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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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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 해당되는 글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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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노사의 굴욕, 그 비하인드 스토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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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가 위대한 이유 (6)


흔히 환빠로 대표되는 유사역사학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만약 모르신다면 초록불님 블로그에서 (http://orumi.egloos.com/) 그들이 누구이며 어떤 주장을 하는지 일독을 권합니다.



아주 오래전에 밝혔듯이 전 지식인 답변 활동을 합니다, 특히 역사 관련에서 많은 답변을 다는게 취미활동인데, 그곳에 있다보면 참 재밌는 주장을 가끔씩 듣곤 합니다. 아래는 그 사례 중 생각나는 몇가지를 정리한 겁니다.




1. 로마 vs 고구려.


물론 로마가 고구려를 이길 것이라는건 당연한 이야기죠, 국력의 차이는 로마가 월등하니까요. 당연한 겁니다. 근데 무엇이 문제냐하면, 주장은 물론 주장의 전개가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 없다는 겁니다..


먼저, 로마와 싸울 대상이 왜 하필 고구려냐는 겁니다. 당시에 중국에는 한나라, 한제국이라는 동서양 양대제국이 떡하니 있었고, 주로 if논쟁으로 로마와 한나라가 싸운다면 이라는 떡밥이 역사 커뮤니티에서도 간혹 다뤄지는 요소임을 생각해보면, 거의 어그로에 가까운 비교대상이 아닌가 합니다. 주장 자체가 요상하죠.


게다가 더 웃긴 것은, 머리속으로 시뮬레이션 해놓고 로마가 이긴다는 주장을 피는 것인데, 이건 일단 로마가 이긴다는 것을 먼저 전제해놓은 뒤 자기 멋대로 토탈워 돌려서 이긴다고 소설을 써놓는 격입니다. 왜 거기에 고구려군(혹은 로마군)이 있느냐는 별로 중요한게 아니라고 쳐도, 로마군이 어떻게 모여서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대응과 공격을 통해 이렇게 저렇게 고구려군을 전멸시킨다! 라는 주장을 매우 진지하게 주장하는 꼴을 보면.. 되려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멈추면 제일 먼저 꼽은 이유가 없겠죠. 로마군 10만 vs 고구려군 100만, 한술 더 떠 로마군 10만 vs 고구려군 5000만대군 드립을 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로마군이 이긴다는 주장을 정말, 진심으로, 진지하게, 상상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질문을 올리고 있습니다. 


네, 질문입니다. 그게 질문이에요. 미리 머리속에 결과를 설정해놓고 질문을 올리는 겁니다. 상식적으로 5000만 대군이 산 위에서 오줌만 갈겨도 로마군 10만명은 수장당해 죽을 판인데 어떻게든 이긴다고 주장을 펴는 겁니다. 그것도 압승이라는 단어를 강조까지 해가면서 말이죠. 심지어 로마군은 화약무기가 있다나 콜타르 등으로 천연 화합물 대포를 사용한다나.. 게다가 무슨 사거리 1200m 카타발리스타(캐터펄트도 아니고 발리스타도 아닙니다. 심지어 전 1200m사거리의 카타발리스타라는게 나온다는 사료까지 찾아봤으나, 1200m의 근거조차 찾지 못했습니다.)라는 무기로 다 죽인다고 하는데 참.. 게다가 10만명이면 이런 공성무기가 1만대는 있다고 합니다.


하도 황당하고 어이없는 주장, 말도 안 되는 소설을 뱉어내고, 이런게 몇차례에 걸쳐서 반복되는데, 나중에는 답이 없다는걸 깨닫고 그곳에서 답변활동하는 모두가 손을 때게 되죠. 물론 그 치도 금방 사라졌지만.. 롬뽕도 참 답이 없다는걸 다시금 깨닫게 해줬습니다.



2. 거란, 여진족 = 한민족


중국이 몽골의 원나라 등을 자기네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을 예로 들면서 두 민족을 한민족 내지는 친척이라고 주장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주장을 펴는 사람이 국사, 세계사 분야 우수 답변가라는 거지요. 주장을 제대로 들어본 지가 꽤 오래되서 잘 기억은 안 납니다만, 하여튼 만주, 연해주 지방에서 살던 이들이고 우리 혈족이다, 중국보다 우리에 가깝다 같은 주장을 합니다. 저런거 말고도 우리 역사쪽과 연관된 주장도 있긴 있었는데 잘 기억은 나지 않는군요. 하여간 참 황당한 주장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주장합니다.



3. 발해는 대진제국!


... 솔까 환빠를 위시한 유사역사가들은 주로 고조선이나 고구려, 혹은 고려를 찬양하기 마련인데 참 재밌게도 발해에 빠진 사람이 있습니다. 발해뽕이라는 걸까요? 발해는 원래 국명이 진, 혹은 진국이라 불렸습니다. 이후 국명을 발해로 바꿨고, 이게 정식명칭이 맞죠.


근데 이 친구는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위서로 보고 환단고기를 진서로 보는 친구인데, 하여튼 그러면서 발해를 대진제국이라고 부릅니다. 대진국도 아니고 대진제국, 알다시피 발해는 외왕내제도 아니기 때문에 황제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국이라는 표현을 쓰는건 역사에 대한 기본, 상식이 부족하다는 거겠죠; 大대자도 왜 붙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영토가 넓어서? 흠, 거의 땅만 넓은 수준이고 그 조차도 영토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아서 각 나라마다 자기네 정치적 입장에 따라 그어놓은 영토에다 인구밀도도 낮고 어느 지역은 직접통치조차 안 됬죠.


그런 나라에 대, 제국이라는 단어를 붙혀가며 빨아가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솔까 질문자가 발해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있는지는 고사하고 말이죠.


최근에는 이 발해, 대진제국(...)과 비잔티움 제국이 외교관계, 교역을 맺었냐는 질문을 올리는데, 이거 진짜 생각을 하고 올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중국과도 못한 외교관계를 뭔 발해랑..-0-;;


아참, 환단고기를 진서에 삼국사기, 유사를 위서라고 보는 마당에 자신을 환빠로 매도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재밌는 친굽니다.




뭐.. 지금 생각해보려니 막상 사례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끔가다 환단고기는 무엇이냐, 환단고기를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증거는 얼마나 있냐 같은 시덥잖은 질문들이야 자주 올라오긴 합니다만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고 관심가질 것도 아니죠.


하여간 이상한 주장 참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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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ㄱㄴㄷ 2015.11.26 22:41 address edit/delete reply

    로마가 고구려를대상으로삼은게 아니라

    국뽕들이 로마를이긴다고하는겁니다;

    • Favicon of https://konn.tistory.com BlogIcon Konn 2015.11.27 15:31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건 국뽕이고, 롬뽕인 녀석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아주 심각한 중증 롬뽕이었죠.







중학교 세계사 파트에서 배울 수 있는 카노사의 굴욕은 대충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설명되어있습니다.


교황 그레고리오 7세는 원래 황제에게 있었던 정직자 임명권을 교황인 자신에게 가져와서 교황권을 강하게 하려 했으나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가 반발했고, 그에 따라 그레고리오 7세는 하인리히를 파문시켜버리고 그 이후 교황의 권력이 강해졌다 십자군때 들어서 서서히 약해진다.. 라고 말이죠.


이에 대한 기본 설명이고, 조금 더 심화해서 알아보자면, 하인리히 4세가 서임권을 내놓지 못하겠다고 한 이유는 오토 대제 이후로 실시된 제국교회 정책 때문인데, 성직자들에게 땅을 하사하여 자신에게 충성하고 다른 봉건영주들과 대립시킬 수 있는 성직제후들을 여럿 만들었습니다. 이런 정책은 기독교를 보호한다는 명분과 더불어 각 주교들에게 충성을 얻을 수 있었으며 기존의 봉건제후들에 맞서게 할 수도 있었죠. 게다가 성직제후가 죽으면 봉토가 세습되는 여타 봉건제후와는 달리 황제 자신에게 돌아오므로 남는 장사이자 당연히 황제의 권한을 높히는 도구이기도 하죠.


하지만 클뤼니 수도원 출신의 원칙주의자이자 교회개혁을 주장한 그레고리오 7세가 이것을 금지하자 하인리히 4세는 당연하게도 반발합니다. 이것에 대해 그레고리오 7세는 파문을 날려버리고 파문을 당한 하인리히 4세는 기독교도도 아니고 기독교 왕국의 왕도 아니게 되버리는데, 기독교가 세상의 근본원칙이자 이데올로기이기도 한 그 시절에 이것은 그러한 파문을 씹을 만큼의 물리적, 정치적 실력이 있지 않고서야 큰 문제가 되버립니다.


미디블 토탈워할때 교황에게 파문당하면 다른 국가가 막 때리고 그러잖아요? 딱 그런 꼴이라고나 할까요. 다르긴 달라도 왕의 정치적인 생명을 끝장내버리는 조치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건이 터짐에 따라 신성로마제국 내에서는 황제파와 교황파로 나뉘어 집니다. 교황의 파문 선언 이후에 신롬 내부의 제후들과 성직자들이 교황편으로 붙기도 했고, 이미 많은 제후들은 하인리히 4세의 정책에 불만이 컸기 때문에 파문의 여파는 더욱 커졌죠. 심지어 황제파에 붙은 제후들도 대다수 이탈하거나 충성을 바치던 자들도 교황에게 사죄하라는 압박을 넣기도 했죠. 제후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아예 새로운 황제를 뽑을 움직임까지 보이자 결국 하인리히 4세는 교황이 있는 카노사 성을 홀로 방문하여 3일간 눈밭에서 용서를 구합니다. 


이에 교황은 황제를 용서하고 미사에 참여시켜 파문 선언을 취소했죠. 


이제부터가 카노사의 굴욕 비하인드 스토리인데, 카노사의 굴욕은 하인리히 4세의 승리라 평해집니다. 사실 그레고리우스 7세는 카노사의 굴욕 사건 이전 아우스크부르크 회의를 소집하여  황제에 반대하는 귀족들을 한방에 보내버릴 찬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황제가 재빨리 사죄해버리자 이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죠.


이후 제국으로 돌아온 하인리히 4세는 파문을 명분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대항하던 귀족들의 반란을 진압하며 힘을 기르는데 주력합니다. 당시 귀족 제후들은 그를 황제로 인정치 않고 슈바벤공 루돌프를 황제로 인정하던 세력이 있었기에 하인리히 4세는 3년간 힘을 기르며 반란 세력을 타도하는데 성공하죠. 이 슈베반공도 사실 참 은혜를 원수로 갚은 녀석인데, 하인리히 4세의 어머니인 아그네스가 그에게 슈바벤공령을 직할령으로 주었던만 황제자리를 넘보고..


하튼, 굴욕 사건 이후 3년이 지난 1080년에 하인리히 4세는 어느 정도 신성로마제국에서 강력한 왕권을 안정시켜 가지게 되었고

이에 반해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교회개혁운동에 대한 반발로 신롬의 많은 성직자들에게서 반감을 사고 있었죠. 그러던 중 같은 해에 루돌프와 하인리히 4세를 중재하려던 교황은 하인리히 4세의 괘씸한 행각에 분노하고 다시 한번 파문과 동시에 폐위를 선언합니다.


그러나 많은 성직자에게 반감을 산 교황과 국내에서 실력을 기르는 황제와의 실질적인 물리력의 차이를 무시할 수는 없는 법. 하인리히 4세는 아예 따로 회의를 소집하여 현 교황을 강제로  폐위시키고 클레멘스 3세를 교황에 선출하려는 목적으로 로마로 쳐들어갑니다. 이에 따라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로마에서 도망치고 남부 이탈리아에 가서 5년간 살다 죽어버립니다. 당시 남부 이탈리아는 노르만족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그곳의 지배자인 로베르트 기스카르도 로마에서 교황을 구출하려다 죽을 뻔 했다고하죠.


이렇게 하인리히 4세에 의해 옹립된 새 교황 클레멘스 3세에게 황제의 면류관을 받게 되지만 이렇게 되니 이탈리아 남부와 북부에 2명의 교황이 있게 되는 촌극도 벌어지게 됩니다.


이리하여 교황의 승리이자 교황권의 상징으로 알려진 카노사의 굴욕은 사실 하인리히 4세, 신성 로마제국 황제의 승리로 끝이 나버립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죠. 게다가 더 재밌는 점은 그 하인리히 4세도 자신의 장남 콘라드의 반란으로 차남 하인리히 5세의 반란으로 쫓겨나 죽게되버립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교황권의 강화는 그보다 이후인 보름스 협약으로 교권의 우위를 인정하면서 부터죠.



한가지 더 내용을 추가하자면, 하인리히 3세의 치세 때는 황제권의 최절정기로서 자기 마음대로 교황을 폐위하는게 자주 벌어졌다는 점이죠. 아예 교황은 황제의 신하였던 수준의 시절이었습니다. 황제가 교회를 등에 없고 자신에게 반역적인 세력들을 평정하기도 했죠. 그렇지만 그는 클뤼니 수도원의 개혁운동을 지지하였고, 이는 역으로 교회세력들이 황권에 감히 도전하는 초석을 만들어버리게 됩니다.


심지어 그는 아직 어린 아들을 남기고 죽게됬고 그 아들은 6살에 황제가 되어 결국 어머니 아그네스가 섭정으로 통치를 하나, 문제는 하인리히 3세가 넓혀놓은 직할령들을 공작들의 환심을 사고자 뿌려대며 황제권이 약화되고 제후들이 황제를 업신여기게 되며, 하인리히 3세에게 가족을 잃은 로렌 지방의 프리드리히와 마틸다는 그와 그의 가문에 칼을 갈았고, 나중엔 마틸다 여사의 뒷공작으로 장남에게 이탈리아 왕의 자리를 미끼로 아버지 하인리히 4세에게 대항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자신의 아들에게 폐위당하기도 합니다. 이후 한번 더 자신의 아들 하인리히 5세 또한 마틸다의 공작에 넘어가 아버지를 등지고 아예 납치당해 폐위되는 경험을 겪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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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동민 2013.09.25 21:03 address edit/delete reply

    정말 고맙습니다 궁금했던점이 싹 사라지네요

    • Favicon of https://konn.tistory.com BlogIcon Konn 2013.09.25 23:16 신고 address edit/delete

      도움이 되셨다니 기쁩니다.

    • Favicon of http://www BlogIcon 2014.08.18 16:25 address edit/delete

      저도많은도움이됐습니다

  2. adfs 2015.03.07 19:17 address edit/delete reply

    혹시 참고하신 책이나 논문 이름좀 여쭤봐도 될까요?





서양 고대사에서 하나의 본좌로 여겨지는 대제국이었던 로마. 그 로마에 대한 수식어로 위대한이라는 단어가 붙는데, 그 로마가 위대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그 드넓은 영토와 도로? 강대한 군사력? 정치체제? 사회문화?


사실 로마가 진정 위대한 이유는 바로 법률에 있습니다. 


만민법과 시민법은 로마의 전국적인 법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현대 국제법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죠. 사실 법학이라는게 꽤 오랜 전통을 가진 학문이고, 이 법학이야말로 로마의 진정한 유산이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전국적인 법이라는 개념이 사실 국왕과 같은 통치자의 명령이 곧 법이었던 것이 근대 이전의 일반적인 예시였고, 지역이나 시대를 불문하고 국왕같은 통치자의 명령이나 칙령은 그 자체로 거진 전국적인 법이라고 할 수 있었죠. 


그렇다고 명령과 같은 불문법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암흑시대 게르만 왕국시대부터 게르만인들은 성문화된 자기 부족의 법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법전은 암흑시대 게르만 전통 부족 관습법과 로마법을 토대로 만들어졌죠. 법이라는 게 통치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허술하더라도 시대나 지역을 구분짓지 않고 통치라는 것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에서 존재하기 마련이죠.


그런데 재밌는 건, 중세의 봉건시대같은 경우 봉건제도의 특성상 통일된 전국적인 법이 나타나지 못했던 시기였습니다. 동로마는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이 있었지만, 비교적 강한 중앙집권화를 보여줬던 프랑크 제국이 있었을 때까진 전국적 영향력을 지닌 살리카 법과 법원이 존재했으나 그 프랑크 제국이 무너지고 현재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 해당되는 지역의 3개의 국가로 쪼개지기 시작하며 전국적인 법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지역에 따라 법이 집행되던 시기였죠. 중세가 끝나고 봉건제가 약화되면서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지는 시기부터 다시 전국적인 법 개념이 등장하게 되는데, 중세 말기와 르네상스 시기를 거쳐 절대왕정이 형성되는 시기에 강력한 왕권을 가진 국왕은 그들의 강한 권력을 확립시키고 굳히기 위해 대대적으로, 전국적으로 통용이 될 법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런 법을 만들기 위해 찾은 것이 바로 고대의 로마법인데, 한마디로 고대의 로마제국의 법을 가져와서 자기네 방식으로 고친 뒤 적용하겠다는 겁니다. 이게 그 로마법 계수라는 것이죠. 이 로마법 계수를 통해 봉건적인 요소들이 사라지고 절대주의가 성립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이때 사용된 로마법이 바로 유스티니아누스의 로마법 대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유스티니아누스의 로마법 대전 편찬이 그의 업적에서 가장 대단한 것으로 꼽히는 이유라고 합니다.


로마법의 계수는 15세기~19세기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법학계에선 근세 전기의 계수는 전기계수, 18세기 이후의 계수를 후기계수라고 부르는데, 시민 혁명과 민족국가, 근대국가가 성립되며 18~19세기에 본격적으로 근대적인 법적편찬운동이 시작됩니다. 나폴레옹 몰락 이후 1871년 프로이센의 독일제국이 성립함과 동시에 독일의 통일법전이 편찬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대륙법계 국가들의 민법전의 기초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이 (아직은 미완성이었던 독일의)법과 프랑스 민법전을 일본에서 수입하여 자기네 민법전으로 삼고 이후 우리나라는 완성된 독일의 민법과 일본의 민법을 수입하여 우리나라의 민법을 만듭니다.


이를 연속적으로 보게 될 시 현재 거의 전세계 법률은 로마에서부터 시작되는 건데, 현재도 이 로마법의 영향을 짙게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가 사용하는 법들입니다. 로마가 망한지 500년, 길게는 천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법은 근대를 넘어 현대의 지금 시대까지 그 영향이 진하게 남아있다는 것을 본다면, 괜히 로마가 위대하다는 소리를 듣는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실 겁니다. 단지 영토가 넓고 강한 군사력을 지녔고 멋지고 웅장한 건물을 지었다고 위대한 것이 아니라, 후대의 수많은 민족, 국가에게 강렬한 영향을 끊임없이 미칠 수 있게 하는게 진짜 위대한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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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imglorious.tistory.com BlogIcon 도플파란 2013.08.14 15:2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맞아요.. 후대에 끊임없이 영향을 줄 수 있는게 정말 위대한 것 같아요...

    • Favicon of https://konn.tistory.com BlogIcon Konn 2013.08.14 17:11 신고 address edit/delete

      로마가 단지 크고 강한 국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역사에 남기는 영향력과 의미가 거대하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지요.

  2. Favicon of http://maker.so BlogIcon sky@maker.so 2013.08.14 15:58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3. Favicon of https://myahiko.tistory.com BlogIcon 무량수won 2013.08.20 01:5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법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갈 때 같이 봐두면 좋은 것이 바로 한나라 초기 시대의 법과 진시황이 도입했던 법가에 대한 부분일듯 하네요. 진시황이 진나라를 통일하는 가운데 주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 법이기도 하니까요. 물론 그 법이 통일 이후 너무 과하게 집행(?)되는 바람에 문제가 커졌지만요. ^^

    서양의 법체계와는 많이 다르긴 하지만요.

    • Favicon of https://konn.tistory.com BlogIcon Konn 2013.08.20 19:01 신고 address edit/delete

      네, 서양에도 법이 있었듯이 동아시아에서도 그 나름대로의 법과 법학이 발달해갔지만 문제는 19세기 들어 일본은 서양따라 가고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버렸으며, 정작 중국은 문화대혁명을 맞아버려서 중국 법학계의 흑역사인 사회주의 법학으로 그 흔적만 남았지 오늘날에 영향을 주는 것은 거의 없게 되어버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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