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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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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22.04.21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과 방어적 민주주의의 개념. 보호받아야할 탄압자의 구분. 2
  2. 2015.11.18
    어째서 보수는 유체이탈 화법을 쓸까?
  3. 2013.12.12
    어째서 기업은 시장 자유주의를 좋아하는가. 2
  4. 2013.05.22
    '나는 자유주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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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치나 철학 이론들도 사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실패했을 때는 드러나지 않을 수 있었던 결함들과 약점들이 성공했을 때에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대중 정부가 단지 꿈으로 생각되거나 옛날옛적의 까마득한 과거에 존재했던 것으로 책에서만 읽을 수 있는 그런 일이었을 때에는, 국민이 그들 자신을 지배하는 그들의 권력을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은 자명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한 생각은 프랑스 혁명 같은 일시적인 일탈들에 의해서도 별로 동요되지 않았다. - 그런 일탈 중에서 최악의 것은 대중적인 제도들의 지속적인 활동이 아니라 소수의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발작적으로 일어나서 왕이나 귀족에 의한 전제정치를 와해시키고 권력을 장학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하나의 민주 공화국이 지구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서, 국가들의 공동체에서 가장 강력한 구성원들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선거를 통해 선출되고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정부는 국민이라는 기존의 위대한 존재의 관찰과 비판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제는 "자치"라든가 "국민 자신을 지배하는 국민의 권력"이라는 문구들은 사안의 실상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권력을 행사하는 "국민"이 그 권력 행사의 대상인 국민과 언제나 동일한 것도 아니었고, "자치"라는 것도 각자가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에 의해 지배를 받았다. 또한 국민의 의지라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국민 중에서 가장 수가 많거나 가장 능동적인 집단, 즉 다수파, 또는 다수파로 인정받는 게 성공한 사람들의 의지를 의미한다. 따라서 국민은 그들 중의 일부를 압제하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밖의 다른 권력 남용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권력 남용에 대해서도 예방조치가 필요하다.

따라서 집권자가 공동체, 즉 공동체 내에서 가장 힘 있는 집단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정착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개개인에 대한 정부의 권력을 제한하는 것은 그 중요성을 조금도 잃지 않는다. 이러한 사고는 사상가들의 지성에도, 그리고 유럽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자신들의 현실적이거나 가설적인 이해관계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저 중요한 계급들의 취향에도 똑같이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져서 어려움 없이 자리를 잡아왔다. 그리고 이제는 정치 사상 속에서 "다수파의 폭정"은 사회가 늘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악들 중의 하나로 여겨지는 것이 일반화 되었다.

      -"다수파의 폭정"(The Tyranny of the majority)은 프랑스의 정치학자이자 역사가인 토크빌이 자신의 저서인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한 말이다. 그는 영국에서 자유주의자들과 교류하였고, 밀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다수파의 폭적은 그 밖의 다른 폭정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에 공권력의 행사를 통해 행해졌고,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은 그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이 문제를 깊이 숙고한 사람들은 사회 자체가 폭군이 되었을 때, 즉 사회가 자신의 구성원인 개개인들에게 집단적으로 폭정을 행할 때, 그 폭정의 수단은 정치인들의 손을 빌려 행하는 것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는 자기 자신의 명령들을 집행할 수 있고, 실제로 집행한다.

그런데 사회가 올바르지 않고 잘못된 명령들, 또는 자신이 개입해서는 안 되는 일들과 관련된 명령들을 내리는 경우에는, 그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사회의 폭정은 온갖 종류의 정치적 압제보다 더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것이 되고 만다. 그 폭정은 통상적으로 정치적 압제에서와는 달리 극단적인 형벌들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개개인의 삶의 모든 영역에 아주 깊이 파고들어서 개인의 영혼 자체를 예속시킴으로써,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거의 남겨놓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적 자유의 필연성.
따라서 공권력의 폭정을 막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배적인 여론이나 정서의 폭정도 막아야 한다. 또한 사회가 공격적인 처벌 이외의 다른 수단들을 사용해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념들과 실천들을 그들의 행위규범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함으로써, 자신의 방식과 부합하지 않는 개성(individuality)이 발전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능하면 형성되는 것조차 차단하고,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들의 인격을 사회가 정한 방식으로 만들어나가도록 강제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 집단의 의사가 개개인의 독립성에 합법적으로 간섭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규정해서 넘어서지 못하게 하는 것도, 정치적으로 독재를 막는 것만큼이나 인간다움 삶을 살기 위한 적절한 여건을 조성하는 데 필수불가결하다.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중요한 부분은 끝자락의 다수파의 폭정부터 시작합니다. 이번 글에선 이 부분과 함께 방어적 민주주의 개념을 끌고와서 밀의 자유주의 사상을 짧게 소개하고 그 이후 약 백년 뒤 나치를 겪은 이후에 구체화되어 나타난 방어적 민주주의로 보완을 시켜 밀의 자유론은 중요한 고전이지만 그것을 진리로 삼을 수는 없고 이후 발전된 자유에 대한 논의 역시 수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쓰고자 합니다.

 

왜 일베 류 극단주의는 보호받지 말아야 하고, 쫓아내야 하며, 그렇지 않은 주장과 자유의 주체는 그들 극단주의자들을 공격하면서도 보호 받아야 하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이 글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물론 제 인문학, 철학에 대한 이해도는 아마 채 학부생 수준도 되지 않을 것이기에 그 깊이도 얕고 얕은 만큼 많은 비판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감안하고 봐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저기서 윤 정부의 민주정 파괴를 함의하는 움직임과 발언들, 그리고 그러한 정부를 지지하는 집단이 기세등등한 것을 보면서 마침 떠오른 밀의 자유론 내용을 먼저 소개했습니다.

 

밀은 국가, 정부로 대표되는 공권력의 폭정이 가져오는 위험성에 대해서 말했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지배적인 여론과 정서의 폭정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일베를 접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소수로 여겼습니다. 저는 그것이 금방 극우보수 정서의 중심 내지는 핵심을 차지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일베가 있기 이전부터 그러한 사상과 가치관을 가진 이들을 보아왔기 때문이고, 그러한 세계관을 가진 이들이 모여 디씨에서 어떠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을 보았고, 그것이 일베라는 이름으로 구체화된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일베 류 가치관이 세계관으로 자리잡은 것이 이 시대의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베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 말할 것이고, 실제 인간관계에서 그런 사람을 보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보수우파임에도 일베를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일베를 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만큼 일베를 하는 사람 역시 많은 것이 사실이고, 실제 인간관계에서 일베임을 숨기고 평범함을 연기하거나 관리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실제 일베 사이트를 하느냐 하는 피상적인 조건보다 일베 류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핵심이고요. 

 

그렇기에, 일베 류 가치관은 이미 극우보수 세력의 핵심 가치관이거나, 최소한 그 중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일베 류 세계관은 70~90년대 극우보수 가치관의 변형/발전/현대적 적응의 결과이지 없던 것이 생겼거나 이식된 개념이 아닙니다. 일베 탄생 이전부터 호남에 대한 멸시와 진보좌파에 대한 혐오, 자국민에 대한 차별과 공격을 애국이라 착각하고 그 근거를 합리, 합리적인 것라고 풀이하는 등의 행태는 결코 특별한 게 아니었습니다.

 

 

"공화당원으로서의 당신 생각도 얘기할 각오가 돼 있어?"
"공화당원인게 무슨 소아마비라도 걸린듯이 말하는군."

 

미드 뉴스룸에서 나온 대사입니다. 주인공 윌 매커보이는 자신의 여자와 바람을 피운 기자를 자신의 스튜디오로 불러와 토론회 준비 중인 자신과 그 팀원들을 관찰하고 기사를 쓸 수 있게 해주면서 나온 대사입니다.

 

어떤 정당이 바보 같은 행위를 한다면 그 지지자들 역시 창피할 것이고 지지에 회의가 들 것입니다. 당시 공화당은 빠르게 극우화, 정확히는 티파티화 되어 갔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비판과 지적이 있었지만 동시에 그들에 영합하려는 움직임 역시도 거대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각본가인 애런 소킨은 그것을 공화당원 캐릭터의 이름으로 이렇게 비꼰 것이죠. 사실, 한국에서도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지금도 찾아볼 수 있는 겁니다. 저건 드라마이기에 아주 점잖게 표현된 거고요.

 

실제 한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나옵니다.

 

"대깨문이 아직도 있네?"

 

마치 문재인 지지가 비상식적이고, 부끄러워해야할 것이고 창피해해야하는 것처럼 표현합니다. 마치 내가 문재인 지지자면 조롱을 받는 것이 당연하고 조롱 받아야 하는 행위인 것처럼요. 이는 그 사람의 정신, 이념에 대한 조롱이자 망신주기입니다. 망신을 주고 부끄럽게 만들어서 그들이 정치적 견해를 자유롭게 밝히는 걸 불가능하게 입을 막는 겁니다. 마치 장애인들이 자신의 장애 부위를 남들에게 보이기 부끄러워하는 것처럼요. 혹은 자신의 반사회적 가치관(Ex.소아성애 등)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요. 

 

 

"사회가 공격적인 처벌 이외의 다른 수단들을 사용해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념들과 실천들을 그들의 행위규범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함으로써, 자신의 방식과 부합하지 않는 개성(individuality)이 발전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능하면 형성되는 것조차 차단하고,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들의 인격을 사회가 정한 방식으로 만들어나가도록 강제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

 

일베 류 가치관을 지닌 이들은 민주당과 관계된 것에 대해 대깨문, 형보수지 등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며 공개적으로 린치를 가하는 등 공격합니다. 그들이 어떠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불허하고 그들이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들어 공개적이고 많은 조회가 보장된 공간 내에서 자신들의 가치관에 반하거나 맞지 않는 사상이 등장하는 것을 봉쇄합니다. 즉, 그들은 동집단의 것과 맞지 않는 개성을 배제하려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어찌 되었든, 공격받고 린치 당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침묵하거나 그들의 말에 수동적인 동조를 해야만 합니다. 특히 어떤 공동의 목적이 있을 때는 지금의 상황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는 특히 협동과 경쟁이 필요한 게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물론, 같은 원리가 작동하는 직장생활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인터넷의 공개적인 장소에서 점차 일베적 가치관을 가진 이들이 다수의 목소리를 점하고 그렇지 않은 소수의 목소리를 공격하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상입니다. 특히 이는 웹툰 댓글창 같은 비정치적인 공간이면서도 여러 세대가 모이는 장소(주로 젊은 세대 위주)에서도 확인할 수 있죠.

 

 

일베는 인터넷을 하는 이들이, 어떠한 활동공간과 재미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꽤 훌륭한 장소가 되어주었고, 유머 자료에 섞인 정치색과 사상적 용어들을 통해 10대~20대 사용자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고, 그들은 10년 동안 성장하고, 그러한 사상을 재생산, 전파하면서 더 넓은 영역을 차지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일베적 가치관은 세대와 거의 무관하게 동일한 의식을 공유하게 해줬고 다르게 말해 이것은 극우보수라는 진영 내에서는 세대에 얽매이지 않은 광범위한 가치관으로 기능함을 말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극우보수의 가치관/세계관의 핵심을 차지했다는 말입니다.

 

이제 다시 올라가 위에 따로 인용한 존의 말을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다면 개인은 그것이 아무리 위험한 사상이라도 자유롭게 가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네오나치, 파시스트, 제국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역사 수정주의자, 종교적 원리주의자 등 사회를 위험하게 할 수 있고, 실제 위험을 발생시키는 이들과 그들의 사상조차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말입니다. 

 

획일성과 전체적은 자유의 적이며, 진리는 여러 다면적인 특성을 지니고 복잡한 것이라 말했던 것처럼 위험한 사상이라도 그것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도리어 자유, 혹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기치로 한 다수파의 폭정인 동시에 자유를 훼손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가령, 소아성애자 또한 그러한 가치관이나 성벽을 가질 수 있지만 실제 범죄로 이어지지 않는 한 그것에 대해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히틀러를 위인으로 모시고 그의 사상과 가치관에 동의한다고 해도 실제 유대인을 비롯한 유색인종, 슬라브족에 대한 테러를 감행하는 등의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법과 자유의 이름 하에 보호받아야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이상적이고 이론적입니다. 그러한 반사회적이고, 반자유적이며, 반민주적인 사상의 공격성은 단순히 사상의 자유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아니, 모든 사상이란 결국 행동으로 증명되기 마련이며, 그 사유는 그것이 옳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정의롭고 올바른 일을 행하는데 부끄러움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 하는 것과 다릅니다.

 

“우리의 상대가 ‘그래, 전에 우리는 당신에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주었잖아’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 당신들이 우리에게 그렇게 했지! 하지만 그건 우리가 당신들에게도 그렇게 해야한다는 증거가 아냐! 당신들이 멍청하다는 증거일 뿐!’”

- 파울 요제프 괴벨스.

 

그들은 자유를 조롱하고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 사용합니다. 이는 무기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방패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밀은 모든 자유는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위르겐 하버마스는 관용의 개념을 통해 누구도 자신의 선호와 가치관에 따라 무엇은 허용하고, 무엇은 배제해야 한다고 정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민주주의에 사상의 자유는 기본질서의 핵심 중 하나이고, 위험한 사상을 골라 베재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핵심요소가 사라지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어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자살하지 않기 위해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개념으로 민주주의를 지키도록 발생했습니다. 나치는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권력을 획득했고, 독재국가가 되었습니다. 박정희 또한 4대 대선 이후 여러번의 대선에서 승리하는 형식으로 독재정권을 유지했습니다. 

 

독일에선 사회주의 제국당과 독일 공산당에 위헌판결을 내려 정당을 강제 해산시켰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 정당에 대한 조치였을 뿐, 그들의 지자자에 대한 조치는 전혀 아닙니다.

 

자유의 적에게 줄 자유는 없다는 루이 드 생쥐스트의 말처럼 자유와 민주주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적을 베재해야 합니다. 윤석열 당선인은 입법권 박탈을 이야기했고, 이에 동조하는 집단 역시 존재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그 위험성 평가는 사람마다 달라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법권 박탈을 입에 올렸고, 그것에 동조하는 집단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으며 설령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해도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말은 생각의 그릇이고, 말이라고 다 같은 말이 아닙니다. 농담이라고, 비유라고 말한다고 그것이 (설령 일시적인) 진심인지 아닌지 그 자체로 판별하긴 어려운 까닭입니다.

 

 

일베 류 가치관은 극우보수에게 핵심적인 것이 되었고, 결코 소수가 아닙니다. 오히려 점차 다수를 차지해가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고, 사실, 이미 다수이거나 다수에 가까워졌다는 것인 현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러한 이들이 사회의 다수를 차지한다면 그들과 다른 이들을 공격적으로 배제할 것입니다. 이미 다양한 집단을 차별하고 공격하는 것처럼요.

 

윤석열 당선자가 유퀴즈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방송 자체와 유재석, 조세호의 리액션, 진행을 지적하고 공격했습니다. 배제는 그런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잘못을 했든 안 했든, 그들의 정서에 부합하지 않으면 마치 잘못을 한 것처럼 손가락질하고, 활동은 물론 존재조차 부끄럽게 만들어 망신주며, 공격하여 밀어냅니다.

 

 

그렇다면 그 반대는?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의 활동을 했고, 하고 있지 않느냐 말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진보, 좌파, 민주당 지지자 역시 그들에 반대되는 이들을 공격하고, 면박주고, 린치하며 쫓아내어 배제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글에서 피상적인 현상만 바라보는 것은 결코 본질에 다가가 핵심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러 차례 이야기한 바가 있듯, 같은 행동 역시도 다르게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예컨데, 일베-펨베 류는 반사회적인 행위를 하기 때문에 공격당하고 배제 당하는 것이고, 진보좌파의 경우 그 자체로 공격받고 배제 당하기도 한다는 겁니다. 일베나 펨베가 사자 명예훼손과 조롱, 특정 성별이나 직종, 지역에 대한 차별과 공격을 하여 반발을 받는다면 그것은 정당합니다.

 

그러나 진보좌파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반대로 특정 진영의 집단이나 인사를 비판한다면 그 자체로 비난을 받고 배제당합니다. 심지어 그 당사자가 정치적 견해나 이념, 사상을 밝히지도 않았고, 어떤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한다고 밝히지도 않았으며, 그것을 근거할 수 있는 활동 내역 따위를 알 수도 없음에도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실제로, 박근혜나 박근혜 정부의 정책, 윤석열에 대한 비판을 했을 때, 대깨문을 비롯한 규정, 낙인을 통한 공격이 발생하곤 했습니다. 이보다 더욱 노골적이고 전통적인 사례는, 독재정부나 보수정부 대한 비판을 가하고 저항하는 모든 이를 빨갱이라고 규정하여 공격했습니다.

 

따라서, 언어와 용어가 달라졌다면 그 핵심 원리가 달라진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일베 류 가치관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반대자들을 비교했을 때, 일베 류 가치관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공격받고 배제 당하여 사회의 지배적 가치관이자 세계관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탄압해야 하고, 그들에 대한 공격자는 대체로 자유와 민주주의에 의해 보호받아야 마땅합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1800년대 사람이며, 그의 대표적인 저작 자유론은 1859년에 출간된 것입니다. 그리고 약 100년이 조금 덜 되었을 때, 자유는 무기이자 방패가 되어 자유의 적이자 민주주의의 적에 의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살해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에게 그 사건은 피살이 아니라 자살이었습니다. 국민들이 그것을 바랬기 때문입니다.

 

구스타프 라드브루흐는 1800년대 중후반에서 1949년까지의 인물입니다. 칸트학파의 일원이었고, 법학자로서 법의 3요소인 정의-합목적성-법적안정성의 개념을 처음 고안해낸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는 칸트주의의 관점으로 가치상대주의를 주장했고, 무질서보다 부정의가 낫다는 가치관을 견지했습니다. 그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건국에 큰 기여를 한 사람이었고, 이후 나치에 의해 강단에서 쫓겨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는 모든 가치를 존중하기 위해 나치를 용인했고, 그들에 의해 강단에서 추방당했고, 법을 제정하여 악행과 폭정을 했음에도 침묵했습니다. 전후, 그는 강단해 복귀하였고, 저명한 법학자였던 라드브루흐는 새로운 독일의 법을 세워야 했는데, 가치상대주의자였던 그가 나치의 수많은 악핵을 목격하고, 경험했기에 자신의 사상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그는 나치에 대한 반면교사로, 법률적 불법과 초법률적인 법 개념을 도입했으며, 자신이 고안한 법의 3요소 중 법이념의 1순위 역시 법적 안정성에서 정의로 수정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가치상대주의자였음에도 방어적 민주주의를 도입하게 되었죠.

 

 

존이 자유론을 냈던 시대와 나치 시대는 약 100년의 간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이마르 공화국의 붕괴와 나치당의 승리, 2차대전이 인류에게 전해준 교훈은 너무나도 중요하고 거대합니다. 자유론은 매우 중요한 지성을 담은 서적이고, 여전히 우리를 가르치는 고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존이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고, 그의 사상이 담긴 자유론이 얼마나 위대한 서적이든, 그것은 결코 진리로 기능할 수 없는 것이고, 자유에 대한 담론과 법철학 역시 발전해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발전을 수용해야만 하고, 존의 말을 금과옥조로 다루어 존의 말과 다른 것을 열등하거나 저열하거나 모자란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존의 가치관은 존의 가치관이며, 그것을 옳다고 여기어 자신의 사상 안에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비판받고 반박될 수 있는 과거의 말이기도 하다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또 다시 다른 형태의, 그러나 여전히 같은 핵심을 간직한 일베 류 가치관과 그 세력은 배제해야하며, 그들을 공격하는 이들은 보호 받아야 합니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적이 우리 사회를 지배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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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그들이 보수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꼴통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한국에선 꼴통이 거진 보수, 극우진영에 몰려있을 뿐이죠. 그러한 꼴통들이 그곳에 몰려있는 이유는 다름아닌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정신세계 때문이고요.



그들이 보여주는 특유의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


1.자신이 했던 말을 자신이 반박한다.

2.기본적으로 인권, 민주주의 등의 사상에 대해 빈약한 이해도를 가진다.

3.기계적 중립만을 고수하는 태도를 보인다.

4.근본이 아닌 현상에 대한 이해만 한다.

5.자신이 경험한 것 이외에 대해 매우 무지할 뿐더러,

5-1.그 밖의 세상이나 지식을 배우거나 경청하지 못한다.

6.자신과 같은 진영에 벗어난 타인에게 공감이나 이해, 감정이입하지 못한다.

7.기본적인 도덕성이 떨어진다.

8.자신에 대한 광범위한 집단적 비판에 대해 어떠한 특정 배후세력을 의심한다.




이명박, 박근혜, 윤X인, 심지어 방송사인 MBC나 KBS, 조선일보 등에서도 그러한 모습을 보입니다. 흔히들 말하는 유체이탈 화법, 혹은 XX의 적은 XX (X적X)는 그러한 특성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죠. 보수쪽에서는 흔히 진보에게 이중성이라는 프레임을 부여하고 그들의 이중성을 비판하곤 하지만, 사실 진짜 이중성의 극에 있는 이들은 바로 보수 본인들입니다.


박적박, 윤적윤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일관된 논리나 태도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한 이유는 위의 특성들이 각각 결합하여 나타난 것인데, 그들은 사상과 이념에 대해 매우 빈약하고 낮은 수준의 이해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일관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즉, 그들이 일관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을 만큼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이고,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이 멍청하기 때문이라는 거죠.[각주:1]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사건마다 일관적이지 못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고, 상황이 달라지면 역시 태도 또한 돌변하기 마련입니다.


대표적으로 아래와 같은 사례와 비판이 있습니다.


2015/07/14 - [취미/이야기] - 그들은 '이중성' 안보, 국방.

2014/08/26 - [취미/이야기] - 숭고한 보수의 '진정성'

2014/05/13 - [취미/이야기] - 나는 이성적이다. 쿨뽕.

2015/06/11 - [취미/이야기] - 쥐명박과 노알라가 다른 이유.

2015/04/25 - [취미/이야기] - 성완종 게이트, 여당이 특검하자고 하는 이유.

2014/12/09 - [취미/이야기] - 복지 없는 증세.




기계적인 중립은 그들의 비인간성을 부각시키며 또한 그들의 무지함을 들어내기도 합니다. 그러한 기계적 중립은 역시 2번의 지적 빈약함과 4번의 현상만을 이해하는 떨어지는 이해도가 결합되어 나타나는 모습인데, 예컨데 시위대와 경찰간의 마찰에 있어서 시위대도 잘못했다던가, 새누리당이 이런 말을 하기도 했죠. 네이버, 다음에 야당에 편향적인 기사가 더 많다고. 이게 얼마나 웃긴 말이냐면, 새누리당이 12개의 똥을 싸고 새정연이 2개의 똥을 싸면 언론은 없는 새정연의 10개의 똥을 만들어서라도 보도해야 하기라도 하냐는 겁니다.


기실 시위대와 경찰간의 마찰은 근본적인 이유를 따지고, 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그러한 말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꽤 길 설명이 될 것이기에 다른 글을 링크로 하여 대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글을 클릭하세요.

[펌] 이번 시위가 잘못되었다는 애들 논리로 구타하는 방법

(펌) 우리에겐 신선한 충격인 96년 프랑스 화물노조 파업

두고두고 회자되는 전설의 프랑스 소방관들의 시위

프랑스의 흔한 시위 장면.JPG


그들은 어째서 시위가 발생했는지라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어떠한 파악이나 이해 따위는 없이, 단지 시위와 그에 따른 충돌, 갈등이라는 현상만을 보고 판단을 하는 겁니다. 물론 사상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그 자체로 설득력 있는 비판이 있을 수가 없죠. 각각을 완전히 동일한 객체와 객체로 보고 서로 다쳤으니 서로가 잘못했다는 수준에 그칩니다.


누가 더 힘이 세고 누가 더 오래 괴롭혔으며, 누구에게 원인이 되는 책임이 있는지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그냥 둘이 싸웠으니 둘이 화해하고 끝내자는 꼴통 선생님과 같은 모습이죠. 명백히 발생하고 있는 더 센 아이의 지속적인 학교폭력이라는 인식이 전혀 없는, 애들끼리 있을 수 있는 흔한 다툼 정도로만 보는 것과 똑같은 겁니다.


당연하지만 그러한 것은 절대 해결책이 되지 않으며, 심지어 비판으로서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한채 그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이들에 의해 사회적 논란과 구조적 혼란만을 지속시킬 뿐이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러한 기계적 중립식 비판은 되려 문제를 키우고, 때때로 문제를 만들기까지 한다는 겁니다. 그들이 흔히 말하는 사회적 혼란은 잘못되었다라는 것을 본인 스스로 발생시키는 꼴이고, 이는 앞서 지적한 일관적이지 못한 이중성을 반복하는 것이죠. 물론 그들이 그러한 언행을 보이는 것은 본인 스스로 이중적이지 않다는 -그리고 그러한 낮은 수준의 판단을 내리게끔 만드는- 뒤떨어지는 지적능력에서 기인합니다.


2015/06/02 - [취미/이야기] - 사스와 메르스, 정부에 어떤 차이가 있길래?

2013/10/19 - [취미/이야기] - 한국식 문제 해결법


위 링크의 첫번째 글에서 원인이 아닌 현상에 대한 비판만을 하는 그들의 적나라한 모습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한 바 있습니다.


한 때 한국식 문제 해결법의 글에서처럼 그들이 원인이 아닌 현상만을 해결하려고 하는 행태에 대해 그들이 그러한 비용을 지출하길 싫어하며, 일하는 것을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니, 현재에 와서는 그냥 지적으로 모자라기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바뀌려 하지 않나 하고 생각합니다.


하여간, 그러한 이유로 인해 한국에서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면 적어도 보수정권에서 만큼은 분명하게 근본적인 대책이라는 것은 나오는 것이 매우 드뭅니다. 적어도 본 기억은 없군요. 그들의 지적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근본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그저 눈에 보이기만 하는 현상에 대한 비판과 해결책만이 제시될 뿐이죠.


시위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해야 시위가 발생하지 않을까라는 사고를 시작으로 그들이 주장하는 것과, 그러한 주장을 통한 문제에 대한 인식과 문제의 시작점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러한 인식을 기반으로한 합리적인 해결방안이 제시되지 않고, 시위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해야 저 시위를 막을 수 있을까라는 쪽으로 사고가 시작됩니다. 그러한 사고에 따라 더 많은 경찰인력과 더 두터운 차벽, 더 강경한 시위진압으로 귀결이 나는 것이죠.




그들이 흔히 말하곤 합니다. 나 때는, 노력을 하면, 너희들이 게을러서 등등.. 실제로 마리 앙투아네트가 하진 않았지만 그녀가 했다고 알려진 유명한 말이 있죠.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남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는 소시오패스라고 합니다.


물론 수 백만명 이상의 보수가 모두 소시오패스일리는 없습니다만, 그들이 그러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그들은 자신이 겪어본 것만을 이해하고, 그 이외의 것은 이해할 수 없는 1차원적 지적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생활이나 인식을 시뮬레이션 할 수 없고 그렇기에 공감이나 이해를 할 수 없죠. 흔히 꼰대라고 하는 꼴통들이 그러한 문제를 보편적으로 보여주곤 하는데, 나때는 그렇게 했다고.. 나는 그렇게 했다고 타인도 그렇게 해야 한다거나 그렇게 해야 할 수 있다고 말하곤 하죠.


쉽게 말해서 자신의 경험만이 진리이고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고려사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작용한다고 해도 큰 의미는 없습니다. 그들이 진리, 혹은 옳다고 생각하는 매체나 이야기, 사례로 바뀔 뿐이지 그들의 사고방식 자체는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컨데 그러한 모습은 아래의 글로서 설명을 대체하겠습니다.


2014/12/23 - [취미/이야기] - 선동 당한 보수는 이런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 특정 매체나 일부 사례만이 옳고 그것을 벗어난 것에 대해서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그것들 외에 들어오는 이야기나 지식은 받아들일 수 없고, 오직 자신이 받아들이는 매체로서 기반을 둔 것들로만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역설적이게도 자기 스스로 판단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어떤 개인이 조선일보, 동아일보 및 종편채널에서 하는 말만을 받아들인다면 곧 그들이 하는 말을 똑같이 따라하고 그들이 주장하는 것만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 됩니다. 반대로 다른 모든 매체는 거부하며 한겨레만 읽는다면 한겨레에서 하는 말만이 곧 진리로서 기능하는 것과 같다는 걸 말하는 거죠.


그러한 사고관을 가진 사람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되면 매우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오직 자신이 아는 것만을 맹신하고 있으며, 정보나 지식이 들어오는 방향이 오직 한 곳이라면 그 곳에서 나오는 주장만이 그 사람에게 기능할 것이고, 그러한 경위로 인해 실제로는 어떻게 돌아가든 옳지 못한 판단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입니다.


예컨데 조중동만을 보는 사람이 복지정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실제로 국민들이 얼마나 복지에 취약하며 얼마나 복지가 필요하고 얼마나 힘들고 위험하게 사는지와는 별개로 복지정책의 축소 및 소극적 개편으로 방향이 잡힐 가능성이 높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반면 북한에 호의적인 매체를 보는 사람이 국방정책을 짜는 사람인데 북한이 군사도발을 했을 때 되려 북한에 소극적이고 온건한 대응을 하며 저자세로 나간다면 국방과 안보에 매우 큰 위협이 되듯이요. [각주:2]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에 대한 비판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달게 받으라는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러한 교훈을 주는 사례는 역사에 차고 넘치고요. 그렇지만 보수에 몰려있는 수 많은 꼴통들은 그러한 타인의 사례에 대해 매우 무감각하고 이해나 공감할 수 없습니다. 저 위 링크의 어느 장년이 젊은이들에게 하는 일갈은 실제 삶을 통해 겪고 있는 젊은이라면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틀려먹었는지 바로 알 수 있는 헛소리임을 알 수 있을테니까요.


그리고 그런 이들에겐 실제 젊은이들이 자신들이 얼마나 어렵고, 과거와는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이야기해줘도 전혀 받아들이질 않는다는 것도 알 겁니다. 모른다면 직접 경험해보세요. 저런 주장 하는 사람 잡고 자신들의 현실을 이야기해보십시오. 절대 받아들이지 않고 무조건 자신들이 옳다고 우길테니까.




우리가 언론을 보다보면 알 수 있듯이, 그들은 기본적으로 도덕성이 매우 떨어집니다. 사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의 영토에선 썩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새누리당의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막말, 부정부패, 성추문 등의 범죄는 우리에게 있어서 너무 익숙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최근에도 어김없이 터져나오는 김무성의 막말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죠. 입만 열면 망언에 막말이니까. 저 위에서도 나왔듯이 새누리당이 야당에 편향적인 기사가 많다고 하는 데, 사실 그럴 수 밖에 없죠. (사실 편향은 절대 아니지만요.) 새누리당이 더 많은 막말과 사건, 범죄를 저지르고 야당은 그보다 더 적은 문제를 일으키니 정상적이라면 새누리당의 잘못에 대한 보도가 더 많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


최근에도 김무성을 비롯한 보수인사, 보수언론, 그리고 보수적인 국민들이 말하고 생각하듯이, 법을 어긴 시위대 쪽도 잘못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들은 별 잘못이 없죠. 객관적이고 상식적인 판단이 가능한 정상인이라면 경찰측이 더 큰 잘못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으니까요. 보수쪽이 그렇게 법치를 좋아한다면 왜 본인들은 누구보다 많은 범죄를 저지르고 막말을 일삼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사실은 법치를 농단하기 좋아하고 법을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남용하길 좋아하며, 무엇보다 도덕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도덕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그것을 지켜야하고 법이 얼마나 중요하며 어째서 그것을 지켜야하는 지에 대한 사상적 깊이가 떨어지며 그와 별 거 없는 떨어지는 저질 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그들이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이지 않고, 국가에 도움이 될 수 없음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며, 일관적이지도 않은 이중성을 보유한 노골적인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누리당의 전체를 넓게 보았을 때, 높고 대단한 위치에 있을 수록 더 많은 막말과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들은 부패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죠. 한국의 부패 형태는 엘리트 카르텔의 형태이고, 서로가 서로를 밀어주고 뒤를 봐주는 형태이기 때문에 그 구조 속에서 성공하려면 더 많은 부정부패와 범죄에 연루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내 뒤를 봐주는 형님을 위해 성의, 선물을 주기 위해 무언가 마련해드려야 하는 데 그게 결코 합법적이거나 도덕적일 수는 없으니까요. 절대 그냥 선물이 아니고 남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언론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것들이니까.


그들이 얼마나 국가와 사회에 있어서 해롭고 비도덕적인지는 아래의 글로.


2015/04/26 - [취미/이야기] - 해로운 범죄를 저지르는 양복 입은 침팬지

2014/09/17 - [취미/ㄴ일베 비판] - 배부르면 폭식투쟁이냐?

2014/09/13 - [취미/ㄴ일베 비판] - 반박이 아닌 조롱. 일베식 투쟁 : 광화문 집회에 대한 단상.

2015/11/08 - [취미/이야기] - 몽키하우스와 일제 위안부에 대한 단상.

2015/09/22 - [취미/이야기] - 경제에 대한 태도로 보는 진짜 보수.

2015/07/21 - [취미/이야기] - 더 이상 정부와 국정원에 신뢰할 수 없다.

2015/09/12 - [취미/이야기] - 보수와 군의 안보에 대한 시각.

2015/05/29 - [취미/이야기] - 국정원 경판임용 조사가 어째서 불법이냐고?

2015/05/29 - [취미/이야기] - 국정원의 대학내 어용 프락치 선동조직

2015/04/19 - [취미/이야기] - 법치를 부수는 정권

2015/04/11 - [취미/이야기] - 대한민국의 수많은 '반국가집단'




앞서 충분히 이야기 했듯이 그들은 특별히 더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이지도 않고 이성적이지 못하며, 오히려 반대로 남들보다 더 비합리적이고 덜 논리적이며 비이성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주제에 도덕적이지도 못하기 때문에 범죄를 반복하고, 그러한 범죄와 부도덕함을 비판하곤 하는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의 사람들을 누군가에게 선동되거나 지령을 받아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하곤 하죠.


이것은 그들이 줄곧 주장하곤 하는 배후세력에 대한 겁니다.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인정하려 들지 않고, 언제나 남탓으로 일관하곤 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그것을 지적해오면 배후세력 등을 주장하며 자신의 문제점에 대해 회피합니다.


물론 이것은 그들이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정치공학적 목적도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것이, 어떠한 증명할 수 없는 음모론적 배후세력을 주장하며 자신과 자신 세력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을 그러한 배후세력에 선동이 된 우민, 혹은 지령을 받고 그러한 비판이나 시위를 하는 어용세력으로 매도하기 위함이죠.


물론 어디까지나 자기들 세력을 지지해주는 이들에게나 통할 법한 이야기입니다. 꼴통을 지지하는 건 같은 꼴통들이니까 그들에겐 아주 잘 통하거든요. 이성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이들. 누구 말마따라 전근대성 쩔어주는 고대인인 셈이죠.


이런 식의 주장이 어디가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는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굳이 구구절절하게 지적하진 않겠습니다.


2015/06/13 - [취미/이야기] - 보수들의 집단정신병, 박원순 죽이기

2015/04/05 - [취미/이야기] - 세월호 사건과 진상규명을 뭉게려는 자에 대한 통렬한 비판

2014/08/26 - [취미/이야기] - 숭고한 보수의 '진정성'


이것 이외에도 포털에서 배후세력을 주장하는 보수인사, 보수언론의 기사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뭐.. 앞으로도 그러겠지만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배후세력이라는 가상의 적을 설정해놓고 싸우는 것은 나치 시절부터 해왔던 자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더러운 정치공작의 일환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여기까지 서술하면서 나올 수 있는 결론은, 꼴통들은 주로 보수에 대규모로 존재하며, 새누리당과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들은 사상적으로, 이념적으로 빈약한 이해도를 가지고 있으며 지적으로 떨어지며 그러한 이유로 인해 올바른 판단력을 갖추지 못했고,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며, 기본적으로 도덕성이 떨어지거나 그러한 도덕성이 떨어지는 범죄자에 호의적인 공범들이자 국가와 사회를 병들고 파괴하는 암적인 존재이다라는 것입니다.


뭐,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아니라고 생각하십시오. 그거야 자기 마음이니까.


  1. 이러한 멍청함은 단지 학교 공부를 잘하니 못하니와는 무관한 사상과 이념의 차원입니다. 수능 올 1등급을 맞았다고 해서 공산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자유주의의 역사적 발달사나 그러한 사상과 이념을 깔끔하게 설명해내지 못한 것과 같은 것이죠. [본문으로]
  2. 생각을 해보세요, 우리가 잘못한 것이 있기에 북한이 도발을 한 것이다, 이 기회에 북한과 대화하는 쪽으로 외교노선이 짜이면 좋겠다. 라고 말한다면 속이 뒤집어지지 않겠습니까? 정작 우리는 사람이 죽고 재산을 잃게 되었는데 말이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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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the annual revenue of every society is always precisely equal to the exchangeable value of the whole annual produce of its industry, or rather is precisely the same thing with that exchangeable value. As every individual, therefore, endeavours as much as he can both to employ his capital in the support of domestic industry, and so to direct that industry that its produce may be of the greatest value; every individual necessarily labours to render the annual revenue of the society as great as he can. He generally, indeed, neither intends to promote the public interest, nor knows how much he is promoting it. By preferring the support of domestic to that of foreign industry, he intends only his own security; and by directing that industry in such a manner as its produce may be of the greatest value, he intends only his own gain, and he is in this, as in many other cases, led by an invisible hand to promote an end which was no part of his intention. Nor is it always the worse for the society that it was no part of it. By pursuing his own interest he frequently promotes that of the society more effectually than when he really intends to promote it. I have never known much good done by those who affected to trade for the public good. It is an affectation, indeed, not very common among merchants, and very few words need be employed in dissuading them from it.

그러나 모든 사회의 연간 수입은 언제나 그 사회의 산업에서 생산하는 연간 총 생산량의 교환 가치와 정확히 같다. 또는 차라리 교환 가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개인이 자신의 자본을 국내 산업의 지원에 사용하고, 또 그 산업에서 최대의 이윤을 산출하고자 한다면, 모든 개인은 필연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연간 수입을 만들려 노력하게되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분명히 개인은 공공의 이익을 의도적으로 증진시키려고 하지는 않으며, 얼마나 증진시키고 있는지 알지도 못한다. 외국 산업보다 국내 산업에 대한 지원을 선호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안위만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며, 그 산업을 운영하는 것도 자기 자신만의 이득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많은 경우와 같이, 개인은 바로 그때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자신이 의도치 않았던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의도치 않았다고 해서 사회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만은 아니다. 사회의 이익을 의도적으로 증진시키려 할 때 보다,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함으로써 개인은 더 자주, 더 효율적으로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다. 나는 공공 이익을 위해 거래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진짜로 크게 이익이 되는 경우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 이야기는 상인들 사이에선 흔치 않다. 그리고 그러지 말라고 그들을 설득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The Wealth of Nations> book 4, chapter 2, pag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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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의 일부입니다. 이 내용에 따르면 시장이 제대로 기능한다면 가격에 의해 모든 생산주체와 수비주체는 조절되며, 어떠한 제품의 가격에 따라 그 제품의 공급과 수요가 형성되고 조절된다는 말이죠.


스미스가 생각한 이상적인 보이지 않는 손이란 각 개인의 이기심과 경쟁을 통해 모든 시장 참가자가 열심히 일하고, 효율적으로 거래되는 시장에서, 가격의 결정권이 소수가 아닌 시장 참가자 전원에 의해 결정되는 시장이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부정적인 보이지 않는 손도 같이 생각했는데, 정부나 누군가, 혹은 어떤 특정한 집단에 의해 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이들의 의지대로 가격이 책정되거나, 독점현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시장의 순기능을 막아버리는 현상도 고려했죠.


그렇기에 스미스는, 정부는 시장에 어떠한 개입 없이 시장을 감시하는 경찰 역할만을 해야 하며, 특정 이익집단이 모든 자원을 독점하여 시장의 유통을 통제하는 일이 발생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제학의 대부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말하는 이러한 것들은 이후 세상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아직도 미치는 중입니다. 사실 시장 자유주의는 정말 좋은 이론일 것이고, 현실에 적용해도 큰 무리 없는 이론이겠죠.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부정적인 보이지 않는 손이란 것이죠.



본래대로라면 정부가 시장을 헤집어 놓지 않고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경제는 스스로 성장할 것이고, 시장은 스스로 유지될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많은 대기업은 또한 시장 자유주의를 좋아합니다. 기실 그것은 당연할 것으로, 자신들이 손대는 사업에서 갑자기 국가가 나서서 규제하는 등 방해나 다른 영향을 받으면 자신들의 수익에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고, 실제로 국가는 어떤 산업을 풀기보단 규제하는 게 많은 편이지요.


그렇지만 그들이 진짜 시장 자유주의를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본래라면 자연스러운 상태의 시장은 그 자체로 건드릴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시장에서 다른 경쟁자들보다 우위에 서 있는 자금력, 인력, 연줄을 가진 집단이 있다고 칩시다. 요즘 세상에는 대기업이 딱 그 집단에 맞겠지요.


그들은 그들이 가진 힘을 통해 반칙을 씁니다. 머리가 좋고 쓸 수 있는 힘이 세니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요. 예컨대 독점체제나 하청업체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마음대로 흔드는 것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반칙은 시장의 올바른 구조를 헤집어 놓습니다. 그리고 그 시장구조가 왜곡되고 관행적으로 되면 될 수록 시장의 안정성은 떨어지지요.


만약 여러 대기업이 이러한 반칙을 수도 없이 행하고 있다면? 당연히 시장은 그 안정성이 떨어지게 되고 뒤틀린 시장구조는 대기업은 제외한 대다수의 시장 참여자에게 악영향을 주겠지요. 더불어 국가의 경제는 또한 더욱더 대기업에 의존적으로 될 것이고 그 대기업은 기형적인 권력(금권)을 가지게 되겠지요.


기실 이렇게 되기 전에 정부는 나서서 올바른 시장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이러한 반칙과 편법을 막고 규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체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테니까요, 하지만 정부 인사가 부패했기 때문이든 어쨌든 그들이 대기업을 막지 않고 심지어 두둔하거나 그 이익을 나눠 먹는 관계가 형성된다면 그 시장이 얼마나 뒤틀릴지는 안 봐도 뻔할 것입니다.


대기업은 시장 자유주의를 좋아하지요. 아직 규제가 없는 상태에서 영악한 머리 굴려가며 자신들에게 최대의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반칙과 편법을 구사하며 다른 이들에게 피해나 전체 시장, 그 산업의 시장구조에 악영향을 준다 해도 어쨌거나 자신들의 이기심과 욕심을 채울 수만 있다면 할 것이고 이것에 대한 정부의 규제를 시행할라치면 그 뻔뻔한 이들은 남들 앞에서 정부의 규제는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수많은 해당 산업 종사자, 기업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고 하겠지요.


그러한 규제는 자신들의 부당한 이익을 얻을 방법을 틀어막는 것이니까요. 시장 자유주의를 악용하는 셈입니다. 그렇게 규제가 시행되지 않으면 그 잘못된 관계, 구조를 어떻게 할 방법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 자유주의에서도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 했지만 감시하는 역할만큼은 남겨준 것입니다.


만약 어떤 소수의 이익집단 등이 독점을 발생시키거나 하며 시장의 순기능을 막아버리게 된다면 공인된 정부가, 현실 권력과 정당성, 명분 등의 권위를 통해 그 부분을 해소하고 올바르게 하여 자연스러운 시장을 기능시키게끔 하게 말입니다. 대기업이 시장 자유주의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겁니다. 단지 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노동자의 노동여건 등도 기업, 자본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유지시키기 위해 규제를 하거나, 단속을 하거나, 노동자의 권리를 신장시키기 위한 시도를 하면 그 시도 자체를 반대하기 위해서요.


다시 말하지만 악용하는 겁니다. 이것은 시장 자유주의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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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일베를 까는 글을 씁니다. 이 녀석들은 저에게 여러가지 시사점을 주는거 같기도 하네요.



일베충들이 자기 스스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라고 하지요.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그저 자기들이 분탕질치는 것을 변명하기 위해 잘 알지도 못하는 용어를 끌어와 방패삼는 것에 불과합니다. 애초에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그저 자기들을 위한 자유이지 남을 존중하는 태도는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들이 말하는 자유라는 것을 따르자면, 내가 남을 죽일 자유 또한 보장되고, 내가 방화나 테러를 할 자유 또한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여러가지 원칙에 의해 제한되지요.


이것과 마찬가지로 일베충의 자유는 그저 방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변명거리에 불과하며 스스로를 자위하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일베에선 무슨 말을 해도 되고 어떤 조롱과 모욕을 해도 되니까요. 또한 그러한 의식의 발로에서 다른 커뮤니티에서도 일베에서 하던 행동 그대로 하고, 이것은 나의 자유이다라고 떠들죠. 철없는 어린애처럼 굴어놓고 자신을 자유주의자라는 고상한 단어로 포장하는 것도 웃깁니다.


물론 자유가 있으면 그에 따른 책임 또한 인정해야하는데 당연코 거부하는 것도 참 재밌는 노릇이죠.



일베는 그들에게 있어서 자유의 성소같은 곳입니다. 상술했듯이 일베에선 어떤 조롱과 표현을 사용해도 그저 웃고 넘어가는게 일상다반사이기 때문입니다. 표현의 자유라고 포장하지만, 실상은 마음이 맞는 벌레들끼리 히히덕거리며 낄낄거릴 뿐입니다. 반대로 경상도, 박정희, 박근혜, 전두환을 비판하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 어떻게 나오는지 보시면 참 재밌어요. 까이는건 당연한거고 밴까지 먹죠. 일베 운영자인 ㅂㅇㄱ씨의 이름같은 신상정보를 풀면 3000일 밴이던가 영구 밴이던가.. 껄껄. 표현의 자유는 무슨.


애초에 인간성 자체를 벗어던진 것을 가식을 벗은 것이라 표현하고 그러한 가치관에서 출발하는 떨거지같은 개소리들을 표현의 자유랍시고 포장하는거 자체가 일베가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을 반증하는 셈이죠.



자유주의. 자유주의라는 사상은 단지 개인에게 자유를 준다라는 한줄의 아무런 고찰없는 명제로 설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유주의 사상의 뿌리는 '통치자, 혹은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과 사상이나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그가 아직 일으키지도 않은 범죄 때문에, 단순히 그가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사람이 타인에게 어떠한 위해를 가하지도 않고 있는 상태에서 그의 신체적, 정신적 자유를 빼앗고 구속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입니다.


일베는 이러한 자유주의 출발 원칙에서 이미 멀찍이 벗어나 있는 주제에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라고 포장하고 있어요.


자유주의자라면 다른 이들이 공산주의, 사회주의같은 하나의 사상으로 인정되는 것을 믿고, 그에 따른 사회적인 해를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신의 발언권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하나의 자유'로서 인정해줘야 합니다. 또한 박정희, 박근혜, 전두환 등에 대한 '정당한 비판'에 대해서도 하나의 자유로서 인정해줘야하죠.


그로인해 할 말이 있다면 '정당한 토론'으로 해결하는 되는 일이죠. 물론 그네들 수준이 그럴 수준이 아니라는게 문제지만.


하여간 그들이 스스로 자유주의자라고 하는 것은 그저 보잘 것 없는 자신을 좀 더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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