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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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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22.09.23
    전근대 사회의 체면과 탐욕 문제. (2)
  2. 2022.08.28
    엘리트 카르텔이라는 이름의 한국의 문벌文閥귀족.
  3. 2020.08.13
    국가, 종교, 민족, 사회적 정체성 문제.
  4. 2014.02.17
    빅토르 안, 대한민국 스포츠단체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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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전근대 사회에서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까닭은 행정력과 치안이 기술을 기반으로 하여 구성원 개개인에게 빠르고 직접적으로 적용, 통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장 발생한 범죄나 불만을 빠르고 정확하게 해결해줄 수 있느냐를 따졌을 때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며, 행정력의 수준이 낮을 수록 공정한 집행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이는 필연적으로 관료나 군인 개인의 부패 및 지역 유지와의 유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1.

또한 전근대 사회는 대체로 적은 인구로 구성된 작은 공동체사회이곤 했다. 그리고 어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평생 얼굴보고 살 사이이기 때문에 웬만한 문제는 어떻게든 원만하게 합의하기 마련이고, 합의가 어려울 경우 공동체의 큰 어르신 역할을 하는 이, 요즘의 마을에서라면 이장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의 권위를 통해 합의를 이루어낸다.

 

문제는 이 작은 사회 속에서 누군가의 평판이 나빠진다면 이를 다시 원상복구 시키기 위해선 지대한 노력이 필요하고, 그럴 수 없는 문제를 발생시켰거나 지나치게 이미지가 망가질 경우는 복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영화 더 헌트에서 주인공은 오해로 인해 누명을 썼고 결국엔 벗어났지만 모두에게 크나큰 낙인이 찍혀버렸고 어렸을 때부터 허물 없이 지냈던 친구들과도 알 수 없는 벽이 세워진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리고 만다. 단순 오해로 인해 발생한 일조차도 이럴진데 뒤집을 수 없는 사건이라면 어떻겠는가.

 

2.

이러한 이유로 전근대 사회에서 법보다 주먹이 더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는 믿음직한 수단이 되었고, 작은 사회 내에서 입소문과 평판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극단적으로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러한 평판이 나빠져 집단 내에서 도태되거나 서열이 밑바닥으로 떨어져버리는 상황을 매우 경계할 수밖에 없다.

 

흔히 말하는 불가촉천민이 되어버리는 경우 개인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큰 희생이나 큰 도움을 주면서 자신의 지위를 어느 정도 복구해야만 하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의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닌 경우가 많을 것이다.

 

3.

문제는 전근대 사회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그보다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자신이 태어나고 살아온 지역사회는 자신의 조상대부터 살아왔던 인맥과 인연으로 이어져 있는 곳이고 살아오면서 만들어낸 인맥과 인간관계는 자기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도움을 받거나 도와줄 수 있다.

 

정보를 제공하고 제공받을 수 있으며 개인 단위 노동력의 한계를 아웃사촌친구지인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할 수 있다. 자기 집안 자식이 남의 집안 농작물을 서리했다 하더라도 나중에 아이고 형님, 형수님 하고 찾아와 다른 농작물을 선물해주거나 초대해서 밥을 한끼 해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럴 것을 서리 당한 집안도 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당한 쪽은 체면이 깍이고, 갚아주지 않은 집안은 평판이 깍인다.

 

조상 대대로 살아왔다는 역사성은 그들이 그 지역에서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야할 당위가 되고 밖으로 나가선 안 되는 금기가 된다.

 

이를 반대로 말하자면 지역사회를 떠난다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고, 전쟁이나 재해, 재난, 집안 누군가가 관직을 얻어 이주하는 경우는 이유가 있고 정당한 사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아닌 경우, 처음보는 모르는 동네의 누군가가 자신의 동네까지 와서 이주를 청하는 경우 대부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무슨 사고치고 도망쳐왔나보군. 이런 사람을 받았을 때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알 수 없겠어.'

 

조상 대대로 살아온 이웃사촌들은 그러한 역사성으로 이어져있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 같은 지역에 태어나 같이 자라왔던 이들이기에 믿을 수 있다. 우리 공동체 내부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지인은 그러한 역사적 연관이 없다. 그들의 뿌리를 알 수 없고 뭐하는 사람인지, 어쨰서 이곳에 왔는지 등등 많은 것을 알 수 없다. 대체로 사고치고 쫓겨났거나 도망쳐왔을 것이라는 의심은 어떤 면에선 합리적인 구석도 있다. 새로 적응하고 뿌리내리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러한 구조는 이주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지는 도시, 공장으로 대표되는 근대에 접어들면서 해체되었다.

 

4.

지역 사회의 언터쳐블이 되지 않기 위해, 아니. 그저 자신의 평판이 나빠지고 체면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암묵적 인정받는 높은 지위와 권위를 가졌을 수록 그렇게 된다.

 

누군가 자신을 모욕하거나 무시한다면 설령 그것이 어느 정도 정당하다 하더라도 이를 옳고 그름의 문제와 도덕적인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가령, 내가 잘못한 것은 맞지만 저렇게 공개적으로 들고 나와 사람들 귀에 들어가게 만드는 것은 내 체면을 훼손시키는 일이고 내 평판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따라서 더욱 강경하게 대응하고 실질적인 손해와 압박을 통해 굴복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행적 사회구조는 21세기에 접어들어도 전근대 사회에 가까운 사회일 수록 흔하고 보기 쉽다. 근본적으로 근대화, 혹은 현대화되지 못한 사회적 관계망 체계 및 지역사회의 형태, 무엇보다 개개인의 의식수준이 물질 문명의 발전속도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국 역시도 개발기엔 여전히 중세적, 왕조시대적, 전근대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고, 촘촘하지 못한 행정력과 치안, 부패 문제는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까웠던 까닭이었다.

 

5.

현대에도 그러한 사회가 여전히 있고 전근대적일 수록 그러한 경우가 많다고 했는데, 몇가지 엄밀히 짚어야할만한 집단들이 있다.

 

하나는 독재국가이고, 다른 하나는 조폭집단이다.

 

독재국가에선 지도자나 당의 체면과 평판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조폭집단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이들이 아랫사람에게 자신의 체면과 평판이 매우 민감한 가치가 되는 것과 완벽하게 동일하다. 조폭에서는 아무리 낮은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자신보다 낮은 말단이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건방지게 굴거나 대드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반드시 보복과 처벌이 있기 마련이고 이러한 수직적 서열관계는 그것이 법과 제도상의 원칙이 아니라 폭력과 주먹에 의해 형성되는 관행과 경험적으로 구성되는 체계로 이루어진다.

 

독재자들이 자신에 대한 도전과 반항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 역시도 유사하다. 독재라는 권력독점을 끝 없이 유지하기 위해서 시민들의 반발과 정치/경제/특히 군 내의 반대세력을 무력화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감시 및 통제해야 하는 것 역시 맞는 설명이지만 근본적으로 조폭세계와 다를 바 없는 전근대적 가치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도전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하나 용인하면 누구든 자신을 무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그러한 가치관들이 혼재되어 있는 가장 대표적이고 적절한 사회라고 볼 수 있다. 독재자인 지도자의 체면과 평판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실제 외교적, 군사적 성과와 발전보다 단순 지도자의 체면을 다른 것보다 더 우선하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받아들일만한 제안이나 협상마저도 파토내고 독재자 개인의 가오를 살리는 쪽을 택한다. 조금이라도 굽히는 듯한 모습이나 동등한 모습을 연출하지 않고 파토내더라도 회담과 협상의 결정권에 자신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6.

이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형식이다.

 

나에 대한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은 어떠할까. 의사들은 자신의 지위와 특혜 언터처블한 접근을 요하고, 이는 검사나 판사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는다. 이에 대한 접근은 오직 더 강하고 위험한 특정 정치세력에게만 일부 허할 뿐이다. 그마저도 원래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정치세력의 구성원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떠한 대가를 주고 받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자식이 서리한 농작물을 다른 것으로 갚아주는 것처럼.

 

여기에 권력, 특혜, 자본이라는 문제가 낄 경우에 현대사회의 문제가 된다.

 

전문직을 비롯한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권위와 이익에 민감하다. 그들은 똑똑하고 능력이 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유리한 위치와 더 많은 수익을 얻어낸다. 기업가들은 특히 더 많은 자본을 얻어내며 그렇게 벌어들인 돈은 다른 법, 의료 등의 사회지도층 전문직에 비해 전문영역을 기반으로 하는 권력을 가지진 못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선 그들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들이 자신의 이권을 단 하나도 내놓지 않으려한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7.

엘리트 카르텔에 속하는 자들은 상식적이고 공정한 위치로 그들의 특혜를 재조정하는 것은 자신들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한번이라도 거기서 물러나 양보하게 된다면 그러한 일이 끝없이 반복되리라 믿는다.

 

첫 시도 자체를 도전으로 받아들인만큼 이는 공정과 불공정, 필요한 불필요, 정의와 부정의 문제와 같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된다. 그들은 자신이 노력과 성공을 통해 얻어온 것이고, 그러한 특혜와 권위, 언터처블한 지위를 얻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에 대한 외부자의 접근에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외부자들이 자신들의 이권, 다시 말해 밥그릇 문제로 귀결되는 그것을 건드리는 것은 체면의 문제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무언가 문제로 지적되는 요소가 '공정하게'. '정의롭게'. '상식적이게' 변화하는 것을 거부한다. 만약 그것이 성공하게 된다면 굴욕적인 패배로 인식하게 된다. 만약 그들에게 어떠한 문제가 바뀌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이는 불공정에서 올바름을 찾아가는 개혁이 아니라 자기 밥그릇을 보전해줄 거래로 여기는 것이다.

 

8.

이제 자본주의에 대해 특정해보자. 이러한 문제는 기업가에 대한 개혁, 자본시장에 대한 개혁 역시도 마찬가지다. 밥그릇에 대한 침해이자 권력자인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여기기 때문에 그러한 개혁과 공정한 변화를 거부하고 반발한다.

 

전근대적 체면 문제로 인해 개혁을 침해와 체면 문제로 받아들이고 거부한다. 모든 것은 결국 제어받지 않는 탐욕이 원인이다.

 

9.

공유지의 비극을 알 것이다. 본래 생태학, 환경과 관계된 것이지만 실제로는 경제학 쪽에서 더 자주 쓰이는 그것말이다.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목초지가 있고 주변에 가축을 치는 이들이 있다면 자기 소유의 목초지 대신 공유지의 목초지에서 먹이는 것을 더 선호할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손해를 줄이고 이익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목초지는 적당히 넓어서 모두가 일정량만 소모시킨다면 지속 가능하고 충분히 나누어 먹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누군가 탐욕을 부려 이 목초지의 자원을 전부 소모시켜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다음부터는 먼저, 많이 먹이는 쪽이 무조건 이익이 된다. 이미 누군가 다 먹이게 된다면 그곳까지 가축을 끌고 오는 비용만 낭비될 뿐 얻는 건 전혀 없게 된다. 결국 이는 극소수를 제외하곤 모두에게 손해가 될 것이다. 특히, 사회적 신뢰가 파괴된다.

 

10.

자본은 순환되어야 한다. 기실, 모든 자원은 순환되는 것이 좋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은 역시 순환되어야 한다. 물론 순환되기만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의 발전과 함께 순환되어야 하고, 올바른 순환은 경제의 발전을 불러오기에 순환되는 것이 옳다.

 

공유지의 비극을 막기 위해 제안된 이론과 방법들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심판의 존재이다. 공유지의 목초지를 누군가 독점하고 전부 소비하지 못하도록 심판이 그들을 규제하고 제한을 두는 것이다. 이것이 반드시 올바른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원론적으로는 효과적이고 필요하다.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에서 그러한 역할은 정부가 담당한다.

 

기업과 노동자, 정부가 알아서 시장경제에 따라 균형을 맞춘다면 정말 좋은 일이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적으로만 가능하고 누군가는 반드시 공유지를 소모시킨다. 편법, 불법, 관행과 부정, 로비와 엘리트 카르텔끼리의 관계망까지. 다종다양한 방식으로 원칙을 지키지 않고 가능한 것보다 더 많은 자원(이익)을 얻기 위해 움직이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남들보다 더 많은 이익과 성공을 추구하는데 제한되지 않는다면 법과 원칙, 정의를 지키려하지 않을 것이고 남들보다 더 교활하고 부정한 방식으로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할 것이다.

 

문제는 정부와 정당이 그들의 방식에 호응하는 것이다. 법을 어겨도 얻어낸 것보다 훨씬 적은 푼돈으로 죄값을 치루거나, 이익에 비해 너무 약한 처벌이 가해지는 경우도 있으며, 아예 법적인 마사지를 통해 빠져나가게 해주거나 꼬리자르기 등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법이나 제도를 바꾸어 재벌대기업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주기도 한다.

 

돈은 돌아야 하는데 물가는 오르고 임금이 오르지 않는다. 단기적으로는 기업은 지출이 줄고 수익이 늘어나기 때문에 경제적인 이익을 얻게 될 것이고, 기본적으로 이익을 늘리기 위한 단순하고도 논리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이것이 장기적으로, 그리고 전방위적으로 발생할 경우, 무엇보다 노동자의 임금상승을 제한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면 노동자들은 적게 벌고 반드시 나가야할 돈은 많기 때문에 지출을 최대한 줄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기업의 이익을 줄이게 되는 일이 될 것이다.

 

물론 이 또한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이야기일 뿐이고 실제로 기업은 그래도 돈을 벌 것이다. 그러나 점차 사회의 성장동력은 줄어들고, 다양한 분야에서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다. 한탕주의, 저출산, 사기나 횡령 등의 경제사범이 늘어나기도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시민, 노동자들은 부를 쌓기 어려워지고 재벌대기업은 막대한 부를 쌓게 될 것이다. 이를 관리해야할 정부가 이 흐름과 순환을 건전한 방식으로 조성하지 않으면 자본의 동맥경화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기업가를 비롯한 엘리트들은 이를 더 나은 발전이나 장기적 지속 가능성으로 보지 않고 체면과 자존심이 걸린 도전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한번 자신의 이권을 양보하면 두번이 될 것이고, 세번이 될 것이며, 끝없이 양보하고 내줘야할 것으로 여길 것이다. 그렇게 자본가는 정치권력에 예속된 존재가 될 것으로 예측할 수도 있다. 

 

11.

그들은 결코 자신의 탐욕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욕심을 가지는 게 무엇이 문제냐고 할 것이다. 욕심은 발전의 자양분이 되고 충분히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욕망은 욕망되어야 하고 그것이 법을 어기거나 비도덕적이지 않는 한 잘못된 게 아니다.

 

그러나 탐욕과 욕심이 죄악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그것이 무한하기 때문이며 절제될 수 없는 속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으면서도 더 큰 이익을 얻고자 했던 파홈은 더 많은 땅을 얻기 위해 탐욕을 부리다 악마의 의도대로 죽게 되었다. 그가 중간에 절제했다면 더 넓고 훨씬 좋은 땅을 얻은 채 오랫동안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종래에 그가 얻은 땅은 그가 누울 3아르신 뿐이었다.

 

파홈의 이야기는 톨스토이의 기독교적 교훈이 담긴 이야기일 뿐이지 현실세계의 당위나 운명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부정한 사회일수록, 부정한 정치권력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파홈의 사례는 줄어든다. 정부가 부정하고 악한 이들에게 적절한 처벌과 규제를 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는 그 자체로 공유지이다. 자원이 순환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는 한계가 있고, 자원 역시 한계가 있다. 이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원은 한계가 존재하기에 순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의 동맥경화가 찾아오면 자본주의는 지속 가능성에 한계가 찾아온다. 누군가 자원의 절대다수를 독점하고 분배하지 않는다면 모두가 고사할 것이다. 단지 가진 사람이 더 늦을 뿐이다. 그마저도 아무런 폭력도, 외부세계로의 도피가 없다는 전제 하의 이야기일 뿐이다. 대체로 그러한 한계 상황에서는 혁명, 쿠데타, 정부전복, 심지어 외침 등 다양한 방식의 폭력이 체제에 끝장을 내기 마련이다.

 

공유지의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공정한 심판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정부는 자본주의 체제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엘리트들은 그러한 요구를 받아들이는 걸 체면이 깍이는 문제, 혹은 이권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선 안 된다. 이것은 그러한 문제를 초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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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카르텔의 선출직 권력에 대한 무력화.

https://konn.tistory.com/768

 

 

고려시대의 문벌귀족은 음서와 공음전을 통해 권력과 경제력을 세습했으며, 그러한 제도를 기반으로 강력한 가문을 형성하고 유지했다. 그렇게 가문의 힘으로 권력과 경제력을 세습받으며 유지되었기 문벌門閥이었고, 이들의 권력은 무력을 지닌 무인들의 반란을 통해 뒤집어졌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경제력을 훼손당했다고는 해도 개국공신 가문에 뿌리 깊은 가문들이었고 그들은 약화되었을 뿐, 무신정권 시기에도 여전히 명맥을 잇고 있었고, 이후 권문세족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한국에서 권력자라고 부를 수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체로 공부를 통해 얻어낸 성과이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갔거나, 외교관 시험, 행정시험, 사법시험 등의 고급 공무원을 선발하는 고시 출신이고,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 나온 사람이 대기업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여 기업가, 경영자들이 되어 큰 힘을 가지게 되기도 하였다.

 

본래 결혼은 비슷한 수준의 사람/집안끼리 하기 마련이다. 검사가 재벌가와 결혼하고, 의사가 변호사와 결혼하며, 판사가 교수와 결혼한다. 그렇게 사회적 권력을 지닌 지도층을 혈연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막을 수도 없고 막을 필요도 없다. 단지 한국이 너무 좁은 국가이고, 좁은 영토 내 높은 인구밀도를 지닌 서울과, 그 서울에 국가 모든 중요 시설과 핵심이 모여 있는 환경상 그런 식으로 이어지는 혈연은 그 자체로 카르텔화되기 쉽다.

 

어느 지역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지역 유지가 아닌 국가 전체의 핵심 중앙 권력을 장악하고 나눠먹는 권력형 카르텔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대기업 등에서 이루어지는 일부 낙하산을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실력을 필요로 한다. 이는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직업을 가져야할 이유이자 근거가 된다. 공부를 잘해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고, 그렇게 얻어진 대학 졸업장, 고시 합격자는 더 좋은 직업의 조건이 된다. 운이 좋아 시험 몇번 잘 본 것으로는 버틸 수 없고, 운이 좋게 얻어 들어간 자리에서 성과를 내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물론 재벌 성골 출신이라면 타이틀에 비해 대단한 능력이 없다 해도 여전히 자기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어차피 경영권만 가지고 있다면 웬만해서는 밀려날 일이 없기 때문에 경영적 실패를 쌓으며 사회적, 경제적 손실을 발생시켜도 여전히 권력의 중심에서 도태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들에게 얼마만큼의 실력이 있고 얼마나 유능한지가 아니라 그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가이다. 검사 같은 경우 그 자체로도 유능한 사람들이지만 설령 그 조직 평균에 비해 무능하다고 해도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한직으로 밀리거나 따돌려질지는 몰라도 검찰 조직에 반역하지 않는 한 그들은 여전히 검사 권력을 누릴 수 있다.

 

이는 설령 그 본인이 범죄를 저질러도 기소되지 않고, 기소된다 해도 그의 권력과 신분, 경제적 이익 창출에는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한다.

 

 

이들의 권력이 공부를 잘했기 때문인 까닭에, 강남-대치동의 부모들은 자신의 자식을 고문과 학대에 가깝게 공부를 시키고 그렇게 강요받은 이들 중 부모의 의도에 합치된 성과를 낸 이들은 결국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경우가 다른 지역 학생들에 비해 많다.

 

그렇게 그들은 사회, 아니. 국가 중심 핵심 권력에 남들보다 더 가까이 다가간다. 그리고 십수 년~수십 년간의 경력과 성과는 그 핵심의 가장 가까이로 그들의 접근을 허락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 과정 동안 형성시킨 비슷한 위치의 다른 엘리트들과의 사회적 관계망은 이미 엘리트 카르텔의 일원으로 만들었을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자식은 그들의 성공과 비슷한 경로를 탈 가능성이 높다. 똑같이 10살 안팍의 나이 때 고등학교 과정을 소화할 정도의 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들은 문벌文閥귀족화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공부와 시험을 통해 권력을 얻고, 비슷한 수준의 엘리트끼리 결혼하며, 각 집안이 가진 사회적 관계망을 결합 및 확장시킨다. 그리고 그 사회적 관계망은 국가 중요 권력은 물론 사회적 영향력을 차지한 사람들로 이루어져있다.

 

 

다른 나라에서도 공부 잘하고 인맥을 가진 사람들이 성공하고 중요 요직을 차지하며, 더 좋은 위치로 올라서기 쉽다. 특정 대학이나 특정 지역 출신이 요직을 차지하는 경우 역시도 많다.

 

그러나 한국은 그 정도가 특히 심하다. 이는 서울집중화, 밀집화와 좁은 국토에서 기인한다. 이미 집중된 서울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우월한 조건을 가지고 있고, 성장하기 어렵다. 다른 지역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것은 쉽다. 모든 요소를 다 고려한다 해도, 서울은 그 자체로 더 큰 이득을 준다. 거리 역시 짧은 편이고, 잘 닦인 교통은 시간 역시 오래 걸리지 않는다. 원래 지역에서 쌓아놓은 사회적 자본 역시 서울이 가져다줄 이익에 비하면 충분히 포기 가능하다.

 

어느 정도 지역 내 위치가 있다면 이미 서울에 자리 잡은 누군가와 인맥 관계일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고등학교나 대학 시절 인맥이든, 교회 인맥이든, 직장 인맥이든, 친적과 같은 혈연이든.

 

그리고 엘리트 카르텔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권력과 경제적 이권을 유지, 성장시키고 그러기 위한 자신들의 불법, 탈법을 법적 제재에서 지켜주거나 그러한 이익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정보를 미리 제공해줄 수 있고, 때때로 원하는 직위와 자리를 마련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것은 자기 세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식 세대에게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사기업의 경우 자리를, 학계의 경우 자격을 준다. 불법일 때도 있고 탈법일 때도 있으며, 합법적인 꼼수일 때도 있다.

 

그렇기에 다른 지역에서 올라오는 엘리트, 혹은 엘리트의 가능성이 있는 인재를 선호한다. 굳이 따지자면 전라도 출신의 경우 차별을 받거나 덜 선호될 수는 있다. 그러나 결국 중요한 것은 그들의 입맛과 이권에 부합되는 자인가가 핵심이다.

 

 

본래 사회지도층, 엘리트 권력자 집안의 경우 당연히 자기 자식에게도 더 좋은 교육을 시키고, 더 많은 지원을 해줄 수 있다. 당연하다. 그리고 그걸 막을 수도 없고 차별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렇게 그들은 부와 명예를 세습하게 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에서는 그 모든 과정이 심화되어 있다. 단순히 엘리트 교육이 아니라 끔찍한 사교육으로 부와 명예를 확보하고 그걸 세습시키려 한다. 그걸 위해 불공정과 불법 역시도 자행된다. 그럼에도 검사, 판사, 경찰 인맥은 그것을 기소하지 않거나 제대로 조사하지 않는다. 이런 저런 이유로 그들의 불법을 불법이 아니게 만들거나, 설령 처벌받는다 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을 하게 된다.

 

이러한 불공정한 불법적 사례는 언론에서 다뤄질 때에만 그나마 처벌을 받거나 조사를 받을 뿐 적지 않은 경우는 아예 기소는커녕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들끼리 덮고 유출시키지 않으면 그만이다. 언론의 조명을 받고 대중적 관심을 받는 경우는 그저 재수가 없을 뿐이라 여겨진다.

 

 

이는 완화시킬 방법은 없다. 어떠한 개혁도 엘리트 카르텔에 의해 가로막힐 것이고 일부의 성공 역시도 중과부적일 것이다. 역사는 이러할 때 무신정변, 혹은 역성혁명이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무신정변은 군부독재와 같이 다른 문제가 되었을 뿐 근본적으로는 실패했고 역성혁명 역시도 일시간(어떤 면에서는 꽤 장기간) 효과를 보았을 뿐 다시 같은 문제를 발생시키며 다시 한번 멸망했다.

 

부정부패를 비롯한 불공정의 확대는 체제의 지속가능성을 약화시키고 이것이 임계점에 다다르거나, 그에 근접할 때 민중은 폭발한다. 그 이후 외세의 공격이 있었거나 내부에서 쿠데타/혁명을 일으켰는지의 차이만 있을 뿐 그렇게 역사는 국가/체제의 멸망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말해왔다.

 

한국이 이 상황에 어떻게 응답할지는 국민들의 몫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의 몫이 아닐 수도 있다. 대한제국이 민중의 요구에 응답하여 멸망한 게 아니고 조선의 독립이 민중들의 요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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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일뽕이라 불리는 이들이 실제 사회, 생활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살고, 어떠한 입장과 처지에 있는지는 개인마다 다 다를 것이고, 그렇기에 성급히 정의내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글에선 크게 두가지 범주로 나눠보려고 합니다.


하나는 한국 사회의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못한 이들.

다른 하나는 한국 사회의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않아도 되는(혹은, 않고자 하는) 이들.



그러나 먼저, 일뽕으로 한정 지었지만, 정체성이라는 건 언제나 한가지 뿐만은 아니고, 이러한 사례가 한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그리고 일뽕이 아닌 다른 종류로 발생 가능하다는 것을 짚어야합니다. 따라서, 일뽕이라 한정지은 것은, 그것을 대표적 예시로 하고자 함이지 그것이 다가 아님을 알아야 하죠.


한 국가, 한 집단 내에서도 여러 정체성이 나뉘지만, 기본적으로 그러한 집단을 이룰 수 있는 거대하고 포괄적인 정체성이 있긴 합니다. 가령 우리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는 것처럼요. 한국인이란 정체성을 이루는 여러 구성요소들이 있죠.


근데 가끔 이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편입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많은 이유들이 있는데, 학교를 예시로 설명하자면, 엄청 잘나가는 애들이 있고, 평범한 애들이 있고, 그 평범한 애들 사이에도 끼지 못하는 애들이 있습니다.


편의상 각각 탑, 미드, 바텀이라는 간단하고 익숙한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일진이나 공부를 잘하면서도 집안 좋고 잘난 인싸들이 탑, 평범한 애들이 미드, 왕따 등 따돌림을 당하는 이들이나 특별히 친구로 지내지 않는 아싸가 바텀이라고 규정하겠습니다.


이중에서 가장 많은 건 미드 계층이고 학생이라는 집단의 주류 정체성에 해당하는 이들입니다. 좀 직관적으로 설명하자면, 흔히 '애들'이라고 하면 해당되는 이들이 이 계층이죠. 


탑 계층의 경우 인기가 많고, 영향력도 큽니다. 다만 역시 소수에 불과하죠. 먹이사슬의 최상위층이고 미드 계층은 이들을 동경하거나 두려워합니다.


바텀 계층은 모두가 싫어하거나 호감을 보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괴롭힘 당하거나 무시 당합니다. 친구가 없거나 자기들끼리만 어느 정도 알고 지내지만 그마저도 그리 적극적이지 않고 그들의 불행에 나서주지도 않습니다. 다시 말해 서로가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 집단은 아닙니다.


여기서 계층의 동경, 호감 등 방향성을 읽어낸다면 미드 계층은 탑 계층을 두려워하거나 동경합니다. 이는 사실 비슷한 개념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탑 계층이 될 수 있다면(될 능력이 있다면) 기꺼이 되고자 하고, 그러한 탑 계층의 구성원과 알고 지내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반대로 바텀 계층에 대해선 혐오 내지는 무시를 받기 때문에 누구도 그 계층에 편입(추락)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같이 알고 지내고 싶어하지도 않고, 적극적으로 괴롭히거나 배척하기도 합니다.


현실 사회에도 이러한 구조는 어느 정도 적용이 되는데, 상류층과 중산층을 포함하는 서민 계층, 그 아래의 하위 저소득층이나 수급자 등등이 해당되죠.



한국에 존재하는 주류 정체성의 비중은 서민에 의해 형성된 것들이 많습니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건, 탑 계층(상류층)은 그 아래로 떨어지기 싫어하고, 미드 계층(서민)은 바텀 계층으로 떨어지고 싶어하지 않다는 거죠. 그리고 하위 계층은 위로 올라가고 싶어하지만, 그럴만한 수단이나 능력 등등 부적합한 경우가 있으며, 집단으로 읽을 경우 그 이상으로 교육이나 재산, 빚 등등의 문제를 가진 경우도 있고요.



인터넷에서 보는, 가령 디씨 역갤 같은 곳에서 보였던 일뽕의 경우 실제로 한국이 못났고 일본이 우월하기 때문에 일뽕에 빠진 게 아닙니다. 그저 그들이 한국의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못했기 때문에 반동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뿐이죠.


사람은 집단에 소속되어야 하고, 개인으로서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집단 등 특정 정체성에 소속되길 바라고, 되도록 그게 자신의 자부심과 명예욕, 과시욕 등을 충족시켜주길 바라죠. 되도록 비교되고 우월하고자 합니다. SKY 대학생들이 하위 대학생들에 비해 더 큰 자부심과 명예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때때로 그걸 (적극적으로까진 아니더라도) 비교하며 과시하기도 한 것처럼요.


문제는 일뽕을 비롯한 하위 계층 중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못한 이들이 새로운 정체성을 찾게 되는데, 주로 외부에서 찾게 되죠. 내부에서 자신이 소속될 수 없기도 하고, 소속될 가치가 없는 정체성을 거부하기도 하기 때문에요.


한국의 경우 가장 가깝고, 비슷하며, 이입하기 좋고, 정보를 얻기도 상대적으로 쉬우며, 무엇보다 한국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고 지금도 어느 정도 그러한 위치에 있는 일본에 이입하는 겁니다. 즉, 한국의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못하자 그에 대한 반동적 태도로 한국보다 우월한 일본의 정체성을 가지려 하는 거죠. 다시 말해 자존감의 문제입니다.


반드시 일본일 필요는 없습니다. 누군가는 일본일 수도 있고, 미국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이해는 어렵겠지만 북한일 수도 있죠. 이 경우는 좀 드물긴 합니다만, 실제 종북 중 일부가 그러한 계층적 패배자이자 교육 수준이 낮고 심지어 정신적 문제도 있는 등의 경우가 있곤 하는 걸로 압니다. 정말, 아주 드물게요. 


얘넨 이석기 같은 부류와는 또 다릅니다. 자신을 핍박하고 잘 살지도 못하게 괴롭히는 한국은 밉지만 한민족을 배신할 순 없고, 그런 한민족을 핍박한 타 민족을 빨 수는 없으니 한국과 한국인들을 짓밟아줄 강력한 무력이나 정체성을 찾으니 그게 북한이었던 괴랄한 경우죠.


일뽕은 자기들이 한국인들보다 우월하고 그런 이유로 한국을 업신여깁니다. 왜냐면 자기들이 열등한 위치에 있으면서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못하고 있거나, 그러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대신 자신의 위치를 남들이 무시하거나 조롱하기도 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본인 스스로 열등감을 가지기도 하죠.


그러니 외부 정체성으로 자신의 자존감을 채워야 했습니다. 위에서 열거한 일본인 이유가 있지만, 실은 거기에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합니다. 매우 저열하고 말초적인 이유인데,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한 경험이 있어서죠. 그러니 식민지배를 당한 후진국 한국과 한국인보다 정신적 일본인인 본인들이 훨씬 우월한 거고, 그 우월한 위치에서 한국인을 조롱하고 무시하는 겁니다.


날 병신으로 보는 한국인들을 원 없이 비웃고 조롱하고 공격하기 위해서요.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인 남을 공격하는 겁니다. 쓰러뜨리거나, 그러지 못한다면 꾸준히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음을 확인하고자(or 그렇게 믿고자) 깍아내리는 거죠.


학교의 찐따들이 평범함을 거부하고 일진 같은 잘나가는 애들을 도리어 증오하다시피 거부하는 이유는 그들이 별났나거나 일진 같은 애들을 엄청나게 증오하기 때문만은 아니고, 그러한 위치에 도달할 수 없기에 다른 정체성을 찾는 겁니다. 현실에서 쳐맞고 다니는 애들이 인터넷에선 여포이거나, 커뮤에 심각하게 빠져 중독되는 일이 발생하는 이유죠.


현실에서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못하고, 스스로 그러한 정체성을 구성할 수 없으니 가상세계로 파고드는 겁니다.


미국 슬럼가 등 거리의 흑인 무리들이 백인 중산층이나 상류 엘리트를 무시하고 정부의 권위를 씹는 이유는 그러한 우월하고 안전한 정체성에 포함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봅니다. 심지어 될 가능성조차 없으니, '저 포도는 신 포도'인 셈이죠. 마찬가지로 사회의 찐따들이 한국인의 주류 정체성에 평범하게 편입될 수 없으니 외부 정체성을 가져오는 거고요.


ISIS가 한창 흥할 때 유럽에서 그러한 이념에 동화되거나 받아들이는 이들이 생기곤 했었죠. 실제 테러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지만, ISIS로 향하거나 하는 이들이 생기긴 했습니다. 심지어 한국에서도요. 이 또한 외부 정체성을 찾기 위함입니다.


이민자 1세대야 그렇다쳐도, 2세대 밑으로는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음에도 유럽의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못하고 여전히 이민자, 무슬림, 그것도 테러나 저지르는 문제적 민족이라는 인식에 차별 당하고 공격 받으니 자신을 배척하는 유럽의 주류 정체성을 본인 스스로가 배척하고(내쫓긴 게 아니라 내 발로 나간 거다. 라는..) 대신 외부의 속시원한 정체성을 찾았던 겁니다. 그게 ISIS였던 거고요.



뭐.. 여기까진 차별 받거나 열등감이 있는 하위 계층에 대한 거고..


맨 위에서 말했던 한국 사회의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않아도 되는(혹은, 않고자 하는) 이들. 에 해당하는 이들은.. 쉽게 말해서 정몽준 아들 같은 케이스입니다. 워낙 잘 살고 남들 머리 위에 있는 천상계의 상류층이다보니 그 아래에 있는 이들과 다르다는 거죠. 쉽게 말해 난 너희와 달라. 이겁니다. 


미드 계층이 바텀 계층과 동일시 되기 싫어하고, 그들과 아예 같이 있는 걸 배척하기도 하는 것처럼, 상류층은 그 하위 계층과 적극적으로 어울리진 않죠. 아예 무시하는 건 아니더라도. 하지만 탑 계층에 있던 이가 그 하위 계층과 동일시 되면 기분은 나쁠 수 있습니다. 계층 정체성에 위기감을 느낀다면 아예 손절해버리기도 하고요.


하도 잘나고 잘살고 있으니 아득아득 사는 이들이 천박해보이고 그런 천한 서민과 동일시 되기 싫다 이겁니다. 같은 한국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남들과는 다르다는 엘리트 의식, 선민사상. 이런 의식이 주류 정체성은 아니죠. 얘네가 일뽕 같은 것에 빠진다면 프랑스어를 쓰던 러시아 왕족, 한자를 쓰던 양반 계층처럼 서민보다 우월하다는 우월주의 때문이지 주류 사회, 주류 정체성에 편입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겉으로는 잘나가고 잘 사는 그들을 서민은 동경하거나 부러워하죠. 단지 그런 차이일 뿐입니다. 뭐 이런 우월주의나 선민사상 같은 거야 상류층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거긴 합니다. 하위 계층에서 볼 수 있는 열등감과 자존감 문제로 외부 정체성을 끌어오는 것도 특별한 일은 아니라고 보고요. 모든 이들이 그렇지는 않을 뿐.


이러한 문제는 단지 그 뿐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ISIS의 정체성을 받아들인 이들이 그렇듯, 반사회적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겁니다. 원래 소득이나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범죄율이 높다고는 하지만, 이 사회의 정체성이 아니고, 다른 사회의 정체성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러한 간극에서 반사회적인 행위가 나타나기 쉽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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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실 우리나라 체육계는 엘리트 체육이고, 그마저도 협회, 연맹 등의 조직의 입김이 너무나도 강하게 작용하는지라, 이들의 눈 밖에 나면 경기고 뭐고 선수 인생 제대로 필 수 조차 없으며, 이들이 선수들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은 그야말로 절대적입니다.


문제는 이들이 자기 영역에서 전문성이 뛰어나느냐는건데, 수십년전부터 이러한 체육계의 협회니, 연맹이니 하는 것의 높은 자리엔 그쪽 분야의 전문가는 커녕 그저 명예직에 가까운 감투죠. 돈 많은 재벌, 의원들 몇 앉혀놓는. 그러니 출전자격도 모르고 선수를 내보내니마니 같은 뻘짓이나 하지요.


이미 이 나라 협회니 연맹이니 하는 단체들이 보여준 병크들은 너무나도 많죠, 배구여제 김연경, 박태환, 심지어 김연아까지도 데였고, 이용대 도핑테스트 불응처리 사건, 빅토르 안은 이미 퍼질 대로 퍼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스포츠단체의 고위직은 또 일도 제대로 안 하고 그 위치 덕에 권력은 권력대로 갖고 비리는 비리대로 저지릅니다. 실제로요. 무능과 파벌, 탐욕, 이권싸움.. 한국의 거의 모든 협외니 연맹이니 하는 집단은 이러한 문제점을 모두, 두루두루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 덕에 스포츠스타들만 고생하는거죠.



그런 와중에서 빅토르 안의 러시아 이민, 그리고 다른 후배 선수들의 이민을 장려하는 행위는 기실 당연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솔까 지금까지 이러한 횡포에 참고 있었던 것도 대단하다고 봐요. 서호진이 자기 1위 할 수 있게 일부러 져달라고, 밀어달라고 했다가 정정당당히 하고 싶다는 안현수를 넌 뭐가 그리 잘라서 튀냐며 무려 8시간 동안 구타를 했고, 서호진 부모는 또 협회에 올림픽에 출전 할 수 있도록 몇차례에 걸쳐 2100만원을 뇌물로 바쳤죠. 앞서 말한 구타사건으로 서호진의 코치가 짤리고 국가대표 발탁에도 떨어졌지만, 다음해에 아무 문제 없이 국가대표로 발탁됩니다. 뒷돈이 있었다는 의혹이 있죠.


어디 그 뿐인가 하면, 경기에서도 다른 선수들이 안현수가 앞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고 심지어 서로 부딪혀 넘어지게까지 만들었습니다. 이 일을 기획한 코치들의 말 중에, 외국선수에게 져도 좋으니 안현수 우승 못하게 막아라. 라는 말까지 했다죠? 그리고 외국선수들은 너희들은 이상하다, 외국선수들을 막는게 아니라 너를 막는 경기를 한다. 라고 하질 않나..



이런 마당에 개인이 국가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고결한 정신에 뭔 같잖은 애국심(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무식함이죠.)을 들이밀면서 니가 이라면 되냐고, 뺨 맞은 놈 다그치는 코메디를 연출하는건 무슨 멍청한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자기 집단이 자신을 내쳐서 나갔다가 자기 실력 제대로 뽐내서 메달따고 우승했는데 저새끼는 배신자라고, 변절자라고, 매국노니 어쩌는 소리 들으면 진짜 듣는 제가 다 쪽팔립니다.


개병신같은 대우하면서 개좆같애서 뛰쳐나가게 만든 새끼가 누군데 이제와서 꼬리 흔드는 새끼를 뭐라고 하더라요?


이런 환경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들이 정말 대단한 겁니다. 일종의 애국심인지, 아니면 의무감인지는 모르겠지만, 무능하고 탐욕스럽고 부정부패와 비리로 얼룩지며 가장 뛰어난 선수 밀어주진 못할 망정 꺽고 죽이고 싶어 안달난 개자식들 밑에서 메달 따주고 국위선양해준거, 정말 대단한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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