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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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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4 - [취미/이야기] - 왜 학교 공부를 해야 하는가?



사실 이전에 써야 했던 내용인데 어쩌다보니 생각 못하고 빼먹었네요.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앞서 쓴 글의 이유만은 아닙니다. 앞서의 글은 개개인에게도 필요한 능력이고 무엇보다 공교육의 당위와 목적을 설명한 거라면, 이번 글에선 그 학교 공부가 개인에게 왜 필요한가를 이야기하려는 것이죠. 하지만 먼저 염두해둬야 할 것은, 개개인의 지적능력의 유의미한 발전이나 효용을 설명하는 건 아닙니다. 또한 그것이 옳은가 그른가에 대한 가치판단이 아니라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학생들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더 높은 성적을 받아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함이고, 더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은 더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을 좀 더 쉽게 풀어말하자면, 공부를 하는 이유는 직업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고졸은 고졸 이상이 취직 가능한 직장을 얻습니다. 대졸은 대졸 이상만 취직 가능한 직장을 얻고요. 대개 고졸 학력 이상을 요구하는 곳은 연봉도 적고 업무 환경도 좋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더 높은 학력을 요구하는 직장은 연봉을 많이 받고, 업무 환경도 좋은 경우가 많죠. 여기서 업무 환경이 좋다는 건 시설이나 안전, 사용할 수 있는 기물이 양호하다는 걸 말합니다.


대개 사람은 각 개인마다 도전 가능한 직장군에서 스스로 원하거나 비교해서 더 나은 쪽의 직장을 선택하고자 하고, 능력이나 사정이 여의치 않는 경우가 아니라면 얻게 됩니다. 그게 공장이 될 수도 있고 중소기업이 될 수 있고 대기업이나 공무원이 될 수도 있죠. 이런 직업 중에, 더 많고 더 높은 수준의 직장을 얻기 위해서라면 그만큼 더 높은 학력과 자격조건이 필요합니다. 극단적으로 초졸이나 중졸이 의사나 법관이 될 수 없는 건 그들의 지적능력이 모자란 것도 있지만, 그만큼 기본적인 학력이라는 조건 자체가 미달되었기 때문입니다.


의사가 되기 위해선 수능을 잘 봐서 의대에 들어간 뒤 공부를 하고 의사자격증을 따야 의사가 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판검사, 변호사가 되기 위해선 수능을 잘 봐서 로스쿨에 들어간 뒤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검사 임용시험에 합격하거나 해야 하겠죠.


하지만 고졸은 그럴 수 없습니다. 의대나 로스쿨에 가지 못했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어떤 분야든 해당 분야의 대졸 이상의 학력이 없기 때문에 그 조건을 필요로 하는 직업을 구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직업 선택의 폭이 좁아지죠. 하지만 반면에, 로스쿨을 나왔거나 의대를 나온 이들은 비단 그들이 법조인, 의료인이 되지 못했다고 해도 다른 많은 직장을 갈 수 있는 선택의 폭을 가질 수 있습니다.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학과를 나온 이들은 그만큼 직업 선택의 폭이 넓어지죠.



당장 하고 싶은 게 없더라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나오면 나중에 하고 싶은 것이 생겨도 그것이 어떤 것이든 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게 없어서 고졸로만 나왔는데, 나중에 대졸 이상의 학력이 필요한 직업을 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작 그만한 학력이 없다면 취업이 어렵겠죠.


그렇기 때문에 학교 공부를 잘한다는 건, 그리고 그에 따라 더 좋은 학교의 더 높은 학력을 취득했다는 건 그만큼 직업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겁니다. 실생활에 아무 쓸모가 없을 지 몰라도 현실적으로 기업들이 요구하는 조건을 가져야 취업이 가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결국 필요한 건 필요한 게 되는 거죠.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언젠가 원하는 직업이 생겼을 때 그만한 자격을 이미 갖추었다는 건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반대로 말해서, 그런 학력이 필요가 없다면 그런 학력을 취득하지 않아도 상관 없긴 합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학력 등을 따지는 풍조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죠. 똑같이, 혹은 더 능력이 있어도 고졸자가 대졸자에게 연봉이나 승진에서 밀리는 것도 사실이고요. 이런 풍조는 바로 잡는 게 좋다고 보긴 합니다. 적어도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그만큼 대우 받는 게 이상한 건 아닌 게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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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학생들이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실용적이지 않고 불필요한 학교 공부를 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몰라도 사는 데 문제 없다고 생각하고, 더러는 그러한 공부를 통해 대학을 가는 것조차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죠.


먼저 교육 그 자체는 그 지식을 실용적으로 사용하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상식적인 판단력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죠. 사실 많은 이들이 모르는 사실이기도 하고, 정말 배워서 쓸 곳이 없기도 하지만 사실은 정말 필요한 것들인 것도 사실입니다.


국어, 수학, 과학 등 실제로 배워도 어딘가에 쓸 곳이 없는 것들입니다.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고요. 글이야 한글 배우면 다 읽을 줄 알고 수학이야 사칙연산만 할 줄 알면 사는 데 문제 없습니다. 과학적 지식이야 큰 쓸모도 없고요. 하지만 말했듯, 근대 교육은 그러한 실용적 지식을 얻고자 하는 게 아니라 논리적 사고력과 상식적인 판단력을 기르기 위한 목적의 교육입니다.


정말 실용적인 지식을 배워야 한다면 법이나 금융 관련 과목을 배워야 할 것이고, 사실 이는 정말 필요한 거긴 합니다.. 진짜로요. 하여간, 우리가 배우는 과목의 목적은 상식적인 판단력과 논리력을 키우기 위한 겁니다. 의외일진 몰라도 인간은 그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동물이 아닙니다. 배우지 못하면 간단한 논리적 사고 또한 어려워하고 합리적 선택을 하지도 못하죠.


가령 플린 이펙트를 보면, 소련 초기의 시베리아 오지 농민들 인터뷰에서 이런 질답이 오갑니다. 


Q "북극에 사는 곰은 흰색입니다. 노바야젬랴 섬은 북극입니다. 노바야젬랴 섬에 사는 곰은 무슨 색일까요?"

A "내가 노바야젬랴 섬을 안 가봤는 데 그걸 어떻게 암?"


인간은 기본적으로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사고가 가능할 수 있는 지능을 갖추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훈련도 받지 못한 디폴트의 두뇌가 자동으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과정이나 결과를 도출해내진 못합니다. 이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식의 속담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서로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두 현상을 관계가 있는 선결관계로 오인하는 오류를 곱찝는 사례죠.


이런 인지적 오류는 현대인들도 쉽게 일으킬 수 있고, 대개의 경우 본인들은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도 종교가 수 많은 현대인들에게 잘 통한다는 점은 그것을 증명하죠.



근현대의 논리적 사고는 교육을 바탕으로 합니다. 우리가 논리적 사고를 할 수 있고 현상과 결과에 대한 합리적 추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이유 또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죠. 우리가 비실용적이라 여기는 공교육의 지식들은 기실 그 자체로 실용적 용도가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통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가 가능한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성적 사고를 위한 훈련인 셈이죠.이는 국어, 수학, 과학, 사회, 역사 등의 과목들이 모두 해당되죠.


그렇기 때문에 피상적 용도에 집중하여 교육을 제공하는 교사의 입장에서도, 그것을 받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교육의 가치와 효과에 대해 인지하기 어려운 것이고(언제 공교육 아예 못 받은 사람을 본 적이 있어야지;) 학교 공부에 대해 냉소를 하는 이들이 많은 겁니다. 이러한 이유로 교사 또한 도대체 이딴 거 왜 배워야 하나요? 라는 학생들에게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나중에 갈 대학이나 직장을 끌어와 그 목적을 잘못 호도하는 거기도 합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교육이 논리적 사고와 합리적 판단력을 길러주지 않거나 못하는 쪽으로 바뀐다면 그 사회는 지속적으로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판단을 반복하는 사회가 된다는 말이 됩니다.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한국과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는 국민들의 눈에 미신적이고 위험한 판단을 하며 실제 범죄를 저지르거나 잘못된 판단으로 더 큰 피해를 야기하는 것을 보며 멍청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그들이 그러한 교육을 받지 못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러한 교육 자체가 잘못되었다면 교육을 잘 하는 국가의 국민들이 보기에 해당 국가의 교육을 받는 국민들은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활동에 눈쌀을 찌푸리겠죠.



현대의 교육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사고를 가능케 하는 쪽으로 맞춰져야 하고, 더 나아가 법, 금융, 노동에 대한 실용적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교육의 방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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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보면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는 지성을 기르고자 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책이 있는 반면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지뢰도 많죠. 만약 어떤 사람이 이러한 비이성과 비논리, 비합리를 경계하고 막기 위해 어떤 사고방식이 올바르며 어떤 태도를 가지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책을 냈다고 해봅시다. 분명 이 책을 읽으면 더 높은 수준의 사고가 가능하고 미신적이고 비논리적인 것을 제대로 논파할 수 있게 되겠죠.


하지만 문제는 사람이 책을 선택한다는 겁니다. 그런 류의 책이 수 천권이 있지만 정작 유사과학, 미신, 음모론 따위로 점철된 책을 고르는 사람은 분명 존재한다는 거죠. 또한 그 뿐만 아니라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마치 이것이 맞는 내용인 것처럼 보이는 책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지성을 쌓아가는 사람이 존재하는 반면 머리에 똥쓰레기 같은 정보를 집어넣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죠. 실제로 그렇고요. 그렇다면 이런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해야할까요?


어떻게 보면 방법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방법은 존재합니다. 바로 공교육이라는 거죠. 실제로 이 공교육이라는 것을 통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세시대 사람보다 좀 더 합리적이고 현대적 이성의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교육의 목적은 국가마다 다르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이성적인 사고가 가능해야하며, 동시에 민주시민으로서의 덕목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고 상호보완적입니다. 전자가 전제되어야 후자가 가능하기 때문이죠.


왜 사람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 인간은 본래 충분히 이성적인 존재가 못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교육을 철저히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최근엔 수호령이나, 차크라, 귀신의 존재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을 본 적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에게 어떤 것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인지 답변했고 거증의 의무를 들이대며 스스로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죠. 물론 그것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있다고 주장하고 그것에 대해 불변하는 믿음을 보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태도를 바꾸거나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기실 모든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인간군상이 이와 같은 태도를 취하죠. 당연히 그 사람은 증명하지 못했고 말입니다.



만약 그가 여러 책과 공부를 통해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다면 그런 미신적이고 종교적인 요소에 대한 믿음을 배재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죠. 실제로 책을 고르고 사야하는 사람은 그 본인이기에 그러한 지식이 있다고 해서 자연스레 머리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만약 그 사람이 공교육으로서 그런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법을 배웠다면 그러한 믿음에 빠질 수 있었을까요?


아마 아니겠죠.


그렇지만 이것도 마냥 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먼저 그러한 교육이 -다른 나라는 몰라도- 한국에서 가능한가 하는 것이 첫번째이고, 현재도 공교육에 대해서 반발을 하는 것이 학생일터인데, 그런 것을 가르친다고 모두 제대로 답습하고 실제로 이행가능한가라는 것이 두번째입니다.


뭐.. 실제로 그렇죠. 특히 후자가 생각해볼 법한 이야기인 데, 현재에도 학교와 공부라는 것에 학을 때고 반발심이 강하며 자신의 학교를 좋아하기 보다 욕을 하며 교사와 교육제도에 대해 조롱하며 비난하는 것을 보면 이러한 분명히 이성적인 사고력을 키우게 하는 교육이 반드시 성공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물론 공교육이기에 일단 가르치면 따라오는 애들이 많기는 하겠지만요.


하여간, 그러한 문제점은 -현재의 교육도 마찬가지지만- 교육에 대한 부담부터 때는 것이 먼저일 거라고 봅니다. 학교 공부가 어렵고 마치 성적이 모든 것을 재단할 것처럼 여기며 실제로도 그러하며 그 외의 가치는 모조리 묵살, 혹은 무시 당하는 현재의 사회문화적 분위기도 문제이고, 교육을 이수 받기에 높은 난이도도 문제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학생들이 좀 더 자유롭고 덜 무거운 교육이라는 짐을 졌다면 좀 더 교육과 학교, 교육제도에 대해서 덜 비판적이고 유하게 대했을 겁니다. 압박이 심하면 반발이 심하듯이 압박이 적으면 반발도 적은 것이 이치이니까.



다시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많은 이들이 이성적인 사고관을 가질 수 있다면 인간은 좀 더 미신적이고 종교적이며 비합리적인 것을 믿지 않고 피했을 것이며, 뻔히 보이는 거짓말과 증명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어렵지 않게 논파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고능력과 판단력은 사회를 살아감에 있어서도 상당히 큰 도움이 될 것이고 이는 국가적인 이익으로 다가올 것이고요.



각국이 다른 교육제도와 교육방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나라마다 교육의 목적과 가치가 다름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교육제도가, 정확히는 현재 한국 교육이 가르치는 것이 쓰레기이거나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치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한국에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이치에 맞는 이성적인 사고가 상당히 부족한 것이 사실이고 이것은 교육을 통해 교정할 수 있다고 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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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하니다. 뭐, 실제로 그렇게 돌아간 적은 없는거 같기는 하다만.


하여튼 최근들어 한국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역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근현대사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못해도 프랑스 혁명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배워야 한다고 봐요. 인권과 시민, 권리와 의무 등 근대 시민사회의 등장을 프랑스 혁명을 기점으로 봐야겠죠. 그 사건은 역사에 큰 획을 그었고, 현대에 굵직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거대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제국주의와 파시즘의 시대를 공부해야 해요. 어떻게 국민들은 정치인과 파시스트들에게 놀아났고, 그것이 어째서 잘못되었는지를 알아야 하고 그것들은 그 당대와 이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 한국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낮고, 파시즘과 전체주의가 너무 파다하게 퍼져있습니다. 이른바, 파시스트들의 광기가 지배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아직도 독재시절의 그 모랄리티와 멘탙리티가 잔존하고 있고 심지어 최근에는 그것들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일베와 박근혜를 위시한 채 대중은 1930년대 독일의 모습을, 그리고 제국 시절의 일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반민주주의의 망령은 이 사회 이 나라 이 국민의 머리속에 그대로 박혀있고, 우리는 그것이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의 존재를 안다고 해서, 그것이 왜 잘못되었는지 만큼은 알지 못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한 요소입니다. 까놓고 말해서, 북한보다도, 핵보다도 더 위험해요. 언제나 국가는 외부의 위협보다 내부의 고름으로 썩어갔고, 망조에 들었습니다. 적은 우리가 가장 강할 때 공격해오지 않아요. 우리가 아프고 휘청거릴 때 오는 법이죠. 외적에게 망했다면, 필시 그 나라는 이미 내부가 혼란스러웠을 겁니다. 고구려가 그랬고, 삼국이 그랬고, 중국이 그랬고, 조선이 그랬습니다. 역사상 거의 모든 국가가 그랬거든요.


그러니 우리는 그 내부의 위험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를 공부해야 해요.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아는 것이야 말로 앞으로 나아가고 스스로를 치유하는 첫 걸음입니다.


부디 우리가 역사를 통해 무언가를 배운다면, 100년전 유럽이 겪었던 그 지옥을 직접 체험하는 것으로 복습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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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공부, 건강..


노력없이 얻으려하는 대표적인 것들입니다. 정말 원하고 됐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하지만 언제나 하기 귀찮다고, 힘들다며 기피하는 것들이죠. 언제나 열망하면서, 정작 노력하지는 않는 것이 사람일까요. 그래서 힘든 것은 피하면서 결과물을 얻으려하는 잘못된 편법들을 사용하나 봅니다. 어느 종교에서 말하듯이 시련이 없으면 성취도 없다는 말처럼, 물리학의 어느 법칙처럼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듯이 무언가를 원한다면 그에 합당한 무언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것이 돈이 되었든, 노력이 되었든.



여성분들, 다이어트 굉장히 원하죠. 조금만 더 뺏으면 좋겠다. 조금만 더 예뻐졌으면 좋겠다. TV에 나오는 저 연예인같은 몸매를 가지고 싶다. 모델같은 몸매였으면 좋겠다. 허벅지살, 뱃살, 팔뚝살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원하면서도 하는 행동은 이기적이기 그지 없습니다. 그저 굶어서 빼려는 것은 물론이요 약을 사먹는다거나, 검증도 안된 잘못된 다이어트법을 무작정 시도한다거나, 심지어 먹토 다이어트, 먹고 토하는 다이어트를 하는 막장 다이어트도 있습니다. 화룡점정은 성형 다이어트려나요? 어쩌면 이건 나은 축일지도 모르겠군요.



뭐.. 노력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모델같은 몸매, 연예인같은 몸매, 탄력적인 몸매를 원한다면.. 살을 빼고 싶다면 해야하는 것은 별 시덥잖은 다이어트법이나 약따위가 아니라 운동입니다.


넵. 몸을 움직이며하는 운동이요.


사실 몸매를 좋게하겠다며 살만 빼는 다이어트야말로 가장 보편적이고 바보같은 다이어트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에도 좋지 못할 뿐더라 단지 삐쩍 마른 상태밖에 안되거든요. 그렇게 원하는 11자 복근, 탄력적인 몸매는 모두 운동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단지 굶어서 빠지는 몸매는 살도 푸석푸석하며 탄력적이지도 못하고 엉덩이는 축 처지고 건강미가 없는, 말린 생선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미적 기준이 마른 사람들에 맞춰져 있어서 허리 가늘고 몸에 살이 없으면 그게 예쁘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만,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몸매와 그 관리법을 보면 적게 먹는 것만이 요령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종 운동, 요가, 훈련(또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죠.)을 병행하는 것은 그야말로 건강한 몸매를 만드는 방법이거든요.



공부도 마찬가집니다. 뭐 별로 길게 할 말은 없는데, 수업시간에 쳐놀고 집에서도 게임만 하고 학원에서도 딴데 정신팔려있는 주제에 성적이 안 나온다고 징징대는 것은 걍 답 없는거죠. 물론 이쯤되면 자기도 왜 성적이 안 나오는지는 알 것이고, 진짜 잘하는 애들도 있는 법이라 노력은 해도 원하는 등수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죠. 그래도 뭐 어쩌겠습니까;;


공부라.. 저도 한창 공부할때는 나보다 머리 똑똑한 애들보고 부럽다, 쟤넨 어떻게 저렇게 똑똑한가 생각하면서도 집에 돌아가면 가장 먼저하는 것이 컴퓨터를 키는 일이었죠. 그런 주제에 그런 애들 보면서 머리속의 지식만 뽑아다 내 머리에 넣고 싶다 같은 생각도 했었지요.. 진정 성적을 올리고 싶었으면 집에서도 공부를 했어야하는데 말입니다..



건강.


개인적으로 보약에 대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오래전에도 이와 관련되어 글을 한번 쓴 적이 있죠. 앞서 말했듯이 전 보약을 먹는 것에 대해 큰 의미가 없이 돈을 날리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보약과는 약간 떨어진 뱀술같은 것도 그렇죠. 먹으면 건강이 좋아진다고? 무슨 근거로?..


보약. 말은 좋죠. 먹으면 건강해진다. 그래서 야생동물이나 지네 큰거 잡아다가 좋은 부위만 때서 말리고 달여마시죠. 그리고 그걸 먹으면서 건강이 좋아질거라고 생각해요. 뱀 같은거 잡아다가 뱀술담가 먹는데 이건 진짜 뭔 근거인지 모르겠습니다.


건강을 얻고 싶으면 해야하는건 걍 간단해요. 운동을 하는거죠..-_-;; 괜히 보약이다 뭐다 하면서 이상한거 먹지 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조깅을 하든 일주일에 한두번 산을 가든 운동을 하면 됩니다. 단순히 뭘 먹는다고 건강이 좋아질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거야 말로 날로 먹는거죠.


건강은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효과가 있더라도 일정 선 이상 효과를 볼 것이라고 생각치도 않구요. 나이드신 분들 중에 이런 분들이 계십니다. 젊은이들 보고 요즘 것들은 노력도 안하면서 좋은 결과를 원한다고, 그러면서 자기는 변변찮은 운동도 안하면서 보약이나 먹고 있죠. 건강 좋아지겠다면서요.



노력없는 성취는 그야말로 날로 먹는 것과 다를바 없습니다. 운이 좋아 별 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겠죠. 그건 뭐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날로 먹으려는 심보나, 다른 사람 굴려놓고 자기 업적이니 하는 것이야말로 놀부 심보겠지죠. 그니까 이 글의 주제는 뭔갈 얻고 싶다면 그만큼 노력을 하자는 겁니다. 별거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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