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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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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8.16
    한국 교회와 지역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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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근대화가 이루어지기 이전 각 마을, 고을 등에는 여러 계층과 집단에 의해 형성되는 지역 커뮤니티가 있었습니다. 고을처럼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곳이라면 직종이나 고을내에 구분되는 지역, 성별 등으로 구분되는 커뮤니티가 있었을 것이고, 작은 마을이라면 요즘으로 치자면 마을 회관 같은 곳, 마을마다 있는 정자 같이 사람들이 모이기 좋은 곳에 동네 사람들이 모이면서 소통이 이루어졌을 겁니다.


전근대라곤 해도 정보의 중요성을 모르진 않지요. 다만 필요한 정보의 종류와 용도가 달랐을 뿐이고요. 마을이 어떻게 돌아가고 농사가 잘 되는지, 어느 집 누구가 누구랑 무슨 일이 있었고 누구 집 소가 새끼를 얼마나 낳았는지, 윗 고을에 가봤던 김씨네가 하는 이야기들이나 간혹 들리는 장사꾼들의 딴 지역 이야기, 소금 가격이나 새로 부임한 고을 원님 소식, 나랏님들 이야기 등등..


작고 정체되어 발전이라곤 그리 없을진 모를 마을이지만 세상 돌아가는 걸 알고 필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꾸준히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작은 사회 나름의 소속감과 안정감을 유지시켜주는 핵심 요소이기도 하고요. 서로가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실용적으로 사용하거나 인간관계를 조정하기도 하고, 앞서 말했다시피 그 자체로 소속감과 안정감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기도 하죠.


이러한 지역 사회의 크고 작은 커뮤니티들은 지금도 전 세계에 존재합니다. 미국 중산층들은 여러 모임과 식사 초대, 파티, 아예 봉사활동이나 자경단 활동, 스포츠 등 여러 사회적 활동 등을 이루며 사회적 관계를 꾸준히 유지시킵니다. 그러한 사교적 활동은 간혹 과하다싶어서 그들에게 알게 모르게 왕따를 당하거나 기피되는 경우도 있으며 그런 이웃이나 지역 내의 사회활동에 참여하지 않으면 손가락질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하죠.



이러한 커뮤니티의 해체는 사실 거의 모든 국가들이 크고 작게 겪는 일이긴 합니다. 산업혁명을 필두로 산업화, 근대화가 되가면서 기존의 농촌사회가 해체되며 도시로 상경하는 등 지역 발전과 인구 이동이 발생했죠.


한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일제시기 근대화가 이루어지고 공장들이 세워지면서 농촌이 점점 해체가 되었고 농부에서 공장 노동자가 되는 등 농업 사회의 커뮤니티는 그 크기가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도시의 근대적 학교나 일자리, 교회나 성당 따위에서 새롭게 커뮤니티가 형성되기도 했죠.


그리고 여기가 진짜 중요한데, 한국 전쟁이 터지고 나서 대규모 인구이동이 발생했죠. 이는 거의 기존 계급적 사회관과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없어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적잖은 양반 집안은 양반 가문의 어르신이었고, 노비는 여전히 노비였습니다. 수많은 천민들이 신분제가 없어졌지만 그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거의 인종차별 수준으로 존재했었죠.


한국전쟁은 그러한 신분적 관념 또한 불 속에 소멸시켰습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섞이고 하다보니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신분이나 계급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게 되었죠. 숨기면 알 방법도 없고.


근데 이 한국전쟁은 많은 것을 없앴지만 지역 사회의 커뮤니티 또한 없앴습니다. 사람들이 피난가고 정착하면서 너무 많이 섞였거든요. 같은 도 내에서라곤 해도 사는 지역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었고.. 전쟁 이후 먹고 살기 위해 또 떠나거나 모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정보와 소식의 교류는 정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 거죠. 새롭게 재편된 질서와 재정립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보려면, 이익이고 뭐고 생존하기 위해서라면 정보가 필요했습니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맺어지는 관계와 형성되는 커뮤니티도 있겠지만, 한계는 명확하죠.


옛날처럼 농부는 농부끼리, 상인은 상인끼리, 관료는 관료끼리 모여서 자기들이 속한 영역 내의 정보, 그 영역에서 필요한 정보만을 주고 받는 게 아니라 다른 여러 직종과 계층의 정보들이 필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작은 마을 수준도 아니고 변화와 발전이 빠른 도시이다보니 중심적 역할을 하는 커뮤니티가 꾸준히, 적당한 인구풀로 유지되기란 어려운 일이었죠.


여기서 교회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종교라는 소속감과 집단적 정체성을 제공해주고, 모일 공간과 소통할 장소를 제공해줬기 때문입니다. 직종이 다르고 집도 꽤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나이도, 성별도 다 다른 이들이 신앙이라는 매개로 교회라는 장소로 모이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장소에서 농촌사회의 객채에서 산업도시의 주체가 되어 해맸던, 갈증에 시달리던 이들이 정보 교류와 사교에 매우 활발했다는 것 쯤은 알만한 일이지요.


정리하자면, 교회는 기존의 지역 커뮤니티가 해체된 이후의 근대화, 산업화된 사회에서 기존 커뮤니티 역할을 완벽하게, 혹은 그 이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창구가 되었다는 겁니다. 교회 자체가 지역 커뮤니티로 기능하게 된 것이지요. 이는 원래 유럽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역할이지만 말입니다.


그 덕에 교회는 쉽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거고, 종교와 신앙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신실한 종교집단이라기 보단 세속적인 가치와 질서와 매우 가까운 형태를 보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전통 민간신앙과 섞여서 개신교라는 이름의 다른 무언가를 보는 기분이 들 때도 있곤 합니다.


신앙과 종교 그 자체를 이유로 교회에 간 것이 아니다보니 말입니다. 물론 신앙이 없는 것도 아니고 배워서 나쁠 것도 없으며, 그 내용이 사실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 것도 사실이죠. 시기적으로도 신이라는 초인에 기대고 싶은 거친 시대였기도 했고..


물론 안 좋은 영향이라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중세나 왕정 수준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진 이들과 전쟁 을 거치며 남쪽으로 내려오거나 친일 행적 때문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이들이 종교인으로 둔갑해서 사회적 영향력과 존경을 받기 위해 생존형 목사 따위가 된 이들의 기독교와 엮여서 마치 중세 기독교가 보여줬을 법한 악덕을 발생시키기도 했고.. 돈과 사람이 모이니 정치권력이 군침을 들이거나 아예 적극적으로 야합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돈 있고 영향력 있는 이들이 정치인, 법조인, 경찰 따위와 친해지려는 건 흔한 것처럼요. 혹은 본인 스스로 정치를 하기도 하거나.


한국 개신교가 가톨릭에 비해서 질적 관리가 안 되고 세속적이며 정치적인 경우도 많고 사실상 기업화된 사례도 있으며 여러 문제가 있고, 그런 문제가 있으면서도 여전히 세력이 거대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종교 그 자체를 위해 만들어지고 신앙을 위해 사람이 모였다기 보단 여러 이해관계가 엮이면서 형성된 것이 한국 개신교회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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