왕이 궁궐, 도성을 버리고 도망을 갔고 왕이 오랑캐들에게 머리를 박으며 굴욕을 보였다는 희대의 사건으로 하여금 조선 전기의 왕권은 중기, 후기를 거치는 동안 추락할 수밖에 없었죠.



더불어 신하들 또한 왕을 위해서 일하는 자들만은 아니었습니다. 뛰어난 학식과 배움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에 정치에 대한 감각은 남달았고, 그런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선 당연히 모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익과 손해, 다른 권위와 권력에 의한 축출을 방지하고 방어해내기 위해선 조직을 이룰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똑똑하고 조직력 있는 세력이 신권 하에서 발생하게 되었기에, 왕권은 더 거대해지고 강력해진 신권 세력과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공격을 해도 유교적 원리 하에 있는 성현의 말씀을 명분으로 삼아 방해해버리기 때문이죠. 그러나 말은 맞는 말이고, 논리도 겉으로는 타당하기 때문에 그들을 견제하려면 무력이 있거나 지력이 어마어마한 천재거나 해야 했습니다만..


하여간, 붕당이라는 게 그래서 생겼고, 붕당정치가 그래서 생겼으며, 환국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왕이라는 것은 하나의 명분입니다. 성리학이라는 정치철학, 사상 내에서 왕은 충성의 대상이었고, 하늘과 같이 여겨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만만해도 정당한 명분이 없이는 함부로 폐위시킬 수 없었고, 겉으로는 따르거나 통치를 위한 일이라 포장을 해야 했죠.


물론 그 목적은 왕권의 견제, 혹은 실추를 위한 정치싸움이었습니다. 가령 말하자면 이런 건데, 왕권을 견제하고 차기 왕권의 실추를 위해 세자의 흠을 잡아 세자를 폐하고 다른 대군을 책봉하라는 등의 주장이라던가 하는 게 있겠죠. 



따라서 왕의 입장에선 신하들이 모두 모여서 왕권을 견제하는 것보다, 서로 싸우게 분열시키는 게 올바른 판단이었습니다. 그런다고 명분도 없이 신하들을 죄다 도륙해버리거나 누구 하나 꼬투리 잡아도 자기들끼리 뭉쳐서 보호해주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실각시키는 데 실패한 책임이 그대로 역공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붕당정치는 왕권의 신권에 대한 견제책이었습니다. 서로 분열하여 서로 당리당략을 위해 싸우는 것이 서로 힘을 합칠 수 없게 하고 그들의 역량을 스스로 갉아먹게 만드는 방법론이었죠. 물론 이러한 것의 문제점은 진짜 국가의 통치를 위해서 일하기 보다는 당리당략과 같은 자기 진영의 손익에 대한 싸움으로 환원되어 버린다는 문제가 있고, 그렇다 해도 왕권을 위한다는 건 또 아니라는 겁니다. 왕권이 적극적으로 기를 피려 한다면 차라리 뭉치게 되어 버릴 수 있다는 점이죠.


근데 진짜 붕당정치의 문제는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러한 붕당이 너무 오래 되었다는 겁니다. 차라리 지속적으로 솎아내거나 한번 쓸어버려서 다른 정치토양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왕의 역량 탓인지, 신권의 힘 때문인지 그러지 못했죠.


붕당이 너무 오래된다면, 서로 싸우기 보다는 서로 야합하게 됩니다. 겉으로는 서로 견제하고 싸우는 모양새를 하지만, 진짜 위험하거나 곤란할 때는 서로 적당히 타협하고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으며 협력하는 관계가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게 더 쉽고 편하고 안전하기 때문이죠. 


물론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를 아예 못한 건 아니고 여러 환국, 사화를 통해서 그럭저럭 성과를 보긴 했습니다. 가령 경종이 대리 청정의 문제로 함정을 판 뒤, 영조를 지지하는 노론의 수뇌부를 대거 숙청하고 삼수의 옥이 터지면서 다시금 죽이는 등의 성과를 손꼽을 수 있죠.. 그러나, 결과적으로 붕당정치는 조선의 역량을 갉아먹고 왕권이 주도권을 잡아서 이끌지 못했다는 점에서, 결국 신권에게 사실상 패배하게 되는 시점까지 온다는 점에서 성공한 정치까진 아니지 싶습니다. 



그런 신권과 왕권의 대립에서 왕권이 힘을 키우기 위한 여러 방법론은 몇 있었는데, 그건 바로 군사력입니다. 실질적인 힘이 있어야 권력은 보장되고 휘두를 수 있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 전통적인 방법론이 바로 북벌론인데, 효종 같은 경우 삼전도의 굴욕으로 땅에 떨어진 왕권을 높히기 위해 청나라에 복수하자는 명분을 걸고 시작한 일이죠.


당연히 명분이 있고, 내부적인 정치보단 외부적인 일이기 때문에 견제하기 까다로운 일이기도 합니다. 실제 청나라에게 굴욕을 본 것도 사실이고, 이에 대한 복수를 천명한다면 이를 막을 논리를 많지 않죠. 대놓고 그 군사력으로 우리 견제하는 거 아니냐. 같은 소리를 대놓고 할 수는 없으니 사공농상과 같은 명분으로 그렇게 징집하면 농사지을 인력이 부족하게 된다거나, 결국 모든 것은 백성들의 부담으로 돌아가니 민심을 생각하라는 등의 논리를 써야하죠. 물론 그런 논리라도 쪽수가 모이면 왕의 논리와 명분 또한 큰 견제가 됩니다만.


그러한 북벌론은 효종 때만이 아니라 숙종대까지 올라가는데, 그 때쯤 가면 제대로 먹히는, 약빨이 되는 명분이 아니기 때문에 써먹을 수 없게 됩니다.


그나마 정조 때의 왕권강화책은 꽤 성과를 봤는데, 수원화성 같은 것이 그렇습니다. 수원화성의 건축 목적이야 여럿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군사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성을 만들고, 군대를 주둔하게 한다면, 수도인 한양과 아주 멀리 있는 것도 아닌 수원은 언제든 신권을 견제할 수 있는 실질적 무력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실패하게 되는 것이, 순조 대부터 발생하게 되는 세도정치로 완전히 터져버리게 됩니다. 왕권의 신권, 그것도 특정 세도가문이 독점하는 명분이 되어버리고, 왕권이란 그 가문의 도구로 쓰이는 꼴이 되어버리죠. 



이러한 모든 맥락은, 왕에게 충성하며 섬기고, 백성을 하늘로 여기며, 예를 지켜야 할 사대부들이 그러한 원칙을 명분삼아 자신들의 경제적, 정치적 권세를 얻기 위해 남용한 결과입니다. 왕을 섬겨야 하는 이들이 왕을 견제하기 위해 세력화하고, 왕권의 성장을 억제하며, 백성을 노비로 만들어 역과 세에서 면제를 받아 결과적으로 역과 세를 통해 부강해져야할 국가, 왕실의 권력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반대로 사대부 가문들은 더 많은 노비들을 소유하게 됨에 따라 더 많은 땅에서 재산을 창출해낼 수 있게 되죠.


심지어 그러기 위해 일부러 양민을 노비로 만드는 여러 정책, 수작질을 벌이며 소작 때는 양민들을 노비로 만들어 재산화 하였고, 권세를 더 불리기에 바빳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국가적으로 발생하는 것이고, 그 규모가 결코 작지 않았기 때문에 훗날 조선의 경제적 구조를 무너뜨리고 지속적 발전과 안정을 해치게 됩니다. 


이러한 굴레는 국가 멸망테크로 돌아가게 되어 있죠. 


2013/11/09 - [취미/이야기] - 망국의 징조.


그래도 조선이 500년을 간 걸출한 국가라는 것을 반증하듯이, 노비종부법(결국 망함), 속오군(정작 군사적 효용이 영..) 등 여러 정책을 통해 노비를 줄이고자 했고, 실제로 조선 후기로 갈수록 노비 자체는 줄어듭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양민들의 삶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는데, 여러 이중적인 착취와 그나마 다른 나라보단 나았긴 했다만, 역과 세의 부담, 사실상 임노동자 및 사대부에 예속된 소작농 인생이라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노비보다 못한 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차례 양민에서 노비가 되는 게 유행하거나 그렇게 부담을 피하고자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죠.



뭐.. 결국 모든 국가들이 다 그렇지만, 왕권과 신권의 견제는 항상 있었고, 그 난이도도 높았으며, 그렇기 위해 왕은 반드시 뛰어나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군사력을 기반으로 하는 강압적 절대왕권이라도 가지고 있었거나.. 물론 그게 더 낫다는 보장은 없다만.


조선 또한 다를 게 없었던 겁니다. 단지 더 뛰어났기에 더 오래 갔을 뿐. 조선은 유교 때문에 망한 게 아닙니다. 부정부패 때문에 망한 거고, 정치싸움 때문이라곤 하지만, 그 또한 그나마 차악적인 방법론이었을 뿐입니다. 조선이 멸망한 것은 오히려 성리학적 질서의 붕괴 때문이라고 봐야죠. 왕을 섬기지도, 백성에게 베풀지도 않으며 그것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려 했으니. 성리학과 성현의 말씀을 명분과 정당성으로 이용했을 뿐 결코 성리학적 통치와 정치가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한국도, 다른 나라들도 그 나라의 사상과 이념, 정치적 정체성과 그 방법론을 이루는 논리와 명분, 절차, 정당성을 이용해 그 사회의 이익과 질서를 역행하는 행위를 하는 이들이 얼마나 됩니까? 정말 많습니다. 단지 조선은 그 싸움에서 왕권이 패배했을 뿐이죠. 멸망하는 모든 국가가 다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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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남성에겐 감각, 인지의 영역에 여러 차이가 있는데, 그 이유가 호르몬이 됐든 그 호르몬에 의한 뇌 발달의 차이가 됐든 실제로 그러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차이가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러한 차이가 문제로 발생하는 건 생물학적인 작용과 현실적 규칙 사이의 충돌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한 현실적 규칙은 도덕, 윤리, 법률 등 여러가지 사회적 규칙들을 말하는데, 남성의 본능적 충동이 살인이나 폭력을 더 쉽게 발생시킬 수 있고, 여성의 본능적 충동이 따돌림, 질투 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누구 말마따라 남성은 잠재적 살인마고 여성은 잠재적 아동학대범이라고 하죠..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한국에서 페미라 자칭하는 온갖 집단, 혹은 개인들의 인지적 오류와, 정신적 장애기제에 대한 겁니다. 


트페미를 비롯한 수 많은 꼴페미, 메갈, 워마드들의 여러 망발과 논리적 빈약성, 내로남불의 사례는 그러한 이유에서 발생하는 겁니다. 인지능력에 문제가 있어 오류가 발생하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장애적 기제를 가지고 사고를 합니다. 단적으로 이수역 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모습을 볼 수 있죠.


이수역 사건에서도 여성들이 먼저 반사회적 표현으로 반사회적 공격을 남성들에게 가했고, 먼저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그래놓고 온갖 거짓과 조작으로 사건을 여성혐오를 당했다는 듯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시작했지만, 여러 증언과 증거가 발표되면서 그들의 웃기지도 않고, 도대체 뭘 믿고 그런 소리를 했는지 이해가 안 되는 정신병적 거짓말임이 증명되고 있는 상황이죠.


심지어 --기존의 여러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에 동조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더더욱 정상적이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는 여성들의 본질적 정신기제의 발동 때문인데, 하나의 종교성이죠. 무조건 자기들이, 자기 진영이 절대적으로 옳고, 무오하며, 도덕적으로 우월함을 넘어 절대적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스스로 자기세뇌를 걸며 자기합리화, 인지부조화로 이어지죠. 그냥 이어지는 게 아니라, 아주 강력하게 발생합니다.



모든 극단주의는 정신병적이라 수차례 이야기한 바가 있는데, 그러한 페미들의 활동 또한 정신적으로 극단주의와 동일합니다. 오히려 정치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극단주의보다 더 심각한 편향성을 가지고 있을 정도고, 이는 여성이라는 생물이 내포하고 있는 강력한 인지적 되새김 문제입니다. 어떠한 믿음에 빠르고 강력하게 자기세뇌를 걸죠.


정신병적이기 때문에 있지도 않는 사실을 조작해내고, 종교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믿습니다. 모든 근본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신의 사자로서 올바른 행위를 하고, 그것은 정의로우며, 결과적으로 신, 혹은 자기 종교의 진영에 이로운 행위를 하는 투사라고 믿습니다. 현재의 페미는 그 자체로 극단적 종교이기 때문에 그것을 추종하는 이들은 근본주의자라고 할 수 있죠. 언제든지 테러리스트가 될 수 있고, 어떤 면에선 이미 그러한 행위를 하고 있는 폭력자들입니다.



심지어 감정적 오버는 살면서 한번쯤은 여성과의 갈등에서 겪어봤을만한 일일텐데, 여기에 앞서 이야기한 스스로 절대무오하다고 믿는 증상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문제에 대한 절대회피는 답이 없는 문제로 만듭니다. 


흔히 커플들이 싸울 때 여성측이 잘못하거나 문제가 일부 있어도 결코 인정하지 않고 결국 남자 쪽에서 먼저 손을 들고 내 탓이오 하고 사과하게 되는 것처럼요. 이처럼, 분노한 여성은 논리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미친 코끼리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부수고 공격하며 화가 풀려야 직성이죠. 그리고 현 페미를 한다는 여성들은 무언가에 분노해 있고(그것에 대한 옳고 그름, 정당과 부당과 무관하게) 주변의 모든 이들을 공격합니다. 단, 자신들의 거울상 이성질체에 대해서만 빼고요.(ex.일베, 안페협, 박사모)



하여간, 그러한 감정적 오버와 절대무오, 절대회피는 그들의 용어와 행위에서 어떻게 나타나냐면, 시선강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용어를 대표할 수 있습니다. 이거 말고도 웃기지도 않는 용어들과 논리들은 많지만, 저에겐 이게 가장 인상 깊었죠.


시선강간이라, 사람을 훑어보면 임신하거나 처녀막이 파열되나요? 정신병이 걸려버릴 정도로 강렬한 폭력을 물리적으로 격게 되나요? 전혀 아니죠. 물론 자신의 몸을 성적인 욕망 가득한 눈으로 훑어보고 뚫어지게 쳐다본다면 눈을 뽑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와 불쾌함을 느끼는 거야 당연합니다.


근데 시선강간이라? 이러한 표현이 나오는 이유는 감정적으로 오버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여성이 분노를 하게 되면 논리와 합리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분노하게 되면 다 그렇죠. 남자든 여자든. 범죄자들이 잡히면 자기는 억울하다고 하는 이유도 결국 체포가 되었다는 현실에서 자신의 잘못과 죄를 인정하기 보단 누군가, 무언가가 잘못해서 내가 이 꼴을 하고 있다고 여기는 게 더 편하기 때문입니다. 인지부조화죠.


이건 단순한 경향성인데, 이런 게 있습니다. 남자는 화가 나면 먼저 설명을 듣고 화를 내든 풀든 삭히든 하는데, 여성은 먼저 화를 낸 뒤 이유를 듣는다고요. 


이게 사회적 현상과 얽히게 된다면 언제나 분노해 있는 그들은 논리와 합리를 완벽하게 등져버린 채 헛소리를 하되, 그러한 헛소리들을 스스로 무오하게 여기며 자기 진영에 대한 탄탄한 결속력을 갖춘 채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시선강간이라는 표현이 나온 이유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자신의 감정과 기분에 마치 마약을 한 것마냥 깊게 빠져버려 오버해버리는 거고, 무오하다 여기기 때문에 나는 어떠한 잘못이 없고(이건 그럴 수 있지만.) 상대방이 절대악이자 파괴, 절멸해버려야 하는 종자가 되는 겁니다. 따라서 남성이 여성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폭력인 강간이라는 오버해버린 표현을 합쳐서 시선강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용어를 창조해낸 거고요. 


그 시선강간을 이미 쓰고 있고, 올바른 용어로 고친다면 성추행이 됩니다. 실제 판례도 있고요. 이 경우는 단순 한 문장으로 설명할만한 사건 아니다만.



그럼에도 시선강간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 그것이 자신들을 무조건 올바르고 보호 받고 지지 받고 지원 받으며 모든 정당성과 명분과 싸움에 있어서 그러한 것들을 기반으로 하는 파워를 얻고, 상대방은 추악한 괴물이자 쓰레기 악당, 최악의 적이자 짓밟아 없애버려야 하고, 없앨 수 있는 그런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말도 안 되는 과장된, 감정적 오버 심각한 용어를 만들어서 쓰는 겁니다.



모든 인간들이 다 그렇지만, 경향성이라는 면에서 여성들의 약자 코스프레, 그러한 위치에서 발생하는 도덕적 정당성과 명분의 획득에 더 환장하는 편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얻는 방법과 과정이 없거나 어처구니 없는 수준이고, 그 상태에서 싸우려드니 그저 정신병자들처럼 보이게 되는 거죠. 


자기 스스로를 너무나도 무오하다 보기 때문에 절대적인 선의 위치에 서 있고, 내가 싸우는 사람, 남자들은 그 정극단에 서서 죽여 없애야 하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 그냥 정신적으로 그렇게 집중해나가고 자기세뇌를 시켜요. 그렇게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스스로를 세뇌하고 정당화하는 겁니다. 


왜 이수역 가해자들이 스스로를 피해자라 지칭하고 거짓을 조작해내겠습니까? 그들 스스로 그러한 행위가 도덕적이지 않다는 걸 알고, 그것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만, 그것을 인정하기엔 정신병적으로 편협하고 그러한 인지능력과 사고력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 남자들이 원인부터 과정에 결과까지 모두 잘못한 거라 믿는 것은 더 쉽죠. 아니라는 걸 알아도 스스로를 세뇌하는 건 인정하고 사과하는 정상적인 행동보다 더 쉽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페미를 한다는 인간 중에 정상인이 단 하나도 없고, 정상인이라면 스스로 페미를 한다고 말하지 않는 겁니다. 그것은 여성 특유의 경향성이 내포되어 발생하는 감정적 오버, 종교적 신앙, 강력한 자기세뇌, 인지부조화, 자기합리화로 점철된 변기통이기 때문이죠. 남성들이라고 그렇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여성들에게서 더 강력하게 발생한다는 것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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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보수에 속하는 이들 중 누구 하나 정상적이지 않고 반국가적이며 반사회적인 가치관과 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며 한국의 발전과 성숙을 저해하는 이유는, 그들의 태생과 근원이 그러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기존 질서와 정체성을 가진 과거와의 단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외부 정체성(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의한 이식과 정착을 겪으며 기존의 질서는 단계적으로 무너져갔죠. 식민지하의 사회가 다 그렇듯이, 누군가는 반발을, 누군가는 순응을, 누군가는 적극적인 변절을 선택하지만, 당연히도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것은 적극적 변절자들입니다.


기존의 사회와 정체성을 그들 내부에서 무너뜨리고, 불신과 질투를 유발해 분열을 시키기 때문입니다. 확고하게 뭉쳐진 정체적과 질서를 부순 뒤, 그 틈에 (힘의 우위에 따른) 더 경쟁력 있는 질서와 정체성을 이식하고 고착화 시키기에 앞잡이만큼 빼어난 선동수단은 없죠.



애초에 일제의 질서, 정체성은 한국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의 토양에 이질적인 면이 있었고, 궁극적으로 한국이 아닌 일본 중심적인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곧 어떠한 행동을 하고 세부적으로 어떤 갈래의 사상을 가지고 있든, 그 근본적인 논리와 기제는 일본에 이익에 가까워지고, 최소한 한국의 이익에 배반되기 때문에 한국에겐 반국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보수의 계보와 뿌리를 올라가보면, 일제시대에 큰 돈과 명성 등, 권세를 얻은 이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청산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은 그럴 수 없었던 현실적인 사유와, 그러한 친일파의 힘을 세력 기반으로 삼고자 했던 이승만의 정치적 계산하에 이루어진 생존이었으며, 일제시대에 정체성과 도의를 팔아 성장한 그들의 생존감각은 해방 이후, 전후 한국에서 빛을 보았죠.


적지 않은.. 거진 대부분의 거물 친일파의 후손들은 그러한 기반으로 하여금 막강한 권세를 되찾았고, 뭉치고 모여 세력을 이루었으며, 일제 패망 이후에도 그들 일제의 질서와 정체성을 한국에 유의미하고 강력하게 고착시킬 수 있게 했습니다. 즉, 살아남은 일제의 후손은 사람이 아니라 사상인 셈이죠.



당연하지만 돈과 권력을 지닌 이들이 무너진 사회의 주도권과 질서를 빠르게 휘어 잡았고, 이는 머리와 머리의 모양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일제의 그것이 살아남아 기능하고 있었습니다. 이승만 본인은 반일이었지만, 친일파를 세력화 시키면서 타협과 용인을 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질서와 정체성을 국가에 이식시켰고, 박정희는 그것을 군사독재적 방법론으로 용접했습니다. 전두환은 그걸 더 심화시켰고요.


그리고 그들의 후신들은 여러 이름과 형태로 살아남아 현재 국회에서도 힘을 쓰고 있으며, 그들의 사상 또한 여러 변화를 겪었으나, 그 근본적인 속성은 결코 변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60년대나 2010년대나 그들의 행태는 얼마나 세련되졌는가의 차이일 뿐이지(그마저도 보이는 걸 신경쓰지 않으면 그 시절 모습 그대로 입니다.) 변한 게 없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시작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말은 상투적이고 정치혐오적인 말이 아닌 셈이죠.



어쨌든, 이러한 역사적 흐름에서 보이듯이, 한국 보수의 뿌리는 일본 제국주의에 있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한국 모든 보수에게 태생적인 문제가 있는 것인데, 국가든 정치든 그것을 이루는 근원에 해당되는 정신적인 정체성 자체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을 뿌리로 두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행태는 반국가적인 것입니다. 단지 그 뿐이기만 하면 차라리 다행이겠지만, 문제는 그 사상 자체가 일본 제국주의, 파시즘에 있다는 겁니다. 즉, 극우 극단주의에 속하고, 거기에 일본 특유의 전근대적 광기 또한 섞여있죠. 근본도 없는 정신론과 중세적 인명 경시풍조 등등..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한국의 보수는 근본적으로 한국적일 수 없고, 애국적일 수 없으며, 민족주의적일 수조차 없는 겁니다. 그들이 뿌리로 삼고 근본으로 삼는 정체성 자체가 한국의 것이 아니며, 그 근원이 일본에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한국에 제대로된 보수가 들어서기 위해서라면 현재의 정치 풍조와 이념 지형이 모두 박살내놓아야 합니다. 이는 보수 하나만 박살나서는 안 되고, 진보 등 다른 이념진영도 부서져야만 합니다.


한국 진보 또한 보수와 경쟁하고, 반발하고, 심지어 공생하면서 맞춰진 짝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에 한국적 정체성을 가진 보수가 들어서야 (말하자면) 국제적 기준의 보수라는 게 만들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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