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시절, 플라톤의 국가론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건 아니고, 어쩌다 중간 부분만 잠깐 읽었는데 그 부분이 하필 그 유명한 동굴의 우화 이야기였죠.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습니다.
지하 동굴에 죄수가 갇혀 있는데, 어두운 안쪽을 바라보도록 묶여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쪽 입구에서 빛이 비추기에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은 볼 수 있죠. 그는 그것만 알고 그것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죄수가 풀려났고, 동굴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는 안쪽에서 봤던 모든 그림자의 진실을 알게 되었고, 이후 그는 다시 동굴로 돌아가 다른 죄수들에게 진실을 알려줍니다.
뭐, 어렸을 때이니 플라톤 철학이니 이데아론이니 그런 거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전 이것을 진리, 이데아론이 아니라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습니다. 다만 어느 정도 궤는 맞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전 이것을 지식인의 역할로 이해했습니다. 편견, 고정관념, 관습, 소문, 낭설, 잘못된 상식, 지나친 축약, 비유의 실패, 그리고 미디어에서 말하는 많은 것들은 실제론 사실의 표상을 가공한 정보들이고, 실제 진실한 사실은 따로 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지식인은 누구도 제대로 인식하지 않았던 그것을 직접 바라보고, 그 사실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지식인, 오피니언 리더의 역할이란 그런 것입니다. 짧게 보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그것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는 것이죠. 어떤 사실이나 사건에 대해 그것이 무엇을 함의하고 상징하며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무엇이 벌어진 것인지 알려주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인-프로메테우스들이 있어도 대중-에피메테우스는 여전히 짧은 시야로 코앞밖에 보지 못하고, 심지어 그것조차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말하고 진실을 전달하는 것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 되고요.
이것을 지식인들의 오만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 똑똑하다고 남들 가르치는 거라고. 하지만 저는 이것을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역할에는 우열이 없죠. 프로메테우스는 에피메테우스에게, 대중들에게 자신의 통찰을 가르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식인으로서의 신념을 가진 신이기도 했습니다. 고문을 당하면서까지 테티스의 비밀을 말하지 않는 지조를 보여주죠.
그의 모습은 제우스라는 철권의 권력자에게 대항하는 저항자의 모습이자, 인간에게 불(지식)을 가르쳐주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앞서 바라보는 선각자의 역할과 외압에 굴하지 않는 신념가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우리 역사에서 일제강점기와 독재 정권에서 고통 받고 고문 당하던 지식인들과 활동가, 운동가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지식인 또한 사람이고, 사람인 이상 너무 대단하고 고결한 무언가를 바라는 것은 다소 비겁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식인이 그 역할을 한다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모습 또한 있는 법이죠.
그러나 지식인의 역할을 모방하되, 지식과 통찰을 공유하는 게 아닌 그 해악을 퍼뜨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가짜 지식인입니다.
그들은 어설프고 어중간한 통찰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혐오와 고정관념을 강화시킵니다. 비교적 최근 불타올랐던 설거지론이 그러합니다. 복지에 대한 공격을 위해 목탑의 비유를 했던 어떤 자료 또한 그러했고, 이슬람 세계의 전근대성과 불합리성을 왜곡과 과장을 섞어서 비판하는 수많은 자료들이 그러합니다.
진보, 혹은 보수, 혹은 좌파, 또는 우파에 대한 편견과 일반화로 왜곡시켜 비난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핵심이 아닌 피상을 바라보고, 그 피상을 잘못 진단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일견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X서인 류 인종들이 그러한데, 자신이 알고 있는 것도 일천하고 통찰력도 부족한데 설득력 있는 말솜씨를 지녔습니다. 혹은 그럴듯한 전문가의 타이틀을 만들어 걸친 채 미디어를 등에 업고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죠.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일견 맞는 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피상에 대한 진단을, 그것도 잘못된 진단을 하기 때문에 똑같은 사례지만 진영이나 대상이 달라지면 그 논리도 달라집니다. 정말 다를 게 하나 없는 사건, 상황에 대해 날선 비판을 날리던 이가 진영과 대상만 달라졌는데 온정적인 논리로 바뀝니다.
즉, 똑같은 일에 대해 상황과 대상이 달라지면 논리와 말이 달라집니다. 일관된 논리가 없고 이는 일관된 사상이나 가치 체계가 없다는 겁니다. 혹은 그것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거죠. 그 이유는 그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논리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례와 방식, 종류는 정말 많습니다. 실체적 사례를 가지고 어떠한 공통적인 요소를 끄집어내 원리화 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의 것을 보지 못하고 편견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작동합니다. 설거지론에서 여성에 대한 공격과 남성의 피해자화, 혹은 호구화를 만들어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살지 않는 수많은 부부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이론은 그것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특정한 사례들만을 모아서 그 교집합을 모아 원리를 추출해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어떤 사례에서는 정확하게 설명하는 이론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에서는 단 하나도 맞아떨어지는 게 없는 사이비가 되는 거기도 하죠. 이런 이론이 잘 먹히는 이유는 단순히 피상적으로 그러한 사례들이 인터넷에서 떠돌고 그것들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런 사례들이 여러 모습으로 올라오고 떠돌기 때문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기는 하다는 점 때문입니다.
현실은 현실이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의 존재 또한 현실입니다. 그리고 설거지론을 그 주장부터가 일반화를 하고 있기에 틀린 이론이 됩니다. 핵심으로 더 파고 들어가면 스스로의 모순적인 요소조차 지적하지 않고 넘어가거나 아주 당연한 연애시장에서의 작동 원리조차 위선과 거짓이라 비판하기까지 합니다.
설거지론이 잘 먹혔던 이유는 그것이 그럴듯 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듯 했느냐면, 그러한 사례가 실제 있기 때문이고, 파편적인 몇몇 사례들을 알고 있는 이들에겐 그것을 적절하게 설명하는 이론처럼 보였을 것이며, 특히 요즘 같은 성갈등이 주요 이슈가 되는 시대에 누군가의 입맛을 충족시켜주는 논리와 설명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설거지론을 꽤 그럴듯한 이론이기도 합니다. 실제 있는 사례, 현실의 일부를 가지고 만들었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사이비 헛소리로만 구성된 게 아니니까요.
불과 몇년전 초등학생도 이해하는 과잉복지의 위험성이라는 글을 보시면(https://konn.tistory.com/559) 엉터리 논리와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바보 같은 소리와 논리이지만, 놀랍게도 이 자료를 처음 만들었던 사람은 이러한 인식으로 세상을 바라봤을 것이고, 아마 스스로 정확한 현실인식을 하고 있다 믿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런 자료를 만들어내 인터넷에 올렸고요. X서인 류보다 훨씬 수준이 떨어지지만, 아마 저게 그럴듯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그들의 지적 수준에 대한 지적이야 차치하고서라도, 저런 류의 잘못된 인식과 논리, 합리성을 가지고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 그게 바로 가짜 지식인들입니다. 수많은 정치 유튜버, 사회 유튜버, 렉카들도 그러한 이들입니다. 차라리 진짜 팩트만은 중립적으로 전달한다면 지식인은 아니더라도 전달자의 역할은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극히 드물지요. 대부분은 가짜 지식인으로 왜곡과 과장, 편파적인 이념 성향이나 주관성을 개입시켜 사람들의 인식과 가치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을 주입하며 저해하고 교란합니다.
그나마 본인이 멍청하기 때문이라면 차라리 이해라도 갑니다. 그건 조금이라도 더 똑똑한 사람들이 지적하고 비판하여 논파할 수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어중간하게 똑똑하고, 어중간하게 통찰력 있는 이들, 심지어 그러면서도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진 이들이 가장 위험합니다. 가짜뉴스가 문제가 되는 것처럼, 가짜 지식인들은 그보다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가짜 뉴스는 현실을 인식하는 팩트를 교란시키지만 이들 가짜 지식인들은 현실을 인식하는 가치관을 교란시킵니다.
우린 이것을 소음공해나 환경오염과 같은 공해Polution라고 인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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