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쓰는 것에 의미가 있고 지키는 것에 의미를 둬선 안 된다. 쓰이지 못하는 권력은 그 자체로 도덕적이지 못하고 문제적이다. 권력을 가진 자는 그것을 행사해야 할 필요를 요구 받고, 어떠한 결정, 판단, 결재, 거부, 임명 등 다양한 부분에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은 필요한 조치들이 작동하지 않게 되고 이는 그 조직의 발전과 역량을 저해하는 것을 넘어 생존에 위협이 될 수 있다.
그것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할 필요까진 없지만 필요한 권력을 적합하게 행사하는 것은 권력을 가진 자가 해야 할 필수적인 덕목이다. 앞서 권력을 지키는 것에 의미를 둬선 안 된다고 했지만 이는 권력을 그 자체로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쓰는 것을 의미한다. 어떠한 적합한 행사를 하는 것을 거부한 채, 그 권력자의 부덕함과 필요성을 부정한 뒤 새로운 사람을 그 자리에 올려 그러한 권력을 행사하게 해야 한다는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은 역시 비도덕하고 문제적이다. 즉, 의무나 책임보다 감투를 지키는 자의 권력을 말하는 것이다.
권력은 적합한 사람이 적절하게 행사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 행사되거나 행사되지 않을 것이다. 권력을 가지고 행사할 의지도 있으나 무엇을 어떻게 행사해야할 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부적절한 인사인 셈이다. 권력도 써본 사람이 잘 쓰는 것이고 써본 경험이 있어야 더 큰 권력을 다루는 법을 알게 된다. 능력과 경험에 비해 지나치게 큰 권력을 위임하는 것 역시 문제적이고 능력 있는 자에게 아무런 권력도 주지 않는 것 역시 문제적이다.
모든 사람들은 제각기 크고 작은 권력을 지닌다. 작게는 학급에서 주먹과 카리스마, 리더쉽으로 얻는 권력이나 반려동물간의 수직적 관계가 있을 수 있고, 가정에서 부모가 가지는 권력이 있다. 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도 있으며 대통령과 각 부 장관의 관계나 사장, 혹은 대표와 직원들의 관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 중 어떠한 관계는 권력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권력이라기 보단 의무에 가깝기도 하고 어떠한 사회적 관계와 다른 자격과 소양을 요구하는 관계도 있다.
사회구조적 관점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떠한 권력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구매자-판매자의 관계나 고용주-직원의 관계와도 다르다. 후자의 경우 어느 정도 관계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좀 더 큰 층위에서의 이야기이다. 가령,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적 관념에서 이루어지고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진짜 권력을 가져본 적 없고 그런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경우 내세울 수 있는 자부심이나 정체성이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생득적으로 부여되는 정체성으로 자신의 권력 구조를 형성시키길 바라는데, 피부색에 따른 우열로 인종차별을 가하며 권력 관계를 형성시키는 경우나 성별을 근거로 이성을 열등하고 나약하며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존재로 격하시키는 경우가 그러하고, 민족에 따라 우열을 설정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이것은 실질적 권력 관계는 아니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성향 내지는 믿음에 따른 행사이다.
대부분의 인종차별주의자, 성차별주의자와 같은 이들이 대부분 저학력, 저소득자인 이유는 그들이 단순히 못 배웠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보다 더 열등한 자들을 멸시하고 공격하며 자신의 사회적 층위에서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함에 가깝다.
이는 노비가 해방될 때 양반이 아니라 양민들이 반발했던 것과 유사한 이유이다. 물론 그들에게 노비가 자신들과 맞먹으려 든다는 계급 반역적 현상을 거부하는 것 역시 결코 작지 않은 이유일 테지만, 아래로 가해지는 계급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창구로 최하층민의 존재는 어떤 면에선 위안적일 지경이다. 또한 전근대적 사회엔 대체로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받이용 계급이 존재하곤 한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사회엔 명시적 계급이 존재하지 않고, 다양한 이해관계와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져 있으며 더 다각적이고 복합적인 사회가 되었다. 전근대적 관념은 사멸하지 않았으나 다른 형태와 밀도를 가지고 있고 다양한 이유로 차별과 혐오가 발생한다. 저소득 하층민들에게 그들이 가장 밑바닥이 아니며 가장 쓸모 없고 무가치하지 않은, 자존감과 정체성을 무너뜨리지 않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들이 표심으로서 정치적 향방을 흔들 수 있는 존재가 되었을 때, 그것이 미디어와 진짜 권력자에 의해 유도되고 조장되었다곤 해도, 그들은 비로소 권력을 가지게 된 것과 다름이 없으며, 적어도 그들의 요구나 한 표가 실제 결과로 증명되었을 때 그들은 그렇게 믿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다. 그들은 권력을 가져본 적도 없고, 행사해본 경험이 적다. 그들은 권력이 무엇이고 어떻게 써야 하며, 누구에게 줘야 하는지 등을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을 가지고 있을 뿐 그것을 쓰는 방법은 지나치게 원초적이다. 그들은 장기적이거나 생산적인 비전을 가진 게 아니고 그런 것을 구체적으로 요구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보다 더 우월했으면 하는 것이고, 그들이 낙인 찍은 적을 몰아내거나 싸워서 물리치거나, 죽여 없애는 것이다.
즉, 그들이 진짜 권력을 가지고도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 줄 몰라 써선 안 될 방식과 방향으로 그것을 휘두르는 것이고, 그렇게 하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그들이 선거에서 행사하는 권력, 민주적 요구는 차별적이고 혐오에 근거하고 있는 셈이다. 좌파 빨갱이를 몰아내야 한다는 둥, 흑인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둥, 이민자를 쫓아내야 한다는 둥, 여성의 사회적 진출보다 가정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는 등의 것 말이다.
민주주의에서 모든 국민은 국가의 권력을 가진 자들임에도 왜 그들은 권력을 가진 적 없으며, 그렇게 느낄까? 바로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에게 요구하는 이들 중 월 180만원을 벌며 대출 빚이 1억이 있는 가정의 고졸의 말보다 대기업 회장의 말이 더 강력하게 작용할 것이고, 지방 전문대 출신 직장인보다 인서울 재학생의 발언이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돈이 있고 권력이 있는 자들, 엘리트들은 그들의 돈과 권한, 인맥을 통해 사회적 분위기를 움직일 수 있다.
특정한 의제를 공론화 시킬 수도 있고, 묻을 수도 있고 물타기를 하며 바꿔치기를 감행할 수도 있다. 특정 직종의 이권을 보호할 수도 있고 위협할 수도 있다. 그들의 규모는 국가에서 n%에 불과하거나 그 이하일 것임에도 그들의 힘은 국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위 층위자는 언제나 권력 관계에서 을의 입장이었다. 누군가에 의해 고용이 되었고, 결코 높은 자리라 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타인의 존경과 존중을 받기에 어려운 위치에 있다. 설령 겉으로 그러한 대우를 요구하고, 그렇게 보인다 해도 스스로가 가장 잘 아는 법이다. 그 자신 또한 그랬을 테니까.
그렇기에 그들은 스스로 우월할만한 것을 찾아야만 한다. 그들은 어떠한 이유로든 사회적 성취와 성공에 실패 했으니, 내세울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을 것이기에 가진 것이라곤 태생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것. 스스로 노력하거나 얻어내지 않아도 가질 수 있는 생득적인 것이 공통적으로 선택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데, 인종, 민족, 그리고 성별이 그러하다.
왜 어떤 이들은 여혐 일베나 하고 어떤 이들은 남혐 페미나 하고 있을까? 그들의 사회적 신분과 경제 상황은 어떠할까? 일베는 그나마 더 넓은 범위의 사상을 다룬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외교안보적 영역에서 제나름의 세계관을 가진다. 그 세계관의 완성도와 논리성, 합리성이 어떠한지와 별개로 더 다양한 층위와 계층을 포함할 여지와 역량이 있다. 그러한 이유로 일베 류 가치관은 엘리트에게도 입맛에 맞는 논리와 주장을 형성하고, 사회 하층민에게는 더더욱 특별한 사상이 되어줄 수 있다.
엘리트들은 그들이 우월하며 더 많은 특혜를 받아야할 이유를 말하고, 보수진영엔 진보좌파를 탄압하고 권력을 확보해야할 정당성을 제공해주며, 하위 층위에겐 증오하고 혐오하여 우월한 기분을 느끼게 해줄 것 내지는 공격해도 좋을 적을 제공한다.
반면 페미에겐 성차별에서 기인하는 남성 혐오적 정서와 논리만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도 처참할 정도로 부족하고 비합리적이기에 정신병적 증상과 구분되지도 않는다. 그들의 소아병적 펨셀꼴값병은 그들의 사회적 위치와 경제적 상황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고, 설령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서조차 기묘한 사상적 중독을 제공한다.
이는 여성 특유의 여성 편향적 태도의 끼리끼리 문화에서 근거하는 바가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여성의 잘못이나 비난에는 같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편을 들어주고 맞서 싸워주는 것, 총체적으로는 여성들 사이에서만 작동하는 공감 능력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여성들이 겪어온 차별과 핍박에 따른 약자들의 단합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것은 40대 이상 세대에게나 통용될 것이고, 30대 초반 이전의 여성 세대에겐 정당성 없는 주장에 가깝다.
여튼, 이러한 맥락 속에서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상황에 모자람이 없다 하여도 남혐 하는 꼴페미가 될 수 있다. 혐오가 비합리적인 이유에서 기인한다 하더라도 기꺼이 혐오하는 자들은 언제든 어디든 존재할 수 있고, 뻔뻔한 가해자보다 모든 도덕적 정당성을 독점한 선한 피해자가 되고 싶어 하는 졸렬한 피해자도 있는 법이다.
그들은 남성에게 피해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피해를 받는 기분이 들기에 피해 망상에 빠진 것이고 누군지도 모를 여성이 남성에게 피해를 받았다고 그것이 자신인 것처럼 이입하여 타자와 자아의 구분을 하지 못한 채 가해자 전체 집단을 사악한 집단으로 매도하기를 즐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남성을 증오하고 혐오할 이유이고 명분일 뿐이지 실제로 그들 전체가 사악한 집단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도리어, 그들이 사악해야할 필요가 있고 그렇게 만들어서라도 공격하고 싶어 한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피해자로서 모든 도덕적 정당성을 독점하고 싶어서 말이다.
그렇게 PC, 페미 진영은 사회적 신분도, 경제 상황도 좋지 못하기에 적을 찾고 낙인 찍어서 혐오한다. 일베 류 가치관보다 더 좁은 범위의 사상을 다루기에 확장성은 떨어지고 합리성은 더더욱 부족하지만 크게 보아 단 두개 뿐인 성별을 기준으로 했기에 단순하고, 단순한 만큼 다른 이해관계를 떠나 이분법적인 구성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PC충 페미 세력은 일베보다 규모가 적다. 단지 더 시끄럽고 노골적으로 문제적일 뿐이다.
페미 진영이 가진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기에 그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하고자 한 근거가 바로 생득적으로 부여되는 성별이다. 여성 혐오적인 남자들의 성차별이 그들이 성취한 것도, 가진 것도 없는 것에서 기인하는 태도였다면 페미 진영의 남성 혐오적 성차별 역시 같은 이유에서 근거한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이성 관계에서도 못생기고 뚱뚱한 자신의 모습에 있어 관리를 하거나 다른 매력을 만들고 찾으려는 노력보단 먹고 자는 것만을 즐기던 이들이 자신의 못난 외모를 Do not need a prince라는 표어와 탈코르셋이라는 용어로 일부러 꾸미지 않는다는 둥 자기들 입맛에 맞는 명분을 찾은 것 뿐이지 본질은 게으르고 못생긴 것 뿐이다. 뛰어난 외모를 가진 자들은 타고난 만큼 대단한 노력을 평생 동안 하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페미 진영은 소아병적인 궤변을 일삼는 것 뿐이다. 그들이 연애 시장에서 왜 선택 받지 못하는 Femsel이 되었겠는가? 그들이 선택 받을만한 매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왜 더 나은 경제적 위치에 서지 못했을까? 군대를 가지 않아 최대 2년의 시간에 특혜를 받는데도 말이다. 다른 여자들에 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서라도 보는 것이 맞다.
모든 여성이 페미가 아닌 이유는 다른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서도 그들은 노력한만큼 성과를 얻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부한만큼 성적이 나와 대학을 가고, 노력한만큼 직장을 가져 일하며 돈을 번다. 그들은 사회 생활과 무난한 인간 관계를 유지하는데 에너지를 쏟지 혐오와 차별에 힘을 쏟지 않는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차별 정서나 공감대가 있을지언정, 페미라고 하긴 어렵다. 평범한 남성들도 어떤 영역이나 분야에 있어서 성별에 따른 차별적인 피해를 받거나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가지곤 있지만 그렇다 해서 여혐 일베충이 아닌 경우가 있듯이 말이다.
그러나 페미들은 그렇지 않다. 사회적으로 성취가 낮고, 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 단지 방송국, 유튜브, 기자 등 눈에 크게 띄는 이들이 많아서 착시 효과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것일 가능성도 있다. 그들이 직장이 있어야 하는 블라인드, 메이플 환불 및 탈퇴 등에서 보여주는 화력을 보면 간접적으로 그들의 수준이 드러난다. 하위에 속하는 자들이 생득적인 요소로 우월감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일베가 가해자 내지는 행사자로서의 권력을 추구한다면 페미는 피해자로서 가해의 정당성을 독점하는 것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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