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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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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7.11.25
    사회적 소시오패스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2. 2014.08.30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배경. (1)
  3. 2014.04.03
    비겁한 투쟁 (2)




소시오패스란 기본적으로 감정의 이입을 하지 못합니다. 사이코패스는 그러한 감정이입이나 공감능력이 결여되었고, 이해하지 못하지만 소시오패스는 공감능력이 결여되었으나 이해하기는 하는 정도라고 하죠. 뭐, 그런 차이나 학술적 분석은 별로 중요한 거 아니고..


인간은 타인에 대해 자기 나름의 가치관이나 사상을 통해 판단하고 평가합니다. 이것은 집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고, 그러한 집단은 어떠한 요소와 조건을 가지고 범주화 가능하죠. 인종, 종교, 민족, 정치적 진형, 지역, 혈연, 심지어 장애의 유무 등등마저도.


보통의 대부분 사람들은 모두 정상적인 지적능력과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 그것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가령 팔레스타인 폭격을 웃으며 구경하는 이스라엘인이나, 위안부 피해자를 보는 일본 극우세력, 김대중과 노무현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일부 진보 세력과 대다수의 극우보수, 세월호 피해자를 공격하는 극우보수 등이 있습니다.


너무 사회적으로 국제적인 범위에서 다루는 게 잘 이해가 안 된다면, 학교폭력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정도로만 생각해봐도 충분히 이해가 갈 겁니다.


그들이 피해자, 자신들이 공격하고 있는 당사자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공감을 할 수 있었다면 그들이 그런 행위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러한 이입의 단절이나 공감의 불능이 발생했느냐를 따져본다면, 그들에게 있어서 피해자가 되는 상대방은 이입의 대상이 아닙니다. 혐오하고 증오하는 이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사람은 없죠. 그러한 감정이 이입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공격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많지만, 기본적으로 서로 다르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러한 다름에서 발생하는 무언가 이성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반발심이 생길만한 요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인에게 있어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영토를 얻기 위한 정복과 말살의 대상이고, 일본 극우에게 있어서 위안부 피해자란 자신들의 추악한 역사의 살아있는 증인들이기 때문에 불편한 존재들이며, 세월호 피해자 또한 한국 극우보수에게 있어서 부정부패함과 무능함의 살아있는 상징이자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경우 그들에게 있어서 불편한 존재인 피해자를 말살하고 제거하여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고 그러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불허함으로써 없는 일로 만들고자 하는 실질적으로도 정치적 이익이 있고, 감정적으로도 양심을 버리고 눈 돌리고 무시하면 되는 속편한 상태가 될 수 있다는 목적 때문입니다.


가령 학교 폭력 피해자와 가해자에게 있어선, 피해자는 단순한 약자이고, 강자인 본인들에겐 말초적 쾌감을 주기 때문에 폭력을 휘두르죠. 가해자에게 있어 피해자는 일종의 먹잇감 내지는 사냥감이고, 포식자는 자신의 사냥감에게 이입하지 않는 법입니다. 그 방식과 정도만 차이가 있을 뿐, 원시적 욕구와 발현은 짐승이든 인간이든 큰 차이가 없죠.



하여간, 사회적 소시오패스는 그러한 타 집단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기반으로 합니다. 혐오하고 증오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이입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그들이 어떠한 참사와 피해와 끔찍한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에 몰리든 그들에 대한 조롱이 어렵지 않게 나오는 것이죠.


이는 정의나 도덕과 무관할 것입니다. 도덕이나 윤리에 대한 감정은 사회적 학습에 의해 만들어져야만 하고,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타심을 기준으로 하기를 바라기엔 기준이 될 질서가 부족합니다. 배웠다 하는 사람들이 다른 집단에 대한 소시오패스적 조롱과 표현을 서슴치 않고 어떠한 양심적, 도덕적 가책 없이 내뱉는 것은 그들에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공감과 이입이 단절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죠.


말했듯, 정의나 도덕과 같은 지적능력이 필요한 이성의 활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혐오나 증오, 배척과 심지어는 쾌락과 같은 감정적 요인에 의해 작용하는 심리기제이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정권 당시 진보 언론의 가학성이나 세월호 피해자에 대한 반사회적 조롱과 표현들은 그들이 그 피해자들에 대한 이입이나 공감을 하지 안/못했기 때문이고, 심지어는 필요치 않거나, 더욱이 그것을 죄악과 비슷한 것으로 여겼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적, 이후 정치적 사건과 되는 참사에 대한 그들의 그러한 태도는 대채로 정치적 사상과 관계가 깊겠지요.



정치병이란 정치적 진영과는 무관하게 극단주의적 사상에 경도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그러나 그러나 사상에 경도되기 위해선 감정적(심리적) 반응이 선행되어야 하고, 어떠한 사상이 옳다고 여기거나 그러기 위해 호감을 가지는 등 마음에 들어야 합니다.


따라서 세월호 사건과 같은 참사에서 발생한 소시오패스적인 조롱과 표현들은 그러한 표현을 한 주체들이 호감을 가진 특정한 정치사상을 기반으로 할 것입니다. 원인이 되는 기반이 없다면 그 현상은 발생하지 않거나 다르게 발생하니까요.



민주주의나 자유주의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것이 더 다채롭고 다양하며, 선하고 발전적인 무언가를 낳을 것이라 주장합니다. 하지만 특정 집단이나 개인을 배제하고 배척하며 말살하고자 하는 반사회적 사상이나 가치관은 그러한 요소들에 반대되고 또는 파괴하려고 하죠. 나치와 같은 극단주의 정치사상이 민주주의를 살해했고, 이후 재창건된 민주주의에서 방어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탄생한 것은 민주주의의 약점을 보완한 자기방어적 태도 덕이었습니다.


이 사회적 더 민주적이고 더 자유롭기 위한다면 그러한 사회적 소시오패스를 발생시킬만한 극단적인 사상이나 가치관 따위가 사라져야할 겁니다.



좀 더 덧하자면, 소시오패스적 이입이나 공감 단절은 이성이 아닌 감정적인 것에 가깝기 때문에 그 대상들이 강자이든 약자이든을 가리지 않고, 보편적 선이나 도덕, 정의와도 무관합니다. 즉, 악한 강자(혹은 가해자)에 대해서도 소시오패스적으로 이입이 불가할 수도 있고, 반대로 선한 약자(혹은 선한 피해자)에 대해서도 감정이입이나 공감이 불가할 수도 있죠.


기본적으로 사회라는 시스템 하에서 정상적인 도덕과 윤리 내지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관습적 정의를 가지고 있는 집단 내에서는 피해자나 약자에 대해 더 감정적으로 기울게 됩니다. 심리적으로도 약자를 응원하기도 하고요. 한화가 팬이 많은 이유죠. 그런 사회에서 주로 범죄자에 속하는 악한 강자, 가해자에 대해서 발생하는 이입이나 공감의 결여는 문제가 없고 정상적인 현상입니다.


사회적 안정을 해치는 요소에 대한 배척은 이성적이든 감정적이든 그 사회를 오래 유지 가능하고 윤택하게 해주죠. 이는 원시사회 때부터 행해왔던 행위이고 이는 현대에도 법과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실현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반대인데, 약자에 대한 폭력과 불합리한 처분은 역사가 흐르며 시대가 발전하고 시스템이 발달하면서 점차 줄어들었죠. 이는 당위적으로 그것이 옳기 때문인데, 그러한 견지에서 바라봤을 때, 약자나 피해자에 대한 폭력이나 소시오패스적 감정적 단절, 공감능력의 불능은 사회를 윤택하게 해주지 못하고 집단의 도덕성을 저해하며 더 많은 피해자를 공식적으로, 혹은 관습적으로 용인하고 증가시키게 됩니다. 적어도 일정 이상을 꾸준히 유지하게 만들죠. 따라서 그것을 우리는 반사회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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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ard game becomes violent
The card game becomes violent by srp6685 저작자 표시비영리

그 배경은, 피해자였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예를 들어 왕따나 학교폭력을 들어보죠. 어느 피해자는 왕따와 학교폭력을 겪습니다. 그 고통은 피해자에게 큰 영향을 줬고 그로 인한 고통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피해자라 해도, 똑같은 상황에서 자신과 같은 피해자를 보고 꼭 동질감을 느끼며 도와줘야 겠다는 생각까지 다다르지만은 않습니다.


흔히 피해자가 자신을 괴롭혔던 가해자와 똑같이 되어 다른 약자를 괴롭히는 것을 보고 자신이 받은 고통을 남도 느끼게 하고 싶다는 둥의 보상심리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전 전혀 다르게 생각합니다. 실제로 피해자였던 가해자에게 그러한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혹 저 밑바닥 심리기저에 그러한 보상심리가 있을 순 있겠지만, 가해자의 의식적인 면에서 나의 고통을 이녀석을 괴롭힘으로서 보상받겠다.. 하는 것은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앞서 예시를 들었던 피해자의 이야기를 이어가보자면, 그 피해자는 몇년이 지난 후 신체적으로 크게 나아진 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환경에 어느 정도 잘 적응했고, 친구도 몇 사귀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반의 나보다 더 약한 아이에게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똑같은 폭력을 휘둘렀죠.


그 이유가 뭘까요? 오래전 자신을 보는 것과 같은 자기혐오에서 비롯된 이유? 뭐, 혹시 모르겠군요. 약한 니놈을 보니 예전 내가 생각나서 역겨움을 참을 수 없어. 하는 것일지도요.


하지만 전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당했던 폭력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이에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그 지옥같은 공간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곳에 익숙해져있었음을 의미하지요. 그리고 그 생존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인간성이 파괴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단순히 PTSD라고 보기엔 심각하게 뒤틀린 사람들이 있어요.


학교폭력 피해자도 마찬가집니다. 자신이 당했던 폭력에 익숙해져 있어 자신보다 더 약간 약자를 괴롭힘에 망설임이 없고, 그에 대한 가책도 적습니다. 당하는 것에 익숙해진 만큼 가하는 것에도 쉽게 익숙해지는 것이죠. 폭력에 익숙해지는 것은 강자만이 아닙니다. 그 피해를 받는 약자 또한 마찬가지에요.


피해자였던 가해자들에게 있어서 그런 폭력은 매우 당연한 것입니다.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똑같이. 약자가 강자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에 언듯 당연함을 느낍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어요. 폭력은 나쁘고 타인을 괴롭혀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다르게 반응하죠. 폭력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그것이 이상하다는 것을, 잘못됐다는 것을 마음으로는 못 느끼기 때문이죠.


피해자가 자신을 괴롭히던 가해자와 똑같이 자신보다 약한 약자를 괴롭히는 것은 이중적인 것이 아닙니다. 일관적인 거지.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의 경우라고 봅니다. 홀로코스트와 인종차별이라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자신들이 그것들을 자신보다 더 약한 팔레스타인이라는 약자에게 휘두르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죠.


우리네 일상에서, 윗사람에겐 아부하고 굽신거리지만,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거칠게 대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의 경우라고 봅니다. 자신이 그런 경험이 많으니, 자신보다 아랫사람에게 그들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못하는 겁니다.


그것에 익숙해진 나머지 그것이 당연하다 느끼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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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anunmankm.tistory.com BlogIcon 버크하우스 2014.08.30 17:3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잘 보고 가요. 좋은 하루 되세요. ^^





자신의 권리는 자신이 투쟁하여 얻어내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대신 싸워줄 수는 없지요. 그러한 신념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싸워나가는 사람들은 분명 대단한 사람이고, 가치있는 행동입니다. 그렇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도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 세상인지라, 투쟁을 하긴 하는데 엉뚱한 대상을 잡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관철시키려는 자들의 비겁한 투쟁또한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재특회가 있죠.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사람의 시민 모임이라는 명칭의 재특회는, 명칭 그대로 재일 한국인들에 대한 특권을 허용하지 말자라는 주장(을 포함한 극우 주장을 남발하는 멍청한 주장)을 하는 단체입니다. 실제로 재일 특권이 있기는 하다만, 세금을 내지 않는 일부 조선인 단체, 주민세를 일본인의 절반, 일본 국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에서 국민연금이 지급 되는 등 대부분 세금, 돈과 관련된 것들이 많은데, 어쩌면 이것들이 일본인이 보기에 매우 불평등하고 그렇기 때문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타 다른 원인, 명분 등을 제끼고 봐도, 그들이 하는 주장은 언제나 재일 한국인에게 한다는 겁니다. 이런 것들은 응당 일본정부에게 항의해야할 것을, 요상하게도 재일 한국인에게 한다는 겁니다.


이상한 주장을, 이상한 대상에게 하고 있는 셈이죠.


이런 면은 우리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주로 군대문제에 있어서, 여성들에게도 군대를 가야한다는 주장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의미가 없지요. 일단 사병(전투병)으로서의 여성은 가치가 없고, 여성을 위한 시설과 물자를 보급해주기 위해서 더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여성은 부사관과 장교만 허용되지요. 


여군이 있는 국가는 대부분 여성의 전투병을 허용치 않습니다. 해본 적은 있지만 의무병 등 비전투 요원으로 돌린 이스라엘이나, 미군도 할까말까 하는 수준이고, 노르웨이는 정치적인 이유로 평등을 실현시키기 위해 여성을 전투병으로 훈련시키지만, 그곳의 환경은 우리나라와 전혀 다릅니다.


실제 전쟁의 위험이 있다면 그곳도 여성을 비전투 요원으로 돌리고 여성징병제를 폐지하는 쪽으로 발을 돌릴 것이라 예상됩니다. 애초에 안보의 위협이 없었기에 정치적 의미로, 성평등을 위해 여성징병제를 허용한 것이기 때문이고, 북한의 사례를 보더라도 북한마저도 여성을 전투병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성에게도 군대를 가라고 한다는 것은, 사실 나도 똥물에서 굴렀으니 너도 똥물에서 굴러봐라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론 무리가 있겠지만, 이러한 투쟁은 병역 자체에 해야 하고(예컨데 모병제실시),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자면 적어도 임금 만큼은 최저임금에 맞춰서 줘야 합니다.


대체복무나 병역세 등에 관한 이야기는 나름 설득력있다고 보지만, 솔까 남자 입장에선 그딴건 아무래도 좋고 군대에 있을 동안 최저임금만 주면 그게 좋은거죠. (2년 동안 꼬박꼬박 모으면 얼마야..;;) 돈이 많이 든다고 반대할 사람들이야 분명 있겠지만, 개소리죠. 못할 거 없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동안의 재벌감세만 그 이전으로 돌리면 분명히 가능함.)


하여튼, 재특회나 여성에 대한 병역 문제는, 사실상 수평폭력이죠. 재일특권이 문제라면 일본정부에 항의해야 하는 것이고, 병역이라면 국방부에 항의할 것인데, 자기보다 더 약자에 있는 이들에게 특권이라는 굴레를 씌우고 욕하고 항의 하는 것이죠. 기실 의미없는 폭력일 따름인데 말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투쟁은 비겁한 투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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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nutmeg.kr BlogIcon 넛메그 2014.04.03 22:3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동감합니다. 가장 시급한 건 복무수당이죠. 병역세 낸다고 해서 그 돈들이 모두 복무자에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요. 과거야 워낙 못사는 나라였으니까 불가피했겠지만 말씀처럼 솔직히 복무수당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으니까요. 가장 근본적인 건 외면한 채 여성징병이나 군가산점 같은 문제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꼴입니다.

    • Favicon of https://konn.tistory.com BlogIcon Konn 2014.04.03 23:19 신고 address edit/delete

      군가산점은 남성 내부에서도 차별이 이루어지고, 여성징병은 현실성도 없고 현 군대의 문제점 등을 고려하면 국가의 인권침해를 늘리는 것으로서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니 전혀 좋은 방법이 아니죠. 같은 목적(평등)이라면 차별이 적게 하거나 없애는 쪽으로 하는 것이 옳은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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