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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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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7.18
    신의 사자, 잔 다르크 리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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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글은 작품의 내용과 결말을 품고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신다면 작품를 본 뒤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뤽 베송 감독의 1999년작 잔 다르크를 봤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실망이었습니다. 원래 기대했던 내용이나 연출과는 동 떨어진 영화였어요. 개인적으로 조금 더 신성하고, 고전적이나 압도적인 연출로 잔 다르크의 성인으로서의 면모, 초월적 카리스마의 존재감을 지닌 초인으로 그려질 줄 알았습니다만..


열어보니 신성하지도 않고, 카리스마도 없으며, 그저 미친여자처럼 보일 뿐이었습니다. 솔직히 그녀가 전장이 도착하고 난 뒤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러웠고, 그녀가 지휘했던 전투마저 투렐 공성전에선 처음엔 실패로 돌아갔죠. 맨 처음 그녀가 전투를 벌였을 때, 자기만 빼고 전투를 시작했다고 하며 뒤늦게 도착했을 때는 나름의 개연성이 있었습니다. 지휘관들은 그녀가 혼자 전장터로 나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을 것이며, 병사들은 신의 계시를 받은 사자가 나타났으니 사기가 오를 수 있었죠. 그리고 혼자 넘어가 다리를 열었으니 그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투렐 공성전때 처음엔 실패했고, 심지어 자기 자신도 크게 다쳤죠. 그녀가 약속했던 승리는 실패로 돌아갔고, 신이 보호해줬어야 할 사자는 화살에 맞았으며, 프랑스군은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죠. 그런데 다시 그녀가 싸우자고 하니 다시 무기를 들고 사기를 높히고 지휘관들도 곧바로 찬성하며 따랐습니다. 전번의 승리가 있었다곤 해도 이건 있을 수 없는 개연성이라고 봅니다.


분위기도 모른 채 지치고 부상당해 널브러져있던 병사들에게 뜬금없이 일어나 무기를 들고 싸우라는 신의 사자가 좋게 보일까요? 전혀 압도적인 카리스마 따위는 보이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또 개활지에서 영국군에게 물러나라고 하던 것도 이상했습니다. 자기 혼자 나와서 물러가라, 그렇지 않으면 영국군은 모두 죽어 여기 묻힐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물론 거의 빌다시피하는 어조로 했지만, 영국군 장군은 그냥 물렸죠. 뭐, 어쩌면 두번의 싸움에서의 패배로 잔 다르크를 이해는 안 돼지만, 뛰어난 지휘관으로 여기고 물러 났을 지도 모릅니다만, 연출을 보면 전혀 아니죠. 그녀의 말에 굽히고 후퇴한 것 뿐.


차라리 잔 다르크가 제발 싸우지 말자, 서로 도움되지 않는다, 서로 피를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등으로 평화와 상호이익을 이야기했다면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당시 잔 다르크는 전번의 승리에서 너무 큰 충격을 받았기에, 마치 미친 것처럼, 빌다시피 협박하며 물러가라고 했을 수도 있겠지만..



역사에서의 잔 다르크와 비교하자면, 먼저 가난한 농부는 아니었고 부유한 부농까진 아니지만 끼니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던 집안의 막내였죠. 영화와는 다르지만, 통설이라는 것도 있고 영화의 연출적 측면에서 넘어가는게 좋겠죠. 그녀는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하루에 3번이나 고해성사를 할 정도로 묘사되었으니 맞는 묘사라고 할 수 있겠죠.


잔 다르크가 샤를을 만날 때 샤를은 반신반의하며 시종에게 화려한 옷을 입히고 자기 자리에 앉게 하고, 자신은 초라한 옷을 입고 구석에 숨어서 잔을 지켜봤다고 했죠. 이때의 연출부터 솔직히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당당하고 여유로운, 그야말로 신의 사자로서의 풍모를 지닌 아름다운 소녀가 시종을 보고는, 당신은 왕이 아니다. 라고 하며 곧바로 고개를 돌려 살피고는 딱 왕의 얼굴과 마주치자 그에게 걸어가 무릎을 꿇고, 신께서 보낸 사자로서, 당신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같은 대사를 했다면 훨씬 멋졌겠지요.


첫 전투때도 마찬가집니다. 프랑스군이 패주하는 와중에 성에서 하얀 갑옷과 하얀 말, 그리고 자신의 깃발을 들고 달려오는 잔 다르크의 뒷모습에 아침해가 찬란하게 비추어 더욱 화려하고 신성함을 더해주며, 그렇게 잔 다르크를 얼빠진 얼굴로 바라보는 병사들 옆을 멋지게 지나친 뒤 과연 신의 사자다! 신께서 우리를 보호하실 것이다. 라는 생각을 심어주게 만들어 사기를 높혀 다시 전쟁터로 나가게 만드는 연출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보고,


오를레앙을 탈환한 잔 다르크는 잉글랜드에 충성서약을 하고 트루아 조약을 지지해서 프랑스 왕실의 의심을 사던 리슈몽 백작이 이끌던 군대와 만나 그에게서 니가 성녀라도 두렵지 않고 마녀라면 더 두렵지 않다. 라는 말을 들었지만, 영화에선 이 부분을 넣고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초인으로서의 풍모를 보여 그에게서 충성을 바치는 모습을 이끌어냈다면 잔 다르크를 한층 깊이있게 표현할 수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더불어 투렐 공성전 이후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전장의 참혹함에 얼이 빠져 있다 포로를 죽여 이빨을 뽑으려는 병사를 말리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모르는 여자로 표현하기 보다는 실제 잔 다르크의 일화인 가능하면 학살을 자제시키고 전장에서 죽어가거나 부상당한 영국군을 직접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며 위로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더 아름다웠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몰락 또한 좀 더 극적이고 인간중심의 정치적 요인을 풍부하게 표현했으면 좋았을 것 같았습니다. 프랑스 전역을 돌며 왕실에 돌아올 것을 호소했고, 이는 그럭저럭 먹혔지만, 그건은 성녀라는 이미지를 통한 것이므로 그녀의 말 한마디가 왕실을 위협할 수 있을 것이죠. 그러한 부분을 표현하며 그녀가 프랑스 왕실에 위험하고, 실질적으로 위험을 초래하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는 식으로 흘러가며 기승전 구도에서 결을 향해 흘러갔으면 좋았을 것이라 봅니다.


파리 공선전 때 파리 시민들이 잔을 향해 괴물, 마녀, 창녀 등으로 욕을 하며 허벅지에 화살을 맞고 이후 그녀가 무너질 것을 예감하게 하면서도, 생피에르르무티에를 함락시키곤 프랑스 병사들의 약탈을 엄하게 막고 주민을 지켜주며, 휴전기간 동안 부르주에서 빈민 구제하는, 여전히 성녀인 모습을 부각시키며 파리로 호송되어 이단심문관에게 재판을 받을 때의 모습을 역사에 나왔던 그대로 했으면 어땟을까 합니다.


잔 다르크가 이단 재판을 받을 때의 일화가 굉장히 재밌는데, 주교 이하 신학 전문가 70여 명의 이단심문단이 만들어져 잔 다르크의 혐의를 입증하거나 자백을 받아내려고 했는데, 그들 모두 실패했거든요. 머릿수도, 재판의 성립과 과정까지 당시 기준으로도 말이 안 되게 불공평했지만 일자무식한 시골 소녀인 잔 다르크에게 모두 말로서 졌다고 합니다.


예컨데, 검과 깃발 중에 어느 것이 더 좋냐는 질문에 사람을 죽이는 것을 피하기 싫어서 깃발을 들었으며, 한 번도 사람을 직접 죽인 적이 없다고 대답했으며,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있느냐는 질문엔 만약 제가 은총의 상태에 있지 않다면 하느님께서 제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만약 제가 은총을의 상태에 있다면 하느님께서 제게 계속해서 은총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라고 말했죠.


이는 은총을 받았다고 하면 함부로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수 없다고 몰고 갔을 것이고, 반대로 없다고 말한다면 저주에 들렸다고 몰아갈 의도로 파놓은 함정이지만 도리어 역공을 먹인 셈이었죠.


결국 잔 다르크는 남장 혐의를 추궁했는데, 그것은 성경에 위배되는 종교적 범죄였습니다. 잔 다르크는 그것을 순결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항변했지요.


이후 그녀를 바라는 백성들과 그녀를 차갑게 내치는 왕실과 그녀에게 어쩔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게 만드는(다시 남장을 하게 만드는) 등 철저하게 잔을 불리하고 죽음으로 몰아가다 끝끝내는 화형 직전까지 신의 이름을 부르짖다 인간의 이름으로 죽음을 이르게 하는 장면을 극적으로 뽑아냈다면 정말 멋진 영화가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실제 잔 다르크가 그랬듯, 죽기 직전에도 자신을 화형대로 몰아넣은 사람들을 용서한다고 말하면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반부는 꽤 괜찮았고, 영화 자체도 제가 기대했던 것들을 제외하고 좀 더 무신론적이고 인간적으로 본다면 괜찮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신은 없었고, 그녀는 무식하지만 용감했던 소녀였으며, 미친여자로서 전장을 이끌었고, 결국 자신의 환각과 환청을 신의 암시라 믿으며 신의 사자를 자칭했을 뿐이었던 것이죠.


실제로 영화를 본다면 그렇게 연출되어있습니다. 전장에선 미친 여자처럼 소리지르며 병사들에게 싸우라 성벽을 오르라 외치고, 말에 타 칼을 머리 위로 휘두르며, 무식한 여자처럼 피로해 지쳐 널브러진 병사들에게 일어나 무기를 들라고 소리지르며 명령하죠.


전투를 치르는 와중에도 환각을 보고 가끔은 소리를 지르며 제정신을 차리는, 그녀는 신의 사자가 아니라 미친 여자였던 겁니다. 이단 재판을 받으며 감옥에 갇혀 자신의 환상과 말싸움을 하는 장면은 가히 잔 다르크가 미쳤음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실제로 그녀가 성녀로서 전쟁을 이끌며 프랑스에 승리를 가져다줬지만, 전투 중에 그녀가 이미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음을 암시하는 피 흘리는 예수의 환상을 보았고, 감옥에서도 그녀는 환상을 보며 그녀의 행동과 주장이 반박당하고 조소당하며 신은 잔에게 무언가 시키지 않았으며, 암시 따위는 자기 멋대로 생각해낸 것들이고, 심지어 누군가를 죽이는데 즐거움까지 느꼇음을 깨닫게 하며 철저히 압박당하지요.


감옥에 갇혀 자신의 환상과 논쟁하고 화형에 처하는 장면은 가히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밀라 요보비치의 광기와 공포에 휩쌓인 연기를 정말 멋졌고, 확실히 볼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사실 신은 존재하지 않았고, 아니, 어쩌면 존재했지만 잔이 잘못 이해했거나 잔은 전혀 본 적도 없었을지 몰랐습니다. 무식하고 미친 여자였고 그녀가 전쟁을 이끌고 승리한 것은 그저 우연이었을지도 몰랐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신성함과 장엄함, 당당하고 압도적 카리스마를 지닌 초인으로서의 소녀가 아닌, 인간이었고 환상이었으며, 인간이었고, 정치로서 살해당한 소녀의 모습을 그려냈지요. 수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대했던 것과는 많지 다르지만, 다른 방향으로서 상당히 재밌는 영화지요. 역사에서의 잔 다르크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전쟁을 이끌고 승리를 얻어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정말 신의 사자였는지, 아니면 단지 과대망상이나 환각, 환청 따위를 듣던 정신병 환자였던지는 몰라도, 그녀의 활약은 인간의 정치 속에서 죽었지요. 이 작품은 이 문장의 표현대로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괜찮은 수작이라는 것을 인정해야겠군요. 좀 오래된 작품이지만(사실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지만..) 추천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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