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rodinger

블로그 이미지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 Total hit
  • Today hit
  • Yesterday hit

'친일파'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23.09.24
    한국에서 발생하는 국가 정체성의 위협.
  2. 2023.09.19
    나라를 일본과 미국에 팔 수 있으면 북한과 중국에도 팔 수 있어야 합니다.
  3. 2023.05.03
    일제 강제동원 개인 청구권 근거 팩트체크.
  4. 2019.08.15
    한국 극우보수의 반공과 민족주의적 특이성에 대한 단상. 10
  5. 2019.07.09
    일본이 조국인 한국 국적의 극우 명예 일본인들.
  6. 2018.11.04
    한국 보수의 태생적 한계와 근원.
  7. 2014.04.29
    정말로 이상한 진보, 보수. 4
  8. 2013.09.05
    반동적 태도
  9. 2013.08.05
    상식이 종북에 갇히다. 4
  10. 2013.05.26
    싫어하는 것에 대한 맹목적 적대감 4
반응형

 

"나 때는 말이야."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것에 기대 살아간다. 그것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어떠했던 사람이었는지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들은 정말 많이 있다. 개인에게 있어 그것은 민족, 역사, 종교, 직업, 출신, 지역 등등 다양한 것이 있을 것이고 그것들은 개인의 정체성을 이루는 재료가 되어 비중의 차이만을 가질 뿐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신이 어떤 가치를 중요시 여기고, 그것에 자부심을 느끼는지가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기 때문인데, 한국인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는 것은 한국인을 규정하고, 한국을 이루는 요소들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다. 예컨데,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자신의 역사에 자부심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부심.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 어떠한 가치를 중요시 여기느냐 하는 것이 첫번째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동치 시킨다는 점이 두번째이다. 이순신의 업적은 그 본인의 업적이지 21세기를 살아가는 나 자신의 업적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순신의 위업을 위대하다 여기고 자부심을 느낀다. 이순신의 승리는 그 당시 조선과 조선인의 승리일 뿐이다. 일본인은 이순신의 승리에 자부심을 느낄 수 없다.

 

 

어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일 수는 없다. 그 사람이 가장 고점일 때가 있고 가장 저점일 때가 있을 것이며, 가장 화려했던 순간과 그렇지 못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훗날 과거에 천착해 살아갈 때가 있다. 그것은 고점을 찍은 이후 꾸준히 추락하여 비참해지거나, 스스로 그렇다 여기는 사람들이 주로 그렇다. 한 때 모든 이들의 우상이 되어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연예인이 퇴물이 되어 뒷골목 술집 가수가 되며 무대 뒷편에서 약에 취해 있으면서도 약이 아닌 화려했던 순간에 중독 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이 가장 열심이었고, 가장 가치를 인정 받았던 젊은 시절과 다 늙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언제 짤릴 지, 은퇴할 지 눈치만 보던 이들이 자신의 젊은 시절에 향수를 느끼고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지금 자신의 비참함을 견디기 위한 정신작용이다.

 

사회성은 물론 성격, 성적, 운동능력 등 잘난 게 없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 역시도 어떠한 가치를 추종하며 자신의 것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일반적인 것은 아닐 경우도 많다. 어떠한 경우 범죄적인 것이거나 반사회적인 것일 수도 있고, 그보다 나은 것은 마이너한 장르에 집착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좀 더 일반적인 경우를 보자면, 대부분은 SNS를 비롯한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찾는다.

 

커뮤니티에서 유명하고 인정 받는 자신이라는 정체성을 현실에서의 비참하고 아무 것도 아닌 자신보다 우선하고 그것을 본질이라 여기며, 현실에선 누구와도 대화하지 못하는 대신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수많은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커뮤니티 중독자들의 현실은 사회적 교류가 사실상 단절된 이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현실이 아닌 가상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찾는다.

 

 

한국인들은 한국에 자부심을 느끼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한국인으로서 산다. 민족주의의 배타성을 비판하며 민족주의에서 탈피할 것을 요구하는 이들이 있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이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느 집단에 속하느냐는 본능의 영역에서 발현되는 현상인지라, 자신의 정체성을 소속된 사회에서 찾는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고, 부덕한 일도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자연스러운 구분법은 그 옛날 부족 사회에서조차 우리 부족과 다른 부족을 구분했던 본능 단계의 인지적 작업이었기에 민족주의나 그와 유사한 개념, 그리고 거기에서 기인하는 현상들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단지 지나치면 무엇이든 독이 되는 것처럼, 민족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 정체성과 별개로 지나친 배타성과 공격성만 통제할 수 있다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민족주의가 등장한 이후, 유럽인들이 자기 집단과 민족이라는 정체성에서 탈피한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던가? 그저 조절되었을 뿐이다.

 

 

한국인이 한국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반드시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직관적인 예시로 유럽의 중동 이민자들을 한번 살펴보자. 그들은 중동에서 유럽으로 왔다. 이민자 1세대야 자신들의 뿌리를 잊을 수 없고 자신들의 정체성은 완전하게 세탁할 수는 없겠지만, 이민자 2세대와 3세대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들은 유럽에서 태어나 유럽 환경을 겪은 이들이다. 그들에게 고향은 유럽이고 태어나 자란 모국과 사회 역시도 유럽이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그들은 같은 유럽인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2세대고 3세대고 그들은 여전히 중동인이고 아랍인이며 무슬림이다. 그들은 유럽 사회의 메인 스트림, 주류에 편입되지 못했고 그러한 혼란과 불만이 그들을 테러로 이끌게 되었다.

 

유럽인으로서의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유럽인들이 같은 유럽인이라고 하지 않으니 그들은 유럽인일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 그들은 자신의 뿌리를 되돌아 볼 수밖에 없다. 그것도 아주 극단적인 시각으로. ISIS가 발흥할 당시 적지 않은 유럽 이민자 2세대, 3세대들은 ISIS에 동조했다.

 

그것은 그들이 유럽인이 아니라고 배척하던 유럽에 대한 반동에 불과하다. 유럽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부정당한 결과 외부 정체성인 이슬람, 그것도 분노의 표출을 정당화해줄 극단주의 이슬람은 너무나도 적절했다. 그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이슬람, ISIS의 이름과 함께 찾았고, 그 표현은 테러였다.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아?"

 

 

한국은 일제강점기 이후 상당한 정체성의 위기를 겪어야 했다. 이는 일제의 문화통치와 분열책, 식민적 교육의 성과이지만 그 이후 한국의 권력을 차지하고자 한 이들이 외부 정체성을 확실하게 몰아내지 못했거나, 그러지 않았던 것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러한 외부 정체성이 본토 정체성을 위협하고 있고, 실제로 정도의 차이일 뿐 외부 정체성,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보다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우선하거나 큰 영향을 받는 이들이 적지 않게 했으며, 심지어 사회 고위층에서 막대한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국가를 지켜야할 국방부장관 지명자가 매국노 이완용에게 어쩔 수 없었다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하고, 기이할 정도로 한국의 국익보다 일본의 국익을 우선하는 정부들이 있었으며, 한국과 조선의 역사를 일본보다 열등하다 여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한국인이라 말하고 심지어 애국자라 말하겠지만, 그것은 하나의 착란 증세이다. 말은 행동보다 강력하지 못한 고로, 그들의 행동은 스스로의 말과 상반되며 그러한 이유로 말보다 실질적인 행동이 더 크게 평가 받아야할 것이다. 어째서 한국이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찬성해야 하는가? 어째서 100년전 적극적으로 일신의 영달을 위해 노력한 매국노에게 어쩔 수 없었다는 평가를 내려도 되는가?

 

 

일제는 조선의 사회와 문화를 깍아내렸고,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바로 역사에 대한 공정이었다. 조선에서 태어나 조선에서 자란 조선인들이 조선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당연히 조선의 역사이고, 자신의 뿌리가 된다. 따라서 이것을 먼저 무너뜨리면 조선인들은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열등함에서 벗어나고자 할 것이라는 점이다.

 

내 뿌리가 지독하게 부끄러운 것이라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부정하고자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열등한 조선인에서 우월한 일본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조선의 역사를 조작했고, 부정적이게 해석했다. 그리고 그것을 조선인들에게 교육했고 그것들은 식민사학, 식민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교육계에서 이러한 식민사관은 반세기 넘게,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게 되었다. 최근에야 그러한 요소들에 대한 부정과 교정이 이루어지고 정보가 알려졌지만, 당연히 그보다 이전 시대에 식민사관의 영향을 받은 이들의 지식 업데이트는 거의 없거나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는다 봐도 될 정도이다.

 

그외에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단지 주류 정체성에 거부감을 느낀 이들이나, 과거의 식민지배국이자 강대국, 선진국인 일본을 동경하다못해 친일적 정체성이 만들어진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한국인과 한국 사회의 전근대적인 면모들에 비판적이기에 비슷한 조건의 더 나은 국가인 일본을 우월하게 여긴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유는 정말 많을테지만, 중요한 건 그들이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정체성보다 일본의 정체성을 더 우선시하거나, 우월하다 여긴다는 점이다. 그들이 한국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취사적이고 정치적이며 이념적인 경우가 많다. 한국 우파가 유독 친일적이거나 그에 가까운 태도를 보여주는 것처럼 우파적인 가치관과 일치하거나 부합하는 사건/현상일 경우가 그러하다. 한국 우파의 뿌리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면 특이한 일은 아닐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인임에도 한국보다 일본의 국익에 복무하며, 한국의 정체성을 열등하며 미개한 것으로 규정하는 이들, 그들은 어떤 사람인가?

 

 

"배를 버려라!"

 

 

침몰하는 배에서 가장 영리한 것은 가장 귀중한 물건을 가지고 가장 먼저 탈출하는 자들이다. 이완용은 그 자체로 욕설이나 다름 없는 이름이 되었지만 그가 대단히 영특하고 뛰어난 인재였던 것은 사실이다. 대단히 똑똑하고 통찰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그러한 능력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쓰기보단 다 포기하고 가장 먼저, 가장 적극적으로 나라를 팔아먹는데 일조한 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그 본인과 가족은 가장 대단한 특혜를 받은 친일파로서 부귀영화를 누렸다. 만약 그가 이재명 의사에게 저격 당하지 않고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하지 않았다면, 혹은 애초에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그의 선택은 역사적 공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것은 실패한 것이 되었고, 그 실패의 원인은 조선인의 성공이 아니라 미국의 성공이었다. 물론 우리는 조선인들의 독립 운동이 어떠한 성과를 냈고 어떻게 인정 받았는지 역시 알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이념적으로, 사상적으로, 또 한편으로는 필요에 의해서 부정하거나 긍정하는 것이 있다는 걸 안다. 친일파, 혹은 토착왜구라 불리는 이들에게 조선인들의 노력은 무의미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한 이유로 토착왜구들에게 있어 독립운동은 폄하의 대상이다. 역사를 왜곡하거나, 자료나 해석을 왜곡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공정이 이루어진다. 한국인이 어째서 한국의 역사와 독립운동을 폄하하느냐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그들의 정체성을 한국이 아닌 일본으로 설정해본다면 설명이 된다.

 

그들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의 국익에 복무하는 것이며, 스스로의 정체성으로서도 한국에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기에 그것을 깍아내리고, 더 우월한 정체성으로 덧칠하려 한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일은 부정하고, 1948년 건국일을 긍정하며 일제 시기를 마치 나라가 없었던 것처럼, 친일을 했던 사람은 떵떵 거리며 사는 세상을 만들고, 독립운동 한 사람들은 돈도 힘도 없는 사회를 만든 것처럼, 한국인은 미개한 조센징이고 일본은 갓본이라 칭하는 것처럼.

 

더 나아가 한국 여성은 김치녀고 일본 여성은 갓본녀라 부르고, 한국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국방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더 강한 강대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끔 여기는 것 역시 그러하다.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은 그러한 나라이고, 그러한 나라여야 한다. 그들은 그것을 애국이라 말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국익을 위한 일이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할 뿐.

 

그렇게 한국은 한국의 역사가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지 못하고, 한민족의 정체성을 가지고 한민족을 위해 투쟁하던 독립운동가를 부정하며, 반공을 국시로 삼아 건국되고 작동했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건국을 긍정한다. 한민족은 본래부터 열등한 민족이었기에 스스로 자강한 게 아니며, 일본에 의해 선도되어 근대화를 이룬 나라여야 한다. 한국은 공산주의에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기에 강대국의 보호를 받아야 하며, 한국 스스로 공산주의 적들과 싸워 이길 수도, 스스로를 충분히 보호할 수도 없는 약한 국가이기에 필연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 보호국은 미국과 일본이다.

 

즉, 이는 하나의 바꿔치기이다. 한 사회에 나누어진 두가지 정체성은 여전히 대립 중이고 그 중에서 반국가적이고 반민족적인 가치관이 우파 정체성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뿐이다.

 

어째서 보수 정부가 나타날 때마다 한국은 나약하고 위태로운 국가가 되는가? 어째서 자국과 자민족과 자국 역사에 자부심을 가질 수 없는 국가가 되는가? 언제 킹찍탈이라는 말이 나왔고 언제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왔으며, 그 단어는 언제를 기점으로 사라졌는가? 언제 갑자기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왔는가?

 

진보와 보수라는 구분에 의해 나눠진 것은 결과적인 것이다. 본질은 그들이 어떠한 정신을 가진 어떤 인간인가에서부터 시작한다. 왜 어떤 사람은 식민지 시절 적극적으로 친일을 했고, 어떤 사람은 적극적으로 독립 운동을 했는가. 왜 어떤 사람은 일신의 영달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을 도덕과 윤리, 법과 원칙의 준수보다 더 유의미한 현실적 가치로 보는가. 왜 어떤 사람은 당장의 이익보다 사회적 자본을 더 중요시 여기는가.

 

왜 어떤 사람은 타인의, 사회의 손해보다 내 이익을 더 중요시 여기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가.

 

이 본질에서 다양한 표현형이 나뉘어질 뿐이다. 부정부패한 기업인과 관료도, 친일 매국 토착왜구도, 사적 이익과 정치적 승리를 더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정치인도 다 그러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도덕과 윤리, 혹은 논리와 같은 명분을 필요로 하고, 그러한 이유로 역사는 왜곡되고 특정 가치는 부정된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사회적 자본을 훼손할 수 있는 이들에게 매국은 어쩔 수 없는 것이어야만 하고, 그래야 자신의 사적 이익 추구를 정당화 할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때로는 생계형 범죄라고. 그들 자신에겐 그게 사실일 것이다. 나라를 팔고 국익을 팔아서 자신의 생계를 풍요롭게 하기 위함일 뿐일테니.

 

이러한 본질은 아주 위험하지만, 그 표현형이 별 거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더 나쁜 표현형이 있을 것이고, 그것이 우리 사회를 위협하며, 우리의 정체성을 무력화시키려 한다. 만약 그들이 성공하고, 승리한다면, 가장 먼저 배를 버리는 것은 우리가 아닐 것이다.

 

배에 구멍을 낸 그들 자신일 것이다.

반응형
AND
반응형

국방부장관이라는 인간이 일뽕 짓거리나 하고 있는 걸 보면 한숨만 나옵니다.

 

이런 국까일뽕 종자들은 친일과 애국을 구분하지 못하고, 대개의 경우 애국은 하지만 그게 한국에 대한 애국은 아닌 경우가 많은데, 스스로는 그걸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친일과 일본에 대한 애국을 한국에 대한 애국으로 착각하는 증상도 매우 흔하죠.

 

같은 맥락에서 미국에 관해서도 비슷한 입장인데, 이전처럼 국기기밀을 유출시켜도 그 대상이 미국이면 괜찮다는 입장이라던가요.

 

정상적인 사리분별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복장이 터질 일인데, 이런 류의 저능아들은 스스로 뭐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기준이 없고 그냥 사안에 따라 그 주체가 누구이며 그 대상이 어디인가를 기준으로 가변적인 판단을 내립니다. 그래서 진보좌파의 북한이나 중국과의 대화, 협상, 교류는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 빨갱이 레드팀 짓거리지만 극우보수의 친일친미 국가기밀 유출, 자가 사보타주를 통한 국익상실에 관해서는 일본이라 괜찮고 미국이라 괜찮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그것이 애국이라고 착각하거나 외교라고 하기까지 합니다. 일종의 거래라는 거죠.

 

하지만 아닙니다.

 

 

매국은 나라를 파는 일이지만 국익을 팔아넘기는 일이기도 합니다. 가령 KT에서 위성 팔아먹은 게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죠.

 

미국은 동맹국이고 일본은 대충 우방이니 괜찮다는 겁니다. 국익을 팔아먹어도 경제 활동이라고 하고요. 하지만 정상적인 국가라면 동맹이고 우방이고 아무런 관계 없이 자국의 국익을 지켜야 합니다. 국가 기밀이 털리고, 스스로 팔아먹어도 동맹국이니까 괜찮다? 미국은 한국의 부모가 아니고 이해관계에 따라 외교 관계를 형성한 겁니다.

 

한국인이 지난 세기 원조, 지원 등 미국에 대해 얼마나 고마움을 느끼고 든든함을 느끼든 그건 그 개인의 감상에 불과하고, 공적인 영역에서 작동해서는 안 되는 거고요. 미국은 언제나 국익을 우선시하는 국가이고, 이건 모든 정상적인 국가가 그렇게 합니다. 한국이 국익에 해가 된다면 한국에 피해를 입히는 건 고려할 가치도 없이 하는 일이죠.

 

지금까지는 한국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한국과의 관계가 긴밀했던 거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게 국제사회입니다. 막말로 한국에 전쟁이 터졌는데 미국이 개입하려니 아주 높은 확률로 핵전쟁이 터진다면 미국은 한국을 포기하는 것도 합리적인 선택지 안으로 놓고 진지하게 고려할 겁니다. 그래야 하고요.

 

미국이니까 괜찮고 일본이니까 괜찮다. 그건 사리분별 못하는 놈들이라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안 되는 저능아나 다름 없는 소리입니다. 미국이나 일본의 국익이 반드시 한국의 국익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고 그들에게 무언가를 양보 한다고 반드시 되갚아주는 것도 없어요.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요. 할 수는 있는데, 할 이유가 없으면 안 해도 됩니다.

 

반도체와 같은 산업의 문제에서도 미국의 국익을 위해 한국의 국익을 침해하는 것에 매우 적극적인 태도로 정책을 밀고 있고, 일본 역시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의 국익을 침해하는 일을 할 수 있고 했던 거죠.

 

 

무엇보다 나라를 팔고 국익을 파는 일에 있어서 국가적 이익으로 돌아오는 일이 없습니다. 즉, 국익을 팔아 국익을 얻는 거 자체가 언어도단에 가까운 말이죠.

 

나라를 팔고 국가 기밀을 팔고 국익을 타국에 넘기는 것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철저히 개인, 극히 소규모 집단의 것에 불과합니다. 이완용이 조선을 팔아서 그 본인과 가족 수준에서나 막대한 이익을 얻었지 조선과 조선 민중 대부분은 손해를 봤죠. 한국이 열심히 자발적으로 국익을 상실하고 일본에게 이익이 될 행위를 하고, 미국의 침해에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 경우 이익을 얻는 자 역시 없다는 것 뿐이죠.

 

차라리 적극적으로 거래를 한다면 매국노 본인과 그 집단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기밀을 팔아먹는 장교는 적어도 그 대가를 받기는 하죠. 그게 공무원, 정치인, 기업인, 기술자, 연구자라 하더라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맥락에서 미국과 일본에 매국을 하고 국익을 팔아 돈을 벌겠다면 북한과 중국에도 파는 걸 뭐라고 해선 안 됩니다. 결국 그 행위를 통해 개인은 이익을 얻는 건데, 여기서 중요한 건 대상이 아니라 이익을 본다는 것 그 자체에 있거든요. 즉, 문제의 핵심은 어디에 파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파느냐입니다. 어떤 나라에는 팔아도 되는데 어떤 나라에는 안 된다? 그런 기준 자체가 이상한 겁니다. 그건 주관적인 호오에 불과한 것이지 대한민국이 얻는 이익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거든요. 애당초 매국 자체가 국가에 손해를 입히는 일인데 사는 쪽이 동맹이든 우방이든 적국이든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물론 다소간의 위험 수준에는 차이가 있겠죠. K9 자주포 설계도, 기술이 미국에게 넘어가도 그 기술이 한국을 향할 가능성은 낮지만 중국에 넘어간다면 그 기술을 도입한 무기를 만들어 한국을 향하게 하거나 약점을 분석해서 카운터 전술을 만들어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도 결국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한국에 도움이 되거나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닙니다. 그걸 팔아먹은 개인의 이익에 귀속될 뿐이죠. 미국이 K9 자주포 기술로 비슷한 거 만들어서 팔겠다고 한다면 한국의 방산업은 적잖은 타격을 받을 겁니다. 이게 날지 안 날지 모르는 전쟁보다 더 확실하고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손해죠. 미국이 새 자주포 팔아서 얻는 금액만큼이나 정확한.

 

 

그래서 미국과 일본에 국익을 팔고 넘겨서 이익을 얻는 게 문제가 안 된다면 삼성, 하이닉스 반도체 기술자가 중국 넘어가서 고연봉 받고 기술, 노하우 넘기는 것도 문제가 되어선 안 됩니다. 그것도 결국 국익이 넘어가는 거지만 그 국익을 넘겨서라도 돈을 버는 개인은 있거든요. 똑같이 팔아서 돈을 버는데 중국, 북한, 러시아와의 거래는 개새끼다? 개소리죠. 정상적인 사리분별을 할 줄 아는 사람들 눈에는 둘 다 좋게 보이지 않거든요.

 

심지어 대개의 경우 중국에 넘어가는 건 범죄조차 아닙니다. 대놓고 기술을 빼돌리는 게 아니라면 고연봉 받고 고급 기술자 모셔가는 건 흔한 일이니까요. 단지 몇년 뒤 팽 당할 뿐인데, 그것도 결국 그거 감안하고 가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어차피 받는 돈이 중요하지 나라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매국에서 중요한 건 어떤 나라가 나에게 더 큰 이익을 안겨줄 수 있느냐이지 그 나라가 자국을 위협할 수 있는 적국이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어차피 이익을 얻는 건 나지 내 국가가 아니에요. 이완용이 나라를 위해 매국을 한 게 아님에도 쉴드, 재평가, 어쩔 수 없었다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그리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면,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에겐 북한과 중국에 국가 기밀을 팔아넘기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겠다면, 매국노가 그래서 욕을 먹는 거고, 자기가 친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적극적으로 친일을 하는 놈들이 그래서 욕을 먹으며, 또한 위험한 이유가 이건데 욕을 먹는 놈들은 그 행위의 본질이 아니라 일본, 중국, 미국, 북한이라는 국가 타이틀에 따라 기준을 지 ㅈ대로 삼으니 못 배운 놈들이 권력을 가져서는 안 되고 목소리를 키워서도 안 됩니다.

반응형
AND
반응형
"개인 청구권은 살아있다" 대외비 문서 30년만에 공개
https://v.daum.net/v/20230406202206602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한국에 대한 배상은 개인에 대한 배상을 포함해 다 끝났다는게 일본의 일관된 입장이죠.

윤석열 대통령도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해왔고, 강제동원 배상해법의 논리도 이런 거였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이런 입장을 뒤집는 외교문서가 30년만에 공개됐습니다.

당시 한일협정에도 불구하고 개인들의 청구권은 아직 남아있다고, 당시 협상에 참여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물론 일본 측 협상 실무자도 생각했다는 겁니다.

(중략)

"한일 양국 정부 간 및 국민 간 인식의 차가 크다"면서 "개인의 청구권이 정부 간에 해결될 수 있느냐에 대해서 의문이 남는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당시 교섭 대표간에도 협정이 정부간 해결을 의미하며 개인의 권리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암묵적인 인식의 일치가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1965년 협정을 주도했던 "일본의 시이나 애쓰사부로 외무상도 동일한 견해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국가간 협정에도 개인의 청구권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공통된 인식이 당시 한일 양국 간에 있었음을 명확히 한 겁니다.

주일한국대사관은 포럼의 내용을 대외비문서로 만들어 본국에 보고했습니다.

그러면서 문서 말미에 "정치적 해결이 아니라 명확한 법적 해결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달았습니다.

일본 전범 기업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개별적으로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2018년 우리 대법원의 판결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입니다.

 

 

친일매국을 하면서도 그게 애국이고 합리, 이성적 판단이라고 착각하는 비非의식적 토착왜구들이 앵무새처럼 앵앵거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사실.

 

윤석열 정부와 보수진영은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한 집단이 아님. 단지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며, 굳이 따지자면 타국(주로 일본)의 이익을 위해 복무함.

반응형
AND
반응형





한국 극우보수의 뿌리는 일제식민지 당시 친일파, 매국노들입니다. 그들은 일제치하에서 친일와 매국 행위로 이익과 생존을 보장 받았고, 그런만큼 조선-한국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가질 수 없습니다. 당연히 한민족에 대한 민족주의를 가질 수도 없죠. 그들의 정체성은 일본에 있습니다. 순수 일본인은 아닐지라도, 일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정신적 일본인인 셈이죠.


문제는 광복 이후입니다. 광복 이후 새로운 생존전략이 없으면 다 죽어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러나 운이 좋은 건지, 시대를 잘 탔는지 북으로는 북조선이 생겨났고, 세계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경쟁으로 냉전체제에 들어가기 직전이었고요. 나라를 팔고 민족을 팔아넘기며 부와 명예를 챙긴다는 건 여간 눈치와 생존본능으로는 될 게 아니죠. 그렇다보니 기가 막히게 반공 노선을 잡고 열렬히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뒷배가 있어야 했는데, 이는 국내로는 이승만과 국외로는 미국이었습니다. 한국 극우보수가 미국을 숭상하는 이유는 그들을 지켜줄 수 있는 '강자'이자 생존을 보장해줄 수 있는 '주인님'이기 때문이죠. 일본 또한 미국은 초강대국이자 일본에 대한 어마어마한 통제력을 가진 상전입니다.


전쟁 이후에도 마찬가지로 그들은 그들의 생존과 권세를 위해 반공을 국시로 삼고, 모든 것을 반공과 엮고, 정당화시켰습니다. 부정부패, 부당노동, 폭력, 착취, 독재 등 모든 부정하고 부당한 행위에 반대하는 순수한 저항 또한 반공과 엮으며 종북행위 내지는 반국가 활동으로 규정시켰죠. 그렇다고 그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 필요악 행위를 했느냐면 결코 아닙니다. 애당초 매국노에서 시작한 이들이기에, 철저히 자신, 그리고 자신과 같은 처지의 관계인들의 이익만을 위한 행위였죠. 다시 말해 나, 그리고 나와 손잡고 서로 뒤를 봐주고 있는 우리편 엘리트들을 위한.


그렇기 때문에 반공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형태일 뿐이지, 진짜 반공정신을 갖춘 게 아닙니다. 살아야 하기 때문이고, 그러한 스탠스가 이익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6.25의 경험이 있기에 우민들은 공산주의에 격렬한 알러지 증상을 보이고, 그렇게 만들어왔기 때문이죠. 그러니 반공과 관계 없는 어떠한 행위를 하든 반공과 엮기만 하면 정당화되는 겁니다. 가장 큰 범죄였던 내란조차도요.


극우보수가 북한과의 대화, 협상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유는 바로 자신들의 생존 근간이 되는 반공 전략이 무력화되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적이 아니라면 그들을 내세워 정당화 할 수 없게 됩니다. 과거가 현재를 이루는 것이라면 그들의 과거가 부정되는 건 아니더라도 그들의 현재에 무의미하게 됩니다. 한나라당-새누리당-자한당 동안 이들은 반공과 혐북 말고는 보여준 것이 없습니다. 굳이 따지하면 친일 정도인데, 이는 일단 넘어가고, 그들이 반공, 반북 말고 보여준 게 없는 이유는 그것 말고는 가진 게 없기 때문이죠. 


경제성장이라는 주제 또한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난 이후 실질적으로는 별 대단한 의미는 갖추지 못한다고 봅니다만(노무현 말마따라, 경제는 당연히 챙기는 거지 어쩌네 할 게 아닙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그리고 그러한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점이었기에 정치적 의제로 사용될 수 있었던 거죠.


그런 만큼 북한이 없어지면, 혹은 북한을 적으로 볼 수 없는 상황까지 온다면 자한당을 위시한 극우보수 세력은 새로운 생존전략을 찾거나, 그대로 무너지게 됩니다. 한국 내에서 새로운 정신의 보수가 발생할 수 있느냐는 차치하고서라도 김대중-노무현, 그리고 문재인의 대북 정책은 그들의 '생존에 위협적'입니다. 그런 이유로 김-노-문이 죽어라 욕을 먹고, 왜곡 당하고, 선동 시키고, 공격하면서 무력화시키고자 하는 거죠.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고, 북한에게 실질적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적극적으로 무너뜨리려고 해서 실제 무너진다면 일시적으로 대대적인 지지와 찬사를 받겠지만 이후의 생존 전략으로 뭘 내세울 것인가가 문제이고, 그렇다고 대화와 협상은 당연히 안 될 일이니 남은 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뿐인 거죠. 북한을 공격할 것도, 대화할 것도 아니라 그냥 놔두는 것은 오히려 북한이 꾸준히 나아지는 결과만 낳을 뿐이고(실제로 요 몇년 동안 김정은 정권은 경제성장을 일궜음.) 심지어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강해지기 때문에 전략적 불리함만 발생하죠. 물론 이렇게 되면 극우보수 세력은 더 좋아라 할 수 있겠죠.


까놓고 말해서 대북전략은 기실 미국에 의한 경제봉쇄일 뿐이고, 한국은 그냥 옆에 붙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요. 극우보수가 한 것은 북한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인데, 이것은 진짜 북한에게 뭘 하는 게 아니라 내부의 진보, 좌파 등의 세력을 공격하면서 만들어낸 겁니다. 북한에 등 돌리고 국민을 상대로 진영을 구분 짓고 싸운 거죠. 


그런 의미에서 극우보수 세력의 반공은 생존전략일 뿐, 그 자체로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닙니다.



한국 극우보수의 특이성으로는 민족주의가 없다는 것도 특기할만한 사례인데, 이는 앞서 말했듯이 친일 매국노로 시작한 이들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는 일본에 가깝습니다. 같은 민족을 팔아먹고 성장한 세력이 같은 민족에게 민족주의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생존을 위한 것입니다. 그 당시 많은 국가들이 민족주의를 정치적 목적을 위해 조장하거나, 사용하거나, 도입했죠. 제국주의 국가와의 경쟁 위한 단결, 대중적 지지를 받기 위한 정치전략, 침략에 맞서 싸우기 위한 민족적 단결. 이 중 한국은 가장 후자에 속합니다. 일제라는 적과 맞서 싸우기 위해 단결해야하고, 침해 당하는 역사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구체적 이념이죠.


하지만 친일 매국노들의 생존은 일본에 의해 보장 받았던 만큼, 그들의 정체성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이익 그 자체에 있고, 생존을 보장해줬던 힘 그 자체에 있습니다. 그들이 광복 이후, 지금까지조차 친일적인 이유는 일본에 의해 탄생한 종양이라는 점도 있고, 그런 만큼 일본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정신들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일본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전후 몰락해버렸다면 그들의 정체성을 받아들일 수도 없었죠. 바로 옆에 있는 만큼 주고 받을 것도 많고 또 쉽고요.


극우보수의 친미 성향도 거기에서 나온 겁니다. 이승만과 함께 국가의 요직을 차지했던 이들이 적극적 친미를 통해 미국에게서 쓸만한, 영향력을 투사하기 좋은 파트너로 인정 받은 거죠.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좋은 종놈들입니다만. 지금도 친미 매국노들 많습니다. 온갖 기밀 전달 시키고 이익을 받죠. 어찌됐든, 미국이라는 일본을 패배시킨 초강대국과 그 초강대국에 의한 생존의 보장만큼 안전한 게 없습니다. 그래서 친미를 했죠.


극우와 보수라는 이념은 보통 민족주의를 내포하기 마련입니다. 이는 어떤 곳에서든 마찬가집니다. 일본 극우는 천황을 위시로 일본인, 야마토 민족의 이익을 가장 우선시하고, 독일은 게르만 민족을 지상 최고의 우월한 민족으로 봤으며, 범슬라브주의 또한 자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있죠. 쇼비니즘 또한 나폴레옹 시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이며, 배타적 국수주의를 내포하죠. 파시즘에 가까울수록 민족주의는 더욱 강해집니다. 이는 미국이 됐든 어느 나라가 됐든 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유독 한국에서 만큼은 극우보수가 민족주의를 배척하고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중국에 대해서는 돈줄이 끊긴다고 하고, 일본에 대해서는 반일 종족주의라며 비판합니다. 반미를 하면 주인님을 건드린 개새끼마냥 반응하죠. 더불어 이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우리보다 강하다는 점이기도 하죠.


오히려 민족주의는 진보 세력에서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과연 누가 더 진짜 보수일 것이고, 누가 더 애국적인 것일까요? 서로 지켜야할 것이 무엇이길래. 한국의 전통과 역사를 가르치려던 전교조는 공식적으로는 아니어도 오랫동안 공공연히 빨갱이 프레임에 갇혀 있었습니다.


한국 극우보수가 매국적이고, 특히 친일적인 이유는 그들의 정체성이 한국이 아니라 일본에 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이 생각하는 우리 민족은 한민족이 아니며, 그들의 애국이 향하는 방향은 우리나라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들은 우리 편이 아닙니다.



반응형
AND
반응형





韓 보수성향 연구자, 日 극우 토론회서 "강제징용 없어" 주장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335187&plink=ORI&cooper=NAVER

“친일은 당연한 것” 카이스트 교수가 페북에 쓴 글

한국당 "반일감정 자극해 정치적 활용말라..국익 저해" 與 비판(종합)
‘일본 제품 쓰기 운동’ 벌이는 극우 커뮤니티
http://newsum.zum.com/articles/53581481


정말 놀랍게도, 이러한 주장은 일본 정부, 일본 극우와 같은 맥락의 주장이라는 겁니다. 아니, 맥락상 같은 게 아니라 완전히 같습니다. 한국 극우, 일베는 일본의 의도와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똑같이 주장해주죠. 


2018/11/04 - [취미/이야기] - 한국 보수의 태생적 한계와 근원.


그 이유는 일전에 한번 다뤄본 적이 있는데, 그들의 뿌리가 일제강점기의 일본에 있고, 광복 이후 살아남은 친일파와 그들의 흔적들이 효과적으로 청산되지 않고 한국이라는 국가의 근원을 이루는 요소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극우는 일본 극우와 동일한 사상과 이념, 정신을 갖추고 있는 것이고, 말하자면 형제나 쌍둥이 같은 건데, 한국에 존재하는 일본의 정신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중요한 것은 이게 단순히 똑같은 놈들이 있다. 정도로 이해할 게 아닙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국적은 한국일지언정 가슴 속, 사상의 바탕이 되는 '조국'은 일본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그들이 친일적이고 매국적인 행위를 하는 이유는 그들의 조국이 한국이 아니기 때문이고, 그들이 바라는 이상이 한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일본화 개조'가 오랫동안 진행되어 왔죠. 단순 국가 구조나 제도가 아니라, 사상적인 차원에서.



뉴라이트 등 보수성향 연구자가, 카이스트 교수가 친일은 당연한 것이라면서 친일적 행위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한국은 조국이 아닙니다. 국적을 가지고 있다고 조국이 한국인 건 아닌 셈이죠. 일베 또한 같습니다.


일베의 행위는 어디까지나 그냥 반사회적 찌질이들이 하는 짓입니다. 남들 뭐 한다 하면 괜히 맘에 안 들어서 그 반대로 하는 청개구리 심보. 다르게 말하자면 찐따. 딱 그 정도의 행동원리죠. 어떤 대단한 사상이나 대의를 가지고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신랄하게 비꼬는 것도 아니며, 어떠한 실익도 없고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는 논리적 합리성 또한 없습니다.


한국인의 불매운동은 일본의 어그로 때문이고 타당하지만, 일베의 일본 제품 쓰기 행위는 그런 정상적인 반응을 조롱하기 위한 반사회적 행동일 뿐이죠. 남들 좋은 일 하겠다고 하면 괜히 간지럽다며 반대하거나 비협조적으로 굴면서 분위기 망치는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는 찐따들의 찐따짓입니다. 한심한 족속들이죠.


그렇기 때문에 일베는 어떠한 정치적 이념을 위해 모인 족속들이 아닙니다. 그냥 남들 뭐 한다 하면 일단 반대부터 하면서 자신의 유일성, 혹은 대세에 거스르는 특이성, 특별함에 쾌감을 느끼는 찌질이들일 뿐이죠. 어디가서 주목 받아본 적이 없는 찐따들이기 때문에 자기 혼자 그러고 있으면 되게 좋아하는 애들이거든요. 스스로 깨어 있다고, 난 생각 없는 머저리들과 다른 머리 돌아가는 놈이라고 생각하는 놈. 학교에서라면 친구도 없이 맨날 혼자 지내는 놈이 자기 스스로는 쿨한 지능캐라고 자위하는 거랑 비슷합니다.


뭐, 그렇지만 일베 또한 극우적 사상의 일부인데, 그들이 그러한 색깔을 취하고 그러한 활동을 하며, 그들 극우세력에 도움이 되는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들의 정신과 이념 또한 극우와 동일하죠. 그래서 친일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 아주 입맛에 맞았을 겁니다.



근데, 이러한 모든 것들은 그들이 왜 그러느냐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고, 한국에 진짜 영향을 미치는, 경계해야 하고 막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겁니다.


저 위의 링크 중 자한당이 반일감정을 자극하며 정치적 활용하지 말라고 합니다. 정말 놀랍게도, 일본 또한 한국은 그런 식으로 비판하거나 지적한다는 점입니다. 더불어 이번 사건은 명백히 일본이 잘못한 거기 때문에 한국 내에서 저런 비판이 나올 수 없고, 타당한 논리로 이루어지는 비판 또한 아니라는 거죠.


저런 활동이 정말 위험한 이유는, 한국 극우 집단이 일본 극우 집단의 의도를 정확하게 받아주는 정치세력이자 진영이라는 겁니다.


즉, 일본이 한국을 공격하거나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거나, 위안부와 강제징용을 포함한 전쟁범죄와 같은 과거사 등의 문제에 있어서 일본의 의도대로 동조하라는 겁니다.


일본의 입장은 단순하고 명쾌해요. 앞으로 영원히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 일본의 관점을 한국이 수용하고, 그걸 국제사회에 일본과 함께 관철할 것.


한국이 거기에 동조한다면 그거야말로 적극적 친일이고 매국입니다. 과거 새누리당 시절했던 위안부 합의처럼요. 그리고 새누리당은 그걸 자신들의 공적으로 여겼죠. 그들을 지지하는 국내 극우보수 세력 대부분이 그랬고요.


현재로선 별 가능성이 없지만, 자한당이 일본 극우의 의도대로 한국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대놓고 이래라 저래라 지령을 내리는 게 아니더라도 같은 정신과 이념을 가진 그들이 일본 극우의 생각에 동조해준다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이 나라 극우보수라는 집단을 사라져야할 반국가집단이라 보는 이유는 단순히 국내 법과 정의, 민주주의와 헌법, 상식을 뒤엎고 공격하며, 때로는 심지어 북한에 이익이 되게 행동하는 정치꾼 집단이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 이상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물론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사라져야 올바른 집단인 게 맞긴 합니다만.



한국 극우보수는 한국을 조국으로 삼는 한국인이 아닙니다. 한국 국적을 가졌으되, 일본을 조국으로 섬기는 명예 일본인들이죠. 그들이 언행이 어째서 일본의 그것과 유사하고, 과거의 친일을 부정하려고 하며 일본의 행동원리와 동일한 작동을 하겠습니까? 내부 원리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다른 껍데기를 쓰고 있을 뿐.

반응형
AND
반응형


한국 보수에 속하는 이들 중 누구 하나 정상적이지 않고 반국가적이며 반사회적인 가치관과 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며 한국의 발전과 성숙을 저해하는 이유는, 그들의 태생과 근원이 그러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기존 질서와 정체성을 가진 과거와의 단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외부 정체성(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의한 이식과 정착을 겪으며 기존의 질서는 단계적으로 무너져갔죠. 식민지하의 사회가 다 그렇듯이, 누군가는 반발을, 누군가는 순응을, 누군가는 적극적인 변절을 선택하지만, 당연히도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것은 적극적 변절자들입니다.


기존의 사회와 정체성을 그들 내부에서 무너뜨리고, 불신과 질투를 유발해 분열을 시키기 때문입니다. 확고하게 뭉쳐진 정체적과 질서를 부순 뒤, 그 틈에 (힘의 우위에 따른) 더 경쟁력 있는 질서와 정체성을 이식하고 고착화 시키기에 앞잡이만큼 빼어난 선동수단은 없죠.



애초에 일제의 질서, 정체성은 한국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의 토양에 이질적인 면이 있었고, 궁극적으로 한국이 아닌 일본 중심적인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곧 어떠한 행동을 하고 세부적으로 어떤 갈래의 사상을 가지고 있든, 그 근본적인 논리와 기제는 일본에 이익에 가까워지고, 최소한 한국의 이익에 배반되기 때문에 한국에겐 반국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보수의 계보와 뿌리를 올라가보면, 일제시대에 큰 돈과 명성 등, 권세를 얻은 이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청산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은 그럴 수 없었던 현실적인 사유와, 그러한 친일파의 힘을 세력 기반으로 삼고자 했던 이승만의 정치적 계산하에 이루어진 생존이었으며, 일제시대에 정체성과 도의를 팔아 성장한 그들의 생존감각은 해방 이후, 전후 한국에서 빛을 보았죠.


적지 않은.. 거진 대부분의 거물 친일파의 후손들은 그러한 기반으로 하여금 막강한 권세를 되찾았고, 뭉치고 모여 세력을 이루었으며, 일제 패망 이후에도 그들 일제의 질서와 정체성을 한국에 유의미하고 강력하게 고착시킬 수 있게 했습니다. 즉, 살아남은 일제의 후손은 사람이 아니라 사상인 셈이죠.



당연하지만 돈과 권력을 지닌 이들이 무너진 사회의 주도권과 질서를 빠르게 휘어 잡았고, 이는 머리와 머리의 모양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일제의 그것이 살아남아 기능하고 있었습니다. 이승만 본인은 반일이었지만, 친일파를 세력화 시키면서 타협과 용인을 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질서와 정체성을 국가에 이식시켰고, 박정희는 그것을 군사독재적 방법론으로 용접했습니다. 전두환은 그걸 더 심화시켰고요.


그리고 그들의 후신들은 여러 이름과 형태로 살아남아 현재 국회에서도 힘을 쓰고 있으며, 그들의 사상 또한 여러 변화를 겪었으나, 그 근본적인 속성은 결코 변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60년대나 2010년대나 그들의 행태는 얼마나 세련되졌는가의 차이일 뿐이지(그마저도 보이는 걸 신경쓰지 않으면 그 시절 모습 그대로 입니다.) 변한 게 없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시작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말은 상투적이고 정치혐오적인 말이 아닌 셈이죠.



어쨌든, 이러한 역사적 흐름에서 보이듯이, 한국 보수의 뿌리는 일본 제국주의에 있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한국 모든 보수에게 태생적인 문제가 있는 것인데, 국가든 정치든 그것을 이루는 근원에 해당되는 정신적인 정체성 자체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을 뿌리로 두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행태는 반국가적인 것입니다. 단지 그 뿐이기만 하면 차라리 다행이겠지만, 문제는 그 사상 자체가 일본 제국주의, 파시즘에 있다는 겁니다. 즉, 극우 극단주의에 속하고, 거기에 일본 특유의 전근대적 광기 또한 섞여있죠. 근본도 없는 정신론과 중세적 인명 경시풍조 등등..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한국의 보수는 근본적으로 한국적일 수 없고, 애국적일 수 없으며, 민족주의적일 수조차 없는 겁니다. 그들이 뿌리로 삼고 근본으로 삼는 정체성 자체가 한국의 것이 아니며, 그 근원이 일본에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한국에 제대로된 보수가 들어서기 위해서라면 현재의 정치 풍조와 이념 지형이 모두 박살내놓아야 합니다. 이는 보수 하나만 박살나서는 안 되고, 진보 등 다른 이념진영도 부서져야만 합니다.


한국 진보 또한 보수와 경쟁하고, 반발하고, 심지어 공생하면서 맞춰진 짝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에 한국적 정체성을 가진 보수가 들어서야 (말하자면) 국제적 기준의 보수라는 게 만들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입니다.

반응형
AND
반응형


원래, 민족주의와 역사에 대한 담론은 오랫동안 보수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민족주의자나, 역사에 대한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역할, 그러한 담론은 보수들이 주로 이끌어왔죠. 그런데 이 나라는 참 이상하게도, 보수는 민족주의자도 아니고, 역사를 왜곡하려들며, 오히려 진보가 민족주의적이며 역사를 외치고 있다는 점이죠.


이러한 이유는 보수가, 사실은 세계적 조류에서 전혀 정통보수라고 부르기 민망한 이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한 그들은 보수적 색채를 몸에 바른, 기회주의자들이었죠. 현재의 주류보수를 차지한 이들의 정신적 아버지는 이승만입니다. 그리고 이승만은 지독히도 권력욕이 많았고 기회주의적이었죠. 그리고 그 이승만을 지지한 것이 바로 친일파들이었습니다. 이승만에게는 힘과 돈이 필요했는데, 그것을 이루어 줄 것들이 바로 친일파들이었죠.


그리고 친일파들은 역시 일본에 빌붙어 아부하고 한 자리 얻어 일제의 충실한 개로서 앞잡이 노릇하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시대에서 어떻게 그 지위와 부를 가지고 있었겠습니까? 일제에 반대했던 이들은 고문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재산을 몽땅 빼앗기던 시대에.


친일파들과 이승만은 현재 주류 보수주의자들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정희가 남긴 유산도 있지만, 짧게 그들의 생존에 도움이 되었던 존재라는 설명으로 넘어가고, 그들에게 민족주의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민족을 배신한 작자들이 민족에 대한 애착과 사랑이 있을 수 없죠. 같은 민족을 팔아먹으며 부와 권력을 얻고 그 습관 그대로 이승만에게 들어붙어 겉으로만 친일파 아닌 척, 국민, 민족을 위하는 척 했을 뿐이죠. 혹은 정권의 부족한 정당성을 이유나 반대파에 대한 물타기 형식의 공격을 위해.(지금도 그러죠, 그리고 아직도 먹힘.)




정상적인 진보주의자라면 독재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승만 때부터, 박정희, 전두환 때까지 꾸준히 투쟁을 벌여왔고,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할 권리와, 그것을 보장해야할 정부의 의무 및 책임을 주장해왔지요. 그들이 민족주의적인 이유야 스탈린주의의 극단적 민족주의를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도 있지만, 이미 일제시대때 얻은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그들은 같은 민족끼리 독재하고 탄압하고 고문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어쩌면 이러한 민족주의는 일제시대 때부터 봐왔던 같은 민족끼리의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독립을 한 뒤에도 똑같은 짓꺼리 하고 있으니 이게 어디 맞는 아귀겠냐는.. 



부당하게 권력을 잡은 승자들은, 그 부당성 덕분에 권력의 정당성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박정희나 전두환의 정권이 역시 그러하죠. 그러한 정당성을 위해 그들은 하나의 수작을 부리는데, 그게 바로 민족주의를 자극하거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입니다. 전두환 정권 시절 국풍81이 딱 그것에 들어맞죠.


원래 정통성, 정당성이 결여된 권력들은 그 컴플렉스를 해소하기 위해 역사적 권위와 전통적 이미지를 차용하길 좋아합니다, 전두환의 정권은 그 정통성과 정당성이 떨어졌고, 국풍81이라는 대규모 축제를 통해 그것을 해소하려 했지요. 물론 단순히 그런 목적 뿐만은 아니고, 70년대 중후반부터 대학가에서 마당극, 탈춤과 같은 민족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상승해왔는데, 80년대 초반 당시의 군사독재에 대항하는 민족주의 및 사회주의적 지적 풍토와 결합되어 민족민중예술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등장했죠. 국풍81이라는 축제는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5공이 반체제와 저항의 상징문화를 관제로 포괄해버리겠다는 의미가 되었지요.


애당초 민족을 팔아먹으며 생존한 족속들에게 있어서 민족주의라는 것은, 우민들을 통제하기 위한 프로파간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들 스스로가 민족에 대한 애착이 있었느냐는 의심해봐야할 것이고, 민족주의를 앞의 예시와 같이 이용해먹는 것을 보면 그 근거가 됩니다.


역사왜곡은 아주 당연하게 이루어지는데, 5.16군사정변을 5.16군사혁명이라 이름 붙히고 교과서에 등재시키거나, 독재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며 조작된 사건을 마치 진실인양 기술하는 등이 그러합니다.


그런 식으로 부당한 권력을 잡은 이들은 그 권력에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하는 수작을 부렸지요.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그들에게 역사란, 자신의 권력을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지, 그 어떤 의미도 없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권력은 최고의 가치이며 그것을 위해선 역사도, 민족도 팔아먹고 조작할 수 있죠. 그들 권력의 아버지격, 정신적 지주격에 대한 신성불가침이 있을 뿐입니다. 물론 그것도 권력을 지키는데 독이 된다면, 당장이라도 버릴 수 있는 것들이죠. 권력을 위한 지독한 마키아벨리즘적 인간군상들.



이러한 연유로, 진보주의자는 역사에 대한 중요성 또한 외칩니다. 기실 그것들이 민족주의 사관에 기대고 있다는 점은 그렇다쳐도, 그것을 조작하고 왜곡하여 자신의 권력기반으로 사용하는 것보다는 더 없이 순수하고 바람직하죠. 민족주의 사관은 역사함이 품은 여러 사관들 중 하나일 뿐이니깐, 적어도 학문적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있으니깐.


오늘날에도 진보주의자들은 민족과 역사를 외칩니다. 사실 그러한 것들은 보수주의자들의 전유물이지만, 우리나라에선 그 보수라는 작자들이 죄다 정상적인 보수가 아니기 때문에(기실 보수라고 하기엔 민망하지만 그냥 그렇게 불러주는 겁니다.) 오히려 진보들이 민족과 역사를 외쳐대지요. 아이러니합니다. 스스로 보수라 말하는 적과 싸우기 위해 보수적 가치를 진보적 목숨을 걸고 지킨다라.

반응형
AND
반응형


흠흠. 누구나 어떠한 악으로 인식되는 집단에 비난적으로 편입되기 싫어하고, 그 집단이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안 좋게 보이는 것이 아닌 절대적인 기준에서 악으로 인식되는 집단이라면 더욱 치를 떨며 반발할 것입니다. 예컨데 우리나라 좌파가 빨갱이라 매도되거나, 조금이라도 일본에 우호적으로 보이는 이들에게(심지어 일본어를 공부하는 이들에게도!) 친일파라 매도하는 행태가 그러한 비난이 됩니다.


이러한 비난이 아니라도 비슷하지만 다른 경우가 타인에 의해 오해되고는 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일어나는데, 저 또한 비슷한 경험이 몇번 있었고, 그때마다 그러한 오해가 두려워서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거나 되려 반동적으로 더 극렬하게 반대의 성향임을 내비치려 했었죠.



한국의 좌파나 진보는 빨갱이, 종북이라는 단어에 노이로제가 있습니다. 실제로 NL, 주사파라던가 70~80년대 북한의 실상이 잘 알려지지 않았고 되려 자국의 행태가 빈부격차, 지독한 독재와 모든 사회적 문제를 외부의 적에게 환원시키는 행동 등에 질린 이들이 북한이라는 적국의 그럴듯한 프로파간다에 넘어가 북한을 찬양하며 남한을 욕하는 경우가 있기는 했습니다만, 현재 소련이 망하고 북한의 실상이 제대로 알려진 지금에서 대부분의 좌파나 진보는 이번 이석기와 같은 이들과 궤를 달리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삐딱하게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다 거기서 거기로 보이겠다만, 실제로 일반적인 좌파와 진보는 이러한 빨갱이, 종북이라는 것이 대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집단이기도 하죠. 그렇게 욕을 먹고 나쁜 놈으로 취급받으며 언제나 억압받은 시절이 그리도 지독했으니.


하여간 이렇게 종북도 빨갱이도 아닌 좌파나 진보들에게 분명한 약점이 있다면 위와 같은 빨갱이 딱지가 바로 그러합니다. 나는 빨갱이가 아니고 그냥 부의 분배를 통해 빈부격차를 줄이고자 주장하는 1인일 뿐인데 빨갱이로 딱지가 붙고 비난을 듣는다면, 그리고 그것에 오랫동안 시달린다면 노이로제가 걸리게 됩니다. 사회의 암묵적 억압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신의 주장에 대해 자기검열을 하게 되죠.


북한과 엮여서 빨갱이라는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렸으니 당연 북한을 굉장히 증오하게도 됩니다. 차라리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많이 들거에요.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너 빨갱이지! 너 종북이지! 라는 비난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나는 빨갱이가 아니다, 나는 종북이 아니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극렬하게 아니라고 주장을 하며, 본 주제보다 더 중요하게 그것을 증명하려 노력을 하기도 합니다.


친일파 드립도 마찬가지인데, 분명 자신은 일본의 극우와 식민지시대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참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에 의해 일본에 대해 우호적인(물론 우호적일 수 있는 것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하죠.) 태도를 보여주면 어느 누군가가 나서서 너 친일파지! 하고 딱지를 붙힙니다. 그러면 분명 나는 그런 친일파와 일본의 극우를 증오하기 때문에 그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에 대한 반동으로 극렬하게 아니라는 주장을 폅니다.



이러한 반동적인 태도를 유도하는 것도 굉장히 불쾌하지만, 비난받는 입장에서 그러한 오해가 생기는 것 또한 굉장히 불쾌한 일입니다. 난 분명 개객끼가 아닌게 개객끼가 되는 것.. 정말 불쾌하죠. 그런 일들을 격다보면 노이로제가 걸리듯이 어느새 자기검열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자기검열은 올바른 주장에 걸림돌이 되는 일도 비일비재하죠. 한 문장으로 끝낼 수 있는 것도 오해가 생길까봐 아니라는 해명을 몇 줄 더 다는 경우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굉장히 시달리다보면 아예 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거나, 아예 전향하게 되는.. 경우도 있으려나요?..

반응형
AND
반응형


대한민국엔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만연해있는데, 북한에 대해서는 상식이 마비될 정도의 증오와 비관용을 갖게하는 이른바 반공 이데올로기가 존재하죠. 반공 이데올로기는 분명 북한이 먼저 남침을 통해 터뜨린 6.25 전쟁에서 비롯되고, 실제로 북한군이 저지른 수많은 학살과 피해는 분노하기에 충분한 조건입니다. 그들에 의해 가족과 친구, 친척을 잃은 이들이 이들을 용서하자느니 하는건 당연코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을 일이죠.


하지만 이러한 반공 이데올로기가 생겨난 이면에는 권력을 쥔 친일파들의 숨구멍이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먼저 전제해야할 것은, 광복 이후.. 그리고 전쟁 이후 한국에는 정말로 고급 인력이 너무나도 적었다는 것이죠. 어느정도 배웠다하는 사람들은 대개 일본군 소속이었던 전례가 있다던가, 친일파였던 이들이 꽤 많았죠.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실제로 나라를 이끌려면 고급인력이 부족한 그 시국에 이들과의 협력은 필수불가결했다고 봅니다. 이들마저 죄값을 받게한다, 죄인을 처단한다고 죄다 죽여버리면 정말로 나라를 이끌어갈 사람이 없어져버리는거거든요.


이는 북한도 마찬가지인게, 북한도 악질 친일파는 다 죽여버렸지만 많은 수는 자아비판을 통해 포용하게 됩니다. 이들을 다 죽여버리면 나라를 이끌어갈 사람이 없었던 것은 북한도 마찬가지였죠.


이런 상황에서 이승만은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와 권력을 다지기 위해(이승만은 특히 권력에 중독된 사람이었죠.) 이러한 친일파를 눈 감아주는 대신 자신의 발판으로 삼았습니다. 친일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친일파들은 다시 한번 권력을 잡은 셈이죠. 이런 친일파들이 살기 위해선 이승만과 함께 반공으로 돌아서야 했습니다. 친일파보다 북한이 더 개객끼! 이런 셈이라고 해야할까요?


반공 이데올로기는 또한 친일파들의 생존을 위해 견고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박정희라는 만주국 장교 소속이었던 자가 군을 통해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독재를 시작했는데 이때 자신의 정권을 공고히하기 위해 이러한 반공 이데올로기를 십분 활용했고, 이는 민정이양이 된 90년대에 들기 이전 모든 정권들이 가지고 있었던 기본 국시이고, 이러한 반공 사상을 이용해 자신들의 더러운 부분을 덮고 반대파를 공격하기 위해 사용되었죠.


독재를 비판한다 -> 너 좌빨!

노동자가 권리를 주장한다 -> 너 좌빨!

학생들이 시위를 한다 -> 너 좌빨! or 너 선동당함!


등등, 자신들에게 오는 상식적인 수준의 비판마저 종북과 좌빨로 돌려버리면서 괴상하게 역공을 했죠.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심취하게된 국민 절반 이상의 '지지자'들은 그것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그만큼 이데올로기가 강했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문제는, 이러한 경향이 민주화가 된 이후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인데, 정권과 우파 인물에게 어떠한 비판을 하게 되면 그 비판자를 종북이나, 선동을 당한 이들이라고 매도합니다. 예컨데 정권이나 여당 인물이 비리 등 부정부패가 걸리게 되면 그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넘어가고, 이런 이들을 공격하는 이들을 종북으로 몰아세우죠.


예컨데 중앙일보가 오유 사이트를 종북사이트라고 개시한 바 있습니다. 정권에 호의적이지 않고 비판이 올라오며, 민주당 정권 10년에 호의적인 이들을 종북으로 몰아세우는거죠. 이명박 4대강 비판하면 종북소리 듣던게 얼마전 일이었습니다. 비슷한 예로는 변모씨의 다음 종북포털 드립이 존재하구요.


이러한 종북드립은 보수우익 세력이 사용하는 하나의 전략적 카드가 되는데, 김문수의 역대 대통령 부정하면 종북이라던가, 박원순을 종북이라 매도한다던가, 심지어 차별금지법을 찬성하면 북한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반대해야하고, 찬성하는 이들은 북한을 이롭게하려는 종북세력이라고 하질 않나, 국정원의 명백한 선거개입을 대북심리전 -> 개인글 -> 종북대응 이라고 말을 바꾸며 심지어 모든건 북한과 종북 때문이라며 화를 돌리려는 원세훈의 발언도 있었죠.


국정원 사건 등 수많은 비판들은 매우 상식적인 선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들에 종북이라는 탈을 씌워 도깨비로 만들고 도깨비가 된 이들을 공격하는 것은 정말이지 비이성적인 대응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허수아비 공격이죠. 그런데 그러한 반공 이데올로기와 프로파간다에 넘어간 수많은 사람들이 그 비이성적인 대응을 옳은 방식이라 여기고 진짜 종북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종북. 물론 존재합니다. 통진당의 이정희, 이석기라든가, 가끔 발견되는 종북 블로그나 카페 같은 커뮤니티.. 하지만 이들은 정말이지 눈씻고 찾아봐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한때 절대시계 받겠다고 인터넷 뒤지던 때가 있었는데, 정말이지 종북 블로그나 그런거 찾기 힘들더군요. 그럴 정도로 매우 극소수에 불과한데, 이들이 나라를 뒤엎는다던지 이들이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소리는 설득력있지 않습니다.


종북이라는 허상, 종북이라는 신기루에 빠져 존재하지도 않는 종북 세력을 만들어내 다른 이에게 이러한 프레임을 덮어씌우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하는 것은 매우 비열하기 짝이 없는 행동입니다. 


모든건 북한, 종북 탓이다의 원세훈

정치권에 종북 세력이 있어 국정원 국내 파트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새누리

오유는 종북사이트의 중앙일보

차별금지법 찬성하면 종북의 기독교 세력

3.15 부정선거를 종북의 선동이라 주장하는 새누리 신의진 의원


상식이 종북에 갇힌 사례들과, 종북이라는 신기루를 통해 상대방을 공격하는 예시들입니다. 상식이 종북에 갇혀 좌파도, 우파도, 진보도, 보수도 상관없는 매우 상식적인 내용의 비판마저 종북 프레임을 씌우고, 자신들을 비판하는 세력과 더러운 면을 종북이라는 신기루를 뿌림으로서 희석시키고 역공을 하는게 아직까지 이어지고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나라.. 그리고 그런 정치술수에 너무나도 쉽게 넘어가버리는 국민들..


반공 이데올로기와 종북 프레임은 북한이 망하고도 십수년 동안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응형
AND
반응형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국가 두개를 꼽으라면 북한과 일본이 가장 많은 표를 차지할 것 같습니다. 북한이야 6.25 이후로 꾸준히 개새끼 위치를 차지해왔고 일본이야 제국주의 시절, 더 거슬러가자면 임진왜란 때문에 원숭이 위치를 차지해왔죠.



레드 컴플렉스라는게 있습니다. 빨간색을 공산주의와 연관시켜 혐오감을 드러내는 반공주의의 일종인데요, 하여간 이러한 레드 컴플렉스는 우리나라의 북한-빨갱이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설명해주는 단어이기도 하죠. 우리나라는 그간의 반공교육과 이데올로기 덕분에 북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라도 북한이라면 당연코 호감이 있을리 만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과 연관된 것에 대해서 또한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공산주의, 사회주의에 관련된 것을 이야기할때도 조금이라도 우호적이거나 심지어 지극히 정상적인 이야기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빨갱이라고 매도하죠. 이는 북한에 대한 맹목적일 수준의 혐오감에서 기인하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그것에 대해 우호적(혹은 상식적인 이야기라도)으로 이야기하면 같은 집단내에서 자신을 빨갱이라고 낙인찍고 매도하는 것에 대한 반동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적에 대해 더 크고 거친 비난을 하는 것이죠.


후자는 쉽게 말해 똑같은 취급 받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김정일 개새끼해봐 같은 사상검증이라고 할 수 있죠.


이러한 레드 컴플렉스는 우리가 북한을 보는 시각을 매우 제한적이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극히 상식적으로 합리적인 방법일지라도 옳지 못한 것으로 만들기도 하죠. 가령 북한 인민들의 인권에 관한 이야기를 할 적에도 빨갱이 딱지, 낙인이 붙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일본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어를 배운다, 공부한다는 이유로 친일파로 매도된다거나, 일본 만화를 본다고 친일파로 매도되고 그러한 일본 문화를 향유한다고 해서 일본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을 이중잣대로 취급하는 것은 같은 맥락에서 벌어지는 부당함이죠.



북한에 대한 레드 컴플렉스는 6.25와 각종 사건사고, 그리고 반공교육과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맹목적 혐오감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면, 일본은 그러한 혐오감과 더불어 열등감에서 출발했다고 봅니다.


일본은 수세기전만 해도 한국을 통해 대륙 문화를 들여오던 이들인지라, 조선 통신사는 국가적 행사급이었는데 이러한 관계가 점점 반전되더니 19세기 중반에 다달아서는 우리의 문화, 기술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어 근대화에 성공하죠. 그리고 이러한 근대화를 통해 제국주의 사상에 물들어 주변국을 침략하며 다름아닌 군국주의로 발전해버립니다. 뭐, 이들도 나름대로 열등감을 가졌기에 그러한 침략의 잔혹함이 만들어졌을지 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 이러한 발전한 일본을 보며 언제나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일본이 강해져버리고, 끝내 조선이라는 나라를 아예 식민지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에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45년 광복할때 느꼈던 일본의 발전상은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만들었죠. 50년에 6.25가 발발하고 전쟁이 끝나며 아무 것도 없었을때 일본은 전쟁 특수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되었고, 이는 수십년간 일본의 황금기를 맞이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선진국 일본에 더 큰 열등감을 느낄수 밖에 없었죠.


그렇지만 우리를 식민지화하고 무지막지한 수탈과 학살을 경험한 우리는 일본에게 열등감만을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증오 또한 느끼게 됩니다.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반일감정(이건 당연한거겠죠.)과 많이 해소되었다면 아직도 문화, 국제적, 사회적 위상에선 열등감을 조금 느끼고 있죠. 그러한 것을 잘 나타내는 것이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라는 책입니다. 허무맹랑하고 악의적으로 폄하되어있는 일본이 묘사되어있는 이 책을 보며 우리가 하던 것이 역시 그럼 그렇지, 원숭이 클라스가 어디가겠어~낄낄 대던게 우리의 현실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말입니다.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그렇게 히트칠 수 있었던 이유가 일본에 대한 호기심 뿐만 아니라 일본에 대한 맹목적 혐오감, 증오감에서 시작했다는 것은 자명할 것입니다. 우리가 싫어하는 일본이, 듣기로는 그렇게 선진국이고 발달했다면서 하는 꼴은 천박하고 꽉 막히기 그지 없으니 우리는 그걸 비웃으며(깍아내리며) 스스로 자위질하던 것이었죠.


일본에 대한 정보가 아무리 없다고서니 그런 책을 보고 철썩같이 믿어버린 것은 믿고 싶어서였을 겁니다. 전문용어로는 확증편향..



반일감정을 없애라는 것이 아닙니다. 반북감정을 없애라는 것이 아닙니다. 둘다 충분히 가질 수 있어요. 그들이 하는 꼴과 그들이 했던 꼴을 보면 없을 수가 없지요. 그렇지만 단지 그러한 감정에 휩쓸려 자신이 비판하려는 대상에 옳지 않은 비판과 비난을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저도 한때 그러한 혐일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 따라 일본이라고 하는 대상이 하는 것, 하는 말 등 일본이라고 하면 일단 까고 봤습니다만, 지금 생각하면 저 스스로가 멍청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왜 일본을 깠느냐 하면 정말 까야할 것도 아닌데 단지 일본이기 때문에 깠었던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이러한 북한, 일본에 대해 차라리 말을 아끼는 편입니다. 물론 스스로 생각하기에 분명 까야할 것이 있다면 까기도 합니다만, 한국은 일본, 북한에 대해 혐오하고 증오하는 감정이 많기 때문에 저 스스로 그것에 휩쓸려 나도 모르게 눈먼 양떼처럼 마녀사냥하듯 까고 있지 않을까 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환경과 프레임에서는 비판하려는 대상을 두고 스스로에게 더욱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더불어 자기가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내가 어째서 그것을 싫어하는가에 대한 성찰도 한번쯤 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연장선에서, 내가 싫어하는 이것이 이런 행동-말을 했다면 그것을 비판하는게 합당한가 또한 말이죠.

반응형
AND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849)
취미 (849)
백업 (0)

RECENT ARTICLE

RECENT COMMENT

CALENDAR

«   2024/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