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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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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7.01.27
    소설, 킬 더 드래곤 리뷰.



※ 본 리뷰는 작품에 대한 내용누설이 있습니다. 


카카오 페이지에서 연재하는 백수귀족 작가의 킬 더 드래곤이라는 작품을 오늘 완결까지 다 봤는 데, 이거 생각보다 뛰어난 작품이더군요. 담담한 문체와 모자람 없는 필력으로 이끌어나가고 어렵지 않게 예측하기 쉬운 결말이지만 실망 없이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하는 작품은 많지 않죠. 작품의 전개가 반이라면 작품의 끝은 그 나머지 반인 데, 둘 다 훌륭했다고 봅니다.



작품 속 주인공인 이한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남들보다 뛰어난 점이 없었습니다. 쉽게 계측하고 계량할 수 있는, 눈으로 보고 알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지 못했죠. 격투술이나 무기술은 사일런스나 델 사이먼, 러시아계 캐릭터 등 육체적으로도, 실력적으로도 우월한 이들이 있었고, 사이킥 능력의 경우 델, 쿠로, 사일런스를 비롯한 거의 모든 사이커가 이한보다 뛰어났죠.


하지만 이한에겐 남들에게 없는 가장 뛰어난 능력이 있었는 데, 다른 모든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근성과 냉철하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판단력과 사고력이 그의 유일한 무기였습니다. 턱걸이에 가까운 턱 없이 모자란 시이킥 능력은 철저한 훈련과 노력으로 남들보다 뛰어난 사이킥 컨트롤이라는 이점으로 승화시켰고, 부족한 육체적 능력과 전투력은 팀원에 대해 절대적 신뢰와 믿음을 받아내고 그들을 이용하여 함께 더 높은 수준의 승리를 가져왔죠. 리더나 보스로서의 전술적 능력은 다른 사이커에 비해 뛰어납니다.


이한은 부족한 부분을 강하게 단련시킬 수 있었고, 그런 부족함은 그가 가장 완벽한 지휘관이자 사이킥 병사로 거듭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죠. 그가 성장해야만 했고 성장할 수 밖에 없었던 조건이기도 합니다. 



이한이 처음 사이커가 되려 마음 먹은 이유는 자신들이 돌보는 고아 동생들 때문입니다.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큰 아이들은 하나둘 떠나고 자신과 자기보다 더 어린 아이들만 남았을 때, 한은 그들에게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는 존재라면 이한의 이성적 판단력과 주체성, 성숙한 이성을 갖추지 못했겠죠. 자리가 사람을 만들듯이, 이한에겐 그러한 능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그러한 능력을 얻게 되었던 겁니다.


이는 훗날 사이커로서의 능력을 발견한 뒤 사이커로 훈련 받고, 실전에 나갈 때까지 이한의 가장 큰 장점이자 무기가 됩니다. 


이한은 누군가를 지키는 것을 목적으로 견뎠습니다. 자신이 아크에 들어가게 되면 동생들을 국가가 돌보게 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가게 되었죠. 아크에 들어간 뒤에도 꾸준히 동생들을 걱정하고 생각했고 정신적으로 의지했습니다. 이한의 소망은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이기적이면서도 이타적인 정신이죠.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뛰어나졌어야 했고, 나중에 가서는 모두를 위해 희생해야했기 까지도 앴습니다. 자신이 아닌 남들을 지키기 위해서요.



이 작품은 성장소설입니다. 10살 안팍의 꼬맹이들이 아크라는 거의 비인간적인 시설에서 수술과 고된 훈련을 받으며 성장하며, 그 이후로도 실전과 인간관계를 겪으며 성장하는 성장소설. 성장이라는 건 단순히 발전한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실력이나 능력의 성장이 아니라, 인간적 요소의 성장이 중점이기 때문이죠.


이에 따르면 이한은 작품이 끝나기 전까지 계속해서 성장하는 캐릭터입니다. 처음 아크에 소속되기 전부터 동생들을 위해 성장해야 했고, 아크에 들어간 이후에도 동생들을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 성장해야 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자신들이 소중이 여기는 친구와 전우들을 위해 성장해야 했고요.


이한과 같은 사이커 병사들이 수술을 받아 육체적으로는 모두 성장하고 남들보다 뛰어난 근력과 골격을 가지게 되었지만 기본적으로 10대 초반의 아이들입니다. 이런 이유로 작품에 등장하는 어른들이 그들을 안타깝게 여기기도 하죠. 실제로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고요. 10대 초반의 아이들이지만 신체적으로 성장하게 된 대비적 조건은 그들의 정신적 성장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장치입니다.


아무리 어른의 몸을 가지고 더 뛰어난 능력을 펼칠 수 있다고 해도 속은 어린애들이죠. 그런 어린애들은 비인간적인 훈련과 실전 과정에 투입하며 강제로 성숙시키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은 전쟁터에 투입될 소년병들이죠. 



성장은 비단 아이들만 하는 게 아닙니다. 레드와 오라클이라는 어른 또한 성장의 범주에 포함되죠. 아이들이 순수파의 테러, 미니언이나 드래곤에 대한 실전을 겪으며 성장하고 정신적으로 어른 군인화되어 가는 것처럼, 훗날 일이 좋지 않게 돌아가게 되어 오라클이 다시 깨어났을 때 이 둘은 성장하게 됩니다.


레드에게 있어서 오라클은 과거의 말뚝이었고, 오라클이 사이킥에 피폭된 이후 냉동수면에 들었을 때부터 타성적으로 성장하게 되었을 뿐이죠. 하지만 20대 초반의 오라클이 다시 깨어나고, 레드의 시간 또한 다시 흐르게 됩니다. 쌀쌀 맞게 대하지만 오라클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은 레드는 오라클의 안전과 생명, 행복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한에게 도움을 받아 함께 아크를 탈출하기까지 하죠. 가히 사랑의 도피입니다.


하지만 그런 행복한 시간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오라클의 생명의 끝은 다가오고, 그녀 자신도 그 사실을 잘 알았죠. 오라클은 젊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속이 깊지 않다는 건 아닙니다. 소금을 쏟았다는 핑계로 자신의 끔찍하고 추한 죽음의 과정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에 보낸 거죠. 하지만 레드는 눈치채고, 그녀의 죽음에 맞춰 돌아옵니다. 그때 레드는 다시 한번 성장합니다. 비록 기쁜 성장은 아니었지만..



말했듯이, 이한과 사이킥 병사들은 고작 10대 초반이었습니다. 대전쟁이 벌어질 시점에선 10대 중반 정도에 불과했죠. 즉, 고작 중학생 정도의 나이의 아이들이 목숨을 걸고 전쟁에 대거 참여해 싸웠어야 했다는 겁니다. 매우 비정하고 처절한 이야기죠. 그 전쟁에서 결국 블랙의 술수에 의해 이한은 과거로 가게 되고, 진실의 일면을 보게 됩니다.


대충 이 시점까지 주인공 이한의 성장은 잠시 멈추게 됩니다. 더 이상 성장할 조건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이미 철인에 가까운 정신력과 판단력, 전투능력, 육체적 능력을 갖추었고, 군인으로서도 특출한 엘리트 병사이자 분대 지휘관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한의 성장은 드래곤과의 대전쟁을 겪은 뒤에도 이어지게 됩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아직 10대 후반 정도의 나이이고, 다른 환경에 노출되어본 적 없는 경험이 부족한 아이이기 때문이죠.


실버와의 대화, 그의 희생을 통해 이한은 과거에서 다시 현대로 돌아옵니다. 과거 발견했던 거대한 드래곤의 뼈는 실버 하이브의 것이었던 거죠. 현대로 다시 올아온 이한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인류의 멸종 기도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소규모 집단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환경을 경험했고, 전쟁 이후 새로 만들어진 시타델을 경험하기도 하죠. 또한 아크의 잔존에 대한 이야기 또한 듣고요.


그 사이에서 이한은 혼란스럽기도 하죠. 동시에 그들이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기도 하고, 그것을 위해 분주히 노력하기도 하고요. 그런 노력의 과정에서 만난 것이 바로 델 사이먼입니다.


델과 이한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이 부분은 절대 빼놓을 수 없죠. 델은 의외로 열등감이 강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천재라고 칭송 받아왔지만 아크에 와서는 자신과 비슷한 놈들, 자기보다 더 뛰어난 놈들이 있다는 사실이 그의 프라이드를 괴롭혀 왔던 겁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고집을 꺽을 수 없었고, 그래서 자신과 다른 이들을 배척하고 까칠하게 굴었죠. 이한으로서는 그의 내면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한 또한 아직 어렸고, 경험이 적은 아이에 불과했으니까요. 델은 자신보다 뛰어난 사이킥 능력을 가진 쿠로에게, 자신보다 뛰어난 지휘력의 분대장 능력을 가진 이한에게 열등감을 느꼈던 겁니다.


하지만 블랙의 공격을 대신 맞아주고 이한을 살렸으며, 그 이후 불구가 되어 살아가면서 새로운 삶과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게 됩니다. 가장 뛰어난 사이커 중 하나였던 자신이 이제는 무능력한 불구가 되어 타인의 보살핌이 없으면 제대로 살기 어려운 몸이 되었지만, 그런 몸이었기에 타인의 손길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고 자신보다 뛰어나거나 자신보다 모자란 이들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죠.


이한은 블랙에 의해 과거에 간 뒤 정체되어 아무 것도 나아진 것이 없었지만, 델은 그 동안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고, 자신 또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약자들에게 둘러 쌓여 성장할 수 있었던 겁니다. 겉으로는 툴툴 거리고 까칠하지만 진심으로 자신이 돌봐주고 자신을 돌봐주는 유목민 집단과 그 아이들에게 애정을 느끼며 살았던 거죠.


그런 환경 속에서 사이먼은 성장했고, 그제서야 자신의 발목을 잡았던 무의미한 열등감을 내려놓고 이한을 인정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이한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시기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지만요. 그런 이유로 델은 이한의 같이 가자, 도움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설령 인류가 멸망하더라도 자신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새로운 가족들과 함께 있고, 그들의 품 속에 있기 위해서요.


이런 델의 변화와 성장은 이한에게도 새로운 깨달음으로 이어집니다. 겉으론 델이 거부했지만, 뛰어난 분대장이었던 자신은 그런 델을 자신과 맞지 않는다라고 판단하며 다가가려 하지 않았음을 반성하게 되죠. 또한 새로운 환경 속에서 만족할 수 있게 된 델을 부러워도 하게 됩니다. 역으로 이한은 델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되죠. 자신은 그렇게 살 수 없고, 그런 만족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죠. 이미 시간이 지나고 자신이 돌봐줘야만 했던 동생들의 생사조차 알지 못하기에 더더욱.


말했듯이, 이한은 대전쟁 이후로도 꾸준히 성장합니다. 더 이상 성장할 곳이 없다고 생각할 시기인 대전쟁은 그저 이한이 성장하게 되는 하나의 사건이자 분기점이었던 셈이죠. 정확히는, 군인으로선 모두 성장했지만, 인간으로서의 이한은 아직 더 성장해야 했다는 겁니다.



전쟁 이후 아크는 미국에 종속되고, 오메가 1을 비롯한 일부 사이커들은 분리되어 시타델을 이룹니다. 아크는 본질을 잃고 미국에 종속되어 주체성과 독립성을 잃었고, 시타델은 사이커 우월주의에 차있는 집단이 되어버렸죠. 그 중 이한과 가장 친했던 쿠로는 시타델에, 크누트는 아크에 소속됩니다.


전쟁은 모두가 힘을 합쳐야 했지만, 전쟁 이후는 이야기가 다르죠. 인간에겐 제각가의 욕구가 있고, 이익이든 자존심이든 잃기 싫어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언제나 분열할 수 밖에 없었죠. 설령 그것이 또 다른 전쟁의 직전이 되도 말입니다. 대전쟁 직전처럼.


비정한 현실의 정치와 이념대립은 친했던 친구와 목숨마저 나눴던 전우의 사이마저 가르게 됩니다. 그들은 서로 소 닭보듯 건드리지 않고 대립을 했지만, 언제든 전쟁을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염두에 두고 활동하고 있었죠. 크누트는 고문에 가까운 고통을 받아가며 원자력 사이코 프레임을 입고 싸워왔으며, 시타델은 가장 강한 사이커인 쿠로를 정점으로, 사이커를 특권계급화하여 계급사회를 만들어냈죠. 안보를 제공하는 대신말입니다.


결국 인간의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비판하는 부분이죠. 전쟁이 시작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쟁 이후를 생각하며 미리 국력과 정보 따위를 손에 틀어쥐고 내주지 않으려는 욕심과 분열, 견제. 그 욕심들 때문에 전쟁이 끝나지 않았고 한 차례 더, 이전보다 더 힘든 전쟁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성하지 않고 분열되어 있죠.


그러나 이한이 가져온 새로운 정보는 더 이상 그들이 협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 이전에, 유르겐 텔러는 정신이 먹힌 채 악마가 되었고, 그런 장난질 때문에 이한은 목숨을 걸고 크누트와 싸워야 했습니다. 그 결과 원자력 사이코 프레임이 폭발할 뻔 하며 이한 또한 죽을 뻔하게 되죠. 그러나 결국 살아났고, 이한은 아크의 신뢰를 얻게 됩니다.


중요한 건, 결국 이한의 노력과 중재 하에 아크와 시타델이 협상을 했고, 결국 그들의 공조에 성공했다는 겁니다. 이번 전쟁은 이전과 다를 수 있었던 거죠. 기존 세계는 서로 제대로 합심하지 못하고 서로의 이익과 정치적 입장을 계산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전력으로 협력할 수 없었죠. 하지만 이번엔 그 전쟁의 실수를 교훈 삼아 서로의 정치적 입장과 이익을 협상을 통해 미리 결정짓긴 했으나, 전력으로 협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 미국 정부와 여러 지식인들을 태운 잠수함 하나가 터져버린 것도 있지만..



어찌되었든, 마지막 전쟁은 어려움 속에서도 분투했고, 실버 하이브의 부활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누군가 희생할 수 밖에 없게 되었고, 그 희생은 이한이 하게 되었죠. 남들에게 인사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전쟁이 끝나자 마자 다른 세계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앞서 말했던 이한의 소망에 의한 행동이죠. 자신이 소중히 여겼던 친구들과 전우들을 지키고 싶었던 것. 마찬가지로 쿠로 또한 이한을 시타델과 아크에게서 지켜주고자 했고, 사일런스 또한 목숨을 바쳐가며 이한을 지키고자 직접 몸을 던지기도 했죠. 이한이 주는 만큼 그의 전우 또한 이한을 신뢰했고 돌려준 것입니다.



다른 세계로 이동한 이한은 그곳에서 엘루와 만나기도 하고, 둥지에 들어가기도 하며 드래곤과 세계에 대한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실은, 인간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반목을 반복했고 전쟁 또한 벌였다, 지구를 포기하고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기까지 했습니다. 인간은 합심하여 새로운 세계를 개척했지만, 이내 다시 분열하였고, 또 다시 전쟁을 하게 되었죠.


그 과정 속에서 나타난 것이 사이킥의 재현이었으며, 강철병기였고, 드래곤이었습니다. 드래곤은 사실 인간이 창조해낸 전투병기였던 셈이죠. 그리고 인간은 서로의 전쟁 속에서 멸종했고, 남은 것은 드래곤과 엘루 등의 미니언이라 불리는 존재들이었습니다.


드래곤이 인간에 대한 증오의 감정을 가졌던 것은 인간이 스스로 입력했던 명령에 따른 것으로, 인간을 죽이는 목적을 위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오의 감정에 지배 당했던 것이었죠. 하지만 드래곤은 단순 창조된 전투 생물체를 극복하여 새로운 종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지니게 되었고,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할 줄 아는 지적 생명체로 한 단계 성장하게 됩니다.


어쩌면 이는 인간이 끝 없는 반목과 갈등, 분열 속에 멸종을 한 어처구니 없고 미련하기 짝이 없는 운명으로 스스로를 밀어넣었던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죠. 인간에 의해 병기로서 창조되었으나, 그 이상으로 성장하고 극복하고 초월하여 지성을 가진 위대한 생물체가 되어 균형을 수호했던 신적 존재가 되어 엘루들에게 숭배 받는 존재가 되었으니. 심지어 입력된 명령이자 본능이었던 인간을 죽여야 한다는 증오심 또한 이성으로서 극복하고자 했던 실버 하이브를 생각하면, 드래곤은 인간보다 위대한 종족으로 개화해썬 것이라 봐도 될 정도였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스스로를 멸종시켰다면, 드래곤은, 그 중 실버 하이브는 그런 어리석음을 극복하고 위대한 지적 존재로서 스스로 서길 결정했던 존재니까요.


뭐.. 그 끝 또한 인간인 이한에 의해 마무리 되었지만..



소설 속에서 다루는 주제는 여럿 있지만, 뭐하나 가볍지 않은 것들입니다. 인류의 공익과 생존이라는 목적 하에 길러지고 조련되어야 했던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인권 사이의 도덕적 딜레마, 구 인류와 사이킥 능력을 가진 신 인류 간의 갈등과 반목, 드래곤이라는 공공의 적 앞에서도 화합하고 협력하지 못하고 반목과 갈등을 반복했던 인류, 욕심과 이기심을 간접적으로, 그러나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전개와 시니컬한 시선..


소년병으로 길러지고 훈련 받는 아이들의 실전 속에서 얻어지는 정신적 피폐함과 공포, 죽어가는 전우들에 대한 슬픔과 익숙해짐, 혼자 살지 못하는 인간이자, 서로를 의지하고 순수히 갈구하는 사회적 동물임에 대한 묘사, 군대 밖에서의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10대 소년의 인간적, 인격적 성장과 그걸 보는 자의 상실감.


그리 길지 않고 클리셰적인 내용들이 많은 SF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무겁고 한번쯤 생각해볼 법한 주제들을 훌륭히 잘 섞어서 연출하고 묘사해낸 작품의 수준은 결코 낮은 것이 아닙니다. 담담하게 시니컬하고 어떨 때는 안타까움마저 배어나오는 필체는 작품의 분위기를 잘 우려내었죠.



결국 수 만년 뒤의 행성에서 혼자 남아 유일한 인류로서, 엘루들에게 화합할 수 없는 이방인으로 극한의 외로움을 느끼며 정신적으로 무너져내리는 것은 충분히 사실적이며, 동시에 철인 수준의 정신적 강인함을 지녔던 이한에게 그만큼 극도의 정신적 고통이자 압박감으로 다가왔음을 느껴지게 했죠. 심지어 금기에 가까운 후회를 뱉어내면서요. 전쟁을 다시 했더라도 자기 혼자만 오지 말았어야 했다고.. 유일한 인류로서 느끼는 고독함은 범인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마지막에서 다시 만나는 조니 슈발츠의 유해는 이한에게 마지막 정신적 성장을 안겨줬으며, 자신의 고통과 고독을 극복하게 해주는 작은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던 떡밥이었던 사일런스의 정체, 성별이 밝혀지는 것 또한 어찌보면 드라마틱하다고 할 수 있는 데, 작품에서 말하듯, 기적에 가까운, 수 만년 동한의 인과율 속 말도 안 되게 낮은 확률과 함께 이한과 사일런스는 다시 만나게 됩니다. 사일런스는 여성이었고, 그런 사일런스는 마지막의 마지막에서, 행성의 단 둘 뿐인 인류로 다시 만나게 되죠. 이번엔 가면 없이.


그리고 말합니다. "안녕." 가면 없는 여성인 레베카에게. 이한과 사일런스.. 아니, 레베카의 만남은 새로웠고, 처음이죠. 그리고 그렇게 작품은 끝납니다.




카카오 페이지에서 총 300편도 안 되는 작품이었지만, 충분히 재밌는 작품이고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 뛰어난 짜임새와 기승전결, 내적 갈등과 인물간의 관계, 여러 무거운 주제들과 깔끔하고 훌륭한 결말은 아주 높은 완성도를 가진 작품이라는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부족함을 노력과 근성으로 극복했던 주인공과, 동생들을 지켜주겠다는 의무감과 희생정신은 가장 뛰어난 분대장이자 사이커 병사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기반이었고, 그들을 지키고자 하는 작은 소망은 그를 가장 숭고한 희생의 순교자로 만들었습니다. 모든 위험과 난관을 거쳐오고 극복하며 초인이 아닌 철인으로서 성장해낸 이한이었지만, 그런 뛰어난 병사로서의 성장은 그를 뛰어난 인간으로 만들어주진 못했죠. 비록 그의 인격이 뒤떨어지거나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10대 소년병에 불과했고 더 많은 인간적 경험과 사랑이 필요했던 존재였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미련했고 욕심과 탐욕은 그들끼리의 분열과 반목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전쟁은 인류가 타 행성으로 이주한 이후까지 이어졌고, 그 결과 인류는 최악의 적을 만들어내고 멸종하고 말았습니다. 그 최악의 적은 인류를 잊었고, 어쩌다 발견한 인간을 보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인간을 공격하여 전쟁을 발생시키죠. 타임 패러독스지만, 어찌됐든 인간의 미련함과 욕심은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게 하고,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채 스스로를 멸망시키는 결과로만 이어졌을 뿐이 되었습니다. 


이런 미련하고 비정한 인류임에도 불구하고, 인간 개개인은 극단적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을 줄 알았고, 불굴의 정신으로 살아남고자 했습니다. 이한과 같은 철인조차 혼자 남는 고독은 미치게 만들었고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들었죠. 모든 게 끝난 뒤 혼자 남은 유일한 인류로서의 이한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속에서 자신의 모든 숭고한 희생조차 후회하게 만들 정도로 타인을 갈구했고 결코 혼자서 살 수 없다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한계 또한 보여줍니다. 이한이 견딜 수 없다면, 그 누구도 견딜 수 없는 고독함이죠.


자신이 비인간적인 시스템에 의해 훈련 받고, 목숨을 걸어가면서 싸웠으며, 숭고한 희생조차 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그 태생적 미련함 속에서 무가치하게 멸종해버렸지만, 그러나 그의 모든 희생은 무가치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순간만큼은 인류를 구원했으며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많은 이들을 지켜냈으니까요. 그 이후는 그들 스스로의 선택이었고요.


그 대가였을 지, 이한은 그에게 가장 뜻 깊은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사일런스, 레베카를요. 마지막화의 담담한 필체로, 이한의 피폐함을 느끼게 해주며 또한 기적에 가까운 충족감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레베카와의 만남은 깔끔하고 훌륭한 엔딩이었습니다. 이한은 누군가 지켜줄 사람, 함께할 소중한 사람이 있을 때 가장 강했습니다. 혼자가 된 이후로 그는 그저 나약해져갔을 뿐이죠. 하지만 이제 레베카를 다시 만났으니, 그는 다시 강해질 수 있을 겁니다.


비록 인류에게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없었고, 이한과 사일런스, 다른 모든 이에게도 행복한 결말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순 없었지만, 이한은 대가를 받아낸 거죠. 그 결과가 행복했을 지 아니었을 지는 누구도 알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 둘에겐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결말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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