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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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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2.08.28
    엘리트 카르텔이라는 이름의 한국의 문벌文閥귀족.
  2. 2022.01.30
    체제 완결성과 다음 체제로의 이행.
  3. 2019.12.23
    종부세로 죽겠다는 가진 자와 지속 불가능한 체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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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카르텔의 선출직 권력에 대한 무력화.

https://konn.tistory.com/768

 

 

고려시대의 문벌귀족은 음서와 공음전을 통해 권력과 경제력을 세습했으며, 그러한 제도를 기반으로 강력한 가문을 형성하고 유지했다. 그렇게 가문의 힘으로 권력과 경제력을 세습받으며 유지되었기 문벌門閥이었고, 이들의 권력은 무력을 지닌 무인들의 반란을 통해 뒤집어졌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경제력을 훼손당했다고는 해도 개국공신 가문에 뿌리 깊은 가문들이었고 그들은 약화되었을 뿐, 무신정권 시기에도 여전히 명맥을 잇고 있었고, 이후 권문세족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한국에서 권력자라고 부를 수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체로 공부를 통해 얻어낸 성과이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갔거나, 외교관 시험, 행정시험, 사법시험 등의 고급 공무원을 선발하는 고시 출신이고,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 나온 사람이 대기업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여 기업가, 경영자들이 되어 큰 힘을 가지게 되기도 하였다.

 

본래 결혼은 비슷한 수준의 사람/집안끼리 하기 마련이다. 검사가 재벌가와 결혼하고, 의사가 변호사와 결혼하며, 판사가 교수와 결혼한다. 그렇게 사회적 권력을 지닌 지도층을 혈연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막을 수도 없고 막을 필요도 없다. 단지 한국이 너무 좁은 국가이고, 좁은 영토 내 높은 인구밀도를 지닌 서울과, 그 서울에 국가 모든 중요 시설과 핵심이 모여 있는 환경상 그런 식으로 이어지는 혈연은 그 자체로 카르텔화되기 쉽다.

 

어느 지역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지역 유지가 아닌 국가 전체의 핵심 중앙 권력을 장악하고 나눠먹는 권력형 카르텔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대기업 등에서 이루어지는 일부 낙하산을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실력을 필요로 한다. 이는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직업을 가져야할 이유이자 근거가 된다. 공부를 잘해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고, 그렇게 얻어진 대학 졸업장, 고시 합격자는 더 좋은 직업의 조건이 된다. 운이 좋아 시험 몇번 잘 본 것으로는 버틸 수 없고, 운이 좋게 얻어 들어간 자리에서 성과를 내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물론 재벌 성골 출신이라면 타이틀에 비해 대단한 능력이 없다 해도 여전히 자기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어차피 경영권만 가지고 있다면 웬만해서는 밀려날 일이 없기 때문에 경영적 실패를 쌓으며 사회적, 경제적 손실을 발생시켜도 여전히 권력의 중심에서 도태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들에게 얼마만큼의 실력이 있고 얼마나 유능한지가 아니라 그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가이다. 검사 같은 경우 그 자체로도 유능한 사람들이지만 설령 그 조직 평균에 비해 무능하다고 해도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한직으로 밀리거나 따돌려질지는 몰라도 검찰 조직에 반역하지 않는 한 그들은 여전히 검사 권력을 누릴 수 있다.

 

이는 설령 그 본인이 범죄를 저질러도 기소되지 않고, 기소된다 해도 그의 권력과 신분, 경제적 이익 창출에는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한다.

 

 

이들의 권력이 공부를 잘했기 때문인 까닭에, 강남-대치동의 부모들은 자신의 자식을 고문과 학대에 가깝게 공부를 시키고 그렇게 강요받은 이들 중 부모의 의도에 합치된 성과를 낸 이들은 결국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경우가 다른 지역 학생들에 비해 많다.

 

그렇게 그들은 사회, 아니. 국가 중심 핵심 권력에 남들보다 더 가까이 다가간다. 그리고 십수 년~수십 년간의 경력과 성과는 그 핵심의 가장 가까이로 그들의 접근을 허락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 과정 동안 형성시킨 비슷한 위치의 다른 엘리트들과의 사회적 관계망은 이미 엘리트 카르텔의 일원으로 만들었을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자식은 그들의 성공과 비슷한 경로를 탈 가능성이 높다. 똑같이 10살 안팍의 나이 때 고등학교 과정을 소화할 정도의 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들은 문벌文閥귀족화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공부와 시험을 통해 권력을 얻고, 비슷한 수준의 엘리트끼리 결혼하며, 각 집안이 가진 사회적 관계망을 결합 및 확장시킨다. 그리고 그 사회적 관계망은 국가 중요 권력은 물론 사회적 영향력을 차지한 사람들로 이루어져있다.

 

 

다른 나라에서도 공부 잘하고 인맥을 가진 사람들이 성공하고 중요 요직을 차지하며, 더 좋은 위치로 올라서기 쉽다. 특정 대학이나 특정 지역 출신이 요직을 차지하는 경우 역시도 많다.

 

그러나 한국은 그 정도가 특히 심하다. 이는 서울집중화, 밀집화와 좁은 국토에서 기인한다. 이미 집중된 서울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우월한 조건을 가지고 있고, 성장하기 어렵다. 다른 지역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것은 쉽다. 모든 요소를 다 고려한다 해도, 서울은 그 자체로 더 큰 이득을 준다. 거리 역시 짧은 편이고, 잘 닦인 교통은 시간 역시 오래 걸리지 않는다. 원래 지역에서 쌓아놓은 사회적 자본 역시 서울이 가져다줄 이익에 비하면 충분히 포기 가능하다.

 

어느 정도 지역 내 위치가 있다면 이미 서울에 자리 잡은 누군가와 인맥 관계일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고등학교나 대학 시절 인맥이든, 교회 인맥이든, 직장 인맥이든, 친적과 같은 혈연이든.

 

그리고 엘리트 카르텔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권력과 경제적 이권을 유지, 성장시키고 그러기 위한 자신들의 불법, 탈법을 법적 제재에서 지켜주거나 그러한 이익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정보를 미리 제공해줄 수 있고, 때때로 원하는 직위와 자리를 마련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것은 자기 세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식 세대에게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사기업의 경우 자리를, 학계의 경우 자격을 준다. 불법일 때도 있고 탈법일 때도 있으며, 합법적인 꼼수일 때도 있다.

 

그렇기에 다른 지역에서 올라오는 엘리트, 혹은 엘리트의 가능성이 있는 인재를 선호한다. 굳이 따지자면 전라도 출신의 경우 차별을 받거나 덜 선호될 수는 있다. 그러나 결국 중요한 것은 그들의 입맛과 이권에 부합되는 자인가가 핵심이다.

 

 

본래 사회지도층, 엘리트 권력자 집안의 경우 당연히 자기 자식에게도 더 좋은 교육을 시키고, 더 많은 지원을 해줄 수 있다. 당연하다. 그리고 그걸 막을 수도 없고 차별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렇게 그들은 부와 명예를 세습하게 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에서는 그 모든 과정이 심화되어 있다. 단순히 엘리트 교육이 아니라 끔찍한 사교육으로 부와 명예를 확보하고 그걸 세습시키려 한다. 그걸 위해 불공정과 불법 역시도 자행된다. 그럼에도 검사, 판사, 경찰 인맥은 그것을 기소하지 않거나 제대로 조사하지 않는다. 이런 저런 이유로 그들의 불법을 불법이 아니게 만들거나, 설령 처벌받는다 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을 하게 된다.

 

이러한 불공정한 불법적 사례는 언론에서 다뤄질 때에만 그나마 처벌을 받거나 조사를 받을 뿐 적지 않은 경우는 아예 기소는커녕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들끼리 덮고 유출시키지 않으면 그만이다. 언론의 조명을 받고 대중적 관심을 받는 경우는 그저 재수가 없을 뿐이라 여겨진다.

 

 

이는 완화시킬 방법은 없다. 어떠한 개혁도 엘리트 카르텔에 의해 가로막힐 것이고 일부의 성공 역시도 중과부적일 것이다. 역사는 이러할 때 무신정변, 혹은 역성혁명이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무신정변은 군부독재와 같이 다른 문제가 되었을 뿐 근본적으로는 실패했고 역성혁명 역시도 일시간(어떤 면에서는 꽤 장기간) 효과를 보았을 뿐 다시 같은 문제를 발생시키며 다시 한번 멸망했다.

 

부정부패를 비롯한 불공정의 확대는 체제의 지속가능성을 약화시키고 이것이 임계점에 다다르거나, 그에 근접할 때 민중은 폭발한다. 그 이후 외세의 공격이 있었거나 내부에서 쿠데타/혁명을 일으켰는지의 차이만 있을 뿐 그렇게 역사는 국가/체제의 멸망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말해왔다.

 

한국이 이 상황에 어떻게 응답할지는 국민들의 몫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의 몫이 아닐 수도 있다. 대한제국이 민중의 요구에 응답하여 멸망한 게 아니고 조선의 독립이 민중들의 요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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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단이 기능하며 그것이 유지된다는 것은 그것을 이루는 어떠한 체제가 있다는 것이다. 작은 동아리나 모임에도 규칙은 있고 그것으로 규정하지 않는 크고 작은 관습과 약속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어떠한 체제이든 그것은 결코 완전할 수 없고 필연적인 지속불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환경의 변화나 내부적인 규칙의 형해화, 권력의 독점화, 구성원간 상호 신뢰 붕괴 등 다양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같은 환경 내에서도 여러 집단이 존재할 경우 상호관계를 맺으며 유사해지거나 문화적 동질성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완전히 같은 경우는 매우 드물고 이는 각 집단의 체제가 각기 다른 형태를 한다는 것이다.

 

 

한 체제가 태생적인 한계에 도달하고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 집단은 무너진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집단을 유지하고 보호, 팽창시키던 체제는 완결된다. 감상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해당 체제의 태생적 한계가 찾아왔기 때문이지 소수의 이기적인 권력자나 무능한 왕, 운명의 장난 때문이 아니다. 그 때가 아니라면 그 집단의 역량과 체제의 견고함 덕분에 조금 더 뒤에 이루어질 일일 것이다.

 

로마 공화정은 그들 체제의 뛰어남 덕분에 다른 경쟁자들을 제치고 우위를 점하며 생존을 넘어 정복자의 지위를 얻어냈다. 그것이 잘 작동할 때에 그들은 강대했고 실패와 패배는 복기되어 보완되었다. 능력자는 마땅한 대우를 받았고 실력자는 인정받았다. 그들의 정치사회적 전통은 그들을 부강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영구적일 수 없었고 로마 공화정의 위대한 정복이 승리할 때마다 값싼 노동력인 노예들은 흘러들어왔고 이제 원정을 갔다 오기에는 너무 넓어진 영토를 마주해야 했다. 로마의 시민들은 토지를 팔고 스스로 노예가 되더라도 먹고 살아야 했고 로마의 보호들은 그렇게 라티푼디움이라는 대농장을 만들어 더 많은 부를 획득했다.

 

일부는 이러한 체제변화에 위험성을 경고하며 개혁을 주장했고 시도했다. 그러나 숫한 시도들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들은 자신의 부를 포기하길 거부했다. 결국 그들의 위협적인 경쟁자인 카이사르 또한 암살당한 뒤 로마 공화정 체제는 완결되었고 제정으로 향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로마 부호들이 이기적이라 공화정이 무너졌다 할 수 있다. 누군가는 로마 시민들이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로마가 체제의 한계에 도달해갔고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례를 좀 더 간략히 알아보자.

 

신라는 골품제를 통해 소국이 점차 커지면서 경주 주변의 여러 소국들을 흡수하며 옛 지배층을 등급화하였다. 이는 소국의 흡수를 용이하게 하고 경주 출신 왕족인 성골과 구분지어 왕권을 보전했다. 이는 정복지의 흡수와 통치를 수월하게 했고 기존의 정복지 왕족, 귀족과 본래 경주 일대 소국의 왕권에 계층적 차등을 두어 왕권의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

 

이 역시 로마와 마찬가지로 확장을 하기 위한 그들 나름의 유용한 체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왕이 될 성골이 부족해지자 여왕이 등극하게 되었고, 그마저도 사라지자 진골이 신라의 왕가를 이루게 되는 등 필연적인 계급적 변화가 있었다.

 

골품제는 왕족과 귀족, 평민 출신의 명확한 구분으로 일반적인 경우 침해될 수 없는 강력한 벽을 형성했다. 아무리 뛰어난 이라도 한미한 출신이라면 6두품을 뚫을 수 없었고 진골은 결코 성골이 될 수 없었다. 로마와는 상당히 다르게 실력자와 능력자가 혈통적 신분과 출신에 강하게 메여 있었던 체제였다. 이러한 체제는 확장 이후 안정적 유지와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었고, 이후 고려가 건국될 때 골품제는 사라지고 그 문제들이 수정된 새로운 체제로 변화하였다.

 

고려 또한 과거를 도입하면서 골품제로 억눌려진 기회와 능력을 펼칠 수 있게 열어 놓았고 이는 고려의 관료제로 이어졌다. 그 역량은 수 차례의 전쟁을 견딜 수 있는 근거로 작동하였으나 동시에 음서, 공음전 등 체제의 한계를 예비하는 제도 또한 존재했기에 국가 내부 자원을 분배하지 못하고 자본이 흐르지 않게 되는 등 극심한 정치, 사회, 경제적 문제를 야기했다. 이것을 해결하려 노력한 이들은 있었으나, 근본적인 체제적 수정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이러한 문제들이 수정된 새로운 체제, 조선으로 변화하였다.

 

조선의 경우는 강대한 왕권과 뛰어난 대왕들에 의해 선정이 이루어지고 견고한 관료제와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만들었으나 양란을 거치며 왕권이 무너지고 유교적 질서가 해이해지는 동시에 무너진 권위를 세우기 위한 반동으로 교조화가 이루어지며 허례허식이 늘어 내부적 유연성을 경직시켰다. 정조 대왕의 개혁과 실학의 등장은 조선이라는 체제의 역량을 보여주었으나 내부적 한계와 정치의 문란이 곂치며 해결되지 못했고, 거기에 제국주의 시기와 곂치며 외부적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체제가 완결되었다.

 

이는 잘잘못을 떠나 사실로써 당시 조선의 역량이 외부적 압박을 이겨낼 정도로 견고하며 유연하지 못했고, 그러한 역량을 배양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로마가 아니더라도 어떤 집단에서든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 환경과 내부 조건이 극히 안정적이라면 발전없이 정체되더라도 아주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다. 환경변화가 없어 외부적 리스크가 없고 내부적 밀도 변화가 적어 똑같은 삶의 형태를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지의 정글속 원시 부족들이 수천년 넘게 그러한 삶을 반복했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나름의 체제는 있고 단지 한계에 도달하기까지 아주 오랜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이처럼 한 체제가 태생적 한계를 지녀 발전 끝에 한계를 넘기 못하고, 혹은 미리 체제를 수정하지 못한 채 끝나는 것을 나는 체제 완결성이라 한다. 이 체제 완결이 이루어지고 나면 그 체제에 의존했던 집단은 멸망하게 되고 수정, 보완된 다른 체제를 가지게 된다.

 

이것은 다른 국가가 될 수도 있고 부족이나 도시 규모의 소집단이 될 수도 있으며 다른 체제에 정복되어 흡수, 혹은 예속될 수도 있다. 체제의 변화는 반드시 더 발전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더 나은 체제를 가지게 된다.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은, 유럽. 특히 영국처럼 나라는 그대로이나 왕조만 다른 이름으로 바뀌는 경우는 해당된다 하기 어려울 것이다.

 

 

체제의 완결은 여러 형태로 찾아온다. 그러나 그 원인을 내부에서 찾는다면 그 어떤 분석이 있든 근본적으로 체제의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로마에 라티푼디움이 등장한 것은 너무 넓어진 영토와 값싼 노동력의 유입이 시작이었고, 이는 로마 자체의 팽창을 요구하는 제도와 체제에서 기인한다.

 

고려에 음서는 비록 녹봉도, 실권도 없는 말직을 받았고 무능하면 고위 관직을 얻을 수 없었으나, 능력과 실력에 무관하여 혈통에 의해 관직을 얻을 수 있어 과거 시험으로 관료가 된 이들에 비해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며, 공음전은 음서보다 심각하여 토지는 물론 수조권까지 세습하여 체제적으로 고려의 체제 완결에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다.

 

때로는 외부적 요소에 의해 체제 완결이 발생하기도 한다. 소빙기가 찾아오며 흉년이 오고, 화산 폭발 등의 재앙에 의한 대기근이 발생하기도 한다. 지진에 의해 큰 피해를 보며 기독교적 세계관의 붕괴를 앞당기기도 하고 외세의 침략에 의해 멸망하기도 한다.

 

특별히 예외적인 사례가 아닌 이상 대부분 체제의 완결은 근본적으로 그들 체제의 한계에 근거한다. 심지어 외세의 침략이라고 해도 그러한 침략에 의해 멸망하는 것은 그 국가가 이미 병들고 쇠약해져 있을 때이며, 튼튼하고 강한 몸을 가진 이에게 병마가 쉽게 찾아오지 않고 싸움에서 쉽게 지지 않지만 나약하고 병든 몸에는 병마가 쉽게 찾아오고, 타인과의 싸움에서 육체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가진다.

 

이처럼 나라가 부강할 때 외세의 침략이 발생한다면 피해는 입고 멸망을 앞당기는 치명상을 입을지언정, 멸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라가 쇠약해져 역량이 저하될 경우 외세의 침략에도 쉽게 무너져 멸망하게 된다. 외세의 침략은 온전히 외적이 강대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체제 완결 사례에 대해 아는 것은 아니나, 한가지 재밌는 점을 찾을 수 있었다.

 

로마 공화정이 제정으로 바뀌었고, 독일 제국이 바이마르 공화국이 되었다, 다시 나치 독일이 되었으며, 러시아 제국 이후 소련이 되었으나 스탈린에 의해 부하린, 트로츠키 등이 축출되고 사실상 일인독재가 되는 등의 체제 변화를 살펴본 결과, 더 많은 사람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던 체제가 무너지고 다른 체제가 되었을 경우 대체로 소수가 권력을 독점하는 체제로 변화하였다는 것이다.

 

그 반대 또한 존재한다 말할 수 있다. 독일 제국이 멸망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되었으며, 조선이 멸망 후 식민지를 격고 대한민국이 되기도 하였으며, 대부분의 민주국가가 되었을 경우 왕정 국가가 멸망한 뒤 찾아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마찬가지로 소수가 권력을 독점하는 체제에서 똑같이 소수가 권력을 독점하는 체제로 변화하기도 하는 등 정치적 권력 소유자의 비율이 크게 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다수가 정치적 권력을 가진 경우, 그러한 체제가 한계에 달해 완결되고 다음 체제로 이행될 경우 높은 확률로 소수가 권력을 독점하는 체제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는 난세에서 힘 있는 유력자, 주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자가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실력을 행사한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10.26과 12.12는 혼란스러운 대한민국을 안정시키기 위한다는 명분을 대외적으로 노출했지만 언제나 있을 법한 난세의 실력자가 등장한 사건이다. 그들은 자신의 힘, 혹은 정치력으로 국가를 장악하여 권력을 독점했다.

 

카이사르가 의도했으나 옥타비아누스가 완성한 권력의 독점이다. 스탈린이 부하린과 트로츠키를 축출하며 완성한 권력의 독점이며, 김일성이 갑산파, 소련파 등을 숙청하고 완성한 일인독재처럼 말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민주적인 법률을 가지고 있었으나, 당시에 없었던 방어적 민주주의 개념으로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는 체제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고, 이 부분이 문제가 되어 히틀러와 나치당은 권력을 독점하게 되었다.

 

모든 권력은 대중의 지지가 없으면 성립될 수 없다. 단지 그 비율과 권력 획득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독재라면 다소 낮은 지지를 보유한다 하여도 힘과 공포로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에도 왕정국가는 존재하고, 어떤 독재국가라 하더라도, 심지어 축출되어 살해 당하는 순간까지도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 아예 없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소수에 의한 권력 독점 또한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성립될 수 있다. 때로 시민들은 스스로의 권리를 권력자에게 진상한다. 그렇게 민주주의에서도 독재는 발생할 수 있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해당 국가에 적용된 민주주의 체제와 그것이 구체적으로 작동하는 제도들이 최대한 오랫동안 지속 가능하게 끊임없이 수정되어야 하며, 그러한 수정이 가능하게끔 내부적 역량과 유연성을 유지시켜야 한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좋은 것은 뭐든 흡수해야 하는 것처럼 체제의 존립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좋은 것은 흡수해야 하며 적용에 문제가 없을 지 살펴야 한다. 무조건 좋아 보인다고 기존 제도와 현실성, 충돌 여부를 생각치 않고 도입한다면 현실에 맞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고 그렇다고 구태의연한다면 발전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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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관련된 내용은 다소 이해하기 쉽도록 서사적이기 때문에 전문적이고 정확한 내용을 담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신라의 멸망 같은 경우 골품제는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이유에서 제한적인 영향력만을 발휘했을 뿐이고 음서제의 경우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음서만으로 고위직을 꿰차거나 녹봉을 받는 건 아닙니다. 실제 능력이 있는 자들은 과거와 음서를 모두 했었습니다. 음서만으로 관직을 가지는 사람의 대우는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로마의 경우 체제가 완결됐다고 하기보단 변화되었다고 하는 쪽에 더 가깝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변화의 폭이 커지더라도 말입니다.

 

조선 후기에 성리학은 교조화되었지만 생각만큼 대단히 교조적이게 되진 않았으며, 실학의 등장 등 꽤 유연한 편이었습니다. 오히려, 성리학이 조선에 악영향을 미친 것은 지나치게 실용적이고 실천적인 면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는데, 당장 쓸데없는 짓이면 무조건 다 필요 없다 취급하기 때문에 (중근세적인 시대적 사상의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성리학 외 다른 학문이 성장할 환경이 조성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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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 로마의 탄생은 전쟁과 토지의 문제에서 파생됩니다. 당시 로마는 수많은 지역에 정복전쟁을 진행했었고, 많은 성과를 보며 영광스러운 로마를 일궈내고 있었죠. 하지만 전쟁은 언제나 이기는 쪽에게도 손해가 발생하는 사업인지라, 정복전쟁으로 노예가 많아지고 땅이 넓어지면서 그 노예를 이용해 거대 농장을 경영하는 장원제도가 로마에도 도입됩니다.


이를 라티푼디움이라고 하는데, 원래 카르타고의 제도였으나 정복전쟁에 따라 로마에 도입되었죠. 전쟁이 계속되면 될 수록 더 많은 값싼 노예와 더 넓은 토지가 생기고, 라티푼디움으로 막대한 돈을 버는 장원주들은 더 많은 부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부익부 빈익빈이죠.


문제는 단순히 부자가 더 많은 돈을 번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부자가 많은 돈을 벌어도 중산층 등 다수 서민이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다면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지지 않죠.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자영농민들은 농지를 관리하지 못하게 되었고,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면 휴한기가 길어 지속적인 생계유지가 어려웠습니다. 이는 자영농민의 몰락(중산층의 몰락)과 장원주의 성장이라는 결과로 이어지며 로마의 큰 갈등요소가 되었죠.


물론 로마인들도 멍청이들은 아니고, 이러한 문제는 충분히 인지했습니다. 따라서 농지법 개정을 중심으로 하는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 대두되었으나, 문제는 당연히 그러한 법안을 입법하는 이들이 원로원 의원들이었고, 역시 당연하게도 원로원 의원 다수는 라티푼디움으로 큰 부를 형성한 대농장주라는 점이죠. 국가나 사회의 갈등요소이자 반드시 개혁해야할 것도 자신의 이익을 방해하거나, 손해를 입히게 되면 반대하는 것이 가진 자들의 속성이니만큼, 입안에 차질을 빚었죠.


머리수가 극소수에 불과해도 가진 게 많으면 그 자체로 권력이 되고 그 권력의 영향력과 행동력은 더 치명적이듯, 그라쿠스 형제는 개혁을 하기도 전에 모두 암살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마리우스의 개혁안 또한 기각되었으며, 카이사르마저도 농지법을 통과시키자 원로원 의원들에게 암살되었죠.


그 결과 로마 공화정은 붕괴하며, 제정 로마가 등장하면서 우리가 흔히 아는 로마 제국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러한 역사는 단순히 로마의 사례만이 아니라, 토지와 농업, 그리고 그것을 통해 부를 얻는 모든 체제에서 비슷한 사례가 발생합니다. 가령 음서 제도와 공음전은 고려를 말아먹었는데, 이 역시 마찬가지로 기득권의 특권을 보장해주고, 토지를 기반으로 영속적인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면서 많은 숙청과 제도적인 문제를 고치면서 그나마 해소되었지요. 그러나 더 많은 토지와 더 많은 소작, 혹은 노비를 만들어 더 많은 부를 얻고자 하는 욕심은 조선에서도 있었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비종부법을 시행하기도 했죠. 물론 기득권인 양반들이 온갖 방법으로 자발적으로 노비가 되게 하거나 하는 등 일천즉천으로 회귀했었습니다. 그나마 사정이 낫다는 점은 양란을 거치며 국가재정 문제 때문에 노비를 적잖이 양민으로 만들었고, 조선 후기로 가는 동안 꾸준히 노비의 비율이 줄었다는 점이죠.


중국 역시 한나라, 수나라도 그러한 장원과 같은 기득권의 넓은 토지로 만들어지는 대농장에 의해 농업과 경제의 양극화가 극심해지면서 혼란이 발생했죠. 그 이후 당부터 명, 청까지 여러 혼란과 제도가 있었지만 그러한 대농장 중심의 경제 구조가 힘을 쓰지 못하게 하면서 경제적인 문제에서 어느 정도 탈피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사에서 대부분의 문제는 기득권과 일반 백성간의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면서 혼란스러워지고 내전이 터지든 반란이 터지든 내부 역량이 갉아먹히든 내부에서부터 붕괴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약해진 국가를 타국, 이민족에 의해 공격 받으며 멸망하곤 하죠. 대부분의 국가에서, 멸망 직전의 기득권은 언제나 부유했고, 많은 특권을 누렸습니다. 오히려 그 이전 시대보다 더 한 경우도 있을 정도죠.



이렇듯, 역사에서 보여주는 사례에서 기득권은 언제나 자신의 특권과 부를 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나라가 멸망할 때까지도 자신의 것을 풀거나, 자신의 수익구조를 바꾸어 더 국가와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고 영속적인 발전이 가능하도록 하지 않습니다.


더 많이 가진 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다른 모든 이유를 차지하고서라도, 아니. 다른 모든 이유는 별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렇게 해야만 지속 가능한 체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자에게 더 많이 걷지 않고, 그들의 거대한 수익구조를 견제하거나 억제하지 않는 한 국가의 부 대부분은 극소수 기득권에게 독점될 것이고, 양극화 현상에 따라 중산층은 붕괴하며, 몰락한 채 국가의 경제력은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중산층이 무너지면 국가 경제는 그대로 박살나죠.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양극화 현상, 부익부 빈익빈은 반드시 잡혀야 하고,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반드시 막아야만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지속 불가능한 체제가 되어 다수 서민은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지고 경제력을 잃으며, 극소수 기득권은 무제한적인 부와 특권을 누리되, 국가 경제는 박살나고 국가가 무너집니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부익부 빈익빈은 억제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많이 뜯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중산층이 충분히 유지 가능하거나 하위 계층이 부의 축적이 가능하게 하여 늘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게 가능하다면 극소수의 기득권에게 세금을 덜 매기는 것 정도야 문제될 것은 아니죠.


하지만 그게 가능하려면 국가 전체 경제력이 커야하고, 무엇보다 그것이 잘 분배되어야만 합니다. 정확히는 노동자인 이들의 소득격차가 크지 않거나, 전체적으로 높아져서 저소득층이라고 해도 충분히 먹고 살며 예적금을 통해 자본을 축적하거나, 작더라도 투자를 하여 이익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등 여유자금이 만들어지도록 해야 하죠.


그러나 한국은 그게 안 되고 있죠. 오히려 가진 자들이 위 이미지에서 말하는 역겨운 엄살을 부리며 자기만 힘들고 정부가 자기들만 죽이려 든다는 비양심적인 이기주의를 보여줍니다. 이미지에서도 가진 자의 눈물이 없는 자들의 눈물보다 더 찐하는 말이 있는데, 딱 그 꼴이죠.


불로소득은 커녕 집에 쌀이 없는 이들도 있는 마당에 수십억 건물 수채 + 월세도 한달 1000이상인데 거기서 몇백 세금으로 낸다고 누굴 죽이네 먹고 살기 어렵네 하는 거 보면 그저 역겨울 뿐입니다. 그렇지 않을 수가 없죠. 심지어 종부세는 내는 사람도 극소수이고, 그마저도 1년에 한번 냅니다. 근데 그거 낸다고 죽겠다고 한다니. 우습죠. 


이런 이유로 한국이 지속 가능한 체제가 되려면 수십년간 더 극심해지고 있는 양극화 현상을 잡아야 하고, 이는 다른 거 다 필요 없이 그냥 기득권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기만 하면 됩니다. 물론 체납자에 대한 강경한 추징이 동반되어야 하죠.


물론 기득권자들은 그걸 반기지 않을 거고, 반대할 것입니다. 기득권들도 기득권 나름이고, 다 똑같은 경제, 소득수준을 가진 것도 아니긴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사정을 다 봐주면 세금 못 걷을 거고, 목적을 이루지도 못하겠죠. 어떤 명분과 이유로도 그들은 납득하지 못할 거고, 정당하다고 여기지도 않을 겁니다.


문제가 바로 그것인데, 어떤 명분과 이유와 철학으로도 그들을 설득하거나 협조를 이끌어낼 수는 없다는 겁니다. 로마의 예시를 다시 보십시오. 그들은 어떤 개혁안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암살과 비협조, 반대로 방해했고 그것은 대체로 성공했습니다. 중국과 고려의 예시에서도 그들은 국가가 망할지언정 자신의 특권과 경제구조에 양보한 것이 없었죠.


그들이 자신의 특권을 내려놓거나, 무언가를 양보할 때는 자신들의 목이 날아갈 수 있을 때 뿐입니다. 가령 강력한 왕권과, 그 왕권을 보장해주는 강력한 무력이 귀족 등 기득권자들 목에 걸려 있다면, 그리고 적절한 명분 하나만 있다면 그들은 반대하지 못합니다. 왕권과 무력이 없다면 그들은 어떻게든 반대하고 발목 잡고 무력화했을 겁니다. 실제 역사가 그러하니까요.


한국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거대 양당이 국정을 주도하고, 국민 절반의 이념이 대립하는 국가에서, 무력을 사용할 수도 없고 오직 민주적 원칙과 제도만 가지고 일을 진행해야 한다면 방법은 딱 하나 뿐입니다. 선거를 통해서 지속 가능한 체제를 유지시킬 수 있는 집단을 만드는 거죠. 어떠한 명분과 이유와 철학을 가져오든 기득권들은 반대할 거고 협조하지 않을 거고, 시도를 무력화시킬 것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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