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선 이후 진보계엔 체념과 포기의 분위기가 은근히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윤석열이라는 인간이 어떤 지는 대선 이전부터 꾸준히 알려져 있었고 이건 정치에 관심을 조금이라도 둔 '제정신을 가진 사람'과 '상식적 가치를 으뜸 삼는 사람'은 사리분별을 통해 어떻게 될 지 너무나도 뻔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았고, 그 더 하는 것조차 예상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는 건 아니었다는 점이 놀랍다면 놀랄 일이었고요.
그래서 결국은 체념입니다. 이렇게 되겠지, 그리고 딱 그렇게 됐네. 어떻게 될지 뻔한데, 막을 방법은 없으니.
그렇다고 그런 기색은 의외로 또 잘 안 보였습니다. 비판과 비난은 여전히 하긴 했으니까요. 보수 진영 입장에서 여전히 진보는 입만 살아서 시끄럽게 하는 놈들이니 안 그래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완전히 포기해버린 상태까진 아니고, 체념한 상태로 지켜보자는 입장에 가까웠죠. 비판할 건 하면서요. 자연스럽게 나올 소리 하는 것 뿐이지만.
이렇다보니 진보 진영은 체념은 자연스럽게 지켜보기로 귀결되는 거고, 예전 디씨-일베가 지배적인 분위기까지 인터넷 문화와 분위기를 장악하지 못한 시대에서 인터넷과 별개로 여전히 진보적 분위기의 관성이 남아 있었던, 정확히는 보수의 극단적인 발언들이 본심과 무관하게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 눈치를 받아온 시대에서 나온 말이 샤이 보수였죠.
보수의 '본심'이 보편적 상식, 정의와 도덕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입니다.
즉, 보수의 본심은 곧 사회적 정의와 상식과 거리가 멀었던, 욕 먹을 개소리들이었고, 그러한 사상을 함부로 하기에 아직 한국 사회의 도덕성과 상식은 심각하게 추락하지도, 역전되지도 않았던 셈이라고나 할까요. 사실 그 당시의 도덕성이 학폭이나 다양한 도덕적 문제에 대한 반응, 대응과 비교해 더 낫다고는 하지 못해도, 다른 쪽에선 극단적인 소리를 할 경우 공개적인 비판이 있었고, 그게 통하던 시절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더 나은 선택의 반복이 더 나은 상태들의 합이라면, 더 나쁜 선택의 반복은 당연히 더 나쁜 상태의 합이 되겠죠. 그리고 전체는 언제나 부분의 합보다 크고요.
한국 사회는, 적어도 정치적인 면에 있어서만큼은 더 나쁜 선택의 반복이 있었던 셈에 가깝다고 봅니다. 그 결과이자 증거가 바로 윤석열 정권과 그 내각이고요.
사실, 보수 진영 그 자체는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60년대 수꼴 극우보수들의 미친 소리와 정신이 2020년대 수꼴 극우보수의 미친 소리와 정신보다 더 저열하진 않아요. 다만 세련되지 못했을 뿐이지. 60년대, 70년대, 80년대, 심지어 90년대와 그 이후 지금 이 순간까지, 한국 극우보수들은 그저 그 시대에 얼마나 어울렸는가의 차이만 있었을 뿐입니다. 그것조차 어디까지나 형태적 차이일 뿐이지 그 정신과 가치관은 전혀 다를 게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들의 행동을 살펴보면 60년대의 그것과 향수마저도 느껴질 정도의 유사성이 보이는 거죠. 실은 그보다 더 이전과도 크게 다를 것도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극우보수는 더 저열해지는 쪽으로 발전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죠? 이전에는 대놓고 본심을 꺼내면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고.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한국 극우는 장관 내정자가 공개적으로 반대 진영 전 대통령의 목을 따는 건 시간 문제이며, 이순신과 세종대왕 동상을 공격하고 우파라면 그래야 한다고까지 말합니다.
병사 하나 죽은 거 가지고 사단장을 날리냐는 말을 대통령이 했다면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런 말이 새어나왔다는 사실 그 자체라 큰 논란이 되어야 함에도 지금은 그렇지도 않고 별 타격도 없습니다. 일본의 심기를 거스르고 일본에게 공격적인 것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사라지고 없어져야 한다는 새로운 성역이 만들어지고 있고요.
수십년 전부터 존재했고, 일베 시기와 함께 보편화, 의식화된 '내지와 본국'의 당위적 우열은 하나의 팩트가 되어버렸고 수많은 지지자를 동반한 세계관의 한 축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이제 자유민주주의라는 대한민국의 국체는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좀 보수적으로 보자면, 다음 정권 때 확실히 결정나겠지만, 전 이미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고 진단합니다. 이는 윤석열 정권이 임기 내 탄핵, 하야라는 폭탄과 함께 침몰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의 이야기지만 아마 그럴 일 없지 끝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고요.
보수의 저열하고 비인간적이며, 소아병적이고 정신병적인 본색이 대놓고 드러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저지력이 없습니다. 체념 상태의 진보는 화력도 부족하지만 그럴만한 의지나 전략이 없거든요. 어떤 것이든 처음의 충격이 강력할 뿐이지 그것이 반복되면 단 두번째부터 화력도, 대응력도 약해집니다. 두번째 세월호는 박근혜 정부 당시보다 충격도, 화력도 약할 겁니다. 본질적으로, 형태적으로도 꽤 유사한 사건이 바로 이태원이었고요.
탄핵이든, 하야든 똑같을 겁니다. 박근혜 탄핵 사건만큼의 화력도, 타격도 주지 못할 겁니다. 단지 미국식 중간선거에서 졌네 같은 분위기 정도면 차라리 다행일 정도로.
윤석열과 그 정부의 인사들이 무식하고 거침이 없어서 더욱 그런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지만, 동시에 그들의 무식하고 거침 없는 망언, 아니. 본심이 충분한 비판을 통해 저지되지 않고 그들의 발언이 정치적 책임으로 돌아오는 걸 보기도 어려워진 건 사실입니다. 예컨데, 박근혜 정부 당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과거사 망언으로 비판을 받으며 후보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죠.
다만 문창극의 발언이 '진짜 문제' 였는 지에 대해서 대부분의, 최소한 적지 않은 보수들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그들이 느꼈던 문제의식은 이건데, '그걸 공개적으로 말한 게 문제'였다는 점입니다. 즉, 그들 스스로도 그게 문제가 될 거라는 건 알았는데, 그건 단지 자신들이 믿는 것, 지지하는 가치관과 세계관이 잘못되었다는 걸 스스로도 알기 때문이라기보단, 그게 남들에게 어떻게 들릴지 정도는 알았다는 쪽에 가깝죠.
마치 나치가 자기들끼리는 유대인 가스실을 지지하고 그래야 한다고 믿으면서도 그런 발언을 공개적으로 할 경우 어떤 반응과 반발이 일어날지는 알고 있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한국에서 보수 진영은 본색을 드러내며 그런 말을 공개적으로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저 한쪽 진영 대깨X 깨시민 들 사이에서 호들갑 떨고 지랄하는 정도로 받아들여질 거고요.
그런 사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고, 오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 우리가 일베가 처음 등장했을 때 호들갑 떨며 예견한 것들이 일부라도 현실이 된 이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윤석열 정부가 남길 유산과 씨앗들이 어떻게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을지 어느 정도 예견이 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바로 다음 총선인데, 지금의 샤이 진보들이, 그리고 극우보수의 개짓거리에 진절을 느끼거나 거부감을 느끼는 중도층이 보수층의 신나는 드라이브에 역충격을 가해줘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전 시대의 보수 강세의 사회보다 더 비인간적이고 비상식적인 나라가 될 겁니다. 이제 한국은 후진국이 아니거든요. 옛 보수의 부정부패는 그들의 도덕성과 가치관, 탐욕 문제도 있었지만 후진국이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흔하게 발생할 수 있는 것들이기도 했지만, 지금의 것은 그 성질이 조금은 다릅니다.
옛날엔 더러운 거 알면서도 무시했지만, 지금은 그 더럽고 비인간적인 것에 정의의 거죽을 덮어 씌우며 정당하고 정의로운 것으로 포장하기 때문입니다. 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궤변과 말장난으로 가득찬 개소리거든요. 단지 그 개소리에 완성도가 있기 때문에 좀 모르는 사람들, 못 배운 사람들, 그냥 멍청한 놈들이나 평범한 어린애들은 아리까리 하면서 맞는 말인 줄 알게 됩니다.
이를테면 ㅇㅅㅇ식 개논리인데, 말 그 자체로만 보면 맞는 말처럼 보이지만 그 모든 논리와 주장, 표현은 그저 특정한 한 사건과 사례에 허수아비식 공격을 모아 딱 그 사례에만 적용되는 활자들을 붙일 뿐입니다. 그래서 ㅇ적ㅇ이 나온 이유가 바로 논리가 일관적이지 못해서 똑같은, 그러나 다른 사람이나 진영에게는 또 다른 논리를 가져와서 그렇거든요.
이처럼 실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피상적 완성도의 일개 사례들만 분리적으로 보며 요즘 시대 보수적 세계관, 보수의 논리가 형성되는 거고요. 인국공 사건 당시 보수의 논리는 조악하고 저열했으며 논리적 허점마저도 있었지만 엘리트주의, 공정 담론과 결합하고 그것을 축으로 삼아 마치 그럴듯해 보이는 것으로 짜맞추었습니다. 그걸 부추기고 좀 더 세련된 활자로 정리한 것이 바로 언론이었으며, 그것에 대한 비판 여론을 마녀사냥식 물량의 폭력으로 찍어누르던 게 보수센징들이었고요.
그런 식인 거죠. 이미 2000년대 중후반부터 그런 식으로 변화해왔고 지금은 그 완성도가 그 당시보다 더 나아졌을 뿐이지.
진보 진영이 지금은 체념해 있지만 다음 총선 때 어떻게 집결할지가 관건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심지어 다음 대선 때 진보좌파 진영이 승리한다 해도 보수 드라이브에 충분한 제동을 주긴 어려울 겁니다. 이미 관성은 10년도 더 전부터 붙어왔고, 문재인 정부의 시도는 제동이 아닌 탄성을 준 셈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거든요.
솔직히 말하자면, 좀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냥 미친놈 세상 속 우리 정상인들은 좆됐다는 걸 인정하는 게 나을지도 모를 일이죠.
뭐가 낫냐고요?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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