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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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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22.05.25
    민정주석실 해체와 민주주의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독재의 방식.
  2. 2022.05.23
    커뮤니티와 알고리즘이 만드는 이념 격차.
  3. 2022.05.02
    경찰 갑질 미국 정치인.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
  4. 2016.12.03
    극우보수의 사상적 근간. 마초 오르가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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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민주주의는 길거리 농구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성문화된 규칙(헌법)과 심판(사법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오랫동안 건강하게 기능하는 국가의 경우,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 성문화된 헌법을 지속적으로 강화환다.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완충적인 가드레일로 기능하면서, 일상적인 정쟁이 전면전으로 치닫지 않도록 막아준다.

규범은 개인의 성향을 초월한 것이다. 규범은 정치 지도자 개인이 성향에 의존하지 않으며, 공동체 및 사회 내부에 널리 공유된, 다시 말해 모든 구성원이 인정하고, 존중하고, 강화하는 행동 규칙에서 비롯된다. 규범은 성문화되어 있지 않으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 특히 규범이 제대로 작동할 때에는 더욱 그렇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사람들은 규범의 필요성을 종종 간과한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규범의 가치는 물과 산소처럼 그것이 사라질 때 비로소 드러난다. 규범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때 사람들은 폭력 행위를 비난하거나 조롱하고, 혹은 공식적인 비판이나 노골적인 배척을 통해 부정하는 입장을 뚜렷이 드러낸다. 규범을 어긴 정치인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사실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은 상원이나 선거인단 운영에서 대통령의 기자회권 방식에 이르기까지 정치 구석구석에 존재한다. 그래도 민주주의 수호에 가장 핵심 역할을 하는 두 가지 규범을 꼽자면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를 들 수 있다.

(중략)

규범은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연성 가드레일이다. 규범이 무너질 때 용인 가능한 정치 행동 범위는 넓어지고, 민주주의를 파멸로 몰아갈 주장과 행동이 시작된다. 예전에는 미국 정치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행동이 이제 고려해볼 만한 전술이 되고 있다. 물론 트럼프 자신이 헌법적 민주주의라는 강성 가드레일을 파괴한 것은 아니지만, 미래의 대통령이 언젠가 그러한 일을 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레비츠키, 지블랫.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얼마전 윤석열 정부는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수사·정보기능 틀어쥔 법무장관..명실상부 '소통령' 현실화
https://news.v.daum.net/v/20220524172612941

 

그리고 그렇게 민정수석실이 없어지고, 더 큰 권력과 권한을 가진 새로운 인사정보관리단이 만들어졌습니다. 청와대에 있던 민정수석실이 법무부 장관 직속으로 왔다고 해서 권한이 약해졌느냐 하면 그걸 아니고요. 중요한 건 그 권한이 얼마나 발휘되느냐와 누가 발휘하느냐가 문제가 됩니다.

 

지난 정권 동안 정부에 대놓고 들이 받으며 마침내 권력의 획득에 성공한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과 그 오른팔이 법무부를 장악했다는 건 보이는 것 이상으로 위험한 권력의 비대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고요.

 

조국이 거쳐갔던 민정수석실이 없어지는 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민정수석실의 권한을 법무부, 높은 확률로(사실상 이미 정해진 수순대로) 검찰 쪽 인사들이 획득한다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기존 규범, 제도의 해체와 새로운 대안 내지는 대책으로 이루어지는 방식이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티파티가 공화당을 장악하던 오바마 정권 당시부터, 공화당은 많은 제도를 경쟁 정당을 견제하고 권한과 영향력을 빼앗기 위해 없애거나 바꾸었습니다. 이것이 불법이었느냐 하면 그건 결코 아니었습니다만, 이는 법과 무관하게 관료제로 유지되고 헌법이 의도하는 민주주의적 규범을 무너뜨리는 방식이었습니다.

 

위 인용글에서처럼, "사실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은 상원이나 선거인단 운영에서 대통령의 기자회권 방식에 이르기까지 정치 구석구석에 존재한다. 그래도 민주주의 수호에 가장 핵심 역할을 하는 두 가지 규범을 꼽자면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를 들 수 있다."

 

 

가드레일이 사라진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 상상해보기 위해 현재의 노스캐롤라이나 주를 생각해보자. 노스캐롤라이나는 전형적인 '경합'주다. 다각화된 경제와 세계적인 대학 시스템을 갖춘 노스캐롤라이나는 남부에 비해 보다 부유하고 도시적이며, 높은 수준의 교육을 자랑한다. 또한 인구통계적으로도 다양하며, 아프리카계, 아시아계, 라틴계가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러한 이유로 노스캐롤라이나는 전통적인 남부 주에 비에 민주당에 우호적이다. 노스캐롤라이나 주 유권자 구성은 미국 전역의 유권자 구성과 비슷하다. 다시 말해 민주당이나 샬럿이나 롤리-더럼과 같은 도심 지역에서, 그리고 공화당은 시골 지역에서 우세를 점하면서 전반적으로 양당이 세력 균형을 이룬다.

 듀크 대학 법학과 교수 제데이아 퍼디Jedeiah Purdy의 표현을 빌리자면, 노스캐롤라이나 주는 "미국의 극단적인 당파 정치, 그리고 점점 심각해지는 상호 불신의 소우주"가 되었다.

(중략)

많은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노스캐롤라이나가 정치 전면전에 휘말리게 된 것은 2010년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나서였다. 그 이듬해 노스캐롤라이나 주 의회는 '인종적 게리먼더링'이라고 알려진 선거구 조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통해 공화당은 아프리카계 유권자를 몇몇 선거구에 집중적으로 몰아넣음으로써 그들의 선거 영향력을 희석하고, 공화당의 의석수를 극대화했다. 노스캐롤라이나 '모럴 먼데이즈Moral Mondays'운동을 이끈 진보주의 목사 윌리엄 바버WIlliam Barber는 새롭게 조정된 선거구를 '인종차별 선거구'라 불렀다. 그 결과 2012년 선거에서 민주당이 주 전체에서 많은 표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이 13개 의석 중 아홉 개를 석권했다.

2012년 선거에서 팻 매크로리Pat McCrory가 주지사에 당선되면서 공화당은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입법, 사법, 행정을 모두 장악하게 되었다. 그후로 공화당은 지배를 장기적으로 이어나갈 방안을 모색했다. 주지사, 그리고 상원과 하원 및 주 대법원 내 과반을 기반으로 공화당 지도부는 운동장을 기울이기 위해 여러 야심찬 개혁안을 추진해나갔다. 가장 먼저 주 전체에 걸쳐 유권자 개인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 정보를 활용하여 선거권 행사를 더 힘들게 만들기 위한 다양한 선거 개혁법을 통과시켰다. 또한 매우 엄격한 유권자 신분확인법도 통과시켰다. 나아가 사전투표 기회를 줄이고, 16-17세를 대상으로 하는 예비등록제를 중단했으며, 당일등록제를 폐지하고, 여러 주요 카운티에서 투표소 수를 크게 줄였다. 연방 항소법원의 설명에 따르면 공화당은 새롭게 손에 넣은 자료를 가지고 아프리카계 유권자를 목표물로 삼아 "외과수술처럼 정밀하게" 선거 개혁법을 설계했다. 나중에 항소법원이 그 새로운 법의 집행을 중단시켰을 때 공화당은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주 선거위원회를 이용해 그 법안 중 몇 가지를 필사적으로 실행에 옮겼다.

이러한 제도 전쟁은 2016년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 로이 쿠퍼Roy Cooper가 매크로리를 간신히 이긴 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공화당이 아무런 근거 없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고, 매크로리는 한 달 가까이 패배 인정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2016년 12월 매크로리가 끝내 패배 승복을 한 후 공화당은 주 의회에서 "깜짝 특별회의"를 소집했다. 정치 상황이 얼마나 악화되었는지를 보여주듯, 머지않아 "의회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즉, 선거 결과에 대한 의혹이 있을 때 의회가 개입할 수 있도록 규정한 접을 악용함으로써 공화당이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한다는 소문까지 돌았던 것이다.

비록 쿠데타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뉴옥 타임스>가 "뻔뻔한 권력 장악"이라고 언급했던 특별회의에서 공화당은 새로운 민주당 주지사의 권한을 뺴앗는 갖가지 방안을 통과시켰다. 상원은 주지사 임명을 인준하는 권한을 스스로에게 부여했고, 현직 공화당 주지사에게는 임시적을 영구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퇴임을 앞둔 매크로리 현 주지사는 자신이 뽑은 1000명에 달하는 직원들에게 종신재직권을 부여했다. 이는 결국 자기 입맛에 맞게 구성한 행정부를 장기적으로 유지하겠다는 계산이었다. 다음으로 공화당은 주 선거위원회 개편에 착수했다. 주 선거위원회는 선거구 조정, 유권자 등록, 유권자 신분확인 요건, 투표 시간, 투표소 배치 등 주 선거와 관련된 모든 규칙을 담당한다. 당시 선거 위원회는 공화당이 과반을 차지하는 데 기여한 현직 주지사 매크로리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그는 동등한 정당 대표 시스템을 구축했다. 다시 말해 선거위원회 위원장을 양당이 번갈아가면서 맡도록 제도를 바꾸었다. 게다가 위원 수가 두 번째로 많은 정당(즉, 공화당)이 짝수 년도에 위원장을 맡도록 정했다. 짝수 년도는 곧 선거가 있는 해를 의미한다. 그리고 몇 달 후 의회는 주 항소법원에서 세자리를 줄이기로 의결했으며, 이는 새로 들어올 쿠퍼 주지사에게서 세 명의 판사 임명권을 실질적으로 뺴앗았다.

이후 법원이 인종차별적 선거구 조정, 2013년 투표법, 그리고 선거위원회 개혁안 모두를 무효화했음에도, 그러한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다는 사실은 주어진 권력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정치 경쟁자를 불구로 만들겠다는 공화당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채플 힐 출신 민주당 하원 의원 데이비드 프라이스David Price는 이번 사태를 통해 "미국 민주주의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취약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노스캐롤라이나는 가드레일이 사라진 민주주의가 어떤 모습일지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의 창이다. 우리는 노스캐롤라이나를 통해 미국의 미래를 엿보게 된다. 정치 경쟁자가 적으로 변할 때 정치는 전쟁으로 전락하고 민주주의 제도는 무기로 바뀐다. 그 결과 사회는 끊임없이 위기를 맞게 된다.

-레비츠키, 지블랫.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윤석열 정부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문재인 정부 지우기, 혹은 제도적 개혁은 저에게 합법적인 방식으로 민주적 규범을 해체하던 미국 공화당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이번 민정수석실 해체와 새로운 단체 신설은 기존 민정수석이라는, 물론 개혁해야하고 할 수 있는 조직의 건전한 견제/개혁이 아니라 제도적 개혁의 모양새를 한 민주적 규범의 해체라고 이해하는 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연합시론] '윤석열 라인' 약진한 검찰 고위급 인사
https://www.yna.co.kr/view/AKR20220519102700022
한동훈 체제 첫 검찰 인사…'윤석열 라인' 대거 배치
https://m.yonhapnewstv.co.kr/news/MYH20220518020100038
'尹 사단' 전면 배치, 검찰 중립성 우려된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51818090001398
윤석열 정부 ‘검수완판’ 인사…여기도, 저기도 검찰 출신
https://m.khan.co.kr/national/court-law/article/202205151924001

 

민정수석실은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민정수석실의 권력은 검찰을 다루는 법무부에게 쥐어졌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대통령 직속의 민정수석실이 법무부 산하로 위상이 추락한 것이 아닙니다. 박근혜 정권 당시 우병우가 있었던 그 민정수석실의 권력이 법무부의 손에 쥐어진 거고, 윤석열 라인이 가지게 된 겁니다.

 

법무부 자체의 권력도 강력한데 거기에 청와대, 현 국민관이 가져야할 권력을 쥐어준다는 것은 과도한 권력의 집중이며, 반드시 분리해서 다뤄져야할 권한이 불법이나 월권이 아닌, 제도적 방식으로 이전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대통령 직속이자 청와대(현 국민관) 내에 포함시켜야 했던 조직을 해체시키고 똑같은 힘을 법무부라는 조직에 준 것인데, 대통령이 검찰 출신이고 그 검찰을 다루는 것이 법무부이며, 그 방법은 제도적 방식을 따랐다는 겁니다. 법과 헌법이 규정하지 않은 민주주의의 관습, 규범은 그런 식으로 파괴되는 것이고 우리가 이해하는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또 다른 방식입니다.

 

 

앞으로 이번 정권 하에서 이루어지는 제도적 개혁이 어떤 의미를 함의하고, 어떤 의도와 목적이 있는지 정말 잘 살피셔야 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정치적 라이벌을 고사시키려 하는지, 제도 개혁이라는 방식으로 독재와 유사한 권력의 독점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노파심으로 말하건데, 단순히 의석을 많이 차지했거나, 국회의 중요 요직을 차지했다거나, 지지율이 높다고 해서 독재가 아닙니다. 그렇게 보이거나 시도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질 뿐이죠. 물론 그러한 지적 역시도 어느 정도 성립 가능합니다.

 

하지만 지지율은 국민들이 보내는 것이고 국회 의석 역시도 국민들이 찍어줬다는 점에서 의도적일 순 없습니다. 국회 요직을 장악하는 것들 정도라면 비판이 합당할 겁니다. 현실적인 발목잡기를 고려하지 않는다면요.

 

그러나 그러한 권력을 가진 뒤 제도적 개혁으로 상대 정당, 파벌의 권한과 영향력을 점차 앗아가고 견제가 불가능하거나 미약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은 독재와 유사한 권력의 독점을 이룰 수 있습니다. 상원이 주지사 임명을 인준하는 권한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거나, 임시직을 영구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한을 주거나, 자신이 뽑은 직원에게 종신재직권을 주거나, 선거위원회를 개편하거나, 주 항소법원에서 세자리를 줄여 새로 들어올 상대 정당의 주지사에게 3명의 판사 임명권을 빼앗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자기들의 권한을 유지하거나 확대시키고, 상대 정당의 권한을 빼앗고 축소시킨다면 정권을 차지한 집단의 권력은 견제 불가능하게 됩니다. 이러한 개혁은 유기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법안이라면 새로 개정하는 게 쉽지만은 않겠지만, 조직 개편을 비롯한 제도적인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민정수석실을 없애고 법무부 장관 직속 인사관리단을 만드는 것처럼 쉽고 빠릅니다. 그 반대 역시도 쉽고 빠르죠.

 

자기들이 유리할 때와 불리할 때 제도적 개혁을 통해 권력을 집중시키거나 축소시키는 것으로 특정 집단이 권력을 합법적으로 독점하는 방식이 민주주의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유사 독재입니다. 우리가 이해하고 알고 있는 독재는 옛 방식인 거죠. 민주주의에서도 독재적 방법론과 유사한 방식은 얼마든지 발생 가능합니다.

 

민주주의의 규범을 해체하고, 파괴하는 식으로 가능합니다.

 

윤석열 정부가 독재 정부냐고요? 그건 확대해석이고, 단지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의 다른 보수정부들과 마찬가지로. 또한 그 방식 역시 독재와 유사한 방식으로 우리 민주주의에 분탕을 쳐놓을 가능성은 농후하다고 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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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하면서 밝혔던 바에 따르면, 양극단 10%씩만 불행하게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양극단 10%가 의제 대부분을 장악하기 때문이라고 했죠. 가장 시끄럽고 많은 말을 쏟아내는 이들이 가장 적은 극단의 10%씩이라면서요. 실제로 연구결과가 그러한 것은 사실이고 그들의 목소리를 줄이고 중간에 가까운 목소리를 키우는 것이 건전한 논의의 장, 토론장(Agora)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머스크의 이런 행보에 대해서 저는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데, 그에 대한 조치 중 하나가 트럼프 트윗에 대한 정지 해제입니다.

 

 

1.

트럼프의 개소리를 듣고 싶다는 건 아니고, 트럼프가 트위터에서 정지 당한 이후 만든 트루스 소셜의 위험성이 지대하다고 생각해서 입니다. 트루스 소셜은 트럼프가 만들 SNS 플랫폼으로, 트럼프의 트위터라고 할 수 있는 건데, 트럼프는 이미 트위터에서 가짜뉴스를 생산하기도 했고, 대통령 시절에서 편견과 잘못된 정보, 거짓말을 공적으로 반복해왔습니다.

 

그리고 그건 트럼프 지지자 역시도 마찬가지이고, 그러한 성향의 지지자들끼리 모여서 가짜뉴스를 재생산, 유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가와 진영을 떠나서 발생하는 일이지만, 주로 극단적인 성향의 집단일수록 더 만연하고 심각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들이 트루스 소셜에 모이게 된다면 미국 음모론, 가짜뉴스, 왜곡 선동 및 증오연설, 증오범죄, 심지어 테러의 근거가 되는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일베와 같은 본진이 만들어진다는 거고, 트루스 소셜이 만들어져서는 안 되는 이유가 그들에게 본진을 줘서는 안 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극단주의자들을 한꺼번에 모아서 다 없애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그들을 결집시키거나 결집하는 것을 방관, 혹은 수동적 조장하는 것은 그들의 강력한 에너지가 모이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가세연이 수억 원 이상의 후원을 받는 것처럼 경제적인 힘이 될 수도 있고 일베에서 근거지를 가지고 성장한 뒤 사회에 크고 작은 영향력을 미친 일베적 마인드와 같은 사회적 영향력은 물론, 그러한 성향의 정치인을 만들거나 그러한 성향의 지지자를 흡수하고자 하는 정치인을 만들어 정치권력을 획득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은 이미 한번 티파티는 공화당 장악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겪었고요.

 

 

2.

예전이라고 해서 정치성향에 따른 갈등과 마찰이 없었느냐 하면 결코 아닙니다. 종교와 더불어 정치 이야기는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었던 것처럼 오래 전부터 좁혀지지 않는 가치관/세계관의 충돌은 웬만큼 배운 식자가 아닌 이상엔 반드시 싸움이 나기 쉽상입니다.

 

아무런 부담 없이 정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같은 정치 성향을 공유하는 이들일 뿐이고요.

 

 

3.

인터넷은 온 세상의 소통을 즉각적이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소통에 한해서, 그리고 인터넷을 향유할 수 있는 매체와 그것을 작동시킬 몇가지 요소(전기, 유무선의 연결)만 있다면 전 세계 거의 누구와든 소통이 가능합니다. 단지 우리는 우리가 소통할 사람과 소통할 공간을 정할 뿐이죠.

 

그리고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비슷한 성향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를 더 즐겁고 부담없이 받아들이며 우리의 가치관과 반대되거나 충돌할 수밖에 없는 사람과의 대화를 꺼립니다. 불쾌해하는 것을 넘어 때로는 두려워하기도 하죠. 그리고 그러한 반감은 정도와 개인의 가치관 등에 따라 실제로 배제를 시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커뮤니티 웹사이트에서 회원은 선동하거나 신고를 남용하는 경우도 있고, 계속 싸우고 비난하면서 쫓아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면 운영진 등 실질적 권한을 가진 관리자의 경우에는 좀 더 쉽고 간단한데,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거나 자신을 신격화하는 데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 정지/강제탈퇴 기능을 남발하는 거죠.

 

물론 이에 대해 구분해야할 것은, 아무리 이상적으로 공정해도 소통하는 자 본인이 집단의 명시적 규칙을 지키지 않고 마음대로 굴다 쫓겨나는 경우 역시도 있습니다. 주로 일베충들이 타 커뮤니티에서 일베 가치관을 드러내거나 반사회적 소통방식을 견지하다 쫓겨나고 탄압을 받았다고 코스프레하거나 정치질을 하는 경우 역시도 존재합니다.

 

 

4.

여튼, 그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공간을 선택하고, 이는 필연적으로 편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듣기 싫은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있는 공간에서 편하게 소통할 수 있고, 불편한 충돌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만큼 자신과 같은 가치관, 성향을 지닌 이들끼리 모여서 그 반대의 이야기나 다른 관점을 접하지 못하고 편향성은 더더욱 강화됩니다. 다른 시각이나 가치관을 접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세계관은 협소해지고 편협해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지요.

 

이는 비교적 온건한 사람이라도 자신들이 옳다고 믿었던 것이 새로운 정보나 관점하에서 다르게 해석되는 사실에 설득력을 느낄 기회가 없어지게 되기에 집단은 더더욱 편향적이게 됩니다. 피드백이 오직 자기들끼리만 이루어지며 이것이 심해지면 팩트체크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가짜뉴스를 사실로 믿거나 그러한 가짜뉴스를 기반으로 또 다른 가짜뉴스를 만들게 됩니다.

 

 

5.

사실 기존 한국에서 어떤 커뮤니티나 어떤 웹사이트가 더 쓰레기라고 하는 경우는 있었고 그것은 대체로 예의와 가식을 내려놓았다는 디씨가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아예 정치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이트나 노노데모 같은 카페의 경우는 별개로 취급되고요.

 

각 커뮤니티끼리는 공유되는 구성원에 따른 수동적이고 제한적인 교류나 관찰이 있었습니다. 단, 주로 유머 자료로 소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대체로 비판적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각 커뮤니티간의 정치적인 성향 역시도 두드러지지 않았고, 정치와 비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대체로 잘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정치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점진적으로 높아진 시기가 찾아옵니다. 이는 우리가 민주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고, 긍정적인 현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프랑스 혁명 이후에도 오랫동안 혼란과 충돌이 반복되었던 것처럼 균형을 잡아가기 위한 과도기 동안의 혼란과 충돌 역시도 감내할 수박에 없는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에 등장한 것이 바로 일베입니다. 그리고 일베는 싸워야할 적, 그리고 일방적으로 공격하고 괴롭히며 우월감을 느끼게 해줄 만만한 샌드백을 원했고, 그렇게 선택된 것이 바로 오늘의 유머 사이트였죠. 문제는 이것이 정치성향을 이유로 발생한 싸움이라는 겁니다.

 

오유는 일베와의 충돌 이후 한국 웹에서 커다란 영향력, 위상의 추락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후로 한국 인터넷에선 각 커뮤니티별 정치적 경향성이 좀 더 뚜렷하고 표면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각 커뮤니티마다 적대감이 발생하기도 했는데, 여기에 특히 기여한 사건은 남초/여초로 구분되는 성갈등 문제가 한몫을 했죠.

 

페미니즘을 추종하는 거대 여초 커뮤니티 역시 모든 남초 집단과 싸웠고 이 젠더 이슈는 설령 정치성향과 무관하다고 치더라도 커뮤니티간의 적대성은 지나치게 높아졌습니다. 커뮤니티간 정치/ 젠더 갈등이 심해지기 전까지 여초와 남초는 서로 싸우는 일 자체가 없었습니다. 남남보듯이 하긴 했지만 굳이 따지자면 거의 긍정적이기까지 했죠.

 

즉, 정치성향으로 갈리는 적대성과 젠더 이슈로 갈리는 적대성까지하여 한국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서로 다른 커뮤니티에 적대감을 느끼거나 자기가 애착을 느끼는 커뮤니티에 강력한 소속감을 느끼게 됩니다. 외부의 적은 결집에 효과적인 까닭입니다.

 

그렇게 커뮤니티끼리 고립되고 교류, 혹은 여러 커뮤니티를 동시에 하지 않게 되었으며 그러한 적대성이 타 커뮤니티 비하로 이어지며 더욱 피드백되었지요. 루리웹을 근이라고 비하하고 펨코를 펨베로 비하하는 등 이제는 어렵지 않게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6.

여기에 인터넷 방송과 유튜브는 이러한 편향성과 고립성에 크게 기여하게 됩니다. 인터넷 방송 중 정치를 주제로 하는 경우 대부분은 큰 인기를 얻지 못했고, 대부분은 유튜브와 연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프리카나 트위치에 그러한 방송이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유튜브 쪽에서 큰 수익과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선 네이버 등에서 벌어진, 언론기사의 대문 페이지 노출 문제가 이슈로 다뤄져 개편이 이루어졌듯이, SNS에서는 알고리즘 문제가 이슈가 됩니다. 한국에선 네이버에 언론 기사가 네이버 측에서 조작하거나 조작하지 않더라도 특정 성향의 언론사들의 기사나 특정 이슈만 부각되는 등의 부작용 때문에 기사 자체를 노출하는 게 아니라 언론사들을 보여주고 해당 언론 사이트에 들어가 기사를 보는 것으로 개편되었습니다.

 

SNS에서 문제가 되는 알고리즘 문제는 이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개별적인 섬세함을 지녔습니다. 웹사이트에서 강제로 특정 기사나 정보를 노출시키는 게 아니라, 각 개인별에 맞춰진 선호,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컨텐츠를 알아서 뽑아서 제공해주기 때문이죠.

 

가령 어떤 주제의 유튜버 영상을 보면 해당 유튜버의 다른 영상들을 제안(노출)해주고 비슷한 주제의 다른 영상 컨텐츠 역시도 노출해줍니다. 그리고 이것이 게임이나 인터넷 방송, 애니, 영화 리뷰 따위라면 별 상관 없겠지만 정치, 사회 이슈를 다루는 컨텐츠라면 위험성이 발생합니다.

 

어떤 커뮤니티를 하지 않더라도 유튜브나 유튜브와 유사한 방식으로 컨텐츠를 제공해주는 SNS 서비스를 하게 될 경우 특정 성향 위주의 컨텐츠들을 제안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자각이나 면역 따위가 없는 사람들, 특히 기성세대 사용자들은 이에 특히 크게 영향을 받게 됩니다.

 

한번 보면 계속 뜨고 뜨는 걸 계속 보게 되기 때문에 정치적 편향성은 더더욱 강화됩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더 극단적인 컨텐츠를 제공해주고, 거기에 어그로 끌린 사용자들 역시 무비판적으로 보게 되거나, 최소한 약간의 설득력을 느끼게 되는 경우 역시도 존재하죠.

 

알고리즘이 현대 정치환경의 극단화를 심각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입니다.

 

 

7.

맨 위 이미지는 미국의 상황에 대한 자료이지만, 한국에 대입해도 크게 차이는 없을 겁니다. 아니, 오히려 한국의 극단화는 더 심각한 편일 가능성 역시도 배제할 수는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본래 한국은 전쟁 이후로 특별히 더 극우화된 편이었기 때문에 우파 극단주의자의 비율이 높은 편이었는데, 이게 결코 해소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가고 있습니다. 단순히 극우보수 정당이 집권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사실이나 맥락을 완전히 무시해도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기술적으로 그렇게 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때문에 저는 최근 파편화에 대한 생각을 자주하게 됩니다.

 

로빈 블릭의 저서, 독일의 파시즘:히틀러는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노동운동을 분쇄했다. 에서 그는 히틀러의 이러한 발언을 인용합니다. "우리 운동을 파괴할 수 있는 것이 딱 하나 있었다. 만약 우리의 적이 그 원칙을 이해하고, 일이 시작될 즈음 우리 운동 중핵을 무자비하게 타격했다면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처음 일베가 등장했을 때, 그 중핵을 무자비하게 부수었다면 일베와 유사한 집단이나 단체는 나왔을지언정, 그 규모와 영향력은 지금과 비교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본진을 마련해주지 않는다면 그들의 힘은 결집되지 않았을 것이고, 파편화된 개인, 소규모 집단은 연대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며 응축된 내부의 힘을 외부로 발산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반대로, 집단화된 극단주의자들을 파편화시켜 그 역량을 감퇴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아주 어려운 일이고 정교한 공작의 영역에서 가능할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자기들끼리의 분열이 이루어져야할 것이고 혹은 더 끔찍한 집단의 공격에 의해서만 가능할 겁니다. 중도적일 수록, 온건할 수록 공격성을 갖춘 집단이 되기 어렵고 남들보다 더 강력한 공격성과 행동력을 지닌 것은 더 극단화된 집단에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당연히 저도 알지 못한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이것 역시 하나의 방법이자 아이디어일 뿐이지 다른 더 방안들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8.

우리는 이전 시대에 비해 더욱 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관용을 보이지 못하는데다, 더욱 극단화되고 정보는 물론 정보의 해석의 차이 역시도 커졌습니다. 그러한 해석의 차이로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한 세계관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대화나 타협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볼셰비키와 나치당원이 하는 짓이 비슷하더라도 서로 선 위치가 다르고 지지하는 지도자가 다르며 입은 옷의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결코 이해하지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 상태에선 두가지 선택지밖에 없습니다. 완전히 다른 대륙에 있어 보이지도, 들리지도, 내게 영향력을 행사하지도 않는 것처럼 전혀 신경쓰지 않거나, 혹은 죽여 없애는 전쟁 뿐이죠.

 

우리는 우리가 가진 세계관과 가치관을 완전히 포기하고 내가 싸워왔고 이해하지 못했던, 그리고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경쟁자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겁니다. 세계관 격차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더 크고 광범위한 갈등을 예견하는 일이 될 것이며 이것을 해결할 방법은 양차대전이나 냉전의 종식과 같은 세계사적 거대한 사건, 혹은 최소한 우리 세계관적 거대한 충격만이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 탄핵 사건과 같은 현대 한국사에서도 유래 없는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우리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나빠졌으면 나빠졌죠. 서로서로 더 극단화되고 이념 격차는 요 몇년 동안에서조차 벌어졌으니까요. 쿠데타도, 폭동도, 계엄령도 없었던 가장 이상적이고 온건하게 발생한 충격이었음에도 우리가 변화하기엔 충격량은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이것보다 더 큰 충격은 도대체 무엇이 되어야할지 두려울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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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유세용 도메인 내려가고 페북, 트위터 계정도 폐쇄.

 

 

 

 

재선까지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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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함에 대해 자원이 가야할 곳에 가지 못했음을 의미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원이 가야할 곳에 가기 위해선 원칙이 지켜지기만 하면 되죠. 원칙을 어기고 사적으로 자원을 유용하거나 자신의 직위와 권한을 남용하여 부정한 방식과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누군가에게 어떠한 자리를 임명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물적 자원이 가야할 곳에 가지 못하고, 인적 자원이 있어야할 자리에 있지 못하게 하기에 부패한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패하고 싶어도 정해진 원칙을 지킨다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죠. 도로에서 도로교통법을 어기고 싶어도 중앙선을 넘지 않고 과속을 하지 않고 난폭운전, 보복운전을 하지 않으며, 신호등을 비롯한 원칙을 다 지킨다면, 아니. 지키도록 강제된다면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위 사건은 해당 공화당 정치인이 잘못을 했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그의 정치생명을 끝내버린 게 핵심이 아닙니다. 그건 결과일 뿐이죠. 핵심은 경찰이 직위와 권한, 권력의 유무와 관계 없이 법이라는 원칙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고, 지켰으며, 단지 그 뿐입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져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민)의 선택과 그들의 선택권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민주사회의 원리 하에 발생한 결과인 거죠.

 

 

한국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이가 휘두를 수 있는 권력과 권한에 두려움을 느끼고 원칙을 접는 경우는 참 많았습니다. 심지어 이에 대한 공분과 지적을 천박한 냄비들의 떼법이라고까지 폄하하죠. 정작 핵심에 대해서는 눈을 돌리면서 말입니다.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가 더 건전하고 부패하지 않은 사회일 겁니다. 미국이라고 완벽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어떤 면에서 한국보다는 나은 면이 있는 건 사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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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8 - [취미/이야기] - 브렉시트, 멍청이들과 노친네들의 마초적 자살쇼.

2016/11/15 - [취미/이야기] - 트럼프 당선과 대중정치의 함정.

2016/07/30 - [취미/이야기] - 대중선동의 기본. 분열.



새누리당, 황금새벽당, 공화당 등의 극우, 보수적 성향을 띄는 정당의 경우, 그들을 지지하는 계층은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 저소득층에 가깝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챙겨주지 않고, 오히려 거국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줄어들고 사회적 입지가 줄어들 것임에도 그들을 지지하고 표를 던져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정치학에서는 계급배반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종류의 계급배반 현상을 설명하는 많은 근거와 주장들이 있습니다. 많은 노동에 따른 인지적 한계, 낮은 교육수준, 지역적 정치기류, 종사하는 산업에 따른 입장 등등..


모두 틀린 설명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것들은 일정 정도 사실을 설명하고 있으며, 그 정도는 경우에 따라 영향성을 달리할 뿐이죠. 하지면 지금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런 요소들과는 다른 데, 그들의 정치사회적 입장과 한계라기 보단 정신적 가치관에 대한 설명이 좀 더 올바르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먼저, 새누리당과 같은 종류의 극우보수 세력을 지지하는 자들은 크게 두가지 기저를 바탕으로 합니다.


하나는 약자와 비주류,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경멸이고, 다른 하나는 강자, 힘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과 환상이죠.



1.약자, 비주류,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경멸.


기실 따져보다면 저소득층은 자신들부터가 약자임에도 불구하고, 자기혐오적 성향이 강합니다. 이는 흔히 갑질이라는 형태로 분석될 수 있는데, 갑질은 졸부 따위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소득층의 사회적 약자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중산층이 사는 곳보다 저소득층이 사는 곳에서 알바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직원들에게 갑질하는 경향성이 큽니다. 이는 아래의 글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자신이 겪은 만큼 타인을 대한다는 겁니다. 자신이 위계적 폭력과 억압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이 상위에 위치한 관계일 때 어렵지 않게 하위에 위치한 이에게 마찬가지의 위계적 폭력과 억압을 가하기 쉬워지죠. 


2014/08/30 - [취미/이야기] -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배경.


이런 현상에 따라, 그들은 힘에 대해 갈망하게 되고, 강자와 주류에 대해 동경하고 선망합니다. 비록 그들은 거의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지만 말이죠. 그런 정신적 작용은 정치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약자와 비주류에 대한 혐오와 경멸로 이어집니다. 타인의 비루함과 비참함은 쉽게 인정하고 흉보기 쉽지만 자신의 비루함과 비참함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죠.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타인을 어렵지 않게 구분하고 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는 중2병의 나는 남들과 달라 같은 게 아니라, 단지 자신의 형편을 무시하고 타인만을 판단하는 것에 불과한 것에 가깝습니다.


이런 모순적 행태 덕에 이들은 자신과 같은 약자와 비주류를 연대의 대상이라고 보질 않습니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 있다면 우습게 보고 모멸감을 주고자 하며, 자신에게 힘을 보태달라고 요청하면 거기서 정신적 우월감을 느끼며 그것에 심취하고 알량한 입장을 무기로 유세를 부리게 되죠. 이는 어렵지 않게 수평폭력으로 발생하게 되고, 특정 정치세력과, 그들과 야합한 언론은 그것을 부추겨 분열시켜 그들의 단결을 파괴하거나 이루어지지 않게 조작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같은 약자나 비주류, 소수자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최소한 무시, 최대한 적대 및 공격에 가까운 입장을 가지게 되죠. 같은 이유로 그들 또한 다른 집단에게서 공감 받거나 연대하고자 하지 않고요. 이것이 정치적인 요소로 흐르게 된다면 (노인, 청소년, 저소득층, 환자, 장애인 등의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복지, 외노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배척으로 발생하게 됩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진보 및 좌파와 같은 소수자와 약자를 주로 대변하는 성격의 집단에 대한 혐오와 괄시로 이어지죠. 즉, 그들은 자신들의 입장과 이익을 대변해줄 수 있는 정치집단을 반대하고 비판적인 자세를 가지게 됩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흔히 말하는 저소득층은 자신이 되고 싶은 자들을 지지한다. 는 말대로가 되는 거죠. 강자와 주류에 대한 동경은 자신과 그들을 동일시하는 공감이 이루어지기 쉽고 그에 따라 정치적 결정을 내립니다. 그게 진정한 본인의 판단이라기 보단 정치적 선동에 따른 결과라고 해도 말이죠.



2.강자, 힘에 대한 맹목적 추종과 환상.


앞서 이야기 했듯, 그들은 힘과 강자에 대해 추종하고 환상을 가집니다. 자신들이 힘이 없어 억울하고 마음 속으로 담아만 둬야할 괄시와 무시를 많이 겪어 봤기 때문에, 그만큼 그들을 짓밟고 비웃어 줄 수 있는 힘에 대한 동경과 환상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강한 자를 사랑하고 편파적인 애정을 가집니다.


정치에선 소위, 힘 있는 자들에게 표를 줘야 한다와 같은 이야기로 나타나죠. 힘 있는 자들이 정치를 해야 하고, 힘 있는 자들이 권력을 가져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보고 공감하고 싶은 것은 기집애처럼 이빨만 털면서 대화하고 화합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강인한 힘과 권력으로 상대를 짓밟고 박살내며 무릎 꿇고 빌게 만들 수 있는 타협하지 않는 강함, 강자거든요.


그러기 위해선 그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느낄 수 없는 적이 필요하고, 그들에게 자신들의 기저에 있는 분노와 혐오를 뿜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대상은 주로 외부의 적국, 혹은 자국의 진보 온건파들이 되기 쉽죠. 자신들이 혐오해 마지 않는 약자와 소수자를 대변하고 그들의 이익을 주장하는 약해빠진 기집애들. 그들이 적으로 상정되는 것이고, 그래야만 합니다.


파시즘의 공통점은 내부든 외부든 타협할 수 없는 불가침의 적, 혹은 악을 상정하고 국민들로 하여금 그들의 분노와 혐오, 증오 따위를 조장하며 그렇게 조장해낸 부정적 에너지를 그 적에게 쏟아붓게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주장과 발언을 대신해주는 자신들은 그만큼 비이성적이게 된 감정적 에너지체가 된 대중에게서 지지와 표를 받는 거죠.


따라서 그들의 지지를 받고자 하는 극우보수 집단은 그들에게 자신들이 힘이 있다는 스텐스를 명백히 보여줄 필요가 있고, 적어도 그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줘야만할 이유가 있는 겁니다. 실제로 할 수 있느냐, 그것이 국가적, 사회적 이익이 되느냐, 그것이 사회정의와 법적 정의에 부합하는가 따위와는 관계 없이요. 단지 지엽적 정치적 승리를 얻어낼 수 있다면 국가나 사회적 손실과 손해는 무시해도 되는 소小에 불과한 겁니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이 대大에 해당할 뿐이거든요.


이는 청와대나 새누리당, 혹은 이번 미 대선에서의 트럼프, 혹은 브렉시트 이전의 영국 보수당들이 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당장의 정치적 이익과 승리, 저소득층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 혹은 국민 다수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그들이 원하는 말의 대변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게 올바른 말이든, 정의에 부합하거나 국가적, 사회적 이익을 얻어낼 수 있는 종류의 것들이냐고 하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거든요.


즉, 적지 않은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은 정의로움이 아닌 힘이 있다는 것의 증명이고, 또한 정의니 합리니가 아닌 강한 자, 힘 있는 자들이 필요한 것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경화가 이루어지는 국가에선 힘 없는 정의보다 정의 없는 힘이 승리하는 것을 찾아보기 쉬운 것이고요. 마찬가지로 문재인이나 버니 샌더스, 힐러리와 같은 힘 없는 나약한 놈에게 표를 주지 않는 겁니다.


그들은 당장의 원칙과 정의보다, 당장 힘을 동원해서 자신들에게 대드는 버러지들을 짓밟고 박살내는 것에 열광합니다. 대화와 타협은 기집애들이나 하는 것이고, 그딴 건 필요 없이 자신들에게 기어오르는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야만 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힘을 가진 강자가 타협도 협상도 없이 적을 박살내고 짓밟는 것 자체에 대한 쾌감. 저는 그걸 마초 오르가즘이라고 부릅니다.



3.마초 오르가즘.


앞서 말했듯, 마초 오르가즘이란 힘으로 타협이나 협상, 대화와 같은 나약한 행위를 일체 하지 않고(혹은 강경한 태도의 경고만 한번 던져주고) 자신들이 설정한 적, 혹은 악에 대해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둘러 박살내고자 하는 것에 대해 쾌감을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민주적 원칙에서도 벗어나 있고, 벗어나기도 쉬우며 정의나 합리와도 동떨어진 태도입니다. 이런 태도가 극단화된 것이 파시즘이고, 군국주의이죠. 자신들의 적이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사상과 집단. 절대적 악과 강력한 적을 찾고, 그들과 싸워 이겨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사라져버리면 자신들의 존재 자체에 의미가 없어지죠.


거의 전세계의 극우, 보수 정치집단은 그들을 지지하는 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줍니다. 사회정의에 부합하는 해야 하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극적이든 편파적이고 피상적이든 듣고 싶은 말을 해주죠. 트럼프가 가장 적절한 예시입니다. 적지 않은 대중들은 어떠한 현상과 사건에 대해 근본적으로 파헤치고 분석하는 것보다, 그것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피상적인 현상에 집중하기 마련이고, 이게 힘과 관계된 것이라면 그것을 휘두르고 싶어만 하죠. 자신들의 자존심과 가치, 이입할 수 있는 대상(혹은 그런 종류의 가치)의 권위 상승이라는 일방적 짝사랑에 따라 움직이고 표를 던집니다.


현실과는 별개로 자신들은 아주 강한 존재이고, 그런 강한 힘을 가졌으니 대화나 타협 같은 불필요하고 나약한 행위보다 힘을 통한 의지의 관철만을 원합니다. 그게 자신들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주고 고양시켜주며 적지 않은 쾌감을 주기 때문이죠. 


이런 마초 오르가즘은 교육 수준이 낮고 노동 강도가 높고 노동 시간이 많은 저소득층에게 쉽게 발현하고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그들은 수직적, 위계적 권위에 의한 폭력을 쉽게 경험하고 낮은 자존감과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지적능력은 어떠한 현상이나 사건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분석할 시간도, 능력도 주어지지 않게끔 된 환경에 놓여져 있기 때문이죠.


그들이 조금이라도 더 여유롭다면 극우적 집단의 피상적인 정치적 선동보단 다른 지식인들의 근본적 분석에 공감하고 그 주장이나 분석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그렇지 못한 환경에 놓여져 있기 때문에 그러기 어렵죠.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진보나 좌파보다는, 강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남성적 이미지의 보수에 이입하기 쉽습니다. 


교육 수준이 낮기 때문에, 그리고 삶에 여유가 없어서 정치사회적 안건이나 쟁점에 쓸 정신력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고, 자기들이 평소에 이입해왔던 보수, 극우적 진영이나 인물에 지지를 보내기 쉽습니다. 쟁점에 대해 분석하고 공부하고 판단을 내릴 여유도, 그럴만한 지적 능력도 없기 때문에 그냥 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죠. 한국 보수, 저소득층, 50대 이상의 세대가 조중동 등 보수언론이 하는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상태로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그런 이유죠.


그리고 그런 성질을 잘 알고 있는 극우보수는, 그 집단이 정치정당이 됐든 경제집단이 됐든 언론이 됐든 그들의 마초 오르가즘을 자극할만한 정치적 선동을 하는 것이고요.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들은 사회정의나 사회국가적 이익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 요소들과 동떨어진 주장을 하고 분열을 획책하게 되는 것이며 그 결과로 알량한 정치적 승리만을 반복해서 쟁취했을 따름이죠.


즉, 마초 오르가즘을 자극하면, 자신들이 승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계속 자극하는 것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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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ㅁㄴㅇㄹ 2016.12.12 20:05 address edit/delete reply

    진보쪽에서 오히려 강한 이미지의 인사를 내놓는다면 이런 마초이즘이 어떻게 반응할지 좀 궁금하네요.

    • Favicon of https://konn.tistory.com BlogIcon Konn 2016.12.12 20:50 신고 address edit/delete

      일단 가장 비슷한 건 이재명 정도가 있지만, 그렇다고 무식한 마초이즘보다는 부정부패, 비리에 대한 강경함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론 다르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 속성 자체는 비슷하기도 하고 최근엔 여러 문제되는 발언들이 나오면서 진보, 좌파 쪽에서도 실망을 하거나 지지를 철회하는 등 이견이 나오고 있는 모양으로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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