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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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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에 해당되는 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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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의 시위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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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이 의심스러운 광화문의 폭도들.
  4. 2014.09.10
    비폭력적인 항거에 대한 범죄화
  5. 2014.08.20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안보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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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30 - [취미/이야기] - 아프리카의 시위 민주주의.

 

 

전국 장애인 차별 철폐연대에서 지하철 시위를 한다고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욕을 합니다. 그건 당연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근데 왜 시위를 사람들 불편하게 하냐며 욕하더군요. 근데 사실, 시위의 목적 중 하나가 바로 사람들 불편하게 하는 겁니다.

 

애초에 시위가 왜 발생하느냐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시위란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밖에 나가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겁니다. 어느 한 사람에게, 어떤 단체에게 요구했는데 들어주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요구하게 만드는 게 시위의 목적입니다. 시위는 내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요구이고,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달라는 요구예요. 내 말이 타당하다면 도와달라고요.

 

전장연의 과거 활동내역이 어떻든, 지금 그들이 주장하는 건 장애인 이동권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 처음 들어본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애초에 관심이 없었을테니까요.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들이 시위를 하는 겁니다. 장애인들은 어딘가로 이동하려면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품도 많이 드니까 이걸 좀 해결해달라고, 편의를 개선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애초에 정부에, 국가기관에 요구했는데도 들어주지 않으니까 밖에 나와서 사람들 불편하게 하는 거고요. 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냐고요? 그래야 들어주니까요. 불편하지 않았으면 누가 관심을 가져줍니까. 어디 산골짜기로 들어가서 나무와 개울 앞에서 목 터져라 소리질러봐야 기사에 한 줄 나옵니까? 거기서 누가 뭘 하고 있는지 세상은 몰라요.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거리로 나오고, 교통을 막고, 고성을 내고, 시민들을 불편하게 하는 겁니다. 그래야 관심을 가지거든요. 사람들의 역할은 저들이 우릴 불편하게 하니까 개새끼고 개새끼들은 몽둥이로 때려서 내쫓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왜 저런 시위를 하는 거고, 그들이 하는 말은 무엇이며, 왜 밖에 나와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시위를 하는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시위가 불법이고, 사람들 불편하게 하고, 피해를 발생시키는 건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절차가 신념보다 위에 있으면 안 되는 것처럼,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그들의 주장과 요구가 형해화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들이 하는 말이 옳다면 그 표현 방법이 잘못됐더라도 그에 대해 타당성을 인정해야 해요. 즉, 생각해봐야할 문제라는 겁니다.

 

 

시위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옳고 타당하다면 그에 대해 같이 요구해줘야 합니다. 그냥 그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기만 해도 되요. 인터넷에 한번 검색해보고, 관련 기사 하나 찾아서 보기만 해도 그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시민들의 관심과 그 이슈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결정권자들에게 눈에 보이는 수치로 다가오는 요구가 됩니다. 왜냐고요? 그게 민주주의니까요. 시민들이 요구하면, 그들은 요구에 부응해야 합니다. 그것이 타당하지 않기에 들어줄 수 없다면 그 또한 대의 민주주의고요.

 

 

건전한 민주사회라면 소수자, 약자의 시위에 대해 '왜'를 생각하고, 그것이 타당한가를 먼저 따져야 합니다. 우리가 관심이 없었던 사각지대에서 어떠한 불편과 문제가 있었는지를 알아야 하거든요. 절차와 제도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약자를 위해 기능하지 않을 때 저항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방식입니다.

장애인 단체가 불편을 야기하며 시위를 했을 때, 그것이 타당하다면 그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어 지적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올바르고 적절한 해법입니다. 그렇게 사회가 진보하는 거고요. 그렇지 않고 지적질, 훈수질, 비난질만 한다면 진보할 수 없어요.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없는데 그런 행동이 어떻게 정의롭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용률 낮은 교외 버스정류장이 불편하다고 의자 세워달라, 비를 피할 수 있게 지붕을 설치해달라. 시에 요구하면 실제로 들어줍니다. 제가 경험해본 거거든요. 장애인들이 이동하기 불편하다고 요구한다면 들어줄 수도 있어요. 불가능한 거 아닙니다.

 

그들이 시위하면서 출근도 제대로 못하겠고, 불편하고, 시끄럽다면 그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보고, 그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면 그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면 됩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자신이 요구하는 결과를 달성했음에도 세상이 끝날 때까지 시위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요. 시끄럽다고 쫓아내는 건 올바른 게 아닙니다. 그들이 왜 시위를 하는지를 따지는 게 옳고, 그들의 요구를 따지는 게 올바른 거죠.

 

그래서 시위자들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겁니다. 그래야 들어주고 관심 가져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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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ted.com/talks/zachariah_mampilly_how_protest_is_redefining_democracy_around_the_world?language=ko




예전에, 타 커뮤니티에서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누군가 선거 또한 하나의 세뇌라는 표현을 썼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당연히 세뇌라는 용어가 부정적으로 여겨졌고 반발했죠. 하지만 어떤 면에서 그 말은 틀린 말은 아니었다고도 봅니다. 기실, 보수 진영에서 시위와 집회를 부정적으로 보고, 실제로 그러한 것들이 억압 받으며, 불만이 있으면 힘을 가지던가 선거를 통해 해결하라는 화법을 사용하곤 했죠.


그것은 한국의 역사적 경험에 의한 일일 것이며, 그러한 맥락에서 선거와 투표만이 올바르고 정당하다는, 시위와 집회는 강경한 행위이고, 혼란과 폭력이 발생하기 쉬운 위험하거나 어찌됐든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 그런 것이다. 라는 편견이 선거 또한 세뇌이다. 라는 의미였지 싶습니다.


뭐, 사실 시위와 집회가 많았고, 지금도 이루어지는 일이며, 요 몇년 동안 이루어진 집회와 시위 문화는 꽤 성숙하다는 평가를 받는 역사적 경험이고 사례이죠.



그런 맥락에서 시위와 같은 직접적 행위, 비정규적 실천은 민주주의라는 것이 시행되고 작동하는, 혹은 그래야 하는 어떤 사회에서든 장려되야할 것입니다. 국가와 같은 비대한 집단에서 문제는 언제나 발생하고, 그 규모가 크든 작든 누군가는 피해를 보고, 이것들은 고쳐져야할 일들이죠. 그러나 그것을 선거와 같은 방식으로 요구한다면 더욱 비효율적이고 더 많은 비용을 야기할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더욱 적극적이어야 하고, 집회와 시위는 폭력적인 것도, 위험한 것도, 부정적인 것도 아닌, 집단화되어 다수의 의견을 표출하고, 그에 대해 많은 이들이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게 하며, 의제에 동참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조직화된 민주적 의견 표출 방식입니다.


이건 아주 이상한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며, 위험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러한 편견이나 인식이 은연 중에 남아 있다면, 그것은 그러한 활동을 반대하고 억압하고, 묵살하려는 세력이 만들어낸, 만들어냈던 의지에 오염된 것이죠. 



우리의 생각보다 시위와 같은 적극적 의견 표현 방식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관심가지지 못했던 아프리카에서도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프리카 또한 사람 사는 곳이고, 시간의 흐름만큼 변화하는 세상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더군요. 




많은 분들처럼 저도 종종 민주적인 절차에 불만을 느낍니다. 골치 아프고 복잡하죠. 때로는 비효율적입니다. 우리의 정치적인 지도자들은 평범한 이들의 관심사로부터 단절되어 있습니다. 몇 년에 한 번씩 있는 우리 일상의 과업과 동떨어져있는 지도자의 투표는 무의미하다고 많은 이들이 느낍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거부하기에 앞서 이것이 무엇인지를 상상해봅시다. 그리고 저는 아프리카의 운동가들이 시위를 중심에 두며 민주주의를 재정의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시위 민주주의"라 일컫는 것이죠.



00:53


국제 기관과 전문가들은 민주주의가 평범한 여러 정당의 선거 경쟁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투표함을 앞에 둔 엘리트들의 경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 민주주의는 우리가 매일 참여하는 무언가가 되어야만합니다. 제가 "시위 민주주의"라고 말할 때 저는 민주주의 활동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거스르게 됩니다. 민주주의를 선거로만 바라보는 것은 부적절하며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민주주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이를 거부해야만 합니다.



01:36


그렇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 점점 더 거리로 나아가고 있는 아프리카 사회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아프리카의 사회적 운동은 이런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정의하는데 앞장서 왔습니다. 이는 아프리카인들이 정치에 참여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더 효과적인 비폭력 행동을 위해 점점 더 거리로 나아가고 조직화된 폭력을 거부합니다.



02:12


저는 지난 이 십년의 대부분 동안 폭력적, 비폭력적인 아프리카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서는 알려진 거의 대부분의 정권들에 대항하기 위하여 젊은이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 친구 티아트입니다. 그는 세네갈 출신의 래퍼입니다. 세네갈의 큰 운동을 이끌었고 이 운동은 대통령이 세 번째 임기를 채우는 것을 성공적으로 막았습니다. 모로코에서 레소토에 이르기까지 뿌리 깊은 군주제를 저지하기 위해 젊은이들이 일어서고 있습니다. 이집트와 수단에서는 잔혹한 독재에 맞서고 있죠. 우간다와 에티오피아에서는 유사 민주주의의 탈을 쓴 강력한 군사국가에 대항하고 있습니다. 이 사진이 찍힌 남아프리카와 브룬디에서는 평범한 이들의 형편을 나아지게 하는데 기여하지 못한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에게 대항했죠. 대륙 전체에서 시위는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분입니다. 아프리카인들은 독재자에게 대항하기 위해 시위를 할 뿐 아니라 권력을 멈추게 할 때도 사용합니다. 어떤 면으로 아프리카인들은 민주주의 자체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 그 가치를 높이면서 말이죠.



03:26


아프리카의 시위에는 두 가지 큰 흐름이 있었고 현재 우리는 2005년에 시작된 세 번째의 물결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는 아프리카 대륙의 대부분에서 일어났던 아랍의 봄이라 불리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흐름은 1940년대와 1950년대 사이에 일어났고 아프리카의 탈식민지화를 이끌었습니다. 과메 은크루마가 이끈 가나의 연립정부가 영국의 지배를 무너뜨렸습니다. 전세계에 비폭력 운동의 본보기를 보여주면서 말이죠. 두 번째 물결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아프리카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가져온 긴축 정책에 맞서는 것이었죠. 이러한 시위들은 독재정권의 붕괴를 이끌었고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 복수 정당 선거를 도입했습니다.



04:13


현재 진행중인 세 번째 물결은 앞선 두 개의 물결의 결점을 보완합니다. 첫 번째 물결은 자유를 가져왔지만 민주주의를 가져오진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선거를 도입했지만 엘리트들을 위한 선거였죠. 세 번째 물결은 민주주의를 보통 사람들의 통치로 바꾸는 것과 가장 연관이 있습니다. 이는 세네갈의 '지긋지긋해' 운동과 부르키나 파소의 시민의 빗자루 운동 짐바브웨의 타자무카 콩고 민주공화국의 루차와 플림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정치적인 시스템에 도전하기 위해 인습적인 비정부기관이나 정당 밖으로 뻗어나가려는 운동들이 종종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루차의 프레드 바우마와 같은 똑똑한 젊은 활동가들이 구금되고 고문을 당했습니다. 국제사회의 항의는 거의 없었죠. 저희가 모든 데이터에서 보시다시피 목록은 계속됩니다. 2005년 이후 40개가 넘는 아프리카의 국가에서 규모가 큰 유명한 시위들이 있었습니다. 보시면 2011년 아랍의 봄이라 불리는 해에 실제로 이 광범위한 파장이 절정에 달합니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많은 시위들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우리는 튀니지와 이집트의 독재자들이 몰락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명한 시위들은 대통령이 세 번째 임기를 채우는 것을 막았죠. 세네갈, 말라위, 그리고 부르키나 파소에서요.



05:43


이 시위를 고조시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인구통계학적으로 아프리카는 가장 젊고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대륙입니다. 국민들과 지도자들의 나이 차도 가장 크죠. 아프리카는 엄청난 속도로 도시화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아프리카 국가들은 십 년이 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아시아의 투자의 영향을 받았죠. 그러나 이 부의 극히 일부만이 국민에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산업 분야의 정규직은 실질적으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생계를 겨우 꾸려나가는 이들에게 비정규직의 일자리만 남아있죠. 그 결과 불평등이 극심해지고 있으며 정치 지도자들은 그들보다 나이 어린 국민들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06:26


아프리카 외부에 있는 우리들에게 이런 이야기들은 친숙합니다. 극심화된 불평등 한 때, 진보된 사회의 전형이라 여겨졌던 높은 임금의 좋은 일자리들의 감소, 한때 평범한 이들의 목소리가 되어 주었던 시민 사회가 사라져가며 발생한 엘리트 정당의 몰락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하든 국제 경제와 관련된 외부 요소들이 여러분의 생활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가슴 철렁하는 느낌.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은 절약만을 외치며 무기력해 보입니다. 몇십 년간 공공재가 보이지 않는 단계까지 사라지는데도 말이죠. 동시에 그들은 우리의 고통을 강자가 아닌 약자에게 떠넘기며 배타적 민족주의에 굴복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미인들이나 서구 유럽인들이 생각하는 새로운 것이란 1970년대 이후 아프리카인들의 평범한 삶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오랜 기간동안 이런 상황에 저항했던 사람들보다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07:29


아프리카의 민주화 운동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첫 번째, 민주주의는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시작해야합니다. 민주주의를 선거로만 바라보는 것은 만연한 환멸감을 가져옵니다. 대신 평범한 이들이 민주주의적 삶의 중심이 되도록 힘써야합니다. 시위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합니다. 여러분의 나이, 성적 취향, 성별에 관계 없이 시민이든 외국인이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선거와는 반대로 시위는 엄격한 선거 주기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즉각적인 피드백의 시대에 즉각적인 형태의 조치를 더 많이 제공하죠.



08:08


둘째로, 시위는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이로 인해 강력해집니다. 시위는 논쟁을 벌이고 경쟁적인 과정이며 불확실한 행동에 의해 규정됩니다 때로는 명확한 메세지가 결여되어 있고 불완전한 기관에 의해 규정되죠. 이 역동성이 시위를 폭동이라고 폄하하거나 제한된 정치적 효용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기도합니다. 억압하기 쉽다고 생각하게 만들기도 하죠. 빈번히, 정부는 시위를 민주주의의 기본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대신, 이들의 메세지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기 위해 사회적인 운동을 폭력적으로 짓밟습니다.



08:53


세 번째, 제가 언급한 것처럼 시위는 새로운 정치적 상상이 생겨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시위는 선 밖을 색칠하는 작업입니다. 평범한 이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느끼는 게임의 규칙들을 새로 만드는 방법이죠. 아프리카의 많은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일생동안 단 한 명의 지배자가 통치하는 사회에서 자라왔어요. 시위는 새로운 가능성이 생겨나는 공간입니다. 젊은이들이 그들이 지닌 힘을 발견하게 되면서요.



09:24


제 친구인 린다 마사리라의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다섯 아이를 홀로 키우는 엄마죠. 그녀는 짐바브웨의 무가베 정권에 대항하는 시위를 이끌고 있어요. 두들겨 맞고, 체포되고, 괴롭힘을 당했죠. 하지만 견뎠어요. 몇 달 전 제게 말했던 것처럼, 시위는 그녀에게 의미와 방향성을 주기 때문이죠. 자신에게 닥칠 역경을 알고 있지만 린다는 굴하지 않습니다.



09:47


린다나 아프리카의 다른 젊은 활동가들처럼 우리 모두는 민주주의를 선거와 정당 그 이상으로 재정의하기 위해 노력해야합니다. 민주주의는 창의적인 과정이며 시위는 늘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이상의 정치적인 상상력을 확장시키기 위한 매개체가 되어 왔습니다.



10:08


(스와힐리어) 대단히 고맙습니다.



10:09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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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연합 “일당 운운하는 자들 고소”


어버이연합은 자신들이 일당 받고 시위 한다고 이런 말을 한 적 있습니다.

“일당 15만원”, 보수단체 누리집에 시위대 모집글…“우리 입장 아냐”
“어버이연합 집회 일당 2만원에 수수료 10% 뗐다”
24일 검찰 출석 앞둔 추선희 "시민단체가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게 무슨 문제냐"
[단독] 어버이연합 전직 간부, 탈북자와 이상한 돈놀이
[단독] 어버이연합, 세월호 반대 집회에 알바 1200명 동원 확인
보훈처 급조 '님을~'합창단 일부 '일당 5만원 알바'(종합)


하지만 팩트는 이랬죠.



왜 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냐면, 제목에서 말하고 있듯이, 박사모와 같은 보수단체들이 폭도 짓을 하고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시민에게 침 뱉은 보수단체 회원..'과격한 행진' 눈살

보수단체 집회에서 일부 태극기 버려져 논란


이번 촛불집회는 굉장히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었죠. 싸워야할 대상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에 대해 질서 있는 모습으로 집회를 열며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고 쓰레기도 스스로 치우며 훈훈한 분위기로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잘못을 지적하는 모습은 굉장히 대단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하지만 그런 촛불집회를 바람 불면 꺼질 것들이며 종북이니 불순세력이니 하는 자들은 정작 몇 천, 몇 만 모이지도 못한 주제에 시민에게 침을 뱉고, 욕하고 기사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마이크를 빼앗으며 행패를 부리는 폭력시위를 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극기를 함부로 버리고 시위에 나온 고등학생을 폄하하며 유권자도 아닌 것들이라고 깍아내리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보수단체는 현재 폭력시위를 하는 폭도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거죠. 대한민국 국기를 버리고 국민을 편가르고 욕하는 불순분자 폭도라는 겁니다. 그들이 이제까지 말했듯, 대한민국에 피해를 주고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는 그들의 사상을 의심스럽게 하는 데, 자유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헌법을 무시하고 파괴하며 안보를 위협하는 것이 바로 보수단체라는 집단이라는 겁니다.


그런 보수단체들에게 돈을 대주고 일당으로 어용 관제시위를 조직하는 자들이 보수라는 세력인데, 어버이연합이나 박사모에 돈을 대주는 자들을 캐보면 알 수 있는 일이죠. 전경련, 보훈처, 국정원, 청와대 등에서 어버이연합을 비롯한 여러 단체에 뒷돈을 대줬다는 증거는 간단한 검색으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실입니다.


이번 폭도집단인 박사모 또한 일당을 받았다는 의혹이 존재하고, 그들의 속성을 생각해보면 높은 확률로 돈을 받고 시위를 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봅니다. 돈 받고 하는 일이라 그리들 열심히인 거죠. 선동전을 위한 어용 집단들에 불과합니다.


이를 다르게 말하자면, 그들을 조종하고 그들에게 뒷돈을 대주는 집단은 곧 사상이 의심스러운 불순분자이자 반헌집단이라는 겁니다. 즉,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와 헌법을 파괴하고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안보를 위협하며 혼란을 발생시키기 위해 보수단체라는 이름의 집단들에게 공작금을 지급하여 그들 폭도를 이용하여 폭력시위를 발생시켰다는 거지요.


따라서 이들과 연결된 모든 집단은 그 사상이 의심스럽고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자들도 불순분자이자 잠재적 폭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안보와 자유 민주주의 및 헌법을 파괴하고 위협하는 존재를 우리의 적인 북한에 도움이 되는 자들이라고 할 경우, 그들을 종북이라고 할 수 있는 데, 지금 광화문에서 보수단체라는 이름으로 폭도짓을 하고 있는 이들은 아주 정확히 종북이라는 범위에 속할 수 있는 자들이라는 것이고 그들에게 동조하는 자들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이 아이러니함은 억지나 비약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완성되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즉, 자신들은 애국자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사실은 종북 빨갱이에 가장 가까운 자들이라는 거죠. 그들의 낮은 지성과 비상식적 가치관과 사고력을 생각해보면 절대 인정하지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할 사실이겠지만 말입니다.


전부터 꾸준히 말했듯이, 대한민국을 망치는 건 보수입니다. 이전의 여러 글들에서 지적하고 비판하고 증명했듯이 말입니다. 당장 이번 사건 자체가 박근혜와 새누리당이라는 거악집단과 그들을 지지했던 보수국민들에 의해 발생한 안보 및 자유 민주주의 파괴 사건이니까요. 이런 모든 사실들이 밝혀지고 지적 받지만 그런다해도 인정하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않고 반성하지도 않을 개돼지 가축들이라는 게 참으로 슬픈 현실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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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포터 (Will Potter): 비폭력적 항거를 범죄화하는 충격적인 움직임

2002년 수사전문 기자이자 TED Fellow 인 윌 포터는 시카고드리뷴에 자신이 통상적으로 다루는 총격과 살인에 관련한 영역에서 벗어난 기사를 쓰기로 한다. 통물 실험에 반대하는 지역 운동에 도움을 주러갔다. "저는 그것이 뭔가 긍정적인 일을 하는 확실한 길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그는 체포되었고, 그로 인해 그는 평화적인 항의가 테러리즘으로 누명을 쓰는 세계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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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엔 아주 고약한 인식이 많습니다. 그 중 하나는 시위나 집회 따위를 사회적 범죄 따위로 여기는 것이죠.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오늘날에도 분명한 문제 중 하나이고 말입니다. 이는 시위나 집회가 어떠한 목적, 성격, 그리고 그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피해자가 억울함을 풀기 위해 시위, 집회를 할 때마다 그것에 빨갱이, 반국가, 반정부, 선동과 같은 단어를 써붙히며 악마화하고 범죄화하여 소위 나쁜 것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고용주가 약속한 돈을 주지 않아서, 노동환경이 무자비할 정도로 가혹하기 때문에 등등.. 피해자가 정당한 이의를 제기하는데 그러기엔 상대하는 자의 힘이 너무 세고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의지 또한 없으니 시위를 하고 집회를 하는 겁니다. 기업을 상대로, 정부를 상대로, 그리고 우리가 그러하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그런데 수십년전 우리나라는 그런 것을 허용하지 않았죠. 모든 시위와 집회, 데모는 모조리 나쁜 것이고, 국가와 정부에 반하는 것으로 나라를 북한에 들어 바치기 위한 것이라고, 빨갱이들이라고, 빨갱이에게 '선동'당했다고 '선동'했지요. 신문에서 뉴스에서 나라에서 시위니 뭐니 하는 것들은 죄다 나쁜 것이라 말하며 몽둥이 들고 후려치니 모르는 사람은 그냥 나쁜 것인갑따.. 하면서 그냥 그렇게 알게 되었죠.

문제는, 이게 아직도 통한다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비단 나이든 어르신이 아닌 10대 20대 젊은이도 주류 언론이 말하는 대로 그대로 이해하고 다른 이야기는 모조리 조작이고 왜곡이고 선동이라 여깁니다. 모든 시위는 나쁜 것이고 모든 집회도 나쁜 것이죠. 물론 '우덜'이 하는 시위와 집회는 좋은 겁니다. 일베의 광화문 폭식(풉)투쟁만 봐도 그렇지요.

사실, 시위나 집회 같은 것들은 사회에 순기능을 하는 활동입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고, 건전하고 올바른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 더더욱 필요한 운동들이죠. 그에 대한 내용은 위쪽 링크의 글을 참고하길 바랍니다.


위 동영상의 윌 포터는 동물 실험에 반대하는 지역운동에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FBI가 찾아왔고, 그렇게 테러리스트 딱지가 붙었지요.

그가 했던 시위는 비폭력적인 항거였습니다. 동물실험을 반대한다는 요지의 시위였어요. 당연히 폭동 또한 아니었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범죄화했습니다. 그에게 스파이 행위를 강요했고 테러리즘의 누명을 씌웠지요. 우리나라에선 너무나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실제로 과거 운동권에서 그렇게 하라고 강요받거나 강요한 사례가 있고, 아예 공부는 잘하지만 운동권에서 멀었던 학생을 운동권에 집어넣고 조종하거나, 정보를 캐내려는 일도 많았죠. 그렇게 졸업하고 나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앞으로 사는게 좀 더 편해졌고요.

그리고 지금도 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시위와 집회를 범죄화하고 있습니다. 악마화하고 있죠. 세월호 사건에 대한 평화적인 집회도, 정부에 불만을 가지고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해, 국민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알리기 위한 광화문 시위를 범죄화하고 잘못된 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러한 집회와 시위를 강제해산시키지요. 평화롭고 올바른 목적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을 죄인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미신고집회 해산명령' 남발하는 경찰.. 대법 판결도 무시
http://media.daum.net/society/affair/newsview?newsid=20140904060109933


이는 시민들의 의지와 말할 권리를 억압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을 끊고 입 닥치라고 해산시킨 꼴이니까요. 아래의 기사를 보시면, 광장은 시민의 것이라고 합니다. 광화문에서 집회를 하는 사람들은 시민이 아니던가요? 일본 우익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은 '비국민'인겁니까?

말할 권리 막나 vs 광장은 시민의 것…與 광화문집회 금지 추진 논란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40905000694&md=20140908083733_BK

시위와 집회는 명백히 보장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국가가 나서서 그것을 보장하고 있지 않죠. 오히려 억압하고, 잘못된 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나팔수가 되어버린 주류언론은 그들의 권력과 돈에 굴복해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 듣고자 하는 말만 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을 선동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옳은 것을 잘못된 것이라 알게 되고 그렇게 말하게 되죠. 이유는 모르지만, 시위와 집회는 나쁜 것이다. 이러이러한 이유로 시위와 집회는 나쁜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정말 나쁜 것일까요? 그럴리가 있나, 저 위의 링크를 보면 왜 그렇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국가는 선박감시라는 의무를 소홀히 했고 그로 인해 기업은 선박을 개판으로 운영했습니다. 그리곤 수백명이 죽었죠. 그리고는 해경과 기업이 짜고 증거를 은닉, 훼손하려고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도 사람보다 돈을 먼저 걱정했고 그렇게 제대로된 대처조차 못해 죽었습니다. 이는 명백한 정부가 국민을 대하는 의무를 방기한 것이고 국민을 우롱한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더 당당하던가요? 정말 잘못한 이들은 어깨 당당히 펴고 고개 뻣뻣히 들고 있는데, 그들 때문에 자식이 죽고 친구가 죽은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떨궜습니다.

이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그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면, 길가다 뺨 맞으면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뺨 때린 놈은 당당히 어깨를 펴고 고개를 뻣뻣히 들어야죠. 잘했으니까. 맞은 놈은 잘못했고. 이유와 잘잘못 따위는 필요없고 맞은 놈이 맞았으니 잘못한 겁니다. 그러니 고개를 떨구겠죠.


정당히 말을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해선 안 됩니다. 정당히 말을 할 권리가 보장되어있고, 이건 '너' 따위가 침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말을 했다면 그 책임을 제대로 져야 합니다. 애새끼마냥 회피하려들지 말고 말이지요. 시위와 집회는 정당하고 옳으며, 오히려 권장되어야 합니다. 말을 해도 안 들어쳐먹으니 시위와 집회를 하는 것인데, 이조차 막는다면 애초에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없으니 아주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것이죠. 그리고 실제로도 그럽니다. 지금도 그러고 있고.


지금 이 나라와 이 사회는 명백히 잘못되었습니다. 그걸 말하는 게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면, 자기 스스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게 맞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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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4 - [취미/이야기] - 적절한 안보관이란 무엇일까.


예전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안보는 북한만을 상대해서는 안 됩니다.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또한 상대하며 따져야할 것이죠. 사실상 북한은 우리에게 실질적인 위협인 동시에, 실질적인 위협이 아닙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실제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상대는 필히 북한일 것이지만, 동시에 북한과의 전쟁은 그 실현성이 그닥 크지 않습니다. 북한또한 한국과의 전쟁에서 확실하게 지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라고 체제를 위한 선동과 선전을 할 뿐이지.


그들의 군사력? 볼품없습니다. 최전방 군인들이 남한 사람들이 망원경으로 쳐다보든 말든 염소치고 낮잠자고 농사짓고.. 이게 군인입니까? 농민이지. 아무리 빠졌다 빠졌다해도 북한만큼 빠지진 않았습니다. 북한의 병기들? 노후화되고 기름조차 부족해서 평소에는 굴리지도 않죠. 그들의 홍보영상은 말 그대로 홍보영상. 그대로 믿을 것도 못 됩니다. 심지어 나무에 페인트칠 해서 미사일인 척 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인데 말이죠.


1인당 교탄소모량도 볼만 합니다. 한 명당 5발도 채 안 쏴요. 1년에. 그것도 실제론 또 모를 일이죠. 1년에 한발도 안 쏠지도 모릅니다. 똥군기는 한국보다 심하고 막장 동네에요. 핵무기? 그거 미사일에 탑재할 정도로 개발 못했습니다. 소형화를 못해서 현 시점에선 평양자폭용 내지는 핵지뢰 말고는 쓸모가 없어요. 그러니까, 서울에 핵미사일.. 이딴거 걱정 안 해도 된다 이 소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우리의 주적! 전쟁나면 다 죽는다! 북한이 남한을 위협 어쩌고 하는 개소리는, 솔까 위기심만 고취시켜 내부의 불만을 억제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어디서 많이 봤죠? 북한이 남한, 미국을 비난하며 내부 체제를 공고히하는 것.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안보관은 이제 안 쪽을 향해야 합니다. 북한을 필요 이상으로 악마화시켜 가르치고, 북한을 그 무엇보다 위험하고 무서운 존재로서 위기심을 불어 일으키는 선동이 잘못이라는 겁니다. 또한 간부가 군기밀을 팔아치우는 안보 그 자체를 위협하는 범죄를 감시하고 막아야 합니다.


매일 북한 타령하며 그들에게 협력하는 세력을 만들어내어 정권과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불만을 토로하는 이를 묵살시키려 하면 안 됩니다. 북한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건에 종북이니 선동이니 같은 주장은 정신병적인 겁니다. 까놓고 말해서, 세월호 유족들이 진상조사하라는며 시위하고 청와대가겠다는 것이 어떻게 종북이며, 월급달라고, 비인간적인 업무환경 개선 좀 해달라고 시위하고 파업하는 것이 어떻게 종북인지 모르겠습니다.


국가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선 그러한 내부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적을 만들어내어 목소리를 닫게 하고 현재의 상황에 안주하며 문제를 회피하기만 해서는 그저 고름덩어리를 가려두는 것에 불과합니다. 고름은 더 썩고 커져 결국 더 큰 문제를 낳게 됩니다. 그러니 빨리 도려내야하지요. 그리고 그 고름은 절대 그것을 호소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안보란 국가 안전보장입니다. 단지 군사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월호와 같은 사건을 일으킨 원인들, 국가가 선박에 대한 감시를 허술히하였고 그 덕에 온갖 비리를 저지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한국 사회 어디에서든 일어납니다. 적당히 대충대충, 좋은게 좋은 거다 하면서 넘어가는 것.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지적되었던 문제점들이 자신들도 어딘가에서 했던 것과 닮지 않았던가요?


국가 안보에 있어서 세월호 사건은 그 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항상 북한이 어쩌고 노래를 부르지만 정작 이러한 자국민 보호와 안전보장에는 전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오히려 가해자였습니다. 아이들을 죽게한게 단지 유병언만일까요? 선박에 대한 감시,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정부의 책임은 어디갔습니까? 증발했죠. 유병언 일가를 제외한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으니.



국가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재벌도, 정치인도 아닌 대다수의 국민. 그러한 국민들이 부당한 이유로 해고당하거나, 월급을 적게 받거나, 비인간적인 업무 환경에서 일할 것을 강요 받았음을 이유로 그것을 개선하라는 정당한 요구, 적어도 대화를 해봐야하는 것들에 대해 철저한 무시와 폭력으로 일관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위험에 밀어넣고, 간접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행위이죠.


사회나 정부에 대한 불만을 가진 시위와 집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촛불집회는 정부에 불만을 가진 일반 시민들의 의지를 표명하는 것입니다. 그 자체로 어떠한 압력도 주지 못하지만, 국민의 뜻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리기는 하죠. 정부는 언제나 국민과 대화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국가운영을 할 공산이 너무 크죠.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잘못이니까.


그런 국민들이 규탄하고자 하는 것들이 무엇일까요? 광우병이 대표적이긴 하나 그건 확실히 병크적인 사건이었고, 최근엔 청와대-국정원-새누리당-군 등이 얽힌 선거조작사건이죠. 선거조작이라.. 말이 선거조작이지, 민주주의와 헌법 그 자체를 파괴하는 엄연한 범죄행위입니다.


일개 개인이 아니라, 국가조직 그 자체가 불법을 저지르며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안보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요? 논란이 있을 것도 아니고, 악법도 아니며, 분명하게 정의를 세우는 법을 어기는 주제에 안보에 도움이 되기는요. 따지자면 북한보다 더 치명적이고 크게 국가를 훼손하고 파괴하는 행위이죠. 북한보다 위험한 겁니다 이건.


SNS를 조작하며 공영방송 KBS에 윗선이 개입하질 않나, 재벌과 대기업에겐 감세, 일반 대중에겐 과세, 하지 말라던 4대강에 수십조를 쏟아 붓고 결국 그 압도적인 부작용을 껴안고 관리비용 등을 모조리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빼가죠. 그런 주제에 불만과 문제기를 하면 언제나 구시대적인 선동으로 매도합니다. 저 놈은 빨갱이여! 종북이야! 반국가단체! 선동, 세뇌당했다! 배후세력이 있을 것이다!


진정 국가안보를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국가안보를 해치고 있는 '진정한 적'이 누군지, 똑똑히 봐야합니다. 언제나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위험한 법입니다. 내부의 불만과 문제제기를 묵살하고 외부의 적에게 그 불만을 향하게 하는, 그렇게 내부를 썩게 만드는 진짜 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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