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rodinger

블로그 이미지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 Total hit
  • Today hit
  • Yesterday hit

'2013/09'에 해당되는 글 13건

  1. 2013.09.30
    일자리 창출이 가져오는 대학, 사교육 문제점 해결
  2. 2013.09.27
    내가 생각하는 국개론 2
  3. 2013.09.24
    송포유, 뭐가 문제일까.
  4. 2013.09.20
    도덕을 강요하는 법, 효도법. 10
  5. 2013.09.16
    임진강 월북 사건에 대한 단상
  6. 2013.09.14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는 자.
  7. 2013.09.12
    카노사의 굴욕, 그 비하인드 스토리. 4
  8. 2013.09.08
    최고, 최대, 최초. 삼최증
  9. 2013.09.07
    사람이라는 가치가 우선이다.
  10. 2013.09.06
    상식에 비추어 생각해보다.
  11. 2013.09.05
    반동적 태도
  12. 2013.09.04
    역사에 대한 잣대, 융통성.
  13. 2013.09.03
    16세기 신성 로마 제국에서 발생한 댄스 대재앙, 춤 역병.
반응형


이 글은 예전에 쓴 바 있는 <[클릭]교육, 경쟁, 취직, 출산.> 글을 정리하여 다시 작성한 글이기도 합니다. 같이 보시면 이해하는데 편하실 겁니다.

------------------------------------



기업들은 더 나은 인재를 원하고 그런 만큼 일자리를 줄어가기 때문에 그 나은 인재가 되기 위해 대학교를 가게 되는데, 대학이라는 집단은 한정되어있는 반면 대학생은 갈수록 늘어가왔으니 대학이라는 집단이 대학생들이 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말하자면 폭리를 취해 지금껏 등록금을 꾸준히 올려왔었죠.


이 대학이라는 것도 좋은 대학이면 대학일수록 더 안정적이고 많은 연봉을 받는 직장에 취업할 수 있을 가능성을 높혀주기 때문에 학생과 부모님으로 하여금 더 많은 성적을 내게끔 강제하는데, 학교 교육으로는 아무리 잘 가르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사교육으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이 사교육이라는게 있는 사람이 더 높은 수준의 교육자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같은 서민들은 상류층들에 비해 싸고 저렴한 교육을 아이들에게 제공할 수 밖에 없다는 거죠..


서민들의 기껏해야 수십만원 짜리 학원, 과외를 붙혀주지만 가진 자들은 수백만원 짜리 학원과 과외를 붙혀주고 대부분 그만큼의 결과를 내보이죠. 자기 자식을 더 좋은 조건으로 사회에 내보내기 위해서는 이 돈이라는게 참 중요하게 됬는데, 우리같은 서민, 중산층에게서는 상류층의 지출만큼의 돈을 낼 수 없고 결국 그 이상의 노력이나 재능이 있지 않는 이상 상류층 자식의 교육수준에 못 미치게되고, 이게 곧 사교육의 문제점이자 더불어 계급상승의 문이 막혀간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이렇게 사교육에 많은 돈을 지출하는데 그와 동시에 수출주도형 국가인 대한민국은 그러한 특성덕에 물가가 상승하게 됩니다. 거기다 물가는 오르지만 임금은 오르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사교육에 돈을 쓰는데에 있어서 중산층은 매우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되지요. 물론 무턱대고 임금을 올리면 중간에 낀 영세상인들이 크게 죽어나가겠지만, 물가를 낮추는 방법은 다른 식으로도 존재하고 그 방법에 대해 강구해보는 것도 필요한 논의 중 하나겠지요.


하여튼, 이 부분을 간단히 풀어보자면 자식 교육은 시켜야겠는데 물가는 오르고 임금은 그대로고, 일부는 임금을 올릴 경우 되려 피보는 사람들도 있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가진 자만 더 우월하고 좋은 입장에서 출발하게 되는 구조에요.



결과적으로 사교육, 대학교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자리 창출이라는 조건이 먼저 전제되어야하고 순차적으로 진행해야할 것들이라는 겁니다. 

반응형

'취미 >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대국의 조건  (4) 2013.10.12
무슨 글을 써야하나.  (0) 2013.10.09
내가 생각하는 국개론  (2) 2013.09.27
송포유, 뭐가 문제일까.  (0) 2013.09.24
도덕을 강요하는 법, 효도법.  (10) 2013.09.20
AND
반응형


이 글은 이전에 썻던 <[클릭]민주주의를 원하지 않는 자.>와 이어서 보시면 이해가 더욱 편하실 겁니다.


국개론은 국민이 개새끼론이라고, 디씨에서 나온 걸로 압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에 대한 이해, 발전 수준이 딱 국민이 개새끼라 제대로된 투표를 안한다. 정도의 내용이었지만, 이 국개론을 제 방식대로 다시 정의하자면 그 의미는 조금 달라집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득권층은 오랜 세월 집권해왔고, 지금도 집권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들이 계속 집권하는 이유가 뭘까요? 당연히 그들을 우리 국민들이 뽑아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뭐가 좋아서 이들을 뽑아줄까요? 국방? 김정일이 죽은 것도 정부보다 삼성이 먼저 정보를 접하고 천안함 사건에 연평도 폭격까지 겪고 노크 귀순이 이어지며 북한 감시보다 국내방첩에 더 힘을 쓰고 돈이 부족하면 가장 먼저 국방비부터 삭감당하는 정권이 국방에서 더 뛰어난다고 할 수 없을 겁니다. 오히려 노무현의 국방정책이 꿈과 희망의 군국주의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많은 지원과 기대를 가질 시절이었죠.


경제? 양극화는 점점 심해지고 돈이 필요하다싶으면 미래는 생각안하고 국채를 발행해서 나라 빚만 쌓이고 지자체들도 재정문제로 골머리를 썩히고 있고 심지어 증세는 증세대로 하면서 복지는 복지대로 취소당하는 시점에서 경제를 살린다는 말은 버는 사람만 더 잘 벌린다는 말로 들립니다.



솔직히 이들이 잘 하고 있는 분야는, 이건 사견입니다만.. 제가 보기에 거의 없습니다. 북한이라는 직접적으로 국경을 맞대는 적국을 상대로 제대로된 방첩도 하지 않는 주제에 내부의 진보-좌파계열을 싸그리 종북으로 엮어서 프로파간다를 펼치고 어떻게 하면 이들을 더 엿먹이고 자신의 권력과 이익구조를 더 단단히 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그렇게 설정한 적과는 열심히 싸우고 감시하지만 정작 위에 있는 적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관심도,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듯 하더군요. 상식적으로, 진보나 좌파가 좌빨일리 만무하죠. 그들이 모두 좌빨이고 종북이다라는 소리는 새누리당에 세뇌당한 망상에 불과합니다. 왜냐? 당장 저부터가 북한이 하루 빨리 쳐망해서 전범재판에 세우고 한반도를 제대로 되찾아야 한다고 보고 있거든요.


그들이 주장하는 좌빨이네 종북이네하는 것들을 뜯어보면, 자기네들 권력, 이익에 방해되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괜시리 복지니 뭐니하면 나라 세금 거덜내서 북한에 나라 들어바치려고 한다고 이빨을 까서 나이든 분들 + 콘트리트 세력들 자극시켜 빨갱이 딱지 붙히고 있는거죠.



하여튼, 다시 국개론이라는 주제로 돌아가서..


이런 정부, 이런 권력자들이 어디가 좋아서 찍느냐 한다면, 왜 나쁜지 알 수 없어서, 알아도 결국은 그렇게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깨어있는 유권자를 필요로합니다. 그래야 제대로된 민주주의적 시스템이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인데, 다시말해 진짜 사회와 국가를 위해 일하고 국민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가진 후보를 뽑기 위해선 그들의 프로파간다와 이데올로기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이해하여 자신의 소신껏, 신념에 따라 표를 움직여야한다는 겁니다.


당장 국민들 입맛에 맞는 공약 내걸고 당선되면 입싹씻고 국민들 뒤통수치는 모리배들을 찍어주는 것은 우리들이죠. 그리고 그들을 찍는 이유는 우리가 그만큼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원인은 여러가지 있지만, 결국 그들의 농간에서 우리는 놀아나고, 깨어있지 못하다는 것은 똑같죠.


우리가 당장 필요한 부자과세를 통한 세금징수, 양극화해소, 불합리한 사회구조 해소 등등을 실질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위치, 권력자의 위치에 그것을 할 의지가 있는 관료나 정치인을 필요로 한다면, 그들을 먼저 선출시켜 줄 수 있는 깨어있는 국민이 필요한 셈이죠.


국민들은 시간이 흐른다고 스스로 깨어지거나 하지 않습니다. 불평등한 구조를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으며 그에 대해 자신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오랜 세월, 그것이 다음 세대가 되었든 다다음 세대가 되었든 노력해야만이 가능합니다.



결국 우리가 비열한 사기꾼 모리배들을 뽑는 이유가, 우리는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이고, 이게 제가 말하고 싶은 국개론입니다.

반응형
AND
반응형


첫 방송부터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SBS의 송포유는 양아치 학교로 유명한 성지고와 과기고의 학생들을 노래라는 요소로 묶어 서로 합창 배틀을 벌이는 프로그램이죠, 각기 다른 학교의 학생들을 유명 가수와 함께 합창을 연습하고 경쟁을 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은 요소이나, 문제는 그 학교의 학생들이 어떤 이들이냐 하면 사회적인 시선이 매우 곱지 않은 이들이라는 겁니다.


양아치 학교로 이름이 높을 정도이니 학생들의 질이 좋지 않은 것은 분명하고, 실제로 방송에 나온 모습이나 언행을 보면 확실히 일반 양아치들과는 뭔가 궤를 달리하는 듯한 막장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을 겁니다.



송포유의 취지는, 저는 이해합니다. 기사를 살펴본 결과 이해할 수 있었고 그것 자체로는 비웃음을 당할 일이라고 생각치도 않아요. 그러나 분명 잘못된 발언이 섞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또한 방식도 옳지 않았다고 보며, 어째서 그런 주제로 프로그램을 짯는가하는 저의 또한 눈치 챌 수 있었죠.



일단 양아치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은 절대 곱지 않습니다. 철 없는 애들이나 멋있다느니 약한 놈이 잘못이라느니 하는, 같은 상황에선 똑같이 피해자의 입장에서 핍박받을 위치에 있는 이들이 되도 않는 중2병이나 힘에 대한 동경에 빠져 시덥잖은 쉴드니 하는 것을 치는 것을 제외하고는 일반 학생부터 시작해서 사회인들, 어른까지 일진, 양아치에 대해 안 좋게 보고 있으며, 특히 이들에게 피해를 받은 피해자들에게는 송포유는 그들의 상처를 후벼파는 것이요 TV라는 특성상 TV에 나오는 것을 유명세나 화려한 포장으로 여기는 만큼 그런 분노와 속상함, 억울함은 더욱 컷을 것입니다.


자신들을 괴롭히고 폭력을 휘두른 이들이 TV에 나와 웃고 떠들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피해자가 보는 것은 그 자체로 큰 고통이겠죠. 아무리 그들이 소년원에 갔다 왔고 그 죗값을 치뤘다해도 그것이 피해자의 고통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으며, 정작 가해자는 정말 약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네셔널지오그래픽의 갱스터 파라다이스에 나온 사람 여럿 죽인 무기징역수가 말했죠. 양심의 가책은 스스로가 느끼는 것이 남이 느끼게 할 수 없다고.


가해자에 대한 재조명은 피해자가 살아있을때 더욱 조심스럽게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송포유는 그러한 성찰이나 조심성이 없었고,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없었어요. 오히려 송포유는 피해자의 치유되지 못한 상처를 다시금 후벼파는 것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송포유는 피해자에 대한 조심성있는 고려나 배려, 사색, 성찰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시청률만 올릴 수 있다면 어떤 자극적인 소재도 써먹을 것이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능으로 만들 소재인가에 대해서는 확답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제작하는 것은 옳다고 보진 않습니다.



성지고 교사라는 사람이 쓴 글을 보았습니다. 학생들에게 나쁘게 보이기 위해 말도 안되는 질문을 던졌고, 편집 또한 그렇게 이루어졌다고 말이죠.. 사실 전 이 말에 대해 반은 믿고 반은 믿지 않습니다. 성지고의 학생들은 질이 낮은 아이들이 타 학교에 비해 많고 심지어 몸에 문신에 피어싱까지 한다는데, 이것이 정말 그 자체로 나빠 보이지 않는 것일지..


또, 나빠 보이도록 교모한 편집이라.. 실제로 촬영 현장에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알 수 없는 부분이겠으나, 실제로 이런 악마의 편집의 사례도 몇번 있었고, 그 말이 사실일 경우 송포유 제작진은 더 큰 비난을 들어야하겠죠. 시청률을 위해 또 누군가를 강제로 희생시킨 것과 다를바 없으니까요.



하여간 사회적으로 시선이 좋지 않은 양아치들을 모아서 합창이라는 요소로 묶어 방송에 내보내는 것은 그 자체로 불쾌함을 줍니다. 그들이 그들에게 좋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TV라는 매체에 등장하여 유명세나 인기를 얻게 되었다는 점은 솔직히 불쾌해요. 하물며 그들에게 직접 피해를 받은 피해자나, 그들과 같은 일진이라는 무리에게 피해를 받은 피해자들이 보기에는 얼마나 엮겨울지 상상도 안 됩니다.


송포유의 취지는 분명 이해 할 수 있으나, 앞서 말했듯이 그들의 방식은 그릇되었다고 봐요. 피해자에 대한 조심성, 배려, 성찰이 전혀 없었고 그저 자극적인 소재를 이용해 시청률을 높히려고 했을 것 같거든요. 일진이라는 소재를 정했을 때부터 논란이 일 것이라는 것은 미리 알고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노이즈 마케팅의 일환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송표유 제작진이라는 사람들이 하는 괴악한 개소리(루저드립)라던가, 이승철도 일진 출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의 인물이었고, 방송에서도 트윗에서도(방송에서는 당연한거고 트윗에서도 딱히 깔 수도 없었겠지만) 이들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심지어 이에 대해 비판하는 이에게 쫄지 말고 앞에 나와서 이야기하라는 발언은 일개 개인으로서도, 공인으로서도 전혀 아니었습니다.


이런 논란은 송표유라는 프로그램과, 제작진들, 그리고 출연자들이 만들어낸 것들입니다.


물론 학생들도 나름의 노력은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학교를 자퇴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나오기는 하나 학교를 꾸준히 나오고 있는 것도 그들에게는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지모르고, 몸에 문신을, 피어싱을 하고 술담배가 일상이어도, 심지어 폴란드 클럽을 갔다는 이야기나 학교폭력 등의 도의적인 책임이 아직도.. 아니, 살아가면서 끝까지 이고가야할 책임이 있다곤 해도 아직은 젊기 때문에 기회 정도는 줘봐야 할 수 있죠. 이건 동의합니다. 기회 정도는 줘야한다는 것...


분명 큰 잘못은 잘못이고, 학생으로서 해야할 짓이 아는 것들만 골라서 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고통스럽게 살고 참회의 나날을 보내야 한다고는 생각치는 않아요. 하지만 자신의 삶이 소중하고 중요한 만큼 다른 이의 삶 또한 그렇고,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삶에 깊은 상처를 낸 죄가 있다면 어떻게 즐기고 어떻게 살든 만사에 조심스러워야 할 겁니다. 그것이 자신이 지은 죄의 대가인 셈이죠. 그러니 최대한 죄를 짓지 않고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그에 대해 자유롭고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양심이 결여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반응형
AND
반응형


도덕, 윤리와 법을 가르는 가장 큰 기준점은 바로 강제성이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도덕과 윤리는 사회를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고 한 축이자 틀이지요. 법 또한 그러한 틀이지만, 매우 강력한 강제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강제력이 잘못된 근거로서 작용하게 된다면 악법이 되기 쉽습니다.


이번 효도법에 대해서 좋지 않게 생각하는 이유가, 그것이 도덕을 강요하는 법안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부모님께 돈 물려 받고 어떤 형식이든 효도를 하지 않는 것은 분명 옳은 행위가 아니고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 만한 행동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유교적인 문화를 어느정도 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효도라는 것에 대해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역사적인 가치관은 금전적인 이해관계에 얽히면 쉽게 부서지는 모양입니다.



사실 젊은 이들은 효도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물음을 던져봐야합니다. 왜냐하면 취직이 안되고, 혼자서 먹고살기도 힘이 드는데 거기에 효도를 강제하겠다고 하는 것은 마치 학생이 자살한다고 높은 층에서는 창문을 절반만 열라고 조치를 취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되거든요. 이는 원인은 놔두고 결과를 해결하겠다는 심보와 일맥상통합니다.


효도를 하기 위한 금전적 여유, 시간적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 효도를 강제하겠다는 것은 그들에게 큰 부담만을 안겨줄 따름입니다. 지금 당장 돈도 시간도 없는데 거기에 효도를 하라며 없는 돈 없는 시간을 쪼개서 부양하고 효도하라는 것은 그냥 악으로 깡으로 갈아넣겠다는 것이거든요. 이것은 매우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조치입니다.



따라서 효도법에 대해서는, 분명 효도는 해야한다는 관습적 도덕률에는 동의하는 바이지만 옳은 법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악법이라고도 생각하고 있어요. 정말 효도를 하게 만들 것이라면 그러한 기반 환경을 제공하는 쪽으로 해결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법이라고 봅니다.

반응형
AND
반응형


국가의 국경을 지키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국경이 국방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면 국경을 허락없이, 그것도 적국으로 넘어가는 정체불명의 사람에게 경고, 경고 불응시 사격은 기실 당연한 지침이고, 그러한 결과로 사람이 죽는 것은 그 절차와 지침대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국경을 넘어 적국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사상을 가진 사람일지, 아니면 진짜 간첩일지 알 수 없는 것이고, 국경 전체를 군인으로 마냥 매워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이번 사건의 초병의 행동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지 비난받을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하지만 현재 이것에 대해 영 이상한 논란이 있는데, 어떤 백치 멍청이들이 북한과 비교하며 그러한 당연히 해야할 일에 대한 요상한 비판을 거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이 진짜 종북이나 빨갱이니 하는 이들이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반응을 보면 대개 멍청해서 짓껄이는 헛소리로 판단되거든요.


다만 그러한 해야할 국방의 의무와는 무관한 지점에서, 쏴야했다와 쏘지 말아야했다 따위와는 상관없는 한 인간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그러한 싸움의 일부로 몰고가려하거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 그 자체를 비난하려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일거라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총에 맞을 행동을 하긴 했지만, 그 행동에 대한 판단이 아닌 죽음이라는 결과 그 자체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애도가 그렇게 비난받을 일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전쟁터에서 적국의 병사들을 죽여놓고 그 시체 위에서 죽음과 전쟁을 개탄하며 애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가 진짜 간첩이든, 아니면 이상한 사상에 빠진 사람일지 모르겠으나, 죽음 그 자체에 대한 안타까움은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고 보고, 그것이 그토록 비난받는 것은 이해할 수 없고, 또한 싸움의 일부로 매도되는 것은 옳은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건 그저 요상한, 추잡한 물타기죠.-

반응형
AND
반응형


어쩌면 민주주의는 지금껏 인간이 가져왔던 그 어떤 정치체제보다 가장 훌륭하고, 그만큼 가장 어렵고 이상적인 정치체제가 아닐까 합니다. 시민 개개인이 민주적 함량을 가지고 교육을 통해 일정 수준의 교양, 의식 수준을 가지며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깨어있는 국민으로 존재하는게, 사실 말로만 들어도 이상적이라 느껴지며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 생각되니까요.


실제로 우리나라 같은 경우 민주주의보단 독재적인 성향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고, 우리가 민주주의의 생활에 길들여져는 있다만, 실제로 우리가 지향하는 정치적 지표를 보면 정반대의 지점으로 향하고 있는 것같아요. 민주주의와는 척을 짓는 새누리당과 일베를 봐도, 그들의 인기와 덩치를 보면...



아무리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갈망해도 그것을 원하지 않는 권력자가 있습니다.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여러 목적을 위해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행동을 하거나, 그렇게 국민들을 유도합니다. 개중에는 아예 독단적으로 결정짓는 이들도 있죠. 국민들이 민주적이고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록 가진 자들의 힘은 더 약해지죠. 그러니 가진 자들, 권력자들은 그것을 막기 위해 온갖짓을 하는데, 정치판을 똥통으로 만들어서 정치에 염증을 느끼게 하거나(의도하건 안하건....) 민중들에게 반민주적인 요소를 심어놓고 그것이 인기를 얻게 만들거나.. 아니면 3S정책과 같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게 하는 일도 있죠.


심지어 교육정책에 손을 대서 민주적 소양과 의식수준을 갖지 못하게 만들고, 그러한 교육을 통해 하나의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노예를 만드는 일도 서슴치 않는 모양입니다. 안타깝게도 이건 우리나라만의 상황은 아니고, 민주주의가 동아시아보다 더 많이 성숙해있는 서구권에서야 조금 덜 할 뿐 비슷한 일들은 몇번 있었죠.


어찌됬든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원해도 권력자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으니, 그들이 가진 권력으로 최대한 민주주의를 기만하고 억제해서 민주주의가 아는 정치체제를 구축하거나, 아예 한국식 민주주의와 같이 허울뿐인 민주주의를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는 그럴 힘이 있고 그럴만큼 똑똑한 이들이니까요.


물론 민주주의는 이런 이들을 견제하는 장치가 있습니다. 국민들은 투표로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는 정치인을 뽑을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정치인이라는 것을 알거나 알게 되면 뽑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 못하면 법적으로 보장되어있는 권리로서 집회나 시위를 할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려면 국민들이 그러한 민주적 소양을 갖춰야하는 것인데, 국민들이 그러한 소양을 갖추지 못한 시기에 민주주의가 정치제체로서 등장하게 되고, 더욱이 정치인들은 국민들이 민주적 소양을 갖추지 못하게 여러가지 장치들을 갖추고 있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가진 엘리트주의 정도나 되려나요? 언론은 권력에 의해 움직이고 교육은 올바른 소양을 갖추지 못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 그러한 체제의 정당성을 주입시키고 문제가 터지면 외부의 적을 만들고 그 적과 결탁한 내부의 적이 있다는 식으로 프로파간다를 하며 이데올로기를 형성시키는 등.


이렇게 된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허울 그 자체겠죠. 물론 그런 암울할 정도로 우리나라가 망가졌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상황을 비판하기 위한 글도 아니지요. 그저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슷한 부분이 존재하고, 아마 이 글을 쓰면서 나온 요소들은 모두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따온 것일 겁니다. 글을 쓰는데 어쩌다 그렇게 되버린게지요;



하여간, 정말 이렇게 생각해보면 민주주의라는 것이 분명 우리가 겪어본 정치체제 중 최고로 훌륭한 정치체제이나 그만큼 약점도 많고 이상적이다라는 것을 고찰해보는 글이었습니다..

반응형
AND
반응형




중학교 세계사 파트에서 배울 수 있는 카노사의 굴욕은 대충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설명되어있습니다.


교황 그레고리오 7세는 원래 황제에게 있었던 성직자 임명권을 교황인 자신에게 가져와서 교황권을 강하게 하려 했으나 신성 로마 제국의 하인리히 4세가 반발했고, 그에 따라 그레고리오 7세는 하인리히를 파문 시켜버리고 그 이후 교황의 권력이 강해졌다 십자군 때 들어서 서서히 약해진다.. 라고 말이죠.


이에 대한 기본 설명이고, 조금 더 심화해서 알아보자면, 하인리히 4세가 서임권을 내놓지 못하겠다고 한 이유는 오토 대제 이후로 실시된 제국 교회 정책 때문인데, 성직자들에게 땅을 하사하여 자신에게 충성하고 다른 봉건영주들과 대립시킬 수 있는 성직 제후들을 여럿 만들었습니다. 이런 정책은 기독교를 보호한다는 명분과 더불어 각 주교들에게 충성을 얻을 수 있었으며 기존의 봉건 제후들에 맞서게 할 수도 있었죠. 게다가 성직 제후가 죽으면 봉토가 세습되는 여타 봉건 제후와는 달리 황제 자신에게 돌아오므로 남는 장사이자 당연히 황제의 권한을 높히는 도구이기도 하죠.


하지만 클뤼니 수도원 출신의 원칙주의자이자 교회개혁을 주장한 그레고리오 7세가 이것을 금지하자 하인리히 4세는 당연하게도 반발합니다. 이것에 대해 그레고리오 7세는 파문을 날려버리고 파문을 당한 하인리히 4세는 기독교도도 아니고 기독교 왕국의 왕도 아니게 되버리는데, 기독교가 세상의 근본원칙이자 이데올로기이기도 한 그 시절에 이것은 그러한 파문을 씹을 만큼의 물리적, 정치적 실력이 있지 않고서야 큰 문제가 되버립니다.


미디블 토탈워할 때 교황에게 파문 당하면 다른 국가가 막 때리고 그러잖아요? 딱 그런 꼴이라고나 할까요. 다르긴 달라도 왕의 정치적인 생명을 끝장내버리는 조치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건이 터짐에 따라 신성 로마 제국 내에서는 황제파와 교황파로 나뉘어 집니다. 교황의 파문 선언 이후에 신롬 내부의 제후들과 성직자들이 교황 편으로 붙기도 했고, 이미 많은 제후들은 하인리히 4세의 정책에 불만이 컸기 때문에 파문의 여파는 더욱 커졌죠. 심지어 황제파에 붙은 제후들도 대다수 이탈하거나 충성을 바치던 자들도 교황에게 사죄하라는 압박을 넣기도 했죠. 제후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아예 새로운 황제를 뽑을 움직임까지 보이자 결국 하인리히 4세는 교황이 있는 카노사 성을 홀로 방문하여 3일간 눈 밭에서 용서를 구합니다. 


이에 교황은 황제를 용서하고 미사에 참여시켜 파문 선언을 취소했죠. 


이제부터가 카노사의 굴욕 비하인드 스토리인데, 카노사의 굴욕은 하인리히 4세의 승리라 평해집니다. 사실 그레고리우스 7세는 카노사의 굴욕 사건 이전 아우스크부르크 회의를 소집하여  황제에 반대하는 귀족들을 한방에 보내버릴 찬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황제가 재빨리 사죄해버리자 이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죠.


이후 제국으로 돌아온 하인리히 4세는 파문을 명분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대항하던 귀족들의 반란을 진압하며 힘을 기르는데 주력합니다. 당시 귀족 제후들은 그를 황제로 인정치 않고 슈바벤공 루돌프를 황제로 인정하던 세력이 있었기에 하인리히 4세는 3년간 힘을 기르며 반란 세력을 타도하는데 성공하죠. 이 슈베반공도 사실 참 은혜를 원수로 갚은 녀석인데, 하인리히 4세의 어머니인 아그네스가 그에게 슈바벤 공령을 직할령으로 주었던만 황제 자리를 넘보고..


하튼, 굴욕 사건 이후 3년이 지난 1080년에 하인리히 4세는 어느 정도 신성 로마 제국에서 강력한 왕권을 안정시켜 가지게 되었고

이에 반해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교회 개혁 운동에 대한 반발로 신롬의 많은 성직자들에게서 반감을 사고 있었죠. 그러던 중 같은 해에 루돌프와 하인리히 4세를 중재하려던 교황은 하인리히 4세의 괘씸한 행각에 분노하고 다시 한번 파문과 동시에 폐위를 선언합니다.


그러나 많은 성직자에게 반감을 산 교황과 국내에서 실력을 기르는 황제와의 실질적인 물리력의 차이를 무시할 수는 없는 법. 하인리히 4세는 아예 따로 회의를 소집하여 현 교황을 강제로  폐위시키고 클레멘스 3세를 교황에 선출하려는 목적으로 로마로 쳐들어갑니다. 이에 따라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로마에서 도망치고 남부 이탈리아에 가서 5년간 살다 죽어버립니다. 당시 남부 이탈리아는 노르만족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그곳의 지배자인 로베르트 기스카르도 로마에서 교황을 구출하려다 죽을 뻔 했다고 하죠.


이렇게 하인리히 4세에 의해 옹립된 새 교황 클레멘스 3세에게 황제의 면류관을 받게 되지만 이렇게 되니 이탈리아 남부와 북부에 2명의 교황이 있게 되는 촌극도 벌어지게 됩니다.


이리하여 교황의 승리이자 교황권의 상징으로 알려진 카노사의 굴욕은 사실 하인리히 4세, 신성 로마제국 황제의 승리로 끝이 나버립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죠. 게다가 더 재밌는 점은 그 하인리히 4세도 자신의 장남 콘라드의 반란으로 차남 하인리히 5세의 반란으로 쫓겨나 죽게 되버립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교황권의 강화는 그보다 이후인 보름스 협약으로 교권의 우위를 인정 하면서부터죠.



한 가지 더 내용을 추가하자면, 하인리히 3세의 치세 때는 황제권의 최절정기로서 자기 마음대로 교황을 폐위하는 게 자주 벌어졌다는 점이죠. 아예 교황은 황제의 신하였던 수준의 시절이었습니다. 황제가 교회를 등에 업고 자신에게 반역적인 세력들을 평정하기도 했죠. 그렇지만 그는 클뤼니 수도원의 개혁 운동을 지지하였고, 이는 역으로 교회 세력들이 황권에 감히 도전하는 초석을 만들어버리게 됩니다.


심지어 그는 아직 어린 아들을 남기고 죽게 됐고 그 아들은 6살에 황제가 되어 결국 어머니 아그네스가 섭정으로 통치를 하나, 문제는 하인리히 3세가 넓혀 놓은 직할령들을 공작들의 환심을 사고자 뿌려대며 황제권이 약화되고 제후들이 황제를 업신여기게 되며, 하인리히 3세에게 가족을 잃은 로렌 지방의 프리드리히와 마틸다는 그와 그의 가문에 칼을 갈았고, 나중엔 마틸다 여사의 뒷공작으로 장남에게 이탈리아 왕의 자리를 미끼로 아버지 하인리히 4세에게 대항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자신의 아들에게 폐위 당하기도 합니다. 이후 한번 더 자신의 아들 하인리히 5세 또한 마틸다의 공작에 넘어가 아버지를 등지고 아예 납치 당해 폐위 되는 경험을 겪게 되었지요.

반응형
AND
반응형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최고, 최대, 최초.


세계최초로 무언가를 해냈다, 최대의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최고의 무언가를 이룩했다. 사람들은 이 말을 정말 좋아하고, 기실 무언가로 기록을 세운게 반인륜적이거나 하는 것이 아닌 이상 좋은 소식인 것임에는 별 다른 의견이 없을 수 있겠죠. 물론 그 사실만 바라보면 말입니다.



무언가에서 최고, 최대, 혹은 최초의 타이틀을 거머쥐기 위해선 많은 노력과 실력이 따라야합니다. 예컨데 최고의 차량을 만들기 위해선 그만큼 실력있는 엔지니어들과 디자이너들이 모여서 머리를 쥐어 짜내는 등 여러가지 노력이 필요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매대비 제작비용 등등을 따져 성능 등이 조금은 너프되기 마련입니다. 그렇지 않고 디자인, 성능 모두 완벽하다면 비쌀겁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최고, 최대, 최초라는 단어를 좋아할까요? 이것은 민족주의와 연관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고고학계에서 가장 조심해야할 것이 이 최고 최대 최초라는 것들이죠. 역사학계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는데, 최초의 무언가, 최대의 무언가, 최초의 무언가 등등을 내세우며 자랑하는 것은 민족주의를 부채질하는 것이고 이것은 국수주의로 흘러갈 문제도 가지고 있어요.


특히 이러한 것들을 십분 활용한 시절이 바로 독재 시절인데, 자신들의 독재를 조금이라도 덮고 정당성을 확보하며, 어쨋든 우리가 사회를 발전시키고 있다! 라는 것을 홍보하기 위한 프로파간다로 사용했습니다. 이건 특히 경제적인 부분에서요. 또한 정당성이 없는 정권들이 다들 그렇듯 전통과 같은 역사적인 면을 끌어다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발악하는 경우가 있는데, 역사에서 최초, 최대, 최고와 같은 것들을 끌어다 민족주의를 부채질하고 그러한 것을 통해 자국내의 반발을 최대한 무마하고 강제로 통합시키는 용도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최고, 최대, 최초는 다르게 보면 결과만능주의의 일면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 과정은 모조리 생략된 채 최고, 최대, 최초라는 타이틀만 내새우는데, 그 과정에서의 수많은 희생, 가령 어느 정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인권을 유린 당한 채 노동을 해야한다던가 하는.. 그런 희생들을 뒤에 감추고 있는 경우가 많죠. 우스갯소리로 얼마나 많은 공돌이들을 갈아넣었느냐하는 것도 조금 심각하게 보면 딱 이 꼴인 셈이죠.


그렇게 타이틀을 뽑아놓고 우리가 이렇게 대단하다는 식으로 홍보하는게 프로파간다고, 어쨋든 경제만 살리면 된다라는 마인드를 가진 이들에게 그거면 된 셈이죠. 그런 마인드도 다 그때 만들어진 가치관이겠다만..

반응형

'취미 >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는 자.  (0) 2013.09.14
카노사의 굴욕, 그 비하인드 스토리.  (4) 2013.09.12
사람이라는 가치가 우선이다.  (0) 2013.09.07
상식에 비추어 생각해보다.  (0) 2013.09.06
반동적 태도  (0) 2013.09.05
AND
반응형


다시 말하자면 문재인 후보의 슬로건인 사람이 먼저다가 되겠습니다. 처음엔 그냥저냥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최근엔 이 말이 와닿게 느껴지더군요. 사람이 먼저다라.. 돈이나 다른 것들보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것..


누군가에겐 돈이 사람보다 먼저 일 수도 있고, 혹은 다른 무언가가 사람보다 우선적인 가치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영화나 만화에서 많이 보는 '더 큰 것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한다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실제로 이런 사람들은 현실에서도 보입니다. 광신에 빠진 종교인은 자신들의 종교와 신이라는 가치를 인간보다 우선적인 가치를 지닌다 믿어 신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일도 마다하지 않겠죠. 


돈이 먼저인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힘겹게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집을 헐어버리고 모두 내쫓아버리는 것, 차량 사고로 쓰러진 아줌마를 무시한채, 그 아줌마가 흘린 수백만원을 줍기 위해 달려든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우리가 겪은 것들이고.. 그들에겐 사람보다 돈이 우선적인 가치를 지녔겠죠.



높은 위치에서 많은 사람들을 굽어보는 이들에겐 어쩌면 사람 한명한명이 큰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전쟁때 장교들이 더 큰 이익을 위해 병사들을 사지로 내보내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을 수도 있고,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서 등을 돌리는 정치인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모두 동등한 가치를 지니는지라, 더 큰 무언가를 위한다는 명목을 가진다고 해서 그것이 대의가 되고 대의가 되어 용서받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단 한명의 피해자, 단 한명의 희생자가 없으리라곤 생각치 않고, 그러기 위해선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줄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정치적인, 이익을 위한, 이기심에 찌든 이유로 그들에게 어쩔 수 없다는 비정한 말 한마디를 던지는 일은 그럼에도 사라져야하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중대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커다란 사람은 그 누구보다 다수의 사람들에게 가까워야 하고, 가장 밑바닥을 겁 없이 용기있게, 깨끗한 눈으로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과 이야기하고, 그들을 이해하며, 그들의 고통과 불편은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정치인의 몫이고, 그것이 정치의 목적이니, 다시 말해 사람들이 살기 좋게만드는 것이 곧 정치의 목적인지라, 민생과 멀어진 정치는 위선이고 무가치하다는 말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돈이 사람을 편하게 하기 위해 등장했으나, 그것의 목적이 전도되어 돈에 목을 매는 사람들이 세상천지 바닥부터 천장까지 꽉 들어차 있는 모습을 보면 맨 처음 순수한 목적으로 돈을 만든 이들이 보기에 얼마나 가슴 아플지 모르겠군요. 사람이 살아야지. 사람이 사람을 버리고 무가치하다 여기는 것이 사람이 할 짓인가..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이죠.


그릇엔 그릇이 가질 수 있는 양이 존재하고 그것을 넘어서면 넘치는 것이 법칙인적 사람도 마찬가지로 그 그릇에 담지 못할 것을 가지려 하면 욕심이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으레 다른 것을 사람보다 우선하여 가치를 두기 때문에 더 크고 더 많은 것을 관장하는 자리에는 그 그릇에 맞는 사람이 올라서야 옳겠죠.



예수나 공자, 부처님도 정치나 사사로운 이익보단 사람을 우선시하였고, 분명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우리들이기에 이렇게 정치적인 이유로,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사람을 저버리는 일을 당연시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 아닌가, 옳지 못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봐야하지 않을까요? 사람이기 때문에 하는 독선일지 몰라도, 우리가 사는 이 도시도, 각종 문물과 지식도 모두 사람을 이롭게하기 위한 것이고 사람을 위한 것인데 그것들을 위해 사람을 저버리는 일은.. 분명 주객이 전도된 것이 아닐까요?

반응형

'취미 >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노사의 굴욕, 그 비하인드 스토리.  (4) 2013.09.12
최고, 최대, 최초. 삼최증  (0) 2013.09.08
상식에 비추어 생각해보다.  (0) 2013.09.06
반동적 태도  (0) 2013.09.05
역사에 대한 잣대, 융통성.  (0) 2013.09.04
AND
반응형


우리가 욕을 하는 수많은 사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정치에서 모습을 보인다면 자기들끼리의 정치싸움을 위해 여러가지 술수를 사용하기도 하죠, 언론을 그것을 어떻게든 쉴드를 치려고 하고, 그것을 깍아내리려하는 자들은 치졸한 틈이라도 잡고 물고 늘어지는 등.


대부분 이러한 이들에는 정치적인 이념을 뒤집어 씌우게 되는데, 그것이 정치인들이 의도한 것이었든 아니면 우리들이 스스로 뒤집어 씌우든 상관없이 그러한 문제를 좌파나 우파와 같은 것과 연관지어 판단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이러한 노력을 별 의미 없으며 실상 따지고 본다면 그러한 문제가 좌파냐 우파냐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것이기도 하죠.



어떠한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서 가장 간단하고 치우침 없이 바라보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상식이 비추어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식에 비추어 판단하기는 정론을 뽑아내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죠.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발상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 감정을 갖기는 쉬워도 판단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인지 그런 모습을 쉽게 보기는 어렵죠.


상식이라. 누구나 알고있고 누구나 동의하고 있는 이러한 판단의 기준은 우리에게 청량감을 안겨줍니다.


일상에서의 갈등이 되었든, 정치나 국가간의 갈등이 되었건 그것을 판단하기 어렵다면 잠시 머리를 식히고 상식에 비추어 판단해보세요. 그럼 문제가 새롭게 보일 것이며, 어쩌면 해결점이 눈에 들어올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반응형
AND
반응형


흠흠. 누구나 어떠한 악으로 인식되는 집단에 비난적으로 편입되기 싫어하고, 그 집단이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안 좋게 보이는 것이 아닌 절대적인 기준에서 악으로 인식되는 집단이라면 더욱 치를 떨며 반발할 것입니다. 예컨데 우리나라 좌파가 빨갱이라 매도되거나, 조금이라도 일본에 우호적으로 보이는 이들에게(심지어 일본어를 공부하는 이들에게도!) 친일파라 매도하는 행태가 그러한 비난이 됩니다.


이러한 비난이 아니라도 비슷하지만 다른 경우가 타인에 의해 오해되고는 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일어나는데, 저 또한 비슷한 경험이 몇번 있었고, 그때마다 그러한 오해가 두려워서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거나 되려 반동적으로 더 극렬하게 반대의 성향임을 내비치려 했었죠.



한국의 좌파나 진보는 빨갱이, 종북이라는 단어에 노이로제가 있습니다. 실제로 NL, 주사파라던가 70~80년대 북한의 실상이 잘 알려지지 않았고 되려 자국의 행태가 빈부격차, 지독한 독재와 모든 사회적 문제를 외부의 적에게 환원시키는 행동 등에 질린 이들이 북한이라는 적국의 그럴듯한 프로파간다에 넘어가 북한을 찬양하며 남한을 욕하는 경우가 있기는 했습니다만, 현재 소련이 망하고 북한의 실상이 제대로 알려진 지금에서 대부분의 좌파나 진보는 이번 이석기와 같은 이들과 궤를 달리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삐딱하게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다 거기서 거기로 보이겠다만, 실제로 일반적인 좌파와 진보는 이러한 빨갱이, 종북이라는 것이 대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집단이기도 하죠. 그렇게 욕을 먹고 나쁜 놈으로 취급받으며 언제나 억압받은 시절이 그리도 지독했으니.


하여간 이렇게 종북도 빨갱이도 아닌 좌파나 진보들에게 분명한 약점이 있다면 위와 같은 빨갱이 딱지가 바로 그러합니다. 나는 빨갱이가 아니고 그냥 부의 분배를 통해 빈부격차를 줄이고자 주장하는 1인일 뿐인데 빨갱이로 딱지가 붙고 비난을 듣는다면, 그리고 그것에 오랫동안 시달린다면 노이로제가 걸리게 됩니다. 사회의 암묵적 억압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신의 주장에 대해 자기검열을 하게 되죠.


북한과 엮여서 빨갱이라는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렸으니 당연 북한을 굉장히 증오하게도 됩니다. 차라리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많이 들거에요.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너 빨갱이지! 너 종북이지! 라는 비난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나는 빨갱이가 아니다, 나는 종북이 아니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극렬하게 아니라고 주장을 하며, 본 주제보다 더 중요하게 그것을 증명하려 노력을 하기도 합니다.


친일파 드립도 마찬가지인데, 분명 자신은 일본의 극우와 식민지시대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참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에 의해 일본에 대해 우호적인(물론 우호적일 수 있는 것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하죠.) 태도를 보여주면 어느 누군가가 나서서 너 친일파지! 하고 딱지를 붙힙니다. 그러면 분명 나는 그런 친일파와 일본의 극우를 증오하기 때문에 그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에 대한 반동으로 극렬하게 아니라는 주장을 폅니다.



이러한 반동적인 태도를 유도하는 것도 굉장히 불쾌하지만, 비난받는 입장에서 그러한 오해가 생기는 것 또한 굉장히 불쾌한 일입니다. 난 분명 개객끼가 아닌게 개객끼가 되는 것.. 정말 불쾌하죠. 그런 일들을 격다보면 노이로제가 걸리듯이 어느새 자기검열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자기검열은 올바른 주장에 걸림돌이 되는 일도 비일비재하죠. 한 문장으로 끝낼 수 있는 것도 오해가 생길까봐 아니라는 해명을 몇 줄 더 다는 경우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굉장히 시달리다보면 아예 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거나, 아예 전향하게 되는.. 경우도 있으려나요?..

반응형
AND
반응형


사람이 살아가면서 융통성이 조금은 있어야하듯이 역사를 바라볼때도 융통성이 필요하다는 것은 특히 강조되어야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쉽게 말해서 역사를 현대적 잣대로 판단하지 말자라는 것이죠.


현대인들이 보기에 과거인들이 바보같은 짓, 예컨데 마녀가 있다고 믿었거나, 각종 괴물이나 악마에 관한 미신.. 혹은 비이성적, 비합리적 판단들을 서슴치 않고 그에 대한 이상함이나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을 보고 그들을 바보 같다고 욕한다거나, 멍청하다고 한다는 둥 하는 행동은 기실 아무 의미 없고 역사를 평가, 판단하는 것에 대한 독선을 지니고 있다는 것으로, 그들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가 그 당시에는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상기해야합니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현대적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는 이와 같습니다. 그 당시 그들에게는 그것이 상식이었고, 최선의 수단이었거나, 그러한 사상이나 믿음이 광범위한 가치관을 형성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늘을 향해 제사를 지내거나 이집트인들이 죽었다 미라로 만든 뒤 다시 환생한다는 것을 믿었거나, 혹은 늑대인간이나 마녀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던 사실은 그것에 대한 의심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의 상식이자 사실이었고 개개인에게 세상을 비추는 하나의 가치관이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무지하지 않았고, 되려 시대의 상식에 충분히 부합했던 이들이자 충실히 따른 이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미신이라고 말하는 것들의 반대가 이성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 미신이나 종교라 하는 것들이 세상의 근본원칙으로 인간존재를 규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던 시절에는 그 자체가 이미 이성이었죠. 이치의 기반, 가치관의 기반이 무엇이냐에 따라 현재 우리가 믿는 이 이성이라는 것도 상대적으로 미신으로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과거인들의 미신적인, 종교적인 행동이나 사건을 알게된다 해도, 그것을 통해 그들을 멍청하다라고 욕하지 말고, 그들이 어째서 그러한 행동을 보였는가, 그러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생각해보고 공부해본다면, 그것이 진짜 역사를 공부하는 것일겁니다.


반응형
AND
반응형


이 글은 영문 위키의 Dancing Plague of 1518 항목을 번역한 글입니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를 통해 댄스 대재앙이라고 더 잘 알려졌으나 본문에서는 춤 역병, 댄서는 춤꿈이라 번역하였습니다.

영문 위키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Dancing_Plague_of_1518



Engraving of Hendrik Hondius portrays three women affected by the plague. Work based on original drawing by Peter Brueghel, who supposedly witnessed a subsequent outbreak in 1564 in Flanders.



The Dancing Plague (or Dance Epidemic) of 1518 was a case of dancing mania that occurred in Strasbourg, Alsace (then part of the Holy Roman Empire) in July 1518. Numerous people took to dancing for days without rest, and, over the period of about one month, some of those affected died of heart attack, stroke, or exhaustion.


춤 역병(혹은 유행성 춤병)은 1518년 7월 알자스 지방 스트라스부르그(신성 로마 제국의 영토)의 댄싱 매니아에게서 발견되었다.  다양한 많은 사람들은 며칠간, 혹은 한달이 넘도록 쉬지도 않고 춤을 춰댔고, 그 중 일부는 심장마비, 뇌졸중, 혹은 극도의 피로로 사망하였다.



Events

The outbreak began in July 1518, when a woman, Frau Troffea, began to dance fervently in a street in Strasbourg.[1] This lasted somewhere between four to six days. Within a week, 34 others had joined, and within a month, there were around 400 dancers. Some of these people eventually died from heart attack, stroke, or exhaustion.[1]


사건

1518년 7월 스트라스부르그의 거리에서 격렬히 춤을 추던 트로페아라는 여성에게서 돌연 발견되었다. 그녀는 4일~6일간 춤을 추었고, 한 주가 지나기 전 34명의 사람들이 그 춤에 참여했다, 그리고 한달이 지나기도 전에 400명의 춤꾼 무리가 형성되었다. 그들 중 일부는 심장마비, 뇌졸중, 혹은 극도의 피로로 사망하였다.


Historical documents, including "physician notes, cathedral sermons, local and regional chronicles, and even notes issued by the Strasbourg city council" are clear that the victims danced.[1] It is not known why these people danced to their deaths.


"의사의 기록, 대성당의 연설, 지역과 지방의 연대기, 심지어 스트라스부르그시 영주의 일기"를 포함한 역사적인 기록에 의하면 분명히 피해자는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째서 그 많은 사람들이 죽을 때 까지 춤을 추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As the dancing plague worsened, concerned nobles sought the advice of local physicians, who ruled out astrological and supernatural causes, instead announcing that the plague was a "natural disease" caused by "hot blood." However, instead of prescribing bleeding, authorities encouraged more dancing, in part by opening two guildhalls and a grain market, and even constructing a wooden stage. The authorities did this because they believed that the dancers would only recover if they danced continuously night and day. To increase the effectiveness of the cure, authorities even paid for musicians to keep the afflicted moving.[2] Some of the dancers were taken to a shrine, where they sought a cure for their affliction[citation needed].


춤 역병이 더 심해지자, 영주는 지역 의원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들은 점성술이나 초자연적인 이유를 배재하였고, 대신 "뜨거운 피"에서 비롯된 "자연적인 질병"이라 공표했다. 그러나 피를 흘리기를 처방하기 보단, 지방 당국에 의해 오히려 춤을 장려토록 하였다. 얼마간은 두개의 시청과 양곡 시장, 그리고 무대를 건설하게 하였다. 지방 당국은 그들이 밤낮 없이 춤을 더욱 추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치료의 효율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음악가들을 고용하기도 하였다. 몇몇 춤꾼들은 신전에 방문하기도 하였고, 몇몇은 그들의 고뇌에서 치유를 찾기도 하였다.


----------------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나온 내용이라 사실인가 해서 검색해봤더니 사실이었군요. 서프라이즈에서는 조금 다르게 나온 부분, 추가된 부분이 있었는데, 스트라스부르그의 영주가 수천명의 춤꾼 무리가 생성되자 군대를 보내 그들을 해산시키려 했으나 되려 군인들이 춤에 빠진다는 소식을 들었고, 음악가와 춤꾼들을 고용하니 그들의 춤이 더욱 폭력적으로 변하였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원인이 습한 지역이었던 스트라스부르그의 병에 걸린 호밀로 만든 호밀빵을 먹은 이들이 맥각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혹은 집단 히스테리 때문이다라는 설을 소개했습니다.

반응형

'취미 >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동적 태도  (0) 2013.09.05
역사에 대한 잣대, 융통성.  (0) 2013.09.04
꿈을 포기하게 되는 슬픈 현상  (0) 2013.08.31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는 책..  (2) 2013.08.31
너 자신을 알라.  (1) 2013.08.28
AND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855)
취미 (855)
백업 (0)

RECENT ARTICLE

RECENT COMMENT

CALENDAR

«   2013/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