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rodinger

블로그 이미지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 2,023,579Total hit
  • 19Today hit
  • 123Yesterday hit

'예술'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07.11
    업로드된 의식. 트랜센던스 리뷰 (2)
  2. 2013.08.31
    꿈을 포기하게 되는 슬픈 현상


주의. 이 글은 작품의 내용과 결말을 품고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신다면 영화를 본 뒤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보통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 해보았을 상상, 자신의 정신을 기계로 이식하는 것을 작품의 주요 요소로 한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재미있는 상상을 주제로 한 작품을 좋아하는데, 이 작품도 나름 그런 흥미로움을 긁었다고 할 수 있죠.



자아를 가진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을까.


작품내에서도 나왔듯이, 인간의 의식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모르고서는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미 있는 시스템, 인간(혹은 원숭이)의 의식을 컴퓨터로 이식하는 방법을 이용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것은 성공하지요. 주인공의 친구인 맥스는 그것에 대해 의심합니다. 정말로 내 친구인 윌인가, 아니면 윌과 비슷한 다른 존재인가. 


사실 이것은 매우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의심입니다. 만약 업로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윌의 근사치를 가진 다른 존재라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어떠한 이유로 윌의 기억과 경험의 대부분을 알고 있지만, 몇가지가 부족하여 전혀 다른 존재일 수 있다는 겁니다. 예컨데 히틀러와 매우 비슷한 경험과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그저 동물애호가가 될 수 있고 배트맨의 경험과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악당일 수 있지요.



인간을 초월한 지성.


윌이 수퍼 컴퓨터로 업로드 된 이후 그가 만들 것들을 생각해봅시다. 아주 대단한 것들이죠. 식물은 다시 살아나고 부서진 물건이 다시 원형으로 복구된다던가, 더러운 물이 아주 깨끗하게 정화됩니다. 그리고 말하지요, 의학적 응용의 한계는 사라졌다고. 이건 정말 대단한 겁니다. 더 이상 인간에게 육체적 장애는 사라진 것이 되니까요.


실제로 강도에 당해 죽을 뻔 한 사람을 거의 부활시키고 그 육체적 능력을 인간 이상으로 만들어줬죠. 그리고 많은 장애인들을 치유해주기도 했습니다.


위에서 나온 것들이 현실에 적용 된다면, 그야말로 인류학적으로 혁명과 같을 것입니다.



PINN은 선악을 구분하지 못했다.


주인공이 업로드 되는 수퍼컴퓨터의 인공지능인 PINN은 선악을 구분하지 못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저 충성했다고 하죠. 만약 윌이 정말 인간성을 가진, 정신을 가진 인간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윌과 비슷한, 그저 인간과 비슷할 뿐인 인공지능의 프로그램일 뿐이라면 인간은 인공지능의 판단을 예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이로봇에서처럼, 인간을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대해석하여 인간을 강력한 통제하에 두려는 시도와 같은 '인간이라면 하지 않을' 행위를 저지를 수 있겠죠.


그리고 윌은 자신의 인부들의 신체능력을 향상시켜주되, 그들에게 접속하여 그들의 육체를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됩니다. 다른 이의 몸으로 에블린과 대화, 신체접촉을 시도하는 윌의 의지는 언듯 매우 위험해보이기도 하죠. 게다가 그에게 치료 받는 사람들과, 나중에 나올 육체까지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그를 경계하는 이들이 말하듯이 초인 군대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예상 또한 못할 것도 아닙니다.



윌은 인간인가.


작품이 중반을 넘어가며 윌이 인간성을 가진 존재인지, 혹은 비슷한 근사치를 지닌 프로그램일 뿐인지 우리 스스로 의심하게 됩니다. 초인적인 육체능력을 지닌, 그리고 네트워크화 되어 윌의 의지에 따라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인부들, 에블린의 몸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을 스캔하여 감정을 읽어내는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행동. 그는 과연 인간일까요?


정답은.. 인간이었습니다. 업로드된 윌을 윌이 아닌 윌과 비슷한 인공지능이라고 판단한 '육체를 지닌' 인간들은 그를 위협요소라 여기며 공격을 시도했습니다. 에블린은 몸 속에 바이러스를 품고 윌과 접촉하죠. 윌은 그런 에블린을 의심을 하죠. 왜 다시 돌아왔을까, 왜 땀을 흘리고 심장이 고동칠까, 날 두려워하고 있지 않은가. 공격이 시작된 순간까지 질문을 하는 윌의 모습은 끝까지 관객으로 하여금 윌이 인간인가를 의심하게 하지만, 이내 공격에 상처를 입은 에블린을 안으로 대려간 윌은 그녀를 업로드시키며 동시에 바이러스를 받아들입니다.


그녀와 함께 죽으며 그녀에게 자신이 하고 있던 것들, 그리고 하려던 것을 보여주죠. 나노 입자들이 대기중에 퍼져 오염힘자를 제거하고, 숲은 다시 자라나며, 물은 너무 맑고 깨끗하여 아무 강에서나 마실 수 있는 세상. 그녀가 원했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단지 질병의 치료할 뿐 아니라 지구를 치유하는 것. 그것은 윌이 사랑한 그녀, 에블린이 원했던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윌이 자신의 기술력을 이용해 세상을 지배하려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판이었죠. 윌은 인간처럼 보이는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적 판단을 할 줄 알았던, 뛰어난 지성을 가졌을 뿐인 인간이었고, 그렇게 자신이 사랑한 여자와 함께 죽음을 맞이 합니다.


윌은 네트워크화 시킨 마을 사람들과 자신의 기술을 이용해 군인들을 무력화 시켰지만, 아무도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에블린의 몸 속에 넣은 바이러스에 의해 윌은 죽게 되고, 그의 복제를 심어뒀던 모든 인터넷은 오류를 일으키며 세상은 어두워집니다.


그러나 죽은 해바라기는 다시 싱그럽게 피어나고, 공기는 맑아졌으며, 물은 정화되었죠.


사실 이러한 오해는, 윌의 모습에 의해 더 촉발된 감이 있다고 봅니다. '육체를 가지지 않은, 네트워크에 살고 있는 정신'. 육체가 없고, 단지 정신이 컴퓨터에 업로드 되어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인간임을 의심받았던 것이죠. 처음 PINN에게 했던 질문, 너에게 자각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가? 에 대해, 윌은 PINN과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 질문에 대답은 윌이 그것을 증명할 수 없음이라 판단했지만, 사실은 에블린의 말처럼 그것은 정말로 유머였을 뿐이었던거죠.



훗날 인간이 정말로 의식을 업로드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온다면, 우리는 똑같은 고민과 의심을 하게 될 겁니다.

TRACKBACK 0 AND COMMENT 2
  1. 2014.07.12 20:11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konn.tistory.com BlogIcon Konn 2014.07.12 23:44 신고 address edit/delete

      한가지 주제, 요소를 가지고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가 여럿 있다는 점에서 꽤 재밌는 영화입니다.





꿈. 꿈을 가진 다는 것은 살면서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있고, 그 목표를 향해 노력할 수 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삶에 목표가 있는 사람이라면 흔들이지 않을 수도 있겠죠. 자신이 무엇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는지 알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할지 알고있다는 것이니까요.


꿈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꿈이 있다면 그 꿈을 향해 달려나갈 생각이라도 해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기 때문에 삶이 따분하다면 따분하다 할 수 있겠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듯이 남들따라 초중고 나오고 대학들어가서 대충 졸업장 따고 적당히 자기 능력에 맞는 회사에 취직해서 월급타먹다 30대쯤 되면 결혼하고 이러쿵 저러쿵.. 하나의 스테레오 타입이라고 해야할는지,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죠.


그렇지만 참으로 애석하게도 꿈이 있는 사람또한 이렇게 살아가게 되는 것은 어떠한 연유일까요, 꿈이 있고 그 꿈을 진심으로 쫓고 싶어하면서도 현실을 고려한 뒤 꿈을 접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요.


누군가는 예술가의 꿈을 키우고 있고, 누군가는 가수나 댄서의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디자인이나 로봇공학자 같은 꿈이 있을 수 있고 그 꿈을 정말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이 꿈을 접는 이유는 모두 비슷합니다. 돈이 되지 않아서, 취급이 좋지 않아서, 그렇기 때문에 가족들도 반대하고, 심지어 내가 생각해도 내 시간과 미래를 투자하며 그곳에 뛰어들 용기도 없기 때문에..


이것은 정말 슬픈 일입니다. 그것을 하고 싶어하고, 심지어 그것을 하는데 충분한 능력이나 재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꿈을 접게 만드는 것 말입니다. 저는 원하는 직업이 있어도 생계나 사회의 시선 때문에 그것을 하기 못하게 되는 상황에는 사회의 책임도 어느정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업이나 정치에서 발전한다는 것은 개인이 짊어지는 리스크를 줄여주는 것이죠, 개인이 짊어지는 리스크 때문에 직업을 선택하지 못하는 상황을 막아주는 것이 정의로운 국가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과 산업 등등, 지금도 취급이 취약하거나 인프라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곳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와는 달리 누군가는 그곳에 뛰어들고 싶어하고, 그곳에 대한 꿈이 있으며, 정말로 그곳에서 즐거워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생계나 사회의 시선 때문에 그것을 포기하게 된다면, 그것은 정말 슬픈 일이고 발전과도 동 떨어진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죠.

TRACKBACK 0 AND COMMENT 0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618)
취미 (618)
백업 (0)

CALENDAR

«   2019/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