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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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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7.11.25
    사회적 소시오패스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2. 2016.05.20
    조롱적 비판. 올바른 미러링 방법. 2
  3. 2014.09.08
    표현의 자유. 표현에 대한 책임.
  4. 2013.12.04
    나치당과 일베의 유사성. 37
  5. 2013.11.09
    망국의 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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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오패스란 기본적으로 감정의 이입을 하지 못합니다. 사이코패스는 그러한 감정이입이나 공감능력이 결여되었고, 이해하지 못하지만 소시오패스는 공감능력이 결여되었으나 이해하기는 하는 정도라고 하죠. 뭐, 그런 차이나 학술적 분석은 별로 중요한 거 아니고..


인간은 타인에 대해 자기 나름의 가치관이나 사상을 통해 판단하고 평가합니다. 이것은 집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고, 그러한 집단은 어떠한 요소와 조건을 가지고 범주화 가능하죠. 인종, 종교, 민족, 정치적 진형, 지역, 혈연, 심지어 장애의 유무 등등마저도.


보통의 대부분 사람들은 모두 정상적인 지적능력과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 그것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가령 팔레스타인 폭격을 웃으며 구경하는 이스라엘인이나, 위안부 피해자를 보는 일본 극우세력, 김대중과 노무현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일부 진보 세력과 대다수의 극우보수, 세월호 피해자를 공격하는 극우보수 등이 있습니다.


너무 사회적으로 국제적인 범위에서 다루는 게 잘 이해가 안 된다면, 학교폭력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정도로만 생각해봐도 충분히 이해가 갈 겁니다.


그들이 피해자, 자신들이 공격하고 있는 당사자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공감을 할 수 있었다면 그들이 그런 행위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러한 이입의 단절이나 공감의 불능이 발생했느냐를 따져본다면, 그들에게 있어서 피해자가 되는 상대방은 이입의 대상이 아닙니다. 혐오하고 증오하는 이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사람은 없죠. 그러한 감정이 이입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공격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많지만, 기본적으로 서로 다르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러한 다름에서 발생하는 무언가 이성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반발심이 생길만한 요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인에게 있어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영토를 얻기 위한 정복과 말살의 대상이고, 일본 극우에게 있어서 위안부 피해자란 자신들의 추악한 역사의 살아있는 증인들이기 때문에 불편한 존재들이며, 세월호 피해자 또한 한국 극우보수에게 있어서 부정부패함과 무능함의 살아있는 상징이자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경우 그들에게 있어서 불편한 존재인 피해자를 말살하고 제거하여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고 그러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불허함으로써 없는 일로 만들고자 하는 실질적으로도 정치적 이익이 있고, 감정적으로도 양심을 버리고 눈 돌리고 무시하면 되는 속편한 상태가 될 수 있다는 목적 때문입니다.


가령 학교 폭력 피해자와 가해자에게 있어선, 피해자는 단순한 약자이고, 강자인 본인들에겐 말초적 쾌감을 주기 때문에 폭력을 휘두르죠. 가해자에게 있어 피해자는 일종의 먹잇감 내지는 사냥감이고, 포식자는 자신의 사냥감에게 이입하지 않는 법입니다. 그 방식과 정도만 차이가 있을 뿐, 원시적 욕구와 발현은 짐승이든 인간이든 큰 차이가 없죠.



하여간, 사회적 소시오패스는 그러한 타 집단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기반으로 합니다. 혐오하고 증오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이입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그들이 어떠한 참사와 피해와 끔찍한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에 몰리든 그들에 대한 조롱이 어렵지 않게 나오는 것이죠.


이는 정의나 도덕과 무관할 것입니다. 도덕이나 윤리에 대한 감정은 사회적 학습에 의해 만들어져야만 하고,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타심을 기준으로 하기를 바라기엔 기준이 될 질서가 부족합니다. 배웠다 하는 사람들이 다른 집단에 대한 소시오패스적 조롱과 표현을 서슴치 않고 어떠한 양심적, 도덕적 가책 없이 내뱉는 것은 그들에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공감과 이입이 단절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죠.


말했듯, 정의나 도덕과 같은 지적능력이 필요한 이성의 활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혐오나 증오, 배척과 심지어는 쾌락과 같은 감정적 요인에 의해 작용하는 심리기제이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정권 당시 진보 언론의 가학성이나 세월호 피해자에 대한 반사회적 조롱과 표현들은 그들이 그 피해자들에 대한 이입이나 공감을 하지 안/못했기 때문이고, 심지어는 필요치 않거나, 더욱이 그것을 죄악과 비슷한 것으로 여겼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적, 이후 정치적 사건과 되는 참사에 대한 그들의 그러한 태도는 대채로 정치적 사상과 관계가 깊겠지요.



정치병이란 정치적 진영과는 무관하게 극단주의적 사상에 경도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그러나 그러나 사상에 경도되기 위해선 감정적(심리적) 반응이 선행되어야 하고, 어떠한 사상이 옳다고 여기거나 그러기 위해 호감을 가지는 등 마음에 들어야 합니다.


따라서 세월호 사건과 같은 참사에서 발생한 소시오패스적인 조롱과 표현들은 그러한 표현을 한 주체들이 호감을 가진 특정한 정치사상을 기반으로 할 것입니다. 원인이 되는 기반이 없다면 그 현상은 발생하지 않거나 다르게 발생하니까요.



민주주의나 자유주의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것이 더 다채롭고 다양하며, 선하고 발전적인 무언가를 낳을 것이라 주장합니다. 하지만 특정 집단이나 개인을 배제하고 배척하며 말살하고자 하는 반사회적 사상이나 가치관은 그러한 요소들에 반대되고 또는 파괴하려고 하죠. 나치와 같은 극단주의 정치사상이 민주주의를 살해했고, 이후 재창건된 민주주의에서 방어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탄생한 것은 민주주의의 약점을 보완한 자기방어적 태도 덕이었습니다.


이 사회적 더 민주적이고 더 자유롭기 위한다면 그러한 사회적 소시오패스를 발생시킬만한 극단적인 사상이나 가치관 따위가 사라져야할 겁니다.



좀 더 덧하자면, 소시오패스적 이입이나 공감 단절은 이성이 아닌 감정적인 것에 가깝기 때문에 그 대상들이 강자이든 약자이든을 가리지 않고, 보편적 선이나 도덕, 정의와도 무관합니다. 즉, 악한 강자(혹은 가해자)에 대해서도 소시오패스적으로 이입이 불가할 수도 있고, 반대로 선한 약자(혹은 선한 피해자)에 대해서도 감정이입이나 공감이 불가할 수도 있죠.


기본적으로 사회라는 시스템 하에서 정상적인 도덕과 윤리 내지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관습적 정의를 가지고 있는 집단 내에서는 피해자나 약자에 대해 더 감정적으로 기울게 됩니다. 심리적으로도 약자를 응원하기도 하고요. 한화가 팬이 많은 이유죠. 그런 사회에서 주로 범죄자에 속하는 악한 강자, 가해자에 대해서 발생하는 이입이나 공감의 결여는 문제가 없고 정상적인 현상입니다.


사회적 안정을 해치는 요소에 대한 배척은 이성적이든 감정적이든 그 사회를 오래 유지 가능하고 윤택하게 해주죠. 이는 원시사회 때부터 행해왔던 행위이고 이는 현대에도 법과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실현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반대인데, 약자에 대한 폭력과 불합리한 처분은 역사가 흐르며 시대가 발전하고 시스템이 발달하면서 점차 줄어들었죠. 이는 당위적으로 그것이 옳기 때문인데, 그러한 견지에서 바라봤을 때, 약자나 피해자에 대한 폭력이나 소시오패스적 감정적 단절, 공감능력의 불능은 사회를 윤택하게 해주지 못하고 집단의 도덕성을 저해하며 더 많은 피해자를 공식적으로, 혹은 관습적으로 용인하고 증가시키게 됩니다. 적어도 일정 이상을 꾸준히 유지하게 만들죠. 따라서 그것을 우리는 반사회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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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미러링의 예시>


이전부터 메갈리아의 미러링 드립이 꽤 있어왔지만 최근의 살인사건 때문에 이성혐오가 더더욱 불에 붙고 언론에서도 다루려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네요. 사실 미러링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한 적은 있지만 생각보다 별 이야기할 게 없는 간단한 이야기라 굳이 안 쓰고 있었는데, 시국이 시국이니 그래도 한번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미러링이라는 건 원래 심리학에서 타인의 행동을 모방하는 것을 말하는데, 어느샌가 병신논리를 그대로 거꾸로 사용하여 상대방의 저열함을 깨우치게 만드는 반박법 정도로 의미가 변한 거 같습니다.


원래부터 그런 방식의 반박은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잘, 자주 쓰는 반박 방식인데, 메갈이니 뭐니 하는 여러 남혐집단은 이 미러링을 아주 잘못 쓰고 있더군요. 뭐.. 그들의 지능 수준으론 미러링에 대한 이해도가 딱 그 정도인 셈이겠짐나요.



위의 올바른 미러링의 예시라고 제시한 이미지에서처럼, 미러링이라는 건 명확한 주장과 그 주장이 되는 논리를 가져야 합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혐오에 대한 혐오가 아니라 혐오성 주장과 그 논리를 대상으로 한다는 겁니다.


위의 예시를 보자면 흔히 성범죄에 있어서 피해자(주로 여자)에게 잘못이 있다, 원인이 있다고 하는 여러 논리와 주장들인데, 그걸 주어만 완벽히 뒤바꾸어 그대로 비꼬고 있죠. 저게 제대로된 미러링입니다.


  • 누가 그렇게 노출이 심한 옷을 입으래 -> 누가 그렇게 잘 타는 옷을 입고 다니래
  • 강간 당하기 싫으면 집에나 있어야지 -> 불에 타기 싫으면 집에나 있어야지
  • 아마 술 마셨을듯, 술 들어가면 강간 당하기 쉽잖아 -> 아마 술 마셨을듯, 술 들어가면 불타기 쉽잖아
  • 진짜 강간이었다면 신체구조상 그게 될 리가 없을텐데 -> 진짜 방화였다면 신체구조상 그게 안 막아질리가 없을텐데
  • 왜 반항하지 않았대? 지도 속으로 즐긴거네 -> 왜 Stop, Drop, Roll을 안 했대? 지도 속으로 즐긴거네


등등..


명확하게 개소리인 주장과 논리를 몇가지 단어만 바꾸어서 똑같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저 주장도 개소리는 개소리죠. 하지만 누구도 진심으로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미러링의 대상은 저런 논리와 주장을 펼치는 이에게 그가 주장하는 개소리와 개논리를 똑같이 뒤집어서 적용하는 겁니다.


그게 진짜 제대로된 미러링이죠.


하지만 메갈리아를 위시한 남혐무리는 미러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혐오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건 미러링이 아니죠. 그저 똑같은 혐오이고, 스스로를 위한 면죄부, 변명, 합리화 수단으로서 사용하는 말이 미러링일 뿐이죠.


명확하고 분명한 주장과 논리를, 주어와 단어 몇개만 바꿔서 그대로 뒤집어 적용해야 그게 미러링입니다. 같은 개논리를 똑같이 적용하면서, 니들은 이런 주장하는데 그럼 이것도 맞는 논리겠네? 하면서 조롱하며 반박하는 게 미러링이에요.


한남은 죄다 쓰레기들이고 씹치들은 죄다 죽어야 한다는 혐오성 개소리가 아니라요. 메갈리아를 위시한 남혐무리가 주장하는 미러링이니 어쩌니는 거의 대부분이 똥쓰레기 개논리들이고, 자신들의 논리적 저열함과 수준 낮음을 증명하는 꼴입니다. 그들이 하는 건 미러링이 아니라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입니다. 구체적이지도 않고 명확하게 지정되지 않은 머리속 마초들을 대상으로 하는 쉐도우 복싱이죠. 속 된 말로 허공의 좆질이라고도 하고요.


그들은 성평등을 위한 것도 아니에요. 그저 여성 우월주의 주장으로 남성보다 우월하고 싶어하는 왜곡된 파시즘의 일부일 뿐이죠. 찌질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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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표현의 자유는 중요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 말을 함에 있어서 어떠한 내, 외부적인 압박 따위가 있어서는 안 되지요. 그렇게 검열이 되는 사회는 자유로운 사회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자유롭지 않은 사회는 소통이 되지 않고 서로간의 이해의 폭이 좁아지게 됩니다. 즉, 발전을 저해합니다.


그렇지만 표현의 '자유'와는 별개로 자신의 행위에 있어서 '책임'이라는 개념 또한 명백하게 존재합니다. 엄밀히 말해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그에 대한 타인의 평가와 비판은 자신이 온당히 받아야할 책임영역이라는 것이죠. 만약 이 책임이 증발해버린다면 무슨 말을 하든 아무 거리낌이 없어질 것이고, 그러한 절제할 수 있게 해주는 견제장치가 없어진다면 타인에 대한 모욕과 증오를 쏟아냄에도 아무런 상관이 없어집니다.



이것은 분명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증오하고 차별할 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증오받기 싫고 차별당하기 싫지만 다른 누군가는 증오하고 차별당하기 싫다? 그러한 증오와 차별에는 수직적 구조가 존재합니다. 즉, 강자와 약자가 존재하고 그 구조속에서 상호간의 증오와 차별은 서로 다른 무게감을 지닌다는 의미이죠.


그러한 차이에서 나오는, 혹은 그러한 차이 자체를 만들어내는 증오와 차별, 그리고 그것을 나타내는 모든 표현은, 잘못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체를 막지는 안 되, 그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받게 해야지요. 분명히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있습니다. 누군가를 싫어한다고, 증오한다고, 차별하고 싶다고 말해도 됩니다. 사회적 통념에 어긋나는 표현을 써도 됩니다. 하지만 그 결과로서 돌아오는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가와 비판, 그리고 좀 무지할 수 있는 이들의 '증오'와 '차별'은 그 자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자유에는 필연적으로 책임이 따라갑니다. 책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닌 방종이고, 방종한 것은 옳지 못합니다.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기 때문이죠.


누군가를 증오하고 차별하는 발언이 너무도 쉽게 오가는 사회는 책임소재를 제대로 따지지 않는 사회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방종한 사회지요. 책임이 사라졌으니까.



누군가를 비난하고, 차별하고, 조롱하고, 증오하면서 그에 대한 책임을 표현의 자유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라오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그들의 자유를 영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지요. 그러게 책임을 지지 않는 자들이 이 사회를 차지하게 된다면, 그 사회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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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일베에서 일베식 손동작같은게 만들어졌더군요. 전 그걸 보고 대번에 나치식 경례가 생각났습니다. 나치의 저런 손동작은 자신들이 나치의 일원이며 애국심을 가지고 있는 독일 국민의 한명이다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주입했습니다. 일베의 저런 손동작은 의도했든 안 했든 저런 식으로 집단간의 소속감을 공고히 조장하게 만들겠죠. 나는 일베인의 한명이다. 애국보수(풉)의 일원이다. 하면서 말이죠.


하나의 의식적인 행위인 셈이죠.



일베의 성장은 마치 나치당이나 KKK의 성장을 보는듯 합니다. KKK단도 처음엔 우리가 알고있는 극우적 인종주의 폭력집단이 아니라 남부 출신들의 놀이모임 형식이었다죠. 실제로 레크리에이션 집단으로 시작해서 춤추고 친목을 다지던 집단이 어느새 인종주의와 심각한 폭력성을 가진 집단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일베는 유머사이트'였습니다.' 유머사이트로 시작했습니다만, 점점 사이트가 변질되어버렸죠. KKK단이나 나치당과 같은 차별, 그들이 유태인과 흑인들에 대한 차별과 증오, 폭력이었다면 이번엔 전라도민과 전라도 출신에 대한 차별과 증오, 폭력인 셈이죠. 


젊은 이들에 대한 세뇌와 사상전파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히틀러 유겐트 당이 그것이라면, 일베같은 경우 주 이용자가 10대~20대라는 점에 있습니다. 전에도 길게 이야기를 했듯이, 유머라는 것을 찾아온 이들에게 그들의 사상을 조금씩 녹여 주입시키는 것이었죠. 반사회적, 반인륜적, 반민주적, 메카시즘적, 방종한 집단. 그리고 그것을 조장하며 퍼뜨리는 일베충과 그들의 자료.


독재와 군국주의 찬양,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독재자 클럽에 대한 맹신적 후빨은 이미 사상적으로 노예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유신좀비, 유신노예들이죠..


똑같이 집단내 선민사상과 엘리트의식 비슷한게 있습니다. 그들이 백인, 아리아 민족의 우수성과 우월함을 강조했다면, 일베는 애국보수라는 허상을 만들어내고(왜냐하면 그들은 애국도, 보수도 아니기에.) 거기에 도취해있는 모양새지요. 종북, 전라도인, 좌파, 진보를 저열하고 쓰레기 그 이하로 보며 우월감이라도 취하는 모양이죠.



...



나치당, KKK단도 처음엔 그렇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도 비이성적이고 반민주적인 태도와 그것을 강력한 단결, 혹은 권력 및 권위를 통해 저지하지 않았던 실수와, 저열한 프로파간다와 선전선동, 그것을 통한 국민적 집단세뇌는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게 되었고, 그 결과 인류 역사에 남을 악행과 뼈아픈 반성을 뒤따르게 했지요.


일본의 넷우익도 처음엔 인터넷에서만 활동했습니다. 그렇지만 계속된 국민들의 우경화에 따라 현재 그들을 보세요, 넷우익은 인터넷에서 빠져나와 현실에서 진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 아베총리는 그들에게 있어서 올바르고 뛰어난 지도자일 것입니다. 아베가 하는 말마다 망언이라곤 하지만, 사실 우리가 그들과 똑같은 수준, 상황이 되어있을 땐 우리의 지도자라는 놈들도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죠.



...



최근 일밍아웃을 하는 일베충이 늘고 있다나요?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일베충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사회적인 인식에서 굉장히 불이익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행동과 사상에 따른 판단을 했을 경우, 자신이 일베충이라는 것을 밝히면 안 좋게 볼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기에 숨기는게 대부분이었죠. 넵, 자신들은 자기네를 옳다고 믿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물론 마터 신드롬이라고, 자기들을 순교자 내지는 멍청하고 종북에게 세뇌당한 불쌍한 국민, 저열한 종북에 의해 탄압받는 억울한 애국보수라고 믿고 있었겠지만..


하여튼, 일밍아웃이 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일베가 사회에 적극적으로 흘러나오게 될 것이라는 것과,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러한 쓰레기같은 집단과 사상이 물 위에서 흔하게 보일 것이고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이들이 일베의 사상에 동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일베의 사상과 사고방식이, 주류나 그에 준하는 형태로 사회로 퍼져나가고 그렇게 남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마치 처음엔 병신집단 내지는 조그마한 극우군소정당이었던 나치당이 어느새 정치의, 사회의 주류가 되었던 것처럼요. 이처럼 조금씩, 서서히 국민들을 내부에서부터 잠식해나가는 선동, 세뇌가 정말 위험한 것입니다. 


전에도 자주 밝혔듯이, 일베는 언제라도 방어적 민주주의건 뭐건 부수고 없애버려야 했을 집단이라는 겁니다. 지금 일베는 또 성장중이에요. 이번엔 인터넷에서의 성장이 아니라, 그것을 기반세력, 바탕으로하여 사회로 나오려고 합니다. 마치 넷우익이 인터넷을 벗어나 현실에서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똑같은 겁니다. 그리고 일본은 딱 그 수준의 총리가 국가수장으로 앉아있고, 현재에도 우경화는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한국은 일본의 전철을.. 정확히는 안 좋은 것만 따라가더군요. 일본의 그러한 우경화와 국가적, 사회적인 파쇼화를 그대로 따라갈 겁니다. 그 척도가 일베의 성장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맨 위 사진의 일베식 손동작(일베식 경례?..)는 이러한 척도로 구분해봤을 때, 인터넷에서 빠져나와 오프라인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그러한 시점에서 내부적인 소속감을 공고히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전 저 손동작을 보면서 The Wave라는 작품 또한 생각나더군요.


독일 영화로, 독일의 김나지움(한국의 중고득학교 과정에 해당합니다.)의 교사인 벵어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실험을 기획합니다, 전체주의의 폐해에 대해서 토론하던 벵거는 2차대전 당시의 나치즘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왜 2차대전 당시의 독일 국민들이 자치의 전횡을 수수방관했는지 실험하기로 하죠.


먼저 그는 반 아이들에게 자신을 부를 때 '벵거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하고 (원래 학생들은 미국처럼 성을 뺀 이름만 불렀습니다.) 청바지와 하얀 셔츠를 같은 단체복으로 정해주며, 스스로를 '웨이브'라고 부르며 정치집단처럼 성장해갑니다. 웨이브에 소속되지 않은 학생들을 회유시키거나, 혹은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자신들의 집단에 소속시키는 웨이브는, 점점 학생들은 벵거의 권위에 복종하게 되고 나중엔 나치식 경례와 비슷한 '웨이브식 경례'를 하고 다니죠. 그리고 이 학생들은 점점 통제할 수 없게 되는데, 그들은 충실한 벵거의 광신도들이 되어 도시 전역에 웨이브의 표식을 낙서하고 다니는 정도가 됩니다. (현재로 네오나치들이 곧잘 하고 다니는 짓이기도 하죠.) 심지어 실험이 끝났다는 벵거의 말에도 불복하고 웨이브로서 활동하고자 하는 광신도 학생들은 이후 죽음을 맞이라고 영화가 끝납니다.


일베는 딱 이 꼴이에요. 그렇기에 일베가 빨리 사라져야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근거지와 핵으로서 작용되는 사이트를 날려버리면 현실집단도 아닌 인터넷의 집단은 그 분열도 빠르겠죠. 그리고 서로 또 모이고자 하는 이들이 제 2의, 제 3의 일베 사이트를 만들겠지만, 그것은 그들간의 경쟁이 되어 분열을 재촉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나뉘도 경쟁하게 되는 것은 그들의 생존에 불리하게 작용하겠죠. 실험이 끝났다며 웨이브를 해체하였으니 웨이브로 남겠다는 학생들의 비극적인 죽음처럼, 일베를 부수었으나 일베로서 남겠다는 일베충에게 남은 것은 비참하게 아무 것도 아닌 쓰레기가 되는 것이죠.



...



우리가 역사를 통해 무언가 배웠다면, 지금 당장 일베를 견제하고 박살내야 합니다. 나중에 일본처럼, 나치독일처럼 됬다고 후회하는건 미련해 보이잖아요.




같이 보기

일베에 대한 단상

일베라는 프레임

일베충은 어떠한 정치적 신념에 의해 모인 존재들이 아니다.

애국은 사악한 자의 미덕이다.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는 자.

상식이 종북에 갇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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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멀쩡한 국가가 온전히 외침으로 멸망하는 사례를 그다지 많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외침으로 멸망당했을지언정 그 원인을 따지고 보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가 잘못되어서, 나라의 중책을 맡고 있는 이들의 욕심과 파벌싸움으로 나라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기 때문에 멸망한 사례가 차고도 넘칩니다.


기실 국가의 정치나 경제, 사회가 정상적이고 온전히 기능하는 국가는 그 국가적 역량을 온전히 안보에 쏟아넣을 수 있기 때문에, 침공하는 입장에서도 이들이 가장 강성할 때가 아닌 가장 혼란스럽고 약할 때를 노리는 것이 정석적이고 정상적입니다. 대게 멸망하는 국가의 전후사정을 알아보면, 정치는 문란하고 경제는 꼬여있으며 사회는 혼란스럽습니다. 그런 국가를 집어먹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게 때문에 정치란 자고로 이러한 상황을 막고 억제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또한 정치는 그렇기 때문에 국가를 강성하게 하고 국민을 편하게 하며 경제를 풍성하게 하여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실하게 만들어야하고, 그러한 의무와 목적을 지니기 때문에 정치를 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정치적 문제를 위해, 상대 파벌과의 정치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국가를 혼란스럽게 하며 싸움을 일으키고 서로 증오와 반목을 심어주는 일을 그 자체로 국가를 위한 일이 아니며 혼란스럽게 하여 국가를 약하게 하는 일이므로 악하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정치에 파묻혀 작고 좁은 권력과 이익을 위해 더 중요한 것을 희생시키는 짓을 하는 것은 외부의 적과 싸우는 것보다 위험한 일이며, 그것이 내부의 적이 외부의 적보다 위험하고 경계해야할 이유임에는 틀림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악용하여 정당하고 올바른 주장을 하는 이들과, 혹여 그렇지 못한 이들이 있더라도 비슷한, 그렇지만 틀림없이 다른 집단을 한데 묶어 매도하며 이들이 바로 적이니 이들을 척결하자 하는 것은 그 주장이 악용인 이유가 되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넓은 시각에서 혼란을 일으키고 나라와 사회를 망치는 일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주장을 하며 사회를 올바르게 하자는 자들을 배척하는 이들이 바로 우리의 적이며 싸워야할 대상이자 쫓아내 뿌리 뽑아야할 암세포라 해야겠지요.



망국의 징조는 그렇습니다. 정치는 문란하고 사회가 혼란스러우며 경제는 꼬여있어 국민들이 행복하지 못하고 어렵고 힘들며 증오와 반목이 사라지지 않고 서로를 배척하고 싸움이 흔하게 되면 타국이 보기에 이런 국가를 집어삼키기 쉽다할 것이고, 그것이 행동에 들어가면 이는 망국의 길로 스스로 들어가게 만드는 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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