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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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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0.08.16
    한국 교회와 지역 커뮤니티.
  2. 2014.07.28
    성경과는 다른 성경.
  3. 2014.05.24
    진화론과 창조설, 그리고 기독교. (2)



한국이 근대화가 이루어지기 이전 각 마을, 고을 등에는 여러 계층과 집단에 의해 형성되는 지역 커뮤니티가 있었습니다. 고을처럼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곳이라면 직종이나 고을내에 구분되는 지역, 성별 등으로 구분되는 커뮤니티가 있었을 것이고, 작은 마을이라면 요즘으로 치자면 마을 회관 같은 곳, 마을마다 있는 정자 같이 사람들이 모이기 좋은 곳에 동네 사람들이 모이면서 소통이 이루어졌을 겁니다.


전근대라곤 해도 정보의 중요성을 모르진 않지요. 다만 필요한 정보의 종류와 용도가 달랐을 뿐이고요. 마을이 어떻게 돌아가고 농사가 잘 되는지, 어느 집 누구가 누구랑 무슨 일이 있었고 누구 집 소가 새끼를 얼마나 낳았는지, 윗 고을에 가봤던 김씨네가 하는 이야기들이나 간혹 들리는 장사꾼들의 딴 지역 이야기, 소금 가격이나 새로 부임한 고을 원님 소식, 나랏님들 이야기 등등..


작고 정체되어 발전이라곤 그리 없을진 모를 마을이지만 세상 돌아가는 걸 알고 필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꾸준히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작은 사회 나름의 소속감과 안정감을 유지시켜주는 핵심 요소이기도 하고요. 서로가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실용적으로 사용하거나 인간관계를 조정하기도 하고, 앞서 말했다시피 그 자체로 소속감과 안정감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기도 하죠.


이러한 지역 사회의 크고 작은 커뮤니티들은 지금도 전 세계에 존재합니다. 미국 중산층들은 여러 모임과 식사 초대, 파티, 아예 봉사활동이나 자경단 활동, 스포츠 등 여러 사회적 활동 등을 이루며 사회적 관계를 꾸준히 유지시킵니다. 그러한 사교적 활동은 간혹 과하다싶어서 그들에게 알게 모르게 왕따를 당하거나 기피되는 경우도 있으며 그런 이웃이나 지역 내의 사회활동에 참여하지 않으면 손가락질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하죠.



이러한 커뮤니티의 해체는 사실 거의 모든 국가들이 크고 작게 겪는 일이긴 합니다. 산업혁명을 필두로 산업화, 근대화가 되가면서 기존의 농촌사회가 해체되며 도시로 상경하는 등 지역 발전과 인구 이동이 발생했죠.


한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일제시기 근대화가 이루어지고 공장들이 세워지면서 농촌이 점점 해체가 되었고 농부에서 공장 노동자가 되는 등 농업 사회의 커뮤니티는 그 크기가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도시의 근대적 학교나 일자리, 교회나 성당 따위에서 새롭게 커뮤니티가 형성되기도 했죠.


그리고 여기가 진짜 중요한데, 한국 전쟁이 터지고 나서 대규모 인구이동이 발생했죠. 이는 거의 기존 계급적 사회관과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없어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적잖은 양반 집안은 양반 가문의 어르신이었고, 노비는 여전히 노비였습니다. 수많은 천민들이 신분제가 없어졌지만 그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거의 인종차별 수준으로 존재했었죠.


한국전쟁은 그러한 신분적 관념 또한 불 속에 소멸시켰습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섞이고 하다보니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신분이나 계급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게 되었죠. 숨기면 알 방법도 없고.


근데 이 한국전쟁은 많은 것을 없앴지만 지역 사회의 커뮤니티 또한 없앴습니다. 사람들이 피난가고 정착하면서 너무 많이 섞였거든요. 같은 도 내에서라곤 해도 사는 지역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었고.. 전쟁 이후 먹고 살기 위해 또 떠나거나 모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정보와 소식의 교류는 정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 거죠. 새롭게 재편된 질서와 재정립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보려면, 이익이고 뭐고 생존하기 위해서라면 정보가 필요했습니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맺어지는 관계와 형성되는 커뮤니티도 있겠지만, 한계는 명확하죠.


옛날처럼 농부는 농부끼리, 상인은 상인끼리, 관료는 관료끼리 모여서 자기들이 속한 영역 내의 정보, 그 영역에서 필요한 정보만을 주고 받는 게 아니라 다른 여러 직종과 계층의 정보들이 필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작은 마을 수준도 아니고 변화와 발전이 빠른 도시이다보니 중심적 역할을 하는 커뮤니티가 꾸준히, 적당한 인구풀로 유지되기란 어려운 일이었죠.


여기서 교회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종교라는 소속감과 집단적 정체성을 제공해주고, 모일 공간과 소통할 장소를 제공해줬기 때문입니다. 직종이 다르고 집도 꽤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나이도, 성별도 다 다른 이들이 신앙이라는 매개로 교회라는 장소로 모이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장소에서 농촌사회의 객채에서 산업도시의 주체가 되어 해맸던, 갈증에 시달리던 이들이 정보 교류와 사교에 매우 활발했다는 것 쯤은 알만한 일이지요.


정리하자면, 교회는 기존의 지역 커뮤니티가 해체된 이후의 근대화, 산업화된 사회에서 기존 커뮤니티 역할을 완벽하게, 혹은 그 이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창구가 되었다는 겁니다. 교회 자체가 지역 커뮤니티로 기능하게 된 것이지요. 이는 원래 유럽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역할이지만 말입니다.


그 덕에 교회는 쉽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거고, 종교와 신앙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신실한 종교집단이라기 보단 세속적인 가치와 질서와 매우 가까운 형태를 보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전통 민간신앙과 섞여서 개신교라는 이름의 다른 무언가를 보는 기분이 들 때도 있곤 합니다.


신앙과 종교 그 자체를 이유로 교회에 간 것이 아니다보니 말입니다. 물론 신앙이 없는 것도 아니고 배워서 나쁠 것도 없으며, 그 내용이 사실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 것도 사실이죠. 시기적으로도 신이라는 초인에 기대고 싶은 거친 시대였기도 했고..


물론 안 좋은 영향이라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중세나 왕정 수준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진 이들과 전쟁 을 거치며 남쪽으로 내려오거나 친일 행적 때문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이들이 종교인으로 둔갑해서 사회적 영향력과 존경을 받기 위해 생존형 목사 따위가 된 이들의 기독교와 엮여서 마치 중세 기독교가 보여줬을 법한 악덕을 발생시키기도 했고.. 돈과 사람이 모이니 정치권력이 군침을 들이거나 아예 적극적으로 야합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돈 있고 영향력 있는 이들이 정치인, 법조인, 경찰 따위와 친해지려는 건 흔한 것처럼요. 혹은 본인 스스로 정치를 하기도 하거나.


한국 개신교가 가톨릭에 비해서 질적 관리가 안 되고 세속적이며 정치적인 경우도 많고 사실상 기업화된 사례도 있으며 여러 문제가 있고, 그런 문제가 있으면서도 여전히 세력이 거대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종교 그 자체를 위해 만들어지고 신앙을 위해 사람이 모였다기 보단 여러 이해관계가 엮이면서 형성된 것이 한국 개신교회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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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존재합니다. 수십만명이 입석할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매우 웅장한 크기를 자랑하죠. 아마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교회를 가진 나라가 아닐까 합니다. 통계를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세계 어딜가든 이렇게 작은 나라에 이렇게 많은 교회가 모인 나라도 없지 않을까 싶군요.


성경에 보면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 하셨습니다. 또한 자신의 모든 재산을 내려놓고 봉사해야 자신과 같은 자리에 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희생과 봉사를 업으로 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수모까지 겪었는데, 그 분의 자식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고 참칭하여 돈과 권력을 쌓고 있습니다. 믿음을 가진 자가 곧 교회인 것인데,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만들고 그것을 자랑스레 생각하며, 십일조라는 이름으로 많은 돈을 걷고는, 세금조차 내지 못하겠다 합니다. 전 하나님의 은행에서 발행한 돈을 본 적 없는데, 과거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라며 황제에게 세금을 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이 매일같이 보는 성경에도 적혀있습니다.


신앙심은 교회의 크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말 뿐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에는 공염불이라는 말이 있는데, 생각하지 않고 단지 말로만 떠드는 불경을 의미합니다.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실천치않고 신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는 모습은 공염불이 아니고 무엇인가 생각되게 하는 군요.


수많은 대형교회와 목사들은, 그리고 그들을 믿고 따르는 신도들은 생각해봐야할 것입니다. 과연 나는 성경의 말씀대로 하고 있는가. 자기 좋을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닌가. 자신의 재산을 내려놓고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가. 그리하여 천국에 갈 수 있는가.



이태석 신부와 교황의 행보를 보고 무언가 느끼는게 있더라면, 진심으로 신의 사랑을 실천하고 진실된 모습을 마음에 담아내고자 노력하는 자를 보았기 때문이며, 그 진심은 타인에게 흘러갈 것이고 그들이 있기에 진정한 신앙이 남아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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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가 다음 지식인에서 답변한 내용을 약간 수정해서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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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은 이미 법칙으로서, 진화학에 가깝게 발전하지 않았나 합니다. 진화론에는 여러 수수께끼와 연구할 부분, 아직 연구되지 않은 부분, 그 근거나 논리가 부족하고 논박의 여지가 많은 부분은 있을지언정, 그 자체로는 법칙으로서의 사실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한 판단을 할 수 있을만큼의 근거와 논리를 충분히 가지고 있고, 반박되지도 않았습니다. 종교를 믿는 자들의 교리, 성서를 기반으로한 반박은 모두 재반박되었고 그 논리나 근거 모두 부실하고 증명할 수 없음은 이미 모두 밝혀졌죠.


창조론의 정확한 용어는 창조설이 맞습니다. 사실, 창조설화라고 하는게 옳겠지요. 왜냐하면 이것은 기독교 및 다른 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창조에 대한 나름대로의 상상력, 즉 그 종교가 말하고자 하는 세상과 인간의 발생에 대한 설화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종교인들이 이따위 것을 가지고 열을 내는 것을 찌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딴 잡스러운 것에 뭐 그리 열을 내고 집착하는지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워요. 왜냐하면 기독교가 말하고자 하는 훌륭한 사상과 이념은 뒷전이고 그딴 창조를 했니 안 했니 진화론이 어쨋니 하는 쓸잘데기 없는 것가지고 논쟁을 하고 있으니 도대체 종교를 왜 믿는건지 모르겠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를 보는 제 관점에서, 진화론이나 창조설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러니까 지구와 우주, 인간이 신이라는 절대자의 의지로 창조되었든 말든 기독교는 여전히 그 자체로 훌륭한 사상을 담고 있고 그 정신은 21세기에 와서 종교가 거진 부정당하고 비웃음을 당하며, 심지어 조롱당하고 혐오당하더라도 배울 가치가 있고 현대의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논리, 예컨데 자유주의나 평등, 인권 같은 것들도 그러한 기독교 정신과 논리를 차용했고 어떻게 보면 그러한 것들을 통해 태어났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신이 있든지 말던지 인간과 우주가 신에 의해 창조되었든 아니든 기독교는 여전히 훌륭한 사상과 이념을 담고 있고, 그것은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배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찌질하고 속좁은 이들이 원수를 사랑하라 같은 훌륭한 말은 찢어발기고 자신을 모욕하고 믿지 않는 자들을 불신자니 이단자요 하며 몰아붙히고 증오하고 있죠. 한마디로 기독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가르침은 공염불처럼 외우고 여전히 증오하고 만인을 사랑하고자 하지 않고 있죠.



제 생각은 아니지만, 다음 웹툰의 트레저헌터라는 만화를 연재하는 허견이라는 분이 기독교, 정확히는 가톨릭의 창조설을 이런 논리로 설명하더군요.



신께서 인간을 만드셨다면, 만약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만약 인간이 곰이나 다른 맹수처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처럼 무리를 지었을까요? 다른 맹수를 압도할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인간은 집단이나 사회를 구성하지 않았겠죠.


생물은 외부에서 에너지를 얻어서 소비하는 방식으로 생명을 유지합니다. 그 대부분은 땅과 관련이 있죠, 곡물 재배나 사냥을 해야 식재료를 얻을 수 있으니. 집단을 이루고 안전해지면 안전해질 수록 집단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 집단내에서 가장 약한 아이들을 보호하니까요. 그리고 집단이 소유하고 있는 땅이 제공해줄 수 있는 식량은 한계가 있죠. 그 균형은 깨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균형이 깨지는 순간 인구의 조절을 위해, 혹은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해 집단간의 전투, 전쟁이 발생합니다. 우리가 고래처럼 수상에서 플랑크톤을 먹거나 식물처럼 광합성을 하며 에너지를 충당했다면 전쟁은 없었겠죠. 하지만 우리는 고래나 식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가톨릭은 창조설을 믿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올 종말도 믿고 있지요. 종말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를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지구라는 환경 속에서 인간의 몸은 필연적으로 전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전쟁은 인간끼리의 싸움이죠.


즉, 살아갈 에너지를 얻기 위해 동족살해를 저지르도록 만들어진 존재라는 겁니다. 언젠가 지구라는 땅이 인간이 소비하는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할 날이 오면, 서로 싸워 자멸하도록 프로그래밍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원래 가톨릭의 창조설을 믿는 논리가 이런 것인지, 아니면 허견이라는 작가의 통찰력이 담긴 작품내의 논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멋지고 그럴싸한 논리더군요. 물론 전 진화론을 믿고 창조설을 부정하며 비웃는 입장입니다만, 원래 기독교가 말하고자 하는 창조설도 이러한 논리라면 꽤나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진화론의 근거이자 창조설의 반론이 되는 증거, 논리들은 이미 충분히 많지만, 굳이 소개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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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5.27 00:11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konn.tistory.com BlogIcon Konn 2014.05.27 19:22 신고 address edit/delete

      종교인들에게는 교리를 부정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별로 좋게 보지는 않을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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