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rodinger

블로그 이미지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 Total hit
  • Today hit
  • Yesterday hit

'이순신'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02.19
    임진왜란, 배설 장군의 탈영 및 처형에 관한 기록. 2
  2. 2014.08.14
    명량이라서 까는걸까, 진중권이라서 까는걸까. 1
반응형


이 글은 본인이 다음 Tip에서 답변할 것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


배설 장군의 후손이라고 해서 조상의 잘못을 쉴드치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역사는 역사 그 자체로 존재하고, 여기에 있어서 어떠한 왜곡과 날조는 있어선 안 됩니다. 여러 기록을 봤을 때, 배설 장군은 탈영을 한 것이 사실이고 처형 당했습니다. 이 사실은 여러 기록을 통한 교차검증으로 알 수 있고, 이에 대해서는 억울한 죽음이라고 할 수 없다고 봅니다.



선조실록과 난중일기에선 배설 장군의 탈영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사(水使) 배설(裵楔)이 주사(舟師)의 차장(次將)으로 주장(主將)을 구원하지 않고 도망쳤으며 이제 또 주장의 명령을 어기고 어둠을 틈타 도망쳤으니, 정상이 지극히 미워할 만하여 율에 처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장계 내의 사연(辭緣)과 곧 선전관을 보내 법대로 시행한다는 뜻을 접반사 이덕형으로 하여금 경리에게 고하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남절(南截)과 송남수(宋枏壽)의 도망한 죄는 참으로 용서할 수 없으므로 이미 왕옥(王獄)에 잡아왔으니 국문하여 처리함이 마땅할 것 같습니다. 더구나 이렇게 도망한 사람들은 그 수가 매우 많으니 부득이 하나하나 잡아다가 문초해서 그 중에 범법한 정상이 가장 중한 자는 베는 것이 마땅할 것 같습니다. 공론이 이와 같으므로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송남수는 곧바로 처치하지 않을 수 없으니, 무엇을 기다릴 것이 있겠는가.”

하였다.


9월 2일 [양력 10월 12일]<경인> 맑다.

오늘 새벽에 경상수사 배설(배설)이 도망갔다. 


역시 선조실록이며, 체포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간원이 박동량(朴東亮)을 개정할 것을 아뢰고, 또 아뢰기를,

“근래 국가의 기강(紀綱)이 크게 무너져 사람들이 법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컨데 유염(柳㾾)·배설(裵稧)·조경록(趙景祿)·이몽구(李夢龜)·임충간(林忠幹)·이몽견(李夢見) 등은 큰 죄를 짓고서도 목숨을 부지하여 이 세상에 버젓이 살아가고 있으니, 이보다 더 분통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따위 도망자들조차 능히 체포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러고도 오히려 나라를 다스릴 수가 있겠습니까. 조정에서는 이 문제를 심상하게 보아 태연한 채 괴이하게 여기지 않고 있어 세월이 이미 오래되었건만 한번도 명령을 내려 기어이 잡아들이려는 계획을 하지 않고 치지도외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한 장의 하유(下諭)를 내리셨으나 어찌 임충간을 털끝만큼인들 경동시킬 수 있었겠습니까. 별도의 조치를 강구하여 철저히 추적하지 않는다면, 다시는 체포할 날이 없을 것입니다. 비변사로 하여금 엄격하게 법조를 세워 다방면으로 계책을 시행하도록 하고, 각도 감사(監司)와 수령들을 엄책하여 숨겨주지 못하게 하소서. 또 많은 현상금을 걸어 기어이 체포하게 하여 나라의 전형(典刑)을 바로잡으소서.”

하니, 답하기를,

“박동량의 일은 이미 윤허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하유하였다. 나머지는 아뢴 대로 하라.


마찬가지로 선조실록이며, 배설 장군의 처형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 수사(水使) 배설(裴楔)이 복주(伏誅)되었는데, 그 아비 배덕룡(裴德龍)과 아들 배상충(裴尙忠) 등은 모두 방송하였다. 배설은 지난 정유년 7월 한산(閑山)의 전투에서 패전한 수범(首犯)이었으나 외지에 망명해 있었으므로 조정이 찾아내지 못했었는데, 이번에 도원수 권율이 선산(善山)에서 잡아 차꼬를 채워 서울로 보냈으므로 참수하였다.


선상배씨서암공파 카페에서는 김억추의 현무공실기, 이항복의 백사집, 정경운의 고대일록, 재조번방지 등에서 탈영과 관련한 기록이 없고 난중일기와는 다르다고 주장했다고 하셨습니다만, 자료를 찾아본 결과 사실은 달랐습니다.


먼저 김억추의 현무공실기는 김억추의 후손들이 20세기 초반에 저술한 책이며, 심지어 그 내용도 판타지 소설에 가까울 정도인 데, 후손들이 썼다는 사실을 감안해도 김억추에 대한 미화와 왜곡은 심각할 지경입니다. 대표적으로 꿈에서 관우의 계시를 받고 쇠사슬을 완력으로 짊어지고 울돌목 양쪽에 설치했다던가, 왜선에 단독으로 뛰어들어 검풍으로 수백명을 죽였다던가, 검을 한번 휘둘러 적선 수백척을 격파했다던가 같은 이야기가 당당히 적혀있지요. 이러한 사실을 감안한 바, 김억추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하여도 해당 저서의 기록을 신뢰하긴 어렵고, 그것과 별개로 다음의 근거들을 이유로 주장과 같은 기록이 존재한다 하여도 반박이 가능합니다.


김억추 본인도 그닥 뛰어난 인물은 아니었는 데, 1597년 정3품에 올라 전라우도수군절도사가 되어 이순신을 따라 어란포 해전과 명량해전에 참전했지면 수준 이하의 전투력의 추태를 보이다 결국 육지로 보직 변경을 신청해서 밀양부사 등을 거쳤죠. 괜히 후손들이 왜곡과 미화를 한 게 아닙니다. 


백사집의 경우에도. 


 “공(이순신 장군)이 통제사로 복귀했을 때 조선 수군이 막 패한 뒤여서 주선과 기계가 남아있는 것이 전혀 없었다. 공은 단기(單騎)로 달려 경상우수사 배설을 만났는데, 이때 배설이 거느린 전선은 겨우 8척이었고, 또 녹도에서 전함 1척을 얻었다.” 

 이 때 이순신 장군이 배설에게 앞으로의 계책을 물었다. 그러자 배설은 “배를 버리고 육지로 올라가 육군에 의탁해서 싸우는 게 낫다”고 했다. 이순신 장군이 “그 계책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하자 배설은 배를 버리고 달아났다. 배설은 이 때의 죄 때문에 훗날 사형 당하고 만다. 


출처 : http://leekihwan.khan.kr/345 

백사집 해석본 : http://blog.daum.net/collagen/979 


고대일록도 마찬가지입니다. 


<정경운의 고대일록> 


○1599년(기해) 2월 25일 을해(乙亥) 


배설(裵楔)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배설은 몸을 피하여 도망을 쳤으나, 결국 잡혔다. 

스스로 만든 허물을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 1599년(기해) 4월 17일 병인(丙寅) 


배설(裵楔)이 복주(伏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설은 경상 우수사(慶尙右水使)가 되어 배를 팔아먹고 도망갔다가, 

산골짜기에서 출몰하곤 했다. 그의 아버지를 가두어 두었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사람들에게 잡혀 몸과 머리가 서로 다른 곳에 있게 되었으니, 또한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재조번방지의 기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순신이 진도(珍島)에 오니, 배와 기계가 쓸어버린 듯이 남은 것이 없었는데, 마침 경상 우수사(慶尙右水使) 배설(裵楔)이 전선(戰船) 8척을 거느리고 왔으며, 또 녹도(鹿島)의 전선 1척을 얻었다. 이에 배설을 속여 나아가 싸울 계책을 말하니, 배설이 말하기를, 

“일이 급박하니, 배를 버리고 육지로 올라가서 호남 진영(湖南陣營)을 택하여 싸움을 도와 공을 세우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하엿으나, 이순신이 듣지 않으니, 배설이 이에 배를 버렸다. 


http://db.itkc.or.kr/index.jsp?bizName=KO&url=/itkcdb/text/bookListIframe.jsp?bizName=KO&seojiId=kc_ko_i006&gunchaId=&NodeId=&setid=955432 


선상배씨서암공파는 배설 장군의 후손 되는 사람들이 만든 카페인 데, 전에 다음 지식인 시절 때 명량이라는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알바를 동원한 것인지 배설 장군에 호의적이고 유리한 글만 올려대더군요. 근데 그 내용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나 다름 없어서 퍽이나 불편했습니다. 


배설 장군이 가지고 갔던 배가 나중에 이순신이 얻게 되어 나중에 명량해전 때 사용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난중일기의 기록들로 보아 배설 장군 그 본인은 칠천량 이후 PTSD로 의심되는 증세를 보였기 때문에 그 점을 감안하면 이해는 하지만 비판을 피할 수 없는 행동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지요.



백사기, 고대일록, 재조번방지를 포함해서, 난중일기, 조선왕조실록 등 교차검증이 되기 때문에 일부 기록에서 배설 장군에 대해 다른 정보가 기술되어있다고 해도 그 자체로 기존의 학설이 뒤집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자료가 잘못되었다는 근거가 될 뿐이고 별다른 실증적 증거가 없으면 배설 장군은 그냥 탈영한 게 사실이에요. 앞서 말했듯이 그 이유는 PTSD 때문이라고 할 수 있고요. 배설 장군이 겁쟁이인 게 아니라, 역시 이해할 수 있는 전쟁의 피해자 였을 뿐이죠.


반응형
AND
반응형


진중권이 영화 명량을 보고 졸작이라고 평했습니다. 사실, 전 명량을 보지 않았습니다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더라 싶더군요. 뭐, 아직 본 것도 아니니 명량에 대한 평은 삼가야겠습니다. 하지만 진중권이 까이는 이유를 보면 참 기가 막히더군요.


먼저, 진중권은 본래 미디어 비평을 하던 사람입니다. 미학을 전공한 학자지요. 그러니 영화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밝히는 것이야 아주 당연한 겁니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명량을 보고도 명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졸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래도 수작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죠.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별 해괴한 논리로 까는 건 좀 기가 막히더군요. 진중권을 비판한 동아일보, 한겨레의 칼럼을 보면 진중권이 말한 것처럼 영화 내적인 이야기는 전혀 없죠.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도 없고.


그 칼럼에 나온 이야기는 한국 현대사, 현 한국의 세태, 그리고 진중권과 진중권의 국가관이 전부인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다룬 작품에 대한 평가로 어느 개인의 국가관을 따지는 것부터가 참 웃기더군요. 까놓고 말해서, 이순신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개떡같은 영화 만들면 개떡같은 영화를 만든 제작자를 까야지 그것을 개떡같다 평한 사람의 국가관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거 진짜 웃긴거거든요.


물론 명량이 개떡같은 영화라는 소리는 아니고, 단지 이순신을 다뤘다는 것만으로 그것에 대한 비판이 금지된다면 그게 어디 정상적인 것이냐는 소립니다. 이순신 장군은 충분히 위대한 인물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영화에 대한 이야깁니다. 이순신 나오는 영화에 대해 비판을 했다는 이유로 욕을 들어먹고 국가관을 의심받을 이유는 전혀 없다는 것이죠.


솔직히 이번 명량과 진중권에 대한 논란은 다른 사람도 아닌 진중권이었기 때문에 일어난 소동이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른 사람이 개인 잡담 수준으로 명량 졸작이네. 라고 했다면 이렇게까지 화제가 됐을까요? 글쎄요. 진중권이 이빨을 깠고 그게 이순신 장군 영화라니 시너지가 붙은 거겠죠. 



이에 대해선 진중권보다 까는 사람에게 더 포커스를 맞추고 싶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순신 장군님은 분명 위대한 위인이고 그 자체로 깔만한 부분이 거의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이유로 마치 신성불가침이라도 되는 양 이순신 영화를 비판한 것을 이순신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여기며 공격하는 것은 분명한 문제지요.


마치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이순신을 까? 너 이 새끼! 하는 것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고 봅니다. 무비판적인 비판. 이유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만, 왠지 내가 느끼기에 잘못된거 같으니 깐다.. 같은 거죠. 이러한 생각없는 비판은 다른 여러 곳에서도 볼 수 있지만 그걸 이야기하고 있는게 아니니 넘어가고, 말하자면 영화는 영화로 보고, 그에 대한 비판은 비판으로서 듣자는 소립니다. 별로 어려운 이야기도 아니죠.


이런 논란이 일어난다는 것부터가 진중권이 미디어평론에 대해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고 그간의 행보 때문에 곱게 보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더군요. 

반응형
AND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849)
취미 (849)
백업 (0)

RECENT ARTICLE

RECENT COMMENT

CALENDAR

«   2024/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