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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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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익부빈익빈'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22.05.12
    자본주의는 또 다른 한계점을 맞이하는가. 4
  2. 2014.03.18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원인과 그 주동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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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다른 곳에서 대화하다 나온 이야기인데, 전부터 생각을 좀 정리하던 게 있어서 여기에도 마저 정리하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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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또 다른 한계점에 맞이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경제적 양극화, 부익부 빈익빈이 너무 심해졌습니다. 수치적으로도 수십 년 전과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임금격차, 자본 격차가 발생했어요. 부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격차는 80년대~90년대까지만 해도 그리 크지 않았던 걸로 압니다. 한국 또한 대졸자와 고졸자의 소득을 비교하면 예전에 비해 지금 격차가 훨씬 커졌고요.

 

 

 

문제는 어느 나라든 중산층이 얇아지고 있는 상황이며 이렇게 중산층에서 탈락하여 빈곤층, 저소득층이 되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매우 위험하고 위태로운 상황으로 이어집니다. 사회불안과 불만은 더욱 커지고, 정치와 사회에 대한 고민과 관심 역시도 줄어들고 포퓰리즘이 횡행하게 됩니다.

 

또 이런 상황에서 파시즘이나 그와 유사한 극단주의가 발생하기 너무 좋은 환경이 됐죠. 나치 독일은 대공황과 인플레이션에서 급격히 성장했고요.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자신의 계층이 하락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경제적인 이익은 이념과 사상에 무관하게 호응받을 수 있는 주제이며, 그것이 설령 가능성이 없고 실현 의지조차 없더라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처럼 하는 말, 혹은 국익을 저해하고 미래를 팔아서라도 당장의 생존에 직결되는 이익을 가져다준다면 사람들은 그것에 환호하고 지지를 표할 겁니다.

 

 

트럼프는 그러한 환경에서 당선되었죠.

 

 

 

문제는 이젠 물리적 방법(혁명)이나 정치적 방법(개혁) 역시 쉽지 않아 졌습니다. 혁명은 그 경제적 격차로 인해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더 가진 사람들은 더 안전한 환경에서 보호받습니다. 예전처럼 테러, 암살을 하기에 쉽지 않게 되었고 운이 좋다면 설령 그런 공격에 부상을 입어도 발전한 의료기술의 덕을 볼 수도 있겠죠. 아무리 비싸도 의료비 내는 건 어렵지 않을 재산이 있으니까요.

 

부자들이 아닌 정권이나 정치 세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집니다. 이전에 비해 전술적 자유도와 가능성은 너무나도 커졌고, 이를 훈련받지 않은 대중들은 결코 이겨낼 수 없습니다. 살상무기는 물론이고, 비살상무기를 사용하는 군대나 경찰집단 역시도 너무 강해졌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적을 상대하는 것 뿐만 아니라 대중과 국민들을 통제하는데에도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죽이지 않더라도요.

 

그렇다고 개혁 역시도 쉽지 않아졌습니다. 그 자본에 의해 언론, 학술계에 의도를 투영하기 쉬워졌습니다. 로비, 혹은 이권, 심지어 정치적 이념에 따라 학자들은 정치적 담론에 편향적일 수 있고 언론은 편파적으로 자기들이 지지하는 진영에 유리한 것만 취사선택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무엇이 진실이고 객관적인 사실인지 구별하지 못할 것이며 알고리즘, 본인의 선택과 비토를 통해 원하는 이야기만 듣고 그렇지 않은 목소리를 거부하고요.

 

그렇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걸 알아도 그걸 달성하기 위한 싸움이 너무 무용하고 무익한 걸로 싸우고, 그렇게 싸워서 얻은 것조차 무가치하게 됩니다. 이겨서 얻는 것도 없는데 싸우는 이유조차 핵심과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처음 자본주의에 가장 심대한 위협을 줬던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등장했던 때와 유사한 상황에 치달아가는 게 아닌가 싶은데, 문제는 공산주의는 소련의 멸망과 함께 이미 실패한 체제가 되었고, 이에 대한 도전이나 견제가 가능한 대안, 혹은 경쟁적 이념은 등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세계는 명실상부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나 마찬가지가 되었고요.

 

즉, 자본주의는 현재 견제할만한 사상이 없습니다. 자본주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는 경쟁자 때문에라도 살아남기 위해 사회주의적 요소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자유주의나 프로테스탄트적이지 않은 전통적 기독교 윤리, 인본주의, 애국심, 참정권과 함께 이어지는 대다수 노동자들의 요구 등 다양한 관점과 사유로 노동법이나 노동환경은 점차 나아졌고 자본주의는 지나친 비인간성이 줄어들어 현재와 같은 체제에 이르게 됐습니다.

물론 지금도 비인간적이고 지나친 부분들은 여전히 많이 보입니다만, 산업혁명 초기에 비하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 역시 사실이고, 그에 대한 이유 중 하나로 공산주의라는 강력하고 위협적인 경쟁자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죠.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키기보단 자본가들의 이권 조금을 떼어 주는 것으로 그들의 불만이 역치(혁명)에 다다르기 전에 누그러뜨리는 쪽이 낫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소련의 멸망 이후 경쟁자가 없어진 자본주의는 다시금 산업혁명 당시와 유사한 상황에 놓이게 됐습니다. 지금의 노동환경과 자본-노동의 관계가 산업혁명 당시처럼 암울하진 않지만 지나치게 노동자와 자본가, 노동자 사이에서조차 많은 경제적 요소들의 갭Gap이 커진 상황은 지표상 얼마나 경제가 성장했든 불안한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지는 대부분의 불만은 경제적 원인 때문이고, 심지어 경제와 무관해보이는 사회적 갈등과 젠더갈등조차 경제적인 원인이 해결될 경우 적지 않게 해소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빈부격차는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벌어지고 있고, 이는 코로나 상황이 더더욱 심화시켰습니다. 이 불만과 두려움이 공격성으로 이어지며 극단화 되면서 뚜렷하게 극단주의가 횡행하게 되는 게 지금의 현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상황을 해소하기엔 모두가 잘못된 선택을 내리고, 올바른 선택을 내린 사람들조차 올바른 이유나 판단의 결과로 선택하지 않은 경우조차 많습니다. 어쩌다보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경우 역시 많다는 거죠. 또한 이 옳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선택지에 비해 더 낫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지 객관적인 정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이유로,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분배에 있습니다.

 

그 이전에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 자체가 거세되어가고 사멸해져가는 환경에도 있지요.

 

 

이 경제 문제에 대한 유일한 희망은 기계와 인공지능을 통해 인간노동의 완전 탈피를 통해 초과생산 초과수요로 자본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 정도 말고는 없지 않나 싶은데, 이것 역시도 자본주의 디스토피아가 될 가능성 역시 내포하고 있죠. 점차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능력이 사라지고, 사람 또한 그럴 필요조차 못 느끼는 시대가 옴에 따라 우리는 정치적으로 교란된 메시지들로 인해 대중 대다수에게 이익이 오고 더 나아가 모든 인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선택이 있다 하더라도 극소수의 기득권, 권력자에게 가장 유리하고 이익이 되는 선택을 위해 서로 피튀기게 싸울지도 모를 일입니다.

 

객관적이고 건조하게 바라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단순한 사실조차 정치적 이념과 진영논리에 따라 진실을 거부하고 피상적이고 파편화된 사실을 조합하여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식으로 말입니다. 우리는 점점 넓은 시야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그 부와 권력을 쥔 능력 있고 실력 있는 사람이 자기 이익을 아무 이유 없이 때어줄 이유도 없고, 포기할 이유도 없습니다.

 

자본주의 디스토피아도, 사실 자본주의를 유지할 이유 자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급의 존재 그 자체를 위해서 그러한 디스토피아 세상을 만들고 장기간 유지하는 것조차도 그런 이유에서 발생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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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부자감세를 감행했습니다. 08~12년 동안 소득세 약 25조, 법인세 35조, 부가가치세 4조원, 기타 17조원 등 82조원과 종합부동산세 무력화 5년간 10조원, 상장주식양도차익 과세 및 자본이득과세 도입을 시행하지 않아 약 10조원 이상의 감세혜택을 재벌과 대기업에게 줬습니다.


그리고 각종 무리한 사업을 벌이며 적자예산을 책정하여 나라 빚은 물론 현재의 각종 (갖잖은) 수세확보와 민영화질의 바탕원인이 됬지요. 문제는 이런 부자감세를 하는 이유가,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헛소리를 기반으로 한다는 건데, 그 이론적 바탕을 보면 낙수 이론이라는 병신같은 이론을 가지고 있죠.



신자유주의의 도입과 함께 낙수 이론을 신뢰하며 대기업을 부풀려 줬고 그 결과 부자와 재벌들은 더 많은 부를 쌓았지만, 과연 그들의 부가 아래 계층에게 떨어졌을까요? 현재 서민들의 삶을 보면 답을 알 수 있습니다.


재벌과 대기업은 더 부자가 되었고, 서민들은 점점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살고 있죠. 벌리는 돈은 크게 늘지 않는데 물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하니까요. 그게 사실입니다. 당장 자신들의 삶을 5년전, 10년전과 비교해보세요. 나아졌습니까? 가계소득이 늘었나요?


국민소득 2만불이라고 하는데, 그건 평균의 오류를 이용한 눈속임에 불과합니다, 대기업에 수십만, 수백만 달러를 버는 것과 일반 서민의 소득으로 평균을 계산 했는데 평균소득 2만 달러가 나온다면 그건 되려 빈부격차가 심각하다는 반증일 뿐이죠. 국민소득 2만불이니 어쩌니 하는 소리는, 마치 경제는 발전하고 나라가 잘 되간다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개수작에 불과합니다.


결국 중요한건 다수의 국민들의 삶인데, 극소수의 재벌과 대기업만 잘나간다면 그게 나라가 잘 되는겁니까? 나라를 위해 국민이 희생한다면 국가는 그 존재 의의를 상실합니다. 국가가 잘 되야 국민이 잘 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잘 되야 국가가 잘 되는 거죠.



물가는 꾸준히 상승해왔고, 임금은 큰 변동이 없었습니다. 그런 주제에 각종 사업을 통해 국고를 날려먹고는, 대기업, 재벌에게는 감세, 일반 서민들에게는 --심지어 문화상품권, 아파트 일일장터, 폐지줍는 노인에게도!-- 세금을 걷어가려고 하지요. 심지어 서민들, 월급쟁이들에게 세금을 더 걷겠다는 심산으로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는 정책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다시말해, 빈부격차가 벌어지고 서민들이 먹고 살기 힘든 이유가 바로 정부와 여당,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는 자들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겁니다. 세금이 필요해? 그럼 대기업, 재벌들에게 과세하면 됩니다. 어차피 그들은 돈이 많아서 과세한다고 해서 별 타격 없습니다. 어차피 엄청난 돈이 계속해서 벌릴 것이고요. 그들이 과세한다고 당장 망할 것처럼 구는거? 안 망해요. 나라는 더욱이 안 망하고요.


당장 우리만에도 온갖 세금 다 뜯기면서도 어찌저찌 살아가고 있는데, 그보다 가진거 수십수백수천배는 많을 사람이 당장 망할 것처럼 구는건 기만이고 양심이 없는 겁니다. 그런거에 동조하는 일반 서민들은 섬노예 주인님이 단속들어와서 노예들 좀 뜯기니 주인님 걱정하는 단속 안 된 노예랑 별 차이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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