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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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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에 해당되는 글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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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는 병력이 돌아오지 못하는 걸 바랄 겁니다.
  2. 2022.04.22
    시위는 왜 불편해야 하는가. 3
  3. 2019.06.22
    진보의 지적허영과 위선, 채식주의. 4
  4. 2018.04.30
    아프리카의 시위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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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이 의심스러운 광화문의 폭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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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구조적으로 러시아는 전쟁에서 승기를 잃은지 오래고, 그건 우크라이나의 반격 때 사실상 결정된 거라고 봅니다. 이제와서 서방이 지원 끊는다고 러시아가 역전에 가능할 것도 아니고, 이미 러시아의 박살난 병력, 자원, 동원력 등 전쟁 수행에 필요한 대부분의 요소가 망가졌고, 이걸 복구하려면 전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합니다.

 

병사는 병사대로, 부사관은 부사관대로, 장교는 장교대로 망가진 군대라 전쟁 수행력은 사실상 병사 1인당 0.2인분 정도나 하면 그만일 정도입니다.

 

이에 푸틴과 그 주변놈들, 러시아 정부가 여전히 제정신을 못차려서 아직도 어떻게든 인간을 갈아넣고 한 세대, 아니. 몇 세대가 다 죽어나가도 전쟁만 이기면 되고 그렇게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오판하는 게 아니라면 결국 이 전쟁이 질 거라는 건 알 겁니다.

 

너무 뻔하고 당연한 결과이고 그건 이미 예정된 거나 다름 없으니까요.

 

 

그럼 그들이 해야할 이 뭐겠습니까?

 

전선에 보낸 병력들이 불만을 가진 채 본국으로 세력화되는 걸 막아야죠. 아무리 독재정권이고 지랄이고 전선과 전쟁의 현실을 경험한 이들이 불만이 없을 수가 없고, 군인에서 시민, 유권자로 돌아온 이들은 당연히 이 불만을 매개로 뭉칠 것이고 정권에 책임을 물을 겁니다.

 

패전한 정권은 그들의 책임추궁을 막을 방법이 없죠. 이미 군대도 박살났고 아무리 경찰 등 동원 물리력이 있다고 해도 살아돌아온 이들이 거기에 밀리거나 쉽게 진압될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 정부는 그들이 살아돌아오지 못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사실 이런 생각 자체는 저번달부터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후퇴와 동시에 병력 다 죽든 말든 다리 끊어 버리는 거 보고 살짝 확신할 근거를 얻은 느낌입니다.

 

권력을 쥘 수만 있으면 나라가 어떻게 되고 국민들이 어떻게 되고 미래가 어떻게 되든 어떠한 희생이라도 강요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게 위정자들이며 병사들이 돌아와 정권을 상대로 공격하기 전에 그들을 최대한 희생시켜야한다 생각할 겁니다. 물론 전부 다 죽으라는 건 아니고, 그들이 시위와 폭동을 일으키지 못할 정도로 줄여서요.

 

남은 여자들이 시위, 폭동을 일으킬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뿌리 깊은 러시아의 마초이즘과 집안에서 마누라 패는 게 익숙한 러시아인들이니 경찰 병력과 남은 군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진압할 자신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쉽게 말해, 힘 쓰는 일은 남자가 하는 거지 여자가 일으키는 폭동은 때려패서 진압할 자신은 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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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30 - [취미/이야기] - 아프리카의 시위 민주주의.

 

 

전국 장애인 차별 철폐연대에서 지하철 시위를 한다고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욕을 합니다. 그건 당연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근데 왜 시위를 사람들 불편하게 하냐며 욕하더군요. 근데 사실, 시위의 목적 중 하나가 바로 사람들 불편하게 하는 겁니다.

 

애초에 시위가 왜 발생하느냐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시위란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밖에 나가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겁니다. 어느 한 사람에게, 어떤 단체에게 요구했는데 들어주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요구하게 만드는 게 시위의 목적입니다. 시위는 내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요구이고,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달라는 요구예요. 내 말이 타당하다면 도와달라고요.

 

전장연의 과거 활동내역이 어떻든, 지금 그들이 주장하는 건 장애인 이동권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 처음 들어본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애초에 관심이 없었을테니까요.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들이 시위를 하는 겁니다. 장애인들은 어딘가로 이동하려면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품도 많이 드니까 이걸 좀 해결해달라고, 편의를 개선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애초에 정부에, 국가기관에 요구했는데도 들어주지 않으니까 밖에 나와서 사람들 불편하게 하는 거고요. 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냐고요? 그래야 들어주니까요. 불편하지 않았으면 누가 관심을 가져줍니까. 어디 산골짜기로 들어가서 나무와 개울 앞에서 목 터져라 소리질러봐야 기사에 한 줄 나옵니까? 거기서 누가 뭘 하고 있는지 세상은 몰라요.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거리로 나오고, 교통을 막고, 고성을 내고, 시민들을 불편하게 하는 겁니다. 그래야 관심을 가지거든요. 사람들의 역할은 저들이 우릴 불편하게 하니까 개새끼고 개새끼들은 몽둥이로 때려서 내쫓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왜 저런 시위를 하는 거고, 그들이 하는 말은 무엇이며, 왜 밖에 나와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시위를 하는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시위가 불법이고, 사람들 불편하게 하고, 피해를 발생시키는 건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절차가 신념보다 위에 있으면 안 되는 것처럼,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그들의 주장과 요구가 형해화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들이 하는 말이 옳다면 그 표현 방법이 잘못됐더라도 그에 대해 타당성을 인정해야 해요. 즉, 생각해봐야할 문제라는 겁니다.

 

 

시위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옳고 타당하다면 그에 대해 같이 요구해줘야 합니다. 그냥 그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기만 해도 되요. 인터넷에 한번 검색해보고, 관련 기사 하나 찾아서 보기만 해도 그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시민들의 관심과 그 이슈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결정권자들에게 눈에 보이는 수치로 다가오는 요구가 됩니다. 왜냐고요? 그게 민주주의니까요. 시민들이 요구하면, 그들은 요구에 부응해야 합니다. 그것이 타당하지 않기에 들어줄 수 없다면 그 또한 대의 민주주의고요.

 

 

건전한 민주사회라면 소수자, 약자의 시위에 대해 '왜'를 생각하고, 그것이 타당한가를 먼저 따져야 합니다. 우리가 관심이 없었던 사각지대에서 어떠한 불편과 문제가 있었는지를 알아야 하거든요. 절차와 제도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약자를 위해 기능하지 않을 때 저항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방식입니다.

장애인 단체가 불편을 야기하며 시위를 했을 때, 그것이 타당하다면 그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어 지적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올바르고 적절한 해법입니다. 그렇게 사회가 진보하는 거고요. 그렇지 않고 지적질, 훈수질, 비난질만 한다면 진보할 수 없어요.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없는데 그런 행동이 어떻게 정의롭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용률 낮은 교외 버스정류장이 불편하다고 의자 세워달라, 비를 피할 수 있게 지붕을 설치해달라. 시에 요구하면 실제로 들어줍니다. 제가 경험해본 거거든요. 장애인들이 이동하기 불편하다고 요구한다면 들어줄 수도 있어요. 불가능한 거 아닙니다.

 

그들이 시위하면서 출근도 제대로 못하겠고, 불편하고, 시끄럽다면 그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보고, 그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면 그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면 됩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자신이 요구하는 결과를 달성했음에도 세상이 끝날 때까지 시위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요. 시끄럽다고 쫓아내는 건 올바른 게 아닙니다. 그들이 왜 시위를 하는지를 따지는 게 옳고, 그들의 요구를 따지는 게 올바른 거죠.

 

그래서 시위자들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겁니다. 그래야 들어주고 관심 가져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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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가 나쁜 건 아닙니다. 자기가 고기를 안 먹겠다고, 소비하지 않겠다고 하는 게 나쁜 건 아니죠. 하지만 모든 신념은 강요하게 되었을 때 그 자체로 악덕이죠. 종교를 강요하거나, 국가를 위한 희생을 강요하거나, 독재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채식주의자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신념을 남에게 강요하곤 하죠. 그게 문제인데, 그런 채식주의자들은 자신들을 사회운동가이자, 대의를 위해 투신하는 신념가라고 생각한다는 게 우습다는 겁니다. 신념? 있을 수 있죠. 나쁜 게 아니라면 더 좋죠. 하지만 그들은 그 신념을 남에게 강요하고, 시끄럽게 굴며 심지어 공개적으로 방해하기까지 한다는 겁니다.


더 웃긴 건 그런 이들 중 일부는 과거에 고기를 먹거나, 그런 채식주의자나 육식 혐오자 코스프레를 하면서도 남들 몰래 고기를 먹고 즐긴다는 거죠. 위선이죠.



그들이 원하는 건 진짜 자기 신념대로 사는 삶도 아니고, 진짜 그 신념에 따라 도축과 육식을 막고 그들 말에 따라 불쌍한 동물들이 죽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진짜 원하는 건, 이렇게 선을 위해 행동하고 실천하는 자신의 모습 그 자체이고, 그것을 남들에게 보여주며 칭찬 받고 지지 받고, 자신을 공격하는 몽매한 적들과 의연하게 싸우며 이겨내는 멋진 나인 거거든요.


그리고 그건 보여주기 위해, 감당할 수 있는 사소한 리스크만 따지며 더 많은 관심을 요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지도 않고 관심도 가져주지 않는 곳은 가지고 않는 거죠. 물론 이거야 사회운동이라면 대중에게 더 많이 노출되는 것 또한 목적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칩시다.


하지만 진짜 자신들이 동물들의 생명과 행복을 위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러한 활동에 못지 않게 남들이 보지 않고, 관심 가져주지 않는 곳에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행동하고, 가능하다면 변화시킬 수도 있어야 합니다. 즉, 편한 곳에서만 놀지만 말고, 힘들고 어려운 곳에서도 놀고, 어디서든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근데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한다는 게 기껏해야 음식장이나 정육점에서 시끄럽게 하고 장사 방해하는 게 다죠. 불매운동이야 해당 매장이나 기업 앞에서 시위하거나 항의하는 게 있으니 이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찌질하고 조악한 건 사실이다만요.



근데 제가 진짜 꼬집고 싶은 건, 그들이 얼마나 찌질하게 굴고 관심을 갈구하는 병자들이며, 자아도취적인 꼬맹이들인지가 아닙니다. 더욱이 이러한 것들은 공격하기도 쉽고, 감정적으로도 와닿으며 시원한 쾌감을 느껴주겠지만, 실제 이런 판에서 그런 식으로 공격했다 훈련 받은 사이비에게 역으로 털리는 경우도 있듯이, 그 채식주의 흉내자들이 머저리들이라 그럴 뿐이지 실제 정제된 논리로 반격해오면 공격자의 논리가 꼬이거나 되려 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이들을 보거나 겪은 경험이 많아서 앞서 비판한 영역에서 감정적인 대응을 통한 공격은 어떤 면에서 반격 받기도 쉽다는 걸 압니다. 당장 왜 마장동 축산시장에선 시위 안 하냐고 한다면 앞서의 이유처럼 사회운동은 대중에게 더 많은 노출을 하며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알리거나 관철시키는 거라고 반격한다면 할 말이 없죠. 아무도 모르는 산 속에서 인권운동하며 시위한다고 누가 알아주고, 어떤 변화가 있겠습니까. 그러랑 같은 거죠.



그러니 그들이 하는 주장의 조악함: 비논리성, 빈약한 팩트체크, 효용이나 현실적 필요성과 무관한 감성에 기대는 주장 그 자체를 공격해야 합니다.



가령 실제 채식주의가 필요하다거나 육식을 대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중 학계에서도 진지하게 다뤄지는 게 몇몇 있습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 중 하나인 메탄가스가 가축에 의해 발생하는 게 상당히 많고, 인구부양력을 따진다면 육류보다 곡류가 압도적으로 우월하고, 효율적이기도 하죠. 그래서 방귀세를 먹인다거나, 대체 가공육류가 새로운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고 실제 성과도 나타나고 있죠. 심지어 고기가 아니라 벌레를 통해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는 것도 미래 먹거리 산업이자 연구 분야로 건드려지고 있기도 합니다.


생각보다 소의 트름이나 방귀에 의해 발생하는 메탄량은 상당한 편이고, 비단 반추동물이 아니더라도 인풋과 아웃풋에서 가축보다 곡류의 생산이 훨씬 더 효율적입니다. 농작지, 목축지와 같은 땅도 면적 대비 효율로는 역시 곡류가 더 뛰어나죠.



하지만 채식주의 코스프레를 즐기는 이들은 그러한 모든 학설과 논리, 근거는 죄다 내다 버리고 감정적 주장만을 합니다. 때로는 감정이 이성과 합리보다 더 우월하게 작용하는 전략이 될 수 있겠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기를 먹기 때문에 그닥 공감할만한 방법이 아니라는 거죠.


그렇다고 그들이 진지하게 사회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연구하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어디서 들은 출처불명의 낭설을 근거로 주장을 해대기도 합니다. 그러니 구체적인 논리와 근거를 대며 최소한의 합리성을 기반으로 먹힐만한 주장을 펼쳐야 실제로, 아주 조금이라도 먹히기라도 할텐데 그러한 노력이 전혀 없어요. 혹은 능력이 없거나.



그러니 그들이 하는 활동을 지적허영과 위선, 자아도취라고 하는 거고요. 그 모양새가 어린 애들, 진보 특유의 것들입니다. 그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 뿐입니다. 그들이 지성이 최소한의 성과를 이루기에 모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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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ted.com/talks/zachariah_mampilly_how_protest_is_redefining_democracy_around_the_world?language=ko




예전에, 타 커뮤니티에서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누군가 선거 또한 하나의 세뇌라는 표현을 썼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당연히 세뇌라는 용어가 부정적으로 여겨졌고 반발했죠. 하지만 어떤 면에서 그 말은 틀린 말은 아니었다고도 봅니다. 기실, 보수 진영에서 시위와 집회를 부정적으로 보고, 실제로 그러한 것들이 억압 받으며, 불만이 있으면 힘을 가지던가 선거를 통해 해결하라는 화법을 사용하곤 했죠.


그것은 한국의 역사적 경험에 의한 일일 것이며, 그러한 맥락에서 선거와 투표만이 올바르고 정당하다는, 시위와 집회는 강경한 행위이고, 혼란과 폭력이 발생하기 쉬운 위험하거나 어찌됐든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 그런 것이다. 라는 편견이 선거 또한 세뇌이다. 라는 의미였지 싶습니다.


뭐, 사실 시위와 집회가 많았고, 지금도 이루어지는 일이며, 요 몇년 동안 이루어진 집회와 시위 문화는 꽤 성숙하다는 평가를 받는 역사적 경험이고 사례이죠.



그런 맥락에서 시위와 같은 직접적 행위, 비정규적 실천은 민주주의라는 것이 시행되고 작동하는, 혹은 그래야 하는 어떤 사회에서든 장려되야할 것입니다. 국가와 같은 비대한 집단에서 문제는 언제나 발생하고, 그 규모가 크든 작든 누군가는 피해를 보고, 이것들은 고쳐져야할 일들이죠. 그러나 그것을 선거와 같은 방식으로 요구한다면 더욱 비효율적이고 더 많은 비용을 야기할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더욱 적극적이어야 하고, 집회와 시위는 폭력적인 것도, 위험한 것도, 부정적인 것도 아닌, 집단화되어 다수의 의견을 표출하고, 그에 대해 많은 이들이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게 하며, 의제에 동참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조직화된 민주적 의견 표출 방식입니다.


이건 아주 이상한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며, 위험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러한 편견이나 인식이 은연 중에 남아 있다면, 그것은 그러한 활동을 반대하고 억압하고, 묵살하려는 세력이 만들어낸, 만들어냈던 의지에 오염된 것이죠. 



우리의 생각보다 시위와 같은 적극적 의견 표현 방식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관심가지지 못했던 아프리카에서도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프리카 또한 사람 사는 곳이고, 시간의 흐름만큼 변화하는 세상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더군요. 




많은 분들처럼 저도 종종 민주적인 절차에 불만을 느낍니다. 골치 아프고 복잡하죠. 때로는 비효율적입니다. 우리의 정치적인 지도자들은 평범한 이들의 관심사로부터 단절되어 있습니다. 몇 년에 한 번씩 있는 우리 일상의 과업과 동떨어져있는 지도자의 투표는 무의미하다고 많은 이들이 느낍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거부하기에 앞서 이것이 무엇인지를 상상해봅시다. 그리고 저는 아프리카의 운동가들이 시위를 중심에 두며 민주주의를 재정의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시위 민주주의"라 일컫는 것이죠.



00:53


국제 기관과 전문가들은 민주주의가 평범한 여러 정당의 선거 경쟁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투표함을 앞에 둔 엘리트들의 경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 민주주의는 우리가 매일 참여하는 무언가가 되어야만합니다. 제가 "시위 민주주의"라고 말할 때 저는 민주주의 활동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거스르게 됩니다. 민주주의를 선거로만 바라보는 것은 부적절하며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민주주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이를 거부해야만 합니다.



01:36


그렇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 점점 더 거리로 나아가고 있는 아프리카 사회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아프리카의 사회적 운동은 이런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정의하는데 앞장서 왔습니다. 이는 아프리카인들이 정치에 참여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더 효과적인 비폭력 행동을 위해 점점 더 거리로 나아가고 조직화된 폭력을 거부합니다.



02:12


저는 지난 이 십년의 대부분 동안 폭력적, 비폭력적인 아프리카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서는 알려진 거의 대부분의 정권들에 대항하기 위하여 젊은이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 친구 티아트입니다. 그는 세네갈 출신의 래퍼입니다. 세네갈의 큰 운동을 이끌었고 이 운동은 대통령이 세 번째 임기를 채우는 것을 성공적으로 막았습니다. 모로코에서 레소토에 이르기까지 뿌리 깊은 군주제를 저지하기 위해 젊은이들이 일어서고 있습니다. 이집트와 수단에서는 잔혹한 독재에 맞서고 있죠. 우간다와 에티오피아에서는 유사 민주주의의 탈을 쓴 강력한 군사국가에 대항하고 있습니다. 이 사진이 찍힌 남아프리카와 브룬디에서는 평범한 이들의 형편을 나아지게 하는데 기여하지 못한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에게 대항했죠. 대륙 전체에서 시위는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분입니다. 아프리카인들은 독재자에게 대항하기 위해 시위를 할 뿐 아니라 권력을 멈추게 할 때도 사용합니다. 어떤 면으로 아프리카인들은 민주주의 자체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 그 가치를 높이면서 말이죠.



03:26


아프리카의 시위에는 두 가지 큰 흐름이 있었고 현재 우리는 2005년에 시작된 세 번째의 물결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는 아프리카 대륙의 대부분에서 일어났던 아랍의 봄이라 불리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흐름은 1940년대와 1950년대 사이에 일어났고 아프리카의 탈식민지화를 이끌었습니다. 과메 은크루마가 이끈 가나의 연립정부가 영국의 지배를 무너뜨렸습니다. 전세계에 비폭력 운동의 본보기를 보여주면서 말이죠. 두 번째 물결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아프리카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가져온 긴축 정책에 맞서는 것이었죠. 이러한 시위들은 독재정권의 붕괴를 이끌었고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 복수 정당 선거를 도입했습니다.



04:13


현재 진행중인 세 번째 물결은 앞선 두 개의 물결의 결점을 보완합니다. 첫 번째 물결은 자유를 가져왔지만 민주주의를 가져오진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선거를 도입했지만 엘리트들을 위한 선거였죠. 세 번째 물결은 민주주의를 보통 사람들의 통치로 바꾸는 것과 가장 연관이 있습니다. 이는 세네갈의 '지긋지긋해' 운동과 부르키나 파소의 시민의 빗자루 운동 짐바브웨의 타자무카 콩고 민주공화국의 루차와 플림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정치적인 시스템에 도전하기 위해 인습적인 비정부기관이나 정당 밖으로 뻗어나가려는 운동들이 종종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루차의 프레드 바우마와 같은 똑똑한 젊은 활동가들이 구금되고 고문을 당했습니다. 국제사회의 항의는 거의 없었죠. 저희가 모든 데이터에서 보시다시피 목록은 계속됩니다. 2005년 이후 40개가 넘는 아프리카의 국가에서 규모가 큰 유명한 시위들이 있었습니다. 보시면 2011년 아랍의 봄이라 불리는 해에 실제로 이 광범위한 파장이 절정에 달합니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많은 시위들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우리는 튀니지와 이집트의 독재자들이 몰락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명한 시위들은 대통령이 세 번째 임기를 채우는 것을 막았죠. 세네갈, 말라위, 그리고 부르키나 파소에서요.



05:43


이 시위를 고조시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인구통계학적으로 아프리카는 가장 젊고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대륙입니다. 국민들과 지도자들의 나이 차도 가장 크죠. 아프리카는 엄청난 속도로 도시화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아프리카 국가들은 십 년이 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아시아의 투자의 영향을 받았죠. 그러나 이 부의 극히 일부만이 국민에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산업 분야의 정규직은 실질적으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생계를 겨우 꾸려나가는 이들에게 비정규직의 일자리만 남아있죠. 그 결과 불평등이 극심해지고 있으며 정치 지도자들은 그들보다 나이 어린 국민들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06:26


아프리카 외부에 있는 우리들에게 이런 이야기들은 친숙합니다. 극심화된 불평등 한 때, 진보된 사회의 전형이라 여겨졌던 높은 임금의 좋은 일자리들의 감소, 한때 평범한 이들의 목소리가 되어 주었던 시민 사회가 사라져가며 발생한 엘리트 정당의 몰락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하든 국제 경제와 관련된 외부 요소들이 여러분의 생활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가슴 철렁하는 느낌.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은 절약만을 외치며 무기력해 보입니다. 몇십 년간 공공재가 보이지 않는 단계까지 사라지는데도 말이죠. 동시에 그들은 우리의 고통을 강자가 아닌 약자에게 떠넘기며 배타적 민족주의에 굴복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미인들이나 서구 유럽인들이 생각하는 새로운 것이란 1970년대 이후 아프리카인들의 평범한 삶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오랜 기간동안 이런 상황에 저항했던 사람들보다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07:29


아프리카의 민주화 운동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첫 번째, 민주주의는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시작해야합니다. 민주주의를 선거로만 바라보는 것은 만연한 환멸감을 가져옵니다. 대신 평범한 이들이 민주주의적 삶의 중심이 되도록 힘써야합니다. 시위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합니다. 여러분의 나이, 성적 취향, 성별에 관계 없이 시민이든 외국인이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선거와는 반대로 시위는 엄격한 선거 주기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즉각적인 피드백의 시대에 즉각적인 형태의 조치를 더 많이 제공하죠.



08:08


둘째로, 시위는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이로 인해 강력해집니다. 시위는 논쟁을 벌이고 경쟁적인 과정이며 불확실한 행동에 의해 규정됩니다 때로는 명확한 메세지가 결여되어 있고 불완전한 기관에 의해 규정되죠. 이 역동성이 시위를 폭동이라고 폄하하거나 제한된 정치적 효용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기도합니다. 억압하기 쉽다고 생각하게 만들기도 하죠. 빈번히, 정부는 시위를 민주주의의 기본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대신, 이들의 메세지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기 위해 사회적인 운동을 폭력적으로 짓밟습니다.



08:53


세 번째, 제가 언급한 것처럼 시위는 새로운 정치적 상상이 생겨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시위는 선 밖을 색칠하는 작업입니다. 평범한 이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느끼는 게임의 규칙들을 새로 만드는 방법이죠. 아프리카의 많은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일생동안 단 한 명의 지배자가 통치하는 사회에서 자라왔어요. 시위는 새로운 가능성이 생겨나는 공간입니다. 젊은이들이 그들이 지닌 힘을 발견하게 되면서요.



09:24


제 친구인 린다 마사리라의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다섯 아이를 홀로 키우는 엄마죠. 그녀는 짐바브웨의 무가베 정권에 대항하는 시위를 이끌고 있어요. 두들겨 맞고, 체포되고, 괴롭힘을 당했죠. 하지만 견뎠어요. 몇 달 전 제게 말했던 것처럼, 시위는 그녀에게 의미와 방향성을 주기 때문이죠. 자신에게 닥칠 역경을 알고 있지만 린다는 굴하지 않습니다.



09:47


린다나 아프리카의 다른 젊은 활동가들처럼 우리 모두는 민주주의를 선거와 정당 그 이상으로 재정의하기 위해 노력해야합니다. 민주주의는 창의적인 과정이며 시위는 늘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이상의 정치적인 상상력을 확장시키기 위한 매개체가 되어 왔습니다.



10:08


(스와힐리어) 대단히 고맙습니다.



10:09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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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연합 “일당 운운하는 자들 고소”


어버이연합은 자신들이 일당 받고 시위 한다고 이런 말을 한 적 있습니다.

“일당 15만원”, 보수단체 누리집에 시위대 모집글…“우리 입장 아냐”
“어버이연합 집회 일당 2만원에 수수료 10% 뗐다”
24일 검찰 출석 앞둔 추선희 "시민단체가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게 무슨 문제냐"
[단독] 어버이연합 전직 간부, 탈북자와 이상한 돈놀이
[단독] 어버이연합, 세월호 반대 집회에 알바 1200명 동원 확인
보훈처 급조 '님을~'합창단 일부 '일당 5만원 알바'(종합)


하지만 팩트는 이랬죠.



왜 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냐면, 제목에서 말하고 있듯이, 박사모와 같은 보수단체들이 폭도 짓을 하고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시민에게 침 뱉은 보수단체 회원..'과격한 행진' 눈살

보수단체 집회에서 일부 태극기 버려져 논란


이번 촛불집회는 굉장히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었죠. 싸워야할 대상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에 대해 질서 있는 모습으로 집회를 열며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고 쓰레기도 스스로 치우며 훈훈한 분위기로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잘못을 지적하는 모습은 굉장히 대단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하지만 그런 촛불집회를 바람 불면 꺼질 것들이며 종북이니 불순세력이니 하는 자들은 정작 몇 천, 몇 만 모이지도 못한 주제에 시민에게 침을 뱉고, 욕하고 기사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마이크를 빼앗으며 행패를 부리는 폭력시위를 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극기를 함부로 버리고 시위에 나온 고등학생을 폄하하며 유권자도 아닌 것들이라고 깍아내리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보수단체는 현재 폭력시위를 하는 폭도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거죠. 대한민국 국기를 버리고 국민을 편가르고 욕하는 불순분자 폭도라는 겁니다. 그들이 이제까지 말했듯, 대한민국에 피해를 주고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는 그들의 사상을 의심스럽게 하는 데, 자유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헌법을 무시하고 파괴하며 안보를 위협하는 것이 바로 보수단체라는 집단이라는 겁니다.


그런 보수단체들에게 돈을 대주고 일당으로 어용 관제시위를 조직하는 자들이 보수라는 세력인데, 어버이연합이나 박사모에 돈을 대주는 자들을 캐보면 알 수 있는 일이죠. 전경련, 보훈처, 국정원, 청와대 등에서 어버이연합을 비롯한 여러 단체에 뒷돈을 대줬다는 증거는 간단한 검색으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실입니다.


이번 폭도집단인 박사모 또한 일당을 받았다는 의혹이 존재하고, 그들의 속성을 생각해보면 높은 확률로 돈을 받고 시위를 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봅니다. 돈 받고 하는 일이라 그리들 열심히인 거죠. 선동전을 위한 어용 집단들에 불과합니다.


이를 다르게 말하자면, 그들을 조종하고 그들에게 뒷돈을 대주는 집단은 곧 사상이 의심스러운 불순분자이자 반헌집단이라는 겁니다. 즉,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와 헌법을 파괴하고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안보를 위협하며 혼란을 발생시키기 위해 보수단체라는 이름의 집단들에게 공작금을 지급하여 그들 폭도를 이용하여 폭력시위를 발생시켰다는 거지요.


따라서 이들과 연결된 모든 집단은 그 사상이 의심스럽고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자들도 불순분자이자 잠재적 폭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안보와 자유 민주주의 및 헌법을 파괴하고 위협하는 존재를 우리의 적인 북한에 도움이 되는 자들이라고 할 경우, 그들을 종북이라고 할 수 있는 데, 지금 광화문에서 보수단체라는 이름으로 폭도짓을 하고 있는 이들은 아주 정확히 종북이라는 범위에 속할 수 있는 자들이라는 것이고 그들에게 동조하는 자들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이 아이러니함은 억지나 비약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완성되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즉, 자신들은 애국자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사실은 종북 빨갱이에 가장 가까운 자들이라는 거죠. 그들의 낮은 지성과 비상식적 가치관과 사고력을 생각해보면 절대 인정하지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할 사실이겠지만 말입니다.


전부터 꾸준히 말했듯이, 대한민국을 망치는 건 보수입니다. 이전의 여러 글들에서 지적하고 비판하고 증명했듯이 말입니다. 당장 이번 사건 자체가 박근혜와 새누리당이라는 거악집단과 그들을 지지했던 보수국민들에 의해 발생한 안보 및 자유 민주주의 파괴 사건이니까요. 이런 모든 사실들이 밝혀지고 지적 받지만 그런다해도 인정하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않고 반성하지도 않을 개돼지 가축들이라는 게 참으로 슬픈 현실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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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그들이 보수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꼴통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한국에선 꼴통이 거진 보수, 극우진영에 몰려있을 뿐이죠. 그러한 꼴통들이 그곳에 몰려있는 이유는 다름아닌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정신세계 때문이고요.



그들이 보여주는 특유의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


1.자신이 했던 말을 자신이 반박한다.

2.기본적으로 인권, 민주주의 등의 사상에 대해 빈약한 이해도를 가진다.

3.기계적 중립만을 고수하는 태도를 보인다.

4.근본이 아닌 현상에 대한 이해만 한다.

5.자신이 경험한 것 이외에 대해 매우 무지할 뿐더러,

5-1.그 밖의 세상이나 지식을 배우거나 경청하지 못한다.

6.자신과 같은 진영에 벗어난 타인에게 공감이나 이해, 감정이입하지 못한다.

7.기본적인 도덕성이 떨어진다.

8.자신에 대한 광범위한 집단적 비판에 대해 어떠한 특정 배후세력을 의심한다.




이명박, 박근혜, 윤X인, 심지어 방송사인 MBC나 KBS, 조선일보 등에서도 그러한 모습을 보입니다. 흔히들 말하는 유체이탈 화법, 혹은 XX의 적은 XX (X적X)는 그러한 특성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죠. 보수쪽에서는 흔히 진보에게 이중성이라는 프레임을 부여하고 그들의 이중성을 비판하곤 하지만, 사실 진짜 이중성의 극에 있는 이들은 바로 보수 본인들입니다.


박적박, 윤적윤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일관된 논리나 태도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한 이유는 위의 특성들이 각각 결합하여 나타난 것인데, 그들은 사상과 이념에 대해 매우 빈약하고 낮은 수준의 이해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일관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즉, 그들이 일관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을 만큼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이고,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이 멍청하기 때문이라는 거죠.[각주:1]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사건마다 일관적이지 못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고, 상황이 달라지면 역시 태도 또한 돌변하기 마련입니다.


대표적으로 아래와 같은 사례와 비판이 있습니다.


2015/07/14 - [취미/이야기] - 그들은 '이중성' 안보, 국방.

2014/08/26 - [취미/이야기] - 숭고한 보수의 '진정성'

2014/05/13 - [취미/이야기] - 나는 이성적이다. 쿨뽕.

2015/06/11 - [취미/이야기] - 쥐명박과 노알라가 다른 이유.

2015/04/25 - [취미/이야기] - 성완종 게이트, 여당이 특검하자고 하는 이유.

2014/12/09 - [취미/이야기] - 복지 없는 증세.




기계적인 중립은 그들의 비인간성을 부각시키며 또한 그들의 무지함을 들어내기도 합니다. 그러한 기계적 중립은 역시 2번의 지적 빈약함과 4번의 현상만을 이해하는 떨어지는 이해도가 결합되어 나타나는 모습인데, 예컨데 시위대와 경찰간의 마찰에 있어서 시위대도 잘못했다던가, 새누리당이 이런 말을 하기도 했죠. 네이버, 다음에 야당에 편향적인 기사가 더 많다고. 이게 얼마나 웃긴 말이냐면, 새누리당이 12개의 똥을 싸고 새정연이 2개의 똥을 싸면 언론은 없는 새정연의 10개의 똥을 만들어서라도 보도해야 하기라도 하냐는 겁니다.


기실 시위대와 경찰간의 마찰은 근본적인 이유를 따지고, 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그러한 말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꽤 길 설명이 될 것이기에 다른 글을 링크로 하여 대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글을 클릭하세요.

[펌] 이번 시위가 잘못되었다는 애들 논리로 구타하는 방법

(펌) 우리에겐 신선한 충격인 96년 프랑스 화물노조 파업

두고두고 회자되는 전설의 프랑스 소방관들의 시위

프랑스의 흔한 시위 장면.JPG


그들은 어째서 시위가 발생했는지라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어떠한 파악이나 이해 따위는 없이, 단지 시위와 그에 따른 충돌, 갈등이라는 현상만을 보고 판단을 하는 겁니다. 물론 사상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그 자체로 설득력 있는 비판이 있을 수가 없죠. 각각을 완전히 동일한 객체와 객체로 보고 서로 다쳤으니 서로가 잘못했다는 수준에 그칩니다.


누가 더 힘이 세고 누가 더 오래 괴롭혔으며, 누구에게 원인이 되는 책임이 있는지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그냥 둘이 싸웠으니 둘이 화해하고 끝내자는 꼴통 선생님과 같은 모습이죠. 명백히 발생하고 있는 더 센 아이의 지속적인 학교폭력이라는 인식이 전혀 없는, 애들끼리 있을 수 있는 흔한 다툼 정도로만 보는 것과 똑같은 겁니다.


당연하지만 그러한 것은 절대 해결책이 되지 않으며, 심지어 비판으로서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한채 그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이들에 의해 사회적 논란과 구조적 혼란만을 지속시킬 뿐이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러한 기계적 중립식 비판은 되려 문제를 키우고, 때때로 문제를 만들기까지 한다는 겁니다. 그들이 흔히 말하는 사회적 혼란은 잘못되었다라는 것을 본인 스스로 발생시키는 꼴이고, 이는 앞서 지적한 일관적이지 못한 이중성을 반복하는 것이죠. 물론 그들이 그러한 언행을 보이는 것은 본인 스스로 이중적이지 않다는 -그리고 그러한 낮은 수준의 판단을 내리게끔 만드는- 뒤떨어지는 지적능력에서 기인합니다.


2015/06/02 - [취미/이야기] - 사스와 메르스, 정부에 어떤 차이가 있길래?

2013/10/19 - [취미/이야기] - 한국식 문제 해결법


위 링크의 첫번째 글에서 원인이 아닌 현상에 대한 비판만을 하는 그들의 적나라한 모습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한 바 있습니다.


한 때 한국식 문제 해결법의 글에서처럼 그들이 원인이 아닌 현상만을 해결하려고 하는 행태에 대해 그들이 그러한 비용을 지출하길 싫어하며, 일하는 것을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니, 현재에 와서는 그냥 지적으로 모자라기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바뀌려 하지 않나 하고 생각합니다.


하여간, 그러한 이유로 인해 한국에서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면 적어도 보수정권에서 만큼은 분명하게 근본적인 대책이라는 것은 나오는 것이 매우 드뭅니다. 적어도 본 기억은 없군요. 그들의 지적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근본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그저 눈에 보이기만 하는 현상에 대한 비판과 해결책만이 제시될 뿐이죠.


시위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해야 시위가 발생하지 않을까라는 사고를 시작으로 그들이 주장하는 것과, 그러한 주장을 통한 문제에 대한 인식과 문제의 시작점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러한 인식을 기반으로한 합리적인 해결방안이 제시되지 않고, 시위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해야 저 시위를 막을 수 있을까라는 쪽으로 사고가 시작됩니다. 그러한 사고에 따라 더 많은 경찰인력과 더 두터운 차벽, 더 강경한 시위진압으로 귀결이 나는 것이죠.




그들이 흔히 말하곤 합니다. 나 때는, 노력을 하면, 너희들이 게을러서 등등.. 실제로 마리 앙투아네트가 하진 않았지만 그녀가 했다고 알려진 유명한 말이 있죠.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남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는 소시오패스라고 합니다.


물론 수 백만명 이상의 보수가 모두 소시오패스일리는 없습니다만, 그들이 그러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그들은 자신이 겪어본 것만을 이해하고, 그 이외의 것은 이해할 수 없는 1차원적 지적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생활이나 인식을 시뮬레이션 할 수 없고 그렇기에 공감이나 이해를 할 수 없죠. 흔히 꼰대라고 하는 꼴통들이 그러한 문제를 보편적으로 보여주곤 하는데, 나때는 그렇게 했다고.. 나는 그렇게 했다고 타인도 그렇게 해야 한다거나 그렇게 해야 할 수 있다고 말하곤 하죠.


쉽게 말해서 자신의 경험만이 진리이고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고려사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작용한다고 해도 큰 의미는 없습니다. 그들이 진리, 혹은 옳다고 생각하는 매체나 이야기, 사례로 바뀔 뿐이지 그들의 사고방식 자체는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컨데 그러한 모습은 아래의 글로서 설명을 대체하겠습니다.


2014/12/23 - [취미/이야기] - 선동 당한 보수는 이런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 특정 매체나 일부 사례만이 옳고 그것을 벗어난 것에 대해서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그것들 외에 들어오는 이야기나 지식은 받아들일 수 없고, 오직 자신이 받아들이는 매체로서 기반을 둔 것들로만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역설적이게도 자기 스스로 판단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어떤 개인이 조선일보, 동아일보 및 종편채널에서 하는 말만을 받아들인다면 곧 그들이 하는 말을 똑같이 따라하고 그들이 주장하는 것만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 됩니다. 반대로 다른 모든 매체는 거부하며 한겨레만 읽는다면 한겨레에서 하는 말만이 곧 진리로서 기능하는 것과 같다는 걸 말하는 거죠.


그러한 사고관을 가진 사람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되면 매우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오직 자신이 아는 것만을 맹신하고 있으며, 정보나 지식이 들어오는 방향이 오직 한 곳이라면 그 곳에서 나오는 주장만이 그 사람에게 기능할 것이고, 그러한 경위로 인해 실제로는 어떻게 돌아가든 옳지 못한 판단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입니다.


예컨데 조중동만을 보는 사람이 복지정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실제로 국민들이 얼마나 복지에 취약하며 얼마나 복지가 필요하고 얼마나 힘들고 위험하게 사는지와는 별개로 복지정책의 축소 및 소극적 개편으로 방향이 잡힐 가능성이 높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반면 북한에 호의적인 매체를 보는 사람이 국방정책을 짜는 사람인데 북한이 군사도발을 했을 때 되려 북한에 소극적이고 온건한 대응을 하며 저자세로 나간다면 국방과 안보에 매우 큰 위협이 되듯이요. [각주:2]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에 대한 비판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달게 받으라는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러한 교훈을 주는 사례는 역사에 차고 넘치고요. 그렇지만 보수에 몰려있는 수 많은 꼴통들은 그러한 타인의 사례에 대해 매우 무감각하고 이해나 공감할 수 없습니다. 저 위 링크의 어느 장년이 젊은이들에게 하는 일갈은 실제 삶을 통해 겪고 있는 젊은이라면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틀려먹었는지 바로 알 수 있는 헛소리임을 알 수 있을테니까요.


그리고 그런 이들에겐 실제 젊은이들이 자신들이 얼마나 어렵고, 과거와는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이야기해줘도 전혀 받아들이질 않는다는 것도 알 겁니다. 모른다면 직접 경험해보세요. 저런 주장 하는 사람 잡고 자신들의 현실을 이야기해보십시오. 절대 받아들이지 않고 무조건 자신들이 옳다고 우길테니까.




우리가 언론을 보다보면 알 수 있듯이, 그들은 기본적으로 도덕성이 매우 떨어집니다. 사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의 영토에선 썩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새누리당의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막말, 부정부패, 성추문 등의 범죄는 우리에게 있어서 너무 익숙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최근에도 어김없이 터져나오는 김무성의 막말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죠. 입만 열면 망언에 막말이니까. 저 위에서도 나왔듯이 새누리당이 야당에 편향적인 기사가 많다고 하는 데, 사실 그럴 수 밖에 없죠. (사실 편향은 절대 아니지만요.) 새누리당이 더 많은 막말과 사건, 범죄를 저지르고 야당은 그보다 더 적은 문제를 일으키니 정상적이라면 새누리당의 잘못에 대한 보도가 더 많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


최근에도 김무성을 비롯한 보수인사, 보수언론, 그리고 보수적인 국민들이 말하고 생각하듯이, 법을 어긴 시위대 쪽도 잘못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들은 별 잘못이 없죠. 객관적이고 상식적인 판단이 가능한 정상인이라면 경찰측이 더 큰 잘못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으니까요. 보수쪽이 그렇게 법치를 좋아한다면 왜 본인들은 누구보다 많은 범죄를 저지르고 막말을 일삼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사실은 법치를 농단하기 좋아하고 법을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남용하길 좋아하며, 무엇보다 도덕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도덕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그것을 지켜야하고 법이 얼마나 중요하며 어째서 그것을 지켜야하는 지에 대한 사상적 깊이가 떨어지며 그와 별 거 없는 떨어지는 저질 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그들이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이지 않고, 국가에 도움이 될 수 없음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며, 일관적이지도 않은 이중성을 보유한 노골적인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누리당의 전체를 넓게 보았을 때, 높고 대단한 위치에 있을 수록 더 많은 막말과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들은 부패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죠. 한국의 부패 형태는 엘리트 카르텔의 형태이고, 서로가 서로를 밀어주고 뒤를 봐주는 형태이기 때문에 그 구조 속에서 성공하려면 더 많은 부정부패와 범죄에 연루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내 뒤를 봐주는 형님을 위해 성의, 선물을 주기 위해 무언가 마련해드려야 하는 데 그게 결코 합법적이거나 도덕적일 수는 없으니까요. 절대 그냥 선물이 아니고 남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언론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것들이니까.


그들이 얼마나 국가와 사회에 있어서 해롭고 비도덕적인지는 아래의 글로.


2015/04/26 - [취미/이야기] - 해로운 범죄를 저지르는 양복 입은 침팬지

2014/09/17 - [취미/ㄴ일베 비판] - 배부르면 폭식투쟁이냐?

2014/09/13 - [취미/ㄴ일베 비판] - 반박이 아닌 조롱. 일베식 투쟁 : 광화문 집회에 대한 단상.

2015/11/08 - [취미/이야기] - 몽키하우스와 일제 위안부에 대한 단상.

2015/09/22 - [취미/이야기] - 경제에 대한 태도로 보는 진짜 보수.

2015/07/21 - [취미/이야기] - 더 이상 정부와 국정원에 신뢰할 수 없다.

2015/09/12 - [취미/이야기] - 보수와 군의 안보에 대한 시각.

2015/05/29 - [취미/이야기] - 국정원 경판임용 조사가 어째서 불법이냐고?

2015/05/29 - [취미/이야기] - 국정원의 대학내 어용 프락치 선동조직

2015/04/19 - [취미/이야기] - 법치를 부수는 정권

2015/04/11 - [취미/이야기] - 대한민국의 수많은 '반국가집단'




앞서 충분히 이야기 했듯이 그들은 특별히 더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이지도 않고 이성적이지 못하며, 오히려 반대로 남들보다 더 비합리적이고 덜 논리적이며 비이성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주제에 도덕적이지도 못하기 때문에 범죄를 반복하고, 그러한 범죄와 부도덕함을 비판하곤 하는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의 사람들을 누군가에게 선동되거나 지령을 받아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하곤 하죠.


이것은 그들이 줄곧 주장하곤 하는 배후세력에 대한 겁니다.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인정하려 들지 않고, 언제나 남탓으로 일관하곤 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그것을 지적해오면 배후세력 등을 주장하며 자신의 문제점에 대해 회피합니다.


물론 이것은 그들이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정치공학적 목적도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것이, 어떠한 증명할 수 없는 음모론적 배후세력을 주장하며 자신과 자신 세력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을 그러한 배후세력에 선동이 된 우민, 혹은 지령을 받고 그러한 비판이나 시위를 하는 어용세력으로 매도하기 위함이죠.


물론 어디까지나 자기들 세력을 지지해주는 이들에게나 통할 법한 이야기입니다. 꼴통을 지지하는 건 같은 꼴통들이니까 그들에겐 아주 잘 통하거든요. 이성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이들. 누구 말마따라 전근대성 쩔어주는 고대인인 셈이죠.


이런 식의 주장이 어디가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는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굳이 구구절절하게 지적하진 않겠습니다.


2015/06/13 - [취미/이야기] - 보수들의 집단정신병, 박원순 죽이기

2015/04/05 - [취미/이야기] - 세월호 사건과 진상규명을 뭉게려는 자에 대한 통렬한 비판

2014/08/26 - [취미/이야기] - 숭고한 보수의 '진정성'


이것 이외에도 포털에서 배후세력을 주장하는 보수인사, 보수언론의 기사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뭐.. 앞으로도 그러겠지만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배후세력이라는 가상의 적을 설정해놓고 싸우는 것은 나치 시절부터 해왔던 자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더러운 정치공작의 일환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여기까지 서술하면서 나올 수 있는 결론은, 꼴통들은 주로 보수에 대규모로 존재하며, 새누리당과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들은 사상적으로, 이념적으로 빈약한 이해도를 가지고 있으며 지적으로 떨어지며 그러한 이유로 인해 올바른 판단력을 갖추지 못했고,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며, 기본적으로 도덕성이 떨어지거나 그러한 도덕성이 떨어지는 범죄자에 호의적인 공범들이자 국가와 사회를 병들고 파괴하는 암적인 존재이다라는 것입니다.


뭐,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아니라고 생각하십시오. 그거야 자기 마음이니까.


  1. 이러한 멍청함은 단지 학교 공부를 잘하니 못하니와는 무관한 사상과 이념의 차원입니다. 수능 올 1등급을 맞았다고 해서 공산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자유주의의 역사적 발달사나 그러한 사상과 이념을 깔끔하게 설명해내지 못한 것과 같은 것이죠. [본문으로]
  2. 생각을 해보세요, 우리가 잘못한 것이 있기에 북한이 도발을 한 것이다, 이 기회에 북한과 대화하는 쪽으로 외교노선이 짜이면 좋겠다. 라고 말한다면 속이 뒤집어지지 않겠습니까? 정작 우리는 사람이 죽고 재산을 잃게 되었는데 말이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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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포터 (Will Potter): 비폭력적 항거를 범죄화하는 충격적인 움직임

2002년 수사전문 기자이자 TED Fellow 인 윌 포터는 시카고드리뷴에 자신이 통상적으로 다루는 총격과 살인에 관련한 영역에서 벗어난 기사를 쓰기로 한다. 통물 실험에 반대하는 지역 운동에 도움을 주러갔다. "저는 그것이 뭔가 긍정적인 일을 하는 확실한 길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그는 체포되었고, 그로 인해 그는 평화적인 항의가 테러리즘으로 누명을 쓰는 세계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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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엔 아주 고약한 인식이 많습니다. 그 중 하나는 시위나 집회 따위를 사회적 범죄 따위로 여기는 것이죠.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오늘날에도 분명한 문제 중 하나이고 말입니다. 이는 시위나 집회가 어떠한 목적, 성격, 그리고 그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피해자가 억울함을 풀기 위해 시위, 집회를 할 때마다 그것에 빨갱이, 반국가, 반정부, 선동과 같은 단어를 써붙히며 악마화하고 범죄화하여 소위 나쁜 것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고용주가 약속한 돈을 주지 않아서, 노동환경이 무자비할 정도로 가혹하기 때문에 등등.. 피해자가 정당한 이의를 제기하는데 그러기엔 상대하는 자의 힘이 너무 세고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의지 또한 없으니 시위를 하고 집회를 하는 겁니다. 기업을 상대로, 정부를 상대로, 그리고 우리가 그러하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그런데 수십년전 우리나라는 그런 것을 허용하지 않았죠. 모든 시위와 집회, 데모는 모조리 나쁜 것이고, 국가와 정부에 반하는 것으로 나라를 북한에 들어 바치기 위한 것이라고, 빨갱이들이라고, 빨갱이에게 '선동'당했다고 '선동'했지요. 신문에서 뉴스에서 나라에서 시위니 뭐니 하는 것들은 죄다 나쁜 것이라 말하며 몽둥이 들고 후려치니 모르는 사람은 그냥 나쁜 것인갑따.. 하면서 그냥 그렇게 알게 되었죠.

문제는, 이게 아직도 통한다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비단 나이든 어르신이 아닌 10대 20대 젊은이도 주류 언론이 말하는 대로 그대로 이해하고 다른 이야기는 모조리 조작이고 왜곡이고 선동이라 여깁니다. 모든 시위는 나쁜 것이고 모든 집회도 나쁜 것이죠. 물론 '우덜'이 하는 시위와 집회는 좋은 겁니다. 일베의 광화문 폭식(풉)투쟁만 봐도 그렇지요.

사실, 시위나 집회 같은 것들은 사회에 순기능을 하는 활동입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고, 건전하고 올바른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 더더욱 필요한 운동들이죠. 그에 대한 내용은 위쪽 링크의 글을 참고하길 바랍니다.


위 동영상의 윌 포터는 동물 실험에 반대하는 지역운동에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FBI가 찾아왔고, 그렇게 테러리스트 딱지가 붙었지요.

그가 했던 시위는 비폭력적인 항거였습니다. 동물실험을 반대한다는 요지의 시위였어요. 당연히 폭동 또한 아니었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범죄화했습니다. 그에게 스파이 행위를 강요했고 테러리즘의 누명을 씌웠지요. 우리나라에선 너무나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실제로 과거 운동권에서 그렇게 하라고 강요받거나 강요한 사례가 있고, 아예 공부는 잘하지만 운동권에서 멀었던 학생을 운동권에 집어넣고 조종하거나, 정보를 캐내려는 일도 많았죠. 그렇게 졸업하고 나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앞으로 사는게 좀 더 편해졌고요.

그리고 지금도 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시위와 집회를 범죄화하고 있습니다. 악마화하고 있죠. 세월호 사건에 대한 평화적인 집회도, 정부에 불만을 가지고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해, 국민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알리기 위한 광화문 시위를 범죄화하고 잘못된 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러한 집회와 시위를 강제해산시키지요. 평화롭고 올바른 목적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을 죄인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미신고집회 해산명령' 남발하는 경찰.. 대법 판결도 무시
http://media.daum.net/society/affair/newsview?newsid=20140904060109933


이는 시민들의 의지와 말할 권리를 억압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을 끊고 입 닥치라고 해산시킨 꼴이니까요. 아래의 기사를 보시면, 광장은 시민의 것이라고 합니다. 광화문에서 집회를 하는 사람들은 시민이 아니던가요? 일본 우익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은 '비국민'인겁니까?

말할 권리 막나 vs 광장은 시민의 것…與 광화문집회 금지 추진 논란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40905000694&md=20140908083733_BK

시위와 집회는 명백히 보장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국가가 나서서 그것을 보장하고 있지 않죠. 오히려 억압하고, 잘못된 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나팔수가 되어버린 주류언론은 그들의 권력과 돈에 굴복해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 듣고자 하는 말만 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을 선동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옳은 것을 잘못된 것이라 알게 되고 그렇게 말하게 되죠. 이유는 모르지만, 시위와 집회는 나쁜 것이다. 이러이러한 이유로 시위와 집회는 나쁜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정말 나쁜 것일까요? 그럴리가 있나, 저 위의 링크를 보면 왜 그렇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국가는 선박감시라는 의무를 소홀히 했고 그로 인해 기업은 선박을 개판으로 운영했습니다. 그리곤 수백명이 죽었죠. 그리고는 해경과 기업이 짜고 증거를 은닉, 훼손하려고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도 사람보다 돈을 먼저 걱정했고 그렇게 제대로된 대처조차 못해 죽었습니다. 이는 명백한 정부가 국민을 대하는 의무를 방기한 것이고 국민을 우롱한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더 당당하던가요? 정말 잘못한 이들은 어깨 당당히 펴고 고개 뻣뻣히 들고 있는데, 그들 때문에 자식이 죽고 친구가 죽은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떨궜습니다.

이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그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면, 길가다 뺨 맞으면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뺨 때린 놈은 당당히 어깨를 펴고 고개를 뻣뻣히 들어야죠. 잘했으니까. 맞은 놈은 잘못했고. 이유와 잘잘못 따위는 필요없고 맞은 놈이 맞았으니 잘못한 겁니다. 그러니 고개를 떨구겠죠.


정당히 말을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해선 안 됩니다. 정당히 말을 할 권리가 보장되어있고, 이건 '너' 따위가 침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말을 했다면 그 책임을 제대로 져야 합니다. 애새끼마냥 회피하려들지 말고 말이지요. 시위와 집회는 정당하고 옳으며, 오히려 권장되어야 합니다. 말을 해도 안 들어쳐먹으니 시위와 집회를 하는 것인데, 이조차 막는다면 애초에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없으니 아주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것이죠. 그리고 실제로도 그럽니다. 지금도 그러고 있고.


지금 이 나라와 이 사회는 명백히 잘못되었습니다. 그걸 말하는 게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면, 자기 스스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게 맞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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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4 - [취미/이야기] - 적절한 안보관이란 무엇일까.


예전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안보는 북한만을 상대해서는 안 됩니다.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또한 상대하며 따져야할 것이죠. 사실상 북한은 우리에게 실질적인 위협인 동시에, 실질적인 위협이 아닙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실제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상대는 필히 북한일 것이지만, 동시에 북한과의 전쟁은 그 실현성이 그닥 크지 않습니다. 북한또한 한국과의 전쟁에서 확실하게 지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라고 체제를 위한 선동과 선전을 할 뿐이지.


그들의 군사력? 볼품없습니다. 최전방 군인들이 남한 사람들이 망원경으로 쳐다보든 말든 염소치고 낮잠자고 농사짓고.. 이게 군인입니까? 농민이지. 아무리 빠졌다 빠졌다해도 북한만큼 빠지진 않았습니다. 북한의 병기들? 노후화되고 기름조차 부족해서 평소에는 굴리지도 않죠. 그들의 홍보영상은 말 그대로 홍보영상. 그대로 믿을 것도 못 됩니다. 심지어 나무에 페인트칠 해서 미사일인 척 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인데 말이죠.


1인당 교탄소모량도 볼만 합니다. 한 명당 5발도 채 안 쏴요. 1년에. 그것도 실제론 또 모를 일이죠. 1년에 한발도 안 쏠지도 모릅니다. 똥군기는 한국보다 심하고 막장 동네에요. 핵무기? 그거 미사일에 탑재할 정도로 개발 못했습니다. 소형화를 못해서 현 시점에선 평양자폭용 내지는 핵지뢰 말고는 쓸모가 없어요. 그러니까, 서울에 핵미사일.. 이딴거 걱정 안 해도 된다 이 소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우리의 주적! 전쟁나면 다 죽는다! 북한이 남한을 위협 어쩌고 하는 개소리는, 솔까 위기심만 고취시켜 내부의 불만을 억제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어디서 많이 봤죠? 북한이 남한, 미국을 비난하며 내부 체제를 공고히하는 것.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안보관은 이제 안 쪽을 향해야 합니다. 북한을 필요 이상으로 악마화시켜 가르치고, 북한을 그 무엇보다 위험하고 무서운 존재로서 위기심을 불어 일으키는 선동이 잘못이라는 겁니다. 또한 간부가 군기밀을 팔아치우는 안보 그 자체를 위협하는 범죄를 감시하고 막아야 합니다.


매일 북한 타령하며 그들에게 협력하는 세력을 만들어내어 정권과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불만을 토로하는 이를 묵살시키려 하면 안 됩니다. 북한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건에 종북이니 선동이니 같은 주장은 정신병적인 겁니다. 까놓고 말해서, 세월호 유족들이 진상조사하라는며 시위하고 청와대가겠다는 것이 어떻게 종북이며, 월급달라고, 비인간적인 업무환경 개선 좀 해달라고 시위하고 파업하는 것이 어떻게 종북인지 모르겠습니다.


국가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선 그러한 내부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적을 만들어내어 목소리를 닫게 하고 현재의 상황에 안주하며 문제를 회피하기만 해서는 그저 고름덩어리를 가려두는 것에 불과합니다. 고름은 더 썩고 커져 결국 더 큰 문제를 낳게 됩니다. 그러니 빨리 도려내야하지요. 그리고 그 고름은 절대 그것을 호소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안보란 국가 안전보장입니다. 단지 군사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월호와 같은 사건을 일으킨 원인들, 국가가 선박에 대한 감시를 허술히하였고 그 덕에 온갖 비리를 저지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한국 사회 어디에서든 일어납니다. 적당히 대충대충, 좋은게 좋은 거다 하면서 넘어가는 것.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지적되었던 문제점들이 자신들도 어딘가에서 했던 것과 닮지 않았던가요?


국가 안보에 있어서 세월호 사건은 그 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항상 북한이 어쩌고 노래를 부르지만 정작 이러한 자국민 보호와 안전보장에는 전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오히려 가해자였습니다. 아이들을 죽게한게 단지 유병언만일까요? 선박에 대한 감시,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정부의 책임은 어디갔습니까? 증발했죠. 유병언 일가를 제외한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으니.



국가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재벌도, 정치인도 아닌 대다수의 국민. 그러한 국민들이 부당한 이유로 해고당하거나, 월급을 적게 받거나, 비인간적인 업무 환경에서 일할 것을 강요 받았음을 이유로 그것을 개선하라는 정당한 요구, 적어도 대화를 해봐야하는 것들에 대해 철저한 무시와 폭력으로 일관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위험에 밀어넣고, 간접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행위이죠.


사회나 정부에 대한 불만을 가진 시위와 집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촛불집회는 정부에 불만을 가진 일반 시민들의 의지를 표명하는 것입니다. 그 자체로 어떠한 압력도 주지 못하지만, 국민의 뜻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리기는 하죠. 정부는 언제나 국민과 대화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국가운영을 할 공산이 너무 크죠.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잘못이니까.


그런 국민들이 규탄하고자 하는 것들이 무엇일까요? 광우병이 대표적이긴 하나 그건 확실히 병크적인 사건이었고, 최근엔 청와대-국정원-새누리당-군 등이 얽힌 선거조작사건이죠. 선거조작이라.. 말이 선거조작이지, 민주주의와 헌법 그 자체를 파괴하는 엄연한 범죄행위입니다.


일개 개인이 아니라, 국가조직 그 자체가 불법을 저지르며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안보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요? 논란이 있을 것도 아니고, 악법도 아니며, 분명하게 정의를 세우는 법을 어기는 주제에 안보에 도움이 되기는요. 따지자면 북한보다 더 치명적이고 크게 국가를 훼손하고 파괴하는 행위이죠. 북한보다 위험한 겁니다 이건.


SNS를 조작하며 공영방송 KBS에 윗선이 개입하질 않나, 재벌과 대기업에겐 감세, 일반 대중에겐 과세, 하지 말라던 4대강에 수십조를 쏟아 붓고 결국 그 압도적인 부작용을 껴안고 관리비용 등을 모조리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빼가죠. 그런 주제에 불만과 문제기를 하면 언제나 구시대적인 선동으로 매도합니다. 저 놈은 빨갱이여! 종북이야! 반국가단체! 선동, 세뇌당했다! 배후세력이 있을 것이다!


진정 국가안보를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국가안보를 해치고 있는 '진정한 적'이 누군지, 똑똑히 봐야합니다. 언제나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위험한 법입니다. 내부의 불만과 문제제기를 묵살하고 외부의 적에게 그 불만을 향하게 하는, 그렇게 내부를 썩게 만드는 진짜 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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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어쩌면 세상물적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쪽의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이 사회는 좋은 사회이고, 좋은 국가이며, 정당하고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법이나 제도, 혹은 다른 무수히 많은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범상한 시도를 하지 않고 화염병과 짱돌, 죽창 들고 거리로 나오는 폭력배 같은 노조, 운동권 학생들이 그러한 제도와 법치, 더 나아가 사회가 국가에 해가 되는 존재들이고, 궁극적으로 종북이니 빨갱이니 하는 것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정말 그들이 멍청하고 폭력배와 같으며, 법과 제도를 파괴하기 위해 그런 '무기'를 들고 거리에 나가 '전투'를 치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그들이 생각하고 봐왔던.. 이른바 가치관이 바뀔 수 있을까 하는군요.



그들은 절대 멍청하지도 않고, 법과 제도를 파괴하고 싶어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 중에선 과거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버렸던 의사들과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다른 쪽 사람들이 보기에 어째서 법과 제도, 평화적으로 범상한 다른 무수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거리에 튀어나와 시위니 데모니를 하느냐 묻노라면,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라는 대답만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부당하게 짤리고, 희생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러한 갑甲에게 대항 할 수 있는..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것이 바로 국가입니다. 법과 제도, 원칙이 고수되어 드러한 부당함을 해소하고 정당한 결과를 이끌어 내줄 수 있는 것은.. 그러한 강한 자에게 맞서 약자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오직 국가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정부가 (국가와 정부는 다르고, 그래서 이 부분에선 앞에서 줄곧 표현해온 국가가 아닌 정부라고 표현합니다.)그들을 지켜주기는 커녕 그 갑과 손을 잡고 똑같이 탄압하고, 무시하고, 희생되길 강요하는데.. 법도 제도도 기능하지 않고 지금 당장 일어나는 불법적 행태나 부당함에 눈을 돌리는 것이 정부인데 어떻게 법과 제도, 혹은 다른 무수한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겠냐는 겁니다.



왜 시위를 할까요? 파업을 할까요? 생각해 본 적이나 있을까요? 그저 눈 앞에 보이는, 경찰 말 안 듣고 시위하고 파업하는 종북, 빨갱이들만 보이고 그렇게만 생각하겠지요. 그들은 살기 위해 시위를 하는 것이고 파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노조, 시위자를 가차없이, 무자비하게 짖밟고 탄압하는게 바로 정부라고요.


경찰은 뭐하고 있을까요? 노조나 시위자들이 시위, 파업을 하면 용역직원들이 나서서 노조들을 몽둥이로 후려칩니다. 그리고 경찰들은 그들을 둘러싸고.. 지켜봅니다. 노조, 시위자들은 그저 그들에게 얻어 맞을 수 밖에 없고 지켜야 할 국민들이 눈 앞에서 쳐맞고 피를 흘리고 있는데, 그저 지켜보는게 답니다. 누구를 위한 경찰일까요? 혹시 이러한 시위 현장에 직접 가보신 적 있을까 싶습니다.


자신이 믿고 있었던 옳은 것.. 법과 제도는 언제나 기능하고 올바르며, 경찰은 약자를 지키고 국민들 보호한다. 라는 대전제가 눈 앞에서 무너지는 것을 본 적 있을까 싶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현실은 다를 수 있고, 그러한 갭이 크면 클수록 현실에 눈을 뜰 때의 충격은 커다랗습니다.



누구의 보호도 못 받고 오직 탄압과 공격만을 받는 약자들이 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합니까? 그저.. 약한 자신을 탓하며 언제나 잃고, 다치기만 하면 그게 옳은 것일까요? 글쎄요, 극복하기 위한 싸움을 투쟁이라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살기 위한 싸움이 투쟁이겠지요.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기에 스스로 화염병을, 짱돌을, 죽창에 쇠파이프를 들고 '무장'하는 겁니다. 그리고 거리에 나가 '전투'를 치루죠.


뉴스를 보느니 인터넷을 뒤지느니.. 다 필요 없습니다. TV에서, 인터넷에서, 신문에서 어느 기업 노조의 파업 목적은 무엇이고.. 정부와 기업은 어떻게 대응 할 것이며.. 이러한 사태는 전적으로 누구의 잘못이고 법적으로 어떻게 처벌을 받을 것인가.. 같은 소리는 들을 필요 없습니다. 누가 하는 말이든, 왜곡되어 있을 수 있고, 사실,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진실을 알고 싶다면, 현장에 나가세요. 현장에서, 눈 앞에서 일어나는 사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직접 한번 보세요. 누가 진짜 개새끼고, 누가 진짜 피해자이며,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팩트라는건 현장에 있습니다. 눈 앞에서 보여지는 그 '사실'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어요?


법과 제도에 따라 대화를 하고 합의를 도출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그게 됐으면 시위는 왜 하고 파업을 왜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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