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16 - [취미/이야기] - 민주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적 역할과 전근대적 계급 관념.
2022.06.04 - [취미/이야기] - 엘리트 카르텔의 선출직 권력에 대한 무력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0.
대한민국 헌법 1조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권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에 대한 국가 정체성의 규정이다. 이 조항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어떤 국가이며, 주권이 어디에 있고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1.
민주주의라는 '사상'에서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고 한다. 이는 민주라는 체제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원리를 규정해야 하기 때문이며, 그러한 이론상으로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 또한 이것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대전제이며 이 대전제 위에서 모든 원리와 이론들이 존립할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 모든 국민들이 평등하기 때문에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계급이란 어떠한 계층이나 직위가 아닌 왕정, 귀족정 체제와 같은 명시적인 계급을 의미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모든 국민은 동일한 국민, 혹은 시민이라는 단일한 계급 하나만을 가지고 있고 필요에 의한 직위가 아닌 명시적 계급에 의해 권리나 권한이 제한되지 아니하며 그 권리는 동일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선거를 예시로 들었을 때, 누구는 2표, 누구는 0.5표로 제한되거나 특혜를 받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2.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체제'에서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고 '간주'한다. 이는 앞서 이야기 했던 바와 상당히 다른 이야기이다. 간주한다는 것은 실질적인 차이를 무시한다는 의미이고 이는 실제로 계급이 발생함을 추정한다.
민주주의는 분명 시민이 평등하건만, 어째서 실제로 계급이 발생할까?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민주주의 국가, 민주공화국은 민주주의 하나로만 작동하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채택하는 체제는 다양하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는 정치적 체제로서 틀을 구성하며, 그 틀의 원리 아래에서 여러 체제를 포함한다.
예컨데, 대부분의 국가는 자본주의를 채택했다. 자본주의는 경제체제이며 자본의 축적과 투자, 성장을 목적으로 한다.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본이며, 자본의 양으로 실질적 권한과 권리가 발생한다. 100만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1000만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가진 바 할 수 있는 선택지의 규모와 개수가 다르다. 마찬가지로 1억을 가진 사람과 100조를 가진 사람의 자본 권력은 숫자보다 더 거대한 차이를 발생시킬 것이다.
3.
대한민국에서 모든 국민들은 평등하다고 간주된다. 이는 실제로 투표권을 비롯한 정치적 권리 등 국민으로서 보장되는 여러 권리들일 뿐이지 실제로는 평등하지 않은 삶을 산다. 이는 대한민국이 자본주의를 채택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가령 돈이 많은 사람은 최고의 의료기관에서 최고의 의료진들에게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반면 가난한 사람은 약을 구하는 것조차 어려울 수 있다.
대기업 사장의 발언은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영역에서조차 평범한 노동자의 것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 법 위반에 대해서도 돈이 많은 사람은 초호화 변호인단을 구성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은 국선 변호인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관심과노력을 기울이길 기대할 수밖에 없다.
검사는 검사를 기소하지 않고 의사의 범죄는 제대로 조사되지도, 정당하게 처벌받지도 않고 설령 어떠한 경우라도 의사 자격증은 견고하게 보장된다. 언론사와 일개 기자조차 여론을 다룬다는 이유로 선출직 권력과 대기업 권력조차 그들을 존중하게 만든다.
분명 국민은 평등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이는 첫째로 자본주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며, 자본의 양에 따라 실질적인 계급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자본은 중립적이지만, 그것이 민주적이지 않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며 보게 되는 대부분의 불평등은 대개 자본주의에 근간하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
즉,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평등하지만, 자본주의에서 소비자, 혹은 자본가로 구분되는 자본 소유자는 자본의 규모에 따라 실질적 계급이 나뉘게 된다.
또한 둘째로 가진 바 권한과 지식에 의해 계급이 발생한 것이다. 검사의 기소권과 수사권은 법을 매개로 하는 최고의 실권자이며 의사의 전문 지식은 대체될 수 없고 고소득이라는 이유로 대단한 특권을 용납받았다. 언론은 실제 여론을 움직이는 영향력을 지녔기에 어떤 직종의 누구도 그들과 싸울 수 없게 만든다. 언론사와 싸운다는 건 국가 전체와 싸운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된다.
4.
자본주의에 대해서만 먼저 이야기해보자. 자본에 의해 계급은 형성되지만, 그 계급은 명시적으로 구간이 정확하게 나눠지는 것이 아니다. 999만원을 가진 사람과 1000만원을 가진 사람의 자본 권력이 극단적으로 차이가 날 리는 없다. 그러나 1000만원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것과 1억원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숫자보다 더 큰 차이가 날 것이다.
1억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에게 1만원을 주고 한 공간에 모이라고 했을 때 1만명을 모을 수 있지만 100조원을 가진 사람이 1만원을 주고 사람을 모은다면 지구 전체 인구보다 많은 1000억명을 모을 수 있다.
수치상 1만원에 정확히 한명을 모았을 뿐이기에 정확하게 계산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직선 그래프로 착각할 수 있겠지만 자본의 규모에 따라 할 수 있는 반경이 넓어지고 그걸 유지할 여력을 따진다면 자본 권력은 그 양에 따라 지수 그래프를 그릴 것이다.
통장에 1억이 없는 일개 노동자와 시총 수백조를 움직이는 재벌 대기업 총수는 법에 명시된 정치적 권리는 동등하나 자본으로 규정되는 자본 권력은 정치적 권력의 격차보다 극단적이다. 그럼에도 자본주의는 대체로 민주주의, 그 중에서도 법치주의에 귀속되어 통제를 받고 있으며 또한 그래야만 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는가? 보수적으로 대답하자면 그렇다. 그러나 좀 더 비관적으로 바라보자면 그렇지만은 않다. 한국도 그러하지만 특히 심각하게 작동하는 미국은 초거대 자본에 의한 실질적 금권정과 유사한 과두정으로 작동하고 있다. 거대 여론은 자본 권력에 의해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며 초호화 변호인단의 소송 전략은 누가 봐도 유죄인 사건을 무죄로 바꿔버리는 경우 역시 존재한다. 부자병은 미국 법정 현실의 한 일례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은 자본주의가 있는 모든 국가, 체제에 동일하게 존재한다. 민주주의가 아닌 명시적 계급을 설정하지 않은 독재에서도 자본에 의해 권력과 계급이 형성되고, 사우디 같은 왕가 역시 마찬가지이다. 도리어 이러한 비민주정의 경우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적극적인 야합, 혹은 동일성이 관찰되기도 한다. 자본에 의한 정치 개입 역시 활발하게 시도되는 현상이다.
5.
그러한 이유로 민주주의에서 자본주의는 민주적 권력과 제도를 추월해서는 안 된다. 다르게 말하자면 자본에 의한 정치적 개입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물론 그것이 현실적으로 거의 실현 불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평등하지만 실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렇게 간주될 뿐인 것처럼.
그럼에도 최대한 국민의 평등을 추구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의 고민인 것처럼, 현대 자본주의를 어떻게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느냐 역시 정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고민이 된다. 이것이 자본주의를 억압해야 한다거나, 기업 활동을 억제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 명제에서 자본의 분배라는 주제 역시 다른 맥락으로 작동한다. 분배를 우선하는 경제관념을 지닌 이들은 그것이 자본주의의 항구적 발전과 시민의 경제적 민주화, 서민경제 활성화와 같은 맥락이지만 이 경우 부의 분배는 자본주의의 민주주의 침해/역전 현상을 막기 위해서 나올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불필요하다면 부의 분배는 채택되지 않을 수단이다.
6.
권한과 지식에 의해 발생하는 계급은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검사는 검사를 기소하지 않는다. 정치적이거나 조직에 대한 반역의 경우가 아니라면, 혹은 너무나도 심각해서 감히 덮을 수가 없거나, 혹은 그 정도로는 큰 타격이 없을 때나 기소한다. 그럼에도 처벌은 온당하지 않고 그들의 이권과 특권에는 별 타격이 없다.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은 그들의 권한과 지식을 기반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개개인의 권력은 아주 대단한 게 못 될지라도 그들이 모였을 때 선출직 권력조차도 흔들 수 있다. 의사들이 수술실에서 환자를 희롱해도 문제가 되지 않고 의료사고로 사람을 죽여도 문제되지 않는다. 심지어 공무직에 속하는 군인들조차 고급 장교들은 비리를 저질러 국가 안보를 문란케 해도 생계형 범죄라는 포장을 받는다. 설령 전역한다 해도 연금은 연금대로 받고 가진 인맥을 통해 이런저런 사업을 하거나 참여할 수 있다.
7.
이러한 직종은 그 사회의 필요에 의해 형성되고 만들어지고 길러내는 것이다. 의료 서비스가 필요하기 때문에 의사를 교육시켜 의료 현장에 투입시킨다. 법과 제도에 의해 사람을 수사하고 유죄를 증명하기 위해 법치주의를 채택한 나라에선 검사와 판사, 변호사와 같은 인력을 만든다. 전문적인 연구와 교육을 위해 대학을 만들고 대학생을 가르치며 대학원생을 길러 연구 역량을 늘리고 전문 연구 인력을 기른다.
민간에서 다룰 수 없거나 다뤄선 안 되는 영역은 국가가 담당할 영역이고, 그것을 다룰 실제 인력으로 공무원을 쓴다. 공무원은 각기 다양한 영역에서 정말 많은 일을 하고 그 중 어떤 영역에서는 전문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한다.
문제는 이러한 이들이 가진 바 권한과 지식을 이용해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보단 자신들의 이익과 특혜에 몰두한다는 점이다. 검사는 범죄자를 만들 수도 있고 수사할 수 있다. 설령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기소하여 조사를 하며 질 것이 뻔한 재판으로 끌고 가는 것만으로도 기소된 사람의 삶은 피폐해진다. 많은 시간과 돈을 잡아먹고 개인의 정신과 평판을 소모할 수밖에 없다.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전문 지식을 가졌기에 쉽게 대체될 수 없다. 그들 자신이 환자들의 목숨을 판돈으로 걸어 파업을 하거나 위협하는 것만으로 정치권을 흔들 수 있다. 사람들은 욕하겠지만 그런만큼 절박한 사람들은 많다. 전문 의료인은 대체될 수 없기에 그들이 결코 포기할 리 없는 특권과 생업을 걸고 협박하면 당장의 정치적 부담은 크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의 특권을 지켜왔다.
LH 공사와 같은 부동산 관련 공공기관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부동산 관련 특급 정보들을 손에 쥐고 있고, 사업을 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어떻게 투자를 하면 어마어마한 돈을 벌 수 있는지 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실제 막대한 돈을 벌었다.
그렇다면 이것들은 민주주의적인가? 실제로 발생한 건 그들의 권한과 지식을 이용한 하나의 계급이다. 그러한 특권 계급으로 남들보다 우월한 지위와 이익을 얻어왔고 우리는 그것을 부정부패와 특권, 특혜라 불러왔다. 사회가 부여한 적 없는 것이다.
8.
물론 민주주의에서도 계급, 혹은 신분은 발생할 수 있고 발생한다. 이것은 현실이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상한 일이 전혀 아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계급과 신분이 발생한 이후 그것이 고착화되고 특권과 특혜를 독점하는 카르텔이 형성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법 전문가로 이루어진 법조인 계급은 만들어질 수 있고, 재벌 대기업이라는 자본 계급이 만들어질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계급이 실질적 비민주적 불평등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논리나 사회적 권한으로 발생하는 제도적 권력의 격차와 무관하다. 그것이 정치적 불평등으로도 이어진다는 게 문제다. 단순히 대학 교수, 군 장성, 경력 있는 관료, 대기업 사장 및 회장 같은 이들이 정치적 결정에 조언과 자문을 하는 것이나 협의 하는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대학 교수가 정부의 정책 결정을 정당화하는 나팔수 역할을 하거나, 군 장성이 군 내에서 발생한 사건을 덮거나 조사를 적극적으로 방해하거나 그러한 행위를 묵인하는 경우, 경력 있는 관료가 유관 기업이나 기관에 취업하여 기밀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고 현직 관료와 연결되어 불법적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경우, 정치인이나 검사, 변호사에게 막대한 금품이나 정보를 미리 제공하는 식으로 정치적, 법적 이익을 얻거나 리스크를 최소화 하는 경우, 경제인과 정치인 및 정권이 야합하여 불필요한 사업을 벌이며 그 과정에서 돈과 자리를 공유하는 경우 등.
불법적 특혜를 창출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것은 계급 그 자체보다는 그 계급을 통해 특권화 하는 과정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 사회는 그들의 그러한 부정을 허락한 적이 없고, 그런 것을 하라고 권력을 위임한 것도 아니며, 그러한 행위를 하라고 법과 제도를 다루는 자리를 만든 것도 아닌데다, 그러라고 자본의 축적을 제한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즉, 권한을 지닌 자들은 그러한 권한을 부정하게 사용하지 말아야 하고, 부패한 자들은 권한을 지닌 자들로 하여금 적절한 처벌을 하라고 한 것이며, 그것이 너무 큰 잘못이나 유사한 잘못이 반복될 경우 그 자리에 있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발생한 계급은 특권을 형성하고 엘리트 카르텔화 시킨다.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매개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9.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물론 나는 구체적인 제도와 법령을 제시할 수 없다. 그러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적 역할과 전근대적 계급 관념이라는 이전에 작성한 글에서처럼, 민주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계급, 직종, 직위는 하나의 사회적 역할로서 기능해야 한다. 대부분의 계급은 거의 죽을 때까지 상실되지 않고 어떤 것은 세습되기도 하지만 귀족은 죽을 때까지 귀족이지만 판검사, 의사, 관료, 장성은, 그리고 그 중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 원로의 위치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오랜 기간 종사한 직종과 위치에서 은퇴하게 된다.
즉, 그들은 결국 자기가 발휘하던 권한과 권력의 영향력을 대부분 상실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들의 역할이 끝나는 시기가 온다는 것이다. 거시적 사회구조 속에서 그러한 엘리트 개인들은 일정한 시간 동안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 뒤 은퇴하여 자신의 노후를 보내게 된다.
이것이 일반적인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인식이 되어야 한다. 자신이 노력해서, 혹은 물려 받은, 때로는 선출되거나 임명되어 얻어진 이 권한과 권력,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이 자신의 숙명적인 권리나 특권이 아니라 한시적으로 수행하는 사회적 역할로 받아들어야 한다.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해서 남들과 다른 우월한 위지와 지위에서 남들과 다르다는 감각 속에 빠지는 게 아닌 특수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 뿐이라고 말이다.
10.
그렇다면 그러한 인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스스로 남들보다 우월한 지위, 계급에 속한다는 전근대적 계급의식의 연장선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답은 결국 시간일 것이다. 근대 유럽이라도 현 한국과 같은 인식이 없었을까? 민주주의 국가로 건국된 미국 역시 대통령 워싱턴을 왕과 다르지 않게 인식했다. 그것은 인민의 대표라는 대통령과 국가의 유일한 주권자인 왕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대통령이라는 높은 사람은 왕과 특별히 구분지을만한 것이 아니었다.
하물며 왕과 귀족 전통이 훨씬 오래 이어졌던 유럽은 어떻겠는가. 그들에게 법관과 장관은 귀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떤 귀족이 법관의 복을 입었고 어떤 귀족이 장관의 직위에 섰던 것 뿐이다. 민주주의, 공화주의 등 현대 민주공화국을 이루는 원리들이 도입되었을 때 당대인들의 인식에서 선출직과 귀족의 차이는 쉽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는 한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승만 대통령을 왕을 일컫는 나랏님이라 불렀고 비교적 최근 2010년대에서조차 박근혜를 주군이라 부르며 무릎 꿇고 눈물을 흘려대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지만, 한국엔 여전히 이러한 사람들이 있다. 전근대적 계급 의식과 원리를 긍정하고 있고 그것을 세계관 및 가치관으로 받아들인 사람들.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보다 우월하고, 그러한 우월함이 입장과 자격, 행위에 대한 대가 역시 차이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유럽이 현대에 와서 민주적 시민의식을 갖추기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200년? 300년? 못해도 한 세기는 걸렸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 역시도 그러하다. 임시정부를 제외하더라도, 실제 대한민국 정식 정부가 출범한 48년을 기점으로 잡았을 때 한국의 민주주의는 아직 80년이 채 못 되었다. 심지어 그 절반에 가까운 기간은 독재와 그 관성적 정권들로 얼룩졌고, 대한민국 국민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학습하지도, 경험하지도 못했다.
아무리 길게 잡아봐야 35년, 더 짧게 잡는다면 약 20여년이 조금 넘을 뿐 아닌가. 한국인에게 민주주의가 뿌리 내리려면 아직도 반세기는 더 남지 않았을까. 무엇이 민주주의인지 스스로 경험하고 오차를 줄여갈 수 있다면 한국은 결국 뿌리 깊은 민주주의 국가가 될 것이다.
11.
그러나, 앞서 이야기 했듯이, 한국에는 여전히 누군가가 누군가보다 더 우월하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적극적으로 차별을 긍정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은 왕정이 끝장난지 100년이 넘었음에도 전근대에서 탈피하지 못한 이들이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이해하지도 못한 자들이다.
그들은 스스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 믿고 그렇게 말할 것이다. 하지만 말과 행동이 다르다면 결국 가장 크게 평가 받아야 하는 것은 행동이다. 그들이 다른 세대, 다른 지역, 다른 성별, 다른 진영을 차별하고 혐오하며 그것을 하나의 원리이자 동력으로 삼는다면 이 나라는 결코 민주주의 국가일 수 없다. 민주주의가 아무리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모든 국민을 평등한 존재로 '간주'한다 하더라도 국민 스스로가 그러지 않는다면 어떻겠는가.
12.
사람은 실수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더 견고한 제도를 만들어왔다. 법률, 정부, 제도, 심지어 관습과 도덕, 윤리의 영역까지. 사람에 의한 잘못을 사전에 방지하고 적절한 자격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 평균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실수나 실패를 교정할 수 있게 틀을 잡아주기 위해서 말이다.
즉,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으며,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어떤 것을 어떻게 해야 하며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등을 미리 정하며 그 내에서 자율적인 업무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떤 사람에게 부여되는 사회적 역할이다.
문제는 결국 모든 제도를 다루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이다. 법률을 다루고, 정부를 구성하며, 제도를 만들고, 그것을 다루는 사람은 결국 사람이다.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완벽할 리는 만무하므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악한 의도와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권한을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검사가 제대로 수사하지 않아 증거를 수집하지 않은 채 재판에 나간다면 그 피고인은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아주 사소한 것까지 수사하거나 특정 법률을 무리하게 해석하여 기소한다면 그 사람은 높은 확률로 법적 처벌을 받을 것이다.
이처럼, 국가를 이루는 요소 중 국민을 제외한 모든 것은 다 수단이다. 그리고 그 수단은 다루는 사람에 따라 목적성이 달라지는 바, 비민주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계급 의식과 차별의식을 기반으로 수단을 다룬다면 그 나라가 민주주의적일 수 있겠는가? 민주적 가치관을 가진 민주주의의 국민들이 해야할 일이 바로 그러한 민주적 위험 요소가 공적인 권한과 권력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들을 선출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이 선출한 민주적 선출직으로 하여금 비민주적/반민주적 가치관을 가진 인사를 임명하지 않도록 요구해야 한다. 만약 그 요구에 불응한다면 그 자에게 선출 권력을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은 그것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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