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rodinger

블로그 이미지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 Total hit
  • Today hit
  • Yesterday hit

'바이온트 댐'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22.04.18
    부패한 사회가 강할 수 있는가.
  2. 2021.01.05
    정경유착이 빚어난 거대한 참사, 바이온트 댐 붕괴사고.
반응형

정치나 사회에 있어서 부패함은 자원이 필요한 곳으로 가지 못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원은 돈, 현물, 물자, 상품, 재료 뿐 아니라 노동력과 관리 및 조율, 심지어 절차 진행와 판단 등 인간이 하는 역할 또한 포함합니다. 가령, 성이나 나이, 지역을 근거로 차별적인 판단을 내리거나, 혹은 자격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이, 혹은 자격은 있으되 정당한 절차와 방식을 무시하고 어떠한 직위를 차지하는 경우 또한 있겠지요. 소위, 낙하산이라고 불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보이는 행태를 보았을 때, 강하다고 여겼던 러시아의 치명적인 추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부패한 군대이기 때문에 자원이 필요한 곳에 제대로 분배되지 않았고, 그탓에 개인무장부터 기갑 장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확한 작전 수행이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특정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이 주어지지 않았는데 해당 목적을 달성하기란 불가능하거나 극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가령, 폭탄이 없이 폭파 작업을 할 수가 없고, 먹을 수 없는 전투식량을 가지고 장기간 작전 수행은 불가능하며, 기갑병력을 전개하여 보병과 함께 전선을 밀어야 하는데 전차, 장갑차가 없어졌으면 제병합동 작전은 불가능하겠죠.

 

이는 필연적인 실패. 즉, 패전으로 이어집니다. 아무리 강한 군대라도 부정부패로 인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패배하게 됩니다. 역사에는 그러한 크고 작은 사례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가장 처참한 사례로는 토목보의 변, 국민방위군 사건 등이 있습니다. 지금의 러시아군의 졸전도 그러한 크고 작은 부정부패가 쌓이고 모여서 발생했죠.

 

 

군대에서는, 정확히 말해서 전쟁 상황에선 적군과 직접적으로 부딪히며 증명하기 때문에 그 결과가 빠르게 증명되는 편입니다. 부패한 군대는 그렇지 않은 군대와 싸워 패배할 것이고, 패배한 이유를 분석하게 될 것이며, 결국 드러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그렇게 빠르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성수대교는 79년도에 최초 개통되어 94년도에 붕괴했습니다. 삼풍백화점은 89년도에 개점하여 95년도에 붕괴했죠. 이건 그나마 눈에 띄게 보이는 사례들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례들, 심각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크고 작은 부정부패와 비리는 정말 많습니다.

 

그 옛날 촌지부터 시작해서 부동산 관련 부정부패, 주식시장 관련 경제범죄, 돈과 인맥, 지위를 통해 자기 자식에게 유리한 스펙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그 인맥을 이용해 우월한 지위와 직위를 획득하는 경우도 있으며, 은퇴나 사직 후 회사의 한 자리를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유독 편파적인 판결이나 기소, 변호를 하는 경우 역시 존재합니다. 전관예우는 대표적인 법조 비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사회의 크고 작은 영역에서 자원이 필요한 곳에 가지 못하도록 합니다. 처벌받아야할 사람이 처벌받지 않고, 더 자격 있는 누군가의 자리를 다른 사람이 빼앗고, 내가 투자한 돈이 다른 사람 주머니에 가게 되며, 다른 사람이 가져야할 집을 부당한 방법으로 얻어 큰 차익을 남기기도 합니다.

 

필요한 자원이 필요한 곳에 가지 못했기에 누군가는 반드시 피해를 보게 되고 그것들은 쌓이고 쌓여 거시적인 수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또한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러한 불공정한 경험을 한 사람들은 물론 전파되어 그러한 사례를 접한 이들에게도 점차 사회적 신뢰를 잃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한 신뢰의 상실이 확대되어가면 협력과 협동보다는 개인적 성취와 이익에 매몰될 것이고 우리 사회의 개인들은 분절되어 파편화될 것입니다.

 

민주주의 체제임에도 대의를 위해 국민 개개인이 힘을 모으는데 동의하기 어려워질 것이며, 이는 우리 사회가 어떠한 도전을 받을 때 그것을 이겨나가기 어려워짐을 의미합니다. 당장 경찰, 검찰, 법원에서 보여주는 성차별적인 사례들은 남성들이 여성 피해자를 위해 나서기보단 스스로의 안위를 지키는 것을 더 중요시하는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세대, 혹은 특정 계층의 경제적/사회적 고난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일부 포기할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 것이고, 자신에게 별다른 손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돕는 것에 인색하게 될 것입니다.

 

 

차별하고 분열시켰기 때문에 우리는 힘을 모으지 못할 것이고, 그 차별과 분열의 근거는 불평등 그 자체에서 나옵니다. 부패는 불평등의 한 형태일 뿐이고요. 필요한 자원이 다른 곳으로 가는 것 자체가 불평등합니다. 우리에게 와야 마땅한 자원이 누군가의 주머니로 가는 것이니까요.

 

 

부패는 위기의 순간에 그 해악함을 드러냅니다. 그 자체로도 해악하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그것이 특히나 두드러지죠. 바이욘트 댐 역시 부정부패로 인해 수천명이 사망했습니다. 성수대교는 32명, 삼풍백화점은 502명이 사망했습니다. 누군가가 필요한 자원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빼돌렸기 때문이고 우리 사회에 거대한 상처와 충격을 발생시켰지요. 이러한 사고는 부정부패가 만들어내는 해악 중 하나일 뿐이고, 한 종류일 뿐입니다.

 

동남아 등의 후진국에서 부패는 그 자체로 경제를 이루기도 합니다. 뇌물을 통해 특정 절차가 진행되기도 하고, 공정한 결과나 유리한 결과를 위해 뇌물을 사용해야 하기도 하죠. 그러나 반대로 이것은 그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거대한 원인 중 하나가 됩니다. 뇌물을 받지 않는다면 공정한 결과를 기대할 수 없고, 뇌물을 통해 유리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부정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성공과 기회가 뇌물을 비롯한 부정부패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면 당연히 더 많은 뇌물을 낼 수 있는 사람만이 유리할 것이고, 이는 사회적 손실과 빈부격차로 이어집니다.

 

즉, 사회 전체의 성장은 저해되고, 더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없으며, 능력 있는 개인의 성취 역시 누군가의 자본과 유착에 무력화되죠. 후진국 사회가 성장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러한 부정부패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부패한 군대가 성공할 수 없고, 자원이 필요한 곳에 가지 못한다면 반드시 잘못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처럼, 부패한 사회 역시 위기에 취약하고 평시에도 성장과 발전을 저해하게 됩니다. 경제성장을 말하면서 경제사범을 방지하고 필요한 만큼의 처벌을 하지 않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군대가 승리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원이 제공되어야 하고, 필요한 인력이 구성되어 적절한 판단을 내려야만 합니다.

 

공정한 사회를 바란다면 부정한 방식으로 자격과 직위, 자본과 권력을 취득하고 달성한 사람을 배제해야 하며, 그러한 방식을 막거나 더 나은 방식으로 유도해야 합니다. 그 자체로 불공정을 발생시키는 차별과 혐오 또한 최소화될 수 있도록 억제하고 축소시켜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부정부패와 불공정한 사례에 대해 정파와 이념과 관계 없이 그것을 배제하는 것이 옳고, 애국자의 자세가 바로 그러합니다. 부패한 군대가 강할 수 없듯이, 부패한 사회가 강할 수는 없습니다. 

반응형
AND
반응형




 

<인근에서 바라본 바이온트 댐. STOP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띈다.>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북서쪽으로 올라가면 바이온트라는 지역이 나옵니다. 베니스보다 국경에 더 가까운 산간 지역이기도 하죠. 역사적으로는 오스트리아 대공국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던 지역에 포함된 곳이었고, 1866년 이탈리아 통일 운동으로 우디네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 이탈리아 왕국에 속하게 되었으며, 그 동쪽 지역은 오헝 제국에 넘어갔다, 다시 1차대전 때 이곳 전체가 이탈리아로 넘어오게 됩니다.

 

 

따지고 보면 오스트리아의 땅이었는데 아틸라아가 가져온 곳이 되는 거죠. 뭐, 이탈리아 왕국은 망했지만.

 

 

<딱 봐도 댐으로 만들기 좋은 지형.. 하지만 댐은 물을 막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죠.>

 

 

보시다시피 높은 암석산이며 그 협곡이 좁고 길어서 군사적인 관점에선 방어하기 좋은 지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골에는 피아베 강의 지류가 흐르는 강이 있죠.

 

모든 문제는 이러한 딱 봤을 때 댐을 만들어먹기 좋은 지형에서 시작합니다. 당시 이탈리아의 사업가 주세페 볼피는 이 지역에서 돈 냄새는 맡은 거죠. 그는 자신의 사업체인 SAFE라는 전력 회사를 통해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의 공업지대에 전력을 공급하여 큰 돈을 만질 수 있다는 겁니다. 이미 주세페는 전기, 철도, 수도 같은 기간산업으로 큰 성과를 올린 사람이니만큼 이번에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일을 진행했습니다.

 

사실 사업 자체는 1920년부터 계획되었습니다. 그러나 2차대전도 터지고 하는 통에 일이 잘 안 풀렸고, 그에 따라 본격적인 공사는 56년에 베네치아 북쪽 100km 쯤 떨어진 바이온트 협곡을 막는 건설을 시작하게 되었죠. 그리고 약 3년 후, 59년도에 완공하여, 높이 262m, 두께 27m, 담수량 1억 5000만 톤으로 당시 유럽에서 가장 높은, 대규모 댐이었죠.

 

 

 

<딱봐도 뭔가 쏟아진 흔적이 역력한 바이온트 댐의 풍경...>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컸습니다. 먼저, 건설 전 조사 과정에서부터 학자들에 의해 논쟁이 발생했는데, 이곳의 지형이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기반암이 계곡 양쪽에서 경사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는 향사구조였다는 겁니다. 심지어 지층에는 점토층을 포함하는 곳인지라, 물에 매우 약한 지반이라는 거죠.

 

다시 말해 물이 많이 모이면 지층이 물러져 산사태가 발생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는 겁니다. 따라서 과학자들과 언론인들은 SADE에 경고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러한 사업에서 발을 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것도 부정부패한 국가와 기업이라면 더더욱이죠.

 

오히려 SADE는 그들의 경고를 무시했고, 언론과 정부와 함께 사업 방해를 막으려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물은 불보다 많은 인간을 죽였다.>

 

 

먼저 이탈리아 정부는 댐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언론인, 마을 주민, 반대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부터 사회질서를 무너뜨리고 체제전복을 획책하는 내란 음모 내지는 파르티잔으로 몰아버립니다. 소송까지 벌일 정도로요. 마치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죠. 여기에 어디서 더 많이 본 것 같은 짓을 하나 더 합니다. 어용 학자를 동원하거나 학자적 판단보단 정치적, 경제적 판단을 우선시하는 이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객관적으로 펼치기보단, 계곡에서 그러한 산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낮다거나 설령 난다 하더라도 그 규모는 위협적인 수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하죠.

 

 

당연히 시민단체들과 주민들은 이러한 판단에 동의하지 않았고, 상식적으로도 석회암 지형은 물에 약하다는 건 공교육을 제대로 배웠다면 알 겁니다. 석회석은 물에 녹는다는 건 어렸을 때 과학 교과서만 제대로 봤어도 머리 어딘가엔 남아 있을 지식이죠. 그러니 댐 건설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정경유착은 그들의 저항 따위는 이도 안 들어갈 정도로 훨씬 공고합니다. 언론은 통제되었고, 앞서 말했듯 반대자들은 지역 주민들을 포함해 파르티잔, 빨갱이가 되었죠. 참으로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죠. 아무래도 반도국가끼리는 뭔가 통하는 게 있긴 한 모양입니다.

 

 

 

 

<참사의 결과가 어떨지 너무나도 뻔하게 보이는 지도.>

 

 

결국 댐은 완공, 60년 2월부터 담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다음달 3월엔 수위가 130m, 이후 170m까지 올랐는데, 이 시점에서 당연하게도 경고되어왔던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하죠. 댐 주변 지층에 물이 차면서 석회암 지층으로 이루어진 산이 기울어버린 것입니다. 이 당시 주변 지층의 움직임은 하루 3.5cm 정도의 이동이 관찰되었다고 합니다. 동시에 2km의 거대한 절리가 댐 쪽으로 발생했고요.

 

그리고 60년도 11월 4일, 기어코 산사태가 발생해 토사 70만㎡가 쏟아져버리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바이온트 댐 측에선 더 큰 일이 벌어질 까 그저 댐 수위를 135m까지 낮추는 정도로만 대처를 해버리죠. 덕분에 지층의 이동은 하루 1mm 정도로 줄어들게 됩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은 동서고금에 통하다보니, 안전불감증인지 인지부조화인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욕심과 고집 때문에 SADE는 자신들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그대로 돌립니다. 댐 사용을 중지하거나 타당성 검사를 다시 하거나, 지속적인 경고를 인정하기 보단 수위를 낮추니 괜찮아지니 적당히 높이를 조절해가며 전기를 생산하면 된다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결국 현장에서 사면의 이동 속도를 봐가면서 수위를 다시 높이기 시작했는데, 약 1여년 동안 185m, 235m, 다시 185m로 조잘하며 산의 흙이 얼마나 움직이지는 확인했지만 경계한 것과는 다르게 지층의 이동은 생각보다 빨라지지 않았죠. 그래서 62년 11월엔 수위를 235m까지 올려 버립니다.

 

당연하지만 이 상대적으로 안전해보이는 관찰 동안 간헐적으로 소규모의 산사태가 발생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인부들은 산사태를 무서워하거나 위험하다고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모여서 산사태를 구경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에겐 별로 위험한 게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이런 것들은 대참사의 전조였고, 욕심에 눈이 먼 이들은 그 신호들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댐의 수위가 240m를 넘자 흙의 이동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나중에는 아예 1m씩 움직일 정도에 이르러 댐 관리 기술자들은 댐의 수위를 240m까지 낮추기로 결정하죠.

 

 

<그나마 코믹한 짤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끔찍한 참사였습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것도 SADE와 정부가 아닌 반대하던 지역 주민들이었죠.>

 

 

1963년 10월 9일 오후 10시 39분, 대참사가 발생했습니다. 바이온트 댐이 범함한 것이죠. 단 6분이었습니다. 이 댐에서 발생한 사태가 바로 아래, 롱가로네 마을을 집어삼키기까지 말입니다.

 

먼저 댐의 상부 남쪽에 있는 토크 산에서 산사태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댐에 의해 형성된 인공호수로 2억 3800㎡의 토사가 덮쳤죠. 그리고 그 충격으로 호수의 물은 협곡의 북쪽 사면으로 쏠렸고, 높이 250m나 되는 거대한 메가 쓰나미가 발생해버렸습니다. 파도는 댐을 부순 게 아니라, 넘어서 쏟아졌고 협곡을 타며 6분간 흘러 앞서 사진에 보이는 롱가로네 마을을 비롯하여 리발타, 피라고, 빌라노바, 파에 등의 인근 마을을 쓸어버렸습니다. 이 쓰나미는 1.5km를 더 가고도 70m나 되는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가장 가까이 있고 정면에 있는 롱가로네 마을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죠. 마을 자체가 쓸려나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요.

 

 

<당시 참사의 그래픽 이미지. 롱가로네 마을이 있는 곳이 완전 수장되어 버렸습니다.>

 

 

추정 사망자는 약 1900~2500명이며, 이 중 절반이 롱가로네 마을 주민들이었습니다. 피해자 중 350여 가구는 가족 전원 사망이라는 끔찍한 결과였죠. 주민 추산으로는 총 5000명까지도 추산된다고 합니다.

 

 

<사고 이후의 사진.>

 

 

그렇다면 이 참사는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상식적으로 책임자들에게 무거운 처벌을 내리는 것이 맞겠지만, 아시다시피 이탈리아의 부정부패는 이 거대한 참사조차 묻어버릴 정도였습니다. 최소 계획자였던 주세페는 이미 늙어 죽었고, SADE와 정부의 책임자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부는 이 사고는 인재가 아닌 천재, 신이 하신 일이라며 책임을 피하려고만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을 수는 없죠. 그게 억울할 정도로 과한 책임이라곤 해도 말입니다. 사고발생 후의 재판과정에서 책임을 져야한 고위직, 임원진들은 모두 빠져나가고, SADE와 관련 회사들의 기술자, 실무자 몇 명만이 처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재판과정에서 공개된 설계자 까를로 세멘짜가 동료에서 썼던 편지를 보면 "그 힘든 공사를 우리는 용케도 아주 운 좋게 멋지게 해냈네. 그러나 내 능력을 벗어난, 나로서는 제어할 수 없는 그 뭔가가 거대한 것에 여전히 대책없이 노출된 상태임은 나는 느낀다네.."라고 적었습니다.

 

댐 설계자부터가 이러한 사업에 위기감과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공사였다는 것이지요. 

 

결국 법정에 회부된 기술자들 중 마리오 판치니는 법정 진술 전날 자살, 몇 명은 재판이 끝나지 전에 사망하며, 진짜 책임을 져야할 고위관계자들은 모두 빠져나갔습니다. 실제 책임과 처벌이라는 독박은 실무진들이 죄다 뒤집어썼죠.

 

 

 

<오, 인간이여.>

 

 

결국 이 사건은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커다란 인명피해를 입힌 정경유착 비리와 잘못된 토건사업이 빚은 참사로 기록되었습니다. 수많은 책과 영화 등으로 소개되고 분석되었지요.

 

이후 이 지역은 02년 동안 접근 금지구역이었다가 풀렸고, 08년에 유네스코는 인류 역사상 기억해야할 사고로 세계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의외일진 몰라도 댐 자체는 별 피해가 없었습니다. 물들이 넘어가며 댐 상부에 손상을 입혔지만, 댐 자체는 그대로 서서 남았죠. 댐 붕괴사고라곤 하지만, 실제로 댐이 붕괴된 건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제 물을 담진 않습니다만..

 

이 사건 이후 이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경적을 울리지 않고, 라디오를 끄며 대화를 중단하거나, 잠시 내려 추모를 한다고 합니다.

 

또한 근처에 사고를 추모하는 작은 성당이 건축되기도 했죠.

 

 

정경유착이라는 것은 한국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생하는 범죄이기도 합니다. 토건과 얽히는 것은 거의 한국의 전통에 가까울 정도로 흔했고요. 이익을 위해 위험을 묻어버리는 기업과 그것을 묵인하는 정부, 학자적 양심보단 정치경제적 판단을 우선시하는 학자, 정부의 의도대로 사건을 정치화하여 반대자를 공격하는 언론, 주민과 단체, 학자들의 경고와 반대를 찍어누르고 정부의 부당한 공권력 남용 등..

 

정의와 어긋난 일은 그것이 도덕적으로 지탄받는 일이기 때문에만 비판받고 비난에 시달리는 게 아닌, 어떻게든 크고 작은 실질적 피해를 발생시키기 때문입니다. 이익을 위해 그러한 정의를 묵인하고 묵살한다면 언젠간 이익으로 덮을 수 없는 대참사가 발생할 것입니다. 

 

 

반응형
AND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849)
취미 (849)
백업 (0)

RECENT ARTICLE

RECENT COMMENT

CALENDAR

«   2024/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