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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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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9.03.21
    무한전생-망나니 리뷰.
  2. 2018.11.25
    조선의 왕권과 신권의 대립에 대한 기초 이해. (2)
  3. 2013.12.01
    유교에 대한 오해, 유교는 어떻게 사람을 통제하였는가. (2)


광악 작가의 작품은 독자들에게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만큼 그에 대한 팬층의 팬심도 강한 편입니다. 광악 작가의 지식적 깊이와 뛰어난 필력이 아주 높은 평가를 받는데, 솔직히 요즘 나오는 작품 중에 이만한 작품 거의 없다고 볼 정도죠. 그리고 실제로 제 평가 또한 요즘 나오는 많은 소설 작품 중에서 광악만큼 뽑아내는 작가는 별로 없습니다.


심지어 무한전생이라는 아이템부터가 상당히 독특하고 흥미로운 캐릭터성을 부여하기도 하죠. 흔해 빠진 이고깽 비슷한 작품이나 먼치킨적인 작품이 아니라, 어느 정도 현실성이 느껴지는 개연성과 설득력 높은 인물상을 만들고, 그에 따라 발생하는 사건과 줄거리가 논리적인 흐름을 갖추고 있죠. 이러한 캐릭터성과 구조적 개연성은 작품의 몰입도를 높히는 요소죠.



무한전생 시리즈의 특징 중 하나는, 차기작일수록 전생 횟수가 적은 편이라는 겁니다. 현재 연재되고 있는(아직 카카오 페이지엔 안 올라옴) 나중에 몰아보기 위해 작품은 아직 안 봤기 때문에 어떤진 몰라도, 무림의 사부에서 망나니 쪽으로 갈수록 주인공이 부지런하죠.


이는 지나친 전생횟수를 가진 캐릭터는 너무 맛이 가버렸기 때문에 스토리를 주도적으로 흐르게 하거나 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인지, 능력을 부지런히 발휘하는 주인공이 보고 싶은 팬들의 성원을 따르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원래 그렇게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리즈 개성을 생각하고 작품을 만드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찌됐든 망나니로 갈수록 발암도가 줄어들고 주인공이 부지런해지는 것에 더해, 작가의 필력이 점점 더 안정되어 간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아무래도 무림의 사부 쪽이 워낙 스토리가 중구난방이다. 산으로 간다. 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는 작품이다보니 그런 분들에게는 망나니 편이 가장 안정적으로 굴러가는 작품일 겁니다. 실제로 전작들처럼 어디로 튀거나 하는 거 없이 정석적일 정도로 잘 전개된 편이기도 하고요. 물론 이전작이라도 나름의 논리적으로 이어지는 개연성 자체는 있었다고 보는 편입니다만.



이 작품에 높은 평가를 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작가의 조선 역사와 성리학에 대한 이해도와, 유교 국가로서의 조선의 구조에 대한 이해 또한 높았기 때문입니다. 한계가 있다면 유교 그 자체를 조선을 망친 사상 정도로 이해하는 부분인데, 필력이 워낙 뛰어나서, 또한 작품적 허용을 위해 과장되거나 보편적으로 구성하거나 하는 등의 부분들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도, 그러한 요소는 되려 조선과 성리학에 대해 독자들에게 호도하는 면이 있다고 보는 편입니다.


소설 같은 작품이 아니라 그냥 역사라는 분야에 있어서 조선, 특히 유교(성리학)은 필요 이상의 욕을 먹고 있고, 억울할 정도로 오해는 받는 면도 있기 때문에, 조선은 유교 때문에 망했다라는 소리를 엄청나게 들어오고 때로는 논쟁을 하기도, 논파하기도 한 적도 있는 본인 입장에서 그러한 요소는 사실 좀 불편할 수밖에 없거든요.


성리학의 구조적인 문제점도 있고, 유교가 조선을 망친 면도 분명하게 있지만, 사실 그건 유교라는 사상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운용한 사람의 문제이고, 그것을 견제하거나 올바르게 세우지 못한 것은 되려 사상보다는 현실정치의 문제라고 봅니다.


성리학이 아니더라도 조선의 문제들은 이전 시대나 동시대의 다른 국가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었고, 그러한 문제가 심화되어 멸망된 국가들도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유교, 성리학이 유교를 망쳤다고 하지만 반대로 유교 대신 기독교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조선은 똑같이, 비슷한 문제로 망해갔을 겁니다. 그러한 문제는 사상이나 종교,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그 자체와 집단으로서의 국가체가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까놓고 말해서 현 시대의 국가들조차 그러한 문제점에 대해 더 높은 수준의 시스템으로 견제 받고 억제 받는 것일 뿐이지, 아직도 그러한 문제에서 탈피한 것이 아니고, 어떤 면에선 과거보다 더 노골적으로 더 많은 욕망을 가질 수 있게 하기까지 하죠. 그만큼 고도화된 시스템과 방대한 자본에 의해 할 수 있는 게 더 많고, 그러한 것에서 얻을 수 있는 권력이 더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조선이라는 국가(작중에선 호선)를 망하게 한 것은 유교라고 보기엔 호도되는 면이 작지 않습니다. 물론 본 작품에선 현실에서 모티브를 따온 세계관의, 호선이라는 가상의 국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고, 위에서 말했듯이 작품의 전개를 위해 과장되거나 보편화시켜야 하는 면도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작품적 허용으로 본다면 아무런 문제는 없겠죠.


오히려 그러한 것이 더 이해하기 쉽고 전개하기에도 수월하며, 불필요한 설명과 서술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단순화가 작품의 재미를 보장하는 것도 물론 기법이라는 건 납득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비판을 하는 이유는 조선, 역사에 대한 오해가 발생할 수 있음을 여러곳의 많은 이들에게서 경험해봤기 때문에 하는 거죠.



어찌됐든, 그러한 요소들을 감안해도, 무한전생-망나니라는 작품에서 서술하고 설명하는 조선(작중 호선)의 구조와 성리학적 구조를 이용하고 오남용하는 사대부의 행태, 붕당 등의 파벌정치의 문제, 왕권과 신권의 대립 등을 상당히 쉽고 깔끔하게 정리했다는 점은 굉장히 높은 평가를 줄 수 있는 부분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한 조선의 정치와 계급과 사상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부패의 구조는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면 알 수 없고, 묘사하기 난해해지는 것들이기 때문이죠. 숱한 작가들이 이러한 조선을 모티브로 한 국가나 가상의 배경의 가상의 국가를 묘사하면서 그 정치구조나 계급이나 파벌, 진영간의 관계 구조가 현실성이 없거나 수준 자체가 너무 낮은 이유는, 양판소 수준의 낮은 이해를 가지고 섣불리 시도하기 때문이죠.


거의 딱 중학생, 잘해봐야 고등학생 수준의 이해를 가지고 잘 모르는 것을 묘사하려니 현실성이나 개연성의 수준이 팍 떨어지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광악 작가는 상당한 공부를 한 것이 보이고, 그에 대한 이해 또한 상당히 높은 수준이죠. 어느 면에선 배울 정도이고, 사실 이 작품에서 조선과 사대부에 의해 만들어진 구조에 대해 '공부'하게 된 사람들 많을 겁니다.


심지어 광악 작가는 전투나 전쟁 묘사에 대해서도 상당한 필력을 보여주는데, 그 정도 지식과 이해도를 가지고 전투씬을 서술하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정도겠죠. 초반부터 후반까지, 처음 어머니가 죽고 윗대가리 털러갈 때부터의 개인의 무력이나 이후 야차대를 운용할 때나, 그 이후 수 차례의 반역을 진압하고 북방에서 날뛰고 왜군과 싸우는 때까지 상당히 설득력 있고 유효한 전술과 전략으로 묘사를 합니다.


현실적 개연성이 있는 조건들을 가지고 잘 버무린다고 할까요? 개인의 무력 부분이야 전생의 짬밥이라는 면에서 넘어가는 면도 있지만, 사람 잡을 때의 능력 또한 통할 법한 수법을 사용하는 묘사를 하고 있고, 군대를 동원한 전쟁에서 또한 징집병의 떨어지는 사기+훈련도, 실전 경험이 거의 없는 사대부의 한계를 절묘하게 노리는 전략과 전술을 동원하죠. 


개인이나 극소수의 깽판질이 아니라 사보타주와 암살 등의 군사적 테러에 가까운 전술로 전략적 이득을 가져오고, 군대간의 전투에 있어서도 용양군이 제대로 운용되기 전까지는 비정상적인 정예도나 단지 지휘관이 지휘를 잘해서 높은 전과를 낸다 수준의 양판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편한 전개보다는, 도성 내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적의 행동을 강제 및 통제하고, 유효한 타격을 낼 수 있는 방식으로 공격하며, 기름통+불의 화공 및 화약통 폭발로 인한 급격한 모랄빵을 이용한 전술들은 광악의 필력과 함께 상당히 견실이 묘사되었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결코 유치하거나 억지스럽지 않게 묘사가 되고, 물흐르듯 자연스럽고 개연성에 있어서도 납득이 될 정도로 잘 썼다는 겁니다. 이런 면에서 특히나 양판소들과는 다르다는 평가를 줄 수밖에 없고, 작품 내에 필요한 부분들에 대한 요소들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다는 거죠. 이전작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사실 이런 장르를 가지고 양판소 작가들은 현대인 천재론을 위시해서 이세계물 비슷하게 이고깽 소설을 써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른 일본산 이세계물에서 볼 수 있는 웃기지도 않을 몰이해와 지식 수준으로 깝치는 것들은 어디까지나 소설이기 때문이고, 작가의 수준이 낮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겁니다.


특히 역사와 관련된 이고깽질은 더 유치하기도 하고 역사적 열등감이 묻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슷한 장르의 다른 웹툰이나 소설들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죠. 어떻게 보면 역사적 열등감에 따른 자위질이라고도 볼 수 있을 정도로요.


근데 망나니는 그러한 유치함이나 저열함으로 흐르기 쉬운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성을 기준으로 그러한 맥락이 형성될 수 없도록 틀을 잡아 놓고, 작가의 지식과 이해도를 기반으로 구체적인 묘사와 서술을 통해 오히려 조선(작중 호선)이 가지는 문제의 본질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김찬석이라는 무한전생자의 깽판과 대책으로 가상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죠.


이러한 구조와 전개는 앞서 지적하는 역사 자위물들과 다른 인식을 만들죠. 솔까 호선이 앙국보다 국력이 2배 이상이라는 부분에선 그게 될 수 있는 것인가와 이건 좀 국뽕이다 싶을 정도의 거부감이 느껴지는 무리함이 발생했다고 보지만, 그런거 제외하면야 뭐.. 쉽게 말해 유치하지 않았다는 거죠.


이고깽질하고 되도 않는 이해도로 개떡 같은 걸 해결책, 대응책이랍시고 제시하면서 양판소 만드는 것보다, 현대적 지식을 갖추고 있는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유효한 해결책이나 대책을 보는 사람(또는 작가 본인)이 역사적 열등감에서 기인하는 오르가즘을 느끼기 위해 쓰는 게 아닌, 주인공이 양반 사대부를 존나게 엿을 먹이겠다는 목적으로 목적성을 부여하면서 개연성을 만들죠. 


물론 그러한 양반을 조지겠다는 목적성 자체가 어떤 면에선 개연성이 부족하기도 하고, 너무 성의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비판은 피할 수 없다고 봅니다. 다만 어느 정도 쉴드를 쳐주자면 지난 몇만년 정도였나, 그 정도를 밑바닥 인간으로 전생을 해온데다 마침 빡치는 좆같은 일이 터진 김에 양반에게 자기 속풀이 존나게 하는 거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에 개연성에 있어서 근거는 확보해놓은 거죠. 그리고 이 정도 개연성도 제대로 구성해놓지 않은 작가나 작품들을 생각해보면 뭐.. 이 정도면 (아이러니한 표현이다만) 양반인 셈이죠.



하여간 무한전생-망나니는 작가의 필력과 여러 분야에 대한 높은 수준의 이해, 지식, 작품을 이끌어가는 구조적 흐름 등 유치하거나 국뽕 쩔게 자극하는 물건으로 저열화되지 않으면서도 흥미와 재미, 심지어 어떤 면에선 독자로 하여금 역사적 지식을 얻게 하는데에 성공한 작품이라고 봅니다.


확실히 작가가 아는 게 많고 필력이 좋으니 작품이 잘 나온다 싶습니다. 심지어 그 두개를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개나 완결에서 실패하는 이들도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광악 작가는 상당히 뛰어난 작가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망나니 편은 발암이 거의 없었고, 전개도 시원하게 잘 나갔기 때문에 광악 작가의 무한전생 시리즈에 입문하기엔 가장 좋은 작품이라 보기도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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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 마오쩌둥



권력의 실체는 무력입니다. 정당성도, 권위도, 명분이 없어도 원하는 바를 실현시킬 수 있는 힘은 오직 폭력에서만 나옵니다. 그리고 정부란 그러한 폭력을 정당하게 독점하고 있는 공동체 유일한 조직이죠. 따라서 국가의 가장 강력한 힘은 군대와 경찰에게서 생산되는 폭력이며, 그것을 잃는다면 정부는 존속될 수 없고, 국가는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한 위험 때문에 군대는 국가에게서 반드시 필요한 불가결한 조건이며, 동시에 군대가 총을 거꾸로 겨냥하는 일을 막기 위해 반드시 통제해야 하는 위험 또한 동반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제 3세계의 국가들은 언제나 쿠데타의 위험이 있고, 쿠데타를 겪기도 하는 등 군부의 통제에 힘겨움을 겪고 있습니다.



마오쩌둥의 저 말을 전근대 시대에 맞게 바꾼다면, 권력은 칼 끝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떤 국가든 최고 권력은 결국 실력에서 나오는 것이고, 모든 실력의 우위에 설 수 있는 힘은 오직 폭력 뿐이죠. 그러한 폭력을 언변이든, 카리스마든, 재력이든, 혈통이든, 인적물량이든 어떤 방법으로든 독점하는 자가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들을 우리는 주로 왕이라고 불렀죠.


그러나 국가는 여러 변화를 거치게 되고, 국가의 크기와 복잡성이 더해지며, 통치를 위한 더 나은, 더 세련된 방법론이 필요하게 됨에 따라 여러 견제장치 또한 발생하게 됩니다. 주로 왕권과 신권의 대립으로 대표되는 경쟁과 견제 또한 그렇죠.



조선에서 유교를 비판하는 이들은 무의미한 붕당놀음과 당리당략에 따른 무익한 정치싸움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고들 합니다만, 실상 조선이 멸망한 이유는 되려 유교적 질서의 붕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13/12/01 - [취미/이야기] - 유교에 대한 오해, 유교는 어떻게 사람을 통제하였는가.


먼저, 조선은 유교라는 통치 시스템을 국시로 삼았고, 이것을 근본으로 하게 됩니다. 국가 정체성이 유교 성리학에 있다보니, 이것을 거스르거나 무너뜨리는 일은 곧 역모, 반란, 반상의 법도를 뒤엎는 죄악이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민주주의를 국가의 근본 정체성으로 삼으며, 이것을 무너뜨리거나 위협하는 일은 반체제적 범죄로 여기거나, 최소한 반체제적인 행위라고 비판을 받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조선은 약 200년간 평화기를 거쳤고, 그 동안의 군주는 꽤 뛰어난 이들이 많았습니다. 태조부터 세종, 심지어 선조에까지 나름 뛰어나고 훌륭한 왕들이 많았으며, 왕권 또한 높은 편이었죠. 선조 또한 능력은 뛰어났으나, 소인배적이고 책임감을 짊어지지 못하는 찌질함은 그의 평가를 뒤엎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조선은 거대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왕의 무능과 초기에 속수무책으로 밀린 패배의 쇼크는 왕권을 흔들었고, 조선의 무력에 회의를 주는 사건이 되었죠. 물론 어느 정도 복구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훗날 이괄의 난으로 날려먹고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으로 권위도 실력도 날려먹게 됩니다.



이 두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왕권의 실추에 기여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왕이 궁궐, 도성을 버리고 도망을 갔고 왕이 오랑캐들에게 머리를 박으며 굴욕을 보였다는 희대의 사건으로 하여금 조선 전기의 왕권은 중기, 후기를 거치는 동안 추락할 수밖에 없었죠.



더불어 신하들 또한 왕을 위해서 일하는 자들만은 아니었습니다. 뛰어난 학식과 배움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에 정치에 대한 감각은 남달았고, 그런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선 당연히 모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익과 손해, 다른 권위와 권력에 의한 축출을 방지하고 방어해내기 위해선 조직을 이룰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똑똑하고 조직력 있는 세력이 신권 하에서 발생하게 되었기에, 왕권은 더 거대해지고 강력해진 신권 세력과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공격을 해도 유교적 원리 하에 있는 성현의 말씀을 명분으로 삼아 방해해버리기 때문이죠. 그러나 말은 맞는 말이고, 논리도 겉으로는 타당하기 때문에 그들을 견제하려면 무력이 있거나 지력이 어마어마한 천재거나 해야 했습니다만..


하여간, 붕당이라는 게 그래서 생겼고, 붕당정치가 그래서 생겼으며, 환국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왕이라는 것은 하나의 명분입니다. 성리학이라는 정치철학, 사상 내에서 왕은 충성의 대상이었고, 하늘과 같이 여겨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만만해도 정당한 명분이 없이는 함부로 폐위시킬 수 없었고, 겉으로는 따르거나 통치를 위한 일이라 포장을 해야 했죠.


물론 그 목적은 왕권의 견제, 혹은 실추를 위한 정치싸움이었습니다. 가령 말하자면 이런 건데, 왕권을 견제하고 차기 왕권의 실추를 위해 세자의 흠을 잡아 세자를 폐하고 다른 대군을 책봉하라는 등의 주장이라던가 하는 게 있겠죠. 



따라서 왕의 입장에선 신하들이 모두 모여서 왕권을 견제하는 것보다, 서로 싸우게 분열시키는 게 올바른 판단이었습니다. 그런다고 명분도 없이 신하들을 죄다 도륙해버리거나 누구 하나 꼬투리 잡아도 자기들끼리 뭉쳐서 보호해주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실각시키는 데 실패한 책임이 그대로 역공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붕당정치는 왕권의 신권에 대한 견제책이었습니다. 서로 분열하여 서로 당리당략을 위해 싸우는 것이 서로 힘을 합칠 수 없게 하고 그들의 역량을 스스로 갉아먹게 만드는 방법론이었죠. 물론 이러한 것의 문제점은 진짜 국가의 통치를 위해서 일하기 보다는 당리당략과 같은 자기 진영의 손익에 대한 싸움으로 환원되어 버린다는 문제가 있고, 그렇다 해도 왕권을 위한다는 건 또 아니라는 겁니다. 왕권이 적극적으로 기를 피려 한다면 차라리 뭉치게 되어 버릴 수 있다는 점이죠.


근데 진짜 붕당정치의 문제는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러한 붕당이 너무 오래 되었다는 겁니다. 차라리 지속적으로 솎아내거나 한번 쓸어버려서 다른 정치토양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왕의 역량 탓인지, 신권의 힘 때문인지 그러지 못했죠.


붕당이 너무 오래된다면, 서로 싸우기 보다는 서로 야합하게 됩니다. 겉으로는 서로 견제하고 싸우는 모양새를 하지만, 진짜 위험하거나 곤란할 때는 서로 적당히 타협하고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으며 협력하는 관계가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게 더 쉽고 편하고 안전하기 때문이죠. 


물론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를 아예 못한 건 아니고 여러 환국, 사화를 통해서 그럭저럭 성과를 보긴 했습니다. 가령 경종이 대리 청정의 문제로 함정을 판 뒤, 영조를 지지하는 노론의 수뇌부를 대거 숙청하고 삼수의 옥이 터지면서 다시금 죽이는 등의 성과를 손꼽을 수 있죠.. 그러나, 결과적으로 붕당정치는 조선의 역량을 갉아먹고 왕권이 주도권을 잡아서 이끌지 못했다는 점에서, 결국 신권에게 사실상 패배하게 되는 시점까지 온다는 점에서 성공한 정치까진 아니지 싶습니다. 



그런 신권과 왕권의 대립에서 왕권이 힘을 키우기 위한 여러 방법론은 몇 있었는데, 그건 바로 군사력입니다. 실질적인 힘이 있어야 권력은 보장되고 휘두를 수 있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 전통적인 방법론이 바로 북벌론인데, 효종 같은 경우 삼전도의 굴욕으로 땅에 떨어진 왕권을 높히기 위해 청나라에 복수하자는 명분을 걸고 시작한 일이죠.


당연히 명분이 있고, 내부적인 정치보단 외부적인 일이기 때문에 견제하기 까다로운 일이기도 합니다. 실제 청나라에게 굴욕을 본 것도 사실이고, 이에 대한 복수를 천명한다면 이를 막을 논리를 많지 않죠. 대놓고 그 군사력으로 우리 견제하는 거 아니냐. 같은 소리를 대놓고 할 수는 없으니 사공농상과 같은 명분으로 그렇게 징집하면 농사지을 인력이 부족하게 된다거나, 결국 모든 것은 백성들의 부담으로 돌아가니 민심을 생각하라는 등의 논리를 써야하죠. 물론 그런 논리라도 쪽수가 모이면 왕의 논리와 명분 또한 큰 견제가 됩니다만.


그러한 북벌론은 효종 때만이 아니라 숙종대까지 올라가는데, 그 때쯤 가면 제대로 먹히는, 약빨이 되는 명분이 아니기 때문에 써먹을 수 없게 됩니다.


그나마 정조 때의 왕권강화책은 꽤 성과를 봤는데, 수원화성 같은 것이 그렇습니다. 수원화성의 건축 목적이야 여럿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군사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성을 만들고, 군대를 주둔하게 한다면, 수도인 한양과 아주 멀리 있는 것도 아닌 수원은 언제든 신권을 견제할 수 있는 실질적 무력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실패하게 되는 것이, 순조 대부터 발생하게 되는 세도정치로 완전히 터져버리게 됩니다. 왕권의 신권, 그것도 특정 세도가문이 독점하는 명분이 되어버리고, 왕권이란 그 가문의 도구로 쓰이는 꼴이 되어버리죠. 



이러한 모든 맥락은, 왕에게 충성하며 섬기고, 백성을 하늘로 여기며, 예를 지켜야 할 사대부들이 그러한 원칙을 명분삼아 자신들의 경제적, 정치적 권세를 얻기 위해 남용한 결과입니다. 왕을 섬겨야 하는 이들이 왕을 견제하기 위해 세력화하고, 왕권의 성장을 억제하며, 백성을 노비로 만들어 역과 세에서 면제를 받아 결과적으로 역과 세를 통해 부강해져야할 국가, 왕실의 권력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반대로 사대부 가문들은 더 많은 노비들을 소유하게 됨에 따라 더 많은 땅에서 재산을 창출해낼 수 있게 되죠.


심지어 그러기 위해 일부러 양민을 노비로 만드는 여러 정책, 수작질을 벌이며 소작 때는 양민들을 노비로 만들어 재산화 하였고, 권세를 더 불리기에 바빳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국가적으로 발생하는 것이고, 그 규모가 결코 작지 않았기 때문에 훗날 조선의 경제적 구조를 무너뜨리고 지속적 발전과 안정을 해치게 됩니다. 


이러한 굴레는 국가 멸망테크로 돌아가게 되어 있죠. 


2013/11/09 - [취미/이야기] - 망국의 징조.


그래도 조선이 500년을 간 걸출한 국가라는 것을 반증하듯이, 노비종부법(결국 망함), 속오군(정작 군사적 효용이 영..) 등 여러 정책을 통해 노비를 줄이고자 했고, 실제로 조선 후기로 갈수록 노비 자체는 줄어듭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양민들의 삶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는데, 여러 이중적인 착취와 그나마 다른 나라보단 나았긴 했다만, 역과 세의 부담, 사실상 임노동자 및 사대부에 예속된 소작농 인생이라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노비보다 못한 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차례 양민에서 노비가 되는 게 유행하거나 그렇게 부담을 피하고자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죠.



뭐.. 결국 모든 국가들이 다 그렇지만, 왕권과 신권의 견제는 항상 있었고, 그 난이도도 높았으며, 그렇기 위해 왕은 반드시 뛰어나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군사력을 기반으로 하는 강압적 절대왕권이라도 가지고 있었거나.. 물론 그게 더 낫다는 보장은 없다만.


조선 또한 다를 게 없었던 겁니다. 단지 더 뛰어났기에 더 오래 갔을 뿐. 조선은 유교 때문에 망한 게 아닙니다. 부정부패 때문에 망한 거고, 정치싸움 때문이라곤 하지만, 그 또한 그나마 차악적인 방법론이었을 뿐입니다. 조선이 멸망한 것은 오히려 성리학적 질서의 붕괴 때문이라고 봐야죠. 왕을 섬기지도, 백성에게 베풀지도 않으며 그것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려 했으니. 성리학과 성현의 말씀을 명분과 정당성으로 이용했을 뿐 결코 성리학적 통치와 정치가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한국도, 다른 나라들도 그 나라의 사상과 이념, 정치적 정체성과 그 방법론을 이루는 논리와 명분, 절차, 정당성을 이용해 그 사회의 이익과 질서를 역행하는 행위를 하는 이들이 얼마나 됩니까? 정말 많습니다. 단지 조선은 그 싸움에서 왕권이 패배했을 뿐이죠. 멸망하는 모든 국가가 다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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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https:// BlogIcon 지나가던행인 2018.12.07 20:38 address edit/delete reply

    논리와 명분, 절차, 정당성을 이용해 그 사회의 이익과 질서를 역행하는 행위를 하는 이들...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놈들이죠...

    근데 요즘은 세상이 맛이 간건지 제가 맛이 간건지

    논리도 없고 명분도 없고 절차도 없고 정당성도 없이 나대는 놈들이 하도 많아진거 같네요

  2. Favicon of http://https:// BlogIcon 지나가던행인 2018.12.07 20:41 address edit/delete reply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조선이 병자호란을 겪고 한번 지도층이 물갈이 되었다면,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다면, 조선이 우물 안 개구리에서 좀 더 탈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망상을 해봅니다.

    거두절미하고, 조선이 추구한 유교적 이상향은 군사력없이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몽상과도 같은 살얼음판이었군요. 역사라는게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나 가부장제도에 대해 비판을 하면서 흔히들 유교를 가져오기 마련인데, 사실 유교 입장에서는 굉장히 억울한 처사일 겁니다. 기실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 가부장제 등 많은 부조리는 조선시대 유교가 아니라 일제시대의 전체주의, 군국주의적 파시즘에서 출발했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그 견고한 관료제와 중앙집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유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전근대시절에 아무리 강한 왕권이라 하더라도, 견고한 관료제라 하더라도 전근대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유교라는 것은 그것을 어느 정도 가능하게 해줬지요, 개인레벨에서의 덕와 인, 의, 충, 효를 실행하게 만드는 이념으로서 공자식 윤리관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공자가 말했듯, "법으로 이끌고 형벌로 다지면 백성은 빠져나가려 하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덕으로써 이끌고 예로써 다지면 부끄러움을 느끼고 나아가 선하게 된다." 같은 방식으로,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부덕과 위법을 행하지 않게 함으로써 말단부터 중간관리직, 고위관직자들까지 부정과 부패를 행하지 않게하는 방식이었죠.


물론 이런 말따먹기가 잘 먹혔느냐하면, 안 먹힌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가 세상의 원리를 정의하던 시대에 기독교를 씹고 지 멋대로 행동하다간 잘해봐야 잡혀 들어가거나 욕이나 들어먹지만, 심하면 이단취급 받으면서 적극적으로 박멸을 당하게 됩니다.


유교가 국가, 사회시스템으로써, 그 근본을 이루고 있는 시대에 이러한 원리원칙을 벗어나고 무시하며 행동하면 잘해봐야 천한 놈, 망나니 소리를 듣지만, 심하면 우스갯소리지만 예의가 없다며 목이 날아가는 일도  생길 수 있죠. 유교라는 시스템 안에서, 그 시스템에 대한 다른 대안이 없는 관계로 그것은 어쩌면 강제되는 것일 수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꼭 강제된다고 표현하기에도 애매한 것이, 당연하지만 자발성 또한 십분 발휘되기 때문이며, 그 이유는 단지 그것이 시스템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옳고 합리적이며 합당하다 여겼기 때문이겠지요.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실용적 유교노선이 일상의 레벨까지 침투하여 정착한 것을 생각해 봅시다, 조선망국론, 유교망국론이나 맹신하는 이들이 유교라는 것이 순 명분주의에 허풍선이 양반들만 가득 만들어냈기 때문에 위선자들만 가득한 조선이 망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론 일상적인 삶의 레벨에까지 침투한 유교는 사회구조에 있어서 착취와 피착취자의 관계 사이에 발생하는 긴장과 갈등을 상당한 정도로 봉합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유교적 질서에 따라 짜여진 상하관계에 있어서 강조되는 것은, 서로에 대한 도덕적 의무이고, 그러한 한편 구차하고 복잡한 예법을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론 사회의 지배 계급으로 있는 자와 그 아래에 있는 자들 사이에 서로가 마땅히 지켜야 하는 상호존중과 상호의존으로 서로간의 관계를 조율했고, 그것에 지나침이 없도록 지속적으로 규제하고 감독하는 통합적인 도덕률로 작용했습니다.


실제로 암군, 혹은 폭군으로 알려진 왕의 집권기간에조차 지배계급 내에서 그것을 꾸준히 비판하는 세력은 존재했고, 그 여파가 사회적 혼란이나 질서의 상실로 이어질 우려가 있을 때에는 심지어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것에 대해 간하고 상소할 수 있는 인재풀이 꾸준히 유지되었으며, 지방에 퍼진 악정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우리가 오늘날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악정의 존재를 알고 그것을 공식적으로 기록한 자료가 남아 있기 때문인데, 그것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것을 기록했다 함은 지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악정에 대한 사실을 중앙에서 감지하고 알아 차리고 있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따라서 폭압과 학정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일은 드물었고, 언제나 유교적 도의에 따라 마땅히 백성을 위한 최소한이나마의 구제책을 생각해야하는 의무를 지배계급에서 지속적으로 인정하고, 또 인식하고 있었으며, 그 결과 백성의 불만이 팽배할 때마다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느 시정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체제에 대한 백성의 신뢰를 굳게 만들 수가 있었지요.


물론 조선 후기쯤되면 그러한 질서나 구조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백성들의 신뢰를 잃고 각지에서 반란, 도적이 심심찮게 등장하며 사회를 더욱 혼란시켰으나, 그 이전까지는 이러한 구조에 의해 잘 유지되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유고적 통치의 정도는 백성을 결코 무시하지 못했습니다. 백성과 민의는 곧 번잡하고 여러 목소리로 나뉘어 있기는 할지라도, 그것이 지난한 천의를 내비치는 것이며 민심을 얻을 수 있냐 없냐는 권력의 기반 그 자체의 접합력을 결정짓는 요소였고, 바꿔 말한다면 백성이 유교가 가르치는 상하의 관계에 복종하고 납득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상호간의 덕과 인과 예로 맺어진 관계가 실제로 어느 정도 상반되는 계급 사이의 도덕적 공존을 가능케한 측면이 크기 때문이겠지요.



유교적, 성리학적 이데올로기는 그 당시 조선이라는 국가와 사회의 통합과 유지에 있어서 엄청난 기여를 했고, 실제로 그러한 것이 효과가 있었으니까 500년이나 이어진 겁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서양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그것을 명문화하고 그것을 행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라고 만들어놓은 것이 바로 유교, 성리학적 이데올로기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의 임금과 관료계층은 항상 백성의 기근이나 흉년에 대해 끝없이 염려하고 잘못된 행정에 대한 시정책이 올라오고, 학정을 감지해내고, 인재를 쇄신하고, 무능한 자에 대한 비판과 탄핵이 올라오는 논의가 집중적으로 이어졌지요.


심지어 (뭐,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실제로 기근이나 흉년이 들었을 때 곶간을 열어 백성들을 구휼하는 제도가 있었고 실제로 행해지면서 백성들의 불만을 최대로 낮추려 노력했습니다. 임금 또한 나라가 어려워질 때, 백성들이 힘들어한다면 백성들이 그렇게 힘들고 먹지 못하는데 어찌 임금된 자가 배풀리 먹을 수 있겠느냐며 스스로 밥상 첩의 수를 줄이거나 고기 등의 반찬을 빼도록 지시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뭐, 그 조차도 안 하면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심각한 민란으로 번질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하고자 했을 수도 있지만, 조선이라는 국가와 그 국가의 관료들이 민의나 민생을 생각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국가적 레벨에서도 그러할 진데, 그러한 관료계층을 이루고 있는 양반 개인의 레벨에서도 이러한 태도는 유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양반으로서의 품위를 위해 낮은 자를 막연히 하대하지 않고, 혹여 양반이 마음대로 노비를 죽였다면 그에 대한 처벌은 충분히 받았습니다. 노비를 함부로 죽일 경우, 처형당하거나 귀향을 가는 사례가 실록에 분명히 적혀있지요.



더욱이 상소라는 면에서도 상당히 재미있는 것이, 기생첩이 남편을 비판하는 상소문을 임금께 올린 것을 볼 수 있겠지요. 상소라는 것은 남녀노소는 물론 노비까지도 쓸 수 있었습니다. 훈민정음의 등장 필요성의 근거 중 하나가 어려운 중국의 글자보다 쉬운 우리의 글자를 만들어서, 남녀노소, 어른과 아이 할 것없이 배우고 읽고 쓸 수 있게 하는 것이었고, 실제로 한글 상소를 허용했었지요.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임금에게 있어서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라고 볼 수 있는데, 상소가 많으면 많을 수록 스스로의 업무를 과중하게 하는 까닭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렇게 만든게 바로 임금 그 자신이죠.


하여튼, 유교에 있어서 상하의 관계를 엄중히 규정해둔 것은 그러한 질서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된 도리라 여겼기 때문이고, 그것은 아랫사람이 웃사람에게 복종하고 공경할 것을 종용하는 동시에 윗사람 또한 마땅히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엄격한 상호질서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 앞의 즉물적인 관계를 떠나 보다 큰 차원에서 웃사람이 못난 모습을 보인다면 주변인들에겐 그것을 일깨워줘야 하는 사회적 책무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고, 특히나 아랫사람의 그러한 행위 또한 충忠의 중요한 일부분으로 간주됩니다.(임금의 잘못된 선택에 수많은 관료가 반발하는 이유는 임금이 우스워서가 아니고, 폭군이나 암군이 악정을 저지른다 하더라고 양심있는 관료들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반발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웃사람의 실책을 고발하고 심지어는 꾸짖는 행위에 있어 그 고발이 준엄하게 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면, 오히려 그것을 칭찬할 덕목으로 간주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노비가 주인이나 집안 어른의 범죄를 눈감는 경우 불고지죄라 하여, 그것을 고하지 않은 죄가 성립되기도 한다고 하죠.


물론 이는 원칙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로 사람사는 세상에서 아랫사람이 웃사람을 까는건 어디서나 탐탁치 않게 여겨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런 까닭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야 있는 일이다만, 상소라는 것은 아예 정치시스템적으로 유교의 그러한 이상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보적이고 합리적이나, 다만 그러한 상징성이 있기에 상소에 올라온 내용을 문제삼아 상소를 올린 사람을 문제삼거나 처벌하는 행위는 아무리 대단한 군주라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덕적 의무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웃사람을 능멸하는 아랫사람의 문제와, 불의를 고발하는 호소의 경중을 항상 신중하게 저울질해야 했다는 뜻이니까요.


대놓고 상소를 올린 사람을 처벌하자는 것은 자신들이 믿고 따르며, 옳고 맞다고 여기는 것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조정에서는 한바탕 거대한 키배가 터질 겁니다..



이제 좀 더 개인의 레벨에서의 유교를 살펴보자면, 유교에 있어서 삶과 죽음보다는, 죽은 후에도 삶은 후속의 기억으로 연장되어지고 자신을, 자신의 삶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많을 수록 그 삶은 연장되어지는 것이기에 현생에서의 삶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는가라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이 됩니다. 충이라는 면에서 임금의 잘못을 고하고 사약을 먹든 목이 베이든 충신으로서, 강직하고 담담하게 국가와 민생, 임금을 생각하며 죽는 것이, 비열하고 찌질하게 왕의 비위를 맞추는 말만 내뱉으며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고, 자신의 그런 행위를 기억하는 수많은 이에 의해 위대한 신하가 될 것이니, 바로 그러한 이유로 죽음을 마다하지 않은 충신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을 기억해주기 바라는, 유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자신을 기억할 수 있게 일기를 쓰고, 그것을 후손에게 넘겨주려 노력하는 것은 역시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후손들은 선조를 잊지 않았다는 증거로서 제사를 올립니다. 오래전 제사를 올릴 때면 어른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이들에게 이 제사는 너희 몇대 할아버지이고 무슨 일을 하셨고, 어떤 명성을 가지셨다며 설명했다고 합니다. 이는 기억을 통해 시간을 초월하여 선조들과 후손이 함께 살아간다는 의식적인 행동이지요.


흔히 말하는, 죽어서 조상님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와 후손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라는 과거와 미래가 현재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한 개인의 도덕성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핏줄과 기억이라는 강력한 도덕적 올가미를 씌우는 것이죠. 따라서,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행동하기에 앞서 과거의 선조와 미래의 후손이 지금 내 행동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당연히 고민하게 됩니다.


조선의 유학은 이런 혈연관계에 의존하던 방식을 국가적인 수준으로 확대한 것인데, 즉, 가능한 최대한의 기록을 통해 선조와 후손을 연결하고 이를 통해 관료주의의 약점인 부패를 극복하고자 한 것이죠. 또 거대 자본의 형성으로 인한 사회불안이 고려 말기의 사회적 문제였기에 유교적 사상 중 종교적인 측면을 강조하여 전국민에세 몇몇 유교의 행동원리를 종교화시켜 퍼뜨렸습니다. 어차피 선비나 글 공부하는 양반 정도의 계층이 아니라면 유학을 깊이 이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니까요.


덕분에 이러한 거대자본에 대한 거부감은 예술로써 승화하게 됬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조선 백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조선이 중, 후기에 접어들면서 이런 유교적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거대 문중의 출현과 이들이 역사기록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기록을 바꿔버리는 문제가 발생해버린 것이죠. 심지어 상당수의 기록들이 자기 변명을 위한 도구로 변질되게 되는데, 원균의 후손들과 그 문중의 행태를 보면 쉽게 이해가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사실과 다른 기록으로 후손들에게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는 것이죠.. 유학은 원래 통치철학이었고 종교적 형태가 가미된 것이기 때문에 이런 행위는 오직 국가의 기록으로만 제어가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국가 시스템이 붕괴하는 시점에선? 이런 행위들은 더이상 동식 역사를 통해 제어될 수 없게 되겠지요. 문중은 국가기관보다 더 강력한 권력집단으로 성장해버렸고 그 정치적 권력을 통해 경제력 또한 손에 넣었습니다. 조선 개국의 사상적 바탕이었던 거대한 자본세력의 억제 또한 무너지게 되죠. 정치력, 경제력, 심지어 기록조차 좌지우지 할 수 있게 된 거대 세력의 등장은 유학의 기본이념조차 붕괴시키고 유학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면서 유학에 기존 토착 종교들이 혼합되어지는 지경이 이르럽니다.


초기 조선의 유학은 후기 조선의 유학과 다릅니다. 후기의 것은 .. 조선 말기에 변질되어버린 기형적 돌연변이 유교지요. 유교, 유학이 중국과 조선 등의 국가적 이념으로서 수백에서 수천년간 바탕으로 깔리면서 후손들이 기억해 줄 것, 선조들이 함께 해줄 것이라는 결코 의심하지 않았던 것, 견고했던 그 시스템이 붕괴됨과 함께 누구도 자신을 기억해주지 않을 것이며, 만일 기억해준다면 지금의 권세와 돈으로 충분히 조작을 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자, 이에 대한 억제력이 없었던 유학은 그 순간 붕괴해버린 것이지요..



우리는 유교, 유학에 대해서 너무 모릅니다. 왜냐하면 아무로 가르쳐주지 않거든요. 단지 그런 것이 있었고, 그것이 어느 시대 어느 왕조의 기본 통치이념이었고 하는 것은 알고 사서삼경, 논어 등을 공부했다는 것은 알지만 그 내용은 무엇이고 이런건 모릅니다. 단지 그 중에서도 안 좋아보이는 것, 예컨데.. 가부장제, 사공농상, 권위주의만을 쏙 뽑아다 유교가 이렇게 나쁜 것이다 하는 것이죠.


실상은 그 모든 것이, 대부분(아 물론 사공농상은 조선의 것이 맞습니다만.. 이 또한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지요.) 일제시대때 강제로 이식된 전체주의적, 군국주의적 파시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전혀 모른듯 합니다. 그러니 애꿎은 유교를 가지고 역정을 내는 것이지요.. 만약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헷깔리게 만들어 일제시대의 파시즘과 병영문화가 아닌 유교를 욕보이게 한 것이라면.. 정말 훌률할 정도로, 기가 막힐 정도로 영악하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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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게리영 2017.07.22 21:44 address edit/delete reply

    지금에 와서 유교가 전체를 통치 못한것은,,,, 좋지 않기 때문

    • Favicon of https://konn.tistory.com BlogIcon Konn 2017.11.07 19:12 신고 address edit/delete

      뭔 헛소린지.. 유교가 망한 건 조선 후기 성리학적 질서가 무너진 것도 있지만, 그런 문제를 떠나서 일본이 의해 식민지배를 당하면서 왕조도 같이 없어지고 당연히 유교적 가치관과 질서 또한 없어진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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