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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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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9'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02.19
    국가의 역할과 정치의 목적.
  2. 2015.02.19
    임진왜란, 배설 장군의 탈영 및 처형에 관한 기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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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집단을 이루기 시작했을 때를 생각해봅시다. 인류가 집단을 이루는 것은 그것이 더 안전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선사시대가 지나고, 인류가 자기 혈족이 아닌 다른 집단과 합쳐지면서 점점 더 거대한 무리가 되어감에 따라 일종의 규칙이 생겨났습니다. 사실, 이 규칙이라는 것은 사람이 둘 이상 있다보면 암묵적으로 생겨나기 마련인 데, 이러한 것이 특정 집단에게 오랜 기간 이어져 내려오면 그것은 관습법의 형태를 띄게 됩니다.


세계 어딜 가도 자기 집단 내의 살인은 매우 큰 죄로 여겨졌고, 도둑질과 강도 또한 마찬가지로 처벌 받아야 할 죄로 여겨졌습니다. 그것이 아무런 잘못이 아니거나, 처벌 받지 않는다면 공동체는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너도 나도 살인을 하거나, 너도 나도 도둑질을 하게 된다면 더 이상 서로를 믿을 수 없고 의심과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떠밀려지듯 범죄에 빠질 테니까요.


그러한 규칙이 명문화 되면 그것은 명문법, 법이 됩니다. 이러한 법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어겨서는 안 될 것으로 여겨졌으며, 이는 곧 집단 구성원 개개인은 물론 집단 자체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을 띄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집단이 더욱 커지고 복잡하게 되면서 그 집단을 이끌기 위한 현명하고 강한 자들이 생겨났는 데, 이는 곧 정치라는 것을 낳았습니다.


그 정치가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은 자기 집단을 위해 노동하는 자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강한 권력과 존경을 받았고, 그 권력은 잘못 휘둘러 졌을 경우 집단의 생존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으며 잘못된 정치는 실제로 그 집단을 파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인물과 올바르게 사용된 권력, 정치는 언제나 집단을 발전으로 이끌었지요.


정치가는 강한 힘을 가졌으나, 그 자신은 역시 개인에 불과합니다. 그가 아무리 강한 힘을 가졌더래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결정에 반발하고 그에게 분노한다면 정치가 또한 죽거나 쫓겨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그는 물론 그를 따르는 무리조차 포함하죠. 그렇기 때문에, 그 정치가가 순수히 다수를 위해 일하고자 하는 신념을 가지고 정치를 하든, 자신의 권력욕과 명예욕, 재산을 위해 일을 하든 대개 다수를 위하거나 위한다는 명목을 내보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를 무시하고 자신과 소수만을 위한 정치를 했던 이들은 역사에서 많은 변을 보게 되었고 그 형태는 폭동, 암살, 혁명, 쿠데타 등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은 국가의 역할과 정치의 목적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데, 국가란 국민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정치가는 다수의 국민들을 위해 봉사할 것을 목적으로 주어졌다는 것이죠. 정치인과 국가는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고,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권력은 국가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의 역할과 정치인의 목적은 서로 곂쳐지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국가의 역할과 정치의 목적은 따로 분리해서 볼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며, 정치인은 그것을 직접적으로 이루어내기 위한 도구로서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할 수도 있는 데, 국가나 정치나 결국 모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존재한다는 겁니다. 국가가 국가 구성원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보호하지 못해주며 정치인들은 소수의 이익만을 위해 노력하고 다수에게 봉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국가이고 잘못된 정치인인 것입니다.


그러한 올바르지 못한 국가와 정치는, 그러한 어색한 형태의 집단은 필연적으로 멸망, 혹은 후퇴를 향해 달리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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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본인이 다음 Tip에서 답변할 것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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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 장군의 후손이라고 해서 조상의 잘못을 쉴드치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역사는 역사 그 자체로 존재하고, 여기에 있어서 어떠한 왜곡과 날조는 있어선 안 됩니다. 여러 기록을 봤을 때, 배설 장군은 탈영을 한 것이 사실이고 처형 당했습니다. 이 사실은 여러 기록을 통한 교차검증으로 알 수 있고, 이에 대해서는 억울한 죽음이라고 할 수 없다고 봅니다.



선조실록과 난중일기에선 배설 장군의 탈영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사(水使) 배설(裵楔)이 주사(舟師)의 차장(次將)으로 주장(主將)을 구원하지 않고 도망쳤으며 이제 또 주장의 명령을 어기고 어둠을 틈타 도망쳤으니, 정상이 지극히 미워할 만하여 율에 처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장계 내의 사연(辭緣)과 곧 선전관을 보내 법대로 시행한다는 뜻을 접반사 이덕형으로 하여금 경리에게 고하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남절(南截)과 송남수(宋枏壽)의 도망한 죄는 참으로 용서할 수 없으므로 이미 왕옥(王獄)에 잡아왔으니 국문하여 처리함이 마땅할 것 같습니다. 더구나 이렇게 도망한 사람들은 그 수가 매우 많으니 부득이 하나하나 잡아다가 문초해서 그 중에 범법한 정상이 가장 중한 자는 베는 것이 마땅할 것 같습니다. 공론이 이와 같으므로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송남수는 곧바로 처치하지 않을 수 없으니, 무엇을 기다릴 것이 있겠는가.”

하였다.


9월 2일 [양력 10월 12일]<경인> 맑다.

오늘 새벽에 경상수사 배설(배설)이 도망갔다. 


역시 선조실록이며, 체포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간원이 박동량(朴東亮)을 개정할 것을 아뢰고, 또 아뢰기를,

“근래 국가의 기강(紀綱)이 크게 무너져 사람들이 법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컨데 유염(柳㾾)·배설(裵稧)·조경록(趙景祿)·이몽구(李夢龜)·임충간(林忠幹)·이몽견(李夢見) 등은 큰 죄를 짓고서도 목숨을 부지하여 이 세상에 버젓이 살아가고 있으니, 이보다 더 분통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따위 도망자들조차 능히 체포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러고도 오히려 나라를 다스릴 수가 있겠습니까. 조정에서는 이 문제를 심상하게 보아 태연한 채 괴이하게 여기지 않고 있어 세월이 이미 오래되었건만 한번도 명령을 내려 기어이 잡아들이려는 계획을 하지 않고 치지도외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한 장의 하유(下諭)를 내리셨으나 어찌 임충간을 털끝만큼인들 경동시킬 수 있었겠습니까. 별도의 조치를 강구하여 철저히 추적하지 않는다면, 다시는 체포할 날이 없을 것입니다. 비변사로 하여금 엄격하게 법조를 세워 다방면으로 계책을 시행하도록 하고, 각도 감사(監司)와 수령들을 엄책하여 숨겨주지 못하게 하소서. 또 많은 현상금을 걸어 기어이 체포하게 하여 나라의 전형(典刑)을 바로잡으소서.”

하니, 답하기를,

“박동량의 일은 이미 윤허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하유하였다. 나머지는 아뢴 대로 하라.


마찬가지로 선조실록이며, 배설 장군의 처형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 수사(水使) 배설(裴楔)이 복주(伏誅)되었는데, 그 아비 배덕룡(裴德龍)과 아들 배상충(裴尙忠) 등은 모두 방송하였다. 배설은 지난 정유년 7월 한산(閑山)의 전투에서 패전한 수범(首犯)이었으나 외지에 망명해 있었으므로 조정이 찾아내지 못했었는데, 이번에 도원수 권율이 선산(善山)에서 잡아 차꼬를 채워 서울로 보냈으므로 참수하였다.


선상배씨서암공파 카페에서는 김억추의 현무공실기, 이항복의 백사집, 정경운의 고대일록, 재조번방지 등에서 탈영과 관련한 기록이 없고 난중일기와는 다르다고 주장했다고 하셨습니다만, 자료를 찾아본 결과 사실은 달랐습니다.


먼저 김억추의 현무공실기는 김억추의 후손들이 20세기 초반에 저술한 책이며, 심지어 그 내용도 판타지 소설에 가까울 정도인 데, 후손들이 썼다는 사실을 감안해도 김억추에 대한 미화와 왜곡은 심각할 지경입니다. 대표적으로 꿈에서 관우의 계시를 받고 쇠사슬을 완력으로 짊어지고 울돌목 양쪽에 설치했다던가, 왜선에 단독으로 뛰어들어 검풍으로 수백명을 죽였다던가, 검을 한번 휘둘러 적선 수백척을 격파했다던가 같은 이야기가 당당히 적혀있지요. 이러한 사실을 감안한 바, 김억추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하여도 해당 저서의 기록을 신뢰하긴 어렵고, 그것과 별개로 다음의 근거들을 이유로 주장과 같은 기록이 존재한다 하여도 반박이 가능합니다.


김억추 본인도 그닥 뛰어난 인물은 아니었는 데, 1597년 정3품에 올라 전라우도수군절도사가 되어 이순신을 따라 어란포 해전과 명량해전에 참전했지면 수준 이하의 전투력의 추태를 보이다 결국 육지로 보직 변경을 신청해서 밀양부사 등을 거쳤죠. 괜히 후손들이 왜곡과 미화를 한 게 아닙니다. 


백사집의 경우에도. 


 “공(이순신 장군)이 통제사로 복귀했을 때 조선 수군이 막 패한 뒤여서 주선과 기계가 남아있는 것이 전혀 없었다. 공은 단기(單騎)로 달려 경상우수사 배설을 만났는데, 이때 배설이 거느린 전선은 겨우 8척이었고, 또 녹도에서 전함 1척을 얻었다.” 

 이 때 이순신 장군이 배설에게 앞으로의 계책을 물었다. 그러자 배설은 “배를 버리고 육지로 올라가 육군에 의탁해서 싸우는 게 낫다”고 했다. 이순신 장군이 “그 계책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하자 배설은 배를 버리고 달아났다. 배설은 이 때의 죄 때문에 훗날 사형 당하고 만다. 


출처 : http://leekihwan.khan.kr/345 

백사집 해석본 : http://blog.daum.net/collagen/979 


고대일록도 마찬가지입니다. 


<정경운의 고대일록> 


○1599년(기해) 2월 25일 을해(乙亥) 


배설(裵楔)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배설은 몸을 피하여 도망을 쳤으나, 결국 잡혔다. 

스스로 만든 허물을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 1599년(기해) 4월 17일 병인(丙寅) 


배설(裵楔)이 복주(伏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설은 경상 우수사(慶尙右水使)가 되어 배를 팔아먹고 도망갔다가, 

산골짜기에서 출몰하곤 했다. 그의 아버지를 가두어 두었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사람들에게 잡혀 몸과 머리가 서로 다른 곳에 있게 되었으니, 또한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재조번방지의 기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순신이 진도(珍島)에 오니, 배와 기계가 쓸어버린 듯이 남은 것이 없었는데, 마침 경상 우수사(慶尙右水使) 배설(裵楔)이 전선(戰船) 8척을 거느리고 왔으며, 또 녹도(鹿島)의 전선 1척을 얻었다. 이에 배설을 속여 나아가 싸울 계책을 말하니, 배설이 말하기를, 

“일이 급박하니, 배를 버리고 육지로 올라가서 호남 진영(湖南陣營)을 택하여 싸움을 도와 공을 세우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하엿으나, 이순신이 듣지 않으니, 배설이 이에 배를 버렸다. 


http://db.itkc.or.kr/index.jsp?bizName=KO&url=/itkcdb/text/bookListIframe.jsp?bizName=KO&seojiId=kc_ko_i006&gunchaId=&NodeId=&setid=955432 


선상배씨서암공파는 배설 장군의 후손 되는 사람들이 만든 카페인 데, 전에 다음 지식인 시절 때 명량이라는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알바를 동원한 것인지 배설 장군에 호의적이고 유리한 글만 올려대더군요. 근데 그 내용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나 다름 없어서 퍽이나 불편했습니다. 


배설 장군이 가지고 갔던 배가 나중에 이순신이 얻게 되어 나중에 명량해전 때 사용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난중일기의 기록들로 보아 배설 장군 그 본인은 칠천량 이후 PTSD로 의심되는 증세를 보였기 때문에 그 점을 감안하면 이해는 하지만 비판을 피할 수 없는 행동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지요.



백사기, 고대일록, 재조번방지를 포함해서, 난중일기, 조선왕조실록 등 교차검증이 되기 때문에 일부 기록에서 배설 장군에 대해 다른 정보가 기술되어있다고 해도 그 자체로 기존의 학설이 뒤집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자료가 잘못되었다는 근거가 될 뿐이고 별다른 실증적 증거가 없으면 배설 장군은 그냥 탈영한 게 사실이에요. 앞서 말했듯이 그 이유는 PTSD 때문이라고 할 수 있고요. 배설 장군이 겁쟁이인 게 아니라, 역시 이해할 수 있는 전쟁의 피해자 였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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