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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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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23.01.07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 받지 않는다. 6월 혁명은 성공했는가.
  2. 2022.08.28
    엘리트 카르텔이라는 이름의 한국의 문벌文閥귀족.
  3. 2019.11.01
    탕탕절과 문재앙 만화의 차이와 문제. 4
  4. 2018.07.07
    탄핵시 계엄령 선포, 군에 암약하는 국가 반역자들. 2
  5. 2016.04.12
    나라를 팔아먹은 보수세력. 전두환과 일본의 역사왜곡.
  6. 2015.02.19
    국가의 역할과 정치의 목적.
  7. 2014.04.29
    정말로 이상한 진보, 보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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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쿠데타는 처벌 받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걸주를 몰아내고 새로운 왕조를 창건한 것도 쿠데타지만 처벌받지 않고 폭군을 물리친 건국 서사로 인정 받는다. 망해가는 고려가 개혁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버리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도 건국왕의 업적을 말하지 쿠데타의 수괴라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히 역취순수했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 그들은 성공했고 승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승자가 승리를 굳히는 건 모든 이들이 그 체제를 긍정하는 때이다. 정확히는, 그 체제를 부정하지 않을 때이다. 만약 고려를 그리워하던 이들이 조선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각지에서 변란이 일어났다면 조선은 어떻게 대응해야 했을까? 역적 이성계의 세력을 몰아내겠다고 일어난 이들을 모두 죽여 없애야했을까?

 

그러나 민초들은 조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고, 고려와 왕씨 왕조를 어떻게 생각했든 결국 그들은 저항하지 않았고 조선을 받아들였다. 마음 속으로는 조선과 이성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언정 그것은 규합되고 행동으로 나설 정도의 것은 아니었다. 성계탕은 단지 그들의 불편한 마음의 발로일 뿐이지 이성계를 찢어 죽이고 싶다는 증오의 피상이 아니었다.

 

쿠데타, 역성혁명으로 만들어진 체제는 본디 사람들에게 인정 받아서 정당화 된다. 역사는 승자가 쓰는 것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우리의 쿠데타와 역성혁명은 정당했다고. 그리고 그 정당함의 근거는 그 체제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그 체제를 받아들였음으로 증명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 하지 않는다는 말이 역사적 사실에 가까운 판단이라는 것이다. 정당성을 만들지 못하고 역사의 승자가 되지 못한, 중과부적인 왕조와 국가들은 아주 짧은 기간만 존속하고 사라졌다. 그 짧은 기간 때문에 그들의 존속은 별 관심을 못 받을 뿐 그들은 실패한 것이다.

 

 

86년 6월, 한국은 독재를 끝장내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사실일까? 국민들은 전두환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대선을 치뤘고, 양김의 갈등 끝에 노태우가 당선됐다. 노태우의 정치와 정책들은 독재의 정통성을 이어갔다고 평가하긴 어렵지만 자신의 권력을 근거했던 쿠데타를 부정하진 않았다.

 

이후 김영삼 시대에나 겨우 그들은 법정에 설 수 있었고, 사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결국 집행은 취소되고 그들은 사면받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게 가장 큰 문제 지점이다.

 

법원에서 어떤 선고가 내려졌든 독재와 반란의 핵심을 살려두는 것은 아주 나쁘다. 그들이 공개적으로 사죄하고 반성하여 세력을 무너뜨렸다면 달랐겠으나, 전두환은 자신의 범죄를 반성하지 않았다. 처벌받지도, 반성하지도 않았기에 그들이 만들고 형성시킨 독재와 반민주의 정신은 살아남아 한국 사회의 중핵을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우리가 정말 독재를 무너뜨리고 그 정신을 끝장냈다면 전두환은 살아있어선 안 되고, 설령 그렇다 해도 철저한 책임추궁 하에 비참한 삶을 살다 죽었어야 했다. 부와 존경받은 채 천수를 누릴 게 아니라.

 

인정해야한다. 한국인들은 독재를 무너뜨리지도 못했고 그 정신을 끝장내지도 못했다. 독재가 무너진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인 다수가 그것을 거부했기 때문이지만 그러한 이유는 단지 한국이 자본주의 국가였기 때문이다.

 

경제를 성장시키는 목적을 지닌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제적 성장은 그것의 재투자로 이어진다. 더 높은 성과와 효용을 발휘하기 위해서다. 더 고도화된 경제시스템과 효율적인 부의 창출을 위해서 구성원들은 교육을 받아야 했고, 이는 필연적으로 자유를 추구하게 될 수밖에 없다. 정치적 자유는 경제적 자유를 기반으로 한다. 가진 게 없는 이들은 힘이 없고 힘이 없는 자들은 요구할 수 없다.

 

한국의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교육 받은 국민들은 독재보다 더 나은 체제를 추구했던 것이고 그 이유와 사유가 어떤 것이든 구조적으로 독재를 거부할 토양이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독재 시스템이 더 공고하고 강력하게 통제할 수 없었던 기술적, 제도적 이유와 한국이 본래 민주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헌법에서부터 그러한 성질의 문장으로 한국의 체제를 규정했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아무리 헌법과 법률에서 반민주적인 성질의 것을 적어놓았다 하더라도 민주주의 국가로 출발한 이상 그 내용을 전면적으로 뒤집지 않는 한 민주주의에 검은 색칠을 하고 부품을 갈아끼운 것일 뿐이다. 가령, 결국 투표를 해야 했다던가 언제 어떤 시대의 한법이든 한국 헌법 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라는 문장은 단 한번도 지워진 적이 없다. 그것이 한국이 본질적으로 민주주의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당위가 되었다.

 

즉, 전두환 정권이 무너진 것은 그들이 더 강력한 독재를 시행할 능력과 기술이 없었고, 경제성장에 따라 국민들이 더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그 결과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와 열망 역시 강해졌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이것이 올바르고 완벽한 정답은 아니지만 이러한 관점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독재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다. 전두환과 노태우를 법정에 세우고 사형을 선고하는데 성공했지만 집행은 실패하고 사면했다. 독재의 하수인들을 골라내 불법적으로 얻은 부와 권력을 회수하지도 못했고 강력하게 처벌하는데에도 실패했다.

 

이는 한국인들이 승리에 취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의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정치적, 법적, 제도적 방식으로 처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기 때문에 그러한 요건이 되지 않거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사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 독재를 긍정하는 국민들이 약 절반은 되기 때문이다.

 

최소한 그 비율은 현재까지도 30%는 되며, 경우에 따라 독재적 가치의 위험성보다 다른 가치를 더 우선시하는 이들이 합세하여 약 50% 안팍까지 도달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쿠데타는 그렇게 불법이나 불법적이지만은 않은 것이 되었다. 이성계는 단지 역사적 상징일 뿐이다. 실질적인 힘은 독재자와 그들의 정신이 살아남아 지배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에 있다. 독재자 중 한명은 반인반신이 되어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그 신화는 자식에게까지 이어져 숭앙 받았다.

 

성공한 독재는 처벌하지 못한다며 살아남았고, 부와 존경을 받으며 천수를 누리다 죽었다. 그의 자손은 그 부와 영향력을 통해 부유한 삶을 살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성계가 쿠데타를 일으킨 주역이지만 그를 쿠데타 수괴라 평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역사는 승리한 자가 기록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그렇다. 쿠데타라는 군사반란, 국가반역이 제대로 청산받지 않았기에 그들은 힘을 잃지 않았고 지배적인 위치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힘을 통해 정치적 승리를 할 때마다, 정권을 얻어낼 때마다 역사를 새롭게 기록하고자 하는 역사 수정주의적 시도가 있었다.

 

군사반란을 구국의 결단으로 포장하고, 성공한 쿠데타라며 처벌할 수 없다고 말이다. 쿠데타를 통해 만들어진 독재정권이 그렇게 정당하다면 한국 사회는 쿠데타를 권장하는 사회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단지 그들은 쿠데타 세력에 의해 이권과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이 싫기 때문에 새로운 쿠데타를 긍정하지 않을 뿐이다. 그들의 힘과 부의 원천이었던 과거의 쿠데타를 긍정하고 정당화하는 것은 그들에게 도움이 되기에 하는 것이지. 물론 그들에게 이익이 된다면 새로운 쿠데타는 언제든 있을 수 있다. 실제 쿠데타 시도는 몇년 전 분명히 있었다.

 

이번에도 5.18은 교과서에서 사라진다는 말이 나왔다. 정권을 잡은 승리자가 역사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그들의 정신적 근간을 긍정하고 정당화하는 쪽으로 기록하려는 것이다. 그 당시 부와 명예, 권력을 가진 이들은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았고, 사회의 지배적 위치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사상은 지배적 사상이 되어 우리 세대 독재의 정신을 가진 후예들을 양산하고야 말았다.

 

대한민국 헌법 1조를 긍정한다면 그것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체제는 어떤 성과를 일궈냈든 긍정할 수 없다. 그것을 역사화하여 그러한 사실이 있었다. 라고 하는 것이라면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것을 어쩔 수 없었다거나, 필요했다며 정당화한다. 그들은 헌법 1조에 살해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본인들은 절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다시 질문을 던지겠다.

 

한국 사회는 정말 86년 6월, 독재에게서 승리를 거두었나? 6월 혁명은 성공했는가?

 

성공했다면 왜 패배자들은 살아남았고, 이 사회의 권력자로 기득권을 행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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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카르텔의 선출직 권력에 대한 무력화.

https://konn.tistory.com/768

 

 

고려시대의 문벌귀족은 음서와 공음전을 통해 권력과 경제력을 세습했으며, 그러한 제도를 기반으로 강력한 가문을 형성하고 유지했다. 그렇게 가문의 힘으로 권력과 경제력을 세습받으며 유지되었기 문벌門閥이었고, 이들의 권력은 무력을 지닌 무인들의 반란을 통해 뒤집어졌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경제력을 훼손당했다고는 해도 개국공신 가문에 뿌리 깊은 가문들이었고 그들은 약화되었을 뿐, 무신정권 시기에도 여전히 명맥을 잇고 있었고, 이후 권문세족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한국에서 권력자라고 부를 수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체로 공부를 통해 얻어낸 성과이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갔거나, 외교관 시험, 행정시험, 사법시험 등의 고급 공무원을 선발하는 고시 출신이고,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 나온 사람이 대기업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여 기업가, 경영자들이 되어 큰 힘을 가지게 되기도 하였다.

 

본래 결혼은 비슷한 수준의 사람/집안끼리 하기 마련이다. 검사가 재벌가와 결혼하고, 의사가 변호사와 결혼하며, 판사가 교수와 결혼한다. 그렇게 사회적 권력을 지닌 지도층을 혈연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막을 수도 없고 막을 필요도 없다. 단지 한국이 너무 좁은 국가이고, 좁은 영토 내 높은 인구밀도를 지닌 서울과, 그 서울에 국가 모든 중요 시설과 핵심이 모여 있는 환경상 그런 식으로 이어지는 혈연은 그 자체로 카르텔화되기 쉽다.

 

어느 지역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지역 유지가 아닌 국가 전체의 핵심 중앙 권력을 장악하고 나눠먹는 권력형 카르텔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대기업 등에서 이루어지는 일부 낙하산을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실력을 필요로 한다. 이는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직업을 가져야할 이유이자 근거가 된다. 공부를 잘해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고, 그렇게 얻어진 대학 졸업장, 고시 합격자는 더 좋은 직업의 조건이 된다. 운이 좋아 시험 몇번 잘 본 것으로는 버틸 수 없고, 운이 좋게 얻어 들어간 자리에서 성과를 내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물론 재벌 성골 출신이라면 타이틀에 비해 대단한 능력이 없다 해도 여전히 자기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어차피 경영권만 가지고 있다면 웬만해서는 밀려날 일이 없기 때문에 경영적 실패를 쌓으며 사회적, 경제적 손실을 발생시켜도 여전히 권력의 중심에서 도태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들에게 얼마만큼의 실력이 있고 얼마나 유능한지가 아니라 그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가이다. 검사 같은 경우 그 자체로도 유능한 사람들이지만 설령 그 조직 평균에 비해 무능하다고 해도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한직으로 밀리거나 따돌려질지는 몰라도 검찰 조직에 반역하지 않는 한 그들은 여전히 검사 권력을 누릴 수 있다.

 

이는 설령 그 본인이 범죄를 저질러도 기소되지 않고, 기소된다 해도 그의 권력과 신분, 경제적 이익 창출에는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한다.

 

 

이들의 권력이 공부를 잘했기 때문인 까닭에, 강남-대치동의 부모들은 자신의 자식을 고문과 학대에 가깝게 공부를 시키고 그렇게 강요받은 이들 중 부모의 의도에 합치된 성과를 낸 이들은 결국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경우가 다른 지역 학생들에 비해 많다.

 

그렇게 그들은 사회, 아니. 국가 중심 핵심 권력에 남들보다 더 가까이 다가간다. 그리고 십수 년~수십 년간의 경력과 성과는 그 핵심의 가장 가까이로 그들의 접근을 허락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 과정 동안 형성시킨 비슷한 위치의 다른 엘리트들과의 사회적 관계망은 이미 엘리트 카르텔의 일원으로 만들었을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자식은 그들의 성공과 비슷한 경로를 탈 가능성이 높다. 똑같이 10살 안팍의 나이 때 고등학교 과정을 소화할 정도의 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들은 문벌文閥귀족화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공부와 시험을 통해 권력을 얻고, 비슷한 수준의 엘리트끼리 결혼하며, 각 집안이 가진 사회적 관계망을 결합 및 확장시킨다. 그리고 그 사회적 관계망은 국가 중요 권력은 물론 사회적 영향력을 차지한 사람들로 이루어져있다.

 

 

다른 나라에서도 공부 잘하고 인맥을 가진 사람들이 성공하고 중요 요직을 차지하며, 더 좋은 위치로 올라서기 쉽다. 특정 대학이나 특정 지역 출신이 요직을 차지하는 경우 역시도 많다.

 

그러나 한국은 그 정도가 특히 심하다. 이는 서울집중화, 밀집화와 좁은 국토에서 기인한다. 이미 집중된 서울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우월한 조건을 가지고 있고, 성장하기 어렵다. 다른 지역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것은 쉽다. 모든 요소를 다 고려한다 해도, 서울은 그 자체로 더 큰 이득을 준다. 거리 역시 짧은 편이고, 잘 닦인 교통은 시간 역시 오래 걸리지 않는다. 원래 지역에서 쌓아놓은 사회적 자본 역시 서울이 가져다줄 이익에 비하면 충분히 포기 가능하다.

 

어느 정도 지역 내 위치가 있다면 이미 서울에 자리 잡은 누군가와 인맥 관계일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고등학교나 대학 시절 인맥이든, 교회 인맥이든, 직장 인맥이든, 친적과 같은 혈연이든.

 

그리고 엘리트 카르텔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권력과 경제적 이권을 유지, 성장시키고 그러기 위한 자신들의 불법, 탈법을 법적 제재에서 지켜주거나 그러한 이익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정보를 미리 제공해줄 수 있고, 때때로 원하는 직위와 자리를 마련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것은 자기 세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식 세대에게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사기업의 경우 자리를, 학계의 경우 자격을 준다. 불법일 때도 있고 탈법일 때도 있으며, 합법적인 꼼수일 때도 있다.

 

그렇기에 다른 지역에서 올라오는 엘리트, 혹은 엘리트의 가능성이 있는 인재를 선호한다. 굳이 따지자면 전라도 출신의 경우 차별을 받거나 덜 선호될 수는 있다. 그러나 결국 중요한 것은 그들의 입맛과 이권에 부합되는 자인가가 핵심이다.

 

 

본래 사회지도층, 엘리트 권력자 집안의 경우 당연히 자기 자식에게도 더 좋은 교육을 시키고, 더 많은 지원을 해줄 수 있다. 당연하다. 그리고 그걸 막을 수도 없고 차별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렇게 그들은 부와 명예를 세습하게 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에서는 그 모든 과정이 심화되어 있다. 단순히 엘리트 교육이 아니라 끔찍한 사교육으로 부와 명예를 확보하고 그걸 세습시키려 한다. 그걸 위해 불공정과 불법 역시도 자행된다. 그럼에도 검사, 판사, 경찰 인맥은 그것을 기소하지 않거나 제대로 조사하지 않는다. 이런 저런 이유로 그들의 불법을 불법이 아니게 만들거나, 설령 처벌받는다 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을 하게 된다.

 

이러한 불공정한 불법적 사례는 언론에서 다뤄질 때에만 그나마 처벌을 받거나 조사를 받을 뿐 적지 않은 경우는 아예 기소는커녕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들끼리 덮고 유출시키지 않으면 그만이다. 언론의 조명을 받고 대중적 관심을 받는 경우는 그저 재수가 없을 뿐이라 여겨진다.

 

 

이는 완화시킬 방법은 없다. 어떠한 개혁도 엘리트 카르텔에 의해 가로막힐 것이고 일부의 성공 역시도 중과부적일 것이다. 역사는 이러할 때 무신정변, 혹은 역성혁명이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무신정변은 군부독재와 같이 다른 문제가 되었을 뿐 근본적으로는 실패했고 역성혁명 역시도 일시간(어떤 면에서는 꽤 장기간) 효과를 보았을 뿐 다시 같은 문제를 발생시키며 다시 한번 멸망했다.

 

부정부패를 비롯한 불공정의 확대는 체제의 지속가능성을 약화시키고 이것이 임계점에 다다르거나, 그에 근접할 때 민중은 폭발한다. 그 이후 외세의 공격이 있었거나 내부에서 쿠데타/혁명을 일으켰는지의 차이만 있을 뿐 그렇게 역사는 국가/체제의 멸망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말해왔다.

 

한국이 이 상황에 어떻게 응답할지는 국민들의 몫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의 몫이 아닐 수도 있다. 대한제국이 민중의 요구에 응답하여 멸망한 게 아니고 조선의 독립이 민중들의 요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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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문 대통령·수갑 찬 조국…만화로 조롱한 한국당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914810.html

'탕탕절' 논란 장휘국 "박정희 죽음, 희화화할 생각없었다"


자한당의 해당 만화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그걸 만든 주체가 자한당이라는 겁니다. 비슷한 사례에서 오바마 닮은 배우가 나오는 포르노를 미국 공화당이 만든 게 아닌 것처럼, 언론이나 잡지사, 정치코드가 허용되는 코미디 관련 매체에서라면 시도되어도 좋게 봐주면 질이 나쁘고 수준이 떨어지며 논란이 (아마 크게) 되지만 허용될 수 있는 표현이고, 나쁘게 보면 법적 처벌이나 제재가 필요한 지나친 사례라고 볼 수는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근데, 다시 말하지만 이걸 만든 주체가 민간이 아니라 정치 정당이라는 게 문제가 됩니다. 


앞서의 포르노의 경우 처벌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긴 해도, 실제로 관련 기사를 찾아본 적이 없고 따로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는 한국보다 폭 넓게 인정되고 공인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처벌 받은 건 낭설일 겁니다.


하지면 여기는 한국이고, 한국 기준으로 보면 문제가 되는 게 맞으며, 심지어 미국 기준으로 봐도 정치인이나 당 차원에서 저런 걸 만들어서 하는 것과, 민간에서 하는 건 아예 이야기가 다르죠. 오바마 닮은 배우가 등장하는 포르노를 공화당에서 만든 게 아니니 공화당에게 문제 제기는 말이 안 되지만, 이것은 자한당에서 만든 겁니다. 게다가 웃기지도 않을 변명과 궤변으로 뻔뻔하게 받아치고 있죠.


심지어 문재앙 운운은 언론에서도 대놓고 안 하는, 극우 유튜버나 가짜뉴스 제작자, 일베에서나 쓰이는 처참히 질 낮고 천박한 선동적 비난 용어입니다. 그 용어를 당당히 쓰는 표현물을 정당이 주체적으로 제작해서 배포한다면 문제가 크죠.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간단한 상식만큼, 표현의 자유에도 책임이 따릅니다. 그게 반드시 법적 처벌을 의미하는 게 아니지만, 이에 대해 욕을 먹거나 비판을 받는 것은 감당해야할 문제일 겁니다. 



탕탕절에 대해서 문제를 삼는 거야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운지에 대해서도 문제 삼는 건 당연한 거죠.


하지만 모든 비교 대상은 논란이 될수록 그 컨텍스트를 반드시 고려해야하는 문제입니다. 탕탕절의 주체는 박정희이고, 박정희는 쿠데타 수괴이며 독재자입니다. 게다가 통치 당시에 수 많은 범죄의 거두이기도 했죠. 횡령과 성범죄는 물론 공권력에 의한 온갖 불법과 사법살인의 최고 책임자이기 때문입니다. 박정희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든, 그가 범죄자이자 쿠데타 수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북한에서 김일성을 어떻게 찬양하고 신격화하든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수 많은 사람을 죽이고, 전쟁을 일으킨 악당이라는 사실이 변하는 게 아니듯이요.


반면 운지는 법적 정당성, 절차적 정당성을 가진 대통령이었고, 노무현에 대한 수사 자체도 우병우의 말처럼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고 했을 정도로 편파적이고 부당했습니다. 언론에서도 지금 조국 정국에서처럼 그러한 부당한 태도로 정치적 공격의 포화를 갈겨댔고요.


노무현이라는 대통령의 통치와 정치에 있어서 비판 받고 문제 삼을만한 요소가 많다고 해도, 범죄는 아닙니다. 심지어 탄핵 소추까지 갔지만, 결국 문제가 없다는 사실만 재확인시키고, 그 기간 동안 노무현이라는 인간과 정권은 어마어마한 공격과 불리함을 받고 감수해야만 했죠.



박정희와 노무현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용어가 부당하냐 정당하냐는 정권 동안 이루어진 합법적 정책과 통치와 관련된 문제가 아닙니다. 대통령의 정책이 실패해도 그게 범죄는 아니고 욕을 먹고 정치적 책임과 부담으로 돌아올 문제일 뿐이죠. 관련된 것은 그가 법적, 절차적 정당성을 가진 공인인가, 삶에 떳떳한 인물인가 등이라고 봐야할 겁니다. 기본적으로 쿠데타 수괴는 통치의 정당성이 없습니다. 또한 익히 알려진 많은 국가권력을 사유화하여 불법 사용한 범죄의 주인공이기도 하고요.


탕탕절과 운지의 차이는 그러한 지점에서 나옵니다. 똑같이 대통령이었던 사람의 죽음이고 똑같이 조롱, 희화화 하는 표현이라고 같다라고 본다면 그건 피상적인 요소만 보고 단순 비교한 거고, 이는 좋게 말해야 기계적 중립, 정확히 말하자면 맥락의 무시에서 발생한 편파이고, 사리분별을 못한 겁니다. 분명 다른 것이기 때문이죠. 선출직 대통령과 쿠데타 독재자라는 차이는 신념의 충돌이 아니라 팩트의 문제입니다. 사실의 문제라는 거죠.



이런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머리가 나쁘거나 알면서도 일부러 하는 걸 겁니다.


차라리 둘 다 고인드립이나 혐오표현이기 때문에 쓰지 말자, 더 점잖은 방식으로 그의 행적과 과거를 올바른 비판으로 판단하고 평가하자라고 한다면 그나마 중립적이고 합당하다는 말이라도 들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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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기무사, 촛불집회때 계엄검토..12·12 군사반란과 닮아"

http://v.media.daum.net/v/20180706093916554
"광화문 3개 여단 배치" 촛불시위 때 계엄령 구체 계획 짰다
http://v.media.daum.net/v/g3aqkWrpQe
"광화문에는 공수부대 투입"..구체적 '계엄군 편성안'까지
http://v.media.daum.net/v/20180706085144700

이철희 "기무사, 탄핵심판 때 위수령·계엄 검토"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7/05/0200000000AKR20180705168500001.HTML
기무사, 세월호 유족 성향파악에 과거캐기까지…‘맞불집회’도 조장
http://mn.kbs.co.kr/news/view.do?ncd=4003029
기무사 세월호 TF 대부분 현직에…장성도 포함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851967.html
기무사 ‘세월호 사찰’ 첫 확인…단원고에 숨어 일일보고 했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851520.html
추미애 ‘계엄령 경고’가 사실로…이철희 “당시 영관급 군인 제보”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5450
군인권센터 "軍 서울시내 장갑차 500대 보내려 했다···삼군사령부도 관여"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11&aid=0003341385&sid1=00



이 사실은, 군대에 여전히 국가 반역자들이 남아 있고, 언제든 반세기 전의 영광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한 한국의 헌법과 체제를 정면 부정하는 행위로, 반체제분자들이 군에 암약하고 있으며, 실질적 권력과 군사적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대한민국의 진보 세력을 모조리 종북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인식으로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국민을 '적'으로 본다는 것이고, 군대를 끌고 서울 수도를 점령한다는 것과, 그동안 북한에 대한 경계와 대비에 공백이 생긴다는 것은 마치 12.12 사태를 연상시키지요. 그 당시 전두환, 노태우는 쿠데타를 성공시키기 위해 전방부대마저도 빼서 쿠데타에 동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계획은 군, 극우보수에서 항상 팔아먹는 북한에 대한 견제와 안보를 등한시한, 종북적 행위이자 반체제적 반역행위인 겁니다. 



이 자료들이 보여주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국내 정치 문제에서 군이 동원된다는 최악의 사태에 이들의 사상과 가치관, 목적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그것이 한국과 국민들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반체제적이고 반국가적인 반역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북한이 일으키는 한국인에 대한 피해와 인명손실보다 한국 군에서 발생시키는 한국인에 대한 피해와 인명손실은 더더욱 거대하죠. 휴전 협정 이후 한국인을 가장 많이 죽인 것은 북한이 아니라 한국군이었죠.



물론 이 계획이 실제로 실해외거나, 명령에 따라 실질적인 행사가 가능했을 거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이 보여주는 바, 한국의 군대엔 그 시절 그 사상을 가진 반국가적 반역자들이 암약해 있고, 그저 행동하지 못하고만 있다는 사실이죠.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고 치명적인 만큼, 이러한 반역자들을 걸러내고 숙청해야 합니다.


사실, 한국의 군대는 단 한번도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숙청, 숙군을 당한 적이 없죠. 단지 정치권력의 비호와 견제를 받는다는 전제 하에서 예전과 같은 전면적이고 구체적인 권력탈취 행위를 자제할 뿐이지. 실제로 하나회가 날아간 것도 김영삼 때일 뿐이고, 그들과 같거나 비슷한 사상과 가치관, 인맥관계로 맺어진 놈들은 여전히 군대에 있습니다.


그런 만큼 군대의 물갈이는 제대로 된 적이 없었죠. 여전히 안보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적 프로파간다의 역풍을 맞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만큼은 절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단호하고 확실한 숙청이 있어야만 합니다. 계획에 대놓고 진보=종북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건 그만큼 그들의 인식 수준과 정국 판단력이 5.16 당시의 박정희보다 못하다는 걸 증명하고 있죠.


아무리 군사력으로 밀어버린다 해도 수 백만, 천만 단위의 국민들을 밀어버릴 순 없고, 세월호 유가족을 시찰하는 헛짓거리는 왜 하는 지 의문이며, 힘으로 한다고 해도 국민들을 상대로 국가적 반발을 맞아 갈려나가기 싫으면 유화책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죠.


즉, 그들의 인식 수준이 본질적으로 반세기전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진보=종북? 이런 규정과 표현은 극우보수의 정치꾼들이나 선동꾼, 일베틀딱들이나 쓰는 거지 실제적 보안상의 이유나 가치는 전혀 없습니다. 왜냐? 실체가 없는 허구이거나, 혹은 이미 박살났거나 관리 가능한, 이미 알고 있는 세력(통진당과 그 계열)이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작전계획 문건에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는 건 한국 군부의 현실인식 수준이 딱 그 정도 수준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한국 군대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놈들의 사고방식 수준이 사회운동은 진보고 진보는 종북빨갱이고 종북빨갱이는 공산당이며, 매국노에 종북좌파, 북한 간첩.. 뭐 이런 수준이라는 거죠. 



실제로 실행해봤자 여러 문제점과 역풍, 심지어 군 내부에서의 반발마저도 있을 겁니다. 아무리 군대 애들이 병신이라고 해도, 앞서 까댄 것과는 다르게 진짜 정국 판단력이 개쓰레기일 리는 없죠. 그렇기 때문에 실행하지도, 해봤자 성공 못했을 거라 보긴 합니다만, 그러한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사상을 가지고 있고, 그걸 계획으로 남기는 등(심지어 대선 때 추미애가 위수령 관련 이야기를 꺼냈음에도 불구하고 몇달 뒤 계엄령으로 관련 문서를 남겨대는 짓까지..) 실질적인 증거가 있을 정도로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이들은 내란 모의를 한 국가 반역자들이고, 반국가, 반헌법, 반체제적 가치관을 가진 족속입니다. 또한 그런 위험한 불순분자들이 실질적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국가 안보에 심대한 위험성을 내포한다는 말이고 이걸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의 체제와 헌법을 부정하고 한국을 혼란스럽고 위험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북한에 이익을 준다면, 한국에는 엄청 많은 종북이 있는 셈이고, 그 중에 한국 군 지휘관, 기무사가 빠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들은 국보법으로 처벌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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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친필 지시… ‘역사왜곡 시정요구는 북괴의 배후조종’

http://newstapa.org/32708


뉴스타파가 1980년대 초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파문 당시 생산된 외무부 비밀문서(작성된 지 30년이 지나 비밀해제되어 지난 3월 31일부터 일반에 공개됨)를 분석한 결과 겉으로는 일본 정부에 강하게 항의하던 전두환 정부가 막후에서는 일본의 역사 왜곡에 눈을 감거나 심지어 동조하는 모습까지 보인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중략)


2년 뒤인 1984년,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이 여전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전두환 정부는 2년 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습니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직접 손으로 써서 외무부에 내려보낸 문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는 북괴가 조총련을 이용 일본 좌익계 노조 및 지식인을 이용 한일간의 이간을 노리는 바 한국의 언론은 이에 편성(‘편승’을 잘못 쓴 것으로 보임)하지 않도록 협조 하시요.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을 시정하자는 주장이 북한의 배후 조종을 받은 행위라는 거였습니다. 한국 정부의 저자세를 알았던지 일본 정부는 2년 전과는 반대로 한국 정부의 요구대로 교과서를 수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경하게 나왔습니다.


(후략)


당연하지만 북괴의 배후조종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음모론적 주장, 혹은 정신병적 주장입니다. 위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보수세력이 아무리 진보와 좌파를 보고 나라를 팔아먹네 어쩌네 해도 실제로 나라를 팔아먹은 놈들은 죄다 보수세력이라는 겁니다. 당장 그들이 찬양해 마지 않는 전두환부터가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는 짓을 했죠.


국가 안보를 위한답시던 전두환의 저딴 짓 덕분에 일본의 역사왜곡은 그대로 시정되지 않고 수 십년 동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덕에 현재 일본의 극우화는 아주 공고할 정도가 되었고, 일본의 젊은 층도 자국의 제대로된 역사를 배우지 못하고 있죠.


어디 전두환이 나라 팔아먹을 짓 한게 이번 한번 뿐일까요?



아닙니다. 12.12사태때 전두환과 노태우가 어떤 짓을 했는지 생각해보면, 그 놈이 나라를 팔아먹을 짓을 한 게 한 두번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죠.


일단 우리나라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최전방 부대 병력의 동원이 필요할 경우엔 한미군사동맹 협정에 의거해 한미연합사령관의 사전 동의를 얻어야만 가능합니다. 당시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암살을 당하며 국내는 엄청난 혼란상태였으며, 그 김재규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것인지, 계획적으로 저지른 것인지, 계획적이라면 북한의 사주를 받고 저지른 것인지 알 수 없었던 상황이기 때문에 국내에선 북한의 남침에 대한 위기감이 매우 팽배해 있었던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치적 이득, 쿠데타를 성공시키기 위해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려고 최전방의 병력을 무단으로 빼서 자신의 개인적 이익에 동원한다는 건 무지막지한 미친 짓이고 매국노나 다른 없는 정신나간 짓입니다. 노태우의 이 정신나간 빨갱이짓으로 그 놈은 하나회에서 전두환 다음의 2인자가 되고 나중엔 대통령까지 되었죠.


중요한 순간에 북한의 남침마저도 무릅쓰고 자신의 전방병력을 무단으로 빼돌려 써버렸으니까요. 역사에 if는 없고 실제로 일어나진 않았지만, 만약 이때 북한이 남한에 공격을 해왔더라면 진짜로 최악의 사태가 됐을 겁니다. 당시 국군은 반란군 놈들 덕분에 완전히 개판이었던 상황이었으니까요. 



쉽게 말해서 국가의 안보를 파괴하며 자신의 개인적 이득을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고, 그 과정 속에서 무지막지한 미친 짓인 최전방의 병력을 무단으로 빼돌려 쓰는 짓을 한 게 바로 전두환입니다.


그러면서 안보? 국방? 개소리죠. 보수라는 작자들이 이 두 단어를 말할 자격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랬던 전두환은 나중에 김일성 주석님 운운하는 손편지를 보냈죠. 이후 NLL 논란 때 노무현을 깍아내리기 위해 있지도 않은 김정일 위원장'님'자 붙혀가며 조작을 했던 것과 대비해서 생각해보면 보수들의 수준이라는 건.. ㅉ





새누리당 지지하는 많은 유신노예, 유신좀비들은 이런 생각 가진 사람들 많을 겁니다. 진짜로요. 괜히 유시민이 박근혜가 나라를 팔아 먹어도 35%는 지지할 거라는 말을 했겠습니까? 독재기에 그 세력들에게 세뇌를 당한 이들이니 그럴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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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집단을 이루기 시작했을 때를 생각해봅시다. 인류가 집단을 이루는 것은 그것이 더 안전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선사시대가 지나고, 인류가 자기 혈족이 아닌 다른 집단과 합쳐지면서 점점 더 거대한 무리가 되어감에 따라 일종의 규칙이 생겨났습니다. 사실, 이 규칙이라는 것은 사람이 둘 이상 있다보면 암묵적으로 생겨나기 마련인 데, 이러한 것이 특정 집단에게 오랜 기간 이어져 내려오면 그것은 관습법의 형태를 띄게 됩니다.


세계 어딜 가도 자기 집단 내의 살인은 매우 큰 죄로 여겨졌고, 도둑질과 강도 또한 마찬가지로 처벌 받아야 할 죄로 여겨졌습니다. 그것이 아무런 잘못이 아니거나, 처벌 받지 않는다면 공동체는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너도 나도 살인을 하거나, 너도 나도 도둑질을 하게 된다면 더 이상 서로를 믿을 수 없고 의심과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떠밀려지듯 범죄에 빠질 테니까요.


그러한 규칙이 명문화 되면 그것은 명문법, 법이 됩니다. 이러한 법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어겨서는 안 될 것으로 여겨졌으며, 이는 곧 집단 구성원 개개인은 물론 집단 자체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을 띄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집단이 더욱 커지고 복잡하게 되면서 그 집단을 이끌기 위한 현명하고 강한 자들이 생겨났는 데, 이는 곧 정치라는 것을 낳았습니다.


그 정치가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은 자기 집단을 위해 노동하는 자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강한 권력과 존경을 받았고, 그 권력은 잘못 휘둘러 졌을 경우 집단의 생존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으며 잘못된 정치는 실제로 그 집단을 파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인물과 올바르게 사용된 권력, 정치는 언제나 집단을 발전으로 이끌었지요.


정치가는 강한 힘을 가졌으나, 그 자신은 역시 개인에 불과합니다. 그가 아무리 강한 힘을 가졌더래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결정에 반발하고 그에게 분노한다면 정치가 또한 죽거나 쫓겨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그는 물론 그를 따르는 무리조차 포함하죠. 그렇기 때문에, 그 정치가가 순수히 다수를 위해 일하고자 하는 신념을 가지고 정치를 하든, 자신의 권력욕과 명예욕, 재산을 위해 일을 하든 대개 다수를 위하거나 위한다는 명목을 내보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를 무시하고 자신과 소수만을 위한 정치를 했던 이들은 역사에서 많은 변을 보게 되었고 그 형태는 폭동, 암살, 혁명, 쿠데타 등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은 국가의 역할과 정치의 목적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데, 국가란 국민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정치가는 다수의 국민들을 위해 봉사할 것을 목적으로 주어졌다는 것이죠. 정치인과 국가는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고,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권력은 국가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의 역할과 정치인의 목적은 서로 곂쳐지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국가의 역할과 정치의 목적은 따로 분리해서 볼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며, 정치인은 그것을 직접적으로 이루어내기 위한 도구로서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할 수도 있는 데, 국가나 정치나 결국 모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존재한다는 겁니다. 국가가 국가 구성원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보호하지 못해주며 정치인들은 소수의 이익만을 위해 노력하고 다수에게 봉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국가이고 잘못된 정치인인 것입니다.


그러한 올바르지 못한 국가와 정치는, 그러한 어색한 형태의 집단은 필연적으로 멸망, 혹은 후퇴를 향해 달리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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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민족주의와 역사에 대한 담론은 오랫동안 보수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민족주의자나, 역사에 대한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역할, 그러한 담론은 보수들이 주로 이끌어왔죠. 그런데 이 나라는 참 이상하게도, 보수는 민족주의자도 아니고, 역사를 왜곡하려들며, 오히려 진보가 민족주의적이며 역사를 외치고 있다는 점이죠.


이러한 이유는 보수가, 사실은 세계적 조류에서 전혀 정통보수라고 부르기 민망한 이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한 그들은 보수적 색채를 몸에 바른, 기회주의자들이었죠. 현재의 주류보수를 차지한 이들의 정신적 아버지는 이승만입니다. 그리고 이승만은 지독히도 권력욕이 많았고 기회주의적이었죠. 그리고 그 이승만을 지지한 것이 바로 친일파들이었습니다. 이승만에게는 힘과 돈이 필요했는데, 그것을 이루어 줄 것들이 바로 친일파들이었죠.


그리고 친일파들은 역시 일본에 빌붙어 아부하고 한 자리 얻어 일제의 충실한 개로서 앞잡이 노릇하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시대에서 어떻게 그 지위와 부를 가지고 있었겠습니까? 일제에 반대했던 이들은 고문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재산을 몽땅 빼앗기던 시대에.


친일파들과 이승만은 현재 주류 보수주의자들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정희가 남긴 유산도 있지만, 짧게 그들의 생존에 도움이 되었던 존재라는 설명으로 넘어가고, 그들에게 민족주의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민족을 배신한 작자들이 민족에 대한 애착과 사랑이 있을 수 없죠. 같은 민족을 팔아먹으며 부와 권력을 얻고 그 습관 그대로 이승만에게 들어붙어 겉으로만 친일파 아닌 척, 국민, 민족을 위하는 척 했을 뿐이죠. 혹은 정권의 부족한 정당성을 이유나 반대파에 대한 물타기 형식의 공격을 위해.(지금도 그러죠, 그리고 아직도 먹힘.)




정상적인 진보주의자라면 독재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승만 때부터, 박정희, 전두환 때까지 꾸준히 투쟁을 벌여왔고,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할 권리와, 그것을 보장해야할 정부의 의무 및 책임을 주장해왔지요. 그들이 민족주의적인 이유야 스탈린주의의 극단적 민족주의를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도 있지만, 이미 일제시대때 얻은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그들은 같은 민족끼리 독재하고 탄압하고 고문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어쩌면 이러한 민족주의는 일제시대 때부터 봐왔던 같은 민족끼리의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독립을 한 뒤에도 똑같은 짓꺼리 하고 있으니 이게 어디 맞는 아귀겠냐는.. 



부당하게 권력을 잡은 승자들은, 그 부당성 덕분에 권력의 정당성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박정희나 전두환의 정권이 역시 그러하죠. 그러한 정당성을 위해 그들은 하나의 수작을 부리는데, 그게 바로 민족주의를 자극하거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입니다. 전두환 정권 시절 국풍81이 딱 그것에 들어맞죠.


원래 정통성, 정당성이 결여된 권력들은 그 컴플렉스를 해소하기 위해 역사적 권위와 전통적 이미지를 차용하길 좋아합니다, 전두환의 정권은 그 정통성과 정당성이 떨어졌고, 국풍81이라는 대규모 축제를 통해 그것을 해소하려 했지요. 물론 단순히 그런 목적 뿐만은 아니고, 70년대 중후반부터 대학가에서 마당극, 탈춤과 같은 민족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상승해왔는데, 80년대 초반 당시의 군사독재에 대항하는 민족주의 및 사회주의적 지적 풍토와 결합되어 민족민중예술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등장했죠. 국풍81이라는 축제는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5공이 반체제와 저항의 상징문화를 관제로 포괄해버리겠다는 의미가 되었지요.


애당초 민족을 팔아먹으며 생존한 족속들에게 있어서 민족주의라는 것은, 우민들을 통제하기 위한 프로파간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들 스스로가 민족에 대한 애착이 있었느냐는 의심해봐야할 것이고, 민족주의를 앞의 예시와 같이 이용해먹는 것을 보면 그 근거가 됩니다.


역사왜곡은 아주 당연하게 이루어지는데, 5.16군사정변을 5.16군사혁명이라 이름 붙히고 교과서에 등재시키거나, 독재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며 조작된 사건을 마치 진실인양 기술하는 등이 그러합니다.


그런 식으로 부당한 권력을 잡은 이들은 그 권력에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하는 수작을 부렸지요.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그들에게 역사란, 자신의 권력을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지, 그 어떤 의미도 없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권력은 최고의 가치이며 그것을 위해선 역사도, 민족도 팔아먹고 조작할 수 있죠. 그들 권력의 아버지격, 정신적 지주격에 대한 신성불가침이 있을 뿐입니다. 물론 그것도 권력을 지키는데 독이 된다면, 당장이라도 버릴 수 있는 것들이죠. 권력을 위한 지독한 마키아벨리즘적 인간군상들.



이러한 연유로, 진보주의자는 역사에 대한 중요성 또한 외칩니다. 기실 그것들이 민족주의 사관에 기대고 있다는 점은 그렇다쳐도, 그것을 조작하고 왜곡하여 자신의 권력기반으로 사용하는 것보다는 더 없이 순수하고 바람직하죠. 민족주의 사관은 역사함이 품은 여러 사관들 중 하나일 뿐이니깐, 적어도 학문적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있으니깐.


오늘날에도 진보주의자들은 민족과 역사를 외칩니다. 사실 그러한 것들은 보수주의자들의 전유물이지만, 우리나라에선 그 보수라는 작자들이 죄다 정상적인 보수가 아니기 때문에(기실 보수라고 하기엔 민망하지만 그냥 그렇게 불러주는 겁니다.) 오히려 진보들이 민족과 역사를 외쳐대지요. 아이러니합니다. 스스로 보수라 말하는 적과 싸우기 위해 보수적 가치를 진보적 목숨을 걸고 지킨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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