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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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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23.01.07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 받지 않는다. 6월 혁명은 성공했는가.
  2. 2022.11.06
    일본과 경상도의 유사점 및 착취적 패권의 관성.
  3. 2016.04.12
    나라를 팔아먹은 보수세력. 전두환과 일본의 역사왜곡.
  4. 2014.04.29
    정말로 이상한 진보, 보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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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쿠데타는 처벌 받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걸주를 몰아내고 새로운 왕조를 창건한 것도 쿠데타지만 처벌받지 않고 폭군을 물리친 건국 서사로 인정 받는다. 망해가는 고려가 개혁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버리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도 건국왕의 업적을 말하지 쿠데타의 수괴라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히 역취순수했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 그들은 성공했고 승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승자가 승리를 굳히는 건 모든 이들이 그 체제를 긍정하는 때이다. 정확히는, 그 체제를 부정하지 않을 때이다. 만약 고려를 그리워하던 이들이 조선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각지에서 변란이 일어났다면 조선은 어떻게 대응해야 했을까? 역적 이성계의 세력을 몰아내겠다고 일어난 이들을 모두 죽여 없애야했을까?

 

그러나 민초들은 조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고, 고려와 왕씨 왕조를 어떻게 생각했든 결국 그들은 저항하지 않았고 조선을 받아들였다. 마음 속으로는 조선과 이성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언정 그것은 규합되고 행동으로 나설 정도의 것은 아니었다. 성계탕은 단지 그들의 불편한 마음의 발로일 뿐이지 이성계를 찢어 죽이고 싶다는 증오의 피상이 아니었다.

 

쿠데타, 역성혁명으로 만들어진 체제는 본디 사람들에게 인정 받아서 정당화 된다. 역사는 승자가 쓰는 것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우리의 쿠데타와 역성혁명은 정당했다고. 그리고 그 정당함의 근거는 그 체제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그 체제를 받아들였음으로 증명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 하지 않는다는 말이 역사적 사실에 가까운 판단이라는 것이다. 정당성을 만들지 못하고 역사의 승자가 되지 못한, 중과부적인 왕조와 국가들은 아주 짧은 기간만 존속하고 사라졌다. 그 짧은 기간 때문에 그들의 존속은 별 관심을 못 받을 뿐 그들은 실패한 것이다.

 

 

86년 6월, 한국은 독재를 끝장내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사실일까? 국민들은 전두환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대선을 치뤘고, 양김의 갈등 끝에 노태우가 당선됐다. 노태우의 정치와 정책들은 독재의 정통성을 이어갔다고 평가하긴 어렵지만 자신의 권력을 근거했던 쿠데타를 부정하진 않았다.

 

이후 김영삼 시대에나 겨우 그들은 법정에 설 수 있었고, 사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결국 집행은 취소되고 그들은 사면받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게 가장 큰 문제 지점이다.

 

법원에서 어떤 선고가 내려졌든 독재와 반란의 핵심을 살려두는 것은 아주 나쁘다. 그들이 공개적으로 사죄하고 반성하여 세력을 무너뜨렸다면 달랐겠으나, 전두환은 자신의 범죄를 반성하지 않았다. 처벌받지도, 반성하지도 않았기에 그들이 만들고 형성시킨 독재와 반민주의 정신은 살아남아 한국 사회의 중핵을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우리가 정말 독재를 무너뜨리고 그 정신을 끝장냈다면 전두환은 살아있어선 안 되고, 설령 그렇다 해도 철저한 책임추궁 하에 비참한 삶을 살다 죽었어야 했다. 부와 존경받은 채 천수를 누릴 게 아니라.

 

인정해야한다. 한국인들은 독재를 무너뜨리지도 못했고 그 정신을 끝장내지도 못했다. 독재가 무너진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인 다수가 그것을 거부했기 때문이지만 그러한 이유는 단지 한국이 자본주의 국가였기 때문이다.

 

경제를 성장시키는 목적을 지닌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제적 성장은 그것의 재투자로 이어진다. 더 높은 성과와 효용을 발휘하기 위해서다. 더 고도화된 경제시스템과 효율적인 부의 창출을 위해서 구성원들은 교육을 받아야 했고, 이는 필연적으로 자유를 추구하게 될 수밖에 없다. 정치적 자유는 경제적 자유를 기반으로 한다. 가진 게 없는 이들은 힘이 없고 힘이 없는 자들은 요구할 수 없다.

 

한국의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교육 받은 국민들은 독재보다 더 나은 체제를 추구했던 것이고 그 이유와 사유가 어떤 것이든 구조적으로 독재를 거부할 토양이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독재 시스템이 더 공고하고 강력하게 통제할 수 없었던 기술적, 제도적 이유와 한국이 본래 민주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헌법에서부터 그러한 성질의 문장으로 한국의 체제를 규정했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아무리 헌법과 법률에서 반민주적인 성질의 것을 적어놓았다 하더라도 민주주의 국가로 출발한 이상 그 내용을 전면적으로 뒤집지 않는 한 민주주의에 검은 색칠을 하고 부품을 갈아끼운 것일 뿐이다. 가령, 결국 투표를 해야 했다던가 언제 어떤 시대의 한법이든 한국 헌법 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라는 문장은 단 한번도 지워진 적이 없다. 그것이 한국이 본질적으로 민주주의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당위가 되었다.

 

즉, 전두환 정권이 무너진 것은 그들이 더 강력한 독재를 시행할 능력과 기술이 없었고, 경제성장에 따라 국민들이 더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그 결과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와 열망 역시 강해졌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이것이 올바르고 완벽한 정답은 아니지만 이러한 관점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독재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다. 전두환과 노태우를 법정에 세우고 사형을 선고하는데 성공했지만 집행은 실패하고 사면했다. 독재의 하수인들을 골라내 불법적으로 얻은 부와 권력을 회수하지도 못했고 강력하게 처벌하는데에도 실패했다.

 

이는 한국인들이 승리에 취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의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정치적, 법적, 제도적 방식으로 처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기 때문에 그러한 요건이 되지 않거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사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 독재를 긍정하는 국민들이 약 절반은 되기 때문이다.

 

최소한 그 비율은 현재까지도 30%는 되며, 경우에 따라 독재적 가치의 위험성보다 다른 가치를 더 우선시하는 이들이 합세하여 약 50% 안팍까지 도달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쿠데타는 그렇게 불법이나 불법적이지만은 않은 것이 되었다. 이성계는 단지 역사적 상징일 뿐이다. 실질적인 힘은 독재자와 그들의 정신이 살아남아 지배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에 있다. 독재자 중 한명은 반인반신이 되어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그 신화는 자식에게까지 이어져 숭앙 받았다.

 

성공한 독재는 처벌하지 못한다며 살아남았고, 부와 존경을 받으며 천수를 누리다 죽었다. 그의 자손은 그 부와 영향력을 통해 부유한 삶을 살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성계가 쿠데타를 일으킨 주역이지만 그를 쿠데타 수괴라 평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역사는 승리한 자가 기록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그렇다. 쿠데타라는 군사반란, 국가반역이 제대로 청산받지 않았기에 그들은 힘을 잃지 않았고 지배적인 위치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힘을 통해 정치적 승리를 할 때마다, 정권을 얻어낼 때마다 역사를 새롭게 기록하고자 하는 역사 수정주의적 시도가 있었다.

 

군사반란을 구국의 결단으로 포장하고, 성공한 쿠데타라며 처벌할 수 없다고 말이다. 쿠데타를 통해 만들어진 독재정권이 그렇게 정당하다면 한국 사회는 쿠데타를 권장하는 사회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단지 그들은 쿠데타 세력에 의해 이권과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이 싫기 때문에 새로운 쿠데타를 긍정하지 않을 뿐이다. 그들의 힘과 부의 원천이었던 과거의 쿠데타를 긍정하고 정당화하는 것은 그들에게 도움이 되기에 하는 것이지. 물론 그들에게 이익이 된다면 새로운 쿠데타는 언제든 있을 수 있다. 실제 쿠데타 시도는 몇년 전 분명히 있었다.

 

이번에도 5.18은 교과서에서 사라진다는 말이 나왔다. 정권을 잡은 승리자가 역사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그들의 정신적 근간을 긍정하고 정당화하는 쪽으로 기록하려는 것이다. 그 당시 부와 명예, 권력을 가진 이들은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았고, 사회의 지배적 위치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사상은 지배적 사상이 되어 우리 세대 독재의 정신을 가진 후예들을 양산하고야 말았다.

 

대한민국 헌법 1조를 긍정한다면 그것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체제는 어떤 성과를 일궈냈든 긍정할 수 없다. 그것을 역사화하여 그러한 사실이 있었다. 라고 하는 것이라면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것을 어쩔 수 없었다거나, 필요했다며 정당화한다. 그들은 헌법 1조에 살해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본인들은 절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다시 질문을 던지겠다.

 

한국 사회는 정말 86년 6월, 독재에게서 승리를 거두었나? 6월 혁명은 성공했는가?

 

성공했다면 왜 패배자들은 살아남았고, 이 사회의 권력자로 기득권을 행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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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야기할 것은, 이 글은 경상도나 경상도민을 비하하거나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경상패권주의, 혹은 영남패권주의라 불리는 그것에 대한 비판과 그게 어떻게 아직도 남아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글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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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경상도 지역의 유사성이라 함은 그들이 특정 지역을 희생자로 삼아 착취를 해왔고, 그러한 제국주의적 착취를 기반으로 패권을 형성하는데 기여해왔다는 겁니다.

 

일본의 경우 군사적, 경제적, 기술적, 지적 우위를 기반으로 조선을 침략하여 식민지화하며 식민지 조선의 인적, 물적 자원을 자국의 유지와 발전, 전쟁 수행에 투입했었죠. 비록 일본의 군국주의가 지속 가능한 체제는 아니었지만 식민지에서 착취한 자원들이 일본제국에 큰 역할을 했다는 건 부정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이는 경상패권주의, 혹은 영남패권주의의 형성과 유지와 유사한 면도 있습니다. 가령, 군사적으로는 박정희의 쿠데타가 성공하여 정권이라는 국가적 권력의 실제적 총체를 장악했다는 점,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겐 군-검-경-안기부의 무력과 법적, 정보적 우위의 독점 체제를 통해 얼마든지 솎아낼 수 있었죠. 정권을 장악한 독재정권이었기에 국가의 자원을 동원할 수 있었고 지역주의 감성에 의해 국가 요직을 특정 지역 출신에게 몰아줄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경쟁 지역, 그리고 선거 당시에서 꾸준히 위협적이었던 김대중의 호남 지역에 대해서는 불이익을 줘야 했습니다. 호남 지역에 가야할 예산을 경상도 지역에 호혜적으로 전환했고 전라도 출신에 대한 차별을 했었습니다. 이는 지금도 경상도 출신 사회지도층이 서울경기를 제외한 다른 지역보다 비율적으로도 많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에 대한 직접적인 자료가 없어서 그렇지 경상도 지역 인구를 감안해도 정말 많은 경상도 출신들이 인맥이라는 사회적 관계망과 우리가 남이가 감성을 대표로 하여 많은 분야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곤 합니다.

 

요는, 군사적 우위와 정치적 독점을 통해 특정 지역(조선-전라도)의 자원을 착취하여 특정 지역(일본-경상도)에 집중시켰다는 겁니다. 그리고 특정 지역 출신(일본-경상도)에게 특별히 더 많은 특혜를 부여했고요.

 

 

근데 이러한 착취적 패권은 일본의 패전과 함께 일단 한번 끝났고, 한국은 86년 이후 일단 한번 끝났다는 겁니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전쟁 이후 동아시아 지역패권 경쟁에서 한 급수 밀리는 대신 오히려 체급을 크게 키워버리는 혜택을 얻었습니다. 물론 6.25 전쟁이 없었다고 일본을 농업국가화 시킨다느니 어쩌니 하는 건 가능성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한국전쟁이 일본에게 어마어마한 이익을 안겨줬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덕분에 60~90년대 언저리까지 어마어마한 경제성장과 그 이상의 거품경제를 기반으로 엄청난 국력과 위상을 얻어냈었죠. 그러나 거품경제는 끝났고 잃어버린 n0년이라고 하지만 그 당시의 영광을 잊지 못한 이들은 자국의 우월성 입증에 천착하여 극우주의, 역사수정주의 등 다양한 입장으로 드러나고 있죠.

 

이들은 2차 한국전쟁을 일본의 재도약을 위한 기회로 간주하고 있고 여전히 한국을 일본에 종속된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마우지 경제는 그러한 목표를 위한 하나의 방법론이었죠.

 

 

한국 극우세력, 그 중에서도 영남패권주의자들에게 60~80년대 독재 체제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였습니다. 특정 지역을 착취하며 얻어낸 자원의 집중은 질적 풍요를 늘렸고 전근대적 감성과 지역주의적 정서는 같은 경상도인에 대한 끈끈한 유대와 연대를 이전 시대보다 더 고도화된 방식으로 표출시킬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즉, 더 많은 자원이 배당되었기에 더 높은 교육을 시도해볼 수 있고,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은 더 많은 고위직과 핵심직을 얻을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박정희, 전두환부터 지역 및 국가 요직에 동문, 인맥 등 경상도 출신이 임명되고 그러한 위치를 장악하게 되면서 자기 출신 지역에 더 많은 기회와 자원을 배당할 권한 역시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자기 후임으로 인맥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연결망으로 알게 된 같은 지역 출신을 올리거나 남에게 소개할 수도 있었고요. 예컨데 자기 고등학교 동문, 후배를 자기 라인으로 초대하여 밀어주고 올려준다거나.

 

이렇게 경상도 출신은 타 지역에 비해 더 손쉽고 빠르게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더 많은 자원을 독점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서울은 예외고요. 그 중 가장 많은 차별과 착취를 당한 건 호남 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86년도 이후 민주화가 되면서 일단은 영남패권주의가 한번 깨지게 됩니다. 이제 민주적으로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게 되었고 제왕적 대통령제는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었죠.

 

그러나 영남패권주의는 그대로 끝장난 게 아니었습니다. 일본이 패전 이후로 동아시아 지역 내 위상과 국력을 전부 잃어버린 게 아니고 거품경제가 끝난 이후에도 일본의 힘은 여전히 강력한 편이라는 걸 생각하면 부자는 망해도 3대가 간다는 것처럼 이들이 패권을 장악했던 핵심 원리는 여전히 기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패권을 누렸던 역사적 경험과 그 핵심 원리는 관성처럼 남아 그들의 정신적 세계관 및 정서에 여전히 기능하고 있고요.

 

일본인들에게 극우주의, 역사수정주의로 그것이 드러났듯이 경상도인에게도 극우주의, 역사수정주의로 드러납니다.

 

일본은 여전히 강력한 경제력으로 영광의 잔재를 유지하고 힘을 구사하고 있고, 경상도는 인적 카르텔과 독재시절(혹은 그 이전)의 사상적 기반으로 그 시절 그것의 관성이 남아 있는 겁니다. 

 

실제로도 현재 경상도는 전라도보다 배는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고 경상도 출신 상경자들 역시 많으며, 그들이 사회지도층으로 형성해온 사회적 분위기, 혹은 지배적 원리로서의 사상이 강요되었기에 타 지역민조차 그들의 사상을 받아들이거나 영향을 받은 경우가 많습니다.

 

단, 상경자나 이주자의 경우 호남 쪽 역시 오래전부터 인구 유출이 이루어졌기에 많았지만 이들은 고향이 호남과의 연결이 경상도 출신 상경자에 비해 끈끈하지 않은 편이고 그 지위 역시(대개의 상경자들과 비슷하게, 그러나 독재 정권 당시의 인식에 의해 조금 더) 낮은 편이었습니다. 그런 위치와 상황에서 고향과의 연대 및 연결은 더더욱 어려운 편이었죠.

 

 

한국은 식민지 이후 민족적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식민지 당시의 것들을 부정해야했습니다. 거기에 이어진 6.25 전쟁은 한국인들에게 사상적, 세계관적 충격을 가져왔고, 새롭게 재편된 한국인들의 정체성과 사회구조는 식민지 시절과의 어떠한 단절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 일제의 가치는 극우보수를 통해 이어졌고 그들이 이승만에 의해, 그리고 개신교회를 통해 살아남고 이어져왔으며 권력자 등 사회지도층 지분의 다수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단절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여전히 친일파의 생존원리를 담고 있는 한국극우의 사상은 극우보수에 근접하는 지분을 가지고 있고요.

 

하지만 그렇다해도 진보좌파, 혹은 그에 가까운 사상적 가치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그 당시 그것들에 대한 부정과 단절은 요구되었고 더욱 새로운, 현대적 가치들을 요구해왔죠.

 

 

그렇게 현대적 가치를 요구하는 진보좌파와 독재 당시의 가치를 여전히 추구하는 극우보수라는 문법으로 양분화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보좌파는 이전 시대와의 단절을 요구하지만 극우보수는 독재 당시의 사상/세계관의 관성에 의해 작동하는 진영이라는 거죠.

 

즉, 진보좌파에게 한국은 산업시대의 그것에서 벗어나 21세기 현대사회가 된, 혹은 되어야 하는 한국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느냐를 질문한다면 극우보수는 과거의 관성에 그대로 남아 그 당시의 패권에 여전히 향수를 느끼고 있다는 겁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남패권주의는 아주 위험합니다. 물론 모든 경상도 사람이 영남패권주의를 지지하거나 동의하는 것도 아니고, 극우보수적 가치와 세계관에 잠식된 좀비들이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당시의 가치를 지배적 사상으로 하여 한국 사회를 장악하고자 하는 이들과 그것에 동의하는 사람들 역시 많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진보좌파, 특히 호남 지역은 5.18이라는 충격과 그 사건이 큰 영향을 미쳐 극우보수에 대해 강력한 반동을 불러왔다는 점에서 6월 항쟁 이후 민주화된 사회는 기존과 반드시 달라져야 합니다. 이들은 어떠한 이유로든 영남패권이 장악하고 호남을 차별/착취하던 시대와의 단절 및 결별을 요구할 수밖에 없죠. 어떠한 면에선, 새로운(그리고 더 나은) 체제를 요구하는 겁니다.

 

반대로 극우보수는 독재정권에 의해 받은 특혜를 가장 좋았던 시대이자 가장 자부심을 느낄 법한 시대로, 실제로 인적 카르텔을 기반으로 성공하거나 국가 권력의 요직에 접근하기 쉬웠던 환경이 가져다주는 이점을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았기에 그 시대 그 시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여전히 그러한 원리로 작동하는 엘리트 카르텔은 단지 영남패권주의로만 한정되지 않았을 뿐, 그러한 영남패권주의가 아예 사멸하거나 도태된 것도 아니고요. 그저 지분이 축소되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호남이 진보좌파, 좀 더 노골적으로는 친민주당 스탠스를 가진 이유는 독재정권이 만들어낸 영남패권주의와 각종 차별, 멸시, 실제 피로 쌓아온 혈채 때문이고 그렇기에 그 시대의 정체성을 가진 보수당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호남은 산업시대, 좀 더 정확하게는 독재시절 그것에서 결별을 요구하고 추구하는 정서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치에게 당했던 이들이 독일(혹은 비슷한, 특히 강한 국력을 지닌 타국이라도)의 네오나치화를 경계하고 비판할 수밖에 없으며, 그들과 반대 정서와 이념에 반강제적으로 속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요.

 

경상도 지역은(물론 모든 경상도인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그 시절을 리즈 시절로 생각하기에, 그 시대와의 결별은 이단이고 받아들일 수 없는 정체성의 위협입니다. 오히려 그 시절과의 결별과 단절은커녕 그 시절 그것의 관성에 여전히 남아서 작동하는 사회에 가깝습니다.

 

 

일본이 가깝게는 거품경제, 멀게는 제국시절을 그리워하고 그 시절을 정체성으로 삼는 것처럼, 그리고 그러한 정체성이 결별되거나 단절되어야할 기회나 요구가 이미 그들이 장악한 권력의 독점을 통해 강제로 묵살되었던 것처럼 한국 역시 식민지 친일파와 산업-독재시절의 정체성이 결별되지 않았고 단절되어야할 기회나 요구 역시 극우보수가 장악한 권력의 독점과 엘리트 카르텔을 위시로 하여 강제로 묵살되었던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악성으로 여겨져야 마땅한 정체성은 그 반대 세력이 추구하는 바와 다르게, 그리고 그 반대 세력들이 저항하고자 했던 극우보수 독재 추종 세력의 반대 위치에서 반동적으로 가지게 된 사상적 입장과 다르게 여전히 관성적으로 남아 유지되고 있는 셈입니다.

 

이들 극우보수 세력이 민주사회의 시민보다 중세 신민에 더 가까운 이유는 그들의 정서와 세계관이 현대사회보다 전근대적 원리와 감성, 정서가 남아 있던 시절의 그것에서 발전할 이유가 없었고, 단절되거나 결별할 이유 역시 없었으며, 오히려 그 당시가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유리하고 이상적인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본 극우들이 그러하듯이.

 

이들에게 작동하는 원리는 법과 도덕을 근거로 하는 객관적 공정과 정의, 평등의 가치가 아니라 나와 남의 구분을 기준으로 하는 내집단과 외집단의 차별과 거기에서 만들어지는 이익과 손해에 있습니다. 내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외집단을 차별하고 공격하는 것을 서슴치 않고 우리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공정한 기준을 무시하고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여 한정된 자원을 몰아주며, 때때로 불법이나 탈법의 방식을 사용하여 내집단의 공동이익을 추구하고, 내집단의 구성원이 범죄나 비윤리적 방식으로 비판을 받을 때 그것의 옳고 그름과 무관하게 내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보호해주는 식으로요.

 

이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국가 정체성보다 지역 정체성이 더 우선하고, 부족 사회 내지는 전근대적 고립사회에 가까운 연결망 유지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최소한, 그들의 지역 정체성은 다른 지역보다 더 강하고 국가 정체성보다 우선시되는 면도 있습니다. 같은 부족, 같은 마을, 같은 고을을 내집단으로 여기고 거리야 어찌됐든 심리적 연대감이 부족한 다른 부족, 다른 마을, 다른 고을을 외집단으로 여기며 그러한 집단간 차별의식을 기반으로 이익과 보호를 추구했다는 거죠.

 

이것은 대한민국의 보편적 원리를 장악해야할 당위가 있는 가장 강력한 규범인 법과 그것을 보조하여 사회를 유지, 발전시켜야 하는 현대적 도덕, 윤리 기준보다 전근대적인 원리가 먼저 작동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특정 지역에선 다른 지역보다 더 우선되고 더 높은 지분을 가진 채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앞서 서술했던 역사적 이유가 관성적으로 남아 결별, 단절되지 못했기 때문이고요.

 

 

심지어 그러한 사상과 세계관을 가진 이들이 여전히 국내 인구 절반 가까이 장악하고 있고, 국가 권력의 핵심 위치와 사회적 지도층 다수를 차지하고 끈끈하게 유대/연대되어 있기 때문에 여전히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일테고요.

 

그들이 기득권을 장악하고 그들의 이권을 해체시키려고 하는 자들을 적으로 삼아 도태시키려 하며, 그러한 시도가 성공한다면 지금의 상황에서 더 나아질 가능성은 결코 높지 않습니다.

 

지배층은 그 위치에서 존재만으로 지배적 원리를 하위 계층에게 강요하게 되고 그러한 원리와 사상을 받아들이고 동의한 이들만이 지배 카르텔의 허락을 받아 도태되고 밀려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극우보수가 여전히 사회지도층, 국가 권력의 핵심 기득권을 지배 및 장악하고 있다면 그것에 반대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그러한 카르텔을 도태시킬 기회조차 얻기 어렵다는 겁니다.

 

이는 문재인 정권의 개혁 시도가 좌절되고 민주적 방식으로 정권을 빼앗겼다는 것으로 증명됩니다. 민주당이 제시하는 가치와 방향성이 정말 정의롭고 훌륭하고 올바르다고 생각했다면, 최소한 그 반대 세력보다 더 나은 것이었다면 윤석열 정권이 나와선 안 됩니다.

 

그러나 실제 시민들은,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과반수는 문재인 정부가 아닌 기존 극우보수 세력의 지배원리와 사상, 정체성을 선택했습니다. 실제 민주당과 진보좌파가 차지한 자리보다 국힘당과 가까운 극우보수가 장악한 기득권 자리가 더 많고 그들의 지배원리가 성공과 출세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성공과 출세의 원리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죠.

 

당연히 그것만이 정권 유지 실패의 원인이거나 원인의 전부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른 관점과 방향성에서의 해석, 접근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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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친필 지시… ‘역사왜곡 시정요구는 북괴의 배후조종’

http://newstapa.org/32708


뉴스타파가 1980년대 초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파문 당시 생산된 외무부 비밀문서(작성된 지 30년이 지나 비밀해제되어 지난 3월 31일부터 일반에 공개됨)를 분석한 결과 겉으로는 일본 정부에 강하게 항의하던 전두환 정부가 막후에서는 일본의 역사 왜곡에 눈을 감거나 심지어 동조하는 모습까지 보인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중략)


2년 뒤인 1984년,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이 여전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전두환 정부는 2년 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습니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직접 손으로 써서 외무부에 내려보낸 문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는 북괴가 조총련을 이용 일본 좌익계 노조 및 지식인을 이용 한일간의 이간을 노리는 바 한국의 언론은 이에 편성(‘편승’을 잘못 쓴 것으로 보임)하지 않도록 협조 하시요.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을 시정하자는 주장이 북한의 배후 조종을 받은 행위라는 거였습니다. 한국 정부의 저자세를 알았던지 일본 정부는 2년 전과는 반대로 한국 정부의 요구대로 교과서를 수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경하게 나왔습니다.


(후략)


당연하지만 북괴의 배후조종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음모론적 주장, 혹은 정신병적 주장입니다. 위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보수세력이 아무리 진보와 좌파를 보고 나라를 팔아먹네 어쩌네 해도 실제로 나라를 팔아먹은 놈들은 죄다 보수세력이라는 겁니다. 당장 그들이 찬양해 마지 않는 전두환부터가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는 짓을 했죠.


국가 안보를 위한답시던 전두환의 저딴 짓 덕분에 일본의 역사왜곡은 그대로 시정되지 않고 수 십년 동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덕에 현재 일본의 극우화는 아주 공고할 정도가 되었고, 일본의 젊은 층도 자국의 제대로된 역사를 배우지 못하고 있죠.


어디 전두환이 나라 팔아먹을 짓 한게 이번 한번 뿐일까요?



아닙니다. 12.12사태때 전두환과 노태우가 어떤 짓을 했는지 생각해보면, 그 놈이 나라를 팔아먹을 짓을 한 게 한 두번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죠.


일단 우리나라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최전방 부대 병력의 동원이 필요할 경우엔 한미군사동맹 협정에 의거해 한미연합사령관의 사전 동의를 얻어야만 가능합니다. 당시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암살을 당하며 국내는 엄청난 혼란상태였으며, 그 김재규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것인지, 계획적으로 저지른 것인지, 계획적이라면 북한의 사주를 받고 저지른 것인지 알 수 없었던 상황이기 때문에 국내에선 북한의 남침에 대한 위기감이 매우 팽배해 있었던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치적 이득, 쿠데타를 성공시키기 위해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려고 최전방의 병력을 무단으로 빼서 자신의 개인적 이익에 동원한다는 건 무지막지한 미친 짓이고 매국노나 다른 없는 정신나간 짓입니다. 노태우의 이 정신나간 빨갱이짓으로 그 놈은 하나회에서 전두환 다음의 2인자가 되고 나중엔 대통령까지 되었죠.


중요한 순간에 북한의 남침마저도 무릅쓰고 자신의 전방병력을 무단으로 빼돌려 써버렸으니까요. 역사에 if는 없고 실제로 일어나진 않았지만, 만약 이때 북한이 남한에 공격을 해왔더라면 진짜로 최악의 사태가 됐을 겁니다. 당시 국군은 반란군 놈들 덕분에 완전히 개판이었던 상황이었으니까요. 



쉽게 말해서 국가의 안보를 파괴하며 자신의 개인적 이득을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고, 그 과정 속에서 무지막지한 미친 짓인 최전방의 병력을 무단으로 빼돌려 쓰는 짓을 한 게 바로 전두환입니다.


그러면서 안보? 국방? 개소리죠. 보수라는 작자들이 이 두 단어를 말할 자격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랬던 전두환은 나중에 김일성 주석님 운운하는 손편지를 보냈죠. 이후 NLL 논란 때 노무현을 깍아내리기 위해 있지도 않은 김정일 위원장'님'자 붙혀가며 조작을 했던 것과 대비해서 생각해보면 보수들의 수준이라는 건.. ㅉ





새누리당 지지하는 많은 유신노예, 유신좀비들은 이런 생각 가진 사람들 많을 겁니다. 진짜로요. 괜히 유시민이 박근혜가 나라를 팔아 먹어도 35%는 지지할 거라는 말을 했겠습니까? 독재기에 그 세력들에게 세뇌를 당한 이들이니 그럴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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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민족주의와 역사에 대한 담론은 오랫동안 보수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민족주의자나, 역사에 대한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역할, 그러한 담론은 보수들이 주로 이끌어왔죠. 그런데 이 나라는 참 이상하게도, 보수는 민족주의자도 아니고, 역사를 왜곡하려들며, 오히려 진보가 민족주의적이며 역사를 외치고 있다는 점이죠.


이러한 이유는 보수가, 사실은 세계적 조류에서 전혀 정통보수라고 부르기 민망한 이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한 그들은 보수적 색채를 몸에 바른, 기회주의자들이었죠. 현재의 주류보수를 차지한 이들의 정신적 아버지는 이승만입니다. 그리고 이승만은 지독히도 권력욕이 많았고 기회주의적이었죠. 그리고 그 이승만을 지지한 것이 바로 친일파들이었습니다. 이승만에게는 힘과 돈이 필요했는데, 그것을 이루어 줄 것들이 바로 친일파들이었죠.


그리고 친일파들은 역시 일본에 빌붙어 아부하고 한 자리 얻어 일제의 충실한 개로서 앞잡이 노릇하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시대에서 어떻게 그 지위와 부를 가지고 있었겠습니까? 일제에 반대했던 이들은 고문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재산을 몽땅 빼앗기던 시대에.


친일파들과 이승만은 현재 주류 보수주의자들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정희가 남긴 유산도 있지만, 짧게 그들의 생존에 도움이 되었던 존재라는 설명으로 넘어가고, 그들에게 민족주의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민족을 배신한 작자들이 민족에 대한 애착과 사랑이 있을 수 없죠. 같은 민족을 팔아먹으며 부와 권력을 얻고 그 습관 그대로 이승만에게 들어붙어 겉으로만 친일파 아닌 척, 국민, 민족을 위하는 척 했을 뿐이죠. 혹은 정권의 부족한 정당성을 이유나 반대파에 대한 물타기 형식의 공격을 위해.(지금도 그러죠, 그리고 아직도 먹힘.)




정상적인 진보주의자라면 독재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승만 때부터, 박정희, 전두환 때까지 꾸준히 투쟁을 벌여왔고,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할 권리와, 그것을 보장해야할 정부의 의무 및 책임을 주장해왔지요. 그들이 민족주의적인 이유야 스탈린주의의 극단적 민족주의를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도 있지만, 이미 일제시대때 얻은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그들은 같은 민족끼리 독재하고 탄압하고 고문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어쩌면 이러한 민족주의는 일제시대 때부터 봐왔던 같은 민족끼리의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독립을 한 뒤에도 똑같은 짓꺼리 하고 있으니 이게 어디 맞는 아귀겠냐는.. 



부당하게 권력을 잡은 승자들은, 그 부당성 덕분에 권력의 정당성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박정희나 전두환의 정권이 역시 그러하죠. 그러한 정당성을 위해 그들은 하나의 수작을 부리는데, 그게 바로 민족주의를 자극하거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입니다. 전두환 정권 시절 국풍81이 딱 그것에 들어맞죠.


원래 정통성, 정당성이 결여된 권력들은 그 컴플렉스를 해소하기 위해 역사적 권위와 전통적 이미지를 차용하길 좋아합니다, 전두환의 정권은 그 정통성과 정당성이 떨어졌고, 국풍81이라는 대규모 축제를 통해 그것을 해소하려 했지요. 물론 단순히 그런 목적 뿐만은 아니고, 70년대 중후반부터 대학가에서 마당극, 탈춤과 같은 민족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상승해왔는데, 80년대 초반 당시의 군사독재에 대항하는 민족주의 및 사회주의적 지적 풍토와 결합되어 민족민중예술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등장했죠. 국풍81이라는 축제는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5공이 반체제와 저항의 상징문화를 관제로 포괄해버리겠다는 의미가 되었지요.


애당초 민족을 팔아먹으며 생존한 족속들에게 있어서 민족주의라는 것은, 우민들을 통제하기 위한 프로파간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들 스스로가 민족에 대한 애착이 있었느냐는 의심해봐야할 것이고, 민족주의를 앞의 예시와 같이 이용해먹는 것을 보면 그 근거가 됩니다.


역사왜곡은 아주 당연하게 이루어지는데, 5.16군사정변을 5.16군사혁명이라 이름 붙히고 교과서에 등재시키거나, 독재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며 조작된 사건을 마치 진실인양 기술하는 등이 그러합니다.


그런 식으로 부당한 권력을 잡은 이들은 그 권력에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하는 수작을 부렸지요.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그들에게 역사란, 자신의 권력을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지, 그 어떤 의미도 없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권력은 최고의 가치이며 그것을 위해선 역사도, 민족도 팔아먹고 조작할 수 있죠. 그들 권력의 아버지격, 정신적 지주격에 대한 신성불가침이 있을 뿐입니다. 물론 그것도 권력을 지키는데 독이 된다면, 당장이라도 버릴 수 있는 것들이죠. 권력을 위한 지독한 마키아벨리즘적 인간군상들.



이러한 연유로, 진보주의자는 역사에 대한 중요성 또한 외칩니다. 기실 그것들이 민족주의 사관에 기대고 있다는 점은 그렇다쳐도, 그것을 조작하고 왜곡하여 자신의 권력기반으로 사용하는 것보다는 더 없이 순수하고 바람직하죠. 민족주의 사관은 역사함이 품은 여러 사관들 중 하나일 뿐이니깐, 적어도 학문적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있으니깐.


오늘날에도 진보주의자들은 민족과 역사를 외칩니다. 사실 그러한 것들은 보수주의자들의 전유물이지만, 우리나라에선 그 보수라는 작자들이 죄다 정상적인 보수가 아니기 때문에(기실 보수라고 하기엔 민망하지만 그냥 그렇게 불러주는 겁니다.) 오히려 진보들이 민족과 역사를 외쳐대지요. 아이러니합니다. 스스로 보수라 말하는 적과 싸우기 위해 보수적 가치를 진보적 목숨을 걸고 지킨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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