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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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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무기는 중세시대에 등장하여 수많은 종류의 대포와 머스킷의 탄생을 낳습니다.



새로운 무기는 새로운 병과의 탄생의 씨앗이 되고 당연히 화약무기를 사용하는 병과가 탄생합니다.

머스킷 병과는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머스킷류 무기를 사용하는 병과죠. (물론 초기의 총기..는 콩알나가는 막대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죠.)


근대의 머스킷병의 경우, 전투가 시작되면 적의 얼굴이 빤히 보이는곳까지 접근해서 싸웁니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라인배틀이죠. 영화나 게임들에서 관련 장면을 간혹 볼수있는데 어째서 우리는 총을 들고있음에도 괜히 넘어지면 코닿을 거리까지 접근해서 싸우는지에 의문을 가질수 없습니다.


사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머스킷은 강선이 없는 총기였습니다, 총기에 관심이 많은 독자분들은 강선이 없으면 총알이 어떻게 날아갈지 잘 아시겠죠.


사실 강선이란게 최초로 파인 때는 16세기의 베레타 공방,영문 위키에 따르면 15세기 비엔나 총기제조업자들이 팠다고 나옵니다만, 어쨋든 강선이 파인 총을 쏘려면 굉장히 번거로웠습니다,탄환이 꽉 맞물려야했고, 더구나 마찰이 심해 잘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생산자체도 오래걸리고 그 덕에 가격은 상승합니다. 이러한 이유는 전장에서 라이플이 아닌 머스킷을 사용하게 끔 만들었죠.


그래서 재장전 시간이 너무 긴 강선총 보다는 명중률은 떨어져도 재장전 시간이 빠르고 운용등이 쉬운 우리가 알고있는 머스킷 소총을 주력으로 사용했습니다. 물론 제작시간,비용도 머스킷이 라이플보다 적게걸렸죠.(하지만 사냥용,저격용등으론 라이플도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강선이 없는 머스켓과 빠르게 연소하는 화약(흑색화약)등으로 인해 명중률과 위력은 굉장히 낮았습니다.


*머스킷 초기에는 풀 플레이트 갑옷또한 존재하였고 운만 좋으면 머스킷 탄환까지도 튕겨낼수 있는 방어구였습니다만 총기의 위력이 상승함에 따라 사라지게 됩니다.



얼마나 명중률이 떨어졌냐면 50m거리에서 집단으로 사격한다해도 명중률이 50%를 넘을까 말까한 안습한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개개인의 은,엄폐나 각개전술은 별 의미가 없었죠.


그렇기 때문에 이를 집단 사격으로 커버하였고(동양은 좀 다릅니다.) 그 결과가 오와 열을 맞춰(밀집대형으로) 집단사격하는 전술이 탄생하게 됬죠. 쉽게말해 거대한 산탄총과 같은 효과를 보기 위함이었습니다.(물론 밀집대형은 기병대에 대항하기 위함이기도 하며 나폴레옹의 프랑스때는 모병제로 군인을 충당했고 애국심에 근거한 개개인의 각개전술또한 사용되긴 했습니다만, 영국같은 징병제 국가는 그런거 없었죠.)


이러한 라인배틀은 그들이 무식하고 전술이 발달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당시 그들이 행할수있던 최고의 전술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술도 기술의 발달속에선 버틸수없었습니다. 19세기 미니에 탄이라는 원추형 탄환이 개발됨에 따라 강선총에도 장전이 쉬워 미국의 남북전쟁 중~후반에는 자신이 가진 총을 개조하여 명중률이 높은 총기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개조하는데 시간도 오래걸리지 않고 방법도 그닥 어렵지 않아서 많은 병사들이 개조를 했다고 하네요.



어쨋든 이러한 상황속에서 수많은 병사들은 강선총으로 무장하기 시작했고 당연히 평균 교전거리나 위력은 이전과는 비교할수없을 정도로 벌어졌습니다.(교전거리는 200m가 평균적이었다고 하네요.)



총기의 차이로 인한 우열은 크림전쟁에서 강선총을 쓴 연합군과 그딴거 없는 러시아군의 전투에서 여실히 드러나게 되었고(전쟁에서 진 가장 큰 이유는 외교전 때문이지만 적어도 전투에선.),전술과 교리에 따른 피해는 대영제국의 보어전쟁에서 잘 드러납니다.(얼마나 털렸는지 약탈,학살은 기본에 보어 전체인구보다 많은 군사를 투입하는 초강수를 두어 겨우 승리)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느냐하면...

총기의 발달과 총탄의 발달과는 다르게 나폴레옹 시대에 멈춰있는 (나폴레옹 시대이후로 바뀐것이 그닥 없습니다.) 전술과 전법 때문입니다.


1860년대의 미국, 남북전쟁에서도 이러한 구시대의 교리는 남군이나 북군이나 똑같이 사용되었고 결과적으론 개전 수분~수십분만에 백단위는 우습게 뛰어넘어 천단위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주 요인으로 나타납니다.(앤티텀 전투의 사상자는 23000명)


결국 전쟁 말기쯤엔 1차대전의 참호전과 비슷한 전쟁양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이런 결과를 보였음에도 유럽은 후진국의 뻘짓으로 생각하며 기존의 교리를 개편하려는 움직임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가 보어 전쟁이구요. 심지어 1차대전때도 프랑스는 화려한 군복을 입은 부대가 존재했다고 하죠. 


뭐든 발전을 하면 그에 맞춰 따라가야하는데 맞추지 않으니 이런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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