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rodinger

블로그 이미지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 2,076,920Total hit
  • 8Today hit
  • 119Yesterday hit

'로마'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9.12.23
    종부세로 죽겠다는 가진 자와 지속 불가능한 체제 문제.
  2. 2014.02.01
    별거 아닌 썰.. 지식인 하면서 본 유사역사 (2)
  3. 2013.09.12
    카노사의 굴욕, 그 비하인드 스토리. (4)
  4. 2013.08.14
    로마가 위대한 이유 (6)





제정 로마의 탄생은 전쟁과 토지의 문제에서 파생됩니다. 당시 로마는 수많은 지역에 정복전쟁을 진행했었고, 많은 성과를 보며 영광스러운 로마를 일궈내고 있었죠. 하지만 전쟁은 언제나 이기는 쪽에게도 손해가 발생하는 사업인지라, 정복전쟁으로 노예가 많아지고 땅이 넓어지면서 그 노예를 이용해 거대 농장을 경영하는 장원제도가 로마에도 도입됩니다.


이를 라티푼디움이라고 하는데, 원래 카르타고의 제도였으나 정복전쟁에 따라 로마에 도입되었죠. 전쟁이 계속되면 될 수록 더 많은 값싼 노예와 더 넓은 토지가 생기고, 라티푼디움으로 막대한 돈을 버는 장원주들은 더 많은 부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부익부 빈익빈이죠.


문제는 단순히 부자가 더 많은 돈을 번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부자가 많은 돈을 벌어도 중산층 등 다수 서민이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다면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지지 않죠.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자영농민들은 농지를 관리하지 못하게 되었고,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면 휴한기가 길어 지속적인 생계유지가 어려웠습니다. 이는 자영농민의 몰락(중산층의 몰락)과 장원주의 성장이라는 결과로 이어지며 로마의 큰 갈등요소가 되었죠.


물론 로마인들도 멍청이들은 아니고, 이러한 문제는 충분히 인지했습니다. 따라서 농지법 개정을 중심으로 하는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 대두되었으나, 문제는 당연히 그러한 법안을 입법하는 이들이 원로원 의원들이었고, 역시 당연하게도 원로원 의원 다수는 라티푼디움으로 큰 부를 형성한 대농장주라는 점이죠. 국가나 사회의 갈등요소이자 반드시 개혁해야할 것도 자신의 이익을 방해하거나, 손해를 입히게 되면 반대하는 것이 가진 자들의 속성이니만큼, 입안에 차질을 빚었죠.


머리수가 극소수에 불과해도 가진 게 많으면 그 자체로 권력이 되고 그 권력의 영향력과 행동력은 더 치명적이듯, 그라쿠스 형제는 개혁을 하기도 전에 모두 암살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마리우스의 개혁안 또한 기각되었으며, 카이사르마저도 농지법을 통과시키자 원로원 의원들에게 암살되었죠.


그 결과 로마 공화정은 붕괴하며, 제정 로마가 등장하면서 우리가 흔히 아는 로마 제국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러한 역사는 단순히 로마의 사례만이 아니라, 토지와 농업, 그리고 그것을 통해 부를 얻는 모든 체제에서 비슷한 사례가 발생합니다. 가령 음서 제도와 공음전은 고려를 말아먹었는데, 이 역시 마찬가지로 기득권의 특권을 보장해주고, 토지를 기반으로 영속적인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면서 많은 숙청과 제도적인 문제를 고치면서 그나마 해소되었지요. 그러나 더 많은 토지와 더 많은 소작, 혹은 노비를 만들어 더 많은 부를 얻고자 하는 욕심은 조선에서도 있었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비종부법을 시행하기도 했죠. 물론 기득권인 양반들이 온갖 방법으로 자발적으로 노비가 되게 하거나 하는 등 일천즉천으로 회귀했었습니다. 그나마 사정이 낫다는 점은 양란을 거치며 국가재정 문제 때문에 노비를 적잖이 양민으로 만들었고, 조선 후기로 가는 동안 꾸준히 노비의 비율이 줄었다는 점이죠.


중국 역시 한나라, 수나라도 그러한 장원과 같은 기득권의 넓은 토지로 만들어지는 대농장에 의해 농업과 경제의 양극화가 극심해지면서 혼란이 발생했죠. 그 이후 당부터 명, 청까지 여러 혼란과 제도가 있었지만 그러한 대농장 중심의 경제 구조가 힘을 쓰지 못하게 하면서 경제적인 문제에서 어느 정도 탈피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사에서 대부분의 문제는 기득권과 일반 백성간의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면서 혼란스러워지고 내전이 터지든 반란이 터지든 내부 역량이 갉아먹히든 내부에서부터 붕괴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약해진 국가를 타국, 이민족에 의해 공격 받으며 멸망하곤 하죠. 대부분의 국가에서, 멸망 직전의 기득권은 언제나 부유했고, 많은 특권을 누렸습니다. 오히려 그 이전 시대보다 더 한 경우도 있을 정도죠.



이렇듯, 역사에서 보여주는 사례에서 기득권은 언제나 자신의 특권과 부를 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나라가 멸망할 때까지도 자신의 것을 풀거나, 자신의 수익구조를 바꾸어 더 국가와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고 영속적인 발전이 가능하도록 하지 않습니다.


더 많이 가진 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다른 모든 이유를 차지하고서라도, 아니. 다른 모든 이유는 별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렇게 해야만 지속 가능한 체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자에게 더 많이 걷지 않고, 그들의 거대한 수익구조를 견제하거나 억제하지 않는 한 국가의 부 대부분은 극소수 기득권에게 독점될 것이고, 양극화 현상에 따라 중산층은 붕괴하며, 몰락한 채 국가의 경제력은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중산층이 무너지면 국가 경제는 그대로 박살나죠.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양극화 현상, 부익부 빈익빈은 반드시 잡혀야 하고,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반드시 막아야만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지속 불가능한 체제가 되어 다수 서민은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지고 경제력을 잃으며, 극소수 기득권은 무제한적인 부와 특권을 누리되, 국가 경제는 박살나고 국가가 무너집니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부익부 빈익빈은 억제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많이 뜯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중산층이 충분히 유지 가능하거나 하위 계층이 부의 축적이 가능하게 하여 늘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게 가능하다면 극소수의 기득권에게 세금을 덜 매기는 것 정도야 문제될 것은 아니죠.


하지만 그게 가능하려면 국가 전체 경제력이 커야하고, 무엇보다 그것이 잘 분배되어야만 합니다. 정확히는 노동자인 이들의 소득격차가 크지 않거나, 전체적으로 높아져서 저소득층이라고 해도 충분히 먹고 살며 예적금을 통해 자본을 축적하거나, 작더라도 투자를 하여 이익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등 여유자금이 만들어지도록 해야 하죠.


그러나 한국은 그게 안 되고 있죠. 오히려 가진 자들이 위 이미지에서 말하는 역겨운 엄살을 부리며 자기만 힘들고 정부가 자기들만 죽이려 든다는 비양심적인 이기주의를 보여줍니다. 이미지에서도 가진 자의 눈물이 없는 자들의 눈물보다 더 찐하는 말이 있는데, 딱 그 꼴이죠.


불로소득은 커녕 집에 쌀이 없는 이들도 있는 마당에 수십억 건물 수채 + 월세도 한달 1000이상인데 거기서 몇백 세금으로 낸다고 누굴 죽이네 먹고 살기 어렵네 하는 거 보면 그저 역겨울 뿐입니다. 그렇지 않을 수가 없죠. 심지어 종부세는 내는 사람도 극소수이고, 그마저도 1년에 한번 냅니다. 근데 그거 낸다고 죽겠다고 한다니. 우습죠. 


이런 이유로 한국이 지속 가능한 체제가 되려면 수십년간 더 극심해지고 있는 양극화 현상을 잡아야 하고, 이는 다른 거 다 필요 없이 그냥 기득권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기만 하면 됩니다. 물론 체납자에 대한 강경한 추징이 동반되어야 하죠.


물론 기득권자들은 그걸 반기지 않을 거고, 반대할 것입니다. 기득권들도 기득권 나름이고, 다 똑같은 경제, 소득수준을 가진 것도 아니긴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사정을 다 봐주면 세금 못 걷을 거고, 목적을 이루지도 못하겠죠. 어떤 명분과 이유로도 그들은 납득하지 못할 거고, 정당하다고 여기지도 않을 겁니다.


문제가 바로 그것인데, 어떤 명분과 이유와 철학으로도 그들을 설득하거나 협조를 이끌어낼 수는 없다는 겁니다. 로마의 예시를 다시 보십시오. 그들은 어떤 개혁안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암살과 비협조, 반대로 방해했고 그것은 대체로 성공했습니다. 중국과 고려의 예시에서도 그들은 국가가 망할지언정 자신의 특권과 경제구조에 양보한 것이 없었죠.


그들이 자신의 특권을 내려놓거나, 무언가를 양보할 때는 자신들의 목이 날아갈 수 있을 때 뿐입니다. 가령 강력한 왕권과, 그 왕권을 보장해주는 강력한 무력이 귀족 등 기득권자들 목에 걸려 있다면, 그리고 적절한 명분 하나만 있다면 그들은 반대하지 못합니다. 왕권과 무력이 없다면 그들은 어떻게든 반대하고 발목 잡고 무력화했을 겁니다. 실제 역사가 그러하니까요.


한국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거대 양당이 국정을 주도하고, 국민 절반의 이념이 대립하는 국가에서, 무력을 사용할 수도 없고 오직 민주적 원칙과 제도만 가지고 일을 진행해야 한다면 방법은 딱 하나 뿐입니다. 선거를 통해서 지속 가능한 체제를 유지시킬 수 있는 집단을 만드는 거죠. 어떠한 명분과 이유와 철학을 가져오든 기득권들은 반대할 거고 협조하지 않을 거고, 시도를 무력화시킬 것이기 때문이죠.

TRACKBACK 0 AND COMMENT 0




흔히 환빠로 대표되는 유사역사학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만약 모르신다면 초록불님 블로그에서 (http://orumi.egloos.com/) 그들이 누구이며 어떤 주장을 하는지 일독을 권합니다.



아주 오래전에 밝혔듯이 전 지식인 답변 활동을 합니다, 특히 역사 관련에서 많은 답변을 다는게 취미활동인데, 그곳에 있다보면 참 재밌는 주장을 가끔씩 듣곤 합니다. 아래는 그 사례 중 생각나는 몇가지를 정리한 겁니다.




1. 로마 vs 고구려.


물론 로마가 고구려를 이길 것이라는건 당연한 이야기죠, 국력의 차이는 로마가 월등하니까요. 당연한 겁니다. 근데 무엇이 문제냐하면, 주장은 물론 주장의 전개가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 없다는 겁니다..


먼저, 로마와 싸울 대상이 왜 하필 고구려냐는 겁니다. 당시에 중국에는 한나라, 한제국이라는 동서양 양대제국이 떡하니 있었고, 주로 if논쟁으로 로마와 한나라가 싸운다면 이라는 떡밥이 역사 커뮤니티에서도 간혹 다뤄지는 요소임을 생각해보면, 거의 어그로에 가까운 비교대상이 아닌가 합니다. 주장 자체가 요상하죠.


게다가 더 웃긴 것은, 머리속으로 시뮬레이션 해놓고 로마가 이긴다는 주장을 피는 것인데, 이건 일단 로마가 이긴다는 것을 먼저 전제해놓은 뒤 자기 멋대로 토탈워 돌려서 이긴다고 소설을 써놓는 격입니다. 왜 거기에 고구려군(혹은 로마군)이 있느냐는 별로 중요한게 아니라고 쳐도, 로마군이 어떻게 모여서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대응과 공격을 통해 이렇게 저렇게 고구려군을 전멸시킨다! 라는 주장을 매우 진지하게 주장하는 꼴을 보면.. 되려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멈추면 제일 먼저 꼽은 이유가 없겠죠. 로마군 10만 vs 고구려군 100만, 한술 더 떠 로마군 10만 vs 고구려군 5000만대군 드립을 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로마군이 이긴다는 주장을 정말, 진심으로, 진지하게, 상상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질문을 올리고 있습니다. 


네, 질문입니다. 그게 질문이에요. 미리 머리속에 결과를 설정해놓고 질문을 올리는 겁니다. 상식적으로 5000만 대군이 산 위에서 오줌만 갈겨도 로마군 10만명은 수장당해 죽을 판인데 어떻게든 이긴다고 주장을 펴는 겁니다. 그것도 압승이라는 단어를 강조까지 해가면서 말이죠. 심지어 로마군은 화약무기가 있다나 콜타르 등으로 천연 화합물 대포를 사용한다나.. 게다가 무슨 사거리 1200m 카타발리스타(캐터펄트도 아니고 발리스타도 아닙니다. 심지어 전 1200m사거리의 카타발리스타라는게 나온다는 사료까지 찾아봤으나, 1200m의 근거조차 찾지 못했습니다.)라는 무기로 다 죽인다고 하는데 참.. 게다가 10만명이면 이런 공성무기가 1만대는 있다고 합니다.


하도 황당하고 어이없는 주장, 말도 안 되는 소설을 뱉어내고, 이런게 몇차례에 걸쳐서 반복되는데, 나중에는 답이 없다는걸 깨닫고 그곳에서 답변활동하는 모두가 손을 때게 되죠. 물론 그 치도 금방 사라졌지만.. 롬뽕도 참 답이 없다는걸 다시금 깨닫게 해줬습니다.



2. 거란, 여진족 = 한민족


중국이 몽골의 원나라 등을 자기네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을 예로 들면서 두 민족을 한민족 내지는 친척이라고 주장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주장을 펴는 사람이 국사, 세계사 분야 우수 답변가라는 거지요. 주장을 제대로 들어본 지가 꽤 오래되서 잘 기억은 안 납니다만, 하여튼 만주, 연해주 지방에서 살던 이들이고 우리 혈족이다, 중국보다 우리에 가깝다 같은 주장을 합니다. 저런거 말고도 우리 역사쪽과 연관된 주장도 있긴 있었는데 잘 기억은 나지 않는군요. 하여간 참 황당한 주장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주장합니다.



3. 발해는 대진제국!


... 솔까 환빠를 위시한 유사역사가들은 주로 고조선이나 고구려, 혹은 고려를 찬양하기 마련인데 참 재밌게도 발해에 빠진 사람이 있습니다. 발해뽕이라는 걸까요? 발해는 원래 국명이 진, 혹은 진국이라 불렸습니다. 이후 국명을 발해로 바꿨고, 이게 정식명칭이 맞죠.


근데 이 친구는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위서로 보고 환단고기를 진서로 보는 친구인데, 하여튼 그러면서 발해를 대진제국이라고 부릅니다. 대진국도 아니고 대진제국, 알다시피 발해는 외왕내제도 아니기 때문에 황제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국이라는 표현을 쓰는건 역사에 대한 기본, 상식이 부족하다는 거겠죠; 大대자도 왜 붙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영토가 넓어서? 흠, 거의 땅만 넓은 수준이고 그 조차도 영토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아서 각 나라마다 자기네 정치적 입장에 따라 그어놓은 영토에다 인구밀도도 낮고 어느 지역은 직접통치조차 안 됬죠.


그런 나라에 대, 제국이라는 단어를 붙혀가며 빨아가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솔까 질문자가 발해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있는지는 고사하고 말이죠.


최근에는 이 발해, 대진제국(...)과 비잔티움 제국이 외교관계, 교역을 맺었냐는 질문을 올리는데, 이거 진짜 생각을 하고 올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중국과도 못한 외교관계를 뭔 발해랑..-0-;;


아참, 환단고기를 진서에 삼국사기, 유사를 위서라고 보는 마당에 자신을 환빠로 매도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재밌는 친굽니다.




뭐.. 지금 생각해보려니 막상 사례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끔가다 환단고기는 무엇이냐, 환단고기를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증거는 얼마나 있냐 같은 시덥잖은 질문들이야 자주 올라오긴 합니다만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고 관심가질 것도 아니죠.


하여간 이상한 주장 참 많습니다..

TRACKBACK 0 AND COMMENT 2
  1. BlogIcon ㄱㄴㄷ 2015.11.26 22:41 address edit/delete reply

    로마가 고구려를대상으로삼은게 아니라

    국뽕들이 로마를이긴다고하는겁니다;

    • Favicon of https://konn.tistory.com BlogIcon Konn 2015.11.27 15:31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건 국뽕이고, 롬뽕인 녀석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아주 심각한 중증 롬뽕이었죠.







중학교 세계사 파트에서 배울 수 있는 카노사의 굴욕은 대충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설명되어있습니다.


교황 그레고리오 7세는 원래 황제에게 있었던 성직자 임명권을 교황인 자신에게 가져와서 교황권을 강하게 하려 했으나 신성 로마 제국의 하인리히 4세가 반발했고, 그에 따라 그레고리오 7세는 하인리히를 파문 시켜버리고 그 이후 교황의 권력이 강해졌다 십자군 때 들어서 서서히 약해진다.. 라고 말이죠.


이에 대한 기본 설명이고, 조금 더 심화해서 알아보자면, 하인리히 4세가 서임권을 내놓지 못하겠다고 한 이유는 오토 대제 이후로 실시된 제국 교회 정책 때문인데, 성직자들에게 땅을 하사하여 자신에게 충성하고 다른 봉건영주들과 대립시킬 수 있는 성직 제후들을 여럿 만들었습니다. 이런 정책은 기독교를 보호한다는 명분과 더불어 각 주교들에게 충성을 얻을 수 있었으며 기존의 봉건 제후들에 맞서게 할 수도 있었죠. 게다가 성직 제후가 죽으면 봉토가 세습되는 여타 봉건 제후와는 달리 황제 자신에게 돌아오므로 남는 장사이자 당연히 황제의 권한을 높히는 도구이기도 하죠.


하지만 클뤼니 수도원 출신의 원칙주의자이자 교회개혁을 주장한 그레고리오 7세가 이것을 금지하자 하인리히 4세는 당연하게도 반발합니다. 이것에 대해 그레고리오 7세는 파문을 날려버리고 파문을 당한 하인리히 4세는 기독교도도 아니고 기독교 왕국의 왕도 아니게 되버리는데, 기독교가 세상의 근본원칙이자 이데올로기이기도 한 그 시절에 이것은 그러한 파문을 씹을 만큼의 물리적, 정치적 실력이 있지 않고서야 큰 문제가 되버립니다.


미디블 토탈워할 때 교황에게 파문 당하면 다른 국가가 막 때리고 그러잖아요? 딱 그런 꼴이라고나 할까요. 다르긴 달라도 왕의 정치적인 생명을 끝장내버리는 조치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건이 터짐에 따라 신성 로마 제국 내에서는 황제파와 교황파로 나뉘어 집니다. 교황의 파문 선언 이후에 신롬 내부의 제후들과 성직자들이 교황 편으로 붙기도 했고, 이미 많은 제후들은 하인리히 4세의 정책에 불만이 컸기 때문에 파문의 여파는 더욱 커졌죠. 심지어 황제파에 붙은 제후들도 대다수 이탈하거나 충성을 바치던 자들도 교황에게 사죄하라는 압박을 넣기도 했죠. 제후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아예 새로운 황제를 뽑을 움직임까지 보이자 결국 하인리히 4세는 교황이 있는 카노사 성을 홀로 방문하여 3일간 눈 밭에서 용서를 구합니다. 


이에 교황은 황제를 용서하고 미사에 참여시켜 파문 선언을 취소했죠. 


이제부터가 카노사의 굴욕 비하인드 스토리인데, 카노사의 굴욕은 하인리히 4세의 승리라 평해집니다. 사실 그레고리우스 7세는 카노사의 굴욕 사건 이전 아우스크부르크 회의를 소집하여  황제에 반대하는 귀족들을 한방에 보내버릴 찬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황제가 재빨리 사죄해버리자 이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죠.


이후 제국으로 돌아온 하인리히 4세는 파문을 명분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대항하던 귀족들의 반란을 진압하며 힘을 기르는데 주력합니다. 당시 귀족 제후들은 그를 황제로 인정치 않고 슈바벤공 루돌프를 황제로 인정하던 세력이 있었기에 하인리히 4세는 3년간 힘을 기르며 반란 세력을 타도하는데 성공하죠. 이 슈베반공도 사실 참 은혜를 원수로 갚은 녀석인데, 하인리히 4세의 어머니인 아그네스가 그에게 슈바벤 공령을 직할령으로 주었던만 황제 자리를 넘보고..


하튼, 굴욕 사건 이후 3년이 지난 1080년에 하인리히 4세는 어느 정도 신성 로마 제국에서 강력한 왕권을 안정시켜 가지게 되었고

이에 반해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교회 개혁 운동에 대한 반발로 신롬의 많은 성직자들에게서 반감을 사고 있었죠. 그러던 중 같은 해에 루돌프와 하인리히 4세를 중재하려던 교황은 하인리히 4세의 괘씸한 행각에 분노하고 다시 한번 파문과 동시에 폐위를 선언합니다.


그러나 많은 성직자에게 반감을 산 교황과 국내에서 실력을 기르는 황제와의 실질적인 물리력의 차이를 무시할 수는 없는 법. 하인리히 4세는 아예 따로 회의를 소집하여 현 교황을 강제로  폐위시키고 클레멘스 3세를 교황에 선출하려는 목적으로 로마로 쳐들어갑니다. 이에 따라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로마에서 도망치고 남부 이탈리아에 가서 5년간 살다 죽어버립니다. 당시 남부 이탈리아는 노르만족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그곳의 지배자인 로베르트 기스카르도 로마에서 교황을 구출하려다 죽을 뻔 했다고 하죠.


이렇게 하인리히 4세에 의해 옹립된 새 교황 클레멘스 3세에게 황제의 면류관을 받게 되지만 이렇게 되니 이탈리아 남부와 북부에 2명의 교황이 있게 되는 촌극도 벌어지게 됩니다.


이리하여 교황의 승리이자 교황권의 상징으로 알려진 카노사의 굴욕은 사실 하인리히 4세, 신성 로마제국 황제의 승리로 끝이 나버립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죠. 게다가 더 재밌는 점은 그 하인리히 4세도 자신의 장남 콘라드의 반란으로 차남 하인리히 5세의 반란으로 쫓겨나 죽게 되버립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교황권의 강화는 그보다 이후인 보름스 협약으로 교권의 우위를 인정 하면서부터죠.



한 가지 더 내용을 추가하자면, 하인리히 3세의 치세 때는 황제권의 최절정기로서 자기 마음대로 교황을 폐위하는 게 자주 벌어졌다는 점이죠. 아예 교황은 황제의 신하였던 수준의 시절이었습니다. 황제가 교회를 등에 업고 자신에게 반역적인 세력들을 평정하기도 했죠. 그렇지만 그는 클뤼니 수도원의 개혁 운동을 지지하였고, 이는 역으로 교회 세력들이 황권에 감히 도전하는 초석을 만들어버리게 됩니다.


심지어 그는 아직 어린 아들을 남기고 죽게 됐고 그 아들은 6살에 황제가 되어 결국 어머니 아그네스가 섭정으로 통치를 하나, 문제는 하인리히 3세가 넓혀 놓은 직할령들을 공작들의 환심을 사고자 뿌려대며 황제권이 약화되고 제후들이 황제를 업신여기게 되며, 하인리히 3세에게 가족을 잃은 로렌 지방의 프리드리히와 마틸다는 그와 그의 가문에 칼을 갈았고, 나중엔 마틸다 여사의 뒷공작으로 장남에게 이탈리아 왕의 자리를 미끼로 아버지 하인리히 4세에게 대항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자신의 아들에게 폐위 당하기도 합니다. 이후 한번 더 자신의 아들 하인리히 5세 또한 마틸다의 공작에 넘어가 아버지를 등지고 아예 납치 당해 폐위 되는 경험을 겪게 되었지요.

TRACKBACK 0 AND COMMENT 4
  1. 강동민 2013.09.25 21:03 address edit/delete reply

    정말 고맙습니다 궁금했던점이 싹 사라지네요

    • Favicon of https://konn.tistory.com BlogIcon Konn 2013.09.25 23:16 신고 address edit/delete

      도움이 되셨다니 기쁩니다.

    • Favicon of http://www BlogIcon 2014.08.18 16:25 address edit/delete

      저도많은도움이됐습니다

  2. adfs 2015.03.07 19:17 address edit/delete reply

    혹시 참고하신 책이나 논문 이름좀 여쭤봐도 될까요?






서양 고대사에서 하나의 본좌로 여겨지는 대제국이었던 로마. 그 로마에 대한 수식어로 위대한이라는 단어가 붙는데, 그 로마가 위대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그 드넓은 영토와 도로? 강대한 군사력? 정치체제? 사회문화?


사실 로마가 진정 위대한 이유는 바로 법률에 있습니다. 


만민법과 시민법은 로마의 전국적인 법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현대 국제법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죠. 사실 법학이라는게 꽤 오랜 전통을 가진 학문이고, 이 법학이야말로 로마의 진정한 유산이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전국적인 법이라는 개념이 사실 국왕과 같은 통치자의 명령이 곧 법이었던 것이 근대 이전의 일반적인 예시였고, 지역이나 시대를 불문하고 국왕같은 통치자의 명령이나 칙령은 그 자체로 거진 전국적인 법이라고 할 수 있었죠. 


그렇다고 명령과 같은 불문법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암흑시대 게르만 왕국시대부터 게르만인들은 성문화된 자기 부족의 법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법전은 암흑시대 게르만 전통 부족 관습법과 로마법을 토대로 만들어졌죠. 법이라는 게 통치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허술하더라도 시대나 지역을 구분짓지 않고 통치라는 것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에서 존재하기 마련이죠.


그런데 재밌는 건, 중세의 봉건시대같은 경우 봉건제도의 특성상 통일된 전국적인 법이 나타나지 못했던 시기였습니다. 동로마는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이 있었지만, 비교적 강한 중앙집권화를 보여줬던 프랑크 제국이 있었을 때까진 전국적 영향력을 지닌 살리카 법과 법원이 존재했으나 그 프랑크 제국이 무너지고 현재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 해당되는 지역의 3개의 국가로 쪼개지기 시작하며 전국적인 법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지역에 따라 법이 집행되던 시기였죠. 중세가 끝나고 봉건제가 약화되면서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지는 시기부터 다시 전국적인 법 개념이 등장하게 되는데, 중세 말기와 르네상스 시기를 거쳐 절대왕정이 형성되는 시기에 강력한 왕권을 가진 국왕은 그들의 강한 권력을 확립시키고 굳히기 위해 대대적으로, 전국적으로 통용이 될 법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런 법을 만들기 위해 찾은 것이 바로 고대의 로마법인데, 한마디로 고대의 로마제국의 법을 가져와서 자기네 방식으로 고친 뒤 적용하겠다는 겁니다. 이게 그 로마법 계수라는 것이죠. 이 로마법 계수를 통해 봉건적인 요소들이 사라지고 절대주의가 성립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이때 사용된 로마법이 바로 유스티니아누스의 로마법 대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유스티니아누스의 로마법 대전 편찬이 그의 업적에서 가장 대단한 것으로 꼽히는 이유라고 합니다.


로마법의 계수는 15세기~19세기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법학계에선 근세 전기의 계수는 전기계수, 18세기 이후의 계수를 후기계수라고 부르는데, 시민 혁명과 민족국가, 근대국가가 성립되며 18~19세기에 본격적으로 근대적인 법적편찬운동이 시작됩니다. 나폴레옹 몰락 이후 1871년 프로이센의 독일제국이 성립함과 동시에 독일의 통일법전이 편찬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대륙법계 국가들의 민법전의 기초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이 (아직은 미완성이었던 독일의)법과 프랑스 민법전을 일본에서 수입하여 자기네 민법전으로 삼고 이후 우리나라는 완성된 독일의 민법과 일본의 민법을 수입하여 우리나라의 민법을 만듭니다.


이를 연속적으로 보게 될 시 현재 거의 전세계 법률은 로마에서부터 시작되는 건데, 현재도 이 로마법의 영향을 짙게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가 사용하는 법들입니다. 로마가 망한지 500년, 길게는 천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법은 근대를 넘어 현대의 지금 시대까지 그 영향이 진하게 남아있다는 것을 본다면, 괜히 로마가 위대하다는 소리를 듣는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실 겁니다. 단지 영토가 넓고 강한 군사력을 지녔고 멋지고 웅장한 건물을 지었다고 위대한 것이 아니라, 후대의 수많은 민족, 국가에게 강렬한 영향을 끊임없이 미칠 수 있게 하는게 진짜 위대한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취미 >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론에 대한 단상.  (2) 2013.08.16
국가적 번역 기관의 필요성  (6) 2013.08.15
로마가 위대한 이유  (6) 2013.08.14
극복해야할 민족주의  (0) 2013.08.14
민족주의적 배타성과 국민감정  (6) 2013.08.13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  (2) 2013.08.09
TRACKBACK 0 AND COMMENT 6
  1. Favicon of http://simglorious.tistory.com BlogIcon 도플파란 2013.08.14 15:2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맞아요.. 후대에 끊임없이 영향을 줄 수 있는게 정말 위대한 것 같아요...

    • Favicon of https://konn.tistory.com BlogIcon Konn 2013.08.14 17:11 신고 address edit/delete

      로마가 단지 크고 강한 국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역사에 남기는 영향력과 의미가 거대하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지요.

  2. Favicon of http://maker.so BlogIcon sky@maker.so 2013.08.14 15:58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3. Favicon of https://myahiko.tistory.com BlogIcon 무량수won 2013.08.20 01:5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법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갈 때 같이 봐두면 좋은 것이 바로 한나라 초기 시대의 법과 진시황이 도입했던 법가에 대한 부분일듯 하네요. 진시황이 진나라를 통일하는 가운데 주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 법이기도 하니까요. 물론 그 법이 통일 이후 너무 과하게 집행(?)되는 바람에 문제가 커졌지만요. ^^

    서양의 법체계와는 많이 다르긴 하지만요.

    • Favicon of https://konn.tistory.com BlogIcon Konn 2013.08.20 19:01 신고 address edit/delete

      네, 서양에도 법이 있었듯이 동아시아에서도 그 나름대로의 법과 법학이 발달해갔지만 문제는 19세기 들어 일본은 서양따라 가고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버렸으며, 정작 중국은 문화대혁명을 맞아버려서 중국 법학계의 흑역사인 사회주의 법학으로 그 흔적만 남았지 오늘날에 영향을 주는 것은 거의 없게 되어버리죠..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662)
취미 (662)
백업 (0)

CALENDAR

«   2020/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