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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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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윌리엄 다아시'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8.03.10
    주체적이고 선진적인 작품. 오만과 편견 리뷰.


※ 본 리뷰는 작품에 대한 내용누설이 있습니다. 


오만과 편견을 읽은지 꽤 되서 내용이 아주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과연 걸작이라 칭송 받는 고전 연애소설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기억에 남습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여겨졌던 것은 작품 내의 등장인물과 사건보다는, 그것을 쓰는 필체에 있었습니다. 산문이기에 자유롭게 쓰여진 오만과 편견은, 개인적으로 어떤 면에선 감춤 없이 서술되는 표현에서 고전적인 맛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도 세련되었고 내용적으로는 그런 필체이기에 정확하고 잘 짚어낸 심리와 행동을 독자로 하여금 쉽게 이해토록 하며, 잘 구성된 짜임새의 작품으로서 어째서 200년도 전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오랜 기간 전세계 다양한 독자들에게 후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는지 알만하게 했죠.


가장 구체적으로 그러한 고전적인 맛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은, 뭐 이건 번역의 차이이긴 하지만 ~~의 좋은 점을 나열했다. 같은 식의, 허례적인 표현들은 읽으면서 당시 사회 상류층과 젠트리들의 허례적인 태도를 느끼게 해주는 아주 좋은 요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비단 번역(Good Thing; 좋은 점)이 저랬기 때문만은 아니지만, 뭔가 초등학생 애들이나 할 법한 표현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게 그들의 허례적인 가치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뭐 어찌됐든, 소설을 읽으면서 그래도 고전 소설은 고전 소설이기 때문에 현대적 가치관과 맞지 않는 부분들이 꽤 보였습니다. 결혼에 대한 의식과 가치관이 그렇지요. 다만 그렇기 때문에 제인 오스틴이 얼마나 선진적인 작품을 썼는지, 그러한 여성을 묘사했는지 잘 보여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남성들에게도 마찬가지였지만, 여성들에게도 결혼이란 전통적인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좋은 남자 잡아서 결혼해야만 하는 것이며, 여기에 있어서 정조나 처녀성과 같은 위신과 명예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자 하나의 자산가치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 속 샬럿 루카스와 같은 여성은, 나름 현명한 편일진 몰라도, 자신의 못난 외모 때문인지 결혼에 대한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윌리엄 콜린스와 결혼해버립니다.


이는 그 당시의 좋은 결혼상대의 조건인 재산과 지위, 평판을 기준으로 하였고, 교구목사로서 높은 사회적 지위와 많은 재산, 더욱이 앞으로도 많은 돈을 상속 받을 가능성 등을 조건으로 하여, 루카스양에겐 최고의 결혼 대상으로 보였고, 그것을 이유로 그와 결혼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 작품의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베넷은 샬럿에게 실망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고--물론 그 이전에 콜린스가 자신에게 청혼했다는 점과 더불어 나름 충격을 받았지만-- 현명한 대화상대를 잃고 싶지도 않으며, 좋은 친구와 데면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샬럿에 대한 감정을 금방 털어냅니다. 사실, 객관적으로 본인이 그에 대해 나쁘게 생각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죠. 본인 스스로도 그런 남자와 결혼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 실망한 것이지 그 외의 조건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들이었으니까요.


이는 주인공 리지 베넷의 현명하고 주체적인 균형의식과 높은 판단력을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뭐 각각의 등장인물에 대해 논하자고 한다면 너무 무의미한 지면을 할애해야되고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고, 작품의 제목이 되는 오만과 편견은 참으로 중심적이다 싶은데, 애초에 그렇게 쓴 것이지만 엘리자베스 베넷의 편견과 피츠윌리엄 다아시의 오만으로 대표되는 그들의 결점과 특성을 그대로 서술한 것이 작품의 제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진부한 제목이지만, 반대로 작품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훌륭한 제목이지 싶기도 하네요.



리지와 다아시가 처음 만나는 빙리의 파티에서 다아시의 첫인상은 정말 안 좋았죠. 오만하고 재수없는 태도는 마치 속 좁고 찌질하다는 듯한 인상마저도 줍니다. 상류층으로서 오만하고 자신과 격이 맞지 않는 이들을 깔보고 폄하하는 듯한 그의 태도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굉장히 누구에게든 안 좋은 첫인상으로 시작하게 되죠.


하지만 이는 사실인 동시에 첫인상의 오류를 내포하는 시작이기도 합니다. 리지 베넷은 그런 다아시의 모습을 보고 거기에서 편견이 시작되거든요. 그런 편견은 다아시가 고백을 하는 시점까지 꾸준히 이어졌고, 다아시의 오만함이 리지를 평가절하하기 위해 관찰하면서 점점 무뎌지고 깍여나가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어버리는 과정에서 오만함이라는 단점 요소가 사라지는 원인이 될 때에도, 그러한 다아시의 관심과 관찰이 역으로 리지에겐 자신의 편견을 강화하며 다아시의 모든 행동이 타인을 깍아내리고 비난하기 위한 행동일 것이다. 라고 여기며 다아시를 공격합니다.


원래라면 기분 나쁠 법도한 태도이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그것마저도 받아주는 이유가 되죠. 캐롤라인이 옆에서 다아시의 관심과 사랑을 끌어오기 위해 뻘짓거리를 할 때에도 그녀를 무시했지만 리지에겐 꾸준한 관심과 관용, 인내를 발휘했습니다.



그러다 다아시가 자신의 타는 듯한 감정을 참지 못하고 리지에게 고백하는 장면은 전기 부분과 후기 부분의 전개를 뒤바꾸는 작품의 중심적인 시점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때의 대화도 참 재미있죠. 다아시는 자신의 고백을 리지가 당연히 받아들일 것이라는 오만함을 버리지 못했고, 리지는 기존의 편견대로 다아시를 공격합니다.


왜 이 부분이 재밌냐면, 이러한 서로간의 태도에 오만과 편견이 묻어 있기 때문인 동시에, 그러한 가혹한 경험에 감정적으로 매몰되지 않고 현명하고 침착한 지성을 발휘하여 스스로와 타인을 성찰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정말로 배울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지의 감정적 우월감에 도취되는 비난 행위에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도, 다아시 또한 그러한 가멸찬 비난에도 분노와 수치를 느끼지 않고 차분한 상태에서 신사로서의 의무를 발휘하여 자신의 생각과 사실을 적어 설명하고 설득하고자 하는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 말입니다.


리지는 이에 자신의 생각이 틀렸고 다아시가 생각보다 뛰어난 인품과 지성을 겸비한 사람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사랑은 시작되어 버리죠. 그 동안 가진 편견에 따른 반감의 반동으로 그에 대한 진심과 가치를 깨닫게 된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에 대한 조심스럽고도 뜨거운 감정을 가집니다. 다아시 역시도 그러한 경험을 겪었음에도 리지에 대한 감정이 변치 않고, 되려 할 수 있는 지원과 희생을 스스로 감수하면서까지 다가가려고 하고요.


제인-빙리의 결혼은 전통적 결혼관의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예시라면, 위컴-리디아의 결혼은 전통적 결혼관의 가장 저열하고 천박한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지-다아시의 결혼은 이러한 각기 다른 방향의, 그러나 같은 전통적 가치관의 결혼 사례를 앞에 두고 이루어지는 새로운 사례입니다.


결혼 대상의 외면적 가치인 재산과 외모, 평판, 지위보다는 애정과 존중, 신뢰와 공감이라는 내면적 가치를 중시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서로를 사모하고 결혼하게 되었으니까요. 당시 기준으로, 그러한 외면적 가치가 중심적인 이유로 기능하고, 내면적 가치는 서로 결혼한 뒤 저절로 생기고 가지게 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만큼, 리지와 다아시의 관계를 그만큼 선진적이고 진보적인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다아시의 오만이었던, 귀족 상류층으로서 자신과 격이 맞지 않고, 그 가족들의 천박함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이로선 과감한 결정이었고, 젠트리 계급으로서 내면적 지성과 통찰을 최고 규범으로 여기는 엘리자베스의 반지성적 편견이 깨지고 저열하다 여겼던 다아시의 진면목을 보며 선택한 달성적 결정은 그 당시 보편적 결혼관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다아시의 그러한 떨어지는 집안의 여식을 배우자로 삼는 것도 파격적이었고, 높은 사회적 지위와 평판, 재산을 보유하여 자신의 미래를 보장해줄 수 있는 남편감에 대해서도, 실리적이었던 루카스양과는 다른, 가치관이 맞지 않아 존경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한 것은 역시 굉장히 파격적이었습니다. 


사회가 중요시하고 인정하는 조건을 거부하고 자신의 내면적 가치에 걸맞는 이를 인정하고자 하는 태도, 그리고 그러한 태도를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명하며 납득시키고자 하는 여 주인공은 200년전 그 시대를 기준으로 과감한 것을 넘은 파격 그 자체였으며, 흔치 않은 캐릭터성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캐릭터성과 전개는 흔해 빠진 두 남녀의 갈등과 성장, 반성과 사랑으로 이어지는 틀과는 또 다른 내면적 가치의 교훈을 남기며, 당시 뭇 여성들에게 제시한 새로운 가치관의 전달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지금도 흔해 빠진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는 많지만, 이렇게 주체적이고 발전적인 여성상을 그린 작품은 의외로 많지 않다는 점을 본다면 이 작품이 가지는 가치과, 품는 가치는 2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전세계적으로 많은 인정을 받은 이유가 있다는 것을 납득하게 해줄 수 밖에 없죠.


사랑이라는 만고의 보편성을 지닌 진리를 장르로 하였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담았기 때문에 명작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시대를 뛰어넘는 재미는 그것이 시대를 뛰어넘는 가치를 담았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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