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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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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작품에 대한 내용누설이 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쓰는 리뷰네요. 그동안 본 작품들이야 많았지만 게으른 것도 있고, 쓸 정도는 아닌 작품들도 있고 해서 안 썼다, 최근 완결까지 본 바바리안 퀘스트는 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이 소설의 초반부는 큰 흥미를 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모든 교과서적인 서사를 지닌 작품들의 초반부는 중후반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밋밋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고요. 이는 심지어 무한의 마법사의 극초반부에 있어서 큰 흥미를 끌지 못하거나 심지어 작품 특유의 의도적인 불쾌감을 주는 부분 때문에 더더욱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부분을 지나간다면 작품은 독자를 끌고 갑니다. 주인공 유릭과 그 주변인들은 살아 있는 욕구와 감성을 가지고 움직이며, 그것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죠. 백수귀족 작가의 전작이었던 킬 더 드래곤에서처럼 담담하면서도 진한 인간미가 드러나는 필체는 상당히 매력적이기도 하고요.

 

 

주인공 유릭은 서부의 야만인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사람과도 달랐죠. 괴력을 타고난 강력하고 뛰어난 전사이자 사냥꾼이라는 점부터 시작해서 상당한 지성을 지닌, 타고난 영웅의 기재입니다. 그러나 그의 기질은 탐험가에 있지 전사에 있지 않았죠. 이 부분은 조금 엄밀하게 이야기해야 할텐데, 모든 뛰어난 탐험가는 뛰어난 전사적 기질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전사는 적과 싸우는 존재이고, 적과 대적하여 이겨내는 자를 말합니다. 대개의 경우 전사라 함은 다른 전사, 병사, 집단 등 사람과 싸우는 자를 상정하지만, 탐험가에게 적이란 자기 앞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을 말합니다. 때로 그것은 칼과 창을 든 사람일 수도 있고, 귀족일 수도 있고, 제국이나 문명사회 그 자체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동료와 친구, 은인, 자식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지의 자연 그 자체가 적이 되어야 하죠. 탐험가란 알지 못하는 새로운 곳을 알고자 하는 이들이며, 그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는 언제나 위협적인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겁먹지 않고 마땅히 한 발자국을 내딛을 수 있는 용기와, 그러한 미지의 존재와의 싸움에서 살아남고 이겨나가는 강인한 육체와 정신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상처를 입어도 살아남고, 어떠한 적과 맞서도 이겨내며, 끝끝내 제국을 무너뜨리고 문명사회에 거대한 충격과 새로운 세계관을 이끌어낸 유릭은 세계관 최강의 전사이자, 그러한 기풍을 인간에게 돌리지 않고 죽을 때까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것, 미지의 장막 너머, 낯선 세계에 쏟으며 어린 시절에 그랬듯, 가슴이 뛸 줄 아는 사내입니다.

 

만약 그가 전사이기만 했다면 문명 사회는 끔찍한 꼴을 당했겠죠. 문명 사회를 크게 퇴보시키는 멸망의 존재가 될 것이고, 악마의 이름으로 전승이 될 것이며, 뛰어난 지성과 예술, 기술과 인격이 존재했던 아름다운 세상을 스스로의 손으로 멸하는 자가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죠. 그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즐거워 했고, 타고난 호기심으로 모르는 것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배우고, 또 글을 배우며 익히고 받아들였죠. 익히고 배우는 것. 지성인의 가장 기본적인 태도이자 가장 중요한 핵심. 유릭의 지성에 대해서는 작중 캐릭터들이 수 차례 놀라고 인정한 요소이죠.

 

그렇기 때문에 유릭은 문명인들이 이룩한 위업을 진심으로 경탄할 줄 알았습니다. 그저 빼앗고 부수고 약탈하기만을 즐겼던 그 어떤 서부의 야만인과는 다르게요. 그리고 그의 선택 덕에 문명은 자신이 이끌고온 서부의 약탈자들, 연맹에게 파괴 되었지만, 동시에 보호될 수 있었습니다.

 

예술에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자에게 모나리자나 최후의 만찬, 아테네 학당을 보여준다 해도 그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그저 땔감으로 쓰면 족할 화려한 장작일 뿐이죠. 하지만 그것을 보고 아름답다는 감각을 느끼고, 그 미학에 인간 예술의 거대한 위대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지고의 예술이 됩니다.

 

유릭은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지요. 제국 수도 하멜의 위대한 건축물과 예술에 진정 감탄할 줄 알았기에 하멜을 공격하면서도 약탈을 제약하고, 다시 적극적으로 재건하는 것은 민심이 아닌 자신의 욕구에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천 위에 얼룩진 색채에 의미는 담고, 감정의 움직임을 느끼는 사람에게 그것은 중요하고 소중한 무언가가 되기 마련이니까요. 설령 그것이 단순히 모래를 쌓아 만든 모래탑이라 할 지라도, 그것에 만족한다면 그것이 부숴지지 않고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럼에도 그는 탐험가였고, 의도적으로 연맹을 약화시킨 후 사라졌습니다. 마치 이야기 속 영웅처럼. 전설처럼, 또 신화처럼.

 

탐험가. 모험가. 그것이 유릭의 정체성이었기에 자신의 생존이 어떠한 의미를 지닐 지 알면서도 그것을 감추며 남부를 여행하고, 또 다시 동부로 가게 됐습니다. 친우를 만날 겸, 자식도 보게 될지 몰라서, 무엇보다 바다 너머를 가기 위해. 동대륙이란 이름은 20년 전부터 그의 마음 속에 새겨진 미래의 계획, 혹은 추구였죠. 그에게 세상은 여전히 넓었고, 여전히 가슴 뛰는 모험이 존재한다는 것을 새겨준.

 

 

유릭은 금기는 범한 자입니다. 하늘산맥은 서부인에게 금기였죠. 감히 그것을 넘지 말라는 공통된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태생적인 탐험가인 유릭은 그 너머를 원했습니다. 비록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했던 것은 아니지만 제국의 탐험가이자 기사에 의해 하늘산맥을 넘는 지점에서 유릭은 그들을 죽이고 바라봤습니다.

 

고향의 땅. 그리고 금기 너머 미지의 땅. 서부의 어떤 자라도, 심지어 지즐조차도 전통과 금기를 함부로 범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유릭은 과감히 그것을 넘어버렸죠. 호기심이라는 천성을 그가 하늘산맥이라는 금기를 아무렇지 않게 넘는 이유가 됩니다. 그에게 미지란 도전의 대상이지 두려움의 대상은 아니었으니까. 그가 가장 위대한 이유는 시작과 동시에 제시되죠. 절대와 같은 금기를 자신의 의지로 극복하는 것.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를 제시하는 것. 더 나아가 그것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에 대해서까지.

 

 

유릭의 주변 사람들도 생동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기실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그렇죠. 주인공의 동료들이 잘못되길 바라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 작품에서 동료들이란 그저 잠시 함께 하는 자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작품의 정체성 그 자체를 드러내는 서술이기 때문인데, 유릭이라는 주인공 자체가 이방인입니다. 서부의 야만인으로 금기로 여겨진 하늘 산맥을 넘고 문명 사회에 진입한 이방인이죠.

 

이방인은 그 이름이 바뀌지 않는 한 언제나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뿌리 내릴 수 없죠. 부평초처럼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듯, 그는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하며, 또 이별합니다. 유릭의 형제들과 지낸 시기는 결코 짧지 않을 테지만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위해 기꺼이 형제들을 떠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에게 주어진 많은 것들, 작위나 땅. 부귀영화조차도 그가 원하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그것이 얼마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안전하게 하며, 안락하게 할 수 있다 하여도 유릭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더 추구했기에 미련 없이 버릴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얻은 것이되, 자신의 것이 아니었기에 미련을 가질 이유가 없었죠. 자기 자신에 순수한 자. 천성이죠.

 

탐험가는 언제나 새로운 곳을 보기 위해 떠나는 사람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설득력을 얻습니다. 서부를 떠나고, 포를카나와 용병단을 떠나고, 제국을 떠나고, 북부를 떠나고, 다시 서부로 돌아와 제국을 멸망시켰음에도 다시 떠났죠. 그렇게 떠나고 또 떠나오는 삶은 힘겨울만도 하지만 오히려 즐거웠을 겁니다.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우고 익히고 접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종류의 인간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피붙이와 친우를 두고도 죽을 지 모르는 바다로 나갔습니다. 전혀 모르는 새로운 것. 동대륙을 향해서.

 

그는 진정 뿌리 내릴 수 없는 사람입니다. 태생이 그러했죠. 부모 없이 들판에서 주워진 아이. 부모라는 뿌리부터 없었습니다.

 

 

작품 내에선 여러 영웅적인 인물들이 나옵니다. 유릭을 제외하고도 바르카, 다미아, 얀키누스, 사미칸, 벨루아, 페르젠.

 

이 중에서 벨루아나 다이마는 조금 쳐진다 해도 나머지 인물들은 꽤 영웅적인 인물입니다. 그들의 성과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천성이 그러합니다. 바르카는 왕실에서 오냐오냐 하며 컸기 때문에 건방지고 우둔했지만 유릭과 만나고 필리온 경의 죽음을 겪으며 어린 모습을 버리게 되며 왕의 자질을 얻습니다.

 

사실 바르카는 꽤 비판을 받을만한 캐릭터이긴 합니다. 다미아와 함께 일단 넘어가고..

 

얀키누스는 황제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황제로 태어났기에 수많은 사람들의 당연한 기대를 받아야만 했죠. 나는 그걸 할 수 없는데 당연히 할 줄 알아야 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할 수 있게 되어야 했습니다. 그건 단순히 노력을 하느냐와 다르게, 그냥 그렇게 해야 했기에 하게 되어야 하는 것에 가까웠을 겁니다.

 

모든 것은 상속 받은 채 태어났기에 부족함도, 모자람도 없는 세계의 지배자였으나 바로 그것이 얀키누스의 갈증을 만들었습니다. 내가 스스로 얻은 게 없다는 것. 모든 것이 상속 받은 것이지 내 손으로 이룬 것이 없다는 잔혹한 갈증. 그는 정복자의 핏줄을 타고났고, 정복할 것이 필요한 침략자의 자질과 그것을 다루는 통치자의 자질을 물려 받았습니다. 그의 정치력과 판단력은 부족한 편이 아닙니다. 오히려 뛰어난 편이죠.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는 서부를, 그리고 동대륙을 정복하고자 했습니다. 단순히 교류를 하는 게 아니라 필요 없는 싸움을 벌이고, 무가치한 땅을 정복하며, 죽을 이유 없이 피를 흘리게끔 하며 자신의 위업을 만들어내고 싶어 했습니다. 모든 걸 다 가졌으나 업적에 목마른 자. 그게 얀키누스였죠.

 

그런 그를 역겹다고도 할 수 있고 멍청하다고도 할 수 있으며, 애처럼 군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의 본질인 것은 어쩔 수 없죠. 탐험가에게 언제나 새로운 곳을 필요로 하듯, 정복자는 언제나 장복할 것을 필요로 했습니다. 유릭과 얀키누스는 이러한 면에서 비슷한 사람이었죠. 단지 탐험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미지를 대하는 지, 아니면 정복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미지를 대하는 지에 대한 태도 차이일 뿐입니다.

 

만약 유릭이 얀키누스로 태어났다면 그는 군사력이 아닌 탐험가를 동원하여, 어쩌면 스스로 탐험가가 되어 하늘산맥을 넘고 그곳에서 서부의 야만인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며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익히려 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얀키누스가 서부에서 태어났다면 사미칸의 이름을 대신 했을 것이고요.

 

그럼에도 그는 황제였습니다. 자신이 실패하고 모든 것이 영락하며, 가장 추잡하고 수치스러운 꼴을 당하고서도 생을 갈구하며 승자의 권리를 충실히 지켰죠. 승자로서 자신에 대한 생사여탈권은 물론, 어떻게 망가뜨리고 수치를 주고 조롱하는 것조차 패자가 살아 있을 때나 의미가 있으니까요. 그는 생존으로서 유릭의 권리를 지켜냈습니다. 계약을 중요시 하는 문명사회의 푸른 피다운 태도라면 태도였죠.

 

그렇다고 증오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실패는 자신에게 있지 승자에게 있지 않으니까요. 그들은 싸웠고, 생존의 문제에 있어 규칙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이기느냐 지느냐, 누가 이겼는가. 얀키누스는 패배자였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건 감정의 영역이 아니라 사실의 영역이었죠. 그렇기에 그는 최후의 식사에서도 유릭을 증오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도리어 당당하게 식사를 하고 오랜만에 제대로된 식사였음이라 감사를 전합니다.

 

실패하였고, 인격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는 실로 지배자였습니다.

 

 

페르젠은 재밌는 캐릭터입니다. 문명 사회를 대표하는 전사이자 기사인 동시에, 전설 그 자체가 된 사람입니다. 평생을 루의 품에서 살아왔음에도, 스스로 전사였기에 전사를 좋아하지 않는 루의 품을 떠나 자신이 무수히 죽이고 정복했던 북부의 울가로를 믿었습니다. 유릭과 비슷한 면이 있죠. 단지 기사적인 인물이었을 뿐.

 

뛰어난 통찰력, 늙었지만 날카로운 검술과 실전적인 수법들. 살아온 세월만큼 그의 인생에 새겨진 것들은 모두 그의 무기이자 명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루는 전사를 좋아하지 않고, 그는 오래 사는 것으로 형벌을 받고 있었죠. 이미 죽어야 할 나이였음에도 그저 늙고 병들고 기량이 쇠해지면서 전사로서도, 기사로서도 추락해가는 삶을 사는 것으로요.

 

그는 마지막 전장에서 전사로서 죽고 싶어했지만 그의 위치가 감히 그러지 못하게끔 했습니다. 그와 싸워서 이길 적도 없었고, 하찮은 화살에 맞아 죽기에 그는 너무 거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을 죽일 사람을 골라야 했죠. 인정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면서도, 자신을 죽이는데 거리낌이 없어야 하며, 무엇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법한 사람.

 

유릭이었습니다. 북부에서의 많은 경험을 가진 페르젠은 자연스럽게 유릭이 북부 출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챕니다. 남부의 인종과도 다르다면 남는 건 서부일 수밖에 없죠. 그리고 페르젠은 과감히 그가 서부 출신일 것이라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음을 유릭에게 넌지시 알리며 죽이기 위한 이유를 만들어주죠.

 

그리고 싸웁니다. 당연히 늙고 쇠한 페르젠은 유릭을 감히 감당할 수 없고, 죽게 됩니다. 그의 유언은 울가로여..

 

유릭은 크게 놀랍니다. 평생을 북부와 싸워온 기사이자 영웅이 정작 루가 아닌 울가로를 믿었다고요. 하늘 산맥을 넘어 조상의 영혼이, 자신의 영혼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번뇌를 가진 유릭은 그때 페르젠의 개종 사실을 알게 되고 루에게 의탁한 자신의 영혼을 되돌려 받습니다. 그저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그 두려움에 믿었던 루였고, 그것은 나약한 도피에 불과했으니까요.

 

울가로의 환영은 단지 그러한 번뇌의 발로였을 뿐..

 

 

사미칸과 벨루아는 서부의 영웅이라 칭해도 부족함 없는 사람입니다. 물론 벨루아가 조금 쳐지죠. 여성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지만 애초에 기질 자체가 지배자나 통치자가 아닌 대장장이에 가깝습니다. 유릭과 얀키누스, 페르젠, 사미칸과 벨루아는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공유하는 교집합과 서로 다른 곳에 방점이 찍혀 있죠.

 

사미칸은 타고난 정치가였습니다. 통치자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하지만 그의 정치력은 타고난 영역에 가깝고, 수많은 사람과 부족들을 파악하고 조율하는데 능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누군가를 견제하고 밀어낼 수 있고, 자신의 품에 담을 수 있는지. 한번도 거대한 체계를 이룩한 적 없는 서부에서 구전으로만 남는 역사를 지니는 지역의 출신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역량이었죠.

 

하지만 바로 그런 정치가로서의 기질이 그를 실패하게끔 만들었습니다. 그 역시 약한 자는 아니었지만 유릭이었다면 죽지 않을만한 상처와 싸움 속에서 그는 상처 입고 약해졌으며, 무엇보다 거대한 욕심이 그를 죽게 만들었죠. 모든 정치인들이 그렇듯이 그 역시 자신만의 업적, 성과를 위해 타인의 목숨을 희생시킬 줄 알았습니다.

 

그는 전설이 되고 싶어했고 그것을 위해 승산 없는, 혹은 도박에 가까운 공격을 실행하려 했습니다. 유릭은 언제나 부족과 동포만을 생각했고, 그 이상으로 권력이나 지배자를 원하지 않았으며, 탐험과 모험에 더 타오르는 남자였음에도 사미칸은 단지 그가 그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견제했죠. 형제의 맹세를 했음에도 그는 유릭을 형제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정치인에게 쇼맨쉽을 중요하고 말은 어디까지나 말 뿐이었으니까요.

 

만약 그가 유릭을 죽여도 됐다면 죽였을 겁니다. 그러기에 너무 아까웠을 뿐이지. 그럴 수 없었기에 죽이지 못했을 따름입니다.

 

스스로 병 들어 죽기 전에 제국을 친다는 도박을 할 때에도, 유릭과 정당하게 싸우는 대신 그에게 치사량에 가까운 독을 쓰고 유릭이 자신을 먼저 공격하지 못해도 자신은 그럴 수 있다는 걸 알았죠. 그의 정치적 역량과 사고의 유연성은 확실히 여느 문명인 귀족, 왕족과 비교해서도 부족함은 없었다고 평가합니다. 단지 그 정치적 기질, 집단의 생존과 번영보다 자신의 명예와 영광, 업적을 탐하는 자세 역시 부족함이 없었을 뿐이죠.

 

그가 더 오래 살았다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었겠지만, 단일화되지 못한 권위(유릭-사미칸)으로 꾸준한 분열과 갈등이 있었을 것이고, 만약 정말 하멜을 치겠다고 했다면 그건 성공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장창부대는 중기병에게 상당한 피해를 강요하는 새로운 전술이었지만 그럼에도 수적 차이와 전략 전술의 격차, 강력한 성벽을 지닌 공성전이라는 열세를 넘기는 어렵죠.

 

그래서 사미칸 본인부터가 하멜을 정복한다가 아니라, 제국의 심장을 친 야만인이라는 명성을 상상했던 것이고요. 이는 모든 동포를 위해 다시 하늘산맥을 넘고, 전쟁을 준비했으며, 가장 중요한 순간들을 이끌었던 유릭의 방향성과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포를 위해 하는 짓인데 그 동포들을 다 죽여버릴 셈이냐며.

 

 

구조적으로 봤을 때 사미칸과 벨루아의 역할은 명확합니다. 처음 서부를 통합할 때는 3강 구도를 만들어 바위도끼 부족과 푸른안개 부족의 충돌을 방지하는 세력 구도를 만들고, 이후엔 벨루아의 약점인 여성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사미칸과 유릭의 1:1:0.5의 구도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벨루아는 자신의 주도권을 잃는 상황에 몰아넣어 그것을 타개할만한 계책을 발휘해야 했고, 처음에는 유릭에게, 그 이후에는 사미칸에게 붙었습니다.

 

결혼 동맹을 통해서요. 이건 단지 작품적으로 필요하기 때문 어거지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럴 수밖에 없게끔 상황을 이끌어간 겁니다. 자연스럽고 당연하게요. 작품적 필요로 이러한 캐릭터를 만들고 구도를 만들었지만, 캐릭터의 필요와 합치되게끔 하여 설득력을 확보한 셈입니다. 뛰어난 작가는 이러한 서술이 아주 매끄럽고 자연스럽죠.

 

반면 사미칸은 유릭과의 경쟁 구도에서 반드시 탈락할 수밖에 없는 작품적 운명을 부여 받았으나 벨루아는 살짝 밀려 있었고, 임신을 이유로 중간에 이탈하게 되면서 끝까지 남을 수 있었습니다. 작품적으로는 벨루아를 이탈시켜 양강의 구도를 강화 및 집중시킬 수 있고 더 단순하게 만들어 필요 이상의 복잡함을 덜어낼 수도 있었죠. 여성이라는 특징을 적절할 때 적절하게 사용한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바르카와 다미아, 그리고 얀키누스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바르카는 좋아할 수가 없는 캐릭터인데, 저는 단순히 운이 좋아서 횡재하는 캐릭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건 주인공이라 해도 마찬가지고요. 단순한 운으로 죽을 뻔 했는데 살아났다 같은 게 아니라 단순 운으로 운명이 바뀔 정도로 거대한 무언가를 손에 넣는다는 걸 싫어합니다.

 

바르카와 유릭의 만남은 있을 수 있는 만남이지만, 그 결과 여러모로 모자랐던 바르카가 왕으로 각성하는 것은 어떤 면에선 다소 어색한 면이 있습니다. 물론 어색하다는 게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지 작품적으로 용인이 가능하고, 그러한 과정이나 특성을 지니는 캐릭터들이야 수많은 작품에 엄청나게 많죠.

 

다만 그건 다미아라는 캐릭터가 없었다면 더 그랬을 겁니다. 바르카(파헬)의 성공은 단순히 유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그 스스로의 능력만으로는 거의 한 게 없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어느 정도 철이 들고난 뒤에나 가능했던 거고 그 이전까지 파헬은 너무나도 한심한 애송이였습니다. 필리온이 사후세계를 포기 하면서까지 그를 지키려 했던 충성 덕분에 가능했다는 게 더 말이 될 거고요.

 

주인공과 만나서 그의 보호를 받았기 때문에 왕까지 될 수 있었다는 건 그 본인에게 있어서 글자 그대로 운으로 왕이 된 것과 다름이 없다고 봅니다. 그가 숙부와의 싸움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줬고 승리 후 그를 어떻게 추락시켰는지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건 그냥 뛰어난 왕의 재목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을 뿐이지 사실 그런 거 없이 여전히 애송이라도 왕은 될 수 있었습니다. 유릭이 이겼으니까요.

 

단지 여전히 애송이였다면 룽겔 공작의 견제를 감히 버텨내지 못했을 거고 그 이전에 다미아에게 살해 되었을 것 뿐이죠.

 

바로 이 지점에서 전 다미아에게 더 마음이 끌렸습니다. 다미아나 얀키누스나 비슷하게 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미아는 단지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할 수 있음에도 가지지 못하는 게 있으며, 지금 상태에 만족하는 대신, 가질 수 있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게 뭐냐 문제냐는 태도를 지닌 캐릭터입니다.

 

얀키누스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그것은 상속받은 것일 뿐, 스스로의 손으로 얻은 건 아무 것도 없기에 자신의 것으로 얻을 수 있는 업적을 갈구하고자 하는 캐릭터였고요.

 

저는 이들의 욕구를 긍정합니다. 제가 현대인이기 때문에 그러한 감성을 버릴 수 없는 것도 있겠지만 안분지족 대신 더 나은 상태를 추구하는 향상심을 부정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한 것도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왜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았느냐고 바르카는 자신의 누이에게 말합니다. 하지만 그건 자기 자신에게도 할 수 있는 말이죠. 왜 하멜에서 망명한 손님 대우를 받으며 안락하게 살지 않고 사람이 죽고 혼란에 빠질 수 있는 내전을 벌였느냐고.

 

왕위가 애초에 자신의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왕위를 빼앗길 당시 자신이 왕의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느냐고 되돌아 봤을 때, 오히려 왕의 자격은 숙부에 더 가까웠을 겁니다.

 

다미아는 단지 여성으로 태어났을 뿐, 모두가 그녀에게 남자 였다면 뛰어난 왕이 되었을 것이라 평했습니다. 많은 것을 보고 읽었고, 익혔기에 대단히 뛰어난 지성을 갖추고 있었고, 결코 꺽이지 않는 정신과 강자의 기질을 타고났으며, 잃거나 희생하는 것에 나약해지지도 않습니다.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남자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그저 어느 남자의 소유가 되는 것과 비교하기에 그녀는 지나치게 뛰어납니다. 왕이 되어서 이상할 것도, 모자랄 것도 없을 정도로요. 벨루아는 여성임에도 부족장의 자리를 거머쥐었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연맹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그곳이 야만적인 곳이었기에 가능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직접적인 한계가 있었죠.

 

하지만 다미아는 문명인입니다. 왕위는 힘이 세거나 특정 기술이 뛰어나다고 인정 받는 게 아니죠. 숙부가 죽고 바르카가 죽는다면 남은 건 다미아가 최적격자입니다. 또한 다미아의 뛰어난 정치력과 지성, 음모를 꾸미는 솜씨를 고려한다면 몇년 안에 왕권을 확보하고 강력하게 만들었을 지도 모를 일이죠.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결국 자신의 능력을 기반으로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르카는? 자신의 생존조차도 자신의 기사인 필리온이 개고생을 하면서, 그리고 유릭과 형제들을 끌어들이면서 가능했고, 제국까지 갔을 때조차 얀키누스는 거의 가벼운 마음으로 그에게 병력을 빌려 줬습니다. 페르젠은 자신의 욕구와 일치하기에 같이 갔던 거였고요. 결과적으로 그는 스스로 얻은 게 없습니다. 남에게 기댔거나, 빌린 것 뿐이죠.

 

전쟁조차 페르젠이 이끄는 병력으로 세력 하나를 평정했고, 유릭과 페르젠, 제국 중장보병으로 승리를 거머쥔 것이며, 다미아를 빼돌리고 성문을 열어 젖힌 것도 유릭입니다. 그 스스로 한 것은 말 몇마디에 불과할 정도죠. 그 몇 마디가 중요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평가하진 못하겠습니다. 얀키누스에게 병력을 빌려온 것은 분명 중요한 일이지만 그게 그토록 어려운 일이었느냐 하면 꼭 그렇게까진 아닌 거 같고, 그마저도 동대륙 떡밥은 유릭에게 받은 거죠.

 

그런 의미에서 바르카는 왕위를 얻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다미아가 더 어울렸죠. 그가 왕이 된 것은 순전히 운에 가까웠고, 그 이후 각성한 그가 훌륭한 왕이자 정치력을 가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전에서 승리하고 난 이후, 혹은 직전이었으니 스스로 얻은 게 아닌 남의 힘으로 얻고 그걸 잘 유지시킨 것에 불과합니다. 그가 가진 자격이란 그저 선왕의 적자라는 것 하나 뿐이죠. 왕조 사회에서 그건 아주 중요한 명분이지만, 인간적으로 바르카는 자격 미달의 인간이었습니다. 운이 좋았을 뿐이지.

 

그렇기 때문에 바르카를 좋아하기가 어렵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남의 힘으로 얻은 것 왕좌에 올라섰고, 제국의 후원 덕분에 보호 받고 성장할 수 있었으면서 제국을 치는데 앞장서며 가장 많은 것을 얻었죠. 그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왕이란 그래야 하고 정치라는 게 그러하니까요. 하지만 카르니우스와의 전투나 하멜 침공에 있어서도 서부의 야만인만큼의 성과를 냈고 그만한 희생을 했느냐 하면.. 바르카와 포를카나는 흘린 피와 자격에 비해 너무 많은 걸 얻었습니다.

 

결국 모든 건 유릭 덕분에 얻은 것이었을 뿐이죠. 자격에 있어서 부적격이라는 겁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평가일 뿐이고, 자격이 있고 없고에 따라 삼키고 뱉는 게 정해진 세상이 아니니 그저 운으로 주운 금화가 훗날 황제로 만들어 주었다 해서 이상할 건 없습니다. 그냥 꼬울 뿐이죠.

 

다미아가 아쉬운 점이 바로 그겁니다. 그녀는 아버지인 왕을 죽였고, 숙부를 충동질했으며, 동생인 바르카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여왕이 되려고 했죠. 그게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또한 능력이라면 능력이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실로 성공할 뻔 했죠. 유릭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다시 말하지만 전 다미아의 욕구를 긍정합니다. 그 방식이 잔혹하고 비인간적이라 실패하면 벌 받을 수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녀를 얀키누스에 보내 성노예로 살게끔 하는 건 오히려 지나쳤다고 봅니다. 대가로서는 손색은 없죠. 조금 지나쳤을 뿐. 죽음은 그냥 죽음입니다. 다미아는 그냥 죽을 수도 있었죠. 실제로 자결하려고 했고요. 실패했을 뿐. 그런 그녀는 단지 자신의 한계를 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얻을 수 있는 것을 얻고자 벌인 일의 대가 치고는 좀 지나쳤다고 봅니다.

 

여자가 누군가의 좆집이 되는 게 불쾌하다기보단 그녀를 얻는 자에 대한 거부감과 불쾌감이 더 컸을 수도 있지만, 그걸 감안해도 다미아의 목적은 정당하다고 보며, 귀족 사회에서 암살과 음모는 흔한 일이니 그게 비인간적이라 하더라도 바르카와 포를카나가 제국을 배신하고 하멜을 공격한 것과 비교해서 대단찮은 일인가 싶습니다. 하멜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강간 당하고 약탈 당하고 고문 당했죠? 하멜까지 가고 봉쇄를 진행하던 그 과정에서는? 그 이전에는?

 

다미아의 욕구는 정당했으되, 그저 유릭이라는 주인공 때문에 실패한 거고, 실패한 거 치고는 비참한 대가를 치뤘습니다. 음모의 이유가 별 거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든 상관 없었겠지만 너무 정당하다 느낀 게 문제였죠. 다만 그게 작품적 비판점이라고 생각지는 않고, 캐릭터에 대한 비평일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를 짤막하게 하겠습니다. 작품적 세계관이 아니라, 세계관의 충돌에 관해서요.

 

서부는 중앙와 연고가 없었고, 황제 얀키누스의 욕망에 의해 개척됩니다. 유릭은 그 욕망에 의해 산맥을 넘을 계기를 얻었고, 자신의 천성에 따라 금기를 범하고 새로운 세계로 진입합니다. 세계관의 확장이지요. 그리고 훗날 서부에 군대를 보내고, 연맹군이 도로 넘어오며 두 세계관은 충돌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북부와의 전쟁에서 제국이 어떤 피해를 입었느냐와 달랐습니다. 그들이 패배했으니까요. 제국의 중심까지 침탈 당하고 숱한 문명인과 문명국, 지역이 피해를 입고 정복이 되었습니다. 이제 어쩔 수 없이 그들은 같이 할 수밖에 없게 되었죠. 그렇게 귀족 사회에서도 야만인 출신이 연회에 나타나고, 거래하고, 작위와 땅을 주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이 세계관의 충돌은 언제나 거대한 변화를 야기합니다. 그 변화는 강제적인 게 아니고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가기 마련이고요. 물론 그 과정에서 피가 흐를 수도 있고, 비극이 생길 수도 있으며, 누군가가 무엇은 얻는 만큼, 누군가는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변화라는 건 언제나 좋은 것만을 이끌어내는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일단 발생하면 막을 수 없습니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헤야 하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모든 것이 새로운 세계를 보고도 당당하게 그것을 탐구하며 익히고 배워 탐험했던 유릭처럼 스스로 미지를 향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충분할 겁니다. 그들 문명인이, 그리고 서부인이 결국 세계관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처럼요.

 

 

백수귀족 작가의 작품 중 두번째로 본 작품입니다. 애초에 킬 더 드래곤을 재밌게 본 입장에서 이번 작품은 하나의 보증이 있었죠. 백수귀족이라는 넉자로요. 강력한 힘을 지닌 주인공이 견인하는 작품이었기도 했지만 너무 자연스러운 전개와 훌륭하게 사용한 열린 결말까지.

 

누구에게든 무난하게 추천할 수 있을만한 수작입니다. 밀도 있는 작품이었고 재밌는 작품이며, 중간 중간 작가의 통찰이 보이는 문장들 역시 볼만한 부분들이기도 했습니다. 으레 나올 수 있는 억지나 캐릭터성의 붕괴, 모순이나 설정붕괴 같은 것도 없었고 모든 캐릭터들이 선역이거나 악역으로 이분화된 것도 아니며, 개인이 가질 수 있는 당연한 욕구와 추구, 입장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작품의 전개를 위해 필요한 사건이나 캐릭터의 입장, 이유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작품의 흐름에 맞게 캐릭터의 입장과 욕구, 추구를 합치시키는 데 있어서 아주 능숙하고 그건 실력 있는 작가일수록 자연스럽게 다루는 방식이죠. 그만큼 백수귀족 작가의 필력은 상당히 뛰어나다는 거고 어떤 작품이든 무난하게 볼 수 있는 수작급은 될 거라는 기대를 줍니다. 아마 그 기대를 쉽게 배신할 거 같지는 않네요.

 

또 몇가지 요소를 짚어보자면, 작품 내에서 영혼, 신, 사후세계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이것은 곁다리처럼 지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작품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하는 줄기가 됩니다. 마치 현실에서의 우리네 삶과 종교적, 혹은 내세적 세계가 이분화되어 존재하는 것처럼 현실적인 전개 속에서 사후세계와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 누구의 품으로 가는가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이끌어가집니다.

 

유릭이 하늘산맥을 넘고 선조들의 영혼이 하늘산맥 너머 영혼의 세계로 간다는 말을 믿었는데, 똑같이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번뇌하는 순간들이 나옵니다. 그러한 두려움과 불안감에서 그는 검은 그림자 환상을 보게 되기도 하고, 루를 믿기도 하죠. 그러다 자신의 정체성이 사랑과 자비가 아닌 전사적 기풍에 있다는 것을 재확인하고서는 루의 펜던트를 버립니다.

 

그리고 울가로 쪽에 관심을 가지게 되죠. 스벤과 함께 하는 여정에서 스벤의 실수와 실패를 보기도 하고 결국 그는 아주 오랫동안 무엇을 믿어야 할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 속에서 정신적 방황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새로운 질문 속에서 번개를 맞고도 살아 남은 그는 자신의 의지만을 확신하게 되며 모든 신성을 거부하게 되죠.

 

이제 자신이 죽어 영혼이 어디로 가느냐보다 내가 살아서 무엇을 하느냐가 더 중요한 세계관을 형성한 것입니다. 그게 단지 유릭이라는 개인 단 한 사람의 것이라고 해도. 고트발은 꾸준히 그를 루의 품으로 돌려 놓고 싶어 했으나, 늑대는 매어둘 수 없는 것처럼 탐험가는 어딘가에 뿌리 내리는 사람이 아니죠. 설령 그가 서부인이고 서부의 야만인으로 살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해도요.

 

그가 진정 위대한 이유는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기와 신에 의해 제약 받는 뭇 사람들과는 다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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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작품에 대한 내용누설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쓰는 리뷰네요. 그동안 본 드라마, 영화, 소설, 웹툰 등은 다양하지만 귀찮아서 안 쓰고 있다가 어쩐지 짧게나마 쓰자는 마음이 들어서 쓰게 되었습니다.

 

 

뭐.. 사실 그렇게 길게 쓸 생각은 없습니다. 이번 작품이 그만한 가치나 작품성이 있는 건 아니거든요. 그냥 오랜만에 쓴 글이니만큼 가볍게 다루려고 합니다.

 

먼저 내용 자체는 굉장히 평이합니다. 유치하다고 해도 될 만큼 클리셰적인 전개로 나아가죠. 친구이자 황제에게 배신 -> 회귀 -> 깽판.

 

대충 이 루트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몇가지 차별점을 두려는 부분들도 있고 그게 전개의 핵심으로 작동하기는 하지만, 그런 거야 뭐 양판소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거기 때문에 특별히 주목할만한 건 아닙니다. 그냥 이런 내용도 있다 정도.

 

주인공의 성격도 그다지 특출나거나 개성있는 캐릭터성은 아닙니다. 그냥 가진 힘만큼 고고한 편이죠. 이 역시 다른 곳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거고요. 특히 근 몇년 동안은 이런 성격의 캐릭터를 선호하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열혈까진 아니더라도 좆도 아닌 걸로 나대고 감정 드러내면서 속내를 뻔히 보여주는 캐릭터보다는 좀 더 진중하거나 그런 '척'을 하는 캐릭터를 선호하죠.

 

혼자서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 굽어보는듯한, 왠만한 일로는 흔들리지 않고 냉철하고 준비된 것처럼 곧바로 처리해버리며 우월감에 도취될 수 있는 그런 캐릭터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좀 유치하긴 합니다만, 정말 잘 만들어진 캐릭터는 반해버릴 수밖에 없는 매력이 있는 캐릭터성이죠. 이 작품에선 그 정도까진 아닙니다. 그냥 평범해요. 있어보이려고 하는 건 좀 심한 편인데, 그다지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다루는 이유는 굉장히 눈에 거슬리는 서술 방식 때문인데,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사 처리 부분입니다. 이 대사 처리 부분이 그냥 한마디로 말해서 개병신같아요. 한두 번 정도 쓰는 거라면 괜찮은 대사 연출이었을 겁니다.

 

근데 이 작품 주인공은 말을 할 때마다 똑같은 방식으로 대사가 처리되거든요. 이게 계속 반복되니까 캐릭터는 애자 같아보입니다. 작가는 글을 못 써보인다는 수준으로요. 안 그래도 양판소인데 허세뽕 차서 요상한 작법으로 대사를 처리하고 있으니 볼 때마다 거슬립니다.

 

그 방식이 뭐냐면, 대충 이런 겁니다.

 

"그러니까.."

 

그는 이 작품 작가의 대사 처리에 대해 설명하려고 했다. 그 방식이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중요한 시점에서 임팩트를 주기 위한 강조 목적으로 써야 하는 방식을 입을 열 때마다 반복하고 있으니 주인공이 멋있어 보이거나 무게감이 있어 보이기보단.

 

"대사 처리를.."

 

말 한마디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는 병신 애자새끼처럼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가 작품의 흐름에 어떤 생각과 호흡을 가지고 쓰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작품의 큰 스토리 흐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정해지긴 했지만 그것 써가는 것은 웹소설 특유의 짧은 호흡에 전체 작품의 기승전결을 요약해서 담아내려고 하는 방식을 좀 과하게 쓴다는 것이다.

 

가급적 결 부분을 보여주지 않고 다음 화로 넘기거나, 절반 정도로 보여줘 독자의 다음화 욕구를 자극하는 방식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어떠한 충격, 임팩트를 줄만한 대사 처리나 상황 설명으로 끝을 내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후자의 경우에 가까운데, 문제는 그다지 임팩트를 주진 못한다는 것이다. 그저 겉멋이라는 유치한 정서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따위로 한다는 거지."

 

따라서 한 문장, 길어봐야 두 문장에 불과한 캐릭터의 한 마디, 두 마디를 2, 3개로 쪼개면서 그 사이사이 한두 문장으로 상황이나 심리 묘사를 넣으면서 대사를 처리한다는 것이다. 말했듯, 적절한 순간에 쓴다면 효과적인 연출이지만 아무 때마 마구잡이로 쓰면 무게감은 줄어들고 힘을 줘야할 부분과 아닌 부분이 분간되지 않으며 캐릭터성 또한 제한되는 역효과만 발생한다.

 

심지어 독자로 하여금 무슨 글, 대사를 이따위로 써먹냐는 비판이 나올 것도 감당해야 한다. 지금처럼.

 

 

...이렇듯 대사 처리가 굉장히 유치하고 겉멋만 들었습니다. 꼴랑 한마디 하는데 무슨 잡스러운 설명이 한 문장, 두 문장 수준으로 나오면 당연히 지치게 되죠. 웹소설이 매일 나오긴 하더라도 어느 정도 쌓인 채로 읽게되면 여러 화를 연속으로 읽게 됩니다. 쓰는 사람이 읽는 사람의 흐름을 생각 안 하고 쓴 겁니다. 그냥 자기가 쓰는 흐름만 생각하고 쓴 거죠.

 

무엇보다 이런 식으로 대사 처리를 하게 되면 안 좋은 문제가 발생하는데, 아무리 글을 정독하면서 성실히 읽는 사람이라도 이런 대사 처리가 계속 반복되면 결국 깨닫는 게 있습니다.

 

대사와 대사 사이의 설명 문장을 넘기고 대사만 읽으면서 넘기거나, 대사는 넘기고 대사 사이의 설명 문장만 읽으면서 넘기는 겁니다.

 

결국 작가의 글 낭비가 되어버리는 거고, 어느 쪽이 되었든 주인공 등 캐릭터의 심리나 드러나는 표면적 사유를 독자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합니다. 사실, 그런 게 굳이 필요 없을 정도의 양판소인 것도 사실이긴 한데, 작품이라는 측면에서 작가는 아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거죠.

 

뭐,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상관이야 없겠지만 내용적으로는 좋지 않습니다.

 

 

분량으로 따지면 절반 정도 봤는데, 전체적으로 주인공의 대사 처리로 대표되는 작가의 겉멋든 대사 처리가 너무나도 거슬립니다. 다른 캐릭터들은 그닥 안 그러는데 유독 주인공 대사에만 힘을 넣겠다고 저런 대사 처리를 하는데, 보기 불편할 정도더군요. 주인공이 병신 애자새끼마냥 말 한마디를 제대로 못하고 2개, 3개씩 쪼개서 말하는데 그게 병신이죠. 누군가에겐 그렇게 보인다는 겁니다.

 

 

이외에 내용적으로 크게 지적할만한 건 아니지만, 드래곤들이 주인공 이안을 너무 쉽게 믿는다는 부분도 있는데, 드래곤들은 아버지인 프란을 겪었고 수천년, 혹은 그 이상 봉인해오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새로 태어난 녀석들이 있다지만 드래곤들의 수장이 이안을 그리 쉽게 믿는다는 건 개연성이 부족합니다.

 

그러니 이 부분에 좀 더 힘을 싣고 상호간의 믿음을 주거나, 혹은 최소한 힘을 기반으로 나까지 적으로 돌리면 개판날 거 각오하라는 등 아슬아슬하게 뒤통수를 못치게 하며 아비와의 전투 때 크고 작은 희생과 도움을 줘야 합니다. 거의 대마왕과 싸우면서 의심하던 둘에게 전우애가 싹틀 정도로 치열하게 묘사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게 아니라 프란의 사상이 가장 큰 문제이긴 하지만 그만큼 그런 사상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을 가진 프란과 거의 맞먹는 힘을 가진 게 이안이기 때문인데,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사유와 명분을 가져오든 자기보다 강한 누군가의 존재는 필연적으로 두려움을 가져옵니다. 두려움은 불편함이죠.

 

물론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오고, 힘이 없으면 드래곤에게 휘둘리거나 지금까지 쌓아온 빌드업이 다 부숴지는 걸 막을 수도 없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믿음의 관점에서 힘이 강하기 때문에 믿을 수밖에 없는 것과 신뢰를 기반으로 믿음을 주는 건 완전히 다른 맥락입니다.

 

그러니 프란과의 전투 직전에 이번만큼은 전적으로 믿어보겠다가 아니라, 서로 앞둔 게 있으니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든 일단 미뤄두고 이 전투에서만큼은 전우로 대하겠다고 해야 합니다. 더불어 여기서 딴 생각 품다 일을 그르치면 세상은 끝장난다는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고까지 해주면 더 좋겠군요.

 

그리고 전투가 끝난 뒤 사실 이안을 통수칠 준비를 했다거나, 사전에 극소수의 젊은 드래곤과 어느 정도 나이 있는 드래곤을 뽑아 다른 곳에 숨겨두었다던가 하는 식으로 최악을 대비했다고 밝히는 것도 괜찮았을 겁니다.

 

아무리 드래곤과 이안 사이의 사전에 만들어질만한 악연이 없었고,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부분도 있었기 때문에 넘어갈 수 있는 일 정도라고는 해도 이안과의 신뢰는 형성된 적 없었고 힘은 프란만큼 강합니다. 그런 이안이 속내를 숨기고 있었다면? 혹은 이후 프란처럼까진 아니더라도 드래곤과의 갈등이 충돌 수준으로 발전할 정도가 된다면?

 

이안이 어떤 인생 계획을 가지고 있든 경지 높은 마법사가 꼴랑 인간 수명만큼, 혹은 조금 더 넘게 산다는 보장도 없고 당장 괜찮은 관계라 하더라도 이후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게 인간입니다. 프란을 겪어본 드래곤, 특히 리시스는 그런 이안에 대해 극도의 경계와 시선을 두는 게 정상입니다.

 

만약 이안이 프란만큼 오래 살아가면서 천천히든, 극적이든 변하게 되었고 그게 드래곤들과 마찰로 이어질만한 것이라면 드래곤들은 훗날 프란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위험한 적을 상대해야 합니다. 그런 위험은 함부로 감수할 수 없죠.

 

차라리 힘이 없어서 이안을 건드리지 못하는 걸 선의로 포장해서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게 말이 될 겁니다. 전투 끝에 통수치려나 아직 힘이 남은 걸 보고 계산 좀 하다 안 되겠다 싶어서 적은 친구보다 가까이 둔다는 격언처럼 친우처럼 대하겠다고 하는 것도 말이 될 거고요.

 

그게 더욱 입체적이고 말이 되는 전개일 겁니다.

 

 

이런 거 하나하나 문제라고 하는 건 지나칠 거고 전개야 양판소에서 이 정도면 그냥 평범하게 무난한 수준이다보니 굳이 지적할 필요까지도 없는 부분인 것도 사실이라면 사실이겠죠. 까놓고 말해서 이것보다 더 한심하고 똥멍청한 전개로 쓰는 사람도 많은데.

 

다만 너무 편의적으로 전개를 이끌어갔다는 생각은 버리기 어렵습니다. 어느 정도 필요한 방식일 수는 있겠으나, 중요한 부분이라면 당연히 그 관계성을 구축하는데 그만큼 공을 들여야 하는 것도 필요한 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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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작품에 대한 내용누설이 있습니다. 


이런 류의 작품들이 다 그렇듯, 솔직히 별 기대는 안 했지만 상당히 괜찮게 본 작품입니다. 흔해 빠진 회귀물, 헌터물, 주인공 짱짱맨 작품인가 했더니 딱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정도랄까요?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종족이나 존재에 대한 배경 설정들이었습니다. 제 취향에 맞는 설정들이더군요.


솔까 초반에는 일반적인 헌터 어쩌고 우물(던전), 아이템 어쩌고 하는 나부랭이 같은 건 줄 알았습니다. 대개 이런 류의 소설들이 그렇듯이 뭣도 없이 그런 어째서인진 몰라도 어느 시점부터 던전 같은 게 생기고 괴물들이 나오고 일반인들 중에 능력자가 생기고 아이템도 뜨고 마정석 같은 것도 뜨고 어쩌고 그러는 것들이 그러한 것들의 존재 이유, 당위성이나 개연성 따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순한 재미를 위해 일단 냅다 설정해서 시작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보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읽다보면 그런 것들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했습니다. 이런 류의 작품의 바탕이 되고 기본이 되어주는 현상에 대한 당위성은 있어줘야 한다고 보거든요. 가령 백룡공작 팬드래건에서는 드래곤과 다른 이들에 의한 계획 등에 의해 주인공이 앨런 팬드래건으로 전이(라고 해야하나..), 회귀해서 다시 시작하고, 시그리드는 폭주하는 황제에 반발한 아르카나와 베라무드의 합의에 의해 시간을 되돌리고 그 여파로 시그리드가 부활한 거죠.


이러한 배경이 되고 시작이 될 수 있는 요소들에 대한 당위나 설명이 없이 단순히 그냥 그랬다, 왜 그랬는 지는 모르겠고. 같은 식으로, 아예 무시하거나 맥거핀으로 만들어버리는 건 작품의 수준은 한 단계 낮추는 행위라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언령마술사에서는 우물의 존재와 아티팩트, 마정석 등에 대한 존재 이유를 적절한 당위와 개연성을 설정하면서 납득할 수 있는 스토리로 엮어냈죠. 


회귀에 대한 이유 또한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자 때문에, 혹은 사랑하는 가족 때문에라는 흔하지만 그만큼 있을 수 있는 이유를 바탕으로 합니다. 회귀를 한 뒤 어찌저찌 살겠다 같은 다짐이나 계획이 아닌 처음부터 사유가 충분히 있었고 단지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경우였었죠. 그 점이 차이점이기도 하고요. 물론 나중엔 기억을 되찾게 되지만.



또 앞서 말했듯 각각의 존재나 종족의 배경 스토리도 굉장히 취향 저격이었는 데, 영웅왕이나 도깨비 군주, 용족, 나람천이나 랑다미르, 다른 신적 존재나 종족, 혹은 무기 등에 대한 배경 스토리가 굉장히 특색있고 멋진 면이 있거든요. 상당히 신화적이고, 그래서 저에게 취향저격 요소로 여겨졌습니다.


반복되어 묘사되고 설명되는 이스케천의 압도적인 존재감과 힘 또한 매력적이기도 하고, 영웅왕이나 거인족, 나람천에 대한 설정이나 묘사 또한 상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라반궁을 얻을 때의 이야기도 꽤 괜찮았고요.



그 외엔 50화가 넘고 또 수십화는 더 지나야 한번 더 배경이나 스토리의 갈래가 바뀌어버리는 반전이라고나 할까.. 57화 였던가요? 거기서 다시 회귀해버리고 프롤로그 끝났다고 했을 땐 그냥 그럴 수도 있지 정도였지만 이후에 한번 더 반전으로 프롤로그가 2개다 같은 소리를 할 상황이 나올 땐 좀 뭔가 싶긴 했습니다. 그래도 뭐 문제 있는 건 아니고 스토리가 어떻게 가려나 싶은 정도?..


그래도 나름 스토리를 잘 풀어간 건 사실입니다. 약간 아슬아슬해보이는 지점도 있긴 했지만, 큰 문제 없이 잘 풀어간 건 맞다고 봐요. 그래서 완결 부분은 충공깽이긴 했습니다. 외전 안 나왔으면 씨발 이게 뭐야 였을 걸요. 진짜 씨발 아무리 작품의 완결에 여러 방법과 종류가 있다곤 하지만 그래도 씨발 그건 좀 너무했다 싶었습니다.


슈ㅣ발 무한 츠쿠요미식이라니. 최악의 상황, 사태에서 죄다 원하는 꿈을 꾸게 하면서 종말을 기다리게 되는 건 좀 심하긴 했죠. 근데 그 부분이 상당히 희망적이고 진짜 모두가 원하는 행복한 상황이며 그 틀이 적당히 들어먹기도 하고 또한 그런 묘사로 이어지는 부분이 꽤나 스무스 하다보니 나중에 완결화의 끝 부분까지 가기까지 누구도 눈치 못챘을 겁니다.


그러면서 뒤통수를 빵 후려까는 건 좀 통렬했습니다. 앵간한 작품에선 이런 거 안 느끼고 그냥 스토리의 큰 흐름을 이해하면서 넘어가는 데 마지막에 와서 이러는 건 씨발.


그래도 참 다행인 건 외전편에서 제대로 완결을 냈다는 거죠. 좀 무리수가 있고 주인공 버프가 너무 심하게 먹은 것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쩔어주긴 했습니다. 블랙 작가 특유의 거대한 힘이나 압도적 규모의 묘사를 이스케천과 반신적 존재가 되버린 이현우를 통해 잘 이끌어냈고, 마찬가지로 수 백년의 시간적 차이와 그러한 시간 속에서 일종의 족쇄가 되어버린 이현우에 대한 그리움과 버릴 수 없는 감정들에 의해 고통 받고 고민 하고 번민하게 되는 묘사, 그리고 끝끝내 이스케천이 부활해버릴 상황에서 등장해 걍 다 쓸어버리고 주인공의 지인들과 재회하는 장면은 제대로 끝 맺는 완결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상당히 훌륭한 결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만 역시 아쉬운 부분은 중간 중간 설정이나 앞뒤 묘사에 오류가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런 것들이야 대부분 커버할 수 있는 내용이고, 그리 크게 중요한 것도 아니니 신경 안 써도 될만한 것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작품의 완성도에 흠을 주는 것들인 건 사실이죠. 지레이가 원래는 러시아인이었지만 나중에 독일인으로 바뀌는 데, 그게 뭐 딱히 중요한 것도 아니고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비판의 요소가 되긴 충분한 설정오류죠.


이외에도 일부 인물에 대한 중요성이 무시되거나 너무 중요하게 다뤄졌던 것도 있습니다. 하나의 떡밥으로 뿌려졌고 그 중요성이 초반에 많이 부각되었던 이설이 나중에 되어선 전생들에선 그랬지만 이번 생에선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고 무시되고 용대운의 검술 스승 또한 어느 순간부터 안 나오게 됐습니다. 그 인물 자체가 원래 그런 용도인 건 인정하고, 뭐 복수 자체야 간접적으로 이루어지긴 했지만 너무 대충 넘어가버린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도 이설이 후반부에 어떻게 지내는지도 찾아가보고 하는 걸 보면 아예 무시할 생각은 없었던 거 같지만, 초반에 너무 부각되었거나 그렇게 부각된 이설의 가치를 다시 무난하게 낮추어 중요성을 떨어뜨리는 작업이 신중치 못했고 납득할만한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설이 별 중요한 인물이 아니게 되었다는 건 알았지만 너무 아쉽게 작업되었고, 독자들도 납득하지 못해서 이설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왔던 거죠.


아마 그렇기 때문에 작가도 나중에 하필이면 가장 처음의 생 때의 원수가 통치하는 곳에 이설이 살고 있고 전쟁이나 전투도 없는 누군가의 아내로 행복하게 만족하며 사는 걸 보여주고, 주인공도 거기서 그냥 멀리서 얼굴만 보고 가는 것으로 확실하게 끝맺으려 했던 거 같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그 이전까지 시원찮았던 게 사실이죠. 뭐 이건 작가에게서도 어떻게 처리해야할 지 까다로웠을 겁니다. 저라도 뭐 더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하기 어려우니..



하여간 몇몇 요소를 제외하면 상당히 재밌었고, 괜찮은 수작이었습니다. 특히 완결과 외전의 임팩트는 존나게 존나 쩔었고요. 외전까지의 완결도 상당히 좋았습니다. 아쉬운 면이 없진 않았지만 충분히 무시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것들이 대부분이었다고 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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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작품에 대한 내용누설이 있습니다. 



원래 카카오페이지의 요일별 소설 중 하나였는 데 완결 이후 기무로 바뀌었죠. 이 소설에 대한 리뷰도 예전에 쓰려고 했는 데 제 게으름 때문에 결국 지금에 와서야 쓰게 됐습니다.. 그 덕에 잊어버린 것도 너무 많네요;



뭐 하여간..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액자식 구성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그만큼 연결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연 작가의 반월당의 기묘한 이야기는 꽤나 성공적이고 나름의 잘 짜인 짜임새를 가진 작품이었습니다.


또한 이 작품을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가 제가 역사 쪽은 꽤 좋아하다보니 과거의 기록을 토대로 서술된 이야기를 상당히 좋아하는 데, 더불어 그것이 잘 알려지지 않은 여러 설화, 전설 속의 괴담에 대한 기록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작가가 이런 정보를 많이 찾고 공부했다는 게 느껴지더군요. 자료조사를 잘 했습니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시작할 때마다 주제가 되는 기록을 먼저 제시하고, 그 기록을 토대로 창작된 이야기를 서술하며 진행시키는 것이 작품 전체적으로도 상당한 짜임새가 있었습니다. 어느 주제나 단편 하나에 파묻히는 게 아니라 그것들이 모이고 모여서 거시적 복선을 이루어 나중에 회수되거나 어떠한 행동이나 발언, 사건의 근거가 되는 것을 연출하더군요.


이런 구성은 처음부터 전체적인 짜임새를 잘 짜야하기 때문에 어려운 작업이 되곤 합니다. 하지만 개연성 있고 짜임새 있게 잘 만들더군요. 그래서 더욱 괜찮은 작품이라고 평가하는 거고요.



또한 특유의 캐릭터성과 각 캐릭터들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까칠하지만 살짝 모자란 초짜 느낌의 유단과 까칠하지만 뭐든 다 잘 할 수 있을 거 같은 듬직한 백란, 귀엽고 매력적인 서브 캐릭터 식구들도 그렇고요. 단이와 란이의 만담은 언제 봐도 귀엽죠. 채우 채설도 상반된 성격에 뭔가 어른스러우려 하는 것도 귀엽고.. 무엇보다 흑요가 가장 매력적이었습니다. 누님 같으면서도 귀엽고 덜렁대는 모습이 귀여워해주고 싶달까..ㄲㄲ 도깨비 아재는 그냥 흑요랑 잘 꽁냥댄다는 느낌? 싫진 않지만 뭔가 특별히 와닿는 느낌은 개인적으로 없더군요. 이건 그냥 제 취향에 안 맞아서 그런 거고..



처음엔 그냥 옛날 이야기와 현대적 재창작에 대한 재미로 봤다면 끝나갈 때쯤 회수되는 복선들은 상당히 매력적이고 애닳게 와닿았습니다. 가장 친했던 친구가 자신을 죽였고, 그에 대한 실망과 슬픔을 가슴속에 숨기고, 그게 천년이 넘는 시간 시간 속에서 닳고 닳아 원한조차 느껴지지 않는데 정작 천벌을 받고 부활과 죽음을 반복하는 자신의 원수를 지켜보고, 지켜주려고 했던 모습은 말입니다.


그러나 항상 실패해왔고 그건 또 다른 고통으로 다가왔죠. 그래서 이번엔 다른 방식으로 지켜봤습니다. 모른 척 하기로요. 에전의 강력함은 잃었지만 그 잔재는 남아 있었고, 아무 것도 모른 채 어처구니 없는 걸 달고 오는 모습은 얼마나 한심해보이고 황당했을까요..


그렇지만 곁에서 지켜보고, 지켜주었죠. 그리고 언젠간 다시 만날 그 날에, 다시 기억을 되찾았을 때 물어보고자 했던 겁니다. 왜 나를 죽였느냐. 형제와도 같았던 나를 네가 어째서, 어떻게. 하지만 천벌이란 오묘한 것. 결국 죄인을 찾아내 벌을 주고자 할 것이니 모른 척하며 하늘의 뜻에 감추어줬던 겁니다.


그러나 결국 찾아낸 진실은 실제로 자신을 죽인 것은 다른 존재고, 그 귀신이, 그 괴이가 자신의 죄를 자신의 가장 가까웠던 친구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었던 거죠. 천계의 존재들도 그걸 모르고 억울한 단이의 전생들만 벌하고 죽여댔던 겁니다.


물론 주인공들 답게 천년이 지나서야 겨우 진실을 밝혀내고 죄를 벗겨내죠. 


이 서사적 스토리는 저에게 상당히 애닳게 느껴졌습니다. 가장 친했고 사랑했던 가족이나 다름 없던 이에게 영문도 모른 채 배신 당한 걸로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왜 그랬느냐는 물음을 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지상에 남아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며 갈 때가 되지 않았다고 뻗팅겼던 것도, 그러면서 감정이 풍화되어 증오도 원망도 없어진 것도, 친우의 환생들이 영문도 모른채 천벌을 받아 요절하며 죽어가는 고통과 슬픔도, 그런 꼴을 보고 싶지 않아 모른 척 하는 것도, 그러면서 나름 잘 돌봐준 것도 모두 말입니다.


유단이라는 캐릭터도 매력적이고, 다른 캐릭터들도 매력적이지만, 백란만큼의 깊이를 가진 캐릭터는 없었죠. 그래서 백란의 과거 스토리를 가장 좋아하는 거고요. 까칠하게만 보였지만서도 속 깊은 무언가가 또 있으니 얼마나 입체적이고 매력적이겠습니까..



이런 캐릭터성과 스토리도 그렇지만, 또 하나 호평 받을 만한 것은 필체입니다. 가장 분위기로 기억이 남는 것이 어느 사건 하나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묘사되는 계절이 지나고 해가 져가는 무렵의 분위기 묘사였습니다. 정말 서정적이고 부드러우며 섬세한 묘사는 에피소드 하나가 끝나며, 이번 사건도 다 끝났다는 여운을 주며 막을 내리기에 훌륭한 연출과 묘사였죠. 그 부분에서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서정적인 연출과 묘사도 그렇고, 위험할 땐 마치 어두운 먹이 뿌려지고 위험한 독이 스멀거릴 것만 같은 아찔함을 묘사하는 것도 상당히 좋았습니다. 스토리도, 캐릭터성도, 연출과 묘사도 나름 잘 어울리며 작품을 구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명작이라고 평하기엔 모자라도, 수작이라는 평가를 아낄 이유는 없다고 보는 그런 작품이죠. 추천할 수 있냐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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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작품에 대한 내용누설이 있습니다. 


사실 맨 처음 작품 설명을 봤을 땐 뻔한 천재의 먼치킨 작품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작품 설명만으로는 작품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보니 정확히 판단을 할 수 없었고 그러다보니 이 작품을 볼까 말까를 망설였거든요. 하지만 댓글 평을 보면서 일단 한번 보기는 해보자고 마음 먹고 봤습니다.


생각보다 꽤 괜찮더군요. 개인적인 평입니다만, 신룡의 주인보다는 훠얼씬 나은 소년작품? 신룡의 주인은 오그라들 정도였고 개연성이나 캐릭터성도 많이 부족하며, 그걸 이끌어내고 묘사하는 것도 겉멋만 들었지 필력이 상당히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무한의 마법사는 크게 뛰어나거나 수려한 편은 아니더라도 무난한 정도에 속하는 정도라 부담이나 아니다 싶은 느낌은 그닥 들진 않았습니다.


추가 : 그냥 괜찮은 편이 아니라, 후반까지 가보면 매우 훌륭한 수준의 작품입니다. 몇몇 아쉬운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럭저럭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고, 그 이상으로 연출, 스토리, 떡밥 등 이런 류의 판타지 소년작품 중에선 아마 최고 수준의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작품 꽤나 좋게 보는데, 이전부터 이런 류의 능력 따위를 생각하면서 어떠한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라면 반드시 그에 대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방법론과 이론이 존재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전적 판타지에선 마법을 그저 이해하지 못하는 신비하고 알 수 없는, 경이적이거나 두려운 무언가로 묘사하곤 했죠. 어떠한 방식이나 형태, 형식 따위보다는 그저 신비한 권능으로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진다는 느낌으로요.


뭐, 현대에 접어들면서 그러한 마법에 어떤 논리나 합리성, 작동함에 대한 묘사를 하는 편이긴 하지만, 사실 그리 구체적이지도 않고 그저 이렇게 해서 저렇게 했다 정도로만 묘사하는 경우가 많죠. 사실 그런 것이 특별히 이상한 것이 아닌 게, 그걸 구체적으로 묘사해봐야 쓸데없이 길어지기도 하고 굳이 알아야할 필요도 없으며, 무엇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 어떻게 설정을 짜고 묘사를 하든 그거야 본인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잘못했다느니 아니니를 떠나서 그게 이상한 게 아니고 기실 당연하기도 합니다.


그저 저 혼자만의 상상에 불과하지만 저는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일종의 프로그래밍과 비슷한 작동, 구현의 원리를 상상해본 적 있곤 하죠. 또한 어떠한 현상을 일으킨다면 그건 단순히 마법만을 생각하기 보다 과학의 영역과 접목시켜서 묘사하거나 설명하는 것도 상당히 개연성 있고 합리적인 묘사라고 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마나라는 게 있다면 그것의 본질은 무엇이고 어떻게 인간이 의지나 의지 비슷한 것만으로도 다룰 수 있는 지, 또한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고 활용되어 마법이라 불릴 수 있는 효과, 혹은 현상을 발생시키는 지에 대해서 말이죠. 마나라는 것은 물질로 따지자면 개별적 원자나 초끈이론의 끈, 에너지로 쳤을 땐 그 자체로 어떠한 에너지로도 변용 가능한 것이라든가.. 마나를 다룬다는 것은 애초에 인간에게 없는 감각이니, 추상적이고 비물리적일 순 있지만 동양사상 등에 나오는 기와 같은 개념으로 접근을 한다던가.. 마법의 발현이라면, 불 같은 경우 마나를 이용해 특정 좌표나 물질 표면, 혹은 내부에서 열에너지를 상승시키거나, 플라즈마를 발생시키거나 불이 발생할 수 있는 물질로 변환시켜 그것들을 서로 작용케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발생시킬 수 있다던가 말입니다.


실제 작품에서 묘사된 비슷한 사례로는, 가령 일본 작품이긴 하지만 무직전생에선 마법적 능력과 과학적 원리를 활용하여 스승 앞에서 오래 걸리고 (상대적으로) 난이도 높은 편인 넓은 범위에서 비가 오래 쏟아져 내리게 하는 마법을 실현했고, 카카오페이지의 다른 소설인 나는 히어로인데 형은 무한전생자? 에선 초능력과 과학적 원리를 통해 토카막 핵융합포나 장거리 비행, 전자기 능력이나 그걸 플라즈마로 되돌려 반격하는 등의 여러 활용성을 묘사한 적 있죠.



마찬가지로 무한의 마법사에서도 그런 과학적 원리와 법칙에 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꽤나 마음에 드는 설명을 무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개연성 있게 이끌어내고 묘사한다는 점이 굉장히 취향저격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특히 초반부의 힉스 입자가 등장하는 부분에선 상당히 흥미를 이끌어내었죠. 아주 잘 설명해낸 부분이었거든요. 소년만화(여기선 소설이라고 해야겠죠?..)에서 무언가 떡밥이 던져지고, 그거에 고민하거나 어려움을 느끼다 그 문제를 해결하고 진일보하는 성장의 모습을 짧고 무겁지 않게, 정석적이고 무난하게 서술한 점은 꽤나 교과서적이다 싶었습니다.


추가 : 물론 유사과학인 건 사실이긴 합니다. 특히 미토콘드리아 이브 개념은 아예 그 개념을 왜곡시킨 수준인데, 다른 것보다는 좀 더 왜곡의 폭이 크다고 봅니다. 이건 작가가 잘 몰라서 그런 건지, 아니념 개념만 따온 채 작품에 써먹기 위해 크게 변용시킨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전자라고 해도 어차피 소설이니 큰 문제는 안 되고, 후자라면 괜찮은 판타지적 상상력인 셈이죠.


또한 설정에 있어서 더욱 매력적인 것은 기독교, 불교적 개념을 섞어서 쓰지만, 결코 우습진 않다는 겁니다. 오히려 멋있을 수준이고, 경지나 수준, 개념에 대한 다채롭고도 다양한 설명들은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마법에 대한 능력도 작가의 판타지적 상상력이 뛰어났지만, 나중에 등장하는 파르카 쿠안이나 풍장, 리안의 검술 등은 마법에 대한 것 못지 않게 흥미롭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발상들이고요. 



똑같은 소년소설 장르인 신룡의 주인과 가장 비교가 되는 장면은 절친이 되는 친구들과의 만남과 친해지는 계기들인데, 신룡의 주인에선 너무 개연성이 부족했고, 설령 개연성이 어느 정도 있다고 해도 그걸 독자들이 납득하기 어렵게 묘사를 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작위성이 더 크게 느껴졌고요. 이것만은 아니지만, 그런 이유들 때문에 결국 얼마 안 가서 하차한 작품이었죠.


하지만 무한의 마법사에선 친화력 쩔어주는 네이드와 반대 성향이지만 똑같은 천재형 캐릭터인 이루키가 경쟁과 협력을 통해 친해지게 되는 건 상당히 개연성 있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죠. 작가의 필력이 아쉬운 부분도 있긴 하지만 무난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묘사와 서술인지라 무리함이나 작위성 따위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작품 내적으로 좀 크게 아쉽다고 생각하는 점은 잘못을 저지른 이들의 반성에만 너무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속죄를 하거나 책임을 지는 모습이 거의 없다 싶을 정도로 묘사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알페아스도, 아케인의 두 제자도, 마르샤도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속죄한 건 없고, 자신의 죄에 걸맞는 처벌이나 납득할 수 있는 책임을 보여준 적이 전혀 없죠. 작가가 워낙 반성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답답해보일 수 있습니다. 이 점은 상당히 아쉽더군요. 뭐 죽이거나 고문 받거나 절망 속에서 망가지는 걸 원하는 건 아니지만, 죄에는 책임이 따라야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제 주관적인 기준에선 살짝 아슬아슬 하지만 괜찮은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재밌게 보고 있는 작품이죠. 설정덕후 적인 면모가 있다거나 이런 종류의 원리와 묘사가 취향이라면 재밌게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봅니다. 추천할만하죠.



추가 : 후반으로 갈수록 연출, 전개, 묘사, 해석 등 상당한 수준으로 특히 가올드의 스토리와 가올드 파티가 천국에서 분탕칠 때, 그 중에서도 천국의 모두(전에 시로네가 천국에서 만났던 신민들마저도) 한계와 역할, 혹은 삶의 끝에서 모든 걸 쏟아내거나, 모든 감정에 먹혀버리는 시기에 시로네의 신의 징벌이 떨어지며 각각의 인물의 모습과 감정, 시간이 교차되며 서술되는 연출은 가히 영화적 연출이라 봐도 될 정도로 수려했고, 독자로서도 그 처절함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게 했죠.


이는 가올드가 20년전의 과거에서도, 그리고 천국에 와서도 미로를 찾으며 울부짖는 정신나간 광인의 처절함을 느끼게 하는 것과는 다른 처절함과 처연함이었습니다.


가올드 파티와 천국행의 스토리는 무한의 마법사에서도 가장 재밌고 훌륭한 스토리라인과 감정선들을 보여주며, 복합적이고 다각적인 관계와 감정들이 얽히고 섥히는 작품적 매력을 보여줬죠. 또한 시로네에겐 마법사란 어떠해야 하는가. 라는 것을 가깝게는 왕국 수석 졸업생이자 공인 8급의 협회 정직원 플루, 멀게는 세인과 가올드, 줄루라는 1급 대마법사에게, 심지어 교사인 시이나와 에텔라, 아예 검사인 쿠안에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는 그 이상으로 무엇이 프로인가.를 시로네에게 알려주기도 했죠.


작품적으로 시로네라는 캐릭터에게 가르치는 동시에, 독자들에게 납득을 시킬 수 있었고요. 이러한 마법사. 프로에 대한 기준과 묘사, 서술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가장 와닿게 서술한 것은 천국행 스토리라고 봅니다.


더불어 시로네에 대한 캐릭터 그 자체에 대한 떡밥들이 뿌려졌고, 이는 훗날 스크럼블 로열 이후 겪는 시불상폭매를 통한 과거 사건의 개입에서 밝혀지는 사실이죠. 그리고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데, 별 다른 임팩트가 없을 순 있어도, 시로네라는 인물의 근본을 독자에게 납득시키는 동시에, 훗날 이어질 스토리를 위한 떡밥으로 작용합니다.


초반 무한의 마법사라는 작품에서 발암, 고구마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가 시로네가 너무 나이브하게 적을 대한다는 겁니다. 바로 위에서 비판하고 있듯이, 너무 반성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책임을 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이는 시로네를 제외한 이들에게 대한 거고 여전히 유효하는 비판입니다만, 시로네가 타인, 적에 대해서 대하는 태도 또한 크게 다를 게 없었죠.


근데 사실 그런 이유가, 시로네는 (에이미의 평가처럼) 자신을 전지적 시점으로 바라본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초반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쉽게 이해하기 어렵고 와닿지도 않았죠. 하지만 이는 사실 시로네라는 인물이 그만큼 완벽함에 가까운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시로네는 화이트 라인 후보생이 되는데, 그때 화이트라인에서 온 별이 말합니다. 카르라는 개념을 말하면서, 시로네는 약 90%의 전지적 합리성을 가지고 있고, 10%만의 주관을 가지고 있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대충 이런 개념으로..) 이것으로 시로네의 과거 태도들이 모조리 설명이 됩니다. 즉, 과거의 고구마스럽고 답답하던 태도와 판단이 어째서 그랬는가를 알 수 있으며, 더불어 그러한 것들은 초반부터 지금까지 쭉 떡밥으로 이어져서, 나중엔 아예 졸업시험-화이트라인 후보 테스트로 이어지는 스토리로 연계가 되버리는 거죠. 그리고 이건 시로네의 혈통과 밀접한 연관이 없다고 할 수 없고요. 


아예 라 에너미와의 관계에선 앞서 말하는 스크럼블 로얄 이후에서 겪게 되는 이스타스에 숨겨진 사건에서 자신의 시작을 확인하며, 자신은 뿌리가 없다. 라는 걸 알게 되는데, 이 역시 라 에너미가 과거가 없는 시로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천적관계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초반부터 설정된 캐릭터성이고 스토리이니 작가의 역량이 처음 리뷰를 쓸 때보다 상상 이상이라고 밖에 평가할 수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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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작품에 대한 내용누설이 있습니다. 



언젠가 광악 작가의 다른 무한전생 시리즈도 쓰게 될 거 같지만, 일단 이 글에선 '무한전생-무림의 사부'를 리뷰하도록 하겠습니다. 무림의 사부만을 리뷰하는 건 아니고, 약간 다른 무한전생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솔직히 이 소설은 굉장히 재밌었습니다. 굉장히 독특했고, 작가가 아는 것도 그럭저럭 많다는 게 느껴지더군요. 이는 다른 무한전생 시리즈를 보면 그 지식이나 식견이 꽤 넓다는 것을 더 알 수 있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반응이 좋진 않았는 데, 솔직히 그건 독자의 수준이 낮기 때문이지 작가나 작품의 수준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에 대해 변호하자면, 주인공에 이입한 본인들이 말초적 쾌감을 얻지 못해서 발생하는 반발심이지, 작품적으로 문제될 것은 아닙니다. 가령 마땅히 자신이 느껴야할 우월감이나 쾌감을 장천후나 사흑린, 특히 정천 같은 다른 캐릭터들이 느껴버린 것에 대한 반발인 셈이죠.


가장 강하고 뛰어나고 대단한 소광이라는 주인공, 그리고 그 주인공에 이입한 자신이 모든 것을 가져야 하는 데, 수행도중 눈맞아서 떡치러 도망간 천후나 흑린이었죠. 그 동안 그 여자 때문에 사부는 내다 버리고 자기들끼리 좋은 경험하면서 뛰쳐나간 겁니다. 소광에 이입한 독자들 입장에서는 마땅히 떠받들여져야 하고 자기 마음대로 돌아가야할 것이고 얻어야할 것인데, 정작 무공을 전수해주곤 그대로 뛰쳐나간 제자놈들이 배은망덕한 놈들에 배알이 꼴릴 상황인 셈이죠.


특히 이는 정천에 압권이었는 데, 어쩌다 재수 없이 만난 이후 무공의 극의를 죄다 빼먹어버리고(물론 그걸 준 것도 사실입니다. 우화등선 시켜버리려고...) 우화등선한 것도 모자라 자기는 등선하고 싶지 않아서 원영신 뱉어냈을 때 그걸 낼름 받아먹고 여전히 현세에 남아서 결국 정천 좋은 일만 해줘버렸죠.


그러다 너무 강해진(...) 정천 때문에 계획이 살짝 틀어지려고 하자 자기가 세운 문파를 통해 천후, 흑린에게 더 강해질 수 있게 거의 십 년 넘게 잊은 사부보러 만들게 했는 데, 이 과정에서 주변 여자들의 닦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죠. 결국  그 여자들은 소광 덕을 본 제자, 남자 잘 만나서 영화와 권세를 누리는 것인데 거기서 더 욕심 부리는 게 독자들 배알 꼴리는 상황이었던 거고요.


결국은 깜도 안 될 ㅈ밥들이 너무 잘 나가고 덕을 너무 잘 보면서 은혜 갚을 생각은 안하고 욕심만 부리는 꼴이 되는 마당이니 정작 (비록 반쯤 불순한 의도였다곤 하나) 그 은혜를 입힌 소광이 받아야할 것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느끼게 되며 결국 배알이 꼴리게 되는 거거든요. 비무대전 때도 잡것들이 서로 싸워대봤자 소광이 뜨면 무림 하나 쓸어버리는 건 일도 아닐 정도로 강했지만 결국 알아보는 사람은 독자들과 제자들 밖에 없었고요.


이런 배알 꼴리는 상황은 정천 때와 선계 때가 절정이긴 했다고 봅니다. 제자들은 사부 잘 만난 덕에 강대한 무공도, 명예도, 심지어 여자도 다 가진 상황이었지만 정작 사부는 그런 놈들 일시켰다 죄다 날려먹은 셈이었고 정천은 아주 짧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가질 건 다 가지고 얻을 건 다 얻어버리는 상황에 선계에 갔을 때 쉬지도 못하고 엿만 먹게 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쉽게 말해서 독자들은 자신이 이입한 소광이라는 캐릭터가 마땅히 얻어야 하고 대우 받아야할 것을 받지 못하고 대신 다른 놈들이 그 과실을 좋다고 먹고 꿀빨아대니 배알이 꼴린 겁니다. 이입한 주인공을 통해 자기들이 느껴야할 대리만족을 느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다른 놈들만 이득보니까요.



이걸 보고 작가가 그렇게 쓰지 말고 좋게 쓰면 되잖느냐. 할 수 있지만, 그럴 꺼면 걍 나루토나 블리치를 봐야되는 거고, 이건 흔해 빠진 주인공 깽판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선, 이 무한전생 시리즈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이해해야할 것이 바로 주인공이라는 겁니다. 이 주인공의 캐릭터성에 대해 이해를 해야 설명할 수 있는 거죠. 무한전쟁 시리즈의 주인공은 특기할만한 독특한 캐릭터성을 지닌 존재로, 그의 대전제이자 목적은 바로 게으름이라는 겁니다.


이 게으르다는 성질은 무한전생자이기 때문에 반드시 가질 수 밖에 없는 결과론적인 현상이고, 작가가 이 캐릭터를 창조하면서 그 캐릭터성에 대한 고민과 고찰을 뛰어난 수준으로 했다는 걸 알 수 있게 해줍니다. 다른 무한전생 시리즈에서도 나오듯, 처음 전생할 땐 혼란도 겪었고, 계속 전생이 거듭되면서 여러 삶을 살았습니다. 아마 할 수 있는 직업은 죄다 겪어봤을 것이고, 살면서 한 모든 경험도 다 겪어 봤겠죠. 그렇기 때문에 노력도 해보고 신념에 따라 살아도 보고, 미쳐도 보고, 폭군, 광인, 군주, 황제, 신선, 신, 악마 등등 많은 것도 되보았습니다.


이런 모든 경험들을 결국 언젠가 끝나야만 하는 개체로서의 삶을 수 백, 수 천번이나 겪었다는 소리죠. 따라서 해볼 거 다 해보고, 그에 대한 철학적, 비철학적 사색 또한 많았다는 겁니다. 그 결과 남는 것은 본인이 말하듯이 풍화되고 말아버린 감성이죠. 즉, 허무함입니다. 인생 별 거 없다는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고, 모든 것은 다 해봤고 경험해본 일이기 때문에, 굳이 똑같은 짓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싶지 않은 겁니다.


남은 것은 아무 것도 하기 싫다는 극도의 무력함이죠. 어차피 반복될 삶이고 다 해본 것이고, 그마저도 한 두번해본 것도 아닙니다. 어렵고 힘든 것을, 똑같은 걸 계속 반복해서 하라고 하면 누구든 귀찮을 수 밖에 없죠. 엄청난 노력을 통해 한번 성취했으나,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한다는 그런 거. 그런 걸 무한번 반복한 겁니다. 그런 수 억년, 혹은 그 이상의 삶을 반복한 인격은 이후의 모든 삶들을 어떻게 여길까요?


귀찮은 거죠. 다 해봤는 데 뭘 더 해보고 싶은 게 있겠습니까. 자연스레 끝나지 않는 무한번의 전생을 아무런 고뇌도 고생도 없이 살고 싶은 겁니다. 자신을 자극하는 거의 모든 삶의 요소들은 그저 귀찮은 것들일 뿐이죠. 남들은 그에 대해 고뇌고 하고 고민도 하고 고통도, 슬픔도 느끼고 어떤 목적을 위해 노력도 하고 신념도 걸고 하지만, 자신에게 있어서 그런 것들은 그저 귀찮은 요소들이지 대단한 것도 뭣도 아닙니다. 


따라서 무한전생 시리즈 주인공의 귀찮음은 그 무한번의 삶의 결과로 만들어진 고유한 스테이터스이고,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캐릭터성입니다. 끝 없는 능력은 그 끝 없는 삶을 통해 주어진 경험들일 뿐이고요.


그런 능력을 통해 독자가 원하는 주인공 깽판물로서의 쾌감이란 쾌감은 다 느낄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솔까 무슨 재미입니까. 그냥 자기 상상대로 뭐든 지 되고 뭐든 지 얻는 상상속 주인공과 다를 바가 없는데.


그런 캐릭터이기 때문에 그는 항상 귀찮음을 호소하고 문제와 엮이고 싶어하지 않으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자기 맘대로 되는 게 아니며, 그에 따라 무언가 일이 벌어지면 그걸 쉽고 무탈히 넘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과 정신만을 소모할 뿐이죠. 뭐, 잘 되는 건 아니지만..


물론 그런 캐릭터가 그런 목적을 다 이루면 소설을 진행할 것이 없죠.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 천후든, 흑린이든, 정천이든, 혁이든, 난희든, 준경이든, 마리든, 오거든, 닥터 포이즌이든 문제거리를 몰고오는 캐릭터를 만들어두는 것이고, 그들에게 발암이니 뭐니 하지만 그건 주인공의 시각으로 바라본 것을 독자의 시선에 따라 판단하기에 발생하는 문제일 뿐입니다.


실제론 그들이 겪는 일이나 갈등, 사건, 캐릭터성은 전혀 문제 없어요. 단지 그걸 주인공의 시각으로 보고 그에 따라 독자의 시선으로 재가공되어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발암으로 보이는 거죠. 가령 발암의 대표주자인 척준경의 경우, 그 자체로만 보면 큰 문제 없습니다. 2남 중 막내로 태어나 존나 우월한 형 밑에서 어수룩하게 살다 성장해서 초능력을 발현할 수 있게 되었고 히어로가 되었죠.


준경의 삶에서 주인공(척준현)의 시각이나 요소를 제외하고 판단해보면, 자기 신념에 따라 히어로 활동을 하며 자신의 한계에 따라 더 강해지려고 노력하며, 쌩판 모르는 남을 위해 자기 몸을 던져가며 지키다 크게 다치는 경험도 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그녀를 지키기 위해 강해지려고 했고,  정말 위험하고 안 해도 될 폭동, 내전에도 못 본 척하고 넘어갈 수 없어, 스스로 자원해서 남아 타인을 지키고자 했죠.


그러다 사람을 수 십명을 죽이기도 했지만, 그는 자기 신념을 위해 노력하고 몸을 던질 줄 아는 번듯한 청년인 것도 사실입니다. 단지 그 과정 속에서 주인공을 귀찮게 했고 빡치게 했다는 점이 독자들이 발암요소로 보는 이유죠. 척준현이라는 요소를 제외하고 척준경이라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뒤 본다면, 자기 신념을 가지고 노력하고 몸을 던질 줄 아는 아직 어설프고 성장해야할 존재이지만 훌륭한 주인공으로도 묘사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주인공의 눈에는 그냥 애새끼가 나대는 걸로 보이고 문제만 계속 발생하는 멍청이, 호구로 보일 뿐이죠. 마찬가지로 그 시각을 통해 보고 판단하는 독자들도 주인공의 시각(혹은 사상...)을 따라가기 때문에 준경이가 괜히 문제만 일으키는 놈으로 보이는 겁니다. 척준경 뿐만 아니라 다른 놈들도 그렇긴 합니다. 다만 가장 적절한 예시가 준경이일 뿐이죠.


그러나 그렇게 준경이 말을 잘 듣고, 천후가 여자랑 눈만 안 맞고 그대로 살았으면 작품은 십 수화도 못가고 끝날 뿐입니다. 그러니 그런 사건을 일으키는 문제적 요소는 반드시 필요하고, 그 존재에 의해 작품이 계속 가는 거죠. 귀찮음은 다르게 말하자면 타성적이고 타율적임을 의미하는 겁니다.


이유가 없으면 스스로 일을 안 만들고 뭘 안 해요. 따라서 다른 문제가 없다면 주인공은 아무 문제도 만들지 않을 것이고, 그에 따라 작품은 그대로 끝납니다. 능동적으로 뭔가 하거나 무언가 발생시키거나 작품을 이끌어갈 목표 같은 게 없죠. 그가 무언가 하려고 한다면 그건 필시 자신이 귀찮지 않기 위함이며 그에 따라 투자하는 시간일 뿐입니다. 혹은 복수와 같은 것일 뿐인데, 이 또한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어쩌다보니 발생한 일에 따라 타성적으로 행동한 결과일 뿐이죠.



이런 캐릭터임을 이해해야 작품이 돌아가는 걸 제대로 이해하고 그 인물들간의 관계와 그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건과 그 사건과 사건 당사자들, 그리고 주인공의 행보를 지켜보는 독자들이 답답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냥 답답하다 발암이다 할 게 아니라, 그냥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주인공과 주변인물인 셈이죠. 이는 주변인물이 노답인 게 아니라 주인공이 노답인 겁니다. 뛰어나고 대단한 지성과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결국 지 귀찮으면 승질내는 개또라이죠. 목표가 귀찮지 않음에 있다는 건 반대로 귀찮을 일은 모두 노답 발암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주변인은 모두 정상인(이거나 정상인에 가까운... 인물)들이니 인간적 고뇌와 고민, 신념과 행동을 보일 수 밖에 없고, 이는 개별 인물에 대해 주인공의 요소를 배제하고 봤을 때 지극히 합리적인 현상이자 결과입니다. 히어로인 준경이가 남을 위해 위험에 몸을 던지고, 어쩌다 만난 예쁜 여자랑 능력 있고 몸 좋은 제자가 찐덕하게 몸을 섞고 떡정 붙듯이, 혁이나 난희에게 생명의 은인이자 키워준 엄마이자 돌봐준 누나이며 사랑하는 아내이기 때문에 끊어질 수 없는 정과 사랑을 느끼는 것.


이 모든 게 다 정상적인 겁니다. 주인공의 삭막하고 그에 따른 작가의 필체가 어우러져 노답 씹새끼들도 느껴지는 것 뿐이죠. 



그런 요소들을 이해하고 본다면 무한전생 시리즈, 그리고 무림의 사부편은 이상할 게 없는 작품이고, 더불어 상당히 재미도 있는 작품입니다. 어쩔 수 없이 배알이 꼴린 건 그렇다치고 넘어가야 합니다.


또 특기할만한 점은, 뭐.. 글을 쓰는 저 본인이 무협에 큰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는 것 뿐이지만 작가가 무공에 대한 이해도도 높긴 하다는 겁니다. 무공이나 검의 묘리, 이치, 무공에 대한 설명이 상당히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설명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요. 무한한 인생을 살아오며 겪은 게 많아서 그런 지 모든 것에 대해 마스터 했다 할만한 소광의 무공에 대한 능력은 정말 끝이 없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죠. 그러다보니 무공 그 자체에 대해 상당히 설득력 있는 설명들이 많았습니다. 주로 응용에 대한 이해도가 특히 재밌더군요.



그리고 선계와 관계된 서술도 꽤 재밌었습니다. 역시 이 부분에서도 배알 존나 꼴릴 부분이 있긴 하지만 여러 캐릭터성을 따져본다면 존나 당연한 겁니다. 수 억년, 혹은 그 이상 함께하며 서로 겪을 거 다 겪고 알 거 다 알만한 상제나 신선들이라 그런지 천무대선인 소광을 존나게 잘 알죠. 그래서 부려먹고 엿먹이는 실력 또한 수준급입니다. 소광의 궤변도 잘 안 통하고 무조건적일 수 밖에 없는 깡패권력질(사실 정당한 짓이지만...ㅋㅋ)에 무력한 소광의 지랄발광도 재밌었습니다.


물론 주인공에 무조건 이입하게 된다면 자기 맘대로 안 되는 상황에 좆같고 배알이 꼴릴 수 밖에 없고 뭐 그건 저도 인정합니다. 작품에서 동일하게 내 맘대로 안 되고 답답한 상황이 벌어지면 배알 꼴리고 좆같은 건 저도 같긴 하니까요. 하지만 계속 말해왔듯이 그건 욕먹을 게 아니고, 작품의 전개 상 벌어지는 게 이상한 게 아닌 겁니다. 상황을 잘 짜고 캐릭터의 구성과 역할과 위치를 적절하게 배치시키는 작가의 솜씨 덕에 작위성이 느껴지지 않고 전개상의 설득력, 개연성이 있는 작품이라고 평할 수 있거든요.


즉, 작가의 필력이 의외로 뛰어나서, 일견 개판으로 보이는 작품 구성이지만 천천히 뜯어보면 의외로 꽤 그럴듯하다는 겁니다. 설득력 있는 인물들의 행동과 생각, 그에 따라 발생하는 사건의 개연성. 독자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 뿐이지, 작품 자체는 평균보다 분명 위에 있는 잘 쓴 작품 맞다고 봐요. 항상 산으로 간다느니 원래부터 산에서 시작했느니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물론 좀 개판처럼 돌아가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위성이나 말도 안 되는 설정 같은 건 없었어요.



이런 요소들 때문에 광악 작가의 작품이 굉장히 취향 저격인 거고, 재밌다고 느끼는 겁니다. 독특한 주인공의 캐릭터성, 전개나 묘사의 위트, 미묘하게 주인공 엿먹일 줄 아는 전개 등등.. 단점이 없다곤 말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가치 있는 작품이라고 봅니다. 이런 특이하고 재밌는 작품이 흔한 건 아니거든요. 필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말도 안 되는 설정이나 손발 오그라드는 요소랄 것도 없고.. 오히려 신랄하고 직설적인 면에 더 재미를 느끼죠.


주인공이 제대로 각잡고 나서면 사이다 드링킹이겠지만 그랬으면 애초에 설정된 캐릭터성의 붕괴이고, 역시 그랬으면 작품이 진행될 리 없이 시작하고 얼마 안 가서 끝났겠죠. 백수나 니트의 게으름뱅이질에서 볼 게 뭐가 있겠습니까. 주변인들이 사건을 만들고 거기에 엮여야 재밌는 거지..



뭐, 하여간 말했듯 단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클라이막스의 애매함.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될 수 있을 정도죠. 오히려 중간에 애매하게 배치된다고 할 정도이고, 역시 배알이 꼴리는 게 좆같은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남 좋은 일 해주고 자긴 아무 것도 얻는 게 없는 거죠. 물론 그거 가지고 뭐라고 하거나 찌질댈 주인공은 아닙니다. 그런 캐릭터니까요. 이미 해볼 거 다 해봤고 심지어 맘만 먹으면 언제든 할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건데 그런 걸로 배알이 꼴려서 지랄댈 건 아닙니다. 무림의 사부에서도 두 제자가 사부 보러 왔을 때 배알이 조금 꼴리긴 하겠지만 그거 가지고 뭐라고 하진 않았을 거라고 했죠. 대신 다른 이유(사람 끌고와서 귀찮게 할 일을 만듬)로 개처럼 쳐맞았지..


배알이 꼴리는 데 사이다가 거의 없습니다. 웃길만한 상황 같은 건 많고 주인공 엿먹게 되는 상황에서 웃음을 찾아야죠. 그냥 보면서 좀 그런 거에 집착을 안 하면 됩니다. 좀 박하게 말하자면 주인공 엿먹이는 꼴보고 재미를 찾으면 됩니다.


앞서 말했던 하이라이트는, 히어로 쪽에선 김현 조지는 것과 무림의 사부에선 두 제자를 존나게 패대는 부분에서가 오히려 클라이막스에 더 가까웠다고 봅니다. 뭐, 그렇다고 작품 구성에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차피 닳고 닳은 존재가 무한전생자 캐릭터이기 때문에 글도 그만큼 신랄하고 직설적이고 그에 따라 작품의 구성이나 전개로 비슷하게 돌아가죠.


특히 좆같이 선계에 끌려와(사실 지 잘못이었지만) 선계에서 좆같이 일만 하다 좆같은 제자새끼들이 상제한테 자기 썰 풀고 감동시켜 환생하는 좆같은 경험을 겪는다던가.. 주인공 엿먹는 꼴보면서 우스웠는 데, 결국 상제 또한 주인공인 천무대선에게 마음이 있었던 건 사실이고 그래서 좋다고 자살할 때 주인공이 속으로 쓴웃음을 짓던가, 상제가 두번째로 눈물을 흘렸다는 걸 보면 의외로 담담하게 여운을 조금 주는 것도 있었습니다. 오히려 이런 전개이자 필체, 묘사였기 때문에 더 이 소설답다는 느낌을 받았죠. 무한번의 죽음과 무한번의 삶 속에서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었고, 사랑하거나, 정이 붙은 사람과 죽거나 떠나 헤어지게 되는 것에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 또한 수 없이 겪어온 것들이라 그저 쓴웃음 짓고 담담하게 떠날 수 있는 주인공의 모습은 그 캐릭터성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모습이었거든요.



솔직히 작품이 엄청나게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평타 이상을 치는 작품이라고 보고, 독자들이 이런 종류의 소설을 받아들이기 좀 어려워하는 면도 있다는 건 맞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미가 없거나 구성이나 전개, 개연성, 캐릭터성과 같은 총체적인 작품성의 면에서 욕을 먹을만한 건 아니라고 봅니다. 뭐 비판할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솔까 재밌는 건 사실이에요. 기본기 부분에서 꼬투리 잡을 부분은 많지 않고요.




덤으로, 외전 이야기를 좀 하자면 장천후와 사흑린보다 이혁과 난희의 관계가 좀 더 재밌고 흥미롭긴 했죠. 앞서 말했듯, 그리고 소설상에서도 나오든 이혁과 난희의 관계는 일반적인 남녀관계나 부부관계가 아니라 좀 더 깊고 진지한 것이었습니다. 혁에게 난희는 모든 것이었고, 난희에게 있어서 혁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무겁고 커다란 존재였어요.


그런 혁이 자신만 등선하고 먼저 죽은 난희에게 깊은 집착의 감정을 느끼는 건 매우 당연한 겁니다. 그래서 신선이 되고도 잊지 못해 진지하게 상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고 상제의 호의로 한번 환생시켜줬죠. 그리고 환생한 것은 현대의 배경에 무림이 존재하는 원래 살았던 세계의 미래세계였습니다.


그 이전에, 솔직히 왜 서양 쪽 이야기가 갑자기 나왔는 지 잘 이해는 안 갔습니다. 볼 때는 언젠가 관련 이야기가 나오겠구나 했을 뿐이죠. 하지만 안 나오고 본편의 이야기가 끝나더군요. 그래도 뭐.. 세계관의 완전성을 높혀주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그에 대해 뭐라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굳이 뭐라고 한다면 묘사에 큰 필요성이 없었던 내용이었다고 비판할 순 있겠죠. 설득력 있는 비판이고요.


하지만 외전에서 등장하긴 했습니다. 진짜 존나 짤막하게요. 심지어 거의 별로 중요하지도 않게; 뭐, 이런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고.. 그렇게 환생한 난희와 혁의 만남과 지속되는 사랑은 그 자체로 봤을 때 꽤 감동적인 면이 있었죠. 이 또한 소광의 시점을 통한 독자의 시각으로 판단하면 좆같긴 하겠지만요. 사부 냅두고 지 혼자 홀라당 내려가서 지 좆대로 놀아나는 꼬라지를 생각하면 소광 입장에서(정확히는 그걸 보는 독자의 입장에서) 배알 꼴리고 분통 터지는 거죠. 다른 제자들이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따라서 하는 꼬라지 보면 진짜 배은망덕한 새끼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ㅋㅋ


하여튼, 그런 혁과 난희의 사랑은 정말 예쁘긴 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 아내를 찾기 위해 길거리에서 애절하게 노래를 했다는 혁과, 그러다 아이돌이 되어서 인기를 구사하다 어떻게든 사랑하는 자기 아내를 찾기 위해 돌다 결국 마침내 찾은 난희. 그런 난희를 발견하자 별안간 껴안고 누나라고 부르죠.


자신을 위해 등선 이후 그걸 잠시 내려놓고 자길 찾으로 환생한 남자라는 점은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렇게 찾아내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서로만을 위한다는 태도는 상당히 멋있었고 생을 초월한 사랑에 대한 그 둘의 끈끈한 태도는 볼만 했죠. 역시 소광을 배재하고 단지 단 둘만을 봤을 때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고 전후관계, 서로간의 관계를 잘 아는 독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더 애틋한 거죠.


자기가 너무 유명하다보니 본의아니게 난희에게 피해를 주게 되었고, 그거 때문에 결국 서로 강수를 둬가는 모습도 귀여웠고, 선녀옥공으로 너무 예뻐진 난희에게 추파를 던지는 놈을 좀 패주고, 아예 비무로 가문 하나를 박살내는 모습을 보면 사랑하는 아내이자 자신의 모든 것인 난희를 위한 남자다운 혁의 모습도 꽤 멋있었죠. 그 뒤에 이어지는 SSSS급 무인이자 많은 이들을 상사병에 앓게 한 걸 보면 역시 그것도 결국 소광 덕이라는 사실을 깨닫으며 배알이 좀 꼴릴 순 있다지만, 외전도 볼만한 이야기였습니다. 두 연인의 전생을 초월한 사랑이야기였죠.


뭐, 소광의 전생 후 졸부집 자식 이야기는 과연 소광답다는 말이 아깝지 않았고요. 역시 말빨과 판단력 하나는 지리는 놈이라는 겁니다. 역시 그 경험치 어디 안 간다는 거죠 ㅋㅋ




마지막으로, 소광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언제나 자기 발목을 잡는 자충수가 됐다는 게 재밌는 부분입니다. 초반부 어린 애 살려주고 그 집안에 식객으로 살았던 것도 그렇고, 정사간의 충돌에서 아는 애 죽었다고 눈깔 뒤집어져서 환골탈태해버리고 시산마협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이후도 그렇죠. 일반 생활이 귀찮아서, 그리고 재미삼아 천후를 제자로 데려오고 여자랑 눈 맞아서 뛰쳐나갔을 때도 나중에 쭉 귀찮을 기연이 발생하게 되었고, 그렇게 뛰쳐나간 거 때문에 술 못 마셔 직접 갈 때 하필 재수 없게 정사간의 싸움질이었고 그러다 사흑린을 주웠죠. 그 사흑린도 천후랑 똑같이 여자 때문에 나갔고 말이죠.


그러다 잠깐 낚시좀 하러 갈 땐 이난희를 주워버리고.. 그 이난희는 혁이를 주워버리고.. 나중엔 그렇게 눈 맞아 나간 놈들이 나중에 비무대전 때 한계를 느끼고 스승님 찾아오게 되었고 그 결과 같이 끌고온 애들 때문에 이사하게 되었죠. 그렇게 이사한 결과 좀 잘 사나 했더니 결국 일월신교 장로와 엮이게 되었고, 난희와 혁이가 결혼하고 애 때문에 기저귀 훔쳐올 때 정천과 만나 진짜 귀찮은 일이 발생해버렸죠. 


여기까지, 따지고 보면 웬 세가의 여식을 구했다 식객이 되어버리고, 그 식객으로 살다 그 집안 높으신 분과 귀찮게 엮기게 되었고 그러다 뛰쳐나와버린 데다, 그렇게 뛰쳐나와 자리 잡게 된 곳에서 하필 재수 없게 사건 터져 눈깔 뒤집어져 환골탈태, 그 사실 때문에 귀찮아져 은거해버렸고, 그러다 제자들 주워다 키우고 그 제자들이 귀찮은 놈들 끌고와 이사해버렸고, 이사한 뒤 정천과 만나서 원영신 내다 버리게 되는 등 결과적으로 자신의 선택은 죄다 결과적으로 귀찮은 일로 귀결되버렸습니다. 그 정천은 등선해버리고 남은 후회는 소광의 원영신 덕에 너무 강해져버렸고.. 그 결과 다시 제자들이 찾아오게 되었죠.


이후로 더 점입가경인데, 그 소광이 내다 버린 원영신은 결국 알툴라에게 가게 되었고, 그 결과 정천은 사념은 흩어지고 알툴라가 왕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 지 혼자 뻘짓하다 주화입마에 빠져 소광의 은거지로 향하게 되었고, 그러다 다시 원영신을 만들고 알툴라를 개패게 되었죠. 그러다 등선하기 싫어서 덜 만들어진 원영신을 조온나게 뿌려내느라 전세계에 원영신의 기연을 얻은 이들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원영신을 처음 버렸을 때 정천의 등선과 알툴라의 기연을 만들어냈으니, 이 또한 결국 자기탓.. 그러다 결국 정천이 강림하고 상제까지 내려와 납치(?)해서 강제 등선해버리니 이렇게 된 건 결국 다 자기탓입니다 ㅋㅋ 뭐 그러다 다시 딜을 보고 내려오긴 했지만 기연을 얻은 남방의 식인종이 개꺵판을 치게 되었고, 그러다 사흑린과 이란난의 자식에게 까지 마수를 미치게 되었으니 그에 따라 스승인 소광의 은거지까지 오게 되었고, 소광이 그 식인종을 죽이게 되었는 데, 결국 이것도 자기가 뿌린 원영신 조각 때문에 발생한 난리였고, 그렇게 저승에 가게 된 그 오염된 영혼 때문에 난리가 벌어져 결국 또 강제 등선으로 이어지는 결과가 발생합니다. 네, 자기 탓이죠.ㅋ


심지어 선계에서도 좀 게을러볼까 해는 모든 수작은 결과적으로 다 자기에게 돌아와서 귀찮은 일로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세계 하나 재부팅 하자 바로 보고 올려버려서 역시 일 잘한다고 일시키고, 제자들 등선하자 일 부려먹으려는 데 제자끼리 이어줬던 거 때문에 등선 못한 난희 보러 환생하고, 그거본 다른 놈들도 환생해버리고.. 결국 자기 혼자 일 다하게 되었고, 다시 등선하자 그래도 이제 좀 편하게 지낼까 하면서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놓고 그 중 하나인 선도 복숭아 셔틀을 상제에게 들켜버리니 결국 변명은 안 통하고 자기는 못 놀고 일하게 됐습니다. 저승해서 영혼 세탁한 것도 빨리 끝내버리니 또 다른 일 터져버리고 그것도 소소하게 자기 탓.. 


결과적으로 스토리 내내 발생한 사건들 대부분은 따져보면 자신의 선택들이 이리저리 엮이고 섥혀 발생하는 일들이었죠. 좁게 봤을 땐 그럭저럭 현명한 선택이었을 진 몰라도 크게 본 그림에선 그게 다 자기에게 돌아오는 귀찮은 일들이었으니..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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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작품에 대한 내용누설이 있습니다. 

소설 이차원 용병의 다른 에피소드들도 결코 호락호락한 편이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휴프노편이 정말 인간, 사랑에 대한 통찰을 기반으로 높은 완성도를 이끌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아디스편도 굉장한 포스를 뿜어내서, 바로 그 다음 미션인 휴프노 미션이 그리 어렵다거나 대단할 거라는 기대는 안 했습니다. 아디스편에서 작가가 보여준 치밀하고 설득력 있는 머리싸움과 정치, 경제적 다툼은 작가 특유의 필체 때문에 투박해보일 순 있지만 이 또한 굉장히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거든요.


초일류 작가들의 물 흘러가듯, 그러나 들어있을 건 다 있는 꽉찬 전개와 묘사는 아니었지만, 그런 작가를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원래 그런 정치, 경제적 다툼과 전개를 묘사하는 건 정말이지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더더욱 바라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전개와 내용은 분명 개연성 있는 내용이었던 것도 사실이죠. 정치싸움과 같은 머리싸움은 그런 개연성과 논리적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게 굉장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금호 작가는 투박한 필체이지만 그걸 적절히, 그리고 간결하게 잘 보여줬죠. 정치싸움은 단지 논리력과 사고력과 같은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개인적 특성. 즉, 그 캐릭터의 성향과 개성 또한 잘 녹여야 하며, 감정 또한 분명히 개입합니다. 정치에 있어서 감정을 숨기거나 통제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한 만큼, 그러한 감정적 동요나 통제되지 못하고 터져나오는 감정에 의한 결단, 흔들림을 묘사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죠.


이는 마지막의 바스톤의 흑화와 그걸 이끌어낸 묘사, 찌질함에 가까운 아디스의 과거를 감추고 미션 자체에 흐린 사실 등의 묘사는 생각해보면 개연적이고 타당한 묘사와 전개였습니다. 그리고 끝에 가서는 반성, 진보할 수 있도록, 아디스에게 새로운 선택을 하게 해주며 영혼의 격이 상승하게 되죠.



이런 아디스 미션의 완성도였기 때문에 휴프노 미션에 대해선 그저 믿고 보는 정도, 아디스편이 이런 완성도였으니 휴프노 미션도 평균이나 그 이상의 완성도를 가질 것이라는 보장은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게 웬걸? 이번 편은 아디스편과는 다른 방향으로 걸작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주인공인 강철호의 가장 뛰어난 특성이 바로 언변이죠. 하지만 시작부터 이게 막힙니다. 눌변으로요. 그리고 시작한 뒤 얼마 동안은 호감도가 떨어지기만 하는 등 적응 못하고 삽질만 하죠.


근데 중요한 건 강철호의 판단력입니다. 아디스만큼은 아니더라도 머리 잘 돌아가는 캐릭터죠.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상황을 분석하고 현실인식을 하며, 다른 방법을 찾고 인물의 성향과 미션의 전개를 유추하거나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런 계획이나 판단이 꽤 잘 들어먹기도 했고요.


작품 내 전개의 기점은 폴스를 영입한 이후로 한번 변하게 되는데, 연애에 대해 알지 못하는 독자 강철호와 휴프노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캐릭터라는 점이죠. 이 이후로 사피엘의 호감을 사고 나름 꽤 잘 돌아가게 됩니다.


폴스가 중요한 이유는, 연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강철호와 휴프노에게 연애 공부를 해줬다는 건데, 작가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작가보다 똑똑할 수 없다는 것처럼 작가가 알지 못한다면 캐릭터 또한 말할 수 없을 만한 이야기를 강철호, 휴프노에게 해줍니다. 여성에 있어서 여러 타입이 있고 사피엘은 그 중 어떤 타입인지에 대한 설명 부분과 그런 여자의 마음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강의하는 부분이죠.


이 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는 데, 단지 머리속으로 설정 짜듯이 공상적인 내용이 아니라 실제로 사피엘의 내면과 언행을 해당 타입과 결부시켜 해석하고 분석하며 이해시키는 부분이 놀라웠습니다. 대개 이런 내용을 서술할 땐 어떤 작위성이 느껴지거나 설득력이 떨어지기 쉬운 데, 의외로 상당한 설득력이 느껴지는 부분들이었기 때문이죠.


물론 실제 인물이 아니라 소설 속 캐릭터이고 그 캐릭터를 설정한 작가가 그 설정을 분해한 뒤 소설 상에서 전개시켜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지만, 캐릭터의 성향을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설정하고 표현시킨 것은 굉장히 뛰어난 작가적 역량이죠. 캐릭터에 대한 이해와 분석, 그리고 그에 따른 묘사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통찰 없이는 결코 가능하지 않은 일이거든요.


이전의 미션과 마찬가지로 금호 작가는 인간과 감정에 대한 통찰이 상당히 뛰어난 편이고 그런 이해를 기반으로 자연스러운 캐릭터 창작과 묘사가 가능한 것이지요. 이는 사피엘이라는 까다로운 캐릭터를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데 꼭 필요한 지식들인 겁니다.


여자이자 기사, 청렴결백하며 정의로운 성격, 가문의 부흥을 위해야 한다는 일생의 목표, 그리고 기사도에 대한 강박적 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이기 때문에 가지는 컴플렉스와 고민, 그리고 한계.


이 특성들을 절묘하게 버무려 실제 있을 법하다는 개연성을 가진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묘사했다는 점에 대단하다는 겁니다.


이런 특성의 캐릭터이기 때문에 정치가인 백작의 저택 방문이 굉장히 중요한 두번째 급변하는 전환점이 되는 데, 백작이 저택에 방문해 쏜즈, 사피엘, 다른 자작 한명을 평가하며 누굴 기사단장으로 뽑을 것인가를 결정하게 되는 데, 이때 사피엘의 모든 가치를 부정하고 박살을 내버리게 되거든요. 분명 검술로선 사피엘이 더 뛰어났으며 기사도와 판단력, 성실함 등의 개인적 인격 또한 뛰어났지만, 너무 기사도에 강박적이게 살았기 때문에 오히려 쏜즈에게 패배하게 되죠.


오히려 사피엘의 기사다움이 자신의 발목을 잡았고, 부족하지만 더럽더라도 자기 이상의 역량을 낼 수 있는 쏜즈를 기사단장으로 발탁하게 되죠. 이는 사피엘의 모든 노력과 인생관을 처절하게 박살낸 겁니다. 훌륭한 기사이고자 했는 데 오히려 그 때문에 자신의 미숙함과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생겨버렸고, 그 이전에 여성이기 때문에 남자보다 약하고 남자들 사이에서 카리스마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점, 그런 이유들 때문에 결국 끈 떨어진 연 취급 당하며 모든 노력과 인생관이 박살난 겁니다.


그래서 중증 우울증에 걸리게 되는 데, 기실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 모욕과 창피를 당하고 노력과 인생관이 부정 당하며 박살난 인간이 우울증에 걸리지 않고 여전히 고고하고 당당하면 그게 더 이상한 겁니다. 쏜즈와의 대련 중 남자 부하들 앞에서 생리라는 약점이 잡혀서 더러운 모욕과 창피를 당했으니 그 자체로도 정신병 걸릴 일이죠.


하물며 기사도에 대한 강박적 집착과 사랑에 가까운 애정을 지닌 이가 그것마저 부정 당했으니..


하지만 표층심리를 읽던 강철호와 같이, 그런 사피엘은 뛰어난 편이었죠. 원체 정신력이 강했기 때문에(더불어 초기이기도 했지만..)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했죠. 누워서 자야한다고, 정신차리라고 스스로를 닥달하면서요. 물론 이것도 얼마 안 가서 심해졌죠. 며칠 동안 방 안에 틀어박혀 나가지도 않고 아마 간간히.. 울기도 하면서요. 그냥 그대로 놔두면 아마 자살하기 직전까지 가는 것도 오래 안 걸렸을 겁니다. 그런 상황이면 남자든 여자든 누구든 그럴 수 밖에 없을 테니까요.



이런 상태에서 폴스에서 또 다른 충고를 받고, 강철호는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제대로 먹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부분이 3번째 전환점인데, 전개상으로도, 캐릭터의 내적 성장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바로 진심으로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고자 한 부분이거든요.


이때 묘사가 상당히 훌륭한 데, 강철호가 휴프노에게 동조하면서 작품의 시점이 변화하게 됩니다. 정확히는, 똑같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지만 그 시점의 주인공이 강철호도, 휴프노도 아닌 제3의 하이브리드가 되어버리거든요. 휴프노까진 아니지만, 강철호도 아니며 강철호를 타인, 그라고 표현하는 등 휴프노에 가까워질 정도로 동조하게 됩니다.


그에 따라 자신의 감정 또한 진심으로 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미션이고, 실제로 사랑하지 않으며, 오히려 실제로 사랑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방어적인 심리적 태도를 취했죠. 그렇기 때문에 사피엘을 하나의 공략 대상으로만 보았고, 사랑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폴스가 말했죠. 여자는 남자가 진심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그런 겁니다. 휴프노 역할을 하고 있던 강철호가 진심이 되지 않으면 사피엘의 사랑을 얻어낼 수 없었던 거죠.


이런 면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혀주는 요인이며, 그만큼 작가가 여자, 사랑에 대한 이해와 통찰 또한 상당하다는 겁니다. 사랑을 경험해보거나 사랑하며 사귀어본 적 없는 휴프노와 강철호라는 캐릭터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면서, 사랑에 대한 이해를 가진 누군가를 창조하여 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가진 내용을 서술할 순 없기 때문이거든요. 하지만 금호 작가는 그걸 서술해냈죠. 결코 쉬운 게 아닙니다. 심지어 사랑을 해본 사람도 묘사하고 서술하기 어려운 내용인데 말이죠. 단순히 사랑을 그려낸 게 아니라, 그 사랑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이루어져야 한다는 걸 언어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선 그걸 분석해야 합니다. 그래야 폴스처럼 분석해서 알려주고 충고해주죠. 이게 아디스 미션만큼, 혹은 그 이상 뛰어나다 평가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그렇게 동조한 휴프노-강철호는 진심으로 사피엘을 사랑할 수 있게 됐고, 폴스는 그걸 바로 찝어냅니다. 눈빛이 변했다고요. 그렇죠. 사랑은 진심으로 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진심을 바라는 여성에게 장난으로, 혹은 여지를 남겨놓고 들어오면 그 여성의 진심을 받아낼 수 없습니다. 우선희도 말했죠. 동조가 높으면 유리할 거라고.


주인공의 내적 성장은 그 자체로 작품을 보는 독자의 집중과 심리적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의 흡입력이 가장 증대되는 부분이 바로 이 시점인 거죠. 이 전환점에서부터 마지막까지 전개되는 겁니다.



아디스 미션의 포스가 쩔었지만,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아디스 미션보다는 휴프노 미션의 완성도와 전개, 캐릭터 설계를 더 높게 칩니다. 솔직히 거의 버릴 캐릭터도 없고 작품적 장치나 전개나 복선, 개연성, 캐릭터 설정, 심리묘사 등등.. 가장 높은 완성도를 가진 에피소드라고 전 감히 평가합니다. 그럴만한 완성도를 보여줬거든요. 


솔직히 아직 휴프노 미션의 완결까지 카카오 페이지 분량으로 20화 조금 넘게 남아 있긴 하지만, 현재까지만 보고도 굉장한 완성도의 작품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휴프노편의 끝이 굉장히 기대되고 있고요. 퍼슨스 미션부터 유리발츠, 스트로본과 케세인 미션, 아디스 미션까지 거치며 점진적으로, 조금씩이지만 분명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성장해나가는 30세 성인 주인공의 성장 또한 사실적이기도 합니다. 중간중간 현실에서의 고충과 고민, 감정적 동요 또한 사실적이며 캐릭터의 성격과 성향을 적절하게 보여주는 작품적 요소이기도 하고요.


처음엔 그리 대단한 수준의 작품이라고 보진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작가 특유의 필체가 투박했고, 괜히 독하고 마초적인 척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혼자서 진지빠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느낌이 좀 들었고, 그렇기 때문에 전개나 캐릭터 설정 등에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애매하다는 느낌을 자꾸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생각해보면 문제도 없고 그 자체로 괜찮은 수준의 작품이라는 건 인정하고 재미 또한 느꼈죠. 불리하거나 감정적으로 동요할 법한 순간에도 주인공의 뛰어난 판단력과 현실인식은 매력적으로 보여졌고요. 하지만 아디스 미션을 거쳐 휴프노 미션에서 그 진가를 좀 더 제대로 파악한 셈입니다. 생각보다 더 재밌는 작품이었던 거죠. 저 개인적으로 가장 뛰어난 완성도와 작품성을 지녔다고 평가하는 건 다른 미션이 아니라 바로 휴프노 미션이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미션을 놔두고 휴프노 편을 리뷰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이 부분은 정말 추천할만한 에피소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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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작품에 대한 내용누설이 있습니다. 


최근 카카오 페이지에서 본 몇몇 소설 중에 꽤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작품들이 몇 있는데, 그 중 황제와 여기사, 시그리드, 마성의 황자와 나. 라는 3작품이 눈에 띄더군요. 재미도 재미지만 무엇보다 페미니즘적으로도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요 몇 주 전 메갈과 관련된 이슈가 폭발하듯이 점화된 적이 있는데, 그 사건 이후로 알게된 작품이라 그런지 다른 의미로 더 재밌게 느껴지더군요.


사실 아직 다 본 것도 아니고 초반부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시그리드


앞서 언급한 3작품 중 가장 적게 본 것이긴 합니다만, 어찌됐든 이 작품은 기사의 표본과도 같은 모습으로 살아왔다 누명을 쓰고 고문 당한 채 모든 것을 잃고 사형 당한 어느 여기사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5년 전으로 돌아와 다시 한번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그 기회에 따라 이번엔 다르게 살아보자고 마음 먹고 실천하는 게 내용이죠.


왜 이 작품을 다른 세 작품과 함께 뽑았냐면, 작품의 주인공이 되는 여성이 자신을 규율하는 사회적, 직업적 가치에 무비판적이고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살았던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번의 죽음 이후엔 그것이 설령 작품 내의, 시대적 상황 내의 젠더역할로서 나뉜 여성적 행동을 하게 되었다곤 해도, 분명한 것은 수동적이고 기계적으로 살아왔던 부품이, 주체적이고 인간적으로 교감을 하며 선택하고 책임지는 인간으로 변화함에 있다는 거죠.


기사의 표본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기사로서의 행동에 집작하고 스스로를 규율했던 것을 시대적, 성역할적 금제나 사회적 요구라고 생각한다면, 그러한 규율에서 어느 정도 타협하거나, 스스로 벗어나려고 했던 것이라 해석할 수도 있죠. 사실 이 작품은 페미니즘이나 성평등적이라기 보단 자유주의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아직 끝까지 본 게 아니라 뭔가 더 생각해볼 모양새가 나올 수 있을 진 모르겠습니다만..


- 추가 설명.


최근 외전 조금 남겨놓은 채 완결까지 다 보고나서 내용을 추가합니다. 먼저, 시그리드라는 캐릭터와 연관되는 여러 인물들의 긍정적 변화와 미래의 변화는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습니다. 특히 본편 마지막회는 이런 종류의 회귀물에 있어서 굉장히 훌륭한 결말 묘사라고 생각하는 데, 대부분의 회귀물이 그 이유를 맥거핀으로 두거나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에 반해, 시그리드의 회귀에 대한 묘사와 설명은 굉장히 극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전에서 묘사되듯이, 원래 시그리드가 황제의 개로서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황제에 대한 충심과 의심 없이 따르기만 하는 글자 그대로 도구적인 인간으로 살며 온갖 악행과 학살을 자행하는 쓰레기 같은 최악의 인물이었고, 그에 비해 방탕하긴 하지만 그래도 인간으로서의 개념은 있었던 베라무드의 충돌을 대비하며 본편과 외전의 인물상을 굉장히 부정적인 상황 하에서 그려내었죠.


로웬그린, 마리쉐즈 등 시그리드에 대한 평가 또한 볼만한 부분이었고요. 그만큼 시그리드라는 인물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인간이 아닌 글자 그대로 도구적으로 움직이고 명령 받은 대로만 움직이는 개와 같은 존재로서 기능하는 데, 그러다 베라무드를 구해서 돌아온 뒤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죠. 시그리드가 빈민가에서 학살의 책임자로 일을 저지를 때 베라무드가 진짜 죽이려고까지 했던 것처럼요.


그 결과 시그리드는 쓸모가 다 한 뒤 누명을 쓰고(사실 누명건과는 별개로 그만한 악행을 한 건 맞지만.) 고문 받다 오러 코어를 뽑힌 채 처형 당했습니다. 베라무드는 그런 시그를 보고 이런 걸 원한 건 아니었다고 하지만.. 결국 본편 마지막화에서 아르카나와 베라무드는 서로 만나게 됩니다. 과거로 돌아가는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죠. 모두가 후회하고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고치고 원하는 결말을 새로 쓰기 위해서요.


아르카나와 베라무드가 대화하면서 서로의 부탁을 약속합니다. 시그리드의 오러 코어를 들고 둘, 혹은 시그리드의 오러 코어이기 때문에 셋 중 하나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면서요. 그렇게 시그리드의 오러 코어를 매개로 마법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시그리드가 눈을 뜨죠.


이 부분이 정말 훌륭한 묘사였는데, 어째서 시그리드가 과거로 돌아오게 되었는가 하는 인과를 훌륭하게 설명하는 동시에 시그리드라는 인물이, 크나큰 배신을 겪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기도 하며, 이는 그 자체로 두번째 기회를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그리드 본인이 했던 악행에 대해 충분히 죄책감을 느낄 수도 있고, 자신의 선택을 바꿀 수도 있으며,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을 수도 있고, 충성의 대상을 고를 수도 있으며, 앞으로 발생할 죄악들을 막을 수도 있죠. 이 두번째 기회라는 게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도 하는 것이, 어떤 죄인이라도 두번째 기회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이야기들처럼 시리에게도 이런 기회가 찾아왔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기회를 통해 새로운 인물로 거듭나게 된 거고 모두에게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었던 운명의 장난이었던 셈이죠. 아르카나도 세리아의 죽음을 겪지 않고 미쳐서 황제의 개가 되어 빈민을 죽이거나 하는 악행에 가담하지도 않게 되었고, 베라무드도 시그리드와 다투거나 싸우지 않고 사랑하며 자신의 가치를 다시 깨닫고 둘째라며 자괴감을 느끼거나 하지 않으며 자신이 스스로 선택해서 사랑을 거머쥘 수 있었으며, 모리스는 형과의 갈등을 해결하고 알케르토 또한 사랑을 얻게 되었죠.


빈민들을 죽지 않아도 됐으며, 세리오스는 무사히 자신의 아내와 자식을 구할 수 있었고 서부와의 관계 또한 다시 원활해졌으며, 아웬 또한 위험해지거나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로웬그린과 마리쉐즈도 좋은 친구, 남편을 얻게 되었고요.


가장 큰 혜택은 시그리드 본인이 받았습니다. 인간적인 인물이 되었고 죽기 전 겪었던 죄악을 반복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걸 막았으며 사랑하고 사랑 받을 수 있는 주체적인 인간으로 성장했으니까요. 다른 누구도 아닌 시그리드의 회귀가 모두에게 가장 좋은 결과를 안겨준 셈이고 모두를 성장시킨 핵심적 인물이 된 거고요.


다시 말하지만 이런 결말로 이끈 시그리드의 악행과 황제의 개로서의 활동, 그리고 그 결과 과거로 돌아가는 마법을 시리의 오러 코어를 통해 사용한 베라무드와 아르카나, 그리고 다시 돌아온 시리에 의한 모든 변화라는 짜임새는 굉장히 훌륭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마성의 황자와 나


참고로, 시그리드와 마성의 황자와 나는 같은 작가가 쓴 작품입니다. 그래서인지 인물의 묘사가 언듯 비슷한 면이 있죠. 비슷한 주제이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 작품 자체로도 상당히 재미있고 매력적이라고 봅니다. 특히 표지의 캐릭터는 너무 매력터지다보니 더더욱..


뭐 아무튼, 이 작품의 주인공인 레사는 자신의 직업적인 문제로 인해 성별을 숨긴채 일을 하는 여성입니다. 암살자가 직업이었죠. 작품의 시점에선 이미 때려치긴 했었지만.. 어찌됐든, 레사는 자신의 성별이 곧 비밀이자 컴플렉스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구애 받지 않으려 합니다. 어떻게 보면 신경을 안 쓴다는 느낌도 들지만요. 여성이지만 남성이 할만한 일들을 하고 그런 것에 주눅들지도, 크게 열등감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주인공인 레사는 여성이지만 남성으로서의 직업적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서 별 문제나 무리가 없이 수행합니다. 어떤 면에선 다른 남자들보다 더 훌륭한 일처리를 해내죠. 남자로 성별을 숨겨야 한다는 이유이기도 하나, 남자들처럼 입고, 남자들처럼 행동하며(마초적인 건 아닙니다. 단지 특별히 여성적이지 않을 뿐..) 심지어 작품 내에선 (여성에겐) 형벌로서 여겨지는 짧은 머리까지 하고 다니죠. 이는 성역할의 구분은 없다라는 것을 드러내는 요소들이기도 하며, 실제로 레사가 그런 류의 험한 일을 해내는 것도 묘사되곤 하죠.


물론 이런 류의 남장여자 장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긴 합니다만.. 많은 남장여자 장르는 대개 약간 BL느낌이 들 정도로 예쁘장한 남장여자에게 남자가 호기심이나 호감 따위를 느끼고 성정체성을 고민하며 남장여자는 남자연기를 하지만 여성 본연의 약함을 드러내며 남자 주인공에게 다른 감정을 자극하는 모습도 꽤 자주 묘사한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런 식의 남성적인 남장여자의 작품이 적은 건 아니다만 그래도 꼽을 만한 요소라고 봅니다.


에.. 사실 그닥 성평등적인 작품이라기보단 어쩌다 그런 모양새가 살짝 나온 것이라는 게 합리적인 평가일 겁니다. 근데 재밌으니까... 쩝.




황제와 여기사


제목에 꼽히기도 한 작품이죠. 이게 가장 적절하고 최고인 작품인데, 주인공인 폴리아나는 아버지와 재혼한 새엄마, 그리고 배다른 여동생에 가정권력에서 밀려나 죽으라고 보내진 전장에서 살아남고, 왕과 동료 기사, 병사들과 같은 남자들에게 동료로서, 기사로서 인정 받으며 왕과 함께 대륙을 정복하는 것을 이야기로 합니다.


어째서 이 작품이 가장 페미니즘적으로도, 성평등주의적으로도 훌륭한 작품이나면, 작품 내에서 여자 기사라는 건 실제로 없는 것과 다름 없는 존재라는 겁니다. 원래 여자가 군에 간다면 어떻게든 후방으로 빠지게 하지만, 폴리아나의 부모는 그녀를 전쟁터에 내보냈죠. 죽으라고요. 그래야 자신의 새 딸에게 상속권이 넘어가고 귀족 작위가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폴리아나는 죽어라 고생하며 남자들 틈에서 살아남았고 훗날 부모와 조국을 배신하고 자신을 인정해줄 수 있는 왕에게 충성합니다.


자 그럼, 여자로서 군대에서 '살아남는다'. 어째서 살아남느냐는 표현을 썻느냐면, 배경이 되는 시대가 중세 정도나 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그런 시대에선 으레 있을 법한 여자는 열등하거나 할 일이 따로 있다는 성역할론과 은연적 무시 따위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고 실제로 그랬기 때문입니다. 여자로서 군에 입대하자마자 주변의 무시와 조소, 조롱, 차별 따위를 겪어야 했고, 남들보다 약한 몸으로 살아남기 위해 더 독해져야만 했습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특히 정신적으로.


여자이기 때문에 군대에서 고립되었고, 어떻게 어렵게 얻어낸 소대장 직위도 폴리아나의 '합리적 판단'을 상관에게 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여자라는 점을 공격하고, 경험이나 더 쌓으라며 면박을 주고 어렵게 얻어낸 소대장 직위를 바로 박탈시켜버리죠. 그 결과 대패를 겪으며 폴리아나도 죽을 경험을 했고요.


그러나 운이 좋았던 폴리아나는 그 곳에서 자신의 의지로 강간당하고 죽을 뻔한 상황에서 알몸이 된 채로 뼈가 부러지고 피를 쏟아내면서도 남자 3명과 죽어라 싸우며 절대 지지 않으려고 했고, 그 결과 새로운 왕에게 충성하고 새로운 이름과 인생을 살아갈 기회를 얻죠.


물론 왕이 인정했다고 폴리아나가 다른 기사들에게도 인정을 받았느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새로운 이름을 받고 새로운 군에 몸을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기사는, 심지어 자신보다 어리고 직위도 낮은 애송이에게 대놓고 무시 받기까지 했죠. 단지 여자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나 폴리아나는 지지 않았고,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는 기사도 못 되는 꼬맹이인 도나우의 부랄짝을 걷어차며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하죠. 여자이기 때문에, 혹은 여자로서와 같은 태도를 가지지 않고, 어디까지나 인간대 인간으로, 상관을 무시하는 하급자를 교육시켜주는 묘사입니다.


그 이후 강을 건너 싸워야할 때도 기지를 발휘하며 강을 건널 수 있을만한 곳을 찾았고, 그 곳에선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갑옷과 옷을 훌렁훌렁(물론 알몸까진 아닙니다.) 벗으며 자신이 해야할 일을 수행하죠. 위험한 일이었지만 말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그 동안 개무시해대고 기사만 되면 결투를 신청한다느니 하다 불알이 까여댄 도나우도 생각을 점점 고쳐먹죠. 이때까지만 해도 싸가지 없는 애송이였습니다.


전투 직전엔 다른 기사들과 통성명을 하고, 전투 이후의 승리엔 폴리아나도 여자이긴 하지만, 그래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기사이자 동료가 되었습니다. 그녀도 꽤 뿌듯해하죠. 나중엔 아이노를 제외한 모두에게 동료로 서스럼없이 받아들여지며 거의 벽 없이 지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여자'인 폴리아나가 '남성'의 행동이나 모습 따위를 '모사'하는 등 억지로 따라하는 게 아니라, 그런 성별 따윈 상관 없는 '객관적인 태도'. 즉, 기사로서만 행동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부분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자신이 머리를 빡빡 깍고, 손 마디는 굵으며 몸에 남자만큼은 아니지만 열심히 붙은 근육과 상처와 흉터, 착색된 피부를 가진 여성스럽다곤 절대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여자가 아니었던 적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여성이라는 성별을 가지고 태어나 남자 밖에 없는 군대에서 남자로서의 성역할을 수행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이라는 성별에 열등감을 가지지 않고 여자로서의 자신을 인식하되, 성역할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으며 그저, 단지 기사라는 '직업'으로서의 행동으로 자신을 규율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자신은 여성이니 남성이니 하는 것에 얽매이거나 집착하지 않고 그저 한명의 인간으로서 기사라는 역할에 충실히 수행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모습은 폴리아나를 여성이나 남성이라는 성별로서 규정짓고 구분 짓지 않게 했으며, 모든 기사들과 병사들이 그녀를 전우애와 동질감을 가지는 '같은 기사'로서 대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역시 여자인 건 맞죠. 그녀도 여자인지라, 레비 경과 바우팔로 경이 혼담을 나눌 때 다른 사람에 대한 가쉽으로 왕과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주변 동료가 (진심어린 걱정으로서) 생리나 임신, 결혼 따위를 걱정해주고 조언해주는 모습은 그녀가 스스로 여자로서의 모습을 나타내지는 않지만 모두가 폴리아나를 '여자로서 인식'하긴 한다는 점을 묘사해줍니다.


이는 폴리아나를 (성역할적으로서의) 여성로서 보진 않지만 분명하게 (생리적으로) 여자로서 보고 인식하긴 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게 중요한 것이, 단지 그녀를 여자로서 보지 않고, 쟤는 생긴 것도, 하는 것도 남자니까 여자라는 인식이 없다. 같은 것이 아니라, 여성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어찌됐든 여자이긴 해도, 믿고 지낼 수 있는 같은 기자이자 동료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객관적으로 여자라는 성별로 인식을 한다 뿐이지, 거의 제 3의 성으로 대하고 느낀다는 건 또 별개죠..)


역시 이는 주변 남자들조차 폴리아나의 여자라는 성별을 (이제는) 차별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동등한 인격체이자 동료로서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됩니다. 매우 성평등적인 모습들이죠.


여자로서 모질게 살아왔고, 차별 받고 무시 당하고 조롱 받으며 고생하고 고통 받다 자신을 인정해주고 이해해주며 의지할 수 있고 의지해줄 수 있는 동료들을 만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성별을 싫어하거나 혐오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며, 남자라는 성별에 열등감을 가지고 어줍잖게 따라하려고 들지 않는 직업적으로 객관적인 태도를 가진 폴리아나의 삶의 태도는 매우 페미니즘적이고 그녀를 대하는 이들의 모습은 극히 성평등적이죠.


이런 면에서 볼 때마다 이는 재미있는 작품으로서도, 페미니즘적으로도, 성평등적으로도 훌륭하고 재밌는 작품이라고 평가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가장 길고 자세하게 서술한 거고요.


현재 메갈이니 워마드니 미러링이니 남혐이니 똥을 싸고 있는데, 차라리 성평등이나 페미니즘을 위해선 이런 작품을 보고 부당함이 됐든 이성적 사색과 고찰이든 무언가 느끼는고 얻어내는 게 훨씬 나을 겁니다.


- 추가 설명


작품의 마지막은 굉장히 멋있었다고 할만 합니다. 황제의 기사로서 살다 죽고 싶어했던 폴리아나였고, 3명의 황비와 관계를 주고 받으며, 꼬이고 풀리는 인과는 결코 나쁘지 않았습니다. 여자이지만 여자로서 살 수 없었던 폴리아나였지만, 그 나이에서 황비와의 소통을 통해 여자로서의 생각, 즐거움을 (미욱하나마) 새롭게 깨닫게 되는 부분도 흥미로웠고, 남부의 황비가 아이만 남기고 죽은 부분도 폴리아나가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 중 하나였습니다.


무엇보다 멋있었던 부분은, 토리 황비가 술에 독이 있다는 걸 밝히는 부분이었는 데, 같은 여자이지만 남자에게 순종하며 가장 여자다웠던 토리가 그 불문율을 친우이자 다른 황비를 위해 깨부수고 전면에서 그들 북부 귀족들을 고발하는 부분이었습니다. 토리 또한 폴의 모습을 보고 성장했던 것이고, 폴을 보고 배운 것이었죠. 그러나 토리는 폴과 달랐고, 근위병에게 명령을 내렸으나,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죠. 이런 상황에 당황한 것도 있지만, 토리라는 전통적 여성이 내리는 (성권력적으로) 건방진 명령이었기 때문이라 봅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뭘 보고만 있냐고 일갈하며 황비마마의 명을 받들라고 하자 모두가 지체 없는 움직임으로 죄다 제압해버리고 말죠. 같은 여성이지만 다른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이었으며, 정말 멋있던 명장면이라고 봅니다. 황비의 명령, 황비의 명령을 받드는 폴리아나의 명령이라는 대비적 연계로 매우 훌륭한 연출이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둘 다 황비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죠.


폴리아나는 이 이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의무에 충실하지만 황제의 연심은 계속 깊어만 갑니다. 그러다 폴리아나가 프라우라는 꽃뱀에게 엮이게 되죠. 폴리아나는 그럭저럭 처음으로 여성으로서의 즐거움에 눈을 뜨고 진심으로 결혼할 생각까지 했지만, 결국 프라우가 숨겨놨던 자식을 보고, 그런 자식을 보고 널 꼭 귀족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건방진 소리를 하는 걸 보게 됩니다. 이는 황제의 명령에 따라 정보부, 도나우와 하우 형제가 조사하고 말한 이야기를 듣고 룩소스가 폴을 데려가 그 꼴을 보여줬던 거죠.


이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며 길게 말하진 않겠지만, 그 결과 여성으로서의 즐거움마저 배신을 당한 폴리아나였습니다. 결국 결혼 따위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게 되죠.  그러나 황제의 생각은 다른 데, 이때부터 이야기할 게 나옵니다. 아 물론 이때 사고치고 황제의 자식을 배게 되지만..


황제는 노력가입니다. 폴리아나는 살면서 죽어라 노력했고, 정말로 죽기 직전까지 간 적도 있을 정도로 노력했던 인물입니다. 인생 자체가 여성으로서의 한계와 싸운 삶이고, 그런 싸움을 통해 노력하며 생존했던 노력가이죠. 즉, 폴리아나는 여자라는 한계 속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하고 노력하며 살아왔던 인물입니다. 황제 또한 노력가이지만, 투쟁이란 삶의 무게에 있어 황제의 노력과 폴리아나의 노력은 그 무게가 다릅니다.


노력가를 좋아하고 본인 또한 노력하길 좋아했던 황제이기 때문에 이젠 자신이 폴리아나만큼의 노력을 해야 했다는 겁니다. 폴이 죽을 만큼 노력했듯이, 본인 또한 폴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죽어라 노력했어야 했죠. 이에 대해 사고치고 생긴 아이가 가장 큰 변수였습니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아이가 생겼다는 걸 안 폴은 자신의 영지로 들어가 1년에 가까운 휴가를 보냅니다. 그 와중에 출산을 하죠. 그리고 황제가 대륙 순방을 하다 폴의 영지에 들러서 결국 자신의 아이를 확인하게 되는데, 이때 룩소스의 입장과 폴리아나의 입장이 아주 크게 갈립니다. 이때 룩소스는 결국 폴이 자신과 결혼해야 할 거라는 사실에 크게 들뜬 상태나 마찬가지였죠. 그래서 폴리아나의 생각과 입장을 고려하지 못하고, 그 상황에서 청혼을 해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폴리아나에게 있어서 결혼은 가장 큰 행복과 가치가 아니었고, 자신은 평생 폐하의 기사인데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배신감마저 느낍니다. 스스로가 생각하듯, 전쟁 때 나온 온갖 욕이 그저 욕이 아닌 사실이 되어버린다는 것과, 자신이 그런 잡스러운 여자가 되어버렸다는 점, 또한 더 이상 폐하의 기사일 수 없게 만들어버린 룩소스에게 배신을 당한 것과 같은 거죠.


스스로 노력하고 선택한 삶이었고, 자신의 군주에게 하사 받은 천금보다 귀한 성씨였는데, 이걸 믿었던, 그리고 충성을 다 받쳤던 그 본인에게 빼앗기고 부정당한 겁니다. 폴리아나의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이 되어버린 거였죠. 그대로 결혼하게 되면 자신이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긴 윈터라는 성을 포기해야 했고, 기사로서 살았던 삶과, 기사로서 살아야할 삶 모두 사라져버리고 무가치한 것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폴은 배신을 당한 것이고, 슬프고 괴롭고 고통스러워 울었던 거죠.


결국 결혼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 고민이 오갔고, 결국 폴리아나는 선택하고 맙니다. 이 부분이 정말 멋진 최후반부의 명장면이죠. 폴리아나는 자신의 정체성이자 인생인 기사의 갑옷으로 무장하고 황궁으로 스스로 찾아갑니다. 그리고 선언하죠. 자신은 언제까지나 폐하의 기사일 것이라고. 이는 폴리아나의 스스로 선택한 운명이며, 온전한 자신의 의지입니다. 어떤 사회적 통념, 권력관계, 정치적 계산, 성권력 관계와 무관한 그런 선택이자 의지였죠. 나는 황제폐하 당신과 결혼하지 않고 기사로서 남을 것이라는 의지.


모두 놀라지만 황제는 이때 마음을 굳건히 먹고 폴의 의지와 선택을 존중하며 인정하고 돌려보냅니다. 그리고 본인의 굳은 결심을 모두에게 선언하듯 내뱉습니다. 이제 나는 폭군이 될 것이라고. 그러니 욕해도 되고, 심지어 아이노에겐 자신을 죽여도 된다고 하죠. 그렇게 무겁고 살벌한 분위기가 돌지만 아이노는 폴에게 빚이 있으니 (연애운..) 봐준다고 하고 충성을 바치겠다고 무릎 꿇고 다시 한번 선언하죠.


그 뒤 황궁은 상황이 달라지게 됩니다. 폴리아나는 몇년 뒤 자란 두 아이를 기르며 편안히 지냅니다. 여전히 그녀는 황제의 기사이고 윈터이죠. 그리고 도나우의 제안에 밖으로 놀러 나갑니다. 그리고 만나죠. 자신의 주군, 자신의 모든 것, 자신의 운명과 성을 내려준 황제를.


황제는 노력가입니다. 폴리아나도 노력가죠. 폴리아나는 생존이라는 기치로 노력을 했다면, 이번엔 황제의 노력은 그런 여자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황제는 폴리아나의 준엄한 선언 이후 황궁과 제국의 모든 인텔리들을 모읍니다. 머리 좀 돌아간다 하면 기사라도 붙들어와 일을 시켰죠. 사촌형제도 마찬가지고 일을 시킬 수 있는 이들이라면 어떻게든 끌고와 일을 시켰습니다. 그게 바로 황제 본인이 말한 폭군이 되겠다는 말이었죠. 


그렇게 황제는 대륙의 법을 뜯어 고쳤습니다. 상속법 정도만 고치려고 했지만 해보니 이것저것 충돌하고 수정해야할 것이 많아져서 몇년 동안 미친듯이 일하고, 굴리며 대륙의 법을 뜯어고칩니다. 그에게 이런 노력은 폴리아나와 같은 투쟁이었습니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 결혼하지 않겠다 선언한 기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불가능한 노력.


그렇게 완성한 엄청난 두께의 법전을 내려놓으며 황제는 폴리아나에게 다시 한번 청혼합니다. 이번엔 다르게.


그리고 폴리아나는 그런 황제의 노력과 진심을 확인하고 외칩니다. 그 전쟁의 한 겨울에 벌거벗고 외쳤던 그 말. 누가 나에게 검을 다오! 이번엔 상황이 달랐습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도나우, 하우, 비카 가문 등 자신이 알고 지냈던 모든 지인들이 달려와 자신의 검을 선택해달라고 하죠. 폴리아나를 중심으로 피어난 검의 꽃잎에 둘러 쌓인 폴리아나는 가장 처음, 그리고 가장 깊이 인연을 맺었던 도나우 경의 검을 선택하고 황제의 청혼을 승낙합니다. 그렇게 대륙의 역사를 또 한번 써야 했죠.


생각보다 훌륭한 결말이었습니다. 솔직히 폴리아나라는 인물에 대해 이해할 수록 룩소스와의 결혼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말이라면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대륙의 첫 황제가 총애를 아끼지 않았던 여기사라는 특수한 존재, 그리고 그런 특수한 존재를 위해 대륙의 법을 전부 뜯어고칠 정도의 노력, 그런 노력의 결과 결혼에 성공.


원래 여성과의 결혼은 남성에게 결정권이 있고, 그게 다른 사람도 아닌 대륙의 황제라면 누군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막말로 그냥 결혼하자고 명하면 그대로 따라야 했죠. 하지만 그런 황제가, 자신이 연모하는 여성을 위해 노력을 해야 했습니다. 이는 폴리아나를 여성으로 봄과 동시에 하나의 주체적 인간으로 봤다는 말이 됩니다. 작품 속 세계관의 사랑, 연애, 결혼관념과는 완벽히 다른 현대적이고 주체적인 사랑에 대한 노력과 결혼에 대한 관념이죠.


폴리아나는 여성입니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결혼에 있어서 더욱 적극적이지만, 그만큼 그의 의지에 끌려가는 것은 여성이죠. 아이노 경의 경우, 노력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정치권력과 성권력을 바탕으로 시켈을 가져온 것에 가깝습니다. 그나마 잘 풀려서 그렇지, 아이노의 원래 계획은 그냥 시켈을 정치권력과 성권력으로 그냥 강제로 결혼해버리자는 개싸이코 같은(현대적 관점에서;;) 계획이었죠.


하지만 폴리아나와 룩소스의 관계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폴리아나는 여성이었지만, 어떠한 권력관계도 개입하지 않았고 정치적 계산 또한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단지 인간대 인간으로,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을 얻고자한 남성의 노력과 그 노력의 결과에 승낙한 여자이자 인간인 폴리아나가 있었죠. 즉, 동등한 관계로서 노력하고 쟁취해낸 결과였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결말마저도 페미니즘적으로 훌륭했고, 작품적으로도 훌륭했다는 평가를 주기 전혀 아깝지 않은 작품인 것이고요. 로맨스 소설로 추천해야 한다면, 전 주저 없이 이 작품을 가장 먼저 추천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뛰어나고 훌륭했던 작품이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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