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국가적 번역 기관이 필요하기에 앞서 전제되야할 조건은 인문학에 대한 인식 개선이 맞을 겁니다. 한국은 인문학의 지옥이라고 보며 철학이나 역사학보다는 더 쓸모있는 기술이나 경영학과 같은 실제로 어딘가 써먹을 수 있는 것들을 더 중시하고 그렇지 못한 학문은 아예 신경도 안 쓰고 관심도 없으며 더욱이 지원 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어찌됬든 국가적 번역 기관이 필요하다는 이유는 한국의 지적 환경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이전 글들에서도 몇번 주장했다시피 학문적 정보는 물론 일반 교양도서에까지 그 양적인 환경이 열악합니다. 세계의 거의 모든 정보는 영어로 기록되기 마련인데,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가는 세상에서 이러한 정보에 발 맞춰 걷지 못한다면 그것은 도태된다는 의미이죠.
교양도서가 되었든 전문서적이 되었든 정보가 빵빵해야 뭘 공부하든 발전할 토양이 생기든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 의미하는건 언제나 2류, 3류에 남아있게 된다는 겁니다. 논문도 마찬가지죠, 한국 학계가 일본 학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이유는 인문학이 무시당하는 것도 있지만 학문적 토양이 좁다는 것 또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타국의 논문을 번역해서 학자, 교수들도 공부를 해야하는데 그러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물론 원서로 읽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영어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들.. 특히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들은 더욱 힘이 들겠죠.
한국의 번역 환경은 '김우열' 저자의 <나도 번역한번 해볼까>라는 책에서 어느 정도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번역가로 활동하기 위해선 어떠한 길이 없고 그저 어떤 방식으로든 탁월한 번역실력을 기르고 출판사와 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 공부해야하는 방법이 딱히 정해져 있지도 않고, 관련 정보를 얻기도 쉽지 않으며 실력이 있다고 해서 쉽게 일을 맡을 수도 없다고 합니다. 특히 선배 번역가나 출판업계와의 연줄이 없으면 더 어렵다고도 하더군요.
일본에는 번역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국가 기관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번역하는 수많은 정보들은 모두 일본의 지적 환경을 이루겠죠. 타국의 국가 공문서, 책, 논문 등등.. 이러한 정보는 곧 힘이 되는 것이고 국가적 역량이 되며, 정보의 차이로 인해 외교전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번역의 필요성은 모두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단지 학문적인 발전만을 위한 번역이 아니라 정치적, 외교적, 지적인 발전을 위해서 국가적 번역기관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문 번역가를 양성함에 따라 한국 번역환경에 희소식을 들려주고 또한 일거리 창출이 되며 여러 분야에 도움이 될 수 있을테지요.
무엇보다 한국의 영어 교육이 말하기 위함이 읽고 해석하기 위함인데 제대로 써먹을 곳이 없으면 아쉽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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