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얼간이. 이 인도 작품이 담고 전하고 싶어하는 메시지는 한국에선 더더욱 유효합니다. 오히려 한국에 너무나도 적절한 질문을 던지고 있지요.
모두가 공부를 함에 있어서 어떠한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고 단지 배워야 하기 때문에 배우는 것을 주인공 '란초'는 우습게 합니다. 인도 최고의 공학 대학교에 입학한 뒤 선배들의 악습에 굴복하는 다른 학생들과는 달게, 주인공 란초는 그러한 선배들을 무시하고 방으로 들어가 자신의 지식을 응용해 엿먹입니다. 모두가 단지 지식을 배우기만 했지만 응용하진 못했는데, 란초는 그러했지요.
란초의 행보는 매우 두드러졌습니다. 복종하고 흡수하기만 하는 다른 학생과는 다르게, 복종에 반항할 줄 알고 거부할 줄 알며 그러면서도 시험을 보면 최상위권, 1등을 할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죠. 그가 그러한 성적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배움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비루 교수는 인생을 레이스로 비유하며, 뒤쳐지면 끝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매우 엄하고 차가운 인물이죠. 심지어 자신의 아들이 죽은 뒤 다음날 수업을 진행할 정도로 말입니다. 조이라는 등장인물은 작품을 제출할 기간을 넘겨서 낙제하고 졸업하지 못할 위기를 맞습니다. 그래서 비루 교수에게 사정했지만.. 돌아온 것은 낙제할 것이니 시간낭비하지 말라는 말 뿐이었죠.
여기에 충격을 받은 조이는 결국 자살을 결심하게 됍니다. I QUIT. 나 그만 둘래. 라는 유언을 벽에 남기고 말이죠. 이 유언은 매우 직설적으로 전달하는 겁니다. 비루 교수가 인생을 레이스에 비유했듯, 거기서 뒤쳐진 조이는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고 생을 그만 둠을 표현하기도 하면서, 그런 레이스가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해 목숨의 무게로서 질문을 던지는 것이기 때문이죠.
이 사건 이후 주인공 란초는 비루 교수에게, 이것은 살인이다. 라고 말합니다. 비루 교수는 매우 격분하며 란초에게 반발하지만 정작 란초는 비루 교수가 죽인 것이 아닌 교육제도가 죽인 것이라고 말하지요. 그리고 그런 란초를 보고 비루 교수는 그를 수업중인 교실로 끌고가 어디 그렇게 잘 났으면 니가 수업을 해봐라. 하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란초는 그 말에 알 수 없는 단어를 제시하며, 이 단어가 무슨 뜻인지 찾아보라는 질문을 모두에게 던집니다. 수업에 참여한 모두, 비루 교수까지 포함하여 책을 뒤지지만.. 사실 이 단어는 친구의 이름으로 만든 엉터리 단어였지요. 그리고는 말합니다. 여러분은 이 단어를 찾아보라고 할 때 어떤 느낌이 드셨습니까?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기대감? 즐거움? 그런 것을 느끼진 못했을 겁니다. 우리는 그런 감정을 느끼며 배워야 합니다. 라는 요지의 말을 말입니다.
하지만 비루 교수는 이런 란초의 의견을 묵살합니다.
영화 중간에 상징적이면서도 매우 재미있는 사건이 하나 벌어지는데, 약을 먹고 주입식 공부의 절정을 보여주며 성적 상위권으로 교수들의 사랑을 받는 차투르의 스승의 날 개회 연설을 주인공 일행이 망쳐버립니다. 힌두어에 약하고 뜻은 이해하지 않고 그저 주입식으로 암기하는 점을 역이용하여 제대로 작성된 연설물에 조작을 가합니다. 헌신을 강간으로, 자금을 젖으로, 학생을 변태로 바꿔버리고 막바지엔 차투르의 약 때문에 터지는 살인똥방귀에 대한 시까지 집어넣었죠.
뜻은 이해하지 않고 그저 외워서 내뱉기만 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는 것을 매우 익살스럽게 연출한 정말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지식을 얻는 것이 즐거워 공부하는 것이 아닌 공부하기 위한 공부, 그리고 그 공부법으로 생각없이 외우기만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잘못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영화는 후반부로 향하고 비루 교수의 딸 중 하나가 산통을 겪으며 아이를 낳을 때가 임박하게 됩니다. 하지만 폭우로 인해 병원으로 갈 수 없게 되고 밖으로 나왔지만 옴싹달싹 하지 못하게 되죠. 그렇지만 이를 본 란초와 친구들은 지혜를 짜냅니다. 병원으로 갈 수 없어도, 아이는 안전하게 낳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죠.
그렇게 넓은 곳으로 가고 기숙사의 친구들을 죄다 깨워 사건을 벌입니다. 중간에 비루 교수의 딸 결혼식에 몰래 들어가 음식을 훔쳐먹다 걸릴 때 잠깐 지나간 교수님의 이름을 딴 발전기를 이용해 전기를 만들어내고, 컴퓨터로 의사인 교수의 다른 딸과 연결해서 출산을 진행하죠.
출산이 힘들어지자 이제껏 배운 지식을 응용하여 출산을 돕는 도구를 즉석으로 만들어내며 결국 출산을 무사히 마칩니다.
그리곤 비를 맞고 밖으로 나가는 란초를 잡고는, 처음 입학할 때 했던 란초의 질문. 우주공간에서 연필을 쓰면 되지 왜 막대한 비용으로 우주용 펜을 만드느냐는 질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대답하며 훌륭한 제자를 만났을 때 물려주라던 펜을 란초에게 넘깁니다.
이 영화의 메인 메시지는 너의 재능을 따라가면 성공은 뒤따라 올 것이다.입니다. 주인공의 친구인 라주도, 파르한도 자신의 재능을 따라갔고 결국 성공하게 되었지요. 돈을 얼마나 버느냐와는 상관없게, 자신의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자신의 재능으로 꿈, 자신이 되고 싶은 행복한 현재를 얻게 되었지요.
반면 훗날 내 공부법으로 성공할 것이고 그때되면 누가 더 성공해있을지를 호언하며 복수를 다짐한 차투르는 대기업의 높은 자리까지 올라 엄청난 연봉을 받게 됩니다. 그에겐 꿈이랄 것이 있었는지, 무언가 되고 싶은 것이 있을 진 모르겠습니다. 그저.. 남부럽지 않게 성공하는 것을 바랬을 지도 모르지요.
단지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본다면 그는 분명 성공했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두 친구들이 경제적으로 큰 성과를 보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이 성공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지요.
이러한 작품이 그렇듯이, 현 교육제도를 비판하면서 마땅한 대안을 내놓지는 않습니다. 너의 재능을 따라가면 성공은 뒤따라 온다. 언듯 옳은 말처럼 보이지만 누구나 성공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이런저런 이유로 자신의 꿈에 몸을 던져도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포기하게 되는 일도 쉽게 벌어지니까요.
인생은 게임이 아니고 쉽게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훗날 미래를 결정짓는 선택의 무게는 정말 무겁지요. 그런 의미에서 세 얼간이라는 작품은 어떠한 대안을 내놓는 작품이 아닙니다. 단지 어떠해야 하는가 하고 길을 제시할 뿐이지요.
이 작품에서 보여준 인도의 교육상황은 한국과 매우 비슷합니다. 인생은 레이스이고, 뒤쳐지면 실패하는 것이며, 그런 경쟁 속에서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며 경제적 성공만을 성공의 척도로 보고 사람에게 등급을 매겨 줄세워놓죠.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이 작품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교육에 대해 생각하고, 더 나아가 직업과, 성공에 대해 생각하며 무엇이 정답일지 찾게 만드는 것.
작품의 주제를 관통하는 aal iz well이라는 곡에서 처럼 모든 일은 잘 풀릴 것이다. 너의 재능을 따라가면 성공은 뒤따라 온다. 라는 길을 제시했습니다. 너에겐 무언가 재능이 있고 그것을 따라가면 성공은 뒤따라 올 것이다. 모든 일을 잘 풀릴 것이고 마음은 바보이기 때문에 속여줄 필요도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는 세 얼간이라는 작품이 제시하는 길일 뿐이니,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어떠해야 하는가를 제시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아참, 주인공 란초의 본명은 따로 있었고 결국 가장 성공한 인물은 '란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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