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카카오 페이지에서 본 몇몇 소설 중에 꽤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작품들이 몇 있는데, 그 중 황제와 여기사, 시그리드, 마성의 황자와 나. 라는 3작품이 눈에 띄더군요. 재미도 재미지만 무엇보다 페미니즘적으로도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요 몇 주 전 메갈과 관련된 이슈가 폭발하듯이 점화된 적이 있는데, 그 사건 이후로 알게된 작품이라 그런지 다른 의미로 더 재밌게 느껴지더군요.
사실 아직 다 본 것도 아니고 초반부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시그리드
앞서 언급한 3작품 중 가장 적게 본 것이긴 합니다만, 어찌됐든 이 작품은 기사의 표본과도 같은 모습으로 살아왔다 누명을 쓰고 고문 당한 채 모든 것을 잃고 사형 당한 어느 여기사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5년 전으로 돌아와 다시 한번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그 기회에 따라 이번엔 다르게 살아보자고 마음 먹고 실천하는 게 내용이죠.
왜 이 작품을 다른 세 작품과 함께 뽑았냐면, 작품의 주인공이 되는 여성이 자신을 규율하는 사회적, 직업적 가치에 무비판적이고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살았던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번의 죽음 이후엔 그것이 설령 작품 내의, 시대적 상황 내의 젠더역할로서 나뉜 여성적 행동을 하게 되었다곤 해도, 분명한 것은 수동적이고 기계적으로 살아왔던 부품이, 주체적이고 인간적으로 교감을 하며 선택하고 책임지는 인간으로 변화함에 있다는 거죠.
기사의 표본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기사로서의 행동에 집작하고 스스로를 규율했던 것을 시대적, 성역할적 금제나 사회적 요구라고 생각한다면, 그러한 규율에서 어느 정도 타협하거나, 스스로 벗어나려고 했던 것이라 해석할 수도 있죠. 사실 이 작품은 페미니즘이나 성평등적이라기 보단 자유주의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아직 끝까지 본 게 아니라 뭔가 더 생각해볼 모양새가 나올 수 있을 진 모르겠습니다만..
- 추가 설명.
최근 외전 조금 남겨놓은 채 완결까지 다 보고나서 내용을 추가합니다. 먼저, 시그리드라는 캐릭터와 연관되는 여러 인물들의 긍정적 변화와 미래의 변화는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습니다. 특히 본편 마지막회는 이런 종류의 회귀물에 있어서 굉장히 훌륭한 결말 묘사라고 생각하는 데, 대부분의 회귀물이 그 이유를 맥거핀으로 두거나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에 반해, 시그리드의 회귀에 대한 묘사와 설명은 굉장히 극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전에서 묘사되듯이, 원래 시그리드가 황제의 개로서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황제에 대한 충심과 의심 없이 따르기만 하는 글자 그대로 도구적인 인간으로 살며 온갖 악행과 학살을 자행하는 쓰레기 같은 최악의 인물이었고, 그에 비해 방탕하긴 하지만 그래도 인간으로서의 개념은 있었던 베라무드의 충돌을 대비하며 본편과 외전의 인물상을 굉장히 부정적인 상황 하에서 그려내었죠.
로웬그린, 마리쉐즈 등 시그리드에 대한 평가 또한 볼만한 부분이었고요. 그만큼 시그리드라는 인물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인간이 아닌 글자 그대로 도구적으로 움직이고 명령 받은 대로만 움직이는 개와 같은 존재로서 기능하는 데, 그러다 베라무드를 구해서 돌아온 뒤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죠. 시그리드가 빈민가에서 학살의 책임자로 일을 저지를 때 베라무드가 진짜 죽이려고까지 했던 것처럼요.
그 결과 시그리드는 쓸모가 다 한 뒤 누명을 쓰고(사실 누명건과는 별개로 그만한 악행을 한 건 맞지만.) 고문 받다 오러 코어를 뽑힌 채 처형 당했습니다. 베라무드는 그런 시그를 보고 이런 걸 원한 건 아니었다고 하지만.. 결국 본편 마지막화에서 아르카나와 베라무드는 서로 만나게 됩니다. 과거로 돌아가는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죠. 모두가 후회하고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고치고 원하는 결말을 새로 쓰기 위해서요.
아르카나와 베라무드가 대화하면서 서로의 부탁을 약속합니다. 시그리드의 오러 코어를 들고 둘, 혹은 시그리드의 오러 코어이기 때문에 셋 중 하나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면서요. 그렇게 시그리드의 오러 코어를 매개로 마법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시그리드가 눈을 뜨죠.
이 부분이 정말 훌륭한 묘사였는데, 어째서 시그리드가 과거로 돌아오게 되었는가 하는 인과를 훌륭하게 설명하는 동시에 시그리드라는 인물이, 크나큰 배신을 겪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기도 하며, 이는 그 자체로 두번째 기회를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그리드 본인이 했던 악행에 대해 충분히 죄책감을 느낄 수도 있고, 자신의 선택을 바꿀 수도 있으며,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을 수도 있고, 충성의 대상을 고를 수도 있으며, 앞으로 발생할 죄악들을 막을 수도 있죠. 이 두번째 기회라는 게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도 하는 것이, 어떤 죄인이라도 두번째 기회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이야기들처럼 시리에게도 이런 기회가 찾아왔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기회를 통해 새로운 인물로 거듭나게 된 거고 모두에게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었던 운명의 장난이었던 셈이죠. 아르카나도 세리아의 죽음을 겪지 않고 미쳐서 황제의 개가 되어 빈민을 죽이거나 하는 악행에 가담하지도 않게 되었고, 베라무드도 시그리드와 다투거나 싸우지 않고 사랑하며 자신의 가치를 다시 깨닫고 둘째라며 자괴감을 느끼거나 하지 않으며 자신이 스스로 선택해서 사랑을 거머쥘 수 있었으며, 모리스는 형과의 갈등을 해결하고 알케르토 또한 사랑을 얻게 되었죠.
빈민들을 죽지 않아도 됐으며, 세리오스는 무사히 자신의 아내와 자식을 구할 수 있었고 서부와의 관계 또한 다시 원활해졌으며, 아웬 또한 위험해지거나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로웬그린과 마리쉐즈도 좋은 친구, 남편을 얻게 되었고요.
가장 큰 혜택은 시그리드 본인이 받았습니다. 인간적인 인물이 되었고 죽기 전 겪었던 죄악을 반복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걸 막았으며 사랑하고 사랑 받을 수 있는 주체적인 인간으로 성장했으니까요. 다른 누구도 아닌 시그리드의 회귀가 모두에게 가장 좋은 결과를 안겨준 셈이고 모두를 성장시킨 핵심적 인물이 된 거고요.
다시 말하지만 이런 결말로 이끈 시그리드의 악행과 황제의 개로서의 활동, 그리고 그 결과 과거로 돌아가는 마법을 시리의 오러 코어를 통해 사용한 베라무드와 아르카나, 그리고 다시 돌아온 시리에 의한 모든 변화라는 짜임새는 굉장히 훌륭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마성의 황자와 나
참고로, 시그리드와 마성의 황자와 나는 같은 작가가 쓴 작품입니다. 그래서인지 인물의 묘사가 언듯 비슷한 면이 있죠. 비슷한 주제이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 작품 자체로도 상당히 재미있고 매력적이라고 봅니다. 특히 표지의 캐릭터는 너무 매력터지다보니 더더욱..
뭐 아무튼, 이 작품의 주인공인 레사는 자신의 직업적인 문제로 인해 성별을 숨긴채 일을 하는 여성입니다. 암살자가 직업이었죠. 작품의 시점에선 이미 때려치긴 했었지만.. 어찌됐든, 레사는 자신의 성별이 곧 비밀이자 컴플렉스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구애 받지 않으려 합니다. 어떻게 보면 신경을 안 쓴다는 느낌도 들지만요. 여성이지만 남성이 할만한 일들을 하고 그런 것에 주눅들지도, 크게 열등감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주인공인 레사는 여성이지만 남성으로서의 직업적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서 별 문제나 무리가 없이 수행합니다. 어떤 면에선 다른 남자들보다 더 훌륭한 일처리를 해내죠. 남자로 성별을 숨겨야 한다는 이유이기도 하나, 남자들처럼 입고, 남자들처럼 행동하며(마초적인 건 아닙니다. 단지 특별히 여성적이지 않을 뿐..) 심지어 작품 내에선 (여성에겐) 형벌로서 여겨지는 짧은 머리까지 하고 다니죠. 이는 성역할의 구분은 없다라는 것을 드러내는 요소들이기도 하며, 실제로 레사가 그런 류의 험한 일을 해내는 것도 묘사되곤 하죠.
물론 이런 류의 남장여자 장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긴 합니다만.. 많은 남장여자 장르는 대개 약간 BL느낌이 들 정도로 예쁘장한 남장여자에게 남자가 호기심이나 호감 따위를 느끼고 성정체성을 고민하며 남장여자는 남자연기를 하지만 여성 본연의 약함을 드러내며 남자 주인공에게 다른 감정을 자극하는 모습도 꽤 자주 묘사한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런 식의 남성적인 남장여자의 작품이 적은 건 아니다만 그래도 꼽을 만한 요소라고 봅니다.
에.. 사실 그닥 성평등적인 작품이라기보단 어쩌다 그런 모양새가 살짝 나온 것이라는 게 합리적인 평가일 겁니다. 근데 재밌으니까... 쩝.
황제와 여기사
제목에 꼽히기도 한 작품이죠. 이게 가장 적절하고 최고인 작품인데, 주인공인 폴리아나는 아버지와 재혼한 새엄마, 그리고 배다른 여동생에 가정권력에서 밀려나 죽으라고 보내진 전장에서 살아남고, 왕과 동료 기사, 병사들과 같은 남자들에게 동료로서, 기사로서 인정 받으며 왕과 함께 대륙을 정복하는 것을 이야기로 합니다.
어째서 이 작품이 가장 페미니즘적으로도, 성평등주의적으로도 훌륭한 작품이나면, 작품 내에서 여자 기사라는 건 실제로 없는 것과 다름 없는 존재라는 겁니다. 원래 여자가 군에 간다면 어떻게든 후방으로 빠지게 하지만, 폴리아나의 부모는 그녀를 전쟁터에 내보냈죠. 죽으라고요. 그래야 자신의 새 딸에게 상속권이 넘어가고 귀족 작위가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폴리아나는 죽어라 고생하며 남자들 틈에서 살아남았고 훗날 부모와 조국을 배신하고 자신을 인정해줄 수 있는 왕에게 충성합니다.
자 그럼, 여자로서 군대에서 '살아남는다'. 어째서 살아남느냐는 표현을 썻느냐면, 배경이 되는 시대가 중세 정도나 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그런 시대에선 으레 있을 법한 여자는 열등하거나 할 일이 따로 있다는 성역할론과 은연적 무시 따위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고 실제로 그랬기 때문입니다. 여자로서 군에 입대하자마자 주변의 무시와 조소, 조롱, 차별 따위를 겪어야 했고, 남들보다 약한 몸으로 살아남기 위해 더 독해져야만 했습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특히 정신적으로.
여자이기 때문에 군대에서 고립되었고, 어떻게 어렵게 얻어낸 소대장 직위도 폴리아나의 '합리적 판단'을 상관에게 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여자라는 점을 공격하고, 경험이나 더 쌓으라며 면박을 주고 어렵게 얻어낸 소대장 직위를 바로 박탈시켜버리죠. 그 결과 대패를 겪으며 폴리아나도 죽을 경험을 했고요.
그러나 운이 좋았던 폴리아나는 그 곳에서 자신의 의지로 강간당하고 죽을 뻔한 상황에서 알몸이 된 채로 뼈가 부러지고 피를 쏟아내면서도 남자 3명과 죽어라 싸우며 절대 지지 않으려고 했고, 그 결과 새로운 왕에게 충성하고 새로운 이름과 인생을 살아갈 기회를 얻죠.
물론 왕이 인정했다고 폴리아나가 다른 기사들에게도 인정을 받았느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새로운 이름을 받고 새로운 군에 몸을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기사는, 심지어 자신보다 어리고 직위도 낮은 애송이에게 대놓고 무시 받기까지 했죠. 단지 여자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나 폴리아나는 지지 않았고,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는 기사도 못 되는 꼬맹이인 도나우의 부랄짝을 걷어차며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하죠. 여자이기 때문에, 혹은 여자로서와 같은 태도를 가지지 않고, 어디까지나 인간대 인간으로, 상관을 무시하는 하급자를 교육시켜주는 묘사입니다.
그 이후 강을 건너 싸워야할 때도 기지를 발휘하며 강을 건널 수 있을만한 곳을 찾았고, 그 곳에선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갑옷과 옷을 훌렁훌렁(물론 알몸까진 아닙니다.) 벗으며 자신이 해야할 일을 수행하죠. 위험한 일이었지만 말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그 동안 개무시해대고 기사만 되면 결투를 신청한다느니 하다 불알이 까여댄 도나우도 생각을 점점 고쳐먹죠. 이때까지만 해도 싸가지 없는 애송이였습니다.
전투 직전엔 다른 기사들과 통성명을 하고, 전투 이후의 승리엔 폴리아나도 여자이긴 하지만, 그래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기사이자 동료가 되었습니다. 그녀도 꽤 뿌듯해하죠. 나중엔 아이노를 제외한 모두에게 동료로 서스럼없이 받아들여지며 거의 벽 없이 지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여자'인 폴리아나가 '남성'의 행동이나 모습 따위를 '모사'하는 등 억지로 따라하는 게 아니라, 그런 성별 따윈 상관 없는 '객관적인 태도'. 즉, 기사로서만 행동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부분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자신이 머리를 빡빡 깍고, 손 마디는 굵으며 몸에 남자만큼은 아니지만 열심히 붙은 근육과 상처와 흉터, 착색된 피부를 가진 여성스럽다곤 절대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여자가 아니었던 적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여성이라는 성별을 가지고 태어나 남자 밖에 없는 군대에서 남자로서의 성역할을 수행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이라는 성별에 열등감을 가지지 않고 여자로서의 자신을 인식하되, 성역할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으며 그저, 단지 기사라는 '직업'으로서의 행동으로 자신을 규율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자신은 여성이니 남성이니 하는 것에 얽매이거나 집착하지 않고 그저 한명의 인간으로서 기사라는 역할에 충실히 수행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모습은 폴리아나를 여성이나 남성이라는 성별로서 규정짓고 구분 짓지 않게 했으며, 모든 기사들과 병사들이 그녀를 전우애와 동질감을 가지는 '같은 기사'로서 대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역시 여자인 건 맞죠. 그녀도 여자인지라, 레비 경과 바우팔로 경이 혼담을 나눌 때 다른 사람에 대한 가쉽으로 왕과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주변 동료가 (진심어린 걱정으로서) 생리나 임신, 결혼 따위를 걱정해주고 조언해주는 모습은 그녀가 스스로 여자로서의 모습을 나타내지는 않지만 모두가 폴리아나를 '여자로서 인식'하긴 한다는 점을 묘사해줍니다.
이는 폴리아나를 (성역할적으로서의) 여성로서 보진 않지만 분명하게 (생리적으로) 여자로서 보고 인식하긴 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게 중요한 것이, 단지 그녀를 여자로서 보지 않고, 쟤는 생긴 것도, 하는 것도 남자니까 여자라는 인식이 없다. 같은 것이 아니라, 여성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어찌됐든 여자이긴 해도, 믿고 지낼 수 있는 같은 기자이자 동료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객관적으로 여자라는 성별로 인식을 한다 뿐이지, 거의 제 3의 성으로 대하고 느낀다는 건 또 별개죠..)
역시 이는 주변 남자들조차 폴리아나의 여자라는 성별을 (이제는) 차별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동등한 인격체이자 동료로서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됩니다. 매우 성평등적인 모습들이죠.
여자로서 모질게 살아왔고, 차별 받고 무시 당하고 조롱 받으며 고생하고 고통 받다 자신을 인정해주고 이해해주며 의지할 수 있고 의지해줄 수 있는 동료들을 만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성별을 싫어하거나 혐오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며, 남자라는 성별에 열등감을 가지고 어줍잖게 따라하려고 들지 않는 직업적으로 객관적인 태도를 가진 폴리아나의 삶의 태도는 매우 페미니즘적이고 그녀를 대하는 이들의 모습은 극히 성평등적이죠.
이런 면에서 볼 때마다 이는 재미있는 작품으로서도, 페미니즘적으로도, 성평등적으로도 훌륭하고 재밌는 작품이라고 평가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가장 길고 자세하게 서술한 거고요.
현재 메갈이니 워마드니 미러링이니 남혐이니 똥을 싸고 있는데, 차라리 성평등이나 페미니즘을 위해선 이런 작품을 보고 부당함이 됐든 이성적 사색과 고찰이든 무언가 느끼는고 얻어내는 게 훨씬 나을 겁니다.
- 추가 설명
작품의 마지막은 굉장히 멋있었다고 할만 합니다. 황제의 기사로서 살다 죽고 싶어했던 폴리아나였고, 3명의 황비와 관계를 주고 받으며, 꼬이고 풀리는 인과는 결코 나쁘지 않았습니다. 여자이지만 여자로서 살 수 없었던 폴리아나였지만, 그 나이에서 황비와의 소통을 통해 여자로서의 생각, 즐거움을 (미욱하나마) 새롭게 깨닫게 되는 부분도 흥미로웠고, 남부의 황비가 아이만 남기고 죽은 부분도 폴리아나가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 중 하나였습니다.
무엇보다 멋있었던 부분은, 토리 황비가 술에 독이 있다는 걸 밝히는 부분이었는 데, 같은 여자이지만 남자에게 순종하며 가장 여자다웠던 토리가 그 불문율을 친우이자 다른 황비를 위해 깨부수고 전면에서 그들 북부 귀족들을 고발하는 부분이었습니다. 토리 또한 폴의 모습을 보고 성장했던 것이고, 폴을 보고 배운 것이었죠. 그러나 토리는 폴과 달랐고, 근위병에게 명령을 내렸으나,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죠. 이런 상황에 당황한 것도 있지만, 토리라는 전통적 여성이 내리는 (성권력적으로) 건방진 명령이었기 때문이라 봅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뭘 보고만 있냐고 일갈하며 황비마마의 명을 받들라고 하자 모두가 지체 없는 움직임으로 죄다 제압해버리고 말죠. 같은 여성이지만 다른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이었으며, 정말 멋있던 명장면이라고 봅니다. 황비의 명령, 황비의 명령을 받드는 폴리아나의 명령이라는 대비적 연계로 매우 훌륭한 연출이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둘 다 황비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죠.
폴리아나는 이 이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의무에 충실하지만 황제의 연심은 계속 깊어만 갑니다. 그러다 폴리아나가 프라우라는 꽃뱀에게 엮이게 되죠. 폴리아나는 그럭저럭 처음으로 여성으로서의 즐거움에 눈을 뜨고 진심으로 결혼할 생각까지 했지만, 결국 프라우가 숨겨놨던 자식을 보고, 그런 자식을 보고 널 꼭 귀족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건방진 소리를 하는 걸 보게 됩니다. 이는 황제의 명령에 따라 정보부, 도나우와 하우 형제가 조사하고 말한 이야기를 듣고 룩소스가 폴을 데려가 그 꼴을 보여줬던 거죠.
이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며 길게 말하진 않겠지만, 그 결과 여성으로서의 즐거움마저 배신을 당한 폴리아나였습니다. 결국 결혼 따위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게 되죠. 그러나 황제의 생각은 다른 데, 이때부터 이야기할 게 나옵니다. 아 물론 이때 사고치고 황제의 자식을 배게 되지만..
황제는 노력가입니다. 폴리아나는 살면서 죽어라 노력했고, 정말로 죽기 직전까지 간 적도 있을 정도로 노력했던 인물입니다. 인생 자체가 여성으로서의 한계와 싸운 삶이고, 그런 싸움을 통해 노력하며 생존했던 노력가이죠. 즉, 폴리아나는 여자라는 한계 속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하고 노력하며 살아왔던 인물입니다. 황제 또한 노력가이지만, 투쟁이란 삶의 무게에 있어 황제의 노력과 폴리아나의 노력은 그 무게가 다릅니다.
노력가를 좋아하고 본인 또한 노력하길 좋아했던 황제이기 때문에 이젠 자신이 폴리아나만큼의 노력을 해야 했다는 겁니다. 폴이 죽을 만큼 노력했듯이, 본인 또한 폴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죽어라 노력했어야 했죠. 이에 대해 사고치고 생긴 아이가 가장 큰 변수였습니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아이가 생겼다는 걸 안 폴은 자신의 영지로 들어가 1년에 가까운 휴가를 보냅니다. 그 와중에 출산을 하죠. 그리고 황제가 대륙 순방을 하다 폴의 영지에 들러서 결국 자신의 아이를 확인하게 되는데, 이때 룩소스의 입장과 폴리아나의 입장이 아주 크게 갈립니다. 이때 룩소스는 결국 폴이 자신과 결혼해야 할 거라는 사실에 크게 들뜬 상태나 마찬가지였죠. 그래서 폴리아나의 생각과 입장을 고려하지 못하고, 그 상황에서 청혼을 해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폴리아나에게 있어서 결혼은 가장 큰 행복과 가치가 아니었고, 자신은 평생 폐하의 기사인데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배신감마저 느낍니다. 스스로가 생각하듯, 전쟁 때 나온 온갖 욕이 그저 욕이 아닌 사실이 되어버린다는 것과, 자신이 그런 잡스러운 여자가 되어버렸다는 점, 또한 더 이상 폐하의 기사일 수 없게 만들어버린 룩소스에게 배신을 당한 것과 같은 거죠.
스스로 노력하고 선택한 삶이었고, 자신의 군주에게 하사 받은 천금보다 귀한 성씨였는데, 이걸 믿었던, 그리고 충성을 다 받쳤던 그 본인에게 빼앗기고 부정당한 겁니다. 폴리아나의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이 되어버린 거였죠. 그대로 결혼하게 되면 자신이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긴 윈터라는 성을 포기해야 했고, 기사로서 살았던 삶과, 기사로서 살아야할 삶 모두 사라져버리고 무가치한 것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폴은 배신을 당한 것이고, 슬프고 괴롭고 고통스러워 울었던 거죠.
결국 결혼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 고민이 오갔고, 결국 폴리아나는 선택하고 맙니다. 이 부분이 정말 멋진 최후반부의 명장면이죠. 폴리아나는 자신의 정체성이자 인생인 기사의 갑옷으로 무장하고 황궁으로 스스로 찾아갑니다. 그리고 선언하죠. 자신은 언제까지나 폐하의 기사일 것이라고. 이는 폴리아나의 스스로 선택한 운명이며, 온전한 자신의 의지입니다. 어떤 사회적 통념, 권력관계, 정치적 계산, 성권력 관계와 무관한 그런 선택이자 의지였죠. 나는 황제폐하 당신과 결혼하지 않고 기사로서 남을 것이라는 의지.
모두 놀라지만 황제는 이때 마음을 굳건히 먹고 폴의 의지와 선택을 존중하며 인정하고 돌려보냅니다. 그리고 본인의 굳은 결심을 모두에게 선언하듯 내뱉습니다. 이제 나는 폭군이 될 것이라고. 그러니 욕해도 되고, 심지어 아이노에겐 자신을 죽여도 된다고 하죠. 그렇게 무겁고 살벌한 분위기가 돌지만 아이노는 폴에게 빚이 있으니 (연애운..) 봐준다고 하고 충성을 바치겠다고 무릎 꿇고 다시 한번 선언하죠.
그 뒤 황궁은 상황이 달라지게 됩니다. 폴리아나는 몇년 뒤 자란 두 아이를 기르며 편안히 지냅니다. 여전히 그녀는 황제의 기사이고 윈터이죠. 그리고 도나우의 제안에 밖으로 놀러 나갑니다. 그리고 만나죠. 자신의 주군, 자신의 모든 것, 자신의 운명과 성을 내려준 황제를.
황제는 노력가입니다. 폴리아나도 노력가죠. 폴리아나는 생존이라는 기치로 노력을 했다면, 이번엔 황제의 노력은 그런 여자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황제는 폴리아나의 준엄한 선언 이후 황궁과 제국의 모든 인텔리들을 모읍니다. 머리 좀 돌아간다 하면 기사라도 붙들어와 일을 시켰죠. 사촌형제도 마찬가지고 일을 시킬 수 있는 이들이라면 어떻게든 끌고와 일을 시켰습니다. 그게 바로 황제 본인이 말한 폭군이 되겠다는 말이었죠.
그렇게 황제는 대륙의 법을 뜯어 고쳤습니다. 상속법 정도만 고치려고 했지만 해보니 이것저것 충돌하고 수정해야할 것이 많아져서 몇년 동안 미친듯이 일하고, 굴리며 대륙의 법을 뜯어고칩니다. 그에게 이런 노력은 폴리아나와 같은 투쟁이었습니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 결혼하지 않겠다 선언한 기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불가능한 노력.
그렇게 완성한 엄청난 두께의 법전을 내려놓으며 황제는 폴리아나에게 다시 한번 청혼합니다. 이번엔 다르게.
그리고 폴리아나는 그런 황제의 노력과 진심을 확인하고 외칩니다. 그 전쟁의 한 겨울에 벌거벗고 외쳤던 그 말. 누가 나에게 검을 다오! 이번엔 상황이 달랐습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도나우, 하우, 비카 가문 등 자신이 알고 지냈던 모든 지인들이 달려와 자신의 검을 선택해달라고 하죠. 폴리아나를 중심으로 피어난 검의 꽃잎에 둘러 쌓인 폴리아나는 가장 처음, 그리고 가장 깊이 인연을 맺었던 도나우 경의 검을 선택하고 황제의 청혼을 승낙합니다. 그렇게 대륙의 역사를 또 한번 써야 했죠.
생각보다 훌륭한 결말이었습니다. 솔직히 폴리아나라는 인물에 대해 이해할 수록 룩소스와의 결혼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말이라면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대륙의 첫 황제가 총애를 아끼지 않았던 여기사라는 특수한 존재, 그리고 그런 특수한 존재를 위해 대륙의 법을 전부 뜯어고칠 정도의 노력, 그런 노력의 결과 결혼에 성공.
원래 여성과의 결혼은 남성에게 결정권이 있고, 그게 다른 사람도 아닌 대륙의 황제라면 누군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막말로 그냥 결혼하자고 명하면 그대로 따라야 했죠. 하지만 그런 황제가, 자신이 연모하는 여성을 위해 노력을 해야 했습니다. 이는 폴리아나를 여성으로 봄과 동시에 하나의 주체적 인간으로 봤다는 말이 됩니다. 작품 속 세계관의 사랑, 연애, 결혼관념과는 완벽히 다른 현대적이고 주체적인 사랑에 대한 노력과 결혼에 대한 관념이죠.
폴리아나는 여성입니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결혼에 있어서 더욱 적극적이지만, 그만큼 그의 의지에 끌려가는 것은 여성이죠. 아이노 경의 경우, 노력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정치권력과 성권력을 바탕으로 시켈을 가져온 것에 가깝습니다. 그나마 잘 풀려서 그렇지, 아이노의 원래 계획은 그냥 시켈을 정치권력과 성권력으로 그냥 강제로 결혼해버리자는 개싸이코 같은(현대적 관점에서;;) 계획이었죠.
하지만 폴리아나와 룩소스의 관계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폴리아나는 여성이었지만, 어떠한 권력관계도 개입하지 않았고 정치적 계산 또한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단지 인간대 인간으로,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을 얻고자한 남성의 노력과 그 노력의 결과에 승낙한 여자이자 인간인 폴리아나가 있었죠. 즉, 동등한 관계로서 노력하고 쟁취해낸 결과였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결말마저도 페미니즘적으로 훌륭했고, 작품적으로도 훌륭했다는 평가를 주기 전혀 아깝지 않은 작품인 것이고요. 로맨스 소설로 추천해야 한다면, 전 주저 없이 이 작품을 가장 먼저 추천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뛰어나고 훌륭했던 작품이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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